Title |
공론장 이론의 정치적 이해 : 아렌트, 하버마스,월쩌를 중심으로 |
Authors |
김경희 |
Issue Date |
1996 |
국 문 초 록
본 논문은 공론장 이론에 대한 소개를 목적으로 한다. 정치는 일반 대중과는 무관한 몇몇 권력층과 국가기관에서 행해지는 일상과는 동떨어진 거창한 일로 여겨져 왔고 여겨지고 있다. 이에 공론장 이론은 정치는 함께 모여 토론과 행동을 통해 우리의 일을 스스로 처리하는 가운데 생기는 우리 주변의 영역이라고 주장한다.
본 논문은 아렌트의 공론장 이론과 하버마스의 근대 부르주아 공론장의 구조변동, 그리고 월쩌의 공론장 이론에 대한 정치적 해석의 3부분으로 구성된다. 아렌트에 의하면 공론장은 공동의 일이 생기면 필요에 따라 주변의 사람들끼리 모여 논의하고 행동하는 가운데 만들어지는 우리 주변에 항상 잠재해 있는 공간이다. 참여자들의 평등한 행동과 발언이 막히거나 사라지면 그것도 곧 사라지는 생성, 변화 소멸의 과정을 가지는 살아 있는 열린 공간인 것이다. 이런 생동하는 공론장을 역사적 관계 속에서 조망한 것이 하버마스의 공론장 논의이다.
그는 근대 자유주의 공론장의 구조 변동 과정을 역사적 상관관계 속에서 기술한다. 시민들이 모여 토론하고 행동하는 자발적 결사로서의 공론장을 정차의 핵심 공간으로 이해한다. 봉건적인 절대 권력의 밀실 정치를 무너뜨리고 인간의 자유와 평등의 이념을 제도화시킨 것 은 이러한 자발적 결사가 기반이 된 자유주의 시기 부르주아 시민층의 공론장이었다. 그러나 자원의 독점과 복지 제공 등을 통해 사적 부문과 공적 부문이 상호 침투하게 된 복지국가와 그 사회에서는 공중의 토론은 사라지고 행정기관과 거대 기업의 전시, 조작 활동만이 남게 되었다. 이에 하버마스는 비판적 의사 소통 과정의 적극적 참여를 통한 공론장의 활성화를 주장한다.
이것은 바로 월쩌가 논파한 화석화되어 그 봉사자에 지배자로 군림하게 된 복지국가와 관료 체계와 엘리트주의에 대항하는 열린 공간의 정치이다. 지역 공동체와 시민사회의 기초인 여러 연합, 단체, 그룹들의 자치와 참여로 이루어지는 민중에 의한 권력 점유를 통해 비판, 저항, 참여의 정치를 이루고자 한 것이다. 이렇게 참여와 연대를 통해 이루어지는 공론장의 정치는 정치를 우리와는 동떨어진 거대한 일로 바라보지 않게 하고 끊임없이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처해 나가는 우리 자신의 일로 여기게 한다.
공론장속에서 이루어지는 정치는 이상적인 정치제도가 무엇인지를 묻지도 대답하지도 않는다. 자신의 권위를 최고라고 주장하지도 강요하지도 않는다. 그것은 단지 보호되고 유지되어야 할 최소한의 공간인 것이다. 그것은 항상 그 순간의 현실의 모순에 관심을 둘 뿐이다. 공동체의 성원들과 문제를 같이 숙고해 나가고 그 해결을 찾아 나가는 곳이 공론장인 것이다.이것이 거대한 계획 속에서 모든 것을 담지한 자세한 설계도를 가지고 해 나가는 큰 정치가 아니라 좀 더 나은 것이 무엇인가를 물으면서 미래를 준비하며 현재를 고쳐 나가는 끊임없는 운동, 과정으로서 공론장의 정치인 것이다.
주요어: 공공성, 공론장, 공적 토론, 정치, 자유주의 공론장, 복지국가,
사적 영역, 문자세계 공론장, 정치영역의 공론장, 밀실 정치,
광장 정치, 공공성, 공적 토론, 발언, 비판, 행동, 시민, 대중,
시민사회, 권력, 열린 공간, 저항, 공론장의 활성화,
공론장의 재봉건화, 살롱.
목 차
제 1 장. 서 론 1
제 2 장. 아렌트의 공론장 개념 7
1)행동의 영역으로서의 공론장 7
2)공론장의 권력 12
제 3 장. 하버마스의 공론장 이론(1) 17
1) 부르주아의 출현과 공중의 탄생 18
2)밀실의 정치에서 광장의 정치로 23
제 4 장. 하버마스의 공론장 이론(2) 30
1)토론하는 주체에서 수동적 주체로 30
2)재봉건화된 공론장과 공론장의 부활 34
제 5 장. 공론장 이론에 대한 월쩌의 해석 42
1)저항과 참여의 정치 42
2)비판의 정치 48
3)열린 공간의 정치 – 시민 정치 51
제 6 장. 결론 59
참고문헌 62
ABSTRACT 69
제 1 장. 서 론
투표는 국민의 정치 참여의 정도에 따라 성숙되어져 왔다. 그러나, 그 참여의 장(場)인 정치는 국민과는 유리되어 있는 것 같다. 국민은 자신들을 정치의 주인으로 생각하기는 하나 그것은 생각뿐이고, 실제로는 자신과는 무관한 일로 생각한다. 이 모순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이런 모순 속에서 정치는 무엇이고 어디에 있을까?
이에 필자는 ‘정치’가 우리들의 삶에 앞서 선험적으로 존재하는 어떤 것이 아님을, 그것은 우리들이 만들어 나가는 것임을 밝히고자 한다. 정치는 우리와 동떨어진 일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에서 우리 스스로 해 나가는 ‘우리’의 일이라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이런 의도 하에 본 논문에서는 ‘공론장(Public Sphere, Public realm)1)’에 초점을 맞추려 한다. 공론장이란 정치 문제에 대한 공론, 여론 형성의 제도적 장소로서 정치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근대 정치의 핵심 공간이다. 봉건시대의 귀족, 전제 정치에 대항하여 정치의 주체로 등장한 시민이 참여하여 스스로 만든 곳이 바로 공론장이다.
본 논문은 한나 아렌트(H.Arendt)의 인간의 의사 소통 여부에 따라 생성 소멸하는 잠재적인 공간으로서의 공론장 개념과 근대 공론장의 발생과 변화 과정을 기술한 위르겐 하버마스(J.Habermas)의 공론장 이론 그리고 현실과의 대면 속에서 구체적 정치를 사고하는 마이클 월쩌(M.Walzer)의 열린 공간의 정치 – 시민 정치 – 의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인간조건』(The Human Condition)이란 저작을 중심으로 살펴 볼 아렌트의 공론장 개념은 기존의 입장과는 전혀 다른 위치에서 정치와 권력을 바라볼 것을 주장한다. 정치를 입법부나 행정부 같은 확고 부동한 국가기구에서 행해지는 거대한 일이나, 이 속에서 행해지는 투입-산출-피드백 같은 유형화되고 고정화된 형태로 파악하는 것이 기존의 것이었고, 여기서 권력은 한 기관이나 개인에 집중되어 있거나 억압적이고 통제적인 것으로 파악될 수 밖에 없었다. 이에 대해 아렌트는 정치가 우리 인간들 주변에 항상 잠재해 있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모여 공동의 일에 대해 발언하고 행동하는 가운데 정치의 영역은 탄생한다고 말한다. 거대한 조직, 건물, 인원 등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수는 비록 적을지라도 함께 모여 의사 소통과 행동을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또 여기서부터 통제적이며 억압적이지 않은 소통적 권력이 나온다. 아렌트에게 정치와 권력은 항구 불변의 것이 아닌 우리 인간들의 참여 속에서 만들어지는 열린 공간과 개방적인 집단의 권력, 힘인 것이다.
하버마스의 공론장 이론은 그의 저서 『공론장의 구조변동』(The Structural Transformation of the Public Sphere)을 중심으로 살펴 볼 것이다. 『공론장의 구조변동』에서 하버마스는 봉건 군주 권력에 대항해서 당시 생성 발전하고 있던 시민 사회의 자유 부르주아층이 그들의 권리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자유주의 공론장의 생성 발전 과정과 개입주의, 복지 국가의 발전에 따른 공론장의 쇠퇴 과정을 역사 사회학적 관점에서 기술하고, 공론장의 쇠퇴에 대항해 그것에의 적극적 참여를 통한 공론장의 부활을 주장한다. 한편, 월쩌는 그의 논문과 저서들에서 현대사회 속에서 거대화된 국가, 관료, 사회조합 권력들의 억압과 독재를 지적하고, 이들에 대한 저항과 그 저항 속에서 배태될 수 있는 소영웅주의에 대한 자기비판을 주장한다. 이러한 저항과 비판의 정치는 열린 공간 속의 참여를 통해 서로의 차이와 독자성을 인정하는 시민과 그 자발적 결사들의 정치인 ‘소(小)’ 정치로 우리를 인도한다.
필자는 공론장의 구조변동을 근대 정치의 주체로 등장한 시민이 어떻게 전제 권력에 대항하여 공론장이란 자신의 정치 공간을 만들어 냈으며, 또 이것을 통해 어떻게 근대 입헌 국가를 수립했는지의 과정과 국가와 사회 권력의 침투 속에서 공론장이 어떻게 해체, 소멸하여 가는지의 변화 과정을 ‘대’정치와 ‘소’정치의 대립, 투쟁 속의 생성과 변화를 통해 살펴 볼 것이다. 이것은 월쩌에게서 열린 공간의 정치로 좀 더 구체적으로 기술될 것이다.
근래 한국에서도 하버마스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그러나, 논의의 초점은 보편적인 담화 구조에 대한 철학적 작업인 합리적 의사 소통 행위론에 주로 맞추어 지고 있을 뿐, 공론장에 대한 논의는 거의 전무하다. 94년도 한국 정치학회 발표 논문인 황태연 교수의 “하버마스 공론장 이론과 민주적 법치국가론의 재현”은 하버마스의 최근 저작인 『사실성과 유효성』(Faktizitaet und Geltung)(92)을 중심으로 공론장 이론을 재구성한 것으로 그나마 체계적인, 한국 정치학자의 논문이다. 서구에서도 동구권 몰락 후 그의 공론장 이론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 되었으며, 이것은 그의 62년 교수자격 취득논문인 독일어 원본이 89년에야 영어로 번역된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혹자는 하버마스를 그의 대저(大著)인 『의사 소통 행위이론』을 중심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필자는 오히려 『공론장의 구조변동』을 중심으로 그의 논의를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의 후기 이론 가운데에는 이 초기 저서의 문제의식들과 긴장 관계가 그대로 녹아 있기 때문이다. 선진 복지국가와 조직 자본주의의 분석에 있어서『공론장의 구조변동』과 합리적, 비판적 공론화의 과정은 하버마스의 논의 발전에 중심 범주로 자리를 잡게 된다.2)
다른 한편, 하버마스는 점점 구체적 현실과는 유리된 ‘보편적 의사 소통 구조’에 천착하게 되는데 이는 『공론장의 구조변동』에 내재한 모순의 발현이라고 보여진다. 하버마스의 ‘공론장 이론’에 대한 관심의 중간 결과물이며, 89년에 열린 학술회의의 논문들을 묶어 낸 『하버마스와 공론장』(Habermas and the Public Sphere)(ed. Craig Calhoun, The MIT Press, 1992)에서 칼룬(C.Calhoun)은 하버마스의 공론장 범주에 대한 언급은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말한다. 하나는 합리적이며 비판적인 담화의 질 또는 형식이고, 다른 하나는 대중참여의 양 또는 그것에의 개방성(위의 책, p4)이다. 하버마스는 이 둘의 긴장관계속에서 전자로 기울었다고 한다. “그의 관심이 민주적 의사형성을 위한 기초로서의 공론장의 제도적 건설, 구성에서 모든 언설에 보편적으로 함축된 타당성 요구로 이동한다”는 것(p31)이며, 이는 곧 “민주주의를 위한 역사적으로 특수한 기초공사 작업에서 인간 의사 소통의 초역사적 능력에의 의존으로 방향을 전환한다는 것”(p31)이다. 다시 말하면, 하버마스는 ‘역사(歷史)’에서 ‘이론(理論)’으로 이동한다는 것이다.
이에 필자는 아렌트의 공론장 개념에 착목하고, 하버마스의 역사에서 이론으로의 이동에 대항하여 사회, 역사적 분석, 기술인 『공론장의 구조변동』에 대한 정치적 독해를 시도하려 한다. 그것은 이상적으로 구성되는 의사 소통 구조가 아니라 역사 속에서 시민이 직접 참여하여 정치를 구성하는 열린 공간으로서의 공론장에 초점을 맞추어 하버마스의 긴장관계를 정치학적으로 재전유하려는 것이다. 공인의 참여 속에 끊임없이 만들어 나가는 정치의 장으로서 공론장을 정치는 ‘국가권력을 획득하는 권력투쟁일 뿐이다’라는 식의 주어진 어떤 것, 고정된 것으로 생각하는 기존의 통념에 반대하여 주체들의 참여 여하에 따라 생성, 소멸되는 역동적인 것으로 보려 한다. 이에 월쩌는 좋은 모범을 제시한다. 월쩌는 철학 이론을 거부한다. 끊임없는 역사, 현실과의 대면 속에서 현실의 모순에 대처한다. 만병통치약을 만들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때 그 때 필요한 처방을 한다. 억압과 독재에는 저항을, 저항 속에 나타날 수 있는 영웅주의에는 비판을, 획일화에는 차이를. 미리부터 있던 정치가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 생동하는 정치를 바라보는 것 그것이 철학으로서의 정치가 아니라 정치로서의 철학을, 정치철학을 보는 것이다. 철학은 현실의 풍부함을 다 포착할 수 없으며, 철학이 현실이 되려 할 때 그것은 독재로 다가왔다. 이에 정치는 현실의 복잡성 속에서 철학의 한계를 보려 한다. 철학 속의 이념, 이상은 등대(guiding light)로서 칠흑 같은 세상에 하나의 지표, 그 이상 이하도 아닌 것이다.
하버마스와 그에 대한 연구에서도 비추어지듯이 기존의 입장은 철학에서 정치를 보려고 하였다. 그 결과는 좀더 정교한 것을 찾아가는 끊임없는 이론화의 과정이었으며, 차이를 담지한 구체적이며 복잡한 인간의 삶에 대한 무시였다. 이제 이 논문은 부족하지만 정치에서 철학을 보려 한다. 그것은 획일화의 과정도, 추상화의 과정도 아닌 다양성 속의 차이와 우연을 인정하는 현실과의 끊임없는 열려진 대화의 과정일 것이다
다음 2장에서는 인간의 발언과 행동을 통해 만들어지는 정치의 영역으로서 공론장을 볼 것이며, 3장에서는 근대의 시작과 더불어 발생한 새로운 정치의 공간으로서 자유주의 부르주아 공론장의 역사와 구조를 살펴볼 것이며, 4장에서는 자본주의 발달과 그에 따른 개입주의 국가의 등장으로 인한 공론장의 변화와 그것에 대한 하버마스의 대안을 살펴 볼 것이며, 5장에서는 개혁이나 혁명의 정치가 아닌 열린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참여와 저항의 정치를 살펴 볼 것이다.
끝으로 이 논문의 한계는 첫째, 아렌트와 하버마스간의 이론적 연관성을 충분히 밝히지 못한 점이다. 둘째, 하버마스의 초기 저서인 『공론장의 구조변동』 이후의 이론발전을 구체적으로 기술하지 못했다. 따라서 이 논문의 논의가 지금의 하버마스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를 밝히지 못하였다. 셋째, 월쩌의 논의를 그의 전(全) 저작들과의 연관 속에서 다루지 못했다. 필자의 부족함으로 인해 생긴 이 밖의 많은 한계들은 앞으로의 연구 과제로 삼겠다.
제 2 장. 아렌트의 공론장 개념
아렌트에게 인간은 같이 모여 살면서 발언과 행동을 통해 서로의 공동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존재이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같이 모여 공동의 일을 해 나가는 곳, 그곳이 공론장이다. 따라서, 그 곳은 인간이 함께 의사 소통을 해 나가며 그 가운데 생기는 권력으로 스스로를 유지, 보존, 만들어 나가는 우리 주변에 항상 잠재해 있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장소이다.
다음에서는 공론장에서 행해지고 그것을 생성시키는 인간의 행동과 그것을 통해 공론장에서 생성되고, 그것을 유지시키는 권력을 살펴보면서 행동과 권력 속에서 작동할 수밖에 없는 공론장의 성격에 대해 알아보겠다.
1)행동의 영역으로서의 공론장.
아렌트에 의하면 공적(public)이라는 것은 다음 두 가지 의미로 쓰인다.
첫째, 공적으로 나타나는 모든 것들은 모든 이들이 듣고 볼 수 있으며, 가장 광범위한 공개성(publicity)을 지닌다.3) 모든 것이 모두에게 공개되는 드러남(appearance)의 영역인 것이다.
둘째, 그것이 우리 모두에게 공통되고, 우리 자신만의 사적 영역과는 구분되는 한에서 공동의 세계(common world)를 의미한다. 이것은 우리가 만든 우리 주변의 환경이며, 그 속에서 같이 살아가는 이들과의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들과 관련된다.4)우리를 서로 흩어지지 않도록 함께 모아 주는 공동의 영역인 것이다.
이렇듯 공공의 영역은 서로 다른 다양한 위치와 입장을 가진 많은 사람들의 각 관점들(perspectives)과 상태들(aspects)에 의존하게 되며, 이런 의미에서 공론장은 구성원 모두의 공통성(common nature)에 의해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 입장의 차이와 관점의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같은 문제와 대상에 항상 관여하며, 관심을 가진다는 것에 의해 보장된다.5) 즉, 자신을 타인들 앞에서 드러내며(appear), 그러는 가운데 그들과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공론장인 것이다.이렇게 타인과 함께 살아가야만 하는 공론장을 생성, 유지시키는 것이 행동인 것이다.
인간을 조건 지워진 존재(conditioned being)6)로 보는 아렌트는 이런 인간조건속에서 인간 활동을 노동(labor), 작업(work), 행동(action) 3가지로 나눈다.
첫째, 노동은 인간의 성장, 신진대사, 노쇠 등의 생물학적 과정에 부응하는 행위이다. 전적으로 인간적 삶(life)의 필요(necessity)에 따르는 행위이다.7)
둘째, 작업은 인간 존재의 비자연성에 부응하는 행위이다. 자연 세계와는 다른, 물질을 생산하여 만든 인공적 세계를 제공한다. 이렇게 인간의 사용을 위해 인공물을 만드는 작업의 인간 조건은 세속성(worldliness)이다.8)
셋째, 행동은 어떤 다른 매개 없이 인간들 사이에서 직접 일어나는 행위이다. 오직 한 인간(Man)만이 아니라 다수의 인간들(men)이 이 세계에 살고 있다는 사실에 부응한다. 이 행동의 인간 조건은 다원성(plurality)이다.9)
노동은 살아 있는 유기체의 죽음과 함께 끝나며, 생물학적 과정에 의해 조건지워지는 동일한 순환 과정을 수행하고, 이것을 위해 소비하며, 소비 수단을 제공하는 행위이다.10)몸으로 노동을 하며 인간 몸의 필요에 따라 그때그때 소비하는 일회적이며 반복적인(repetitive) 행위이다.11) 한편, 인공품을 생산하는 작업은 손으로 수행된다. 완성된 물건 등을 사용하며 목적했던 대상이 완성되면 그 과정이 끝난다.12) 미리 어떤 것을 만들 것이라는 모델과 아이디어를 가지고 작업에 착수하며, 제작(fabricating)과 작업이 대상과 자연을 물화(reification)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파괴(violating)와 폭력적인(violence) 요소를 지니고 있다.13)
아렌트에 의하면, 노동은 개인의 생존을 위한 것으로 타인의 존재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노동 속에서 인간은 타인과 또는 세계와 함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살아 남으려는 적나라한 필요에 대면한 자신의 신체와 오직 함께 있을 뿐이다.14)
인간 신체의 신진대사 활동으로부터 인간의 공동 행위- 같이 먹고 마시는 등의 행위 -가 가능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행위들에서 나오는 사회성(sociability)은 평등이 아니라 단지 같음(sameness)에서 나온 것이다.15) 이에 반해 정치적 평등 다시 말해 공론장에 참여하는 평등은 어떤 측면들과 특정한 목적들을 위해서 평등해질 필요가 있는 똑같지 않은 자들의 평등인 것이다. 따라서 다원성을 전제로 하는 공론장의 평등은 노동의 경우처럼 인간 본성에서 나오는 평등이나 죽음 앞에서의 평등처럼 많은 것들을 하나로 일원화하는 것과는 기본적으로 반대되는 것이다.16)
작업 또는 제작은 오직 혼자만의 세계를 조직하고 만든다. 시장(Market)이란 공공 장소가 있으나, 그것은 생산품을 진열하고 교환하는 장소일 뿐이다.
세계의 건설자며 물품의 생산자인 작업하는 인간(Homo Faber)은 오직 그 들의 생산품들을 교환함으로써만 타인들과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왜냐하면 이 물건들 자체가 고립(isolation)속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17)
이런 점에서 노동과 작업은 전적으로 사적인 영역에 속한 것이다. 이 둘은 타인들에 의해 보여지고 들어지는 것에서 오는 실생활과 공동 세계의 매개를 통해 얻어지는 객관적 관계가 부재하는18), 나 이외에 인간은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 사적 세계에 속한 것이다. 반면, 행동은 이와는 달리 관계적이며, 정치적이다. 그것은 인간사회 밖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타인의 항구적 존재를 필요로 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19)
타인과 함께 있으므로 행동과 발언은 촉발되며, 유효한 것이 된다. 나와 남이 같다면, 말도 행동도 필요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의 다양성은 발언과 행동의 기본 조건이며 발언은 동등한 인간들 사이에서 구별되는 독특한 존재로서 자신을 나타내는 행위이다.
말과 행동들 속에서 인간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보여주며, 자신의 독 특한 성격을 활발히 드러낸다. 인간세계에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다. — 이러한 말과 행동의 드러내는 특질(revelatory quality)은 사람들이 단지 타 인과 함께 있는 곳에서 나타난다.20)
또한 아렌트는 이렇게 인간들 사이에서 행해지는 말과 행동은 관계들을 형성하고, 그물망들(webs of relations)을 만들어 낸다고 한다. 여기서 인간 행동의 불확실성, 무경계성 그리고 비예측성 등이 나오는 것이다.
인간사의 영역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면 어디든 존재하는 관계들의 망으로 이루어져 있다.21) 인간 행동의 불확실성(uncertainty)은 여기서 배태된다.22) 모든 행동이 그 의도 대로될 수 만은 없다. 변화하는 관계망 속에서 의도와 행동은 변형되기 때문이다. 곧 행동하는 이는 자신의 일을 마음먹은 대로 완수해 나가는 영웅(hero)이 아니라, 행위자(doer)며 동시에 타인의 행동으로부터 영향을 받는 감수자(sufferer)이기 때문이다.23) 인간들 상호간에 이루어지는 행동은 동시에 반행동(reaction)이기도 한 것이다. 이렇게 둘 사이에만 제한될 수 없고 다수간에 이루어지는 행동들은 관계들을 형성하게 되고, 모든 제한과 경계를 파괴하고 뛰어넘는 내적 경향을 가지게 된다. 이것이 행동의 무경계성(boundlessness)이다.24) 또한 행동의 드러냄과 상호 연관성은 행동의 다른 특징인 비예측성(unpredictability)을 낳는다. “사람 속은 모른다(darkness of the human heart)”라는 말은 인간의 항구성에 대한 근본적 불신과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인간들의 행동의 결과를 미리 알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25)
이와 같은 특징들을 가진 행동을 통해 드러냄의 영역이며, 상호관계 속의 공동의 영역인 공론장이 출현한다. 아렌트에 의하면, 공론장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나타낸다. 즉, 공론장은 어떤 경계를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다. 지정된 장소만이 공론장이 아니며, 특정한 인물만이 공론장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다. 언제 어디서나 참가자들 사이의 평등한 행동과 발언을 통해 창조되는 공간,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함께 모여 참여하면 생겨나고, 흩어지면 사라지는 잠재적(potential) 공간이 공론장인 것이다.26)
2)공론장의 권력
아렌트에 의하면 잠재적 공간으로서 공론장을 유지시키는 것, 그리고 모여서 행동하고 발언할 때 생성되는 것이 권력(power)이다. 이것은 인간들이 함께 모여 행동하면 발생하고, 흩어지면 소멸한다:
권력은 발언과 행동이 분리, 분산되지 않은 곳, 발언들이 공허하고, 행동이 야만적이지 않은 곳, 발언들이 의도들을 가리지 않고 관계들을 드러내는 곳, 행위가 관계들을 파괴하지 않고 확립하거나, 새로운 관계들을 창조하는 곳에서 생성된다.27)
잠재적인 공론장에서 잠재적인 권력28)이 나온다. 이것은 강제(force)나 물리적인 힘(strength)처럼 불변(unchangeable)하며, 측정 가능(measurable)하고 신뢰할 수(reliable)있는 것이 아니다. 폭력의 도구처럼 비상시를 위해 저장할 수도, 축적할 수 있는 것도 아닌 오직 그 실행(actualization)속에서만 생겨나는 것이다.29) 따라서 권력은 타인과 함께 나눌 수 없는 개인에 주어진 자연적 소질인 물리적 힘과는 달리 개인이 소유할 수 없는 참가자 전체의 힘인 것이다:
권력은 한 개인의 소유물이 아니다. 권력은 집단에 속하며 집단이 함께 유지되는 한에서만 존재한다.30)
권력 발생의 단 한가지 물적 요소는 인간들이 함께 살아가며 행동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권력은 행동과 마찬가지로 무제한적(boundless)이다.31) 잠재성에서 연유하는 물적 요소에 대한 비의존성과 많은 참가자들의 의지와 의도들간의 동의는 이 힘의 경계를 알 수 없게 만든다.32) 상대적으로 적은 수지만 잘 조직된 그룹이 거대한 타집단과 제국을 지배한 사실이나 물리적 폭압에 대항한 수많은 민중 봉기들에서 좋은 예들을 찾아 볼 수 있다. 반면, 똑같은 이유로 권력은 그 힘의 축소 없이 분할될 수도 있고, 견제와 균형을 통한 권력의 상호작용이 권력을 증대시킬 수도 있는데 그것은 이러한 상호작용의 활발함과 생동성에 달려 있다.33) 이러한 권력은, 자신의 동료 시민에 대해 폭력을 수단으로 사용하는 소수에 의해 독점된 강제(force)가 대신할 수 없다. 폭력은 권력을 파괴시킬 수는 있어도, 그 대안이 될 수는 없다.34) 여기서는 다양한 인간들의 평등한 발언과 행동 속에서 생기는 공론장이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살아 있는 인간의 행동에서 기인하는 정치의 영역으로서 잠재적인 공론장은 무경계성, 비예측성, 불확실성 등을 특징으로 한다. 이러한 근본적 모호함을 피하려는 무수한 시도들이 있었고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플라톤(Plato)의 시도였다.35) 아렌트에 의하면 플라톤은 행위의 세계인 공론장의 내재적 불확실성과 모호함을 제거하기 위해 더 믿을 만하고 견고한 개념들을 끌어들이는데, 그것이 지배(rule)와 제작(fabricating)의 개념이다. 지배는 몇몇은 명령하고 나머지는 복종할 때 인간들은 법적으로나 정치적으로 함께 살 수 있다는 개념이며, 제작은 앞에서 설명했듯이 모델이나 아이디어에 따라 생산품을 만들어 내는, 의도와 결과가 명확하고 정확히 일치하는 작업인 것이다. 이 둘은 다수의 사람들이 평등하게 행동하는 공론장의 불확실성을 극복하고자 한 개념이다. 이러한 모호성을 극복하고 완벽을 향하고자 한 플라톤의 시도는 『공화국』에서 구체화된다. 철인 왕의 지배로 대표되는 『공화국(The Republic)』에서 플라톤은 선(善)한 정체(政體)의 건설을 위해 장인(craftsman)이 자신의 설계도를 가지고 척도와 표준을 적용해 조각을 만들듯이 아이디어를 적용해 도시를 만들고 있다. 불확실성에 대항해, 객관적 확실성(objective certainty)을 정치의 영역에 끌어들인 것이다.36) 이러한 객관적 확실성의 추구는 하나의 정해진 목적, 이상을 위해 다양성을 제거하게 되고, 그 결과는 공론장의 소멸로 나타난다. 그러나, 생산 과정의 힘이 결과물에 다 흡수되고 소진되는 작업과는 달리, 행동은 한계가 없으며 인류가 존재하는 한 물질적 성쇠나 인간 개개인의 죽음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행동의 결과와 끝을 미리 말할 수 없는 것도 행동 자체가 끝이 없는 과정이기 때문이다.37) 이러한 행동을 통해 생성되는 공론장은 언제나 다시 생동하는 정치 영역을 형성한다. 공론장의 모호함은 약점이 아니라, 무한한 가능성과 거기서 나오는 자유를 장점으로 가지는 열려진 공간인 것이다.
이렇듯 공론장38)은 미리부터 국회의사당 같은 특정 장소에 만들어진 강력한 조직체가 아니다. 그것은 공동의 일이나 그 밖의 일이 생기면 필요에 따라 주변의 사람들끼리 모여 논의하고 행동하는 가운데 만들어지는 우리 주변에 항상 잠재해 있는 공간이다. 참여한 사람들의 평등한 행동과 발언이 막히거나 사라지면 그것도 곧 사라지는, 생성, 소멸의 과정을 가지는 살아 있는 열린 공간인 것이며 여기서 나오는 권력만이 독재와 폭압에 맞서 자유를 지킬 수 있는 열린 권력이다. 우리들이 어디를 가건 그곳이 폴리스가 될 수 있는 것이다.39)
그런데, 『인간 조건』에 나타난 아렌트의 공론장 개념은 상호 모순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다. 인간 본성에 대한 규정에서 나오는 본질론적이며비역사적인 측면과 모여서 행동하면 생성되는 관계적이며 연대적인 측면이 그것이다. 인간 본성의 측면에서 행동, 노동 그리고 작업을 구분하고 전자인 행동을 정치와 공적 영역에, 후자 즉 노동과 작업을 사적 영역에 고정시킴으로써 역사 속의 구체적인 현상과 그 변화를 무시하고 인간 본연의 행동만이 일어나는 공론장, 정치영역을 고집할 수 있는 위험성을 가지게 된 것이다. 고정되고 협소해진 추상화된 공론장만이 남게 된 것이다. 그러나 아렌트의 공론장은 또한 공적 토론과 행동에 의해 구성되는 관계적이며 과정적인 성격도 지니고 있다. 모순적이고 비역사성이란 함정을 가지고 있는 아렌트의 공론장 개념을 넘어 하버마스는 잠재적인 정치의 공간으로서 공론장 개념을 역사적 관계 속에서 드러낸다.40)
하버마스는 『공론장의 구조변동』에서 현대의 “민주주의는 가능한가?”41)라는 질문에 근대 자유주의 공론장의 발생과 변화 과정을 역사적으로 기술함으로써 답하고자 한다. 그는 시민들이 모여 토론하고 행동하는 -자발적 결사로서의- 공론장을 정치의 핵심 공간으로 이해한다. 따라서 지금의 민주주의가 어떠한가를 보기 위해서 공론장의 발생과 변화에 주목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현대 복지국가의 공론장을 조작되고 화석화된 공론장으로 바라본다. 공중의 토론은 사라지고 행정기관과 거대 기업의 전시(展示), 조작 활동만이 있을 뿐이다. 이 화석화된 공론장의 기원은 생동하는 자유주의 부르주아 시민층의 공론장이었다. 그것은 봉건적인 절대 권력의 밀실정치를 무너뜨리고 인간의 자유와 평등의 이념을 제도화시킨 공론장이었다. 그러나 이 생동하는 공론장은 항구 불멸의 존재가 아니라 생성하기도 하고 소멸하기도 하는 역동적인 공간이었다. 자유주의 시기 자신들의 권리를 확대하고 수호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공론을 조직하고 참여했던 시민들과 그 속에서 생성되었던 공론장은 이제 국가의 복지 수혜자로 수동적이 된 시민 대중들 속으로 사라지게 된 것이다. 자발적 결사 속에서 유지되는 합리적이며 비판적인 의사 소통 과정이 이 공론장의 관건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자발적 정치 참여는 아렌트가 말한 “좁게 한정된 정치 영역에서만 가능한 행위”42)는 아니었다. 그것은 근대 초기의 살롱을 가능케 하고 그곳에서 행해졌던 문화 토론 같은, “사회, 문화적 영역에서도 가능한 행동”43)이었다. 구체적인 역사적 관계 속에서 정치의 장인 공론장과 그것을 생성시키는 행동은 끊임없이 변하는 것이었다.
다음에서는 하버마스가 기술한 자유주의 공론장의 성쇠(盛衰)를 통해 잠재적인 정치 공간의 역동성을 살펴보고 공론장의 재활성화는 어떻게 가능한지 알아보도록 하겠다.
제 3 장. 하버마스의 공론장 이론(1)
하버마스는『공론장의 구조변동』에서 “공공”(Public)이라는 말을 다양한 의미로 쓴다. 예를 들면 “닫힌, 배제된 사건들에 대하여 모든 것에 열린”것으로44), “관공서, 공권력 등의 국가와 관련된”것으로45),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는”것으로46), “공작의 문장, 휘장 같은 영주권의 속성을 표현”하는 것으로47), “모든 신민”으로48), “도시의 일반인들”로49), “비판적 토론에 참여하는 사인(私人)들”로50) “부르주아 헌정 국가의 주체, 국민들”로51), “다른 많은 이들과 함께 하는 형태”로52), “문화를 비판적으로 토론하는 이들”로53), “문화를 소비하는 이들”로54), “교육받은 층들”로55), “시민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사적 개인들”로56), “투표할 수 있는 이들”로57), “시민으로서 공론장을 매개로 정치권력을 합리적 권위로 바꾸고자 하는 이념에 따라 시민사회의 필요와 국가를 연결 지우는 이들”로58), “조직된 사적 개인들”로59), “여론의 주체”로60), “그룹 의견”으로61), “자율적인 집단”으로62), “공적 의사 소통이 조직되어 공적으로 표현된 어떠한 의견이라도 곧바로 효과적으로 반응, 반론할 기회가 있는 곳”으로63) 등이 그것들이다.
이 다양한 의미들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 가능하다.
첫째, 중세의 영주권의 상징성을 띠는 것들. 둘째, 국가와 관련된 것들. 셋째, 여론의 주체인 시민으로서 정치권력에 대항해 공론장에서 비판적이며 합리적 토론을 매개로 자신의 권리와 이익을 보호하고자 하는 근대 시민들과 관련된 것들.
이러한 공공이라는 말의 다의미성은 정치구조의 산물로서 역동적인 역관계속에서 변화해 온 정치구조를 보여준다. 정치의 행위자로서 인간과 그들이 행동하는 공간, 그리고 그 인간과 공간이 가지고 있는 이념, 상징, 속성 등의 표현에 사용된 이 공공이란 말의 다양성은 앞장에서 아렌트가 말한 공론장의 역동성, 정치의 역동성을 관찰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한다. 다음에서는 정치의 장으로서 공론장의 생성과 발전, 그리고 그 쇠퇴를 근대 자유주의 공론장을 중심으로 살펴보겠다.
1) 부르주아의 출현과 공중의 탄생
하버마스에 의하면 자유주의 부르주아 공론장은 발달하는 도시의 시민계층이 봉건권력과 전제군주에 직, 간접적으로 대립하는 가운데 생겨난다. 즉 사유재산의 소유와 평등 관계를 상정하는 상품관계는 초기 자본주의 인간에게 시장(市場) 속에서는 재산 소유자로서, 가족 내에서는 경제활동과는 상관없는 순수한 인간이라는 자기 이해를 가지게 한다. 부르주아(bourgeois)와 인간(Homme)으로 생활하는 초기 부르주아는 가족관계내에 생성된 인륜성을 지닌 보편적 인간이란 역할과 재산 소유자의 역할을 동일시함으로써 사유 재산의 영역인 사적 부문(private sphere)의 보호를 자신의 임무로 삼는 근대 공인(public man) 으로 탄생된다. 이들은 살롱(Salon)이라는 공적 장소에서 문자매체들을 매개로 봉건권력에서 해방된 문화에 대해 이성적이며, 비판적인 토론을 하였고, 이렇게 발전한 문자매체 공론장과 정당등의 자발적 결사를 중심으로 전제 국가에 대항한다. 그 결과 공론장의 이념인 공공성(Publicity)을 제도화시킨 부르주아 입헌(立憲)국가가 탄생한다. 권위의 전시(display)와 복종만이 있던 근대 이전의 밀실의 정치, 정치의 황무지에서 자신들의 문제를 토론하고 결정하는 새로운 정치의 공간이 생성된 것이다.
하버마스에 의하면 자본주의 세계의 공론장은 무엇보다도 문자 세계로부터 출발하였다. 다음에서는 비판적, 합리적 토론을 통해 형성되는 공공장소로서 문자 세계의 공론장(public sphere in the world of letters)이 지닌 사회적 조건과 특징, 역사적 발전 상황에 대해 살펴보겠다.
농노를 장원 경제체제에 묶어 두었던 봉건 제도의 몰락은 생산 수단을 생산의 주체 소유로 돌려 주었다. 경제 활동은 자신의 상품을 시장에 내다 팔아 수익을 올려 가계(家計)경제를 재생산하는 것에 중심을 두었다. 이러한 경제 상황의 변화에 따라 전통적인 가족 구조도 변하게 되는데, 그것은 봉건적인 대가족 제도에서 부르주아 핵가족 제도(patriarchal conjugal family)로의 변화이다.64) 이러한 핵가족화 현상의 중심에는 삶의 개인화(사사화, privatization of life) 현상이 자리잡고 있는데, 그것은 가옥 구조의 변화에서 잘 드러난다:
높은 홀이 구식이 되고, 식당과 응접실이 한층 높이로 낮아지며, 여러 가지 목적을 위해 쓰였던 예전의 ‘홀’(old hall)이 보통 크기의 여러 개 의 방으로 나뉘어졌으며, 뜰이 축소되었고, 마당이 집중앙에서 뒤로 이동했다.65)
이전에는 ‘집 전체’를 위해 기능했던 모든 방들이 도시의 근대적인 사적 거주 양식에서는 극단적으로 제한되었으며, 가족 모두를 위한 공동의 방이 작아지거나 사라졌다. 대신 가족 개개인들을 위한 방들이 점점 늘어 났으며, 그 용도에 맞게 꾸며졌다.66) 가정 내에서 가족의 분리(solitarization)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67) 한편, 가족은 시장과 떨어진 공간을 구성하였으며, 시장에서 상품 소유자로서가진 자율성(autonomy)이 가족에서는 인간(human being)으로 나타났다. 가족을 구성하는 데 있어 자발성(voluntariness), 사랑의 공동체(community of love), 자기계발(교육, cultivation) – 자유 의사에 따라 가족을 구성하며, 이것은 사랑으로써만 가능하고, 거기서 서로 돕고, 발전시킨다는 – 이란 중심 관념 속에서 가족의 친밀성(intimacy)이 상정되는데, 하버마스는 이것이 인간 고유의 특징이라는 인륜성(humanity)의 원천이 된다고 말한다.68) 이렇게 경제 영역과는 분리된 가족내의 독립적인 존재며, 순수한 인간으로서 그들은 다른 일반 인간들과 순수한 인간적 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생각하였는데, 그것의 문학적 형태가 편지와 일기인 것이다. 전자는 감정과 영혼의 자기 표현이며, 자신과 타인간의 심리적 이중관계의 표현이었다. 후자는 자기자신에게 보내는 편지로 타인으로 상정된 자신과의 대화였다. 이것은 핵가족의 친밀한 관계속에서 발견되는, 청중과 타자를 향해 있는, 공개성을 지향하는 주체성(subjectivity)의 실험들이었다.69)
개인화된 초기 부르주아 가족에서 공개성을 지향하는, 인륜성을 갖춘 주체, 공인이 탄생한 것이다. 이 주체가 거실에서 나와 한 지붕 아래에 있는 살롱이라는 공공장소에 들어가 일반적 관심을 가지고 그들이 읽었던 문학작품 등에 대해 자유로운 토론을 벌였던 것이다.
그러면 이러한 살롱은 어떤 곳인가? 근대 초기에 도시의 세력이 강대해지면서 문화의 중심이 왕, 왕실에서 도시의 부르주아 층으로 옮겨진다. 이것은 궁중을 대체하는 새로운 공간을 창조하는 데, 하버마스에 의하면 그것이 영국에서는 커피 하우스(Coffee house)이며, 프랑스에서는 살롱(Salon), 독일에서는 다과회(Tischgesellschaften)인 것이다. 당시 후견인 관계에서 벗어나 예술가가 자유롭게 된 것과 인쇄술의 발달이 시기적으로 일치하면서 왕성한 지적 활동에 힘입은 문학, 철학서적 등이 시장 관계에 편입되었고, 그것들이 유통될 수 있었던 곳은 당시 이곳 뿐이었다. 이것이 독서 능력있는 청중을 지향하는 시민주체들의 토론 대상이 되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각국의 역사적 특수성에서 기인한 각각의 차이점70)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은 몇가지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첫째, 사적 개인들 사이에 토론을 조직하였다. 둘째, 여기서는 공통의 인륜성을 지닌 동등한 인간들간의 사회적 관계가 이루어졌으며 – 시장법칙과 국가의 법률은 작동 불능 상태였다.- 세째, 종교, 국가권력이 해석의 독점권을 지니고 있어서 당시까지 문제삼을 수 없었던 것들을 문자매체들을 매개로 토론 하였으며, 이에 따라 네째로 이것이 구성한 공중은 원칙상 포괄적인 것으로 확립되었다. 즉, 토론되는 안건들의 일반성으로 인하여 누구나 평등하게 토론에 참여할 수 있었으며(accessibility), 그 토론은 항상 외부세계를 향해 열려 있었다.71)
이렇게 볼때, 살롱으로 대표되는 공적인 장소에서 구성되는 공중은 재산 소유자로서 자신의 사적 자율성이 확보된 자였으며, 교육받은 교양인들 즉, 귀족, 금융 부르주아, 법률가․의사․교수 같은 신흥 부르주아, 철학자, 예술가 등을 구성원으로 하였다.72) “귀족적 출신 배경보다는 오히려 재치와 지성, 인품이 사회적 출세의 열쇠가 된”73) 이곳에서 이들은 교양인으로서 동등한 인간으로 만났으며, 예술과 문학, 정치 등 모든 것에 관해 자유롭고 비판적인 토론을 나누었다.
자본주의 관계속에서 성장한 시민층으로 이루어진 공중이 살롱에서 벌였던 토론은 어떠한 것이었을까? 하버마스는 그것을 문화비평가들의 문화비평속에서 태어난 문화토론이었다고 말한다.
왕권과 신성(神聖)의 숭배라는 단일 목적에서 벗어난 예술이 시장 관계에 편입되면서 평민들도 자유로이 접할 수 있는 자유로운 선택과 기호의 대상이 되었다. 민중들에게도 문을 연 콘서트와 극장, 박물관은 소위 평민들의 판단․의견(lay judgment)을 제도화시켰고, 평민들은 토론과 대화로 예술품에 접근했다.74) 한편 이런 일반인들의 판단에 대한 반발로 사회적 특권과 자신들의 전문화된 능력을 결합시킨 전문가, 감식가(connoiseur) 그룹이 생겨났다. 이런 과정에서 당시 문화의 주도권을 쥐고 있던 살롱에서 문화토론을 통한 문화비평이 생겨난다.
살롱은 작가와 공중간에 중재역할을 했다. 진지한 비평가인 양 그것은 저작가의 자만과 세상의 무관심 모두를 바로 잡고자 했다.75)
더 좋은 논증에 의해서만 판단될 수 있고 더 많은 반대 논증을 존립 기반으로 한 이 문화비평은 일종의 토론, 대화로서 더많은 대화자, 토론자, 청중을 필요로 하였다. 그 결과의 하나가 예술․문화 비평 저널인 것이다.76) 이것들은 살롱이나, 커피하우스, 다과회에서 토론의 대상이었고, 그 결과물이기도 하였다. 비판적이고 합리적인 토론과 독서를 통해 비판적인 잡지와 문학 인쇄물들이 만들어졌으며 이것은 전적으로 문자 세계 공론장의 산물이었던 것이다.77)
이렇게 가족의 내부 영역에서 생성된 공개성을 지향하는 주체는 교양 있는 평등한 인간이라는 자격으로, 살롱이라는 공적 장소와 그곳에서 성장해 신문, 잡지등으로 형성된 공론장에서 그들과 똑같은 인륜성을 지닌 인간들과 함께 일반적 관심을 가지고 모든 문제에 관해 자유로운 토론을 벌였던 것이다. 이제 이러한 문자 세계의 공론장에서 행동하는 공인은 신문, 잡지 등의 발달을 매개로 정치 영역의 공론장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2)밀실의 정치에서 광장의 정치로
하버마스에 의하면 문자 세계의 공론장을 태동시킨 시민사회의 발전은 절대 군주제와 대립하게 된다. 이 권력투쟁은 자의(voluntas)에 기반을 둔 절대 권력으로 대표되는 비밀, 밀실 정치와 합리(ratio)에 기반을 두고 공공성․공개성을 대표하는 입헌정치의 대립으로 나타난다. 이 투쟁에서 근대 시민층은 기존 문자 세계의 공론장을 이용하여 사회의 요구를 국가에 연결시킨 결과 자유, 평등의 이념을 제도화한 부르주아 입헌국가를 탄생시킨다.
상업, 무역의 발달에 따른 교역국간의 시장, 사회, 정치 상황에 대한 정보의 필요성은 사적 편지에서 시작된 통신, 신문 등의 발전을 가져왔다. 또한 지식인들간의 의견교환과 토론을 위해 발간된 비영리, 순수 학술적인 잡지 또한 점차 그 참여자와 독자층을 넓혀가고 있었다. 이러한 시기에 자본주의 발달에 따른 산업과 시장의 성장으로 자신의 세를 확장해 가던 시민사회는 당시 국가의 규제 정책등과 맞부딪치게 되었다. 절대주의의 규제로부터의 탈출이라는 상황 속에서 하나의 공중으로 용이하게 묶인 식자 세계 공론장의 시민층은 자신들의 제도들을 이에 대한 저항과 비판에 사용하기 시작78)했으니 그것이 정치영역에서의 공론장( The Public Sphere in the Political Realm)의 태동이다.
한편, 자본주의 발달에 따른 다양한 집단 – 예를 들어 자본내의 분화로서 금융, 상업자본과 산업, 수공업 자본, 그리고 그들간의 경쟁 – 의 발생은 확대되어 가는 시민사회속에서 그들의 이익을 위한 단체, 조직 등의 형성을 가능케 했고, 그것이 정당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당시 발전하고 있던 신문, 잡지 등의 도움을 얻어 자신들의 의사를 표출했으며, 기존권력 – 특히, 왕권- 과의 대결속에서 의회의 성립을 가능케 했다.79) 이 과정에서 시민층이 자신들의 권력과 입지를 강화하고, 세력의 확장을 위해 내세운 것이 바로 부르주아 헌법의 이념이었고, 그것이 헌정(憲政)국가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이 법의 이념은 당시 문자 세계 공론장의 공인, 시민들이 정치영역에 나오면서 내세운 이념으로서 그들의 이데올로기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이미 문자 세계의 공론장에서 인륜성을 지닌 평등한 하나의 공중(the public)으로 묶인 이들은 그들에게 가해져오는 국가권력과 통제, 제한들에 대항해 공개성과 비판적 공공토론과의 연계속에 자유, 평등의 이념을 내세웠다. 교환, 교역의 자유, 사유재산 소유의 자유, 언론, 표현의 자유 등에 대한 규제를 인간의 평등과 자유라는 이념하에 반대하였던 것이다.
즉, 공론장의 기본 구조로서의 재산 소유자의 역할과 인간 존재로서의 역할을 동일시하였던 것으로, 이것은 당시 시민사회의 정치적 해방이라는 역사적 상황에서 가능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문자 세계 공론장의 기능전환으로 인해 공개성, 비판적, 합리적 토론 등이 정치영역의 공론장의 객관적 기능이 되었음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러한 것들이 하나로 묶여 드러난 것이 ‘법’의 이념이다. 이러한 자유, 평등, 인륜성의 이념들은 공론장에 참여하는 이들에게 진리며 규범으로, 그리고 그들의 권리이자 이성을 지닌 모든 인간들의 특징으로 간주되었다.
한편, 이성을 지닌 인간들의 평등하고 자유로운 삶, 이것이 바로 자유주의 공론장의 이념이었으며, 이러한 인간들의 토론을 통한 합리적인 의견, 합의가 진리이고, 그것에 의해 국가가 지배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공적 토론은 의지(voluntas)에서 합리(ratio)로의 전화로 간주되었다. 그런데 그 합리는 개인들의 논의의 공적 경쟁 속에서 실재로 존재하는 모든 이의 이익에 필요한 것에 대한 합의(consensus)로서 존재한다.80)
이것이 가장 집약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81)이다. 여기서 우리는 시장속에서 상품 소유자로서 자율성을 획득한 시민이 어떻게 보편성을 획득한 자연법적 존재가 되는지를, 그리고 나아가 그 기반하에 어떻게 헌정 국가가 수립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공론장의 기능들은 법에 명확히 표시되어 있다. 그 기본권들로는 첫째로, 합리적 비판적 토론에 참여하는 공중의 영역(의사 표현의 자유, 출판의 자 유, 집회결사의 자유 등)과 이 영역내의 사적 개인들의 정치적 기능(청원권, 선거의 자유 등)과 관련된 것, 둘째로 가부장적 핵가족의 은밀한 영역에 기 반한 자유로운 인간 존재로서 개인의 지위에 관한 것(개인적 자유, 사생활 불간섭(inviolaility of the home) 등등). 세째로 시민사회 영역에서 재산 소 유자들의 상호행위에 관한 것(법 앞에 평등, 사유재산 보호 등등). 법에 명 시 된 기본권들은 공적 부문과 사적 부문의 영역들을 보호했다. 즉, 한편으 론 신문, 정당같은 공론장의 제도, 기구들과 다른 한편으론 가족, 재산 같은 사적 자율성의 기반들을 보호했다. 그것은 결국 시민이란 정치적 존재와 상 품 소유자란 경제적 존재인 사적 개인들의 기능을 보호했던 것이다.82)
그렇다면, 이러한 공론장의 발전과 그 안에서의 공인, 시민들의 활동에 의한 정치변화의 상은 어떠한 것이었을까? 그것을 보기 위해서는 우선 근대 이전의, 공론장 태동 이전의 정치를 보아야 한다.
하버마스에 의하면 근대 이전은 사적 권력과 공적 권력의 구분없이 둘이 하나로 합쳐져 있던 시기였다.83) 제도적으로도 사적 영역과 구분되는 공적 영역이 없었다. 영주권력을 둘러싸고 있는 것들을 ‘공적(public)’이라 불렀다. 이런 상황속에서 이 시기 정치의 핵심개념은 전시(representation)였다. 정치권을 이루고 있었던 영주, 귀족층과 교회는 단지 민중들 앞에서 자신들의 권력을 과시, 드러내었다. 장대한 행렬과 행사, 여러가지 문양과 의식 등 그 모든 것84)은 민중들 앞에서 그들이 지배, 군림하고 있음을 드러내고, 확인시키기 위한 하나의 거대한 쇼와도 같은 것이었다.85) 교회 또한 화려하고 복잡한 의식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예배행사를 통해 그들만이 신의 대행자임을 드러내고자 하였다. 소위 이러한 전시적 공개성(publicness of representation)86)은 민중들이 없으면 이루어질 수 없는, 즉 관중을 필요로 하는 그러나 그들은 거기에서 철저히 배제되는, 하나의 쇼와도 같은 밀실정치를 나타내는 것이었다. 영주들은 그들의 음침한 성안에서 전쟁수행 여부와 세금 징수액 등을 마음대로 결정해 시행했고, 교회는 자신들의 권위가 나오는 성경을 소수 성직자들만의 언어인 라틴어로 만들어, 알아듣지도 못하는 민중들 앞에서 떠들었던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이 시기의 정치는 밀실에서 이루어지는 결정을 그 수행자며 담지자들인 민중들 앞에서 보여주기만 하고 그것으로 정당성을 획득한 전시(display)의 정치 였다고 할 수 있다.87)
반면, 이제 근대 자본주의의 발달과 시민사회의 발전을 토대로 생겨난 문자 세계의 공론장과 정치세계의 공론장을 통해 정치의 핵심으로 등장한 공중과 공론장 그리고 공개성, 공중은 사적 이해관계를 배제한 채, 보편적 인간으로서 일반이익을 위해 사고, 토론했으며, 그들이 공론장을 통해 생산해 낸 의견은 진리로, 입법(법)의 기초로 간주되었다. 공론장과 그 기능의 입헌적 제도화를 통해 공공성, 공개성은 국가 기구들의 절차(procedures) 등을 조직하는 원리가 되었다.88) 이렇게 공론장은 기존의 밀실정치의 폭력과 자의(will)를 백주에 드러내 광장으로 끌어 내었고, 공인, 주민들 앞에서 정치와 정치행위를 드러내어, 그것의 정당성을 부과해 주는 새로운 정치의 중심이 되었다.89) 공개성을 통한 공론장의 자유로우며, 비판적이고, 이성적인 토론을 통해 합의를 이끌어 낸다는 이념은 입헌국가의 수립속에 제도화되었고, 그것은 지배의 궁극적인 해체(dissolution of domination)90)를 의도한 것이었다. 공중들은 사회 속에서 자발적 결사를 조직하였고, 그것을 통해 국가와 사회 사이에 공론장이라는 정치의 공간을 만들어 내었다. 근대 이전의 민중이 배제된 ‘보는’ 정치, ‘들러리’의 정치에서 직접 참여하고 간섭하는 ‘주인’의 정치로 변한 것이다.
절대주의의 의지와 밀실의 지배에 대항하여 공개성의 원리를 내세운 정치 영역의 공론장의 객관적 기능은 문자 세계 공론장의 범주에서 나온 자기 이해와 수렴될 수 있었다. 이것은 시민사회의 상품, 시장 관계를 보호하려는 상품 소유자의 입장과 보편적, 일반적인 개인의 자유라는 이해가 당시의 정치투쟁 속에서 일치하였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공중은 역사 특수적 의미를 지닌다. 자유주의 시기의 공중은 교육받은 재산 소유자층이었다.91) 그리고 이들의 이해관계가 여론, 공론으로 되어 일반이익이 되었다. 공적, 비판적 토론을 통해 계급이해가 일반이익의 외관을 띠게 된 것이다. 이런 점에서 그들의 물적 기반과 그 이념은 모순 관계에 있었다. 부르주아 계급의 이익 보호와 그들의 지배 속에서 계급 차별과 지배의 폐지를 목적으로 하는 공개성과 법의 이념이 제도화된 것이다.92) 이제 이 모순은 사회, 경제적 변화를 통해 드러나게 된다.
제 4 장. 하버마스의 공론장 이론(2)
19, 20세기는 자본의 집적과 집중에 의해 수많은 거대 기업이 등장한다. 그에 따른 노동자 대중의 등장과 그들 간의 대립, 계급투쟁으로 인해 국가가 사회에 개입하게 되고, 경제 규모의 확장에 따른 관료제 등의 발달로 야경 국가에서 개입주의 국가로의 변화가 일어나며, 국가와 사회의 상호 침투가 일어난다.93)이 가운데 공적 권위와 거대 기업으로 대표되는 사(私)권력이 공론장에 침투하게 된다. 그 결과 문화소비로 수동적, 무비판적이 된 공중은 자신의 정치의 장을 잃어버린다. 이것은 그들의 비판적 참여 속에서만 가능한 공개성의 이념을 전도시켜 공, 사권력의 대중조작을 위한 수단으로 만들어 버린다. 공론장은 대중으로 변한 공인의 손을 떠나 권력의 전시장으로 변하였고 그것은 공론장의 재봉건화를 초래하게 된다.
아래에서는 공론장의 확장과 해체과정을 우선, 사회, 경제적 변화에서 일어난 공론장의 주체의 변화와 제도들의 변화, 그리고 그 이념(ideology)의 변화를 중심으로 살펴보겠다.
1)토론하는 주체에서 수동적 주체로
자유주의 시대에 정치 세계의 주체는 부르주아이다. 상품(재산)소유자로 시장에서 자유로운 활동을 통해 사적 자율성을 누림으로써 살롱에서 자유롭고 합리적인 공적 토론을 하였다. 또한, 정치 영역에서는 자유․평등․인륜성을 내세우며 사회적 배타성과 응집력을 지닌 교육받은 시민층을 형성했다. 그러나, 이제 선거권의 확대와 기층민중들의 진출로 인해 정치의 주체는 국민 대중으로 이동했다. 이 가운데 예전에는 사적 영역에만 국한되었던 투쟁, 갈등이 공론장에 침투했고, 집단의 이해관계가 자율적인 시장경제에만 머무르지 않고 국가 부문에 까지 확장되었다. 이러한 공인의 확대와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의 상호 침투에 의해 일어난 현상으로 사적 영역의 핵심인 가족 영역의 변화에 대해 살펴보자.
하버마스는 자유주의 시대의 상품 교환과 사회적 노동(social labor)이 사적인 영역에 속하는 것이었다면, 이제 주식회사 등의 대기업의 발달과 그것의 사회 속에서 지위 향상과 역할 증대로 인해 거대 기업은 한 사람의 기업이 아닌(소유가 아닌) 사회제도와 같은, 또한 직장(職場)은 유사 공적 영역( quasi public realm)의 지위를 획득하게 된다고 말한다. 이렇게 직장이 독립적이 될수록 가족은 더 그 자신 속으로 후퇴하게 된다.94) 한편, 이러한 과정 속에서 이전의 가족 재생산이란 역할을 수행했던 가족의 재산이 개인적 수입, 임금으로 대체됨으로써 부양, 교육, 비상시 대책, 노후 보장, 의료 등 가족의 비상시 자기 구제와 자기 부양을 국가가 책임지게 되었다. 가족은 기초적인 전통, 관습 전달 기능과 가치 형성 전달 기능을 상실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공적 제도가 가족 내에 침투하게 되자 가족은 임금과 여가의 소비자, 공적 부조의 수혜자가 되었으며, 국가에 넘겨준 일련의 사적 조절(private control)기능은 이제 지위 보장(status guarantees)기능으로 대체되었고, 그로 인하여 사적 자율성은 소비의 기능에서 유지되게 되었다. 사회나 국가의 침투로 산산이 부서지고 남은 것은 이제 집약된 사생활의 내적 공간(inner space of intensified privacy)이란 환영만이 남게 된다.95) 이렇게 침해된 가족의 내적 영역(intimate sphere)은 집의 건축적 표현에서 잘 드러난다. 개인 가정의 독자성은 사라지고 살롱과 손님 응접실의 소멸로 공론장과의 개방적인 관계는 위협받는다:
집들내의 문들이 사라진 것처럼 이웃들간의 장벽도 사라진다. 큰 유리 로 된 전망창을 통해 안에서 무엇이 일어나는지를 잘 볼 수 있다.96)
내부영역은 타인의 시선앞에 드러났고 사회통제와 구분하기 어려운 사회적 소통형태가 확립되었다. 이렇게 사적인 삶이 공공성(public)을 지니는 것과 비례하여, 공론장도 사적 영역의 성격을 띠게 되어, 이 두 영역을 명확히 구별할 수 없게 되었다. 이에 따라 공중의 비판적, 합리적 토론도 이러한 재봉건화(refeudalization)의 희생물97)이 되며, 사회성(socialiblity)의 한 형식인 토론은 공동체․동족관계(community involvement)의 물신주의98)에 자리를 내주게 된다.하버마스는 이것을 문화를 토론하는 공중(culture debating public)에서 문화를 소비하는 공중(culture consuming public)으로의 변화로 표현한다.99)청중과 외부세계를 지향했던 행동하는 인간에서 여가시간 등의 소비에서 유지되는 수동적인 고립된 인간으로 변한 것이다. 이렇게 자율적인 직업영역에서 분리된 여가100) 및 소비의 영역은 문자 세계의 공론장을 대체하게 된다. 이제 이 공론장은 문화소비 영역으로 변한 공론장을 통해 가족의 내부영역으로 침투하는 대중매체의 통로가 되었다. 더 이상 사적이지 않은(deprivatized) 친밀성, 내밀성의 영역은 대중매체에 의해 침투 당했고, 문학잡지는 대중선전지(the popular advertises-financed illustrated magazines)로 바뀌었다.101) 이러한 일련의 문화소비 공중, 대중의 행위는 일정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일어난 것으로, 바로 문화의 상품화, 상업화 현상 때문이다.
하버마스에 의하면 신문과 잡지는 부르주아 헌정 국가 설립시기에 정치권력에 대항해 보편이념을 대변하였다. 그러나, 헌정 국가의 수립으로 일정정도 그들의 목표가 달성되고 자본의 집적과 집중이 일어나자 그들은 생존을 위해 상업화될 수 밖에 없었고, 그 중의 하나가 ‘광고(advertisement)’를 통한 상업화이다.102) 이후 이것은 모든 미디어(media)에 파급되어 문화의 형식과 내용면에서의 상품화 뿐만 아니라 대화와 토론도 규격화, 형식화, 상품화시켰다. 가히 전 영역으로 퍼진 이윤추구의 논리속에 이루어진 상품화를 통해 대중문화라는 것이 형성되었고, 그것은 광고를 무기로 소비정향의 대중에 침투해 들어간 것이다.103)대중은 언로를 봉쇄당한채 매스미디어를 수용만하게 되었다:
그들은(새로운 언론매체) 공중의 눈과 귀를 그들의 주술(spell)하에 두고, 동시에 그 거리를 없앰으로써 그들의 감독(tutelage)하에 두었다. 무엇에 대 해 이야기하고 반대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은 것이다.104)
이제 사회의 기준은 대중문화가 되었고, 소비성향의 대중들은 이전의 교양있는 독서공중105)의 비판적 토론 대신 소비자로서 그들 각자의 기호와 선호(tastes and preference)를 교환하는 말, 대화를 주로 하게 되었다.106)소비문화에 침투당한 공론장이 내부영역을 구성하게 된 것이다. 토론 대신 나오는 욕설이나 지연․학연으로의 담합, 그리고 심지어 대학 강의실에서의 토론, 대화의 빈곤은 이제 우리 주변에서 일반적인 일이 되어 버렸다. 이제 자발적 결사 속에서 비판적 토론을 행했던 공인은 매스미디어와 소비문화의 홍수 속에 묻힌 문자매체의 공론장속에서 비판과 합리의 정신을 잃고 수동적인 대중이 되었다.
2)재봉건화된 공론장과 공론장의 부활
과거 공․사 영역의 명확한 분리 속에서 사적 이익들 간의 경쟁이 시장에 남아 있었다면, 이제 이 영역들의 상호 침투로 특수 이익, 사적 이익간의 경쟁이 공적 영역에 유입되었다. 대중과 공론장이 분리되고 매스미디어가 대중문화를 선도하게 된 이 시대에 있어 광고는 공론장의 주요 기능이 되었다. 이제 토론은 경쟁하는 이익들간의 전시효과만을 내게 되었고, 과거 합리적이고 비판적인 공공 토론과 지배의 합리적, 합법적 기초를 연계시키고, 그 행사의 비판적 감독까지 수행한 공개성, 공공성(publicity)은 대중매체를 통해 대중의 동의와 최소한의 묵인을 얻으려고 사용되었다. 즉 비판적 공개성(publicity)에서, 환호와 묵인, 만장일치의 분위기를 조작해 내려는 조작적 공개성(manipulative publicity)107)으로 변형된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여론조작(opinion management)과 공중의 배제속에 사적 이익들간의 상호이익을 위해 비밀협상 등의 방법을 취하는 정치 흥정, 거래 등이 나타나게 된다.108)이제 공론장은 공인의 손을 떠나 공적 권위와 사권력의 손아귀에 들어가게 되었다.
하버마스에 의하면 공, 사부문의 상호 침투로 공론장에 새로운 주체들이 등장한다. 우선 기존의 공중이 새로운 제도들에 의해 대체되거나, 성격변화가 일어난다. 그 하나가 정치적 전달자로서의 형태를 띠는 사적 이익들의 집단적 조직체인 이익단체․ 결사들이며, 다른 하나는 한때 자신의 주인이었던 공중을 넘어 공적 권력의 기관, 조직으로 변형된 성격을 지니기 시작한 정당이다.109)이와 함께 기술의 발전과 자본의 집중으로 거대 기업화된 신문, TV, 라디오 등의 미디어는 공론장내에서 성장한 사권력의 복합체로 드러난다. 또한 복지를 매개로 거대화된 국가관료제도는 공론장의 주요 행위자가 되었다.
상업화된 미디어는 공론장을 사익을 위한 선전의 영역으로 바꾸었고,110) 각 이해관계들과 결사들의 통합체였던 당은 각 사익들이 경쟁하는 곳이 되었다. 이에 따라 국가기관으로 확립된 공론장인 의회도 서로의 의견을 토론하여 공공의 결정을 내리는 곳에서 공중에 자신들의 이익을 전시하는 곳으로 되었다:
의회는 전체 국민 – 이 공개성의 장에서 라디오와 TV를 통해 특별한 방식 으로 참가하는 – 앞에서 정부와 당이 자신들의 정치강령을 국민 앞에 내보 이고 정당화하는 ‘공적 연단 (Public Rostrum)’이 되었다.111)
이제 사권력과 공권력은 변화된 공론장에서 조작과 전시의 공개성을 취하게 된다. 그들은 대중선전(public relation)을 통해 공공복리라는 이름 하에 자신들의 사적 이해관계를 숨긴다. 선전을 통해 공적 이해관계와 자신들의 작업을 일치시킴으로써 동의의 조작(engeering of consent)을 유도해 낸다.112) 그들이 장악한 대중매체를 통해 뉴스나 사건을 만들어 내고 관심을 끄는 사건을 이용함으로써 여론 형성 과정에까지 침투하게 되는 것이다.113)공공성 작업(Publicity work)114)으로 불리우는 이런 작업들은 공적 토론의 과정에서 얻어지는 동의가 아니라 선전을 통한 전시(representation)에서 얻어지는 수동적 대중의 환호와 암묵적 동의를 목표로 하는 것이다. 비판적 공공성에서 전시 공공성으로 그리고 봉건적 공공성으로 변화한 것이다.
공론장은 그 속에서 공적인 비판적 토론이 행해지는 곳이라기보다는 그 앞에서 공적 명성, 인기(prestige)가 전시될 수 있는 곳(court)이 되어 버렸 다.115)
이에 정치적 결정은 힘있는 사적, 공적 권력간의 밀실의 흥정 속에서 이루어지게 되었다. 시민의 자치의 장소로서 공론장이 사라지고 권력체들의 밀실이 들어서게 되었다. 정치의 주인이었던 공중이 점점 정치에서 멀어지게 된 것이다. 자본주의 발전의 직․간접적인 영향으로 자본의 규모와 국가부문이 커지게 되자, 이들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은 상호 침투하게 되었고, 여기서 과거 자율성을 지닌 채 비판적, 합리적 토론으로 기존 국가권력에 대항해 정치의 주인으로 섰던 공인은 이제 자신의 일을 국가에 맡긴 채 임금과 여가, 국가서비스를 소비하는 대중으로 전락해 버렸다.116) 여기에 과거 공인의 계몽과 지배의 합리화를 위해 같이 싸웠던 미디어는 자본주의 논리에 따라 자신의 생존에 급급한 채, 광고를 무기로 국민들의 눈을 현혹시키게 되었다. 이런 과정 속에서 국가부문과 정치인들 그리고 이익집단으로 조직된 사적 이익들은 비판적 토론을 통한 일반이익으로의 합의 대신 협상 등을 통해 서로의 이익을 나눠가지거나, 그들의 이익추구에 급급하게 되었다. 이제 정치는 공인의 손을 떠나, 광장을 유사 광장화 시킨 채, 그들만의 새로운 밀실에서 이루어지게 되었다. 정치는 국민, 공인과 유리되었고, 그 결과 국민도 정치도 다 소외되었다.117) 이제 정치를 국민의 손에 되돌려 놓아야 한다. 광장에 복귀시켜야 한다. 그것은 자신들의 문제를 스스로 풀어 가게 하는 것이다. 폭력과 지배를 합리로 바꾸었던 공개성과 비판적 토론을 통해 죽어 가는 정치를 소생시켜야 한다. 정치의 광장이며 정치에 활력을 불어 넣는 공론장을 활성화시켜야 하는 것이다.
이에 하버마스는 변화된 상황 속에서의 공론장의 활성화를 주장한다. 비록 위에서 기술한 공론장의 약화 경향이 존재하더라도, 현대 복지국가 사회에는 기본권의 확대경향도 있기 때문이다.
조작적인 전시 공개성은 그 공연의 대상을 필요로 하였다. 조작과 전시 또한 공개성에 의존해야만 했다. 문제는 그 축소 왜곡된 공개성을 다시 확대시켜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공개성을 침해한 부분과 조직에까지 공개성을 확대하는 것이다. 이것은 공중의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 가능하다. 그 참여는 사회 복지국가내의 국가에 의해 확보, 보장되는 기본권, 사회권의 활용과 확대를 통해 가능하다. 과거 자유주의 입법은 시민사회를 방어하기 위해 소극적인 것이었다. 절대주의 국가에 대항하는 기본권 확립이 그 목적이었다. 이제 국가가 사회질서의 보호자로 전면에 나서자마자 국가는 그 기능을 확대하였고, 정의와 질서의 수립을 위해 적극적으로 개입하게 되었다. 이 가운데 국가의 많은 부분이 시민들의 이해관계와 얽히게 된다. 그 속에서 각종 사회집단과 연결되어 많은 공간을 탄생시킨다. 이 확대된 영역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민주적 참여의 공적 보장으로 확대시켜야 한다.118) 대중을 재 정치화하는 것이다. 이 재 정치화는 각 조직과 연대에의 적극적 참여를 통해 비판적 공공성을 확대하는 것이다:
사회복지국가의 정치적 공론장은 다음 두 가지 대립하는 경향들로 특징지 워진다. 그것이 시민사회의 몰락을 나타내는 한,— 전시되고 조작된 공개 성과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에 따라 공적 의사 소통이 비판적 과정을 작동 시키는 정치적 공론장의 요구에 사회복지국가는 접해 있다.119)
이러한 대립은 공중의 분화와 그에 따른 여론의 분화 속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성적으로 토론하는 시민들로 이루어진 공중의 의사 소통망은 쇠퇴해왔 다; 그 결과 한 때 거기서 유래된 여론은 부분적으로 공공성이 없는 사적 시민들의 비공식적 의견들로 분해(산)되었고, 일부는 공적으로 유효한 제 도들의 공식적 의견들로 집중되었다.”120)
그러나, 쇼나 통제를 위해 조작된 공개성에 갇힌 비조직된 사적 개인들의 공중은 공적 의사 소통보다는 공표된 의견들의 소통(communication of publicly manifested opinions)121)에 매여 있다. 공론은 이제 비판적 공개성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이 매개는 오직 간 조직적 공론장을 통한 공식적 의사 소통의 과정 속에 사적 개인들의 참여를 통해서만이 가능하다고 말한다.122) 각 집단내의 의사 소통 과정의 활성화와 그 집단간의 상호 견제가 국가와 사회제도의 내부에서, 그리고 그 관계 속에서 보장될 때, 사회․ 정치권력의 합리적 재 조직화는 가능하다고 하버마스는 주장한다.123)
이것은 제도화의 모순적 과정에 내포된 모순의 극복 방법이기도 하다. 입헌 국가의 성립시 이성과 합리의 제도화로서 헌법의 제정과 제도화, 물질화는 그 유지를 위해 또 다른 의미의 지배와 강제를 수반하였다.124) 이념과 그것의 제도화간의 긴장 관계를 극복하는 길은 이념과 제도에 대해 끊임없이 생기를 공급하는 것이며, 그 생기는 열린 공간에서 자유롭고 비판적인 토론을 통한 공중, 시민의 참여 속에서 나오는 것이다.
하버마스에게 공론장은 문학 클럽이나 살롱, 카페 같은 자발적 결사가 만들어 낸 공간이며, 그 속에서 결사, 연대들의 자율성이 보장되었다. 이 교육받은 시민층으로 이루어진 공론장은 이성의 지배를 원리로 합리적인 토론에 의해 운영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구성원들의 참여와 계몽을 이끌어 내었다. 그러나, 그것이 정치 세계의 권력 투쟁 속에서 제도화되었을 때 이성의 지배라는 모순에 부딪친다. 폭력, 억압의 지배를 해체하고 이성의 운용을, 합리적인 지배를 내걸었을 때 무게 중심이 ‘합리’에서 ‘지배’로 이동할 위험이 상존해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변화하는 공론장의 내재된 긴장관계 속에서 ‘미완의 기획’으로서 공론장의 적극적, 합리적 측면을 발전시켜야 함을 하버마스는 주장한다. 그것은 각 조직, 연대, 결사 속의 적극적 참여를 통하여 정치의 장으로서 공론장을 활성화시키는 것이다. 이곳에서 대중은 다시 정치화된 공인으로 재 탄생하는 것이다. 대중의 정치화와 생동하는 정치의 장으로서 공론장의 활성화를 통해 우리가 직접 참여하는 작은 정치는 다시 살아나는 것이다.
내재적 모순과 긴장 관계에 초점을 맞춘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그것은 이론적 정합성이 아니라 현실에 주목한다는 것이며, 철학보다 정치에 우선을 둔다는 것이다. 내재적인 관점에서 사회사(社會史)적 기술을 통해 공론장의 변화를 고찰한 하버마스에게 행정 기구의 관료화나 사기업의 사회 권력화, 정당의 사당(私黨)화 그리고 시민들의 비공식적 의견과 공식 기구들의 비공식적 여론 조작들로의 분화 등은 어느 하나의 근절을 통해서만 극복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었다. 간접 민주주의와 직접민주주의, 간부 엘리트와 평회원 등의 대립 등도 어느 한쪽의 전일적 지배만이 최선책은 아니었다. 모순적 지배 관계의 해체는 또다른 지배 관계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의도된 결과가 반드시 획득되지 않는 본질적으로 열려진 과정이다. 이런 과정에서 필요한 것은 그 과정의 합리성과 자율성을 보존하는 것이며, 그것은 정치적 역관계 속의 제도화와 그 속에서의 정치 투쟁을 인정하고 그 상호관계 속에서 구성원의 참여를 통해 각 영역의 독자성과 합리성을 발전시키는 가운데 획득될 수 있는 것이다. 다음 장에서는 현실의 정치 경험들 속에서 이것들을 간파하고 단일성과 보편주의의 위험성을 지적하며, 포괄적인 시민사회의 연대, 결사와 참여에 기초한 다원주의, 특수주의의 정치를 주장한 마이클 월쩌(Michael Walzer)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제 5 장. 공론장 이론에 대한 월쩌의 해석
이 장에서는 월쩌의 정치평론125)을 중심으로 국가 · 정부 · 조합 권력과 시민 ·민중들 사이의 정치투쟁의 경험 속에서 드러난 시민 정치와 저항의 정치, 그리고 미국 공산당의 경우 등에서 볼 수 있는 비판과 참여의 문제를 살펴보고, 그것은 결국 분화된 현대 사회 속에서 열린 공간을 중심으로 각 영역의 구성원들의 자발적 참여와 비판 속에서 이루어지는 시민 정치의 문제임을 살펴볼 것이다. 월쩌의 평론은 구체적 현실 속에서 드러나고, 발생한 문제에 대한 적극적 개입의 결과로서, 현실과의 끊임없는 대화를 시도하는 월쩌의 태도를 잘 보여준다.
1)저항과 참여의 정치
60년대 흑인 민권운동과 신 좌파 운동, 베트남 전쟁, 소련 사회주의와 미국의 진보주의 운동에 대한 경험 그리고 대중사회와 개입주의 국가에 대한 경험과 참여는 시민혁명과 민주정치의 경험을 반추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저항을 중심으로 하는 열린 공간에서의 참여와 연대의 정치이다.
월쩌에 의하면 기존의 정치는 혁명과 개혁, 이 양자택일의 역사였다. 혁명이 역사적으로 단일한 신념과 생활의 헌신을 요구하는 직업 혁명가들(professionals)의 몫이었다면, 개혁은 그것이 비록 공적 요구에 의한 것이라 할지라도 결국 정부만의 기능이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과거 자신들의 정책 집행의 정당성을 공중들에게 인정받아야 했던 정부 관료 조직은 대중사회 속에서 시민들과 지역 공동체 조직들을 의사 결정 과정과 정치과정 속에서 체계적으로 배제하여 왔고, 그 결과는 위임받은 정부 권력의 남용과 그 조직의 관료화였다. 또한, 공․ 사 부문의 상호 침투로 국가권력과 사회 조직, 특히 경제 권력의 상호 침투로 조합 권력(corporate authority)이 생겨났는데, 정경 유착(政經癒着)으로 대표되는 이 권력은 노조에 대한 체계적인 억압과 시민들에게 보이지 않는 폭력을 가하고 있다.126) 이러한 공적이며 사적인 거대 권력들의 억압 상황 속에서 다시 소생한 것이 저항의 정치이다. 월쩌에 의하면 이것은 억압에 대한 반응이자 반항으로 권리나 법의 보장이라는 이상적 질서에 대한 요구와 이를 수행하는 공동의 이해를 가진 집단을 필요로 한다. 이 저항의 특징으로는127) 첫째, 상위법과 공동체의 양식에 호소하며, 정부 시책이나 사회적 관습(social convention)에 반대하고 저항하는 것이며 둘째, 제한된 목적을 가진 질서 있고 훈련된 행위들이며 셋째, ‘위로’부터의 정책(policy)보다는 ‘밑’에서부터의 감정과 분위기(sentiment)를 표현하며 넷째, 전적으로 대중적이며 공동체적인 기능으로 다섯째, 아마츄어와 시민을 위한, 시민의 정치이다.128)
서구의 정치사에서 국가는 모든 개혁자들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도구였다.129) 그것은 지방 엘리트와 전통 엘리트의 권력을 분산시켰고, 구 조합을 파괴했고, 새 조합을 규제했으며, 또한 소수 인종, 민족과 종교를 보호했다. 이와 함께 아무리 힘있는 대중 조직조차도 따를 수 없는 기준과 표준(standards)을 확립하였다. 월쩌에 의하면 소위 국가는 근대사회의 유일한 권리부여자(licensing agency)였다. 억압받던 민중을 권리와 의무를 지닌 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정했고, 새로이 선거권을 획득한 모든 구성원들의 지지를 획득했을 때, 거기서 나오는 정당성과 권력을 가지고 모든 쇠퇴하는 행위자(agency)의 힘을 흡수했다. 그런데, 이러한 자선과 혜택 부여는 그 반대급부를 필요로 했는데, 그것이 바로 행정기관의 힘의 증가이며, 이익 수혜자에 대한 통제의 증가였다. 이러한 일상의 행정 기구의 확장과 사회 통제(social control)의 정도와 그 집중도, 그리고 세부항목의 증가는 국가가 인간 욕망을 총족시켜야하며, 정치가 안정과 복지, 평등과 박애를 보장해야 한다는 자유주의, 공리주의 국가관과 결합하여 복지국가의 탄생을 가져왔다.130) 그러나, 이 복지국가131)는 정치의 상실을 낳는다고 월쩌는 말한다. 국가는 단지 행정적 중개자가 되었고, 정치는 오로지 풍부하고 즐길 수 있는 자원과 외부 조건들의 공급과 관련되었다. 국민들이 가능한 한 이 세계를 즐기게 하고, 그 수명을 연장하는 활동에 복무하게 되었다. 이제 투쟁은 소멸되었고, 행복이 최고의 선이 되었다. 모든 것은 개인과 개인적 가치에 중심을 두게 되었고, 공적 행위는 시간 낭비가 되었으며, 사적 세계가 공적 세계를 대신하였다.
복지국가가 행복을 증진시키는 방법 중의 하나는 사람들로 하여금 집에 머 물게 해주는 것이다. 따라서 복지분배의 주요 원칙들은 첫째, 이익들이 개인 들에게 분배되어야 하고, 둘째, 그 사적 세계를 풍요롭게 하는 것이어야 한 다. 완벽한 복지국가에서 오락은 언제나 사적인 것이 될 것이며 행정만이 공적인 것이 될 것이다. 경찰과 복지 행정 관료만이 공인이 될 것이다.132)
이전의 투쟁 단체는 복지 행정 체계로 통합되어 압력단체 화하였다. 또한 지역 활동(local activity)과 대중 참여는 급격히 쇠퇴하였다. 결국, 공동체 구성원들의 열의는 사라지고, 숙련된 기술을 지닌 엘리트․ 관료의 분배 행위가 대신 들어서서 통계와 인구조사 등의 새로운 지식133)을 통해 사회의 모든 부분을 들여다 볼 수 있게 된 국가는 시민을 부양하고, 보살피며, 일탈 행위에 대해서는 처벌도 가하는 아버지와도 같은 존재가 되었다(paternalism).134) 이제 복지의 수혜자가 된 시민은 자원과 권력을 독점한 국가가 제시하는 행복 중에서 선택할 수 있는 자유만 가지게 되었고, 그것을 자신이 원하는 체재로 만들거나, 재구성할 자유는 지니지 못하게 되었다. 국가는 우리가 행동할 수 없는 곳이 된 채 단지 보는 곳으로 되었고, 공적 삶의 외형조차 필요 없는 곳으로 되어 버렸다.
복지국가의 역사는 사회에 편입 안되고(invisible) 미천하며 계몽되지 않은 사람들에게 강제된 수동성에서 시작해서, 계몽된 사람들의 자발적 복종과 공권력에 의해 인정되고 충족되어 지는 인간 욕망들로 끝나거나 끝날 것이 다.135)
여기서 월쩌는 정치의 역동성과 대중의 창의성을 되살려야 한다고 보고,136) 이것을 위해서는 스스로 결정하는(self-determining) 시민을 필요로 한다고 역설한다. 그것은 자립적인 소그룹의 정치이다. 국가를 가능한 한 투명한 행정적 외피로 축소시키고137), 그 안에서 작은 그룹들138)이 크고 번창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그것은 자원과 권력의 국가 독점으로 독립을 상실하고 수동적이 된 시민들에게 자기 자원을 지닌 소그룹내에서 참여하고 활동하게 함으로써 권력을 분점 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한 연대와 지역의 자기 결정, 그리고 그것을 통한 자신들의 의사와 의지의 주장, 이것이 바로 저항(insurgent)의 정치이다. 이제 문제는 국가권력이 아니라 ‘바로 여기에’ 있는 (here right now) 권력이며, 항상 ‘밑에서부터’(from below) 얻어야만 하는 권력139)이다. 이것을 통해 지역적 의사 결정을 대치했던 행정적 서비스를 다시 지역의 자치를 위해 기능 하는 것으로 만들고, 복지 관료제를 대중적 저항과 자치의 새로운 정치로 가는 조력자로 만들 수 있는 것이다.140)
이제 이 저항의 정치는 개혁과 혁명의 양자 사이에 끼어 참여의 공간을 잃어 버리고, 정부 관료 조직의 권력 남용과 그 횡포를 두고 볼 수밖에 없었던 총체적으로 무능력해진 소외된 현대 시민의 유일한 대안으로 나오게 된 것이다. ‘보는’정치에서 직접 ‘참여’하는 정치로의 이행인 것이다. 그러나 월쩌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현실은 탄탄대로가 아님을, 잘 짜여진 설계도에 의해 멋있는 건물을 짓는 것이 정치가 아님을 월쩌는 끊임없는 현실과의 대화 속에서 인식했던 것이다. 자유로운 시민으로 가는 길에는 그 방해물과 어려움 들이 길게 늘어서 있다. 기존 정치권력과 경제 권력의 횡포, 그리고 그들의 융합, 대중매체의 힘, 중앙 집중화된 관료 체제 등등. 그러나, 무엇보다도 더 위험한 것은 이런 난관들을 자신들만이 알아볼 수 있고,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자신들 없이 그들의 이웃과 동료, 사회가 발전할 수 없다고 하는 엘리트주의와 소영웅주의인 것이다.
2)비판의 정치
앞에서 보았듯이 혁명이나 개혁은 공히 직업혁명가나 관리들만이 해 나가는 엘리트만의 일들이었다. 특히, 혁명과 관련해서 마르쿠제는 이성적 엘리트의 혁명적 독재를 이성적이며 민주적으로 사고하기를 배운 소수 엘리트에 의한 민주적 교육 독재로 정식화시켰다.141) 그러나, 월쩌는 자유를 여러 가지 대안들 중에서 스스로 선택하고, 그 결과에 책임을 지는 것으로 보고, 이런 점에서 엘리트들이 아무리 진보적이라 할 지라도 하나의 가치를 강요하는 것은 다양한 인간들을 자유롭게 할 수 없다고 비판한다. 이와 같은 위험성은 시민 정치와 참여 정치에도 내재하는 것으로 공산당의 행태와 맑스의 정치를 분석142)해 보면 분명히 드러난다.
동구의 자유화 운동과 봉기, 스탈린 체재와 그의 사후 후루시쵸프체제의 등장. 이러한 일련의 시대적 변화에 미국 공산주의자들과 그 당은 어떻게 대응하였을까?143) 월쩌에 의하면 세 가지 부류로 구분된다. 우선, 당시의 변화를 최소화하기를 원했던 수구 세력. 둘째로, 후루시쵸프 노선을 충실히 따르고자 했던 부류. 셋째, 주로 “일일 노동자”(Daily Worker)의 편집자(editors)들로 이루어진 독자적이며, 비판적인 노선을 견지했던 부류 등이다. 새로운 시대 변화에 따라, 그리고 과거 스탈린 체제에 대한 반성 속에서 일부 공산주의자들은 당내에 민주적 토론의 새 시대가 열렸음을 주장했다. 이 비판적 그룹들은 칼럼, 편지투고 등을 통해 토론과 비판의 자유, 그리고 ‘차이’(difference)의 권리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들은 이전에 당이 사회주의 모국의 전능성을 인정, 추종한 결과 독자성을 잃어버렸던 것을 비판하고, 당내의 민주적이고 비판적인 의사 소통의 확립을 주장했다. 이에 대해 당간부와 원로들은 과거에 집착하거나 현 소련 체제에 계속 집착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이들은 이에 대한 비판과 다양한 의견 개진 그리고 그것에 대한 토론을 용납하지 않고, 출당(出黨)압력 등의 억압을 가하였다. 이에 대해 월쩌는 “일일 노동자(Daily Worker)로 대변되는 ‘비판’, ‘차이’의 입장을 지지하며, 민주적인 당내언로의 확립을 주장한다.
맑스의 ‘독일 이데올로기’에서의 사회주의 상에 대한 논의는 이제까지 그 경제적 가능성에 대해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으나, 그 정치적 성격, 특히 그 정치 생활의 주체인 시민들에 초점을 맞추면 이야기는 달라진다.144) 맑스의 사회주의는 생산을 중심으로 하는 사회 모든 부문에 시민들의 참여를 필요로 한다. 시민들의 사회 규제(social regulation)가 그 핵심인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가 정확히 지적했듯이 너무 많은 회합(too many evening)을 필요로 한다.145) 이것은 사회적 규제를 위해 필요한 토론, 의사 결정 등을 위한 회합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회주의나 혹은 참여 민주주의가 너무 많은 공적 모임을 필요로 하고, 그 결과 공적 생활만이 남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사회에는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전적으로 공적 생활을 선호하는 사람, 부분적으로 참여하는 사람, 모임에 전혀 참여 안하며, 일도 가끔가다 열심히 하는 사람 등등. 기존의 진보 정치는 급진적으로 정치 참여의 양과 강도를 높이려 했고, 그 결과 시간의 제한, 다양한 신념과 그에 따른 행위의 다원성이란 현실을 도외시함으로써 참여 민주주의는 참가자들만의 권력 독점을, 사회주의는 회합과 조직에 참여하는 이들의 지배를 뜻하였다고 월쩌는 말한다.146) 양자 공히 ‘타인’들을 배제하였고, 열성분자, 투사, 그리고 직업 혁명가들만의 권력 게임이 되었다.
그러나, 비참여자라도 그들은 권리를 지니고, 역할을 가지고 있다. 비록 현대의 정치가 단순히 ‘보는’, 소외된 정치가 되어, 이에 대한 ‘참여’의 정치가 요구된다고 하지만, 새 드라마 – 새 정치 – 가 관객을 필요로 하면서도, 그 관객이 비판적이며 연기자보다 뛰어난 점이 있고 그들도 연극의 구성원임을 잊으면 안되듯이, 정치 참여자(행위자)들도 대중, 시민을 인정하고 그들의 비판과 눈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147) 곧 비판과 참여의 정치는 대의정치, 대의 민주주의와 항상 함께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끼리끼리의, 닫혀진 정치에 대한 끊임없는 비판이 바로 시민 정치의 과제이고, 이러한 열린 정치가 가능한 곳이 바로 공적 공간 (public space)148)인 것이다.
3)열린 공간의 정치 – 시민 정치
월쩌에 의하면, 우리의 생활인 정치, 종교행위, 상업, 스포츠 등이 행해지는 곳이 공적 공간인데, 그것은 두 종류가 있다고 한다. 첫째, 닫혀진 공간(single-minded space)과 둘째, 열린 공간(open-minded space)이다.149) 쇼핑센터로 대표되는 닫혀진 공간, 폐쇄 공간에서는 오로지 한 가지 목적만 가진 이들 -판매자, 구매자-이 활동한다. 따라서, 이 공간은 한 가지 목표를 위해 계획되어 세워졌고, 그 편의만을 위해 봉사한다. 그리고, 이 한 가지 목적은 오직 개개인들의 편의를 목적으로 하는 사적 공간을 탄생시키고, 사사화(privatization)의 특징인 배타성과 은밀화(intimate)를 가져온다. 반면, 광장으로 대표되는 열린 공간은 공적, 사적 건물들로 둘러싸인 채, 어떤 것은 단일 목적을 위해, 어떤 것은 다목적용으로 사용된다. 그러나, 이들은 한데 모여 만나고, 활동과 활발함을 창조하는 공간을 만들며, 이곳에서 시민들은 만나고, 걷고, 토론을 한다. 이것들을 통해 시민들은 배우고 익히며, 상호 일체감(solidarity)을 형성한다. 그러나, 현대에는 문화, 기술, 이데올로기, 사회, 경제적 요인들로 인해 닫힌 공간의 은밀화 경향이 우세해지고 있다고 월쩌는 진단한다. 즉 복지의 개인성, 유아성(唯我性)과 개인주의적 자기 욕망의 확장과 더불어 기술의 발전은 이전에는 함께 해야만 했던 일들을 혼자서도 가능하게 했고, 그 결과 ‘한 곳에는 한 가지 목적’(one site/one purpose)150)이라는 표어까지 생기게 되었다. ‘중심’(center)과 계획, 기획(project)이 지배권을 행사하게 된 것이다. 법원은 법조인만의 장소가 되었고, 시장은 무질서의 공간으로 전락해 버렸으며 백화점은 물건을 살 충분한 돈을 가진 사람들만이 들어 갈 수 있는 곳이며 쇼윈도우는 그 자격을 갖추지 못한 이들을 끊임없이 낙오, 배제시키는 좌절과 욕망의 진열장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월쩌는 인간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만 살아갈 수 있는 존재임을 상기시키면서 위의 다양한 요소들의 결합 속에서, 그 긴장 관계 속에서 인간이 살아감을 인정한다. 그리고, 그 전제하에서 닫힌 공간에 저항하는 열린 공간의 활성화를 주장한다.
도시들은(정치는–필자) 진정 중심들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오직 이 것들이 다양한 종류의 활동과 행위들과 함께 하는 한에서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들은 다양성을 위해 탈중심화를 필요로 한다.151)
이러한 월쩌의 시민 정치는 그의 “시민사회의 이념” 이란 논문152)에 응축되어 나타난다. 여기서 그는 기존의 서구 정치사상에서 나타난 ‘좋은 삶’(good life)에 대한 4가지 선호 안을 분석한다. 우선, 좌파적 입장의 공동체주의적이며, 공화주의적인 입장 하나와, 맑스를 선구자로 하는 사회주의적 입장, 그리고, 자본주의적 관점에서 본 시장 중심의 입장과 민족주의적 입장이 그것이다. 좌파적 입장 중에서 전자인 공동체 주의와 공화주의적 입장은 시민성(citizenship)과 민중(demos)을 강조하고, 후자 즉 사회주의적 입장은 노동계급과 생산의 관점을 중시한다. 세 번째인 자본주의적 입장은 시장 관계를 강조함에 따라, 소비자와 생산자를 중요시하며 국가 권한의 최소화를 주장한다. 네 번째 즉 민족주의적 입장은 피(혈통)와 역사의 끈을 강조하는 삶의 기준이 정체성(identity)에 맞추어져 있는 경우로, 나치즘이 그 극단적 형태이다. 월쩌는 이 4가지 안들의 편협성을 비판하며 인간사회의 복잡성과 거기서 오는 신념과 행동들의 필연적 대립을 강조한다. 여기서 그의 대안이 나오는데, 분화와 투쟁의 장소로서, 그리고, 상호 교통하며 사회성을 가지는 구체적이며 진정한 연대의 장소로서 시민사회에 대한 인정이다.
이것은 시민사회를 위의 4가지 안들의 기본 환경으로 인정하는 것이며, 그곳에서의 다양한 정치, 경제, 사회생활의 실제 기반으로서 유대와 삶을 인정, 복원시켜 내는 것이다. 이것을 통해 시민성과 민중의 강조와 노동계급과 생산 범주의 강조로 엘리트만을, 그 주창자, 신봉자만을 군림시켰던 앞의 두 이론과, 시장 관계의 강조 하에 그 안에서 자원의 불평등한 분배 등을 보지 못했던 세 번째 이론 등에 대한 비판을 수행하며 나아가 시민사회 속의 유대 관계, 연합망 – 연맹들, 정당들, 각종 운동들, 이익 단체 등등 – 속에서 사람들이 더 많은 작은 결정에 참여할 때,153) 이것이 자라 국가와 시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민주적인 국가만이 민주적인 시민사회를 창조할 수 있다. 그리고 민주적인 시민사회만이 민주국가를 유지할 수 있다. 민주정치를 가능케 하는 시민성, 시민 의식은 오직 연대(결사, 연합)의 망들(associatonal networks)속에서 배울 수 있다.154)
그는 어떤 하나의 선호안만이 가능하다는 것에 대한 반대 속에서 단일성에 대한 거부를 발견하고, 시민사회의 세 가지 계획을 내세운다. 첫째, 국가를 탈중앙집권화하여 시민들이 자신들의 행동에 책임질 수 있는 더 많은 기회를 가지게 하기. 둘째, 경제를 사회화하여 시장 행위자나 공동체, 사적 행위자들의 더 많은다양성을 보장하기. 셋째, 민족주의를 다원화하고, 교화하여 역사적 정체성을 실현하고 유지할 여러 방법을 준비하기. 그리고, 그 방법으로 자원을 재분배하고, 가장 바람직한 결사, 연대 행위들을 지원하고 인정할 것을 제시한다.155)
월쩌 자신이 ‘비판적 연합주의’(critical associationalism)156)라 명명한 이 정치는 에너지가 어디로 어떻게 집중되고 있는 가에 대해 명확히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적(敵)과 아(我)의 양단으로 자신을 특징 지우는 기존의 영웅주의에 대한 반대와 투쟁에서 나온 것이다. 역사상의 기존 체제들을 특징 지웠던 위의 네 가지 선호 체계가 억압과 지배를 가져온 이유는 종교와 종교적인 것의 성급한 보편주의와 민족, 인종의 배타성 등으로 특징 되는 이데올로기적 폐쇄성의 영향 때문이었다.
월쩌에 의하면 시민사회는 다양한 시장 행위자들, 예를 들어 가족 기업, 공기업, 노동자 자치체, 소비자 조합들, 여러 종류의 비영리 조직 등을 포함하고 있다.157) 비록 그들의 기원이 다르더라도 시장 속에서 각자의 기능들을 가지고 있다. 민주주의의 경험이 국가 속에 있으나 국가의 것은 아닌 그룹에 의해 확대 고양되어 왔듯이, 소비자 선택도 시장 속에 있으나 시장의 것은 아닌 그룹들에 의해 확장되어 왔다. 국가 속에는 시장기구들도 있으나 그것은 국가 기구가 아니며, 국가 기구는 시장 속에서 활동하나 시장 조직은 아니다.158) 현대의 분화된 세계 속에서 각각의 영역은 자신의 기능과 내적 논리를 지닌 채 사회 속에서 경쟁하고 활동한다. 자본과 화폐의 힘이 정치권력을 독점하는 식으로 한 영역이 타영역을 침범하지만 않는다면 시장이나 국가의 존재는 아무런 문제도 없는 것이다. 재화의 수급을 자유롭게 유통시키는 장소로서의 시장과, 국민의 요구와 그들간의 투쟁을 흡수하여 일반적인 기준을 만들어 온 국가는 역사적으로 자신의 고유한 역할들을 수행해 왔고 현재도 하고 있다.159) 문제는 한 영역의 원칙이 다른 영역에 침투하고 확산하여 전일화를 가져오는 것으로, 현대 자본주의에서 자본의 전횡과 관료의 권력 독점의 횡포 등의 현상이 바로 그것이다. 시장이나 국가를 없앤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닌 것이다. 그것은 또 다른 독재를 불러왔을 따름이었다. 문제는 이 영역들 사이의 관계 조절이다. 각 영역은 다른 영역을 침범하지 말고 독자성을 지녀야 한다. 이것은 평등과 정의의 문제이다. 기존의 평등이 타인이 10을 가지면 나도 10을 가져야 한다는 식의 ‘단순한 평등(simple equality)’이었다면, 이제 ‘복합 평등(complex equality)’으로 전환해야 한다. 전자가 모든 지배 관계의 해체를 위해 국가 개입이라는 다른 지배 즉, 독재의 가능성을 배태시킨 것이었다면, 후자는 사회 분화가 고도화된 현대 사회에서 다양한 사회적 재화가 그 사회적 의미와 다양성에 맞는 다양한 기준으로 분배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160) 한 영역의 타영역에 대한 우위는 사라지고 각 영역의 독자성이 인정되는 것이다. 이제 평등은 일련의 사회적 재화들이 매개된 인간들간의 복합적 관계가 되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서 ‘차이들’과 ‘경계들’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161) 각 영역의 독자성은 그 영역의 내적 논리가 그 구성원들의 참여에 의해 스스로 지켜질 때 획득되고, 각 영역의 차이의 인정과 경계들의 보호 속에서 얻어질 수 있다.162) 이런 의미에서 문제는 전문가와 관료들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독점과 특권을 제한하는 것이다. 교실에서는 선생님을, 군대에서는 지휘관을, 국가에서는 관료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특권과 권한을 제한하는 것이다. 국가, 관료, 조합권력, 영웅주의, 닫힌 공간 등은 모두 획일성과 폐쇄성을 특징으로 한다. 자신의 논리 속에서 타자와 타인의 논리를 인정하지 않는다. 서로 분화된 다양한 부분의 상호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현대 사회는 이 폐쇄성과 획일성이란 적(敵)과의 전면적인 싸움을 필요로 한다. 그것은 민중이 열린 공간 속에서 저항과 비판이란 참여를 통해 자치를 실현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자유로운 연합과 연대의 네트워크 속에서 참여하고 비판하는 시민 정치의 목적인 것이다.
민주적인 시민사회는 단일의 자치 과정이 아니라, 수많은 다르고 일원화되 지 않은 과정을 통하여 그 구성원들에 의해 조절되는 사회이다.163)
월쩌의 현실과의 대화 속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정치의 상을 그려 볼 수 있다. 우선, 월쩌에게 현실은 다양한 의견과 신념을 지닌 사람들이 대결과 화합 속에서 생활해 나가는 장소였다. 그것은 순수한 이론의 세계도, 투명한 세계도 아니었다:
행동은 사회 변화의 진리 이론에 의존할 수도 없고 또한 하지도 않는다. 그것은 실용적인 이론 혹은 이론 밑의 어떤 것을 요구한다. 일종의 의견 체 계와 논증 즉, 적어도 우리가 진리라고 믿지 않더라도 모순되지 않는 것 말 이다.164)
이런 불투명한 세계에서는 항상 의도와 결과가 불일치할 수 있었고, 그것은 그 저변에 흐르는 현실의 긴장 관계 때문이었다. 이것을 월쩌는 미국 공산당 조직과 그 구성원간의, 국가 조직․ 관료와 시민간에 그리고 노동자 농민 대중과 직업 혁명가간의 관계 등에서 체험했던 것이다. 이 긴장관계속에서 한쪽으로 기울었을 때 개방성은 폐쇄성으로 흐르고 대중의 봉사자는 영웅으로 그리고 국민의 봉사자인 관료제는 폭군으로 변한 것이다. 그 의도의 선함과 도덕이 정치세계속에서 악함 또는 부도덕으로 불순하게 된 것이다. 여기서 월쩌는 문제를 현실과의 대화 속에서 얻은 지혜로 하나하나 풀어 나간다.
현대 정치의 문제는 무엇인가? 혁명이건 개혁이건, 참여 정치건 대의 정치건 그 실제 운영이 대다수 시민 구성원들과 동떨어진 채 이루어지고 있는 큰 정치165)인 것이다. 이제 그 구성원들과 담지자들이 소외되어 있던 정치를 그 주인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 주변의 이웃들과 일반 시민들이 모여 생활하는 공동체와 공적 공간, 그리고 열린 공간 속에서의 정치이고 시민사회 내의 다양한 연합과 그 네트워크 속에서 참여하는 정치이다. 그러나, 그는 이것이 다시 큰 정치로 즉, 엘리트와 전문가 그리고 참여자들만의 정치로 돌아갈 위험을 직시했고, 또한 작은 정치의 강조 하에 국가권력의 약화로 경제 권력과 같은 다른 사(私)권력이 강해질 수 있음을 간파했다. 이에 그는 억압으로 다가오지 않는 국가와 자원의 재분배에 이바지하는 국가권력의 필요성을 주장했고, 참여 정치는 대의정치와 항상 함께 있어야 함을 역설했다. 이것 또한 정치 세계의 열린 공간의 비예측성166)을 천명한 것으로, 시민의 정치와 시민을 위한 정치의 융합과, 참여의 정치와 보는 정치 그 중간의 사이의 정치를 주장한 것이다.167) 이것은 정치 세계의 복잡성과 모순, 긴장관계속에서 우리 주위의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할 것을 요구한다. 그렇다고 큰일을 무시하지도 않는다. 직접 자유롭게 참여하는 가운데 소아병적 영웅주의를 경계하며 비참여자들도 존중하는 참여와, 저항의, 그리고 비판의 정치가 바로 끊임없는 의사 소통과 자기성찰속에서 비판을 요구하는 ‘운동’으로서의 정치인 것이다.
제 6 장. 결론
우리는 아렌트의 공론장 개념을 통해, 정치는 우리 자신들의 발언과 행동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임을 알았다. 그것은 역동성과 관계성에서 오는 불명확성과 모호함을 특징으로 하는 열려진 과정과 공간이었다.
하버마스를 통해서는 서구 정치에서 구체적으로 전개되었던 공론장의 생성, 변화 과정을 살펴보았다. 근대 자유주의 공론장의 태동과 발전을 통하여 새로이 떠오르는 시민층이 인간의 자유와 평등, 박애를 그 이념으로 하여 이성적이고 비판적인 토론을 무기로 하는 공론장을 구성하고, 그곳을 통해 기존의 왕권과 봉건 권력에 대항해 근대 입헌 국가를 설립하고, 그것을 통해 공론장과 그 구성원의 자격을 확대하고 제도화하였음을 보았다. ‘의지’의 정치를 ‘이성’의 정치로 바꾼 것이었다. 이후 자본주의의 발달과 여러 정치 투쟁 속에서 정당성을 지닌 국가가 제반 문제들을 흡수함으로써 개입주의 복지국가가 탄생하였다. 그런데 이 합리적인 정치 이념의 제도화의 결과로 자원을 독점하고 공적 부조와 복지 제공 등을 매개로 사적 부문에 침투한 국가는 거대 방송 기업 등으로 대표되는 조합 권력과 함께 공론장과 열린 공간을 사사화시켰고, 그 결과 공론의 정치를 밀실의 정치로 만들어 버렸다. 이성(ratio)의 이념이 제도화되어 의지(voluntas)의 정치로 변한 것이다. 이에 하버마스는 다시 이 의지(voluntas)를 다시 이성(ratio)으로 바꿀 것을 주장한다. 그러나 그것은 이전과 동일한 과정은 아니다. 이전의 것이 전혀 다른 정치제도와 그 이념에 대한 전면적 싸움이었고 그것을 통한 새로운 이념과 제도의 건설이었다면, 이제는 이 건설과 그것의 확립 운영속에 존재하는 긴장 관계와 모순에 대처하는 것이다. 초기 자유주의 공론장과 그 이념을 기반으로 하는 국가의 제도화는 민주주의 이념과 그 가치를 확립 재생산해 내었다. 그러나 그 제도화는 시간 속에서 곧 화석화되었고, 어느덧 지배자와 폭력으로 다가왔다. 적나라한 폭력 관계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제도였으나, 이 제도의 폭력을 제어할 수 있는 것은 적나라한 역관계이다. 그것이 바로 하버마스가 제시한 공론장의 활성화168)며 그 속에서 정당 사회단체들의 참여와 활성화를 통한 권력의 분점을 꾀한 것이다.169) 이것은 또한 월쩌가 논파했던 화석화되어 그 봉사자에 지배자로 군림하게 된 복지국가 관료 체계에 저항하는 열린 공간의 정치이다. 지역 공동체와 시민사회의 기초인 여러 연합․ 단체․ 그룹들의 자치와 참여로 이루어지는 민중에 의한 권력의 두 번째 점유를 통한 비판, 저항, 자치, 참여의 정치, 시민의 정치인 것이다.170)
그들은 이상적인 정치제도가 무엇이냐고 묻지도 답하지도 않는다.171) 지금 이 순간의 현실의 모순을 묻는다. 이 모순 속에서 그 해결 방안을 하나씩 하나씩 찾아 나간다. 공동체의 성원들과 문제를 같이 숙고해 나가고, 그 해결을 찾아 나가는 곳이 공론장이며, 우리 생활 주변의 각 단체들 간의 연대인 것이다. 공론장은 자신의 권위를 최고라고 주장하지도 강요하지도 않는다. 단지 보호되고 유지되어야 할 최소한의 공간인 것이다. 이것이 거대한 계획 속에서 모든 것을 담고자 자세한 설계도를 가지고 해나가는 것이 아닌, 조금 더 나은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면서 미래를 준비하며 현재를 고쳐 나가는 끊임없는 운동, 과정으로서의 정치인 것이다 .
머리 속의 주관적 자유는 얻으려는 순간 현실의 구속으로 작용한다.172) 자유는 구체적인 현실의 공간 속에서 타인과 관계하는 중에 발생하는 조그만 공간 속에서 기꺼이 살아가고자 하는 이들에게만 주어진다. 이런 의미에서 ‘소극적 정의’를 행하는 정치의 ‘적극적 행동’이 필요하다. 정치(학)는 정치에 대한 진리를 말하고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라, 정치세계속에서 오류를 피하게 해주는 것이다.173) 이것이 바로 끊임없는 비판과 참여, 운동으로서의 정치인 것이다.
참고문헌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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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 Cup of Coffee and A Seat (Spring, ’60)
————-, A Place of a Hero (Spring,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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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 Modest Proposal; King and Reuther for ’64! (Autumn, ’63)
————-, In Defence of Spying(Autumn, ’63)
————-, The Academy. A Special Issue (Winter, ’64)
————-, The Only Revolution – Notes on the Theory of Modernization (Autumn, ’64)
————-, Labor in Britain; Victory and Beyond (Winter, ’65)
————-, Comment on Vietnam; The Costs and Lessons of Defeat (Spring, ’65)
————-, American Intervention and The Cold War (Autumn, ’65)
————-, Democracy and The Conscript (Jan-Feb, ’66)
————-, Options for Resistance Today (May-June, ’66)
————-, On the Nature of the Freedom (Nov-Dec,’66)
————-, 1. Moral Judgment in Time of War
2. Anti- Communism and The CIA (May-June, ’67)
————-, The Condition of Greece – Twenty Years after The Truman Doctrine (July-August, ’67)
————-, Civil Disobedience & “Resistance” (Jan-Feb, ’68)
————-, Politics in the Welfare State. Concerning the Role of the American Radicals (Jan-Feb, ’68)
————-, A Day in the Life of a Socialist Citizen. – Two Cheers for Participating Democracy (May-June, ’68)
————-, Students and The Draft (May-June, ’68)
————-, Corporate Authority and Civil Disobedience (Sept-Oct, ’69)
————-, A Journey to Israel. Reports from The Middle East (Nov-Dec, ’70)
————-, Violence. The Police, The Militants, and The Rest of Us (April, ’71)
————-, “Citizens’ Politics” – How to do it (June ’71)
————-, Notes for Whoever’s Left (Spring, ’72)
————-, In Defence of Equality (Fall, ’73)
————-, Watergate Without The President (Winter, ’74)
————-, Israel Policy and The West Bank (Summer, ’76)
————-, Thoughts on Democratic Schools (Winter, ’76)
————-, The Election; Lessons & Rewards ? (Winter, ’77)
————-, Vietnam and Cambodia (Fall, ’78)
————-, The Pastoral Retreat of The New Left (Fall, ’79)
————-, So whom are you going to vote for ? In a bad time (Fall, ’80)
————-, The Courts, The Elections, and The People (Spring, ’81)
————-, Socialism and The Gift Relationship (Fall, ’82)
————-, On Failed Totalitarianism (Summer, ’83)
————-, The Politics of Michel Foucault (Fall ’83)
————-, Comitment & Social Criticism; Camus’s Algerian War (Fall, ’84)
————-, Replies(To the Comment about above Article) (Fall, ’84)
————-, Dissent at Thirty (Winter ’84)
————-, Were we wrong about Vietnam ? With Irving Howe (Fall, ’85)
————-, What Terroism – And what Isn’t ? (Summer, ’86)
————-, Pleasures & Costs of Urbanity. Public Space. A Discussion on the Shape of our Cities (Fall ’86)
————-, Why not Jackson ? (Summer, ’88)
————-, Socializing the Welfare State (Summer, ’88)
————-, Ambigious Legacy of Antonio Gramsci (Fall, ’88)
————-, The Critic in Exile (Spring, ’89)
————-, The State of Political Theory. Introduction (Summer, ’89)
————-, … And with Fingers Crossed (Spring, ’90)
————-, A Credo for this Moment (Spring, ’90)
————-, The Idea of Civil Society (Spring ’91)
————-, The New Tribalism (Spring, ’92)
————-, Scenarios for possible Lefts (Fall, ’92)
————-, Replies (To J. B. Rule’s “Tribialism and the State”) (Fall, ’92)
————-, Editor’s Page (Fall, ’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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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외의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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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Political understanding of the public sphere
— Focusing on H. Arendt, J. Habermas, M. Walzer
Kim, Kyung-Hee
Department of Political Science
Graduate School
Seoul National University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introduce the theory of the public sphere. Politics is thought of as a kind of great work which is foreign to the common, ordinary people(the masses) and is made by certain power groups and state institutions. In contrast to this perception, the theory of the public sphere argues that politics is a product of the interplay of speech, debate and action.
This study consists of three parts : Arendt’s public realm, Habermas’s public sphere, and Walzer’s political interpretation of the public sphere(space).
According to Arendt, the public realm is a potential space around us which can be shaped by our speech and action which in turn is the product of collective work and need, etc. If the equal action and speech of the participants is impeded, then the public sphere will collapse. The public sphere can be characterised as experiencing periodic cycles of collapse and rebirth like a living open space.
Habermas focuses upon the living public sphere in a historical context. He describes the birth, development, and disappearance of the modern liberal public sphere. He understands the public sphere as a voluntary association where the citizens interact and as the essence of the politics. It was the liberal bourgeois public sphere grounded in these voluntary associations that destroyed the feudalism and the absolutism (the secret politics) and institutionalized the idea of human freedom and equality. But in the welfare state, characterized by the monopoly of resources and the public aid, a public forum for rational and critical debate disappears and is replaced by the representative and manipulative work of bureaucracy and corporate powers. Against them Habermas contends that the revitalization of the public sphere requires active participation in assemblies and associations, including the institutions of the political realm and the economic realm.
Walzer argues that the politics in the open space resists and criticizes the bureaucratic and elitist system of the welfare state, which transforms itself from a servant of the people into their dictator. Critical, insurgent, and participatory politics can be created by the self-determination and participation of associations, groups and people that make up the foundation of the local community and civil society. The politics of the public sphere is not to be found simply in concrete policies and institutions ( a great politics), but is constantly at around us. The public sphere is always interested in actual problems . It is the place where the members of the community discuss their problems together and try to solve them.
The public sphere cannot maintain itself as an absolute power. It is a minimal and contested space that has to be defended and maintained. The public sphere concerns itself not with grand decisions shaped by select individuals acting in isolation from the people(the so-called great and big politics made by the master plan), but rather in the endless movement of ideas and actions that seek answers to the problems facing society.
Key words : public sphere, publicity, public debate, action, participation, welfare state, private sphere, public sphere in the world of letters, public sphere in the political realm, resistance, open space, revitalization of the public sphere, refeudalization of the public sphere, politics, speech, secret politics, power, civil society, mass, citizen, sal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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