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키너의 공화주의: 자의적 권력의 부재와 자기소유권으로서 자유

V. 스키너의 공화주의: 자의적 권력의 부재와 자기소유권으로서 자유

스키너는 이러한 페팃의 주장을 받아들여 최근 자유를 ‘자의적 권력의 부재’라고 재규정했다. 언제라도 자의적으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우월한 지위에 있는 인간의 선의에 의해 당장은 간섭받지 않는다고 해서 열등한 지위에 있는 인간이 자유롭다고는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한 열등한 인간은 늘 우월한 지위에 있는 인간의 눈치를 보며 자신의 행동에 대해 자기 스스로 검열할 것이기 때문에 절대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관대하고 자비로운 전제군주가 자신이 마음만 먹으면 공동체의 구성원들을 자기 아래에 둘 수 있다는 것을 알아도 그렇게 하지 않고 또 기질 상 앞으로도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면, 그는 공동체 구성원들의 자유에 전혀 위해가 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을까? 스키너는 공화주의자들은 바로 이러한 발상을 거부했다고 단언한다.29) 이러한 관점에서 스키너는 공화주의 자유론은 인간의 자유를 논할 때 먼저 그 인간이 속해있는 공동체의 성격을 규정한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사적인 개인으로서 단순히 간섭받지 않는 것이 자유가 아니라 자신보다 더 우월한 지위에 있는 그 어떤 상위자도 존재하지 않는 공동체에서 평등한 지위를 누리는 것을 자유라고 보기 때문이다. 즉 공화주의적 자유는 그 구성원들이 평등한 시민으로서 자치를 실현하는 자유 공동체, 자유 국가 안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30)
그리하여 자유주의는 자유를 개인에게 주어진 재산 같은 것으로서 정부가 간여하는 것을 삼가는 것으로 보는 반면, 공화주의는 자유를 정치적 성취로서 그것을 지키기 위해 유덕한 시민들이 힘을 합쳐 행동해야 하는 것으로 본다. 따라서 자유주의는 의무에 앞서 권리를 우선시 하지만 공화주의는 반대로 권리에 앞서 의무를 우선시한다고 스키너는 주장한다.31)
그러나 인간들은 의무를 소홀히 하고 권리만을 앞세우려고 하는 성향이 있어서 공화주의자들은 공동체의 부패를 막기 위해 늘 시민들에게 공공정신으로 깨어있기를 요구하지만, 자유주의자들은 그러한 문제점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해결될 것이라고 믿는다. 스키너는 자유주의의 그러한 낙관론이 오히려 자유를 상실하게 할 뿐이라고 경고한다. 그렇다고해서 스키너가 공동체의 공동선을 위해 헌신하는 것 자체를 자기실현이라는 적극적 자유라고 보는 공동체주의를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그도 페팃과 마찬가지로 공화주의는 공동체주의가 아니라고 단언한다. 단지 공동선의 추구가 지유와 양립할 수 없다는 자유주의를 비판할 뿐이다. 공동선의 추구를 통해 자유 공동체를 유지하는 것이 자유를 누리기 위한 최선의 그리고 유일한 수단이라는 것이다.32)
스키너는 이러한 공화주의 자유론에 기초해 영국 혁명 당시 벌어졌던 푸트니 논쟁의 핵심이었던 투표권 문제를 새롭게 해석한다.33)
그 논쟁에서 수평파의 대표들은 기본적으로는 보통선거에 동의했다. 그런데 그들은 선거권을 자연권이 아니라 사회권이라고 보았다. 그 결과 그들은 하인, 임금 노동자, 그리고 구호품 생활자들에게는 투표권을 부여하지 않으려고
했다. 이 점에서 그들은 논쟁의 상대였던 크롬웰 일파와 이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다수의 수평파들은 보통선거권을 지지하고 있었다. 그 누구도 자신의 동의 없이 어떤 정부 아래에서 산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기에 가장 가난한 잉글랜드인도 투표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논쟁에 참여한 수평파 대표들은 동료들과는 다른 주장을 한 것일까?
일찍이 마르크스주의자인 맥퍼슨은 수평파도 기실은 ‘소유적 개인주의’라는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에 젖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34)
즉 임금이나 구호품을 받아 생활하는 인간들은 이미 그것을 받은 것으로 그들의 권리를 이미 상실한 것이기 때문에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는 자격을 잃게 된다는 것이 수평파의 일반적인 생각이었다는 것이다. 이에 반대하여 키스 토머스는 그 문제에 대한 수평파의 일관된 원리 같은 것은 없었다고 주장했다.35)
마치 범법자에게는 투표권이 없다는 생각을 당연시 했던 것처럼, 그저 하인, 도제와 같은 부류는 투표권을 소유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자명한 것으로 생각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수평파들의 저술에서 인간의 생득권이 어떤 조건에서 유보될 수 있는지에 대한 특별한 언급을 찾아보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이러한 해석에 대해 스키너는 자신의 공화주의 자유론으로 맞선다. 즉 수평파와 이에 맞섰던 크롬웰 일파 모두 공통적으로 공화주의 자유론을 신봉하고 있어서 타인의 의지에 종속된 상태에 있는 인간들은 이미 자유인이 아니기 때문에 투표권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즉 하인, 도제, 구호품 생활자들은 ‘자발적인 예종 상태’에 있기 때문에 이미 자유라는 생득권을 상실하고 말았다는 것이 그들의 공통된 생각이었다고 스키너는 주장한다. 따라서
그는 투표권의 기준을 크롬웰 일파는 재산소유권에 수평파 다수는 생득권에 두었다는 데서 양편의 차이를 찾으려고 하는 시도는 틀렸다고 평가한다. 그는 예를 들어 크롬웰 편에서 그 논쟁에 가장 치열하게 참여했던 이레턴(Ireton)도 재산을 소유했다는 사실 그 자체가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는 기준이라고는 보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는 자유롭게 투표할 수 있으려면 타인의 의지에 종속되지 않는 독립성을 유지해야 하는데 재산이 그 독립성의 근거일 수 있다고 보았을 뿐이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은 해링턴과 같은 당시 공화주의자들의 공통된 생각이라는 것이다.
스키너의 이러한 주장은 포콕의 그것과도 일맥상통한다. 포콕은 공화주의자들의 재산관이 결코 부르주아적 재산관이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즉 공화주의자들은 재산은 도덕적 정치적 인격의 독립성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것이지 결코 물질적 문화적 욕구를 만족 시킬 수 있는 능력을 증대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고 보았다는 것이다.36)
스키너는 이러한 관점에서 수평파가 반대한 것은 ‘모든 남성들에게 무조건 투표권을 주는 것’ (universal male suffrage)을 반대했지 ‘모든 남자다운 남자들에게 투표권을 주는 것’ (universal manhood suffrage)은 반대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남자다운 남자란 타인의 의지에 따르지 않고 자기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남자를 말한다.
따라서 수평파는 하인들뿐만 아니라 주교들마저도 남자다운 남자가 아니라고 분류했다는 것이다. 더나가 수평파 가운데는 하인들이나 구호품 생활자들도 이성에 따라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그 어떤 다른 재산이 없어도 투표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인물도 있었음을 말하면서, 스키너는 결코 수평파가 단순히 재산 소유 여부를 투표권의 기준으로 생각하지 않았다고 재삼 강조한다. 재산소유권이 아니라 자기소유권(self-ownership)이 투표권의 기준이었다는 것이 스키너의 지론이다. 여기서 자기소유권이란 타인의 선의에 의지해 자신의 권리를 누리는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의 의지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말한다. 즉 자신이 한 행동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화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것일 수 있는 남자들이 투표할 수 있다는 것이 공화주의자들의 공통된 생각이었다는 것이다.
즉 자유인의 지위를 가늠하는 기준이 재산이 아니라 독립적 인격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19세기 선거권 개정 논란 속에서 글래드스톤파의 선거권 확대론에도 영향을 미쳤다.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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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Quentin Skinner, “Freedom as the Absence of Arbitrary Power” in Cécile Laborde and John Maynor, ed. Republicanism and Political Theory (Oxford: Oxford, Blackwell, 2008), 83-101.
30) Quentin Skinner, 앞의 책, 23, 69f.
31) Quentin Skinner, “ The Republican Ideal of Political Liberty”, in Gisela Bock, Quentin Skinner and Maurizio Viroli, eds. Machiavelli and Republicanism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307-309,
32) Ibid., 293, 304-306, 308-309; Quentin Skinner, 앞의 책, 32 n103
33) Quentin Skinner, “Rethinking Political Liberty”. Historical Workshop Journal, 61 (2006), 160-165.
34) C. B. Macpherson, The Political Theory of Possessive Individualism: Hobbes to Locke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1962), 107-159.
35) Keith Thomas, “The Levellers and the Franchise”, in Gerald Edward Aylmer, ed. The Interregnum: The Quest for Settlement 1646-1660 (London: Macmillan ,1972), 57-78.
36) J. G. A. Pocock, “Radical Criticisms of Whig Order in the Age of between Revolutions”, in Margaret Jacob and James Jacob, ed. The Origins of Anglo-American Radicalism (London, 1984),37.
37) Kari Polanen, “Voting and Liberty: Contemporary Implications of the Skinnerian Re-thinking of Political Liberty” Contributions to the History of Concepts 3 (2007)26.

누가 자유주의를 두려워하랴? [PDF]

역사와 담론 第54輯, 273~298쪽(총26쪽)
영문제목: Who’s Afraid of Liberalism?
저자: 조승래(Cho Seung-R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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