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팃의 (신)공화주의: ‘지배의 부재’로서 자유

IV. 페팃의 공화주의: ‘지배의 부재’로서 자유

지난 세기 공화주의 연구의 대미를 장식한 인물은 필립 페팃이었다. 1997년에 간행된 페팃의 『공화주의: 자유와 정부에 관한 한 이론』(Republicanism: A Theory of Freedom and Government)는 1970-80년대를 풍미하던 존 포콕의 공화주의 연구의 맥을 이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공화주의를 규정함으로써 오늘날의 공화주의 연구와 담론의 출발점이 되고 있다. 포콕과 마찬가지로 페팃은 서양 정치 사상사에 19세기 이래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는 자유주의와는 구별되는, 더 나가 민주주의의 구현에 자유주의보다 더 공헌할 수 있는, 공화주의라는 이념이 존재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 계보를 고대 그
리스 로마의 고전적 지식인들에서부터 시작해 르네상스 시기의 마키아벨리를 거쳐 17세기 영국 혁명기의 밀턴, 해링턴, 시드니와 같은 의회파 지식인들과 뒤를 이은 18세기 영국의 재야 반정부 지식인들과 미국 독립 혁명기의 제퍼슨과 같은 혁명가들에게 이어지는 것으로 설정한다.
이러한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포콕이 공화주의의 핵심을 정치적 참여를 통한 인간의 자아실현이라고 규정한 것과는 달리, 페팃은 그것을 자의적 지배와 간섭으로부터 벗어나는 자유의 구현이라고 단언한다. 포콕이 그 원형을 아리스텔레스의 “정치적 동물”(zoon politikon)로서의 인간에 대한 논의에서 찾는다면, 페팃은 로마의 정치사상과 역사 서술 그리고 법에서 나
타나는 자유인 대 노예의 구분에서 찾는다. 굳이 명칭을 붙인다면 포콕의 공화주의를 아테네적 공화주의라고 한다면, 페팃의 그것은 로마적 공화주의라고 할 수 있다.
페팃은 공화주의자들의 화두는 포콕이 말하는 덕이 아니라 자유의 본질은 무엇이며 그것은 어떻게 유지될 수 있을까하는 자유론의 문제였다고 주장한다. 그는 공화주의자들이 자유를 단순히 간섭의 부재가 아니라 자의적 권력 혹은 자의적 지배와 그 가능성의 부재로 규정하면서 그러한 자유는 오직 공동의 동의를 얻어 제정된 법에 의해 지배되는 자유 국가 안에
서만 가능하다고 단언했다고 주장한다. 페팃은 이러한 공화주의적 자유를 ‘지배의 부재’ (non-domination)라고 규정하여 그것을 ‘간섭의 부재’ (non-interference)로서 자유주의적 자유와 극명하게 대립시킴으로써 학계의 논의를 주도하고 있다.17)
또한 그는 공화주의적 자유가 일찍이 벌린이 규정했듯이 자아실현이라는 의미의 적극적 자유가 아니라고 강조하면서 그것을 적극적 자유라고 생각하는 포콕과는 분명한 선을 그었다.18)
덕을 강조하는 포콕의 공화주의에 대한 비판은 일찍부터 있어 왔다. 참여라는 정치적 행위를 통해서만 인간은 자기를 실현할 수 있다는 생각, 개인적 선을 초월해 공동선이 존재한다는 믿음과 같은 공화주의의 핵심적 요소들은 오늘날 현대 사회와는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늘날 누가 우리 모두가 공통적으로 추구해야 하는 공동선이 존재하며 정치적 참여를 통해서만 인간이 인간다워진다고 생각하느냐는 것이다. 만일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것은 환상이거나 전제적 발상일 뿐이라는 것이다.19)
이러한 주장의 연장선 위에서 페팃도 포콕의 생각과는 달리 공화주의자들이 자유를 논할 때 그것을 곧 정치적 참여를 통한 자아실현과 동일시하지 않았다고 단언한다. 공화주의자들은 정치적 참여는 단지 자유를 누리기 위한 수단일 뿐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페팃의 공화주의론은 공화주의를 현대의 다원주의적 민주주의의 요구에 적용될 수 있도록 한 것이다.20)
즉 그것은 아리스토텔레스적인 목적론적 공화주의에서 도구론적 공화주의로 공화주의의 성격을 바꾸는 것이다.21)
페팃은 또한 자신과 같이 공화주의의 본질이 덕이 아니라 자유에 대한 논의였다고 주장하는 스키너와도 일정한 선을 긋는다.22)
스키너는 자유를 지배의 부재와 함께 간섭의 부재도 포함하는 것이라고 보지만, 자신은 단지 지배의 부재로만 볼 뿐이라는 것이다. 즉 스키너는
간섭의 부재가 자유의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라고 보는 반면, 페팃은 그것이 필요조건도 충분조건도 모두 아니라고 단정한다. 그는 공화주의 자유론의 핵심은 간섭의 부재 여부가 아니라 오로지 지배의 부재 여부일 뿐이라고 단언한다. 이는 간섭받는다고 해서 언제나 자유가 침해당한다고 보아서도 안 되고, 또한 오직 간섭만이 자유를 침해한다고 보아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민주주의적 원칙에 의해 정당하게 제정된 법에 의해 간섭받는 것이 자유를 침해하는 것도 아니고,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자의적으로 간섭할 수 있는 역량을 지니고 있는 지배자 혹은 지배 집단이 피지배자들에게 온정과 자비를 베풀어 간섭하거나 강압적으로 대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들이 자유로운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23)
그는 공화주의자들이 역사의 무대에서 주장하고 실현하려고 했던 자유는 바로 이러한 지배의 부재로서 자유였다고 주장한다. 이 때 지배는 자의적 간섭을 할 수 있는 역량을 지니고 있는 것을 말한다. 그는 다시 한 번 공화주의적 자유가 벌린이 말하는 적극적 자유가 아니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공화주의자들은 자유롭기 위해서는 자신이 자신의 지배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남이 내 지배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남이 내 지배자가 되지 못하도록 어떤 체제와 제도를 갖추는 데 참여하는 것 그 자체가 자유라고 보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수단일 뿐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그는 그러한 체제와 제도를 수립하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자신이 그 입법 과정에 참여한 공동체의 법에 의해서만 지배받을 때 그리하여 스스로가 자신의 주인이 될 때 인간은 비로소 자유롭다는 루소 식의 자유론을 배격한다. 페팃은 그러한 성격의 자유론을 공화주의 자유론이 아니라 공동체주의 자유론이라고 구별한다. 그는 이러한 공동체주의가 공화주의가 아니라고 강변하면서 공동체주의 철학자인 알라스데어 맥킨타이어와 마이
클 샌들의 예를 들어 그들의 주장은 도덕의 과잉을 초래할 뿐이라고 비판한다. 즉 덕과 자유를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24)
그는 오히려 소위 공동체주의자들이 자유주의 사상가로 분류하는 로크의 자유에 대한 규정을 공화주의적 자유론의 대표적인 예라고 제시한다. 로크는 ‘자유는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변덕스럽고, 불분명하고, 알 수 없는 자의적 의지에 예속되지 않는 것’이라고 규정했다는 것이다. 그는 로크가 비록 공화주의와는 거리를 두고 있었지만 자유에 대한 생각에서 만큼은 그 전통에 충실했다고 평가한다.25)
이러한 그의 언급은 벌린과 하이예크와 같은 자유주의자들이 공화주의를 20세기의 전체주의와 연결시키려는 의심을 불식시키기 위한 작업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러한 페팃의 태도가 공화주의와 자유주의의 차이점을 불분명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26)

이에 대해 그는 자신의 공화주의 자유론은 사회 민주적 기획의 일환이라고 맞선다. 즉 자신은 자유를 간섭의 부재가 아니라 지배의 부재로 규정함으로써, 국가와 사회의 정당한 민주적 입법을 통한 간섭마저도 자유의 이름으로 배격하려는 자유주의자들의 헤게모니에 도전했다는 것이다. 그는 자유주의자들은 간섭만이 그리고 간섭은 언제나 자유를 침해한다는 부을 공화주의자들이 어떻게 배격하고 자유주의자들은 어떻게 옹호했는지를 역사적으로 추
적한다. 17세기 공화주의자인 해링턴은 인민의 의지에 일치하는 것이고 지을 타인의 자의적 지배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면 그 어떤 간섭도 자유를 침해하지는 않는다고 부함으로써 잉글랜드 혁명을 정당화하였다. 18세기 공화주의자인 프라이스는 간섭만이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 아니라 종속적 지위에 처해 있으면 간섭을 받지 않아도 자유롭지 못 하다고 부하면서 아메리카 식민지인들의 영국에 대한 저항을 옹호하였다. 노예는 아무리 인자한 주
인을 만나도 자유를 누릴 수 없다는 것이다. 18세기 공화주의 법학자인 블랙스톤은 로크가 이미 언급했듯이 이렇게 제정된 법은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견고하게 하고 확장하는 것이라고 못 박았다.
이러한 주장은 자의적 지배를 행사하거나 행사할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하는 나라에서는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명제로 귀결된다. 즉 자유 국가에서만 인간은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이다. 잉글랜드 혁명과 아메리카 혁명은 단지 간섭에서 벗어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유 국가를 만들어 그 안에서 자유롭기 위해 인민들이 일으킨 것이다. 그러나 자유주의의 원조 격에 해당하는 홉스, 벤담, 린드, 펠리와 같은 사상가, 법학자들은 잉글랜드 혁명과 아메리카 혁명의 이와 같은 대의를 부정하면서 자유란 간섭의 부재일뿐이요 법도 그 어떤 행위들을 못 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을 자유롭게 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인간은 소위 민주 국가, 자유 국가에서 살던 전제 정부 하에서 살던 법이 금지하지 않는 것만큼만 자유롭다는 데서 매한가지라고 주장한다. 페팃에 의하면, ‘자유주의는 타인들을 지배할 수 있는 권력을 지니고 있는 인간들이 그 권력을 행사하지 않는 한 그리고 그렇게 할성향을 지니고 있지 않는 한 그러한 권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 자체가 억압적인 것이 아니라고 가정한다.’ ‘권력에 대한 이러한 상대적 무관심’으로 인해 자유주의자들은 지배에 근거한 ‘관계에 관대하다.’27)
또한 자유주의자들은 빈곤을 해소하는 일, 안전을 제공하는 일에 대한 관심은 자유에 대한 관심과는 특별히 관계가 없다고 본다. 그것은 ‘평등, 혹은 복지, 혹은 공리성’과 같은 가치와 관련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지배의 부재로서 자유’는 여러 가치들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다른 가치들이 거기서부터 나오는 ‘최고의 정치적 가치’라고 페팃은 주장한다.28)
이러한 논의를 통해 페팃은 왜 지배의 부재로서 공화주의 자유론이 오늘날 더 중요한 것인지 역설한다. 그는 노동자와 여성과 같은 사회적 약자들을 예로 들면서 설명한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간섭의 부재가 아니라 지배의 부재라는 것이다. 고용주나 남성 배우자들의 자비에 의해 그들은 간섭받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렇게 얻어진 벌린 식의 소극적 자유는 언제라도 회수당할 수 있는 것에 불과하다. 그들의 자유는 그들이 자유인의 지위를 구가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 이를 위해서는 국가와 사회는 정당한 입법 행위 등을 통해서 제도를 만듦으로써 자의적 지배 행위에 간섭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는 자유주의가 간섭의 부재만을 자유로 규정하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사회적 약자들의 도전을 피해 가기 위한 것이었다고 폭로한다. 그리고 자본주의의 발달로 이러한 자유주의 자유론이 헤게모니를 장악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 자유주의 사회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간섭의 부재를 자유의 충분조건은 물론 필요조건으로도 간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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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Michael Walzer, Spheres of Justice: A Defence of Pluralism and Equality (New York: Basic Books, 1983), 21-22.
17) 이하 페팃의 주장은 다음을 보라. Philip Pettit, Republicanism: A Theory of Freedom and Government
(Oxford: Oxford Univer읳하 페팃Pres Pett97, Rvi-50.
18) Isaiah Berlin, “Two Concepts of Liberty” in Four Essays on Liberty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1969), 118-172; J,G.A. Pocock, 같은 책 1993년 판, 553-583.
19) Richard H. Fallon, Jr., “What is Republicanism and is it Worth Reviving?” Harvard Law Review, 52 (1989), 1698-1699.
20) Melvin L. Rogers, “Republican Confusion and Liberal Clarification”, Philosophy and Social Criticism, v.34 n.7 (2008), p.800.
21) Shelly Burtt, “The Politics of Virtue Today: A Critique and a Proposal”, American Political Science
Review 87 (1993), p.360.
22) 스키너의 자유론에 대해서는 Quentine Skinner, Liberty before Liberalism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8), 졸역, 『퀜틴 스키너의 자유주의 이전의 자유』(푸른역사, 2007) 참조.
23) Philip Pettit, “Keeping Republican Freedom Simple, On a Difference with Quentin Skinner”, Political Theory, 30, 3 (2002), 339-356.
24) Philip Pettit, “Liberal/Communitarian : MacIntyre’s Mesmeric Dichotomy”, in John Horton and Susan
Mendus, ed. After MacIntyre, Critical Perspectives on the Work of Alasdair MacIntre (Cambridge:
Polity, 1994),176-204; “Reworking Sandel’s Republicanism”, Journal of Philosophy, 95, 2 (1998),
73-96.
25) Philip Pettit and Frank Lovett, “Neorepublicanism: A Normative and Institutional Research Program”,
Annual Review of Political Science, 12 (2009), 15.
26) 대표적으로 마이클 샌들은 페팃의 공화주의를 ‘길들여진’(tame) 공화주의라고 비꼬면서 그것으로는 자유주의사회의 모순을 극복할 수 없다고 비판한다. Michael Sandel, “Reply to Critics” in Anita L. Allen and
Milton C. Regan, Jr., ed. Debating Democracy’s Discontent, Essays on American Politics, Law, and Public Philosophy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1998), 325-327.
27) Philip Pettit, Republicanism: A Theory of Freedom and Government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1997), p.9.
28) Ibid., pp.80-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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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자유주의를 두려워하랴?  [PDF]

역사와 담론 第54輯, 273~298쪽(총26쪽)
영문제목: Who’s Afraid of Liberalism?
저자: 조승래(Cho Seung-Rae)

목차

1. 포콕의 공화주의: 덕과 재산 균등의 공화국
2. 자유주의: 개인적 권리와 간섭의 부재로서 자유
3. 공동체주의: 덕과 공동선
4. 페팃의 공화주의: ‘지배의 부재’로서 자유
5. 스키너의 공화주의: 자의적 권력의 부재와 자기소유권으로서 자유
6. 어떤 공화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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