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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냉전’ 영국 케임브리지대 권헌익 석좌교수

 

ㆍ여전한 내전과 정치폭력…냉전은 과연 종식된 걸까

권헌익 영국 케임브리지대 트리니티칼리지 석좌교수는 이 대학에서 인류학 박사 과정을 밟을 때 시베리아로 현장 연구를 나갔다. 순록을 치는 퉁구스족을 관찰하기 위해서였다. 1980년대 초반 학생운동에 참여했던 그는 소련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보며 사회주의를 실증적으로 이해하고 싶었다. 하지만 부족사회 같은 주제가 아니면 연구 지원을 안하던 인류학계의 관행 때문에 퉁구스 사회로 주제를 바꿨다. 그는 시베리아에서 1년6개월가량 살며 퉁구스 사회를 연구했다. 이곳에서 제도 공산주의가 원시 공산주의를 포용하지 못하는 아이러니 문제도 분석했다. 현장 연구를 끝낸 1991년 소련 체제가 와해됐다. 1993년 맨체스터 대학에 부임했을 때부터 ‘냉전의 종식’ 이야기가 나왔다.

지난 17일 <또 하나의 냉전>을 출판한 서울 신사동 민음사 사무실에서 만난 권 교수는 “그때부터 ‘또 하나의 냉전’을 쓰기 위한 이론적 고민을 했다”고 말했다. “냉전이란 것이 한 시대성, 한 시간성만 갖고 있는 것인가, 왜 한 군데에서 냉전이 끝났는데 글로벌하게 냉전이 종식됐다고 이야기하느냐는 것에서부터 출발한 거죠.” 흔히 냉전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두 강대국인 미·소 간 갈등을 가리키고, 냉전의 종식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1989년 이후’로 여기는 학설과 통념에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권 교수는 서로 전면전 위협으로 평화를 유지하는 냉전의 비유적 표현인 ‘상상의 전쟁’과 강대국 간의 ‘오래된 평화’는 미국과 유럽 중심의 지정학적 시각이자 ‘글로벌한 추상’이라고 말한다.

권 교수는 “냉전이 끝났다고 말할 때 누구의 냉전이며 냉전의 어떤 차원을 말하는지도 봐야 한다”면서 “냉전은 하나의 충돌로 존재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한국만 해도 극히 혼란스럽고 폭력적인 한국전쟁을 겪었다. 동남아시아의 여러 나라, 아프리카의 많은 신생국가와 라틴아메리카 여러 공동체들도 냉전 시기 잔인한 내전과 예외적 형태의 정치 폭력에 시달렸다. 권 교수는 “세계 냉전의 역사를 한반도를 포함한 동아시아의 해방공간에서 많은 공동체들이 겪었던 엄청난 불행을 포함하는 역사로 봐야 한다”면서 “냉전이라는 현혹적인 이름 아래 20세기 후반부에 활개쳤던 국가 폭력의 힘에 스러져 간 삶을 기억하고 애도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인간의 조건’을 강조하고, 가족 간, 공동체 안의 ‘관계’라는 화두를 중시했다. 그는 “양영희 감독이 조총련 가족을 소재로 만든 영화 <가족의 나라>를 봤는데,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뿐만 아니라 국가와 국가의 관계, 국제 정치의 힘이 가족의 관계 안에 들어간 것 같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일본 내 한인 사회에서 친북 그룹의 자녀들은 식민지 때 비롯된 민족 불평등과 탈식민기의 정치적 분열이라는 이중적 고난을 겪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권 교수가 이번 책과 <학살 그 이후>에서 베트남전 때 적군(미군) 편을 들었던 친족의 죽음을 애도하는 문제를 두고 갈등하고 고통을 겪는 베트남 주민의 문제를 다룬 것도 그런 이유다. 책은 이처럼 인류학적 방법론으로 ‘인간’을 드러낸다. “유럽사 같은 경우에도 초기에는 전투원들, 국가 중심으로 담론이 되다가 비전투원, 민간인 중심으로, 즉 ‘아래로부터의 역사’로 전개되는데 이는 유럽의 민주화 과정과 동일합니다. 그런 과정을 수렴해 정리하는 게 중요합니다.”

권 교수는 책의 여러 곳에서 탈식민 비평을 비판한다. “기존 탈식민지 논의는 식민시대에서 양극시대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폭력적으로 전개되는, 우리가 말하는 해방공간의 역사라는 것이 전혀 없어요. 냉전이란 것을 점점 더 유럽사람들처럼 상상의 전쟁이란 패러다임으로, 지정학적인 강대국의 게임으로 이해하지요. 탈식민 세계의 여러 지역에서 벌어진 양극 체제의 충돌, 내전이나 폭력을 주변화합니다. 기존 탈식민 이론은 탈식민지에 사는 사람의 공동체, 친족 문제를 관계로 이해하지 않습니다.”

권 교수는 에드워드 사이드를 두고도 “초기 냉전 형성과 탈식민지 역사가 만나는 부분을 그 토대로 이야기하지 않았다”고 했다. 남아시아의 주된 정치적 긴장을 두고 ‘냉전 정치’가 아니라 식민 치하 경험에서 비롯된 인종적·종교적인 이유로 분석한 P R 쿠마라스와미 같은 학자도 비판했다. “인도와 파키스탄이 안보상의 이유로 각각 소련, 미국과 긴밀하게 유대하며 글로벌 수준의 핵전쟁의 지정학을 모방했는데, 이를 냉전과 별개의 것으로 본다”는 지적이다.

권 교수는 탈식민 이론 비판의 연장선에 인종적 용인과 문화다원주의 문제도 들여다본다. 미국은 문화다원주의를 정치적 통합·변동의 수단으로 내세웠다. 소련도 문화적·언어적 다원성을 배려했다. 하지만 그 다양성은 정치적인 원 안에서만 인정하고, 그 밖의 것은 배제했다. 그는 최근 한국에서도 일상어가 된 다문화라는 말을 두고, “다문화나 다원주의는 문화적 포용과 정치적 배제가 양면인 개념”이라며 “다문화를 하려면 정치적인 배제가 되는 상황을 깨치려는 노력도 함께 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또 하나의 냉전>이 <학살, 그 이후>(2006)와 <베트남전쟁의 영혼>(2008)을 잇는 3부작이라고 했다. 이후 작업이 정병호 한양대 교수와 함께 쓴 <극장국가 북한>(창비)이다. 권 교수는 케임브리지대에서 ‘인간의 조건’의 틀로 조명한 한국전쟁의 의미를 세계사의 영역으로 자리매김하는 취지의 프로젝트를 끝냈다. 결과물은 내년 초 출판될 예정이다.

서울대 ‘글로벌 중견학자 초빙’ 프로그램차 한국에 머물던 권 교수는 지난 19일 영국으로 돌아갔다. 내년 봄에 다시 한국을 찾을 계획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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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주의 관점에서 본 리더십과 권력, 이상화

여성주의 관점에서 본 리더십과 권력                        

 

이상화 (이화여대 철학)

 

 

들어가는 말

 

본 논문은 ‘여성 리더십 개발’이  여성주의 정치학의 가장 중요한 과제인 ‘힘갖추기, 역량강화  세력화(empowerment)’와 ‘네트워킹(networking)’의 가장 효과적이고 영향력 있는 전략으로 자리매김 하기 위해서는 리더십과 권력에 대한 여성주의적 재개념화가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전통적으로 리더십은 ‘지배와 종속 관계를 전제로 하는 위계적 관계 개념’이라는 남성 중심적 권력 관계의 맥락에서 이해된 개념이다. 이러한 리더십 개념이 지배적인 상식이자 통념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상황에서 ‘여성주의적 리더십’이라는 개념은 여러 가지 의혹과 의구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과연 여성주의적 리더십이라는 말이 성립될 수 있는가?”라는 회의적 물음은 리더십에 대한 ‘전통적인 통념’을 긍정적으로 수용하는 사람이나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 모두가 제기할 수 있는 물음이다.

 

어떤 입장에서든 이러한 회의적 물음은, 작은 조직이나 집단으로부터 거대한 사회 전체 구조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차원의 공동체를 지배하는 것은 위계적이며 수직적인 관계라는 사실을 명백하게 반영하고 있다. 권력이 불평등하게 배분되는 위계적인 관계나 조직 안에서 리더가 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권위주의, 엘리트주의, 경쟁 원리라는 기존의 남성적 혹은 남성 지배적 사회 원칙을 수용할 때만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리더십 혹은 리더라는 용어란 ‘남성적’ 혹은 ‘남성 중심적’사고의 산물이며 오직 남성적인 가치일 뿐이므로 ‘여성주의적 리더십’의 정립 가능성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보는 입장이 그 나름의 논거를 획득하게 된다. 더 나아가 일부 여성주의자들은  리더십 자체를 ‘반여성주의적(antifeminist)’인 것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그러나 리더십과 권력의 문제를 여성주의적으로 접근하는 방식은 당면 문제를 여성주의 전체 프로젝트의 복합적인 지형 속에서 맥락화 하는, 보다 다차원적이고 개방적인 방식이어야 할 것이다. 리더십을 지배와 동일시하는 전통적 이해를 그대로 수용하면서 리더십 자체를 여성주의적 의제에서 배제하는 ‘교조주의적 단순화’는 결국 리더십과 권력이 남성들의 전유물이 되어버린 남성지배적 현실과 권력관계를 그대로 방치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권력에 대해 관심을 갖거나 권력을 추구하는 일은 ‘보통 여성’이 아니라 오직 ‘일부 소수 여성들’에게만 아주 예외적으로 해당된다고 보는 사회적 통념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사회적 통념은 안 그래도 수적으로 얼마 되지 않는 소수의 ‘여성 지도자’들마저도‘명예남성’으로 만들어버리는 남성지배 권력의 효과적인 기제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통념은 “권력은 여성의 영역 밖에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여성은 본질적으로 권력에 대한 동기가 약하다. 권력에 대한 관심이 결여된 여성에게 있어 권력 추구의 노력은 남성에 비해 미비하고, 권력 획득 전략은 열등하며, 권력 행사 기술은 미숙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사회 분위기를 형성한다. 더욱이 그러한 분위기를 기반으로 사회적 권력이 분배되고 조직되는 악순환이 계속 반복되는 것이다.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이러한 주장은, 권력 추구에 대한 여성들의 동기화가 미약하게끔 조작해온 실질적이며 사회적인 각종 원인을 검토하지 않은 채 여성들의 삶과 활동을 이른바 사적 영역에 한정시키는 ‘성별 분업의 이데올로기’를 정당화하기 위한 논거가 되어 왔다.

 

그렇지만 권력은 여성과 여성주의에 있어 매우 중요한 주제이다. 더 나아가 여성주의 자체가 ‘변화시키는 권력’인 것이다. 여성주의의 역사는 평등권을 위한 투쟁, 주류화와 세력화, 저항문화 형성, 담론의 정치학, 네트워킹 등과 같은 다양한 여성주의 정치학의 전략과 방법을 통해 남성들이 부당하게 독점적으로 전유해온 권력(들)에 저항해온 여성들의 도전과 극복의 역사이다. 그러므로 보다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기존의 남성 중심적 권력관계에 개입하여 여성의 권력, 즉 여성주의의 권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그 기회와 조건들을 증대시키는 것 역시 여성주의의 실천과 이론의 과제이다. 결국 여성주의에서의 정치학은 단지 도덕적인 호소에만 의존할 수 없으며, ‘권력과 도덕(정의)’이 만나는 지점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여성주의적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권력 기반을 마련해야 하며, 연대와 연합 그리고 네트워킹을 통해 현실적 사회변화를 추동케 하는 세력화를 이루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연 여성주의적 리더십이 가능한가?”라는 물음에 대한 긍정적인 답변은 여성의 리더십 개발의 필요성과 정당성에 대한 이론적 근거가 무엇이며, 여성 리더십이 여성주의 정치학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는지를 명료히 할 때에 비로소 가능할 것이다.

 

그런 만큼 본 논문에서는 ‘여성주의적 리더십’에 대한 거부감과 회의가 기존의 권력 개념에 대한 부정적 관념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점에 집중하면서, 리더십과 여성주의와의 관계를 권력이라는 주제를 축으로 논의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우선 권력에 대해 여성주의적으로 다시금 개념화하는 작업을 시도할 것이고, 이를 기반으로 여성주의적 리더십의 가능성에 대해 논의할 것이다. 결국 권력 개념에 대한 기존의 통념이 여성주의적으로 전복됨으로써 리더십이 새로운 여성주의적 권력 개념에 기반하여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여성 리더십의 개발과 확장이 여성주의 정치학의 실천에 있어 주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는 점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I. 여성주의와 권력

1. 여성주의(feminisms)

여성주의는 단일한 개념틀이나 분석틀을 가진 이론체계가 아니다. 또한 여성주의는 여성들이 동일한 문제를 겪고 있다고 전제한 후 그 문제를 동일한 전략과 행동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단일한 실천의 체계도 아니다. 여성주의는 여성운동의 실천의 역사에서부터 자라 나왔으며, 발전 변화해 왔다. 여성주의는 여성운동의 역사 속에서 등장한 다수의 이론과 다양한 재개념화의 시도들을 포괄하는 개념으로서 실제로 수다한 여성주의들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주의들’은 여성주의라는 상위개념 아래로 범주화되며, 그 입장과 맥락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소정의 전제를 함께 공유한다고 볼 수 있다. 본 논문에서는 그러한 전제에 따라 여성주의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자 한다.

 

첫째, 여성주의의 다양성과 다수성에도 불구하고 여성주의라고 명명되는 모든 이론과 실천은 ‘여성의 개인적인 삶이나 사회적인 삶에 작동하는 모든 종류의 성차별적 억압으로부터 여성이 해방되어야 함’을 지향한다.1) 둘째, 여성주의는 사회 비판적 이론이며 실천이다.2) 사회 비판이론은 단순히 기존 질서에 대해 분석하고 진단하는 비판만 하지 않는다. 사회 비판이론은 비판뿐만 아니라, 새로운 질서에 대한 비전과 실현의 방안을 제시한다. 사회비판으로서의 여성주의는 당연히 비판의 규범적인 기준을 가지고 있으며 실천적 차원에서 새로운 질서에 대한 비전을 실현하고자 하는 다수의 노력과 투쟁을 포괄한다.

 

이러한 여성주의에 대한 정의는, 여성이 체험하는 억압은 그 맥락과 상황에 따라 매우 상이하고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는 사실, 즉 각각의 여성들간의 차이와 그 입장들의 차이에 따라 여성주의들이 다양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고려한 최소한의 정의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최소한의 정의에서도 사회비판으로서의 여성주의의 목표 – “여성은 모든 성차별적 억압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 에는 “억압은 존재하며, 억압을 당하는 주체는 여성이고,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은 가능하다.”라는 전제가 함의되어 있다. 동시에 “억압은 도덕적으로 옳지 않으며, 사회적으로 정의롭지 않다.”라는 규범적 명제도 포함되어 있음은 물론이다.

 

2. 여성주의적 관점과 권력

 

여성주의의 목표는 여성에게 강제되는 모든 종류의 억압을 극복하는 것이며, 그 억압의 모든 원인을 제거하는 일이다. 앞서 지적했듯이, 억압이라는 개념에는 윤리적인 차원이 함축되어 있다. 즉 “억압은 도덕적으로 옳지 않다.”는 명제는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이라면 누구든지 긍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을 억압이라고 할 것인가의 문제에 있어서는 전혀 다른 입장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또한 특정한 상황에 대해 그것이 억압이라고 만장일치의 동의를 이끌어내는 것 역시 쉬운 일은 아니다. 억압의 주체는 그것이 억압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각종 허위적 이데올로기를 내세우며 도덕적으로 억압을 정당화할 수도 있고, 억압받는 이들에게 그것이 억압이 아니라고 믿게 만들 수도 있다. 또 어떤 것이 억압임을 확실히 인지한 후 억압받는 상황과 조건으로부터 해방되려는 개인이나 집단이 도덕적인 호소를 한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억압의 주체가 태도를 바꾼다거나 사회에 긍정적인 변화가 오는 것도 아니다. 이 지점에서 억압의 문제는 윤리적 차원에서 정치학의 차원으로 진입하게 된다. 모든 종류의 억압은 도덕의 문제일 뿐 아니라 권력의 문제이기도 하다. 따라서 여성주의의 이론과 실천은‘여성주의 정치학’의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억압과 지배의 원인을 분석하고 도덕적인 문제를 제기하는 것만으로는 여성주의적 기획의 관심사와 목적을 충족시킬 수 없다. 이론적인 연구와 비판, 도덕적인 문제 제기와 함께 그것을 실제 사회에서 현실화시킬 수 있는 ‘권력’을 획득하고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여성이 기존의 여성 억압적인 사회에 도전하고 저항하면서 실질적인 사회 변화를 이끌어내려면 그것을 가능하게 해줄 ‘권력’을 획득해야 하고, 동원해야 하고, 결집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존재론적 본질주의나 보편주의가 안고 있는 위험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여전히 여성이라는 보편 주체를 상정하면서 여성주의에 기반한 인식론적이고 윤리적인 기준으로 ‘여성주의적 관점’이라는 개념을 사용하는 이유이다. 여성주의 정치학은 여성들 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전략적 정체성’으로서 ‘여성’이라는 집단적 주체를 상정한다. 즉 여성주의 정치학에서 ‘여성’이라는 범주는 더 이상 존재론적인 범주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여성주의 정치학이 다양하고 이질적인 여성들 간에 연대성과 연합을 구축할 수 있는 집단적 권력 형성을 위해 전략적으로 상정한 ‘전략적 범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3. 여성주의 정치학과 권력 개념의 확장

 

권력 개념도 역시 다른 개념들과 마찬가지로 그 개념이 사용되는 시대와 사회 질서의 맥락 속에서 이해되고 정의된다. 즉 권력에 대한 개념 정의와 일반적 이해는 그 시대와 사회의 지배적인 패러다임이 무엇인가에 따라 변화해 왔으며, 동시에 그 시대와 사회의 현실을 반영한다. 또 한 사회의 권력에 대한 일반적인 관념이 어떠하든 그러한 권력을 대하는 태도와 가치 매김은 개인과 집단의 가치관과 입장에 따라 차이가 나게 된다. 그런데 우리는 대체로 권력을 ‘지배권’혹은‘통제권’과 동의어로 이해해왔다. 그러한 권력 개념은 위계적인 질서를 강조하는 개념으로서 특히 남성 지배적인 가부장적 사회의 주된 특징을 드러내는 전형이라 할 수 있겠다. 여성주의자들은 바로 이러한 남성 중심적인 권력 개념을 여성주의적 가치관과 상반되는 부정적이고 부도덕한 개념으로 치부하고 거부하는 것이다.

 

여성주의자들에 따르면, 다른 사람을 지배하고 통제하는 능력으로 정의 내려진 권력개념은 전형적으로 남성적인 것이라 한다. 여성주의자들은 이와 같이 다른 사람을 지배하고, 경쟁과 갈등에서 승리하고,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하며 행사하는 권력을 비판하고 거부한다. 이러한 남성적 권력은 거의 예외 없이 구조적이고, 위계적이고, 인간의 상호관계적 측면에서 규정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와 같은 권력을 논의하는 데에는 갈등, 저항, 강제, 지배, 통제와 같은 주제들이 되풀이하여 등장하게 된다.

 

그렇지만 여성이 자신에게 폭압적으로 행사되는 억압과 주변성에 저항함으로써 근본적인 변화를 추동하기 위해서는 그저 권력을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거부하기만 해서는 안 된다. 여성주의가 현실적인 힘을 갖추어서 실제적인 변혁을 이루려면 여성주의적 권력 개념을 새롭게 다시 정초시켜야만 하는 것이다. 이때 여성주의 학자들의 재개념화 작업에서 권력은 남성적 권력 개념과는 달리 매우 다양한 형태와 내용으로 맥락화된다. 여성주의적 권력 개념에서 권력은 공유하고 나누는 그 무엇으로 정의되거나 다른 사람의 힘을 고양시키는 어떤 것으로 이해된다는 면에서 남성적인 권력 개념과는 확연히 구별된다.3)

 

전통적인 남성적 권력 개념과의 구별을 분명히 하기 위해 여성주의적 재개념화 작업에서는 권력의 형태를 보다 세분화하고 있다. 여성의 힘갖추기(empowerment), 저항, 여성들의 연대성과 연대구축에 필요한 모든 종류의 힘과 능력들을 포괄할 수 있는 권력개념을 위해 권력의 형태를 다음과 같이 범주화하고 맥락화한다.

 

1) 지배하는 권력, 통제하는 권력(power over) : power over는 어떤 사람이나 자원을 통제할 수 있는 권력이다. 일반적으로 조직의 역학관계 속에서 권력은 ‘power over’로 이해되었다. power over는 중앙 집권적, 권위주의적, 수직적 위계의 권력 구조에서 ‘지배’와 ‘종속’의 인간관계를 만들어내는 권력을 의미한다. power over는 일반적으로 남성적 권력행사의 전형적인 형태로 간주된다. 권력을 power over에 국한하여 그 의미를 규정하는 방식은 남성적 정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여성이 여성에게 행사하는 권력도 때로는 power over일 수 있기 때문에, power over를 행사하는 행위자가 반드시 남성만은 아니라는 점을 주지해야 한다.

 

2) 능력으로서의 권력(power to) : power over와 달리 power to는 지배가 없는 행동이나 새로운 가능성을 창출하는 생산적 권력이라고 정의된다. 많은 여성주의자들은 지배하고 군림하는 power over 대신에, 어떠한 목적이나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 갖추어야 하는 힘과 능력으로서의 권력(power to)을 이해할 것을 제안한다.

 

3) 더불어 행사하는 권력(power with) : 공동의 목적과 관심을 가지고 조직된 사람들에게 수반되는 집단적인 권력을 의미한다. 이러한 권력은 전체가 개인의 총합보다 더 중요하며, 집단적인 행동이 개인의 행동보다 더 효과적이라는 인식과 느낌을 산출해낸다. 개인과 개인의 재능, 개인의 의식과 인식의 변화만으로는 자신의 삶을 규정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회적 조건을 변화시킬 수 없게 되는 그 지점에서 개인은 개인으로 머물기를 그치고 집단적인 권력을 추구하게 된다.

 

4) 내적인 힘으로서의 권력(power from  within) : 아이리스 영은 억압의 모습 중 하나로서 ‘무력함’을 말한다. 무력함은 ‘권력이 없다’는 객관적인 사실이기 보다는 자신의 ‘가치 없음’, ‘자신감 없음’과 같이 심리적인 것이다. 이러한 무력감이나 무력함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자신의 힘과 능력을 승인하고 긍정하며 인정하는 힘이  power from within이다.

 

이상과 같이 분류된 권력 개념을 여성주의 이론과 실천에 원용한다면 권력은 맥락에 따라 다음과 같이 다양한 의미를 갖게 된다. 첫째, 성차별적 제도와 관념을 기반으로 하는 남성 지배와 여성 종속의 관계에 작동하는 권력. (남성이 여성에게 행사하는 power over) 둘째, 특권적 여성 집단이나 개인이 다른 여성들에게 행사하는 권력. (power over) 셋째, 여성들의 개인적 역량강화, 집단적 힘 갖추기와 세력화를 위한 권력. (power over4), power to, power with , power from within) 넷째, 여성들 간의 연대강화와 네트워크 형성, 연합 구축을 위한 권력. (power with, power to) 다섯째, 새로운 문화와 사회적 질서, 패러다임 창출을 위한 권력. (power to)

 

이는 권력을 지배와 동일시하는 한계를 벗어나게 하고, 권력의 다양한 형태를 포착하게 해주는 유용한 범주화이다. 그러나 이러한 범주화가 경직되면 또다시 권력 개념이 축소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런 문제는 예컨대 일반적으로 남성적인 권력 개념으로 간주되어온 power over, 즉 지배 권력에서 볼 수 있다. 어떤 여성주의 학자들은 여성주의 정치학에서는 지배 권력(power over)이 반드시 억압적 지배와 같은 것일 필요는 없다고 주장한다. 즉 지배 권력(power over)을 보다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의미까지 포함하는 광범위한 개념으로 다시 새롭게 개념화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왜냐하면 지배 권력(power over)에 대한 기존의 부정적인 정의는 인간관계에만 국한하여 내려진 것이기 때문이다.

 

보다 포괄적인 의미에서의 지배 권력(power over)은 억압적이고 강제적인 지배의 의미를 넘어, 맥락에 따라서는 자원이나 의사결정권 혹은 특정한 사태 등을 통제할 수 있는 권력을 의미하기도 한다. 즉 여성주의 그 자체가 사회변화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갖는 권력인 것이다. 왜냐하면 여성주의는 성차별적 관행과 기제에 제동을 걸고 통제하는 권력으로 작동해왔으며, 그러한 권력을 통해 많은 것을 쟁취해왔기 때문이다. 여성들은 인적 자원과 물적 자원, 정당화된 권력으로서의 도덕적 권위, 결정 권한에 대한 통제권과 지배권 등을 쟁취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여성 억압과 차별에 도전하고 저항하는 과정 속에서 여성주의는 종종 남성 중심 사회에 제한을 가하고 통제할 수 있는 권력을 장악해야 하는 상황에 부딪히게 된다. 여성주의적 목적을 관철하기 위해서는 때로 지배 권력(power over)이 불가피하게 요구된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는 것이다.

권력은 그것이 어떠한 형태를 가지든 간에 그 권력이 사용되는 맥락에 따라 부정적이면서도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 올 수도 있고, 긍정적이고 생산적인 효과를 가져 올 수도 있다. 따라서 권력의 형태나 권력 자체가 도덕적이거나 비도덕적일 수는 없는 것이다. 권력의 도덕적 차원은 누가, 무엇을 위해, 어떠한 방식으로 권력을 행사하는가가 중요한 문제가 되는 지점에서 고려되어야만 한다.

 

 

II. 여성주의와 리더십

 

1. 리더십에 대한 논의

리더십에 관한 논의는 대부분 리더의 자질과 능력 혹은 특성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카리스마, 비전, 능력, 영향력, 재능, 자기인식)나 상황에 적절한 효과적인 리더십 스타일이 무엇인가를 밝히는 연구에 중점을 두고 있다. 물론 리더십 연구도 역시 시대적인 요구에 따라 변화해왔다. 리더십 연구의 초기 단계에서는 주로 리더의 개인적 성향과 능력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그러나 개인적인 성향과 능력이 뛰어난 리더를 결정하는 유일한 기준이 될 수 없다는 비판과 더불어 리더십 연구의 강조점은 리더의 스타일이나 행동 방식으로 옮겨간다. 이러한 접근방법은 가장 효율적인 리더이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에 초점을 둔다. 리더십 연구가 더욱 진전됨에 따라, 리더십의 효율성을 결정하는 데에 스타일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 고려되면서, 리더의 과제 중심적 역할과 상호 인격적 역할 행동이 어떠한 조건 아래서 가장 효율적이 되는가를 밝혀내는 데에 주안점이 옮겨진다. 이에 따라 리더가 의사결정의 역할을 수행하는 행동양식을 중심으로 리더십 이론이 개발되었다. 그러나 현재 이러한 관점은 더 이상 큰 호응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와 같은 접근방법은 작은 집단이나 조직에서의 리더십에만 적용될 수 있을 뿐, 전체 조직의 리더십으로서 그 미래를 이끌어 갈 수는 없다는 한계 때문이다.5)

 

리더십 연구의 발전과 함께 리더십 연구에 성별 관점이나 여성주의적 관점을 도입하려는 시도 또한 있었다. 지금까지 리더십 연구에 여성주의적 관점을 도입하려 시도해온 연구들은 주로 리더십의 형태, 스타일, 행동 양식에 있어 성별 차이가 있는가에 주안점을 두고, 여성과 남성의 특징을 비교하는 방식으로 이론을 전개한다. 이러한 연구에 따르면, 남성적 리더십은 도구적이고 능력위주이며 합리적이고 자기 중심적인데 반해, 여성적 리더십은 감수성이 강하고 관계 중심적이며 표현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남성 중심적 사회의 권력구조 속에서 여성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다시 말해 여성성이 비하되고 여성이 남성처럼 혹은 남성보다 더욱 냉정하고 강인한 존재가 되기를 강요받는 상황에서 이와 같은 여성적 리더십의 특성은 바람직하지도 않을 뿐더러 그것을 관철시키는 것 또한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2. 리더십에 대한 여성주의적 재개념화

 

리더십에 대한 연구는 대부분 리더십 스타일, 훌륭한 리더의 자질과 기술에 대한 논의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리더십에 대한 여성주의적 관점은 권력과 권력의 분배, 권력 행사의 방식에 주목한다. 왜냐하면 권력의 정의로운 분배와 평등한 권력관계는 여성주의의 중요한 목표 중에 하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성주의는 젠더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체계적인 억압에도 관심을 둔다.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리더십을 재개념화한다는 것은 바로 여성주의의 이론과 실천의 구성물로서 리더십을 정의하는 것이다.

 

여성주의 학자들은 현재까지의 리더십 연구의 성과를 일부 수용하고 발전시켜 여성주의 관점에서 리더십을 다시금 새로이 정의하고자 한다. 이에 따르면, 리더십이란 ‘어떠한 조직이나 사회 체제 안에서 사람들의 삶을 개선시키는 변화를 가지고 오는 것을 목표로 하는 활동’이다. 본 논문에서는 이러한  리더십의 개념에 상응하여, ‘힘을 주고 힘을 나누는 리더십(empowering and shared leadership)’과 ‘변혁적 리더십(transformational leadership)’이라는 두 가지 모델을 리더십의 여성주의적 재개념화를 위한 개념틀로 검토해보고자 한다.

 

1) 힘을 주고 힘을 나누는 리더십(empowering and shared leadership)

 

리더십에 대한 수많은 정의에 공통되는 점은, ‘비전의 명확성’과 ‘힘갖추기(empowerment)’가  리더십의 중요한 구성요소라는 것이다. 물론 ‘힘을 주고 힘을 나누는  리더십’은 반드시 여성주의적 리더십에만 적용되는 특징은 아니다. 힘갖추기(empowerment) 6)는 여성주의와는 무관하게 새로운 형태의 리더십을 정의하고자 시도할 때 반드시 포함되어야 할 중요한 구성 요소로서 간주된다.

 

힘갖추기(empowerment)는 우선 개인적 차원에서 자기결정을 증진시키는 과정으로 이해된다. 힘갖추기(empowerment)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의 욕구에 부응하고, 자기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고, 자기 자신의 삶에 대한 통제권을 가지고 있다고 믿기 위해 필요한 자원을 동원하고 인정하며 증진시키고 고양시키는 과정으로 정의될 수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이 개인적 차원의 힘갖추기(empowerment)는 한계를 갖는다. 왜냐하면 이때의 힘갖추기(empowerment)는 한 개인의 인식적 변화나 행동의 변화로 체험될 수는 있지만, 이러한 개인적 변화가 개인의 삶을 규정하고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조건들의 변화에 아무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는 경우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이해되는 힘갖추기(empowerment)는 개인적 차원과 더불어 사회적 변화를 지향하는 집단적인 차원의 힘갖추기(empowerment)까지도 포함하는 개념이 되어야 한다. 여성들간의 연대성과 공동 행동을 위해 집단적인 권력을 결속시키는 일은 여성주의 정치학에서 가장 주요한 의제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7)

 

힘갖추기(empowerment)라는 개념은 원래 ‘해방적인 개념’이었다. 이 개념은 ‘정의롭지 못한(부당한)’ 사회적 대우를 받고 있는 주변화된 집단에게 그들의 상황을 개선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의식화시키기 위한 전략적인 도구로서 출발하였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힘갖추기(empowerment)는 ‘불이익을 당하는 개인이나 집단이 자신들을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으로 종속시키는 기존의 권력 관계에 도전하여 그 권력 관계를 (자신들에게 이익이 되도록) 변화시키게끔 저항할 수 있는 힘을 주는 과정’8)이라고 정의된다.

여성주의 정치학의 관점에서 ‘힘을 주고 힘을 나누는 리더십’을 다시 새롭게 정의한다면 다음과 같다. 즉 리더십이란 ‘남성 지배(power over)와 이를 정당화하고 영속화시키는 제도 및 이데올로기의 종식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조직된 힘(power with), 여성 의사 결정의 권위와 권력을 가질 수 있는 능력(power to), 자신에 대한 믿음과 자기긍정, 자기주장을 할 수 있는 내적인 힘(power from within)’을 갖추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정의된 리더십에서 힘갖추기(empowerment)는 리더가 구성원들에게 일방적으로 부여하고 구성원들이 수동적으로 받는 방식으로 행사되지 않는다. 여성주의적 힘갖추기(empowerment)는 권력을 공유하고 나누며, 공조와 협력을 통해 주고 받는 상호적 방식으로 실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힘갖추기(empowerment)의 권력 개념은 전통적으로 인식되는 지배와 통제로서의 권력이 아니라, ‘리더와 따르는 사람이 상호 작용을 하면서 서로 함께 생산하고 나누는 권력’으로 다시금 새로이 정의된다.9) 여성운동에서 가장 중요한 전략은 여성들을 조직하고 네트워킹함으로써 여성의 힘을 결집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보는 리더십의 가장 핵심적인 구성요소는 각기 서로 다른 여성들의 다양한 체험과 문제들에서 도출된 상이한 투쟁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각자의 역사적 특수성을 인정하는 힘갖추기(empowerment)라 할 수 있다.

 

2) 변혁적 리더십(transformational leadership)10)

 

리더십에 대한 여성주의적 재개념화를 위해 매우 유용한 모델로 수용되는 것이 변혁적 리더십이다. 변혁적 리더십의 중요한 특징은 다음과 같다.11)

 

첫째, 리더는 미래에 대한 비전을 개발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비전이란 그 리더가 속한 공동체나 집단, 조직을 보다 나은 것으로 개선할 수 있음을 보여 줄 수 있어야 한다. 리더는 스스로가 그러한 비전에 대한 강력한 신념을 갖고 그 비전이 어떤 것임을 명료히 할 수 있어야 하며, 그 비전을 공동체나 집단, 조직에 소통시키고 설득시켜야 한다. 리더는 따르는 사람들에게 이러한 비전속에서 보다 나은 사회적 질서, 권력 관계, 인간관계, 삶의 조건 등을 획득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을 분명하게 제시해야만 한다. 또한 비전이 성취될 수 있는 전략을 개발할 능력을 갖춰야 한다. 둘째, 리더는 따르는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어 동기를 유발시킬 수 있는 영향력을 갖춰야 한다. 셋째, 리더는 혁신적인 변화의 주체이다. 과거에는 불가능해 보였던 것을 가능한 것으로 사유하고, 부정적 사유와 태도를 넘어서서 긍정적이고 진취적인 사고를 하게끔 자극해야 한다. 넷째, 리더는 의사소통을 중히 여기고, 사람들의 개인적인 욕구와 필요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배려해야 한다. 모든 사람들의 각각의 차이를 존중하고, 각각의 개인들이 갖고 있는 특별한 재능과 능력을 잘 파악해서 격려해주는 사려 깊음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다섯째, 리더는 정직하고 성실해야 하며, 도덕적이어야 한다.

 

리더십의 여성주의적 재개념화에 변혁적 리더십이 유용한 개념틀로 사용되는 이유는 변혁적 리더십이 사회 전체의 변화와 미래에 대한 비전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지배적인 패러다임을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대체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여성 리더가 필요하며, 여성 리더십의 개발과 활성화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여성 리더의 양적 증가와 여성 리더십의 확산만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이 창출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더 많은 여성 리더가 여성주의 프로젝트가 지향하는 비전에 대해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이를 구성원들에게 설득시키며, 구성원들이 더불어 혁신적 변화의 주체가 되게끔 영향력을 미치는 리더십을 개발하고 실천하는 일이 여성주의 정치학의 주요한 과제가 된다. 이러한 점에서 여성주의 리더십은 변혁적 리더십이 되어야 한다.12)

 

 

나가는 말

 

리더십에 대한 여성주의적 재개념화는 역사 속에서의 여성 리더십에 관한 인식의 전환을 출발점으로 삼는다. 우선 역사 속에서 여성들이 어디에선가 항상 리더십을 행사해왔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단지 여성들의 리더십은 남성중심의 가부장적 역사 속에서 인정을 받지 못했으며, 또한 사회적 영향력을 발휘할 수도 없었다. 여성의 리더십이 가시화되고 사회적 영향력을 확보하려면 사회적으로 인정받아야 하는 동시에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권력과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권력을 가져야 한다. 여성주의의 궁극적인 이념과 목표를 실현한다는 것은 지배적인 패러다임을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환시키는 일과 맞물려 있다. 남성중심주의가 축이 되어 온 지배적인 패러다임을 새로운 패러다임13)으로 대체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여성이 더 많은 권력을 가져야 한다. 또한 사회의 모든 영역과 위치에서 여성이 리더가 된다는 것은 자연스러우며 정상적인 현상이라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본 논문에서는 여성주의와 리더십의 관계를 고찰하기 위해서 권력에 관한 보다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이해가 과연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가능한지 검토해 보았다.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권력을 다시금 새로이 개념화하고자 하는 이론화 작업은 항상 성차별적 억압의 원인이 되는 권력에 대한 저항의 가능성 및 잠재력에 집중한다. 또한 그러한 이론화 작업은 사회의 억압적인 권력관계의 근본적인 변화를 주도해 나갈 힘으로서 여성 권력을 활성화시키고 강화해 나가는 것에 관심을 갖는다. 이러한 여성주의적 재개념화 작업은 외적인 사회적 변화에서부터 뿐만이 아니라, 여성주의 이론의 발전 속에서 다양하게 제기되는 새로운 문제와 갈등으로부터 오는 도전과 자기성찰에 의해 추동되어 왔다. 본 논문의 출발점이 되었던 “리더십이 과연 여성주의적일 수 있는가?” 라는 물음은 여성주의 정치학에서 “여성 리더십은 어떤 권력을 추구하며, 무엇을 위하여 권력을 획득하려 하며, 어떻게 권력을 행사하는가?”라는 물음과 만나게 된다.

 

이와 같은 물음은 당연히 여성 리더십의 필요성을 정당화하기 위해 제기되어야 한다. 그렇지만 더 나아가 이 물음은 여성주의적 관점과 원칙에 대한 충실성을 지속적으로 점검하지 못한 채 그저 피상적이기만 한 성과와 효율성에 쫓기며 어느 사이에 현실 타협적으로 여성 리더십 교육에 관여하게 되는 우리 모두에게 지속적인 긴장과 자기성찰을 요구해야만 할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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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thasal Aithal(ed.), Vielfalt als Starke, Beijing 1995, epd. Materillen II, 1966.


1) 여성주의 공동체를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이라고 규정하는 것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있다. Bell Hooks에 따르면, “현대 여성주의 사상의 중심적 교의는 ‘모든 여성은 억압을 당하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 지배의 체제로서 성차별주의는 제도화 되어 있다. 그러나 결코 성별차별주의가 이 사회에서 모든 여성의 운명을 절대적 방식으로 결정해 온 적은 없었다. … 많은 여성들은 이 사회에서 선택권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므로 착취와 차별이라는 단어가 미국 여성들의 운명을 보다 더 정확하게 기술하는 단어이다.” 이러한 Bell Hooks의 주장은 백인, 부르조아 여성들이 주류가 되는 여성주의를 비판하는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Bell Hooks, Feminist Theory : From Margin to Center, Boston, South End, 1984. p.5) 그러나 본 논문에서는  ‘억압’이라는 개념을 “착취, 주변화, 무력함, 문화적 제국주의, 폭력”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포괄적으로 재정의한 Iris Young의 개념을 수용하여 사용하고자 한다. (Iris Young, Justice and the Poltics of Difference, Princeton University Press, Princeton, New York, 1990. pp. 39-63 참조 )


2) 비판적 사회이론은 ‘설명적 차원’과  ‘해석적 차원’ 이 두 가지를 과제로 가지고 있다. ‘설명적 차원’이란, 사회 기본 구조의 모순을 분석하고 그 원인을 해명하는 ‘설명적 기능’을 말한다. 비판 이론은 기존하는 관계의 모순으로 생겨나는 위기를 진단하고 비판하는 것이다. 또한 비판적 사회이론은 그러한 위기를 초래한 사회적 모순에 대해 저항하면서 새로운 사회질서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해석’해 내는 기능을 갖는다. 이런 측면이 비판적 사회이론의 ‘해석적 차원’이다. 본 논문에서 여성주의를 ‘사회비판’으로 정의하고자 하는 것은 여성주의 역시 이 두 차원을 포괄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3)  Synthia L. Miller and A. Gaye Cummmins, “An Examination of Women’s Perspectives on Power”,  Psychology of Women Quarterly, Vol. 16(1992), pp. 415-417 참조


4) 이 맥락에서 power over는 남성 지배를 영속화하는 기제들을 제압할 수 있는 권력을 의미한다.


5) Edward Aronson, “Intergrating Leadershipstyles and Ethical Perspectivies”, Canadian Journal of Administrative Science, Vol. 18(4),  2001, p. 245


6) ‘empowerment’는 사용되는 맥락에 따라 상이한 의미를 지니는 포괄적인 개념이다. 따라서 ‘empowerment’는 ‘힘주기’,  ‘힘갖추기’,  ‘세력화’, ‘역량강화’ 등으로 번역되기도 한다. 이 글에서는 대부분 ‘empowerment’를 이영자(2003)에 따라 ‘힘갖추기’로 번역했고 ‘empowering’은 ‘힘주는’이라는 용어로 번역했다.


7) 이영자는 이러한 우려를 아이리스 영의 견해를 빌려와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힘갖추기를 두 가지로 구분할 필요가 있다. (I. M. Young). 하나는 개인의 자율성, 자기통제, 신뢰의 발전을 의미하는 것과 다른 하나는 각자의 삶의 사회적 조건에 미치는 집단적 영향력을 지칭하는 것이다. 영은 전자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 후자에 있다고 보지만, 현실적으로는 힘갖추기가 개인주의적인 것에만 국한될 소지가 있음을 우려한다. 이러한 경우, 힘갖추기는 개인적 자원 축적에만 몰입하게 함으로써 개인의 삶을 조건짓는 사회구조에 대한 정치적인 이해와 집단적 개입에 이르지 못하게 하는 문제가 있기 때문에, 그는 힘갖추기의 궁극적인 의미가 조직화에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타자와 함께 하는 능력으로서 권력은 공동체를 전제한다는 점에서 개인주의적인 경제력을 우선시하는 권력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영자, “여성주의 정치학 : 이론과 프락시스”, 『탈 권위주의 시대의 여성주의 정치학』, 한국여성학회 제 9차 추계학술대회 자료집, 2003, 13쪽


8) ‘empowerment’라는 개념은 1960년대 미국의 Black Panther Movement가 정치적 동원을 위해 처음으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1980년대에 여성단체들에 의해서 개념화되면서 대중적인 유행을 타게 되었으며, 1990년대 이후에는 기업이나 정부, 유엔에서까지 일반적으로 사용하면서 이 용어의 인플레 현상이 일어나게 되었다. 여성주의자들은 이 용어가 정치적인 내용을 탈취당한 채 변질되고 남용되는 것에 대해 경계한다. 몇몇 여성주의 학자들은 empowerment란 용어는 반드시 정치적인 내용과 정치권력이 함축되는 개념으로 사용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Vathasal Aithal (ed.), Vielfalt als Starke, Beijing 1995, epd Materiellen II, 1966, 참조)


9) Florence L. Denmark, “Women, Leadership, and Empowerment”, Psychology of Women Quarterly, 17 (1993), p. 349


10) the transformational leadership은 J.M Burns가 처음으로 도입한 용어로서 ‘리더가 구성원들(따르는 사람들)의 미래를 바라보는 관점과 행동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게끔 영향력을 미치는 과정’을 기술하기 위해 사용한 개념이라고 한다. Ronit Kark, “The Transformational Leader, Who is (s)he? A Feminist Perspectives”, Journal of Organizational Change, vol. 2, 2004, pp.160-176 참조


11) Hershey Friedman, “Transformational Leadership”. National Public Account; May 2000, Vol. 45, Issue 3, p. 8 / Edward Aronson, “Integrating Leadership Styles and Ethical Perspectives”, Canadian Journal of Administrative Sciences, vol.18.(4), pp. 244-256. 참조


12) 변혁적 리더십은 여성주의 이론과는 무관하게 개발된 리더십 모델이다. 본 논문에서는 ‘변혁적 리더십’을 하나의 유용한 개념틀로 사용하고자 했다. 변혁적 리더십이라는 틀은 다음과 같은 여성주의적 내용으로 채워질때에야 비로소 여성주의적 리더십이라고 할 수 있겠다. 첫째, 여성 리더십은 여성들의 지역적, 국제적, 전지구적 연대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둘째, 여성들의 힘갖추기와 세력화를 위한 노력과 작업을 우선적인 과제로 삼아야 한다. 셋째, 여성주의적 가치를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데에 적극적인 역할을 하여야 한다. 넷째, 일체의 억압을 극복하고 사회적 정의를 실현하는 데에 리더가 되어야 한다. 다섯째, 여성주의 정치학을 위한 사회적 변혁을 이끌어내는 데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여야 한다.

참조 : 인터넷자료 http://www.feminisleadership.com/topic/index.html


13) 여기서 패러다임이라는 용어는 일반적 의미로 다음과 같은 카프라의 정의에 따라 사용하고 있음을 밝힌다. 즉 패러다임이란 “어떤 공동체에 의해 공유되는 개념, 가치, 인식 그리고 실천의 집합으로, 현실에 대한 특정한 비전을 형성하고, 공동체가 스스로를 조직하는 방식의 토대가 되는 집단적 분위기를 형성한다.”는 것이다.  Fritijof Capra, Revision, vol.9, no.1, 1986, p.14 / 밀래브스/이태건외 옮김, 『지속가능한 사회』, 인간사랑, 213쪽에서 재인용

http://blog.daum.net/wlghkwk615/15715543

정의와 차이의 정치(Justice and the Politics of Difference), 아이리스 영(Iris Marion Young)

저자: 아이리스 영(Iris Marion Young)
출제: 2008이화여대(수시)
2008/2/12(화)
조회: 930

정의와 차이의 정치(Justice and the Politics of Difference)

Justice and the Politics of Difference PDF [ 원본 도서 PDF 파일]

[다] 보편적 인간성이라는 이상(理想)은 소수집단을 주류 사회로 통합하고 그들의 지위를 향상시키는 데 역사적으로 크게 기여를 해왔다. 그러나 소수집단은 향상된 지위에도 불구하고 계속 일탈 집단, 즉 타자로 간주되고 있으며 그들에 대한 차별은 더욱 교묘하게 작용하고 있다. 그래서 소수집단은 주류 사회로의 동화를 거부하는 대신,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정체성을 강조하고 자신들만을 위한 조직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주류집단 중심의 사회통합은 다음의 세 가지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를 초래한다. 첫째, 소수집단은 경험․문화․사회적 능력에서 주류집단과 엄연히 다른데, 집단 간의 차이가 무시되면 이로 인해 발생하는 불이익을 필연적으로 감수해야만 한다. 동화(同化, assimilation) 전략은 기존에 배제된 집단을 주류 사회에 통합하려는 것이다. 그래서 동화는 항상 게임이 이미 시작된 후에 그리고 규칙과 기준이 정해진 이후에야 소수집단을 게임에 참여시키는 것이나 다름없다. 둘째, 주류집단은 보편적 인간성을 강조함으로써 자신의 특수성을 은폐한다. 집단 간의 차이를 무시하는 것은 주류집단의 관점과 경험을 중립적이며 보편적인 것으로 조작하여 소수집단에 강제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주류집단의 문화제국주의는 영구화된다. 셋째, 주류집단의 “중립적” 기준을 적용하여 소수집단의 관습이나 문화를 일탈로 간주하면, 소수집단의 구성원들도 그 기준에 따라 자신의 집단을 폄하하게 된다. 문화적으로 보편적 기준이 존재한다는 생각을 받아들이게 되면, 예를 들어 소수집단의 자녀들은 백인의 영어식 억양과 다른 억양을 사용하는 자신들의 부모를 업신여기게 된다.

이와 달리 집단 간의 차이를 인정하고 그 차이의 긍정성을 옹호하게 되면, 소수집단은 자유롭게 되고 역동성을 얻게 된다. 지배문화가 경멸하도록 가르쳤던 자신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이를 자신 있게 내세움으로써, 그 동안 억압 받아 왔던 소수집단은 비로소 이중적 자의식을 극복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소수집단은 자신의 문화와 특성에 대한 가치와 특수성을 옹호함으로써 보편성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해 온 지배적인 문화를 상대화할 수 있게 된다.

– 제시문 [다]는 아이리스 영(Iris Marion Young)의 『정의와 차이의 정치(Justice and the Politics of Difference)』에서 발췌한 글이다. 이 글은 급진적 다문화주의의 입장을 주장하고 있다. 보편주의라는 이름으로 소수집단에게 동화를 강요하는 지배(주류)집단의 논리를 거부하면서 문화 다양성, 집단 차이(group differences)의 긍정적 측면을 강력하게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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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 지구화 시대 도시 정의를 위한 시론 -분배 정의와 차이 인정을 중심으로-

An Essay on Urban Justice in the Age of Globalization: Focused on Distributive Justice and Recognition of Difference

– 발행기관 한국철학사상연구회
– 발행정보 시대와 철학 , 22 권 , 2 호 , Startpage 349 , Endpage 377 , Totalpage 29
– 저자 이현재 ( Hyun Jae Lee )
– 가격 5,400 원
– 발행년도 2011
– 주제키워드 지구화 시대, 도시, 분배의 정의, 차이의 인정, Globalization, Urban Space, Distributive Justice, Recognition of Difference
– 초록 이 논문에서 필자는 우선 지구화 시대 도시의 정의를 바라보는 두 가지 대립된 담론을 비판하는 데서 시작했다. 데이비드 하비는 맑스주의적 정치경제학의 관점에서 도시를 전지구적 자본축적의의 핵심 지점으로 보고 분배정의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이 과정에서 다양한 문화적 정체성의 인정을 소홀히 했다. 반면 이주와 문화이론의 관점에서 도시를 차이의 공간으로 보고 차이 인정의 정의를 주장하는 담론은 정체성의 인정이 분배의 문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보지 못했다. 따라서 필자는 첫 번째 대안으로서 두 가지 담론의 상호연관성을 보여주는 캐서린 깁슨의 다층적 계급과정에 대한 이론을 비판적으로 분석하였다. 분석에 따르면 깁슨은 다양한 문화적 정체성이 계급과정을 어떤 방식으로 다층화시키는지를 잘 보여주지만 착취의 문제를 넘어서 있는 차이 인정의 문제의 자율성을 충분히 보지 못한다. 이에 필자는 마지막에서 아이리스 마리온 영의 정의론이 분배 정의와 차이 인정의 두 담론이 갖는 자율성과 상호연관성을 더욱 잘 보여주고 있음을 논증하였다. 영이 제시하는 다섯 가지 억압의 형식은 문화적 차이의 인정뿐 아니라 분배의 문제 역시 정의 담론에서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며 각각의 억압 형식들이 상호 연관되어 있음도 보여준다.

 

현대자유주의 정치철학의 이해, 장동진

장동진, 현대자유주의 정치철학의 이해 (동명사, 2001)

 

1. 정치는 개인이 속해서 살고 있는 사회를 어떠한 근본 원칙에 입각하여 구성하는 것이다. 이러한 원칙은 개인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강제적 성격을 띤다. 정치가 만약 강제적 성격을 띠지 않는다면 정치에 대하여 개인이 심각한 관심을 기울여야 할 이유가 없다. 이러한 정치의 강제적 성격 때문에 언제나 정치의 규범성 문제가 거론된다. 정치철학은 이러한 정치의 규범성 탐구를 그 본질로 한다. 정치사회를 어떻게 구성하는 것이 보다 타당성을 지니느냐 하는 문제가 정치철학 논의의 중심을 이룬다. (5면)

2. 만약 사적 관계를 전제하지 않고 모든 사회적 관계를 공적 관계로 전환하게 된다면, 인간이 누릴 자유의 영역은 소멸할 것이다. 공적 관계는 통상 위에서 언급한 강제성을 내포하게 된다. 즉 공적 관계를 위반하였을 경우 이에 따른 사회적 제재가 뒤따른다. 따라서 모든 인간관계를 공적화하면 사실상 강제성이 인간사회를 지배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공적 관계를 설정할 경우에는 언제나 규범성이 대두된다. (6면)

3. 현대자유주의자들에게 나타나는 인간의 자유는 두 가지 점이 부각되고 있다. 하나는 인간은 자신의 가치관에 근거하여 자신의 인생을 영위할 자유가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개인이 자신의 인생의 저자가 된다는 의미이다. 다른 하나는 자신이 영위하게 될 정치사회의 근본원칙 수립의 자유로운 저자가 되는 것이다. (6면)

4. 특히 이 책에서 중심적으로 거론되는 롤즈의 자유주의적 정의관은 정치사회의 근본원칙 수립에 있어 상이한 신념을 지닌 개인들 상호간에 중첩적 합의를 지향할 것을 주장한다. 이러한 중첩적 합의(overlapping consensus)는 개인적 입장만을 개진하는 합리성(the rational)을 넘어 상이한 신념을 지닌 타자 역시 수긍할 수 있는 합당성(the reasonable)에 근거하여 공적 문제를 해결할 것을 제시한다. 이러한 합당성의 추구는 공적 이성(publich reason)의 활용과 불가분리의 관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7면)

5. 개인의 자유로운 인생을 보장하는 정치환경을 설정함에 있어 관련 당사자가 스스로 주체적인 당사자가 된다는 것이 현대자유주의 정치철학의 핵심이다. (8면)

6. 자유주의 정치철학은 상당한 보편성과 현실성을 지니고 있다. 자유주의의 보편성 역시 ‘인간의 존중’에서 출발하고 있다. 이 인간존중을 실현하기 위해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강조한다. 인간존중의 생각은 인권(human rights)으로 보다 구체화되어 나타난다. 인권의 존중이 정치적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는 자유주의 정치이념은 문화적 차이를 넘어 상당한 설득력을 지닌다. 또한 자유주의는 현실성을 지닌다. 인간이 자유롭게 살기를 원하는 것은 매우 현실적인 갈망이다. 그리고 인간이 상이한 생각과 가치관을 지닌다는 것도 매우 현실적인 가정이다. 상이한 인생관과 가치관을 지닌 개인들이 자신과 관련된 공동사를 논의할 때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고, 평등한 결정권을 가지고 합의하여 결정한다는 생각도 매우 현실적이다. 이러한 해결의 현실성 역시 문화적 차이를 넘어서 상당한 설득력을 가진다. (9면)

7. 정치철학은 ‘바람직한 정치질서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궁극적 해답을 찾아가는 탐구의 과정이다. 이것은 정치학 논의의 중요한 부분을 이룬다. 정치학에서 다루는 정치의 본질에 관련된 중요한 질문은 다음 두가지이다. 하나는 ‘정치가 실제로 어떻게 진행되는가’이며, 다른 하나는 ‘정치란 어떠한 것이 되어야 하는가’이다. 전자는 경험적 연구와 관계되며, 후자는 규범적 연구와 연결된다. 이 양자의 작업은 정치본질에 관한 규명의 시도로 이해될 수 있다. 정치철학은 물론 후자의 질문과 관련되는 규범적 연구이다. (19면)

8. ‘국가론’의 중심주제는 정의는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이러한 논의에서 나타나고 있는 플라톤의 이상국가론은 잘 알려져 있듯이 철인왕, 수호자, 노동자들의 3계층으로 이루어진 정치공동체에서, 이들 각 계층이 자신들의 고유한 덕목인 지혜, 용기, 절제를 수행할 때 정치공동체는 정의로운 상태에 이른다는 것이 간략한 내용이다(Plato, Republic, Books I-IV 참조). 이것은 논어의 ‘군군신신 부부자자’의 주장과 유사하다. (23, 24면)

9. 아리스토텔레스는 두 가지의 분류기준을 사용하여 6개의 정치체제를 구분해 놓고 있다. 두 가지 분류기준, 즉 통치자의 수와 공익/사익의 기준에 의하여 각각의 통치자의 수에 의한 정치체제의 좋은 형태와 나쁜 형태를 구분하여 대비시켜 놓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한 바람직한 정치형태는 군주정치, 귀족정치, 민주정치이며, 바람직하지 않은 형태는 전제정치, 과두정치, 중우정치이다. (24면)

10. 이처럼 공동체 전체와 그 구성원 간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이냐 하는 것이 정치철학의 핵심적 규명의 대상임은 부인할 수 없다. 다른 표현을 빌리자면, 이것은 공공선(common good)과 개인적 자유(또는 권리나 이익)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로 압축된다. (26면)

11. 현대공동체주의자들의 주장은 다만 개인의 존재이유와 개인의 성숙 및 발전은 공동체를 통해서만 가능하며, 개인의 가치관과 삶의 형태를 공동선의 관점에서 평가할 수 있기 때문에 이에 입각하여 국가는 일정의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입장으로 이해된다. (27면)

12. 그러나 이러한 정의 논쟁을 깊이 분석하고 보면, 결국 철학적 논의에서 핵심을 이루는 존재론(ontology)과 인식론(epistemology), 그리고 윤리학(ethics)의 문제를 떠날 수 없다. (28면)

13. 윤리학에서 옳고 그름(right/wrong)의 문제와 좋고 그름(good/bad)의 문제가 중심적 논의를 이룬다. 이 양자의 관계에 대하여 어떠한 입장을 취하느냐에 따라 의무론적 이론(deontological theories)과 목적론적 이론(teleological theories)이 나타나게 된다. 정치철학의 영역에서도 좋음/나쁨의 문제와 옳음/그름의 문제는 정치공동체의 운영논리와 깊은 관련을 가진다. (29면)

14. 특히 좋음/나쁨의 문제는 가치(value) 논의와 관계된다. 가치의 본질문제를 다루는 철학의 한 분야를 가치론(axiology, theory of value)이라고 한다. 이 가치의 문제에 대하여 어떠한 철학적 입장을 취하느냐에 따라 정치사회의 운영원칙의 수립이 상이하게 나타날 수 있다. 예를 들어, 가치의 문제를 객관적인 것으로 이해할 것이냐 아니면 가치를 인지하는 주체의 문제로 귀결시킬 것이냐 하는 것은 정치사회의 운영논리 수립에 근본적 갈림길을 열어 놓을 수 있다. (30면)

15. 현대자유주의는 이러한 가치의 중립성의 원칙에 기초하고 있다. 정치적 영역에서 가치 중립성의 원칙은 각 개인의 가치관에 국가는 중립적 입장을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표현되고 있다. (30면)

16. 철학적 입장에서 가치의 객관적 질서를 인정하게 되면 철학적 완전주의(philosophical perfectionism)가 되며, 정치적 영역에서 사회구성원의 가치관에 국가가 관여하여 바람직한 방향으로 해결하여야 한다는 논리는 국가완전주의(state perfectionism)라 할 수 있다. (30, 31면)

17. 좋음/나쁨에 기초하는 논리로서 좋음을 극대화하는 것이 바로 옳음(right)이라는 주장이 있다. 이러한 입장이 바로 목적론적 입장이다. 목적론적 입장의 대표적 이론으로서 공리주의(utilitarianism)를 들 수 있다. 공리주의의 입장이란 관련된 모두에게 최대의 효용을 가져다주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31면)

18. 한편, 옳음을 우선적 기초로 생각하는 정치철학적 이론의 방향은 의무론적 입장으로 규정된다. 이 입장은 좋음의 극대화에 앞서 옳음이 존재하며 이는 기본적으로 좋음의 문제와 독립하여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치철학적 이론은 사회의 전체적 효용의 극대화에 앞서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우선적으로 고려하여 정치사회의 운영원리를 찾는 것이 타당하다고 한다. 즉 사회 전체의 효용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개인의 자유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은 바람직한 사회운영원리라고 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31면)

19. 정의문제를 예로 든다면, 정의의 원리나 원칙이 객관적으로 실재하고 있고 이를 우리 인간의 이성을 통하여 알 수 있다는 입장이 있을 수 있다. 이러한 입장을 우리는 합리적 직관주의(rational intutioionism)라 한다. 이러한 입장을 대표하는 이론가로 플라톤을 들 수 있다. 정의의 이데아를 상정하고 이를 인간이성을 활용하여 알 수 있다는 플라톤의 이론은 합리적 직관주의를 대변한다. 반면에 이러한 바람직한 사회운영원리나 정의원칙의 객관적 실재 여부를 떠나서 우리 인간 이성을 활용하여 구성한다는 입장이 있을 수 있다. 이를 우리는 구성주의라고 한다. 특히 정치적인 문제 해결에 이러한 방법이 적용되었을 때 정치적 구성주의(political constructivism)라고 한다. 정치적 구성주의에서는 사회 운영원칙 또는 정의원칙을 특정의 진리관이나 포괄적 교리에 입각하여 해결하지 않고, 구성의 결과로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이러한 구성주의에서 중요한 점은 구성의 절차와 인간의 개념이 중요시된다. 왜냐하면 어떠한 구성절차와 어떠한 인간유형을 상정하느냐는 구성의 결과로 나타나는 정의의 원칙에 영향을 미치게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들이 바로 철학적 논의의 쟁점이 된다. (32, 33면)

20. 예를 들어, 서양 정치철학에서도 고대와 현대를 비교해 보면, 현대이론에서는 개인주의적 경향과 가치중립적 성격이 보다 많이 나타나는 반면, 고대정치철학에서는 공동체 중심적이고 완전주의적 성격을 보다 쉽게 찾아 볼 수 있을 것이다. (34면)

21. 자유주의 형성에 기여한 로크의 핵심적인 추론은 다음과 같다. 첫째, 제한정부론이다. 즉 정부는 그 기능과 범위에 있어서 제한되어야 한다는 논리이다. 이것은 정부는 공공 또는 공공선을 위해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어떠한 행위에 개입할 수 있는 정당한 권위를 갖고 있지 못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두번째, 법치(rule of law)이다. 정부는 아주 엄격하게 제한된 정당한 기능만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한다. 셋째, 권력분립(separation of powers)이다. 국가가 법에 의한 통치에 구속되기 위해서는 권력분립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본다. (71, 72면)

22. 고전적 자유주의에서의 자유란 언제나 의도적으로 부과한 제약이나 강제가 없는 상태로 묘사된 소극적 방법으로 인식되었다. 새로운 수정적 자유주의는 그러한 형태의 자유라는 것이 정치적 이상으로 고무될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이들에게는 자유란 가치 있는 행동에 방해가 되는 모든 장애를 제거하는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따라서 자유란 이제 하나의 적극적 개념으로 전환된다. 즉 자유란 의미 있는 행동양식을 추구할 수 있는 힘과 능력으로 간주된다. 고전적 자유주의와 대조하여 이 수정주의적 견해에 의하면, 자유에 대한 제한이라는 것은 의미 있는 행동에 대한 제약으로 인식되기 시작하였다. 의미 있는 행동에 대한 제약이라는 것은 사실상 이 제약을 당하는 사람들에게 아무도 의도적으로 부과한 적이 없는 것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의 대표적인 것이 가난과 질병이다. 그래서 현대 자유주의자들은 자유란 이름으로 의미 있는 행위를 하는 데 방해가 되는 이러한 장애들을 국가가 제거해 줄 것을 촉구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러한 수정주의적 형태의 자유주의는 적극적 자유의 개념을 통하여 국가의 보다 적극적이고 광범위한 역할을 주장한다. 이것이 자유주의 제2단계의 출발이다. (73면)

23. 20세기에서의 자유주의는 그의 주요 이념적, 실질적 적들이라고 할 수 있는 사회주의와 대립하면서 발전하게 된다. … 다른 한편, 자유주의의 주요 적은 나치즘(Nazism)과 파시즘(Fascism)이었다. 나치즘과 파시즘은 1930년대에 발전하였으며, 이들 역시 소위 경제적 자유주의의 심각한 사회경제적 결함들의 치유를 외견상 주창하였다. … 1945년의 나치즘의 패배와, 무엇보다도 1980년 후반 소련 공산주의의 붕괴는 서방에서 자유주의의 전제하에 광범위한 테두리에서 주요 이념논쟁을 이루어지게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들 논쟁들은 주로 어떻게 하면 자유주의적 정치이상과 가치를 가장 잘 해석하고 실현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에 집중되었다. 그때까지 가장 중요한 쟁점이 되어왔던 것은 보다 평등한 인생기회를 확보하기 위하여 경제적 자유를 어느 정도까지 제한해야 하는냐 하는 것이었다. (74면)

24. 1971년에 펴낸 롤즈의 ‘정의론’은 정치적 영역에서는 기본적 자유의 평등을 주장하며, 경제/사회적 영역에서는 차등원칙(difference principle)을 통해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그 사회의 최소수혜자 계층의 입장을 증진시키는 조건으로 정당화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입장은 특히 사회경제적 영역에서 복지국가의 모델을 정당화하는 이론적 근거를 제공해 주고 있다. 한편 고전적 자유주의의 현대적 부활은 프리드먼, 하이예크, 노직 등의 이론에서 나타난다. (75면)

25. 현대보수주의는 도덕적 영역에서 완전주의(perfectionism) 입장을 취하고 있다. 현대보수주의는 경제적 영역에서 국가개입의 최소화와 안보, 법질서 및 도덕적 판단의 문제에서 국가의 적극적 역할을 강조한다. 신자유주의(neoliberalism) 또는 신우파(the new right)로 규정되는 레이거노믹스(Reaganomics)와 대처리즘(Thatcherism)은 모두 현대보수주의의 산물로 이해할 수 있다. 한편 경제적 영역과 도덕적 영역 모두에서 국가개입의 최소화를 주장하는 자유지상주의(libertarianism)가 있는데, 이것이 신자유주의로 이해되기도 한다. (76, 77면)

26. 이러한 변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현대 자유주의는 최근 ‘합의의 정치’ 모델을 이론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것이 자유주의의 세 번째 단계이다. 합의정치의 이론은 롤즈의 중첩적 합의 또는 토론과 이성적 숙고를 강조하는 심의민주주의(deliberative democracy) 논의를 통하여 형성되고 있다. 이 세 번째 단계의 자유주의의 핵심은 정치체제의 근본원칙 수립의 저자가 되다는 점이다. 이 단계의 자유주의에서는 권력으로부터의 개인의 자유 보호는 부수적인 것이며, 정치체제를 운영하는 근본원칙 수립을 개인의 자유 해앗의 본질로 간주하는 적극적인 측면이 나타난다. (77면)

27. 공리주의 입장과 대조하여 계약론적 전통의 이론가로 홉스, 로크, 루소 등을 들 수 있으며, 현대의 대표적 이론가로서는 롤즈를 들 수 있다. 계약론적 이론의 특징은 자연상태나 개인적 인권을 전제로 하여 이론이 전개되고 있다. (82면)

28. 의무론적 입장을 옹호함에 있어 롤즈는 계약론적 전통에 입각하여 인간의 기본적 권리의 우선성을 강조한다. 이러한 기본적 권리의 보장은 결과나 목표에 의하여 좌우될 수 없다고 본다. … 즉 개인의 권리가 결과나 목표에 의해 위반되는 것은 정당하지 못하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83면)

29. ‘순수이성비판’을 통하여 나타나는 칸트의 인식론적 입장에서 이성의 기능은 독립적 실재의 본질을 인지하는 것이 아니고 이성이 그 일부를 구성하고 형성하는 경험의 영역을 아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은 정의론에 도입하여 롤즈는 인간의 이성에 의존하여 정의의 원칙을 구성해 나가려는 입장, 즉 실천이성을 통하여 실천이성을 통하여 사회정의의 원칙을 구성하고자 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83면)

30. 공정으로서의 정의의 핵심은 정의의 합의과정에서 편파성의 배제, 즉 불평부당성(impartiality)의 확보라고 할 수 있다. (87면)

31. 롤즈의 제1원칙은 자유의 평등 원칙으로 요약할 수 있다. 제2원칙은 차등원칙과 기회평등원칙의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롤즈 정의원칙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차등원칙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사회경제적 가치 배분의 문제와 깊은 연관성을 갖는 것으로서 롤즈 분배원칙의 대변이라고 할 수 있다. (87면)

32. 롤즈 이론의 출발점으로서 원초적 입장의 정당화 문제는 이후 공동체주의자들로부터 비판을 받는다. 공동체주의자들은 원초적 입장에서 상정되는 ‘추상적 자아’ 또는 ‘무연고적 자아’관은 상이한 정의관 수립을 본원적으로 차단시켜 놓는다고 비판한다. 이러한 비판은 정의원칙 도출에 있어서 원초적 입장의 정당화에 대한 재검토를 요구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89면)

33. 둘째, 원초적 입장의 이론적 정당성을 인정한다 할지라도 원초적 입장으로부터 정의의 두 원치그이 도출은 필연적인가에 대한 의문이다. 이의 대표적 예로는 하세이니(John C. Harsanyi)의 반론인 평균기대효용의 원칙(the expected average utility principle)을 들 수 있다. 비판의 요점은 불확실성 하의 합리적 개인은 롤즈의 맥시민 전략보다는 평균기대효용을 비교하여 선택한다는 것이다. (89, 90면)

34. 셋째, 롤즈의 원초적 입장의 정당성을 인정하고, 원초적 상태로부터 정의의 두 원칙이 필연적이라 할지라도 이 원칙이 현실적으로 파생시킬 수 있는 문제에 근거한 비판을 들 수 있다. 이 경우 비판의 요점은 롤즈의 차등원칙이 이론상 불평등을 통제할 이론적 장치가 결여되어 있어 무한정한 불평등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 경우의 차등원칙은 사회적 불평등 발생을 제어하여 사회협력의 조건을 유지시켜 주는 기능을 하는 평등주의적 성격보다 오히려 사회적 불평등을 정당화시켜 주는 기능을 할 수 있다는 비판이 가능하다. (90면)

35. 이러한 칸트적 구성주의의 일환으로 시도하는 것이 롤즈의 순수가상적 상황인 원초적 입장이라고 할 수 잇다. 이러한 가상적 상황의 설정은 정의의 원칙 합의과정에서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93면)

36. 롤즈는 이 논문(“Justice as Fairness: Political not Metaphysical”)을 통하여 실제적인 정치적 문제에 관해 일반적인 도덕적 개념이, 신념과 가치관이 극심히 다른 현대 민주주의에서 정의문제에 대한 공인될 수 있는 기초를 제공하는 것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한다. 즉 롤즈에 의하면, 형이상학적 또는 도덕의 독립적 질서에 관한 진리를 추구하는 철학이, 다양성을 전제로 하는 민주국가에 적용되는 정치적 정의관에 대하여 현실적인 공통된 기반을 제공하는 것에 한계가 있다고 본다. …이러한 구성주의는 이 문제, 즉 도덕적/정치적 가치의 독립적 질서의 존재문제에 대하여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계약론적 전통으로부터 공적 이성을 통하여 자유로운 합의와 조정을 도출하려고 시도하였다. (93, 94면)

37. 민주적 합의를 해야 할 당사자가 자신의 특성, 사회적 위치, 심리적 경향 및 가치관을 알았을 경우 사회적 기본원칙 합의 또는 문제 해결시 각 당사자가 자신의 입장을 고집하여 자신의 입장과 이익을 극대화할 것은 자명하다. 이 경우 문제해결 양상은 각자가 자신의 입장을 바탕으로 한 협상을 통해 해결하는 방향으로 전개될 것이다. 그리고 협상결과는 협상능력에 의해 좌우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95면)

38. 민주정치의 실행과 관련하여 또 하나 중요한 시사점은 계약론적 전통에 선 롤즈 이론의 강조점은 무엇보다도 기본적 자유는 사회/경제적 이이을 위해서 희생되거나 교환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님을 자신의 제1원칙과 제2원칙의 계서적 관계를 통하여 강조하고 있다. 즉 제1원칙의 동등한 자유의 원칙은 제2원칙의 사회/경제적 가치의 배분문제에 선행하여 적용된다는 것이다. 이는 공리주의의 원칙에서 사회의 총체적 공리나 평균적 개인공리의 극대화를 강조함으로써 개인의 기본적 자유가 제한되거나 희생될 수 있는 가능성을 방지하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96면)

39. 완전주의 정치관은 자유주의 정치관과 대조된다. 완전주의 정치관은 자유주의가 전제하는 가치관의 중립성 원칙에 대하여 상반된 입장을 취한다. 완전주의 입장은 철학적 완전주의와 정치적 완전주의로 구분할 수 있다. 철학적 완전주의는 가치관의 위계질서를 전제로 한다. 이러한 입장은 보다 바람직한 삶의 형태를 상정하게 된다. 정치적 완전주의는 시민들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해 보다 적극적인 국가의 개입을 정당화하고 있다. (135면)

40. 자유주의자들을 겨냥하는 비판의 대상이 되는 사회적 현상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을 들 수 있다. 즉 무기력한 시민정신, 난폭한 대중문화, 초개인주의적 환상과 도피주의, 가족제도와 같은 기본 사회제도의 취약성 증가, 현대생활에서 스케일과 기술적 복합성의 문제에 의한 시민적 자신감의 압도, 분별없는 현대소비주의, 시장중심의 개인주의로 인한 최소의 복지국가의 지탱에 필요한 시민적 연대의 약화 등이 거론된다. 이러한 사회적 현상들은 자유주의가 갖고 있는 도덕적 삶의 비정치화 또는 가치의 개인화, 또는 중립성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대자유주의의 핵심적 특징은 바로 가치관에 대한 중립성이라고 할 수 있다. 자유주의에서 중립성의 원칙은 다음과 같은 논리로 설명될 수 있다. 자유주의 정치철학에서 개인은 자유를 가진 존재로 상정되고 있으며, 이러한 자유의 본질은 상이한 가치관을 가진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그리고 특히 현대자유주의는 이러한 개인 상호간의 상이한 가치과니나 인생관에 대하여 중립성을 부여하고 있다. 중립성이란 상이한 가치관들에 대하여 어떤 가치관이 다른 가치관보다 우월하다는 주장을 거부하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138. 139면)

41. 자유주의에서는 개인의 자유의 우선성을 전제하고, 이러한 자유의 우선성은 상이한 가치관에 대한 관용으로 연결된다. 관용은 상이한 가치관의 존중과 고유성을 인정하는 것을 의미하며, 이것은 가치 상호간의 중립성 위에 성립할 수 있다. 이러한 중립성은 자유주의 사회에서 다원주의를 가능케 한다. 따라서 자유주의는 기본적으로 반완전주의(anti-perfectism)의 입장에 서게 되어 완전주의적 입장을 거부하게 된다. (140면)

42. 철학적 중립성은 두 가지 입장에 의해 가능할 수 있다. 철학적 중립성의 출현은 가치의 객관적 질서를 부인하는 입장에서 성립할 수 있다. 이는 결국 가치실재론을 부인하고 가치주관주의로 기울어지게 된다. 가치주관주의는 가치가 대상에 내재한다는 가치실재론적 견해를 부인하고 가치가 주관적 판단에 의하여 결정된다는 입장이다. 이에 의하면 가치는 각 개인의 주관적 영역에 속하므로 이 각자의 주관적 가치를 상호 비교할 수 없어 중립적이어야 한다는 논리로 발전할 수 있다. 이러한 입장은 바로 가치간의 불가공약성(incommensurability)의 논의와도 관계된다. (141면)

43. 가치관의 불가공약성은 어떤 가치를 다른 가치와 비교할 수 없다는 것으로 정의될 수 있다. 예를 들자면 “A와 B 어느 것이 더 낫다고 할 수도 없으며 그렇다고 동등한 가치를 지닌다고 할 수 없을 때 A와 B는 불가공약적이다.”라고 할 수 있다(Joseph Raz, The morality of Freedem, p. 322). (141면)

44. 존재론적 의미에서 가치의 객관적 질서를 상정한다 할지라도, 인식론적 입장에서 이를 알 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인간 인식능력의 한계를 인정하고 이러한 객관적 질서를 알 수 없다는 입장, 즉 인식 이전의 객관적 질서와 인식 이후의 지식체계의 불일치를 가정한다면, 가치 상호간의 불가공약성이 도출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142면)

45. 오늘날 자유주의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 즉 도덕의 부재, 사회질서의 문제, 공공교육의 문제 등이 발생하는 현상에 대하여 자유주의는 중립성의 원칙에 입각해서 이를 해결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고 있다. 자유주의에서 강조되는 가치관에 대한 중립성은 개인적 차원에서는 ‘좋은 삶’이 무엇이냐 하는 논의의 부재로, 공공적 차원에서는 ‘공공선’이 무엇이냐 하는 문제에 대한 논의의 부재로 연결될 위험을 안고 있다. (146, 147면)

46. 철학적 완전주의(philosophical perfectionism)는 특정 인생의 생활방법이 여타 인생의 생활방법보다 본질적으로 낫다는 것을 믿는 입장이다. 즉 어떤 인생이 본질적으로 우월하거나 보다 낫다는 것을 믿는 입장이다. (149면)

47. 이러한 합리적 구성주의는 결국 절차주의(proceduralism)와 필연적인 연관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151면)

48. 개인의 자율성을 전제하였을 때 국가완전주의의 입장은 어떠한 방향으로 실천가능할 것인가? 결국 개인의 자율성을 전제하였을 경우 국가완전주의 입장의 방향은 개인의 가치관과 도덕적 판단능력, 즉 자율적 능력의 향상에 적극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다. 존스턴(David Johnston)은 완전주의적 자유주의에서 인간은 자율적 개인이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정치적/사회적 구성은 그것이 그 사회의 성원들로 하여금 자율의 삶을 보호하고 증진시켜 줄 수 있는 한 좋은 것이라고 하며, 이를 ‘자율원칙(Autonomy Principle)으로 부르고 있다. (158면)

49. 이 인간관에 대한 비판은 자유주의가 가정하는 개인의 가치관 형성능력과 연관되어 있다. 공동체주의자들은 인간이 사회에 영향을 받지 않고 자율적으로 스스로의 가치관을 형성할 수 있다는 가정에 이의를 제기한다. 인간관에 대한 이들의 비판의 요점은 이러한 인간관 자체가 현실사회에서 찾아볼 수 있는, 공동체나 사회와 연결되지 않은 인간관으로서 추상적이라는 것이다. (167면)

50. 이러한 자율적 존재에 대한 신뢰는 원초적 입장에 놓은 개인들을 자신들의 선관을 스스로 형성하고 교정하며 합리적으로 추구할 수 있는 존재로 여기게 한다. 그러나 공동체주의자들은 롤즈의 이성적이고 자율적인 자아를 비판한다. 자율적 삶을 강조하기 위해 개인들을 공동체로부터 분리하는 것은 오히려 개인을 공동체로부터 고립시키게 되어 개인의 삶의 질을 저하시키게 될 것이라고 공동체주의자들은 주장한다.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상호 무관심하기보다 오히려 서로에게 자애를 베풀어야 한다고 본다. (171, 172면)

51. 공동체주의자들은 롤즈가 공동체가 개별적으로 가지는 문화적 특수성을 제대로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 공동체주의자들에게 공동체의 개별성과 차이는 각 공동체가 가지는 공동체의 특수성에 대한 관용의 정신을 상징한다. 관용은 차이가 있음을 인정하는 정신이다. (174면)

52. Michael Walzer는 On Toleration(1997)에서 관용은 차이를 가능하게 하고 차이는 관용을 필요로 한다는 점을 역설하며 각각의 공동체가 다른 전통을 유지해 왔음을 역사적인 실례를 통해 보여줌으로써 이러한 차이를 인정해야 한다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174면)

53. 롤즈와 드워킨이 중심이 되어 형성된 권리중심론자들의 국가중립성은 결국 반완전주의 입장을 취하게 된다. 아무리 국가라 할지라도 개인에게 특정한 형태의 삶의 방식을 강요해서는 안 되며 이러한 시도들이 개인들의 본질적 이익을 해친다고 본다. (175면)

54. 그러나 공동체주의자들은 국가의 중립에 대하여 반대 입장을 취한다. 국가중립은 곧 공공선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공공선의 포기는 공동체주의자들에게는 가장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여진다. … 아무리 뛰어난 개인도 공공선 또는 공공선이 전혀 형성되지 않는 사회에서 훌륭한 삶을 영위하기란 여간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공동체주의자들은 자유주의적인 국가중립성은 자기파괴적이라고 비판한다. (176면)

55. 만약 국가중립성이 강화된다면 복지국가에 의해 요구되는 희생을 시민들이 받아들이도록 하는 공공선의 공유기반을 약화시킬 것이라고 비판한다(Kymlicka). (177면)

56. 정치적 자유주의에서 롤즈는 목적과 선에 대한 자율적 판단능력을 갖춘 상호 무관심한 개인이란 자아관을 거의 변함없이 유지하고 있다. (178면)

57. 롤즈는 ‘정의론(1971)’에서 사회계약론의 원리를 보다 고차원적인 추상화를 통해 일반화하는 데 역점을 두었으며, 그 결과 ‘정의론’에서는 사회계약론의 전통이 도덕철학의 일 부분으로 간주됨으로써 도덕철학과 정치철학과의 구분이 모호해졌다고 한다. (199면)

58. 이러한 입장은 민주사회의 특징으로서 다양성과 관용을 전제로 하여 출발하고 있다. 롤즈는 이를 합당한 다원주의(reasonable pluralism)로 표현하고 있다. (200면)

59. 정치적 자유주의에서는 롤즈의 정의의 두 원칙은, 제1원칙에서 정의론에서의 자유의 평등원칙과 비교하여 정치적 자유의 공정한 가치보장이 새로이 강조되었으며, 제2원칙에서는 공정한 기회평등의 원칙이 차별원칙에 선행하여 기술되었다. (200, 201면)

60. 한편 공동체는 공유된 포괄적인 종교적, 철학적, 도덕적 원칙에 의해 지배되는데 반해, 질서정연한 민주주의는 합당한 다원주의를 전제한다. (201면)

61. 정치적 자유주의에서 ‘정치적’이라는 어휘는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우선 이 어휘는 정치적인 근본문제의 해결에 국한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정치적인 근본문제를 해결함에 있어 여타의 철학적, 종교적, 도덕적 입장에 의하여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해결한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한편 정치적 자유주의에서 ‘자유주의’ 의미는 정치적 근본문제를 합의나 계약을 통하여 해결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201면)

62. 정치적 자유주의의 핵심적 발상은 윤리와 정치를 분리시켜 정치적 근본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이다. 정치사회의 근본적 운영원칙을 수립함에 있어 정치적 자유주의는 문제해결을 위한 합의의 방향을 강조하며, 이 합의는 개인이나 집단의 특수성에 입각하여 공적인 문제를 해결하려 할 때의 한계성을 지적하고, 이러한 개인적 특수성이 표출되는 것에 제한함으로써 합당성을 추구하여 공적 합의, 즉 중첩적 합의에 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것이 개인이 중요시하는 인생관을 추구할 수 있는 공적인 장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정치적 자유주의의 근본적 발상이다. (202면)

63. 롤즈의 정치철학과 도덕철학의 구분, 즉 정치와 윤리의 구분은 ‘정치적 자유주의’에서 ‘정의론’보다 더 의도적으로 시도되고 있다. 롤즈는 ‘정치적 자유주의’에서 “자유롭고 평등한, 그리고 전 생애를 통하여 사회의 완전한 협력적 성원으로 간주되는 시민 상호간에, 세대에 걸친 사회적 협력의 공정한 조건을 규정하는 가장 적합한 정의관은 무엇인가?”에 대한 체계적 답변을 시도하고 있다. 여기에서 첫 번째 근본적 질문은 민주사회의 전통인 관용의 문제와 겨부되어 두 번째 근본적 질문으로 연결된다. 두 번째 근본적 질문은, “합당한 종교적, 철학적, 도덕적 교리들로 심각하게 분열된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들간에 정의롭고 안정된 사회를 상당기간 유지시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이다. (202, 203면)

64. 승계호 교수는 구성주의란 규범명제나 규범척도를 인간이 만든다는 입장이며, 이는 규범명제나 규범척도가 이성직관으로 알려진다는 직관주의 입장과 반대된다고 한다. 이러한 구성주의는 규범회의주의에서 비롯된다. 규범회의주의란 도덕적 실재(moral reality)의 존재를 부인하거나 도덕진리의 상대성을 주장하는 것 또는 도덕언명의 비인지성(noncognitive function)을 강조하는 것이다. (206면)

65. 롤즈의 ‘정치적인 것의 영역(the domain of the political)은 사회의 기본구조를 운영하는 근본원칙에 대한 합의라고 할 수 있다. (208면)

66. 롤즈의 정치적 정의관의 특징은 우선 종교적, 철학적, 도덕적 교리와 구별되는 ‘정치적 영역’을 설정하고 이의 해결에 있어서도 정치적인 방법인 ‘중첩적 합의’의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롤즈의 정치적 여역은 바로 ‘윤리적 갈등을 해결하려는 공간을 확보’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 정치적 공간의 확보는 ‘공적인 정치적 정의관’을 수립하는 것이다. (209면)

67. 자유롭고 평등한 존재로서의 시민의 두 가지 능력 중 가치관에 대한 능력은 합리성과, 정의감에 대한 능력은 합당성과 각각 결부되어 있다. 즉 합리성은 개인이 가치관을 형성 및 추구하고, 이러한 가치관에 입각한 개인적인 입장과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능력으로 이해된다. 한편 합당성은 정치사회의 여러 시민이 공존할 수 있는 논리로서 정의감으로 대표되고 있다. 롤즈의 이러한 두 가지 도덕적 능력은 무지의 장막을 특징으로 하는 원초적 입장과 결부되어 공적인 정치적 정의관을 형성하게 된다. (212면)

68. 이 원초적 입장이 중첩적 합의를 가능케 한다. 중첩적 합의는 각각의 상이하고 화해 불가능한 종교적, 철학적, 도덕적 교리들 모두가 지지할 수 있는 정치적 합의이다. 이 중첩적 합의는 상이한 교리들이 공존할 수 있는 합당한 정치적 해결을 의미한다. (215면)

69. (1) 개인은 평등한 기본권과 자유에 입각한 완전한 적정구조에 대하여 동등한 주장을 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 이 구조는 모든 사람에게 해당하는 동일한 구조와 양립할 수 있다. 이 구조에서는 평등한 정치적 자유, 그리고 다만 그러한 자유들이 그 공정한 가치를 보장받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217면)

70. 즉 좋음보다는 옳음이 우선하는 의무론적 입장, 그리고 원초적 입장의 장치에 의존하는 정의에 대한 구성주의 입장이 유지되고 있다. 하지만 몇 가지 차이점도 찾아볼 수 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정치적 자유주의’에서 명확하게 나타나는 도덕적 영역과 정치적 영역의 구분시도이다. 그렇지만 정의론에서와 마찬가지로 정치적 자유주의에서도 원초적 입장은 고수되고 있다. 즉 원초적 입장이라는 장치를 롤즈는 정치적 자유주의에서 정치적 문제 해결, 즉 사회운영 원칙을 구성하는 기능에만 국한하고 있다. 이로써 롤즈는 자신의 이론적 입장이 형이상학적이 아닌 정치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218면)

 

현대 정치철학의 이해, 윌 킴리카‎ (Will Kymlicka)

현대 정치철학의 이해 2  

 

Will Kymlicka(장동진, 장휘, 우정열, 백성욱 역), 현대 정치철학의 이해, 동명사, 2002

공동체주의의 자유주의 비판은 현대 영미 정치철학에 극적인 충격을 주었다. 1970년대에는 자유주의자들이 공리주의에 대응해서 일관성있는 대안을 규정하려는 시도의 일환으로 정의(justice)와 권리(rights)가 중심 개념이 되었다. 1980년대에는 공동체(community)와 맴버십(membership)이 핵심단어가 되었는데, 공동체주의자들은 자유주의적 개인주의가 실현 가능한 어떠한 정치 공동체를 위해 필요한 공동체적 정서, 정체성, 경계선을 설명해 주거나 유지시키는 데 얼마나 부적절한지를 보여주려 했다. (397면)

아마도 논쟁의 그 다음 단계는, 자유주의적 개인주의와 공동체주의 사이에 이러한 대립을 초월해서 자유주의적 정의와 공동체적 맴버십의 요구들을 통합시키는 시도로 나아가는 것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작업을 수행할 하나의 확실한 후보가 바로 시민권(citzenship) 개념이다. 시민권은 한편으로는 개인주의적 권리와 자격(entitlements)이라는 자유주의적 개념과 친밀하게 연결되어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특정한 공동체의 맴버십과 복속이라는 공동체주의적 개념들과도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그것은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 사이의 논쟁을 중재할 수 있는 개념을 제공한다. (397면)

많은 고전적 자유주의자들은 견제와 균형을 고안해 냄으로써, 특별한 덕성을 갖춘 시민성이 부재하는 상황에서도 자유민주주의가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고 믿었다. … 예를 들어, 칸트는 좋은 정부의 문제는 ‘악마들의 경영으로도 해결될 수 있을 것'(Galston 1991: 215에서 재인용)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각자의 이익들의 균형을 부여할 절차적, 제도적 기제로는 충분하지 않고, 어느 정도 수준의 시민적 덕성과 공적 정신이 필요하다는 것이 점점 확실해지고 있다. (398면)

사실 내가 제2장에서 지적했듯이, 롤즈는 이러한 ‘기본 구조’가 정의론에 있어서 우선적인 주제라고 말했다. 그러나 오늘날의 정치이론가들은 이러한 제도와 절차들을 운영해 나아가는 시민들의 수준과 성격에 대해서도 그만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따라서 1990년대의 정치 이론가들은 개별 시민들의 책임감, 충성, 역할을 포함한 그들의 정체성과 행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399면)

시민권에 대한 이와 같은 이론의 필요성은 로버트 퍼트남(Robert Putnam)이 이탈리아 지방 정부를 다루었던 영향력 있는 연구에 의해 극적인 지지를 받게 되었다. … 오히려 푸트남은 그들의 ‘사회 자본'(social capital)이라고 명명하는 그들 시민들의 덕성에서 비롯된다고 설명해야 한다. 사회 자본이란 그들의 신뢰의 능력, 참여 의지, 정의감 등이다. (399면)

그리고 그것은 동시에 샌들이 ‘형성적 기획'(formative project) 혹은 ‘형성적 정치'(formative politics)라고 명명했던 것을 고려할 필요가 있음을 정치 이론가들에게 인식하게 해 주었다. 즉 적절한 종류의 특성의 수준과 시민적 덕성을 지속적으로 가르치는 정부 정책이다. (400면)

따라서 이제 시민권 이론은 광범위하게도 이전의 제도적 정의 이론에 대한 필연적인 보완물로 간주되고 있다. … 나는 민주주의 시민권 이론이 정의론을 대체할 수 있다는데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 어떤 경우에도, 나는 시민권 이론을 정의론에 대한 대체물로서가 아니라 주요한 보완물로서 논의할 것이다. (400면)

전후 시기의 권리로서의 시민권(citizenship-as-rights)의 가장 영향력 있는 표현은 1949년에 출간된 마샬(T. H. Marshall)의 ‘시민권과 시민계급'(Citizenship and Social Class)이다. (401면)

시민적 권리는 18세기 발생했다. 정치적 권리는 19세기 발생했다. 그리고 사회적 권리는 – 예를 들면, 공적 교육, 보건의료, 고용보험, 노인연금 등 – 20세기에 들어서 확립되었다. 그리고 시민권에서의 권리가 확장되면서, 시민이라는 계급의 확장 또한 발생했다고 그는 지적한다. (401면)

많은 이론가들은 우리가 경제적인 자기 절제, 정치적 참여, 그리고 심지어는 공손함까지를 포함하는 겸손함과 덕성들의 시민권을 능동적으로 행사하여 시민권에서의 권리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보완할(혹은 대체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마셜의 관점 역시 현대 사회의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다원주의를 적절하게 인식하고 수용하는데 실패한다고 비판받아 왔다. …) (402면)

민주주의 이론에서의 ‘심의로의 전환'(deliberative turn) (406면)

만일 민주주의가 이러한 집단들을 ‘다수의 전제'(tyranny of the majority, 혹은 다수의 무관심과 나태함)에 종속되도록 남겨두지 않고 그들의 정의를 증진시키는데 도움을 주려고 한다면, 민주주의는 보다 심의적이 되어야 할 것이다. (407면)

고대인들이 정치적 삶을 증진시키기 위해서 사적 자유를 희생하는 반면, 현대인들은 정치를 자신들의 사적인 삶을 보호하는데 필요한 수단(어느 정도는 희생인)으로 바라본다. 사실상 아리스토텔레스적 공화주의자들은 이러한 역사적 변화를 역전시키고, 우리의 선관에 ‘고대인의 자유’의 우선성을 회복하려고 노력한다. 이것은 두가지 방법으로 할 수 있다. 정치 참여의 본질적인 가치를 찬양하거나, 사적 삶의 가치를 저하시킴으로 가능하다. 대부분의 아리스토텔레스적 공화주의자들은 두 가지 전략을 혼합하여 사용한다. (411면)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적 공화주의를 변호하기 위해 개인들이 진정한 사회적 삶을 이끌기 위해서는 사회가 필요하다는 것만 보여주어서는 불충분하다 – 자유주의자들도 그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아리스토텔레스적 공화주의자들은 이것을 넘어서서 개인들이 정치적으로 능동적이어야 할 필요를 보여주어야 한다. (412면)

우리는 더 이상 정치를 찬미하지 않는데, 그것은 우리의 사적이고 사회적인 삶이 고대 그리스인들의 그것보다 훨씬 더 풍요롭기 때문이다. (414면)

그리스인들은 사적 영역을 ‘결여'(privation, 이것이 사실 ‘사'(private)라는 단어의 어원이다)의 영역으로 간주했고, 그 안에서 가치를 거의 발견하지 못했다(사실 그들은 ‘사’라는 개념에 필적하는 어떤 것도 갖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 ‘현대인’들은 친밀성, 사랑, 여가, 소비와 노동에서 헤아릴 수 없는 즐거움을 발견한다. (414면)

이러한 사적 삶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적 공화주의자들의 경멸은 여성에 대한 경멸과도 역사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415면)

그러나 좋은 삶에 대한 단일한 가치관에 특권을 주려는 그와 같은 시도는 현대 사회에서는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 ‘다원주의의 사실'(fact of pluralism)은 단지 전통적 공동체주의만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적 공화주의의 부활 역시 무너뜨린다. (415면)

‘권리로서의 시민권'(citizenship-as-rights)의 전통적 모델은 두 가지 방향으로부터 도전을 받아왔다. 첫번째는, 앞장에서 검토되었듯이, 시민적 덕성과 적극적 정치참여에 보다 많은 관심을 가짐으로써 권리에만 향해진 집중을 보충할 필요성을 강조하는 방향읻. 두 번째 도전은, 이번 장에서 다루어질 것인데, 문화적 다원주의(cultural pluralism)와 집단 차별적 권리(group-differentiated rights)에 보다 큰 관심을 기울임으로써 공통의 권리에만 맞추어졌던 초점을 보강할 필요성을 강조하는 방향이다. 두 번째 도전은 정치철학뿐만 아니라 현실정치세계에서 일어나는 광범위한 운동 역시 반영한다. 이러한 운동은 ‘차이의 정치'(politics of difference), ‘정체성 정치'(identity politics), ‘인정의 정치'(politics of recognition)와 같은 다양한 형태의 제목으로 논의되어 왔다. (455면)

과거에는 이 다양성이 ‘정상적 시민'(‘normal’ citizen)의 모델에 의해 무시되었거나 억제되었다. 전형적인 정상적 시민모델의 개념은 장애가 없고 이성애자인 백인 남성의 특성에 기초하고 있었다. 이러한 정상성 모델에서 이탈하는 사람은 누구라도 배제, 주변화, 침묵화 또는 동화의 대상이 되었다. 그래서 유색인 집단은 종종 서구민주주의로의 진입이 거부되었고, 설사 허용되었다 하더라도, 시민이 되기 위해서는 그들에게로의 동화가 기대되었다. 따라서 토착민(indigenous people)들은 자신의 고립된 보호구역으로 단절해 숨어 버리거나, 아니면 자신들의 전통적 삶의 양식을 포기해야만 했다. (455면)

이들은 좀 더 포용적인 시민의 개념을 요구하고 나선다. 이 포용적 시민 개념은 이들의 정체성을 (비난하기보다는) 인정하고, 이들의 차이를 (배제하기보다는) 수용한다. 이러한 운동의 특징은 이들 운동이 ‘정체성’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정체성 정치'(identity politics)의 형태라고 종종 말해진다. 이러한 규정은 그 이전에 계급에 기초한 노동자나 농민의 정치운동과는 다른 것이다. 계급에 근거한 운동은 경제적 이익이 문제가 되었다.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볼 때, 정치란 언제나 정체성과 이익 양자 모두가 문제가 된다. 문제는 항상 어떤 정체성과 이익이 증진되어야 하는가에 있다. (456면)

전통적인 ‘권리로서의 시민권’ 모델의 목표는 시민들 사이의 일종의 공통적인 국민 정체성을 증진시키는 것이었다. 마샬(T. H. Marshall)이 직접 강조했듯이, 시민권은 일련의 권리와 의무로 규정된 단순한 법적 지위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또한 정치공동체에서 한 사람의 멤버십을 표현하는 정체성을 의미한다. 그리고 시민권 권리(citizenship rights)의 개념을 확장하여 보건의료와 교육 같은 사회적 권리를 포함할 것을 요구하는 마샬의 주장은, 그렇게 하는 것이 바로 국민의식과 국민적 정체성의 공통감(common sense)을 증진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데 기초한다. 보건의료 및 교육을 사람들에게 보장해 주는 것이 마샬에게는 단순한 인도적 이유, 즉 기본적 필요를 충족시켜 주는 것만은 아니었다. 사회적 권리는 또한 이전에 소외되었던 집단들을 공통의 민족문화로 통합하고, 또 그렇게 함으로써 민족적 통일성과 충성의 원천을 제공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되었다. … 그는 특히 영국의 노동계급의 통합에 관심이 있었다. (456면)

그리고 사실상 복지국가의 발전은 서구민주주의의 전체를 통해서 볼 때 노동계급을 민족문화로 통합하는 데 아주 성공적이었다. (457면)

이와 유사한 맥락에서, 서구국가들은 의료혜택을 각각의 인종집단에 따라 분리된 병원에서 제공하지 않았다. 심지어 분리된 병원에서 제공하는 것이 의료혜택을 효율적으로 제공해 실시하는 방법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그것의 목표가 단순히 추상적 의미에서의 기본적 필요의 충족에 있지 않고, 공동의 시민의식을 창출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458면)

그래서 ‘공동의 권리로서의 시민권'(citizenship-as-common-rights)의 전통적 모델은 국민통합의 개념과 깊이 결부되었다. 공동의 시민권리와 국민통합의 이러한 연결은 지금에 와서는 비판을 받고 있다. 많은 집단들 – 흑인, 여성, 토착민, 인종 및 종교적 소수자, 남성 및 여성 동성연애자 -은 이러한 공동의 시민권리를 소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소외와 사회적 냉대를 느낀다. 이러한 집단의 많은 구성원들은 이들의 사회 경제적 신분 때문이 아니라(또는 신분만이 아니라), 이들의 사회문화적 정체성 – 즉, 이들의 ‘차이'(difference)에 의해서도 사회적 소외감을 느낀다. (458면)

이들은 영(Iris Marion Young)이 명명한 ‘차등적 시민권'(differentiated citizenship)과 같은 어떤 형식을 (Young 1989) 요구한다. 이 입장에 따르면, 단순히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집단을 통해서 특정 집단의 구성원들이 정치공동체에 병합하는데, 부분적으로 이들의 권리는 이들의 집단구성원들의 자격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이러한 집단적으로 특수화된 형태의 시민권을 주장한다. 이렇게 주장하는 이유는 이들이 단일한 공통의 국민문화가 존재한다는 발상을 거부하기 때문에, 혹은 차등적 시민권을 통해서 이러한 집단의 사람들을 공통의 국민문화로 수용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458면)

왜 이러한 집단의 사람들이 노동자 계급에 의해 요구되었던 공동의 시민권리 대신에 (또는 이러한 권리에 추가적으로), 일종의 차별적 시민권을 요구하게 되었는가? 이러한 경우들에서, 왜 공동의 사회적 권리를 통해 모든 시민을 통합하려던 마샬의 전략은 실패하게 되었는가? (460면)

과도하게 단순화시켜 말하자면, 모든 서구민주주의에는 두 가지 강력한 위계가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다. 첫째, 경제적 위계(economic hierarchy)가 있다. … 이러한 경제적 위계구조에 내재하는 불평등에 대한 투쟁은 재분배의 정치(politics of redistribution)를 배태시키게 된다. 이것은 전통적 형태의 노동계급 동원을 반영한다. … 집단차이를 축소하는 것이 목표이다(즉, 기회와 문화에 있어 계급적 차이를 축소시키기). (461, 462면)

그러나 영국사회에는 마샬이 많은 주의를 기울이지 못했던 또 다른 위계구조가 있었다. 이것은 신분 위계구조(status hierarchy)이다. … 이러한 신분 위계구조에 대한 투쟁은 ‘인정의 정치’를 낳게 한다. 인정의 정치는 최근 동성애자, 종교적 소수자, 이민자, 소수 민족들이 동원되는 저변에 깔려 있는 정치 형태를 의미한다. … 목표는 집단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다. (462, 463면)

우리는 비록 분석적 목적으로 재분배의 정치와 인정의 정치 간의 차이를 구별할 수 있긴 하지만, 현실세계에서 이 양자는 연결되어 있다. 어떤 집단들은 이 양자의 위계구조 모두에서 최하층 또는 거의 최하층에 근접해 있어서, 재분배와 인정을 위해 운동을 결집해야 할 필요성을 느낄 수 있다. 사실상 많은 사람들 – 특히 마르크스주의자들 -은 두 번째 위계구조는 순수하게 이차적이고 부수적이라고 생각해 왔다. … 이 견해에 따르면, 경제적 불평등이 제거된다면 문화적 불평등도 자동적으로 사라져야 한다. 그래서 전통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우리의 모든 노력이 재분배의 정치에 투여되어야 한다고 본다. … 놀라울 정도의 숫자의 자유주의자들 역시 문화적 불평등이 이차적이고 파생적인 성격에 관한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이러한 견해를 인정해 왔다. (463면)

그렇지만 경험적 증거는 신분위계구조가 경제적 위계구조로 환원될 수 없음을 시사해 준다. 확실히, 여성, 흑인, 원주민과 같은 일부 집단들은 취약한 경제적 위치에 있어서도 불균형적으로 집중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문화적 표현에 있어서도 비천하거나 침묵적 입장에 처해 있다. 그러나 경제적으로는 부유하지만 문화적으로 낙인찍힌 다른 집단들도 존재한다. 예를 들면, 대부분의 서구 민주주의 국가에서 동성애자들에게 이것은 사실이다. 이들은 이성애자들과 마찬가지 수준의 수입과 교육의 수준을 누리고 있지만, 극단적인 동성혐오로 인해 고초를 겪고 있다. 또한 아랍계 또는 일본계 미국인처럼 일부 부유한 이민자들 혹은 종교집단을 예로 들 수 있는데, 이들은 평균수준 이상의 교육과 수입을 누리고 있지만, 문화적으로는 소외되고 있다. 마찬가지로, 카탈로니아인, 퀘벡인과 같은 소수 민족 역시 다수 민족과 같은 수준의 생활을 향유하고, 어떤 경우에는 사실상 보다 높은 수입의 생활을 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들의 언어와 문화는 주류의 언어와 문화보다 열등하다고 간주된다. 이러한 모든 집단들은 경제적 평등을 달성한다고 신분불평등이 해소되지 않는다(비록 경제적 평등의 성취가 의심할 바 없이 신분불평등을 완화한 것은 사실이지만). 따라서 경제적 평등의 성취가 인정의 정치를 동원할 필요성을 제거하지는 못했다. (463면)

이와는 대조적으로, 신분 위계에서는 특권적 지위를 향유하고 있지만, 경제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처한 집단들도 있다. 이것은 대부분의 서방국가들에 있어서 전통적인 남성노동자 계급의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노동계급은 부정의한 경제적 위계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있긴 하지만, 신분 위계에서는 종종 혜택을 누린다. 대부분의 남성 노동계급은 자신들의 남성성별(male gender), 백색 피부, 기독교라는 종교, 이성애적 성향이 그들에게 여성, 흑인, 유태인 또는 동성애자들보다 우월한 지위를 부여하는 규범이라고 규정함으로써 만족을 누릴 수 있게 된다. (464면)

복지국가가 도입되기 이전에는 분명히, 남성 노동자 계급은 교육에 대한 접근성, 경제적 기회 및 수입의 결여로 인해 이러한 신분위계구조의 혜택을 누릴 수 없는 경우가 흔했다. 따라서 전통적인 노동 계급의 배제를 치유하기 위한 해결은 우선적으로 사회적 권리를 통한 공동의 시민권을 강화하는 것이었다. 신분 위계구조에 도전할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사실상 많은(백인, 남성, 기독교, 이성애자인) 노동계급의 구성원은 여성, 동성애자, 종교적 소수자, 또는 이민자들이 신분위계질서에 도전하려는 시도에 저항해 왔다. 상층 신분집단에서 경제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는 구성원들인 전통적 노동계층은 경제적 위계구조에 대한 도전에는 관심이 있었으나, 신분위계질서를 보존하려는 점에서는 이기적인 입장을 취했다. (464면)

따라서 경제적 위계와 신분적 위계 간에는 단순한 상관관계가 없다. 그리고 이것은 공동의 사회적 권리를 통한 마샬의 통합전략이 노동계급에게는 일리가 있었지만 다른 집단들은 왜 만족시키지 못했는가를 설명해 준다. … 여성 또는 흑인 같은 다른 집단들에게 있어서, 평등은 재분배의 정치와 인정의 정치 양자 모두를 요구한다. (464면)

신분 불평등이 경제적 불평등으로 완전히 환원이 될 수 없거나, 또는 경제적 불평등으로 인해서만 파생되지 않는다는 인식의 증대는 인정의 정치에 대한 관심의 증대를 가져왔다. (464면)

사실상, 수많은 사람들이 집단차별적 시민권(group-differentiated citizenship)의 발상이 모순적인 용법이라고 간주한다. 전통적 견해에 의하면, 시민권이란, 정의상 모든 사람들을 법 앞에서 동등한 권리를 가진 개인들로 간주하는 문제이다. 이것이 바로 시민들의 정치적 신분을 그들의 종교, 인종 혹은 계급적 멤버십에 의해 결정해 버리는 봉건적 그리고 여타의 전근대적 견해들로부터 민주적 시민권을 구별해 주는 점이다. 따라서 ‘집단구성원에서부터 파생되는 권리 또는 요구에 기초한 사회 구성은 시민권에 입각한 사회의 개념과는 첨예하게 상치된다'(Porter 1987; 128). 따라서 차별적 시민권 개념은 시민권 이론에서 아주 급진적 발전이라 할 수 있다. (465면)

다문화주의와 소수자권리에 관한 철학적 논쟁은 최근 들어 그 범위나 기본 용어에 있어 모두 급진적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1980년대 중반까지 이 분야를 연구하는 정치철학자나 이론가는 매우 드물었다. 사실상 금세기의 대부분에 걸쳐서, 인종 문제는 정치철학자들에게 주변적인 문제로 간주되었다. … 그렇지만 수십 년간의 상대적인 무관심의 기간을 거친 오늘날에 이르러, 다문화주의 문제는 정치이론의 전면으로 부상했다. 이러한 변화의 이유를 몇 가지로 추적해 볼 수 있다. 가장 명백하게는, 공산주의의 붕괴가 동유럽에서 인종민족주의(ethnic nationalism)의 파도를 불러 일으켰다. 이러한 양상은 민주화 과정에 극적인 영향을 미쳤다. 공산주의의 잿더미로부터 자유민주주의로 수월하게 진정할 것이라고 여겼던 낙관적인 가정은 인종문제와 민족주의 문제로 인해 크게 빗나가게 되었다. 그러나 민주주의가 오랫동안 확립된 국가에서도 인종문제를 돌출시켰던 많은 요소들이 있었다. (46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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