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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탄생 우리 민주주의는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나, 김육훈, 휴머니스트, 2012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탄생 우리 민주주의는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나

김육훈 지음 | 휴머니스트 | 2012년 08월 20일 출간

책소개

19세기 말에서 정부 수립까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뿌리를 찾는 책. 대한, 민국, 민주, 공화국이란 단어가 등장하는 과정과 그 뜻을 살펴보고, 1850년대부터 대한민국 정부가 공식 출범한 1948년까지의 역사에서 우리 민주주의의 뿌리를 찾고 있다. 보빙사절단으로 세계를 둘러본 홍영식과 고종의 민주정체에 대한 대화에서 시작해 1948년 제헌헌법의 의미까지 짚어보는 이 책은 우리 민주주의가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역사 속에서 실천하고 싸우며 만든 민주공화국의 살아 있는 의미는 무엇인지 생생하게 전한다.

저자소개

저자 : 김육훈

저자 김육훈은 서울대학교 역사교육과와 한국교원대학교 대학원에서 공부하였다. 1987년부터 중·고등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고 있으며, 상명대학교 대학원 겸임교수를 지냈다. 2002년부터 4년간 전국역사교사모임 회장을 지냈으며, 초·중·고·대학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분들이 어우러진 연구단체인 역사교육연구소 소장을 2009년부터 맡고 있다. 전국역사교사모임 선생님들과 함께 《행복한 한국사 초등학교》, 《살아있는 한국사 교과서》, 《살아있는 세계사 교과서》, 《외국인을 위한 한국사》(A Korean History for International Readers), 《마주 보는 한일사》, ‘처음 읽는 세계사’ 시리즈, 《우리 아이들에게 역사를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역사,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까》를 펴냈다. 혼자서 펴낸 책으로 《쟁점으로 보는 한국사》와 《살아있는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 《국제인의 한국사》(Korean History for International Citizens)가 있다. 제7차 교육과정 시기에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국정), 중학교 사회 교과서 1·2(검정), 고등학교 사회 교과서(검정) 집필에 참가하였으며, 2004년부터 4년간 교육부의 교육과정심의회 위원을 지냈다.

목차

머리말 대한민국은 어떤 나라인가

프롤로그 대한민국사 여행을 시작하며

1. 고종이 홍영식과 대통령제에 대해 토론하다 – 민주주의란 말을 언제 처음 알았을까?
미국에는 대통령이 있다 / 세상에는 여러 나라가 있다 / 최한기, 민주정치를 발견하다 / 임금과 백성의 권리가 같다니! / 구미입헌정체

2. 최초의 민주주의자를 찾아서 – 민주주의 실천의 기원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실패한 쿠데타 / 입헌 정체를 탐색하다 / 최초의 민주주의자는…… / 민중적 지식인 전봉준 / 인민 자치를 실험하다 / 왕은 있으나 왕권은 없다 / 민주를 적대한 자유, 갑오개혁이 비극적 종결

3. 의회와 헌법을 상상하다 – 민주 정치의 제도화는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1896년 조선, 공론의 장이 열리다 / 왕권과 민권, 주권은 누구에게 있나? / 중추원을 의회처럼 고쳐 운영하자 / “나를 체포하라” / 황제의 대반격, 그리고 대한국 국제 / 그런데, 왜……

4. 군주제에서 민주공화제로 – 민주공화제를 우리 것으로 삼은 때는 언제였을까?
“구한국이 사라짐을 슬퍼하고, 신한국 건설을 축원한다” / 새로운 대한을 상상하다 / 고종에게 망국의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요? / 공화 만세! 민국을 상상하다 / 대동단결하여 임시정부를 수립하자

5. 3·1운동, 마침내 대한민국이 탄생하다 – 대한민국은 언제, 어떻게 탄생하였을까?
주권민유를 선언한 3ㆍ1운동 / 대한독립만세, 공화만세! / 대한민국을 수립하다 / 헌법의 아버지 조소앙, 민주공화국의 시대를 열다

6. 혁명의 시대, 자유와 평등을 양 날개로 삼아 – 우리가 이해한 민주주의는 무엇이었을까?
‘혁명의 시대’ / 민주주의를 상상하다 / 《동아일보》……,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 민주주의의 두 날개 : 정치적 자유와 사회적 평등 / 치안유지법, 민주주의의 왼쪽 날개를 자르다

7. 민주공화국, 식민지 너머의 꿈 – 독립운동가들은 어떤 국가를 상상하였을까?
나라가 없다는 것 / 문제는 식민지 자본주의, 대안은 민주주의 / 독립을 꿈꾼다는 것은? / 균등 사회를 꿈꾸다 / 건국 강령 – 대한민국의 설계도를 만들다

8. 선거를 통해 민주공화국을 세우자 – 해방, 국가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
암흑의 세월? / 그날이 오면…… / “결정적 시기 무장봉기”로 독립을 쟁취하자! / 미국과 소련, 그리고 대한민국 / 1945년 8월 15일 / 선거를 통해 민주공화국을 세우자

9. 남과 북, 분단으로 치닫다 – 분단의 원인은 무엇이며 정녕 피할 수는 없었을까?
돌아온 이승만 /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조선인민공화국 / 모스크바 3상 회의…… / 신탁통치 반대냐 임시정부 수립이냐 / 합작인가 단독정부인가 – 38선 이북의 선택 / 민주의원과 민전, 그리고 미군정 / 미소공동위원회, 통일임시정부 수립을 가늠하다 / 분단을 피할 수는 없었을까?

10.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 대한민국 헌법에는 어떤 이야기가 아로새겨져 있을까?
분단으로 치닫다 / 두 개의 헌법 초안 / 두 개의 선거법, 그리고 첫 선거 / 헌법을 만들다 /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에필로그 1948년, 대한민국은 어떤 나라인가

부록 대한민국 헌법(1948. 7. 17.)

출판사 서평

19세기 말에서 정부 수립까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뿌리를 찾아서

대한민국은 1948년에 건국되었고, 한국인은 해방 이후에야 민주주의를 알았고, 한국 민주주의는 미국식 민주주의를 그대로 받아들인 것일까? 이 책은 역사적 사료와 인물들의 행적, 실천을 바탕으로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이러한 통념을 뒤집는다.
건국절 논란, 역사교과서를 둘러싼 갈등 등으로 우리 사회에서는 지속적으로 ‘대한민국은 어떤 나라인가?’라는 질문이 나오고 있다. 이 질문에 답하려면 역사 속에서 만들어진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헌법 제1조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고 본 저자는 대한, 민국, 민주, 공화국이란 단어가 등장하는 과정과 그 뜻을 살피고, 1850년대부터 대한민국 정부가 공식 출범한 1948년까지의 역사에서 우리 민주주의의 뿌리를 찾고 있다.
보빙사절단으로 세계를 둘러본 홍영식과 고종의 민주정체에 대한 대화에서 시작해 1948년 제헌헌법의 의미까지 짚어 보는 이 책은 우리 민주주의가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역사 속에서 실천하고 싸우며 만든 민주공화국의 살아 있는 의미는 무엇인지 생생하게 전달한다.

1.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기원을 찾다
_민주와 공화국이란 말을 언제 알았을까?

한국사에서 민주주의는 언제부터 사람들에게 알려졌을까? 그들이 알았던 민주주의의 개념은 지금과 같은 것이었을까? 그리고 민주주의의 개념을 알고 실천하고자 하였던 최초의 민주주의자는 누구였을까?
책의 첫 장에서 고종은 보빙사절단으로 파견되었다 돌아온 홍영식과 심각한 대화를 나눈다. 놀랍게도 그들이 나눈 대화는 민주주의 정치체제에 관한 것이었다. 세상물정 어두웠던 군주였을 것이라는 세간의 오해와 다르게 고종은 세계정세와 변화에 관심이 많았다. 물론 고종뿐이 아니었다. 보빙사절단으로 파견된 홍영식을 비롯한 개화파들은 오래전부터 실학사상을 통해 세계문물을 공부하고 있었다. 그들은 머릿속에 든 것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 돌아와서는 새로운 정치체제를 꿈꾸었다. 그들뿐이 아니었다. 동학농민운동을 주도했던 전봉준은 민중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정치체제를 운용해야 하는지 명확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전봉준을 심문한 조사관과 전봉준의 대화기록은 지금 읽어봐도 민주주의의 핵심개념과 딱 맞아떨어진다.
이들을 살피는 까닭은 그간의 역사교육을 통해 한국에 민주주의가 수립된 기원을 1948년 남한 단독 정부 수립으로 보는 통념을 뒤집기 위함이다. 저자는 구체적인 사료를 바탕으로 1850년대부터 한국 사회에 나타난 민주주의 논의 흐름을 추적하여, 민주주의를 우리의 역량으로 구체화시켜왔다는 것을 보여 준다.

2.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말의 의미를 역사에서 찾다
_대한민국은 어떤 나라인가?

민주주의는 다양하고, 시대와 지역에 따라 각각 다른 모습으로 형성된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주의는 외부에서 어느 한순간에 이식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어느 나라에서나 민주주의를 반대하는 세력과의 지난한 대결 속에서 성취되는 것이다. 우리 민주주의가 언제, 어떻게 시작되고 발전했는가를 알기 위해 우리 역사를 살펴봐야 하는 이유이다.
이 책은 우리 역사 속에서 만들어진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말의 의미를 19세기 말부터 1948년까지의 역사 속에서 찾고 있다. 1919년 임시의정원 회의록에서 “대한으로 망하였으니, 빼앗긴 나라를 되찾는다는 뜻에서 대한이 옳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제국으로 돌아가기보다 공화국을 이룩하고자 하니 민국이 옳겠습니다.”라며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이름을 결정하는 대목을 함께 읽고, 민주와 공화국이란 단어는 몰랐지만 그 뜻을 실천으로 옮긴 민들로부터 이후 각종 독립선언서와 대한민국 임시헌장, 제헌 헌법에 이르기까지 ‘민주공화국’이란 말을 담기 위해 치열하게 민주주의를 일구어 간 시간을 생생하게 들려주고 있다.
이 책은 우리가 민주주의란 말을 처음 알게 되고, 실천하고, 민주 정치의 제도화를 위해 노력하며, 결국 민주공화제를 우리 것으로 삼았던 그 시간들을 흥미롭게 탐구하면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헌법 제1조의 문구가 구체적으로 가슴 뭉클하게 다가오는 경험을 제공한다.

3. 역사로 배우는 입체적인 민주주의 교과서
_민주공화국의 역사를 담은 역사 교과서를 제안하다

저자는 전국역사교사모임의 《살아있는 한국사 교과서》, 《살아있는 세계사 교과서》 등 역사 대안교과서 집필을 주도해 왔다. 역사가 민주주의 교육에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에 줄곧 관심을 가져온 저자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므로 역사 교과서가 민주공화국 형성과 관련한 사실을 기준으로 내용을 선정하고, 학생들이 민주공화국의 건강한 시민으로 자랄 수 있도록 뒷받침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책은 새로운 역사 교과서의 방향을 제안하고, 그 교육과정의 초석을 마련하고 있다.
아울러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민주주의를 단순히 개념적으로 접근하여 가르치는 방식에서 벗어나 한국사의 구체적인 사건 속에서 민주주의의 개념이 어떻게 발전해 왔는가를 가르칠 수 있다는 점에서 역사적인 내러티브와 사회과학적 개념을 결합한 새로운 형태의 민주주의 교과서로 손색이 없다.

4. 풍부한 사료, 현장감 있는 강의 형식으로 지루하지 않은 역사교양서 

저자는 민주주의의 역사는 민주적인 글쓰기로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누구나 관심을 가질 만한 주제를 중심으로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사료를 풀어 쓰고, 인물과 사건이 생생하게 드러나도록 했다. 기존의 역사교양서가 주는 딱딱한 문체에서 벗어나 독자들과 교감하기 위하여 강의 형식으로 서술하였다. 아울러 민주주의를 고민하고 실천하고자 하였던 인물들이 살았던 시대로 바로 들어가서 그들이 나누는 대화를 생생하게 엿듣는다. 독자들은 이들의 대화를 통해 누가 더 진정한 민주주의자였는지, 혹은 최초의 민주주의자였는지 따져보는 재미와 함께 이들의 고민을 통해 앞으로 우리가 더 발전시켜 나아가야 할 민주주의의 방향이 무엇인지도 함께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다양한 사료와 통계자료를 인용하여 자칫 놓칠 수 있는 고증과 역사적 사실에 충실하고자 하였다.

1만 사회주의자선언

최종수정일 : 2011.05.18

카페 : [일만 사회주의자 선언] 모임 (cafe.naver.com/wethesocialists.cafe)

1. 활동계획

• 취지

반-MB를 전제로 한 진보정당대통합 국면에서 사회주의자들은 규모있는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 선언 속에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며, 스스로를 인식하고, 서로의 공간을 터나갈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보자는 차원에서 시작됨.

• 목적

– 추상적 목적

* 운동의 대상 : 사회주의에 동감하는 자, 사회주의를 감성적으로 받아들이는 개인, 조직에 소속되어 있음에도 사회주의자로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조직원 등.

* 운동의 매체 : 온라인에서 덧글과 스크랩을 통해 지지서명을 받는다. 오프라인의 경우는 메이데이를 전후로 지지서명을 받는 활동을 전개한다.

* 운동의 방향 : 1차적 목표로써 사회주의자로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도록 하고, 2차적 목표는 사회주의자들이 결집하고 연합하여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공론장을 마련한다.

1차적 목표 (단기) 사회주의자로써 서로 인식하도록 한다
2차적 목표 (중/장기) 결집/연합하여 사회주의자들의 의견을 나누는 공론장을 마련

– 구체적 목적

* 구체적 목적이란 현 단계에서 1차적 목표에 한한다.

* 사회주의자로써 자신 그리고 서로를 인식하도록 하는 수준으로 기획된다.

* 이러한 방식은 서명과 지지의사표명 정도를 통해서 결합될 뿐, 조직 가입이나 정당 가입 등으로까지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서로를 인식한다는 수준에서 지지하느냐는 수준의 인식론적 지평에서 우리의 활동이 이루어짐으로 이 활동은 홍보 또는 사회주의자의 ‘매체’가 된다는 수준으로 잡도록 한다.

* 숨어있는 사회주의자들, 이에 감성적으로라도 동조하는 개인들에게 접근할 매체가 부재한다는 점에서 우리들의 활동은 그러한 매체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도록 한다.

http://blog.jinbo.net/wethesocialists

We, the Socialists

  이 선언을 하고자 하는 우리는, 조직과 결합하지 않았으나 변혁을 갈망하며 진지하게 고민하는 개인들입니다. 이 선언의 목적은, 합당국면에서 규모있는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이들이 사회주의자로써 스스로를 인식하고, 선언 속에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며, 서로의 공간을 터나갈 수 있는 기회를 만든다는 취지에서 기획되었으며, 온라인-오프라인상의 홍보와 활동을 통해 선언에 동의하는 이들과 함께 다듬어나가며 변혁운동의 장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오롯이 설 공간을 터나가고자 합니다.

 

온라인에서는 선언 포스팅의 블로그로의 펌글을 통해, 그리고 blog.jinbo.net/wethesocialists의 해당 선언 포스팅에 대한 댓글을 통해 참여를 받고 있으며, 오프라인에서는 매주 월요일(3/28) 고려대학교 학생회관 생활도서관에 모여 선언의 구체적 의미와 방향에 대해 논의합니다. 활동과 스스로의 삶에 대해 고민하며 나아가는 당신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얼마 전 민주노동당 강령에서 ‘사회주의 원칙’을 삭제할 것으로 알려졌다. 사회주의 원칙이 진보세력의 통합에 걸림돌이 되고, 무엇보다 이를 삭제하는 것이 기층 당원들의 눈높이에 맞춘 처사라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에게 ‘사회주의’가 무엇인지, 그리고 사회주의자가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관해 다시 되돌아보게 한다. 이런 저런 구실로 사회주의 원칙을 퇴색시키려는 시도들은 단지 민주노동당 내에서의 현실만은 아니다.

 

우리, 사회주의자들은 어느 곳에서든 우리 자신의 원칙과 노선을 명확히 표현하는 것조차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다. 무엇보다 현실 정당 내부에서 우리들은 여러 가지 유혹에 직면해 있다. 우리는 우리의 구호와 강령을 약간만 완화하고 약간만 타협하기만 한다면 우리가 다시 힘을 얻을 수 있다는 협박과 회유에 직면해 있다. 우리들은 변혁에 대한 우리들의 열망을 제대로 수용할 수 있는 현실 정당과 조직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사회주의를 내세우는 조직들에서조차 ‘우리들이’ 생각하는 사회주의의 원칙이 무엇인지에 관해 자유롭게 토론을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우리들은 우리가 처한 어려운 현실에 대해 어떤 손쉬운 환상도 갖고 있지 않다. 노회한 진보적 어른들이 말하는 사회주의란 단지 겉치레에 불과했다. 지난 역사는 ‘진보’라는 저 막연한 관념이 사회주의 원칙을 얼마든지 판돈으로 걸 수 있는 것을 몸소 실증해 주었다. 사회주의를 말하는 여러 조직 역시도 의회정치의 의제에 끌려 다니면서 젊은 사회주의자들을 정치적 동원의 대상으로 전락시켰다. 이제 환상은 끝났다. 그러므로 우리, 청년 사회주의자들은 이제 우리가 생각하는 바를 명확히 말할 것이다.

 

‘진보’니 ‘통합’이니 하는 저 막연한 이름으로 우리가 견지하는 원칙들에 더 많은 힘이 실릴 것이라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속이는 짓을 그만 둘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견해와 의도를 감추는 것을 경멸받을 일로 여긴다. 대신 우리가 생각하는 진실이 무엇인지를 공공연하게 말하자. 대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우리가 무엇을 지지하는지 정직하고 분명하게 말하자. 우리의 신념을 선언하고 어디에서든 가르치자. 현재 운동이나 정당의 규모가 작다고 우는 소리를 내는 일은 우리의 몫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전체 진실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말할 것이며, 우리들이 말하는 이 진실이 어느 곳에서도 ‘합의’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선언할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사회주의의 원칙이란 합의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정치적 권리’를 다루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타협할 수 없는 사회주의적 원칙에 관한 우리들의 견해는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우리는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복지’가 시혜의 대상이나 선심성 정책이 아니라, 모두의 ‘보편적인’ 사회적 권리라는 사실을 무조건적으로 단언할 것이다. 복지는 헌법에 보장된 노동권, 교육권, 주거권, 행복 추구권, 그리고 사회적 국가를 실질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것이다. 복지는 너무나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소수 기술관료들이나 카리스마적인 정치인의 즉흥적인 판단에만 맡겨놓을 수는 없다. 그러므로 복지는 무엇보다 예산주권의 문제이다. 이제라도 사태를 다시 바로잡아야 한다. 시민들의 사회적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보육문제, 교육문제, 노동문제 등에 관해 어떤 복지가 필요한지에 대한 ‘판단’은 이제 ‘우리’들이 한다. 이에 관한 ‘정치적 책임’은 당신들, 예산을 멋대로 주무르던 정치인들과 관료들이 져야 한다. 시민들의 행복한 삶을 보장하기 위한 실질적 방안을 마련하는 데 예산을 우선 배분하라.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그 나머지 예산으로 당신들이 원하는 (각종 불필요한 토목사업과 같은) 소꿉놀이를 하라. 무엇보다 복지의 혜택을 이 사회의 구성원들이 부자이든 빈자이든 모두에게 보편적으로 돌아가게 하라. 우리는 ‘보편적’ 무상급식 정책을 강력히 지지한다. 이제 복지에 관해서 ‘누가’ ‘더’ ‘불쌍한’ 사람인지에 관한 모욕적인 판단을 국가와 관료들이 내리는 시대는 끝났다. 복지는 이 사회의 시민 구성 모두가 당연히 누려야 할 자랑스러운 권리이다. 국가와 관료의 책임은 이러한 권리를 보장하는 데 있다.

 

두 번째, 노동은 이 사회를 지탱하는 중요한 자원이다. 그럼에도 헌법에 보장된 노동권은 여전히 명목상의 문구에 불과했다. 우리, 사회주의자들은 모두 다 노동자라는 사실을 분명히 인지하며, 노동권이 단순히 몇몇 소외받는 사람들의 사회적 권리일 뿐만 아니라, 노동계급 전체의 ‘정치적’ 권리라는 사실을 단언할 것이다. 우선 차별받고 억압받는 자들이 노조의 자유로운 결성을 방해하는 저 흔한 폭력적인 시도들은 그 정의상 ‘불법적인’ 것으로 규정되어야 한다. 노동자와 철거민들에게 용역폭력을 동원하는 자본가들을 구속하라! 그리고 우리는 노동자들을 ‘정치적 주체’로 인정할 것을 요구한다. 노동은 단순한 상품이 아니다. 비정규직이든 정규직이든 그들로 하여금 임금결정에 참여하도록 하라. 근로조건에 관한 그들 자신의 요구는 노동의 분할(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분할)을 강제하는 자본의 공세를 무력화하는 수준까지 허용되어야 한다. 오늘날 한국의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의 요구가 지나치게 ‘과도’해질 것을 걱정하고 있다. 우리는 저들의 한가한 ‘걱정’을 공유하는 어떤 정치세력과도 함께 하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최저임금이 아닌 ‘생활임금’을 지지한다. 모든 노동자들은 그들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그 사회가 이룩한 문명을 향유할 권리가 있다. 그들이 받아야  할 ‘최저한’의 임금은 바로 그러한 권리를 척도로 산정되어야 한다.

 

세 번째, 우리들은 모두의 교육받을 권리를 옹호한다. 우선적으로 공교육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사교육을 포함한 사회적 불평등의 문제도 해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지적할 것이다. 오늘날 의무교육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수많은 학생들의 처우를 개선하는 데 실질적인 노력을 기울여라. 그들로 하여금 그들에게 필요한 교육을 제공하라. 공교육 내부의 경쟁과 폭력에 시달렸던 수많은 학생들이 ‘대안학교’를 찾아 전전하는 불행한 일이 다시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공교육 자체가 그들에게 ‘대안’을 제공하도록 요구하자. 그것이 국가가 응당 져야 할 책임이다. 학력 신장을 명목으로 학교에서 자행되었던 흔한 사적 폭력들을 사회적으로 통제하라. 학교는 시민 양성소이다. 그들에게 필요한 시민적 권리를 우선적으로 교육하라! 무엇보다 우리 사회주의자들은 공교육을 넘어 대학교육에 대한 ‘사회적 통제’가 필요하다는 것에 강력히 동의한다. 제 정신을 가진 대학생들은 이제 ‘대학 선진화’라는 미명 하에 캠퍼스를 화려하게 꾸미고 값비싼 상점들을 학내에 들이며 등록금을 인상하는 저 술책들에 더 이상 기만당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대학과 자본이 상아탑 위에 쌓아올린 이윤은 우리들에게 외설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명문 대학이든 비명문 대학이든 그들이 쌓아올린 이윤은 단지 이 땅의 파행적인 학벌제도와 차별적인 노동시장 구조를 이용하여 갈취한 지대(rent)에 지나지 않는다. 무엇보다 저 위선적인 소수의 명문대학들은 명문대학으로서의 자신들의 특권적인 ‘지위’를 선전하는 저 역겨운 행위를 통해 그들이 제공하는 교육이 단순히 시장에서 제공되는 상품이 아니라는 것을 몸소 반증해 주었다. 대학은 자본이 아닌 학생들이 요구하는 교육을 제공하라! 그리고 대학은 그들이 갈취한 이윤을 학내 구성원들, 학생들, 노동자들 모두에게 되돌려라!

 

네 번째, 우리 청년 사회주의자들은 청년들이야말로 이 사회의 ‘재생산’의 ‘책임’을 지고 있는 ‘주체’들이라는 것을 선언하며, 그들의 사회적 독립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을 역설할 것이다. 지금까지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어느 정치적 세력도 청년들을 단순한 ‘동원’의 대상 그 이상으로 보지 않았다. 오늘날 청년들 사이에서 만연한 정치적 냉소주의는 단순히 그러한 현실인식의 반영에 지나지 않는다. 청년들이 청년에게 요구되는 ‘패기’와 ‘야성’을 잃어버린 것은, 어디까지나 정치적 공간을 점유해왔던 기성세대 자신의 책임이다. 이제라도 위선적인 방식으로 청년들에게 사회적 참여할 것을 훈계하는 짓은 중단되어야 한다. 시위와 집회에 나가고 투표를 하는 등의 사회적 참여의 진정한 올바른 방향이 무엇인지는 ‘우리들’이 ‘결정한다.’ 무엇보다 청년들이 무한정 유예된 사회적 독립과 독자적 생존을 보장받기 위해 각자의 사적영역 속에서 자기계발과 노동에 매진하는 상황에서는 어떠한 정치적 대의도 사상누각에 불과하다는 점을 직시하라. 그들이 노동권, 주거권, 교육권 등의 사회적 권리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현실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 더 이상 부모가 그들을 무한적 부양할 필요가 없어질 때, 청년들의 사회적 독립과 더불어 그들의 제반 권리를 위해 투쟁의 당위성이 비로소 ‘의미’를 얻는다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서슴지 않고 자신의 권리를 위해 거리에 나서는 유럽의 청년들을 부러워하기 이전에, 각 정치세력들은 그들이 청년들의 사회적 독립을 보장하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진지하게 고민하라. 우리들은 이제 더 이상 진보니 뭐니 하는 공허한 정치적 미사여구에 속지 않을 것이며, 청년들을 본연의 사회적 주체로 진지하게 인정하는 정치세력들만을 진지한 연대의 상대로 고려할 것이다.

 

우리, 청년 사회주의자들은 현재 사회주의라는 대의가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것을 냉정하게 직시할 것이다. 무엇보다 이러한 위기는 ‘조직’의 위기일 뿐만 아니라 ‘개인’ 양자의 위기이기도 하다는 점을 말이다. 그 동안 진보적 이념을 내세우는 각종 조직과 정치세력들은 그들을 떠받쳐 왔던 개개인들에 대한 자신의 정치적 책임을 등한시 해 왔다. 조직들이 진보적 개인들을 추수하기에 급급한 상황 속에서, 반대로 진보적 개인들은 자신의 대의에 대한 무력감과 냉소주의에 빠져들었다. 지난날 촛불시위는 과거의 조직들에 절망한 개개인들의 느슨한 네트워크를 통해 정치적 변화를 불러일으키고자 했던 최후의 시도였다. 촛불시위 이후 우리는 더 이상 개인의 자발적인 내면과 의식만으로는 무엇도 할 수 없다는 또 다른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반대로 각 조직들은 조직의 재생산이라는 장벽에 부딪히며 대중 동원능력을 급격히 상실해 가고 있다. 그들이 하나 둘 의회전술과 진보 대연합이라는 유혹에 굴복해 가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럼에도 조직들은 자신의 책임과 과오를 깨닫지 못한 채 여전히 과거의 관성에 사로잡혀 있다. 우리, 사회주의자들은 이러한 문제상황에 놓여 있으며, 동시에 이러한 문제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다시 이 자리에 모였다. 조직과 정파를 떠나, 우리들은 진보적 이념을 내거는 각 정치세력들에게 자신의 정치적 책임을 질 것을 다시 한 번 요구할 것이다. 진보대연합이나 각종 선거공학에 기초한 망상들로 스스로를 속이는 짓을 그만두자. 대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앞서 말한 사회주의적 원칙을 분명하게 내거는 세력들만 지지하고 연대함으로써 우리의 의사를 분명히 하자. 그리고 그들에게 그들이 대중들에게 진 정치적 책임을 자각하게 하자. 조직들로 하여금 그들이 할 일을 하도록,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혹자는 이념만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말할 것이다. 우리들은 여기에 대해, 이념을 분명히 함으로써만 비로소 무엇을 할 수 있는지가 분명해질 것이라는 말로 대답할 것이다. 지금 대중들 사이에서는 이 사회가 재생산의 한계에 부딪혔다는 공통인식이 공유되고 있다. 말하자면 지금의 계급 사회가 이대로는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다는 공통감각을 소유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만연한 위기의식과 당혹스러운 망설임 속에서 우리는 더 이상 우리의 이념을 부끄러워할 이유가 없다. 거리로 나서 당당하게 선언하자. 혹자가 말했듯이, “사회주의만이 유일한 대안이다!”

http://blog.jinbo.net/wethesocialists/3

직업 소득 학력별 투표율

Licky Rooney
*농림 임업 어민: 朴 55.2-文 37.1%
*자영업: 朴 50.2-文 37.1%
*화이트칼라: 朴 32.7-文 53.5%
*블루칼라: 朴 43.1-文 48.1%
*가정주부: 朴 55.6-文 32.3%
*학생: 朴 27.9%-文 57.7%
*무직: 朴 60.4-文 19.3%

월(月) 소득별 지지율

*200만 원 이하: 朴 56.1-文 27.6%
*201만~300만 원: 朴 40.1%-文 47.6%
*301만~400만 원: 朴 43.5-文 47.3%
*401~500만 원: 朴 39.4-文 50.6%
*501만 원 이상: 朴 40.8-文 46.4%

학력별 지지율

*중졸 이하: 朴 63.9-文 23.5%
*고졸 이하: 朴 52.8-文 33.1%
*대재(大在) 이상: 朴 37.4-文 49.6%

확실한 2가지 여론의 흐름지표 ?

작성일 : 2012-12-17 20:53:29
여론에 대한 각종 설레발이 난무합니다. 문재인 선거캠프에서 카카오톡으로 가짜 여의도연구소 여론조사결과를 날릴정도니 오죽하겠습니까 ?  그런 설레발 말고, 직접적으로 나타나는 확실한 여론이 있습니다.

첫번째.  오늘 마감된 주식시장 주가입니다.

문재인 테마주
우리들 생명과학 -15% 하한가.   935원
우리들제약        -14.68%  하한가  930원
바른손             -14.96% 하한가   1,905원
박근혜 테마주
아가방컴퍼니 +1.89%  7,010원
보령메디앙스  +1.35%  7,500원
EG               + 5.85% 37,100원
바닥을 치고 더 내려갈때도 없는 문재인테마주는 하한가를 또 기록했습니다. 정보능력이 가장 높고 민감한 곳이지요.
반면에 대선시즌이 끝나면서 제법 떨어지기는 했어도 아직 가격이 높은 편인 박근혜테마주는 강보합세를 보였습니다

[D-1]민주, 하루종일 ‘마이크 OFF’

【서울=뉴시스】김민자 기자 =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후보 측은 대선 하루 전인 18일 새누리당에 대한 공격을 자제한 채 상대적으로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하루를 보냈다.

여야 후보 캠프 측은 전날까지도 국정원 선거개입 의혹,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불법선거운동, 북방한계선(NLL) 발언 등을 놓고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하지만 민주당은 문 후보의 특별(?) 지시로 이날 하루 동안 네거티브를 하지 않기로 결정, 대변인들도 투표 독려나 판세 정리만 했을 뿐 새누리당에 대한 공격성 발언은 자제했다.

하루 종일 이어지던 각종 지지단체들의 문 후보 지지선언도 이날만큼은 평소보다 횟수가 크게 줄었다.

박용진 대변인은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를 향해 선거운동기간 동안의 노고를 위로하기도 했다.

박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박 후보께서 선거운동기간 22일 동안 전국 101곳을 찾았고 1만㎞ 넘는 강행군을 해왔다”며 “시장이든 어디에서든 시민들을 만났다는 건데 여성의 몸으로 쉽지 않은 유세일정을 소화해내느라 고생이 많았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새누리당 선대위 분들도 고생 많이 했다. 박 후보와 새누리당 선대위 관계자들의 노고에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도 박 후보 측이 마지막까지 네거티브와 흑색선전에 매달리고 있다고 일침을 가했다.

박 대변인은 “박 후보든 문 후보든 간에 고생한 후보에게 격려의 말씀을 해주셨으면 좋았을 텐데, 새누리당 김무성 총괄본부장은 문 후보에 대한 인신공격에 가까운 막말을 쏟아냈다”면서 “이는 대통령 후보에 대한 예의를 넘어서 국민에 대한 무례이고 정치인으로서 최소한의 금도를 넘어서는 일이다. 몹시 실망스럽고 안타깝다”고 유감을 표명했다.

그는 “문 후보는 상대 후보와 정당이 네거티브로 아무리 공격을 해와도 이에 휘둘리지 않고 단호하게 ‘1일 1정책발표’라는 원칙을 지켜왔다”며 “마지막까지 불법 선거운동과 혼탁선거에 매달린 박근혜 캠프와 차별화된 행보를 보여줘서 국민과의 약속을 지켰다는 뿌듯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우상호 공보단장은 이날 오전 기자들과 만나 “마지막 날 만큼은 최대한 서로 공격성 발언은 자제하고 차분히 정리하는 분위기로 가야 하지 않겠느냐”고 언급했다.

rululu20@newsis.com

http://www.newsis.com/ar_detail/view.html?ar_id=NISX20121218_0011698821&cID=10301&pID=10300

구좌파적 정치행태

구좌파의 경우  운동과 민중에 대한 현신을 내세우며 상대방 개인의 권리와 인격을 간과하면서 역사와 이념을 강조하여 이상화하는 경향을 띠게 된다.

인간의 현실을 간과하여 역사의식을 앞세우고 자신의 의식을 내세우게 되는 그런 경향은 상대적으로는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와 오욕과 단절을 남겨 놓게 된다.  자신의 주장에 대해 확신이 과도하여 타자를 욕보이고 멸시하려는 열정을 억제하지 못할 때가 많다.  설득하기 위한 실증적 자료와 근거는 박약하니 목소리가 커지게 된다,  술과 감정적 과잉을 통해 행동하는 습관이 반복되고,  약한 근거를 채우질 못하니 말과 행동이 과격해지고 때로는 순교자적 의지로 자신을 포장하여 과장하게 된다.

이런 행태가 만연하게 되면서 어떤 조직도 협력과 단결을 유지하기 어렵고, 서로는 서로에게 상처와 분열로만 남게 된다.   누구도 모두를 알 수는 없다는 진리에의 개방성과 불가지론,  어느 하나의 이념이 진리를 독점할 수 없다는 다원주의에 기초하여 자신의 주장이 하나의 의견에 지나지 않음을 인정하는 절제의 미덕이 이 상황에서는 더욱 요청된다 하겠다.   정치적 통합은 이와 반대되는 공감과 설득에 기초하는 인간적 풍성함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논단 – 안철수 현상, 그리고 정상근대 열망

안철수 현상, 그리고 정상근대 열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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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IT 기업인 중 한 명이 가장 유력한 대선후보 세 명 중 한 명이 되었다. 불과 1년 사이 벌어진 일이다. 한국사회를 휩쓴 ‘안철수 현상’은 2년 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대선구도를 만들어냈다. 이 정도로 강력한 대중 현상에 주목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안철수 현상에 대한 비평에서 공히 목격되는 맹점이 있다. 안철수 ‘개인의 성향’과 안철수에 대한 ‘대중의 열망’을 동일시하는 태도이다. 그 두 가지는 서로 연관되어 있기는 하지만 실은 다른 층위의 문제다. 더구나 안철수가 정치적 대안으로 막 떠오르기 시작하던 시기 그의 가치관이나 이념에 대해 알려진 정보는 지극히 적은 상황이었다. 그러므로 안철수 현상을 논의할 때 가장 먼저 할 일은 안철수 개인과 그를 향한 대중의 열망을 구별하는 것이다.

안철수는 신자유주의자?

안철수 개인에 대해서는 여러 평가가 존재하는데, 그중 대표적인 게 신자유주의자라는 비판과 탈정치 또는 반정치주의자라는 비판이다. 물론 두 가지를 섞어 논하는 경우도 있다. 안철수의 저서나 강연, 대선 레이스에 뛰어든 이후의 행보를 보면 그를 대중의 정치혐오 정서를 이용하는 포퓰리스트나 반정치주의자로 볼 여지는 충분하다. 특히 최근 그가 정치개혁 방안으로 제시한‘국회의원 수 축소’ 같은 이야기는 구조적 문제의 원인을 엉뚱한 데로 돌려 지지를 확보하는 전형적인 포퓰리즘이다. 정치학자들 상당수가 지적하는 한국 정당정치의 최대 문제는 ‘제대로 대의하지 못하는 계층이 너무 많다’는 것인데, 국회 의석을 줄인다고 해서 과소대표의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안철수의 주장은 이혼율이 높으니 결혼을 금지하자는 것과 다름없다. 한국의 국회의원은 서유럽과 비교해보더라도, 오히려 대표성을 확보하기에 너무 적다는 게 문제다. ‘안철수=신자유주의자’라는 비판은 어떨까. 실제로 많은 좌파, 그리고 일부 중도개혁진영이 안철수를‘착한 이명박’ 또는 신자유주의자로 규정해왔다.

문화비평가 문강형준은 탈정치와 신자유주의를 엮어 “탈정치는 이명박의 당선과 더불어 시작됐다”고 말한다(‘탈정치가 이명박의 당선과 더불어 시작됐다’는 주장부터 이해하기 어렵지만 주제에서 다소 벗어나므로 넘어가기로 한다). 그러면서 “신자유주의 질서는 대중에게 ‘죽음’에 대한 불안과 ‘생존’에 대한 열망만을 남겨놓았다. 이 열망이 이명박을 통해 좌절되었다고 해서 대중은 다시 ‘정치’로 돌아가는 길을 택하지는 않는다”고 지적한다. “안철수라는 좀 더 ‘착한 이명박’을 갈구함으로써 경제-개인-안전이라는 완벽한 탈정치의 삼위일체를 즐기려한다”는 것이다(문강형준, 「안철수, 혹은 탈정치시대의 판타지」, 『문화과학』 68호).

물론 문강형준은 안철수가 신자유주의자라고 주장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대중이 신자유주의적 주체라는 의미에 가깝지만, 좀 더 정확히 말한다면 안철수의 이념과 대중의 열망을 구분하지 않고 섣불리 동일시하고 있다고밖에 볼 수 없다.

시장주의≠신자유주의

결론을 미리 밝혀두자면 신자유주의는 안철수 현상을 해명해줄 적절한 개념이 아니다. 안철수 개인은 성공한 자본가에 속하지만 신자유주의자라 보기 어렵다. 신자유주의를 종종 보수주의와 착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사실 신자유주의는 기존 체제를 전면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일종의 안티테제로 등장한 ‘변혁의 사상’이며 그만큼 그 내용과 방식 역시 놀랄 정도로 급진적이다. 자본이 축적위기에 봉착하자 과잉유동성 및 금융화의 경향이 급속히 퍼져 나갔고 기존의 사회협약과 노동조합을 무력화시키는 등의 공공성에 대한 전면적이고 광범위한 파괴행위가 국민경제의 이름으로 정당화됐다.

그러나 안철수가 저서나 강연에서 표현한 이념은 금융자본보다는 산업자본의 이해를 대변하는 것에 가깝고, 민영화나 노동에 대한 인식 역시 신자유주의적이라기보다 차라리 ‘목가적’이라거나 ‘순진하다’고 표현해야 온당한 것이었다. 안철수가 말하는 ‘경제민주화’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불균형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경쟁이 발생시키는 효과를 철저히 신봉하며 제도와 규칙이 공정하게만 적용되면 누구에게나 성공의 길이 열려 있다고 확신한다는 점에서 안철수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시장주의자이다. 그런데 이런 안철수의 시장주의가 바로 신자유주의냐고 물으면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다.

안철수의 복고적 자유주의

안철수의 생각은 신자유주의가 아니라 신자유주의가 등장하기 이전의 것이다. 정확히 일치하는 이념은 없지만 그나마 가장 가까워 보이는 이념이 있다. 18세기 스코틀랜드에서 시작된 자유주의, 좀 더 구체적으로는 애덤 스미스의 자유주의가 그것이다. 특히 안철수의 다분히 도덕주의적인 경영철학은『국부론』보다는『도덕감정론』의 애덤 스미스와 더 가까워 보인다. “『도덕감정론』에서 스미스는 인간사회를 단지 효용가치와 효율성만을 높이는 하나의 거대한 기계 또는 시스템으로 파악하려는 철학체계를 비판한다.” (박순성,『아담 스미스와 자유주의』(2003), 108쪽)한국의 우파들에 의해 왜곡된 것과 달리 애덤 스미스는 ‘동감(sympathy)의 윤리’를 강조한『도덕감정론』에서는 물론이거니와 심지어『국부론』내에서도 온전히 시장만능주의자였던 적은 없다. 안철수의 시장주의는 일본경제가 아직 잘나가던 시기에 주목을 받았던 로버트 오자키의 ‘인간적 자본주의’와도 유사성을 보이는데 인간적 자본주의란 “자본 지향을 사람 지향으로 대체한”체제로서 인적자원을 최고로 중요시하는 인식에 기초하는 것이다. 그는 오늘날 유명한 경영 멘토들이나 경영자들과 비교해보더라도 확연히 ‘덜 신자유주의적’이며, 2008년 미국 금융위기 이후 그런 경향은 더 강해졌다.

자기 계발하는 주체에서 우울증적 주체로

안철수 개인과 별개로, 안철수를 향한 대중의 열망을 살펴보자. 설령 안철수는 신자유주의자가 아니더라도 신자유주의를 내면화한 대중들이 안철수라는 아이콘을 통해 신자유주의적 열망을 표출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대중 역시 신자유주의적 주체라 단언하기 어렵다.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반을 풍미한 이른바 ‘자기 계발’ 열풍의 이면에는 시대의 흐름에 뒤처진 주체들의 좌절감과 패배감이 확산하고 있었다. 푸코의 후기 연구에서 비롯한 이른바 통치성(governmentality) 담론은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가장 강력했던 시대 자기 계발하는 주체의 출현에 대한 설득력 있는 분석 틀을 제시했지만, 통치성 담론에서 말하는 “지배 테크놀로지와 자기 테크놀로지의 매끄러운 상호작용”만으로 온전히 포착해낼 수 없는 현상들 역시 곳곳에서 감지되었다. 자기 계발에 끝내 실패한 사람들은 자기 계발하는 주체에서 우울증적 주체로 침잠했다. 성공신화에 취해있다가 문득 자신이 중산층에서 밀려났음을 깨달은 이들이 다시금‘치유(healing)’의 심리학, 정의와 공정의 윤리학에 시선을 돌리기 시작했다. 이들은 체제가 근본적으로 전복되는 변혁을 전혀 바라지 않았다. 그렇다고 신자유주의 개혁이 지속하는 걸 원하지도 않았다. 단지 미쳐 돌아가는 한국사회가 ‘정상화’되길 바란다. 대중이 안철수에게서 본 미덕은 강력한 정치적 추진력이나 개혁의지가 아니다. 약속을 지키고, 거짓말을 하지 않고, 아픈 청춘에 눈물을 글썽이며 “미안하다”고 위로를 건네는 그런 모습들이었다.

참혹한 전쟁과 분단, 군사독재세력에 의한 압축적 근대화과정은 굴곡진 민족서사와 한(恨) 많은 개인서사를 형성할 수밖에 없었다. 경제성장을 추구하면서 파괴되거나 손상된 많은 것들을 다시금 복원하고 정상화시키려는 시도와 요구는 그래서, 한국사회에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사고방식이자 그 자체로 공동체의 보편서사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서구사회가 이미 성취한 근대 민족국가를 온전히 만들어내지 못한 데 대한 대중의 강렬한 정서적 회한(“친일파를 척결․청산하지 못한 오욕의 역사”, “지긋지긋한 당파싸움과 사대주의 근성”, “민족정기가 훼손되고 허리가 끊긴 한반도”)도 이런 사고방식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정상근대 열망

안철수 현상의 본질은 정상근대(正常近代) 열망이다. 이 열망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열망과는 구분되어야 한다. 신자유주의이든 사회주의이든 공히 현실을 지속적으로 변화시키려는 이념이다.그러나 정상근대에 대한 열망은 그런 종류의 변화를 추동하는 정념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탈구된 현실을 안정화하려는 정념에 가깝다. 변혁에 대한 절박한 요구, 개혁에 대한 적극적 의지라기보다는 20년에 이르는 신자유주의 개혁의 피로감에 대한 반작용에 가깝다. 안철수, 그리고 안철수 현상을 ‘솔루션(solution)’이 아닌 ‘테라피(therapy)’라 부를 수 있는 이유다.

박권일

계간 <R> 편집위원,『소수의견』·『88만원 세대』저자

xenga@naver.com  http://gradnews.org/tc/541

논단 – 안철수 현상, 그리고 정상근대 열망 , 2012/11/04 1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