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Archives: 정치학

정의와 차이의 정치(Justice and the Politics of Difference), 아이리스 영(Iris Marion Young)

저자: 아이리스 영(Iris Marion Young)
출제: 2008이화여대(수시)
2008/2/12(화)
조회: 930

정의와 차이의 정치(Justice and the Politics of Difference)

Justice and the Politics of Difference PDF [ 원본 도서 PDF 파일]

[다] 보편적 인간성이라는 이상(理想)은 소수집단을 주류 사회로 통합하고 그들의 지위를 향상시키는 데 역사적으로 크게 기여를 해왔다. 그러나 소수집단은 향상된 지위에도 불구하고 계속 일탈 집단, 즉 타자로 간주되고 있으며 그들에 대한 차별은 더욱 교묘하게 작용하고 있다. 그래서 소수집단은 주류 사회로의 동화를 거부하는 대신,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정체성을 강조하고 자신들만을 위한 조직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주류집단 중심의 사회통합은 다음의 세 가지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를 초래한다. 첫째, 소수집단은 경험․문화․사회적 능력에서 주류집단과 엄연히 다른데, 집단 간의 차이가 무시되면 이로 인해 발생하는 불이익을 필연적으로 감수해야만 한다. 동화(同化, assimilation) 전략은 기존에 배제된 집단을 주류 사회에 통합하려는 것이다. 그래서 동화는 항상 게임이 이미 시작된 후에 그리고 규칙과 기준이 정해진 이후에야 소수집단을 게임에 참여시키는 것이나 다름없다. 둘째, 주류집단은 보편적 인간성을 강조함으로써 자신의 특수성을 은폐한다. 집단 간의 차이를 무시하는 것은 주류집단의 관점과 경험을 중립적이며 보편적인 것으로 조작하여 소수집단에 강제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주류집단의 문화제국주의는 영구화된다. 셋째, 주류집단의 “중립적” 기준을 적용하여 소수집단의 관습이나 문화를 일탈로 간주하면, 소수집단의 구성원들도 그 기준에 따라 자신의 집단을 폄하하게 된다. 문화적으로 보편적 기준이 존재한다는 생각을 받아들이게 되면, 예를 들어 소수집단의 자녀들은 백인의 영어식 억양과 다른 억양을 사용하는 자신들의 부모를 업신여기게 된다.

이와 달리 집단 간의 차이를 인정하고 그 차이의 긍정성을 옹호하게 되면, 소수집단은 자유롭게 되고 역동성을 얻게 된다. 지배문화가 경멸하도록 가르쳤던 자신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이를 자신 있게 내세움으로써, 그 동안 억압 받아 왔던 소수집단은 비로소 이중적 자의식을 극복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소수집단은 자신의 문화와 특성에 대한 가치와 특수성을 옹호함으로써 보편성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해 온 지배적인 문화를 상대화할 수 있게 된다.

– 제시문 [다]는 아이리스 영(Iris Marion Young)의 『정의와 차이의 정치(Justice and the Politics of Difference)』에서 발췌한 글이다. 이 글은 급진적 다문화주의의 입장을 주장하고 있다. 보편주의라는 이름으로 소수집단에게 동화를 강요하는 지배(주류)집단의 논리를 거부하면서 문화 다양성, 집단 차이(group differences)의 긍정적 측면을 강력하게 주장한다.

————————————————————————————————————–

논문 : 지구화 시대 도시 정의를 위한 시론 -분배 정의와 차이 인정을 중심으로-

An Essay on Urban Justice in the Age of Globalization: Focused on Distributive Justice and Recognition of Difference

– 발행기관 한국철학사상연구회
– 발행정보 시대와 철학 , 22 권 , 2 호 , Startpage 349 , Endpage 377 , Totalpage 29
– 저자 이현재 ( Hyun Jae Lee )
– 가격 5,400 원
– 발행년도 2011
– 주제키워드 지구화 시대, 도시, 분배의 정의, 차이의 인정, Globalization, Urban Space, Distributive Justice, Recognition of Difference
– 초록 이 논문에서 필자는 우선 지구화 시대 도시의 정의를 바라보는 두 가지 대립된 담론을 비판하는 데서 시작했다. 데이비드 하비는 맑스주의적 정치경제학의 관점에서 도시를 전지구적 자본축적의의 핵심 지점으로 보고 분배정의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이 과정에서 다양한 문화적 정체성의 인정을 소홀히 했다. 반면 이주와 문화이론의 관점에서 도시를 차이의 공간으로 보고 차이 인정의 정의를 주장하는 담론은 정체성의 인정이 분배의 문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보지 못했다. 따라서 필자는 첫 번째 대안으로서 두 가지 담론의 상호연관성을 보여주는 캐서린 깁슨의 다층적 계급과정에 대한 이론을 비판적으로 분석하였다. 분석에 따르면 깁슨은 다양한 문화적 정체성이 계급과정을 어떤 방식으로 다층화시키는지를 잘 보여주지만 착취의 문제를 넘어서 있는 차이 인정의 문제의 자율성을 충분히 보지 못한다. 이에 필자는 마지막에서 아이리스 마리온 영의 정의론이 분배 정의와 차이 인정의 두 담론이 갖는 자율성과 상호연관성을 더욱 잘 보여주고 있음을 논증하였다. 영이 제시하는 다섯 가지 억압의 형식은 문화적 차이의 인정뿐 아니라 분배의 문제 역시 정의 담론에서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며 각각의 억압 형식들이 상호 연관되어 있음도 보여준다.

 

Advertisements

현대자유주의 정치철학의 이해, 장동진

장동진, 현대자유주의 정치철학의 이해 (동명사, 2001)

 

1. 정치는 개인이 속해서 살고 있는 사회를 어떠한 근본 원칙에 입각하여 구성하는 것이다. 이러한 원칙은 개인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강제적 성격을 띤다. 정치가 만약 강제적 성격을 띠지 않는다면 정치에 대하여 개인이 심각한 관심을 기울여야 할 이유가 없다. 이러한 정치의 강제적 성격 때문에 언제나 정치의 규범성 문제가 거론된다. 정치철학은 이러한 정치의 규범성 탐구를 그 본질로 한다. 정치사회를 어떻게 구성하는 것이 보다 타당성을 지니느냐 하는 문제가 정치철학 논의의 중심을 이룬다. (5면)

2. 만약 사적 관계를 전제하지 않고 모든 사회적 관계를 공적 관계로 전환하게 된다면, 인간이 누릴 자유의 영역은 소멸할 것이다. 공적 관계는 통상 위에서 언급한 강제성을 내포하게 된다. 즉 공적 관계를 위반하였을 경우 이에 따른 사회적 제재가 뒤따른다. 따라서 모든 인간관계를 공적화하면 사실상 강제성이 인간사회를 지배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공적 관계를 설정할 경우에는 언제나 규범성이 대두된다. (6면)

3. 현대자유주의자들에게 나타나는 인간의 자유는 두 가지 점이 부각되고 있다. 하나는 인간은 자신의 가치관에 근거하여 자신의 인생을 영위할 자유가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개인이 자신의 인생의 저자가 된다는 의미이다. 다른 하나는 자신이 영위하게 될 정치사회의 근본원칙 수립의 자유로운 저자가 되는 것이다. (6면)

4. 특히 이 책에서 중심적으로 거론되는 롤즈의 자유주의적 정의관은 정치사회의 근본원칙 수립에 있어 상이한 신념을 지닌 개인들 상호간에 중첩적 합의를 지향할 것을 주장한다. 이러한 중첩적 합의(overlapping consensus)는 개인적 입장만을 개진하는 합리성(the rational)을 넘어 상이한 신념을 지닌 타자 역시 수긍할 수 있는 합당성(the reasonable)에 근거하여 공적 문제를 해결할 것을 제시한다. 이러한 합당성의 추구는 공적 이성(publich reason)의 활용과 불가분리의 관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7면)

5. 개인의 자유로운 인생을 보장하는 정치환경을 설정함에 있어 관련 당사자가 스스로 주체적인 당사자가 된다는 것이 현대자유주의 정치철학의 핵심이다. (8면)

6. 자유주의 정치철학은 상당한 보편성과 현실성을 지니고 있다. 자유주의의 보편성 역시 ‘인간의 존중’에서 출발하고 있다. 이 인간존중을 실현하기 위해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강조한다. 인간존중의 생각은 인권(human rights)으로 보다 구체화되어 나타난다. 인권의 존중이 정치적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는 자유주의 정치이념은 문화적 차이를 넘어 상당한 설득력을 지닌다. 또한 자유주의는 현실성을 지닌다. 인간이 자유롭게 살기를 원하는 것은 매우 현실적인 갈망이다. 그리고 인간이 상이한 생각과 가치관을 지닌다는 것도 매우 현실적인 가정이다. 상이한 인생관과 가치관을 지닌 개인들이 자신과 관련된 공동사를 논의할 때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고, 평등한 결정권을 가지고 합의하여 결정한다는 생각도 매우 현실적이다. 이러한 해결의 현실성 역시 문화적 차이를 넘어서 상당한 설득력을 가진다. (9면)

7. 정치철학은 ‘바람직한 정치질서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궁극적 해답을 찾아가는 탐구의 과정이다. 이것은 정치학 논의의 중요한 부분을 이룬다. 정치학에서 다루는 정치의 본질에 관련된 중요한 질문은 다음 두가지이다. 하나는 ‘정치가 실제로 어떻게 진행되는가’이며, 다른 하나는 ‘정치란 어떠한 것이 되어야 하는가’이다. 전자는 경험적 연구와 관계되며, 후자는 규범적 연구와 연결된다. 이 양자의 작업은 정치본질에 관한 규명의 시도로 이해될 수 있다. 정치철학은 물론 후자의 질문과 관련되는 규범적 연구이다. (19면)

8. ‘국가론’의 중심주제는 정의는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이러한 논의에서 나타나고 있는 플라톤의 이상국가론은 잘 알려져 있듯이 철인왕, 수호자, 노동자들의 3계층으로 이루어진 정치공동체에서, 이들 각 계층이 자신들의 고유한 덕목인 지혜, 용기, 절제를 수행할 때 정치공동체는 정의로운 상태에 이른다는 것이 간략한 내용이다(Plato, Republic, Books I-IV 참조). 이것은 논어의 ‘군군신신 부부자자’의 주장과 유사하다. (23, 24면)

9. 아리스토텔레스는 두 가지의 분류기준을 사용하여 6개의 정치체제를 구분해 놓고 있다. 두 가지 분류기준, 즉 통치자의 수와 공익/사익의 기준에 의하여 각각의 통치자의 수에 의한 정치체제의 좋은 형태와 나쁜 형태를 구분하여 대비시켜 놓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한 바람직한 정치형태는 군주정치, 귀족정치, 민주정치이며, 바람직하지 않은 형태는 전제정치, 과두정치, 중우정치이다. (24면)

10. 이처럼 공동체 전체와 그 구성원 간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이냐 하는 것이 정치철학의 핵심적 규명의 대상임은 부인할 수 없다. 다른 표현을 빌리자면, 이것은 공공선(common good)과 개인적 자유(또는 권리나 이익)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로 압축된다. (26면)

11. 현대공동체주의자들의 주장은 다만 개인의 존재이유와 개인의 성숙 및 발전은 공동체를 통해서만 가능하며, 개인의 가치관과 삶의 형태를 공동선의 관점에서 평가할 수 있기 때문에 이에 입각하여 국가는 일정의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입장으로 이해된다. (27면)

12. 그러나 이러한 정의 논쟁을 깊이 분석하고 보면, 결국 철학적 논의에서 핵심을 이루는 존재론(ontology)과 인식론(epistemology), 그리고 윤리학(ethics)의 문제를 떠날 수 없다. (28면)

13. 윤리학에서 옳고 그름(right/wrong)의 문제와 좋고 그름(good/bad)의 문제가 중심적 논의를 이룬다. 이 양자의 관계에 대하여 어떠한 입장을 취하느냐에 따라 의무론적 이론(deontological theories)과 목적론적 이론(teleological theories)이 나타나게 된다. 정치철학의 영역에서도 좋음/나쁨의 문제와 옳음/그름의 문제는 정치공동체의 운영논리와 깊은 관련을 가진다. (29면)

14. 특히 좋음/나쁨의 문제는 가치(value) 논의와 관계된다. 가치의 본질문제를 다루는 철학의 한 분야를 가치론(axiology, theory of value)이라고 한다. 이 가치의 문제에 대하여 어떠한 철학적 입장을 취하느냐에 따라 정치사회의 운영원칙의 수립이 상이하게 나타날 수 있다. 예를 들어, 가치의 문제를 객관적인 것으로 이해할 것이냐 아니면 가치를 인지하는 주체의 문제로 귀결시킬 것이냐 하는 것은 정치사회의 운영논리 수립에 근본적 갈림길을 열어 놓을 수 있다. (30면)

15. 현대자유주의는 이러한 가치의 중립성의 원칙에 기초하고 있다. 정치적 영역에서 가치 중립성의 원칙은 각 개인의 가치관에 국가는 중립적 입장을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표현되고 있다. (30면)

16. 철학적 입장에서 가치의 객관적 질서를 인정하게 되면 철학적 완전주의(philosophical perfectionism)가 되며, 정치적 영역에서 사회구성원의 가치관에 국가가 관여하여 바람직한 방향으로 해결하여야 한다는 논리는 국가완전주의(state perfectionism)라 할 수 있다. (30, 31면)

17. 좋음/나쁨에 기초하는 논리로서 좋음을 극대화하는 것이 바로 옳음(right)이라는 주장이 있다. 이러한 입장이 바로 목적론적 입장이다. 목적론적 입장의 대표적 이론으로서 공리주의(utilitarianism)를 들 수 있다. 공리주의의 입장이란 관련된 모두에게 최대의 효용을 가져다주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31면)

18. 한편, 옳음을 우선적 기초로 생각하는 정치철학적 이론의 방향은 의무론적 입장으로 규정된다. 이 입장은 좋음의 극대화에 앞서 옳음이 존재하며 이는 기본적으로 좋음의 문제와 독립하여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치철학적 이론은 사회의 전체적 효용의 극대화에 앞서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우선적으로 고려하여 정치사회의 운영원리를 찾는 것이 타당하다고 한다. 즉 사회 전체의 효용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개인의 자유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은 바람직한 사회운영원리라고 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31면)

19. 정의문제를 예로 든다면, 정의의 원리나 원칙이 객관적으로 실재하고 있고 이를 우리 인간의 이성을 통하여 알 수 있다는 입장이 있을 수 있다. 이러한 입장을 우리는 합리적 직관주의(rational intutioionism)라 한다. 이러한 입장을 대표하는 이론가로 플라톤을 들 수 있다. 정의의 이데아를 상정하고 이를 인간이성을 활용하여 알 수 있다는 플라톤의 이론은 합리적 직관주의를 대변한다. 반면에 이러한 바람직한 사회운영원리나 정의원칙의 객관적 실재 여부를 떠나서 우리 인간 이성을 활용하여 구성한다는 입장이 있을 수 있다. 이를 우리는 구성주의라고 한다. 특히 정치적인 문제 해결에 이러한 방법이 적용되었을 때 정치적 구성주의(political constructivism)라고 한다. 정치적 구성주의에서는 사회 운영원칙 또는 정의원칙을 특정의 진리관이나 포괄적 교리에 입각하여 해결하지 않고, 구성의 결과로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이러한 구성주의에서 중요한 점은 구성의 절차와 인간의 개념이 중요시된다. 왜냐하면 어떠한 구성절차와 어떠한 인간유형을 상정하느냐는 구성의 결과로 나타나는 정의의 원칙에 영향을 미치게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들이 바로 철학적 논의의 쟁점이 된다. (32, 33면)

20. 예를 들어, 서양 정치철학에서도 고대와 현대를 비교해 보면, 현대이론에서는 개인주의적 경향과 가치중립적 성격이 보다 많이 나타나는 반면, 고대정치철학에서는 공동체 중심적이고 완전주의적 성격을 보다 쉽게 찾아 볼 수 있을 것이다. (34면)

21. 자유주의 형성에 기여한 로크의 핵심적인 추론은 다음과 같다. 첫째, 제한정부론이다. 즉 정부는 그 기능과 범위에 있어서 제한되어야 한다는 논리이다. 이것은 정부는 공공 또는 공공선을 위해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어떠한 행위에 개입할 수 있는 정당한 권위를 갖고 있지 못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두번째, 법치(rule of law)이다. 정부는 아주 엄격하게 제한된 정당한 기능만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한다. 셋째, 권력분립(separation of powers)이다. 국가가 법에 의한 통치에 구속되기 위해서는 권력분립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본다. (71, 72면)

22. 고전적 자유주의에서의 자유란 언제나 의도적으로 부과한 제약이나 강제가 없는 상태로 묘사된 소극적 방법으로 인식되었다. 새로운 수정적 자유주의는 그러한 형태의 자유라는 것이 정치적 이상으로 고무될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이들에게는 자유란 가치 있는 행동에 방해가 되는 모든 장애를 제거하는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따라서 자유란 이제 하나의 적극적 개념으로 전환된다. 즉 자유란 의미 있는 행동양식을 추구할 수 있는 힘과 능력으로 간주된다. 고전적 자유주의와 대조하여 이 수정주의적 견해에 의하면, 자유에 대한 제한이라는 것은 의미 있는 행동에 대한 제약으로 인식되기 시작하였다. 의미 있는 행동에 대한 제약이라는 것은 사실상 이 제약을 당하는 사람들에게 아무도 의도적으로 부과한 적이 없는 것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의 대표적인 것이 가난과 질병이다. 그래서 현대 자유주의자들은 자유란 이름으로 의미 있는 행위를 하는 데 방해가 되는 이러한 장애들을 국가가 제거해 줄 것을 촉구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러한 수정주의적 형태의 자유주의는 적극적 자유의 개념을 통하여 국가의 보다 적극적이고 광범위한 역할을 주장한다. 이것이 자유주의 제2단계의 출발이다. (73면)

23. 20세기에서의 자유주의는 그의 주요 이념적, 실질적 적들이라고 할 수 있는 사회주의와 대립하면서 발전하게 된다. … 다른 한편, 자유주의의 주요 적은 나치즘(Nazism)과 파시즘(Fascism)이었다. 나치즘과 파시즘은 1930년대에 발전하였으며, 이들 역시 소위 경제적 자유주의의 심각한 사회경제적 결함들의 치유를 외견상 주창하였다. … 1945년의 나치즘의 패배와, 무엇보다도 1980년 후반 소련 공산주의의 붕괴는 서방에서 자유주의의 전제하에 광범위한 테두리에서 주요 이념논쟁을 이루어지게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들 논쟁들은 주로 어떻게 하면 자유주의적 정치이상과 가치를 가장 잘 해석하고 실현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에 집중되었다. 그때까지 가장 중요한 쟁점이 되어왔던 것은 보다 평등한 인생기회를 확보하기 위하여 경제적 자유를 어느 정도까지 제한해야 하는냐 하는 것이었다. (74면)

24. 1971년에 펴낸 롤즈의 ‘정의론’은 정치적 영역에서는 기본적 자유의 평등을 주장하며, 경제/사회적 영역에서는 차등원칙(difference principle)을 통해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그 사회의 최소수혜자 계층의 입장을 증진시키는 조건으로 정당화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입장은 특히 사회경제적 영역에서 복지국가의 모델을 정당화하는 이론적 근거를 제공해 주고 있다. 한편 고전적 자유주의의 현대적 부활은 프리드먼, 하이예크, 노직 등의 이론에서 나타난다. (75면)

25. 현대보수주의는 도덕적 영역에서 완전주의(perfectionism) 입장을 취하고 있다. 현대보수주의는 경제적 영역에서 국가개입의 최소화와 안보, 법질서 및 도덕적 판단의 문제에서 국가의 적극적 역할을 강조한다. 신자유주의(neoliberalism) 또는 신우파(the new right)로 규정되는 레이거노믹스(Reaganomics)와 대처리즘(Thatcherism)은 모두 현대보수주의의 산물로 이해할 수 있다. 한편 경제적 영역과 도덕적 영역 모두에서 국가개입의 최소화를 주장하는 자유지상주의(libertarianism)가 있는데, 이것이 신자유주의로 이해되기도 한다. (76, 77면)

26. 이러한 변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현대 자유주의는 최근 ‘합의의 정치’ 모델을 이론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것이 자유주의의 세 번째 단계이다. 합의정치의 이론은 롤즈의 중첩적 합의 또는 토론과 이성적 숙고를 강조하는 심의민주주의(deliberative democracy) 논의를 통하여 형성되고 있다. 이 세 번째 단계의 자유주의의 핵심은 정치체제의 근본원칙 수립의 저자가 되다는 점이다. 이 단계의 자유주의에서는 권력으로부터의 개인의 자유 보호는 부수적인 것이며, 정치체제를 운영하는 근본원칙 수립을 개인의 자유 해앗의 본질로 간주하는 적극적인 측면이 나타난다. (77면)

27. 공리주의 입장과 대조하여 계약론적 전통의 이론가로 홉스, 로크, 루소 등을 들 수 있으며, 현대의 대표적 이론가로서는 롤즈를 들 수 있다. 계약론적 이론의 특징은 자연상태나 개인적 인권을 전제로 하여 이론이 전개되고 있다. (82면)

28. 의무론적 입장을 옹호함에 있어 롤즈는 계약론적 전통에 입각하여 인간의 기본적 권리의 우선성을 강조한다. 이러한 기본적 권리의 보장은 결과나 목표에 의하여 좌우될 수 없다고 본다. … 즉 개인의 권리가 결과나 목표에 의해 위반되는 것은 정당하지 못하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83면)

29. ‘순수이성비판’을 통하여 나타나는 칸트의 인식론적 입장에서 이성의 기능은 독립적 실재의 본질을 인지하는 것이 아니고 이성이 그 일부를 구성하고 형성하는 경험의 영역을 아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은 정의론에 도입하여 롤즈는 인간의 이성에 의존하여 정의의 원칙을 구성해 나가려는 입장, 즉 실천이성을 통하여 실천이성을 통하여 사회정의의 원칙을 구성하고자 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83면)

30. 공정으로서의 정의의 핵심은 정의의 합의과정에서 편파성의 배제, 즉 불평부당성(impartiality)의 확보라고 할 수 있다. (87면)

31. 롤즈의 제1원칙은 자유의 평등 원칙으로 요약할 수 있다. 제2원칙은 차등원칙과 기회평등원칙의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롤즈 정의원칙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차등원칙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사회경제적 가치 배분의 문제와 깊은 연관성을 갖는 것으로서 롤즈 분배원칙의 대변이라고 할 수 있다. (87면)

32. 롤즈 이론의 출발점으로서 원초적 입장의 정당화 문제는 이후 공동체주의자들로부터 비판을 받는다. 공동체주의자들은 원초적 입장에서 상정되는 ‘추상적 자아’ 또는 ‘무연고적 자아’관은 상이한 정의관 수립을 본원적으로 차단시켜 놓는다고 비판한다. 이러한 비판은 정의원칙 도출에 있어서 원초적 입장의 정당화에 대한 재검토를 요구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89면)

33. 둘째, 원초적 입장의 이론적 정당성을 인정한다 할지라도 원초적 입장으로부터 정의의 두 원치그이 도출은 필연적인가에 대한 의문이다. 이의 대표적 예로는 하세이니(John C. Harsanyi)의 반론인 평균기대효용의 원칙(the expected average utility principle)을 들 수 있다. 비판의 요점은 불확실성 하의 합리적 개인은 롤즈의 맥시민 전략보다는 평균기대효용을 비교하여 선택한다는 것이다. (89, 90면)

34. 셋째, 롤즈의 원초적 입장의 정당성을 인정하고, 원초적 상태로부터 정의의 두 원칙이 필연적이라 할지라도 이 원칙이 현실적으로 파생시킬 수 있는 문제에 근거한 비판을 들 수 있다. 이 경우 비판의 요점은 롤즈의 차등원칙이 이론상 불평등을 통제할 이론적 장치가 결여되어 있어 무한정한 불평등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 경우의 차등원칙은 사회적 불평등 발생을 제어하여 사회협력의 조건을 유지시켜 주는 기능을 하는 평등주의적 성격보다 오히려 사회적 불평등을 정당화시켜 주는 기능을 할 수 있다는 비판이 가능하다. (90면)

35. 이러한 칸트적 구성주의의 일환으로 시도하는 것이 롤즈의 순수가상적 상황인 원초적 입장이라고 할 수 잇다. 이러한 가상적 상황의 설정은 정의의 원칙 합의과정에서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93면)

36. 롤즈는 이 논문(“Justice as Fairness: Political not Metaphysical”)을 통하여 실제적인 정치적 문제에 관해 일반적인 도덕적 개념이, 신념과 가치관이 극심히 다른 현대 민주주의에서 정의문제에 대한 공인될 수 있는 기초를 제공하는 것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한다. 즉 롤즈에 의하면, 형이상학적 또는 도덕의 독립적 질서에 관한 진리를 추구하는 철학이, 다양성을 전제로 하는 민주국가에 적용되는 정치적 정의관에 대하여 현실적인 공통된 기반을 제공하는 것에 한계가 있다고 본다. …이러한 구성주의는 이 문제, 즉 도덕적/정치적 가치의 독립적 질서의 존재문제에 대하여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계약론적 전통으로부터 공적 이성을 통하여 자유로운 합의와 조정을 도출하려고 시도하였다. (93, 94면)

37. 민주적 합의를 해야 할 당사자가 자신의 특성, 사회적 위치, 심리적 경향 및 가치관을 알았을 경우 사회적 기본원칙 합의 또는 문제 해결시 각 당사자가 자신의 입장을 고집하여 자신의 입장과 이익을 극대화할 것은 자명하다. 이 경우 문제해결 양상은 각자가 자신의 입장을 바탕으로 한 협상을 통해 해결하는 방향으로 전개될 것이다. 그리고 협상결과는 협상능력에 의해 좌우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95면)

38. 민주정치의 실행과 관련하여 또 하나 중요한 시사점은 계약론적 전통에 선 롤즈 이론의 강조점은 무엇보다도 기본적 자유는 사회/경제적 이이을 위해서 희생되거나 교환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님을 자신의 제1원칙과 제2원칙의 계서적 관계를 통하여 강조하고 있다. 즉 제1원칙의 동등한 자유의 원칙은 제2원칙의 사회/경제적 가치의 배분문제에 선행하여 적용된다는 것이다. 이는 공리주의의 원칙에서 사회의 총체적 공리나 평균적 개인공리의 극대화를 강조함으로써 개인의 기본적 자유가 제한되거나 희생될 수 있는 가능성을 방지하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96면)

39. 완전주의 정치관은 자유주의 정치관과 대조된다. 완전주의 정치관은 자유주의가 전제하는 가치관의 중립성 원칙에 대하여 상반된 입장을 취한다. 완전주의 입장은 철학적 완전주의와 정치적 완전주의로 구분할 수 있다. 철학적 완전주의는 가치관의 위계질서를 전제로 한다. 이러한 입장은 보다 바람직한 삶의 형태를 상정하게 된다. 정치적 완전주의는 시민들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해 보다 적극적인 국가의 개입을 정당화하고 있다. (135면)

40. 자유주의자들을 겨냥하는 비판의 대상이 되는 사회적 현상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을 들 수 있다. 즉 무기력한 시민정신, 난폭한 대중문화, 초개인주의적 환상과 도피주의, 가족제도와 같은 기본 사회제도의 취약성 증가, 현대생활에서 스케일과 기술적 복합성의 문제에 의한 시민적 자신감의 압도, 분별없는 현대소비주의, 시장중심의 개인주의로 인한 최소의 복지국가의 지탱에 필요한 시민적 연대의 약화 등이 거론된다. 이러한 사회적 현상들은 자유주의가 갖고 있는 도덕적 삶의 비정치화 또는 가치의 개인화, 또는 중립성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대자유주의의 핵심적 특징은 바로 가치관에 대한 중립성이라고 할 수 있다. 자유주의에서 중립성의 원칙은 다음과 같은 논리로 설명될 수 있다. 자유주의 정치철학에서 개인은 자유를 가진 존재로 상정되고 있으며, 이러한 자유의 본질은 상이한 가치관을 가진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그리고 특히 현대자유주의는 이러한 개인 상호간의 상이한 가치과니나 인생관에 대하여 중립성을 부여하고 있다. 중립성이란 상이한 가치관들에 대하여 어떤 가치관이 다른 가치관보다 우월하다는 주장을 거부하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138. 139면)

41. 자유주의에서는 개인의 자유의 우선성을 전제하고, 이러한 자유의 우선성은 상이한 가치관에 대한 관용으로 연결된다. 관용은 상이한 가치관의 존중과 고유성을 인정하는 것을 의미하며, 이것은 가치 상호간의 중립성 위에 성립할 수 있다. 이러한 중립성은 자유주의 사회에서 다원주의를 가능케 한다. 따라서 자유주의는 기본적으로 반완전주의(anti-perfectism)의 입장에 서게 되어 완전주의적 입장을 거부하게 된다. (140면)

42. 철학적 중립성은 두 가지 입장에 의해 가능할 수 있다. 철학적 중립성의 출현은 가치의 객관적 질서를 부인하는 입장에서 성립할 수 있다. 이는 결국 가치실재론을 부인하고 가치주관주의로 기울어지게 된다. 가치주관주의는 가치가 대상에 내재한다는 가치실재론적 견해를 부인하고 가치가 주관적 판단에 의하여 결정된다는 입장이다. 이에 의하면 가치는 각 개인의 주관적 영역에 속하므로 이 각자의 주관적 가치를 상호 비교할 수 없어 중립적이어야 한다는 논리로 발전할 수 있다. 이러한 입장은 바로 가치간의 불가공약성(incommensurability)의 논의와도 관계된다. (141면)

43. 가치관의 불가공약성은 어떤 가치를 다른 가치와 비교할 수 없다는 것으로 정의될 수 있다. 예를 들자면 “A와 B 어느 것이 더 낫다고 할 수도 없으며 그렇다고 동등한 가치를 지닌다고 할 수 없을 때 A와 B는 불가공약적이다.”라고 할 수 있다(Joseph Raz, The morality of Freedem, p. 322). (141면)

44. 존재론적 의미에서 가치의 객관적 질서를 상정한다 할지라도, 인식론적 입장에서 이를 알 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인간 인식능력의 한계를 인정하고 이러한 객관적 질서를 알 수 없다는 입장, 즉 인식 이전의 객관적 질서와 인식 이후의 지식체계의 불일치를 가정한다면, 가치 상호간의 불가공약성이 도출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142면)

45. 오늘날 자유주의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 즉 도덕의 부재, 사회질서의 문제, 공공교육의 문제 등이 발생하는 현상에 대하여 자유주의는 중립성의 원칙에 입각해서 이를 해결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고 있다. 자유주의에서 강조되는 가치관에 대한 중립성은 개인적 차원에서는 ‘좋은 삶’이 무엇이냐 하는 논의의 부재로, 공공적 차원에서는 ‘공공선’이 무엇이냐 하는 문제에 대한 논의의 부재로 연결될 위험을 안고 있다. (146, 147면)

46. 철학적 완전주의(philosophical perfectionism)는 특정 인생의 생활방법이 여타 인생의 생활방법보다 본질적으로 낫다는 것을 믿는 입장이다. 즉 어떤 인생이 본질적으로 우월하거나 보다 낫다는 것을 믿는 입장이다. (149면)

47. 이러한 합리적 구성주의는 결국 절차주의(proceduralism)와 필연적인 연관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151면)

48. 개인의 자율성을 전제하였을 때 국가완전주의의 입장은 어떠한 방향으로 실천가능할 것인가? 결국 개인의 자율성을 전제하였을 경우 국가완전주의 입장의 방향은 개인의 가치관과 도덕적 판단능력, 즉 자율적 능력의 향상에 적극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다. 존스턴(David Johnston)은 완전주의적 자유주의에서 인간은 자율적 개인이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정치적/사회적 구성은 그것이 그 사회의 성원들로 하여금 자율의 삶을 보호하고 증진시켜 줄 수 있는 한 좋은 것이라고 하며, 이를 ‘자율원칙(Autonomy Principle)으로 부르고 있다. (158면)

49. 이 인간관에 대한 비판은 자유주의가 가정하는 개인의 가치관 형성능력과 연관되어 있다. 공동체주의자들은 인간이 사회에 영향을 받지 않고 자율적으로 스스로의 가치관을 형성할 수 있다는 가정에 이의를 제기한다. 인간관에 대한 이들의 비판의 요점은 이러한 인간관 자체가 현실사회에서 찾아볼 수 있는, 공동체나 사회와 연결되지 않은 인간관으로서 추상적이라는 것이다. (167면)

50. 이러한 자율적 존재에 대한 신뢰는 원초적 입장에 놓은 개인들을 자신들의 선관을 스스로 형성하고 교정하며 합리적으로 추구할 수 있는 존재로 여기게 한다. 그러나 공동체주의자들은 롤즈의 이성적이고 자율적인 자아를 비판한다. 자율적 삶을 강조하기 위해 개인들을 공동체로부터 분리하는 것은 오히려 개인을 공동체로부터 고립시키게 되어 개인의 삶의 질을 저하시키게 될 것이라고 공동체주의자들은 주장한다.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상호 무관심하기보다 오히려 서로에게 자애를 베풀어야 한다고 본다. (171, 172면)

51. 공동체주의자들은 롤즈가 공동체가 개별적으로 가지는 문화적 특수성을 제대로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 공동체주의자들에게 공동체의 개별성과 차이는 각 공동체가 가지는 공동체의 특수성에 대한 관용의 정신을 상징한다. 관용은 차이가 있음을 인정하는 정신이다. (174면)

52. Michael Walzer는 On Toleration(1997)에서 관용은 차이를 가능하게 하고 차이는 관용을 필요로 한다는 점을 역설하며 각각의 공동체가 다른 전통을 유지해 왔음을 역사적인 실례를 통해 보여줌으로써 이러한 차이를 인정해야 한다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174면)

53. 롤즈와 드워킨이 중심이 되어 형성된 권리중심론자들의 국가중립성은 결국 반완전주의 입장을 취하게 된다. 아무리 국가라 할지라도 개인에게 특정한 형태의 삶의 방식을 강요해서는 안 되며 이러한 시도들이 개인들의 본질적 이익을 해친다고 본다. (175면)

54. 그러나 공동체주의자들은 국가의 중립에 대하여 반대 입장을 취한다. 국가중립은 곧 공공선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공공선의 포기는 공동체주의자들에게는 가장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여진다. … 아무리 뛰어난 개인도 공공선 또는 공공선이 전혀 형성되지 않는 사회에서 훌륭한 삶을 영위하기란 여간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공동체주의자들은 자유주의적인 국가중립성은 자기파괴적이라고 비판한다. (176면)

55. 만약 국가중립성이 강화된다면 복지국가에 의해 요구되는 희생을 시민들이 받아들이도록 하는 공공선의 공유기반을 약화시킬 것이라고 비판한다(Kymlicka). (177면)

56. 정치적 자유주의에서 롤즈는 목적과 선에 대한 자율적 판단능력을 갖춘 상호 무관심한 개인이란 자아관을 거의 변함없이 유지하고 있다. (178면)

57. 롤즈는 ‘정의론(1971)’에서 사회계약론의 원리를 보다 고차원적인 추상화를 통해 일반화하는 데 역점을 두었으며, 그 결과 ‘정의론’에서는 사회계약론의 전통이 도덕철학의 일 부분으로 간주됨으로써 도덕철학과 정치철학과의 구분이 모호해졌다고 한다. (199면)

58. 이러한 입장은 민주사회의 특징으로서 다양성과 관용을 전제로 하여 출발하고 있다. 롤즈는 이를 합당한 다원주의(reasonable pluralism)로 표현하고 있다. (200면)

59. 정치적 자유주의에서는 롤즈의 정의의 두 원칙은, 제1원칙에서 정의론에서의 자유의 평등원칙과 비교하여 정치적 자유의 공정한 가치보장이 새로이 강조되었으며, 제2원칙에서는 공정한 기회평등의 원칙이 차별원칙에 선행하여 기술되었다. (200, 201면)

60. 한편 공동체는 공유된 포괄적인 종교적, 철학적, 도덕적 원칙에 의해 지배되는데 반해, 질서정연한 민주주의는 합당한 다원주의를 전제한다. (201면)

61. 정치적 자유주의에서 ‘정치적’이라는 어휘는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우선 이 어휘는 정치적인 근본문제의 해결에 국한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정치적인 근본문제를 해결함에 있어 여타의 철학적, 종교적, 도덕적 입장에 의하여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해결한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한편 정치적 자유주의에서 ‘자유주의’ 의미는 정치적 근본문제를 합의나 계약을 통하여 해결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201면)

62. 정치적 자유주의의 핵심적 발상은 윤리와 정치를 분리시켜 정치적 근본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이다. 정치사회의 근본적 운영원칙을 수립함에 있어 정치적 자유주의는 문제해결을 위한 합의의 방향을 강조하며, 이 합의는 개인이나 집단의 특수성에 입각하여 공적인 문제를 해결하려 할 때의 한계성을 지적하고, 이러한 개인적 특수성이 표출되는 것에 제한함으로써 합당성을 추구하여 공적 합의, 즉 중첩적 합의에 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것이 개인이 중요시하는 인생관을 추구할 수 있는 공적인 장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정치적 자유주의의 근본적 발상이다. (202면)

63. 롤즈의 정치철학과 도덕철학의 구분, 즉 정치와 윤리의 구분은 ‘정치적 자유주의’에서 ‘정의론’보다 더 의도적으로 시도되고 있다. 롤즈는 ‘정치적 자유주의’에서 “자유롭고 평등한, 그리고 전 생애를 통하여 사회의 완전한 협력적 성원으로 간주되는 시민 상호간에, 세대에 걸친 사회적 협력의 공정한 조건을 규정하는 가장 적합한 정의관은 무엇인가?”에 대한 체계적 답변을 시도하고 있다. 여기에서 첫 번째 근본적 질문은 민주사회의 전통인 관용의 문제와 겨부되어 두 번째 근본적 질문으로 연결된다. 두 번째 근본적 질문은, “합당한 종교적, 철학적, 도덕적 교리들로 심각하게 분열된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들간에 정의롭고 안정된 사회를 상당기간 유지시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이다. (202, 203면)

64. 승계호 교수는 구성주의란 규범명제나 규범척도를 인간이 만든다는 입장이며, 이는 규범명제나 규범척도가 이성직관으로 알려진다는 직관주의 입장과 반대된다고 한다. 이러한 구성주의는 규범회의주의에서 비롯된다. 규범회의주의란 도덕적 실재(moral reality)의 존재를 부인하거나 도덕진리의 상대성을 주장하는 것 또는 도덕언명의 비인지성(noncognitive function)을 강조하는 것이다. (206면)

65. 롤즈의 ‘정치적인 것의 영역(the domain of the political)은 사회의 기본구조를 운영하는 근본원칙에 대한 합의라고 할 수 있다. (208면)

66. 롤즈의 정치적 정의관의 특징은 우선 종교적, 철학적, 도덕적 교리와 구별되는 ‘정치적 영역’을 설정하고 이의 해결에 있어서도 정치적인 방법인 ‘중첩적 합의’의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롤즈의 정치적 여역은 바로 ‘윤리적 갈등을 해결하려는 공간을 확보’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 정치적 공간의 확보는 ‘공적인 정치적 정의관’을 수립하는 것이다. (209면)

67. 자유롭고 평등한 존재로서의 시민의 두 가지 능력 중 가치관에 대한 능력은 합리성과, 정의감에 대한 능력은 합당성과 각각 결부되어 있다. 즉 합리성은 개인이 가치관을 형성 및 추구하고, 이러한 가치관에 입각한 개인적인 입장과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능력으로 이해된다. 한편 합당성은 정치사회의 여러 시민이 공존할 수 있는 논리로서 정의감으로 대표되고 있다. 롤즈의 이러한 두 가지 도덕적 능력은 무지의 장막을 특징으로 하는 원초적 입장과 결부되어 공적인 정치적 정의관을 형성하게 된다. (212면)

68. 이 원초적 입장이 중첩적 합의를 가능케 한다. 중첩적 합의는 각각의 상이하고 화해 불가능한 종교적, 철학적, 도덕적 교리들 모두가 지지할 수 있는 정치적 합의이다. 이 중첩적 합의는 상이한 교리들이 공존할 수 있는 합당한 정치적 해결을 의미한다. (215면)

69. (1) 개인은 평등한 기본권과 자유에 입각한 완전한 적정구조에 대하여 동등한 주장을 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 이 구조는 모든 사람에게 해당하는 동일한 구조와 양립할 수 있다. 이 구조에서는 평등한 정치적 자유, 그리고 다만 그러한 자유들이 그 공정한 가치를 보장받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217면)

70. 즉 좋음보다는 옳음이 우선하는 의무론적 입장, 그리고 원초적 입장의 장치에 의존하는 정의에 대한 구성주의 입장이 유지되고 있다. 하지만 몇 가지 차이점도 찾아볼 수 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정치적 자유주의’에서 명확하게 나타나는 도덕적 영역과 정치적 영역의 구분시도이다. 그렇지만 정의론에서와 마찬가지로 정치적 자유주의에서도 원초적 입장은 고수되고 있다. 즉 원초적 입장이라는 장치를 롤즈는 정치적 자유주의에서 정치적 문제 해결, 즉 사회운영 원칙을 구성하는 기능에만 국한하고 있다. 이로써 롤즈는 자신의 이론적 입장이 형이상학적이 아닌 정치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218면)

 

현대 정치철학의 이해, 윌 킴리카‎ (Will Kymlicka)

현대 정치철학의 이해 2  

 

Will Kymlicka(장동진, 장휘, 우정열, 백성욱 역), 현대 정치철학의 이해, 동명사, 2002

공동체주의의 자유주의 비판은 현대 영미 정치철학에 극적인 충격을 주었다. 1970년대에는 자유주의자들이 공리주의에 대응해서 일관성있는 대안을 규정하려는 시도의 일환으로 정의(justice)와 권리(rights)가 중심 개념이 되었다. 1980년대에는 공동체(community)와 맴버십(membership)이 핵심단어가 되었는데, 공동체주의자들은 자유주의적 개인주의가 실현 가능한 어떠한 정치 공동체를 위해 필요한 공동체적 정서, 정체성, 경계선을 설명해 주거나 유지시키는 데 얼마나 부적절한지를 보여주려 했다. (397면)

아마도 논쟁의 그 다음 단계는, 자유주의적 개인주의와 공동체주의 사이에 이러한 대립을 초월해서 자유주의적 정의와 공동체적 맴버십의 요구들을 통합시키는 시도로 나아가는 것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작업을 수행할 하나의 확실한 후보가 바로 시민권(citzenship) 개념이다. 시민권은 한편으로는 개인주의적 권리와 자격(entitlements)이라는 자유주의적 개념과 친밀하게 연결되어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특정한 공동체의 맴버십과 복속이라는 공동체주의적 개념들과도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그것은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 사이의 논쟁을 중재할 수 있는 개념을 제공한다. (397면)

많은 고전적 자유주의자들은 견제와 균형을 고안해 냄으로써, 특별한 덕성을 갖춘 시민성이 부재하는 상황에서도 자유민주주의가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고 믿었다. … 예를 들어, 칸트는 좋은 정부의 문제는 ‘악마들의 경영으로도 해결될 수 있을 것'(Galston 1991: 215에서 재인용)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각자의 이익들의 균형을 부여할 절차적, 제도적 기제로는 충분하지 않고, 어느 정도 수준의 시민적 덕성과 공적 정신이 필요하다는 것이 점점 확실해지고 있다. (398면)

사실 내가 제2장에서 지적했듯이, 롤즈는 이러한 ‘기본 구조’가 정의론에 있어서 우선적인 주제라고 말했다. 그러나 오늘날의 정치이론가들은 이러한 제도와 절차들을 운영해 나아가는 시민들의 수준과 성격에 대해서도 그만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따라서 1990년대의 정치 이론가들은 개별 시민들의 책임감, 충성, 역할을 포함한 그들의 정체성과 행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399면)

시민권에 대한 이와 같은 이론의 필요성은 로버트 퍼트남(Robert Putnam)이 이탈리아 지방 정부를 다루었던 영향력 있는 연구에 의해 극적인 지지를 받게 되었다. … 오히려 푸트남은 그들의 ‘사회 자본'(social capital)이라고 명명하는 그들 시민들의 덕성에서 비롯된다고 설명해야 한다. 사회 자본이란 그들의 신뢰의 능력, 참여 의지, 정의감 등이다. (399면)

그리고 그것은 동시에 샌들이 ‘형성적 기획'(formative project) 혹은 ‘형성적 정치'(formative politics)라고 명명했던 것을 고려할 필요가 있음을 정치 이론가들에게 인식하게 해 주었다. 즉 적절한 종류의 특성의 수준과 시민적 덕성을 지속적으로 가르치는 정부 정책이다. (400면)

따라서 이제 시민권 이론은 광범위하게도 이전의 제도적 정의 이론에 대한 필연적인 보완물로 간주되고 있다. … 나는 민주주의 시민권 이론이 정의론을 대체할 수 있다는데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 어떤 경우에도, 나는 시민권 이론을 정의론에 대한 대체물로서가 아니라 주요한 보완물로서 논의할 것이다. (400면)

전후 시기의 권리로서의 시민권(citizenship-as-rights)의 가장 영향력 있는 표현은 1949년에 출간된 마샬(T. H. Marshall)의 ‘시민권과 시민계급'(Citizenship and Social Class)이다. (401면)

시민적 권리는 18세기 발생했다. 정치적 권리는 19세기 발생했다. 그리고 사회적 권리는 – 예를 들면, 공적 교육, 보건의료, 고용보험, 노인연금 등 – 20세기에 들어서 확립되었다. 그리고 시민권에서의 권리가 확장되면서, 시민이라는 계급의 확장 또한 발생했다고 그는 지적한다. (401면)

많은 이론가들은 우리가 경제적인 자기 절제, 정치적 참여, 그리고 심지어는 공손함까지를 포함하는 겸손함과 덕성들의 시민권을 능동적으로 행사하여 시민권에서의 권리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보완할(혹은 대체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마셜의 관점 역시 현대 사회의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다원주의를 적절하게 인식하고 수용하는데 실패한다고 비판받아 왔다. …) (402면)

민주주의 이론에서의 ‘심의로의 전환'(deliberative turn) (406면)

만일 민주주의가 이러한 집단들을 ‘다수의 전제'(tyranny of the majority, 혹은 다수의 무관심과 나태함)에 종속되도록 남겨두지 않고 그들의 정의를 증진시키는데 도움을 주려고 한다면, 민주주의는 보다 심의적이 되어야 할 것이다. (407면)

고대인들이 정치적 삶을 증진시키기 위해서 사적 자유를 희생하는 반면, 현대인들은 정치를 자신들의 사적인 삶을 보호하는데 필요한 수단(어느 정도는 희생인)으로 바라본다. 사실상 아리스토텔레스적 공화주의자들은 이러한 역사적 변화를 역전시키고, 우리의 선관에 ‘고대인의 자유’의 우선성을 회복하려고 노력한다. 이것은 두가지 방법으로 할 수 있다. 정치 참여의 본질적인 가치를 찬양하거나, 사적 삶의 가치를 저하시킴으로 가능하다. 대부분의 아리스토텔레스적 공화주의자들은 두 가지 전략을 혼합하여 사용한다. (411면)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적 공화주의를 변호하기 위해 개인들이 진정한 사회적 삶을 이끌기 위해서는 사회가 필요하다는 것만 보여주어서는 불충분하다 – 자유주의자들도 그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아리스토텔레스적 공화주의자들은 이것을 넘어서서 개인들이 정치적으로 능동적이어야 할 필요를 보여주어야 한다. (412면)

우리는 더 이상 정치를 찬미하지 않는데, 그것은 우리의 사적이고 사회적인 삶이 고대 그리스인들의 그것보다 훨씬 더 풍요롭기 때문이다. (414면)

그리스인들은 사적 영역을 ‘결여'(privation, 이것이 사실 ‘사'(private)라는 단어의 어원이다)의 영역으로 간주했고, 그 안에서 가치를 거의 발견하지 못했다(사실 그들은 ‘사’라는 개념에 필적하는 어떤 것도 갖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 ‘현대인’들은 친밀성, 사랑, 여가, 소비와 노동에서 헤아릴 수 없는 즐거움을 발견한다. (414면)

이러한 사적 삶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적 공화주의자들의 경멸은 여성에 대한 경멸과도 역사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415면)

그러나 좋은 삶에 대한 단일한 가치관에 특권을 주려는 그와 같은 시도는 현대 사회에서는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 ‘다원주의의 사실'(fact of pluralism)은 단지 전통적 공동체주의만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적 공화주의의 부활 역시 무너뜨린다. (415면)

‘권리로서의 시민권'(citizenship-as-rights)의 전통적 모델은 두 가지 방향으로부터 도전을 받아왔다. 첫번째는, 앞장에서 검토되었듯이, 시민적 덕성과 적극적 정치참여에 보다 많은 관심을 가짐으로써 권리에만 향해진 집중을 보충할 필요성을 강조하는 방향읻. 두 번째 도전은, 이번 장에서 다루어질 것인데, 문화적 다원주의(cultural pluralism)와 집단 차별적 권리(group-differentiated rights)에 보다 큰 관심을 기울임으로써 공통의 권리에만 맞추어졌던 초점을 보강할 필요성을 강조하는 방향이다. 두 번째 도전은 정치철학뿐만 아니라 현실정치세계에서 일어나는 광범위한 운동 역시 반영한다. 이러한 운동은 ‘차이의 정치'(politics of difference), ‘정체성 정치'(identity politics), ‘인정의 정치'(politics of recognition)와 같은 다양한 형태의 제목으로 논의되어 왔다. (455면)

과거에는 이 다양성이 ‘정상적 시민'(‘normal’ citizen)의 모델에 의해 무시되었거나 억제되었다. 전형적인 정상적 시민모델의 개념은 장애가 없고 이성애자인 백인 남성의 특성에 기초하고 있었다. 이러한 정상성 모델에서 이탈하는 사람은 누구라도 배제, 주변화, 침묵화 또는 동화의 대상이 되었다. 그래서 유색인 집단은 종종 서구민주주의로의 진입이 거부되었고, 설사 허용되었다 하더라도, 시민이 되기 위해서는 그들에게로의 동화가 기대되었다. 따라서 토착민(indigenous people)들은 자신의 고립된 보호구역으로 단절해 숨어 버리거나, 아니면 자신들의 전통적 삶의 양식을 포기해야만 했다. (455면)

이들은 좀 더 포용적인 시민의 개념을 요구하고 나선다. 이 포용적 시민 개념은 이들의 정체성을 (비난하기보다는) 인정하고, 이들의 차이를 (배제하기보다는) 수용한다. 이러한 운동의 특징은 이들 운동이 ‘정체성’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정체성 정치'(identity politics)의 형태라고 종종 말해진다. 이러한 규정은 그 이전에 계급에 기초한 노동자나 농민의 정치운동과는 다른 것이다. 계급에 근거한 운동은 경제적 이익이 문제가 되었다.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볼 때, 정치란 언제나 정체성과 이익 양자 모두가 문제가 된다. 문제는 항상 어떤 정체성과 이익이 증진되어야 하는가에 있다. (456면)

전통적인 ‘권리로서의 시민권’ 모델의 목표는 시민들 사이의 일종의 공통적인 국민 정체성을 증진시키는 것이었다. 마샬(T. H. Marshall)이 직접 강조했듯이, 시민권은 일련의 권리와 의무로 규정된 단순한 법적 지위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또한 정치공동체에서 한 사람의 멤버십을 표현하는 정체성을 의미한다. 그리고 시민권 권리(citizenship rights)의 개념을 확장하여 보건의료와 교육 같은 사회적 권리를 포함할 것을 요구하는 마샬의 주장은, 그렇게 하는 것이 바로 국민의식과 국민적 정체성의 공통감(common sense)을 증진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데 기초한다. 보건의료 및 교육을 사람들에게 보장해 주는 것이 마샬에게는 단순한 인도적 이유, 즉 기본적 필요를 충족시켜 주는 것만은 아니었다. 사회적 권리는 또한 이전에 소외되었던 집단들을 공통의 민족문화로 통합하고, 또 그렇게 함으로써 민족적 통일성과 충성의 원천을 제공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되었다. … 그는 특히 영국의 노동계급의 통합에 관심이 있었다. (456면)

그리고 사실상 복지국가의 발전은 서구민주주의의 전체를 통해서 볼 때 노동계급을 민족문화로 통합하는 데 아주 성공적이었다. (457면)

이와 유사한 맥락에서, 서구국가들은 의료혜택을 각각의 인종집단에 따라 분리된 병원에서 제공하지 않았다. 심지어 분리된 병원에서 제공하는 것이 의료혜택을 효율적으로 제공해 실시하는 방법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그것의 목표가 단순히 추상적 의미에서의 기본적 필요의 충족에 있지 않고, 공동의 시민의식을 창출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458면)

그래서 ‘공동의 권리로서의 시민권'(citizenship-as-common-rights)의 전통적 모델은 국민통합의 개념과 깊이 결부되었다. 공동의 시민권리와 국민통합의 이러한 연결은 지금에 와서는 비판을 받고 있다. 많은 집단들 – 흑인, 여성, 토착민, 인종 및 종교적 소수자, 남성 및 여성 동성연애자 -은 이러한 공동의 시민권리를 소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소외와 사회적 냉대를 느낀다. 이러한 집단의 많은 구성원들은 이들의 사회 경제적 신분 때문이 아니라(또는 신분만이 아니라), 이들의 사회문화적 정체성 – 즉, 이들의 ‘차이'(difference)에 의해서도 사회적 소외감을 느낀다. (458면)

이들은 영(Iris Marion Young)이 명명한 ‘차등적 시민권'(differentiated citizenship)과 같은 어떤 형식을 (Young 1989) 요구한다. 이 입장에 따르면, 단순히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집단을 통해서 특정 집단의 구성원들이 정치공동체에 병합하는데, 부분적으로 이들의 권리는 이들의 집단구성원들의 자격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이러한 집단적으로 특수화된 형태의 시민권을 주장한다. 이렇게 주장하는 이유는 이들이 단일한 공통의 국민문화가 존재한다는 발상을 거부하기 때문에, 혹은 차등적 시민권을 통해서 이러한 집단의 사람들을 공통의 국민문화로 수용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458면)

왜 이러한 집단의 사람들이 노동자 계급에 의해 요구되었던 공동의 시민권리 대신에 (또는 이러한 권리에 추가적으로), 일종의 차별적 시민권을 요구하게 되었는가? 이러한 경우들에서, 왜 공동의 사회적 권리를 통해 모든 시민을 통합하려던 마샬의 전략은 실패하게 되었는가? (460면)

과도하게 단순화시켜 말하자면, 모든 서구민주주의에는 두 가지 강력한 위계가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다. 첫째, 경제적 위계(economic hierarchy)가 있다. … 이러한 경제적 위계구조에 내재하는 불평등에 대한 투쟁은 재분배의 정치(politics of redistribution)를 배태시키게 된다. 이것은 전통적 형태의 노동계급 동원을 반영한다. … 집단차이를 축소하는 것이 목표이다(즉, 기회와 문화에 있어 계급적 차이를 축소시키기). (461, 462면)

그러나 영국사회에는 마샬이 많은 주의를 기울이지 못했던 또 다른 위계구조가 있었다. 이것은 신분 위계구조(status hierarchy)이다. … 이러한 신분 위계구조에 대한 투쟁은 ‘인정의 정치’를 낳게 한다. 인정의 정치는 최근 동성애자, 종교적 소수자, 이민자, 소수 민족들이 동원되는 저변에 깔려 있는 정치 형태를 의미한다. … 목표는 집단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다. (462, 463면)

우리는 비록 분석적 목적으로 재분배의 정치와 인정의 정치 간의 차이를 구별할 수 있긴 하지만, 현실세계에서 이 양자는 연결되어 있다. 어떤 집단들은 이 양자의 위계구조 모두에서 최하층 또는 거의 최하층에 근접해 있어서, 재분배와 인정을 위해 운동을 결집해야 할 필요성을 느낄 수 있다. 사실상 많은 사람들 – 특히 마르크스주의자들 -은 두 번째 위계구조는 순수하게 이차적이고 부수적이라고 생각해 왔다. … 이 견해에 따르면, 경제적 불평등이 제거된다면 문화적 불평등도 자동적으로 사라져야 한다. 그래서 전통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우리의 모든 노력이 재분배의 정치에 투여되어야 한다고 본다. … 놀라울 정도의 숫자의 자유주의자들 역시 문화적 불평등이 이차적이고 파생적인 성격에 관한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이러한 견해를 인정해 왔다. (463면)

그렇지만 경험적 증거는 신분위계구조가 경제적 위계구조로 환원될 수 없음을 시사해 준다. 확실히, 여성, 흑인, 원주민과 같은 일부 집단들은 취약한 경제적 위치에 있어서도 불균형적으로 집중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문화적 표현에 있어서도 비천하거나 침묵적 입장에 처해 있다. 그러나 경제적으로는 부유하지만 문화적으로 낙인찍힌 다른 집단들도 존재한다. 예를 들면, 대부분의 서구 민주주의 국가에서 동성애자들에게 이것은 사실이다. 이들은 이성애자들과 마찬가지 수준의 수입과 교육의 수준을 누리고 있지만, 극단적인 동성혐오로 인해 고초를 겪고 있다. 또한 아랍계 또는 일본계 미국인처럼 일부 부유한 이민자들 혹은 종교집단을 예로 들 수 있는데, 이들은 평균수준 이상의 교육과 수입을 누리고 있지만, 문화적으로는 소외되고 있다. 마찬가지로, 카탈로니아인, 퀘벡인과 같은 소수 민족 역시 다수 민족과 같은 수준의 생활을 향유하고, 어떤 경우에는 사실상 보다 높은 수입의 생활을 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들의 언어와 문화는 주류의 언어와 문화보다 열등하다고 간주된다. 이러한 모든 집단들은 경제적 평등을 달성한다고 신분불평등이 해소되지 않는다(비록 경제적 평등의 성취가 의심할 바 없이 신분불평등을 완화한 것은 사실이지만). 따라서 경제적 평등의 성취가 인정의 정치를 동원할 필요성을 제거하지는 못했다. (463면)

이와는 대조적으로, 신분 위계에서는 특권적 지위를 향유하고 있지만, 경제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처한 집단들도 있다. 이것은 대부분의 서방국가들에 있어서 전통적인 남성노동자 계급의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노동계급은 부정의한 경제적 위계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있긴 하지만, 신분 위계에서는 종종 혜택을 누린다. 대부분의 남성 노동계급은 자신들의 남성성별(male gender), 백색 피부, 기독교라는 종교, 이성애적 성향이 그들에게 여성, 흑인, 유태인 또는 동성애자들보다 우월한 지위를 부여하는 규범이라고 규정함으로써 만족을 누릴 수 있게 된다. (464면)

복지국가가 도입되기 이전에는 분명히, 남성 노동자 계급은 교육에 대한 접근성, 경제적 기회 및 수입의 결여로 인해 이러한 신분위계구조의 혜택을 누릴 수 없는 경우가 흔했다. 따라서 전통적인 노동 계급의 배제를 치유하기 위한 해결은 우선적으로 사회적 권리를 통한 공동의 시민권을 강화하는 것이었다. 신분 위계구조에 도전할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사실상 많은(백인, 남성, 기독교, 이성애자인) 노동계급의 구성원은 여성, 동성애자, 종교적 소수자, 또는 이민자들이 신분위계질서에 도전하려는 시도에 저항해 왔다. 상층 신분집단에서 경제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는 구성원들인 전통적 노동계층은 경제적 위계구조에 대한 도전에는 관심이 있었으나, 신분위계질서를 보존하려는 점에서는 이기적인 입장을 취했다. (464면)

따라서 경제적 위계와 신분적 위계 간에는 단순한 상관관계가 없다. 그리고 이것은 공동의 사회적 권리를 통한 마샬의 통합전략이 노동계급에게는 일리가 있었지만 다른 집단들은 왜 만족시키지 못했는가를 설명해 준다. … 여성 또는 흑인 같은 다른 집단들에게 있어서, 평등은 재분배의 정치와 인정의 정치 양자 모두를 요구한다. (464면)

신분 불평등이 경제적 불평등으로 완전히 환원이 될 수 없거나, 또는 경제적 불평등으로 인해서만 파생되지 않는다는 인식의 증대는 인정의 정치에 대한 관심의 증대를 가져왔다. (464면)

사실상, 수많은 사람들이 집단차별적 시민권(group-differentiated citizenship)의 발상이 모순적인 용법이라고 간주한다. 전통적 견해에 의하면, 시민권이란, 정의상 모든 사람들을 법 앞에서 동등한 권리를 가진 개인들로 간주하는 문제이다. 이것이 바로 시민들의 정치적 신분을 그들의 종교, 인종 혹은 계급적 멤버십에 의해 결정해 버리는 봉건적 그리고 여타의 전근대적 견해들로부터 민주적 시민권을 구별해 주는 점이다. 따라서 ‘집단구성원에서부터 파생되는 권리 또는 요구에 기초한 사회 구성은 시민권에 입각한 사회의 개념과는 첨예하게 상치된다'(Porter 1987; 128). 따라서 차별적 시민권 개념은 시민권 이론에서 아주 급진적 발전이라 할 수 있다. (465면)

다문화주의와 소수자권리에 관한 철학적 논쟁은 최근 들어 그 범위나 기본 용어에 있어 모두 급진적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1980년대 중반까지 이 분야를 연구하는 정치철학자나 이론가는 매우 드물었다. 사실상 금세기의 대부분에 걸쳐서, 인종 문제는 정치철학자들에게 주변적인 문제로 간주되었다. … 그렇지만 수십 년간의 상대적인 무관심의 기간을 거친 오늘날에 이르러, 다문화주의 문제는 정치이론의 전면으로 부상했다. 이러한 변화의 이유를 몇 가지로 추적해 볼 수 있다. 가장 명백하게는, 공산주의의 붕괴가 동유럽에서 인종민족주의(ethnic nationalism)의 파도를 불러 일으켰다. 이러한 양상은 민주화 과정에 극적인 영향을 미쳤다. 공산주의의 잿더미로부터 자유민주주의로 수월하게 진정할 것이라고 여겼던 낙관적인 가정은 인종문제와 민족주의 문제로 인해 크게 빗나가게 되었다. 그러나 민주주의가 오랫동안 확립된 국가에서도 인종문제를 돌출시켰던 많은 요소들이 있었다. (466면)

http://gojuraphil.blog.me/147288815

정치적 책임에 관하여 , 아이리스 M. 영

정치적 책임에 관하여

아이리스 M. 영 지음 | 허라금, 김양희, 천수정 옮김 | 이후 | 2013년 06월 21일 출간
320쪽 | 153 * 210 mm 판형알림 | ISBN-10 : 8961570706 | ISBN-13 : 9788961570701

책소개

『정치적 책임에 관하여』는 아이리스 영이 자기 이론의 실천적인 면모를 최대한으로 이끌어 낸 야심찬 기획이다. 지금껏 차이의 정치학과 급진 민주주의의 이상을 통해 구조적 밑그림을 제시했다면 이 책에서는 그 밑그림 안에서 살아 숨쉬는 ‘행위’를 문제시하고 ‘행위자’에 직접 말을 건다. 자신의 이론적 성과를 통합하면서도 거기에 더할 수 없는 생명력을 불어넣은 이 책이 아이리스 영의 유고작이 되었다는 게 아쉬울 뿐이다.

저자소개

저자 : 아이리스 M. 영

저자 아이리스 M. 영(Iris Marion Young)은 2000년부터 시카고 대학 정치학과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며 정의론과 민주주의 이론, 그리고 여성주의 이론에 헌신했다. 영은 추상적이고 정교한 철학적 논의를 현실의 정치적 쟁점, 특히 사회 부정의의 문제에 결합시키는 데 누구보다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대표작 『정의와 차이의 정치학Justice and the Politics of Difference』(1990)이 20개국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면서 국제적 명성을 쌓았다. 이 책에서 영은 기존 정의론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면서 차이를 인정하는 새로운 정의론을 발전시켰다. 그해 《미국정치학회》에서 수여하는 “빅토리아 슈크 상”을 수상했으며, 분배적 정의를 넘어 지배와 억압에 문제 제기할 수 있는 틀을 마련해 정의론의 지평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았다. 아이리스 M. 영은 2006년 8월, 1년 6개월간의 암 투병 끝에 5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피츠버그 대학의 《여성학 연구소》와 공공 정책과 국제 문제 대학원은 영을 기리는 뜻으로 2008년부터 “아이리스 M. 영 상”을 공동 제정해 해마다 공동체 발전에 기여한 학자들에게 상을 수여하고 있다. 저서로 Intersecting Voices: Dilemmas of Gender, Political Philosophy and Policy, Inclusion and Democracy, On Female Body Experience 등이 있다.

역자 : 허라금

역자 허라금은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여성학과 교수다. 전공은 여성 철학으로, 여성주의 사상을 중심으로 생명·사회·정의 등의 주제를 다룬다. 저서로 『원칙의 윤리에서 여성주의 윤리로』(2004) 등이 있다.

역자 : 김양희

역자 김양희는 이화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뒤 동 대학원 여성학과 석사 및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아시아여성학센터》 연구원을 거쳐 현재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에서 젠더 전문관으로 일하고 있다.

역자 : 천수정

역자 천수정은 이화여자대학교 행정학과를 졸업한 뒤 동 대학원 여성학과 석사 과정을 수료했다.

목차

감사의 글
– 데이비드 알렉산더

여는 글
– 마사 C. 누스바움

1장 개인적 책임에서 정치적 책임으로
2장 정의의 주제로서의 구조
3장 죄 대 책임 : 한나 아렌트 읽기와 부분적 비판
4장 사회적 연결 모델
5장 국경을 가로지르는 책임
6장 책임 회피하기
7장 책임과 역사적 부정의

옮긴이의 글

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정치적 책임에 관하여
Responsibility for Justice

“지난 20년간 사회관계를 개인주의적으로 해석하는 이해가 승리를 거둬 왔다.
그동안 집단적 책임은 약화되거나 심지어 파괴됐다.”_본문 중에서

|시대의 쟁점과 함께 호흡하는 철학의 풍경|

아이리스 M. 영은 추상적인 철학 이론을 구체적인 정책 연구에 접목시키는 데 누구보다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던 정치철학자로, 후기 마르크스주의 비판 이론을 끊임없이 재해석하면서도 하나의 이론으로 환원될 수 없을 만큼 독창적인 학술 성과들을 제시했다. 특히 대표작인 『정의와 차이의 정치학Justice and the Politics of Difference』에서 사회정의란 롤스식의 자유주의 정치학에서 이야기하는 ‘재화의 공정한 분배’만으로 실현될 수 없으며, 그러한 분배를 가능하게 하는 구조적 억압과 지배의 문제를 직접 다뤄야 한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후속 작업에서도 구조적 부정의에 대한 문제의식을 놓치지 않는 가운데 차이와 다양성을 존중하는 이질적인 공론장으로서 민주주의의 이상을 심화시켜 왔다.
『정치적 책임에 관하여』는 아이리스 영이 자기 이론의 실천적인 면모를 최대한으로 이끌어 낸 야심찬 기획이다. 지금껏 차이의 정치학과 급진 민주주의의 이상을 통해 구조적 밑그림을 제시했다면 이 책에서는 그 밑그림 안에서 살아 숨쉬는 ‘행위’를 문제시하고 ‘행위자’에 직접 말을 건다. 자신의 이론적 성과를 통합하면서도 거기에 더할 수 없는 생명력을 불어넣은 이 책이 아이리스 영의 유고작이 되었다는 게 아쉬울 뿐이다.

|빈곤의 원인에서 과거 청산까지|

1. 복지정책의 후퇴와 개인적 책임의 승리
영에 따르면 1980년대 초반, 사람들이 빈곤을 이해하고 해결하는 방식에 엄청난 전환이 있었다. 빈곤의 원인을 빈곤한 사람들 개인과 그들의 행위에서 찾을 수 있다는 생각이 보수주의 학계와 정책 집단에서부터 시작되어 자유주의 학자들 사이에서도 유행할 정도로 확대된 것이다. 빈곤에 대한 ‘개인적 책임’ 담론으로 표현되는 이러한 이해는 찰스 머리와 로렌스 미드의 저작에서 그 정수를 발견할 수 있다. 영은 이들 두 사람의 이론이 오직 개인적 책임만을 강조하고, 가난한 사람을 더 가난하게 만드는 배경 구조를 무시하며, 부유한 사람들의 책임은 거론하지 않은 채 오직 빈곤한 사람만이 무책임하다는 가정을 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개인적 책임 담론은 사람들에게 모든 선택의 책임은 개인이 홀로 져야 하며, 그로 인한 어떤 불이익에도 도움을 기대하지 말라고 말한다. 그러나 영은 개인의 선택이나 불운의 문제로 축소할 수 없는 빈곤의 사례를 제시하며 미드와 머리의 가정을 비판한다.

2. 누가 샌디를 노숙자로 만들었나? 
아이리스 영은 살던 아파트가 용도 변경에 들어가 새 집을 구하려다 결국에는 노숙자가 된 샌디라는 한부모 가장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샌디는 머리와 미드가 말하는 ‘게으르고 일탈적인’ 빈곤층과는 거리가 멀다. 아파트를 팔기로 한 집주인의 결정, 대학 학위나 적절한 훈련을 받지 못한 여성에게는 저임금의 서비스 직종만이 유일한 선택지가 되는 성차별적인 노동시장, 그런 일자리와 주거 공간이 분리된 공간적 불일치 등의 상황이 맞물려 노숙자가 되고 말았다. 영은 이러한 샌디의 상황을 ‘사회-구조적 과정’이 야기한 부정의의 대표적인 사례로 제시한다. 사람들은 그러한 사회-구조적 과정을 자기 행동을 제약하는 객관적인 사실로 경험한다. 그리고 다양한 사회적 위치의 사람들이 행위를 통해 그러한 구조에 참여함으로써, 특정한 결과의 지속적 재생산에 기여하게 된다. 여기서 아이리스 영은 “정의의 주제로서 사회의 기본 구조”를 제시했던 롤스의 설명을 비판적으로 재검토한다.

3. 아이히만의 죄 VS 독일인의 책임
3장과 4장은 이 책의 핵심이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 드러난 한나 아렌트의 ‘정치적 책임’ 개념을 비판적으로 계승하고 있는 3장에서 아이리스 영은 아렌트를 따라 ‘죄’와 ‘정치적 책임’을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유대인 강제 호송에 적극적으로 관여한 아이히만은 명백히 유죄다. 그리고 샌디가 단지 한부모 여성이라는 이유로 임대를 거부한 집주인이 있었다면, 그는 그에 합당한 비난을 받아도 싸다. 그러나 유대인 대학살에 참여하지는 않았으나 나치에 수동적인 지지를 보낸 사람들, 혹은 더 좋은 주거 환경에 투자함으로써 소득에 따른 거주지 분리를 심화시키는 데 자신도 모르게 기여하는 사람들은 어떨까? 영은 후자의 경우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도덕적ㆍ법적 책임과 구분되는 ‘정치적 책임’이라고 말한다.
4장에서는 이러한 정치적 책임을 설명하기 위한 ‘사회적 연결 모델’을 제시해 죄를 묻거나 비난을 하는 게 목적인 법적 책임 모델과 대비시킨다. 법적 책임 모델은 특정인을 고발함과 동시에 다른 사람들은 책임을 면제받는 효과를 낳는다. 그러나 사회적 연결 모델은 잘못을 행한 제3자를 찾았다고 해서 결과에 기여한 다른 사람들이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 밖에도 사회적 연결 모델은 법적 책임 모델과 달리 행위자의 행위를 이끌어 낸 배경 조건을 함께 고려한다. 또한 책임을 부여하는 목적은 과거의 죄를 묻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미래의 변화를 지향하기 위해서며, 부정의를 생산하는 구조적 과정에 기여한 모든 이들이 그 피해에 대한 책임을 나눈다는 특징이 있다.

4. 정치적 책임과 강한 민주주의
영은 “구조적 부정의를 생산하는 다양한 제도적 과정에 참여한다는 사실”에서 정치적 책임의 근거를 찾는다. 정치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건 각자가 부정의한 결과를 만들어 내는 과정에 기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과정이 바뀌지 않으면 부정의는 계속될 것이다. 여기서 정치적 책임은 ‘공유되며’, ‘미래 지향적’이라는 말의 의미가 분명해진다. 공유된 책임은 그 책임을 함께 나눠 진 사람들이 함께 집단행동을 통해 자신들이 참여한 사회-구조적 과정을 변화시킬 수 있을 때에만 비로소 면제될 수 있다. 이러한 정치적 책임 개념에서 흥미로운 것은 부정의의 희생자라고 여겨지는 사람들도 부정의를 생산하는 과정에 연루되어 있는 한 예외 없이 그 구조를 변화시킬 책임을 짊어진다는 점이다. 이러한 집단적 책임과 관련해 개인이 얼마큼의 책임과 어떠한 책임을 져야 하는지에 대한 판단은 5장에서 권련과 특권, 이익과 집단 역량이라는 네 가지 추론의 매개변수를 통해 설명하고 있다.

|경계 없는 정치적 연대의 꿈|

같은 일터에서 같은 일을 하면서도 서로 다른 임금 체계를 적용받을 때,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부모가 미등록 노동자라서 학교에 공식 입학 허가를 받지 못할 때, 그리고 대도시에 전력을 공급하기 위한 송전탑을 뒷마당에 두고 살아야 한다는 통보를 받을 때, 우리는 무언가 세상이 잘못 되어가고 있다고 느낀다.
『정치적 책임에 관하여』의 첫 번째 미덕은 이러한 ‘잘못’에 ‘구조적 부정의’라는 이름을 붙이고 가시화했다는 데 있다. 더 나아가 구조적 부정의에 대한 설명을 통해 우리 모두의 삶이 얼마나 광범위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도 보여 준다. 그러면서 각자가 자신의 정치적 책임을 자각하고 실천할 수 있는 길이 분명히 있다는 것 또한 확신한다. 영은 사회적 연결 모델의 윤리적 근거와 정치적 이상을 레비나스의 ‘타자의 윤리’와 데리다의 ‘우정의 정치’에서 찾는다. 책임은 자유에 앞선 것이며 자유의 토대다. 미드와 머리의 개인적 책임 개념은 딱 그만큼, 우리의 존재론적 현실을 왜곡하고 정치적 상상력을 제약한다는 것이 드러난다. 영은 자칫 딱딱하고 분석적으로 끝날 수 있는 학술서에 경계 없는 사회적 연결과 정치적 연대라는 이상을 아름답게 녹여 낸다.

억압의 다섯가지 측면 – Iris M. Young

오랜만에 올리는 여성학 관련 자료. 여성주의 세미나에서 다뤘던 아티클이고 저자또한 철학 페미니즘에서 유명한 사람이지만, 이 글 자체는 페미니즘을 넘어 전반적인 억압에 대해 다루고 있다. 아이리스 영(Iris M. Young, 1949-2006)의 Justice and the Politics of Difference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90)의 2번째 장인 “Five Faces of Oppression”. 1_18_young.pdf억압(oppression)의 다양한 측면을 설명해서, 더 넓은 의미에서 억압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아이리스 M. 영에 대한 간략한 소개글은 여기에서. 사실 나도 잘 모르는 사람이에요. http://www.solidarity-us.org/node/540 사진도 올려보련다. 사진의 출처는 http://www.google.com/search?q=Iris+M.+Young&hl=ko&prmd=imvnso&source=lnms&tbm=isch&ei=-s0YT6OAMsWS2QXAtuH6Cw&sa=X&oi=mode_link&ct=mode&cd=2&ved=0CA0Q_AUoAQ&biw=1280&bih=602

여성학 쪽에서 글을 쓰는 것은 아무래도 부담스러운 일이다. 일단 내가 이 글을 읽으면서 느꼈던 것은, 내가 평소에 억압이란 단어를 신체적인 억압과 관련해서만 사용해왔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럴 경우, 억압은 매우 한정된 용례로만 사용될 뿐 사람들이 심리적으로 겪는 어려움이나 박탈감 등은 설명하기 어렵다. 영이 주장하는 게 바로, 억압은 여러 측면을 가지며 이에 관심을 기울일 때만이 억압의 담론을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다. 영이 말하는 억압은 다섯가지 측면으로 설명할 수 있는데 서로 겹치기도 하고 각 요소를 배타적으로 이해할 필요는 없을 듯. 다섯가지 측면은 착취(exploitation), 주변화(marginalization), 무력(powerlessness), 문화적 제국주의(cultural imperialism), 그리고 폭력(violence)이다. 아 그리고 중요한 점은 영은 사회구조적인 측면에서 억압을 분석하고 있다는 점이다. 억압을 개인적인 수준에서 볼 때의 문제점은, 억압자 한 명만 없앤다고 해서 그 억압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구조적 문제는 똑같이 페미니즘에도 적용이 될 수 있다. 요컨대, 남성 한 명 한 명이 다 여성을 존중하고 성차별을 행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사회적인 차원에서 차별받고 있는 여성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개개의 남성들을 비난하기 보다는 사회구조를 바꾸려는 노력이 더 효과적일 것으로 보인다. 또한 억압은. 타자를 구분하면서 집단의 문제가 된다. 즉, A가 B를 억압할 때 그들은 개개인으로 만나는 것보다는 A가 속한 그룹이 B가 속한 그룹을 억압한다고 보아야한다는 점이다. 집단의 문제로 볼 때 차별이 발생하는 방식과 타자를 구분해내는 과정을 볼 수 있기 때문에.

1) 착취 exploitation

착취는 주로 억압의 경제적인 측면을 말한다. 이에 대해서는 칼 맑스가 밝힌 바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착취가 일어나는데 다만 사람들은 경제적인 선택을 할 수 있는 합법적인 자유가 자신에게 있다고 착각할 뿐. 영은 착취의 문제도 집단으로 이해한다. 

The central insight expressed in the concept of exploitation, then, is that this oppression occurs through a steady process of the transfer of the results of the labor of one social group to benefit another (49).
착취의 개념에서 우리가 중요하게 볼 수 있는 것은 한 사회집단의 노동 댓가가 다른 집단에게 꾸준하게 넘어갈 때 일어난다.

예를 들어, 남성들이 가지고 있는 지위나 권력, 부는 여성이 노동력을 제공하기 때문에 일어난다. 여성은 그 노동의 댓가를 받지 않기 때문에 착취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가 여성에게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고 계급이나 인종의 문제에도 해당된다.

2) 주변화(maginalization)

영은 주변화가 억압의 가장 위험한 형태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특정 집단의 사람들이 사회적인 삶에 참여할 수 없고 빈곤의 문제에 노출되기 때문이다. 영이 특히 강조하는 것은 복지이다. 영은 주변화의 두 가지 피해를 지적한다. 복지를 제공한다는 것은 또다른 그룹의 권리와 자유를 빼앗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물질적인 빈곤이 복지로 인해 좀 완화된다고 하더라도 사회적으로 합의된 의미 안에서 개인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한다. 게다가 주변화의 문제는 감정적인 피해도 발생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노인이 생계유지를 위해 정부에서 돈을 받는다면 물질적인 도움을 받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그 돈을 받을 때의 굴욕감이나 무력감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

3) 무력(powerlessness)

Professional labor either involves exploitative transfers to capitalists or supplies important conditions for such transfers.
전문자 노동자들은 자본주의자들에게 자원을 착취의 차원에서 양도하거나 이러한 양도가 성립되게 하는 데에 중요한 환경을 제공한다 (56).

영은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계급과의 문제에서 미묘하게 비껴있다고 본다. 즉, 자본가와 비전문직 사람 사이에서 착취당하고, 또 착취한다는 점이다. 일단 전문직이 되는 과정부터가 억압을 포함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일단 전문직이 되고 전문직을 수행하는 데에는 돈이 많이 든다. 전문직은 상사가 있어서 변화를 이루기 어려운 한편, 다른 집단을 착취한다. 그리고 전문직은 직업의 영역 외에도 일종의 특권을 가진다. 전문직이 가지고 있는 이러한 특권 만큼, 전문직이 다른 집단에게는 억압을 수행하게 된다는 점이다. 뭐 이건 페미니즘의 주장에 대입시킨다면, 여성이 남성에 비해 전문직이 되기가 어렵다는 점을 예로 들 수 있지 않을까. 인종적인 측면도 다룰 수 있는게, 미국에서 여전히 특정 인종은 특정 전문직이 되기가 어렵다.  

4) 문화적 제국주의(Cultural Imperialism)

앞에서 언급한 억압의 다섯가지 특면이 물질적인 측면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면, 지배집단의 경험과 문화를 보편화하면서 나타나는 문화적 제국주의는 좀 더 정신적인 측면을 다루고 있다. 지배집단의 문화는 보편화의 과정을 거쳐 일종의 규범으로까지 발전하여 다른 문화를 억압할 수 있다.

The culturally dominated undergo a paradoxical oppression, in that they are both marked out
by stereotypes and at the same time redered invisible (59).
문화적으로 지배당하는 집단은 역설적인 억압을 겪게 된다. 즉, 그들은 편견에 의해 묶여버리는 동시에 안보이는 집단으로 취급받는다.

흥미로운 점은 지배적인 집단의 구성원들은 이 집단이 나타내는 특징을 내면화한다는 것. 문제는 피지배집단의 경험과 이해가 억압받는다는 것. 이의 대표적인 예는 아무래도 서구 중산계층의 문화가 보편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이겠지. 개인적으로 예를 들고 싶은건, 한국 아파트 선전에 왜 파티 드레스 입은 백인 가족이 나와서 와인을 마시는 것이냐!

5) 폭력 (Violence)
 
여기서의 폭력은 일단 우리가 아는 그 물리적인 폭력이겠지만, 영은 이 역시 샇ㅚ적 정의 문제로 해석한다. 단순히 개인의 차원에서만 이해할 수 없는 문제라는 점이다. 영은 폭력이 사회적인 행위라고 진단한다 (Violence is a social practice, 62). 한편, 영은 심리적인 폭력도 살짝 다루는 데, 예를 들어 정체성의 상실은 폭력의 문제로 설명할 수 있다.

이런 억압의 다섯가지 측면을 사용한다면, 굳이 물리적인 폭력 사건이 아닌 일들도 억압의 문제로 바꾸어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최근에 북한트윗을 리트윗했다고 국가보안법에 걸려 구속수사된 박정근씨의 사건도 이러한 억압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의 편지에 따르면 그가 보안법에 걸려서 수사를 받고난 이후에 사진관 일을 잘 하지 못해서 물질적인 피해도 얻었지만, 심리적인 피해도 어마어마하게 받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사진을 찍는 그가 수사 이후에 사진 찍는 일을 잘 하지 못하게 되고 심리적인 압박을 받음으로써 그는 주변화되어버렸다. 그리고 보안을 중요시하는 주류(!) 집단에 의해 박정근씨는 “비정상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으로 간주되었다. 그의 케이스는 개인적인 일로만 간주할 수 없는게, 그의 구속이 사회당 당원들은 물론, 그와 정치적인 견해를 함께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일종의 집단 의식을 느끼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일이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은, 국가보안법을 단순히 개인의 피해로 볼 수만은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가 수사를 받고 난 이후 박정근씨가 대통령에게 보낸 공개서한은 여기에서 볼 수 있다. http://m.cafe.daum.net/freePark/17wt/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