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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거대한 기획, Big Society

영국 런던정경대학 사회적배제센터 박사과정에 계신 김홍수영(samarakim01@hotmail.com)님께서 유로진보넷에 올리신 글입니다. 저자의 동의를 얻어 이 곳에도 게재합니다.
1997년부터 지난 14년 간 집권했던 영국 노동당 내각이 막을 내렸다. 그리고 2010년 5월 데이비드 캐머런(David Cameron)이 이끄는 보수당이 정권을 잡았다.
‘큰 사회(Big Society)’ 프로젝트는 노동당과 보수당이 접전을 벌이던 5월 총선부터, 이후 보수당과 자민당의 연립 내각이 출범하고현재에 이르기까지, 올 한 해 동안 영국 사회를 가장 뜨겁게 달군 보수당 정부의 새로운 정책 청사진이다.
‘큰 사회’에 대한 세간의 관심은 과거 토니 블레어가 이끌던 노동당의 정책 지표인 ‘제 3의길’만큼이나 뜨겁다. 연일 뉴스와 신문지상을 장식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유명한 개그만이 풍자소재로 삼기도 한다. 영국만이 아니라 유럽 학계에서도 ‘큰 사회’를 주제로 연구와 논평을 내놓는것이 대세가 되었다. 정계에 몸 담은 사람이라면 큰 사회라는 말을 하루에도 한번은 하고 넘어갈 만큼 큰 사회의 사회적 파장이 문자 그대로 크다.
아직 보수당이 집권한 지 1년이 안 되었고, 큰 사회라는 공약이 밑그림을 갖기 시작한 것은 2010년 7월 이후부터다. 따라서 정책에 대한 평가를 하기는 조금 이르다. 하지만 큰 사회 담론은 대처리즘이나 제 3의 길처럼 영국을 넘어서 세계 정책의 향방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또한 큰 사회가 시민단체를 통해 사회서비스를 제공하고 사회적 기업을 육성하는 것을 주요 목표로 삼고 있는 점에서, 민간 파트너십으로 진행되고 있고 사회적 기업을 자활사업단의 발전 모델 중 하나로 보고 있는 한국의 자활사업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많다. 따라서 영국의 ‘큰 사회’ 프로젝트에 대한 비평은 한국 사회의 사회정책을 위해서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2월 5일 독일 뮌헨에서 열린 국제안보회의에서 연설하고 있는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 /AP
‘큰 사회’ 프로젝트가 표방하는 핵심모토는 화이트홀(영국 관청 밀집 구역)로부터 지역사회로 권력을 대대적으로 이양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보수-자민당 내각은
1) 시민사회단체에 공공서비스를 위탁하고
2) 협동조합, 자선단체, 사회적 기업 등 제 3섹터 시장을 육성하며
3) 지역사회 주민들이 지방 행정에 실질적인 역할을 담당할 수 있는 기회를 넓히고
4) 정부의 행정정보를 민간에게 공개한다는 정책 기조를 발표했다.
이 청사진을 실행하기 위해서 정부는 우선 셔턴, 버크셔, 에덴밸리, 리버풀 4개 도시를 정책 시범 실시 지역인 이른바 ‘전위 지역(vanguard areas)’으로 지정했다. 또한 지난 7월 지역 공동체 운동 활동가들(community activists)과 시민단체 지도자들을 초대해 큰 사회 네트워크(Big Society Network)라는 전국 시민단체 조직을 발족시켰다.
뿐만 아니라 시민단체 Teach First의 창시자인 냇 웨이를 큰 정부 프로젝트의 공식 정책 조언자로 내정하고, 그를 상원의회의 의원으로 임명하기까지 했다. 정부는 이러한 대대적인 프로젝트를 통해 ‘관료주의적이고, 융통성이 적은 거대한 정부(big government)가 갖는 폐단을 줄이고, 영국의 파손된 사회(broken society)를 아래로부터 개혁하여 지역 공동체가 활성화된 거대한 사회(big society)를 재건하는 것’이 영국의 새로운 국정 철학의 목표라고 밝혔다.
사실 이와 같은 보수당 내각의 국정 철학은 뜬금없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2005년 39세의 젊은 나이로 보수당의 당수가 된 캐머런이 주도적으로 구상하고 밀고 나갔던 공약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큰 사회 프로젝트를 말할 때, 캐머런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정치적 전략가, 캐머런 총리
캐머런 총리는 한마디로 영리한 이미지 메이커이자 전략가다.
정치선거에서 이미지의 중요성을 이야기할 때 대표적으로 언급되는 사례는 케네디와 닉슨의 미국 대통령 선거다. 케네디에게 닉슨이 결정적으로 패배하게 된 이유는 당시 미국 선거에 도입되기 시작한 TV 토론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미지 경쟁이 관건인 TV 프로그램에서 평범한 스타일인 닉슨은 수려하고 부드러운 이미지를 가진 케네디를 이기기에는 어려웠다.
물론 선거에서는 정책내용과 유권자의 이해관계가 승리를 좌우하는 관건이다. 하지만 정치가 사람의 마음을 끌고 이끌어가는 활동이라고 할 때 후보자의 이미지도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같은 맥락에서 한국에서도 정치인의 이미지, 상징색깔, 로고송이 중요한 선거 전략 포인트가 되고 있다.
자신의 이미지를 만들어가는 데에 있어서 캐머런도 케네디만큼 영리하고 한편으로는 운이 좋은 정치인이다.
운이 좋았던 것은 그의 경쟁자가 고든 브라운이었다는 점이다. 세계적인 정치 지도자였던 토니 블레어에 이어 노동당 당수가 된, 정책 브레인 출신 고든 브라운은 일선 지도자가 되기에는 다소 딱딱하고 지루하며 추진력이 없다는 낮은 평가를 받아왔다.
반면 캐머런은 옥스퍼드 대학에서 철학, 정치학 및 경제학을 졸업한 수재라는 사실만이 아니라, 학교 클럽에서 마약을 하며 방황했던 젊은 시절이 있었다는 점이 함께 부각되면서, 능력도 있지만 원칙만 고수하지는 않는 자유분방한 지도자의 이미지를 대중에게 보여주었다.
캐머런의 역동적이고 도발적인 모습은 오히려 보수적인 이미지인 노동당의 고든 브라운을 탐탁지 않아 했던 노동당의 일부 지지층과 젊은 층의 표를 흡수하기에 충분했다. 여기에 아내 사만다의 임신 소식은 캐머런 스스로가 말했던 것처럼 총선의 ‘비밀병기’가 되어주었다. 캐머런 부부가 어린 아들을 잃은 경험이 있기 때문에 새로운 임신 소식이 상당한 동정표를 끌어왔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전략가적 면모는 정치적 수사에서 단연 두각을 드러냈다. 그는 “대처리즘은 아니지만 대처를 존경한다.”고 말하며, 보수당의 대처 지지자들을 건드리지 않은 상태에서 대처리즘의 비판세력을 포섭하는 데 성공했다. 또한 자신을 “토니 블레어의 상속자”라고 선전하며, 블레어 이후 리더십 있는 지도자를 찾던 노동당 지지자까지 자신의 지지층으로 만들었다.
‘큰 사회’ 담론은 캐머런 스스로 선전하듯이 ‘제 3의 길’의 보수당 버전이다. 블레어 노동당 전 총리가 사민주의의 길에 자유주의의 길을 가미한 제 3의 길을 발표하면서 진보당 내에서 보수적 색깔을 띤 것처럼, 캐머런은 보수당 총수로 집권했지만 보수당 내에서는 다소 진보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은 이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 공공부분을 시장과 개인에게 이양하여 정부의 재정부담 줄이는 것이 목표였던 ‘대처리즘’과 중앙정부의 권력과 공공서비스를 지역사회와 공동체로 이양한다는 ‘큰 사회’는 결과적으로 같은 그림일 수도 있다. 이것이 노동당의 새 지도자 에드 밀레반(Edward Miliband)이 ‘큰 사회는 민영화를 포장한 말장난일 뿐’이라고 비난한 이유다.
하지만 어쨌든 간에 캐머런의 정책 청사진에서는 대처를 비롯한 보수당이 공공연하게 밀고 나갔던 ‘작은 정부’라는 용어를 쉽게 찾을 수 없다. 대신 작은 정부와는 정반대의 인상을 주는 ‘큰 사회’라는 표어를 내건다.
캐머런은 큰 사회 청사진을 발표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했다.
“큰 사회 정책은 정부 재정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사회를 더 크고 멋지게 만들려는 목적을 갖는다. 그 과정에서 정부 재정이 절약되는 효과가 있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국가는 작아질(smaller)지도 모른다. 그러나 국가의 목소리는 더 커질(louder) 것이다. 왜냐하면 시민사회가 국정에 참여하도록 촉진시키고 신장시키고 격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같은 말이지만 정부의 역할을 줄인다는 표현보다는 사회의 기능을 촉진한다는 말이, 문제를 축소한다는 표현보다 장점을 확대한다는 말이 훨씬 듣기 좋다. 캐머런 내각이 이러한 심리를 이용한 것은 기가 막힌 정치적 수사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를 노동당의 비판처럼 단순히 말장난이라고만 비하할 수는 없을 듯하다. 정책이 어떤 지향점을 표방하지는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작은 정부’가 정책의 공급자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큰 사회’는 수요자적 관점에서 정책을 설명한 것이다. 물론 진짜 의도는 정부 예산 절감에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기존의 시각에 반전을 시도하는 도발, 그것이 캐머런이 보수당의 10여 년간의 열세 속에서 돌파구를 만들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김홍수영 / 영국 런던정경대학 사회적배제센터 박사과정 samarakim01@hotmail.com
 
 
큰 사회 담론에 대한 일차적 평가
 
사실 캐머런이 ‘큰 사회’ 구상을 처음 발표했을 때, 여론의 전반적인 반응은 어리둥절함이었다.
 
보수파 역사가 제임스 헌터는 큰 사회는 ‘시민의 책임감과 자존감을 고양시키고, 참여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새로운 철학’이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우파와 좌파가 ‘큰 사회’라는 모토에서 받은 첫 인상은 모호하다는 것이었다. 큰 사회 정책과 관련한 시사 및 학술토론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토론 주제는, “그래서 결국 보수당이 하려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가?”였다.
추상적인 뜻 때문에 비판의 초점도 다양했다. 일부 보수 여론은 큰 정부가 제 3의 길을 따라서 한 ‘블레어의 유령’에 불과하다고 혹평을 했고, 진보 여론은 국가의 힘이 없어도 풀뿌리 시민사회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두루뭉술한 ‘미국식 민주주의의 환상’에 빠져있다는 비판을 가하기도 했다.
 
보수당 내부에서는 캐머런이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있었다.
 
큰 사회 프로젝트를 위해 네 도시를 ‘전위 지역 (vanguard area)’으로 지정했는데, ‘전위’란 사회주의자 트로츠키와 레닌이 사용했던 용어다. 또한 공동체 운동 활동가들을 정부로 직접 초대하며 공동체 조직화(community organising)와 주민 지도력(group leaders)의 발굴을 격려한 것은 사회개혁가인 알린스키의 사상을 연상시킨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큰 사회 프로젝트를 ‘보수파의 급진적인 혁명’이라고 별명을 붙이기도 했다.
그러나 노동당에서는 큰 사회 담론을 허울 좋은 수사에 불과하다고 평가 절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거대한 사회라는 수사로 정부가 사회서비스를 철회하려는 의도를 가리고 있다는 것이다.
밀리반 노동당 당수와 더불어 노동당 전 장관인 크리스 브라이언트도 큰 사회 정책을 ‘싼 정부’ 정책이라고 비하했으며, 6만 명의 회원이 속해있는 영국의 대표적인 진보 사회단체인 Unite the Union도 큰 사회 담론은 ‘시장화’의 다른 말에 지나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큰 사회는 그저 담론에만 그치는 건 아니다. ‘강령과 공약은 대부분 지루하기 마련인데 큰 사회 구상은 흥미진진하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발상이 상당히 독특하고 세밀하고 급진적인 프로그램들이 속속 제안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큰 사회 프로젝트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를 위해서는 실제 실행되는 하위 프로그램들을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정부의 큰 사회 프로그램들
 
큰 사회 기획 중에 먼저 관심을 끄는 점은 정부가 직접 나서서 공동체 조직화(community organizing)를 지원한다는 점이다.
사실 이전 정부들도 지역의 시민단체나 자선단체 및 자원봉사활동을 활성화시키려는 노력들을 해왔다. 그러나 캐머런 내각은 이와 같은 간접적인 지원을 넘어서, 정부가 직접 5000여명의 공동체 지도자들을 양성하고 훈련시켜, 이들이 각 지역사회에서 공동체 조직을 건설하고, 확대시키도록 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한 것이다.

이외에도 16세의 아이들을 활동적이고 책임감 있는 시민이 될 수 있도록 훈련시킨다는 목적으로 이른바 시민권 서비스(National Citizenship Service)라는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있다. 이를 통해 어릴 때부터 다른 사회문화적 배경을 갖는 사람들과 어울리고, 지역공동체 활동에 직접 연결될 수 있도록 돕는다는 것이다.
‘공동체 조직화’라는 말은 한국에서도 알린스키에게 영향을 받는 빈민운동가들이 많이 사용하는 진보적인 개념이었다. 하지만 지역 공동체 조직 운동에 국가가 개입하여 주민과 학생들을 훈련하는 방식은 알린스키의 사상보다는 상명하달식으로 마을을 조직했던 ‘새마을 운동’의 지도자 육성 과정을 떠오르게 한다. 때문에 제럴드 워너라는 논평가는 ‘위로부터 명령하는 정부의 정책을 철폐한다고 선언한 정부의 수상이 큰 사회 정책을 사회에게 하달했다’며 캐머런의 자가당착적 말을 비꼬기도 했다.
 
그러나 큰 사회 구상을 한국식 새마을 운동과 직접 비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큰 사회 구상에는 지역사회 구성원들이 직접 정부정책에 개입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정부의 행정 정보를 민간에게 공개한다는 정책 골자를 구체화하기 위해서 지방정부에서는 매달 시민들에게 각 공무원들의 임금 수준, 각 지역의 범죄율과 종류 등을 밝힐 예정이다.
또한 지역사회 주민들이 지방행정에 실질적인 역할을 담당할 수 있는 기회를 넓힌다는 취지로 지방정부의 예산계획, 의결, 집행과정을 공개하고, 지역주민들에게 어떤 곳에 얼마의 예산을 분배할지에 대한 우선 순위를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할 계획이다. 또한 지역정부가 지방세를 올리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거부권이나 우체국이나 지역의 가게들 문을 닫는 것을 저지할 수 있는 권리도 공동체 시민들에게 부여한다고 밝혔다.
 
협동조합, 사회적 기업, 노동자소유기업 등 제 3섹터 시장을 육성하며, 공공영역의 서비스를 제 3섹터 시장에게 넘긴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예를 들어, 공공영역의 노동자들이 노동자소유기업을 창설하여 독립하면, 지방정부가 지금까지 직접 운영하고 있던 사회복지서비스 프로그램들을 이들에게 위탁하겠다는 것이다.
그 외에도 지역의 전철 및 마을버스 운영, 인터넷망 구축 사업, 쓰레기 수거 및 재활용 사업, 학교운영 등도 지역주민과 민간에게 넘기겠다는 계획도 큰 사회 구상에 포함되어 있다.
 
 
 
정책 구상에서 가장 중요한 재원확보 방법에 대해서는 더 파격적인 계획을 내놓았다.
공동체 운동가를 훈련시키고, 협동조합 및 사회적 기업을 육성하는 등 ‘큰 사회’ 프로젝트에 드는 기금을 은행의 휴면예금으로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정부의 조사에 따르면, 몇 십 년 간 영국 은행들에 잠자고 있는 휴면예금이 약 4억 파운드에 달한다고 한다.
아무도 찾지 않는 이 같은 휴면예금을 모아 ‘큰 사회 은행(Big Society Bank)’을 설립하면 정부의 예산을 쏟지 않고도 자선단체와 사회적 기업, 자원봉사 단체를 지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덧붙여, 캐머런 내각은 위와 같은 사회의 전반적인 개혁을 기념하고 홍보할 ‘큰 사회의 날(Big Society Day)’을 지정하여 공포할 것이라고도 한다.
 
큰 사회 프로그램들에 대한 평가
 
큰 사회 프로젝트의 일부 사업들은 아직 지방자치행정이 완전히 뿌리내렸다고 볼 수 없는 한국사회의 입장에서는 다소 무모해 보인다. 예산집행을 지역주민에게 공개하고 우선순위를 정하게 한다는 것이나, 학교 운영에 지역사회 주민들이 참여하게 하는 일들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가능할지 난감하기 때문이다.
지방행정이 폐쇄적인 곳에서는 자칫하면 지역의 유지나 일부 사회단체가 예산집행이나 사업위탁을 독차지할 우려도 있다. 그러나 한국사회보다는 자치의 경험이 오래된 영국사회의 경우 이러한 일이 완전 허황된 계획은 아닌 것 같다.
 
사실 큰 사회 기획의 많은 프로그램들은 이미 노동당 정부 시절부터 꾸준히 진행되어 왔던 사업의 일환이다. 예를 들어, 영국 정부는 예전부터 ‘우리 길거리 고치기(Fix My Street)’ 운동을 진행해 왔다. 그것은 지방정부가 연간 집행해야 하는 예산이 남았을 때 멀쩡한 보도블록을 뜯고 공사하는 데 돈을 쏟아 붙는 관행을 없애고, 실제로 꼭 고쳐야 하는 거리를 보수하는 데 예산을 사용하자는 운동이다.
이를 위해 픽스마이스트리트(www.fixmystreet.com)라는 사이트가 만들어졌다. 여기에서 주민들이 직접 발견한 벽의 낙서, 고장 난 가로등, 깨진 보도블록을 신고하는 것이다. 구글의 지도창을 이용해 문제의 위치를 지도에 표시하면 관공서에서 민원을 제기하는 복잡한 과정을 거치지 않고도 다음 날 해당 관공서에 문제가 보고되고 바로 해결될 수 있다.
이는 동네 구석구석을 전부 살피기 어려운 구청공무원들이 지역 주민들의 협력으로 예산을 꼭 필요한 곳에 집행할 수 있는 효과를 갖는 전략이다. 이 운동을 통해 주 평균 1,000여 건의 문제지역이 정부에 보고되고 있고, 2010년 11월 현재까지 111,467건의 도로공사가 이를 통해 진행되었을 만큼 성공한 정책 아이디어다. 캐머런이 제안한 참여적 예산집행(participatory budgeting)은 이러한 운동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
 
큰 사회 정책에 포함된 자유 학교(free school) 아이디어도 마찬가지다.
학교와 지역사회를 연결시키려는 노력은 ‘미래를 위한 학교 세우기(BSF: Building Schools for the Future)’라는 이름으로 노동당 정부 때부터 이미 시작되었다. BSF는 영국 정부 역사상 가장 대규모의 학교 리모델링 프로그램으로 낙후된 학교 시설을 시장의 자금력을 동원해 개선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BSF는 시장의 논리에 건설 및 진행과정을 맡기지 않는다. 우선 건설회사들은 원칙적으로 학교 주변지역의 주민과 실업자들을 건설노동자로 고용하도록 되어 있으며, 해당 학교 학생들에게 건설 및 리모델링 과정에 인턴으로 직접 참여하도록 기회를 주고, 그 중 유능한 학생을 건설회사에 특별 채용하는 기회를 부여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무엇보다 최신식으로 리모델링한 학교 시설은 방과 후에 지역주민이 이용할 수 있도록 개방하여 지역 문화센터로 사용하는 것이 BSF의 목적이다. 지역사회, 시장, 그리고 정부가 BSF를 중심으로 매우 유기적인 파트너십을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제 3섹터 시장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한국에서 ‘사회적 기업’은 아직 생소한 이름이지만, 영국은 사회적 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수가 전체 노동자의 5%를 넘어섰다. 따라서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기업 육성은 갑작스러운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여전히 해결해야 할 몇 가지 문제가 남아 있다.
 
United the Union이 지적했듯이 첫째는 인력의 문제이고 둘째는 재원의 문제다.
첫째, 인력 면에 있어서, 영국은 자원봉사활동의 전통이 강한 사회이다. 하지만 지방정부의 예산감시에서부터 쓰레기수거, 마을버스 운영까지 민간인들이 참여하려면 엄청난 수의 자원봉사자가 필요하다. 그러나 현대 자본주의 사회처럼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빡빡한 삶을 살고 있는 노동자가 정부 행정 전반에 참여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시간을 사회참여에 할애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논평가 에드 웨스트는 결국 종교단체와 모임처럼 사회봉사에 헌신하는 일부 사람들만 봉사활동에 참여할 것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비슷한 맥락에서 The Times는 “만약 마을버스 운영과 같이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경영이 필요한 사업을 민간 자원봉사 단체들에게 맡긴다면, 초기에는 열정적인 사람들이 우후죽순처럼 마을버스를 운전하겠다고 나서겠지만, 결국 몇 년이 못 가서 열정은 식어버릴 것이고 모든 마을버스가 사라지게 될 것이다”고 전망 했다.
뿐만 아니라 지난 10여 년 간 약 3 백만 명의 외국인이 이주해왔을 정도로 이미 다문화 사회가 되어버린 영국에서, 정부의 조율과 조정이 없이 각 사회 구성원들에게 공동체의 자치를 맡긴다는 것은, 결국 여러 민족과 이민자들의 분열과 분리, 불평등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한마디로 시민들의 자발적인 사회참여에 기댄 사업들은 지속성, 전문성 그리고 형평성 면에서 현저히 질이 떨어질 것이라는 것이다.
 
둘째, 재원에서도 마찬가지다. 재정에서 가장 문제가 되었던 부분은 큰 사회 기획의 핵심재원을 휴면계좌의 예금으로 충당한다는 구상이었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시민들의 동의도 없이 예금을 ‘훔치려’한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그러나 더 우려가 되었던 점은 결국 정부의 구상이 발표되면서 시민들이 휴면계좌를 다시 살려서 예금을 출금하거나, 휴면계좌를 통해 은연중에 수익을 누렸던 은행이 순순히 기금을 내놓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실제로 정부는 큰 사회 정책을 실행하는 데 총 4억 파운드의 예산이 들 것이라고 계획했지만, 이보다 훨씬 적은 6천만 파운드로 큰 사회 은행이 출발한다는 발표했고, 따라서 부족한 재원에 대한 비난이 일기도 했다.
 
가디언(The Guardian)과 같은 진보적 언론은 프로젝트가 안정적인 인력과 재원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결국 탄탄한 인력과 자본을 가진 시장기업이 공공서비스를 대체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중교통, 의료서비스, 인터넷 시설 구축을 민간에게 맡긴다는 뜻은 실체가 모호하고 전문성이 부족한 시민사회조직에게 맡긴다는 말이 아니라, 시장기업에 맡긴다는 계획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크로동(Croydon)과 같은 일부 지방정부에서는 시민사회단체에 정부가 지원하던 예산의 70%를 삭감하기까지 했으니, 큰 사회가 사실 시민사회단체나 공동체 조직을 촉진시킨다는 정책이라기보다 정부의 재원을 줄이려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비판을 면하긴 어려울 것 같다.

김홍수영 / 영국 런던정경대학 사회적배제센터 박사과정 samarakim01@hotmail.com
 
 
큰 사회 프로그램의 비난에 대한 돌파구
 
그러나 이러한 비판 여론 가운데에서도 캐머런 내각은 약간은 예상치 못한 대안으로 돌파구를 마련하고 있어서 관심을 끈다. 예를 들어, 얼마 전 정부는 봉사활동을 활성화시키기 위해서 포인트 적립 서비스를 봉사활동과 연결시킨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한국에서도 통신회사나 일부 기업들이 포인트를 적립하면 영화, 레스토랑 등 문화시설을 누릴 수 있는 고객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는데, 영국에서도 대형 슈퍼마켓이나 기업에서 이와 비슷한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이에 영국 정부는 Nectar, Tesco 그리고 Recycle Bank 카드와 같이 기업의 유명한 포인트 서비스와 제휴하여 봉사활동을 했을 때 이와 같은 포인트를 적립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는 지역화폐제도(LETS)에서 아이디어를 착안한 것으로서 사회적 공헌을 마케팅 전략으로 이용하고자 하는 기업에게도 이득이 되는 1석 2조의 효과를 갖는 아이디어다.
 
재원 확보에서도 일단 위기를 모면한 상태다. 2010년 11월 25일 보수당 정부는 당초 예상했던 6천만 파운드의 두 배에 이르는 1.5억 파운드의 자금을 출연하여 ‘큰 사회 은행’을 설립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아직 총 목표 금액인 4억 파운드에는 못 미치지만 대단한 수확이다.
큰 사회 은행에 자금을 투자하기로 결정한 은행들은 바클레이즈,HSBC, 로이즈 뱅킹그룹, 스코틀랜드 뱅크, 산탄데르 영국 법인 등 5개 대형 은행이다.
은행이 소극적인 태도를 보일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이러한 대대적인 참여를 이끌어낸 것은 보수당의 협상력 때문이었다. 캐머런 총리는 은행권에서 직원들에게 100만 파운드 이상의 보너스 지급을 할 때 그 세부내용을 공개하도록 요구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함으로써 은행권의 참여를 이끌어낸 것이다.
이는 영국 사회에서 가장 임금이 높은 직업으로 보수 문제에 대해서 항상 사회의 눈총과 정부의 감시를 받아왔던 은행원들에게는 환영할만한 협상카드였다. 영국은행협회(British Bankers’ Association)에서는 “은행들이 보수지급과 관련한 사회 분위기를 이해하고 있으며, 그들의 사회적 의무를 알고 있다”며, “정부와 펀드 참여를 논의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처럼 ‘큰 사회’ 프로젝트는 캐머런의 획기적인 구상에서 출발하여, 황당하고 엉성하다는 비판을 거쳐, 다시 전략적인 대안을 내놓는 방식을 거듭하면서 변모하고 있다. 때문에 아직은 정책의 성공과 실패에 대해서, 그리고 이 프로젝트가 진보파의 예상대로 시장화의 압박을 가속화하게 될지, 아니면 정말로 사회가 커지는 결과를 가져올지 예견하기는 어려운 단계다.
 
조화로운 사회를 향한 끊임 없는 성찰
 
그러나 이 초기 단계에서 확실히 아쉬운 점은 하나 있다. 바로 관심의 초점이 “큰 정부냐, 큰 사회냐”와 같이 양과 규모에 치중하여 있다는 점이다.
사실 ‘사회’는 귀에 붙이면 귀걸이 코에 붙이면 코걸이가 되는 애매모호한 단어다. 대처는 1987년 ‘사회’를 ‘국가’라는 말과 같은 개념으로 사용했다. 그녀는 개인과 가족이 인간의 복지를 개별적으로 책임져야 한다는 주장을 하면서, ‘세상에는 사회라는 실체는 없다(There is no such thing as society)’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이는 국가의 권력을 대폭 없애겠다는 뜻이었다.
반대로 캐머런은 ‘사회’와 ‘국가’를 포함하거나 서로 다른 개념으로 사용한다. 캐머런은 이를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사실 세상에는 사회라는 실체는 있다. 그러나 그것이 국가와 같은 것은 아니다 (There is such a thing as society. It is just not the same thing as the state)’.
다시 말해 개인 차원을 넘어섰지만 국가가 아닌 공동체, 예를 들어 시민사회나 시장이 엄연히 존재하고, 큰 사회 프로젝트가 지향하는 바는 큰 국가가 아니라, 큰 시민사회나 큰 시장이라는 뜻이 숨어 있다. 시민사회의 부흥을 암시하는 이러한 표어 때문에, 한국의 시민사회단체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박원순 변호사는 2010년 10월 3일 미래포럼에서 발 빠르게 큰 사회 프로젝트를 한국의 시민단체들에 소개하고 선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사실 지난 노동당의 ‘큰 정부’이나, 보수당의 ‘작은 정부’ 그리고 최근의 ‘큰 사회’ 담론에서는 질과 과정에 대한 성찰이 빠져있다.
정부의 역할을 시장이 대신한다거나, 정부가 줄어들면 시민사회가 커질 것이라는 계산은 다소 기계적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시장, 정부, 시민사회는 결코 다른 영역이 대신할 수 없는 고유한 역할을 담당해 왔다. 시장만큼 자원을 자유롭고 신속하게 교환할 수 있는 메커니즘은 드물며, 대부분의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는 데 시장이 가장 효율적인 시스템이라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시민사회는 지역주민들이 살아가는 생활세계이고 따라서 시민들의 실상과 욕구가 제일 잘 반영된 공간이다. 그러므로 민주적이고 참여적인 행정 운영을 위해서는 시민사회단체나 공동체를 활성화시켜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아무리 시민사회가 자유롭고 참여적인 민주주의를 진작시키는 공간이라고 하지만, 전체적인 조율과 큰 그림을 짜는 역할은 모든 이익집단과 단체를 넘어설 수 있는 정부에게 기대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정부의 본질적인 역할이다.
 
따라서 누구의 역할을 줄이고, 늘이느냐의 문제와 함께 반드시 논의 되어야 하는 것이 ‘큰 사회’라는 틀 안에서 정부, 시민사회, 시장이 어떻게 권력을 배분하고, 협력하며, 자신의 역할을 담당해나갈 것이냐는 문제다.
다시 말해 ‘큰 사회’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조화로운 사회’에 대한 성찰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 그리고 조화로운 행정이 지속될 수 있도록 정부, 시민사회, 시장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대화할 수 있는 상설적인 협상, 토론기구가 마련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파트너십이라는 명목 하에 한쪽 기구, 예를 들어 시장에만 권력이 쏠리는 시장화나, 정부의 역할만 커진 비대한 정부나, 시민사회의 카오스를 면할 수 없다.
이러한 맥락에서 사회철학자 하버마스는 ‘의사소통(communication)’만이 민주주의 사회를 성숙시키는 최고이자 최선의 길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직까지 큰 사회 구상에는 정부, 시민사회, 시장이 어떻게 소통하면서 세부 사업을 진행해나갈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부족해 보인다.
물론 첫술에 배부를 수 없다. 그러나 아직 걸음마 단계인 큰 사회가 말 그대로 큰 사회를 넘어 조화로운 사회로 귀결되기 위해서는 크고 작은 몸집 크기만이 아니라 소통이 흐를 수 있는 혈관을 놓는 작업이 더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