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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유주의 정치철학의 이해, 장동진

장동진, 현대자유주의 정치철학의 이해 (동명사, 2001)

 

1. 정치는 개인이 속해서 살고 있는 사회를 어떠한 근본 원칙에 입각하여 구성하는 것이다. 이러한 원칙은 개인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강제적 성격을 띤다. 정치가 만약 강제적 성격을 띠지 않는다면 정치에 대하여 개인이 심각한 관심을 기울여야 할 이유가 없다. 이러한 정치의 강제적 성격 때문에 언제나 정치의 규범성 문제가 거론된다. 정치철학은 이러한 정치의 규범성 탐구를 그 본질로 한다. 정치사회를 어떻게 구성하는 것이 보다 타당성을 지니느냐 하는 문제가 정치철학 논의의 중심을 이룬다. (5면)

2. 만약 사적 관계를 전제하지 않고 모든 사회적 관계를 공적 관계로 전환하게 된다면, 인간이 누릴 자유의 영역은 소멸할 것이다. 공적 관계는 통상 위에서 언급한 강제성을 내포하게 된다. 즉 공적 관계를 위반하였을 경우 이에 따른 사회적 제재가 뒤따른다. 따라서 모든 인간관계를 공적화하면 사실상 강제성이 인간사회를 지배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공적 관계를 설정할 경우에는 언제나 규범성이 대두된다. (6면)

3. 현대자유주의자들에게 나타나는 인간의 자유는 두 가지 점이 부각되고 있다. 하나는 인간은 자신의 가치관에 근거하여 자신의 인생을 영위할 자유가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개인이 자신의 인생의 저자가 된다는 의미이다. 다른 하나는 자신이 영위하게 될 정치사회의 근본원칙 수립의 자유로운 저자가 되는 것이다. (6면)

4. 특히 이 책에서 중심적으로 거론되는 롤즈의 자유주의적 정의관은 정치사회의 근본원칙 수립에 있어 상이한 신념을 지닌 개인들 상호간에 중첩적 합의를 지향할 것을 주장한다. 이러한 중첩적 합의(overlapping consensus)는 개인적 입장만을 개진하는 합리성(the rational)을 넘어 상이한 신념을 지닌 타자 역시 수긍할 수 있는 합당성(the reasonable)에 근거하여 공적 문제를 해결할 것을 제시한다. 이러한 합당성의 추구는 공적 이성(publich reason)의 활용과 불가분리의 관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7면)

5. 개인의 자유로운 인생을 보장하는 정치환경을 설정함에 있어 관련 당사자가 스스로 주체적인 당사자가 된다는 것이 현대자유주의 정치철학의 핵심이다. (8면)

6. 자유주의 정치철학은 상당한 보편성과 현실성을 지니고 있다. 자유주의의 보편성 역시 ‘인간의 존중’에서 출발하고 있다. 이 인간존중을 실현하기 위해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강조한다. 인간존중의 생각은 인권(human rights)으로 보다 구체화되어 나타난다. 인권의 존중이 정치적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는 자유주의 정치이념은 문화적 차이를 넘어 상당한 설득력을 지닌다. 또한 자유주의는 현실성을 지닌다. 인간이 자유롭게 살기를 원하는 것은 매우 현실적인 갈망이다. 그리고 인간이 상이한 생각과 가치관을 지닌다는 것도 매우 현실적인 가정이다. 상이한 인생관과 가치관을 지닌 개인들이 자신과 관련된 공동사를 논의할 때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고, 평등한 결정권을 가지고 합의하여 결정한다는 생각도 매우 현실적이다. 이러한 해결의 현실성 역시 문화적 차이를 넘어서 상당한 설득력을 가진다. (9면)

7. 정치철학은 ‘바람직한 정치질서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궁극적 해답을 찾아가는 탐구의 과정이다. 이것은 정치학 논의의 중요한 부분을 이룬다. 정치학에서 다루는 정치의 본질에 관련된 중요한 질문은 다음 두가지이다. 하나는 ‘정치가 실제로 어떻게 진행되는가’이며, 다른 하나는 ‘정치란 어떠한 것이 되어야 하는가’이다. 전자는 경험적 연구와 관계되며, 후자는 규범적 연구와 연결된다. 이 양자의 작업은 정치본질에 관한 규명의 시도로 이해될 수 있다. 정치철학은 물론 후자의 질문과 관련되는 규범적 연구이다. (19면)

8. ‘국가론’의 중심주제는 정의는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이러한 논의에서 나타나고 있는 플라톤의 이상국가론은 잘 알려져 있듯이 철인왕, 수호자, 노동자들의 3계층으로 이루어진 정치공동체에서, 이들 각 계층이 자신들의 고유한 덕목인 지혜, 용기, 절제를 수행할 때 정치공동체는 정의로운 상태에 이른다는 것이 간략한 내용이다(Plato, Republic, Books I-IV 참조). 이것은 논어의 ‘군군신신 부부자자’의 주장과 유사하다. (23, 24면)

9. 아리스토텔레스는 두 가지의 분류기준을 사용하여 6개의 정치체제를 구분해 놓고 있다. 두 가지 분류기준, 즉 통치자의 수와 공익/사익의 기준에 의하여 각각의 통치자의 수에 의한 정치체제의 좋은 형태와 나쁜 형태를 구분하여 대비시켜 놓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한 바람직한 정치형태는 군주정치, 귀족정치, 민주정치이며, 바람직하지 않은 형태는 전제정치, 과두정치, 중우정치이다. (24면)

10. 이처럼 공동체 전체와 그 구성원 간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이냐 하는 것이 정치철학의 핵심적 규명의 대상임은 부인할 수 없다. 다른 표현을 빌리자면, 이것은 공공선(common good)과 개인적 자유(또는 권리나 이익)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로 압축된다. (26면)

11. 현대공동체주의자들의 주장은 다만 개인의 존재이유와 개인의 성숙 및 발전은 공동체를 통해서만 가능하며, 개인의 가치관과 삶의 형태를 공동선의 관점에서 평가할 수 있기 때문에 이에 입각하여 국가는 일정의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입장으로 이해된다. (27면)

12. 그러나 이러한 정의 논쟁을 깊이 분석하고 보면, 결국 철학적 논의에서 핵심을 이루는 존재론(ontology)과 인식론(epistemology), 그리고 윤리학(ethics)의 문제를 떠날 수 없다. (28면)

13. 윤리학에서 옳고 그름(right/wrong)의 문제와 좋고 그름(good/bad)의 문제가 중심적 논의를 이룬다. 이 양자의 관계에 대하여 어떠한 입장을 취하느냐에 따라 의무론적 이론(deontological theories)과 목적론적 이론(teleological theories)이 나타나게 된다. 정치철학의 영역에서도 좋음/나쁨의 문제와 옳음/그름의 문제는 정치공동체의 운영논리와 깊은 관련을 가진다. (29면)

14. 특히 좋음/나쁨의 문제는 가치(value) 논의와 관계된다. 가치의 본질문제를 다루는 철학의 한 분야를 가치론(axiology, theory of value)이라고 한다. 이 가치의 문제에 대하여 어떠한 철학적 입장을 취하느냐에 따라 정치사회의 운영원칙의 수립이 상이하게 나타날 수 있다. 예를 들어, 가치의 문제를 객관적인 것으로 이해할 것이냐 아니면 가치를 인지하는 주체의 문제로 귀결시킬 것이냐 하는 것은 정치사회의 운영논리 수립에 근본적 갈림길을 열어 놓을 수 있다. (30면)

15. 현대자유주의는 이러한 가치의 중립성의 원칙에 기초하고 있다. 정치적 영역에서 가치 중립성의 원칙은 각 개인의 가치관에 국가는 중립적 입장을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표현되고 있다. (30면)

16. 철학적 입장에서 가치의 객관적 질서를 인정하게 되면 철학적 완전주의(philosophical perfectionism)가 되며, 정치적 영역에서 사회구성원의 가치관에 국가가 관여하여 바람직한 방향으로 해결하여야 한다는 논리는 국가완전주의(state perfectionism)라 할 수 있다. (30, 31면)

17. 좋음/나쁨에 기초하는 논리로서 좋음을 극대화하는 것이 바로 옳음(right)이라는 주장이 있다. 이러한 입장이 바로 목적론적 입장이다. 목적론적 입장의 대표적 이론으로서 공리주의(utilitarianism)를 들 수 있다. 공리주의의 입장이란 관련된 모두에게 최대의 효용을 가져다주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31면)

18. 한편, 옳음을 우선적 기초로 생각하는 정치철학적 이론의 방향은 의무론적 입장으로 규정된다. 이 입장은 좋음의 극대화에 앞서 옳음이 존재하며 이는 기본적으로 좋음의 문제와 독립하여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치철학적 이론은 사회의 전체적 효용의 극대화에 앞서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우선적으로 고려하여 정치사회의 운영원리를 찾는 것이 타당하다고 한다. 즉 사회 전체의 효용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개인의 자유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은 바람직한 사회운영원리라고 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31면)

19. 정의문제를 예로 든다면, 정의의 원리나 원칙이 객관적으로 실재하고 있고 이를 우리 인간의 이성을 통하여 알 수 있다는 입장이 있을 수 있다. 이러한 입장을 우리는 합리적 직관주의(rational intutioionism)라 한다. 이러한 입장을 대표하는 이론가로 플라톤을 들 수 있다. 정의의 이데아를 상정하고 이를 인간이성을 활용하여 알 수 있다는 플라톤의 이론은 합리적 직관주의를 대변한다. 반면에 이러한 바람직한 사회운영원리나 정의원칙의 객관적 실재 여부를 떠나서 우리 인간 이성을 활용하여 구성한다는 입장이 있을 수 있다. 이를 우리는 구성주의라고 한다. 특히 정치적인 문제 해결에 이러한 방법이 적용되었을 때 정치적 구성주의(political constructivism)라고 한다. 정치적 구성주의에서는 사회 운영원칙 또는 정의원칙을 특정의 진리관이나 포괄적 교리에 입각하여 해결하지 않고, 구성의 결과로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이러한 구성주의에서 중요한 점은 구성의 절차와 인간의 개념이 중요시된다. 왜냐하면 어떠한 구성절차와 어떠한 인간유형을 상정하느냐는 구성의 결과로 나타나는 정의의 원칙에 영향을 미치게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들이 바로 철학적 논의의 쟁점이 된다. (32, 33면)

20. 예를 들어, 서양 정치철학에서도 고대와 현대를 비교해 보면, 현대이론에서는 개인주의적 경향과 가치중립적 성격이 보다 많이 나타나는 반면, 고대정치철학에서는 공동체 중심적이고 완전주의적 성격을 보다 쉽게 찾아 볼 수 있을 것이다. (34면)

21. 자유주의 형성에 기여한 로크의 핵심적인 추론은 다음과 같다. 첫째, 제한정부론이다. 즉 정부는 그 기능과 범위에 있어서 제한되어야 한다는 논리이다. 이것은 정부는 공공 또는 공공선을 위해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어떠한 행위에 개입할 수 있는 정당한 권위를 갖고 있지 못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두번째, 법치(rule of law)이다. 정부는 아주 엄격하게 제한된 정당한 기능만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한다. 셋째, 권력분립(separation of powers)이다. 국가가 법에 의한 통치에 구속되기 위해서는 권력분립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본다. (71, 72면)

22. 고전적 자유주의에서의 자유란 언제나 의도적으로 부과한 제약이나 강제가 없는 상태로 묘사된 소극적 방법으로 인식되었다. 새로운 수정적 자유주의는 그러한 형태의 자유라는 것이 정치적 이상으로 고무될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이들에게는 자유란 가치 있는 행동에 방해가 되는 모든 장애를 제거하는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따라서 자유란 이제 하나의 적극적 개념으로 전환된다. 즉 자유란 의미 있는 행동양식을 추구할 수 있는 힘과 능력으로 간주된다. 고전적 자유주의와 대조하여 이 수정주의적 견해에 의하면, 자유에 대한 제한이라는 것은 의미 있는 행동에 대한 제약으로 인식되기 시작하였다. 의미 있는 행동에 대한 제약이라는 것은 사실상 이 제약을 당하는 사람들에게 아무도 의도적으로 부과한 적이 없는 것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의 대표적인 것이 가난과 질병이다. 그래서 현대 자유주의자들은 자유란 이름으로 의미 있는 행위를 하는 데 방해가 되는 이러한 장애들을 국가가 제거해 줄 것을 촉구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러한 수정주의적 형태의 자유주의는 적극적 자유의 개념을 통하여 국가의 보다 적극적이고 광범위한 역할을 주장한다. 이것이 자유주의 제2단계의 출발이다. (73면)

23. 20세기에서의 자유주의는 그의 주요 이념적, 실질적 적들이라고 할 수 있는 사회주의와 대립하면서 발전하게 된다. … 다른 한편, 자유주의의 주요 적은 나치즘(Nazism)과 파시즘(Fascism)이었다. 나치즘과 파시즘은 1930년대에 발전하였으며, 이들 역시 소위 경제적 자유주의의 심각한 사회경제적 결함들의 치유를 외견상 주창하였다. … 1945년의 나치즘의 패배와, 무엇보다도 1980년 후반 소련 공산주의의 붕괴는 서방에서 자유주의의 전제하에 광범위한 테두리에서 주요 이념논쟁을 이루어지게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들 논쟁들은 주로 어떻게 하면 자유주의적 정치이상과 가치를 가장 잘 해석하고 실현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에 집중되었다. 그때까지 가장 중요한 쟁점이 되어왔던 것은 보다 평등한 인생기회를 확보하기 위하여 경제적 자유를 어느 정도까지 제한해야 하는냐 하는 것이었다. (74면)

24. 1971년에 펴낸 롤즈의 ‘정의론’은 정치적 영역에서는 기본적 자유의 평등을 주장하며, 경제/사회적 영역에서는 차등원칙(difference principle)을 통해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그 사회의 최소수혜자 계층의 입장을 증진시키는 조건으로 정당화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입장은 특히 사회경제적 영역에서 복지국가의 모델을 정당화하는 이론적 근거를 제공해 주고 있다. 한편 고전적 자유주의의 현대적 부활은 프리드먼, 하이예크, 노직 등의 이론에서 나타난다. (75면)

25. 현대보수주의는 도덕적 영역에서 완전주의(perfectionism) 입장을 취하고 있다. 현대보수주의는 경제적 영역에서 국가개입의 최소화와 안보, 법질서 및 도덕적 판단의 문제에서 국가의 적극적 역할을 강조한다. 신자유주의(neoliberalism) 또는 신우파(the new right)로 규정되는 레이거노믹스(Reaganomics)와 대처리즘(Thatcherism)은 모두 현대보수주의의 산물로 이해할 수 있다. 한편 경제적 영역과 도덕적 영역 모두에서 국가개입의 최소화를 주장하는 자유지상주의(libertarianism)가 있는데, 이것이 신자유주의로 이해되기도 한다. (76, 77면)

26. 이러한 변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현대 자유주의는 최근 ‘합의의 정치’ 모델을 이론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것이 자유주의의 세 번째 단계이다. 합의정치의 이론은 롤즈의 중첩적 합의 또는 토론과 이성적 숙고를 강조하는 심의민주주의(deliberative democracy) 논의를 통하여 형성되고 있다. 이 세 번째 단계의 자유주의의 핵심은 정치체제의 근본원칙 수립의 저자가 되다는 점이다. 이 단계의 자유주의에서는 권력으로부터의 개인의 자유 보호는 부수적인 것이며, 정치체제를 운영하는 근본원칙 수립을 개인의 자유 해앗의 본질로 간주하는 적극적인 측면이 나타난다. (77면)

27. 공리주의 입장과 대조하여 계약론적 전통의 이론가로 홉스, 로크, 루소 등을 들 수 있으며, 현대의 대표적 이론가로서는 롤즈를 들 수 있다. 계약론적 이론의 특징은 자연상태나 개인적 인권을 전제로 하여 이론이 전개되고 있다. (82면)

28. 의무론적 입장을 옹호함에 있어 롤즈는 계약론적 전통에 입각하여 인간의 기본적 권리의 우선성을 강조한다. 이러한 기본적 권리의 보장은 결과나 목표에 의하여 좌우될 수 없다고 본다. … 즉 개인의 권리가 결과나 목표에 의해 위반되는 것은 정당하지 못하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83면)

29. ‘순수이성비판’을 통하여 나타나는 칸트의 인식론적 입장에서 이성의 기능은 독립적 실재의 본질을 인지하는 것이 아니고 이성이 그 일부를 구성하고 형성하는 경험의 영역을 아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은 정의론에 도입하여 롤즈는 인간의 이성에 의존하여 정의의 원칙을 구성해 나가려는 입장, 즉 실천이성을 통하여 실천이성을 통하여 사회정의의 원칙을 구성하고자 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83면)

30. 공정으로서의 정의의 핵심은 정의의 합의과정에서 편파성의 배제, 즉 불평부당성(impartiality)의 확보라고 할 수 있다. (87면)

31. 롤즈의 제1원칙은 자유의 평등 원칙으로 요약할 수 있다. 제2원칙은 차등원칙과 기회평등원칙의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롤즈 정의원칙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차등원칙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사회경제적 가치 배분의 문제와 깊은 연관성을 갖는 것으로서 롤즈 분배원칙의 대변이라고 할 수 있다. (87면)

32. 롤즈 이론의 출발점으로서 원초적 입장의 정당화 문제는 이후 공동체주의자들로부터 비판을 받는다. 공동체주의자들은 원초적 입장에서 상정되는 ‘추상적 자아’ 또는 ‘무연고적 자아’관은 상이한 정의관 수립을 본원적으로 차단시켜 놓는다고 비판한다. 이러한 비판은 정의원칙 도출에 있어서 원초적 입장의 정당화에 대한 재검토를 요구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89면)

33. 둘째, 원초적 입장의 이론적 정당성을 인정한다 할지라도 원초적 입장으로부터 정의의 두 원치그이 도출은 필연적인가에 대한 의문이다. 이의 대표적 예로는 하세이니(John C. Harsanyi)의 반론인 평균기대효용의 원칙(the expected average utility principle)을 들 수 있다. 비판의 요점은 불확실성 하의 합리적 개인은 롤즈의 맥시민 전략보다는 평균기대효용을 비교하여 선택한다는 것이다. (89, 90면)

34. 셋째, 롤즈의 원초적 입장의 정당성을 인정하고, 원초적 상태로부터 정의의 두 원칙이 필연적이라 할지라도 이 원칙이 현실적으로 파생시킬 수 있는 문제에 근거한 비판을 들 수 있다. 이 경우 비판의 요점은 롤즈의 차등원칙이 이론상 불평등을 통제할 이론적 장치가 결여되어 있어 무한정한 불평등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 경우의 차등원칙은 사회적 불평등 발생을 제어하여 사회협력의 조건을 유지시켜 주는 기능을 하는 평등주의적 성격보다 오히려 사회적 불평등을 정당화시켜 주는 기능을 할 수 있다는 비판이 가능하다. (90면)

35. 이러한 칸트적 구성주의의 일환으로 시도하는 것이 롤즈의 순수가상적 상황인 원초적 입장이라고 할 수 잇다. 이러한 가상적 상황의 설정은 정의의 원칙 합의과정에서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93면)

36. 롤즈는 이 논문(“Justice as Fairness: Political not Metaphysical”)을 통하여 실제적인 정치적 문제에 관해 일반적인 도덕적 개념이, 신념과 가치관이 극심히 다른 현대 민주주의에서 정의문제에 대한 공인될 수 있는 기초를 제공하는 것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한다. 즉 롤즈에 의하면, 형이상학적 또는 도덕의 독립적 질서에 관한 진리를 추구하는 철학이, 다양성을 전제로 하는 민주국가에 적용되는 정치적 정의관에 대하여 현실적인 공통된 기반을 제공하는 것에 한계가 있다고 본다. …이러한 구성주의는 이 문제, 즉 도덕적/정치적 가치의 독립적 질서의 존재문제에 대하여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계약론적 전통으로부터 공적 이성을 통하여 자유로운 합의와 조정을 도출하려고 시도하였다. (93, 94면)

37. 민주적 합의를 해야 할 당사자가 자신의 특성, 사회적 위치, 심리적 경향 및 가치관을 알았을 경우 사회적 기본원칙 합의 또는 문제 해결시 각 당사자가 자신의 입장을 고집하여 자신의 입장과 이익을 극대화할 것은 자명하다. 이 경우 문제해결 양상은 각자가 자신의 입장을 바탕으로 한 협상을 통해 해결하는 방향으로 전개될 것이다. 그리고 협상결과는 협상능력에 의해 좌우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95면)

38. 민주정치의 실행과 관련하여 또 하나 중요한 시사점은 계약론적 전통에 선 롤즈 이론의 강조점은 무엇보다도 기본적 자유는 사회/경제적 이이을 위해서 희생되거나 교환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님을 자신의 제1원칙과 제2원칙의 계서적 관계를 통하여 강조하고 있다. 즉 제1원칙의 동등한 자유의 원칙은 제2원칙의 사회/경제적 가치의 배분문제에 선행하여 적용된다는 것이다. 이는 공리주의의 원칙에서 사회의 총체적 공리나 평균적 개인공리의 극대화를 강조함으로써 개인의 기본적 자유가 제한되거나 희생될 수 있는 가능성을 방지하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96면)

39. 완전주의 정치관은 자유주의 정치관과 대조된다. 완전주의 정치관은 자유주의가 전제하는 가치관의 중립성 원칙에 대하여 상반된 입장을 취한다. 완전주의 입장은 철학적 완전주의와 정치적 완전주의로 구분할 수 있다. 철학적 완전주의는 가치관의 위계질서를 전제로 한다. 이러한 입장은 보다 바람직한 삶의 형태를 상정하게 된다. 정치적 완전주의는 시민들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해 보다 적극적인 국가의 개입을 정당화하고 있다. (135면)

40. 자유주의자들을 겨냥하는 비판의 대상이 되는 사회적 현상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을 들 수 있다. 즉 무기력한 시민정신, 난폭한 대중문화, 초개인주의적 환상과 도피주의, 가족제도와 같은 기본 사회제도의 취약성 증가, 현대생활에서 스케일과 기술적 복합성의 문제에 의한 시민적 자신감의 압도, 분별없는 현대소비주의, 시장중심의 개인주의로 인한 최소의 복지국가의 지탱에 필요한 시민적 연대의 약화 등이 거론된다. 이러한 사회적 현상들은 자유주의가 갖고 있는 도덕적 삶의 비정치화 또는 가치의 개인화, 또는 중립성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대자유주의의 핵심적 특징은 바로 가치관에 대한 중립성이라고 할 수 있다. 자유주의에서 중립성의 원칙은 다음과 같은 논리로 설명될 수 있다. 자유주의 정치철학에서 개인은 자유를 가진 존재로 상정되고 있으며, 이러한 자유의 본질은 상이한 가치관을 가진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그리고 특히 현대자유주의는 이러한 개인 상호간의 상이한 가치과니나 인생관에 대하여 중립성을 부여하고 있다. 중립성이란 상이한 가치관들에 대하여 어떤 가치관이 다른 가치관보다 우월하다는 주장을 거부하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138. 139면)

41. 자유주의에서는 개인의 자유의 우선성을 전제하고, 이러한 자유의 우선성은 상이한 가치관에 대한 관용으로 연결된다. 관용은 상이한 가치관의 존중과 고유성을 인정하는 것을 의미하며, 이것은 가치 상호간의 중립성 위에 성립할 수 있다. 이러한 중립성은 자유주의 사회에서 다원주의를 가능케 한다. 따라서 자유주의는 기본적으로 반완전주의(anti-perfectism)의 입장에 서게 되어 완전주의적 입장을 거부하게 된다. (140면)

42. 철학적 중립성은 두 가지 입장에 의해 가능할 수 있다. 철학적 중립성의 출현은 가치의 객관적 질서를 부인하는 입장에서 성립할 수 있다. 이는 결국 가치실재론을 부인하고 가치주관주의로 기울어지게 된다. 가치주관주의는 가치가 대상에 내재한다는 가치실재론적 견해를 부인하고 가치가 주관적 판단에 의하여 결정된다는 입장이다. 이에 의하면 가치는 각 개인의 주관적 영역에 속하므로 이 각자의 주관적 가치를 상호 비교할 수 없어 중립적이어야 한다는 논리로 발전할 수 있다. 이러한 입장은 바로 가치간의 불가공약성(incommensurability)의 논의와도 관계된다. (141면)

43. 가치관의 불가공약성은 어떤 가치를 다른 가치와 비교할 수 없다는 것으로 정의될 수 있다. 예를 들자면 “A와 B 어느 것이 더 낫다고 할 수도 없으며 그렇다고 동등한 가치를 지닌다고 할 수 없을 때 A와 B는 불가공약적이다.”라고 할 수 있다(Joseph Raz, The morality of Freedem, p. 322). (141면)

44. 존재론적 의미에서 가치의 객관적 질서를 상정한다 할지라도, 인식론적 입장에서 이를 알 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인간 인식능력의 한계를 인정하고 이러한 객관적 질서를 알 수 없다는 입장, 즉 인식 이전의 객관적 질서와 인식 이후의 지식체계의 불일치를 가정한다면, 가치 상호간의 불가공약성이 도출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142면)

45. 오늘날 자유주의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 즉 도덕의 부재, 사회질서의 문제, 공공교육의 문제 등이 발생하는 현상에 대하여 자유주의는 중립성의 원칙에 입각해서 이를 해결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고 있다. 자유주의에서 강조되는 가치관에 대한 중립성은 개인적 차원에서는 ‘좋은 삶’이 무엇이냐 하는 논의의 부재로, 공공적 차원에서는 ‘공공선’이 무엇이냐 하는 문제에 대한 논의의 부재로 연결될 위험을 안고 있다. (146, 147면)

46. 철학적 완전주의(philosophical perfectionism)는 특정 인생의 생활방법이 여타 인생의 생활방법보다 본질적으로 낫다는 것을 믿는 입장이다. 즉 어떤 인생이 본질적으로 우월하거나 보다 낫다는 것을 믿는 입장이다. (149면)

47. 이러한 합리적 구성주의는 결국 절차주의(proceduralism)와 필연적인 연관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151면)

48. 개인의 자율성을 전제하였을 때 국가완전주의의 입장은 어떠한 방향으로 실천가능할 것인가? 결국 개인의 자율성을 전제하였을 경우 국가완전주의 입장의 방향은 개인의 가치관과 도덕적 판단능력, 즉 자율적 능력의 향상에 적극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다. 존스턴(David Johnston)은 완전주의적 자유주의에서 인간은 자율적 개인이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정치적/사회적 구성은 그것이 그 사회의 성원들로 하여금 자율의 삶을 보호하고 증진시켜 줄 수 있는 한 좋은 것이라고 하며, 이를 ‘자율원칙(Autonomy Principle)으로 부르고 있다. (158면)

49. 이 인간관에 대한 비판은 자유주의가 가정하는 개인의 가치관 형성능력과 연관되어 있다. 공동체주의자들은 인간이 사회에 영향을 받지 않고 자율적으로 스스로의 가치관을 형성할 수 있다는 가정에 이의를 제기한다. 인간관에 대한 이들의 비판의 요점은 이러한 인간관 자체가 현실사회에서 찾아볼 수 있는, 공동체나 사회와 연결되지 않은 인간관으로서 추상적이라는 것이다. (167면)

50. 이러한 자율적 존재에 대한 신뢰는 원초적 입장에 놓은 개인들을 자신들의 선관을 스스로 형성하고 교정하며 합리적으로 추구할 수 있는 존재로 여기게 한다. 그러나 공동체주의자들은 롤즈의 이성적이고 자율적인 자아를 비판한다. 자율적 삶을 강조하기 위해 개인들을 공동체로부터 분리하는 것은 오히려 개인을 공동체로부터 고립시키게 되어 개인의 삶의 질을 저하시키게 될 것이라고 공동체주의자들은 주장한다.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상호 무관심하기보다 오히려 서로에게 자애를 베풀어야 한다고 본다. (171, 172면)

51. 공동체주의자들은 롤즈가 공동체가 개별적으로 가지는 문화적 특수성을 제대로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 공동체주의자들에게 공동체의 개별성과 차이는 각 공동체가 가지는 공동체의 특수성에 대한 관용의 정신을 상징한다. 관용은 차이가 있음을 인정하는 정신이다. (174면)

52. Michael Walzer는 On Toleration(1997)에서 관용은 차이를 가능하게 하고 차이는 관용을 필요로 한다는 점을 역설하며 각각의 공동체가 다른 전통을 유지해 왔음을 역사적인 실례를 통해 보여줌으로써 이러한 차이를 인정해야 한다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174면)

53. 롤즈와 드워킨이 중심이 되어 형성된 권리중심론자들의 국가중립성은 결국 반완전주의 입장을 취하게 된다. 아무리 국가라 할지라도 개인에게 특정한 형태의 삶의 방식을 강요해서는 안 되며 이러한 시도들이 개인들의 본질적 이익을 해친다고 본다. (175면)

54. 그러나 공동체주의자들은 국가의 중립에 대하여 반대 입장을 취한다. 국가중립은 곧 공공선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공공선의 포기는 공동체주의자들에게는 가장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여진다. … 아무리 뛰어난 개인도 공공선 또는 공공선이 전혀 형성되지 않는 사회에서 훌륭한 삶을 영위하기란 여간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공동체주의자들은 자유주의적인 국가중립성은 자기파괴적이라고 비판한다. (176면)

55. 만약 국가중립성이 강화된다면 복지국가에 의해 요구되는 희생을 시민들이 받아들이도록 하는 공공선의 공유기반을 약화시킬 것이라고 비판한다(Kymlicka). (177면)

56. 정치적 자유주의에서 롤즈는 목적과 선에 대한 자율적 판단능력을 갖춘 상호 무관심한 개인이란 자아관을 거의 변함없이 유지하고 있다. (178면)

57. 롤즈는 ‘정의론(1971)’에서 사회계약론의 원리를 보다 고차원적인 추상화를 통해 일반화하는 데 역점을 두었으며, 그 결과 ‘정의론’에서는 사회계약론의 전통이 도덕철학의 일 부분으로 간주됨으로써 도덕철학과 정치철학과의 구분이 모호해졌다고 한다. (199면)

58. 이러한 입장은 민주사회의 특징으로서 다양성과 관용을 전제로 하여 출발하고 있다. 롤즈는 이를 합당한 다원주의(reasonable pluralism)로 표현하고 있다. (200면)

59. 정치적 자유주의에서는 롤즈의 정의의 두 원칙은, 제1원칙에서 정의론에서의 자유의 평등원칙과 비교하여 정치적 자유의 공정한 가치보장이 새로이 강조되었으며, 제2원칙에서는 공정한 기회평등의 원칙이 차별원칙에 선행하여 기술되었다. (200, 201면)

60. 한편 공동체는 공유된 포괄적인 종교적, 철학적, 도덕적 원칙에 의해 지배되는데 반해, 질서정연한 민주주의는 합당한 다원주의를 전제한다. (201면)

61. 정치적 자유주의에서 ‘정치적’이라는 어휘는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우선 이 어휘는 정치적인 근본문제의 해결에 국한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정치적인 근본문제를 해결함에 있어 여타의 철학적, 종교적, 도덕적 입장에 의하여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해결한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한편 정치적 자유주의에서 ‘자유주의’ 의미는 정치적 근본문제를 합의나 계약을 통하여 해결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201면)

62. 정치적 자유주의의 핵심적 발상은 윤리와 정치를 분리시켜 정치적 근본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이다. 정치사회의 근본적 운영원칙을 수립함에 있어 정치적 자유주의는 문제해결을 위한 합의의 방향을 강조하며, 이 합의는 개인이나 집단의 특수성에 입각하여 공적인 문제를 해결하려 할 때의 한계성을 지적하고, 이러한 개인적 특수성이 표출되는 것에 제한함으로써 합당성을 추구하여 공적 합의, 즉 중첩적 합의에 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것이 개인이 중요시하는 인생관을 추구할 수 있는 공적인 장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정치적 자유주의의 근본적 발상이다. (202면)

63. 롤즈의 정치철학과 도덕철학의 구분, 즉 정치와 윤리의 구분은 ‘정치적 자유주의’에서 ‘정의론’보다 더 의도적으로 시도되고 있다. 롤즈는 ‘정치적 자유주의’에서 “자유롭고 평등한, 그리고 전 생애를 통하여 사회의 완전한 협력적 성원으로 간주되는 시민 상호간에, 세대에 걸친 사회적 협력의 공정한 조건을 규정하는 가장 적합한 정의관은 무엇인가?”에 대한 체계적 답변을 시도하고 있다. 여기에서 첫 번째 근본적 질문은 민주사회의 전통인 관용의 문제와 겨부되어 두 번째 근본적 질문으로 연결된다. 두 번째 근본적 질문은, “합당한 종교적, 철학적, 도덕적 교리들로 심각하게 분열된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들간에 정의롭고 안정된 사회를 상당기간 유지시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이다. (202, 203면)

64. 승계호 교수는 구성주의란 규범명제나 규범척도를 인간이 만든다는 입장이며, 이는 규범명제나 규범척도가 이성직관으로 알려진다는 직관주의 입장과 반대된다고 한다. 이러한 구성주의는 규범회의주의에서 비롯된다. 규범회의주의란 도덕적 실재(moral reality)의 존재를 부인하거나 도덕진리의 상대성을 주장하는 것 또는 도덕언명의 비인지성(noncognitive function)을 강조하는 것이다. (206면)

65. 롤즈의 ‘정치적인 것의 영역(the domain of the political)은 사회의 기본구조를 운영하는 근본원칙에 대한 합의라고 할 수 있다. (208면)

66. 롤즈의 정치적 정의관의 특징은 우선 종교적, 철학적, 도덕적 교리와 구별되는 ‘정치적 영역’을 설정하고 이의 해결에 있어서도 정치적인 방법인 ‘중첩적 합의’의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롤즈의 정치적 여역은 바로 ‘윤리적 갈등을 해결하려는 공간을 확보’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 정치적 공간의 확보는 ‘공적인 정치적 정의관’을 수립하는 것이다. (209면)

67. 자유롭고 평등한 존재로서의 시민의 두 가지 능력 중 가치관에 대한 능력은 합리성과, 정의감에 대한 능력은 합당성과 각각 결부되어 있다. 즉 합리성은 개인이 가치관을 형성 및 추구하고, 이러한 가치관에 입각한 개인적인 입장과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능력으로 이해된다. 한편 합당성은 정치사회의 여러 시민이 공존할 수 있는 논리로서 정의감으로 대표되고 있다. 롤즈의 이러한 두 가지 도덕적 능력은 무지의 장막을 특징으로 하는 원초적 입장과 결부되어 공적인 정치적 정의관을 형성하게 된다. (212면)

68. 이 원초적 입장이 중첩적 합의를 가능케 한다. 중첩적 합의는 각각의 상이하고 화해 불가능한 종교적, 철학적, 도덕적 교리들 모두가 지지할 수 있는 정치적 합의이다. 이 중첩적 합의는 상이한 교리들이 공존할 수 있는 합당한 정치적 해결을 의미한다. (215면)

69. (1) 개인은 평등한 기본권과 자유에 입각한 완전한 적정구조에 대하여 동등한 주장을 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 이 구조는 모든 사람에게 해당하는 동일한 구조와 양립할 수 있다. 이 구조에서는 평등한 정치적 자유, 그리고 다만 그러한 자유들이 그 공정한 가치를 보장받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217면)

70. 즉 좋음보다는 옳음이 우선하는 의무론적 입장, 그리고 원초적 입장의 장치에 의존하는 정의에 대한 구성주의 입장이 유지되고 있다. 하지만 몇 가지 차이점도 찾아볼 수 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정치적 자유주의’에서 명확하게 나타나는 도덕적 영역과 정치적 영역의 구분시도이다. 그렇지만 정의론에서와 마찬가지로 정치적 자유주의에서도 원초적 입장은 고수되고 있다. 즉 원초적 입장이라는 장치를 롤즈는 정치적 자유주의에서 정치적 문제 해결, 즉 사회운영 원칙을 구성하는 기능에만 국한하고 있다. 이로써 롤즈는 자신의 이론적 입장이 형이상학적이 아닌 정치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218면)

 

진보적 자유주의’는 한국사회의 특수성을 인식하고 있을까

김기원

<‘진보적 자유주의’는 한국사회의 특수성을 인식하고 있을까>

안철수측이 ‘진보적 자유주의’를 자신들의 이념으로 들고 나왔습니다. 정치세력이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런 점에서 환영할 만합니다.

그런데 이게 사실은 안철수측의 발명품이 아니라, 손학규와 유시민 등이 과거에 이미 제시한 바 있다는 게 밝혀졌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식당가에서 가끔 보는 “원조” 논란(예컨대 진짜 “원조 장충동 족발집’은 어디인가 같은 것)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논란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여기서 간과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졸저 <한국의 진보를 비판한다>에서 한국 사회에는 3개의 이념 대립축이 존재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는 시장과 국가의 양적 관계를 나타내는 “진보-보수”의 대립축이고, 다른 하나는 시장과 국가의 질적 문제를 나타내는 “개혁-수구”의 대립축이며, 마지막 하나는 남북한 관계와 관련된 “평화협력-긴장대결”의 대립축입니다. (X축, Y축, Z축으로 표시했습니다.)

이 중 두번째와 세번째의 대립축은 다른 선진사회에서는 별로 논란거리가 되지 않는 한국적 특수성의 문제입니다. 재벌문제나 분단노동시장문제(거대기업정규직과 중소기업노동자의 부당한 차별문제 등)는 두번째 문제로서 다른 선진국에선 그다지 심각하게 논란거리로 부상하지 않지요. 남북한 관계의 문제는 당연히 한국적 특수성이지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진보적 자유주의’를 주장하는 세력들은 이때까지 이런 한국적 특수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습니다. 사회민주주의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진보적 자유주의”에서의 자유는 기껏 정치적 독재에 대한 거부 정도의 의미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한국적 특수성에 대한 인식과 실천 없이는 한국 사회를 제대로 바른 방향으로 이끌 수 없습니다.

안철수측이 “진보적 자유주의”를 내세우긴 했지만 이런 인식은 부족한 것 같습니다. 그러니 개성공단 문제에 대해서도 별로 과감한 자세를 취하지 못하고 있으며, 노동귀족 문제에 대해서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있지요.

요컨대 “진보적 자유주의”는 한국사회에 대한 깊은 구체적 고민 없이 서구 사상과 이론을 수입한 산물이 아닌가 우려됩니다. 그런 이론과 실천으로는 한국사회에서 정치적으로 위력을 발휘하기 힘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퀜틴 스키너의 자유주의 이전의 자유

퀜틴 스키너의 자유주의 이전의 자유
한겨레  한승동 기자
» <퀜틴 스키너의 자유주의 이전의 자유>

<퀜틴 스키너의 자유주의 이전의 자유>
퀜틴 스키너 지음·조승래 옮김/푸른역사·1만3000원

1987년 민주화 이전에도 사람들은 잘 살았다. 밥 먹고 돈 벌고 놀고 여행하는 데 큰 불편 없었다. 민주화 이후의 시대 이른바 ‘친북 좌파’가 나라를 망쳐놨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3공, 5공 시대를 그렇게 기억한다. 그게 ‘자유’였을까? 그 시절 경찰서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고 더욱이 감방 같은 곳은 선량한 사람들과는 무관한 범죄자의 세계로만 여긴 사람들, 나라에서 시키는 대로 한눈팔지 않고 산 사람들은 그때 자유로웠을까?

‘자본주의적 자유주의 가치의 선전원’이었던 아이제이아 벌린(1909~1997)의 관점에 서면 그들은 자유인이었다. 벌린은 타인 또는 외부의 간섭, 강제, 방해를 받지 않는 것을 자유라 규정했다. ‘소극적 자유’다. 그것은 권리청원, 찰스1세의 처형, 공화정 수립으로 이어진 17세기 영국혁명을 거부했던 토머스 홉스와 18세기 미국혁명을 부정했던 제러미 벤담이 일찍이 역설했던 자유론과 일치한다. 왕당파와 절대주의 지지자들의 자유론이다. 이들에 따르면 선한 왕이 지배했던 고대왕국의 신민이 21세기 민주국가 시민보다 훨씬 더 자유로웠을 수 있다.

벌린이 1958년 옥스퍼드대 사회정치이론 강좌교수 취임강연에서 그런 자유론을 설파한 지 40년이 지난 1998년 케임브리지대학 근대사 왕립석좌교수가 된 ??틴 스키너는 취임강연에서 벌린의 자유론에 도전했다. 그가 지지하는 17세기 영국혁명 때의 공화정 의회파 저술가들은 자유인이 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을 만족시켜야 한다고 했다. 우선 “부당한 간섭 없이 권리와 자유를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것은 자유에 대한 필요조건이긴 하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자유인이 아니어도 특정한 권리와 자유를 마음껏 누릴 수 있다. 예컨대 옛 로마나 미국 노예들도 드물지만 좋은 주인 만나면 즐거운 놀이와 휴식, 맛난 음식을 만끽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언제 주인의 기분이나 생각이 바뀌어 천국에서 지옥으로 떨어질지 몰랐다. 그들이 누린 자유가 이처럼 전적으로 타인의 자의적 의지, 선의에 달려 있는 것이라면 아무리 자유를 누리고 있다 한들 그들은 자유인이 아니라 노예다. 따라서 자유인이 되기 위해서는 “권리와 자유를 행사할 수 있는 역량이 타인의 의지에 종속되지 않아야 한다.” ‘적극적 자유’다.

대통령을 직접 뽑을 권리도, 복수의 사람들을 한꺼번에 마음대로 만날 수도, 책을 마음대로 읽을 수도 없었으며, 머리카락과 치마 길이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었고, 정부를 비판하는 말을 뱉는 순간 감옥에 갈 각오를 해야 했던 빅 브러더의 세계, ‘유신’ 독재 이후 군사정권에 고개 쳐들지 않은 대가로 얻은 자유가 진짜 자유였을까. 스키너에 따르면 왕이나 빅 브러더는 그들이 신민을 구속하든 말든 그 존재 자체가 자유를 자유일 수 없게 만든다.

» 찰스 1세(1600~1649)의 처형. 악정을 베풀던 그는 1628년 권리청원이 제출되자 의회를 해산해버리고 11년 동안 소집하지 않았다. 1640년 스코틀랜드 반란으로 촉발된 ‘영국혁명’에서 청교도들이 주도한 의회쪽과 대립하다 1649년 처형당했으며, 크롬웰은 공화국을 선포했다. 이 시기는 18세기 이후 홉스와 벤담의 소극적 자유론이 대세를 이루기 전 자유에 관한 풍부하고 깊이있는 논전이 전개됐다. 푸른역사 제공

그러면 정치적, 절차적 민주화가 크게 진전됐다는 지금 사람들은 자유로울까?

벌린이나 홉스의 자유론에 따르면 거동이 불편한 환자가 병실을 나올 수 없는 것은 자유를 누릴 힘이 없어서지 자유가 없어서가 아니다. 그런 논리라면 지금의 신자유주의시대에 극빈자나 사회적 낙오자, 소수자에게도 얼마든지 자유는 있다. 다만 그걸 누릴 힘이 없을 뿐이다. 정말 그들에게 자유가 있을까? 무한경쟁의 우승열패식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강자는 권력을 독점하고 약자는 가속적으로 더 약해질 수밖에 없으며 그런 처지에서 평등한 기회는 보장되지 않는다. 신자유주의 체제에선 소수 강자, 상위 20%만이 자유롭다.

18세기 공리주의 등장 이후 ‘적극적 자유’론은 쇠퇴했고 자유가 아니라 국가보호 아래 안전과 행복 추구가 최선이라던 왕당파 홉스와 벤담의 소극적 자유론이 세상을 지배했다. 이 때문에 “자유에 대한 좀더 넓고 좀더 깊이 있고 무엇보다도 좀더 민주주의적인 생각이 대부분 시야에서 사라졌다”는 게 스키너의 생각이다. 〈퀜틴 스키너의 자유주의 이전의 자유〉(푸른역사 펴냄)는 바로 이 ‘시야에서 사라진’ 적극적 자유론, 공화주의적 또는 신로마적, 민주주의적 자유론을 되살리자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좌파이념의 확산을 막기 위해 간섭의 부재라는 의미의 개인의 사적 자유를 옹호”한 벌린의 자유론, 냉전시대 서방진영의 ‘정전’이자 ‘무기’가 됐던 그 자유론을 넘어서서, 공화주의와 시민적 자유론마저 불온시했던 이 땅에선 친숙하지 않은 스피노자, 루소, 헤겔, 마르크스, 자코뱅, 좌파들의 자유론을 다시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그 출발점이 영국 역사상 자유론을 둘러싸고 가장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던 17세기 영국혁명 당시, 홉스와 벤담의 자유주의가 판치기 ‘이전의 자유’다.

 

  • 자유는 공동체 안에서 보장된다
  • 퀀틴 스키너의 자유주의 이전의 자유
    퀀틴 스키너 지음|조승래 옮김|푸른역사|224쪽|1만3000원
  • 이한수 기자 hslee@chosun.com
    입력 : 2007.06.22 23:06
    • 번역서 제목에 저자 이름을 앞세운 것은 그만큼 저자의 명성이 높다는 반증이다. 이 책(Liberty before Liberalism)을 쓴 퀀틴 스키너(1940~)는 영국 캠브리지대 교수이자 영국 학술원 회원으로 정치사상사 방법론을 이야기할 때 반드시 언급되는 학자다. 그가 38세 때 쓴 ‘근대정치사상의 토대’는 정치사상사 연구자들이 필수적으로 읽어야 할 저작 목록에 올라있다.

      자유의 문제를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학자는 이사야 벌린(1909~1997)이다. 벌린은 1958년 ‘자유의 두 개념’에서 자유를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로 구분했다. 소극적 자유는 간섭과 방해가 없는 상태이며, 적극적 자유는 공동체에 참여하여 자아실현을 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벌린은 이 두 가지 자유 중에서 소극적 자유만이 진정한 자유라고 주장한다. 벌린이 이렇게 말한 까닭은 시대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당시 사회주의·공산주의 좌파 이념이 득세하던 상황에서 공동체 참여를 강조하는 적극적 자유는 결국 개인의 자유를 통제하는 전제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퀀틴 스키너는 40년 후인 1998년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 취임 강연에서 벌린의 자유 개념을 반박한다. 이 책은 그 강연을 발전시킨 것이다. 스키너에 따르면 자유는 벌린이 말하듯 두 가지 개념으로 구분할 수 없다. 자유는 간섭에서 벗어날 뿐 아니라 무엇을 할 수 있는 것을 말하기 때문에 소극적 개념과 적극적 개념은 겹쳐져 있다. 더구나 간섭이 없는 상태를 진정한 자유라고 말할 수 없다. 자비로운 주인 덕분에 아무런 간섭 없이 사는 노예가 있다 하더라도 그를 자유롭다고 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스키너는 간섭의 부재(不在)가 아니라 지배의 부재로 자유를 규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스키너의 주장 역시 시대상황과 깊은 관련이 있다. 신자유주의 질서가 강화되고 양극화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강자의 시혜를 바탕으로 약자가 소극적 자유를 누리는 것을 진정한 자유로 말하는 것은 강자의 논리를 그대로 따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스키너는 진정한 자유란 동등한 시민으로서 입법과 정책결정 과정에 평등하게 참여할 수 있을 때 가능하다고 본다. 그는 공동선을 추구하는 것이 개인의 자유를 방해하는 것은 아니며, 공동체에 책임을 지면서 개인의 자유를 최대화하는 것이 진정한 자유라고 말한다.(공화주의 자유론)

      이 같은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스키너가 택한 방법은 ‘고고학적 발굴 행위’(역사적 문헌검토)다. 그는 주장하기에 앞서 17세기 중반 영국혁명 과정에서 자유의 개념이 어떻게 등장하고 변천하는지 서술하고, 주요 사상가들의 자유개념을 검토한다. 홉스의 ‘리바이어던’은 소극적 자유를 옹호하는 뿌리였던 반면, 마키아벨리는 ‘리비우스의 로마사 논고’에서 개인의 자유는 자유로운 공화정 아래의 자치공동체에서만 보장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유럽 사상사를 간략히 서술한 소품이지만 서구 정치사상에 대한 기본지식이 없다면 읽기 쉬운 책은 아니다. 근대정치사상사 연구자인 옮긴이가 책머리에 덧붙인 글은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책]진정 자유롭다는건…
[세계일보] 2007년 06월 22일(금) 오후 07:30
자유주의 이전의 자유/퀜틴 스키너 지음/조승래 옮김푸른역사/1만3000원지식인은 왜 자유주의를 싫어하는가/레이몽 부동 지음/임왕준 옮김기파랑/9000원
한때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외치던 시절이 있었다. 그 매력적인 단어 ‘자유’ ‘자유주의’를 제목으로 뽑은 두 권의 책이 눈길을 끈다.

자유를 제대로 누리는 사람들은 공기의 절실함을 모르듯 ‘자유’에 무감각하기 쉽다. 늘 쓰는 말이지만 쉽게 정의할 수 없고 모호하기도 하다. ‘자유민주주의’도 그렇다. 우리 헌법에서 국가의 이념으로 명시하고 있지만 그 개념을 정확히 이해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자유, 자유주의는 과연 어떤 역사적 배경에서 형성되었고, 어떤 가치를 지향할까.

퀜틴 스키너 지음/조승래 옮김푸른역사/1만3000원(왼쪽)
레이몽 부동 지음/임왕준 옮김기파랑/9000원
학문적으로 자유의 개념에 뚜렷한 답을 제시한 인물 중에는 영국의 정치사상가 이사야 벌린(1909∼1997)이 손꼽힌다. 그는 자유를 적극적 자유와 소극적 자유로 구분했다. 능동적 참여를 강조하는 적극적 자유의 개념은 프랑스 대혁명이나 러시아 혁명 같은 역사에서 비인간적이고 폭압적인 권위의 정당화를 초래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비판한다. 반면에 개인의 사생활 중심주의를 표방하는 소극적 자유의 개념이야말로 인간의 내면적 발전을 자극하고 더 진실하고 인간적인 이상이자 이 시대의 중요한 가치라고 주장했다.

소극적 자유는 “내가 행하고자 하는 것을 다른 사람에 의해 방해받지 않는 한도 내에서 누리는 것”, ‘간섭의 부재’가 필요하다. 이는 정치적으로 강제적 폭력이나 지배의 부재를 의미한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이자 학술원 회원인 퀜틴 스키너의 ‘자유주의 이전의 자유’는 소극적 자유 개념에 대한 벌린의 정의에 반기를 든다. 스키너는 우선 ‘간섭의 부재만을 강조한 소극적 자유는 독단에 불과하다’고 단정한다. 그는 벌린의 전제가 공동체를 위해 봉사하는 덕성을 지닌 시민의 공공 정신과 자유의 연관성을 폐기시키는 오류를 범했다고 비판한다. 이를 위해 스키너는 근대 사상가에서 마키아벨리와 홉스 등의 자유 개념을 축으로 공화주의 이념의 성쇠와 자유주의 이념을 신로마적 시각으로 추적한다. 특히 국가가 자유의 상태를 유지하지 않으면 개인적 자유도 박탈당한다는 자유국가 이념을 가진 공화주의의 본질에 주목한다.

이때의 개인적 자유는 이익과 권리에 바탕을 둔 소극적 자유와 의미가 다르다. 오히려 모든 시민이 한마음으로 공동체에 봉사하고, 정치적 공동체의 의결에 동등하게 참여하는 것을 통해 특정 집단이 민중을 강제하는 것을 막는 데 역점을 둔다.

스키너의 자유에 대한 관점은 ‘어떤 권위를 행사하는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의 권위가 누구의 수중에 있는가’이다. 따라서 그의 대안은 벌린류의 이분법적인 적극적 자유보다는 ‘우리 자신의 공적 영역에 책임을 지면서 개인적 자유를 최대화하는 것’이다. 자유가 남용되고 개인의 자유를 전제로 오히려 통제와 감시를 부추기는 현실을 감안하면 그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이에 비해 프랑스의 저명 사회학자 레이몽 부동 파리4대학 철학과 명예교수의 ‘지식인은 왜 자유주의를 싫어하는가’는 마르크스주의자나 마오주의자, 그리고 프로이트·니체·레비스트로스 같은 좌파 지식인들로부터 숱하게 오해 혹은 매도돼 온 자유주의를 변호한다.

이 책은 특히 최근 들어 한국 사회에서 자유주의 국가의 상징인 미국에 대한 반대감정이 유별나고, 지극히 자본화된 사회에 살면서도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이 남다르며, 빈부차에 대한 반감이 신경증적으로 표출되는 이유를 설명하는 데 매우 유용하다. 부동은 우선 그 기능과 역할 면에서 거의 멸종 위기에 놓인 지식인 집단을 세 부류로 분석한다. 첫째는 ‘지적 본능’에 따라 지식을 생산하는 부류이고, 둘째는 ‘윤리적 신념’에 의해 동기화된 활동적 지식인이며, 셋째는 ‘TV에 자주 나오기 위해’ 중개자들을 가동하고 인기몰이에 열중하는 ‘노출 본능’이 강력한 지식인 집단이다. 부동은 특히 연구나 강의보다는 토론회나 강연회를 쫓아다니는 정치 교수에 대해 ‘진실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지식인은 거의 없다’는 짐멜의 말까지 인용하며 신랄히 비판한다.

부동의 지적은 명쾌하다. 모든 것을 일반화하는 위험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 소위 지식인 부류가 한목소리로 지적하는 자유주의 사회의 병폐는 자유주의 원칙을 적용했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자유주의 원칙에서 멀어졌을 때 발생한다는 점을 잊지 말라는 경고다.

조정진 기자 jjj@segye.com

<평등할 때만 자유로울 수 있다>

‘자유주의 이전의 자유’ 출간

(서울=연합뉴스) 김승욱 기자 = 자유에 대한 정의 가운데 가장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것이 영국의 정치사상가 이사야 벌린(Isaiah Berlin 1909-1997)의 ‘2가지 자유론’이다.

벌린은 자유를 적극적 자유와 소극적 자유로 구분한다. 적극적 자유가 민주적 참여와 권력의 원천을 지향한다면, 소극적 자유는 간섭받지 않는 영역의 확보와 권력의 제한에 관심을 쏟는다.

벌린이후 자유를 구분해 개념짓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 소극적 자유의 개념은 정당한가 등을 둘러싸고 많은 반론이 제기됐다.

케임브리지대 근대사 교수로 재직 중인 퀜틴 스키너가 펴낸 ‘자유주의 이전의 자유’ 역시 자유의 개념을 새롭게 해석하고자 하는 시도 가운데 하나다.

이 책에서 스키너 교수는 우선 홉스와 마키아벨리 등 근대 사상가들이 적극적 자유와 소극적 자유를 표현한 방식을 살폈다.

마키아벨리는 개인 자유의 보장은 자발적인 공적 봉사에 있다고 보고, 개인의 자유는 자유로운 공화정 자치 공동체에서만 보장된다고 강조했다.

홉스이후 소극적 자유 옹호자들은 개인의 자유는 군주정이나 공화정 같은 국가체제와 상관없이 독립된 문제라고 주장했다.

스키너 교수는 “간섭의 부재를 강조한 소극적 자유는 독단에 불과하다”며 소극적 자유 옹호론을 비판한다.

자유가 정치제도와 상관없이 타인 혹은 외부의 간섭이 없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면 노예도 주인이 간섭하지 않는 한 자유로울 수 있고 운 좋게 인자한 주인을 만난 노예는 자유인보다 더 자유로울 수 있다는 비판이다.

스키너는 한 개인의 자유가 타인의 선의와 재량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은 자유가 아니라고 단언한다. 자유는 오로지 평등한 자유인들만이 누릴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자유 공동체 안에서 평등한 구성원으로서의 지위를 누릴 때만 인간은 자유로울 수 있으며 늘 깨어 있고 시민적 덕을 실천하는 것이 자유를 누리기 위한 자격이라고 강조한다.

푸른역사. 조승래 옮김. 224쪽. 1만3천원.

신자유주의 시대, ‘진정한 자유’란 무엇인가
[서평] <퀜틴 스키너의 자유주의 이전의 자유>
<a “viehref=”javascript:void(0);”><a “viehref=”javascript:void(0);”><a “viehref=”javascript:void(0);”>텍스트만보기   이선미(sozu20) 기자   
ⓒ 푸른 역사

‘자유’란 말은 참 낯설지 않다. 우리는 충분히 자유롭게 산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자유라 느끼는 자유는 진정한 자유인가? 자유주의 시대에 자유를 충분히 누리고 있다면 인간은 왜 날로 불평등해지는가? 무엇을 위한 자유인가?

우리가 너무 친근하게 느끼지만 쉽게 규정 내려지지 않는 자유에 대해 시대의 변화에 따라 반론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책이 있다. 바로 퀜틴 스키너의 <자유주의 이전의 자유>이다.

퀜틴 스키너는 케임브리지 대학교 근대사 교수로 정치사상사를 다루고 있는 역사가이다. 그는 1978년 그의 이름으로 정치사상사 서술의 필수 인용 목록에 <근대 정치사상의 기초>, <마키아벨리>, <홉스 철학에서의 이성과 수사> 등의 저서 등을 발표한 바 있다.

퀜틴 스키너가 주목받는 이유는 우리가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로 알고 있는 아이제이야 벌린의 <자유의 두개념>에 대해 도전장을 냈기 때문이다. 벌린이 우파적 전통의 자유론을 고수한 것이었다면, 스키너는 자유주의 혹은 신자유주의가 세계화의 보편원리로 작동하는 현 상황에 반론을 제기한 것이었다.

이 책을 번역한 조승래 교수는 87년 유월 항쟁 20주년을 맞아 우리가 그토록 갈구했던 자유, 자유의 대의를 위해 싸운 사람들과 그것을 소중하게 지키려고 한 사람들의 이상 추구를 염두하며 근본적 ‘자유’에 대한 본 스키너의 책을 소개했다.

신자유주의의 무한 경쟁 논리 속에 기회균등을 내세운 자유는 과연 자유인가? 조 교수는 국가의 간섭이 부재한 상황만이 자유인가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며 벌린이 말하는 자유주의 자유론, 스키너가 말하는 공화주의 자유론의 차이에 대해 책의 서두에 비교적 자세히 다루어 주었다. 독자는 스키너를 만나기 전에 조승래 교수의 특별 강의를 듣고 공화주의 자유론에 입문하는 셈이다.

벌린의 자유주의 자유론에 의하면, 자유는 사적이고 개인적인 영역에 속한다. 자유란 타인의 혹은 외부의 간섭이 없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이다. 그것은 정치 제도와도 상관없이 어떤 체제하에서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그는 적극적 자유론은 자유를 평등, 형제애, 인민 주권과 같은 다른 개념과 구별하지 않으며 개인에 대한 통제와 억압을 정당화하는 것이라 말하며, 소극적 자유만이 완전한 자유라 말한다.

퀜틴 스키너의 공화주의 자유론은 벌린이 주장한 이러한 소극적 자유가 과연 진정한 자유인지 반문한다. 스키너는 벌린이 말하는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가 아닌 제3의 자유가 있다며, 스키너의 공화주의 자유론이 벌린이 말하는 적극적 자유론과도 차별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스키너의 ‘진정한 자유’는 과연 무엇일까?

스키너는 제3의 자유로서 공화주의적, 신로마적 자유를 말하는데, 이는 벌린의 소극적 자유에서 말한 간섭의 부재를 넘어서 본질적으로 종속 혹은 지배의 부재로 규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17세기 영국의 혁명기간에 의회파가 왕권에 대항해 싸우면서 왕정 대신 공화국을 수립하면서 옹호했던 자유론이 자유에 대해 민주적인 생각이었다고 말한다.

로마법 <학설집>, <카탈리나 전투>, <로마사> 등을 통해 스키너는 자신의 공화주의 자유론의 근거를 제시하는데, 결국 그의 논지는 공동체의 자유를 침해하는, 즉 평등한 구성원들을 예종의 사슬로 묶으려는 세력을 막아내어 개인들이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이다. 이때 공동선은 개인의 자유를 누리기 위한 수단이다.

이 책은 스키너가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97년부터 강연한 내용을 확대 발전 시킨 내용으로 <자유국가의 신로마적 이론>, <자유국가와 개인적 자유>, <자유와 역사가>라는 제목으로 꼭지가 나뉘어져 있다.

다양한 지성사가들의 자유에 대한 입장과 이에 대한 스키너의 의견이 곁들어져 내용은 이어지는데, 중간중간 인물 삽화가 추가되어 흥미를 더해준다.

저자는 책의 말미에 자유국가에 대해 우리가 물려받은 사고의 전통과 그 모순점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그리고 이에 대해 반추해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이 선택의 문제이지, 반드시 필연적인 것은 아니라고 말하며 조용스레 독자의 과제로 남겨 놓았다.

퀜틴 스키너의 자유론, 장세룡

퀜틴 스키너의 자유론

장 세 룡*영남대학교 사학

Ⅰ. 서론 Ⅱ. 마키아벨리의 자유 Ⅲ. 고전 공화주의와 시민적 자유Ⅳ. 자유국가 이념의 성쇠 Ⅴ. 결론

Ⅰ. 서 론

1997년 11월 12일 퀜틴 스키너(Quentin Skinner)가 케임브리지 대학의 근대사 흠정강좌(Regius) 교수로 취임하며 행한 강연은, 여러모로 1958년 10월 31일 아이제어 벌린(1909-1997)경의 옥스퍼드 대학 Chichele 강좌 교수 취임 강연과 많은 유사성을 지닌다. 그 당시 벌린은 이 강연에서 많은 혼동을 유발하는 용어인 자유에 관한 개념의 본질과 범주를 명료화하기 위해 분석철학의 방법론을 과감하게 도입하였다. 여기서 벌린은 자유를 적극적 자유와 소극적 자유로 구분하고, 공동체에 대한 능동적인 참여를 강조하는 적극적 자유의 개념이 프랑스 대혁명이나 러시아 혁명과 같은 역사적 변혁의 실천 과정에서 비인간적인 폭압적 권위의 정당화를 초래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비판하였다. 그 반면에 개인의 사생활에 몰두하는 사생활 중심주의(privatization)를 긍정하는 소극적 자유의 개념이야말로 인간의 진정한 내면적 발전을 자극하는 것이기에 더 진실하고 인간적인 이상이자 이 시대의 중요한 가치로서 정당화 될 수 있다고 변호하고 나섰다. 그리고 이것은 자신의 영역에서 “내가 행하고자 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 의해 방해받지 않는” 한도 내에서 누리는 것, 한마디로 ‘간섭의 부재’(absence of interference)가 성취되는 것이다. 이는 정치적으로 강제적인 ‘폭력 또는 지배의 부재’ 같다. 적극적 자유는 행위의 목적적 수행에 초점을 두고, 소극적 자유는 행위를 위한 기회의 부여에 의미를 둔다. 그 결과 전자는 민주적 참여와 권력의 원천에, 후자는 삶에서 간섭받지 않는 영역의 확보와 권력의 제한에 관심을 쏟는다. 그 후 과연 두 종류의 자유 개념으로 구분하는 것이 가능하고 그것이 바람직한지 여부와 특히 소극적 자유 개념의 정당성을 둘러싸고 많은 반론이 제기되었다.

필자는 이를 편의상 맥캘럼으로 대표되는 분석적 비판, 맥퍼슨의 좌파적 비판, 테일러의 고전적 비판으로 구분한다. 맥캘럼은 소극적 자유를 긍정하지만 우리가 자유를 말할 때는 이원론이 아니라 삼원론적 관계에서 언급하기 때문에, 즉 누군가 자유롭다고 하는 것은 x가 a를 행하거나 z가 되는 것으로부터 자유롭다고 말하는 것이기에 자유에 관한 진술의 기초 논리로서 삼각 관계야말로 모든 자유 개념에 해당된다고 분석하였다. 이것은 소극적 자유에 관한 일관성 있는 진술을 위해서 행위자와 장애물과 목적성이라는 3변수에 초점을 맞추는 분석적 해석이다. 이에 벌린은 억압자에 대해 투쟁하는 사람과 국가의 관계를 예로 들며 이때 자유에 대한 갈망은 비물질적인 것이므로 결코 삼원적 관계가 될 수 없다고 하였다. 한편 맥퍼슨은 자유란 자신의 고유한 주인이 되는 능력, 이성의 제국과 결합하는 능력, 공적 권위의 행사와 통제에 참여하는 권리로 구성된다고 보고 벌린이 자유의 사회적 조건 곧 어떤 경제 체제가 개인의 자율을 최대한 보장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에 소홀하다고 비판하였다. 이에 벌린은 자유에 대한 자연권을 정치사회에서 특정의 경제 체제를 지지하는 것과는 분석적으로 구분한다. 그 이유는 저항권과 비간섭을 추구하는 권리는 어떤 경제 체제에서든 침해될 수 있기 때문에 특정 체제의 영역으로 축소시키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테일러는 벌린이 구분한 자유의 변수가 적극적 자유의 개념에서는 급진화되어 있고 소극적 자유의 개념에서는 온건화되어 있다고 평가한다. 즉 전자에 대해서는 자신에 대한 통제를 행사하는 것으로 포괄적으로 규정하면서 인간이 자유로워지도록 강요하는 좌파 전체주의 이론과 연결시키는 반면 후자는 물리적’법적으로 외부적 장애물의 부재로만 정의함으로서 모든 내적 장애물 ― 환상, 허위의식 또는 부조리한 공포 등 ― 을 배제하였다고 비판한다. 그리고 소극적 자유는 어떤 결정적 목표나 목적의 추구와는 무관하고 오직 자유로운 행위의 기회가 존재하는지 여부에만 주목하는 기회(opportunity) 개념인바 도리어 자유는 어떤 결정적 목표의 추구에 참여하는 실행(exercise) 개념으로 볼 것을 제안하였다. 이점에서 테일러는 적극적 자유에 더 호의적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진정한 자율적 행위와 결합된 어떤 정전적(canonical) 규범 형식이 제공되는 사회에서만 자유로울 수 있다고 선언한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위의 논의들은 적극적 자유와 소극적 자유라는 기본 틀을 유지하면서 개념들의 확장을 위한 철학적 분석에 치중한다는 데 공통점이 있다. 이에 반하여 철저하게 역사적 입장에서 두 개념의 존립 가능성을 탐색하는 연구가 제기 되었다. 그것이 근대 사상사에서 마키아벨리와 홉스 등의 자유 개념을 축으로 삼아 특히 공화주의 이념의 성쇠와 자유주의 이념과의 상호 삼투 관계를 추적한 스키너의 연구들이다. 여기서 필자는 정확히 40년을 사이에 두고 한 시대의 사상사를 상징하는 인물인 벌린이 고인이 된 바로 그 달에, 한 탁월한 역사가가 자유의 개념에 관한 신중한 제안을 제시하는 것은 지극히 의도적인 행위라고 판단한다.

Ⅱ. 마키아벨리의 자유

스키너 역시 지금까지 사상사에서 두 가지 자유 개념의 유효성에 일단은 호응하면서 그 개념들이 근대 사상가들에게서 어떻게 표현되고 있는가에 주목해 왔다. 그 결과 그가 특별히 학문적 공략의 대상으로 주목한 홉스는 물론이고 마키아벨리의 사상에서도 중심적인 자유는 소극적 자유라는 것을 강조하였다. 홉스의 자유 개념이 소극적 자유라고 하는 것은 납득이 가고 사상사의 통념이기도 하지만, 마키아벨리의 자유 개념이 소극적 자유라고 말하는 것은 마키아벨리의 사상을 통상적으로 시민적 휴머니즘 나아가 공화주의 이념과 연관시키는 사상사의 해석과 결부시켜 판단할 때 이는 상당히 충격적인 것이었다. 왜냐하면 공화주의 이념은 흔히 적극적 자유의 옹호와 강력한 친화성이 있다고 설명되어 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스키너는 근대 사상사에서 또 다른 자유 개념의 역사 즉 공화주의의 전개와 그와 관련되는 자유의 전망이 출현하는 과정에 많은 관심을 쏟아 왔다. 그러므로 취임 강연에서 공화주의적 자유의 개념, 그의 말에 따르면 자유국가와 시민적 자유에 관한 신-로마인(neo-roman) 이론의 전개 과정에 많은 부분을 할애한 것은 결코 뜻밖의 일은 아니다. 그러나 논쟁적인 벌린과 달리 스키너의 논리 전개는 매우 우회적이다. 그는 오직 담담하게 17세기 중반 영국혁명의 과정에서 신로마인 이론이 사상가들에 의해서 어떻게 전개되었던가를 서술 ― 스키너 본인의 말을 인용하면 고고학적 ‘발굴’(excavation) 행위를 ― 하고 있을 뿐이다.(p.112) 그리고 이런 발굴의 성과에 바탕을 두고 지루한 반추(ruminate) 과정을 거쳐 마지막 부분에서 벌린의 자유 개념이 표방하는 전제에 대한 약간의 비판과 수정을 시도하고 있다. 그리고 바람직한 지성사가의 자세를 논하며 자신의 방법론을 옹호하고 있다.

스키너는 지금까지 자유의 개념에 대한 연구에서 자신의 목적을 현재의 사회 및 정치적 논증에서 채용하는 개념에 대한 이해를 확대하는 데 두어 왔고, 그 전제로서 일반적으로 사용된 용어들에 내포된 개념들의 일관성에 관해 직관하는 능력을 요청한다. 그것으로 우리에게 친숙하거나 친숙하지 않은 이론들을 체계적으로 검증해보면, 이들이 때로는 서로 다른 역사적 시기에서 상호 작용하였다는 것을 보충하는 이익을 주리라고 ‘겸손하게’ 기대한다. 사실 사회적 자유를 소극적인 기회 개념으로 생각할 것인가 아니면 적극적인 실행 개념으로 생각할 것인가의 문제는 인간 본성에 관한 깊은 논쟁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특히 인간의 번영(eudaimonia)에 관한 객관적 개념을 확립할 수 있는지, 나아가 과연 합리적인 것이 도덕적인지 묻는 도덕철학의 문제와 관련된다. 스키너는 대체로 이 문제가 적극적 자유론의 핵심에 놓여 있다는 함축을 선호하는 테일러나 볼드윈의 관점과 친화성을 지닌다. 사회적 자유에 관한 스키너의 전제가 아리스토텔레스주의적인 연유가 여기 있다. 이 전제를 따르면 첫째 자연주의적 윤리 체계에 바탕을 두고 우리는 인간적 목적을 지닌 도덕적 존재이다. 둘째 스콜라 정치철학적으로 인간은 사회적이며 정치적인 본성을 지니므로 우리의 목적은 본질적으로 사회적 성격을 지닌다. 인간은 도덕적이며 사회적이란 전제에서 스키너가 지향하는 자유는 당연히 적극적 자유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벌린과 그를 지지하는 견해가 공동체에 봉사하는 덕성을 지닌 시민의 공공 정신과 자유의 연관성을 폐기시키는 오류를 범했다고 비판한다. 그 대신 근대 사상사의 한 전통에서 ‘공적 봉사의 덕성’과 ‘개인적 자유’는 오늘날에는 마치 비일관적인 것으로 보이도록 결합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스키너에게 벌린의 소극적 자유의 개념은 그 뿌리가 자유를 ‘장애물의 부재’(absence of opposition) 상태로 본 홉스와, 자유는 ‘우리가 의지하는 것을 행하거나 금지하는 것으로 구성된다’는 로크에 있다. 그리고 홉스 이후의 계약론적 자연권 이론에 나타나는 사회적 자유에 관한 독단주의를 교정하는데 정치적 자유에 관한 마키아벨리-해링턴적인 스토아적 사고방식이 유용하리라 기대한다. 마키아벨리는 키케로의 T의무론U을 따라 어느 정도의 개인적 자유의 연속적 보장은 자발적인 공적 봉사에 있다고 보고 개인의 자유는 자유로운 공화정 하의 자치 공동체에서 보장될 수 있다고 강조하였다. 반면에 홉스는 국가가 군주정이든 민중적이든 자유는 여전히 같다고 주장한바 이는 그후 소극적 자유의 옹호자들에게 공통적으로 반복된 견해이다. 또한 홉스는 고전 역사와 철학에서 늘 명예롭게 언급된 자유와 그 영향을 받은 자들의 정치적 저술과 논문에서 언급된 자유는 특정 개인의 자유가 아니라 ‘국가의 자유’라고 확언하였다.

그러나 스키너가 보기에 이는 홉스가 고전 공화주의가 표방하는 명제의 핵심을 파악하는 데 실패했거나 아니면 그것을 신중하게 왜곡하려는 시도였다. 왜냐하면 공화주의의 본질은 국가가 ‘자유의 상태’를 유지하지 않으면 개인적 자유도 박탈당한다는 논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경우의 개인적 자유는 소극적 자유에서 핵심적 요소인 이익과 권리에 바탕 둔 개인적 자유와는 의미가 크게 다르다. 도리어 그것은 시민이 전심으로 공동체에 봉사하는 것 곧 외부의 힘이 강요하는 굴종에 대해 공동체를 방어하는 투쟁 능력에 의존한다. 또한 공동체 안에서 모든 시민이 정치체(body politics)의 의결에 동등하게 참여하여, 상층 시민이 민중을 억압하고 강제하는 것을 막는 데 있다. 이러한 공적 봉사를 수행하는 데 시민에게 요청되는 세 가지 자질이 있으니 그것은 자유를 방어하는 용기와 공동선을 추구하고 자유 정부를 유지하는 덕성 그리고 절제와 질서의 준수이다. 이는 결국 조국과 자유를 지키는데 필요한 자질이며 키케로적인 분별력과 정의, 용기와 절제가 핵심적 구성 요소이다. 그러나 마키아벨리가 전시의 정의와 평화시의 정의를 구분한 것은 그의 독창적인 발상이다. 마키아벨리의 출발점은 번영이나 인간의 진정한 이익의 문제에 있지 않다. 단지 우리가 다양한 목적을 선택하고 추구하도록 촉진하는 ‘기질’에 대한 고찰이다. 스키너는 위와 같은 부분에 대한 논의를 간과한 소극적 자유의 관념에 대한 현재의 논의가 혼동되어 있다고 비판한다. 대표적인 것이 소극적 자유는 개인적 권리에 관한 이론이라는 견해인 바 이는 실제로는 독단에 불과하다. 그 이유는 고전 공화주의 이론 역시 개인적 자유에 주목하였으므로 자유가 반드시 특정 방식으로만 작용한다고 생각할 의무는 없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스키너에 의하면 마키아벨리의 자유 개념은 벌린식으로 말하면 ― 역설적으로 ― ‘소극적 자유’의 이론이다. 그렇지만 마키아벨리는 이익에 바탕 둔 개인적 권리의 개념에 대해 특별히 논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우리의 부패를 선언하는 것과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차라리 그는 이익과 의무는 하나이며 동일하다고 믿었다고 말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가 있다. 비록 공동체에 참여하는 용기와 분별심을 요청받지만 우리의 자연적 본성은 그것을 흔쾌히 지속적으로 수행하는 것은 아니다. 도리어 인간은 부패하기 쉽다. 공화주의의 관점에서 부패의 극복은 공동체를 유지하고 개인적 자유를 최대화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어떻게 이기적인 시민들이 덕성을 실현하도록 설득할 것인가? 해답은 이기적 행동의 습관으로부터 벗어나도록 강요하는 법률에 있다. 법과 개인적 자유를 연관시키는 계약론이나 고전 공리주의와 달리 고전 공화주의에서 법의 정당화는 개인적 자유의 보존과 무관하다. 법은 단지 자유국가의 제도를 떠받침으로써 그것이 없으면 굴종으로 전락할 일종의 개인적 자유를 창조하고 보존할 것이다. 이때 법의 메커니즘은 시민이 자유로워지도록 덕성의 계발을 강제하는 것도 정당화한다. 스키너의 자유론의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다. 스키너는 공화주의적 자유 이론이 홉스-벌린식의 소극적 자유의 분석과 결합할 수 없다고 판단하지 않는다. 도리어 사회적 의무의 요청을 확대함으로써 진실로 벌린이 목적으로 삼은 ‘사회적 삶의 최소한의 요구와 양립하는 최대한의 비간섭의 영역의 선택’을 성취할 수 있으리라고 강조한다. 스키너가 보기에 현대 자유주의는 이기심과 개인적 권리의 영역이 과도하게 팽창하여 공적 영역이 휩쓸려갈 위험에 처해 있다. 그는 이의 대안으로 이분법적인 적극적 자유라기보다는, 우리 자신이 공적 영역에 책임을 지면서 개인적 자유를 최대화하는 자유의 실천을 제안한다. 영국혁명기 자유 이념의 대립과 삼투 관계를 설명하는 그의 취임 강연은 바로 이점을 부각시키고자 한다.

Ⅲ. 고전 공화주의와 시민적 자유

신로마인 이론의 계보를 추적하며 스키너가 주목하는 상황은 내란이 발발하여 의회파와 왕당파가 주권의 본질적 성격을 둘러싸고 논쟁하던 1642년 이후 시기이다. 이때 파커(Henry Parker)는 국가적 긴급시에 국가와 법의 문제에서 최고의 판결권은 궁극적으로 권력의 원천이며 충족 원인인 주권자 인민의 대표자 의회에 놓여져야 한다는 견해를 천명한 대표적 인물이었다. 이에 왕당파는 즉각 왕은 성서에 바탕 둔 주권을 지닌 인격이라고 반격하였다. 이후 헌정 위기가 지속적으로 심화되자 왕당파들에게서 새로운 반론의 목소리가 제시된다. 그것은 주권의 담지자인 군주의 자연 인격은 신체 기관을 지닌 자연 인격이 아니라 국가의 인공 인격이라는 견해로 표현되었다. 이런 견해는 이미 로마법학자들에게 선례가 있었던 것이지만, 근세 자연법학자 특히 T자연법과 만민법U(1670)에서 국가를 복합적 도덕 인격으로 고찰한 푸펜도르프, 그리고 T리바이어던U(1651)에서 국가는 주권을 행사하는 자들에 의해 수행 또는 대표되는 인공 인격으로 규정한 홉스에게서 선명하게 나타났다. 동시에 홉스는 국가권력과 신민의 자유의 관계에서 자유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탐색하였다. 그리고 목적의 추구를 위한 능력의 행사에서 방해받지 않는 것을 자유의 첫째 조건으로 설정하였다.(p.5) 또한 국가의 주요 의무는 동료 시민의 권리침해로부터 방어해주는 것 곧 모두에게 동등하게 법의 강제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규정하였다. 자유가 시작하는 곳은 바로 이 법의 적용이 끝나는 곳이다. 법이 금지하지 않는 영역에서 시민은 힘을 행사할 수 있고 이를 통해서 시민적 자유가 보존된다. 이런 견해는 내란 발발 직후 왕당파 법학자들(Griffith Williams, Dudley Digges, John Bramhall, Sir Robert Filmer)이 이미 채택한 것이나, 홉스에게서 훨씬 단순하고 강고하게 제시되었다.

홉스에게 법의 강제력은 인간의 자연적 자유를 반드시 손상시키는 것이 아니다. 그 이유는 일반적으로 인간이 국가에서 행할 수 있는 모든 행동들은 “법에 대한 두려움으로 행하는 것이고 행위자가 소홀히 할 자유를 지닌 행동들”이기 때문이다. 참으로 역설적인 이 교의는 유물론자이며 결정론자인 홉스가 동작하는 물체만이 오직 현실을 형성한다고 믿은 사실에 뿌리를 둔다. 그 결과 첫째 한 인간의 자유란 신체가 그의 힘에 따라서 행동하는데 방해받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자유롭게 행동한다는 것은 수행하려는 의지를 가진 행동을 외부적 방해 없이 수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 행동에서 의지야말로 종극 원인이고 신중한 숙고의 마지막 원인이다. 홉스에게 자유에 대한 두 번째의 조건은 법에 대해 복종하는 행동에서 비롯된다. 복종은 강제를 전제로 하고 이는 자유를 부정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지 않다. 법률이 복종을 강제할 때 이것이 반드시 행위자의 의지에 반하여 행위토록 하는 원인이 되는 것이 아니다. 이때의 복종은 불복종의 의지를 포기하도록 이끄는 데서 나온다. 즉 복종하려는 의지를 획득하고 따라서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하는 것을 포기하는 방식으로 숙고토록 이끎으로서 실현된다. 이 논리는 기본적으로 왕당파와 노선을 같이하는 신민의 자유론이지만 그러나 두 가지 대비되는 결론으로 이끈다. 첫째 시민적 자유는 법의 침묵에 의존한다. 둘째 준수해야하는 법이 없는 한, 신민으로서의 자유를 보유한다. 즉 물리적 법적으로 강제되지 않는 한 신민의 자유는 보존된다. 홉스의 이런 분석은 시민적 자유는 자유국가(civitas libera)에서 실현된다는 고전 공화주의적 관념의 사상적 전통을 능가하려는 기획에서 비롯된 것이었다.(p.9)

자유국가에서 실현되는 시민적 자유의 관념은 로마의 법률적’도덕적 주장의 특징이다. 이것은 르네상스 시대 공화주의적 자유의 변호자들에 의해 부활하고 특히 마키아벨리의 T리비우스론U에서 채택되었다. 그리고 영국에서 휴머니스트적 가치가 수용됨과 더불어 후기 엘리자베드 시대에 비이컨(Richard Beacon)이나 베이컨 같은 정치적 휴머니스트들에 의해 인용되고 연극과 시에서도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그 후 혁명기의 의회파가 이 관념을 강조한 이래 18세기까지 정부에 대한 가부장권론 및 사회계약론과 경쟁하였고, 스튜어트 왕조를 비판한 네빌(Henry Neville)과 시드니(Algernon Sidney) 같은 자들과 18세기 전반에 볼링브로크 그리고 후반에 프라이스(Richard Price)의 집단에서 표명되었다. 특히 공위기에 니덤은 신문 Mercurious Politicus의 편집자(1651.9-52.8)로서, 밀턴은 T자유국가 건설론U(The Readie and Easie Way to Establish a Free Commonwealth, 1658) 등의 신로마인적 및 공화주의적 저술의 가장 풍부한 유산을 남기고 있다. 이들 신로마인 이론가의 특징은 시민적 자유를 논하면서도 엄격하게 정치적 의미에서 논한 점이다. 따라서 이들은 근대 시민사회의 개념이 미흡한 반면 신민의 자유와 국가권력간의 관계에는 관심을 집중하였다.(p.17) 이들에게 자유란 곧 다수의 특수한 시민적 권리들이 억압받지 않고 향유되는 것과 동등시되었다. 그런데 이는 고전기나 르네상스기에도 나타나지 않았던 개념이다. 마키아벨리도 권리에 대한 용어는 채택하지 않았고 개인적 자유란 오직 질서 잡힌 정부로부터 파생되는 이익이라고 서술할 뿐이었다. 이들은 또한 급진적 종교 이론과 결합하여 밀턴의 T국왕 및 행정관직 보유권U(The Tenure of Kings and Magistrates, 1649)에서처럼 자유의 상태는 인류의 자연 조건으로 규정한다(해링턴은 예외). 나아가 원초적 자유는 신이 제공한 천부의 권리이며 정부가 추구해야할 목적인 자연적 권리라고 상정하였다. 이들은 자유의 보장 곧 시민적 자유의 관념에 대한 두 개의 기본 가정을 지니고 있었다.

스키너는 바로 이것들에 초점을 맞추며 이들의 분석이 특정 이념의 선전자 또는 한 사상의 학파로까지 보이게 한다고 그 비중을 높이 평가한다. 이들이 공유한 가정은 다음과 같다. 첫째 개인의 자유는 시민적 결합의 자유와 밀접하게 관련된다. 따라서 초점은 개인의 자유가 아니라 ‘공동의 자유’나 ‘자유 정부’(밀턴) ‘국가의 자유’(해링턴) ‘국민들의 자유’(시드니)에 맞추어졌고 모두 자유국가의 탁월함을 옹호하는데 일치하였다. 사실 이들이 전체 공동체의 자유를 공언한 것은 고전적 정치체에 대한 관심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그것은 이들이 유기체적 국가관을 표방하는데서 잘 드러난다. 이런 은유적 표현은 자유국가를 자유 인격처럼 자치의 능력에 의해 정의하거나, 자유국가란 다름 아닌 정치체의 활동이 전체 구성원의 의지에 의해 결정되는 공동체를 의미하도록 만들었다.(마키아벨리, 니덤, 시드니)(p.26) 이런 가정은 한편 신로마인 이론가 대부분이 보증하는 헌정적 함축을 전달한다. 곧 국가가 자유롭다면 법률은 시민 그리고 정치체 구성원의 동의에 의해 제정되어야 한다는 것과, 법률이나 지배를 인민의 동의에 바탕 두는 것이 권력의 자의와 횡포를 막는 유일한 방법이란 함축이 내포되어 있다. 신로마인 이론가에게 인민의 자유는 각 개별 시민들의 의지를 합친 총계 이상이 아니다. 따라서 자유 정부란 다름 아닌 각 개별 시민이 법의 제정과 폐지에 참여권을 행사하고 그 법에 복종하는 것이다. 그러나 자치정부는 실현하기 어렵다. 대중은 걸핏하면 동요하기 쉽고 그들을 집결하기란 더욱 어렵기에 그렇다. 그렇다면 대안은 없는가? 그것은 바로 대의제도라는데 의견이 합치되었다. 그러나 입법기관의 유형에 대한 의견은 일치하지 않았다. 일부는 하원 중심의 단원제(Francis Osborne, 니덤, 밀턴), 일부는 상원 우위의 양원제(해링턴, 네빌, 시드니)를 선호했고 왕정복고 이후에는 후자의 견해가 우세해졌다.(p.34)

시민적 자유의 관념에 대한 신로마인 이론가들의 특징적 관심 가운데 주목되는 점이 또 있다. 그것은 시민 자신이나 전체 공동체 이외의 어떤 이의 의지에 의한 지배 상태에 대한 설명이다. 이것은 그 기원이 마키아벨리가 자유로운 도시와 자유롭지 않은 도시를 구분한 데서 비롯되었다. 이 관념은 확대되어 훌륭한 법률과 자유를 누리는 고대 로마에 대한 찬사,(John Hall) 군주정 치하는 왕권에 예속되고 노예 신분이 되는 것이란 확신,(밀턴) 자유민과 노예민의 대비(시드니)로 나타났다. 본래 노예제에 관한 전거는 T로마법 학설집U(Digest)에 있다. 여기서 굴종의 본질은 자신에 대해 판결(sui iuris)하면 주인이며 타인의 판결에 예속되면 자유의 결핍이란 명제와 연결되었다. 노예는 개인적 자유가 결여된 존재로 본질적으로 타인 곧 주인의 권력안에(in potestate domini) 있게 되는 것이다.(p.41) 이 문제는 고대 로마의 모랄리스트와 역사가들(살루스트, 세네카, 타키투스)이 많은 관심을 기울였던 주제이기도 하다. 신로마 저술가들은 자유의 소유 또는 상실에 대한 고찰에서 주로 이들의 노예제 분석을 논리적 근거로 삼고 있다. 로마의 자유국가에 관한 관심을 근대로 전달한 물길은 리비우스였고 마키아벨리를 통해 해링턴에게 전달 되었다. 리비우스에게 자유는 타인의 의지에 종속됨 없이 자신의 힘으로 바로 서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유의 상실은 노예로의 전락과 동등시되었다. 그리고 자유 없는 공동체는 타국의 지배 또는 권력 아래서 사는 것이었다. 신로마인 작가에게 예속의 길은 다음과 같다. 첫째 선택한 목적의 추구에서 자연적 신체처럼 의지대로 행동할 능력이 박탈당한 경우, 둘째 자유 인민에 대한 의지의 박탈인 바 그것은 폭정의 분명한 표시였다. 그러므로 1642년 1월 찰스 1세의 명령으로 하원의원 5인의 체포를 시도한 것은 정당성 없는 힘의 행사로 공적 자유를 손상시킨 폭거였다. 그 이유는 전체 정치체의 대표자보다는 어떤 개인의 의지에 예속되거나 혹은 되기 쉽다면 그 자유는 박탈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공적 예속의 조건은 첫째 정치체가 예속화하는 것, 둘째 한 국가 내의 헌정 체제가 지배자에게 자유재량권과 대권을 허용하는 것으로 구분하고 후자의 조건은 바로 자유의 본질에 대한 파괴와 직결된다고 인식했다. 특히 밀턴은 찰스1세를 옹호한 T국왕의 존엄한 심상U(Eikon Basilike, 1749)을 논박한 T심상 파괴자U(Eikonoklastes, 1749)에서 군주의 자유재량권은 자유국가를 노예의 상태로 만드는바 공적 자유는 대권의 현실적 행사가 아니라 대권의 존재 그 자체에 의해 위험해 진다고 강조하였다.(p.52) 따라서 그들은 인민의 동의를 받고 제정된 법에 복종하는 것이 핵심적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므로 대권에 대한 안전판이 부과되는 혼합 정부를 선호한 것이다. 한편 마키아벨리는 T리비우스론U에서 공화정이든 군주정이든 모두 자치가 가능하고, 원칙상으로는 군주도 자유국가의 통치자가 될 수 있음을 긍정한 바 있다. 그러나 여전히 군주를 불신하고 자유국가는 공화정에서만 가능하다는 주장은 상존하고 있었다.(존 홀, 오스번)

Ⅳ. 자유국가 이념의 성쇠

이 결과 자유국가에 대한 신로마적 이론은 고도로 체제 전복적인 이념이 되었다. 당연히 신로마인 이론은 적대적인 비평의 십자포화를 맞게 되었고 그 공격의 선두에 홉스가 있었다. 자유국가의 확립과 개인적 자유 간에 연관성 설정은 단순한 혼동에 불과하다고 비판하고 나선 홉스에 따르면 신로마인 이론가들의 오류는 시민의 자유가 아닌 국가의 자유에 관심을 가진 데 있다. 그러나 스키너가 보기엔 도리어 홉스의 비판이 오류이다. 비록 신로마인 이론이 국가의 자유에 주목한 측면도 분명히 있지만 본래는 시민적 자유는 자유국가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자유국가는 공동체에 영광과 위대함을 가져다준다는 이념은 적어도 살루스트에서 시작하여 마키아벨리를 이어 해링턴과 니덤과 밀턴에게 반복되었다. 그러나 살루스트는 자유국가의 위대함이 도리어 탐욕을 가져와 실패하는 사례에 주목하였고 술라는 그런 사례의 대표적 인물이었다. 공위기에 많은 이들은 크롬웰을 술라와 비교하였다.(p.65) 그런데 이런 비교는 점차 자유국가 자체보다는 시민의 자유를 보장하고 촉진하는 체제의 능력에만 주목하도록 이끌었다. 신로마인 이론에 대한 홉스의 비판이 나오게 된 연유가 여기 있다. 이에 맞서 신로마인 이론가들은 정치적 기관과 자연적 기관의 유비를 통해서 공동체의 자유 상실은 막바로 개인의 자유를 상실하도록 이끈다고 응수하였다. 그리고 그 가능성을 두 가지로 본다. 첫째는 국가나 동료 시민의 권력이 당신에게 법이 부과하거나 또는 금지하지 않는 어떤 행동의 수행 또는 금지를 강요하거나 강조할 경우이다. 곧 신민의 시민적 자유를 박탈하는데 법의 강제력을 사용하는 것이다. 둘째 그러나 시민적 자유의 상실은 강제의 현실적 부과가 아니라 정치적 예속이나 종속에 떨어지는 것 자체를 의미한다. 대권이나 자유재량권을 지닌 정부 하에 사는 것 자체가 노예로 사는 것과 다름없다. 그 이유는 시민적 자유의 연속적 향유를 그들의 선의에 의존해야 하고 행동의 권리는 언제든 삭감되고 철회되기 쉽기 때문이다.(홀, 오스번, 니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강제나 박탈된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가능성의 상존에 있다. 예로서 상비군을 유지하는 자유재량권은 시민적 자유의 보존 가능성을 위태롭게 한다. 필요한 것은 통치자와 시민이 모두 동등하게 법의 제국에서 법에 복종하는 체제에서 사는 것이다. 자치정부에서 법의 제정에 시민이 동등하게 참여하는 것만이 만인의 자유를 보증한다.(p.74)

그러나 홉스는 이러한 견해에 반대하였다. 아마도 홉스는 공적 자유와 사적 자유간의 연관성을 인식하지 못했거나 또는 거부한 것 같다. 다수 비평가들도 역시 동등한 참여권의 현실적 한계를 지적하였다. 그 비판은 첫째 개인적 자유의 정도는 우리의 힘이 물리적이나 법적으로 억압받거나 받지 않는 한도 내에서 행동을 수행하는 정도에 의존한다는 것이었다. 본래 신로마인 이론가들은 행동의 수행이 억압의 위험으로부터 자유로운지 여부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들은 자유 그 자체를 자유의 안전판과 보존자로 보지 않은 것이다. 두 번째 비판은 한 시민으로서 자유의 정도는 권력의 행사에서 법의 강제적 도구에 의해 억제받지 않고 남겨지는 정도에 의존한다는 것이었다. 이 비판에 따르면 시민적 자유에서 문제는 법의 제정에 참여가 아니다. 얼마나 많은 법이 제정되었고 그것이 당신 행동을 사실상 억압하는가 여부에 있다. 이 말은 곧 개인적 자유와 특정 정부 형태 사이에 필연적 연관성은 없다는 뜻이다. 물론 신로마인 이론에서도 자유의 정도는 선택한 목표의 추구에서 마음대로 행동하는 데 억압이 있는지 여부에서 측정되어야 함을 인정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신로마 이론과 자유주의 해석간의 차이점은 전자는 종속의 조건에 사는 것은 그 자체가 억압의 원천이며 형식이라는 입장인 데 비해, 후자는 힘 또는 강제의 위협만이 개인적 자유를 간섭하는 억압의 유일한 형식이란 입장이다. 문제는 억압(constraint)의 관념이다. 이는 홉스가 T리바이어던U에서 신로마인 이론을 풍자적으로 언급한 데 대한 해링턴의 도전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홉스는 루카(Lucca) 시민들이 망루에 ‘Libertas’라고 써놓고 스스로 자유롭게 산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콘스탄티노플의 술탄 치하의 백성들 보다 더 많은 자유를 누린다고 믿을 이유가 없다고 조롱투로 말한다. 그 까닭은 그들이 자유를 위해 문제가 되는 것은 법의 원천(source)이 아니라 그것의 범위(extent)란 것을 깨닫는 데 실패한 데 있다.(p.85) 곧 국가가 군주정이든 민주정이든 자유는 여전히 같다는 것을 인식하는 데 실패했다. 이에 해링턴은 술탄 치하에서는 신민의 자유가 술탄의 선의에 의존하므로 루카의 시민보다 더 자유로울 수 없다고 응수한다. 술탄의 법과 의지는 하나이고 같다는 바로 그 사실이 시민의 자유를 제한하는 효과를 가지므로 국가가 민주정이든 군주정이든 마찬가지인 것은 결코 아니라고 반박한 것이다. 신로마인 이론가들은 자신들의 견해를 설명하기 위해 고전 시대의 탁월한 인물들의 견해를 주로 원용하였다. 그리고 통치자와 정부에 대한 조언자이며 자문관으로서 공동선의 이름으로 명령하는 양심적인 말과 행동을 하는 것이 그들의 시민적 자유라고 확신했다. 그러므로 시민적 자유가 사라지면 덕스런 시민으로서의 의무 수행은 제한을 받게 될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p.87)

영국사에 대한 휘그적 해석에서 토마스 모어의 위치가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모어는 T유토피아U에서 정부에 대한 봉사를 통해서 이러한 시민적 자유를 실현할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하였다. 지배자는 늘 충고보다는 아첨꾼의 말만 솔깃해할 뿐이다. 이는 궁정이 부패의 온상이라는 타키투스적 견해와 연결되어 왕정복고 이후 다시 주목받게 되었다. 그들이 이상으로 삼은 자문관의 지위는 군주의 전제화에 비례하여 노예의 조건으로 전락한다. 이런 공포 분위기에서 공적 봉사의 삶은 이제는 가장 나쁜 것이 되어버리고 만다.(p.91) 남은 것이 있다면 아첨도 추종도 억제하는 것이다. 그 결과 덕스런 행동은 중지되고 공공선을 추구할 능력은 상실된다. 신로마인 이론가들에게 자유의 결여는 물론 강제나 힘에 의한 것도 있지만 핵심적인 것은 종속의 조건과 요구에 대한 그들의 이해와 평가에 바탕을 둔다. 권세가에게 아첨하며 시혜를 받아 사는 좀팽이 정치가들에 대한 혐오(시드니, George Wither)는 ‘비위에 거슬린다’(obnoxious)는 말로 표현되었다. 그리고 궁정의 아첨배들과 대비되는 가치를 지닌 인물로서 진정한 남성이며 고결한 독립심을 지닌 지방 향신의 용기와 강건함은 이상화되었다. 그러나 영광은 너무나 빨리 덧없이 지나갔으니, 고전 공리주의의 흥기와 함께 자유국가 이론은 평판이 급속도로 악화되고 논쟁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자유국가의 이론적 토대가 되는 사회적 가정들이 시대에 뒤떨어지고 심지어 부조리하게까지 보이게 되었다. 부르주아들에게도 궁정 예법이 확산되고 향신은 이제 촌닭처럼 보이는 판이었다. 더욱 뼈아픈 것은 자유에 대한 기초적 이론을 혼동하였다는 지적이다.(William Paley, Sir William Blackstone, J. Bentham)

인간 행동에 대한 외적 장애물의 부재는 곧 개인적 자유를 의미하는데도 시민의 자유가 오직 자유국가에서만 가능하다고 본 것은 자유라는 단어의 공통적 사용에서 비롯된 혼동의 산물이란 비판을 받게된 것이다.(p.97) 그러므로 개인적 자유는 정부의 형식과 필연적 연관성은 없다. 개인의 자유와 관련된 것은 군주가 아니라 대의제도와 입법부가 되었기 때문이다. 신로마인 이론은 소극적 자유를 옹호하는 자유주의적 분석에 의해 부식되고 이어서 자유주의 이론으로 간주되어 사라졌다. 벌린에 대한 스키너의 비판이 제기될 실마리는 다시 여기서 비롯된다. 벌린의 소극적 자유는 오직 강제적인 간섭에 의해서만 위험하게 된다. 어떤 종류의 독재 또는 어느 정도로는 자치정부의 부재와 양립할 수 없는 것이 아니며, 개인적 자유와 민주정적 통치간에 필연적 연관성이 있다고 가정할 수 없다. 그런데 스키너에 의하면 자유를 간섭의 부재로 보면 결국 핵심 문제는 어떤 권위를 행사하는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많은 권위가 누구의 수중에 놓이는가에 있게 된다. 그리고 필연적으로 이것은 종속 상태와 자치정부의 결여는 자유의 결핍을 가져온다는 해석으로 이끈다. 이것은 본래는 신로마인의 이론인 것이다. 왜 이런 논리적 오류가 나타나게 된 것인가? 이것은 벌린이 지적 전통의 주류에 속하는 사고방식을 따라 자유국가에 대한 신로마인 이론을 불신한 고전 자유주의자들의 노선을 패권적으로 추종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p.117)

Ⅴ. 결 론

스키너는 벌린의 견해가 공동체에 봉사하는 덕성을 지닌 시민의 공공 정신과 자유의 연관성을 폐기하는 오류를 범했다고 비판한다. 그 대신 근대 사상사의 한 전통에서 공적 봉사의 덕성과 개인적 자유는 실제로는 서로 결합되어 있음을 논증한다. 그의 목표는 정치적 자유에 관한 신로마인적 또는 마키아벨리-해링턴적인 사고방식이 홉스 이후의 자연권론이 내포한 사회적 자유에 관한 독단주의를 교정하는데 있다. 마키아벨리에게 개인의 자유는 자유로운 공화정 하의 자치 공동체에서만 보장될 수 있었다. 반면에 홉스 이후의 소극적 자유의 옹호자들에게는 국가가 군주정이든 민주정이든 자유는 여전히 같다. 반면에 공화주의의 본질은 국가가 ‘자유의 상태’를 유지하지 않으면 개인적 자유도 박탈당한다는 자유국가의 이념이다. 그러나 이때 개인적 자유는 이익과 권리에 바탕 둔 소극적 자유에서의 의미와는 다르다. 도리어 시민이 전심으로 공동체에 봉사하는 것 곧 외부적 굴종에 대해 공동체를 방어하는 투쟁 능력과, 모든 시민이 정치적 공동체의 의결에 동등하게 참여하여 상층 시민이 민중을 강제하는 것을 막는 데 있다. 이러한 공적 봉사를 수행하는데 필요한 자질은 용기와 덕성 그리고 절제와 질서의 준수이다. 스키너에 의하면 마키아벨리의 이러한 출발점은 인간의 진정한 번영이나 이익의 문제에 있지 않다. 단지 우리가 다양한 목적을 선택하고 추구하도록 촉진하는 ‘기질’에 대한 고찰이다. 나아가 그는 소극적 자유의 관념에 대한 현재의 논의가 혼동되어 있다고 비판한다. 대표적인 것이 소극적 자유는 개인적 권리에 관한 이론이라는 견해인 바, 고전 공화주의론 역시 개인적 자유에 주목하였기에 이는 독단에 불과하다. 자유가 반드시 특정 방식으로만 작용한다고 생각할 의무는 없다. 이런 의미에서 스키너에 의하면 마키아벨리의 이론은 (역설적으로) 소극적 자유의 이론이다. 그러나 비록 공동체에 참여하는 용기와 분별심을 요청받지만 우리 인간은 부패하기 쉬운 존재이다. 여기서 필요한 것은 이기적인 시민들이 덕스럽게 행동하도록 설득하는 법률이다. 법과 개인적 자유를 연관시키는 계약론이나 고전 공리주의와 달리 고전 공화주의론에서 법의 정당화는 개인적 자유의 보존과 무관하다. 단지 법은 자유국가의 제도를 떠받침으로써 일종의 개인적 자유를 창조하고 보존한다. 이때 법의 메커니즘은 시민이 자유로워지도록 덕성의 계발을 강제하는 것도 정당화한다.

스키너의 견해에 대한 반발 또한 만만치 않다. 샤베트는 스키너가 우선 마키아벨리의 공화주의가 귀족과 민중의 계급적 조화와 통합을 모색한 데서 나온 것임을 간파하지 못했고, 다음으로 개인주의와 계약론 대 공화주의와 시민적 의무를 설정하였으나 루소에서 보듯 양자의 혼합이 이뤄지는 것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고 비판한다. 또한 스피츠도 첫째 스키너가 자유를 한 가치가 아니라 속성으로 곧 그 자체의 선이 아니라 한 일반적이고 자연적인 정념 정도로 보는데 이는 스키너가 자유의 욕망을 만족시키는 기교에 초점을 맞추고 존재의 본질에 대한 성찰이 부재한 탓이 아닌가? 둘째 좋은 삶이 가능한 사회에 대한 개념이 서로 다른 개인들간의 공존은 가능한가? 그것을 위해 덕성의 필요성이 정당화된다면 이 경우 선에 대한 개념을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공존의 규칙만 공유하는 것 아닌가? 셋째 스키너에게 덕성은 결코 자발적인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결국 시민은 자유로워지도록 법률이라는 수단을 통해서 덕성스런 존재이기를 강제되어야 한다는 것인가? 넷째 스키너의 근대주의는 사회적 관계와 정치적 구조에 대한 공리주의적 개념을 거부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이런 비판에 정확한 해명을 하지는 않았지만 스키너는 그의 취임 강연에서 다음과 같은 입장을 분명히 하였다. 첫째 그는 공화주의적 자유 이론이 홉스-벌린식의 소극적 자유의 분석과 결합할 여지가 있다고 판단한다. 그리고 사회적 의무의 요청을 확대함으로써 진실로 벌린이 목적으로 삼은 ‘사회적 삶의 최소한의 요구와 양립하는 최대한의 비간섭의 영역의 선택’을 성취할 수 있으리라고 강조한다. 스키너가 보기에 현대 자유주의는 이기심과 개인적 권리의 영역이 과도하여 공적 영역이 휩쓸려 떠내려갈 위험이 있다. 그는 이에 대한 대안이 이분법적인 적극적 자유라기보다는 우리 자신이 공적 영역에 책임을 지면서 개인적 자유를 최대화하는 것이라고 판단한다. 둘째로 스키너에게 벌린의 소극적 자유에서 문제의 핵심적 초점은 결국 어떤 권위를 행사하는가에 있는 것이 아니다. 도리어 어느 정도의 권위가 누구의 수중에 있는가에 있다. 그런데 이것은 필연적으로 종속 상태와 자치정부의 결여는 자유의 결핍으로 이끈다는 신로마인 이론가들의 견해와 동일한 것이다. 스키너는 이런 오류가 지성사가들이 주류 사상을 패권적으로 수용한 탓에 발생했다고 강력하게 비판한다. 이제 스키너가 원하는 지성사가, 우리의 가치와 조상들의 낯설어 보이는 가정을 더 깊은 수준에서 조화시키는 고고학자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렇다고 반드시 홀로 초연한 역사가의 모습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도리어 현재의 가치와 신념에 관한 판단에 적합한 정보를 찾는 희망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을 성취하는 자세는 정보를 끊임없이 소처럼 반추하는 것이다. 스키너가 우회와 반추의 지성사를 옹호한다면 벌린은 직설과 도전의 지성사가란 말인가? 실제로 그렇게 해석할 여지가 있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 이것은 지성사가들이 처해져 있는 조건과 밀접하게 연결된다. 격동의 시대를 살아온 지성사가는 현실에 대해 더 적극적으로 다가서 해결책을 모색하는 도전적 자세를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지금처럼 지성의 역사가 별로 설자리가 없는 시대에 지성사가는 호고적인 자세로 과거의 사상을 파고들든지, 아니면 희망을 잃지 않고 과거를 반추하며 현재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직설과 도전의 지성사와 우회와 반추의 지성사 가운데 어느 것이 더 타당하다고 단정할 필요는 없다. .

미국의 정치 문명, 권용립

미국의 정치 문명

권용립 지음 | 삼인 | 2003년 01월 15일 출간

미국의 정치 문명

372쪽 | A5 판형알림 | ISBN-10 : 8987519805 | ISBN-13 : 9788987519807

책소개

미국의 정치적 담론을 파악하고 그 세계관과 역사관을 이해하기 위한 책. 현대사의 운명적 화두일 뿐만 아니라, 바야흐로 전 지구인의 삶에 개입하고 있는 현대 미국의 뿌리와 성격에 대해 깊이 알 수 있다.

목차

책머리에 … 7
초판 앞머리에 붙인 글 … 12
초판 서문/ 책을 펴내면서 … 15

제1장 미국 – 초상과 자화상
‘미국 보기’와 ‘미국 읽기’ … 23
‘객관의 미국’은 존재하는가? … 35
미국 연구의 역사 … 39

제2장 이론의 바탕
‘합의’와 ‘보수’ … 46
‘보수적 아메리카니즘’ … 54
개관 … 65

제3장 미국 정치 문명의 뿌리
‘합의 콤플렉스’의 자화상 … 75
자유주의 … 83
공화주의 … 98
캘빈주의 … 125

제4장 미국 정치 문명의 형성 – 고대와 근대의 융합
조건 … 146
형성 … 155

제5장 미국 정치와 ‘보수적 아메리카니즘’
‘형성기 미국’의 보수성 … 180
우월 의식과 회귀 지향성 … 195
미국의 평등관 … 221

제6장 미국 정치의 전통과 패턴

제7장 현대 미국 정치 – ‘신보수’의 이해
현대 미국의 보수주의 … 256
‘신보수’의 역사적 성격 … 264

제8장 미국 외교와 보수적 아메리카니즘
외교와 정치 문명 … 273
도덕적 절대주의와 메시아니즘 … 279
미국 외교의 연속성 – ‘고립’과 ‘개입’ … 291

제9장 미국 외교의 ‘숙명’ – 하나의 이론
농업 제국 – 초기의 팽창 이념 … 302
팽창의 성향 … 306
‘보수적 팽창주의’ … 312
탈냉전 시대의 미국 외교 … 329

제10장 맺는 말 – 미국과 전통
참고 문헌 … 338
찾아 보기 … 362

미국의 자유주의 전통 독립혁명 이후 미국 정치사상의 해석,루이스 하츠 ,나남, 2012

미국의 자유주의 전통 독립혁명 이후 미국 정치사상의 해석

한국연구재단 학술명저번역총서 서양편 | 339
루이스 하츠 지음 | 백창재, 정하용 옮김 | 나남 | 2012년 12월 20일 출간

책소개

이 책은 미국 독립전쟁 이후 미국 역사의 전 과정을 섭렵하면서 로크적 자유주의라는 강력한 단일의 합의가 형성되는 과정을 추적한다. 이 과정에서 유럽적 봉건주의, 남부의 반동, 사회주의, 그리고 일부 낭만주의적 일탈과 회의 등 어떠한 도전이나 저항도 결국은 미국 자유주의라는 강력한 신념 앞에서 어떻게 좌절되고 흡수되는지를 보여준다.

저자소개

저자 : 루이스 하츠

저자 루이스 하츠(Louis Hartz, 1919~1986)는 미국 오하이오주 영스타운에서 러시아 이민 가정에서 태어나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에서 성장하였다. 1940년 하버드대학을 졸업하고 1946년 동대학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1956년 하버드대학 교수로 임용되어 재직하다가 1974년 신경쇠약으로 퇴직하였다.

역자 : 백창재

역자 백창재는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미국 버클리대학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역자 : 정하용

역자 정하용은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미국 아이오와대학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 경희대 국제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목차

ㆍ옮긴이 머리말 7
ㆍ머리말 13제1부 봉건제와 미국의 경험 
제1장 자유주의 사회의 개념 23
1. 미국과 유럽 23
2. 정신적 틀로서의 “자연적 자유주의” 26
3. 자유주의 사회의 역동성 41
4. 단일요인의 문제 48
5. 유럽에 대한 함의 51
6. 혁신주의 학풍 56

제2부 신세계의 혁명
제2장 1776년의 시각들 65
1. 헤브라이즘: 선민 65
2. 유토피아, 권력, 그리고 역사 관념 69
3. 승리한 중간계급의 정신 84
4. 유럽식 투쟁으로부터의 도피 99

제3장 미국의 “사회혁명” 103
1. 내적 갈등의 유형 103
2. 봉건잔재, 민주적 자유주의, 그리고 대니얼 셰이즈의 문제 107
3. 연방주의자들의 허구적 세계 116

제3부 민주주의의 대두
제4장 휘그의 딜레마 127
1. 잭슨 민주주의, 7월혁명, 제1차 개혁법 127
2. 휘그 진보주의의 퇴화 136
3. 귀족정의 닻을 찾아 142
4. 대중정부에 대한 공격 147
5. 민주자본주의의 개념 152

제5장 미국 민주주의자: 헤라클레스와 햄릿 155
1. 사회적 이종교배와 민주주의자의 심리 155
2. “귀족”, 농민, “노동자” 160
3. 개인주의적 공포: 다수의 문제 170
4. 자본가적 욕망: 양심과 탐욕 176
5. 일치성의 문제 182

제4부 남부의 봉건적 몽상 
제6장 반동적 계몽주의 189
1. 자유주의 사회 속의 보수주의 189
2. 헌법: 칼훈과 피츠휴 204
3. 인종, 종교, 그리고 그리스적 이상 214
4. 망각과 패배 219

제7장 “자유사회”에 대한 성전 225
1. 봉건적 후견주의와 사회과학 225
2. 미국의 콩트: 실증적 형이상학 231
3. 토리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진흥주의 237
4. 반동적 계몽주의, 휘그주의, 민주자본주의 이론 245

제5부 호레이쇼 앨저의 세계
제8장 새로운 휘그주의: 민주자본주의 251
1. “미국의 발견”: 매혹과 공포 251
2. 억센 개인주의와 국가권력 260
3. 성공과 실패의 이론 269
4. 동조의 문제 276

제9장 혁신주의자와 사회주의자 279
1. 미국의 자유주의 개혁 279
2. 혁신주의의 긴장 289
3. 황야의 사회주의 296
4. 역사 분석의 문제 301

제6부 공황과 세계적 개입
제10장 뉴 딜 311
1. 자유주의 개혁의 승리와 변형 311
2. 유럽의 루스벨트 319
3. 위축된 휘그의 전략 325
4. 마르크스주의의 실패 332

제11장 미국과 세계 339
1. 외교정책과 국내적 자유 339
2. 제국주의: 브라이언과 팽창주의자들 343
3. 제1차 세계대전과 1차 적색공포 350
4. 미국과 러시아 360

ㆍ옮긴이 해제 369
ㆍ주석 403
ㆍ찾아보기 415

책속으로

미국 자유주의와 유럽 자유주의 간의 이러한 연관성들이 그간 간과되었던 이유는 찾으려고만 한다면 명백하게 드러난다. 미국은 유럽식의 사회적 적대가 존재하지 않는 상태에서 작동한 유럽식의 자유주의 작동메커니즘을 보여주는데, 사실 이러한 작동메커니즘은 사회적 적대를 통해서만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유럽의 자유주의자를 알 수 있는 것은 그가 만들어낸 적들을 통해서이다. 자유주의자의 적들을 미국식으로 제거해버리고 나면, 자유주의자는 전혀 자유주의자처럼 보이지 않게 된다. 심지어 1840년 이전의 휘그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이 점에 관한 한 당시의 휘그들을 비교하는 것은 대단히 쉽다. 얼핏 보아서는 관련성을 찾기 힘들지만, 맥컬레이(Thomas Babington Macaulay)에게서 웰링턴 경(Duke of?Wellington)을 제거하면 본질적으로 알렉산더 해밀턴이 남게 된다. 미국의 휘그들이 해밀턴식 엘리트주의를 포기하고 호레이쇼 앨저(Horatio Alger)식 정서와 “미국주의”를 발견하게 된 1840년 이후에는 자유주의를 규정하는 과제가 보다 어려워진다. 왜냐하면 영국과 프랑스의 자유주의자들이 결국 정치적 민주주의를 받아들인 것은 사실이지만, 앨저주의와 “미국주의”는 유럽의 자유주의자들이 활용할 수 없는 사회 이데올로기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토리주의의 부재라는 문제는 미국의 공화파를 빅토리아시대 영국의 반동적 자유주의자들이나 프랑스 제3공화국의 신지롱드당과는 다른 것으로 만들 뿐 아니라, 나아가 휘그주의 전통이 미국의 자유주의 사회에서 취할 수밖에 없었던 독특한 이념적 형태로 인해 이 문제는 더욱 복잡해지게 된다. 더보기

출판사 서평

이 책에서 저자가 분석한 핵심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미국과 연관하여 떠올리는 자유와 자유주의가 지니는 야누스적 모습이다. 절대화된 로크, 절대화된 자유주의가 미국 정치사상을 관통하는 핵심이다. 즉, 절대적 자유주의의 합의가 미국 사회의 심연에 놓여 있는 이념적 합의이다. 로크의 자유주의가 문제가 아니라 로크의 자유주의를 반대할 수 없는 자유주의가 문제이다. 미국의 자유주의는 우리가 통상적으로 이해하는 보수주의와 진보주의, 복고주의와 자유주의의 대립에서 진보나 자유주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적 예외성의 토양에서 성장하고 변질되어 온 미국만의 자유주의이다. 이런 의미에서 미국인들은 진보적이든 보수적이든, 신자유주의적이든 신보수주의적이든 간에 “미국의 자유주의” 이념을 공유하고 있다고 볼 수 있으며, 바로 이것이 ‘자유주의적 일체성’, ‘자유주의적 독재’이다. 반세기도 전에 저자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침공과 같은 미국의 자유주의적 독재의 세계적 전개를 우려하여 미국에 뼈를 깎는 자기성찰을 주문한 바 있다. “자유롭게 태어난 사람이 자유를 희구하는 다른 사람들을 과연 이해할 수 있을까?”라는 저자의 질문은 미국 주도의 단극질서의 시대에 더욱 절실하게 울리는 외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