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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냉전’ 영국 케임브리지대 권헌익 석좌교수

 

ㆍ여전한 내전과 정치폭력…냉전은 과연 종식된 걸까

권헌익 영국 케임브리지대 트리니티칼리지 석좌교수는 이 대학에서 인류학 박사 과정을 밟을 때 시베리아로 현장 연구를 나갔다. 순록을 치는 퉁구스족을 관찰하기 위해서였다. 1980년대 초반 학생운동에 참여했던 그는 소련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보며 사회주의를 실증적으로 이해하고 싶었다. 하지만 부족사회 같은 주제가 아니면 연구 지원을 안하던 인류학계의 관행 때문에 퉁구스 사회로 주제를 바꿨다. 그는 시베리아에서 1년6개월가량 살며 퉁구스 사회를 연구했다. 이곳에서 제도 공산주의가 원시 공산주의를 포용하지 못하는 아이러니 문제도 분석했다. 현장 연구를 끝낸 1991년 소련 체제가 와해됐다. 1993년 맨체스터 대학에 부임했을 때부터 ‘냉전의 종식’ 이야기가 나왔다.

지난 17일 <또 하나의 냉전>을 출판한 서울 신사동 민음사 사무실에서 만난 권 교수는 “그때부터 ‘또 하나의 냉전’을 쓰기 위한 이론적 고민을 했다”고 말했다. “냉전이란 것이 한 시대성, 한 시간성만 갖고 있는 것인가, 왜 한 군데에서 냉전이 끝났는데 글로벌하게 냉전이 종식됐다고 이야기하느냐는 것에서부터 출발한 거죠.” 흔히 냉전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두 강대국인 미·소 간 갈등을 가리키고, 냉전의 종식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1989년 이후’로 여기는 학설과 통념에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권 교수는 서로 전면전 위협으로 평화를 유지하는 냉전의 비유적 표현인 ‘상상의 전쟁’과 강대국 간의 ‘오래된 평화’는 미국과 유럽 중심의 지정학적 시각이자 ‘글로벌한 추상’이라고 말한다.

권 교수는 “냉전이 끝났다고 말할 때 누구의 냉전이며 냉전의 어떤 차원을 말하는지도 봐야 한다”면서 “냉전은 하나의 충돌로 존재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한국만 해도 극히 혼란스럽고 폭력적인 한국전쟁을 겪었다. 동남아시아의 여러 나라, 아프리카의 많은 신생국가와 라틴아메리카 여러 공동체들도 냉전 시기 잔인한 내전과 예외적 형태의 정치 폭력에 시달렸다. 권 교수는 “세계 냉전의 역사를 한반도를 포함한 동아시아의 해방공간에서 많은 공동체들이 겪었던 엄청난 불행을 포함하는 역사로 봐야 한다”면서 “냉전이라는 현혹적인 이름 아래 20세기 후반부에 활개쳤던 국가 폭력의 힘에 스러져 간 삶을 기억하고 애도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인간의 조건’을 강조하고, 가족 간, 공동체 안의 ‘관계’라는 화두를 중시했다. 그는 “양영희 감독이 조총련 가족을 소재로 만든 영화 <가족의 나라>를 봤는데,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뿐만 아니라 국가와 국가의 관계, 국제 정치의 힘이 가족의 관계 안에 들어간 것 같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일본 내 한인 사회에서 친북 그룹의 자녀들은 식민지 때 비롯된 민족 불평등과 탈식민기의 정치적 분열이라는 이중적 고난을 겪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권 교수가 이번 책과 <학살 그 이후>에서 베트남전 때 적군(미군) 편을 들었던 친족의 죽음을 애도하는 문제를 두고 갈등하고 고통을 겪는 베트남 주민의 문제를 다룬 것도 그런 이유다. 책은 이처럼 인류학적 방법론으로 ‘인간’을 드러낸다. “유럽사 같은 경우에도 초기에는 전투원들, 국가 중심으로 담론이 되다가 비전투원, 민간인 중심으로, 즉 ‘아래로부터의 역사’로 전개되는데 이는 유럽의 민주화 과정과 동일합니다. 그런 과정을 수렴해 정리하는 게 중요합니다.”

권 교수는 책의 여러 곳에서 탈식민 비평을 비판한다. “기존 탈식민지 논의는 식민시대에서 양극시대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폭력적으로 전개되는, 우리가 말하는 해방공간의 역사라는 것이 전혀 없어요. 냉전이란 것을 점점 더 유럽사람들처럼 상상의 전쟁이란 패러다임으로, 지정학적인 강대국의 게임으로 이해하지요. 탈식민 세계의 여러 지역에서 벌어진 양극 체제의 충돌, 내전이나 폭력을 주변화합니다. 기존 탈식민 이론은 탈식민지에 사는 사람의 공동체, 친족 문제를 관계로 이해하지 않습니다.”

권 교수는 에드워드 사이드를 두고도 “초기 냉전 형성과 탈식민지 역사가 만나는 부분을 그 토대로 이야기하지 않았다”고 했다. 남아시아의 주된 정치적 긴장을 두고 ‘냉전 정치’가 아니라 식민 치하 경험에서 비롯된 인종적·종교적인 이유로 분석한 P R 쿠마라스와미 같은 학자도 비판했다. “인도와 파키스탄이 안보상의 이유로 각각 소련, 미국과 긴밀하게 유대하며 글로벌 수준의 핵전쟁의 지정학을 모방했는데, 이를 냉전과 별개의 것으로 본다”는 지적이다.

권 교수는 탈식민 이론 비판의 연장선에 인종적 용인과 문화다원주의 문제도 들여다본다. 미국은 문화다원주의를 정치적 통합·변동의 수단으로 내세웠다. 소련도 문화적·언어적 다원성을 배려했다. 하지만 그 다양성은 정치적인 원 안에서만 인정하고, 그 밖의 것은 배제했다. 그는 최근 한국에서도 일상어가 된 다문화라는 말을 두고, “다문화나 다원주의는 문화적 포용과 정치적 배제가 양면인 개념”이라며 “다문화를 하려면 정치적인 배제가 되는 상황을 깨치려는 노력도 함께 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또 하나의 냉전>이 <학살, 그 이후>(2006)와 <베트남전쟁의 영혼>(2008)을 잇는 3부작이라고 했다. 이후 작업이 정병호 한양대 교수와 함께 쓴 <극장국가 북한>(창비)이다. 권 교수는 케임브리지대에서 ‘인간의 조건’의 틀로 조명한 한국전쟁의 의미를 세계사의 영역으로 자리매김하는 취지의 프로젝트를 끝냈다. 결과물은 내년 초 출판될 예정이다.

서울대 ‘글로벌 중견학자 초빙’ 프로그램차 한국에 머물던 권 교수는 지난 19일 영국으로 돌아갔다. 내년 봄에 다시 한국을 찾을 계획이라고 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06212009245&code=900308

강상규의 ‘조선 정치사의 발견’

박근혜는 고종에게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프레시안 books] 강상규의 <조선 정치사의 발견>

김민웅 성공회대학교 교수

기사입력 2013-06-14 오후 6:43:24

 

고종의 현실 인식

“강약의 형세가 이미 현저한데 만일 그들(서양)의 기계를 본받지 않는다면 무슨 수로 그들의 침략을 막아내며 그들이 넘겨다보는 것을 막겠는가? (…) 다시는 서양이니 왜(倭)니 하면서 근거 없는 말을 퍼뜨려 인심을 소란하게 하지 말 것이다. 각 항구의 가까운 곳에 설사 외국인이 놀러 다니는 경우에도 마땅히 일상적인 일로 보면서 먼저 침범하는 일이 없도록 할 것이다. (…) 이왕 서양의 각국과 좋은 관계를 가진 이상 경외(京外)에 세워놓은 척양비(斥洋碑)는 시기가 달라진 만큼 모두 일제히 뽑아버릴 것이다. 그대 사민(士民)들은 이 뜻을 잘 이해해야 할 것이다.”

임오군란(1882년) 이후 고종이 내린 교서다.

동아시아 국제 정세의 거대한 전환기에 처한 조선조 말 고종은 여러 단계를 거쳐 대외관계의 개방적 현실을 만들어나가는 노력을 기울인다. 부인할 수 없이 전개되고 있는 서구 제국주의의 기세 앞에서 국가의 생존과 새로운 내용의 미래를 확보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이 교서에 압축된 의식은, 당시 “조공책봉”이라는 중화 체제의 기존 질서가 근대 국제법의 번역인 <만국공법>이라는 질서로 재편되어가는 과정의 산물이었다. 여기서 중요하게 주목되는 바는, 고종이 이러한 정세 변화에 대해 대단히 적극적으로 대응하고자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조선조의 근대적 고뇌

▲ <조선 정치사의 발견>(강상규 지음, 창비 펴냄). ⓒ창비

강상규의 <조선 정치사의 발견>(창비 펴냄)은 이러한 고종의 역할에 대해 좀 더 세밀하게 주시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이는 “무력하고 무능한 군주”라는 이미지가 달린 고종에 대해, 단지 그의 역사적 위상에 대한 교정을 하고자 하는 데에 목적이 있지 않다. 19세기라는 대전환의 시기에, 문명의 틀이 바뀌는 지점에서 조선의 정치 중심에 있던 왕의 사유방식과 선택, 그리고 정치적 갈등의 현실을 보다 정밀하게 읽어냄으로써 이전과는 다른 근대적 고민에 쌓여 있던 조선 정치의 실체를 밝혀보고자 하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시도는 조선조 말 고종의 권력이 근대 체제의 도전 앞에서 무지했던 시기의 정권이라는 단순한 평가와 해석에 대한 비판인 동시에, 당대의 집권 세력과 국왕이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얼마나 절박하고 치열하게 “전환기의 정치”를 재구성하려 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역사의 복원과 해석은 당연히 오늘날 미국과 중국사이에서 분단된 한국(조선)의 역사적 명운에 대해 깊이 생각하도록 만들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의의가 있다.

“조선의 정치 지형과 문명 전환의 위기”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19세기 동아시아의 격변에 대한 조선 정치의 대응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500년 동안 작동해온 조선 정치의 원칙과 현실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렇지 못하면, 근대적 변화를 기준으로 당시 조선조의 사유방식과 행동, 선택을 오해하는 오류에 빠지기 때문이다. 강상규는 “공론에 의거한 정치 운영의 전통, 왕권에 대한 강력한 견제 구조, 대원군의 광범위한 정치적 영향력, 조야에 팽배한 화이(華夷)론적 명분론” 등에 부딪힌 고종의 현실을 면밀하게 관찰한다. 다시 말해 고종이 아무리 개혁 군주로서 나서고자 했어도 이처럼 오랜 세월 동안 축적되어온 조선 정치의 전통적 운영 방식과 사고 체계가 극복되지 못한 지점에서, 현실에 대한 인식이 점차 바뀌고 있던 고종의 역할은 제한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정통성 취약한 군주, 그러나…

그에 더해 바로 이러한 관찰을 통해 우리는 고종이 당시의 제약을 어떻게 뚫어내고자 진력을 다했는지도 깨닫게 된다. 임진년 7년 전쟁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조선의 정체성이 혼란에 빠졌고, 이 과정에서 17세기 조선 중화사상이 그것을 방어하는 역할을 했지만 조만간 이러한 사유 체계는 문명의 대전환기에 도리어 장애가 되고 만다. 중화 체제의 동요와 해체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구질서 체계를 고수하는 것은 국제적 고립을 필연적으로 낳을 수밖에 없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군신관계에 있어서 군주의 탁월한 영도력이 발휘되었던 영·정조 시대 이후 조선의 정치는 외척과 붕당정치의 폐해에 빠져들었고 왕위계승이라는 차원에서 보면 고종은 그 정통성이 대단히 취약했다.

사도세자로부터 시작해서 흥선대원군에 이르는 계보는 정통 왕조의 맥락에서 너무 거리가 멀었고 세자로서의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상태에서의 출발이라는 점은 고종에게 상당히 불리하게 작용한다. 그랬던 그가 대원군의 정치적 영향권에서 벗어나 친정을 하기 시작한 이후, 조선 중화주의라는 생각의 틀에서 점차 달라져 가는 세상에 눈을 뜨게 되는 과정은 흥미롭고 의미 있다. 이 과정에서 연암 박지원의 손자 박규수의 역할을 주목한 강상규는, 박규수가 “진주 민란의 수습 책임자인 안핵사, 평양 감사 시절 대동강에서 미국 제너럴 셔먼호와의 교섭과 화공작전 지휘, 양무운동을 벌이던 청에 사절단장“을 지낸 경력이 고종의 대외 관계 인식의 변화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강조한다.

계몽군주의 가능성을 보인 고종

▲ 고종의 초상. ⓒen.wikipedia.org

메이지 유신의 현실을 보고 돌아온 일본수신사 김기수의 고종에 대한 보고는, 이러한 내용을 담고 있다.

“저들의 이른바 황제(메이지 천황)는 나이가 지금 바야흐로 이십오 세인데, 폐지해야 할 것 같으면 관백도 가히 폐지하고 변경해야 할 것 같으면 제도도 변경했습니다. (…) 천하 각국의 사람들이 모두 영사관으로 와서 머물게 되므로, 그 사람들을 먹이면서 그 기술을 배우고 그들을 후대하면서 (…) 곳곳마다 화륜선, 화륜차를 만들고 또 사람을 시켜 먼 곳에서 상업을 경영케 하였으니 요는 온 힘을 다해 재화를 모으기 위한 것입니다. 군신상하가 부지런히 이로움을 취하고 부국강병으로써 급선무를 삼고 있으니 (…) 지금은 경전문자는 무용지물로서…….”

일본과 중국의 빠른 변화 앞에서 고종은 결국 대외관계의 다변화로 국제 정세의 어려움을 뚫고 나가고자 노력하게 되며, 이런 과정에서 자신의 개인 금고를 털어 해외에 사신들을 비밀리에 파견하고 유길준, 윤치호 등의 유학생을 만드는 작업에까지 깊이 개입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고종은 중화 체제의 틀에서 조선이 이탈하는 수순을 밟으려 하고, 이에 대한 청의 간섭이 보다 노골화하고 그의 폐위까지 논의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위안스카이(袁世凱)와 리홍장(李鴻章) 사이에 오간 서한에는 이러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갑신사(갑신정변)는 일본을 끌어들여 청국을 거부하고자 한데서 나온 오류였는데, 근년에는 러시아를 끌어들여 청국을 배척하려는 잘못을 범했습니다. (…) 이 어리석은 군주를 폐위시켜버리고…….”

이런 시기를 거치면서 “고종은 청의 간섭을 배제하면서 프랑스와의 조약을 체결하는 추진력을 발휘하게 된다.” 고종의 대외적 결단력이 그간 너무 가볍게 평가되었고 때로는 아예 묵살되었던 것인데, 이에 대해 강상규는 이 조불 조약 체결을 맡은 미국인 데니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지금껏 고문의 역할을 맡았던 데니를 직접 기용하여 실질적인 전권을 부여함으로써 조불 조약이 체결되는 기반을 만들었다. 자신을 조선의 고문으로 파견한 리홍장으로부터 조불 조약 협상에 참가하지 말고 또한 동협상의 처리는 위안스카이에 위임하라는 권고를 받은 미국인 데니가, 자신에 대한 고종의 신뢰를 저버리지 않고 당시 미국의 대리공사 포크의 도움을 받아 협상이 결렬될 위기를 극복한 것이 이러한 고종의 결단력에 의해 비롯된 것임은 기억할 만하다.”

고종은 계몽군주의 가능성을 일정하게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1894년 동학 농민 전쟁 이후 벌어진 청일 전쟁은 이러한 동아시아 전체의 세력 균형이 완전히 파괴된 상황을 알리는 신호탄이었으며, 조선이 1648년 베스트팔리아 조약 이후 주권국가를 기반으로 하는 국제법적 관계로 진입하는 동시에 식민지가 되어가는 과정이 된다. 그리고 이러한 맥락에서 고종과 조선조는 자신이 능동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이 점차 사라져가면서 붕괴되어가는 절차를 밟게 된다. 중화 체제로부터의 이탈과 근대 체제의 주체적 진입이라는 과제가 실패하고 말았던 것이다.

역사의 거울, 그 눈물겨운 기록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우리가 새삼 눈여겨보게 되는 것은, 수많은 내외적 제약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대전환의 시기에 위치하게 된 고종이 눈물겨울 정도로 당시의 정세에 대응하려는 여러 노력을 했다는 점이며 그것은 오늘날 우리의 현실에서도 여전히 중요하게 평가되어야 할 대목이라는 사실이다. 군주와 신하 간의 만만치 않은 상호 견제와 권력 균형의 정치, 그리고 이에 기반을 둔 조선 정치의 전통이 수백 년의 체제 유지에 기본적인 동력이 되었으나 그것이 새로운 상황에 직면하면서 상황 적응력을 발휘하지 못하자 어떤 비극이 발생하게 되었는지 이 근대의 역사는 그 실체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의 정치는 지금 재편의 시기를 통과하고 있는 동북아시아 국제 정세에 대한 상황 적응력 내지 주도력을 얼마나 가지고 있을까? 고종의 무력한 모습만을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그 당시의 치열한 고뇌와 그것을 통해 만들어진 각종 국가 생존의전략의 가치가 보이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보다 훨씬 열악한 처지에 있던 국가 그리고 그 정점에 있던 국왕도 혼신의 힘을 기울여 새로운 미래를 창출하기 위한 노력을 했다는 것을 잊지 않는다면, 지금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을 돌파하기 위한 역사의 지침을 깨달을 수 있지 않겠는가?

지난 시기의 고통과 우여곡절을 망각하는 공동체는 동일한 오류에 빠지고 있어도 이를 눈치채지 못한다. “역사의 보복”이라는 말은 허망하지 않다. ‘조선 정치사의 재발견’은 역사로부터 금맥을 캐는 일이 될 것이다.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탄생 우리 민주주의는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나, 김육훈, 휴머니스트, 2012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탄생 우리 민주주의는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나

김육훈 지음 | 휴머니스트 | 2012년 08월 20일 출간

책소개

19세기 말에서 정부 수립까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뿌리를 찾는 책. 대한, 민국, 민주, 공화국이란 단어가 등장하는 과정과 그 뜻을 살펴보고, 1850년대부터 대한민국 정부가 공식 출범한 1948년까지의 역사에서 우리 민주주의의 뿌리를 찾고 있다. 보빙사절단으로 세계를 둘러본 홍영식과 고종의 민주정체에 대한 대화에서 시작해 1948년 제헌헌법의 의미까지 짚어보는 이 책은 우리 민주주의가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역사 속에서 실천하고 싸우며 만든 민주공화국의 살아 있는 의미는 무엇인지 생생하게 전한다.

저자소개

저자 : 김육훈

저자 김육훈은 서울대학교 역사교육과와 한국교원대학교 대학원에서 공부하였다. 1987년부터 중·고등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고 있으며, 상명대학교 대학원 겸임교수를 지냈다. 2002년부터 4년간 전국역사교사모임 회장을 지냈으며, 초·중·고·대학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분들이 어우러진 연구단체인 역사교육연구소 소장을 2009년부터 맡고 있다. 전국역사교사모임 선생님들과 함께 《행복한 한국사 초등학교》, 《살아있는 한국사 교과서》, 《살아있는 세계사 교과서》, 《외국인을 위한 한국사》(A Korean History for International Readers), 《마주 보는 한일사》, ‘처음 읽는 세계사’ 시리즈, 《우리 아이들에게 역사를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역사,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까》를 펴냈다. 혼자서 펴낸 책으로 《쟁점으로 보는 한국사》와 《살아있는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 《국제인의 한국사》(Korean History for International Citizens)가 있다. 제7차 교육과정 시기에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국정), 중학교 사회 교과서 1·2(검정), 고등학교 사회 교과서(검정) 집필에 참가하였으며, 2004년부터 4년간 교육부의 교육과정심의회 위원을 지냈다.

목차

머리말 대한민국은 어떤 나라인가

프롤로그 대한민국사 여행을 시작하며

1. 고종이 홍영식과 대통령제에 대해 토론하다 – 민주주의란 말을 언제 처음 알았을까?
미국에는 대통령이 있다 / 세상에는 여러 나라가 있다 / 최한기, 민주정치를 발견하다 / 임금과 백성의 권리가 같다니! / 구미입헌정체

2. 최초의 민주주의자를 찾아서 – 민주주의 실천의 기원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실패한 쿠데타 / 입헌 정체를 탐색하다 / 최초의 민주주의자는…… / 민중적 지식인 전봉준 / 인민 자치를 실험하다 / 왕은 있으나 왕권은 없다 / 민주를 적대한 자유, 갑오개혁이 비극적 종결

3. 의회와 헌법을 상상하다 – 민주 정치의 제도화는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1896년 조선, 공론의 장이 열리다 / 왕권과 민권, 주권은 누구에게 있나? / 중추원을 의회처럼 고쳐 운영하자 / “나를 체포하라” / 황제의 대반격, 그리고 대한국 국제 / 그런데, 왜……

4. 군주제에서 민주공화제로 – 민주공화제를 우리 것으로 삼은 때는 언제였을까?
“구한국이 사라짐을 슬퍼하고, 신한국 건설을 축원한다” / 새로운 대한을 상상하다 / 고종에게 망국의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요? / 공화 만세! 민국을 상상하다 / 대동단결하여 임시정부를 수립하자

5. 3·1운동, 마침내 대한민국이 탄생하다 – 대한민국은 언제, 어떻게 탄생하였을까?
주권민유를 선언한 3ㆍ1운동 / 대한독립만세, 공화만세! / 대한민국을 수립하다 / 헌법의 아버지 조소앙, 민주공화국의 시대를 열다

6. 혁명의 시대, 자유와 평등을 양 날개로 삼아 – 우리가 이해한 민주주의는 무엇이었을까?
‘혁명의 시대’ / 민주주의를 상상하다 / 《동아일보》……,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 민주주의의 두 날개 : 정치적 자유와 사회적 평등 / 치안유지법, 민주주의의 왼쪽 날개를 자르다

7. 민주공화국, 식민지 너머의 꿈 – 독립운동가들은 어떤 국가를 상상하였을까?
나라가 없다는 것 / 문제는 식민지 자본주의, 대안은 민주주의 / 독립을 꿈꾼다는 것은? / 균등 사회를 꿈꾸다 / 건국 강령 – 대한민국의 설계도를 만들다

8. 선거를 통해 민주공화국을 세우자 – 해방, 국가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
암흑의 세월? / 그날이 오면…… / “결정적 시기 무장봉기”로 독립을 쟁취하자! / 미국과 소련, 그리고 대한민국 / 1945년 8월 15일 / 선거를 통해 민주공화국을 세우자

9. 남과 북, 분단으로 치닫다 – 분단의 원인은 무엇이며 정녕 피할 수는 없었을까?
돌아온 이승만 /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조선인민공화국 / 모스크바 3상 회의…… / 신탁통치 반대냐 임시정부 수립이냐 / 합작인가 단독정부인가 – 38선 이북의 선택 / 민주의원과 민전, 그리고 미군정 / 미소공동위원회, 통일임시정부 수립을 가늠하다 / 분단을 피할 수는 없었을까?

10.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 대한민국 헌법에는 어떤 이야기가 아로새겨져 있을까?
분단으로 치닫다 / 두 개의 헌법 초안 / 두 개의 선거법, 그리고 첫 선거 / 헌법을 만들다 /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에필로그 1948년, 대한민국은 어떤 나라인가

부록 대한민국 헌법(1948. 7. 17.)

출판사 서평

19세기 말에서 정부 수립까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뿌리를 찾아서

대한민국은 1948년에 건국되었고, 한국인은 해방 이후에야 민주주의를 알았고, 한국 민주주의는 미국식 민주주의를 그대로 받아들인 것일까? 이 책은 역사적 사료와 인물들의 행적, 실천을 바탕으로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이러한 통념을 뒤집는다.
건국절 논란, 역사교과서를 둘러싼 갈등 등으로 우리 사회에서는 지속적으로 ‘대한민국은 어떤 나라인가?’라는 질문이 나오고 있다. 이 질문에 답하려면 역사 속에서 만들어진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헌법 제1조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고 본 저자는 대한, 민국, 민주, 공화국이란 단어가 등장하는 과정과 그 뜻을 살피고, 1850년대부터 대한민국 정부가 공식 출범한 1948년까지의 역사에서 우리 민주주의의 뿌리를 찾고 있다.
보빙사절단으로 세계를 둘러본 홍영식과 고종의 민주정체에 대한 대화에서 시작해 1948년 제헌헌법의 의미까지 짚어 보는 이 책은 우리 민주주의가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역사 속에서 실천하고 싸우며 만든 민주공화국의 살아 있는 의미는 무엇인지 생생하게 전달한다.

1.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기원을 찾다
_민주와 공화국이란 말을 언제 알았을까?

한국사에서 민주주의는 언제부터 사람들에게 알려졌을까? 그들이 알았던 민주주의의 개념은 지금과 같은 것이었을까? 그리고 민주주의의 개념을 알고 실천하고자 하였던 최초의 민주주의자는 누구였을까?
책의 첫 장에서 고종은 보빙사절단으로 파견되었다 돌아온 홍영식과 심각한 대화를 나눈다. 놀랍게도 그들이 나눈 대화는 민주주의 정치체제에 관한 것이었다. 세상물정 어두웠던 군주였을 것이라는 세간의 오해와 다르게 고종은 세계정세와 변화에 관심이 많았다. 물론 고종뿐이 아니었다. 보빙사절단으로 파견된 홍영식을 비롯한 개화파들은 오래전부터 실학사상을 통해 세계문물을 공부하고 있었다. 그들은 머릿속에 든 것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 돌아와서는 새로운 정치체제를 꿈꾸었다. 그들뿐이 아니었다. 동학농민운동을 주도했던 전봉준은 민중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정치체제를 운용해야 하는지 명확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전봉준을 심문한 조사관과 전봉준의 대화기록은 지금 읽어봐도 민주주의의 핵심개념과 딱 맞아떨어진다.
이들을 살피는 까닭은 그간의 역사교육을 통해 한국에 민주주의가 수립된 기원을 1948년 남한 단독 정부 수립으로 보는 통념을 뒤집기 위함이다. 저자는 구체적인 사료를 바탕으로 1850년대부터 한국 사회에 나타난 민주주의 논의 흐름을 추적하여, 민주주의를 우리의 역량으로 구체화시켜왔다는 것을 보여 준다.

2.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말의 의미를 역사에서 찾다
_대한민국은 어떤 나라인가?

민주주의는 다양하고, 시대와 지역에 따라 각각 다른 모습으로 형성된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주의는 외부에서 어느 한순간에 이식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어느 나라에서나 민주주의를 반대하는 세력과의 지난한 대결 속에서 성취되는 것이다. 우리 민주주의가 언제, 어떻게 시작되고 발전했는가를 알기 위해 우리 역사를 살펴봐야 하는 이유이다.
이 책은 우리 역사 속에서 만들어진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말의 의미를 19세기 말부터 1948년까지의 역사 속에서 찾고 있다. 1919년 임시의정원 회의록에서 “대한으로 망하였으니, 빼앗긴 나라를 되찾는다는 뜻에서 대한이 옳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제국으로 돌아가기보다 공화국을 이룩하고자 하니 민국이 옳겠습니다.”라며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이름을 결정하는 대목을 함께 읽고, 민주와 공화국이란 단어는 몰랐지만 그 뜻을 실천으로 옮긴 민들로부터 이후 각종 독립선언서와 대한민국 임시헌장, 제헌 헌법에 이르기까지 ‘민주공화국’이란 말을 담기 위해 치열하게 민주주의를 일구어 간 시간을 생생하게 들려주고 있다.
이 책은 우리가 민주주의란 말을 처음 알게 되고, 실천하고, 민주 정치의 제도화를 위해 노력하며, 결국 민주공화제를 우리 것으로 삼았던 그 시간들을 흥미롭게 탐구하면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헌법 제1조의 문구가 구체적으로 가슴 뭉클하게 다가오는 경험을 제공한다.

3. 역사로 배우는 입체적인 민주주의 교과서
_민주공화국의 역사를 담은 역사 교과서를 제안하다

저자는 전국역사교사모임의 《살아있는 한국사 교과서》, 《살아있는 세계사 교과서》 등 역사 대안교과서 집필을 주도해 왔다. 역사가 민주주의 교육에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에 줄곧 관심을 가져온 저자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므로 역사 교과서가 민주공화국 형성과 관련한 사실을 기준으로 내용을 선정하고, 학생들이 민주공화국의 건강한 시민으로 자랄 수 있도록 뒷받침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책은 새로운 역사 교과서의 방향을 제안하고, 그 교육과정의 초석을 마련하고 있다.
아울러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민주주의를 단순히 개념적으로 접근하여 가르치는 방식에서 벗어나 한국사의 구체적인 사건 속에서 민주주의의 개념이 어떻게 발전해 왔는가를 가르칠 수 있다는 점에서 역사적인 내러티브와 사회과학적 개념을 결합한 새로운 형태의 민주주의 교과서로 손색이 없다.

4. 풍부한 사료, 현장감 있는 강의 형식으로 지루하지 않은 역사교양서 

저자는 민주주의의 역사는 민주적인 글쓰기로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누구나 관심을 가질 만한 주제를 중심으로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사료를 풀어 쓰고, 인물과 사건이 생생하게 드러나도록 했다. 기존의 역사교양서가 주는 딱딱한 문체에서 벗어나 독자들과 교감하기 위하여 강의 형식으로 서술하였다. 아울러 민주주의를 고민하고 실천하고자 하였던 인물들이 살았던 시대로 바로 들어가서 그들이 나누는 대화를 생생하게 엿듣는다. 독자들은 이들의 대화를 통해 누가 더 진정한 민주주의자였는지, 혹은 최초의 민주주의자였는지 따져보는 재미와 함께 이들의 고민을 통해 앞으로 우리가 더 발전시켜 나아가야 할 민주주의의 방향이 무엇인지도 함께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다양한 사료와 통계자료를 인용하여 자칫 놓칠 수 있는 고증과 역사적 사실에 충실하고자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