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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진보는 왜 ‘중국’을 외면하는가?

한국의 진보는 왜 ‘중국’을 외면하는가?

[동아시아를 묻다] ‘중화’와 ‘진보’

이병한 UCLA 한국학센터 연구원

기사입력 2013-06-17 오전 10:02:20

 

진보의 역설

<역사비평> 2013년 여름호를 읽었다. 인화성이 강한 글이 한 편 실렸다. 김희교의 ‘<역사 비평>과 한국의중국 담론의 진로‘이다. 한국 학계는 근엄하다. 실명을 거론하여 비판하고 치열한 대화를 나누는 문화가 영글지 않았다. 자칫 본인만 매장되기 십상이다. 그래서 사기(士氣) 충만한 시도를 거들고 북돋고 싶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잇는 논쟁으로 확산되면 좋겠다.

김희교의 주장을 내 식으로 정리하면 이러하다. 진보 진영의 중국 담론은 주류 담론과 차별성이 없다. 미국에 대한 날선 입장 차이와는 달리 중국 인식과 비판은 좌우합작, 대동소이하다. <조선일보>와 <한겨레>도 입을 맞춘다. 민주주의 결여를 비판하고, 대국주의 동향을 우려한다. 그 결과 보수 담론 강화에 일조하고 만다. 한미 동맹 체제를 고수하는 보수의 전략에 무기력하다. 어떻게 중국 담론을 진보적 실천을 위해 활용할 것인가. 그가 제기하는 문제의식의 요체이다.

김희교는 중국의 실질적인 역할을 주목한다. 북한과 미국을 제어하며 동북아의 전쟁 위기를 누그러뜨리는 중심적 역할을 하고 있다. 중국 위협론과 실제 역할 사이의 간극에서 ‘진보적 중국 담론’의 활동 공간을 개척하자는 것이다. 즉 미국의 패권주의와 중국의 민족주의 간에 존재하는 억압 강도의 차이를 간과하지 말고, 그 차이를 한층 평화로운 동아시아를 건설하기 위한 틈새로 활용하자는 제안이다.

흥미가 한층 배가되는 지점은 진보 진영의 한 축, 아니 주축을 이루는 창비의 동아시아론도 겨냥하고 있음이다. 담론의 거듭된 진화에도 불구하고 ‘운동성’은 역부족이라는 진단이다. 20년이 지나도록(동아시아론 원년으로 간주되는 1993년은 북핵 위기 원년이기도 하다) 동아시아의 불안정한 구조는 여전하다.

김희교는 진보적 실천이 미흡한 까닭을 동아시아론의 논리 자체에서 찾는다. 중국을 협력 대상으로 삼으면서도, 대국화의 가능성도 동시에 비판한다는 특유의 ‘이중 과제론’적 발상이 병통이다. 중국과의 협조란 대저 지식인과의 교류에 그친다. 창비식 ‘균형 감각’이 도리어 엄혹한 현실을 타개하는 구체적 실천을 낳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국내 담론 지형에서도, 한중 관계에서도 실효적 변화를 거두지 못하고 현상 유지에 머문다.

가타부타는 하지 않겠다. 고수들의 응전을 기다린다. 한반도 창공을 가로질러 주요 G2(주요 2개국)가 ‘신형 대국 관계’를 논하는 비상한 시기이다. 북벌론과 북학론에 버금가는 백가쟁명이 펼쳐지길 고대한다. 나는 조금 다른 차원에서 ‘중국과 진보’의 문제를 숙고해보고 싶다. 중국의 진보적 활용 못지않게, 나는 20세기형 진보를 성찰하고 해독하는 방편으로 중국을 주시하는 편이기 때문이다.

신중국의 역설

20세기의 신청년은 제 아비와 할아비를 부정하며 등장했다. 그들의 젖줄은 신학(新學)이었다. 한학(漢學)은 처분되고, 서학(西學)에 매진했다. 서학을 배타할 것은 없다. 널리 배우는 것은 크게 권할 일이다. 그러나 치우쳤다. 서학은 지나치고, 동학은 모자랐다. 그래서 좀체 중화제국의 환골탈태를 파악하지 못한다. 작금 놀랍도록 빠른 기세로 복원되고 있는 전통 중국의 재림도 낚아채지 못한다. 불가사의할 뿐이다. 침소봉대할 뿐이다.

‘진보적인 중국 활용’이 미진한 근본적인 까닭도 여기에 있지 싶다. ‘진보’를 자임할수록 동방문명을 잘 모른다. 잘 모른다는 것조차 잘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혹은 크게 잘못 알고 있다. 송대 이래 신분제를 일소하고 자유 경쟁 체제를 지속한 중국을 봉건 왕조, 전제 국가 운운하는 식이다. ‘최초의 근대’이자 ‘천년의 근대’가 눈에 들지 않는 것이다.

가령 ‘일당 독재’를 보자. 개혁 개방 30년, 경제 개혁에 비해 정치 개혁이 미진하다는평가가 십중팔구이다. 헛웃음이 나온다. 지난 30년, 중국만큼 지속적으로 정치 개혁을 단행한 국가는 드물다. 나라의 골격인 헌법만 네 차례나 바뀌었다. 55년 체제의 일본과 87년 체제의 한국에 견주어도 훨씬 신속하고 폭넓은 개혁이다.

민주 대 독재라는 상투적인 도식 탓에 그 일관된 진화를 포착하지 못하는 것이다. 선거제와 다당제만이 ‘유일 정치’인 마냥 맹목하기 때문이다. ‘역사의 종언’이라는 우파의 선동은 반감을 표하면서도, 정작 중국을 평가하는 잣대는 그 아류를 답습하는 당착이 부지기수이다. 진보를 측정하는 불변의 잣대에 연연하는 보수적 관성이 적지 않다. 복잡다단한 현실을 단순구도로 재단한다는 점에서 가히 이데올로기적이다. 14억 문명 국가의 대모험에 지적 호기심조차 느끼지 못하니 딱한 노릇이다.

중국공산당을 ‘거대한 학습 조직’에 비유한 적이 있다. 보태고 싶다. 거대할 뿐 아니라 ‘왕성한 학습 조직’이기도 하다. 과문한 탓인지 나는 전 세계 정당 가운데 저토록 학습량이 많은 집단을 알지 못한다. 최고 명문 칭화대학교의 학부생은 얼추 10퍼센트가 공산당원이다. 반해 대학원생은 50퍼센트 이상이 당원이다. 그 우수한 인재를 당교(黨校)에서 또 교육시킨다. 한 번으로 그치지도 않는다. ‘평생 교육’을 담당한다. 즉 중국공산당은 이념 조직이 아니다. 학습 수준이 가장 높은 ‘지식 기반 정치 조직’이다. 20세기형 전위정당을 탈피하여 실력 중심의 지식인 관료 체제를 복원해 간 것이다.

‘독재’도 얼토당토않다. 집단 지도 체제 아래 주석은 대통령만도 권한이 못하다. 정치국 상임위 9인은 서열이 확정되기 전까지 치열하게 경쟁한다. 하지만 진용이 갖추어지면운명 공동체이다. 묵시적인 합의제 민주주의가 작동하기에 독단은 허용되지 않는다. 이 최고 지도자들의 능력 또한 ‘인기투표’로 선출되는 어지간한 국가들보다 높다. 이론과 실무를 고루 익힌 백전노장들인 탓이다.

노장들이 노욕을 부릴 수도 없다. 연령 제한으로 권력 승계가 제도화되어 있다. 이와 같은 시스템을 구축하는데 30여 년이 소요되었다. 과연 정치 개혁이 부족하다고 할 수 있을까? 초창기 30년에 견주자면 ‘변혁’에 가깝다. 이를 변화로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불감증이 만연하다. 진화를 멈춘 제도는 도리어 ‘민주주의’가 아닐까? 그래서 ‘CHANGE’와 ‘새 정치’에 열광하는 것 아닌가.

여기에 신중국의 커다란 역설이 있다. 혁명에 혁명을 거친 중국은 점점 더 유교 국가에 근접해가고 있다. 사회주의조차도 ‘보유론'(補儒論), 즉 유교를 보완하는 차원에서 활용해 가는 듯 보인다. 돌아보면 20세기를 연 쑨원도 ‘천하위공’을 좌우명으로 삼았다. 현대판 분서갱유를 단행했던 마오쩌둥도 ‘실사구시’를 표방했다.

두 사람은 공히 ‘중화’를 포기하지도 않았다. 중화민국이고, 중화인민공화국이다. 즉 중국 혁명은 속 깊이 복고(復古)이자 중흥(重興)이다. 이제는 ‘조화사회’, ‘화평굴기’, ‘책임대국’ 등 국책 구호 자체가 유학풍이다.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국가 경영의 소프트웨어와 운영 체계는 다분히 유교적이다.

중국 제도를 편드는 것이 아니다. 완벽하지도 이상적이지도 않다. 과제가 산적하다. 우리가 따를 모델도 아니다. 다만 저들은 저들의 논리로 부단히 ‘진화’하고 있음을 직시하자는 것이다. 고려의 태를 벗고 조선의 꼴을 갖추기까지 100년이 걸렸다. 미국도 독립 전쟁과 남북 전쟁을 거쳐 100년에 가까운 연마 끝에 국가의 틀을 다졌다.

신중국은 여전히 젊은 국가이다. 지금도 ‘대장정‘의 와중이다. 그래서 중국을 비판하는 잣대 또한 내재적이어야 한다. ‘조화사회’를 구현하고 있는가, ‘책임대국’을 실현할 수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 언행이 일치하는지, 명실이 상부하는지를 깐깐하고 꼼꼼하게 따질 일이다. 그래야 비판을 당하는 쪽도 따끔하고 아픈 법이다.

‘중화’의 역설

유교 국가의 갱신이라는 당혹스런 현실 앞에 ‘중화주의’, ‘중화 사상’에 대한 비판이 널리 퍼져있다. 대중적 차원은 물론이고, 학계에서도 만연하다. 그러나 ‘중화’는 고유명사가 아니다. 중국만의 것도, 한족만의 것도 아니다. 동방 문명의 정수를 일컫는 보편명사이다. 17세기 이래 동아시아는 저마다 중화를 자처했다. 그래서 혹자는 ‘중화 사상 공유권’이라고도 했다. 중화를 일국으로 축소시킨 것이야말로 20세기의 착각이고 착시이다.

대한제국조차 그러하다. 고종은 독립문만 세운 것이 아니다. 천하의 도가 쇠하여 대륙에서 중화 문명이 퇴락하니, 반도에서라도 중화 문명을 부흥시키겠다는 포부가 역력했다. ‘근대화된 중화’를 꿈꾸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래서 광무(光武)였다. 왕망의 찬탈에 따른 천하대란을 수습하고 한제국을 재건한 광무제의 길을 걷고자 한 것이다. 즉 대한제국은 근대 적응에 실패한 대청제국을 대신하여 중화 부흥의 보루가 되고자 했다. ‘독립’만을 강조하는 ‘진보’의 왜곡된 눈이 이러한 복합성을 인식하지 못하도록 곡해한 것이다. 혹은 알았더라도 외면하고 침묵한 것이다. 또는 여전히 전근대적이라며 그 ‘낙후성’을 질타한 것이다.

중국은 20세기에도 중화주의가 여전했다는 비판 또한 곱씹어 볼 일이다. 진술 자체로 크게 틀린 말은 아니다. 다만 근대에 미달했다는 가치 판단은 녹록치가 않다. 만약 저 거대한 대국이 중화를 방기하고 조숙하게 근대 국가로 변모했다면 어찌되었을까? 조선이 감당할 수 있었을까?

일본이 중화 세계의 원리를 방기함으로써 류큐도 대만도 조선도 식민지의 나락으로 떨어졌던 것 아닌가? 중국이 제국 일본을 능가하는 제국주의 국가가 아니 되었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중국이 조선의 숨통을 쥐어온 것은 점점 ‘근대화’되면서이다. 그나마 한족 중심의 대한(大漢)제국을 표방하지 않고 ‘중화’민국을 표방한 것이야말로 천만다행이지 않을까? 그래서 대한민국 또한 중화민국의 우산 아래 임시 거처를 마련할 수 있지 않았을까? 강박 관념과 고정 관념을 거두고 상상력을 일깨울 일이다.

기실 ‘중화 사상’, ‘중화주의’라는 조어 자체가 20세기의 산물이다. ‘-ism’의 번역투이다. 19세기까지의 문헌 어디에도 저런 표현은 나오지 않는다. 허면 언제 등장했을까? 1930년대이다. 누가 만들었을까? 일본이다. 제국 일본에서 ‘발명‘된 신조어이다. 왜 생겨났을까? 일본의 대륙 침략에 항전하는 중국을 폄하하기 위해서이다.

지나 놈들은 국·공을 막론하고 중화주의, 중화 사상에 찌들어서 ‘근대’ 일본에 저항한다는 것이다. 그렇다. 일본은 과연 ‘근대’적이었다. 조선의 ‘독립’을 나서서 부추겼다. 상부상조하던 중화 세계에서 떼어놓아 홀로 설 것을 재촉했다. 그래야 식민지로 삼을 수 있었다. 500년 조선의 망국 앞에 ‘독립’이 있었음을 서늘하게 기억하자. 실로 독립협회주역들의 행보들도 석연치가 않다. ‘중화주의’라는 신생어의 탄생과도 깊이 결부되어 있는 이 심란한 사정 또한 필히 기억해 둘 일이다.

애초 역사에 ‘진보’는 없다. 최소한 동방인의 감각으로는 그렇다. 어지러운 시대와 가지런한 시대가 있을 뿐이다. 난세와 치세가 돌고 돈다(一治一亂). 20세기는 난세였다. 중화 세계의 질서와 원리가 무너졌다. 늘 그러했다. 몽골 침입, 임진왜란·병자호란 모두 중화 문명에 귀의하지 않는 오랑캐의 분탕질이었다.

20세기도 예외가 아니다. 대전(大戰)이 거듭되는 대란(大亂)기였다. 1000년에 비추어 100년을 돌아보자. 얼추 300년을 터울로 난세가 일었다. 특히 북방 제국과 남방 제국이 승하면 반도는 극히 혼란했다. 1000년만의 식민과 분단 또한 남방 제국과 북방 제국이 동시에 일어나 중원을 압도해서이다.

그 어지러웠던 100년을 근대나 진보라는 이름으로 옹호할 수 있을까? 나로서는 천만만만 아닌 듯하다. 좌우(左右)의 척도만큼이나 고금(古今)의 잣대도 중시하자. 동방인은 항상 오늘을 과거에 되비추어 성찰했다. 신(新)을 맹목하며 고(古)를 구(舊)로 타박하지 않았다. 지긋한 마음이다. 아름다운 태도이다.

그 동서/좌우/고금의 복합 좌표 안에서 20세기의 ‘진보’란 무엇이었나. 판단은 각자의 몫이다.

 
/이병한 UCLA 한국학센터 연구원

한국의 딜레마? 동아시아의 브뤼셀 지향해야

한국의 딜레마? 동아시아의 브뤼셀 지향해야

[동아시아와의 인터뷰]<4> 중국 인민대 팡종잉 교수

평화네트워크  ,  기사입력 2013-01-03 오전 8:14:52
평화네트워크와 <프레시안>이 함께 하는 동아시아와의 인터뷰. 네 번째 순서로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와 이제영 간사가 중국 인민대 국제관계학 팡종잉(庞中英) 교수를 서울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12월 11~12일 아산정책연구원이 주최한 중국포럼 참석차 서울을 방문한 팡 교수는 한국이 전략적 딜레마를 기회로 바꿀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외교관 출신인 팡종잉 교수는 국제경제와 국제기구, 그리고 소프트파워를 중심으로 글로벌 거버넌스(global governance) 구축을 핵심적인 연구 분야로 삼고 있다. 10여 년간 한중 학술교류에도 깊숙이 관여해왔다. 또한 싱가포르 국립대, 미국의 브루킹스 연구소, 영국의 워릭대, 뉴질랜드의 빅토리아대 등을 두루 거쳤다.

2시간 가까이 진행된 인터뷰는 주로 세계 질서의 미래, 동아시아 영토 분쟁에 대한 중국의 시각, 중국의 부상과 소프트파워, 미중관계에서 한국의 딜레마와 선택 등이 다뤄졌다. 지한파를 자처한 팡 교수는 한국이 미·중 관계나 중·일 관계에서 어려운 처지에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속에 한국의 미래를 밝게 할 기회도 있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팡 교수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대단히 감사드린다. 국제 문제 전문가로서 세계 질서의 미래를 어떻게 전망하는가?

매우 어려운 주제다. 많은 사람들은 세계화되고 있는 세계의 미래에 대해 우려를 갖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보다 질서 있고 평화로운 세계가 될 것으로 희망하지만, 많은 도전과 문제가 있을 것이라는 점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기후 변화 문제가 대표적인예일 것이다.

나는 한국이 유엔에 더 많이 기여하고 있고 또 유엔 사무총장도 배출한 것을 알고 있다. 한국은 분명 보다 조직화된 세계를 창출하는 데 기여하고 있고, 또 기후 변화나 핵무기 등 어려운 문제들을 다루는 데에도 기여하고 있다. 이러한 점을 놓고 볼 때, 나는 세계 질서의 미래가 평화적이고 협력적이며 여러 문제들이 질서정연하게 다뤄질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세계는 여전히 많은 위험과 도전, 그리고 불확실성을 안고 있다. 이를 근거로 세계의 미래에 대해 비관적으로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결국 평화를 증진하기 위해서는 유엔이나 비정부기구(NGO)와 같은 기구들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하다. 당신이 일하고 있는 평화네트워크 역시 마찬가지이다. 세계의 미래는 결정된 것이 아니라 유엔을 비롯한 국제기구들, 미국과 한국과 중국과 같은 나라들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 우리는 세계가 아직 이상적이지 못하며 해결해야 할 많은 문제들과 도전들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갈수록 기술은 발전하고 있지만 이것이 곧 세계가 완벽해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내가 줄곧 더 나은 글로벌 거버넌스를 창출해야 한다고 얘기하고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중국이 원하는 세계 질서는 무엇인가? 중국은 현 체제의 이익상관자(stakeholder)인가 아니면 수정주의자(revisionist)인가?

‘중국이 수정주의자(revisionist)인가 아니면 현상 유지(status quo) 세력인가’라는 당신의 질문은 이분법적 사고에 기초한 것이다. 중국과 같은 신흥 강대국이 부상할 때 적용되는 전형적인 서구식의 분석 틀이다. 그러나 그러한 이분법적인 관점은 중국과 같은 동아시아 국가들에 적용되기에는 너무 단순하다. 중국은 현존 세계 질서를 유지하는 데 기여하는 현상 유지 세력이 될 것이다. 중국은 아시아의 이웃국가들은 물론이고 미국과 유럽연합과 같은 서방 국가들, 그리고 라틴아메리카와 아프리카 국가들과도 좋은 관계를 계속 모색할 것이다.

2012년 11월, 중국 공산당은 제18차 당 대회를 베이징에서 개최했다. 당시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은 당 대회에 최종 정치보고서를 제출·발표했는데, 이 보고서는 중국의 현 정책이 시진핑(習近平)과 리커창(李克强) 등 새로운 지도부에서도 계승될 것임을 분명히 밝혔다. 시진핑은 칭화(淸華)대에서, 리커창은 베이징(北京)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이는 이들 지도자들의 교육 수준이 뛰어나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구나 그들은 수많은 어려움과 문제들에 직면하면서도 다양한 경험을 축적해왔고, 또한 1950년 이후 출생자들이기도 하다. 그들은 중국을 보다 잘 통치할 수 있는 방법들을 알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중국의 대외정책도 연속성이 강할 것이고, 개인적으로도 이러한 점을 국내외 매체에 기고하기도 했다. 이는 곧 중국은 현상 유지 세력이라는 것을 말해준다고 할 수 있다.

중국은 세계 질서가 보다 공정하고 조화로우며 다극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 않은가? 이것은 곧 중국이 현재의 세계질서에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는 의미로 들리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물론 일각에서는 중국이 외교정책과 세계에서의 역할이 변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 수정주의 세력이라고 말한다. 서방, 특히 미국이 지배해온 현존 세계 질서를 전복하려고 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엄격히 말해 중국은 현존 질서를 개혁하고 개선하길 원한다. 예를 들어 중국은 G8의 회원국은 아니었지만 G20의 회원국이고 G20은 새로운 세계 질서의 중심에 있다. 중국은 또한 다른 기구들의 회원국이면서 역할이 증대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과 같은 국제금융기구에서 지분과 영향력을 늘리고 있다. 이는 한편으로는 중국이 현존 질서의 유지에 기여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현존 질서를 전복시킨다는 것과는 다른 차원이다.

거듭 강조하지만 나는 서구식의 이분법적 관점에서 ‘중국이 현상 유지 세력이냐 수정주의 세력이냐’고 접근하는 것은 좋은 분석 틀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두 가지 가능성을 모두 내포하고 있지만, 중국은 본질적으로 현존 질서의 개선을 추구하고 있고 상호 간에 도움이 되는 방식의 개혁을 추구하고 있다. 중국은 결코 과거 군국주의 일본이나 나치독일과 같은 수정주의 세력이 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 아시아의 많은 국가들은 중국이 공세적으로 바뀌고 있다고 여긴다. 특히 동아시아 국가들과의 영토 분쟁을 보면 그런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최근 동아시아의 영토 분쟁이 격화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이는 중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중국과 일본, 중국과 동남아 국가들(필리핀,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 사이의 분쟁도 있지만, 동아시아 영토 분쟁의 중심에는 일본이 있다. 일본은 중국뿐만 아니라 한국 및 러시아와도 영토 분쟁을 벌이고 있지 않은가? 또한 영토 분쟁에 대한 중국의 정책과 행동은 아직까진 공격적이라기보다는 방어적이라고 생각한다.

다오위-센카쿠 열도 문제만 보더라도 그렇다. 중국은 이들 섬이 전통적으로 중국의 주권 하에 있었다고 여긴다. 그러나 일본은 지속적으로 분쟁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을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다오위-센카쿠 열도를 국유화하는 등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중국 인민들은 이에 매우 분노하고 있으며 중국이 보다 강력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먼저 조치를 취한 쪽은 일본이고 중국은 이에 반응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중국의 모습이 공세적으로 비춰질 수 있지만, 누가 먼저 위기를 야기했고 그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분명히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또한 역사적인 맥락에서도 볼 필요가 있다. 과거에 일본은 제국주의와 군국주의를 취했고 중국과 한국은 약한 나라들이었다. 한국과 중국은 모두 일본 제국주의와 군국주의의 희생양이었다. 한국도 그렇듯이 중국도 일본과의 영토 분쟁을 역사의 맥락에서 바라보고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대일정책은 매우 잘못된 것이었고 이후에도 미국은 영토 분쟁 해결에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중국이 영토 분쟁에서 공세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는 시각은 결코 공정한 것이라고 할 수 없다. 만약 중국이 1세기 전에 제국주의 세력이었다면 그렇게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중국은 일본 제국주의의 희생양이었고 이를 간과한 채 영토 분쟁에서 중국의 태도를 비난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들다.

한국인들 역시 중·일 간의 영토 분쟁에 역사 문제가 개입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태도가 너무 강경한 것이 아니냐는 생각도 갖고 있다. 중국은 방어적이라고 하지만 외부의 시선으론 공격적으로 비춰지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개인적으로 나는 한국인들이 무엇을 걱정하는지 잘 알고 있다. 나는 지난 10여 년간 한국을 여러 차례 방문해 양국 간 학술교류에서 많은 역할을 해왔다. 양국의 학자들은 1990년대 초반 중한 국교 수립에 기여했다. 나 역시 한국의 친구라고 자부하고 있고 또한 한국인들의 중국에 대한 우려도 이해한다. 그러나 솔직히 한국의 중국에 대한 관점은 서구 매체로부터 큰 영향을 받고 있다는 느낌도 지울 수 없다.

역사적으로나 오늘날에 있어서나, 한국과 중국은 상당한 상호의존성을 갖고 있다. 중국은 한국의 가장 큰 무역상대국이고 수많은 한국인들이 중국에서 살고 있다. 중국과 한국의 많은 도시들은 비행기와 선박으로 연결되어 있다. 양국 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나라는 공동의 목표를 갖고 있고 공동의 이익과 기반도 갖고 있다. 이는 양국 관계를 규정하고 있다. 중국은 미래에도 한국의 친구가 될 것이라는 점을 재확인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비록 두 나라는 1950년대 초 한국전쟁에서 서로 피를 흘린 비극의 역사를 갖고 있지만 긴 역사를 볼 때 이는 짧은 시간이었다. 그리고 오늘날 그러한 비극은 완전히 극복되었다.

“중국의 소프트파워는 아직 후진국 수준”

최근 중국의 연성권력(soft power)에 대한 논의가 많다. 소프트파워는 중국의 외교전략에서 어떤 비중과 의미를 갖고 있는가?

개인적으로 11월 하순에 핀란드 헬싱키에 가서 중국의 소프트파워에 대해 발표할 기회가 있었다. 발표 요지는 이랬다. 먼저 중국은 최근 세계와의 관계를 관리하기 위해 연성(soft) 수단과 자원을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분명 긍정적인 발전이다. 세계도 이러한 발전을 환영하고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 중국의 소프트파워는 여전히 약하다. 수십 년이 지나서 중국이 소프트파워에서 주도적인 국가가 될 수는 있겠지만, 현재까지 중국의 소프트파워는 후진적이다. 이것은 현실이다. 이에 따라 중국의 지도부는 지속적으로 소프트파워를 발전시키려고 노력할 것이다. 전통문화, 전통적인 생활방식, 전통적인 사상 등을 재조명하면서 말이다.

두 번째로 중국은 경제 개혁은 물론이고 정치 개혁도 지속적으로 추진할 것인데, 이러한 중국식 개혁의 성공 여부가 소프트파워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이다. 중국이 경제적, 정치적 개혁에 성공한다면 이것 자체가 중국식 소프트파워의 근원이 될 것이다.

세 번째로 중국은 지속적으로 다른 나라와 소프트파워의 교류와 협력을 도모할 것이라는 점이다. 한중 간에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소프트파워는 중국의 소프트파워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사람들은 소프트파워를 경쟁적인 관점에서 보는 경향이 강한데, 소프트파워는 본질적으로 상호 협력적이다. 경쟁적 요소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협력이 본질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류(韓流)가 한중간의 소프트파워 경쟁과 협력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고 보는가?

물론이다. 중국은 이른바 ‘한류’와 경쟁하고 있다. 한국의 대중문화는 중국 내에서 엄청난 힘과 인기를 갖고 있다. 그리고 중국은 이를 따라잡고자 한다. 이를 놓고 보면 경쟁이다. 그러나 이러한 경쟁 자체는 협력이 전제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동시에 중국은 한국과 소프트파워의 협력도 추구하고 있다. 서구식 모델이 위기에 처해 있기 때문에, 미래의 세계는 보편적인 발전과 거버넌스의 모델에 대해 다시 생각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따라 중국과 한국은 거버넌스의 미래 모델에 기여할 수 있다. 이렇게 한다면 한중 양국의 소프트파워는 오늘날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띠게 될 것이다.

소프트파워의 성공은 경제 발전, 정치 발전, 문화 혁신, 문명의 부흥에 달려 있다. 만약 우리의 문화가 부흥에 성공한다면, 그리고 발전과 거버넌스, 평화와 조화에 있어서 새로운 모델을 창출한다면, 양국의 소프트파워도 더욱 강력해지고 매력적이게 될 것이다. 중국의 개혁과 현대화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중국은 현대적이고 민주적이며 첨단 기술과 더 많은 자유가 어우러진 국가가 되기 위해서 완수하고 개혁해야 할 일이 무수히 많다. 만약 중국이 이러한 과업에 성공한다면, 중국 문명과 번영의 오랜 역사를 고려할 때, 중국의 소프트파워뿐만 아니라 글로벌 소프트파워에서 크게 기여할 것이다. 소프트파워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면서 대답하기 어려운 문제이다. 더 많은 고민과 심층적인 연구가 필요한 분야이다.

“이어도 문제는 충분히 해결 가능”

한국의 중국에 대한 인식에 있어서 이어도 문제가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다. 양국이 주장하는 배타적경제수역(EEZ) 안에 있는 이어도와 관련해 중국은 최근 관할권 주장을 한층 강화하고 있다. 이에 대해 많은 한국인들은 중국의 위협이 현실화되고 있다고 여긴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나는 이어도 문제는 협상과 같은 정치적인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한국이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이어도 분쟁은 다오위-센카쿠 문제와는 완전히 다른 사안이다. 내가 알기엔 한중 정부가 평화적으로 이 문제의 해결을 시도하고 있다. 국제법에 따라 협상을 진행하면 여러 가지 문제에도 불구하고 해결될 것으로 믿는다. 해결될 수 있고 관리될 수 있는 문제로 양국의 우호 관계를 해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지정학적인 관점에서 볼 때, 당신은 이어도를 매우 중요한 이슈로 간주할 수도 있다. 실제로 모든 영토 분쟁은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볼 때 매우 중요하고, 이는 한중간에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두 나라는 상당한 상호의존 관계를 형성하고 있고, 이에 비춰볼 때 이어도 문제는 매우 사소한 사안이다.

우리는 한국 경제의 미래가 중국의 시장과 분리될 수 있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고, 이는 중국 역시 마찬가지이다. 두 나라의 경제는 이미 통합되어 있고 앞으로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이어도 문제는 관리될 수 있으며 두 나라의 지혜와 협상가들의 기술, 그리고 학자와 NGO가 협력한다면 해결될 것으로 믿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평화다. 평화가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유지되는 한, 이어도 문제는 성공적으로 해결될 수 있다.

미·중 관계에서 한국의 선택에 대해 묻고 싶다. 미국은 한국의 유일한 동맹국이고 중국은 한국의 최대 무역상대국이다. 그런데 미국은 한국이 중국 견제와 봉쇄와 관련해 더 많은 역할을 기대하고 있고 거꾸로 중국은 이를 우려하고 있다. 이러한 딜레마를 어떻게 해결해야 한다고 보는가?

한국이 딜레마에 처한 것은 분명하다. 한국 정부와 국민들도 이를 잘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내 친구이자 서울대의 미·중 관계 전문가인 정재호 교수는 한국의 선택은 매우 어렵고 그래서 올바른 선택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한국이 한쪽 편을 든다면, 매우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나는 정 교수의 이러한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다른 나라들의 사례에 비춰볼 때 세 가지 선택이 있을 것이다. 하나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선택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필리핀이 좋은 예가 될 것이다. 필리핀은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 정책뿐만 아니라 일본의 재무장까지 환영하고 있다.

두 번째로 미국과 중국 모두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려고 시도하면서 어떤 편도 들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나라들이 있다. 호주와 싱가포르가 그 예가 될 것이다. 호주의 자유주의적 정부는 미·중 양국과 우호 관계를 유지할 것이라는 입장을 담은 백서를 2012년에 발표했다. 호주 정부는 한편으로는 미국의 재균형 전략과 관련해 미국과 전략적 관계를 유지하면서 중국과도 우호 관계를 유지할 것이라고 말한다. 싱가포르의 리센룽(李顯龍) 총통과 그의 아버지인 리콴유(李光耀) 역시 중국의 새로운 지도부에게 보낸 축하 서한을 통해 분명하게 강조했다. 싱가포르는 미·중 사이에서 어떤 편에도 서지 않을 것이며, 미·중 관계의 협력과 조율, 그리고 화해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이다.

끝으로 이 두 가지 선택에서 망설이는 나라가 있다. 아마도 한국이 예가 될 것 같다. 한국은 대외정책의 입장을 분명히 밝히는 것을 아직 꺼리고 있다. 그만큼 고려해야 할 것들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의 정책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들도 대단히 많다. 호주나 싱가포르는 상대적으로 한국보단 지정학적 고려를 크게 할 필요가 없다. 이들 나라는 한국만큼 긴박한 지정학적 이해관계가 없다.

아마도 가장 바람직한 선택은 한국이 미·중 갈등을 완화하고 협력을 증진하는 데 있는 것 같다. 아시아의 중견국가로서의 한국이 이른바 ‘G2’ 시대에 할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이 있을까?

중국과 한국은 떠오르는 신흥강국이자 중견국이다. 그래서 한국은 글로벌 영향력을 둘러싼 중국과의 경쟁을 우려하고 있고, 실제로 많은 분야에서 경쟁하고 있다. 한국 대선을 보더라도 나는 중국의 부상에 대비해 미국과의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목소리를 듣게 된다. 그러나 동시에 중국은 한국에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중국과의 협력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도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이미 이러한 차이와 논쟁에 주목해왔다. 그리고 한국의 차기 정부가 중국과의 관계에서 새롭고도 창의적인 외교 전략을 찾아내길 희망한다. 이는 한국에 딜레마이면서도 매우 중요하다. 한국은 중국과 미국 사이의 딜레마를 반드시 풀어야 한다. 아마도 내가 앞서 언급한 것처럼 미국과 중국 모두와 우호 관계를 맺길 원하는 호주나 싱가포르 모델을 고려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또한 한국이 미국과의 관계에서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분명한 것은 이것이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한다’는 양자택일의 문제는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나는 혁신의 문제라고 본다.

미국 및 중국과의 관계를 동시에 관리해야 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고, 한국의 차기 정부가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도 아직은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것이 있다. 한국의 정부가 김대중-노무현 정부처럼 자유주의적이든, 이명박 정부처럼 보수적이든 중국의 중요성은 나날이 커졌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점이다. 이것은 매우 분명한 경향이다. 이는 곧 한국의 차기 정부도 중국과 협력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혁신의 문제’라고 했는데, 동아시아 지역에서 한국이 추진할 수 있는 혁신이 있는가?

원론적으로는 한국은 더 많은 분야에서 중국과 더욱 긴밀한 협력을 추구해야 한다. 양국의 차이를 해소하기 위해 더 많은 해결책을 강구해야 하고 장기적으로 양국 관계를 어떻게 자리매김할 것인가에 대한 비전도 가져야 한다. 안정적이고 지속가능한 한중관계를 구축할 수 있는 장기적 방법 가운데 하나는 경제적으로 지역 통합을 증진하고 동아시아 경제 발전을 지속시키기 위한 투자도 늘리기 위해 양국 정부가 함께 노력하는 것이다. 아세안+3(한-중-일),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한·중·일 FTA도 지속적으로 검토될 필요가 있다.

나는 한국이 장차 한·중·일 등 지역 협력 구도에서 사무국의 위상을 가질 수 있다고 본다. 한국은 동아시아에서 전략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다. 중국과 일본이라는 두 개의 강대국 사이에 있지만, 이는 단점이 아니라 장점이 될 수 있다. 한국은 이 점을 깨달아야 한다. 이것은 또한 한국이 한·중·일 3자 협력의 사무국이 될 필요가 있다는 점에 한국과 중국이 인식을 함께 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의 미래는 벨기에의 수도이자 유럽연합의 수도인 브뤼셀처럼 될 수 있다. 동아시아 협력의 수도 말이다. 한국이 이러한 선택을 한다면 한국의 미래는 매우 밝을 것이다.

논단] 투키디데스의 경고-‘투키디데스의 덫(Thucydides’s trap)’

기존 세력이 새 힘 두려워하면 소용돌이가 주변 삼킨다는 것…
美·中 사이서 살 길 찾으려면 우리 자신 내실 확충하는 길뿐
구조 개혁 절실한데 침묵하고 후보들은 표심 낚는 데만 골몰

    윤희숙 KDI 연구위원

어떤 전쟁은 이미지로 기억된다. 배 13척을 울돌목에 띄워놓고 수백 척 적군(敵軍)을 기다리는 이순신이나 코끼리 부대를 끌고 눈 덮인 알프스를 넘는 한니발의 비장함 앞에 말로 된 분석은 뭐든 사족(蛇足)이 되고 만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정반대이다. 27년간 지루하게 계속된 전쟁은 극적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지만 전 세계의 대학 초년생은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읽느라 밤을 밝힌다. 2500년 전 역사책이 현재에 던지는 의미심장함 때문이다.

아테네의 장군이었던 저자 투키디데스는 신흥 강국으로 떠오른 아테네가 기존 강국 스파르타에 불러일으킨 두려움이 전쟁의 원인이라고 지목했다. 새로운 힘이 부상하고 기존 세력이 이를 두려워할 때 형성되는 소용돌이가 주변을 집어삼키는 ‘투키디데스의 덫(Thucydides’s trap)’이다. 신흥 강국 독일의 호전성과 기존 강국 영국의 대응은 1914년과 1939년의 두 차례 세계대전으로 이어졌다. 하버드대학 앨리슨 교수에 따르면 서기 1500년 이후 세계지도상 힘의 축(軸)이 이동했던 15번 중 11번이 전쟁으로 귀결됐다.

지금 투키디데스가 다시 회자한다. 올 초 시진핑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 중국과 미국은 과거의 역사가 반복되지 않을 것이라고 공언했다. 글로벌 경제 속에서는 기존 강국 미국과 부상하는 중국이 상호 존중하고 협력하는 ‘신형 대국 관계’라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미국이 ‘아시아로 중심축 이동(Pivot to Asia)’이라는 기치 아래 중국을 배제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를 추진하고, 중국은 미국을 배제한 ‘역내(域內)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을 진행하는 등 양국의 상호 견제는 더 치열해지고 있다. 이들이 오래된 덫을 슬기롭게 피해갈 수 있을지를 세계는 초조하게 지켜보고 있다.

고대 그리스의 주변국들은 어느 한쪽에 붙을 것을 강요받았고 결국 살상(殺傷)과 파괴로 치달았다. 우리는 지금 미국에 이어 중국과 FTA를 협상하고 있다. 나라 크기와 교역 규모가 어지간한 국가 중 두 나라 모두와 FTA를 맺는 것은 우리가 처음이다. 체결이 안 될지도, 몇 년이 걸릴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그들에게 우리가 중요한 존재임은 틀림없다. 더구나 이제 우리는 강대국이 결정해주는 운명을 수동적으로 기다리기보다 나름의 영향력으로 공존의 길을 찾는 데 기여하겠다는 신호를 바깥 세계에 보내고 있다.

문제는 그 신호가 과연 먹힐 수 있을지가 불확실하다는 것이다. 영향력을 갖기 위해서는 우리가 내실을 가져야 한다. 우리 자신 잘 먹고 잘살아야 존중받는 것이다. 근래 우리가 제대로 대접받게 된 것은 지난 50년간 경제 발전의 결과이지만, 그 위상이 유지될지는 지금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달렸다. 그리고 국가 위상의 기본 잣대는 경제가 가진 경쟁력이다. 지난 수백년간 인류 문명의 꽃이라 자부했던 유럽이 암울함에 빠진 것은 독일 등 일부를 제외한 주요국이 경쟁력을 상실한 데다 이를 재건하기 위한 구조 개혁을 이루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는 이 나라들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다. 지금이 한국 역사의 꼭짓점이자 기나긴 쇠락의 시작점이 될 가능성이 커지는데도 만연한 안이함이 성찰과 모색을 차단하고 있다. 고성장 시대의 성장 동력이 꺼져가고 고령화가 본격화하는데 정작 절실한 구조 개혁에 대해서는 침묵한 채 대선 정국은 온통 표심(票心) 낚기로 채워졌다. 칼날 같은 경쟁 환경과 긴장이 고조되는 정치 환경을 돌파하기 위해 스스로를 어떻게 단련할지에 대한 계획이 없으니 대선 주자들이 유권자들의 눈물을 닦아주겠다며 살갑게 굴수록 더 불안하다.

구조 개혁에 왕도(王道)는 없다. 노동시장과 상품·서비스 시장의 경직성을 완화하여 재능과 자본이 움직이는 걸 돕고 경쟁 장벽을 없애는 것이 최우선이다. 다음은 인적 자본과 기술 기반에 투자하고 사회 안전망을 강화하는 것이다. 경제의 적응력이 유연함에서 나오는 이상 복지와 경제정책은 약자를 보호하되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을지라도 구조조정을 촉진하는 방향이어야 한다. 구조 개혁 구상이 없는 복지 확대 약속이나 고용 규제를 강화해 경직성을 심화시켜 잘살 수 있다는 공약은 무책임보다 무지에 가깝다. 나라는 변방을 벗어난 지 오래인데, 대선 후보들은 세계와 격리돼 있는 것이다.

오래도록 한반도는 대륙에 달린 작은 땅덩어리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돌아서 눈을 들면 반도는 대양의 시작이며 대륙의 입구이다. 우리 국민은 이미 멀리 바라볼 능력을 갖추었으니 이에 걸맞은 지도자가 선출되길 바라마지 않는다. 혹여 그렇지 않다면 더 나은 내일을 향해 지도자를 인도하는 국민이 되는 수밖에 없다.

근대 일본의 ‘아시아’ 담론

근대 일본의 ‘아시아’ 담론에 대해

Posted by aniooo in CRITIQUE on 2011年11月28日

올 겨울의 『창작과 비평 (154호)』에 「전후일본의 문학담론과 아시아적 시각 ― 역사적 상상력과 자본주의적 상상력」이라는 글을 썼는데, 원고를 쓰다보니 분량이 너무 길어져 앞부분을 반 이상 줄여야 했다. 오에 겐자부로와 무라카미 하루키에 초점을 맞춰, 전후 일본 문학이 동아시아를 어떻게 다루었는지를 논하는 것이 주요 논지였기 때문에 부득이한 선택이었다. 잘라내기 전의 오리지날을 앞부분만 블로그에 게재한다.  (또한, 위의 글 중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독해 부분은 이 블로그에 있는 「하루키와 기억의 배치 – 후쿠시마 료타를 경유해」와 겹치는 부분이 있다. )

  • 1. 탈아입구와 Asia is one.

‘아시아’라는 개념은 현재 아시아라 불리는 지역 바깥에서 도래한 것으로, 이는 ‘서양=근대’와 대립되는 성격이나 특징을 체현하는 상대에게 부여된 명칭이었다. 다시 말해 아시아는 ‘서양=근대’를 통해 재발견되는, ‘서양=근대’를 정의하기 위한 대립개념이었다. 현재 ‘동아시아’라 불리는 지역도 마찬가지였다. 근대 서양과 충돌하기 전까지 조선, 중국, 일본에 스스로가 ‘동아시아’에 속한다는 인식은 없었다. 서양과 현재 동아시아라고 불리는 지역 간에 오래 전부터 교류는 있었으나, 각자의 권역에서는 각기 다른 성격의 시간이 흐르고 있었고, 각자 상이한 역사 속에서 스스로를 인식하고 있었으며, 근대 이전에는 이러한 이질적인 시간과 역사가 전면적인 충돌을 거쳐 다른 한편에 포섭되는 일 또한 없었다. ‘우리’는 서양과의 충돌을 통해 비로소 자신들이 ‘동아시아’라는 자기인식을 갖게 된다. 서양이라는 타자를 경유해 동아시아는 전세계와의 관계 속에서 자신들의 위치를 새로이 발견함과 동시에 새로운 정체성을 얻게 됐다. 이는 ‘세계사’라는 서양 중심의 독특한 역사 체계 속에 조선, 중국, 일본이 편입됐다는 것을 의미했다.

애초에 ‘세계사’라는 지적 장치가 근대화에 이르는 과정을 역사적 필연으로 여기는 세계관을 내면화하는 제도였다는 점을 상기해 보면, ‘아시아’라는 자기인식의 수용은 위계적인 세계사의 주변부에 마련된 자기 자리를 받아들이는 것을 뜻했다. 고로, 서양에 대한 공포가 커질수록 이 새로운 아이덴티티는 자기긍정을 위한 것이라기보다, 오히려 자기 안에서 부정적인 모습을 발견하고 이를 지양하기 위한 기제로서 기능했다. 근대화를 도모하던 시기의 슬로건이 ‘탈아입구(脱亜入欧)’였던 일본이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고모리 요이치(小森陽一)는 『포스트콜로니얼』에서 이러한 일본 근대화의 특징을 ‘자기식민지화’라고 불렀다.[1] 이때 아시아는 구미의 선진성(문명)과 대립되는 후진성(야만), 그것도 자기 내부에 자리잡은 후진성을 뜻했다. 일본이 근대 서양의 가치체계를 내면화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후진적 요소를 ‘아시아’라는 개념에 응축시켜, 스스로를 ‘아시아적 가치를 부정하고 이를 서양 중심의 근대적 질서로 재편하는 운동체’로 정의내렸을 때, 논리 상으로는 이미 아시아에 속하는 다른 주변국을 근대화=식민화하는 주체로서의 일본, 세계사적 주체로서의 일본, 즉 제국으로서의 일본을 긍정하는 기본틀이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한편으로, 아시아라는 개념을 긍정적으로 갱신하려는 시도 또한 있었다. 1903년, “아시아는 하나다(Asia is one).”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동양의 이상』을 쓴 오까꾸라 뗀신(岡倉天心)은 “오늘날 아시아가 해야 할 일은 아시아적 양식을 옹호하고 회복하는 것”[2]이라며, 서양이 아닌 아시아에서 고유한 적극적 가치를 도출해 아시아 각국의 단결과 각성을 호소했다. 물론, 이는 가라타니가 말한 바와 같이 아시아 내에서 일본이 지닌 특수성을 강조하는 논리와 표리관계에 있었으며, 일본의 미술작품에서 높은 예술적 가치를 읽어낸 서양의 미적 시선(인상파), 즉 오리엔탈리즘의 시선에 의존한 가치전환이라는 일정한 한계 또한 지녔다. 오리엔탈리즘이란 “지적・도덕적으로 열등한 타자를 미적으로 숭배하는 태도”[3] 속에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대화와 ‘탈아입구’가 지배적 담론이던 시기에 —물질적 가치를 중시하는 서양과 정신적, 미적 가치를 중시하는 아시아라는— 이분법적 구도 속에서나마 아시아라는 개념을 긍정적으로 재구성하려 했다는 점은 평가할 부분이 있다.

  • 2. 대동아 공영권과 동아시아 담론의 재편

이처럼 근대 일본에서는 아시아를 둘러싸고 배제와 동일화의 역학이 동시에 성립했는데, 일본이 서양을 전범으로 삼아 아시아를 근대화=식민화 한다는 논리를 내세우는 한, 사회 내에서의 아시아 담론 또한 배제와 침략이 우세했다. 신흥 근대 국가를 자임하던 일본과 동아시아의 맹주였던 청나라 간에 벌어진 청일전쟁, 일본이 서양 열강으로부터 실질적인 근대국가로 승인받는 계기가 된 러일전쟁, 조선・대만・류큐의 식민지화, 연합국의 일원으로 참전한 제1차 세계대전 등을 거치면서 일본은 꾸준히 서양 제국주의를 모방해 갔고, 동시에 세계사의 중심부에 점점 가까워져 갔다.

하지만, 대외적으로는 세계사의 중심부에 가까워질수록 서양 제국주의 국가들과 갈등이 격화되었고, 대내적으로는 식민지 확대로 인해 민족을 초월한 통치 이데올로기의 필요성이 증대됐다. 또한, 1차대전 이후 서양에서 유행한 ‘서양 문명의 몰락’이라는 화두는 아시아 관련 담론을 활성화 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이러한 정황 하에서 ‘동아시아’라는 개념을 새로운 맥락 속에 재소환한 일본은, 한계에 다다른 ‘서양 근대 문명’의 극복이라는 역사적 사명을 띤 ‘동아시아적 주체’를 확립한다는 미명 하에 ‘동아시아 협동체’와 ‘대동아공영권’을 내세우게 된다.

예를 들면 태평양 전쟁 당시, 교오또(京都)학파라 불리는 일군의 학자들은 이 전쟁을‘근대의 종언’을 실현하기 위한 전쟁, 아시아가 근대 서구 중심의 세계사에 저항해 새로운 차원의 세계사를 열기 위한 전쟁으로 위치지어, 아시아의 이름으로 이 전쟁을 정당화했다.[4] 이러한 과정을 거쳐 애초에 침략적 이데올로기와는 무관했던 오까꾸라의 ‘아시아는 하나다’라는 주장 등 다양한 방향성을 지녔던 일본 사회 내의 여러 아시아주의는 ‘대동아공영권’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전용돼, 결국 아시아에 관한 제담론은 제국주의 이데올로기를 구성하는 하위 담론으로 재편되고 만다.

문학 담론의 경우, 프롤레타리아 문학으로 대표되는 정통 마르크스주의나 무정부주의 계열의 작가 및 비평가들은 자본주의와 제국주의로부터 모든 인민을 해방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었으므로 자연스레 식민지 해방과 아시아 내 국제적 연대를 내세웠지만, 당국의 혹독한 탄압으로 1930년대에 프롤레타리아 문학 운동은 괴멸한다. 그 후, —일본 문예비평의 아버지라 불리는— 고바야시 히데오(小林秀雄)를 중심으로 한 ‘문학계(文學界)’ 계열과 야스다 요주로(保田與重郎)로 대표되는 ‘일본낭만파(日本浪曼派)’가 문학 담론을 이끌어 가는데, 표현의 자유가 금지된 상황에서 전개된 이들 문학 담론에는 정치적 패배주의가 짙게 베어 있었다.

프롤레타리아 문학 붕괴 이후, 문학과 사회의 접점을 재구성하기 위해 ‘사회화된 나’ 등을 논하던 고바야시는 중일전쟁과 태평양 전쟁을 거치며 거의 침묵하게 되고, 야스다는 모든 현상을 탈정치화해 미적 경험으로 환원하는 ‘낭만적 아이러니’ 전략을 구사했다. 야스다는 “낭만주의라는 지점에 입각해 ‘근대적 군국주의’를 비판”[5] 했다는 점에서 반체제적 성향을 지니고 있었고 실제로 당국에 의해 위험 인물로 분류됐다. 하지만, 그는 전쟁으로 인한 죽음을 정치적 이데올로기로 긍정하는 것을 거부함과 동시에, 그러한 죽음을 탈정치화된 미적인 행위로 묘사해 낭만파 특유의 아이러니로 현실을 긍정했다. 결과적으로 보자면 발터 벤야민이 말했던 ‘정치의 미학화’의 변종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일본낭만파적 사유의 계보를 패전 후에 계승하게 되는 작가가, 『금각사』와 같은 완성도 높은 심미적 소설을 써서 노벨 문학상 후보로 오르는 한편, 자위대 쿠테타를 호소하고 할복 자살을 하게 되는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이다.


[1] 고모리 요이치, 『포스트 콜로니얼』, 삼인, 2002.

[2] Kazuo Okakura, The Ideals of the East with special reffernce to the art of Japan, London, John Murray, 1903.p.240.

[3] 柄谷行人, 『定本 柄谷行人集 ネーションと美学』, 岩波書店, 2004, p.152.

[4] 廣松渉, 『<近代の超克>論』, 講談社, 1989.

[5] 松本健一, 『竹内好論』, 岩波書店, 2005, p.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