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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십의 정치학

‘가십’ 다르게 읽는 책

루머와 가십은 커뮤니케이션 이론에서 자주 다루는 소재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가장 근원적 형태의 소통 방식이기 때문이다.

관련서로 국내에서 많이 팔린 책으로는 저넷 월스가 쓴 ‘가십'(김정희 옮김, 커뮤니케이션북스), 다이엘 솔로브가 지은 ‘인터넷 세상과 평판의 미래'(이승훈 옮김, 비즈니스맵)가 있다. ‘가십’은 미국 대중문화 한복판에 들어온 가십이 방송을 접수하게 된 과정을 지적으로 고찰한다. 연예 프로그램이 일반 뉴스에서 독립해 자리잡는 과정이 흥미롭게 펼쳐진다.

‘인터넷 세상과 평판의 미래’는 가십과 루머, 디지털 주홍글씨를 들여다본다. 사생활을 공개하거나 상사를 험담했다가 곤경에 빠지는 등 인터넷이라는 매체를 둘러싼 사회적 명암을 다양한 사례로 조명하고 있다.

‘가십’은 악의적일수록 멀리 간다

  • 박돈규 기자

루머: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정보
가십: 실체가 있고 소수만 공유
“현대인이 가십에 열광하는 건 무리의 결속을 다지는 생존 전략”

성난 초콜릿|조지프 엡스타인 지음|박인용 옮김|함께읽는책|312쪽|1만5000원

노벨 문학상을 받은 극작가 해럴드 핀터가 짧은 시 한 편을 써 친구들에게 보내고 찬사를 기다렸다. 시 전문은 이랬다. “나는 전성기 때의 렌 허튼을 알고 있었네/ 먼 옛날이지, 먼 옛날.”

렌 허튼은 영국의 전설적 크리켓 선수. 핀터 친구들은 이 보잘것없는 시에 대해 “간단명료하게 핵심을 찔렀으며 감동적이다”는 소감을 전해왔다. 한 친구만 감감무소식이었다. 참다못해 핀터가 전화를 걸었다. “시를 받았나?” “물론 받았지.” “어떻게 생각해?” 친구는 잠깐 침묵하더니 답했다. “실은 아직 다 읽지 못했네.”

세계적 작가가 사소한 칭찬에 집착했다는 사실을 우스꽝스럽게 들려주지만 이 정도 가십(gossip)은 양반이다. 인터넷과 식당에는 노골적인 폭로가 떠돌아다닌다. 두세 명만 모여도 우리는 종종 누군가를 씹는다. 첫마디는 “너니까 하는 말인데”나 “너만 알고 있어”로 시작된다. 가십은 종교와 세속의 억압에도 어떻게 지배력을 확장해온 것일까. 이 ‘지적으로 껌 씹기’는 왜 그토록 매혹적인가.

가십의 정의가 확장된다

가십은 루머(소문)와는 다르다. 루머란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내용이 널리 퍼지는 것이다. ‘타인의 사생활에 대한 소식’으로 두루뭉술하게 정의되는 가십은 루머보다 실체가 있고 소수만 공유한다. 여기서 사생활이란 그(녀)의 비밀이다. 사회학자 게오르크 지멜은 “비밀이야말로 인류가 이룩한 위대한 업적 중 하나”라고 주장했다.

영화 ‘책 읽어주는 남자(The Reader)’에는 “서구 문학의 중심에는 비밀에 대한 발견이 있다. 때론 괴팍하고 때론 숭고한 이유로 주인공은 철저히 비밀을 숨긴다”는 대목이 나온다. 뮤지컬 ‘레 미제라블’에서 장 발장과 팡틴도 사적인 비밀을 감추다 위험에 빠진다. “소설은 급이 높은 가십”이라고 영국 소설가 이언 매큐언은 말했다.

비밀스러운 사람에 대한 뉴스야말로 우리 시선을 잡아끈다. 사회학자들은 최근 가십의 정의를 확대하기 시작했다. 이 낱말에는 이제 악감정이 더해지고 반드시 사실로 확인돼야 할 필요가 없으며 정보의 유용한 전달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인문학자이자 칼럼니스트인 저자는 ‘그럴싸하지만 확인이 안 되고 혹독한(feasible, uncheckable, deeply damning)’ 가십일수록 매력적이라고 정리한다.

‘판타지’를 듣고 싶다

이 책 자체도 가십의 꿀단지다.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수술을 맡았던 산부인과 의사 말에 따르면, 경호원을 거느리고 나타난 그녀는 수술하기 전에 면도한 자기 치모가 제대로 수거돼 적절히 폐기됐는지 확인했다고 한다. 간호사가 그것을 모아 경매 사이트에 올리진 않았는지 의심했다는 것이다.

메릴린 먼로가 사망했을 때 두 번째 남편 조 디마지오(전설적 야구 선수)가 장례를 도맡았다. 이 책은 “두 사람이 부부였을 때 디마지오가 그녀를 자주 때렸대. 아서 밀러(세 번째 남편이었던 극작가)가 한 말이야”라며 가십을 전파한다. 그 아서 밀러가 세 번째 아내였던 사진가 잉게 모라트에게서 낳은 아들(다운증후군 증세가 있었다)을 숨겼다는 사실도 들춰낸다.

가십의 배후에는 정보 전달 외에 흠집 내기, 성적(性的) 욕망 등이 있다. 사람은 자신이 감히 하지 못하는 일에 대해 듣고 싶어 하는 법이다. 저자는 가십을 비난하지 않는다. “가십은 종종 위험하지만 뻔뻔한 위선을 들추고 선량한 보통 사람은 거기서 쾌감을 느낀다. 멋진 가십을 듣고 전하는 일이 기뻤다”는 고백이다.

미국 배우 메릴린 먼로가 수화기 두 개를 든 채 통화하고 있다. 가십은 누가 누구와 동침하는 관계인지, 누가 무엇을 훔쳤는지, 누가 위선자인지 등을 단도직입적으로 전한다. 달콤하면서 잔혹하다. /토픽이미지

진화생물학 “가십은 생존 도구”

가십은 어떤 사실과 시각, 모략을 공유하는 오래된 방법의 하나다. 진화생물학은 사회적 결속을 다지는 생존 도구로 그것을 해석하기도 한다. 집단은 커질수록 물리적인 접촉이 어려워지는데, 대화와 글이 그 틈새를 메울 수 있다는 것이다. 트위터·페이스북·블로그는 이제 지구 반대편까지 가십을 곧장 유포한다.

당장 현재진행형인 가십이 떠올라 더 잘 읽히는 책이다. 열흘 전에 ‘윤중천 성 접대 스캔들의 내막'(?)이 카카오톡으로 들어왔다. 별장, 로라제팜, 벤츠, 동영상 같은 낱말 사이에 저명인사들의 실명이 박혀 있었다. 매혹적인 가십의 조건을 두루 갖췄다.

이 책은 가십의 역사를 다루지는 않는다. 선박왕 오나시스와 마리아 칼라스, 마틴 루서 킹 2세, 수전 손택, 다이애나 왕세자빈, 존 F 케네디, 바이런, 헤밍웨이 등의 비밀을 들추는 재미에 책장이 빨리 넘어간다. 황홀한 가십 퍼레이드다. 원제는 ‘Gossip’인데, 달콤하지만 결과가 심각할 수 있는 가십에 빗대 달았다는 한글 제목은 영 요령부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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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리(여유) 세대 vs 사토리 세대

‘희망도 없고, 절망도 없다’
일 불황이 낳은 ‘사토리 세대’

등록 : 2013.03.18 20:32수정 : 2013.03.18 22:30

‘불황 현실’ 인정하는 세대 지칭어
현실 인정하고 합리적 적응 하지만
승진조차 꺼리는 소극적 성향 보여

도쿄에 사는 한 남자 대학생(26)은 일본 본섬의 미에현 남서쪽으로는 아직 여행을 가본 적이 없다. 외국에 가본 적도 없고, 여권도 만들지 않았다. 운전면허도 없다. 장래에 대단한 일을 하겠다는 생각 따윈 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의 수준에 맞춰 살면 된다고 생각한다.

“사토리 세대요? 얘기를 듣고 보니, 나도 그런 것 같네요.”

이 학생은 <아사히신문> 기자의 지적에 고개를 끄덕였다. 사토리는 ‘깨달음’, ‘득도’란 뜻을 지닌 일본어다. 사토리 세대는 현실을 냉정하게 인정하고 그에 적응하는 세대라는 뜻의 요즘 일본 젊은이들을 가리키는 신조어다. 연령대가 겹치는 ‘유토리(여유) 세대’와 첫 글자만 다르다.

유토리 세대(대략 1987~1996년생)는 2003년부터 시작된 이른바 ‘유토리’ 교육을 받은 세대다. 창의성을 살린다며 학교에서 학습량을 크게 줄인 시대였다. 1980년대 중반 이후에 태어난, 현재의 10대와 20대 중반이 이에 속한다. 일본에서는 유토리 세대라고 하면, ‘학력 저하’가 현저한 세대로 통한다. 유토리 교육은 2010년 끝났다.

사토리 세대는 스스로 공부를 더 해 자신의 장래를 현실적으로 계획하는 영리한 이들의 집단이다. 이 조어는 2010년 인터넷 게시판에서 전 <니혼게이자이신문> 기자인 야마오카 다쿠의 저서 <바라는 게 없는 젊은이들>에 대한 의견을 나누던 중 한 누리꾼이 ‘사토리 세대’란 이름을 붙인 데서 유래했다.

<아사히신문>이 꼽은 사토리 세대의 특징은 이렇다. “자동차나 명품에 흥미가 없다. 필요 이상으로 돈을 벌려 하지 않는다. 파친코 같은 도박에 돈을 쓰지 않는다. 외국 여행에 큰 흥미를 느끼지 않는다. 태어나 자란 곳에 남기를 바란다. 연애에 소극적이다.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한다. 주로 인터넷에서 정보를 얻지만, 독서도 아주 좋아한다.”

사토리 세대는 장기불황으로 젊은이들에게 좋은 일자리가 돌아가지 않게 돼, 꿈이나 목표를 가져도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시대의 산물이라고 사회학자 후루이치 노리토시는 설명한다. 그는 “(사람은) 돈이 없으면 합리적으로 되는 게 당연하다. 소극적으로 행동할 수밖에 없는 세대”라고 말했다.

노동 현장에서는 ‘책임자로 승진을 해봐야 힘든 일만 많아진다’며 승진조차 꺼리는 사토리 세대에 대해 “패기가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기업들은 낭비할 줄 모르는 이들 세대의 소극적인 소비 패턴을 우려 섞인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고 <아사히신문>은 전했다.

도쿄/정남구 특파원 jej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