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Archives: 세계 issue

투키디데스의 함정

“강대국 파워의 전환기… 신흥·구세력이 충돌하는 투키디데스 함정 조심하라”

미중 갈등 전선 확대 속 양국 정상회담 앞두고 아테네·스파르타전 화두

입력시간 : 2013.06.08 03:33:16
미국 서부의 휴양지 서니랜즈에서 현지 시간으로 7, 8일 진행되는 미중 정상회담의 최대 화두는 ‘투키디데스의 함정(Thucydides trap)’이다. 기원전 5세기 아테네가 그리스 문명의 중심으로 떠오르자 충격에 빠진 기존 세력 스파르타는 주도권을 빼앗길 것을 두려워해 전쟁을 일으킨다. 고대 그리스 역사가 투키디데스는 30년 간 지속된 이 전쟁으로 스파르타와 아테네 모두 쇠락의 길을 걸었다고 기록했다. 기존 세력과 신흥 세력의 대립과 긴장이 불가피하게 충돌로 이어진다는 이 논리는 이후의 역사에서도 되풀이됐다. 1500년 이후에만 15회 세계 파워의 변화가 있었는데 그 중 11회는 전쟁을 통해서였다.

그레이엄 엘리슨 하버드대 벨퍼센터 소장은 이날 뉴욕타임스(NYT) 기고문에서 “파워의 전환기에 강대국들은 충돌의 유혹에 빠지게 된다”며 “이번 회담에서 미중 정상은 투키디데스의 함정에서 벗어날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CSM)도 100년 전독일의 경제력이 기존 파워 영국을 추월하면서 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며 투키디데스의 함정을 언급했다. 미국은 이런 점을 의식, 충돌의 불가피성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으로 미중 조기 정상회담을 추진한 것으로 전해졌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넥타이를 풀어헤치고 머리를 맞대는 것도 이런 차원에서다.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인 미국과, 강대국으로 급속히 부상 중인 중국이 충돌의 함정에 빠진 것은 아니지만 양국 갈등의 전선은 계속 확대되고 있다. 오바마 정부의 핵심 전략인 아시아 중심 정책에 대해 중국은 미국이 군사ㆍ경제적으로 중국을 견제하려 한다며 대응 강도를 높이고 있다. 미국이 최근 중국의 사이버공격을 군사ㆍ경제 문제로 부각시키는 것은 중국의 부상에 대한 두려움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이에 대해 중국은 시 주석 체제 이후 신형 대국 관계란 화두로 던지며 미국과 대등한 국제적 위상을 추구하고 있다. CSM은 “양국 모두 서로에게 다양한 불신을 갖고 있다”며 “두 정상이 이런 문제를 긍정적 방향으로 전환시킬 것”이라고 기대했다. 칼럼니스트 파리드 자카리아도 워싱턴포스트(WP) 기고문에서 이번 회담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1972년 중국을 방문, 저우언라이(周恩來) 당시 총리와 연쇄 회담한 끝에 ‘죽의 장막’을 연 것에 비유했다.

그러나 두 정상이 대만, 인권,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 등 중국의 핵심 이익이 걸린 사안에서 해법을 찾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다만 북한과 이란 핵개발, 자유무역, 상호투자 등 공통의 이해를 갖고 있는 문제에서는 합의를 이끌어낼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엘리슨 소장은 “미국은 중국의 부상이 필연적으로 세계 최강국 미국에게 역사적 도전인 점을 인식해야 한다”며 “양국이 충돌을 막기 위해 정상회담뿐 아니라 한 세대에 걸친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자본이라는 수수께끼》잘 정리된 데이비드 하비의 주장과 분석

《자본이라는 수수께끼》잘 정리된 데이비드 하비의 주장과 분석

조니 존스 (영국 반자본주의 계간지 《인터내셔널 소셜리즘》 부편집자)

<레프트21> 88호 | 발행 2012-09-03 | 입력 2012-08-31

마르크스주의 지리학자이자 사회이론가 데이비드 하비는 최근 좌파 가운데 매우 각광받는 인물이다. 경제 위기가 발생하면서 마르크스 사상에 대한 새로운 관심이 생겨났고 급진화되고 있는 많은 청년 지식인들은 하비를 중심으로 마르크스 사상을 접하고 있다.

△《자본이라는 수수께끼》, 데이비드 하비 지음, 이강국 옮김, 창비, 4백23쪽, 2만 8천 원

그는 학계에서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인용되는 지리학자다. 그의 마르크스 《자본론》 온라인 강의는 방문 횟수가 백만 번이 넘고 책(《데이비드 하비의 맑스 ‘자본’ 강의》, 창비)으로도 출판돼 호평을 받고 있다. 잇따라 《자본이라는 수수께끼》가 출판됐다. 다루는 규모와 범위가 야심차게 매우 큰 이 책은 기본적으로 하비의 평생의 작업을 엄밀하지만 읽기 쉽게 정리한 것이다. 그리고 이 점에서 이 책은 성공을 거뒀다.

이 책은 최근 경제 위기에 대한 해부로 시작한다. 하비는 경제 위기가 1990년대를 통해 미국 등의 지역에서 발생했던 부채 누적 현상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그는 장기 호황 이후 하락한 이윤율에 대한 대응으로 이런 일이 발생했다고 본다. 즉,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이 차지하는 부의 몫을 공격해 수익성을 회복시키려 했다. 이것은 소비가 부채를 통해서만 유지될 수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수익성

하비는 자본주의에서 왜 위기가 발생하는지를 설명하고 어떻게 자본주의가 발전했는지를 살핀다. 그는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무엇을 할 것인가? 그리고 누가 할 것인가?” 하는 러시아 혁명가 레닌의 문구를 인용하며 끝낸다.

하비의 분석은 많은 장점들이 있다. 공간 영역을 자본주의와 결합시키는 시도(1982년 발행된 그의 고전적 저작인 《자본의 한계》에서 끌어 왔다)와 환경에 의해 제약받는 자본 축적에 대한 논의는 빛나는 가치가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적지 않은 부분에서 실망스럽다. 위기에 대한 그의 분석에서 마르크스의 이윤율 저하 경향은 상쇄 경향들 때문에 “거의 의미가 없는” 사소한 구실을 하는 것으로 격하된다.

어떻게 우리가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그의 논의는 더욱 실망스럽다. 그는 옳게도 자본주의 내부에서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운동이 부상한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그는 변혁 정치조직에 관한 흔한 부정적 편견들을 반복한다. 하비는 사회 변혁에 대한 유토피아적 견해로 자주 기운다. 그의 주장은 마르크스가 강조한 계급중심성이 아니라 마이클 하트나 안토니오 네그리의 ‘다중’ 개념과 공통점이 더 많다.

《자본이라는 수수께끼》를 읽으며 책의 구조와 주제들이 크리스 하먼의 유작 《좀비자본주의》와 매우 비슷해 놀랐다. 하비의 책은 흥미롭고 또 활동가들이 읽기도 쉽지만 이 책의 많은 약점을 교정하는 하먼의 책을 함께 읽을 것을 권한다.

동네미디어 vs 개인민주주의

동네미디어 vs 개인민주주의
http://m.hani.co.kr/arti/opinion/column/573569.html

http://m.hani.co.kr/arti/culture/book/573621.html

시민사회를 재건할수있을까?

개별적 인간행위의 중요성 – 환경 시스템 방관태도.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 심리학 거장 짐바도 폐막강연http://m.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73573.html

결국 시민이 근대적 영토의 개념이라면 현대는 개인의 이기심에 기반하는 선을 모색해야하지 않을까
투표법률화 95% 호주 등
인센티브제 규제와 촉진 환경의 조성 스스템 문화향상

이집트 혁명이 묻고 있는 것: ‘탈-정치’와 ‘포스트-정치’ 사이에서

이집트 혁명이 묻고 있는 것: ‘탈-정치’와 ‘포스트-정치’ 사이에서 ,    2011/02/13 03:52

이집트 혁명이 우리에게 묻고 있는 것:

문제는 ‘탈(脫)-정치’가 아니라 ‘포스트(post)-정치’이다!

 

 

 

 

▷ 타흐리르 광장의 한 순간: “People demand removal of the regime.” 우리는 ‘다른’ 체제를 원하는가, 아니면 체제 자체의 ‘제거’를 원하는가? 바꿔 말하자면, 우리는 단지 정권의 ‘교체’를 원하는가, 아니면 보다 근본적으로 ‘정권’이라는 개념 자체의 교체를 원하는가? 아마도 우리는, 이집트의 인민들 앞에서, 그들과 함께, 가장 먼저 이 질문에 답해야 할 것이다.

 

 

1) E(verybody) G(reets) Y(our) P(eople’s) T(riumph)! 이것은 이집트 시민혁명의 승리를 축하하는, 이집트 인민들을 위한 나만의 메시지이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그 ‘승리’에도 불구하고, 다음과 같은 문제를 가장 철학적이고 정치적으로, 따라서 가장 실천적으로 생각해야만 한다: 많은 이들이 이집트 ‘시민’혁명의 성과를 칭송하고 찬양하며, 동시에 포스트-무바라크, 곧 혁명 이후 ‘권력’의 향방에 주목한다. 그러나 그 주목의 방식은, “과연 다음 ‘대권’을 누가 잡을 것인가”라고 하는 지극히 환원적이고 협소한 정치[주의]적 질문에 결박되듯 제한되어 있다. 그들에게 시민혁명 이후의 ‘정치’라는 문제는 결국 ‘대권’을 잡을 ‘권력자’라는 개념에 한정되어 있는 것이고, 여전히 그런 협소한 의미의 정치-사유 구조 안에 갇혀 있다는 말이다.

 

 

 

 

▷ 그들의 어떤 ‘연대 의식’: 사이좋게 손을 꼭 잡고, 역사 앞에 한 점 부끄러움도 없이, 해맑게.

 

 

2) 한국에서 87년 ‘시민혁명’의 결과가 결국 ‘대권’의 차원에서(그리고 정신분석적 의미에서) ‘노태우 체제’라는 기이한 절충(타협)형성으로 결론[결딴]났던 과거를 돌이켜본다면, 무바라크 이후 누가 대권을 잡을 것인가 하는 권력-환원적인 제한적 사유로부터 벗어나 권력과 정치의 형태 자체를 근본적으로 다시 사유해야 할 어떤 필요성이 더욱 절실해진다. 우리는 지금 바로 이 지점으로부터 우리의 사유와 실천을 추동해야 한다. 어떤 이들은, 전두환 이후에 노태우가 [그것도 소위 ‘직선제’로] ‘권력’을 잡았던 한국의 기이한(?) 전례를 떠올리며, 이집트에서 무바라크 이후에 [오히려 소위 ‘민중’들 혹은 ‘우민’들에 의해] 그를 계승하는 반동적인 정권이 다시 출현하게 될 상황을 걱정한다. 곧 어떤 정권이 등장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정치적으로 가장 중요한 문제로 보는 것이다.

 

 

 

 

▷ ‘개발도상국’들이여, 그저 ‘도상’에만 있지 말고, 부디 ‘선진국’이 되거라(될 수만 있다면 어디 한 번), 그렇게 멍청히만 있지 말고, 소위 ‘녹색 성장(Green Growth)’을 해보란 말이다, 그것도 무럭무럭!

 

 

3) 하지만 우리가 정작 걱정해야 할 것은 이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가장 근본적으로 걱정하고 또 사유해야 할 것은, 이집트 시민혁명 이후 권력의 형태가 다시금 환원적으로 ‘최종적 권력자’라는 개념 틀만을 고집스럽게 추구하게 되는 정치-환원주의의 현상일 것이다. 이집트 시민혁명이 세계시민들에게 열어젖히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환원주의로부터 벗어나 정치를 새롭게 사유하고 구성할 수 있는 가능성의 지점이다. 이집트 시민혁명의 ‘이후’를 생각할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이 이러한 사유의 실험대 위에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집트 시민혁명이 어떤 ‘역사성’을 갖고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과거 유럽사회나 아시아의 소위 ‘개발도상국’ 일부가 겪었던 시민혁명의 뒤늦은 ‘반복’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렇듯 앞으로 새롭게 전개되고 사유되며 실험되어야 할 ‘정치’의 장소와 향방에 있을 것이다. 이 가장 미묘하면서도 절실한 문제의 지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 이집트는 서구 중심의 민주주의 개념과 헤겔주의적 정치-역사의식의 개념 아래에서 소위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에 마치 당연히 통과해야 할 역사적 경험처럼 부과되었던 어떤 과정, 곧 ‘마땅히 가야 할’ 어떤 것으로 상정된 ‘정치의 정도(正道)’ 같은 길을 걷고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이집트는 그들 자신의 혁명 자체가 지니고 있는 어떤 독특성(singularité)이라는 문제를 통해서 우리에게 새로운 정치의 길을 열며 동시에 그 가능성을 되묻고 있는 것이다.

 

 

 

 

▷ 아마도 레닌을 바라보고 있을, 트로츠키의 모습: 영구 혁명(permanent revolution)은 여전히 가능한가? 하지만 동시에, 그것이 ‘여전히’ 가능하지 않은 것이라면, 우리가 그것을 계속하여 ‘영구’ 혁명이라고 부를 이유는 전혀 없지 않은가?

 

 

4) 우리는 어쩌면, 저 이집트 인민들이 열어놓은, ‘영구 혁명이 가능한가’라는 일견 지극히 트로츠키주의적으로 보이는 하나의 질문을, 혁명의 가능성과 불가능성을 둘러싼 현재의 모든 정치경제학적 의미나 상황들과 더불어, 다시금 재-사유하고 재-정립해야 할 기로에 놓여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에 문득, 저 흔하디흔한 자동차의 백미러에 각인되어 있는, 일견 무심하게만 보이는 한 ‘유명한’ 문구를 다시 읽어보게 된다(참고로 나는 운전면허가 없다): “Objects in the mirror are closer than they appear.” 이집트의 상황도 우리에게 정확히 이렇다고 말할 수 있다, 이 문구와 정확히 ‘상동적’인 의미에서 말이다. 그들은, 그들이 ‘그렇게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우리 가까이에 있다. 그리고 아마도 바로 이런 의미에서, 그들은 우리의 또 다른 ‘거울’일 것이다(그리고 이는 동시에, 거울에 보이는 것보다 ‘더 가까이’ 있는 그들을 위해, 우리가 어떤 ‘상상적 거울상’을 깨트려야 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집트가 던진 이 사유의 물음들에 답해야 한다. [‘자랑스러운 한국인’ 따위로 환원되어 버리는 국민국가의 노예로서가 아니라] 한 명의 세계시민(cosmopolitan)으로서, 그리고 바로 그러한 의미에서 또한, [소위 ‘책임 있는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스스로 강조하는 ‘국격(國格)’에 전혀 걸맞지 않게 이 이집트 혁명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않고/못하고 있는 저 모든 ‘한국적’인 것을 부정하고] 가장 ‘국제적으로(internationally)’!

 

 

— 襤魂, 合掌하여 올림.

 

 

 

 

▷ “사물들이 거울에 보이는 것보다 더 가까이 있습니다(Objects in the mirror are closer than they appear).”: 이 문장이 더 이상 단순한 ‘경고문’이 아니라, 익숙하면서도 낯선 하나의 깨달음을 위한 어떤 ‘격언’이 되기 위해서.

 

http://blog.naver.com/sinthome/40123274345

 

논단] 투키디데스의 경고-‘투키디데스의 덫(Thucydides’s trap)’

기존 세력이 새 힘 두려워하면 소용돌이가 주변 삼킨다는 것…
美·中 사이서 살 길 찾으려면 우리 자신 내실 확충하는 길뿐
구조 개혁 절실한데 침묵하고 후보들은 표심 낚는 데만 골몰

    윤희숙 KDI 연구위원

어떤 전쟁은 이미지로 기억된다. 배 13척을 울돌목에 띄워놓고 수백 척 적군(敵軍)을 기다리는 이순신이나 코끼리 부대를 끌고 눈 덮인 알프스를 넘는 한니발의 비장함 앞에 말로 된 분석은 뭐든 사족(蛇足)이 되고 만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정반대이다. 27년간 지루하게 계속된 전쟁은 극적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지만 전 세계의 대학 초년생은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읽느라 밤을 밝힌다. 2500년 전 역사책이 현재에 던지는 의미심장함 때문이다.

아테네의 장군이었던 저자 투키디데스는 신흥 강국으로 떠오른 아테네가 기존 강국 스파르타에 불러일으킨 두려움이 전쟁의 원인이라고 지목했다. 새로운 힘이 부상하고 기존 세력이 이를 두려워할 때 형성되는 소용돌이가 주변을 집어삼키는 ‘투키디데스의 덫(Thucydides’s trap)’이다. 신흥 강국 독일의 호전성과 기존 강국 영국의 대응은 1914년과 1939년의 두 차례 세계대전으로 이어졌다. 하버드대학 앨리슨 교수에 따르면 서기 1500년 이후 세계지도상 힘의 축(軸)이 이동했던 15번 중 11번이 전쟁으로 귀결됐다.

지금 투키디데스가 다시 회자한다. 올 초 시진핑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 중국과 미국은 과거의 역사가 반복되지 않을 것이라고 공언했다. 글로벌 경제 속에서는 기존 강국 미국과 부상하는 중국이 상호 존중하고 협력하는 ‘신형 대국 관계’라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미국이 ‘아시아로 중심축 이동(Pivot to Asia)’이라는 기치 아래 중국을 배제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를 추진하고, 중국은 미국을 배제한 ‘역내(域內)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을 진행하는 등 양국의 상호 견제는 더 치열해지고 있다. 이들이 오래된 덫을 슬기롭게 피해갈 수 있을지를 세계는 초조하게 지켜보고 있다.

고대 그리스의 주변국들은 어느 한쪽에 붙을 것을 강요받았고 결국 살상(殺傷)과 파괴로 치달았다. 우리는 지금 미국에 이어 중국과 FTA를 협상하고 있다. 나라 크기와 교역 규모가 어지간한 국가 중 두 나라 모두와 FTA를 맺는 것은 우리가 처음이다. 체결이 안 될지도, 몇 년이 걸릴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그들에게 우리가 중요한 존재임은 틀림없다. 더구나 이제 우리는 강대국이 결정해주는 운명을 수동적으로 기다리기보다 나름의 영향력으로 공존의 길을 찾는 데 기여하겠다는 신호를 바깥 세계에 보내고 있다.

문제는 그 신호가 과연 먹힐 수 있을지가 불확실하다는 것이다. 영향력을 갖기 위해서는 우리가 내실을 가져야 한다. 우리 자신 잘 먹고 잘살아야 존중받는 것이다. 근래 우리가 제대로 대접받게 된 것은 지난 50년간 경제 발전의 결과이지만, 그 위상이 유지될지는 지금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달렸다. 그리고 국가 위상의 기본 잣대는 경제가 가진 경쟁력이다. 지난 수백년간 인류 문명의 꽃이라 자부했던 유럽이 암울함에 빠진 것은 독일 등 일부를 제외한 주요국이 경쟁력을 상실한 데다 이를 재건하기 위한 구조 개혁을 이루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는 이 나라들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다. 지금이 한국 역사의 꼭짓점이자 기나긴 쇠락의 시작점이 될 가능성이 커지는데도 만연한 안이함이 성찰과 모색을 차단하고 있다. 고성장 시대의 성장 동력이 꺼져가고 고령화가 본격화하는데 정작 절실한 구조 개혁에 대해서는 침묵한 채 대선 정국은 온통 표심(票心) 낚기로 채워졌다. 칼날 같은 경쟁 환경과 긴장이 고조되는 정치 환경을 돌파하기 위해 스스로를 어떻게 단련할지에 대한 계획이 없으니 대선 주자들이 유권자들의 눈물을 닦아주겠다며 살갑게 굴수록 더 불안하다.

구조 개혁에 왕도(王道)는 없다. 노동시장과 상품·서비스 시장의 경직성을 완화하여 재능과 자본이 움직이는 걸 돕고 경쟁 장벽을 없애는 것이 최우선이다. 다음은 인적 자본과 기술 기반에 투자하고 사회 안전망을 강화하는 것이다. 경제의 적응력이 유연함에서 나오는 이상 복지와 경제정책은 약자를 보호하되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을지라도 구조조정을 촉진하는 방향이어야 한다. 구조 개혁 구상이 없는 복지 확대 약속이나 고용 규제를 강화해 경직성을 심화시켜 잘살 수 있다는 공약은 무책임보다 무지에 가깝다. 나라는 변방을 벗어난 지 오래인데, 대선 후보들은 세계와 격리돼 있는 것이다.

오래도록 한반도는 대륙에 달린 작은 땅덩어리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돌아서 눈을 들면 반도는 대양의 시작이며 대륙의 입구이다. 우리 국민은 이미 멀리 바라볼 능력을 갖추었으니 이에 걸맞은 지도자가 선출되길 바라마지 않는다. 혹여 그렇지 않다면 더 나은 내일을 향해 지도자를 인도하는 국민이 되는 수밖에 없다.

안철수현상은 결국 미래현상

미래학자들은 한국의 안철수현상은 결국 미래현상이라고 한다. 철통같이 변할 것 같지 않았던 한국사회에도 미래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며, 주권이 진정 국민에게 돌아가고 있으며 똑똑한 국민들은 자신들의 뜻을 성취할 수있는 유일한 시기가 대통령선거시절 이라는 점을 알게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안철수가 의원 축소 의견을 내자 모든 사람들이 대환영하게되고 안철수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미래학자들이 가장 무섭게 쳐다보고 있는 현상이 한국의 안철수 현상이다. 미래사회에 신직접민주주의가 나타나며 정치인들이 소멸하는 미래현상이 그렇게 빨리 한국에서 나타날 줄은 몰랐다는 것이다. 안철수라는 한 사람이 혜성처럼 나타나 미래사회 변화를 예상보다 빨리 앞당기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미래예측처럼 SNS, 인터넷등이 정치풍향을 바꾸는 것을 한국에서 보고 있다는 것이다.

 

미래석학 제롬 글렌 조언, 문재인 후보가 안철수에 줘야하는 카드는?

 

방한중인 제롬 글렌 미래석학이 문재인후보가 후보직을 양보한 안철수 전후보에게 줘야하는 카드를 조언하였다. 제롬 글렌박사는 세계미래의회 의장, 세계미래연구협의회 회장, 유엔미래포럼(밀레니엄 프로젝트)회장등의 직책을 맡고있다.

민주주의 역사 200여 년간 무수한 나라에서 무수한 후보들이 막판에 단일화를 하였다. 대한민국의 문재인 안철수 후보의 단일화가 유일한 단일화가 아니다. 수많은 나라에서 단일화후보가 뽑히고 양보한 후보에게는 주어지는 일거리가 한 가지 있다. 양보한 후보가 임기동안 너무 큰 현실의 의사결정을 하다가는 낙마, 사망하기 마련이므로 현실과 좀 거리를 둔 미래위원장의 자리를 주는 곳이 유럽 쪽이다. 4-5년간 살아 남아야 다음 번 대권에 나설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도 현실의 의사결정과 좀 거리가 멀어서 살아남을 수 있는 부통령자리를 준다. 힐러리 클린턴처럼 국무장관직을 받은 경우는 좀 특별한데 힐러리의 경우는 이미 남편과 함께 정권을 쥐어보았기 때문에 상처받을 이유도 없고 현실정치인으로 과감하게 싸울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중적인 이미지로 현실정치에 경력이 없는 우리나라 안철수 후보 같은 경우에는 유럽식 특히 핀란드 미래위원장처럼 대권후보로서 다음번 정권의 전략을 짜는 미래를 관장하도록 한다.

그것보다 우선 문재인 후보는 가장 먼저 “한국정치 역사상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많은 것을 바꾼 개인은 안철수 후보”였음을 상기시키고 인정해야한다고 방한 중인 제롬 글렌 미래의회의장이 말한다. 안철수의 그런 능력을 다음 정부에서도 국민들을 위해 지속해줘야한다는 정중한 요청과 ‘안철수의 컴백 명분’을 줘야한다. 국민들은 정치에 대한 염증이 극에 달했지만 자신 한명의 목소리가 들릴지 알지 못해 침묵했었다. 그런데 용감한 한 개인이 나타나 정치혁신, 새 정치를 해야 한다고 외치자 국민들이 눈물로 감동하며 그를 따랐다.

문재인 후보는 새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열망을 정책의 최우선순위로 놓고 국민들의 목소리를 듣겠다고 해야 하며, 이러한 국민들의 목소리를 한데 모으고 새 정치 희망을 불붙인 사람이 바로 안철수였다는 사실을 명기하고 또 명기해야 한다. 그리고 모든 공약집을 다시 써야한다. 새정치와 정치혁신을 맨 위로 올려야함은 너무나 당연하다.

문재인 후보는 정말 정중하게 국민들의 여망을 이어갈 수 있도록 안철수 후보를 모셔와야하는데, 그가 스스로 받은 직책은 백의종군이다. 하지만, 백의종군으로 이룰 새 정치, 정치혁신보다는 그래도 현실정치와는 좀 떨어져서 상처받지 않는 직책인 다음 정부의 미래위원장을 하면서, 5년간 자신이 이끌 정권의 청사진을 짤 수 있도록 도와줘야한다. 

정치혁신을 성공한 나라들을 쭉 돌아보는 월드 브레인 투어를 짜 줘야한다. 실리콘벨리를 비롯하여 싱귤래리티대학, edX 등 전 세계 교육의 미래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미래사회변화를 실제로 눈으로 경험하고 와서 미래전략을 짜도록 ‘미래위원장’자리를 마련해 줘야한다. 미래위원장직 수행하면서 자신이 하고 싶은 것들을 모두 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핀란드 미래상임위원장은 다음번 대권후보로서 현실에 직접관여하면 상처받아 낙마할 수 있으므로 미래전략위원장직을 수행한다. 국무총리직은 상처받고 낙마할 수 있기 때문에 절대 받지 않는다. 현실정치나 직책은 책임감이 따르므로 5년간 생존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그도 그것을 알고 안철수도 백의종군을 택한 것이다.

미래위원장을 하면서 슬로모션 캠페인(Slow Motion Campaign)을 할 수 있다. 미래위원장으로서 5년 후를 대비하는 슬로모션 캠페인을 위해서는 자신의 캠프 구성원들을 모우고 그 위에 더 많은 한국의 브레인 모우기 (Brain of Korea) 전략을 수립해야한다. “Brain of Korea” 를 위해서는 초기 해외 각국을 도는 정책투어가 필요하다. 전 세계 모든 좋은 정책 및 전략, 기술을 배우기 위한 스터디투어를 통해 최상의 현장방문을 통한 모든 장점 중요한 정책을 한국화(koreanize)하는 작업을 주도할 수 있다. 세계 최고 브레인을 모우고 네트워크 하여 한국의 다음 20년간 먹거리 성장동력 찾는 행보를 지속하는 것이다. 미국의 실리콘벨리, 싱귤레리티대학, 애플, 구글, planatary skin institute, edX 등 MIT 하버드 버클리대 방문하는 것도 방법이다.

미래위원장으로 또는 미래 대사(Ambassador of Future)로 임명받아 전 세계 미래예측전문가들과 네트워크, 한국의 먹거리 진단과 한국의 미래전략을 수립할 수 있다. 한 예로 클린튼은 다음번 정권을 알 고어부통령에게 맡기기 위해 고어에게 5개국 즉 중국 EU, 러시아, 일본 등의 비밀네트워크, 주요 인맥 만들기 권한을 부여하였다. 알 고어가 외교정책수행(Full-time Bilateral Relationship)및 경력을 쌓도록 전권을 행사하도록 하였고 그들 사이에 무슨 대화가 오갔는지 전혀 간섭하지 않았다. 알 고어는 그 당시에 사귄 각국의 주요 인사들과 지금도 진한 친분 관계를 맺고 있다고 한다.

박근혜후보 측에서도 이제는 국민들의 여망이 새정치임을 확인하였으므로, 새정치를 위해서 100%통합 정부에서는 무엇부터 하겠다는 약속을 국민들을 향해 해 주어야한다. 100% 통합이 되어 새 정권이 들어서면 지금은 힘을 보탰지만 그래도 국민들의 눈에 낡은 정치로 보이는 분들에게는 현실과 조금 떨어진 “원로정책자문단”으로 충분히 존경을 표하는 자리로 모시면서, 그 많은 경험을 통해 미래를 위한 지혜를 모으는 역할을 주겠다고 국민들에게 약속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