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Archives: 법이론

개헌보다 법률적 개선을, 남재희

[특별기고] 개헌보다 법률적 개선을 / 남재희

등록 : 2013.06.13 19:02수정 : 2013.06.13 22:19

나는 헌법을 개정하는 제도 개선 논
의에 앞서 아주 용이한 법률 개정에
의한 제도 개선을 생각하는 것이다.
하나는 대통령선거에서 결선투표제
의 도입이고, 둘은 국회의원 정수의
점차적 증원과 비례대표의 확대이다.

다시 개헌 논의가 철을 맞은 듯 고개를 들고 있다. 국회에 연구위를 두는 일을 놓고서 방향은 정해졌으나 방법을 놓고 얼마간의 시비가 있다는 보도였다. 18대 국회 때도 의장이 국회 안에 연구위를 거창하게 설치하여 외국도 다니고 법석이었는데, 그러그러한 복수 안을 내는 데 그쳤다. 태산명동까지는 안 갔으나 서일필도 못 되었다. 19대에서도 외유나 즐기는 그러한 낭비를 되풀이하려는가.

개헌 논의는 항상 있어 왔다. 어느 쪽에서는 정국을 흔드는 정치공세로 불을 지르기도 하고, 다른 쪽에서는 별로 달리 할 말이 없으니 그것도 정치 의제라고 심심파적으로 제기하기도 한다. 곧 정치적 상상력이 부족할 때 편리하게 들고나오는 이슈이기도 하다.

개헌 문제는 언제 제기해도 있을 수 있는 일이고, 또한 그럴듯한 수준의 명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개헌의 둑이 일단 무너지면 심한 격류가 분출할 것은 틀림없고, 온갖 주장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정국이 소용돌이에 말려들 것이 예상된다. 그래서 개헌을 우리 정치의 블랙홀이라고 표현하는 사람도 있다.

개헌 논의를 지켜보면서 우선 떠오르는 생각은 “재주 없는 사람, 연장 탓한다”는 예로부터의 우리나라 속담이다. 그런 사람들은 대개 헌법에 문제가 있어 우리 정치가 잘못되고 있는 양 이야기한다. 글쎄, 그럴까. 혹시 헌법에 문제가 있다면 정치인들이 그들의 정치력으로 극복할 수 있는 영역이 있다고 본다. 우선 정치관행의 현명한 축적으로 해결할 수 있고, 법률의 개정 차원에서 길을 틀 수 있으며, 개헌은 마지막 수단으로 남는다.

내각책임제 개헌에 열을 올리던 사람들은 “미국의 대통령제는 미국을 벗어나면 ‘죽음의 키스’를 맞는다”는 구절을 내걸었다. 대개가 독재화 경향을 갖는다는 이야기다. 나도 솔깃했다. 그러나 해방 후 우리 정치는 장면 내각 1년 미만 말고는 대통령제를 해온 전통이 있고, 그 경험의 축적이 있다. 먼 장래에는 내각제로 전환한다 하더라도(긴 설명이 필요하겠지만 선진국들의 대세인 듯하다), 가까운 장래에는 대통령 중심제를 계속하는 게 현명할 것이라는 경험론의 입장을 따르게 되었다. 지금 내각제로 바꾸어 정치 연습을 하기에는 당면한 과제가 너무나 많다.

현실적으로 제시되고 있는 개헌의 방향은 대통령을 4년 중임으로 하고, 대통령의 권한을 일부 줄여 국회의 권한을 강화한다는(예를 들어 감사원의 국회 이관) 방향인 것 같다. 박근혜 대통령도 4년 중임제 찬성을 밝힌 바 있다.

대충 납득할 수 있을 듯도 하다. 그러나 일부 국민들 사이에서는 그동안 중임했으면 싶었던 대통령이 별로 없었던 상황에서 이제 새삼 중임을 시켜, 아픈 지난날의 헌정사를 다시금 상기시킬 필요가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생각을 할 것이다. 노태우씨부터 이명박씨까지를 돌이켜 보라. 별로다.

그리고 개헌의 봇물이 한번 터지면 별의별 주장들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18대 국회 시절에는 경제민주화 조항인 제119조 2항의 삭제를 벼르고 벼른 쪽이 있었다. 필사적으로 그런 논리를 편 경제학자들을 생생히 기억한다. 여러 학설들이 동원되었다. 문제는 한국 사회의 현실과 요청에 맞느냐 하는 것이었다. 만약에 그때 개헌이 되었다면 마지막 단계에서 어물쩍 그 조항이 삭제되었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그만큼 그 공작은 집요했다. 그 후 시대 상황의 압력으로 경제민주화는 여야를 막론하고 당대의 트렌드로 자리잡았지만. 그러한 시대적 트렌드 변화를 나는 ‘북진통일’에서 ‘평화통일’로의 전환에 버금가는, 대단한 물줄기의 변화라고 생각한다.

나는 헌법을 개정하는 제도 개선 논의에 앞서 아주 용이한 법률의 개정에 의한 제도 개선을 생각하는 것이다. 하나는 대통령선거에서 결선투표제의 도입이고, 둘은 국회의원 정수의 점차적 증원과 비례대표의 확대이다. 모두 이제까지 제기되어 온 정치의제이다.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결선투표제는 프랑스의 경우다. 그밖에 얼마간의 나라에도 있다. 1차 투표에서 과반을 획득하는 후보가 있으면(혹은 40% 이상으로 할 수도 있다), 그것으로 끝이 나고, 없으면 2차 투표를 하는 것이다. 그 경우 2차 투표에 앞서 여러 정당들 간에 연합정치가 작동하여 2차 투표에서는 과반의 후보가 탄생하게 된다. 결선투표는 국민 과반수라는 다수를 대표하는 대통령을 갖기 위한 노력이다. 이제까지 가끔 보아온 3분의 1 남짓을 대표하는 대통령은 곤란하지 않은가. 2차 투표를 하는 과정에서 각 당의 후보들이 정책 협상과 내각 구성 등 타협을 하여 국민의 다수의견을 가능한 한 집약하는 과정을 밟게 된다.

그 연합정치 협상은 내각책임제에서는 거의 필수적인 절차다. 그리고 우리 정치인들은 그러한 협상에 경험이 태부족이고 그러한 기술을 발전시키지 못하였다. 따라서 2차 투표에 앞선 연합정치의 협상 등은 장래에 실시할 내각책임제를 위해서도 아주 유익한 정치훈련이 될 줄 안다. 복지국가의 설계에 있어서 유럽모델을 말하는데, 이 연합정치가 정치에 있어서의 유럽모델이기도 하다.

결선투표제는 다당제를 가져온다고 반대한 쪽이 있다. 그러나 우리 국민은 야당만으로 대표되기엔 이미 훨씬 더 분화되고 있는데 그것을 굳이 양당만으로 가두려는 것은 억지이다. 다수파의 소수파에 대한 횡포라 할 수도 있다.

국회의원 정수의 점진적 증원과 비례대표제의 확대엔 얼마간 긴 설명이 필요하다. 지난번 대선에서 안철수 교수가 국회의원 정수의 대폭적인 축소를 들고나오고 그것이 정치 혐오증을 느끼는 많은 국민들의 암묵의 지지를 받은 것도 사실이어서 더욱 그렇다. (이번에 국회의원 정수 증원과 비례대표 확대, 결선투표제 등을 주장하는 최장집 교수의 영입으로 상황은 달라진 것 같다. 혹시 박근혜-김종인씨 부조화 비슷한 안철수-최장집씨 불일치가 되풀이될지도 모를 일이지만….)

결론을 먼저 말하면 전세계의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가 500명쯤(상하원의 경우라면 합쳐서)까지 갈 수 있다는 이야기다. 국민들은 제헌국회 이래 오랫동안 국회의원을 ‘10만 선량’이라고 말해오지 않았던가. 일거에 그렇게 늘려서는 거부반응이 심할 것이므로, 가령 50명쯤 우선 늘릴 수 있다. 그리고 늘린 몫은 모두 비례대표로 돌려 소수자들의 의회 진출을 돕는 것이다. 여성, 노동자, 농민, 중소상공인들이 있다. 그리고 국회의원의 특권을 대폭 줄이는 것이다. 국회의원 정수 문제와 특권 문제는 다른 차원이다. 우리 국회의원들이 누리는 금전적 수혜와 다른 특권이 너무 지나친 것 같다. 어느 외국에서는 의원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도 한다는 보도를 본 적이 있는데 상징적 이야기다. 국회의원의 수를 줄이면 국회의원이 오히려 더욱 특권화된다는 역설도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양적 민주화와 질적 민주화를 생각할 수 있다. 미국에서는 흑인 등 소수파에게 투표권을 철저히 보장하는 방향을 양적 혁명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비례대표의 확대를 통해 여성, 노동자, 농민, 중소상공업자 등의 국회 진출을 도와 다양한 정치의견들이 꽃피게 하는 것은 질적 혁명이라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곧, 질적 민주화의 방향이다.

거창하게 헌법의 개정 절차를 밟을 생각을 하기 전에 간단하게 법률의 개정을 통해 우리의 정치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하였으면 싶은 것이다.

극히 상식적인 이야기이다. 상식적이어야 현실정치적으로 될 수 있다. 대기업을 대변하는 대정당은 있는데 국민의 압도적 다수인 노동자를 대표하는 정당이 원내교섭단체도 구성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그들의 얼마간 비현실적인 정치노선에도 문제가 있겠지만, 그보다는 대표의 원리에 맞지 않는 제도에도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겠는가. 비례는 대표의 원리요(proportional representation), 다수는 결정의 원리다(majority rule).

남재희 언론인

법철학원론-아르투어 카우프만

 법철학 원론  

                                                       아르투어 카우프만 지음
許   一   泰   옮김
역자의 개정판 서문
역자가 개정판을 내는 데에는 일부를 原著者의 개정판(제5판)으로 번역하였기 때문에, 종래의 내용 중 일부를 수정·보완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표현방식과 맞춤법이 틀린 곳이 적지 않아 이의 수정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이 책은 비록 작은 책자에 불과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법이라고 하는 것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실현하는데 더할 나위 없는 큰 역할을 한다고 역자는 믿고 싶다. 이 책으
로 대학에서 강의를 하면서 느낀 것은 요즘의 법과대학생들도 법의 기능주의적 관점보다는 진정한 법, 법다운 법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달성할 수 있는지
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 책이 학생들뿐만 아니라, 법을 실제로 적용하는 실무가 및 법학을 가르치신 분들에게도 다소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이 개정판을 내는데 큰 도움을 준 손기식 고등법원 부장판사님과 형사판례연구회를 이끌어 준 정진규 검사장님 그리고 이길안 세종출판사 사장님 및 이동균 상무님
에게도 감사드린다. 또한 이진국 박사, 박선아, 허구 동아대 조교에게도 역시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다.

2000년 2월 10일
동아대학교 법과대학 403연구실에서  허일태 드림

역자의 서문

법다운 법을 찾기 위해서 우리는 무조건 아무 길이나 찾아 나설 수 없다. 현명한 방법 중의 하나는 지금까지 우리의 선현들의 지혜를 참고삼아 시행착오를 가능한 줄
이면서 올바른 길로 정의로운 법을 모색해 나아가야 한다. 바로 그러한 길을 문제의식을 갖고 우리를 바르게 인도하는 글이 다름 아닌 아르투어 카우프만(Arthur
Kaufmann)의 “법철학의 문제사”(Problemgeschichte der Rechtsphilosophie)가 아닌가 싶다. 역자는 지난 25년간 상당수의 법학서적들을 읽어오면서, 법률초학자들이 꼭
읽어야 할 것으로 굳이 추천할만한 논문을 지적하라면, 단연코 바로 위의 글을 권하고 싶다. 이 글은 이미 역자에 의해 동아법학 제10호(1990)에 게재된 바 있다.
그간 임웅 교수님을 비롯하여 상당수 교수님들의 단행본 출판의 권유도 있고 해서 카우프만의 또 다른 글인 “법철학의 기초개념” (Rechtsphilosophie, Rechtstheorie
und Rechtsdogmatik: 이 글 역시 동아법학 9호에 실려 있음)을 포함하여 새롭게 가다듬어 “법철학 입문”이란 이름으로 동아대학교 법과대학의 강의용으로 출판하게 되
었다. 독자 여러분들에게 이 번역 글이 다소나마 법학이란 학문에 기여했으면 한다.
끝으로 이 번역 글을 기꺼이 출판해 주신 세종출판사 이길안 사장님 그리고 편집에 힘써주신 조길재 실장님과 차해경 선생에게 고마움을 적고 싶다.

1996년 1월 17일
동아대학교 법과대학 제403연구실에서 허일태 드림
제Ⅰ장  법철학의 기초
(법철학, 법이론 및 법도그마틱)
제1절 法哲學과 법도그마틱 10
제2절 法哲學의 形式的 客體 14
제3절 法哲學의 올바른 물음에 관하여 18
제4절 科學主義와 哲學主義 그리고 應用主義의 誤謬 23
제5절 法哲學과 法理論 26
제6절 哲學과 法哲學의 根源 31
1. 存在論 32
2. 認識論 34
3. 實存哲學 38
4. 다양한 傾向의 綜合 41
제7절 現代 哲學課題 및 法哲學의 任務 43
주요 참고 문헌 51
제Ⅱ장  法哲學의 問題史
제1절 서  론 58
제2절 법철학의 역사적 전개 61
Ⅰ. 고대의 법철학 62
1. 선사시대 62
2. 소크라테스 이전 64
3. 소피스트의 철학 67
4. 아테네의 철학(attische Philosophie) 71
5. 스토아 학파 83
Ⅱ. 중세의 법철학 88
1. 고대로부터 중세로의 전환 88
2. 아우구스티누스 88
3. 토마스 아퀴나스 92
4. 스콜라 철학의 말기 98
Ⅲ. 근대의 법철학 103
1. 새로운 철학과 학문의 이해 103
2. 근대의 자연법 106
3. 고전적 자연법의 종말 118
1) 역사법학파 118
2) 칸트의 비판철학 120
3) 헤겔의 관념론적 철학 134
4) 유물론적 역사학파 141
5) 헤겔 이후의 시대 148
4. 법학상의 실증주의 151
5. 실증주의의 붕괴 163
6. 법철학과 국가사회주의(나치스) 166
Ⅳ. 자연법과 실증주의를 넘어서 169
1. 1945년 이후 자연법적 사상의 재생 169
2. 구스타프 라드부르흐 174
3. 법인류학 188
4. 그 밖의 흐름 193
제3절 근대법학 방법론의 역사적 발전 197
Ⅰ. 사비니(Friedrich Carl von Savigny) 198
Ⅱ. 개념법학 205
Ⅲ. 경험적 법실증주의 211
1. 비어링 212
2. 예링 214
3. 이익법학 215
4. 자유법운동 217
5. 법사회학 221
Ⅳ. 논리적 법실증주의, 특히 “순수법학” 224
1. 한스 켈젠 224
2. 분석법학, 논리학, Topik, 수사학 231
Ⅴ. 법해석학 235
1. 개방체계 235
2. 주관-객관-도식의 극복 237
3. 법실현의 해석학적 절차 247
주요 참고 문헌 253
제Ⅰ장  법철학의 기초*(법철학, 법이론 및 법도그마틱)
Arthur Kaufmann** 지음   허일태 옮김

제1절 法哲學과 법도그마틱

법철학은 철학의 한 분야이지 법학의 한 분야에 속한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一般)哲學이 類에 해당한다면, 법철학은 그것의 특별한 하나의 種에 불과하다고 할 수 없
다. 철학이란 항상 그 어떤 형식에서도 인간의 現存在의 根本問題, 즉 칼 야스퍼스(Karl Jaspers)가 “包括的인 것”으로 이름붙인 것을 문제삼는다. 말하자면 철학에서 문
제되는 것은 “일반적인 것”이다.
따라서 법철학은 철학의 특수한 분야에 속하기 때문에 철학과 구별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철학적인 수법에 기해서 反省하고, 論議하고, 가능하다면 答하려는 법률학
상의 원칙문제, 근본문제이기 때문에 철학의 다른 분야들과 구별된다. 다소 무리한 표현이긴 하지만, 법철학에는 法律家가 묻고, 철학자가 대답한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훌륭한 법철학자라면 兩 分野, 즉 법학과 철학에 정통하여야 한다. 또한 “순수한 철학자”의 법철학과 “순수한 법률가”의 그것과에 어느 쪽이 더 좋지 못한가가 이미 빈
번히 문제되었지만, 그 문제에서는 양쪽 다같이 좋지 못하다고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법철학은 법학이 아니며, 더구나 법도그마도 아니다. 칸트에 의하면 도그마틱(Dogmatik)이란 “純粹理性 그 自體의 능력에 대한 先行的 批判을 거치지 않는 純粹
理性의 독단적 절차”라고 한다. 도그마론자는 음미함이없이 진실하다고 여기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즉 “주어져 있는 것”(exdatis)에서 思考한다. 법도그마론자는 법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법의 認識은 어떠한 사정 아래서, 어떠한 범위에서 그리고 어떠한 방법으로 존재하는가를 묻지 않는다. 그것은 필연적으로 법도그마틱이 무비판적으로 행하여진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법도그마틱이 비판적으로 행하여지는 경우, 예컨대 法規範을 비판
적으로 검토하는 경우에도, 법도그마틱은 항상 體系內在的으로 論證하는 것이며, 現行體系의 시비를 문제삼지 않는다. 법도그마틱의 영역 안에서 이런 태도는 대체로 정당하다. 이런 태도가 언제 위험한 것으로 되느냐 하면, 법철학과 법이론이라고 하는 도그마적이 아닌 思考樣式을 불필요하고, “순이론적”이며, 심지어 비학문적이라 하여 거부하는 경우이다.
여기서 물론 철학, 즉 법철학이 철저하게 無前提로 행하여 질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파스칼(Pascal)이 “Port Royal 論理學”(1662)에서 -도달할 수 없는- “완벽한 방법”이라고 부른 것에 비추어 보면 쉽게 납득할 수 있다: 미리 一義的으로 定義되지 않는 槪念은 결코 사용되지 못하며, 그 眞實을 證明하지 못하고는 어떠한 主張을 세워서도 안 된다. 이와 같은 요청을 만족시키는 것이 不可能하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깊이 논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이들 두 가지 요청은 적어도 無限遡及으로 빠지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철학은 적어도 -도그마틱과 달라서- 각종 학문과 체계의 根本問題와 根本前提의 (最近 자주 사용되는 말로 말하면) “背後를 캐묻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철학은 -환언하면- 體系超越的 입장을 지녀야만 한다. 이것은 백지상태(tabula rasa)의 입장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바로 최근의 解釋學(Hermeneutik)은 “先行判斷” 또는 “先行理解”가 모든 言語學習에 있어서 곧바로 理解의 조건인 것을 보여준다(법학도 물론 言語學問에 포함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본질적으로 言語文章에 관계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철학은 그와 같은 先行的 判斷에 그쳐서는 안되고, 이러한 판단은 “더욱 더 깊이 파고 들어감으로써 무엇이 그 의미에 합치되는가 바로 그것을 통하여 늘 再檢討”되지 않으면 안 된다. 철학에서 는 문제되지 않는 것은 없고 -그 점은 법철학에 관해서도 여전히 타당하다- 自己의 本質에 대해서까지도 예외가 아니다. 원리상 철학자는 어떤 일에 관해서도 문제없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한에서 철학은 個別學問보다도 사실상 근본적 문제를 다룬다고 단언해도 좋다.
그렇지만 철학이 도그마적 개별학문보다도 “중요한 것”을 문제로 삼고있다고 추론되지 않는다. 예컨대 의학상 癌의 연구가 正法(richtiges Recht)의 식별기준에 관한 법철학상의 연구보다 중요하지 않다고 단언하지 못하는 것은 확실하다. 철학과 도그마틱과의 관계는 많으냐 적느냐의 관계, 혹은 어느 것이 중요한가 아닌가의 관계가 아니라, 오히려 다른 存在의 관계인 것이다. 그 때문에 그들 사이에는 互換性이 없다.

제2절 法哲學의 形式的 客體
법철학과 법도그마틱이 달리 존재한다는 것은 이미 말한 바와 같이 형식적 객체의 差異에서 나타난다. 학문론에서 실질적 객체는 어떤 학문이 다루는 구체적 대상의 전체라고 생각된다. 이에 반하여 형식적 객체는, 어떤 학문이 구체적 대상의 전체를 연구하는 특유한 관점이다(때로는 “硏究客體”라고도 칭한다). 각 학문의 특징을 규정짓는 것은 형식적 객체에 있다. 이에 反하여 실질적 객체는 많은 학문에 공통되는 것도 있다. 예컨대 “법”은 모든 법률학분야에 공통되는 실질적 객체이다. 私法, 國家法, 行政法, 刑法 등처럼 각 분야의 차이는 그 각각의 법의 형식적 객체에 있다. 최근에 명백히 관찰할 수 있는 바와 같이, 실질적 객체는 보다 많은 형식적 객체로 끊임없이 분화되어(예컨대 범죄학이 독자의 분야로서 형법학
과 병존하고 있다) 학문의 전문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쉼없는 분화과정은 필연적으로 자연히 한정된 “전문영역”에 시야를 좁히고 마는 위험을 초래하여, 그 결과 상호관련적이며, 전체적, 기초적인 것을 보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철학이 더욱 더 중요하게 된 것이다.
개별학문의 본질이 이 명칭에서 나타난 것처럼 개별학문은 항상 개별적인 것에 눈을 돌리지, 전체로서의 존재적인 것을 보지 않는다는 점에서 철학의 본질은 형식적 객체의 總體性에 있다. 철학에 문제되는 것은 주지한 바와 같이 개별적인 것이 아니고, 또한 개별적인 것의 집합도 아니며, 전체적이거나 상호관련적, 기본적인 것에 관한 것이다. 이 점이 철학에 있어서 가장 어려운 문제의 하나이다.
개별적 학문은 일정한 형식적 관점, 즉 형식적 客體 아래에서 탐구하는 일정한 실질적 객체, 즉 구체적 存在的인 것에 구속되는 특질이 있다. 철학의 경우에는 이미 이와 같은 형식인 실질적 객체와 형식적 객체에 二重으로 구속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철학은 일정한 실질적 객체를 기초로 하고 있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한결같이 형식적 객체인 “存在一般”에 구속되어 있다. 한편으로는 이와 같이 일정한 실질적 객체를 결여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
에서는 형식적 객체의 普遍性이 哲學的 認識과 哲學的 方法上 많은 문제점을 낳게 한다. 철학도 항상 경험가능한 개별적인 것(예컨대 특정한 법규범)에 출발점을 둘 필요가 있지만, 그래도 각 개별적인 이것저것이 그 本來의 對象은 아니고, 개별적인 것은 항상 뭔가 그 배후에 잠재하고 있는 “超越的인 것”(예컨대 법규범이란 “일반적으로”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철학이 일정한 실질적 객체를 갖고 있지는 않지만, 보편적인 형식적 객체를 갖고 있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철학의 일정한 思辨的 特徵을 나타낸다. 철학자는 전체를 인식할 수 있어야 하지만, 그러나 인간의 오성은 항상 개별적인 것에만 향하는 성질을 갖고 있다. 우리들 중 누구라도 결코 存在全體 또는 法全體를 직접 일괄하여 파악하지는 못한다. 따라서 철학은 그 대상을 즉각 또는 일괄하여(uno actu) 파악할 수 없고, 오히려 개별적인
것에서 그 출발점을 두어야만 한다: 물론 이것은 모든 철학적 연구목표인 전체를 끊임없이 철두철미하게 살피는데 두어야 한다. 이것은 야스퍼스의 말로 표현하면 다음
과 같다. “학문으로서의 철학은 전체에 관한 것이지만, 그럼에도 그것은 그때마다 개별적인 것에 관해서만 표현된다.
個別學問에서는 個別的인 것이 문제가 되므로 원칙적으로 書齋나 실험실에서 외로이 고독하게 홀로 연구하는 사람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철학에서는 이와 같은 것
은 불가능하다. 인간의 인식은 단지 多數의 부분으로부터 전체를 다소나마 살필 수 있는 것이다. 그 때문에 철학의 목표가 제대로 달성되려면, 철학하는 다수의 사람이 협동
하여 노력하여야만 가능하다. 이와 같은 이유에서 의사소통, 즉 “정보교환을 통한 공동체”가 철학에서는 특히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철학의 경우 相互作用行爲, 相互
主觀性, 收斂, 對話는 개별학문 보다도 몇 배로 중요성을 갖는다. 立場이 多樣하고 相異한 學說이 複數로 존재한다는 것을 바르게 이해한다면, 그런 다양성은 철학에 있어서 障碍나 難關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철학이 완전히 전개되기 위한 필요조건이 된다.
이것으로부터 (법)철학적 상대주의의 문제에도 빛이 내린다. 다양한 철학자의 주장들을 각자 별개로 고찰하며, 마치 각자의 주장 그 자체만으로 전체를 관철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者는 당연히 불치의 相對主義가 지배하게 된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 몇백 몇천 년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의 協同의 성과인 철학을 이해하고, 擴散 속에서 收斂을 볼 수 있는 者만이 相對主義에서 빠져 나오게 된다.

제3절 법철학상의 올바른 물음에 관하여
(도그마적) 개별학문에서 물음의 방향은 그 대상에 따라 규정된다. 왜냐하면 개별학문은 원래 개별적인 것에만 指向하고 있어, 문제의 제기는 직접적인 것과 결합하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법률가에게 어떠한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가 하는 것은 그때마다 형식적 객체에서 바로 밝혀지게 된다. 예컨대 문제가 不法行爲에 基한 損害賠償이라면, 독일민법 第823條 以下(한국민법 제750조 이하)에 해당하는가가 문제되는 것은 自明하다.
철학, 즉 법철학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그 대상인 형식적 객체는 存在全體 내지 法의 全體이다. 그러나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우리들의 思考는 즉각 그리고 一括하여 存在全體를 捕捉할 수 없고, 개별적인 것, 즉 全體의 一部分에서 비로소 우리들의 思考가 시작되어지기 때문에, 철학에 있어서 문제제기의 방법은 철학의 대상으로부터 결정될 수 없다. 전체로서의 존재란 무엇인가? 또는 전체로서의 법이란 무엇인가라고 물론 물을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는 철학 내지 법철학은 방법론적으로 그것 以上 더 나아가지를 못한다. 더 세분하여, 예컨대 法의 目的과 目標, 法實證主義의 意義, 법과 道德과의 관계, 법규범의 機能, 법의 歷史性의 動機, 存在와 當爲의 “方法二元論”, “事物의 本性”이라는 思考形式과 같은 문제들에
관하여 묻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이와 같은 多數의 細目을 통해서만이 -近似的 방법으로- 전체를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무엇을 통하여 哲學上의 올바른 문제가 제기되는가? 즉 올바른 물음은 무엇에 의해서 결정되는가? 철학에서는 일정한 方向으로 물을 필요성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므로, 이와 같은 물음에 답한다는 것은 지극히 어렵다.
그러나 우리가 단지 올바르게 묻고 답한다면, 어떠한 부분적인 문제로부터도 전체문제의 윤곽을 원칙적으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독일민법 제242조의 一般條項(信義誠實의 原則)이나 法人制度나 死刑 또는 責任을 둘러싸고 동일한 법철학적인 물음이 던져지고 있다. 더군다나 “우측 통행”처럼 기술적 규정까지도 “法規範 一般”의 意味, 本質을 둘러싼 법철학적 물음에 대한 해답을 주기 위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모든 철학은 최종적으로 항상 동일한 목표로부터 存在의 全體, 眞理의 全體, 법의 全體問題에 초점을 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철학적으로 제기된 물음의 數는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원칙적으로 한정되어 있는 개별학문과는 구별된다. 따라서 개별학문은 특정한 연구대상과의 관계에서 어느 쪽 하나의 목표에는 도달되는 것이지만, 철학에 있어서 그와 같은 것은 “사물의 본성”상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일정한 시대의 철학은 전체에 눈을 뜨는 것이 아니고, 항상 전체의 개별적 측면만을 보기 때문에, 그것은 저절로 다른 측면이 그것에 의해서 무시되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새로운 시대의 철학은 종래에 등한시되었던 그와 같은 측면을 시야에 넣고, 이것을 파악하는 임무가 부과되었다. 그리하여 철학은 최종적으로 항상 동일한 목표에 관계되어 있으면서도, 그들에는 역사, 즉 역사적 상황으로부터 항상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시킬 임무가 주어지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다음과 같다.
법에 있어서 합리적 또는 이념적인 동기는 17-18세기의 합리주의적, 관념론적, 자연법주의에 의해서 일면적으로 강조된 것이므로 필연적으로 역사법학파와 궁극적으로는
법실증주의 중에서 그 구제책을 찾아야 했다. 19세기의 법실증주의는 확실히 역사적 과제를 담당하였던 것이다.
법실증주의는 법의 실재적 측면, 그 實定性(Positivitat)을 다시 고려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러나 금세기에 들어와 극단적인 실증주의적 사고에 기하여 소름이 끼치는 법의 남용이 있게 되자, 법의 본질적, 내용적 식별기준 그리고 부당하게도 오랫동안 등한시된 정당성의 문제에 다시 눈을 돌리는 것이 우리들의 과제가 되었다. 이러한 예로부터도 우리는 철학자가 철저히 자기가 살고 있는 시대의 문제에 관심을 갖고 물음을 던진 것을 알 수 있다.
이상은 올바른 철학적 문제제기가 아주 영향이 큰 그리고 중대한 학문상의 책임을 수반하는 문제인 것을 명백하게 하여 주었다고 본다. 또한 특정의 철학은 그 문제제기에 의해서만 이해되어 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어느 철학자가 어떠한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그 문제에 접근하였는가를 파악하지 않고, 또한 특정의 사상가를 특정한 문제에 관심을 갖게 한 역사적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면, 그 철학자의 어떠한 철학적 사상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철학의 학설을 아는 것은 아직 철학 자체가 아니고, 하이데거(Heidegger)가 적절히 지적한 바와 같이 “기껏해야 철학이라는 학문에 지나지 않는다”.

제4절 科學主義와 哲學主義 그리고 應用主義의 誤謬
“純粹한 철학자”의 법철학이 “순수한 법률가”의 법철학과 마찬가지로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것은 이미 언급했었다. 우선 後者에 관해서 말한다면, 순수하게 법률학적으로만 추구하는 “법철학자”는 科學主義의 誤謬에 빠진다. 즉 (도그마적 個別)學問의 誇大評價, (法)學的 思考의 一面的 指向이라는 오류에 빠진다. 그와 같은 법철학자는 철학의 근거없이 그리고 대개 철학상의 지식도 없이 법철학상의 문제에 그리고 역시 법의 근본문제에 答하려 한다. 이와 같은 태도는 널리 퍼져있다. 이점에 관하여 야스퍼스는 다음과 같이 정확하게 꼬집고 있다. “철학상의 문제에 대해서 거의 모든 사람이 판단능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개별)학문에서는 학습, 교육, 방법이 이해를 하는 데의 전제조건이 된다는 것을 우리는 인정하면서도, 철학에 대해서는 아무 준비없이 참여하여 토론할 수 있다고 우리들은 생각한다”. 법률가의 경우에도 또한 같다. 거의 모든 법률가들은 法哲學의 문제에 관하여 설령 그 사람이 哲學에 몰두하는 일에 全無하더라도 판단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와 같은 法律學的
科學主義가 좀 더 확실해진 것은 今世紀에 들어와서 소위 一般法學, 요컨대 이 법률학적 과학주의에 의해서 “法哲學의 安樂死”가 되었던 때이었다. 이 때에는 법률 “專門家”가 철학한다는 일을 장악하고, 따라서 법철학을 “법률가의 철학”으로 개조하였던 것이다. 그와 같은 법률학적 近親相姦의 결말은 기껏해야 직관에 의해서 아마 들어맞을 지는 모르지만, 그러나 철학의 본분을 모르는 통속철학에 지나지 않는다. 통상 그것은 통속적 지식(Dilettantismus)에 지나지 않는다.
철학적으로 고무되어 지향하는 “법철학자”는 逆의 誤謬, 즉 哲學主義의 오류를 범한다. 그런 사람은 고유한 법의 문제, 즉 법학이 현재 여기서 철학에 제기하고 있는 그런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그러나 법철학자는 때로는 갖가지의 철학적 思考傾向을 법철학의 언어로 변화시키면 어떻게 되는가에 관해서 경탄할 정도로 깊은 함축성있는 연구를 제공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 때에 그는 특정한 史的 상황 안에서 전혀 제기되지 않았던 문제에 답하였고, 따라서 오늘날 여기서 전혀 물음의 가치가 없는, 즉 물을 가치조차도 없는 물음에 대답한 것이다.
그러므로 應用主義라는 만연된 오류에 대하여서도 강한 경고를 하여야만 한다. 그것(응용주의)은 법철학적 문제에 답하기 위한 철학적 학설을 無批判的으로 받아들인 오류이다. 그와 같이 하여 발생된 것이 법철학에서 잘 알려진 諸 學派이다. 예컨대 토마스주의, 칸트주의, 헤겔주의, 마르크스주의 등등이다. 우선 이들에 대하여 철학상의 학설(Aussagen)이 결코 數學上의 公式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간단히 받아들일 수 있는 완성된 解法 -완벽한 처방전- 이 결코 아니라는 점에서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오히려 이들 학설에서는 일정한 공간적, 시간적 입장에서 본질적인 것으로 보려고 하는 시각인 諸 觀點만이 문제가 된다.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철학을 흔히 기대에 못 미친다고 비난만을 하여 왔으나, 그것은 실제로 철학
을 사려없이 무비판적으로 취급하려는데 지나지 않는다.
철학자의 학설은 적극적으로 그 思考를 따라서 음미하고, 그리고 함께 사고하는 곳, 말하자면 스스로가 함께 철학하는 곳에서만이 그 학설은 나의 것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나의 것으로 한다는 것은 외면적으로 인계받은 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획득한 것을 자기의 행위 속으로 轉化해 버린다는 의미에서 攝取한다는 것은 훔치는 것이 아니다”.
더군다나 上述한 것에 의하면 學派의 형성은 철학의 본질에 어긋나는 것이다. 그와 같은 諸 學派는 확실히 많은 공적을 갖고 있으면서도, 조만간 그들과 다른 입장에 대하여 흉금을 털어놓을 수 없게 된다. 모든 절대화, 모든 취합하기 쉽고 정확한 공식 -예컨대 “命令은 命令이다”, 또는 “法은 正義이다”란 것- 그들 모두는 그 핵심에 不眞實과 硬直만 비호되고 있다. 단지 열려있는 것, 완성되지 못한 것, 물음이 계속되는 것, 그것들만이 생명력을 갖고 있다.

제5절 법철학과 법이론
지금까지 법철학과 법도그마틱을 언급하였다. 그러면 법이론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울리히 슈로트(Ulrich Schroth)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오늘날 법이론이란 개념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정형적으로 표현하기에는 어려운 것이다. 왜냐하면 법이론이란 개념이 논하여지고 있는 문제영역이 특히 잡다할 뿐만 아니라, 이 문제영역을 취급하는 유형과 방법도 너무나도 잡다하기 때문이다. 대략 다음과 같은 문제를 법이론의 문제로 본다. 法秩序의 개념과 본질이란 무엇인가? 法律과 法命題는 어떠한 기능을 하는가? 법질서와 각개 법률의 정통성은 어디서 도출될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합리적 법률과 판결이 획득될 수 있는가? 어느 정도 법률은 형식화가 가능한가? 현행법질서는 어느 정도 공정한가?”.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 그러한 것은 쉽지 않다. 왜냐하면 슈로트에 의해서 논하여진 문제 전체는 純粹한 법철학적 문제여서 사실에 있어 법철학과 법이론에는 어떠한 본질적 구별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법이론은 법철학과 다른 형식적 객체를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법이론의 경우에도 문제되는 것은 법의 근본문제이며, 법이론이 체계초월적 입장을 지니고, 또한 법이론적 사고도 초월적 도그마的 思考이다. “批判的”이란 오늘날 유행하고 있는 술어에도 차이는 없다. 비판은 항상 철학에 속한다. 따라서 그것은 철학에 관한 문제이다. 비판이란 ???????에서 유래한다. 이 말은 “구별한다”, “분리한다”라는 뜻으로, 즉 善으로부터 惡을, 眞으로부터 거짓을, 正에서 不正을 “분리한다”, “구별한다”라는 것이다. 그러나 물론 -희귀한 것은 아니지만- 善한 것, 진실한 것, 정당한 것을 파괴하는 잘못된 방향으로 향한 비판도 존재한다. 다만 그것은 법철학과 법이론의 구별과는 무관하다.
따라서 다음과 같이 다시 한번 묻게 된다. 만약 법철학이 없다면, 도대체 법이론은 무엇일까? 그것은 역사적으로만 설명될 수 있다. 시대가 지나감에 따라 학문의 광범위한 전문화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은 이미 지적되었다. 무언가 비슷한 것은 -본래 “專門化”라고 말하지 않더라도- 철학과 법철학의 영역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 “그리이스 철학의 시대에서 이미 철학의 결정적인 추세가 나타났다. 즉 그리이스철학이 열어 놓았던 시야 중에서 (개별)학문
이 형성되었다. 문화인류학으로서 심리학, 사회학 그리고 인류학의 自立性, 논리계산(Logistik) 및 의미론(Seman- tik)으로서의 논리학의 역할을 지적한 것만으로 충분하다”. 본래 모든 자연과학은 철학에 그 원천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법철학도 -필요한 수정을 가하면(mutatis mutandis)- 같은 상황이다. 법철학도 역시 세월이 지나가면서 한스 뤼펠(Hans Ryffel)의 말과 같이 다양한 영역으로 “이주하게 된다”. 예를 들면 칸트는 그가 쓴 “法學(Rechts- lehre)의 形而上學的 基礎”에서 物權法, 婚姻法, 親權法,國家法, 國際法 등등을 논하고 있다. 또한 헤겔의 “법철학”이란 작품에서는 예컨대 所有權, 契約, 不法, 責任, 家族, 國家에 관한 節이 보인다. 그리고 구스타프 라드부르흐(Gustav Radbruch) -최후의 “고전적” 법철학자- 에 있어서도 역시 그와 같은 章이 보인다. 예컨대 私法과 公法, 所有權, 婚姻法, 相續法, 刑法, 訴訟法, 교회법, 국제법 등의 章이 있다. 결국 모든 法律問題를 철학적으로 논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물권법, 상속법, 형법, 국제법 등이 별로 이렇다고 하는 것 없이 독립된 분야로 되었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학문의 영역의 점진적인 複雜化 때문에 점점 더 전체의 槪觀이 어렵게 된 시대의 추세 속에서 지난 20-30년간에 법철학 중의 일정한 주제를 분리하여 그 분리된 주제를 “법이론”이라는 標題 下에서 논하였다. 예컨대 法規範學, 法律言語의 理論, 法의 學問論, 法認識論, 法論證論, 法決定理論, 그리고 더 나아가 法學方法論, 意味論, 解釋學, 그 밖의 법학적 Topik, 立法論, 기타 등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예컨대 그것 이상으로 독립한 상속법, 형법, 국가법 및 법사회학의 경우와는 달리 “법이론”의 上述한 문제영역은 아직도 법철학에 속한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법이론을 법철학으로부터 구별을 가능케 하는 본질적 기준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까지 법철학에 관해서 언급한 것은 법이론에 있어서도 그 사정은 동
일하다.

제6절 哲學과 法哲學의 根源
철학 내지 법철학은 본질적으로 무엇이어야 하고 또한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 근원에 관해서 명백히 하여야만 한다. 이때에 그 (철학의) 이념에 의하면 철학은 “불변의 哲學”(philoaophia perennis) -영원히 하나됨- 임에도 불구하고, 역사의 법칙 아래에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확실히 합법칙성(Gesetzmaßigkeit)이 문제되지만, 이 경우는 결코 우연 또는 철학자들의 기분에 의해서 지배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야스퍼스는 철학에는 세 가지의 주된 根源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즉 놀라움, 의심, 비애적 충격이라는 것인데, 이것에 상응하여 철학에는 세 가지의 기본적 부문이 있다는 것이다. : 그것은 존재론, 인식론 및 실존 철학이 그것이다. 각 분야는 그에 상응한 세계에 대한 특유한 태도인 완전히 특수한 세계관을 갖는다. 그리고 각각의 세계관은 그들의 (좋은) 시절을 가졌다.

1. 存在論
존재론적이고 객관주의적 그리고 1차적으로 존재에 주목한 모든 철학은, 모든 驚異 중의 驚異에 대한 놀라움, 즉 존재하고 있는 것이지 無는 아니라는 것에 대한 놀라움에서 시작된다. 그것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토마스 아퀴나스, 괴테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들이 창조한 것이 아닌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에 대한 자연적인 놀라움이 지식욕을 생기게 하고, 의문을 제기하도록 재촉하였다. 왜냐하면 내가 놀란다는 것은 내가 무엇인가를 알지 못하고 있었던 것을 깨닫게 하기 때문이다. 내가 알고자 하는 것은 무언가 존재하고 있다는 데에 대한 이유, 즉 無는 아니다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데 있다. 그것은 존재론의 문제이다.
따라서 존재론은 존재에의 신뢰감에 근거한 철학이다. 이 철학은 존재하는 것은 우리들의 사고와는 독립하여 존재한다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존재론은 객관주의적 철학이다. 이 철학은 존재에 주목하고 있으며, 인식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그와 같은 존재에 대한 신뢰감에 근거하여 객관적 현실에 주목한 철학은 뚜렷한 구조를 갖고 확실한 기초 위에 서서 그리고 무엇보다 먼저 스스로에 대한 신뢰를 갖고 있는 시대에 있어서만 가능하다는
것은 당연하다. 따라서 정신적, 문화적으로 最全盛期에 있어서 존재론이 철학적 사고의 지배적인 경향으로 되어 있다. 고전시대의 성숙기에 아리스토텔레스의 경우, 최전성기 스콜라 철학에 있어서 토마스 아퀴나스의 경우, 독일 관념론의 극치에 있어서 헤겔의 경우가 바로 그것이다.
객관주의적 법철학도 놀라움에 그 출발점을 두고 있다. 존재가 질서와 형성에 관한 근본원천을 그 내부에 품고 있다는 것, 사물뿐만 아니라 관계에도 “自然的” 질서가 존재한다는 것, 즉 인간이 사회에서 공동생활하는 곳이면 어디서나 처음부터 법이 존재한다는 것에 대한 놀라움에서 출발한다. 인간의 예절(Gesittung)에는 존재 그 자체에 내재하는 법칙이 있다는 점에 대하여 놀라움을 느끼지 못하는 자는 자연법의 문제를 결코 이해할 수 없다.
법을 인간의 피조물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는 자는 객관적으로 정당한, 존재론적으로 공정한 법에 관한 물음을 어떻게 제기할 수 있을까? 법을 그 본질상 우리들의 사고와 의욕에서 독립하여 존재하는 실재라고 이해하여, 법의 存在具有性이 부정되지 않는 곳에서만 진정한 자연법론이 가능하다. 존재한다는 것 이외에 달리 자연법의 타당한 근거가 있을 수 없다. 자연법론은 결국 언제나 법존재론이 된다. 따라서 자연법의 최전성기는 존재론의 최전성기와 때를 같이한다. 자연법은 원칙적으로 존재를 신뢰하는 기초 위에서만 번영한다. 스스로 세계에 신뢰를 갖는 세대만이 자연법에 주목하게 된다.
2. 認識論
모든 객관주의적 철학이 놀라움과 신뢰감에서 시작한다면, 主觀主義의 철학은 不信과 懷疑에 토대를 두고 있다. 감각이 우리를 속이지 않는가에 관하여 확신을 갖지 못하고, 우리들이 알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반복하여 착각에 빠지며, 또한 너무나도 자주 우리들의 사고가 이해할 수 없는 모순에 빠진다는 것을 경험해 왔음이 틀림없을 때, 우리들이 지각하고 인식한다고 믿고 있는 모든 것이, 우선적으로 한번은 문제시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와 같은 철저한 회의에서 이겨낸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실제로 확실하다고 여겨지는 것은 무엇인가가 명백하게 되는 것이다. 데카르트(Descarte)가 그의 “철학적 성찰”(1641)이란 작품에서 모든 의심스러운 것에 대한 의심을 그 근원까지 했을 때, 이는 우리들의 인식의 확실성, 즉 “명석하고 분별력있는 인식”을 문제로 한 것이었다. 칸트는 또한 “純粹理性批判”(1787)의 序文에서 신앙이 안주할 장소를 열어주기 위해 예전의 형이상학의 (억측적) 지식을 포기해야만 한다고 쓴 것도 그것을 문제로 한 것이다.
懷疑로 철학을 시작하는 곳에서의 세계관은 그렇지 않는 곳의 세계관과는 대조적이다. 전자의 경우 그 자체가 존재하는 사물에 주목하지 않고, 사고하는 주체에 향하는 것이다. 根本的인 것은 존재가 아니라 인식이며, 존재는 인식의 산물이라고 설명한다. 이미 프로타고라스(Pro- tagoras)가 말한 것처럼, 인간은 만물의 척도이다. 철학은 항상 주관주의적인 것이 되며, 인식철학이 된다. 이에 따라 “나는 어떻게 하여 나의 인식으로부터 “외계”(Außen-welt)의 인식에 도달하게 되는가?” 다시 말하면 “나는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라는 철학적인 근본문제가 그 내용이 된다. 이미 사물이나 대상, 그 存在가 우선적인 문제가 아니라, 인식, 의식, 방법이 문제이다. 이제 第一哲學(prima philosophia)은 存在論이 아닌 認識論
이다. 그러므로 한때 괴테가 칸트의 철학에 관하여 그의 철학은 결코 대상에는 도달하지 못한다라는 비난을 제기했던 것은 아주 쉽게 일어날 수 있었다. 또한 더 이상 신뢰감으로 존재를 파악하지 않고 영원한 회의에 구속되어 있는 철학은 그 시대의 최전성기가 지나고 퇴조의 길에 들어서기 시작했다는 것을 확실히 징표하는 것이다. 괴테가 엑커만(Eckermann)에게 말하길 “나는 당신에게 뭔가를 밝히겠다. 당신은 이것을 당신의 생애에서 깊이 실감할 것이다. 퇴락하고 쇠퇴해 가는 시대는 모두 주관적인 경향으로, 반대로 진보하는 시대는 모두 객관적인 경향을 갖고 있다(1826년 1월 29일).” 그리고 여기에 다음과 같이 부언하였다. “현대는 퇴락하는 시대인데, 그 이유는 주관적인 시대이기 때문에”.  이와 같은 것은 그대로 법철학에도 타당하다. 법철학의 시작이 존재 속에 미리 주어진 질서에 대한 놀라움에서가 아니라, 그 같은 질서가 과연 존재하는가라는 의심에서 시작될 때는, 올바른 법에 대한 물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루돌프 슈탐믈러(Rudolf Stammler)가 말한 “법의 지식”에 관한 문제가 우선적으로 중요하다. 법은 독립한 存在具有性이 부인되며, 법이란 단지 名目的 槪念에
지나지 않고, 입법자의 절대적인 권력에 의해서 창조된 법률에 대한 총칭에 지나지 않는다(法律實證主義). 자연법의 이념은 전혀 이해되지 못한다. 자연법칙이라 말하는 것은 “과학적인 일반화”에 지나지 않는다고 이해되는 것처럼, 자연법이란 “이론의 산물”이라고 본다. 이 같이 하여 법철학은 “일반법학” 이상의 것이 되지 못한다. 따라서 여기서도 붕괴경향이 나타난다.
3. 實存哲學
철학한다는 것의 제3의 근원은 인간이 현재의 “限界狀況”에 서 있을 때에 받게 되는 실재적인 비애적 충격이다. 한계상황이란 인간이 극복할 수 없고 변경할 수 없는
상황이고, 인간(또는 사회 전인류)이 그 현재의 한계, 말하자면 매일 염려하는 세계가 최후적인 것이 아닌가라는 것을 경험하는 상황이다. 예컨대 책임, 죽음, 전쟁, 전염병, 문화의 붕괴, 민족의 몰락 등이 그것이다. 에픽테트(Epiktet)가 이미 말한 것처럼 이와 같은 한계상황의 의식, 즉 자기의 약함과 무력함을 자각하는 것이 인간의 현존재에 대한 입장의 결정을 재촉한다. 즉 인간의 현존재의 의미에 관한 질문을 제기한다. “생각하는 것을 가르치지 말라”(Ernst Bloch). 여기서 문제되는 것은 모든 인간이 이 한계상황에 어떻게 설 것인가이다. 인간은 그와 같은 한계상황 앞에서 눈을 감고, 그것이 흡사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고, 그리고 언젠가는 실제로 그 한계상황에 압도되고 마는 수가 있다. 그것은 一般大衆의 현존재의 비본질적 형태이며, 그들 현존재의 欠缺된 존재형태이다. 인간이 한계상황에 마주 서서, 그 상황을 의미있게 자기의 계획과 실행행위에서 고려하고 그리고 자기의식의 변혁에 의해서 완전히 그 자신이 될 때에만, 인간은 진정한 實在, 본래의 현존재를 얻게 된다. 실존철학은 그것이 문제인 것이다. 실존철학은 단순히 無爲徒食하며, 비본래적 자기로 도피하려는 (인간의) 충동에 저항하는 것을 인간에 불러일으켜 준다. 이렇게 함으로써 인간은 자기자신을 위해 판단하고 그 결과 인간은 자기자신의 실현에 도달하게 된다.
한 시대가 붕괴하고 따라서 위기에 처할 때는 항상 우선적으로 실존철학으로 나아간다는 것을 위해서 언급한 것에 의하면, 놀라울 것은 하나도 없다. 실존철학은 전환기의 전형적인 철학이다. 설령 명칭은 그렇지 않더라도 고대 벽두에 소크라테스(Socrates) 이전의 철학자들에서, 중세 벽두에 아우구스티누스(Augustius)에서, 근대 벽두에 예컨대 파스칼(Pascal)에서 그와 같은 철학으로 나아갔다. 또한 그것은 우리들의 시대, 즉 새로이 아직 명칭이 없는 제4의 과도기시대의 철학이기도 하다.
법의 영역에 있어서도 실존적 충격, 한계상황의 의식화, 절대적인 가치의 척도에 비추어 볼 때, 우리들 현세의 법의 피할 수 없는 좌절과 그런 법이 최근에 보여준 문제성에 대한 경험 등이 존재한다. 라드부르흐는 언젠가, 惡한 양심을 갖는 법률가도 좋은 법률가일 수 있지만 “그의 직업생활의 모든 순간에 있어서, 동시에 필연성을 갖고서 그의 직업의 심각한 문제성을 충분히 의식하고 있는 법률가만이 좋은 법률가이다”라고 지적하였다. 그것은 법률에만 눈을 밝히는 실증주의자의 태도이다. (법실증주의자의) 그와 같은 태도는 특히 우리가 금세기에 있어서 진절머리가 날 정도로 경험하였던 것 같이, 정치권력에 대하여 무력하였다. 법실증주의는 실존철학적으로 본다면, 본래적이 아닌, 결점투성이의 법의 수단이다. 법실증주의는 일차적으로 법에 대한 태도이자 관점이며, 이론은 아니다는데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법실증주의의 극복은 단지 반대이론, 즉 다른 “주의”를 성립하는 데서 성공하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무엇보다도 먼저 실증주의가 법에 가하는 위험(물론 법실증주의에서만은 아니지만)을 의식하고, 그로부터 이들 위험에 대처할 각오를 획득하는 데서 성공하는 것이다.
4. 다양한 경향의 종합
앞에서 언급한 철학상의 경향은 이념상으로 본 경우 그렇다는 것이다. 어떠한 경향도 이와 같은 순수한 경향을 취하지는 않다. 그러나 어느 경향에 중점을 두느냐 하는 점은 시대에 따라 달랐다. 특히 어느 철학의 특성을 전형적인 이념적 모습으로 집약하는 것은 있는 그대로 관찰할 때보다도 더욱 명백히 그 철학의 오류를 뚜렷이 볼 수 있다.
법에 대한 종래의 실체존재론적(substanzontologisch) 견해는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법이라는 것은 목재나 집과 같이 일정한 “객체”일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법은 인간 상호간이나 인간과 물건과의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의 형체(Gefuge)이다. 그러므로 실체존재론 대신에 관계의 존재론을 전개시켜야 한다.
그러나 모든 것을 “주관적인 것”(Subjektives)으로 보아 결국 “기능적인 것”(Funktionale)으로 발산시켜 버리고, “존재적인 것”(처분할 수 없는 것)을 완전히 부정해 버리는 것도 오류이다. 왜냐하면 이렇게 되면 법은 입법자의 완전한 자의에 맡겨지는 위험에 처해지기 때문이다.
객관적인 것과 주관적인 것을 분리하려는 태도는 주관-객관-도식(Subjekt-Objekt-Schema)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주관과 객관이 분리된 것으로 인식한다). 이러한 도식은 오늘날에 와서 자연과학에서조차도 의문시되고 있고, 그러므로 해석학적 학문(이해과학)에서는 결코 적합치 않는 것이다. 그러한 도식은 人格的 思考(personaler Denken)에 결코 어울릴 수가 없다.
이런 경우 회피해야 할 사고방식은 사르트르(Jean-Paul Sartre)식의 극단적 실존철학(이에 따르면 인간은 자기 스스로 자기의 도덕률을 결정한다고 본다) 뿐만 아니라, 니클라스 루만(Niklas Luhmann)식의 극단적 기능주의(이에 따르면 법은 오직 절차를 통해서 성립되고, 합법화된다고 한다)이다. 인격(Person)과 마찬가지로 법(Recht)도 주어진 것일 뿐만 아니라, 포기(Aufgegeben)도 가능하며, 이 양자는 각각 객관적인 것(Objektivitat)과 주관적인 것(Subjektivitat)을 불가분적으로 하는 하나의 실체이며 그리고 인격형성과정(personaler Gestaltungsprozeß)의 “내용”(Was)과 “방법”(Wie)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인격형성과정을 통해서 인격과 법은 그 구체적 현실적 실체로 나타나게 되며, 그렇다고 반드시 이와 같은 과정의 산물일 필요는 없는 것이다. 요약해서 말한다면, 그 점은 실질적(인격적) 기초가 된 절차적 정의이론의 이념이다.

제7절 현대의 철학과제 및 법철학의 임무
오늘날 우리는 변화와 위기의 시대에 살고 있다. 즉 “근본이 흔들리고 있다”고들 말한다. 이 흔들리는 세상은 다른 세상을 창출한다. 그것이 바로 현대의 징표이다: 합리성이 최고의 주가를 올릴 때, 우리 주위에서는 -미국과 프랑스에서 온 것이지만- “포스트 모던”의 바람이 불었다. 이는 비합리성의 복고풍의 다름 아니다. 이제 비합리성은 학문임을 자인하는 철학을 위해 결코 어떤 처방일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합리성과 이성에 토대를 두자마자, 현대에 대한 불쾌함 그리고 포스트 모던이 그렇게 큰 호감을 부여한 계몽에 대한 불쾌감이 어디서 도래했는지를 금방 알 수 있게 된다. 한 마디로 말한다면 이렇다. 즉 그것은 모든 것을 단순한 지배지식과 이용지식으로 전용하고 이를 통해서 우리 인간에게 정말로 중요한 것에 대한 문제의 대답을 하는데 무력케 된 것이 입증이 된 “전체주의적 이성”, 즉 “오랫동안 지속된 계몽”이며, 바로 그것이 “현대를 완성케 하는 강제인자”이었다. 이러한 언명을 어떻게 설명할까?
우리가 역사를 돌이켜 보면, 철학의 과제에 대한, 또한 법철학의 과제에 대한, 계속해서 반복된 두개의 극단적 견해를 각각 대비하여 보거나, 혹은 서로 분리하여 온 것을 알 수 있다. 그 하나의 방향은 철학에 대한 과제를 세계와 인간 그리고 법에 관해 절대적이고 보편적이면서 불변적 언명이 가능하도록 하는데 있었다. 그러한 시도는 수없이 시도되었다 -(절대적) 자연법이론을 생각해 보라-, 그렇지만 그러한 시도는 그 때마다 좌절되었다, 특히 그와 같은 절대적이고 초시간적 내용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고, 더군다나 -칸트에 따르면- “순수한” 인식은 오직 형식(이 형식에 의해서 어떤 것이 인식된다)에 관해서 뿐이고, 그러나 그 내용은 인식대상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 내용은 이성에 의해서 얻어진 것이 아니라, 체험에 의해서 온 것이고, 오직 후발현상(posteriora)에 불과한 것이어서 결코 “순수한” 것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으로부터 다른 방향의 철학이 탄생되었다. 이 방향은 철학하는 것의 “순수성”을 위하여 모든 내용, 특히 가치에 관한 언명을 무시했고(예를 들면 Max Weber의 “학문의 가치무관성”, Hans Kelsen의 “순수법학”) 그리고 오직 존재의 형식을 비롯한 사고의 형식과 법의 형식에만 관심을 가졌다. 이러한 “순수성”은 대부분 사람들이 “합리성”(Rationalitat)을 결정적 기준으로 간주하게 되고, 그 결과 그들은 내용을 문제삼는 철학 모
두를 비합리적이고 비학문적인 것으로 생각하여 거부한다. 그러나 이처럼 그렇게 형식적 순수성으로 압축된 합리성은 실질적으로 당면하는 문제에 대한 대답을 할 수 없다는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철학에서 형식주의(Kant 스스로가 대표하지 않지만)는 어느 정도 날카로운 이론구성을 불러일으키긴 했으나, 그러나 내용없는 思考(Gedanken)가 공허한 것이 인정되자, 실생활에서 형식주의의 철학의 의미는 경미한 것이 되었다. 더욱이
형식주의가 합리성의 준칙에 얽매일 수록 더욱 의미가 없어졌다.
우리는 이것들 모두를 가질 수 없다. 즉 형식적 순수성과 내용적으로 의미있는 언명의 힘.그 점을 현대 법철학자 중에서 Gustav Radbruch보다 더 잘 인식한 철학자는 없다. Radbruch 자신은 형식주의적 일반법학의 출현 1세기 후에 다시금 법의 내용을 본질문제로 삼는 최초의 한 사람이었다. 철학에서 “사물 자체에”의 복귀가 요구되자 마자 거의 동시에 법철학에서 역시 “법이란 사물”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Edmund Husserl의 “순수 현상학과 현상학적 철학에 관한 理想”(1913년)이란 책이 나온 지 1년만에 Radbruch의 “법철학 개론”(Grundzuge der Rechtsphilsophie, 1914)은 법의 내용과 법의 정당성의 문제를 다룬 책을 출판했다. 우리가 실증주의의 결정적 증인이라고 즐겨 부르는 Radbruch는 사실은 그것의 극복자이다. 그는 일찍이 주장한 존재와 당위사이의 “방법이원론”에서 이념의 素材規定性이란 사상을 거쳐, 후에 “사물의 본성”의 이론에 도달하기까지 외길을 걸었다. 법철학의 새로운 章의 이행은 라드부르흐의 이름과 결합하였다: 자연법과 실증주의의 저편에 있는 법철학으로.
물론 Radburch는 그의 법철학의 실질화를 위해서 값비싼 대가를 치루어야만 했다. 이러한 대가가 법철학적 내지 가치이론적 상대주의이었다. Radbruch는 물론 법의 가능한 최고가치의 수를 제한하려 했으며, 유일한 정당한 가치의 물음에 대한 학문적 답변을 해보려 했다. 이러한 상대주의의 배후에 자유와 관용에 대한 열정, 즉 민주주의에 대한 열정이 앞서 있었다. 독재체제 아래서는 이러한 열정이 배반된 것을 알게 되자 법철학에서 상대주의를 포기하게 되었다. 즉 독재체제 아래서는 법의 내용이 독재적으로 결정되었다. 이러한 길은 우리에게 오늘날 소망스럽게 영구히 차단되었다. 그러나 그렇게 되었으니까 실질적인 학문적 법철학의 이상을 포기해야만 할까?
Radbruch는 너무 일찍 포기했다. 그가 법의 최고가치 -인격적 가치, 집합가치, 작품가치- 를 일으적으로 확인할 수 없게 되자, 그는 처음부터 그러한 가치의 내용에 대해 확신할 수 없는 모든 사람과 대화하는 것을 거부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들과의 대화는 오직 정치적으로만 가능할 뿐이지, 그러나 학문적 차원에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철학을 축소시킨 것이다. 라드부르흐도 인식을 오직 일의적인 “순수한” 인식으로 보려고 했다는(그도 역시 칸트주의자이기 때문에) 것을 제외하고는 철학적 인식의 전과정을 지나치게 독백하는 식으로 보았다. 그러나 철학적 인식은 협동적인 노력을 요구하며, 철학의 완성은 -그와 동시에 철학을 하는 인간의 자가완성은- 다른 철학하는 사람과 철학적인 대화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이미 플라톤에 의해 설립된 아태네의 아카데미에서도 이러한 인간 상호간의 철학하는 것(Miteinanderphilosophieren) 을 알았고, 이미 그 당시 신중한 논의를 가능케 하는 대화를 위한 일정한 방법적 규율이 완전하게 존재했다. 현대의 對話論(Jurgen Habermas)에서 이러한 理想, 즉 진실(정당성)은 특히 비경험적(규범적) 분야에선 오직 협동적으로만 발견되어질 수 있다는 이상은 다시금 대단한 자극이 되었다.
權威的 思考는 의사소통이 처음부터 불가능하다. 상대주의는 내용에 관하여 일치하지 않을 때에는 의사소통을 하려는 대화를 너무 일찍이 단념해 버린다. 따라서 兩者는 의사소통이란 방법으로 “전달을 통한 공동체”를 서서히 실현한다는 철학하는 (본래의) 임무를 그르치고 있다. 물론 그러한 전달이라는 것이 단순히 저절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철학적 논의의 목표는 개인 상호간의 합의에 도달하는 것이고, 이러한 의미에서 진리에 도달하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합의의 무산이 대화의 무산으로 동일시 여기는 것처럼 보아서는 안되며, 오히려 대화는 대답없이 방치되었음에 틀림없던 바로 그러한 문제에 대하여 상호간의 이해와 수용을 의미할 수 있다.
인간이 강제와 폭력에서 서로 자유롭게 “당면한 중요문제에 대한” 문제에 관하여 서로 압제와 폭력에서 해방된 상태에서 의사를 표명하려는 것은 그래서 제정신이 들게 한 것은 “인공두뇌학시대”에서도 또한 존속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임무에 있어서 어떠한 기계, 특히 자동기계조차도 인간에 의해 지배될 뿐이지 인간을 대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대의 후기”(Postmoderne)는 기술적 합리성을 가지고는 -우리가 사는 세계의 法制化는 합리성의 일부분이다- 결코 우리가 그것을 초월하여 인간과 인간의 기초를 잃어버릴 정도로까지는 가지 못할 것이라는 경고를 의미한다.

주요 참고 문헌
A. Einfuhrung in die Philosophie
Bloch, Ernst: Tubinger Einleitung in die Philosophie, 2
Bde., 1963, 1964.
Heidegger, Martin: Einfuhrung in die Metaphysik.
1953.
Jaspers, Karl: Einfuhrung in die Philosophie, 1953
(Serie Piper 13, 1986).
Speck, Josef (Hrsg.): Grundprobleme der großen
Philosophen, 9 Bde., 1975ff.
Stegmuller, Wolfgang: Hauptstromungen der Gegen-
wartsphilosophie; Eine kritische Einfuhrung. 1.
Bd., 6. Aufl. 1978; 2. Bd. 8. Aufl. 1987; 3. Bd. 8.
Aufl. 1987.
B. Rechtsphilosophie
Adomeit, Klaus: Rechtstheorie fur Studenten, 2. Aufl.
1981.
Alexy, Robert: Theorie der juristischen Argumentation,
1978.
Aristoteles: Nikomachische Ethik, 5. Buch (uber die
Gerechtigkeit). Ca. 320 v. Chr.
Bydlinski, Franz: Juristische Methodenlehre und
Rechtsbegriff. 1982.
Coing, Helmut: Grundzuge der Rechtsphilosophie. 4.
Aufl. 1985.
Dubischar, Roland: Einfuhrung in die Rechtstheorie.
1983.
Engisch, Karl: Einfuhrung in das juristische Denken. 8.
Aufl. 1983.
Engisch, Karl: Auf der Suche nach der Gerechtigkeit;
Hauptthemen der Rechtsphilosophie. 1971.
Fechner, Erich: Rechtsphilosophie; Soziologie und
Metaphysik des Rechts. 2. Aufl. 1962.
Fichte, Johann Gottlieb: Rechtslehre, 1812.
Fikentscher, Wolfgang: Methoden des Rechts in
vergleichender Darstellung, 5 Bde. 1975-1977.
Haft, Fritjof: Juristische Rhetorik, 3. Aufl. 1985.
Hart, H. L. A.: Der Begriff des Rechts. 1973.
Hegel, Georg Wilhelm Friedrich: Grundlinien der
Philosophie des Rechts – oder Naturrecht und
Staatswissenschaft im Grundrisse. 1821.
Henkel, H., Einfuhrung in die Rechtsphilosophie, 2.
Aufl. 1964.
Hoffe, Otfried: Politische Gerechtigkeit; Grundlegung
einer kritischen Philosophie von Recht und
Staat, 1987.
Kant, Immanuel: Metaphysik der Sitten; 1. Teil:
Metaphysische Anfangsgrunde der Rechtslehre.
1798.
Kaufmann, Arthur: Rechtsphilosophie im Wandel, 2.
Aufl. 1984.
Kaufmann, Arthur: Beitrage zur Juristischen Hermen-
eutik – sowie weitere rechtsphilosophische
Abhandlungen. 1984.
Kaufmann, Arthur: Theorie der Gerechtigkeit –
Problemgeschichtliche Betrachtungen, 1984.
Kelsen, Hans: Reine rechtslehre. 2. Aufl. 1960
(Nachdruck 1976).
Kelsen, Hans: Allgemeine Threorie der Normen, 1979.
Klenner, Hermann: Rechtsphilosophie in der Krise,
1976.
Klenner, Hermann: Vom Recht der Natur zur Natur
des Rechts, 1984.
Koch, Hans-Joachim(Hrsg.): Juristische Methoden
lehre und analytische Philosophie, 1976.
Koch, Hans-Joachim/ Helmut Rußmann: Juristische
Begrundungslehre, 1982.
Larenz, Karl: Methodenlehre der Rechtswissenschaft. 5.
Aufl. 1983.
Maihofer, Werner: Recht und Sein; Prolegomena
einer Rechtsontologie, 1954.
Marcic, Rene: Rechtsphilosophie; Eine Einfuhrung.
1969.
Muller, Friedrich: Jurisctische Methodik, 3. Aufl. 1989.
Naucke, Wolfgang: Rechtsphilosophische Grundbegriffe,
2. Aufl. 1986.
Neumann, Ulfried: Jurische Argumentationslehre, 1986.
Noll, Peter: Gesetzgebungslehre. 1973.
Pawlowski, Hans Martin: Methodenlehre fur Juristen:
Theorie der Norm und des Gesetzes, 1981.
Perelman, Chaim: Uber die Gerechtigkeit. 1967.
Perelman, Chaim: Das Reich der Rhetorik; Rhetorik
und Argumentation, 1980.
Peschka, Vilmos: Grundprobleme der modernen
Rechtsphilosophie, 1974.
Radbruch, Gustav: Rechtsphilosophie. 8. (postume)
Aufl. 1973 (besorgt von Erik Wolf und
Hans-Peter Schneider).
Radbruch, Gustav: Vorschule der Rechtsphilosophie. 3.
(pestume) Aufl. 1965 (besorgt von Arthur
Kaufmann).
Radbruch, Gustav/Konrad Zweigert: Einfuhrung in die
rechtswissenschaft, 12. Aufl. 1969.
Rawls, John: Eine Theorie der Gerechtigkeit, 1975.
Rawls, John: Gerechtigkeit als Fairneß(hrsg. von
Otfried Hoffe), 1977.
Reich, Norbert: Marxische und sozialistische
Rechtstheorie, 1972.
Rottleuthner, Hubert: Rechtstheorie und Rechts-
soziologie, 1981.
Ryffel, Hans: Grundprobleme der Rechts – und Staats-
philosophie; Philosophische Anthropologie des
Politischen. 1969.
Schramm, Theodor: Einfuhrung in die Rechts-
philosophie, 2. Aufl. 1982.
Seidler, Grzegorz Leopold: Rechtssystem und Gesell-
schaft, 1985.
Stranzunger, rudolf: Gerechtigkeit; Eine rationale
Analyse, 1988.
Tammelo, Ilmar: Theorie der Gerechtigkeit. 1977.
Tammelo, Ilmar: Zur Philosophie der Gerechtigkeit,
1982.
Thomas von Aquin: Recht und Gerechtigkeit; Deutsche
Thomas-Ausgabe, 18. Band, 1953 (Summa
theologica Ⅱ, Ⅱ, 57-79; entstanden 1266-1272).
Trapp, Rainer W.: “Nicht-klassischer” Utilitarismus;
Eine Theorie der Gerechtigkeit, 1988.
Vieweg, Theodor: Topik und Jurisprudenz, 5. Aufl.
1974.
Wesel, Uwe: Juristische Weltkunde; Eine Einfuhrung
in das Recht, 3. Aufl. 1986.
Zippelius, Reinhold: Rechtsphilosophie; Ein Studien-
buch. 1982.
Zippelius, Reinhold: Juristische Methodenlehre, 4. Aufl.
1985.

제Ⅱ장  法哲學의 問題史
Arthur Kaufmann 지음  허일태 옮김

1절 서  론
법철학의 근본적인 두 가지 문제는 다음과 같다. 1. 올바른 법이란 무엇인가? 2. 우리는 이 올바른 법을 어떻게 인식하고 실현하는가?(이 두 문제가 결합해서 법의 효력문제가 발생한다). 이 두 가지 문제가 완전히 서로 분리하여 논할 수 있고 대답할 수 있다고 우리는 오랫동안 믿어왔고 또한 오늘날에도 적지 않는 사람이 그렇게 믿고 있다. 우리는 올바른 법(그러한 법이 설사 무슨 법이라 하더라도)을 우리의 思考에 대립해 서 있는, 즉 대상을 순수하게 객관화시킨 속에서 “주체”에 의해서 파악해야 하는 “객체”, 다시 말하면 어떠한 주관적 요소가 뒤섞임이 없이 파악해야 하는 객체인 대상으로 생각한다. 그 점이 정확한 자연과학의 모범에 지향하고 있는 신시대의 학문의 이상이다.
그러나 이제 그러한 시대는 종말을 고하려 한다. 학문이론 중에서 새로운 인식은 이 세계는 자연과학적 척도와 범주에 의해서만 전적으로 관찰되거나 판단될 수 없다는 점이다. 심지어 자연과학 분야에서조차도 모든 점에서 주관성이 없는 인식은 불가능하다는 점이 인정되고 있다. 그 점은 법학을 포함하고 있는 이해과학에서도 들어맞는다. 그래서 여기서는, 다음에 또 언급되겠지만, 주관-객관이라는 도식은 이미 출발점으로서 부적당하다. 법학에 있어서 어떠한 인식도 법이용자(Rechtssuchender)에 의해서 영향이 새겨져 있지 않는 그러한 인식은 존재할 수 없다. 이 경우에 항상 또한 (그러나 확실히) 창조적 요소가 영향을 미친다. 즉 법을 “인식한다는 것”은 또한 항시 법을 “형성하는 것”의 일부이다. 다시금 더욱 명
료하게 말한다면, 구체적 현존재형식 속에서 法(즉 법관에 의해서 선언되어지고 있는 법)이라고 하는 것은 법을 실현하는 과정에서야 비로소 언제나 파악된다.
이와 같이 “올바른 법”에 관해서는 “올바른 법의 방법”을 고려함이 없이, 즉 “무엇에 관해서”는 “어떻게”라는 것을 고려함이 없이는 전혀 말할 수 없다. 그리고 이 章에서는 다음의 두 절로 구분하는 것은 내용적 면에서 잘못되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것이 교수방법으로서는 좋다고 본다. 왜냐하면 우리는 어떤 문제점도 점진적인 방법으로 파헤쳐야지, 단번에 모든 점을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도대체” 무엇에 관한 것이라는 것은 이미 어느 정도 관념을 가져야만 한다. 여기서 여러 번 논의되었던 “해석학적 先判斷”(hermeneutischer Vorurteil)과 그 유명한 “해석학적 순환”을 간단하게 언급해 둔다. 우리는 오직 부분으로부터 전체를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부분이 무엇인가는 전체를 미리 이해하고 있을 때에만
알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서론에서 어느 정도 결론을 암시해 두는 것이 좋겠다. 그렇게 함으로써 독자는 다음의 부분에 관한 설명이 어떠한 “전체” 중에서 어떻게 체계적으로 자리잡고 있는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 때문에 “問題史的” 說明이 필요할까? 철학상의, 그러나 또한 정신과학상의 인식은 그 자체 독립해서 얻어질 수 없고, 대화를 통해서만 얻어진다. 그리고 이러한 대화는 역사를 통해서 부단히 이어져 내려온다(단지 짧은 시점에서는 비약이라는 인상을 준다). 또한 철학과 법철학도 그들이 순수하게 思念的으로 되지 않으려면 경험에 준거해야만 한다. 또한 여기서 어느 정도는 “구체적 사정”에서 문제점을 파악하고 논의해야 한다. 철학의 “구체적 사정”이라는 것은 그러나 역사 속에서 나타난다. 이로부터(역사로부터) 경험을 얻어내야 한다. 우리에게는 법철학의 역사 그 자체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법철학의 問題史가 관심의 대상이 된다. 즉 그것에 대해 철학적 관심을 갖지, 그러나 그 밖의 어떠한 철학사
적 관심사나 철학적 학문상의 관심을 갖는 것은 아니다. 그 점은 아래의 설명에서 항시 주의를 해야 한다(제2절과 제3절은 이러한 의미에서 이해해야 한다).

제2절 법철학의 역사적 전개
법철학사를 서양의 법철학사에 한정하고자 한다. 그 실질적 이유의 하나는 서양의 법철학사가 독일의 법문화를 특징지웠고, 또 다른 이유는 지면상의 이유이다. 물론 유럽이 법문화의 유일한 발상지가 아니라는 점을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아주 예전에 아시아-바빌로니아(함무라비 법전!), 인도, 중국, 한국, 일본 등에서도 고도의 법문화가 전개되었다. 그뿐 아니라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원주민도 이점에서는 빼 놓을 수 없다. 그러므로 법철학과 그리고 법의 보편사는 누군가 기술해야만 할 분야다.
Ⅰ. 고대의 법철학
1. 선사시대
선사시대인 B.C. 7세기 이전에는 의식적 반성을 통하여 법의 합리적 근거를 찾으러 하지 않았다. 理性의 비판에 견딜 수 있는 “자연적”이고 “객관적으로 올바른” 법에 대한 물음이 아직 존재하지 아니하였다. 물론 古代人도 이 세계를 설명하려고 시도하였다. 왜냐하면 이유에 대한 물음이라고 하는 형이상학적 성향은 끊어버릴 수 없는 인간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대인들에게 있어서 물음에 대한) 대답은 우주의 구성에 대한 식별에서 연원한 것이 아니고, 또한 사건에 대한 어떠한 합법칙성을 나타내지도 못했다. 그러나 그것은 오히려 자연의 세계, 생명의 흥망성쇠(Vorgange)는 오직 초자연적, 인간에 유추해서 상상한, 자의적이고 계획성이 없는 지배하는 힘(Macht)에 기인한다고 보는 환상의 결과였다. “호머와 헤시오드는 모든 것을 신에게 덮어 씌었다”고 조롱한 크세노파네스(Xenophanes)의 말은 전혀 틀린 것은 아니었다. 신화에 의해서 모든 것을 설명하려 했고, 신화 속에서 법도 또한 그 근거를 가졌다. 그러므로 법은 이성에 입각한 바른 질서가 아니고, 신에 의해 지배되는, 즉 운
명적 법이었다.
고대인은 이러한 신화적 세계관 때문에 자신의 외부에서 혹은 심지어 자신의 내부에서 일어난 자연적 사건에 대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 하늘과 땅, 질병과 전쟁, 生과 死, 이 모든 것들은 그들에 있어서 신비스럽고 신화적 힘으로 보여서, 힘의 작용과 원인관계를 그들은 이해하지 못하였다. 그것들은 그들에게 대해서 재앙, 즉 그들의 현존재를 끊임없이 위협하기 때문에 극도로 미워하는 힘이었다. 그래서 그런 사건을 당한 자는 그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세계에 “떨어졌다”고 느꼈다. 이 현존재의 불안은 그들에게 항시 따라 다니는 동반자였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이러한 현존재의 감정을 갖고 있다는 것이 그리 낯 설은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시대의 전환기에 있어서 현존재의 감정이기도 한다. 시대의 전환기에 특유한 실존적 충격은, 극복하기 어려운 “한계상황”이기 때문에, 현존재의 의미에 대한 견해의 표명이나 물음의 제기가 쇄도하게 된다. 그런 이유로 고대시대의 말기에도 운명에 맡겨 버리는 감정에서부터 이성에 의해 기초된 근거를 처음으로 더듬어서 찾으려는 노력이 일어났다. 이러한 진보를 마르치츠(Marcic)는 “신화로부터 이성으로”(von Mythos zu Logos)라고 표현하였
다.
2. 소크라테스 이전
이로서 우리는 소크라테스 이전이라고 부른 시대에 들어왔다. 이 새로운 세계관에 대한 특색은 양극적 사고방식이다. 즉 하나의 고유한 특징이라고 하는 것은 이 양극적 대립을 통해서만 공통적으로 파악된다고 보았다. 이미 아낙시만더(Anaximander, 기원전 600년경)는 이러한 의미에서 존재와 질서(오늘날 표현으로는 존재와 당위)를 사념상 분리했으나, 그러나 아직도 하나의 통일체로서 파악했다: 무엇이냐고 하는 모든 것은 또한 질서 안에서 존재하는 것으로서 보았다. 서양에서 가장 오래된 이러한 법사상은 따라서 실존철학적 견해를 내포한다. 그리고 확실한 것은 거기서 그렇게 존재해야하는 법도 그 자체 현존재함으로써 각자가 자기주장을 할 권리가 주어지고 그리고 그 때문에 타인이 무엇을 한 사람이든, 어떠한 행동을 한 사람이든 간섭하지 말아야 된다는 사상이 나왔다(아주 후세에 들어와서야 그에 대하여 “각자에게 그의 것을”이라는 공식이 만들어졌다).
(기원전 500년경) “어둠”(Dunklen)의 저자인 헤라클레이토스(Heraclitus)에서 고대 그리이스 정신의 양극적 사고방식을 그 완전한 모습으로 찾아볼 수 있다. 그의 이러한 사상은 그의 후세 사색가들 거의 모두에게 영향을 미쳤다. 현상의 세계 배후에 이데아의 세계, 즉 진실한 존재의 세계가 있다고 하는 플라톤의 이데아론 뿐만 아니라, 또한 모든 살아 있는 생성의 원리인 아리스토텔레스의 “엔테레히”(Entelechi: 그 자체 스스로 목적을 갖는 것, 질료가 실현될 형상, 조직의 발전과 완성을 작용하는 조직내에 놓여 있는 힘)의 개념을 낳게 했다. 이 세계를 동태적인 것, 생성되어 가는 것이라고 파악한 헤라클레이토스에 따르면(“너는 두 번 다시 같은 강물에 들어 갈 수 없다”. 모든 것은 흐르며 그 원천이 없다), 모든 사물
은 대립을 통해서 생성되며, 모든 현상은 세계법칙(Weltgesetz)인 세계이성(Weltvernuft), 즉 Logos에 의해서 지배된다. 그 때문에 저 유명한 그러나 다툼이 있는 단편(Fragment) 114가 절로 이해된다. “모든 인간적 법률은 신의 법을 먹고산다”. 여기서 처음으로 인간에 의한
규약(Satzung)의 정의가 자연의 정의, 즉 실정법을 자연법에서 구별한다. 이에 따라 합리적 정의론과 자연법론의 시작이 있게 된다. 물론 확실히 법과 자연이란 양자는 아직도 본질적 통일체로 파악되었으나, 그러나 사상가들은 이것들의 구별을 알았고, 따라서 그것들의 가능한 분리를 준비했다.
그 후 오늘날까지 이 법에 있어서 양극적 세계관은 지배적 형태로 존속하고 있다: 고대시대의 자연과 규약이라는 대립이 중세에선 신의 법과 속세법이라는 대립으로 나타났다(중세 시대에서는 물론 자연법은 神法<ius divinum>과 人間法<ius humanum>사이에서 정착되어졌다). 이러한 대립은 현대에서 이성의 질서와 강제질서라는 대립으로 대치되었다. 여기에 3개의 공통적인 근본적 원리가 기초되어 있다: 1. 자연법은 변천할 수 없으며 보편적으로 타당하기 때문에, 모든 시대와 인간에게도 역시 타당하다; 2. 자연법은 이성을 통해서 인식될 수 있다; 3. 자연법은 실정법에 대한 단순한 척도가 아니며, 자연법이 실정법과 모순될 때에는 실정법 대신 역할을 한다(따라서 여기서 이미 “법률상의 불법”의 사상을 볼 수 있다). 물론 고대에서 자연법론 뿐만 아니라 중세에서도 부분적으로 이러한 도식(Schema)을 항시 따르는 것은 아니었다.
3. 소피스트의 철학
소피스트들은 이미 자연법이라는 포도주에 다시금 물을 넘쳐흐르게 부었다. 그들의 가장 저명한 대표자인 프로타고라스(Protagoras, 기원전 480-410)에게는 모든 사물의 척도가 세계이성이나 존재가 아니라, 인간이었다. 그리고 그 인간이란 확실히 경험적 인간이었지, 윤리적 인격체인 인간이 아니었다. 이러한 인간을 기준으로 보는 사상(Homo-mensura-Gedanken)에 의해 객관주의 법사상으로부터 주관주의 사상으로, 또한 가치론적 상대주의로 일보 전진되었다. 프로타고라스만해도 온건한 상대주의자였다. 고르기아스(Gorgias)와 트라쉬마코스(둘다 기원전 450년부터 350년 사이에 생존)는 더욱 혁신적인 상대주의자였다. 그리고 에피쿠어(Epikur, 기원전 371년부터 270년)와 카르네아데스(Karneades, 기원전 214-129)는 마침내 회의적 입장에 빠져서 본래 아무 것도 정당한 것은 없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칼리클레스(Kalikles, 기원전 5세기)는 누구든 자의적인 수단으로 자신의 욕심을 채울 권리를 갖는다고 보았다. 따라서 자연법은 강자의 법으로 파악했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專制政治를 정당하게 해주었다. 그러나 다시 한번 프로타고라스로 돌아가
보자. 이미 그는 객관적 진실을 의문시했다. 진실하다고 하는 것은 인간이 그 자신의 감각으로 느껴 언급되는 것뿐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진실성은 지각하는 주체에 관계하고 따라서 상대적이라고 보았다. 이러한 思考로 규범과 자연(Nomos und Physis)이 날카로운 대립으로 분리되어 나타났다. 단지 실정적, 즉 인간의 합의에 의해 확립된, 규약만이 법으로서 효력을 가졌다. 그렇게 이해한다면, 궤변론을 학문상의 상대주의의 원천으로서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것이 상대적 민주주의의 원천은 아니다. 왜냐하면 프로타고라스의 주관주의는 개인주의적 주관주의가 아니라, 집단주의적 주관주의였기 때문이다: 다수를 차지한 견해가 결정권을 갖는다. 다수 견해는 공평한 것과 불공평한 것이 무엇인가를 결정한다. 왜냐하면 이렇게 하는 것이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다룬다라는 법의 최고 원리라고 보기 때문이다.
무엇에 의해서 자의성의 개입없는 공평성이 정해지는가? 법철학의 이 핵심적 문제는 이미 그리이스 시대인 고대에서 완전하게 파악되었다. “프로타고라스”라는 작품에서 플라톤은 히피아스(Hippias)에게 말하길, “우리는 법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연에 의해서 친척이 되고, 공동체 구성원이 되며 국민이 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유사한 것은 본래 유사한 것의 친척이며, 인간을 압제하는 법은 이와는 반대로 자연에 반해서 많은 것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물의 본성을 확실히 알면서도, 그러나 그 말에 어울리는 것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것은 창피스런 일인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인간의 본성”이고, “사물의 본성”인가? 그것은 법에 있어서 강자인가, 혹은 소피스트인 안티폰(Antiphon, 기원전 5세기)이 말한 것처럼, 우리 모두가 입과 코로 숨쉬며 손으로 먹는 것일까? 그 점에 관하여 벨첼(Hans Welzel)은 다음과 같이 생각하였다: 인간다운 본성의 변덕스러움은, 모든 자연법 사상가들에 의하면, 그 인간 자신이 원하는 바로 그 모습을 형성한다. 그러한 주장에 대하여 많은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자연법론의 의미에서 “자연”은 움직일 수 없는 실체가 될 수 없으며(영원할 것으로부터 영원한 것으로), (자연은) 또한 인간의 행동에 대한 불가침의 올바른 규범을 이끌어 내게 하는 절대적 도덕법칙도 될 수 없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없이 옳은 것이다. 물론 계속 반복하여 그와 같은 주장에 근거이유를 제시하려고 추구하여 왔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와 다르게 이미 고대 그리이스의 자연법론에서 “평등”과 “자연”은 상대적인 것이며, 그것들은 物體的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관계적인 것이다란 점이 알려졌다. “자연” 자체가 “평등한 것”이라는 점은 일정한 법을 고려할 때만 이야기될 수 있다. 그 때문에 위에 인용한 플라톤의 말인 “유사성”에 대한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왜냐하면 평등이라는 문제는 결국 유추의 문제, 즉 동등성이라는 관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론(니코마코스 윤리학의 제5권)에서는 그 점이 아주 명확하게 나타난다.
4. 아테네의 철학(attische Philosophie)
이로써 우리는 소피스트철학의 완성품이자 동시에 극복으로서 볼 수 있는 아테네의 철학세계에 들어왔다. 이 철학의 원조는 소크라테스(Socrates, 기원전 469-399)이며, 그의 학설의 거의 대부분은 그의 제자인 플라톤에 의해서 전해지고 있지만, 그 일부는 크세노폰(Xenophon)에 의해서도 전해지고 있다. 소크라테스는 우주론적 사색에서 인류학적 사색의 전환을 했다. 그는 한편에 있어서 도덕적 세계이성에 대한 무비판적 신앙을 더 이상 신봉하
지 않고, 다른 한편 그러나 소피스트들의 주관주의와 상대주의를 극복하려고 시도하였다. 그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객관적 진실세계를 파헤쳐 들어가는 것이었다. 이에 대한 해결의 길은 너 지신을 알라라는 내적 탐구에 있다고 보았다. 자연법칙은 인간의 가슴속에 살며, 영혼은 인간에게 도덕적 척도를 주며 그리고 이러한 척도는 외적 권위가 흔들린다 해도 인간에게 머물러 있다. 이로써 소크라테스는 선험적 자연법론을 세웠다. 이 학설은 후세에 키케로(Cicero), 파울루스(Paulus), 아우구스티누스(Au- gustinus), 크리소스토무스(Chrysostomus) 등의 많은 추종자가 따랐다.
동시에 소크라테스는 도덕의 객관성, 윤리적 문제, 정의, 선, 덕의 내용에 대한 문제를 열심히 다루었다. 법과 도덕의 관계가 (중요한) 문제로 되었다. 물론 그의 학설에서보다도, 그의 생활을 통해서 실정법상의 정의를 존중하는 사상을 보여 주었다. 그는 실정법을 정의의 한 종류로서 파악했으며(이 점은 후에 토마스 아퀴나스에서 다시금 주장되었다), 따라서 실정법이 비록 잘못되었거나 혹은 심지어 범죄적 법이라 하더라도 실정법에 대한 복종은 불가피한 것으로 보았다. 우리 모두가 아는 바처럼 그는 바로 그러한 사상 때문에 죽게 되었다. 그가 탈옥의 권유를 거절한 그의 차분한 주장은 오늘날도 여전히 현실적이다: “국가가 아직 존립해 있고 선고된 법관의 판결이 어떠한 효력도 없을 정도로 완전히 국가가 멸망되지 않았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개인에 의해서 준수되어질 수 없는 판결이 가능하다고 당신은 생각하느냐”고 소크라테스는 크리톤에게 이의를 제기했다. 이는 법적 안정성에 대한 아름다운 시다! 확실히 (법적 안정성은) 모든 법률상의 중요한 요소이나, 우리가 절대화해도 좋은 그런 요소는 아니다. 이것 또한 역사가 가르쳐 준다.
소크라테스처럼 플라톤(Platon, 기원전 427-347)도 -그는 아테네에 있는 아카데미의 설립자다- 단지 주관적 마음에서 그 근원을 두지 않고 오히려 보편적 지식을 기술하는 思考內容(Denkinhalten), 즉 감각세계의 변화와 불안정성에서 벗어나서 영원히 동일하게 남아있는 사고내용을 탐구했다. 그의 스승처럼 그도 어떠한 의심의 여지가 없는 진실을 찾고자 했다. 그는 그러한 진실을 인간의 영혼 속에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지상의 제 현상에 先在해 있는 절대적 이데아 속에서 보았다. 그 이데아는 참되게 존재하는 것(Das wahrhafte Seiende)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끊임없이 동일한, 순수 개념적인 내용을 갖고, 그래서 모든 변화에서 해방되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서 플라톤은 이데아론의 창시자로서 뿐만 아니라, 객관적 관념론적인 철학의 창시자가 되었다. 이러한 철학의 사조는 후세에서도 아주 자주, 그리고 물론 다양한 수정아래 나타났다. 특히 헤겔(Hegel)을 생각하면 더욱 뚜렷하다.
헤겔의 객관적 관념론에서와 마찬가지로 플라톤의 이데아적 자연법론에서도 사실은 극단적 권위주의 국가이론이 세워졌다. 그는 모든 국민은 근본적으로 국가의사(Staatswillen)의 형성에 동참할 자격이 있다고 하는 프로타고라스의 견해를 따르지 아니하였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오히려 공동복지를 잘 아는 소수의 인간집단이 있으며, 이들이 무식한 사람들을 강제력에 의해서도 지배해야만 한다. 그러나 트라쉬마코스가 생각한 것처럼 그 강제적 지배가 무식한 사람들을 해쳐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신이나 영원한 것에 의해 지배되는 것이 모든 사람을 위해 좋은 것이기 때문이며, 그래서 기꺼이 그러한 지배는 자기 자신의 정신에 의해 속한 것이지, 자기의 영역을 벗어난 외부적인 것에 속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
서 플라톤은 善을 위한 강제는 의사가 환자의 치료를 위해 강제하는 것이 허용되는 것처럼, 도덕적으로 정당하다고 가르쳤다. 이러한 그의 사상이 그의 자유개념과 어떻게 합치될 수 있느냐는 물론 또 다른 문제이다. 그러나 플라톤에게는 민주주의가 이상적 국가형태가 될   수 없고, 귀족제나 군주제를 선호했다는 점을 인정해도 좋을 것이다.
이데아 그 자체처럼 국가의 이데아도 변화될 수 없고 진정한 법적인 존재이며, 따라서 완전하고 불변의 지식의 대상이다. 그 점을 플라톤은 “정치가”에 관한 대화편의 말미에 법률과 식견(Gesetz und Einsicht)을 서로 관련시킨 곳에서 뚜렷하게 보여준다. “법제정 기술은 왕의 기술에 속한다는 것은 어느 정도 이제 확실하다. 그러나 가장 좋은 것은 법률이 권력을 잡는 것이 아니라, 통찰력이 있는 왕이 권력을 장악할 때이다. 무엇 때문에 그래야 하는
이유는, 법이라고 하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대하여 정의롭고 가장 잘 수긍될 수 있는 것인지를 정확하게 파악될 수 있게 하는 것은 아니고, 그 결과 실제로 최선의 것을 명령할 수 없기 때문이다”. 플라톤은 법률을 불신했으며, 이데아가 근본이 된 자연법에만 몰두했다. 그래서 이미 그는 후세에 특히 신스콜라학파가 열심히 다루었던 문제, 즉 “정의라고 하는 것이 정당하기 때문에 신으로부터 사랑을 받는 것인지, 아니면 그것이 신으로부터 사랑을 받기 때문에 정당한 것인지”라고 하는 문제를 제기했다. (그에 대한 물음에) 플라톤은, 예를 들면 후세의 파울루스와는 다르게, 전자의 의미에서 대답했다: 즉 그의 이데아적 자연법의 관점에서 내린 확실한 결론은, 신이 세계의 입법자(Gesetzgeber der Welt)가 아니라는 것이
다. 그는 노년기의 저작인 “노모이”(nomoi)에서 또한 평등성의 문제를 분석비평하여, 이미 위에서 언급한 소피스트에 관해서 언급한 학설인 정의라고 하는 것은 산술적 평등이 아니라 비례적인 평등(비례성, 유추)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학설을 발전시켰다. 그러나 이 이론의 참된 지도자는 아리스토텔레스이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기원전 384-322)에 와서야 그리이스의 자연법론이 그의 꽃을 피웠다. 플라톤의 20년간 제자였던 그는 플라톤의 이데아철학을 받아 들였으나, 이 철학을 결정적인 점에서 개량하였다. 다음 두 가지 점이 특히 그랬다. 첫째 하나는 플라톤의 이데아를 자연개념(Naturbegriff)에 결합하였고, 이를 통하여 그는 이데아적 자연법론의 참된 창시자가 되었다. 다른 하나는 모든 존재하는 것에서 형상과 질료의 통일체를 보았다. 그는 이들 둘을 “자연은 항시 어떤 대상이라는 현실성의 완전한 형상이다”라는 가설에 결합시켰다. 그래서 자연합치적인 것은 언제나 사물의 가장 좋은 상태라고 보았다. 그에게 있어서 이때에 자연이라는 것은 가치평가적으로 이해되는 것이고, 단순히 경험적으로 이해되는 것이 아니었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는 자연적 정의와 법률적 정의의 구별은 자명한 것이었다. 그러나 예전 사람들의 견해와 달리 그는 법률의 완전성과 그의 불가침적 타당성에 관하여 의문시했다. 이미 그는 (오늘날 우리가 다시금 배워야만 했던 것인) 부당한 법률 또한 사실상 존재할 수 있음을 알았다. 그래서 그는 그러한 ” 법률상의 불법”을 형평성(Billigkeit)에 의해서 교정되어져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소크라테스에 의해서 절대화한 법적 안정성이 여기서 다시금 이성적 척도에 의해 제한되었다.
또한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처음으로 자연법과 실정법의 定義를 발견할 수 있다. 그에 따르면 “국가의 법(Das Recht der Polis)은 자연법과 실정법으로 분리된다. 자연법이라고 하는 것은 그 법이 인간에게 좋게 보이든 그렇지 아니하든 관계없이 언제나 동일한 효력을 갖는 그러한 법이다. 실정법이라고 하는 것은 본래 그 내용이 정해져 있지 않으나, 한번 법률에 의해서 확정되면, 일정한 내용을 갖게 되는 그러한 법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또한 자연법을 국가의 법, 즉 정치적 법이라고 부르고, 그렇게 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폴리스, 즉 국가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보기에는 모든 사람과 구성원 공동체의 도달목표였다. 왜냐하면 국가만이 자급자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주 인용되는- 본래 국가형성적, 즉 정치적 동물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니코마코스 윤리학 제5권에서 오늘날 아직도 정의문제에 대한 모든 진지한 숙고의 출발점을 삼는 정의론을 전개하였다. 정의의 핵심(그것은 객관적 정의로서 법의 지도원리로 이해되는 것이지, 도덕적 주관적 정의로서 이해되는 것이 아니다)은 평등이다. 그러나 아주 후세에, 예를 들면 칸트에게서는 평등을 형식적 혹은 수적인 평등으로 이해된(동등한 것은 정확히 동등한 것으로 보답되어야만 한다. 목에는 목, 피에는 피, 이에는 이) 반면에, 아리스토텔레스는 평등을 비례적, 기하학적 유추적 평등으로서 옳게 이해하였다. 그는 주장하길, “평등한 것은 너무 많은 것과 너무 적은 것 사이의 중간이다. ··· 평등한 것이 중간적인 것일 때, 법도 또한 중간적인 것이다. ··· 법은 그에 따라 어느 정도 비례적인 것이다. ··· 왜냐하면 비례적인 것은 중간이며, 정당한 것은 비례적이기 때문이다”(우리가 아리스토텔레스의 뜻을 해석한다면 살인행위의 형벌과 절도행위의 형벌사
이에는 정당한 비례관계가 있어야만 한다고 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면 정의라는 것은 살인 : 절도 = 무기형 : 1년 징역이지, 살인자의 사형과 절도범의 절취행위 근절이 아니다). 조화로운 비례관계를 설정하기 위해서는 비교 점으로서 척도, 즉 유추가 요구된다. 이러한 척도를 아리스토텔레스는 “어울리는 것”(Wurdigkeit)이라고 이름지었다. 이렇게 해서 정의문제의 핵심점 뿐만 아니라, 그 전반적 문제점에까지 언급되어진 것은 명백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의를 두 가지로 구분하고 이들 두 종류의 정의에는 두 가지 상이한 형식으로 된 평등성이 명백하게 나타나게 했다. 즉 평균적 정의(iustitia com- mutativa)와 배분적 정의(iustitia distributiva)가 그것이다. 전자는 본래 불평등한 것 아래서 정의이고, 그러나 무엇보다 법률 앞에서 평등한 것이다(아리스토텔레스는 이 평균적 정의를 부르길 “바르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평균적 정의는, 법에 의하여 평등하게 하는 것 아래서 급부와 반대급부(상품과 가격, 손해와 배상)에 대한 절대적 평등성을 의미한다. 그러한 평등은 양당사자간의 계약에 의해서나 교환이라는 私的 關係에서 잘 볼 수 있다(그래서 교환적 정의라고도 부른다). 이에 반하여 배분적 정의는 다수 개인을 다루는데 있어서 관계합치적 평등을 말한다. 즉 상응하는 가치, 능력, 필요성이라는 척도에 따라 권리와 의무의 분배, 예컨대 다양한 수입정도에 따라 상이한 세금부과나 혹은 근무연한과 능력이라는 관점아래서 공무원의 상이한 급료지급. 분배적 정의는 후세의 키케로의 견해에 따르면 소위 “각자에게 그의 몫을”(suum cuique tribuere)이라는 원리와 같은 뜻이다. 배분적 정의는 정의의 原形(Urform)이다. 왜냐하면 私法上의 평균적 정의는 배분적 정의라는 公的作用(offentlicher Akt), 예컨
대 법률행위능력과 같은 일정한 신분의 부여(Zuteilung)와 법률거래(Rechtsverkehr)에 참여한 법률주체의 동등한 취급(차별적 취급, 예컨대 어린이, 미성년자, 성년자를 다르게 취급하나, 그들 각각은 그 자체를 물론 다시금 동일시 취급한다)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여기 圖表 1에서 또한 합법적 정의(iustitia legalis)라는 제3의 정의가 고려되어진다. 그러한 정의를 이용해서 토마스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식의 圖式을 완성했다. 이를 통해서 전체에 대한 개인의 사회적 의무가 나타나게 된다. 소크라테스는 이러한 종류의 정의에 대한 아주 좋은 예를 보여 주었다. 오늘날에도 그러한 사상을 독일 기본법 제14조 제2항에서 볼 수 있다: “소유권은 의무를 가진다. 그의 행사는 동시에 공공의 복지에 기여해야 한다”.
정의(iustitia)
(좁은 의미에 있어서 정의: 평등원칙)
사회(societat)
배분적 정의                           법률적 정의

A1      A2      A      B1      B2      B
교환적 정의(iustitia commutativa)
개별적 인간 。—————————–、 개별적 인간
평균적 정의(교환적 정의)
정의
법률적 정의            배분적 정의            교환적 정의
+———-+————++———+———–+
사회적 정의             개인적 정의
(公法)                    (私法)
+————+———-+
(노동법, 사회법 등등)
정의의 다한 형식을 예컨대 오늘날의 형벌이론에서도 그 모습을 뚜렷하게 볼 수 있다. “절대적 형벌이론”의 의미에서 형벌을 응보(책임의 균등)로 파악할 때에는 평균적 정의에 관한 것이 된다. 즉 책임과 형벌사이의 절대적 균등(그래서 칸트는 특히 “살인한 자는 죽여야만 한다. 여기서는 정의를 충족시키기 위해 어떠한 것도 대신할 것은 없다”고 강조했다). “상대적 형벌론”의 의미에서는 그에 반하여 형벌의 본질을 소위 재사회화에 두고 있기 때문에, 이때에는 배분적 정의와 합법적 정의에 관한 것이 된다. 즉 의무의 부담과 이행 그리고 또한 장래의 사회적 손해를 예방하고, 범인을 사회의 동등한 구성원으로 다시금 회복시키기 위한 권리의 보장이 그것이다.  두 번째 도표는, 우리가 만일 정의의 이념에서 본다면 公法과 私法사이의 순수한 구별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준다.
5. 스토아 학파
우리가 순수하게 역사적 탐구만 한다면, 아리스토텔레스 이후의 다양한 경향과 학파들을 모두 다루어야 할 것이다. 즉 소요학파, 견유학파, 에피쿠로스파, 회의학파, 신플라톤주의, 플로틴학파, 아테네학파, 알렉산드리아학파 그리고 그 외 다수. 그 시대의 철학학파 중에서 역사적 관점에서 오늘날 의미가 있는 학파는 스토아학파(창설자는 제논)이다. 왜냐하면 이 학파는 고대의 자연법에서 중세 그리스도적 자연법으로 넘어가게 한 가교를 놓았기 때문이다. 스토아학파의 학자 개개인은 물론 꽤나 상이한 학설을 주장했으면서도 스토아학파는 기원전 400년부터 기원 후 200년까지(에픽테트와 마륵 아우렐) 지속되었다. 그런 중에서도 스토아학파 나름의 통일적 근본사상이 존재하며 그리고 이것 자체를 스토아학파라고 부른다.
스토아학파의 융성을 통하여 철학사상은 도시국가의 영역으로부터 점차 벗어나서 世界理性으로 되었다. 즉 철학이 로마제국과 접촉하자 로마제국 내에 널리 퍼지게 되었다. 스토아학파는 “노모스(Nomos)”라고 부르는 법을 神의 法으로서 모든 인류를 위하여 본래부터 성립되어 있는 법이라고 보고, 그 점에서 자연에 속하지 않고 단지 제한된 영역에서 효력있는 인위적 법과 다르다고 생각했다. 키케로(기원전 106년부터 43년까지)는 스토아학파의 이러한 포괄적 자연법사상을 웅변적으로 표현했다: 진정한 법은 올바른 理性에서 나타나며, 그 올바른 이성이라는 것은 자연과 일치하고, 모든 인간에게 공통적으로 존재하고, 계속적으로 존속한 확고한 것이고, 요구를 통해서 의무를 불러일으키고, 금지를 통해서 범죄를 범하는 것을 두렵게 한다. ···이러한 법의 적용범위를 제한하는 것은 신의 법에 저촉되며, 그런 법을 부분적으로 해제하는 것도 용납되지 않으며, 또한 완전히 없애버려서도 안 된다.
우리는 원로원이나 국민의 의사에 의해서도 이러한 법의 구속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런 법은 로마나 아테네에서도 서로 다를 수 없고 오늘날이나 후세에서도 달라서는 안되며, 그러나 국민 모두가 모든 시대를 초월하여 이러한 종류의 법을 영원하고 불변의 것으로 이해하여, 말하자면 그것은 모든 것 위에 군림하는 공동의 교사요 지배자이다: 이러한 법에 복종하지 않는 자는 처벌의 두려움에 쫓기게 된다. 왜냐하면 그가 인간적인 자연(men-
schliches Natur)을 거역한 때에는 그에 대해 중한 벌을 당하기 때문이다 ··· . 이것은 아름다운 말씀일 뿐 아니라, 매우 실제적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은 예컨대 노예문제에서 매우 명백히 나타났다: 노예제도는 자연법에 반하는 것으로 비난받아야 된다. 왜냐하면 모든 인간은 그 본성에 따르면 자유스런 존재다(이미 Chrysippos가 그 점을 지적했다)라고 한 사상은, 중세의 토마스 아퀴나스조차도 農奴制度는 자연법적으로 정당하다고 보았던 점을 고려한다며 중세를 훨씬 뛰어넘는 사상이기 때문이다.
이미 소크라테스가 그렇게 했던 것처럼 스토아철학자들(특히 키케로)도 자연법은 인간에게 “내재한 법”(lex indita)으로서 천부의 것이라는 사상을 따랐다. 세네카(Seneca, 기원 후 약1-65)는 상호연대적 자연이라는 기반 위에서 모든 인간은 서로간에 친척이며, 그 결과 이웃사랑이 뒤따른다고 강조했다. 이와 유사하게 에픽테트(Epiktet, 기원 후 50-138)도 理性의 기반 위에서 인류사랑과 세계시민을 가르쳤다. 그는 이성 안에 종교적 경건심이 고정되어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인간을 오직 국가 형성적 실체뿐만 아니라, 사회적이고 “자비심이 깃든” 실체로 파악했다.
스토아학파에 의하여 그리이스 철학은 로마철학에 유입되었다. 이미 위에서 언급한 정의의 기본사상을 담는각자에게 그의 것이라는 공식은 키케로에 의해서 세워졌다. 키케로의 영향아래 로마에서도 만민법이 성립하였다. 이 법은 오늘날의 의미에서 국제법은 아니고, 오히려 자연법으로서, 즉 모든 인간에게 적용되어 로마시민이거나 외부인이거나 자유인이거나 노예를 막론하고 평등하게 적용되었다. 그 당시에 세계국가였던 로마에서는 그와 같은 포괄적인 법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왜냐하면 후기 로마법률가 울피안(Ulpian)은 스토아식의 자연법 개념을 동물의 세계로까지 확대하였다: “자연법은 모든 동물들에게 알려진 본성(natura)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자연법은 인간의 특성에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하늘과 땅과 바다에서 태어난 모든 동물들에게 있는 특성이기 때문이다”(Ius naturale est, quod natura omina animalia docuit, nam ius istud non humani generis proprium est, sed omnium animalium, quae in caelo, quae in Terra, quae in mari nascuntur). 아마 오늘날 우리도 생태학적 학설의 영향아래 이러한 견해에 다소간의 이해를 하게 되었다.
여기서 결론을 내린다면, 스토아학파에서 “올바른 법”에 대한 물음은 그러나 명백히 주관적 경향을 가졌다는 점이다. 올바른 법을 우주의 자연이라는 외부세계에서 찾는 것도 아니고, 초월적 이념의 세계에서 찾지 않고, 자기 자신의 가슴이라는 내부세계에서 찾고자 한다. 자연법문제의 더 큰 발전을 위해서 이 같은 전환은 큰 의미를 갖는다. 물론 “올바른 법”이 “자연” 속에 어느 정도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 진행과정 속에서 발생하는 것이라는 원리에 대한 방법론적 반성이 나타나게 될 때까지 수백 년이 소요되었다.
Ⅱ. 중세의 법철학
1. 고대로부터 중세로의 전환
위에 언급한 바와 같이 고대에서 중세로의 전환이 점차 이루어졌다. 그리스도철학과 자연법론은 새로운 사실이 아니고, 고대의 유산없이는 그것은 감히 생각할 수도 없었다. 主知說과 主義說사이의 해묵은 싸움은 수백 년간 토론을 지배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플라톤의 입장에 가까웠고, 토마스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입장에 가까웠다. 우선 파울루스에 관해서 살펴보면, 그에게서는 스토아철학의 영향의 흔적을 아주 명확하게 볼 수 있다.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새로운 법”을 주셨고, 그런 법을 갖고 있지 않은 이방인조차도 그 법을 지킬 수 있다. 그 이유는 그 법은 그들 이방인의 가슴속에 쓰여져 있기 때문이다. 키케로가 이미 가르친 자연법은 누구에게도 인식가능하며, 그리고 누구도 착오에 기했다고 변명할 수 없다.
2. 아우구스티누스
고유한 그리스도철학, 즉 새로운 복음과 그리이스 유산과의 의식적인 결합은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354 – 430)때에 와서야 비로소 고대와 중세사이의 제2차 전환의 철학과 신학이 시작되었다(그를 “최초의 그리스도 실존철학자”라고 부른다). 그는 플라톤으로부터 이데아설을 받아 들였으나, 플라톤에서 특유한 “세계”를 갖는 이데아(이데아 세계)를 신의 정신으로 바꾸었다. 아우구스티누스적 “영원법”은 신의 이성이나 혹은 신의 의사와 일치한다(“lex vero aeterna est ratio divina vel voluntas Dei”). 그 법은 신 자체처럼 영원하고 불변한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영원법”의 개념을 스토아철학으로부터 넘겨받았다. 스토아학파의 입장과 다른 점은 스토아학파에서는 “영원법”은 “자연법”에 일치하였으나,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연법”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였다: 자연법은 인간의 의식 속에서 영원한 신의 법의 복제이나 “영원법”은 밀랍 속에 복제된 거울의 상이, 그 거울 자체인 점에서 자연법과는 다르다. 이러한 像은 물론 정욕에 의해서 흐려질 수 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그 점을 알다시피 자기 스스로 체험했으며, 그리고 여기서 아마도 그 자신의 체험이 그의 주의주의(플라톤)와 인간의 자유에 관한 그의 심리학적 학설을 세우는 데 깊은 뿌리가 되었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意思만이 도덕적으로 가치있다. 왜냐하면 悟性이 아니라, 意思가 인간을 인간되게 만든 본질적 힘이기 때문이다. 意思 속에 모든 惡이 뿌리내리고 있으며, 그 惡으로부터 인간은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 자유로워질 수 없고, 신의 은총에 의해서만 자유가 가능하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와 같은 입장을 지녔고, 그 입장에 따라서 요구(Gebote)를 충족하기 위한 자유는 신
의 순수한 은총에 의한 선물이라고 보았다. 이 같은 사상은 펠라기우스(Pelagius)와의 논쟁 속에서 발전되어 갔다. 펠라기우스는 아우구스티누스와는 달리 자유는 인간의 자연적 본질에 속하고, 그러므로 (그런 자유를 행사하기 위해서는) 단지 보조적 은총의 도움이 필요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죄에 의해서 제지당한 자유의 행사가 촉진되어진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논쟁은 수백 년 후에 “법과 복음”에 관한 종파간의 다툼에 적지 않은 역할을 하였다.
“자연법”은 인간의 의식이나 정신 속에 있는 “영원법”의 모사이며, 아우구스티누스가 말한 “자연의 빛”(lumen naturale)이다. 제3의, 즉 가장 아래의 법단계는, “일시적 법”으로 그 법에 의해서 인간인 입법자는 특정시대에 요구와 금지되는 그것을 정한다. 이러한 실정법은 그러나 그것이 “영원법”에 의해 지지를 받을 수 있을 때 한해서만 구속적이다. 정의가 없는 국가도 역시 큰 절도범단체와 다를 바 없는 것처럼, 부당한 “법”은 법이 아니다.
법에 대한 이러한 위계질서는 다시금 “영원법”의 내용에 대한 의문을 결정적으로 낳게 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그 점을 창조질서에 돌렸고, 오랫동안 이러한 대답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이와 같은 그리스도 믿음이 법의 내용에 대해 최근까지 결정적 역할을 하여 왔다. 중세의 上代, 즉 토마스 아퀴나스에서 이러한 그리스도적 자연법이 그 절정을 이루었다. 여기서 우리는 8백년이라는 엄청난 시차를 뛰어 넘는 그에게 관심을 돌리고자 하나, 잊어서는 안될 것은 여타의 교부신학자(즉 Johannes Duns Scotus, Anselm v. Canterbury, Bernhard v. Clairvaux, Averroes 그리고 Albert der Große)들도 신학과 일반철학뿐만 아니라 법철학(법철학은 그 당시 그리고 오랫동안 자연법론과 거의 동일시되었다)을 촉진시켰다. 그러나
여기서는 문제사적 방향만을 추구해야 하므로, 그들에 대한 탐구는 그만두고자 한다.
3. 토마스 아퀴나스
이 책의 맨 처음 章을 읽은 독자는 초기 스콜라철학은 다시금 객관주의와 존재론을 주장하는 시대였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철학이 다시금 아리스토텔레스 사상 쪽으로 기울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von Aquin, 1225-1247)는 아주 뛰어난 그리스도인인 아리스토텔레스이다. 그는 법의 3단계구조인 “영원법”(vel divina: 신정법), “자연법” 그리고 “인정법”(vel positiva: 실정법)을 전통으로부터 넘겨받았다. 그러나 그에게 있어서 자연은 -아우구스티누스와는 달리- 영혼의 주관적 법이 아니라, 객관적인 量(Große)이었다. 토마스는 아리스토텔레스적 實在論을 받아 들여, 가치와 현실성이 서로 괴리된 것이 아니고, 당위와 존재는 일정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보았다: 그 유명한 콜라 공리인 가치와 존재는 서로 호환된다(bonum et ens convertuntur). 왜냐하면 비록 인간은 물론 매우 불충분하고 불완전하나, 엄격히 보면 통찰력 있고 진실하여 그의 이성을 통해서 가치 있는 것 속에서 존재하고 있는 것을 知性으로 인식할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자연법에 어긋나는 人定法이 효력이 있는 지에 대한 물음에 토마스는 “불법은 전혀 법이 될 수 없다”는 아우구스티누스의 말로 대답을 대신하면서 부언하길, 자연법에 어긋나는 그러한 법은 “썩은 법”(legis corruptio)이라고 했다. 그러나 어떻게 그와 같은 어긋난다는 것을 확정할 수 있을까? 혹은 실증적으로 표현하여 인간의 이성은 자연법과 인정법의 차이를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토마스는 그 점에 관해 상술한 곳에서 대답하면서 2가지 종류의 찾는 방법을 제시했다: 단순한 추론, 즉 논리적 결론의 형식에 의해 이끌어 내는 것(예를 들면 “누구도 침해해서는 안 된다”라는 근본원칙으로부터 형법상 금지하는 대부분의 행위가 나온다)과 자세한 규정, 즉 결정의 형식에 의해 찾아내는 것(예를 들면 “범죄는 처벌해야 한다”라는 자연법규범은 부과할 형벌의 종류에 관하여 실정법에 의해 구체화된다)이 그것이다. 이에 따라 경험적 현실성이 없어도 우리는 순수하게 연역적 방법으로 실정법을 찾을 수 있다고 보았다. 즉 당위는 항상 보다 더 높은 당위에서만 끄집어 낼 수 있다라는 주장은 특기할 만한 일이다. 물론 오늘날에도 그와 같은 웅대한 착각이 없지 않지만(켈젠을 보라!). 물론 실제로는 (당위에) 경험이 첨가되어졌고, 의식되지 않는 사이에 가치와 현실의 혼합이 꽤나 깊이 이루어져 있다(20세기에도 존재와 당위의 완전한 구별을 하려는 것은 이와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스콜라철학은 진리의 내용, 즉 啓示의 내용을 찾는 데 두지 않고, 교리적이고 권위적 위엄을
갖는 일정한 확립된 형식적 교리에 더 중점을 두었다. 그래서 이런 식의 진리는 이성의 방법에 의해서, 즉 근거와 반대근거의 비교형량을 통해서 논증적으로 확고히 세울 수 있고 또한 자세히 설명될 수 있다고 보았다: 나는 믿기 때문에 안다(credo ut intelligam). 전래해 온 신앙에 대한 畏敬心은 논리적 사고와 밀접히 결합됐다. 즉 학문의 방법론상의 엄격성이 중세에 넘쳐흘렀던 종교적 생활양식과 결합하였다.
아퀴나스의 자연법론을 제대로 평가하려면, 그가 어떤 하나의 권위에 의해서 “제정된” 추상적·보통법과 “실행되어지고” “선고되어진” 구체적·개별적 법(그는 이것을 “actio iustitiae”라 불렀다)을 아주 명확히 구별한 점을 인식해야 한다. 최고의 자연법칙은 모든 보편적 기본규범을 포함한다: 선을 행하고, 악을 피하라. 이성에 맞게 행동하고, 그밖에 인간의 자연적 성향의 질서에서 발생하는 그러한 자연법익의 요구를 행하라: 즉 자기보존의 본능으로부터 살인금지, 종족보존의 본능으로부터 결혼과 유아양육의 요구, 理性的 능력과 사교적 경향으로부터 진실을 말하고 다른 사람을 해치지 말라는 요구가 나온다. 이런 모든 것들은 자연법칙에 관한 것이며 자연법칙은 근본적으로 모든 것에 대해 언제나 타당하다. 이에 반
해 자연법은 바로 여기 그리고 현재를 위한 법규의 구체적 형성에 의해서 비로소 성립한다. 즉 그것은 자연법이 역사적 법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인간의 본성(우리가 보충을 한다면, 구체적 본성)은 변하기 쉽다고 토마스는 말하기 때문이다. 오직 이러한 의미에서, 즉 그러한 “2차적 자연법”의 의미에서(토마스는 이러한 표현을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그러나 그는 신토마스학파의 창시자다), 아퀴나스의 자연법에서는 노예제도가 당연시되긴 하지만, 그러나 영원불변의 법의 의미에서 당연한 것은 아니다라는 점은 옳은 말이다. 확실히 토마스는 법의 역사적 현상을 매우 불충분하게 파악하고 있지만, 그러나 그가 말한 구체적 자연법은 후세 계몽기 시대의 합리적 자연법의 경우처럼 결코 절대적 성격을 갖는 것이 아니다는 점을 무시해서는 안될 것이다.
상술한 것처럼 토마스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 추종자다. 아우구스티누스에게서는 “영원법”이 理性에서 연원한 것인지, 아니면 신의 의지에서 나온 것인지가 확실치 않다(각주 79에서 인용한 것을 참조). 토마스는 그러나 그 점에 대해 主知的 입장을 분명히 했다(그 때문에 그의 神은 어떤 의사도 없다는 그의 주장에 우리는 반대한다). 이러한 주지주의에 일치하는 것은 惡이 意志에 그 책임을 돌릴 때가 아니라, 理解에 돌릴 때이다. 즉 의지에 의한 실수는 언제나 이해의 실수에 기인한다. 인간행위에 대한 판단의 最高 審判은 두 가지 단계로 형성된 양심(Gewissen)이다: 자연법칙의 最高 命令을 理性에서 주어진 인식능력으로서 양심(Synderesis: 이것은 잘못을 범할 수 없다)과 각 개별적 사안에 대한 이러한 규범을
매개하는 능력으로서 양심(Conscientia: 이 때는 실수가 가능하다). 파울루스와 키케로와는 달리 토마스에서는 행위의 요구규범과 금지규범에 관련해서 면책적 착오가 가능하다고 본 것은 최고로 중대한 결론이다(독일형법 제17조의 금지착오에 관한 규정은 토마스적 사상 덕분이다). 토마스는 심지어 책임 없는 착오에 기한 양심을 의무가 깃든 효력 있는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에 양심상 실행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여겨지는 惡을 행하지 않는 자는 죄를 범하였다는 결론을 토마스 자신은 두려워하지 않았다. 여기서 오늘날도 중요한 현실성을 갖고 있는, 예컨대 확신범, 전제군주살해와 저항권 등의 다양한 문제가 나타난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러한 문제들을 그의 짧은 생애동안 깜짝 놀랄만한 방대한 작품 속에 모든 것을 다루었다. 여기서 더 깊은 연구를 불러일으키는 이러한 암시로 끝을 맺고자 한다.
4. 스콜라 철학의 말기
스콜라 철학의 말기는 물론 이미 요한네스 둔스 스콧투스(Johannes Duns Scotus, 1266-1308)가 토마스주의에 대하여 날카로운 비판을 가할 때부터 잉태하였으나, 빌헬름 폰 옥캄(Wilhelm v. Ockham, 약1300-1500)에서 시작되었다. 옥캄은 특히 唯名論을 역사상에 새롭게 불러 일으켰다. 이 학설에 따르면 단지 개별적인 것, 특별한 것만이 존재하고, 그러나 일반적인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본다. 이러한 견해에 따르면 보편적인 것(“universali
a”)들은 (대체로 그 자체 존재하는 이념으로서) “논쟁 前”(ante ren)에 있는 것이 아니라, “논쟁 후”(post rem)에 단지 思考하는 정신 속에서 형성된 개념(唯名: “nomen”)으로서 남는데 불과하다고 한다. 이미 고대에서 그 뿌리를 갖고 있는 이 보편개념의 문제는 스콜라철학
후기에 강렬한 논쟁의 대상이 되었고, 오늘날에도 그런 성향이 남아 있다.
유명론에 따르면 실제로 존재하는 보편적 자연법칙은 없다(또한 자연과학도 없다. 왜냐하면 여기 “자연법칙”이라고 부르는 것은 단순히 학문상 일반화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단지 주관화된 (이념상의) 자연법론만이 존재하고, 그 자연법론도 자연법을 존재하는 것 혹은 先在하는 것으로 보지 않고, 단지 “이론정립”을 위한 것으로 보았다. 그와 같은 “자연법”이 실정법에 희망 없는 존재이고, 제정법에 대항하여 -예를 들면 썩은 법(lex corrupta)에 대항하여- (정의를) 실현할 기회도 없다는 것은 명백하다. 유명론은 그래도 언제나 실정법의 독자지배를 위한 학설인 실증주의의 이정표이자 반려자였다.
옥캄의 학설은 루터(Luther, 1483-1546)의 종교개혁에도 길을 터 주었다. 자연법에 대한 루터의 견해는 물론 근본적으로는 스콜라적이었다. 구약의 시편의 해설서에서 “자연법”에 관해, 우리의 가슴에 쓰여져 있는 “자연의 법”을 언급하고, 모세의 십계명도 그 자연의 법과 일치될 때에야 비로소 그리스도인을 구속한다고 보았다. 로마서의 주석서에서 우리의 자연에 관한 자연법은 선과 악의 끊을 수 없는 증거로서 각인 되어졌다고 했다. 그러나 그가 토마스 아퀴나스처럼 인간이 선과 악을 구별하는 능력이 있다고, 다시 말하면 신의 계명이 모든 인간의 가슴속에 쓰여져 있다고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가슴은 악마에 의해서 흐려져 있어, 인간은 신의 계명을 보 수 없어 인식하지 못하게 되고, 그 결과 인간의 가슴은 “완전히 어둠 속에서 헤어나지 못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이러한 이유로부터, 즉 루터에 따르면 인간의 본성은 인간의 타락으로 완전히 썩어졌기 때문에 인간은 그 자력으로 올바른 것을 인식할 능력이 없게 되었다고 보았으므로, 그는 3단계법론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영원법”과 “인정법”사이에, 신의 제국과 인간의 제국사이에 어떠한 법적인 연결다리도 없으며, 단지 있다면 신의 동정 어린 은총에 의한 신의 배려가 있을 뿐이다. “인간의 유한한 인식능력”(lumen naturale)은 꺼져버리고, 신의 은총에 의한 것 이외에는 인간은 아무 것도 인식할 수 없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자유”(Freiheit eines Christen- menschen)는 법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유일하게 복음에 근거한다. 그것은 “모든 죄와 법 그리고 계명으로부터 자유롭게 하는” 자유이다.
교부철학과 스콜라 철학에 있어서 俗世法이 “영원법”에 부분적 참여를 통해서 갖고 있는 신성한 효력을, 루터와 그의 정신적 후계자들이 생각한 속세법은 더 이상 갖지 못했다. 신성한 효력이 없는 단지 사실상의 “속세법”만이 존재하였다. 루터는 그의 이중제국설로, 교회법을 포함하여, 법도 또한 완전히 속세의 관청의 권한 사항으로 보았다. 물론 그는 속세의 법질서에서 우리가 살아가야 될 세계는, 비록 우리가 살지 않는다 할 지라도, 잠정적이고 의문투성이의 세계일 뿐이고, 진실한 세계는 복음의 세계인, 사랑의 제국이라고 보았다(톨스토이를 생각해 보라!).
그러나 속세의 관청인 국가에 법을 이양함으로써, 기본적으로 이 법을 비평할 모든 가능성은 없어져 버렸다. 루터는 “인간이 속세의 관청에 어느 정도 복종해야 할 책임이 있느냐”하는 문제를 강력하게 제기하였고, 그의 일생동안 저항권의 문제와 씨름하였다. 이러한 그의 근본사상으로부터 그는 惡法에 대해서도 복종의무를 긍정해야만 했기 때문에 적극적 저항권을 부정했다. 그러나 그가 그것(저항권의 부정)을 철저히 관철시키지 못한 것은 그의 위대성을 나타낸다. 우리가 최근의 역사를 올바르게 평가하려면, 우리는 계속해서 이와 같은 프로테스탄트적 법전통을 고려해야만 할 것이다. 그래서 구스타프 라드부르흐는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종교적 태도에 중요성을 두는 것과는 반대로, 법에 대한 신성한 효력부재와 법의
실체결여 그리고 법이 보잘것없다는 점의 강조는 한편으로 절대적 영주지배의 발전에 결정적으로 기여했고, 다른 한편으로 -정치적 실체의 결여 결과 그 지위를 전혀 인정받지 못한- 정치에 대한 독일인의 무관심을 낳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 고도의 신성한 효력이 없는 법이 어디로 가는가를 우리 모두가 체험했다. 카톨릭(그리고 개신교 내에서, 즉 칼빈파도)이 법에 종교적인 근거를 설정하는 것을 거부하지 아니하였던 것처럼, 이제 개신교 교회도 법에 종교적 근거를 설정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Ⅲ. 근대의 법철학
1. 새로운 철학과 학문의 이해
근대로 넘어오는 과정 중에 위에서 언급한 사상가와 사색의 방향과는 다른 많은 사상가와 사색의 방향도 근대에 영향을 미치었다는 점을 전혀 무시하고, 우리는 근대로 들어 왔다: 스페인의 후기 스콜라 학자들, 예를 들면 프란츠 수아레즈(Franz Suarez), 형이상학적 방향에서 뛰어난 니콜라우스 폰 쿠에스(Nikolaus von Kues), 마키아벨리(Machiavelli)와 토마스 모루스(Thomas Morus)의 국가철학과 그 밖의 다수 학자들. 벌써 근대에 두 발로 확실히 서 있는 자는 “근대철학의 아버지”인 데카르트(Rene Descartes, 1596-1650)이다.
근대초기에 자연과학의 힘찬 번영과 활활 타오른 초기 자본주의는 정신적 상황의 완전한 변혁을 의미한다. 근대 초기의 모든 위대한 철학자, 예컨대 데카르트(Descartes), 홉스(Hobbes), 그로티우스(Grotius), 푸펜도르프(Pufen- dorf), 스피노자(Spinoza), 또한 로크(Locke)와 라이프니츠(Leibniz)도 (그러나 칸트는 포함 안됨) 확실히 스콜라적으로 교육을 받았으나, 그러나 변경된 상황하에서 (그들의) 사색의 내용도 달라졌다(물론 후에 마르크스가 가정한 것처럼 자동적인 것은 아니지만). 옥캄이 아니라, 홉스가 비로소 진정한 “唯名論者”였다고 지적한 벨첼(Welzel)이 전혀 틀린 것은 아니다. 옥캄도 유명론자였으나, 그의 유명론은 토마스 홉스의 시대가 받아들인 것보다 훨씬 불리한 시대에 나왔었다.
데카르트는 학문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오늘날까지 학문의 최고원칙으로 남아 있는 명석하고 명확한 인식을 요구했다. 그는 우리가 “자연을 지배하고 소유”하기 위하여 구식의 “이론적”, 다시 말하면 형이상학적 철학을 새로운 “실용적” 철학으로 대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학문, 또한 철학도 지식욕의 호기심에서(토마스 아퀴나스: desiderium sciendi)가 아니라, 지배욕(프란시스 베이컨: knowledge is power)에서 우러나와야 된다. 이러한 학문의 모범은 추상화하고, 분해하고 분석하는 오성(Verstand)에, 즉 이해의 능력에 능통하는 것에로 근본적인 제한을 요구했다. 그 점에서 인식의 종합과 통일을 목적으로 하는 최상위의 인간정신의 수행방법으로써, 즉 개념파악의 능력으로서 이성(Vernunft)과는 구별된다. “이성”의 시대는 오성의 시대다. 즉 합리주의시대다. 왜냐하면 인식활동의 “합리적” 연역만이 자연의 지배를 가능케 했다(어떠한 지배가 있었는지, 우리는 그 사이에 확인한 바 있다). 그리고 감각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것, 즉 경험적으로 주어진 것만으로 오성은 작업을 할 수 있으나, 초경험적인 것, 형이상학적인 것, 또한 이념, 즉 법이념도 오성의 영역밖에 놓여 있기 때문에 결국 사람들은 도대체 그와 같은 것이 존재한다고 믿을 수 없었다. 그래서 이 계몽주의시대에서는 인간의 意思, 느낌, 체험(Erleben)이 무시되고, 그것들은 심지어 사변적인 것이라고 하여 학문과 철학에서 쫓겨났다. 영국의 경험론의 영향(로크, 흄)이 아직 없었다.
합리주의적 법철학에 대해서 위에 언급한 것은 전적으로 타당하다. 근대의 자연법은 완전한 합리주의적 학문개념의 영역 내에 서 있다. 여기서 이성(Ratio)은 올바른 법의 인식수단일 뿐만 아니라, 올바른 법의 원천이다. 이성은 -인간의 합리성은- 인간에게 자연적인 법규를 선물한다. 스콜라철학처럼 우주의 理法이나, 그 자체 내재해 있는 이념이나 영구법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은 전적으로 그의 인식능력에 의존한다. 권위와 전통이 더 이상 올바른 법이 무엇인지를 정하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이고 명확한, 즉 “이성적인”, 것만이 효력을 가져야 된다고 한다. 법철학은 신학으로부터 벗어나고, 자연법은 속세화 되어졌다.
“올바른 법”을 찾는 데에 있어서 방법론상 전적으로 타당하게도 인간의 “본성”에 대한 물음에서 출발했다. 즉 경험적 자연을 문제삼았지, 형이상학적 본질을 문제삼지 않았다. 이에 따라 여기서부터(즉 인간의 본성으로부터) 논리적으로 인간의 “자연적” 권리와 의무를 연역하기 위하여, 인간은 순수 사실적으로 어떠한 것인지를 규명하였다. 말하자면 그와 같은 권리와 의무는 인간의 이성이 불변인 것처럼 모든 시대와 모든 인간에게 타당한 보편적 성격을 가져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와 같은 절대적 자연법을 확립하려고 한, 모든 시도는 거의 몇 개 안 되는, 그러나 매우 추상적인 법의 근본원칙만을 제시하는데 머물고 말았던 것은 하나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여기서 이러한 시도 중에서 중요한 것을 간단히 언급하고자 한다.
2. 근대의 자연법
근대 자연법의 시조일 뿐만 아니라 국제법의 아버지로서 우리는 휴고 그로티우스(Hugo Grotius, 1583-1645)를 꼽는다. 그는 인간의 근본성향을 사회성, 즉 평화롭고 질서있는 공동생활에 대한 갈망, 다시 말하면 그와 같은 것을 사랑하는 갈망 속에 있음을 보았다. 여기에 덧붙여 인간은 육체적 본능을 초월하여 자기에게 유익한 것을 식별하고 그것을 추구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고 하면서 인간의 공동체는 그러한 식으로 理性(dictamen rectae rationis)에 의해 세워졌지, 본능에 의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리고 그로티우스는 이로부터 자연법의 최상위 원칙으로 “약속은 지켜야 한다. 다른 사람의 재산을 침해하지 말라, 남에게 준 손해는 배상해야 하며, 타인에게 폭력을 가하지 말라, 범죄행위에 대해서 형벌에 의해 응보를 받아야 된다”고 하는 등등의 규범을 도출하였다.
토마스 홉스(Thomas Hobbes, 1588-1679)는 이와 다르다. 그는 인간을 비사회적 존재, 즉 이기주의자로 보았다. 자연상태는 무제한의 자유이며, 각자는 “모든 것에 대한 권한을 가지며, 다른 사람 자체에 대하여도 예외가 없다”. 이로부터 물론 어떤 순수한 규범적 권리와 그리고 특히 어떤 의무도 이끌어 낼 수는 없다. 홉스 스스로 이런 자연상태에서 “정당하고” “부당하다”라는 이름이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나서 그의 합리주의적 논증이 시작된다. 모든 인간이 동일한 무제한의 자유를 가지면, 자연상태에서는 모든 인간에 대한 모든 인간의 투쟁이 일어나고, 각자는 타인에 대해 늑대가 된다. 각자는 그러므로 타인을 두려워한다. 이러한 이유로 그리고 인간의 본원적인 자유의 무제한의 행사가 결국 인간 자신을 파멸로 이끌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자, 가능하다면, 자유를 찾는 것이 인간에게 이성적으로 보였다. 이렇게 해서 성립된 것이 일차적 자연규칙이다: “각자는 평화에 대한 희망이 존속하는 한, 평화를 구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평화를 실현시킬 수 없으면, 그것을 위해 모든 보조수단과 전쟁의 장점을 이용해도 좋다”. 이러한 일차적 법규로부터 제2차적 자연법규가 나온다: “각자는 평화와 정당방위를 위하여 그의 권리의 포기가 필요하다고 여기는 한, 타인도 역시 그럴 준비에 있다면, 모든 것에 대한 그의 권리를 임의로 포기해야만 하며, 그리고 그가 (타인을 위해) 자신을 양보하는 것처럼, 타인에 대해 많은 자유를 양보해야 한다”. 법은 그 근본에 있어서 공포의 산물이다. 국가권력도 이러한 기초 위에 세워졌다. 최선의 국가조직은 자연법규의 요구를 가장 확실하게 수권할 수 있는 체제다. 그러므로 국가는 시민의 산산이 분산된 힘을 진압하기 위하여 시민에 대하여 무한한 권한을 갖는다(그러므로 성서상의 바다괴물인 리바이어던<Leviathan>과 비교). 국가가 이것을 할 수 있는 한에서만, 그 국가의 정당한 존재이유가 인정된다. 오늘날의 말로 표현하면, 법적 안정성의 보장(auctoritas, von veritas facit legem). 그러나 홉스는 전제정치나 독재정치를 염두에 두지 않았다. 국가가 시민을 보호할 수 없을 때, (국가에) 복종을 요구하는 권리도 끝난다. 홉스에 있어서 국가는 목적 자체가 아니다.
스피노자(Baruch Spinoza, 1632-1677)는 그로티우스와 홉스의 학설을 어느 정도 결합하려고 노력하였다. 홉스에 의해서 이미 적용된 자연과학의 수학적 인과적 방법을 스피노자는 최대한 순화시켰다. 그는 모든 합목적적 관찰(Zweckbetrachtung)을 철학에서 이끌어 내는 것을 거부하고, 오직 인과관계의 엄격한 효력을 인정했다; 그의 철학은 실체철학(Substanzphilosophie)이다. 이에 상응하여 법과 국가도 (경험적) 자연의 일부다. 모든 이성법주의자처럼 스피노자도 인간의 “자연적 상태”(status naturalis)를 묻고, 인간은 순수한 사교적인 성질도, 극단적 이기주의자도 아니고, 인간은 자연의 일부로서, 그 힘이 있는 한 그 정도의 권리를 가진다고 보았다. 그래서 “고기가 물속에서 놀고, 큰 고기가 작은 고기를 잡아먹는 것이 고기의 자연적 권리다”고 했다. 법과 힘은 동일한 것이고, 힘만이 법을 창출한다. 스피노자의 기하학적으로 증명된 윤리학은 인간행위에 대한 어떠한 규범적 槪要도 아니며, 오히려 그것은 인간의 욕정을 분석하고 설명할 뿐이다. 어떠한 당위도 있지 않으며, 단지 존재만이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힘과 법은 동일한 것이라면, 각자는 타인을 누를 수 있는 한, 그는 정당한 권한을 갖는다. 각자는 그가 주장할 수 있는 한의 소유권을 가지며, 약속에의 구속은 타인이 그것을 실현시킬 수 있는 한에서 뿐이다. 인간에게는 그들의 이성의 법칙에 따라 생활하는 것이 더욱 유익하다고 스피노자는 말한다. 인간이 합동하여 공동체를 형성할 때만 국가를 형성할 수 있으며,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각자가 계약을 침해할 수 있는 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연적 권리를 포기하여 국가에 어떠한 경우에도 종속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러므로 국가의 힘은 국가만이 공공복지를 수행할 수 있다는 시민의 이성적 식견에 기초하지, 국가의 강제력에 의거하지 않는다; 국가는 무정부와 비교해서 훨씬 적은 해약을 준다. “시민의 상태”에서 개인이 아니라 국가가 주된 권리를 가지며, 그리고 국가를 통해서만이,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악한가가 결정된다. 이것은 실증주의에 대단히 들어맞는다. 그럼에도 스피노자는 다음과 같은 논거로 실증주의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자연상태에서는 이성에 따르는 것이 가장 강력한 것처럼, 국가도 이성에 의해 세워지고 이성에 의해 수행되는 국가가 가장 강력한 국가가 된다”. 그래서 국가는 자의적 법이 아니라, 이성적 법
을 제정해야 한다.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독일에서 맨 처음 개설한 자연법과 국제법과목 담당교수인 푸펜도르프(Samuel Pufen- dorf, 1632-1694)는 홉스이래 지배해 온 일면적인 산술적 인과적 사고양식을 교정하여 “물질적 실체”와 “도덕적 실체”사이를 구별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물리학은 현상을 기술하고 설명하나, 도덕과학은 현상을 善과 惡으로 평가하거나 정의와 불의로 평가한다. 이러한 방법으로 푸펜도르프는 다시금 순수한 당위와 자유를 위한 자리를 확보했다. 자연법론에서 푸펜도르프는 그로티우스와 홉스를 결합했다. 그는 이들 두 입장을 지나치게 일면적이라고 보았다. 한편으로 인간이 이기주의자이고, 대체로 자기 자신의 이익을 꾀하고 그리고 이 때문에 타인이 자신의 이익을 침해한다고 생각한다. 다른 한편으로 인간은 너무 약하고 의지할 데 없는 존재여서 자연상태에서는 자기보존의 이유로 단체가 필요하다고 본다. 이러한 기초 위에서 푸펜도르프는 자연적 의무의 체제를 발전시켰다. 영원법, 자연법 그리고 인정법이라고 하는 예전의 3형식은 그에게 있어서 아직도 타당하다고 보았다. 그에게 있어서 결정적인 것은 그러나 자연법을 신의 법과 전히 분리하였다는 데 있다. 신에 대한 의무에서 종교만이, 그리고 자신에 대한 의무에서 도덕만이 관계한다. 법적 의
무는 공동체에 대한 의무일 뿐이며, 그 의무는 종교와 도덕적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하여 있으며, 단지 이성에 의해서만 성립한다. 법적 의무 아래에 3가지 기본적 의무를 푸펜도르프는 구별하였다: a) 누구도 타인을 해치지 말라(neminem laedere: 여기에는 소유권의 존중과 계약의 이행도 역시 포함된다); b) 각자는 타인을 동등한 권리자로 다루어라(suum cuique: 각자에게 그의 것을, 인간존엄의 존중); c) 각자는 가능한 한 타인에게 협조하라(타인을 돌봄).     법을 종교와 도덕으로부터 구별하는데 토마지우스(Christian Thomasius, 1655-1728)의 기여는 크다; 그는 자연법을 神의 法(ius divinum)에서 최종적으로 분리했다. 그의 주된 관심사는 이성의 지시에 따른 3가지 종류에 상응해서 윤리, 정치 그리고 법의 명확한 구별이었다. 윤리는 자기 자신에 대한 의무와 관계를 맺으며, 그것은 내적 명예, 즉 인간의 내적 평화에 관한 것이다(quod vis ut alii sibi faciant, tu et facias). 정치는 예의바르고 품위있는 것으로 이해한다; 그것의 척도는 “긍정적 황금률”로, 타인이 너에게 하기를 바라는 것을 타인에게 하라(quod vis ut alii tibi faciant, tu et ipsis facias)라는 것이다. 끝으로 정의로운 최고원리는 타인을 해하지 말라는 “부정적인 황금률”이다: 사람이 너에게 하기를 바라지 않는 것을, 타인에게 하지 말라(quod tibi non vis fieri, alteri ne feceris).
이전에 설명한 자연법론의 다소간 지배적인 주된 사상은 사회적 행복설과 공리주의였고, 이러한 사상은 벤덤(Jeremy Bentham, 1748-1832)에 의해서 그 절정을 이루었다. 모든 인간은 가능한 오래 그리고 행복하게 살려 하며, 모두가 다 죽음을 두려워한다.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Leibniz, 1646-1716)는 이러한 순수 자연주의적·경험적으로 지향된 법철학을 극복하려고 노력했다. 뛰어난 수학자의 한 사람이며, 컴퓨터의 시대인 오늘날에도 거의 절대적으로 그렇게 인정되고 있는 라이프니츠는 자연과학적 방법의 독점적 주장에 반기를 들고 싸웠다는 점에 큰 의의가 있다(프랑스의 파스칼도 그 당시에 아주 유사한 생각을 가졌음). 그는 가르치기를 기계학(Machanik)은 목적론에 의해 보충되어져야 한다. 물리적 세계 외에 도덕적 정신의 세계가 존재한다(Monaden). 인간의 목적은 가능한 큰 행복이 아니라, 자신을 완전히 꽃피우는데 있으며, 그것은 또한 자연법의 주된 원리로서 인정되어져야 한다고 했다.
라이프니츠는 그의 자연법론을 하나의 체계로 구성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의 제자 볼프(Christian Wolff, 1679-1754)가 그것을 해내어 그는 “윤리적 완전주의”에 관해 (고유한) 학설을 세워 발전시켰다. 그의 논거는 간단히 말해 다음과 같다. 도덕은 인간을 완전히 꽃피우게 한다. 인간은 자기 자신만에 의지하여 이러한 목표를 단지 제한적으로 달성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국가와 법질서는 인간의 완전성을 꽃피우게 하는 것을 장려해야 한다: 그것은 필수 불가결한 재산을 준비하고(sufficientia vitae), 불법의 공포에서 해방되고(tranquillitate civitatis) 그리고 외부적 강제로부터의 보호(securitate)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법은 윤리적 의무이행의 가능성이며, 우리는 계몽된 전제주의시대에 처해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 시기는 이제 계몽적 자연법을 성문법전으로 편찬하는 것이 성숙되어진 시기가 되었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볼프가 이루어 놓은 위대한 체계는 18-19세기의 자연법적 법전편찬의 길을 열어 주었다. 그 중 가장 의미 있는 법전 4개를 꼽는다면, 막시밀리안스 바이에른의 민법전(1856), 프로이센의 일반란트법(1794), 나폴레옹법전(1804), 오스트리아의 일반민법전(1811)을 들 수 있다.
이들 성문법전은 근대 자연법의 절정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의 종결을 나타낸다. 특히 루소(Jean Jacques Rousseau, 1712-1778) 때에는 이미 그의 법이론과 그리고 특히 국가학(사회계약: contrat social)에 새로운 시대가 일어날 것을 예고했다. 그로티우스로부터 볼프까지의 합리주의시대의 자연법론은 신앙이 깊은 크리스찬들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이미 위에서 언급했듯이 스콜라식으로 교육을 받았다. 단지 그들은 이러한 신앙에 의거하여 자연법을 세운 것은 아니다. 그로티우스가 말하였듯이, (무서운 죄를 범하지 않고서는 말할 수 없는 가설인) “하느님이 없다는 가정아래”(etiamsi daremus non esse Derm), 우리는 자연법에 기초를 두어야 한다. 그것이 (그 당시의) 방법적 원리였다. 그러나 점차 신의 비존재가 확신으로 변하고, 그 결과 지금까지 항시 전제된 법의 종교적 관련은 없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여기에 하나 더 덧붙여, 법이성주의자는 단지 몇 개의 선험적인 상위 명제들 -예를 들면 약속을 지켜야 한다- 로부터 경험적인 현실을, 즉 공간적 시간적인 환경을 고려함이 없이 모든 법명제를 순수하게 연역적으로 끄집어 낼 수 있다고 확신했다(그 이유는 그렇게 함으로써만이 이 모든 시대와 모든 인간에게 보편적으로 효력있는 자연법을 확보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는 경험적인 것이 선행하여, 그 결과 그 합리성으로 유명한 로마법으로부터 (법을) 빌려 왔다(법의 계수의 시대). 그렇게 함으로써 위대한 “자연법적” 법전이 편찬되어질 수 있었다.
3. 고전적 자연법의 종말
합리주의는 도가 지나쳤다. 그래서 역사적인 것과 비합리주의적인 것이 점점 더 큰 의미를 갖게 되었다. 합리주의시대와 계몽주의는 낭만주의에 의해서, 그리고 그 낭만주의와 기이하게 평행을 이루는 비판철학에 의해서 대체되었다. 그 결과 고전적 자연법의 종말이 찾아왔다.
1) 역사법학파
낭만주의라는 사조는 철학과 학문의 영역에서 역사주의로 뿌리를 내리고, 법학의 특수한 영역에서는 역사법학파로 자리를 잡았다. 역사법학파의 선구자는 구스타프 후고(Gustav Hugo, 1764-1844)였고, 그 중심인물은 사비니(Friedrich Karl v. Savigny, 1779-1861)였다. 사비니에 대해서는 나중에 자세히 설명이 있겠지만(제II장, 제3절, I), 비록 독일의 가장 중요한 민법학자는 아닐지라도, 가장 중요한 민법학자 중의 한 사람이었다; 독일의 법학이 세계적 영향을 준 것은 그로부터 시작되었다. 무엇보다 그는 현대 법학의 방법론의 창시자다. 여기서 우리에게는 하이델베르크 법학자인 티보(Thibaut)에 대한 그의 반박논문인 “法制定과 법학에 대한 우리시대의 임무에 관하여”(1814)에 대해서만이 일차적 관심이 있다. 티보(1772-1840)는 아직 합리적 자연법에 사로잡혀 있어서 1814년에 출판된 그의 논문에 독일의 일반민법의 필요성을 입증하려고 시도했다. 사비니는 그에 반대하여, 법은 이성의 산물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형성된 민족정신의 산물이라고 보았다. 자연법은 사변적이라고 보고, 철
학자의 근거 없는 自慢이라고 했다. 사비니는 불변하고 모든 민족에게 동일한 법의 존재를 부정하였다. 그 이유는 각각의 민족은 그들 고유의 개성, 즉 그들 고유의 “민족정신”을 가지며, 그러한 정신으로 법도 역시 변하여, 그 결과 법은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19세기의 진화론과의 관련은 극히 명백하다). 사비니가 법을 민족정신의 유출(Emanation)로 간주할 때, 즉 법을 일정한 역사적 문화의 높이에 기초하여 일정한 국가의 민족정신의 표현으로서 볼 , 그가 민족정신이 암암리에 형성된 힘에 의해서 굳어진 관습법을 법의 본래적인 특질을 나타내는 형식으로 보았다. 입법자는 새로운 법을 창조할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법을 규정화하고 편집만을 해야한다. 이로써 사비니는 制定法典을 반대
하는 성향을 나타냈다. 그는 근대 자연법의 합리주의를 법감정이라는 본능적 무의식에 대비하였다.
2) 칸트의 비판철학
역사법학파는 합리적 자연법을 제거하려고 사실상 노력했으나, 그러나 학문적으로 그 작업은 비판철학, 즉 칸트(Immanuel Kant, 1724∼1804)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물론 칸트의 후기작품인 “도덕의 형이상학”(1797)의 제1장에서 다룬 법철학은 상당히 무비판적이고, 근본적 점에서 합리주의적 자연법의 입장을 지지하였다(후기 신칸트학파, 예를 들면 Karl Bergborm과 Hans Kelsen은 칸트의 그 점을 비판했다). 그러나 그의 비판(철학), 특히 1781년의 “순수이성비판”(2. Aufl., 1787)에서 그는 理性法(Vernunftrecht)에 극단적 반대를 취했다. 그 이성법이라는 것이, 회고해 본다면, 그의 전체 내용을 판단해 볼 때, 이성의 -오성의- 산물이어야 하며, 출발점으로서 인간의 경험적인 본성에 기여하는 환경에 무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칸트는 증명해 냈다.
칸트는 “형이상학이 학문으로서 가능한가”를 알고자 했다. 형이상학(그것은 근본에 있어 비자연과학적임)에서 선험적 종합판단, 즉 “순수이성으로부터” 확실히 보편타당하고 우리의 앎을 확장하는(그러므로 단순한 분석이 아닌) 인식이 존재한가를 파악하는 것이 그에게 문제되었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근본적인 질문이 던져질 수밖에 없었다; “선험적 종합판단이 어떻게 가능한가”. 이와 같은 판단이 존재한다는 것을 칸트는 의심하지 않았다; 그에 대한 증명은 수학과 수학적으로 다루어진 자연과학이 하고 있다고 그는 보았다. 그러나 바로 거기서 선험적 종합판단이 만나게 되어 있다면, 그것은(즉 선험적 종합판단은) 이러한 (즉 수학적) 학문의 특별한 특성에 달려 있음에 틀림없다. 그러므로 이러한 학문들에서 칸트는 학문일반의 전형적 모형을 보았다. 그 결과 선험적 종합판단이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문제에 직면하고, 그 문제로부터, “순수 수학이 어떻게 가능하며” 그리고 “순수자연과학이 어떻게 가능한가?”가 제기되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는 “자연과학의 형이상학적 출발근거”의 서문에 언급되어 있다: “저는 모든 특별한 자연과학 중에서 수학에 관한 것에서만 그렇게 아주 다양하고 독특한 학문에 해당된다는 것을 주장합니다”. 즉 그것이 핵심사상(Quintessenz)인데, 형이상학 -또한 법학과 법철학을 포함하여- 은 그 안에 수학도 또한 포
함되지만, 학문으로서 가능하다.
“순수이성비판”에서의 칸트의 대답은 “선험적 논리학”의 첫째 章에서 간략하게 요약해 놓았다. 우리의 모든 인식은 두 가지 요소로 되어 있다; 직관과 개념(An- schauung und Begriff). 전자를 통해서 우리에게 대상(Gegenstand)이 주어지며, 후자에 의해서 그 대상이 파악된다. “내용없는 사상은 공허하고, 개념없는 직관은 맹목이다.” 직관과 개념은 이제 “순수”하거나, 아니면 “경험적”이며, 그에 상응하여 “선험적”이거나, 아니면 “경험적”이다. 전자의 경우는 어떠한 감각도 표상에 들어오지 않을 때이다. 그러나 “우리의 본성은 필연적으로 직관이 감각적이 아닌 것이 될 수 없게끔 한다.” 오성(Verstand)은 직관을 할 수 있는 (정신적, 지적 직관의 의미에서) 능력이 없다; 오성은 단지 “감각적 직관의 대상을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러므로 오성에는 어떠한 창조적인 적극적 인식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고, 단지 인식의 자발적 정리능력, 즉 감각적 직관에서 주어진 다양성을 개념으로 종합하는 능력일 뿐이다. “오성은 결코 직관할 수 없으며, 감각은 결코 인식할 수 없다.” 그러므로 -그리고 그것이 이제 결정적인 것인데- “순수직관은 단지 형식(Form)을 내포하여 그 형식에 의해서 어떤 것이 직관되어지며, 순수개념은 대상일반의 인식의 형식이다.” “순수이성비판”은 그러므로 선험적 형식론이며, 그것은 한편에 있어서 “감각적인 것 일반의 규율에 대한 학문”이며(칸트는 이를 “미학”이라 부른다), 다른 한편 “오성규칙 일반의 학문”이다(칸트는 이를 “논리학”이라 한다).
칸트는 여기서 신중하게 “이성”에 관해서 말하지 않고, “오성”에 관해서 언급한다. 그는 오성에 정당한 인식능력을 부여하면서, 그러나 이 인식능력을 체험가능한 대상의 범위와 수학적 자연과학에로 제한했다. 즉 이것이 바로 전술한 “선험적 논리학”에서 요약한 결론이다: 오성은, 사물이 “그 자체” 어떤 것인지, “실제로” 어떤 것인지를 인식할 수 없으나, 그러나 사물이 감각의 도움으로 오성에 어떻게 “나타나는 지”를 인식할 수 있다. 단지 대상의 “현상”만이 우리에게 주어진다. “本體”(noumenon), 즉 “物 自體”에는 들어갈 수 없다(알 수 없다); 그것(물 자체를 아는 것)은, 오성이 직관의 능력이 있을 때, 즉 오성이 대상의 존재 그 자체(Gegenstand im Ansichsein)를 파악할 수 있을 때만 가능하다. 그러나 바로 그 점이 불
가능하다. 오성은 그에게 고유한 대상도, 본체도 없으며, 또한 성질을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오성은 감각을 통해서 오성에 전달되는 것만을, 즉 현상(Erscheinungen)만을 파악하고 구성한다. 달리 표현하자면, 오성개념이 인식에 이용될 수 있는 것은 본질 그 자체에 관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나타난 현상에만 가능하다. 즉 체험 가능한 대상뿐이다. 칸트는 그 점을 명백히 표현하여, “단지 경험 가능한 대상만을 제외하고, 결국 어떠한 선험적 인식도 우리에게 불가능하다”. 그리고 다른 곳에서 “선험적 분석론은 이에 따라 다음과 같은 중요한 결론을 얻는다. 즉 선험적 오성은 체험 가능한 형식일반을 파악할 수 있을 뿐이며, 그리고 나타나지 않는 것은 모두 경험의 대상이 될 수 없을 때, 오성은 감각의 범위 내에서 대상이 우리에게 주어지기 때문에, 감각의 한계를 결코 초월할 수가 없다. 오성의 법칙은 현상을 설명하는 단순한 원리에 불과하며 그리고 사물일반에 관하여 종합적이고 선험적 인식을 하나의 체계화된 이론으로 구성하는 것을 인정하는 本體論(Ontologie)이라는 거만한 이름은 겸손한 이름인 순수 오성의 단순한 분석론에 자리를 양보해야 한다”.
이것으로 칸트가 무엇을 증명 혹은 반증하고, 그리고 그의 논증이 어느 정도 충분했는지가 명백해졌음에 틀림없다. 그는 형이상학의 -자연법의- 내용이 체험없이 단지 형식적 선험적 원리만으로 이끌어 내는 것이 불가능하고, 그러므로 내용이 깃든 형이상학은 결코 보편타당하고 수학적으로 정확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 내용이 명확하게 인식될 수 있고, 모든 인간과 모든 시대의 동일한 자연법의 주장은 그러므로 거부되었다. 칸트의 이러한 인식아래서는 이러한 결론을 변명할 길이 없다.
그러나 칸트는 형이상학, 자연법, 법도그마틱 등이 자연과학으로서 다룰 수 없다는 것을 “단지” 증명하였다. 혹은 조심스럽게 보긴 하지만 적어도 “자연과학 안에 수학만은 포함된다”고 보았다. 물론 수학적으로 다루어진 학문이 정말로 학문인가의 여부가 끝없이 논하여질 수 있고 또한 끝없이 논하여졌다. 그러므로 예를 들면 법학도 학문이 아니란 주장도 나왔다. 그러나 그런 논쟁은 무용한 일이다. 수학적 분야만을 “학문”이라고 부르고자 하는 자는 그렇게 해도 된다. 그러나 결정적인 것은 다음의 점이다: 법학과 법철학에서도 납득하게 하거나 증명하거나 반증하는 기준이 존재한다는 점에서는 다툼이 없다. 그 결과 “이성적” 논증뿐만 아니라, 각 개인이 상호동의하는 터전도 존재하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므
로 여기 법학과 법철학에서도 “인식”과 “학문”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정말로 깊은 의미가 있다. 물론 수학적 정확성의 의미에서 “합리성”이라는 것이 이 분야(법학과 법철학)에서는 없다. 그러나 그러한 점이 법학에서 “비합리적”으로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위에 언급한 바와 같이 인간의 정신활동은 합리적 분해와 분석뿐만 아니라, 예지적 이해종합이다. 물론 학문이 논리에 반할 수 없다. 그러나 비물질과 관계하는 학문은 순수 논리를 초월해야 하며, 그러므로 이러한 의미에서 “초합리적”(meta-rational)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이성은 논리를 초월해서는 안 된다. “오성”과 “이성”은 매우 명확하게 구별한 칸트가 바로 이러한 견해를 취하고 있다.
그 때문에 신칸트학파인 슈탐믈러(Rudolf Stammler)는 칸트의 자연법론을 “학문적으로 수긍할 수 없는 것으로” 보았다면, 그것은 오히려 지나친 것으로 보인다. 칸트는 그렇게 보는 한 실제에 있어서 아직도 강력하게 합리주의의 길에 서 있었다는 것은 이미 위에서 언급한 바 있다. 그것은 그의 자연법 정의에서 명백히 보여준다. 즉 자연법이라는 것은 “입법자의 의사에 기해서 제정되는 실정법과는 반대로, 비실증주의적이며, 모든 인간의 이성을 통해서 인식되는 선험적 법”이다(주의할 것은 물론 칸트가 여기서 “이성”에 대해서 언급하고, “오성”에 대해서는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후세의 사람들이 칸트의 전체 자연법론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믿었다면, 그렇다면 칸트는 그의 계승자(Epigonen)가 여기에서 이
미 미리 전제되어 있었다는 것을 숨길 수 없다. 칸트는 법과 국가를 창설하는데 있어, 순수한 실증주의적 창설은 있을 수 없다고 믿었다; “오직 실증주의적 법률만을 내포하는 외적 입법제정은 생각될 수 있다; 그럼에도 입법자의 권위(즉 입법자의 의지에 의해서 타인을 구속할 수 있는 권한)를 세워주는 자연적 법률이 미리 선행되어져야만 한다”. 그러나 무엇이 이와 같은 “자연적 법률”인가? 그 문제는 국가와 법을 정당하게 하는 데 요구되는 실질적 윤리의 최소내용이 무엇인가에 달려있다.
첫눈에 보기에 칸트가 (계몽시대의 행복사상과 비교되는) 윤리의 모든 객관적 실질적 내용을 배제하려 한다. 그 이유는 윤리의 이러한 내용이 단지 경험적인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경험적인 모든 것은 도덕의 원리를 위한 장식물로서 도덕에 전혀 쓸모 없을 뿐더러, 도덕의 순수성 자체에도 극도로 불리하다”. 칸트가 그 대신에 행한 것은 새롭다. 그는 종래의 전체 자연법론이 다룬 객관적인 실질적 문제대신에 주관적 도덕성의 문제를 다루었다. 인간의 도덕적 자율은 도덕세계의 근본 원리로 승화되었다. 도덕적 인격이 목적 그 자체이지,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이 아니다. 그러나 여기서 주의할 것은, 이것이 경험세계(Sinnenwelt)의 일부로서 경험적 인간(homo phainomenon)에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인격을 가진 인간(homo noumenon)에 해당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도덕적 행동이 “어떤 것인가”를 칸트는 그의 유명한 “정언명령”(Kategorischer Imperativ)으로 대답한다. “너의 주관적 행위원칙(Maxime deines Willens)이 동시에 보편적 법규의 원리가 될 수 있도록 그렇게 행동하라”. 물론 이 무조건 명령도 매우 형식적이고, 게다가 의문점이 많은 원리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모순이 없는 결론을 수미일관 추구하는 것 모두가 도덕적으로 좋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 점이 흔히 지적되고 있다. 그밖에 간과해서는 안될 것은, 칸트가 인격의 도덕적 자율성의 원리로 人權의 철학적 근거에 대해 아주 근본적 기여를 했다는 점이다. 우리가 오늘날 독일 헌법의 기본권의 목록 속에서 불가양적 처분할 수 없는 법치국가의 최소한을 일별해 볼 수 있는 것은 바로 칸트의 유산 때문이다. 독일 기본법 제19조 제2항에 여하한 경우에도 기본권의 “본질적 내용”이 침해되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은 칸트의 사고양식을 떠오르게 한다. 기본권이 “경험적” 인간을 그 대상으로 하는 한, 법률상의 제한은 그 제한이 비록 기본권 안에서 “인간성”에 해당되더라도 유효하며, 그 반대는 아니다.
이제 “칸트의 윤리학이 끊임없이 사물의 객관적·도덕적 질서”를 전제하고 있다는 벨첼(Welzel)의 지적은 매우 정당하다. 순수 주관적 윤리학은 이제 다음과 같은 결론, 즉 인격을 가진 인간이라면 그는 자기 스스로 입법자가 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어 버린다. 이러한 것이 완전히 불가능한 가정이라고 할 수만은 없다(예컨대 사르트르도 그런 가정을 세웠음). 그렇다고 그것이 칸트의 기본입장은 아니다. 아니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이 위대한 사상가의 새로운 항변에 직면하지 않을까? 벨첼은 그것을 인정하는 것 같다. 칸트는 “주관적인 도덕적 문제(윤리적 행위를 어떻게 하느냐는 문제)에 대응하여 실질적·윤리적 문제(윤리적 행위가 무엇이냐는 문제)에 귀속하는 독자적 의미를 간과했다”고 그는 지적하였다. 그 대신에 칸트는 “어떻게”(Wie)로부터 “무엇”(Was)을 발전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즉 정언명령을 수단으로 하여 윤리적으로 올바른 것을 찾을 수 있다고 믿는다. 이제 여기서 볼 때 누가 그 문제(Die Dinge)를 간과했는가? 이 章의 처음 두 번째 쪽 (위 제II장, 제1절)에서 언급한 것이 옳다면, 틀린 사람은 벨첼이다. 벨첼은 내용, 즉 “무엇인가 하는 것”은 주관적 혼합(Beimischung)없이, 즉 “어떻게 하는 것”(Wie)없이 찾아낼 수 있다고 명백하게 인정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벨첼이 칸트에 대하여 제시한, “무엇”이 “어떻게”로부터 발전된다라는 공리(Zirkel)는 오류가 아니며, 좌우간 틀린 것이 아니다. 기능주의자(Der Funktionalismus)가 인정하는 것처럼(Luh- mann) 물론 “무엇이” 단순히 “어떻게”로부터 생기는 것이 아님을 여기에 덧붙여야 할 것이다. 무언가 “법률적인 것”(Rechtshaltiges)은 이미 법실현의 절차과정에서 주어짐에 틀림없으며, 결국 실제로 “법”은 그것으로부터 기인해야 한다.
우리는 여기서 칸트를 상당히 자세히 탐구했다. 그 이유는 근대의 전체 법철학과 법도그마틱이 그의 영향 아래에 있었고 아직도 영향 아래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법학에 있어서 보다 그의 인식비판에 더 들어맞는다. 특히 그의 正義論에 대해서는 여기서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정의론의 문제에 있어서 칸트는 사실상 그 시대의 최고봉에 가 있지도 못했고, 아리스토텔레스의 경지조차까지도 한번도 근접하게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돌이켜 보면, 아리스토텔레스는 평등(배분적 정의: iustitia distributiva)을 이미 비례적 기하학적 평등으로서, 즉 관계적 평등(Verhaltnis- gleichheit)으로서 인정하고, 그 안에서 그는 유추의 문제를 매우 명확하게 보았다. 이에 반해 칸트에게는 물론 그
가 선험적이고 순수하고 명확한 인식만을 인정하려 했기 때문에, 유추가 의심스럽게 보였음에 틀림없었다. 왜냐하면 유추적 인식은 애매하고 심지어 유추적이기 때문이다(유추에 대한 이러한 혐의는 오늘날까지도 갖고 있다). 이에 따라 칸트는 평등을 수학적으로 정의하였다.
그의 형벌론은 완전히 모세의 율법식이다: “응보의 법(talionis)만이 ··· 형벌의 질과 양을 명확하게 정할 수 있다. 다른 모든 것은 이리 저리로 흔들거리며, 다른 것에 대해 혼합적 고려 때문에 순수하고 엄격한 정의를 선언하는 데 적절성을 포함할 수 없다.” 그러므로 명예를 손상하는 자는 그의 실추케 한 명예에 대하여 고통을 받아야만 되고, 절도하는 자는 그에 대한 소유의 권리를 상실해야 되고 일시적 또는 영구적으로 노예가 되어야 한다. “그가 살인했으면, 그는 죽어야만 된다. 여기서 정의를 충족하기 위한 다른 대안이 없다. 죽음과 아직 살아서 괴롭게 사는 삶 사이에는 어떠한 동등성도 없다.” 이러한 칸트적 정의론에서 윤리적 엄격주의가 어떻게 다스려지는가는 저 유명한 섬의 예에서 잘 보여준다: “시민사회가 그 구성원의 만장일치로 해산된다 할지라도(예를 들면 한 섬에 사는 전 주민이 서로 떨어져서 전 지구에 흩어질 것을 결의함), 감옥 속에 남아있는 최후의 살인자는 그 전에 처형되어져야 하며, 그 결과 모든 사람이 그의 행위가 어떤 가치가 있는가를 느끼게 하여야 한다. 살인을 범하고 혹은 명령하고 혹은 살인에 관여한 살인자인
한, 그 자들 모두는 죽음을 당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보편적이고 선험적으로 설정된 법률에 따른 사법권의 이념으로서, 정의가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정의가 없으면, 인간이 지구 위에서 살 가치도 더 이상 없게 된다”. 정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자는 제 아무리 신분이 높은 자에 대해서도 특별한 대우를 해서는 안 된다(Fiat iustitia, pereat mundus!).
3) 헤겔의 관념론적 철학
칸트는 모든 시대와 모든 인간에게 타당한 합리적으로 인식 가능한 자연법, 즉 순수 이성법(Vernunftrecht)이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했다. 자연법의 내용은 적어도 상당히 경험으로부터 나오며, 그 경험 속에 실질적인 윤리적 내용도 포함된다고 칸트는 보았다. 그러나 칸트는 이 경험의 영역을 깊이 연구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때문에 무엇보다 19세기와 20세기에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된 요소, 즉 인간의 역사성(Geschichtlichkeit)의 요소와 거기에 더하여 법의 역사성의 요소를 간과했다.
역사법학파(historische Rechtsschule)는 법의 성쇠의 과정에 주의를 기울임으로써 그와 같은 결함을 사실적으로 보완했다. 그러나 역사법학파는 근본적으로 역사(Geschichte)만을 탐구했지, 인간(법)존재의 구조형식으로서 역사성(Geschichtlichkeit)을 보지 못했다. 이에 따라 이 입장에서는 법의 내용이 그의 시대적 장소적 조건의 결과로 우연의 산물인지 아닌지, 합법적인 것(Gesetz- maßigkeit)이 존재하는 것인지 아닌지 하는 법철학적 문제가 제기되지 않고, 그 결과 그에 대한 대답조차 없게 되었다. 우리는 이 문제를 다음처럼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법질서가 언제나 구속적인 것만은 아닐지라도 그것이 적어도 여기서 현재 구속적일 수 있을까?
이와 같은 문제제기는 칸트가 단지 자연법의 특정한 표현, 즉 합리주의적·절대주의적 자연법을 반박했지, 자연법 이념 자체를 반박하지 아니하였다는 것을 명백히 하여 준다. 자연법 이념은 그 내용을 임의로 할 수 없는 “정당한” 법을 의미하나, 그렇다고 그것은 그와 같은 “정당한 법”이 모든 시대와 모든 환경아래 필연적으로 타당해야만 된다는 뜻은 아니다.     자연법의 역사철학적 문제를 완전히 인식한 첫 번째 사람은 헤겔(Georg Friedrich Wilhelm Hegel, 1770-1831)이다. 헤겔에서 독일의 관념론(Idealismus)은 -그리고 그와 함께 관념론적 자연법이- 최고로 꽃피워졌다. 칸트의 이원론적 철학(이원론)에서 볼 수 있는 존재와 의식, 자연과 정신, 객체와 주체, 현실과 관념, 존재와 당위를 엄격히 분리하는 것과는 반대로 헤겔의 동일성철학(Identitatsphilosophie)에서는 단지 하나의 세계, 즉 정신의 세계만이 존재한다. 그 결과 그의 철학은 종합명제를 이끌어 내기 위한 강력한 사색의 욕구와 아울러 생활형성(Lebensgestaltung)의 욕구를 만족시켜 준다.
우리가 아는 바로는 플라톤이 관념론적 철학과 자연법론을 발전시켰다. 그러나 플라톤에게서는 관념이 초역사적 형성체이며, 그 때문에 헤겔이 보았던 역사적 시대의 특수성을 바르게 이해할 수 없었다. 플라톤은 관념의 유출(Ausfluß)인 경험적 현실(Wirklichkeit)에서 무엇 때문에 생성과 변천과 쇠퇴가 존재하는지를 규명하려 하지 않았다. 헤겔 사상의 천재성은 그가 발전의 법칙을 관념 자체 속에서 이해하였다는 점에 있다. 모든 정신적인 것은 특정하고 끊임없이 점진적으로 발전하는 도식인 正(These), 反(Antithese) 그리고 合(Synthese)이라는 단계에 따라 진행된다고 보았다. 간단히 말하면 유명한 헤겔의 변증법. 중요한 것은 이 변증법적 발전이 민족정신의 애매한 관리(Walten)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성의 법칙에 따라 논리적-필연적으로 진행되어짐에 틀림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헤겔에 있어서 역사는 이성의 꽃이 활짝 피는 것이지, 비합리적 사건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말하길 철학을 동반하는 “유일한 사상”은 이성적인 단순한 사상이며, 이것의 의미는 이성이 세계를 지배한다는 것, 즉 세계역사에서도 역시 이성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역사법학파가 민족을 최후의 가치로 보았던 것에 반하여, 헤겔에서는 민족대신에 전반적으로 약간 합리적인 것, 즉
국가를 최후의 가치라고 보았다. 헤겔에 있어서 국가는 가장 숭고한 개념이며, 완전한 현실, 즉 “도덕적 관념의 현실”과 또한 최고의 법적 가치이었다.
국가와 윤리적 이성, 국가와 법은 하나다. 그러므로 헤겔에 있어서 단지 하나의 국가와 하나의 법만이 존재할 뿐이지 현실의 국가 외에 또 하나의 관념적 국가란 있을 수 없고, 실정법 이외에 다른 또 하나의 자연법이 없다; 양자는 동일한 것이다. 그래서 바로 헤겔의 법철학에서 다음과 같은 유명한 금언이 있게 된다: “이성적인 것은 현실적인 것이며, 현실적인 것은 이성적인 것이다”. 물론 헤겔은 존재하는 것을 단순하게 이성적이라고 보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편 그는 일반과 개별사이 그리고 다른 한편 객관적 도덕성과 주관적 심정(Gesinnung) 사이를 통일하려고 노력했다. 개별이익과 전체이익이 조정되고, 자유와 복종의 긴장관계도 없게 된다. 즉 국가는 “구체적 자유의 현실이다···. 새로운 국가의 본질은, 일반적인 것이 개별적인 것(개인)의 완전한 자유와 행복과 결합되는 것이며, 따라서 가족과 시민사회의 이익이 국가로 종합되어져야 한다. 그러나 국가의 본질로 볼 때 목적의 일반성(Allgemeinheit des Zwecks)은 고유의 법을 가져야만 하는 개인의 고유한 인식과 의사없이는 발전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경험과 역사성으로부터 나온 이와 같은 이론적 입장은 자연법에 대해 어떠한 손실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자명하다.
그러나 그것이 현실성에서 어떻게 나타나는가? 개인이라는 특수성(Besonderheit)은 도덕적 관념인 국가에 대하여 그들의 권리를 갖는가? 벨첼은 그 문제에 대하여 의미있는 방법으로 언급했다. 헤겔은 국가의 형성에 있어서 객관적 구속과 주관적 자유의 종합, 즉 일반성과 개별성으로부터 종합을 이끌어내려 했다. 여기서 매우 문제가 된 점은 개인적 양심의 역할이다. 헤겔은 그와 같은 문제점을 물론 정확하게 인식했으나, 그러나 “일정한 개인의 양심이 양심의 관념에 합치하는 것인지 아닌지, 좋다고 여기거나 좋다고 부르는 것이 정말로 좋은 것인지 하는 이런 문제는 단지 이와 같은 좋다고 여기는 당위의 내용으로부터 인식될 뿐이라고 보았다. 그러므로 “국가는 그 고유한 형식에서, 다시 말하면, 주관적 인식으로서 양심
을 인정할 수 없다”. 그 문제에 대해 벨첼의 비판은 이렇다. 그는 특정한 개인의 주관적 양심에 대립해 서있는 그와 같은 “객관적” 양심의 관념을 사실에 있어서 양심의 부정(Vernichtung)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더 나아가 “주관적·개인적이지 않고, 오히려 객관적·일반적 양심은 그 자체 스스로 모순이다···. 그러므로 헤겔이 구체적 도덕성문제에 옮겨가자마자, 개인의 고유한 성격(Eigenwilligkeit)과, 고유한 양심이 도덕적 실체성(Substantialitat)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는 것은 놀란 만한 이 아니다. 양심과 주관적인 개별성에 관해 헤겔의 모든 찬사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것들을 바다 속에, 즉 국가 안에 던져버렸다. 벨첼의 이러한 비판이 얼마나 정당하고 현실적이었던가는 -오늘날 양심의 이유로 문제가 된 것은 군복무의 거부문제 뿐이다(Art. 12a II GG)- 헤겔의 글을 몇 개 인용함으로써 명확하게 될 것이다: “국가는, 지상 위에 존재하는 신의 영상(Gottliche Idee)이다. 국가는 세계사 일반의 더욱 자세하고 특정한 대상이며, 국가 안에서 자유는 그의 객관성을 얻으며, 이러한 객관성을 누림으로써 자유는 생존하게 된다. 왜냐하면 법률은 정신의 객관성이며, 실제에 있어서 의지(Wille)이다: 그리고 법률에 복종하는 의지만이 자유롭다. 왜냐하면 의지는
스스로 복종하며, 자기자신에 있어서 자유롭기 때문이다. 국가, 즉 조국이 현존재(Dasein)의 총체성을 나타내고, 인간의 주관적 의지가 법규에 종속될 때, 자유와 필연성의 대립(Gegensatz von Freiheit und Notwendigkeit)은 없어진다. 이성적인 것(Das Vernuftige)은 필연적으로 실체적인 것(Das Substantielle)이다. 우리가 법률을 인정하고 우리의 고유한 본질의 실재로서 법률을 따름으로써 화해하며, 하나의 동일한 순수한 전체가 된다”.
그와 같은 사상의 고리는 틀림없이 어느 정도 감탄의 마음을 갖게 한다: 이성적인 것은 필연이며 -이성적인 것은 필연적 현실적이다- 국가는 그 자체 이성적인 것이다. 그 결과 자연법과 국가가 제정한 법의 통일이 있게 된다. 국가의 의지는 법의 최고의 원천이며, 국가의지를 초월한 다른 높은 의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헤겔에 있어서는 그 결과 보당(Jean bodin)의 주권론을 초월하여, 절대적 의미에서 국가가 최고였다.     헤겔의 가설에 동의할 수 없음을 오늘날 우리는 고통스럽게 체험했다. 국가는 결코 선험적으로 “도덕적 관념의 실재성”이 아니며, 국가의 법률은 자유와 자의식(Beisichselbstsein)의 표현이라고 할 만한 이성적 정당한 법으로 필연적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비록 우리가 실재(das Wirkliche)의 개념을 순수사실(Das reine Faktische)의 개념과 다르다 할지라도, 이성적인 것과 실재적인 것이 언제나 동일하다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 헤겔은 모든 것을 하나의 원리, 즉 객관적 정신이라고 하는 관념에 근거를 두려 하였기 때문에 넓은 범위에 있어서 실재성을 결여하였다.
4) 유물론적 역사학파
그와는 반대되는 운동, 즉 칼 막스(Karl Marx, 1818- 1883)와 엥겔스(Friedrich Engels, 1820-1895)에 의한 유물론적 역사학파가 곧 이어 일어났다. 유물론적 역사학파는 이미 포이어바하(Ludwig Feuerbach, 1804-1872)의 유물론적·무신론적 철학에서 萌芽를 잉태했으며, 막스도 여러 번 포이어바하를 연구했다(특히 포이어바하에 관한 막스의 11테제는 잘 알려진 사실). 그러나 그의 철학의 출발점은 헤겔이었다. 막스는 헤겔이 사물을 머리 속에 세워두었다고 보고, 이 사물을 되돌려서 다시금 발 위에 두어야 된다고 믿었다. 의식(관념)에 의해서 영향을 받는 것은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역으로 의식이 존재에 의존한다고 본다. 좀 더 정확히 언급하면, 의식은 실질적인 생산관계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막스는 언급하길, 사회의 경제적 구조가 “실질적 기초”를 형성하고 그 기초 위에 법률적 그리고 정치적 상부구조가 세워지며, 특정한 사회적 의식의 형식(Bewußtseinsformen)이 그 기초에 상응해 이루어진다. 물질적 생활의 생산방식이 법정책적 그리고 정신적 생존과정(Lebensprozeß) 일반을 제약한다.” 경제적 토대의 변경으로 “놀라울 정도로” 전체 상부구조의 변화가 서서히 혹은 급격하게 일어난다”. 관념적인 것은 그러므로 인간의 두뇌 속에서 전화되어 번역된 물질적인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관념적인 것은 단순한 “이데올로기”에 지나지 않으며,  그것은 투쟁 수단으로써 모든 계급에 이용되는 사회적으로 제약된 행동방향과 행동지침이다. 법(도덕이나 종교도 포함)도 이러한 관념적 상부구조에 속하여,  전혀 독립성을 갖지 않으며, 그것은 지배계급의 의사가 승화된 것에 지나지 않고, 그 법의 내용은 다시금 지배계급의 “실질적 생존조건 속”에 주어져 있다. 그리고 “자유, 정의 등과 같이 전래된 영원한 진리”에 대해서조차도 막스와 엥겔스는 타인에 의한 사회일부의 착취라고 하는, 지나간 수백 년간의 공통된 의식을 나타내는, 모든 지난날의 사회적 의식일 뿐이라고 이해한다.
유물론적 역사학파의 근본체제에 따르면, 지금까지의 모든 사회의 역사는 ··· 계급투쟁의 역사이다. 이러한 계급투쟁의 연속은 헤겔이 말하는 변증법적 방법으로 일어난다. 여기서는 단지 헤겔의 변증법과는 “반대로” 일어난다. 원초적인 것은 물질적인 것이며, 인간의 생존조건은 관념적인 것이 아니다. 봉건적 사회와 시민계급사이의 계급투쟁으로부터 시민계급이 승리하여 전면으로 나왔다. 시민계급은 그렇다고 무산계급(Das Proletariat)을 의미한
것은 아니어서, 그 때문에 새로운 계급투쟁이 전개하였다. 이러한 투쟁으로부터, 마르크스의 체제에 의하면, 통합체제로서, 즉 모든 계급투쟁의 종말로서 “무산계급의 독재”(Diktatur des Proletariats)가 일어난다. 그리고 계급투쟁의 종말로, 즉 “계급없는 사회”의 출현으로 국가도
법도 불필요하게 되고, 이것들은 저절로 “소멸하게” 된다. 그런 한에 있어서 우리는 헤겔식의 관념론으로 회귀한다. 헤겔에 있어서 국가는 완전한 실재성이며, 인간공동체는 그에 비해 전혀 가치가 없다. 변증법적 유물론에서는 이와 반대로 공동체가 전면으로 나온다. 정확히
말하면 국가대신에 공산사회. 이 공산사회 안에서 “가난한 무산계급”(Lumpenproletariat)은 자신을 상품처럼 팔아야 하는 그와 같은 상품으로 더 이상 다루어지지 않으며, 사람은 더 이상 노동자, 의사, 법률가, 시인으로만 다루어지지 않고, 오히려 사람은 각자 좋아하는 모습으로 완성될 수 있다. 왜냐하면 공산주의에서 사회(Gesell- schaft)는 일반적 생산을 규제하여, 이를 통해서 “나에게 오늘날은 이것을, 내일은 저것을 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여, 내가 사냥꾼도, 어부도, 목동도, 비평가도 아니면서, 내 기분 나는 대로 오전에 사냥을, 오후에 낚시질을, 밤에 목축을, 식후에 비판을 할 수 있게끔 하기 때문이다”.
막스주의의 인도주의적 기본기조(Grundton)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완전하게 충만 되고 정의로운 사회라는 “구체적 인도주의”(realer Humanismus)에 대한 막스의 공식(Formel)은 사람을 천하고, 굴종하고, 버림받고, 무시당하는 존재로 만드는 모든 관계를 타파하는 무조건명령(kategorische Imperativ)이다. 그것은 바로 “인간적 사회”(menschliche Gesellschaft), 다시 말하면 “자연법의 실질적 요청”이 마침내 충족되어지는 “자유의 제국”으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초기 막스의 “구체적 유토피아”를 가장 순수하게 보전하려고 하여 “자연법과 인간의 존엄”(1961)을 위해 혁신적으로 투쟁한 者인 블로호(Ernst Bloch, 1885-1977)가 “자유의 제국”에서 머무를 장소를 찾지 못했던 것은 매우 특기할 만한 일이다. 일이 막스의 뜻대로 이루어 진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헤겔의 관념론적 철학이 실재성(Wirklichkeit)을 결여했다면, 막스의 유물론적 철학은 관념적인 것(Das Ideelle)을 결여했다. 관념적인 것은, “하부구조”에 의해 전적으로 영향을 받기 때문에 사회관계가 달라지면 종래의 관념은 “고사한다”는 “단순한 이데올로기”만이 문제된다는 것은 옳지 않다. 그래서 우리가 이 점을 유물론적 진영에서도 이전이든 이후이든 인정했어야만 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이미 엥겔스는 그의 생애말엽에 그 자신과 막스가 내용적 측면에 비하여 형식적 측면을 간과했다고 암시했다. 후에 레닌(Lenin)은 막스식 공산주의에서도 어느 정도 불특정 기간 법과 국가가 존속해야만 한다고 천명했다. 스탈린(Stalin)은 법과 국가의 “枯死”(Absterben)에 관한 종말론적 교리에 대한 거부를 극명하게 했다. “막스주의와 언어학의 문제”(Marxismus und Fragen der Sprach- wissenschaft, 1950)라는 논문에서 그는 경제사회적 하부구조와 관념론적 상부구조라는 막스의 체제를 변경하여, 국가의 형식을 가진 상부구조는 수동적이어서 하부구조의 변경에 따라 적응되는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상부구조는 자기 스스로 활동적이어서 상부구조가 원하는 형식으로 하부구조의 변화에 작용을 하며, 이 때에 법률이 이용된다고 주장한다. 그 결과 법은 적극적이고, 사회를 변경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 인정되었다. 1920년대 후반 파슈카니스(Eugen Paschukanis)가 다시 한번 국가와 법과의 체제를 주장하자, 검찰총장이자 법무부장관인 비산스키(Andreij Wyschinski)는 그를 “민족의 적”으로 낙인찍고 그를 내쫓았다.
법은 다시금 그의 기능을 인정받았고, 결코 추방될 수 없는 것이었다. 사회주의 법은 이제 그러나 결코 계급없는 사회의 법이 아니다. 법이라는 것은 “공산당, 즉 공산당의 중앙위원회가 집합적인 오성에 기해 인식한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정치국(Das Politburo). 그처럼
많이 언급되고 쓰여진 “사회주의적 법률이라는 것”(sozialistische Gesetzlichkeit)은 결국 黨, 다시 말하면 국가의 통제적 지도역할(Fuhrungsrolle)의 표현일 따름이다. 왜냐하면 양자는 하나이기 때문이다 헤겔은 관념적인 것에 대한 일면적 지향 때문에 국가의 절대화에 도달했
고, 막스주의는 물질적인 것에 대한 일면적인 지향으로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실제적으로 그것은 물론 20세기에서야 비로소 확인되었다.
5) 헤겔 이후의 시대
19세기에 있어서 헤겔주의와 막스주의는 하나의 에피소드이었다. “좌익”과 “우익”으로 분리된 헤겔학파는 19세기의 정신적 물결의 밖에서 있었기 때문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이런 방향의 철학자 중에는 라살레(Ferdinand Lasalle, 1825-1864)와 라손(Adolf Lasson, 1832-1917)외에 특히 슈탈(Friedrich Julius Stahl, 1802- 862)을 들 수 있다. 물론 그는 단지 제한적으로 헤겔학파라고 부를 수 있다. 좌우간 그는 관념적 국가관(idealistische Staatsauffassung)을 가졌으며, 그에 따르면 국가의 권위는 국민주권에도 자연법에도 기초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국가에게 독립적인 법규제정을 가능케 하고 동시에 조직적으로 성숙된 제도, 무엇보다 “군주원리”와 신분상의 분리를 정당화해 주는 신의 섭리(gottliche Einsetzung)에 직접적으로 기초한다. 슈탈은 특히 그의 3으로 된 “역사적 관점에서 본 법철학”에서 주장한 이러한 학설로 보수주의를 명백히 하고 20세기에 창출된 “제도법학파”(설립자: Maurice Hauriou)의 기초를 닦았다.
역사가는 비록 간접적이기는 하나 합리적 자연법의 종말에 영향을 끼친 또 하나의 19세기의 흐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역사학파와 관련하여 비합리적 시대정신에 대해서는 이미 언급한 바 있다. 이러한 비합리주의는 생의 철학(Lebensphilosophie)에서 특별한 표현을 볼 수 있고, 그 철학의 대표자로 니체(Friedrich Nietsche, 1844-1900)와 실존철학의 선구자인 키에르케고르(Soren Kierkegaard, 1813-1855)를 들 수 있다. 또 프랑스 출신인 베르그송(Henri Bergson, 1859-1941)이 상당한 영향을 미치면서 나타났다. 그럼에도 생의 철학 자체가 또한다수의 남용을 불러 일으켰다. 예를 들면 슈미트(Carl Schmitt)와 퀼로이터(Otto Koellreuter)의 “민족주의 국가철학”(volkische Staatsphilosophie) 혹은 쳄버레인(Houston
Stewart Chamberlain)과 로젠베르크(Alfred Rosenberg)의 “종족철학”. 비합리주의의 또 다른 뿌리는 쇼펜하우어(Arthur Schonpenhaur, 1786-1860)의 主意的 人類學(Die voluntaristische Anthropologie)이었다. 법철학과 법사상 일반에 대한 쇼펜하우어의 영향은 눈에 띄게 사소한 것이었으나, 그러나 그것이 곧 그가 개별문제에 관한 토론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는 것은 아니다.
이제 이러한 흐름을 더 깊이 파헤치는 것을 그만 하자. 19세기의 시대정신은 주로 (위와는) 다른 것이었다. (표어로) 우리가 나타낸다면, 불란서혁명에서 출발한 자유운동(Freiheitsbewegung); 사회적·경제적 생활을 지배한 영국의 자유주의(Liberalismus); 대학생조합의 설립(Die Grundung der Burschenschaft); 바트부르크의 축제(Das Wartburgfest); 코에체부스의 살해(Ermordung Koetze- buses); 함바허의 축제(Das Hambacher Fest); 바울성당의회(Paulskirchenparlament)와 기본권의 성문화 그리고 그밖에 19세기의 대법전편찬. 그것은 절대주의적인 자연법의 시대도 권위국가의 시대도 아니었다(“좌익”이든 “우익”이든). 그것은 실증주의와 법치국가의 시대였다.
4. 법학상의 실증주의
비악커(Franz Wieacker)에 의해서 그렇게 붙어진 “법학상의 실증주의”는 이성법적 思考에 의해서 야기된, 판결에 있어서 自意(Willkur)와 그로부터 발생된 유래 없는, 법적 불안에 대한 필연적 반작용이었다. 형법에서 특히 이러한 남용이 현저했다. 법관이 일정한 사건을 법률의 일정한 구성요건(그 법률은 1532년의 카롤리나 형법전이라 부른다)에 포섭할 수 없으면, 법관은 그의 “이성적인 재량”에 따라 판결하고, “예견할 수 없는 형벌”(poena extraordinaria)을 내린다. 게다가 어떠한 기판력(Rechtskraft)도 없어서 무죄로 선고된 자(Der Freigesprochene)도 언제라도 다시금 재판에 회부될 수 있었다(무죄 석방된 자는 단지 “그 관할에서 석방될” 뿐이었다). 간단히 말하면 법률은 어떠한 효력도 없었다.
철학적 교육과 엄밀성을 갖고, 이 같은 잘못된 상태에 대항하여 깊은 영향력을 행사한 법률가는 포이어바하(Paul Johann Anselm v. Feuerbach, 1775-1833)였다. 칸트 철학으로 교육된 비판주의자(Kritizist)로 이성에 기해서 근거를 둔 자연법 권리(naturliche subjektive Rechte)가 존재하는가는 -그는 객관적 자연법의 가능성을 있을 수 없는 것으로 배제했다- 그에게 중요한 문제였다(“역사적 자연법”의 문제는 그에게선 분명하지 않다). 그의 연구의 결론은 다음과 같이 아주 간단히 요약할 수 있다.
1. 처분할 수 없는 인간의 권리가 존재한다. 왜냐하면 그 권리는 인간의 도덕적 자율에서 연유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오늘날 우리가 인권(Menschenrecht)이라고 부른 것과 대체로 같다. 2. 모든 객관적 법의 본질적이고 부정할 수 없는 요소는 그것의 실정성(Posititat)이다.     특히 이 마지막의 것의 통찰은 포이어바하의 형법학설(그는 19세기 때의 가장 성공한 교과서의 저자이다)과 그의 입법활동(그에 의해 맨 처음의 현대적 법전, 즉 1813년의 바이에른법전이 유래한다)을 특색있게 만들었다. 그는 판결을 할 때에는 법률의 엄격한 구속을 요구했다. 즉 “죄형법정주의”(nulla poena sine lege). 첫째로 자유주의적 사상에 기해서 형법은 형벌권의 근거가 될 뿐만 아니라, 또한 무엇보다 형벌권을 제한한다고 주장하였다. 이것은 그의 정신적 후계자 리스트(Franz v. Liszt)가 정식화하여 법률은 바로 “범죄인의 마그나 카르타”(Magna Charta des Verbrechers)라고 주장하였다. 둘째로 여기에는 “법의 정신”(Esprit des lois)에서 정립된 몽테스큐(Montesquieu, 1689-1755)의 권력분립론이 작용하였다. 즉 사법권은 법률을 적용할 뿐이지, 법을 창조하거나 보충해서는 안되며, “사법권은 법을 발음하고 발언하는 입”(la bouche qui prononce les paroles de la loi) 이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포이어바하도 이와 아주 유사하게 말했다. 법관은 법률의 문자에 엄격하고 명백하게 구속되어야 하며, “법관의 업무는 주어진 사건을 법률의 의미와 정신을 고려하지 말고 법률의 자구에 비교하여, 그 사건이 그 자구에 일치하면 유죄판결을 내리고, 그것에 불일치하면 무죄를 선고하는 일 이외의 것이어서는 안 된다”.
물론 거기에 우리는 포이어바하가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법관이 무조건 법률에 구속되어야 한다는 것을 요구하지 않았다는 것을 첨부해야 할 것이다. 법관이 정의의 업무를 실현하는 마당에 정의에 배반하여 굴복하는 것은 배임행위일 때, (불의에 대하여) 법관이 순종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법관의 신성한 의무라고 하였다. 따라서 법관은 “제정법상의 불법”(gesetzliches Unrecht)에 구속되지 않는다(Gustav Radbruch).
포이어바하의 “실증주의”는 그러므로 보충적인 유보조건을 갖는 그런 실증주의이다. 그것은 가치를 -즉 정의, 윤리, 합목적성에- 지향하는 “合當的 實證主義”(legitimer Positivismus)이다. 물론 그것은 적어도 대부분의 경우 법률의 효력이, 법률의 내용에 비추어 볼 때, 이들 가치에 합치하느냐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원칙적으로 실증주의에 있어서는 법의 제정형식에 따라 성립된 모든 법규는 효력을 가진다. 우리는 여기서 곧바로 칸트가 생각난다. 형식만이 선험적으로 주어지며, 내용은 주어지지 않는다. 오성(Verstand)은 “물 자체”(Stoff an sich)를 파악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법 자체(Recht an sich)인, 자연법도 그 전체 내용을 우리는 인식할 수 없다. “올바른 법”(richtiges Recht)은 단지 우리의 오성의 범주
(Kategorie)로서, 즉 우리가 경험적으로 주어진 법소재에 적용하는 내용이 없는 사고형식(Denkform)으로서 주어질 수 있을 뿐이다. 그러한 사고형식에 기하여 우리는 실증적인 규범을 법으로서, 즉 올바른 법으로 사고한다. 완전히 이와 같은 의미로 신칸트학파인 슈탐믈러(Rudolf Stammler, 1856-1938; 그는 신칸트학파의 마부르크의 경향에 속한다)도 말하길, “어떤 법규(Rechtssatz)도 그의 내용의 특수성 때문에 절대적으로 옳다고 확정할 수 있는 그런 법규는 불가능하고”, 올바른 법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다음과 같은 이유, 즉 슈탐믈러에 따르면 “올바른 법”이라는 것은 “순수한 사고형식”, 다시 말하면 “형식적 방법”(formale Methode)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주어진 법내용의 근본적 특성을 향한 물음의 설정”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슈탐믈러에 따르면 “자연법”은 단지 “변화하는 내용”을 갖고 존재할 수 있다(슈탐믈러에서는 그러나 찾아 볼 수 없는, 자주 인용된 표현).
19세기의 실증주의는 또한 다른 샘물도 마셨다: 즉 경험주의의 샘물(이에 상응하여 후에 규범논리학적 법실증주의와 사회학적 법실증주의가 발전하였다). 합리주의자가 그의 일면적으로 연역된 방법 때문에 물질적 현실의 세계를 등한시 다룬 결과, 이제 현실적 의미에 눈을 뜨기 시작하였다. 칸트는 이미 인식의 두 가지 뿌리인 감각(Die Sinne)과 오성(Der Verstand)을 명백히 하고, 감각적인 것에 관련하여 그는 영국의 경험주의자와 결합하였다. 영국의 경험주의자는 모든 형이상학을 거부하고, 학문의 인식은 관찰, 실험과 인과관계에 의해서만 구성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유에 대한 문제는 신비적 思辨으로 돌렸다. 경험주의에서는 “행복”(Machbare)이 문제되었다. 이러한 思辨은 “아는 것이 힘이다”고 본 베이컨
(Francis Bacon, 1561-1626)에서 이미 시작되었으며, 그 후 유명론자(Nominalist)인 로크(John Locke, 1632-1704)에 계승되었다(유명론과 실증주의의 관계에 관해서는 위에서 언급하였다). 또한 흄(David Hume, 1711-1776)도 그가 비록 경험주의자임에도, 이와 같은 관련 아래에 있음에 틀림없다. 그리고 또한 두 명의 불란서인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위에서 이미 언급한 데카르트(Rene Descartes)와 콩트(Auguste Comte, 1786-1857).콩트는 실증주의자의 창시자로 자주 언급된다. 그러나 그것은 그가 이러한 방향에 그 이름(실증주의)을 붙였다는 점에서 옳을 뿐이다(실증주의는 학문을, 경험할 수 있는 “실증적”으로 주어진 것으로 제한하는 것을 말한다): 오히려 정확한 것은 콩트가 그의 3단계법칙(Drei-Stadien-Gesetz)으
로 (신학에서 형이상학을 거쳐 수학으로) 실증주의에 효과적인 이론적 확실성을 부여했다는 점에 있다. 실질적 확실성은 물론 수학적으로 다루어진 자연과학의 위대한 성공을 가져다주었다.
그러나 모든 학문, 또한 법학도 자연과학적 방법, 즉 연역이 아니라, 귀납을 이용한다는 것, 다시 말하면 일반적 자연법규범으로부터 법을 도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생활사태의 관찰과 그 생활사태의 기본적 구조로부터 일반적 규칙을 얻는 방법을 이용한다는 설명보다 (실증주의를) 무엇으로 더 잘 설명될 수 있을까? 이러한 “자연주의적” 법철학은 그럼에도 방법론문제와 결합하여서 비로소 의미 깊게 활짝 꽃피웠다. 그 점에 대해서는 그 때문에 다음(아래 제II장 제3절, III)에서 자세히 언급한다.
실증주의의 승리에 찬 돌진이 헤겔 사후에 유물론적 법철학 일반이 패배하는 데 기여하였다. 그 자리에 소위 일반법학(Allgemeine Rechtslehre)이 들어왔다. 이 일반법학은 선험적 근본개념(법률관계, 법률주체, 법규범 등)과 기본구조(인과관계, 효력, 체계 등)를 구성하는 것에 제한하고, 법에 있어서 내용이 깃든 모든 철학적 근거를 사변적이라 하여 거부한다. 칸트의 정통적 계승자 모두에게는 법의 내용, 그 중에서도 특히 존재로부터 완전히 분리된
당위(“방법이원론”)는 학문적으로 인식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법내용의 규정을 무비판적으로 입법자에게 양도했었다. 초기 라드부르흐도 “무엇이 옳은지는 누구도 확립할 수 없다면, 옳은 것이 무엇이어야 하는가를 확립해야만 하고, 제정법(Das gesetzte Recht)은 서로 다른 법률관의 다툼을 권위 있는 명령(Machtspruch)으로 종결짓는다는 과제를 충족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래서 법의 제정권(Die Setzung des Rechts)은 모든 반대되는 법률관을 제압할 수 있는 意思(Willen)主體에게 귀속해야만 한다고 보면서, 법을 실시할 수 있는 자는 그러므로 그가 법을 제정하는 권한이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주장하였다. 그 점에 힘과 법이 동일하다는 매우 위험한 사상이 엿보인다. 라드부르흐는 물론 그 점에 대해, 정치적 힘이 법을 시행할 수 있기 때문에 법이 타당한 것이 아니라, 시행되고 있는 법이 법적 안정성을 단지 균형 있게 보장하기 때문에 법이 타당하다고 함으로써 빠져 나오려고 하였다. 정의가 아니라 법적 안정성을 법의 최고가치로 보았다. 이것에 표어를 붙인다면 법과 질서(law and order).     “법철학의 안락사”(Radbruch)인 일반법학의 창설자는 메르켈(Adolf Merkel, 1836-1896)이다. 그는 무엇보다 발전개념(Entwicklungsbegriff)을 법학에 도입함으로써 유명하게 되었다. 그는 주장하길, 법이라고 하는 것은 경험적으로 확립할 수 있을 정도로 낮은 단계에서부터 높은 단계의 형식으로 발전해 나가며, 이러한 합법칙적 진화로부터 미래의 법에 대한 인식도 연역해 낼 수 있다고 한다. 이러한 발전적 사상에 열매를 맺게 한 사람은 다름 아닌 리스트(Franz v. Liszt, 1854-1919)이었다. 리스트는 예링(Rudolf v. Jhering)의 목적이론(“목적이 법 전체의 창조자”)에 기초한 “현대적”(사회적) 형법학파를 창시하였다. 그는 생각하길, “우리는 존재하고 있는 것을 역사적으로 생성되어진 것으로 간주하고, 이에 따라 생성하게 될 것을 결정함으로서 우리는 존재적 으로 있어야 할 것(Das Seinsollende)을 알 수 있다”. 이 때에 이러한 존재적으로 있어야 할 것은 구체적으로는 존재하고 있는 것, 즉 응보형벌 대신에 나타난 개선형벌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존재하게 되는 것과 존재론적으로 있어야 할 것을 이처럼 하나로 엮어놓음(Ineinsetzung)으로써 방법이원론이 부분적으로 포기되어졌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러한 논증에 결점이 있음을 지적해야겠다. 즉 여기서 말하는 발전이라는 것은 단지 달리될 수 있다는 것이지, 개선된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잘못될 수 있으며, 그리고 메르켈과 리스트의 사후에 법역사도 깜짝 놀랄만한 명확성으로 그 점을 분명히 해주었다.  이 자리에서 그 밖의 다수의 당시의 법학상의 법실증주의자를 개별적으로 자세히 고찰하기는 힘들기 때문에, 여기서 그들 중 가장 중요한 분들의 이름만을 밝힌다; 빈딩(Karl Binding, 1841-1920; 그는 “고전” 형법학파의 대표로서 리스트의 가장 위대한 적수였다), 비어링(Ernst Rudolph Bierling, 1843-1918), 베르그봄(Karl Bergbohm, 1844-1927)과 솜로(Felix Somlo). 그밖에 자세한 것에 대해서는 아래의 방법론에 관한 章에서 언급하게 될 것이다.
20세기의 상반기에 중심적인 방향이었고, 무엇보다 법이론적·방법논리적 관점에서 볼 때 큰 의미를 가진 학문상의 법실증주의의 방향도 또한 그 점에 있어서 같다. 우리는 그 경향을 -당위와 존재를 구분하는 방법이원론의 입장에 따라- 두 개의 진영으로 구분할 수 있다: 한편으로 당위, 즉 규범에 향하는 규범논리적 실증주의이다. 여기서는 규범의 형식적 존재구조가 중요할 뿐이지, 그 내용을 문제삼지 않는다(Kant!): 이러한 실증주의를 가장 꽃피운 것은 켈젠(Hans Kelsen)의 “순수법학”(reine Rechtslehre)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경험적으로 규명하려는 실증주의로서, 여기서는 존재하고 있는 것, 즉 법사실(Rechtstatsache)을 대상으로 하고, 주관적인 것에 관심을 두는 법심리학(Bierling 등)과 객관적인 것에 중점을 둔 법사회학(Jhering에 그 뿌리를 둠)이 있다.
여기서 그밖에 더 언급되어야 할 것은, 실증주의가 그 후반기에서 다시금 또 다른 철학적 경향(칸트학파나 경험주의를 제외하고), 즉 물론 그 특징에서 일치하는, 실존철학(Gabriel Marcel과 Karl Jaspers에서는 전혀 그런 특색도 없다)에 의해서 부축을 받았다는 점이다. 그것(실증주의)은 대체로 사르트르(Jean Paul Sartre, 1905-1980)의 존재론적 構想(ontologischer Entwurf)을 통해서 유명하게 되었고, 그것에 따르면 실존은 본질에 앞서며, 그 결과 우리 앞에 어떠한 도덕, 가치, 불가양의 법내용도 선재해 있지 않으며, 모든 것은 완전히 자기 자신에 지향된 인간의 작품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도 법 일반이 어떤 “고유한” 존재양식(Seinsmodus), 즉 특정한 “자기존재”(Selbstsein)를 갖지 않고, 오히려 “비본질성”(Uneigent- l?chkeit)의 형식을 나타낸다고 보기 때문에, 법률이 자의(Willkur)의 한계를 설정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대중의 현존재”의 포기(Preisgegebenheit an das Mas- sedasein).
5. 실증주의의 붕괴
법실증주의가 그의 가장 괄목할만한 외양상의 성공을 거두었을 때, 즉 19세기 말기의 위대한 입법전인 형법, 민사소송법, 형사소송법, 민법, 상법 등의 편찬을 완수했을 때, 이미 법실증주의의 붕괴가 시작되었다. 법실증주의에 대한 비난은 우선적으로 내재적인 데 있다. 법실증주의의 두 가지 도그마, 즉 법관은 법창조적으로 활동해서는 안될 뿐만 아니라, 법(적용)을 거부해서도 안된다는 법창조금지와 법거부금지는 논리필연적으로 제3의 것, 즉 제정된 법질서는 하나의 완결되고 흠결없는 전체란 것을 전제한다. 법률에 흠결이 없다는 이러한 전제는 그러나 잘못되었음이 증명되었다. 그 동안에 법거부금지는 포기될 수 없게 되었지만, 법창조금지는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 그것은 법률에 흠결이 있는 경우에 법관은 부득이 법률의 저편에 놓여 있는 기준(Kriterien)에 따라 판단해야만 한다는 것을 말한다. 그 결과 엄격한 법률실증주의는 그 뿌리 채 흔들리게 되었다. 여기서는 그 점을 더 깊이 논하지 않고, 다음에 다시 한번 언급한다.  물론 오랫동안 잠재적으로 남아 있었지만, 훨씬 더 불리한 상황이 거기(법실증주의)에 추가되었다: 법실증주의는 불법적 혹은 반도덕적 법률의 관점에서 볼 때 큰 약점을 갖고 있다. 다시 한번 포이어바하를 살펴보면, 그가 이와 같은 불법적 법률에 대한 하나의 유보조건, 즉 썩은 법에 대항하여 복종금지라는 원칙을 세웠다는 것을 알 수 있다(그 점에서 그는 순수한 법실증주의자가 아니다). 19세기의 말경에 그러나 이러한 제한을 제거해 버렸다. 그 결과 법률과 법은 동일하며, 따라서 법률만이 그러므로 모든 법률도 법이다라는 법실증주의 사고양식이 지배하게 되었다. 그래서 베르그봄도 “법률이 형식적으로만 바르게 제정되면, 비록 제 아무리 극악한 제정법이라 할지라도 구속력을 인정”해야만 하고, 확실히 그와 같은 “악법”(Mißrecht)은 가능한 빨리 폐지해야 되지만, 그러나 “그것이 오늘의 법이기 때문에 오늘은 그 법을 존중해야만 한다”고 숙명적인 결론으로 선언하였다. 또는 솜로의 언명, 즉 “법적 힘(혹은 다른 용어로는 입법자, 국가, 주권)이 모든 법내용을 자의적으로 제정할 수 있다는 것은 논의할 여지없는 진리이다”. 구겐하임(Paul Guggenheim)과 켈젠(Hans Kelsen)같은 분들의 유사한 등급들을 여기에 추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의할 것은, 19세기 말엽과 20세기 초반의 실증주의자들은 그들에게 당연한 가정인, 입법자는 결코 극악한 법률을 제정하지 않는다란 관점에서 출발하였다. 그리고 그 당시의 입법자는 그러한 악법을 사실상 제정하지 않았다. 입법자 마음속에 도덕적 고차원의 의식이 아직 살아있었기에, 입법자는 실증주의에 의해서 그에게 주어진 全能權(Omnipotenz)을 남용하여, 정의와는 반대되는 법률을 제정할 생각을 감히 하지 못했다. 그리고 바로 이와 같은 보장, 즉 법률은 사물의 본성상 그와 같은 제약된 질서의 한 모습이며, (법률에서) 규정하고 있는 각각의 규정들은 정의를 향한 의지가 있음을 결정적으로 그리고 명확하게 볼 수 있어, 사회생활에 기해서 요구된 모든 합목적성에 비추어 볼 때, 법률사상은 극단적 유용성(krasse Utilitat)에 의해서 지나치게 좌우되는 것은 아니다란 보장에 기초하여 “학문상의” 법실증주의가 이루어졌다.
그것이 확인시험에 올려지자, 비누방울처럼 모든 것(보장)이 헛된 꿈이 되어버렸다.      6. 법철학과 국가사회주의(나치스)
“법철학과 나치스”에 관한 章은 의심할 바 없는 독일 법철학사에서 가장 암울한 면이다. 나치스는 실제로 “극악하고”, “반윤리적이고”, “범죄적” 법률을 제정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올바른 법”을 다루고, 그 때문에 불법에 대한 저항권을 갖는 법철학자들은 그때 어떠했는가? 아무 것도, 거의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단지 소수만이 몸을 돌려 국내외로 도주하였다; 켈젠(Hans Kelsen), 카우프만(Erich Kaufmann), 라드부르흐(Gustav Radbruch), 칸토로빗츠(Hermann Kantorowitz), 바움가르텐(Arthur Baumgarten). 다른 몇 명은 계속해서 수동적으로 있었다; 엥기쉬(Karl Engisch). 벨첼(Hans Welzel). 거의 대부분은 독재정부를 진지하고도 열심히 협조하였다; 슈미트(Carl Schmitt), 포르스토프(Ernst Forsthoff), 쾰로이터
(Otto Koelreutter), 디이체(Hans-Helmut Dietze), 니콜라이(Helmut Nicolai), 횐(Reinhard Hohn), 후버(Ernst- Rudolf Huber), 담(Georg Dahm) 그리고 비록 그들 이름은 잊어버려도 좋지만, 그들의 행동을 결코 잊어서는 안될 그 밖의 많은 분들.
이러한 행위는 나치스가 권력을 잡자마자 기본권의 존재에 대해 개시된 공격을 박수로 환영하였을 때, 이미 시작되었다. 이들은 기본권을 자유주의와 개인주의 사고방식의 소산으로 보고, 이러한 것들은 “민족공동체”(Volkische Gemeinschaft) 내에서 볼 때 기껏해야 하위의 가치만을 가질 수 있다고 보았다. 국가사회주의적 법철학자들은 자유주의와 개인주의, 그리고 당연히 유태교, 평화주의, 사회주의와 프리메이슨비밀결사 모두를 가장 나쁜 적으로 간주했다. 그들은 나치스의 반자유주의와 반개인주의의 이름으로 주관적 권리, 그 중에서 무엇보다 주관적 공권에 반대하는 투쟁을 벌렸고, 급기야는 심지어 주관적 공권의 종말을 말하기조차 하였다. 이러한 전체주의적 법률관 때문에, 권리능력과 권리주체를 제한하기까지 하였다. 즉 권리능력은 단지 “동일(독일) 민족”(Volksgenossen)에만 존재하지, 유태인이나 집시와 같은 이질민족에는 있을 수 없고, 그 결과 평등의 원칙이 포기되어졌으며, 평등의 원칙을 바이마르헌법에 기인한 균등한 민주주의에 사로잡힌, “자유주의적인 것으로서” 이단으로 몰았다. 그 당시의 법철학자와 국가법학자는 이러한 “자유민주주의”에 대하여 남다른 혐오를 했다. 그들은 국가를 “권위적 국가”, 즉 “전체적 국가”, 바로 “지도자 국가”(Fuhrerstaat)를 만들려고 하였고 또 그렇게 되도록 협조했다. 이러한 국가에서는 권력분립도 없고, 권력분립
이라는 것은 순수한 指導者像을 부정하는, 전형적인 자유주의적 구조라고 비난하였다. “지도자”는 최고의 행정권을 가졌으며, 또한 최고의 입법자였고 최고의 법관이었다. 심지어 그를 헌법의 수호자라고 나치스법철학은 천명했다.
그 절정은 물론 “외래민족”의 박해, 특히 유태인의 박해에 있었다. 또한 그러한 박해를 그 당시의 많은 법철학자들은 박수로 환영했으며, 심지어 선동적 언어로 부추기었다. 오늘날 대외정책(Auslanderpolitik)의 깃발아래 “외래민족”을 차별하는 중대한 징후를 찾아볼 수 없긴 하지만, 그와 같은 외래민족을 박해하는 사건을 영원히 종결된 것으로 즐겨 간주하려 한다.     법학방법론에서도 나치스 이데올로기의 영향을 여러 곳에서 느낄 수 있다. 즉 법은 언제나 나치스적 의미에서 해석되어져야만 한다고 했다. 그에 따라 법관은 혁명전의 법에 엄격히 구속되지 않으며, 심지어 실정법에 무조건 얽매일 필요도 없었다. 나치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법률을 초월하는 판결, 심지어 법률에 반하는(contra legem)판결도 허용된 것으로 보았다. 라렌츠(Karl Larenz)는 그 때문에 이미 그 당시에 “자연법과 실증주의를 넘어서”(Jenseits von Naturrecht und Positivismus)라고 입장을 밝혔다. 그것은 실제로 오늘날의 우리들의 입장이기도 하다. 물론 그 당시에 생각한 그것과는 다른 의미이긴 하지만.
Ⅳ. 자연법과 실증주의를 넘어서
1. 1945년 이후 자연법적 사상의 재생
1차 세계대전 후의 法危機(Rechtsnot)시에 -나치스에 의하여 “법”이라고 선포된 불법이 완성된 시기에- 흔히 “자연법사상의 재생”이란 약어로 표현할 수 있는 새로운 자연법운동이 일어났다. 많은 법원들이 무엇보다 자연법을 적용하여 납득할 만한 판결을 했다.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은 그러나 많은 법원들이 시행되고 있는 법률도 무시하게 되자, 이와 같은 “자연법적” 판결이 불확실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연방법원(Bundesgerichtshof)은 1954년까지에도 객관적이고 불변의 윤리법률(Sittengesetz)을 주술적으로 불러내어, 이런 도덕법률의 도움으로 표준적인 것으로 간주한 세계관에 제정법률을 조화시켰다.
이러한 판결은 많은 비난을 불러 일으켰다. 여기서 자연법으로 간주된 것은 사실에 있어서 상당히 다채롭고, 적지 않게 모순이 많고 모호한 가치표상의 다양성에 지나지 않으나, 그 가치표상 중에서 법의 본질에 대한 확실히 하나의 주체적인 근본확신이 투명하게 보인다고 말할 수 있다면, 이것은 바로 19세기까지에도 사로잡혔던 시민적 박애정신(Humanitatsideal)과 오늘날의 독일 헌법에 규정된 기본권과 인권의 이념과 전혀 다를 바가 아니다.
이러한 시기에도 자연법개념을 진지하게 받아들인 입장도 있었다. 이들 중에는 무엇보다 천주교의 자연법론(신토마스주의)의 대표자들을 언급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자연법 관념이 이미 죽었다고 믿었던 그 당시에도 자연법 관념을 고집하였고, 그리고 그것을 더욱 더 학문적으로 탐구했던 분들로, 여기에 카트라인(Victor Cathrein, 1845-1931)과 마우스바하(Josef Mausbach, 1861-1931)만을 거명한다. 천주교의 자연법론이 빈손이 아니었던 것은 새로운 법의 근본을 세우려는 노력을 하였다는 데 있다. 이러한 방향을 대표해서 대체로 페어드로스(Alfred Verdross, 1890-1980), 멧스너(Johannes Meßner, 1891년생), 롬멘(Heinrich Rommen, 1897-1967), 우츠(Arthur F. Utz, 1908년생), 마르치즈(Rene Marcic, 1919-1971),후푹스(Josef Fuchs, 1912년생), 빌레이(Michel Villey, 1914년생)와 아우어(Albert Auer)가 있다.
개신교의 자연법론은 법실증주의 약점에 대항하는 데 큰 어려움이 있었음은 당연하다. 왜냐하면 여기서는 자연법적 전통이 전무하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위스의 신학자 브루너(Emil Brunner, 1889-1966)가 1943년에 쓴 “정의”(Gerechtigkeit)라는 책은 개신교 쪽에서도 새로운 지평으로 뚫고 나가는 것을 보여준다. 약간 후에(1948) 프랑스의 개신교 법철학자 엘룰(Jaques Ellul, 1912년생)의 저서인 “법의 신학적 근거”가 출판되었으며, 그 책에서 바르트(Karl Barth, 1886-1968)에 의해 정립된 “그리스도론적” 방향으로부터 법의 혁신(Rechtser- neuerung)을 촉구하는 시도가 이루어졌다. 독일에서는 특히 에른스트 볼프(Ernst Wolf, 1914년생)가 이러한 의미에서 작업을 하였고, 또한 에릭 볼프(Erik Wolf, 1902- 1977)와 연방법원의 초대 원장인 바인카우프(Germann Weinkauff, 1889년생)는 이러한 관련 때문에 언급될 만하다. 여기서는 주로 개신교 쪽에서 언급된 자연법을 살펴보면, 그들은 자연법적 규범을 생각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제도, 예를 들면 가족, 교회, 국가, 소유권 같은 것을 “신의 창조물”(Stiftungen Gottes)로서 모든 국가권력에 선행하는 제도로 이해했다. 그것이 소위 “제도적 법률학설”로 이 학설의 본래 창설자는 프랑스의 국가법학자인 오류(Maurice Hauriou, 1856-1929)이고 독일어권 지역에서는 주로 돔보이스(Haus Dombois, 1907년생)에 의하여 대표된다. 세세한 점에 있어서는 그 차이가 물론 존재한다.
이러한 “자연법의 재생”에 대한 최종적 평가는 오늘날 물론 아직도 가능하지 않다. 그러나 하나의 문제는 확실히 확정지울 수 있다. 즉 칸트의 비판주의는 누구도 문제삼지 않았다는 점이다. 내용적으로 선험적인, 즉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효력을 가지고 있는 모든 자연법원리는 그 근거를 세울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연법의 재생” 다음에 변증법적 필연성으로 “법실증주의의 재생”이 오며, 신실증주의가 뒤따른다. 물론 이러한 방향으로 나가게 된다는 것은 자연법론이 학문상으로 유지될 수 없다(여기서는 합리주의적 절대적 자연법을 말함)는 것은 명백하게 되어, 그 결과 결국 실증주의가 틀림없이 옳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특히 켈젠(Hans Kelsen)에서 유래한 실증주의의 철학적 기초는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다. 우리는 회의에 근거한 체념 때문에 실증주의자가 된다는 것을 보게 된다. 에버스(Hans-Ulrich Evers)가 19세기 말엽의 실증주의자들의 회의에 찬 견해들(위 제II장, 제3절, V)을 다시금 파악하는 일은 의미있는 것이다: 그는 말하길 “가장 나쁜 법질서도 이행해야 할 가치를 갖는다”. 왜냐하면 그러한 법질서도 “보호를 위해서 최소한”을 보장한 것이며, “이러한 기능을 위하여” 그러한 법질서도 내용에 관계없이 하나의 가치를 갖기 때문이다. 이러한 견해가 어디선가 이해될 수 있을지라도, 발생되었거나 발생되고 있는 모든 사정을 고려해 보면, 그러한 견해를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이러한 견해는 우리에게 주어진 문제에 전혀 해답을 주지 않는다.
우리가 계속해서 자연법이냐, 실증주의냐하는 양자택일을 고집한다면, 어느 정도 만족할만한 대답을 찾을 수 없다. 이러한 양자택일적 사상은 곧바로 막다른 골목에 접어들게 된다. 바로 전후에 일어난 토론은 그것을 명백히 보여주었다. 누구나 수천 번 주장한 논증이나 반대논증을 이해하면서도, 그러나 아무도 반대자에게 그의 견해를 바꾸게 할 위치에 있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도 자기의 위치를 확인하면서 근거제시를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때에 이러한 숙명적인 의견충돌을 극복하기 위한 계기가 20세기 전반기에 이미 있었고, 이름을 밝히자면 구스타프 라드부르흐의 법철학이다.
2. 구스타프 라드부르흐
라드부르흐(Gustav Radbruch, 1878-1949)는 그의 초기에 실증주의자였으나, 노년에 들면서 자연법자로 변신하였기 때문에 그의 전기작가들에 따라서 매우 대조적으로 다루어진다. 양자 모두 증명할 수 있다. 그러나 양자는 단지 어느 정도 제한적으로(cum grano salis)만 타당하다. 양자의 시기에 실증주의 혹은 자연법적 입장을 초월하는 요소들을 찾아볼 수 있다.
그 점은 특히 법개념에 대한 라드부르흐의 정의를 보면 처음부터 실증주의자가 아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라드부르흐는 신칸트학파인 서남독일학파에 속했으며, 이러한 범위에서 빈델반트(Wilhelm Windelband, 1848-1915)와 리케르트(Heinrich Rickert, 1863-1936)에 의해서 영향을 받았다. 그리고 또한 이러한 학파에 속한 베버(Max Weber, 1864-1921)는 법철학보다 법사회학에 더 큰 비중을 두었다. 라드부르흐는 특히 리케르트의 제자인 라스크(Emil Lask, 1875-1915)의 가치이론연구에 큰 영향을 받았다. 라드부르흐는 19세기 중엽에 법철학이 쇠퇴한 후에 법내용과 법가치를 다시금 법철학적 완성을 시작한 첫 번째의 법철학자였다. 그것은 그의 법개념에서 잘 보여준다.
이러한 법개념을 이해하기 위하여, 물론 서로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는 두 가지 종류의 기초적 사고모델을 주의깊게 관찰해야 된다. 그 중 하나는 빈델반트와 리케르트에 기인한 자연과학과 문화과학의 구분이고, 이 때에 전자는 “계산적으로”(nomothetisch), 즉 법칙과학적으로 다루어지고 일반적 (자연) “법칙”을 이끌어 낼 수 있는데 반하여, 후자는 개별기술적(idiographisch) 성격을 가지며, 그렇게 함으로써 후자(문화과학)는 역사적으로 각인된 내용을 갖고 있는 개별적인 것을 기술한다(그 때문에 법칙과학과 사건과학의 구별을 논하기도 함).존재와 당위의 관계(세 가지 종류의 기본입장)
존재 당위
1. 존재와 당위는 동일하다(“방법일원론”).
고전적(관념적) 자연법론(Thomas von quin, Neuthomisten, Hegel)
2. 존재와 당위는 다르다(“방법이원론”).
Kant, 신칸트학파(Kelsen, Radbruch).
법실증주의(Bergbohm, Somlo)
분석적 법이론(Hart, Ross)
3.존재와 당위는 등가적이다; 상호관련적
(“방법양극론”).
변증법(헤겔주의자: Binder, Larenz, Schonfeld – Marx, 막스주의자: Bloch,
Klenner).
유추: 법은 존재와 당위의 일치(W.Hassemer, Arthur Kaufmann).
사물의 본성: 이념의 소재규정성 – 소재의 이념규정성(Maihofer,후기의                                                                      Radbruch, Schambeck)
감각적인간(Mundussensibilist) 지능적인간(Mundusintelligibilis)
自然的存在로서의人間 知的存在로서의人間
經驗的 先驗的
直觀 槪念
知覺可能한現象 本質
經驗 超經驗的
(“형이상학”)
體驗 思考
內在的 超越的
開放體系 閉鎖體系
問題中心(Topik) 公理論
生活事態 規範
具體的·實證的 추상적·일반적
暴力(事實的) 權力(정신적)
實效性 妥當性
他律 自律
强制 自由
因果律 목적성(목적론)
合目的性
利益法學 槪念法學
法社會學的 規範理論
“事物”(Sache) “본성”(Natur)
“下部構造” “上部構造”
動態的 情態的
······ ······
그 두 번째 점은 존재와 당위, 즉 실재와 가치의 방법이원론이다. 이것이 법철학의 가장 중심적 문제 중의 하나이다. 어떠한 방법으로 가치적인 것(Das Werthafte)이 우리의 세계에서 실현되는가? 객관적이고 그 자체 존재하는 가치가 있는가? 아니면 주관적 가치평가만이 존재하는가? 아니면 양자 중 어느 것도 아닌 것인가, 가치적인 것이 오히려 (단지) 가치적인 사실(Sachverhalt) 속에 존재하는가? 이러한 문제는 철학에서 유사한 문제로 오래된, 그러나 늘 다시금 새롭게 제기되면서, 결코 해결되지 않는 보편문제의 싸움에 해당된다. 이 보편문제의 싸움은 일반적인 것과 개별적인 것의 관계에 대한 문제이다. 본 논문에서 존재와 당위의 관계를 거의 각각의 측면에 주제별로 세울 수 있을 때, 다음의 도표에서 하나의 이해의 편의를 제공하고자 한다. 여기서는 얼마나 많은 개별적 문제가 존재와 당위의 관계에 대한 근본문제의 대답에 달려 있음을 보여준다. 즉 다음과 같은 문제들 법효력, 법인식, 체계이론, 법학적 Topik, “사물의 본성”, 이익법학과 개념법학, 그리고 또한 타율과 자율과의 관계를 비롯한 강제와 자유, 인과와 목적, 권력과 힘과 같은 그러한 문제들.
사상적 관련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본다면, 라드부르흐는 그의 초기 시절에 엄격한 방법이원론주의자에 속하였다. 당위라는 것은 -물론 법도 또한- 이 입장에 따르면, 언제나 더 높은 그리고 결국 최고의 당위(“법률이념”)에서만 나온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당위는 당위로부터 연역되지, 결코 존재하고 있는 것, 현실적인 것, 사실적인 것으로부터 귀납적으로 당위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연과 문화 사이에 아주 깊고, 건널 수 없는 심연이 존재한다. 문화현상은 문화현상에 내재한 목적이나 목표에 의해서 정해질 뿐이지, 원인(Ursachen)에 의해서 결정된 것은 아니다. 그 점은 다음의 도표가 보여준다. 학문이나 도덕, 예술의 법칙과 같이 법의 규범도 당위(Sollen)를 포함하는 문화법칙이지, 필연(Mussen)을 포함하는 자연법칙이 아니다. 그러한 문화법칙은 목적적으로 절대적 가치의 실현을 지향하나(그것은 “가치관계적”이다), 그렇다고 그것(문화법칙)은 현실의 제국이 아닌 관념의 제국에 거주하는 절대적 가치와 동일하지 않다. 학문에서는 진실을 찾고자하는 인식행위만을 문제삼는 한, 잘못된 판단도 학문에 속하며, 예술도 예술적인, 다시 말하면 아름다움의 이념을 지향하는 창조라는 어쩌다 성공하는 작품활동이다. 그리고 법도 또한 공허한 정의가 아니다. 어떠한 법규범도 모든 개별사례에서 절대적 정의를 보증할 수 없다. 법규범이 일반적으로 정의에 기여한다고 정해져 있는 한, 법규범은 법규범이고 또한 법규범으로 남는다.

法의 槪念
(Gustav Radbruch에 따름)
價値關係性
自然法則 文化法則?????? 理念의法則
演     繹
價値無關係 價値關係 純粹價値
事實的 現實的으로 妥當 理念的으로 妥當
必然 當爲 理想世界(utopia)
强制 自由 絶對
因果性 目的性 卽自性
········ ········
學問       ??????????  眞
道德       ??????????  善(倫理)
美學(藝術) ??????????  美
法         ??????????  正義
(法律, 慣習法, 判例法)                   (法理念)
+———–+———-+           +———-+———+
實定性               規範性       普遍性             社會性
法的安定性           法律의 目的   平等性          人間의 社會
(Gesetzestelos)  一般性          關係의 秩序
正義:”法은 正義에 奉仕하는 意味를 가진 現實이다”(Radbruch,
Rechtsphilosophie, S. 123).
혹은: 法은 “社會生活을 爲한 一般的, 實定的 規範의 總
體”이다(Radbruch, Vorschule der Rechtsphilosophie, S.
34).
法理念
(廣義의 正義)
|
+————————+————————+
|                        |                        |
平等      合目的性        法的 安定性
(狹義의 正義) (目的理念, 共同善의    (法的 安定으로서의
正義, 社會的 正義)     正義, 法的 平和)
形式: 어떻게 生活事態가 規制되어야 하는가? 恣意禁止, 法의 一般性의 原則, 각자에 그의 것을  內容: 무엇이 規制되어야 하는가? 利益, 期待, 必要. 倫理的 善理論. 手段: 무엇에 의해서 要求, 請求, 禁止가 規制되어야 恣意가 지배하지 않게 되는가?

形式上
對的-一般的

內容上
相對的(觀點에따라)

機能上
權威的

個人的 自由 社會 個別者 로서의 人間
超個人的   勸力

全體
社會的存在
로서의 人間
(?????????????)
超人格的
諸文化價値
共同體
文化價値의
創造者로서
의 人間
實定性
實踐可能性
不變性

自律的 存在
로서의 人間
(독일 기본법
제1조 제1항)

法의 具體的, 內容的
目的으로서의 人間.
不可讓의 人權에 의한
法의 相對性의 制限

他律的인 存在
로서의 人間
(法[强制]規範
의 受範者)
내용적으로 동일한 것을 말하는 양자의 정의는 두 가지 방향에서 의미가 있다. 첫째로, 그것은 실증주의적이 아니다. 실증주의적 법개념은 말하길, 법이란 자의적인 내용을 갖더라도형식적으로 올바르게 제정된 규범의 총체라고 한다. 이에 반하여 라드부르흐는 강조하길, 정의에 관련되고, 정의를 지향하는 규범만이 법적 자격(Rechtsqualitat)을 갖는다고 한다. 라드부르흐의 후반기에서 이러한 사상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가를 다시 한번 아래서 보게 될 것이다. 둘째로, 라드부르흐의 법개념은 자연법적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가 말한) “올바른 법”은 절대적 법가치(Rechtswert)와 동일시될 수 없기 때문이다. 라드부르흐에 있어서는 오직 “대체로” 正法만이 인정되었지, 악법(verwerfliches Recht)은 그에 의해서 결코 받아들인 적이 없으며, 그것은 그의 초기시절에도 그랬다.
라드부르흐는 그의 法에 대한 定義(Rechtsdefinition)로부터 正義(Gerechtigkeit)의 이론을 발전시켰다. 그는 그것을 매우 일찍이 실행하였고, 그에 의해서 구성된 모델이 오늘날까지도 법철학적 정의문제 토론의 기초가 되었다. 물론 그러한 발전이 그의 사후에는 계속되지 못했다(정의의 새로운 이론이 Chaim Perelman, John Rawls와 Ilmar Tammelo에 의해서 발전되었다). 라드부르흐는 그의 정의론을 다시 한번 완전히 새롭게 개정할 생각을 가졌기에, 그는 원리의 상대주의적 성향을 다소 완화하려 하였으나, 그러나 그렇게 하지 못했다. 여기서 재생한 도표는 라드부르흐에 의해 작성된 것은 아니나, 그와의 대화를 통해서 추측해 볼 때, 그가 마지막으로 받아들인 입장과 상당히 일치한다고 본다.
여기서는 유감스럽게도 위의 모델을 자세히 설명할 여분이 없다. 라드부르흐는, 평등의 원칙(동등한 것은 동등하게, 동일하지 않는 것은 그에 상응하여 달리 대우한다는 원칙)은 절대적으로 타당하나, 그러나 단지 형식적 성격을 갖는다는 데서 출발한다. 여기서는 그러므로 내용을 갖는 원칙, 즉 목적이념이 추가되어져야 한다. 이 목적이념은 물질적이기는 하나, 그러나 상대적으로만 효력을 갖는 데, 그 이유는 합리적으로 결론을 내릴 수 있는 순위에 관계없이 법에 있어서 3개의 서로 다른 최고가치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개인주의적, 초개인주의적 그리고 초월적 인격가치(transpersonaler Wert). 그러므로 법적 안정성을 위하여 법내용을 권위적으로 확립할 필요가 있다. 다시금 라드부르흐의 학설이 실증주의적이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왜냐하면 그의 이론에 가치도 관계되기 때문이다. 물론 그 때문에 상대주의를 희생하게 된다. 그리고 라드부르흐의 이론은 자연법적도 아니다. 왜냐하면 “절대적으로 올바른 법”은 법이념에서 추구된다고 보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이 “법이념”에 해당되는가에 대하여, 라드부르흐는 정확한 정의를 내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 안에 선험적 조건, 이성원칙, 공리(Axiom), 가설(Hypothese)이 포함되지 않을까?
우리가 라드부르흐에 관하여 잘 이해를 한다면, 도표를 통하여 법이념은 결국 그 이념에 따른 3가지 종류로 복사된 인간(자율적 존재로서 인간, 법의 목적으로서 인간, 타율적 존재로서 인간)의 인격성의 이념과 일치한다는 것을 끄집어 낼 수 있다. 혹은 다음과 같이 규정할 수 있다: 법이념과 人間像(Menschenbild)은 서로 보완관계에 있다. 이 때에 주의할 것은 도표를 위에서 아래로 읽어, 인간의 모습은 법이념에서 유래한다고 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반대로 읽어도 가능하다: 법이념은 인간의 이념의 복사(Abbild)이다. 그 결과 다시금 프로타고라스의 결론에 빠지게 되는지의 여부는 우리가 인간의 “이념”을 어떻게 정하느냐에 달려 있다. 라드부르흐의 후기사상과 일치해서, 이 때에 개인주의, 초개인주의 그리고 초월적 인격성을 각자 독립한 법의 최고가치로 간주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한 사람의 전체 인간적 인격(Eine ganze menschliche Person)이 각인된 특색으로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즉 개인, 사회인(Sozialperson), 문화주체(Kulturtrager). 이러한 전체 인간만이 법의 목적이 될 수 있다. 그 결과 그리고 양도할 수 없는 인권을 인정함으로써 법철학적 상대주의는 그 근본에서 극복되었다. 또한 법철학 내에서 법인류학이 어떠한 중요성을 갖게 된 지를 분명하게 해주었다(아래 제II장 제4절 II 참조).
라드부르흐는 그의 초기 학설에서 법적 안정성의 가치를 지나치게 높게 평가했다(위의 제II장 제3절 IV 참조). 그 때문에 법에 있어서 실증적 요소, 즉 법의 실증성을 지나치게 강조했다. 그가 노년이 되어 실증주의의 타락을 체험한 후에, 그가 죽기 조금 전 “사회주의의 문화론”(1949)의 제3판 후기에서 인정한 바와 같이 “그는 이전에 가졌던 사상의 근본을 변경한 필요가 없었고, 단지 중점을 다른 데로 돌려서, 지금껏 그늘진 곳에 있던 그것을 완전한 빛이 있는 곳으로 올려놓을”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1946년에 불법의 무효와 그 불
법대신에 나타난 “초실정법”의 무효에 관한 라드부르흐의 학설은 그가 이미 초창기에 구상한 법개념의 결과일 뿐이며, 이제 법적 안정성보다 실질적 정의에 보다 더 중점을 둔 것뿐이다. 이러한 학설의 근본사상은 연방헌법재판소의 연방법원을 포함한 여러 법원에서 받아들여졌다. 여기서 그 사상을 기술해 보자: “정의와 법적 안정성” 사이의 갈등은 다음과 같이 해결되어져야 할 것이다. 즉 정의에 대한 實定(제정과 힘에 의해서 보장된)法의 모순이 참을 수 없을 정도에 달하여, “부당한 법”으로서 제정법이 정의에 양보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실정적으로 보장된 법은 그 내용이 비록 부당하고 비합목적적이라 할지라도 정의에 우선한다. 제정상의 불법과 부당한 내용을 갖긴 하였지만 효력을 지닌 법률사이에 명확한 한계를 긋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다른 경계설정은 아주 명확하게 정할 수 있다: 정의가 한번도 추구되지 않고, 정의의 핵심을 이루는 평등이 實定法의 제정시에 의식적으로 거부될 때, 그 때에 制定法律은 “부당한 법”일 뿐만 아니라, 법적 자격도 전혀 없는 법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법, 그러므로 실정법을 정의에 기여하라고 정해진 질서와 制定(Satzung)이라는 것 이외에 달리 定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라드부르흐는 이전보다 더 정의에 중점을 두었으나, 법적 안정성을 무시하는 자연법론의 결점을 피했다. 그 점은 1차 세계대전 후에 매우 많이 논의된 “사물의 본성”의 문제에 대한 그의 입장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라드부르흐는 사물의 본성에서 단지 “思考形式”만을 보았을 뿐, 결코 새롭고 “구체적 자연법”을 본 것은 아니었다. 그의 입장은 자연법과 실증주의를 초월한 것이다. 우리가 (그의 사상을) 정확히 읽는다면, 그에게서 “올바른 법”, 혹은 “옳지 아니한 법”이란 것도 결코 주어져 있는 상태(Vorhandener Bestand)가 아니라, 오히려 구체적으로 정해지는 것이며, 그 때문에 완성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만들어지는 것이란 점을 알 수 있다. 라드부르흐식의 공식은 하나의 과정(Prozeß), 즉 표준점은 있으나 어떤 보장도 없는 산마루에서의 등산객의 등산(Gratwanderung)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라드부르흐는 언제나 판결과 그에 따른 책임(Verantwortung)의 중요성을 매우 강조하였다.
3. 법인류학
라드부르흐의 정의론은 논리필연적 진행에 따라 결국 모든 법의 근거와 목적인 인간을 대상으로 삼고, 그 결과 법인류학을 문제삼는다. 라드부르흐 스스로는 법인류학을 깊이 연구하지 않았다. 현대 법철학에서도 법인류학에 대한 몇 개의 논문이 있을 뿐이다. 법인류학은 오랫동안 학문의 의붓자식에 불과했다. 그 점에 대한 이유가 있다.
물론 철학에서는 이미 예전부터 언제나 인간에 대한 문제를 다루었다. 그러나 이런 테마는 철학에 있어서 지배적인 중심문제가 아니었다. 고대인은 우주, 즉 자연을 문제삼고, 그들은 인간을 자연의 일부로 보았다. 중세에도 이와 유사하여 인간은 신이 만든 창조질서의 부분이었다. 그러므로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아우구스티누스, 토마스 아퀴나스, 니콜라우스 쿠에스에서는 인류학을 말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근대의 위대한 체계론자들도 고유한 인류학을 발전시키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들 대부분은 주어져 있는 세계질서로부터 인간의 해방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근대는 그와 같은 주된 근거에 기해서 인간을 해방하여 인간 스스로 독립하게 함으로써, 인간을 단지 이성의 “주체”(Subjekt), 즉 인식의 주체로 파악하여, 결국은 인간을 초월적 주체 내지는 범신론적으로 이해하여 범이성적인 것으로 보았다. 칸트도 역시 인류학하고는 거리가 멀고, 그에게는 도덕적 인격으로서 인간만이 관심이 있었지, 피조물로서 인간은 관심 밖이었다. 인격에 관한 철학은 결코 인류학이 아니다.     확실히 많은 “인간상”은 언급되었으나,그럼에도 인류학은 전혀 다루어지지 않았다. 인간이 자기자신을 의식적으로 모든 초월적 관계로부터 해방하고, 인간이 자기를 자기 스스로 뒤돌아보게 되자 인간 자체가 철학하는 일의 주제가 되었다. 그와 같은 전환(Durchbruch)은 쉘링(Friedrich Wilhelm Schelling, 1775-1854)에 의해서 일어났고, 그리고 나서 생의 철학(Soren Kierkegaard, Fried- rich Nietzsche)이 그것을 테마로 삼게 되었으며, 쇼펜하우어도 그 문제를 논했다. 그러나 진정한 철학적 인류학은 후셀(Edmund Husserl)의 현상학적 방법론(아래 제 II장 제4절 III)에서 비로소 가능하게 되었다. 쉘러(Max Scheler, 1874-1928)는 현상학적 방법론에서 출발하여 인류학적 테마를 맨 처음 명확하게 표현하였고, 그 결과 현
대의 철학적 인류학이 발달하게 되는 길을 닦았다. 좀 나중의 사람들, 예컨대 플레스너(Helmuth Plessner, 1892년생), 클라게스(Ludwing Klages, 1872-1956), 겔렌(Arnold Gehlen, 1904년생), 로타커(Erich Rothaker, 1888-1965)등 이들 모두는 다소간 현상학에 의해 영향을
받았다. 실존철학에서 특히 사르트르(위의 제II장, 제3절 IV)는 인류학적 연구를 하였다. 이미 베르그송이 기초작업을 해놓은 프랑스에서 인류학이 그 절정을 이루었다. 그리고 그들의 대표적 인류학자로는 Geston Bace- lard(1894-1962)와 Maurice Merleau-Ponty(1908-1961)를 들 수 있다. 최근에는 행태연구(Verhaltensforschung)가 인류학 연구의 중심과제이다. 로렌츠(Konrad Lorenz, 1903년생)가 그 문제에 있어선 선구적 역할을 하고 있다.
지금껏 이야기한 것은 법인류학의 고유한 역사가 존재하지 않다는 것을 알기 쉽게 해준다. 최근까지도 이러한 이름을 가진 분야가 아직도 명확하게 확립되지 않았다. 피켄처(Wolfgang Fikentscher)가 이런 관점에서 방법적 인식(methodisches Bewußtsein)이 아직도 발달과정 중에 있다고 한 말은 정당하다. 지금까지 아주 소수이긴 하나, 독일어로 된, 중요한 법인류학 연구문헌이 있고, 가장 중요한 논문의 저자를 들면, 뤼펠(Hans Ryffel, 1913년생), 람페(Ernst-Joachim Lampe, 1933년생), 브?만(Jan M. Broekman)과 포스피질(Leopold Pospi?sil, 1913년생)이 있다. 그밖에 짤막하지만, 부분적으로 중요한 논문들이 있다. 그 사이에 문제가 된 문헌의 수정작업은 거의 없었다. 시급한 일은 법인류학 연구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하는 일이다. 이 때에 좁은 의미를 갖는 철학적 문제에 국한할 필요가 없다. 생물학적 그리고 특히 심리학적 관점도 다루는 것이 필요하다. 그 때문에 프랑스에서는 다음과 같은 문제, 즉 내면화(Internalisation), 문화화(Enkulturation)와 문화변용(Akkulturation)의 문제뿐만 아니라, 그밖에 민족학(Ethnologie)과 동물행동학(Etho- logie), 비정상적 행동(deviantes Verhalten) 문화적 그리고 부문화적(subkulturell) 행동방법 등등은 법인류학에 포함된다. 유행하고 있는 다수의 외래어의 이용은 이 분야가 얼마나 생소한 것인가를 잘 보여준다.
오늘날의 법철학에서 우리가 법이 무엇인지를 정말 모른다는 의식이 지배하고 있다면, 그것은 인간이 도대체 무엇인가에 대한 해결할 수 없는 심연깊이 놓여 있는 수수께끼의 반영에 불과하다. 도스토예프스키(Dostojewski)는 언젠가 말하길, “개미는 개미떼를 구성하는 일정한 양식(Formel)을 알고, 벌은 벌집(Bienenstock)의 구조를 안다(그것들은 물론 인간들에 관한 양식을 모르나, 그들 자신의 양식은 안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알 필요가 없다. 단지 인간만이 자기들의 구성양식을 모른다”.
4. 그 밖의 흐름
후셀(Edmund Husserl, 1859-1938)에 의해서 시작된 현상학은 법철학의 부흥을 위해 또 다른 관점에서 중요한 자극이 되었다(후셀의 중요제자로서 1891년에 출생하고, 카톨릭으로 개종한 유대인 Edith Stein은 1942년 Auswitz에서 살해되었다). 현상학의 이론에 따르면, 그
자체 존재하고 있는 순수본질(ansichseiende Wesen- heiten)은 순수하게 그 자체 주어져 있는(Selbstge- gebenheit) 모든 “우연적 존재계수”(Daseinskoeffizienten)를 “괄호 안에 넣어 무력하게 하거나”, 혹은 “본질적”(eidetisch)이고 “현상학적 환원”(phanomenologisch Re- duktion) 아래서 “현상학적 판단중지”(ideierenden Akten)
을 함으로써 나타나며, 그 본질은 확실히 엄격하고 명확하여, 오류가 없으며 적합하다. 이러한 기초 위에서, 정확히 말하자면, 게르하르트 후셀(Gerhart Husserl, 1894년생)과 라이나하(Adolf Reinach, 1833-1917)가 법의 선험적(칸트가 말하는 형식의 의미를 가진 것이 아님) 요소를 끄집어내려고 시도했다. 여기서 법의 선험적 요소라는 것은, 입법자가 사리에 합당한 규정을 정하려면, 지켜야 될 요소이나, 설사 입법자가 준수하지 않았다해서 그 법률이 무효로 되는 것이 아니다.
현상학에 관한 이와 같은 논리적·인식이론적 견해처럼, (현상학에 대한) 가치이론적 견해도 지속적인 영향을 주었다. 이 이론의 철학적 기초를 제공한 者(philosophischer Gewahrsmann)는 위에서 이미 언급한 쉘러(Max Scheler, 1874-1928)이다. 벨첼(Hans Welzel, 1904-1977)과 그의 제자인 슈트라텐베르트(Gunter Stra- tenwerth, 1924년생)는 그 이론에서 주된 영감을 받았다. 이들의 견해에 따르면 법전체(gesamtes Recht)는 “사물논리적 구조”(sachlogische Strukturen)에 의해서 구성되어 있고, 인간의 행위 등이 규범화되려면, 그 사물논리적 구조가 -예컨대 인간의 행위구조를 비롯한 고의문제 그리고 정범과 공범의 관계구조- 제정법의 규정을 구속한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근본적 가치결정은 사물논리적 인식에 따르지 않고, 오히려 기본적 가치결정이 사물논리적 인식에 선행한다. 단지 그 때문에 사물논리적 관련은 실정법의 개별적 형성을 구속한다”.
제3의 입장인 존재론적(ontologisch) 견해는 하이데거(Martin Heidegger)와 콘라드-마아티우스(Hedwing Con- rad-Martius, 1888년생)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하이데거는 우리의 관심사가 관계하는 것을 두 가지 방향에서 영향을 미치었다. 첫째로 그는 해석학에 활기를 불러 일으켰다. 그 문제에 관해서는 다음 절에서 다시 언급하게 된다. 둘째로 그는 존재론적으로 기초한 실존철학을 세웠다(이 둘은 물론 서로 관계를 갖는다). 현상학의 이와 같은 분야는 특히 마이호퍼(Werner Maihofer, 1918년생)에게 감사해야 한다. 그는 “법과 존재”(Recht und Sein)에 관한 연구에서, “자기존재”(Selbstsein) 외에 또한 사회적 존재와 그 결과 법에 하나의 “고유한” 존재형식, 즉 “∼으로서 존재”(Alssein)를 인정함으로써 하이데거(위의 제II장 제3절 IV)를 극복하였다. 중요한 점은 그가 법의 연원으로서 혹은 “구체적 자연법”으로서 이해하는 “사물의 본성”의 문제를 토론에 끌어들였다는 점이다.이 문제에 대해 아직도 진행되고 있는 토론과 함께 자세한 언급은 본 문제사적 章을 넘어서는 것이다.
또 다른, 현상학에 의해서가 아닌, 마부르크의 신칸트학파에서 출발한 존재론적 철학을 하르트만(Nicolai Hartmann, 1882-1950)이 매우 광범위하게 다루었다. 그 철학에서는 고유한 철학적 방향은 없으나, 그럼에도 하르트만의 인식은 매우 많은 법철학적 그리고 법학적 개별문제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이와 유사한 것을 야스퍼스(Karl Jaspers, 1883-1969)의 특유하고 독자적 실존철학에서도 볼 수 있다.
여기서 또한 신헤겔학파를 언급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이 학파에는 빈더(Julius Binder, 1870-1939), 쇤펠트(Water Schonfeld, 1888-1958), 라렌츠(Karl Larenz, 1903년생) 등이 속한다. 한편으로 이 학파에서 주의할 것은, 신헤겔학파는 실증주의적이 아니어서, 2차 세계대전 후 법의 부흥에 기여하는 데,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는 점이다. 다른 한편으로 신헤겔학파는 (권위주의적 국가이론과) 근접하다는 이유로 나치스의 몰락과 함께 질식하였기 때문에, “구체적 질서사상”(Carl Schmitt, 1888년생)의 원용(Berufung)은 더 이상 믿음직스럽게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올바른 법”에 대한 방법론적 문제점에 대한 사색을 해야 할 지점에 이르렀다.
제3절 근대법학 방법론의 역사적 발전
여기서는 법학방법론의 근대 역사에 한정하여 언급해야 될 것 같다. 왜냐하면 우리가 현재 당면한 문제의 관점에서 볼 때, 법학방법론은 오직 법학의 근대사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지나쳐서는 안될 것은 피켄쳐(Wolf- gang Fikentscher)에 의해 이전(로마)의 법과 외국(영미)의 법에 대한 방법론의 포괄적인 설명을 특히 참조하길 바란다. 그 책에서 (이들 문제에) 관심있는 독자는 아주 풍부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
Ⅰ. 사비니(Friedrich Carl von Savigny)
적어도 독일어권 내에서 볼 때, 근대법학 방법론은 사비니와 함께 시작되었다. 그에 의해 기초가 잡혀진 전통적 방법론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하여, 우선 법학방법론의 모델을 검토해 보자.     두 번째의 도표는 단지 설명상의 이유로 독립되어 있을 뿐이다. 방법론에 관한 것은 실제로 첫째 도표이다. 그리고 “해석”에 관한 것은 그 다음에 있다.
법학 방법
소위법적용 소위법발견
(생활사태를 법규범 아래에 “포섭”)     (“흠결보충”: 판결내려야 할 사태가 기존법규범에 의해  전혀 규제되지 않거나 직접 규제되지 않는 경우)
당위(SOLLEN)              존재(SEIN)

규범으로부터 。—- 일치 ──、사건으로부터
구성요건의 탐구              사안의 탐구
해석(Interpretation)               구성(Konstruktion)
表象         확정         평가         유추       역추
(Vorstellung)  (Feststellung)   (Wurdigung)      (Analogie)  (Umkehrschluß)
규범의 직접적 작용              법규범의 우회적 작용
가치결정
법관의 자유로운 법발견
법의 발전적 형성
(여기에는 소위 법규범의
성찰          논증          논의     목적론적 연역도 속함)
(Reflexion)   (Argumentation)   (Diskussion)
* 소위 法的 擬制는 그 본질상 법으로 정해진 유추이다.
법 해 석
(법규범의 내용과 적용범위의 탐구)
방법에 따른 구분                        결과에 따른 구분
문리적내지 논리적 확대해석 축소해석
문헌학적해석      체계적 해석  (법규범의 적용범위를   (법규범의 어의를
(어휘, 用語, 어휘의              語義를 넘어서 확장   넘지 않고, 그 가능
가능적 의미)                   시킴)                  한 어의를 제한함)
(목적론적 축소, 즉
형식논리적해석     목적론적 해석          법규범의 핵심영역
(개념으로부터 법률  (개별법규범의 목적, 의미  까지 축소하는 것
효과가 연역된다:   -입법이유- 내지 다수     은 더 이상 “해석”
“개념법학”)        법규범과 법질서 전체의   이 아니라 -유추
목적, 의미 -법의 이성-   와 같이- 법규범
에 대한 물음: “이익법학”)  의 보완, 법의 발
전적 형성, 즉 규
범을변화시키는
축소이다)
주관적(역사적)해석               객관적 해석
(“입법자의 의사”)               (“법률의 의미”)
우선 첫째 도표를 관찰해 보면, 법판결과정의 두 가지 종류인 “법적용”과 “법발견”을 볼수 있다. 이런 것이 전통적 방법론의 출발점이다. 대개의 경우는 “법적용”이며, 이 법적용이라는 것은 일정한 사안(Sachverhalt)을 해석이 다소 필요한, 그러면서도 그 자체 완전하게 성립되어 있는 규범아래(경우에 따라서 다수의 규범아래) “포섭”을 다루는 -“그것만”을 다루는- 일이다. 그것을 “바바리식”(modus babara)에 따라 순수한 논리적인 3단 논법으로 나타내 보면 다음과 같다.
모든 살인자는 무기징역에 처하게 된다.
M은 살인자다.
——————————
M은 무기징역에 처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에서는 법적용자(Der Rechtsanwende)는 수동적으로 머문다. 그는 단지 두개의 객관적 대상(Großen)인 법률과 사건을 서로 병렬할 뿐이다.
예외적으로 법률에 흠결이 있는 경우, 즉 판결해야 될 사안(Sachverhalt)에 “적용준비가 다 된”(fertige) 법규범이 아직 없는 곳에서만, 법관은 “법발견행위”(Rechtsfindungsakt)를 통해서 법창조적으로 -말하자면 입법자의 대리로서- 활동해야 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유명한 규정은 스위스 민법 제1조이다: “법률과 관습법이 침묵하는 경우, 법관은 그가 입법자였다면 제정했을 규정에 의하여 판결해야 한다”(이 규정의 정신적 아버지는 후버<Eugen Huber, 1849-1923>이다).
법관에게 법창조활동이 허용되는지, 혹은 허용되어야 하는지, 혹은 어느 정도 허용되는지, 허용되어야 하는지 하는 문제를 많은 법학자가 다루어왔다. 이미 위(제II장 제3절 IV)에서 본 바와 같이, 법관은 법적 안정성과 권력분립의 이유로 가능하면 법률의 字句(Wortlaut)에 엄격히 구속되어야 한다(포이어바하와 그 밖의 학자들은 심지어 해석금지를 필요한 것으로 보았다). 이 점에서 사비니도 심사숙고를 하였다.
그의 초기시절에 나온 “법학방법론”(1802/03)에서그는 확실히 틀림없는 제정법실증주의적인 것은 아니었으나, 그럼에도 그는 제정법실증주의적 요소를 내포한 입장을 견지하였다. 사비니는 해석(Auslegung)을 “법률에 내재하는 사상의 재구성”으로 이해하였다. 이런 목적을 위하여, 그는 “고전적 해석론”이라고 불리는 (앞에 있는 도표에서 기초가 되어 있는) 법률해석의 4개 원리를 발전시켰다. 첫째가 문법적 요소이다. 문법적 해석의 대상은 “입법자의 사상에서 우리의 사상으로 전환”(Ubergang)을 매개한 “어휘”(Das Wort)이다. 두 번째는 논리적 요소이다. 논리적 해석의 대상은 사상의 체계적 분류(Gliederung)로서, 개별적 부분을 서로간에 연결하는 논리적 관계이다. 세 번째의 것이 역사적 요소이다. 그것은 “그 법률제정시에 당면한 법률관계에 관하여 법률규정에 의해 결정했던 상태”가 문제된다. 마지막인 네 번째는 체계적 요소이다. 이것은 “모든 법제도와 법규가 하나의 거대한 통일로 결합되는 중대한 내적인 관련”에 관계한다.
이러한 도식에서는 “확대”해석과 “제한”해석이 나타나지 않는다. 사비니는 그런 해석은 허용될 수 없는 것으로 보았다. 그 이유는 그러한 해석은 입법자의 생각을 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바른 해석의 기준은 그러므로 역사적 입법자의 의사이어야 한다고 하였다. 그 결과 사비니는 “주관적 해석론”을 신봉하였고, “법률의 의미와 목적에 기초한 객관적·목적론적 해석론”을, 법률의 목적은 법률의 내용이 아니라는 이유로, 거부했다. 그것은 철두철미 실증주의적인 생각이다. 왜냐하면 법실증주의는, 법률을 초월하여 그 법률의 의미 쪽으로 해석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는 이론이기 때문이다. 주관설은 그러므로 모든 시대에서 법실증주의자의 낙원이었다. 그 이론의 중요한 점은 법적 안정성이다. 객관주의자는 이에 대해, 우리가 생활관계의 끊임없는 변화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법률도 탄력을 잃어 그 결과 부당한 결과를 내게 된다는 점을 바르게 지적한다. 그러나 극단적인 객관설은 법관을 법의 구속에서 해방시키고 3권 분립에 저촉하게 된다는 점은 무시할 수 없다. 그러므로 사안에 따라 한번은 더 객관주의설에, 다음에는 더욱 주관주의설로 왔다갔다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사비니의 이론도 역시 이런(그리고 이점에서 뿐만은 아니지만)점에서 변화가 있었다. 그의 초기 시절에서도 그는 순수한 주관주의자는 아니었다. 왜냐하면 깜짝 놀랄 정도로 흠결을 보충하는데 유추의 사용을 허용하기 때문이다. 그는 물론 말하길, 유추는 실정법 자체로부터 나오는 실정법의 보충일 뿐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의 후기 작품(Von Beruf unserer Zeit fur Gesetzgebung und Rechtswissenschaft와 System des heutigen Romischen Rechts)에서 사비니는 그의 “방법론”의 입장을 상당히 후퇴하여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제정법이 더 이상 최고위가 될 수 없고, 법의 원천은 “민족정신”(Volksgeist)이다. 법규정은 법제도나 전형적인 생활관계로부터 직관이나 추상화를 통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확대해석과 축소해석도 허용된다. 목적론적 해석도 더 이상 엄격하게 비난하지 않았다. 물론 사비니는 그 점에 대해 언급을 회피하였지만, 법률의 “근본”으로부터, 혹은 “一般的 法的 思考”로부터의 해석은 더 이상 해석이 아니라, 법과의 권한에 속하지 않는 법의 형성(Rechtsfortbildung)이라고 보았을 것이다.
Ⅱ. 개념법학
법관의 법창조금지는 곧바로 실현될 수 없는 것으로 증명되었다. 왜냐하면 법률은 언제나 내재하는 흠결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모든 해석이라는 것은 이미 법률처분권한(Verfugung uber das Gesetz)을 의미하여, 법률처분시에는 해석자가 주체로서 함께 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을 공개적으로 인정하는 것은 오랫동안 시간이 흘렀어도 성숙되지 못했다. 오히려 다양한 방법으로 주관·객관의 도식을 유지하려 하였다. 이러한 시도중의
하나가 19세기에 많은 추종자를 가졌던 개념법학이다. 그 개념법학의 방법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많은 법률가가 이용하고 있다.
반드시 실증주의에만 사로잡혀져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없는, 개념법학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에는 단순한 개념으로부터 법규를 연역하는데 있다. 예를 들면 “법률상의 人”(juristische Person)이라는 개념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결론이 파생된다. 법률상의 人은 “人”(Person)이기 때문에 명예훼손의 대상이 되는 능력이 있고, 형벌을 받을 능력이 있다. 이러한 개념은 인식의 원천으로 이용된다. 실재(Existenz)는 본질에서 나온다는 이러한 존재론
(Ontologismus)에, 저 유명한 존재론적 신의 증명(Gottesbeweis)은 기초하고 있다. 즉 “가장 완전한 존재”(vollkommenstes Wesen)의 개념으로부터 필연적으로 그의 실재(Existenz)가 나온다(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완전할 수 없으니까).
개념법학자들은 그 개념법학의 방법을 이용하여 법률은, 생활관계에 관계없이, 그 자체로부터 결실을 맺을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보여주려 한다. 푸흐타(Georg Friedrich Puchta, 1798-1846)는 그의 저서 “Cursus der Institutionen”(1841)의 첫 권에서 전체 개념피라밋을 완성하여, 그 최상부에 최고의 개념을, 그 최고개념으로부터 그 다음의 매우 추상적 일반적 개념을, 이 일반적 개념으로부터 다시금 구체적 내용이 있는 개념을, 이와 같은 식으로 하여 개념을 연역하였다. 라렌츠는 이것을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다.
아래단계로부터 위의 단계로 갈수록 피라밋은 폭을 잃게 되나, 높이를 얻게 된다. 폭이 크면 클수록, 다시 말하면 소재가 많으면 많을수록, 높이는 낮아진다. 즉 전체의 통찰가능성은 적어진다 – 그리고 그와 반대의 경우도 일어난다. 폭은 내용에 상응하고, 높이는 “추상적” 개념의 범위(적용범위)에 상응한다. 맨 위에 가장 일반적 개념이 있고, 그 개념 아래서 그 밖의 모든 개념, 즉 屬과 種의 그러한 개념을 포섭하게 된다. 즉 기초적인 점에서 출발하여 중간단계를 거쳐 특별한 것을 탈락시켜, 가장 일반적 관념에 도달할 수 있다. 푸흐타는 그것을 바로 “개념의 계보”(Genealogie)라고 부른다. 여기서 합리주의적 자연법의 방법론과의 유사성이 명확하게 보인다. 그러나 그것이 놀라운 일은 아니다. 왜냐하면 자연법과 실증주의
는 방법론상 가까운 친척이기 때문이다. 즉 이 양자는 법은 보다 더 높은 단계 그리고 결국은 최고단계의 당위에서 연역적으로 끄집어 낼 수 있다고 믿는다. 이 때에 문제가 되는 것은, 단지 모든 파생된 개념의 내용을 함께 정하는 최고단계의 개념은 어디서 유래하는가? 그리고 이때에 어떻게 하여 순환논법을 피할 수 있을까 하는 것만이 문제된다.
푸흐타는 최고단계의 개념에 법윤리적 내용을 받아들인다. 예링(Rudolf v. Jhering, 1818-1892)은 이에 반하여 그와 같은 전제를 파기하고, 순수하게 귀납적으로 처리한다. 그는 그의 초기작품에서 “자연역사적 방법”(naturhistorische Methode)을 주장하였으나, 나중에는 자기 스스로 이 방법에 신랄한 조롱을 하였다. 그 때는 자연주의의 시대였다. 즉 자연과학의 사고방법으로 법학이 지향하는 시기였다. 그렇게 하여 눈에 뛸만한 꽃이 피었다. 그러기에 예링의 다음의 글이 자주 인용되었다. “모든 개념은 생산적이며, 시간을 절약케 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 또는 그는 이러한 구조법학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구조법학은 존재할 수밖에 없는 새로운 법규를 발견하게 한다”.
예링에 대한 탐구는 그만하고, 위(제II장 제3절 IV와 V)에서 이미 언급한 “合當的”(legitimen) 제정법 실증주의를 대표하는 빈트샤이트(Bernhard Windscheid, 1817- 1892)의 개념법학을 살펴보자. 그의 이론에 따르면, 입법자는 윤리적 실체를 지닌 자로 전제되어, 단순히 하나의 大命(Machtspruch)을 발하는 입법자가 아니라, 법률 속에 “민족의 이성”이 스며들게 하는 입법자이어야 한다. 라렌츠는 이것을 “입법자의 이성을 신뢰함으로써 다소 완화된 합리적 제정법실증주의”라고 부른다. 빈트샤이트의 실증주의는 그 밖의 점에 있어서 이미 심리주의로 빠지긴 했으나, 그는 방법문제에서는 중도의 입장을 취하였다. 물론 그는 실증주의자로서 주관적 해석방법을 찬성하였으나, 그러나 입법자의 “意思”를 관념화하여 立法者意思의 “객관적 이성”에 의존하였다. 그 결과 사실상 객관주의에 가까운, 그러나 객관주의적 위험에 빠지지 않는 입장을 취하였다.
다음 시대, 즉 19세기 후반기와 20세기의 전반기에 객관적 해석론이 점점 많이 관철되어졌다: 빈딩(Karl Binding), 바하(Adolf Wach), 콜러(Josef Kohler), 라드부르흐(Gustav Radbruch), 자우어(Wilhelm Sauer). 이러한 전환은 주로 형식주의적 개념법학이 점점 더 의미가 공허한 법을 낳게 하였다는 점에 있다. 객관적 해석방법을 이용하여 의미가 공허한 추상적 법률개념에 다시금 의미를 풍부히 불어넣으려고 하였다. 법률의 해석이라는 것은, 라드부르흐의 말을 빌리면, “이미 인식했던 것의 인식”(Erkenntnis der Erkannten)도 아니고, 또한 “예전에 생각했던 것의 반성”(Nachdenken eines Vorgedachten)도 아니며, 오히려 “생각했던 것을 마무리짓는 생각”(Zu- endedenken des Gedachten)이다(법률의 창조자가 그 법
률을 이해하는 것보다, 해석자가 그 법률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으며, 법률이 그 법률 제정자보다 더 영리할 수 있다). 법률은 심지어 그 법률의 제정자보다 더욱 영리함에 틀림없다. 법률이 중요하지, 입법자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또는 홉스(Hobbes)의 말로 표현하면: “입법자는, 그의 권위에 기해서 법률을 제정했기 때문에 입법자인 것이 아니라, 그의 권위에 기해서 법률의 존재가 유지되기 때문에 입법자가 된다”.
Ⅲ. 경험적 법실증주의
객관적 해석론은 법률개념에 의미를 풍부히 주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 의미는 어디서 오는가? 개념법학자는 그것을 법률에서 찾으려 하였다. 이러한 방법을 “내재적 목적론”(immanente Teleologie)이라고 부른다. 법률개념을 “교배”(Paarung)하여 번식(Inzucht)하는 일이, 결국은 법률의 의미내용이 없어지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것은 명백하다. 그러므로 법률 밖에 놓여 있는 것을 이용하여야만 했다. 물론 자연법으로 회귀하는 일이 불가능할 때, 여기
서는 법적 사실(Rechtstatsache)을 이용하게 되었다. 여기서 법을 내부세계의 사실, 즉 심리적 사실로서 이해하거나, 아니면 외부세계의 사실, 즉 사회적 사실로 이해하는 경험적 법실증주의가 발생하게 되었다. 그 결과 지금까지 방치된 분야가 법학의 영역 내로 들어오게 되었고, 그리고 그것이 다음 시대에 매우 큰 결실을 맺는데 영향을 주었다. 다른 한편 법적 사실에 대한 일면적인 지향으로, 법의 고유한 문제, 즉 법의 규범성(Normativitat)이 법의 영역에서 사라져 버린 결과를 초래했다.
1. 비어링
고유한 의미의 심리학적 법이론(Psychologische Rechtstheorie)은 비어링(Ernst Rudolf Bierling, 1814- 1919)과 함께 시작되었다. 경험적 실증주의자들은 법의 효력을 증명하는 데 개념적으로 어려움을 가졌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 효력의 근거를 가치 속에서 찾을 수 없고, 단지 사실 속에서만이 찾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 때에 두 가지 사실(Fakten)이 고려된다: 승인과 힘, 즉 동의와 권력(Imperium). 비어링은 첫째의 길을 걸었다. 그에 따르면, 법이란 것은 공동체 내에서 법이라고 인정한 것이다. 자동적으로 다음과 같은 문제가 곧바로 제기된다. 즉 법에 대해 승인을 거부하는 사람을 어떻게 할 것인가? 이에 대해 비어링은, 승인이라는 것은 계속되어진 습관적 행위라고 응답한다. 그러므로 간접적 승인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법을 의식적으로 거부하는 사람, 즉 확신범에 대하여도 유효하냐의 문제에 답한 것은 아니다. 이미 헤겔은 그 문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하였다. 법을 위배한 자는, 법을 논리필연적으로 인정하고 있기에 예를 들어 절도범은 소유권을 취득하려 하고, 그 결과 그는 필연적으로 그의 소유권의 법적 보호를 긍정한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서 승인은 심리적 현상이지, 결코 논리적일 수 없다고 반론을 제기한다. 최근에 루만(Nikolas Luhmann)은 승인을 기능적으로 설명하려고 노력하였다; 승인은 확신으로부터 나온 동의를 의미하지 않으며, 복잡한 사회에서는, 법률피적용자가 기능할 수 있을 때, 즉 법률피적용자가 가능한 한 방해없이 배워서 하나의 체계 안에 들어갈 때만, 하나의 체계는 그 기능을 한다. 왜냐하면 법률피적용자도 전체 체계의 한 부분이어서 결국 체계자체가 승인을 낳기 때문이다. 비어링에 되돌아가서, 그에 관해서 말한다면, 그는 객관적 해석론의 명백한 반대자였다. 법률해석은 (법률)성립사(“입법자료”)의 도움을 얻어 입법자의 실제의 의사를 탐구하는 데 있지, 법률의 정신을 탐구하는데 있지 않다고 하였다.
2. 예링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예링(그의 책 “권리를 위한 투쟁”은 전세계적으로 유명하다)은 그의 초기 시절에 주장한 구조법학을 후년에 접어들면서 포기하였다. 그 같은 일은 무엇보다 그의 두 권으로 된 저서인 “법에 있어서의 목적”(1877/1883)에서 일어났다. 그 책의 모토인 “목적은 전체 법의 창조이다”라고 한 것은 그의 새로운 방향을 명백하게 보여 준다. 예링은 법학은 수학이 아니라고 하면서 “논리적인 것을 숭배”하는 데 반대하였다. 결정적인 것은 목적을 고찰하는 것(Zweckbetrachtung)이며, 목적이 법을 독자적으로 창조하지 못하기 때문에, 목적고찰은 목적주체에 대한 물음을 낳는다. 예링은 사회(Gesellschaft)를 고유한 입법자로 간주하고, 사회를 공동의 목적을 추구하기 위한 공동결합체로 이해하여, 이러한 공동체에서는 각자가 타인을 위함으로써 자기도 위하고, 자기를 위함으로써 타인도 위하는 활동을 한다고 보았다. 이에 관하여 현저한 모순된 사상 속에서 예링은 그럼에도 국가의 법률제정독점이라는 제정법실증주의적 견해를 철저히 준수했다; “법은 국가 내에서 유효한 강제규범의 총체이다···”; 국가는 법의 유일한 연원이다. 그럼에도 법은 사회적 목적에 관련되며, 그러한 목적으로부터 법은 그 내용을 받아들인다. 모든 법규는 “사회의 생존조건을 보장하는 목적을 갖는다”. 예링은 더 이상 논리적이거나 심리학적으로 논증하지 않고, 사회학적·유용성으로 논증하였다. 그러나 목적의 평가(Bewertung der Zwecke)는 어디서 오는가? 그 점이 그의 법이론, 즉 그가 정신적 시조가 된 이익법학의 가장 큰 약점이다.
3. 이익법학
이익법학에 의해서 법학은 개념법학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었고, 논리가 일차적인 것이 아니라, 생활가치가 일차적인 것이다란 표어아래, 법률의 개념에 대하여 때때로 매우 의심스러울 정도의 거부가 일어났다. 그 사이에 이익법학이 -그 대표자는 헥크(Philipp Heck, 1958- 1943)이고, 그밖에 유명한 분은 슈톨(Heinrich Stoll, 1891-1937)과 뮐러-에르츠바하(Rudolf Muller-Erzbach, 1974-1959)가 있다- 법학에 생명을 불어넣어 줌으로써 굉장한 열매를 맺게 해 주었다. 라렌츠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이익법학은 응고된 법률개념(Gesetzbegriff) 아래 단지 형식적·논리적 근거에 의한 포섭의 방법대신에, 법질서에 고유한 평가척도에 따라, 복잡한 사안과 그런 사안에서 고려되는 이익을 평가하는데 요구되는 형량에 의한 판결의 방법을 이용함으로써, 이익법학은 법적용의 실재에 있어서 혁명적인 변혁이었다. 여기서 이익법학은 법관에게 선한 양심의 부탁이나 흔히 있는 피상적인 근거제시(Scheinbegrudungen)를 불필요하게 만들었다”. 확실히 그 점은 옳다. 그러나 이익법학의 다른 측면은 법실현과정에 대하여 이론적으로 극도로 의문투성이고, 때때로 전혀 볼품없는 근거제시를 하기도 하였다. 이익이라는 것을 -예를 들면 생활의 필요, 갈망, 기대, 역할 등- 한편으로 법의 인과적 요소(Kausalfaktor des Rechts)로 간주하였다(“발생학적 이익법학”). 다른 한편 -경험적 사회학적 실증주의에는 매우 모순되지만- 이익이라는 것이 가치, 즉 당위로 이해되어 이익은 이익평가의 척도이기도 하다고 보았다. 그러나 어떻게 이와 같은 비밀스럽고 변증법적 도약인, 양으로부터 질로, 존재로부터 당위로 전환될 수 있을까? 이와 같은 명백한 순환론적 절차를 어떻게 설명할까? 법이론상으로 이익법학은 만족을 줄 수가 없다.     그러나 방법론상으로 이익법학은, 라렌츠가 적절히 지적한대로, 지속적 효과를 주었다. 물론 이익법학은 객관적 해석론을 거부했으나, 그럼에도 이 학설은 제정법의 기초가 된 이해관계(Intressenkonstellation)와 그리고 그러한 것의 평가를 법률해석자에게 요구함으로써, 실제적으로 그 학설은 법률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게다가 법률의 흠결시 목적론적 관점에서 법을 주관적 명령(“eigene Gebot”)에 의하여 보충할 권리가 법관에게 주어져야 한다고 하였다(“생산적 이익법학”).
4. 자유법운동
자유법운동의 가장 저명한 학자인 칸토로비츠(Her- mann Kantorowicz, 1877-1940)가 이익법학의 가장 현저한 약점을 이미 1910년 “법학과 사회학”에 관한 한 논문에서 유리알처럼 명백하게 밝혀냈다: “어떠한 이익이 사실상 존재하고 있느냐하는 문제는 법률의 목적을 고려하지 않고서도 결정할 수 있지만, 그러나 법률상 어떤 것을 우선 하느냐하는 문제는 법률목적의 고려 없이는 결정할 수 없기 때문에, 이익상황을 올바르게 다루기 위해서는 법률목적을 아는 것을 전제한다”. 그러므로 다시금 목적과 의미에 관한 문제가 대두된다. 그러한 것들은 어디서 오는가? 자유법운동은 -그 이름은 에어리히(Eugen Ehrlich, 1862-1922)가 지었고, “교리에 얽매이지 않음”이라는 것에 의식적인 유추를 의미함- (그 문제에 대한) 고유의 대답을 하려고 노력하였다. 우리가 그것을 이해하려면, 우리는 자유법 운동에 있어서는 합리주의적 자연법에 관한 것이 아니라, -왜냐하면 합리적 자연법은 이미 죽었다고 보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논리적·형식적 개념법학 그리고 “로마법적 체계”(Pandektismus)와 “스
콜라철학”의 그런 종류에 반대하는 비합리적 경향을 문제삼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 자연법운동은 생의 철학(제II장, 제3절, III 5)의 유산을 받았기 때문에 그 운동의 정신적 시조는 소펜하우어, 니체, 베르그송이다. 그리고 비록 자유법운동의 철학적 방향은 아닐지라도, 비철학적 방향에서 자유법운동의 입심 좋은 대변자로는 푹스(Ernst Fuchs, 1959-1029)가 있다.     “자유법”은 근본에 있어서 법률로부터 자유를 뜻한다. 물론 자유법론자(Freirechtler)는 “법률은 문언에 반해도 된다는 우화”(Contra-legem-Fabel)를 항시 무시하며, 그들은 법관에게 (유효한) 법률을 무시할 권리와, 심지어 법률에 반하여 결정할 권리를 허용하려고 한다는 가정을 반박한다. 실제에 있어서 자유법률가는 그와 같은 것을 가르치지 않았다. 그들은, 법률에 결합이 있을 때, 법관이 어떻게 처리해야 할 것인가를 말하려할 뿐이었다. 그러나 바로 그것이 문제가 되어서, 자유법론자의 견해에 따르면, 법률이 (특정한 사건에) 해당되는 규정을 두고 있지 않을 때, 비로소 법률에 흠결이 있는 것이 아니라, 법률이 특정한 사건을 명확하고 일의적으로 정하지 않을 때에도, 그 법률에 결함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물론 적어도 모든 다툼이 있는 경우에는 항시 그렇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칸토로비치는, “거기(법규)에 있는 단어이상으로 많은 흠결이 법규에 존재하기 때문에, 법률적 사건이 적용될 법규의 전체개념 아래 곧바로 포섭되는 것은 단지 예외적인 우연적 사건에 한정될 뿐”이라고 자위한다. 그러나 법관은 어디서 “자유로운 법”을 찾을까? 그런 법은 어디서 나올까? 그 점에 대해 칸토로비치는 實證主義的·主義的으로 대답했다: 모든 당위적인 것은 존재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당위(Sollen)는 의욕(Wollen)이기 때문이다. 이사이(Hermann Isay, 1873- 1938)도 이와 유사한 말을 하였다. 그는 법관의 판결은 법률로부터 연역한 것이라 보지 않고, 오히려 (법관의) 의지행위(Willensakt)라고 보았다. 더욱이 법감정이 판결에 선행하며, 논리적 -외관상의 논리적- 근거제시는 그 뒤에 뒤따라서 나타난다고 한다.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바로 그 점에 올바른 생각이 숨어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해석학적 선행이해”(hermeneutisches Vorverstandnis)는 의미를 종합적으로 이해하는 전제조건이 된다. 그러나 이러한 선행이해가 단지 비합리적 법감정의 문제(Sache)에 해당될 뿐일까? 그리고 그것에 뒤따르는 근거제시는 피상적으로 보이는 논리에 불과할까?
5. 법사회학
意慾(Wollen)은 當爲(Sollen)가 아니다. 입법자가 어떤 것을 원한다는 단지 그것으로부터 강요(Mussen)가 아마 일어날지 모르나, 그러나 결코 의무는 발생하지 않는다. 법적 당위가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대답할 책임은 자유법운동에 있다. 순수히 경험적으로 파악하는 법사회학(Rechtssoziologie)도 그 문제에 해답을 줄 수 없었다. 법사회학이 사회적 사실(gesellschaftliche Tatsachen)을 탐구한 것이 자기의 목표라고 생각한 점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 점은 옳았을 뿐 아니라 현재도 옳기 때문이다. 법사회학의 실수는 법사회학을 도그마적인 법학에 대신하려는 데 있다. 이미 위에서 언급한 Eugen Ehrlich가 “추상적 개념형성과 구성이라는 웃음거리가 된 가장행렬을 영원히 버려야 한다”는 요청을 하였을 때, 그와 같은 신랄한 조소(Zynismus)는 그 때의 시대정신으로 볼 때 이해는 되나, 그러나 그러한 생각은 위험한 것이다. 왜냐하면 개념이라는 것의 불신과 함께 법률형식의 불신이 법을 얼마나 악용하게 할 수 있는가를 우리는 체험했기 때문이다.
사회학과 아울러 법사회학의 “위대한 선비”(Der große alte Mann)는 베버(Max Weber, 1864-1920)이다. 그의 법사회학은 엄격하게 경험주의적이다. 이에 관해 그는 가끔 “이해사회학”(verstehender Soziologie)을 언급하였어도 그가 엄격한 경험주의적이었다는 점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바로 우리에게 특히 관심 있는 효력문제(Geltungsfrage)에서도 그는 경험적 입장을 견지했다. 베버는 어느 하나의 법규범에 대해 “논리적으로 올바르게 있어야 되는” “규범적 의미”와 공동체 내에서 “사실적으로” 발생하는 것 사이를 아주 엄격하게 구분하였다. 왜냐하면 공동체 행위에 참여한 인간은 ··· 일정한 질서를 효력 있는 것으로 주관적으로 간주하고 사실적으로도 그렇게 다룬다는 것, 즉 그 참여한 인간의 고유행위가 일정한 질서에 지향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바로 그런 이유로 공동체 내에서 사실적으로 발생한 것과 규범적인 것이 다르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경험적 효력”이라는 것은 일정한 개인이 “경제적 재화를 그의 처분 아래에 둘 수 있는, 혹은 장래 취득할 수 있는” “계산가능한 기회”를 갖는 것을 의미하고, 이때에 이를 위해 이미 존재한 강제기구(Zwangsapparat)의 도움을 전제한다. 법은 그러므로 결국 힘에 의해 성립된다고 한다(Imperiums- theorie). 그 사이에, 법규범을 필요한 경우 이용할 수 있기 위하여 국가적 힘을 사용함으로써, 베버가 물론 예견했던 것 중에서 기껏해야 기대와 기회는 있었으나, 그렇다고 당위는 발생하지 않는다.
그 당시뿐만 아니라 20세기의 중엽까지의 법사회학은 법에 관한 고유한 “학문”으로 이해되었다. 물론 법사회학이 경험적이었기 때문에 자연과학적 방법으로 다루어졌다. 그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 수 있었는가 하는 것은 리스트(v. Liszst)의 명예훼손에 관한 정의에서 잘 볼 수 있다. 그는 명예훼손을 후두운동, 음향진동, 청각에 자극, 두뇌에 전달이라는 과정으로 정의했다. 물론 리스트는 명예훼손의 “본질”이 명예를 훼손하는데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그러나 이와 같은 규범적 내용은 “학문적 인식”을 어렵게 한다고 보았다. 이 같은 기묘한 예는, 사람들이 법도그마틱(Rechtsdogmatik: 법교리학)을 얼마나 잘못 이해하고 있는가를 증명하여 준다. 예루살렘(Franz Jerusalem, 1883-1970)은, 도그마적 법학에서는 진리를 문제삼지 않고, 단지 정치적 목적설정을 문제삼는다고 생각하였다. 그 결과 법학은 더 이상 “올바른 법”을 위해 노력할 수 없었고 실제에 있어서 그러한 법학은 올바른 법을 위해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위의 제II장 제3절 VI 참조).
Ⅳ. 논리적 법실증주의, 특히 “순수법학”
1. 한스 켈젠
20세기의 가장 저명한 법철학자 중의 한 사람이자, “순수법학”의 창시자인 켈젠(Hans Kelsen, 1881-1973)은 위와는 아주 반대되는 입장에서, 규범적 법도그마틱은 학문이 아니라, 오히려 법정책학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켈젠은 카르납(Rudolf Carnap, 1881-1970)을 위시한 논리적 실증주의 혹은 신실증주의의 빈학파(Wiener Kreis) 출신이었다. 이러한 철학적 입장에 따르면, 논리적으로 “확인될” 수 있는 것만이 의미 있고 이해 가능하다고 본다. 그러므로 형이상학적 종류의 주장, 특히 가치와 규범의 내용에 대한 주장들은 의미가 없다. 가치평가는 단지 감정의 표현으로 간주했다. “순수법학”(Reine Rechtslehre)이라는 것은 규범주의적 혹은 규범논리적 법실증주의의 가장 중요한 특성이다. 켈젠 스스로 그것을 “법실증주의의 이론”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그것은 충분한 근거를 갖고 있다고 그는 보았다. 켈젠은 실제만을 다루었기 때문에, 심리학적 그리고 사회학적 법실증주의를 전혀 법학이라고 보지 않았다. 법학은 당위, 즉 규범과 관련을 가지며, 그것은 규범과학이라고 하였다.
신칸트학파의 학자로서 켈젠은 존재와 당위를 엄격히 구분했으며(방법이원론), 그리고 이에 따라 기술적(설명적) 관찰방법과 규정적(규범적) 관찰방법을 엄격히 구분하였다. “순수법학”에서는 이 후자만이 문제된다. 실증주의적 이론으로서 순수법학은 법규범의 형식적(논리
적) 구조만을 그 대상으로 하지만, 그것의 내용을 그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내용은 학문적 인식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켈젠에 있어서는 정의(Gerechtig- keit)라는 것이 단지 “인간의 아름다운 꿈”에 불과하다고 보며, 우리는 정의가 무엇인지를 모르며, 그것을 결코 알지도 못할 것이라고 한다(오늘날 체계이론가인 Niklas Luhmann은 진리와 정의는 결코 가치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단지 다음과 같은 상징적 기능을 가진다라고 함으로써 매우 비슷한 결론을 내린다: 그것을<진리와 정의>는 좋은 목적을 맹세하고 좋은 의지에 호소하고, 제약된 동의를 나타내고 그리고 이해의 가능성을 요구하는 데 기여한다).
“순수법학”은 “당위”를 다루고, 그리고 물론 윤리적 가치가 아닌, 단지 논리적 구조인 “순수한” 법률상의 당위를 문제삼는다. 그것의 최고 공준(요청)은 그러므로 “방법상의 순수함”이다. 그래서 바로 “순수법학”의 서론에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다. “순수법학을 법의 “순수한” 學으로 나타내려고 하는 이유는, 그것이 법이 지향한 인식만을 확보하고자 하고, 그것이 이러한 인식에 기해서 정확히 법으로 특정된 대상에 속하지 않는 것을 모두 배제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즉 순수법학이 법학을 법 이외의 모든 외적 요소로부터 해방하고자 하는 것이다”. 켈젠은 그러한 외적요소로서 특히 심리학, 사회학, 윤리학과 정치학을 지칭했다.  켈젠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겉으로 보기에는- 무관심한 법철학 배후에 서 있는 학문적인 정신을 고려해야 한다. 그는 법학을 “절대적 가치의 선전”으로서(Max Weber),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견해의 은폐수단으로서 남용되는 것을 막고자 했다. 그러나 완전히 부당하게 “순수법학” 자체가 그와 같은 방법으로 남용되어졌다.
켈젠은 당위에 관한 그의 이론을 여러 차례 상이하게 구성하였다. 그것을 여기서 자세히 기술할 수는 없다. 가장 중요한 것만 언급해 본다. (당위에 관한) 본래의 견해의 특징은 순수법학의 제1판에 있는 다음의 문장에서 볼 수 있다: “소위 불법이 생기면, 불법의 효과(Unrechts- folge)가 발생되어야만 한다”고 말한다면, 이러한 “해야만 한다는 것”은 -법의 범주로서- 법조건(Rechtsbedingung)과 법효과를 법규 안에서 함께 종합되는, 특별한 의미만
을 나타낸다. 법의 이러한 범주는 -이를 통해서 그것을 초월적 법이념과 원리적으로 구별된다- 순수한 형식적 성격을 지닌다. 법의 범주는 그렇게 결합된 구성요건이 어떠한 내용을 갖든지, 법으로서 이해된 행위(Akt)가 어떤 종류의 것이든, 언제나 적용 가능하다. 순수법학은 법규 내에서 일정한 조건에 결합된 효과를 국가의 강제 하에 둔다. 그것은 형벌이나, 민사 또는 행정적 강제집행일 수 있으며, 그러한 강제를 통해서 制約한(bedingender) 구성요건만이 불법으로, 制約된(bedingter) 구성요건은 불법효과로 분류된다. 형이상학적 법규범, 즉 윤리적, 다시 말하면 實定法을 추월한 가치에 대한 어떠한 관계뿐만 아니라, 어떠한 내재적 성질도, 특정한 인간행위가 위법하고 범죄로 된다고 할 수 없고, 오히려 특정한 인간의 행위를 법규 내에서 특별한 효과를 내는 전제로서 설정하고, 법률질서가 이러한 행위에 대하여 강제작용으로 대응할 뿐이다. 여기서 당위적인 것이 방법론상 부당하게 어느 정도 사실적인 것, 즉 국가의 강제작용에 기인한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더욱이 뚜렷한 것은, 이러한 “순수한” 당위가 어떠한 내용도 갖지 않으며, 그러므로 어떠한 자의적 내용을 가질 수도 있다는 점이다. 켈젠은 그러한 결론을 의식하고 있다: “어느 규범도 전혀 의미 없는 내용을 가질 수 있다”. 또한 제2판에서도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법은 어떠한 자의적인 내용을 가질 수 없다”. 클렌너(Hermann Klenner)가 켈젠의 이론을 “속이 비어있는 법”(Rechtsleere)이라고 혹평한 것은 전혀 부당한 것이라고 할 수 없다.
후에 켈젠은 규범의 효력에 관한 그의 학설을 수정했다. 그는 법규(Rechtssatz) 속에서 가설적 판단, 즉 그가 귀속이라고 부르는 원인·결과의 관계를 보았다. 이에 따라 법규는 국가기관의 장래행위에 대한 언명(Aussage)이다. 다시 말해 누가 규범의 구성요건에 합치된 행위를 하면, 일정한 국가기관이 그 자에 대하여 일정한 제재를 내리게 된다. 그러나 어느 정도 그러한 언명이 단순한 기대이상으로, 다시 말하면 순수한 당위 이상으로 설득력을 줄 수 있을까? 그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국가기관이 자신에 의해서 내려진 제재를 시행하지 않는 경우, 그 국가기관에게 제재를 한다는 규정을 둔 제2차적 법규를 통해서 국가기관 스스로가 “해야 될 의무”를 느낄 때이다. 이러한 방법으로 法義務를 낳게 하는 것은, 그와 같은제약된 강제작용을 무한소급으로 빠지게 하는 것이 너무도 명백하다. 통제기관의 순차가 무한으로 계속되지 않기 위해서 켈젠은 모순이 없고 의미가 충만한 질서라는 가설인 “근본규범”(Grundnorm)을 요구하는 것이 필요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근본규범을 “자연법의 규범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고 보았다. 결국 켈젠에 있어서 당위는 역시 윤리적 범주이다.
켈젠의 방법론에 흥미로운 것은, 그가 고대, 특히 스콜라적 법이론에서 성립된 것과 유사한 “법질서의 단계구조”를 이용했다는 점이다. 다른 것이 있다면, 최상위에 이성(Logos)이나 객관적 이념 혹은 영원법(lex aeterna)대신, 위에서 언급한 “근본규범”을 두었다는 점뿐이다. 켈젠은 그러나 법실현을 철저히 헌법(그것의 효력은 “근본규범”에 의해 보장됨)으로부터 법률을 거쳐 법관의 판결선고행위까지 전진하는 하나의 과정으로 이해하였다. 그는 물론 그의 입장에서 법제도나 법규의 의미를 파악하는 것을 학문으로 보지 않고, 그런 것을 법정책이라고 이해하였다. 우리가 켈젠의 그 점을 제외하면, 법(Recht)은 법률(Gesetz)에서 완성되어지는 것이 아니어서, 법은 법률로부터 형식논리적 절차를 통해서 간단히 끄집어 낼 수 있다는 그의 생각이 옳게 보인다. 법률은 법률이해당사자들(Rechtssuchenden)에게 굉장히 넓은 활동영역을 주기 때문에, 그 영역은 형성적이고 법창조적 작업에 의해서 보충되어져야 한다. 이러한 작업을 켈젠에 따르면, 법정책이라 한다. 학문이 판결의 범위 내에서 판결의 다양한 가능성만을 확립할 수 있을 뿐이고, 그리고 단지 이것만이 해석(Interpretation)이라고 켈젠은 말하고 있다.
2. 분석법학, 논리학, Topik, 수사학
“순수법학”은 법이론을 굉장히 확고하게 만들어 주었다. 물론 실무에서는, 이해하는 바이지만, 전혀 관심을 끌지 못했다. 왜냐하면 실무는 형식과 범주만으로 많은 것을 해결해 낼 수 없기 때문이다. 매우 유사한 상황이 오늘날 -법과 함께- 법철학의 새로운 흐름 중에 중요한 지위를 점하는 분석적 법학(Analytische Rechtstheorie)에서 일어났다. 분석적 법학은 그 뿌리를 러셀(Betrand A. W. Russel, 1872-1970), 화이트헤드(Alfred N. Whitehead, 1861-1947), 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 1898-1951)과 그 밖의 다른 분들에 의해 엄격히 수학적으로 지향한 분석적 철학에 두고 있다. 이러한 방향은 철학이 지각(Wahrnehmung)을 초월한 인식을 구하고자 하는 것을 잘못된 것으로 보고, 그 때문에 형이상학적 질문과 주장이 언어논리의 잘못된 이해에서 기인한 것이므로, 형이상학적 질문과 주장은 의미가 없다는 것을 언어분석을 통해서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이러한 의미에
서, 하아트(H. L. A. Hart, 1907년생)와 로스(Alf Ross, 1899년생)을 대표로 한 분석적 법학은 논리적 언어분석을 통해서 법과 도덕 그리고 경험적 원리와 규범적 원리를 엄격히 구별하여, 법에 대하여 명백히 이해하기 쉬운, “자명한” 언명을 세우고자 한다. 이러한 분석적 연구는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법에 대한 학문적인 몰두를 가져왔다. 그 법이론이 물론 분석하는 일에 머물러 있을 지라도, 그 이론은 법실무에 대해서는 별 쓸모가 없었다. 분석적 사고가 다른 분야, 예를 들면 해석학에 대해서는 얼마나 상충될 수 있는지, 그에 관한 좋은 예를 라이트(Georg Henrik von Wright, 1916년생)의 저서인 “설명과 이해”(1974)에서 보여준다.     라이트는 의무론적 논리학(deontische Logik)의 영역, 즉 가치와 규범논리학의 영역을 개척한 선구자의 한 사람이기도 하다. 여기서는 법논리학의 저명한 학자에 대해 간단히 언급만을 하고자 한다. 1943년에 출판되어 대단한 반응을 불러 일으켰던 엥기쉬(Karl Engisch, 1899년생)의 “법률학적용을 위한 논리적 연구”란 논문은 새로운 법논리학 연구를 위한 강력한 자극을 주었다. 그 논문이 기초가 되어 법해석학(juristische Hermeneutik)이 발달하는 자극제가 되었다. 엥기쉬에 고무되어 클룩(Ulrich Klug, 1913년생)과 타멜로(Ilmar Tammelo, 1917-1982)가 가장 중요한 논문들을 발표함으로써 법논리학의 발전을 촉진시켰다. 클룩은 특히 형식논리학의 근본이론을 개괄적으로 기술하였고, 그렇게 함으로써 가장 중요한 법논리학의 논증의 형식화를 이끌어 내었다. 타멜로는 다양한 기호체계(Zeichensystem)와 그리고 그것에 속한 조작규칙(Operationsregeln)을 -계산법(Kalkul)- 면밀하게 세련시켰다. 그들과는 독립하여 바인베르거(Ota Wein- berger, 1919년생)는 다수의 중요한 논문을 공표함으로써 법논리학 발전에 기여하였다.
이 형식논리학은 폐쇄적 법체계를 형성하게 하고, 그 때문에 그 법체계는 살아있는 생활상의 흐름에서 도외시되어 버리는 위험을 낳게 한다. 켈젠의 순수법학 뿐만 아니라, 클룩의 “공리학적”(axiomatisch) 방법도 역시 이러한 위험에서 완전히 배제될 수 없다. 그와 같은 폐쇄적 체계와는 달리 최근에 몇 명의 학자는 예전의 전통적인 것(Aristoteles, Cicero)을 되살려 총체적 관점론적(topisch) 내지 수사적 법률학(rhetorische Jurisprudenz)을 발전시켰다. 이 이론에 따르면, “개방체계”(Das offene System) 내에서 상황파악을 하기 위하여, “논증적”(aporetisch) 검증절차를 통해서 “제 관점의 총체적 목록”(Topoikataloge)을 작성하여야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도 법논리학의 주된 뿌리가 놓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뿌리로부터 현대 법논증론이 발전하였다. 이러한 총체적 관점론(Topik)과 수사학(Rhetorik)의 대표자들로 피벡(Theodor Viehweg, 1907년생), 코잉(Helmut Coing, 1912년생), 페렐만(Chim Perelman, 1912년생), 헨켈(Heinrich Henkel, 1903-1981)을 꼽을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부분적으로 매우 상이한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Ⅴ. 법해석학
1. 개방체계
법학방법(Juristische Methode)이라는 것은 무엇보다 개방체계 내에서 올바른 논증을 하는 것을 말한다. 위(제II장, 제3절, I)에서 이미 언급한 바 있는 사비니가 말한 (입법자의) 意思(Intention)에 기초한 법률해석(Juristische Interpretation)의 모델은 해석의 형식이 한정된 수(數)에 그친다는 인상을 준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이다. 우리가 법원의 판결을 분석해 보면, 그 밖의 다수의 다른 논증유형(Argumenttypen), 예를 들면 정의, 타당성, 법적 안정성, 법률효과의 평가, 실용성, 합헌성 등등을 볼 수 있다. 물론 고전적인 4개의 기준(Canones)도 그 가치를 갖고 있다. 왜냐하면 법이용자는 일차적으로 그 고전적 방법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지금까지 많은 사람이 생각했던 도식인 해석의 수단과 결과에 따른 구별은 부분적으로 모순에 빠진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예를 들면, 해석의 도구는 語義(Wortlaut), 체계성과 규범의 생성기원이며, 해석의 목표는 입법자의 의사, 그 당시의 규범의 의미 혹은 정의일 수 있다. 법 발견의 목표가 항시 “올바른 법”(그것이 무엇이든 간)뿐이다란 것은 해석의 목표에 어긋나며, 반면에 예를 들어 입법자의 의사는 이러한(올바른 법 발견의) 목표를 위한 도구일 뿐이다(왜냐하면 우리는 이들의 의사를 존중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든지, 아니면 단지 얻어진 결론을 “옳다”고 보기 때문에). 결국 우리가 어떠한 지시를 따를 것인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러나 해석의 이러한 모든 기준이 정말 “올바른 법”의 발견에 기여할 수 있느냐의 문제와, 동시에 그러한 기준 중에서 합리적으로 정할 수 있는 등급이 존재하느냐의 문제이다. 그러면 우리는 이와 같은 개방체계에서 어떻게 전체상황을 파악해야 할까? 많은 방법이론가들, 예를 들면 에써(Josef Esser)와 크릴레(Martin Kriele)는 그 때문에 이러한 전체목록작성은 무용지물이라고 본다. 엥기쉬는 솔직하게 “만족할 만한 결과를 이끌어 내는, 그와 같은 해석방법을 각 사건에서 선택하는 것은” 법원의 실무라고 설명한다. 그러므로 결과에 의한 법발견(Ergebnisrechtsfindung)! 아니면 달리 표현하여, 해석수단의 가치와 서열은 해석자 스스로가 정한다!
2. 주관-객관-도식의 극복
우리는 아마 이러한 문장을 보고 깜짝 놀랄 것이나, 그러나 그 말은 옳다. 쉴라이어마하(Friedrich Ernst Daniel Schleiermach, 1768-1834)에서 기원하여, 딜타이(Wilhelm Dilthey, 1833-1911)를 거쳐, 후에 하이데거(Martin Heidegger)에서 중요한 대표자를 갖게 되고, 오늘날 특히 가다머(Hans-Georg Gadamer, 1900년생)와 하버마스(Jurgen Habermas, 1929년생)에 의해서 대표되는 과학적 해석학(wissenschaftliche Hermeneutik)은 모든 “이해과
학”의 본질적 성질을 밝혀냈다. 즉 언어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은 항시 또한 우선 이해주체의 자기 자신의 이해인 것을 발견했다. 이해하는 자(Der Verstehnde)는 이해의 영역(Verstehenshorizont)안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이해해야 될) 객체에 대하여 방법적 반성을 해야 할 뿐만 아니라, 이 방법적 반성은 (이해하는) 주체를 함께 포함시켜야 한다.
그래서 법도 또한 상태가 아니라, 작용하는 행위(Akt)이며, 그러므로 “주관”에서 독립된 인식의 “객체”가 될 수 없다. 오히려 법은 해석학적 의미전개과정과 의미실현과정의 “산물”이다. 해석론적 법발견절차 밖에서 법의 “객관적 정당성”이라는 것은 그러므로 전혀 존재할 수 없다. 어느 법관이 그의 판단기준을 단지 법률로부터 이끌어 낸다고 믿었다면, 그는 피할 수 없는 착오에 빠지게 된다. 왜냐하면 그는 (무의식적으로) 자기자신에 의존하여 있기 때문이다. 법관이 판결을 내릴 때, 자기의 인격을 함께 고려하는 법관만이 진실로 독립적일 수 있다.
법해석학(Josef Esser; Karl Larenz)의 개별적인 문제에 대해서와 특히 “해석학적 선입판단”과 “해석학적 순환”의 구조에 관해서는 이 곳에서 언급하지 않는다. 여기서는 단지 법철학과 법방법론의 문제사를 -잠정적- 결론으로 이끌어 내기 위하여, 그 다양한 흐름들이 어디
로 흘러 들어가는가를 나타내고자 한다(이 때에 여기서 기초가 된 법이해는 저자의 이해의 한계에 의해서 필연적으로 영향을 받는다).
간단한 하나의 사건을 들어보자. 연방법원 형사판례집 제1권 1쪽 이하에 실린 사건은 매표소 아가씨의 얼굴에 염산을 뿌리고 나서 돈지갑을 빼앗아간 한 남자에 관한 것이다. 이 사건에서 결정적인 법적 문제인 염산이 “무기”에 해당되느냐의 여부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서는, 나는 그 사건을 이미 重强度라고 하는 가능한 사례를 “미리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내가 요컨대 이 사건을 살인미수와 다른 것으로 先理解하고 있다면, 염산이 하나의 “무기”인가 하는 것은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는다. 우리는 여기서 의미있는 “선입이해”(Vorverstandnis) 없이는 어떠한 중요한 법문제해결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을 본다. 잘 인식해야 할 것은 여기서도 이해과정의 “순환”이라는 점이다. 중강도가 무엇인가를 내가 알 때만, 나는 중강도의 한 경우로서 구체적 사건을 이해할 수 있다. 법률의 해석은 어느 사건을 통해서 일어나고, 사건의 구성은 법률에 기해서 이루어진다. 여기서 엥기쉬가 한 말인, 규범과 생활관계사이를 왕래하면서 통찰하는 끝없는 상호작용이라는 것은 적절한 표현이다. 그는 거기에 덧붙여, 이 때에 결함이 있는 순환에 관한 문제는 아니다고 하였다. 유사하면서도 많은 점에서 색다른 모델을 피켄처(Wolf- gang Fikentscher, 1928년생)가 개발했다. 그는 그것을 “사건을 규범에 대입한 思考”(“Fallnormdenken”)라고 부른다.
해석학적 문장이해라는 것(Textverstehen)은 그러므로 순수히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Rezeptives)이 아니라, 오히려 실제적으로 형성하는 행위(Handeln)이다. 여기서 다시금 존재와 당위의 방법이원론은 -이 방법이원론에 따르면 사안의 파악(Sachverhaltsermittlung)과 법적용은 두 가지 분리된, 시간적으로 연이어진 과정으로 된다- 유지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와 같은 방법이원론은 기만과 다를 바가 없다. 왜냐하면 일정한 규범적 관점이 없이는 어느 한 사태를 사안으로서 인식한다는 것이 실제에 있어서 전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사건을 규범에 맞게 구성하고 법규범을 구체화하여 한꺼번에 이루어진 과정을 통해서 비로소 “사태”와 “구성요건”이 구성된다. 이것들(사안과 구성요건)이 서로 연이어 다듬어지
고, 결국은 서로가 일치하게 됨으로써(그것을 종래에는 “포섭”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삼단논법이 아니다), 구체적이고 실제적으로 존재하는 역사적 법이 생성된다. 그 이전에는 전혀 “법”이 거기 있지 않고, 그리고 아직도 어떤 “사안”도 존재하지 않는다. 있다면 단지 “세광되지 않는 물체” 뿐이다. 한편으로 그 추상성 때문에 전혀 적용할 수 없는 추상적 법규범의 다수가 있고, 다른 한편으로 일정한 법률적 관점에서 관련을 지울 수 없고 또한 중요하고, 중요치 않은 것으로 구분할 수 없이, 분리되어 있지 않은 사실덩어리의 혼합물인 것이다. 우리가 종래 “포섭”이라고 부르는 것은 모든 전제조건이 서 있으면, 문제될 것이 없다. 판결하는 행위는 이러한 전제조건들을 그들의 서로가 일치를 이루는 속에서 세우는데 있다. 즉 사안을 고려하면서 구체적 법규를 다듬고 규범을 고려하면서 사안을 구성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해석학은 어떤 식으로든 유효하지 않거나 실제화 되지 않은 것에 관해 아무 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법해석학은 그 점을 단지 햇볕에 비추어 끄집어 올려서, 그것을 통해서 물론 많은 환상을 파괴한다. 특히 법적용은(그 자체 이해가능하고 해석가능한) 법률아래서 이루어진 정확한 삼단논법이라는 환상을 파괴한다. “단순한 법적용”도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끊임없는 창조적 행위이다. 물론 일상적인 사건에 있어서는 방법적 절차의 창조적, 형성적 요소가 거의 의식되지 않게 된다. 우리가 모든 경우에 법실현에 있어 복잡하고 해석학적 과정을 의식해야 한다면, 그것은 한정 없는 지나친 것이다(일상적인 것의 찬양!). 그러나 법적용시에 창조적 요소가 의식되지 않을지라도, 그것은 의심할 바 없이 거기에 있다.
그 결과 대체로 법관의 주관적인 것(Subjektivismus)을 옹호하지 못하고, 오히려 언제나 존재하나, 그러나 대체로 가려져 있는, 판단활동의 주관적 요소를 의식해야만 하고 방법상 근거제시와 관련을 갖도록 해야만 한다. 구체적 판결절차 밖에서 법의 올바름을 찾을 수 없다면, 그것은 이러한 절차 자체 내에서 찾아내야 될 것이다. 반성과 논증을 통해서, 즉 참여하는 사람들 사이의 대화와 동의를 통해서.
법은 절차 “내”에서 성립되지, 파손스(Talcott Parsons, 1902-1979)와 그 밖의 다른 사림들에 의해서 시작되고, 특히 루만(Niklas Luhmann, 1927년생)에 의해서 대표되는 체계이론(Systemtheorie)이 가정하는, 절차를 통해서 성립된 것은 아니다. 그 이론에 따르면, 단지 법의 기능성, 즉 절차가 “기능하는” 것이 문제될 뿐이지, 내용의 올바름은 문제되지 않는다.
그러나 여기서 기초로 삼고 있는 견해에 따르면 절차의 범위 내에서 “법”, 즉 “올바른 법”이 나온다는 것은 무엇으로 보장하는가? 추상적 공식, 심지어 하나의 定義로는 그것을 할 수 없다. “올바른 법”은 단지 구체적으로 성립하고, 물론 다양한 기준의 기초 하에서 이루어진다.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이러한 기준의 체계는 개방적이다. 물론 여기 개방체계에서는 “인식”을 완성하게 할 수 있는 합리적 논의가 적어도 “이상적인 대화환경”, 즉 “이상적인 토론”이 성립한다는 전제 아래서 존재한다. 여기서 말하는 토론이라는 것은 전문적이고 편견없이 그리고 이성적인 논의를 하는 사림들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또한 모든 논쟁이 허용이 되는 그런 토론이다(Jurgen Haber- mas; 또한 Chaim Perelmann도 유사하게, “일반강당”이라 하고, Ilmar Tammelo는 “이성의 광장”이라고 함). 물론 확실한 진리가 목표일 수 없고(어디선가 그러한 것이 존재함), 오히려 납득하는 것(일치되는 것)과 그로부터 생기는 다수 사람 사이의 동의일 수 있다. 포퍼(Karl R. Popper, 1902년생)가 창시한 “비판적 합리주의”(kritischer Rationalismus)가 여기서 근본적 진전을 가져다주었다.
이러한 비판적 합리주의에 따르면, 적극적 순이론적 근거제시노력은 순환론에 빠지거나 무한소급에 빠진다. 우리가 그러나 비판적 검증을 통해서 제 언명(Aussagen) 그리고 특히 법에 관한 제 언명의 오류(Fallibilitat)를 가려낼 수 있다. 이것은 라드부르흐의 공식(위의 제II장, 제4절 II)을 생각나게 한다. 그 공식에 따르면 우리는 적극적 관점에 무엇이 “올바른 법”인가를 말할 수 없으나, 그러나 소극적인 관점에서 무엇이 “制定法上의 不法”이고 “무효의 법”인가를 말할 수 있다.  모든 합리적 토론을 이끌 수 있는 일반적 조건은 그 토론이 동일한 대상(테마)을 기초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상적인 토론”에서는 사실상 “법”, 즉 “올바른 법” 내지 “부당한 법”을 문제삼지, 어떤 자의적인 다른 것을 문제삼지 않기 때문에, 동일성을 보장할 법내용은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 즉 “존재론적인 것”을 법의 기초로 삼아야 한다. 이러한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 인격을 가진 인간(Der Mensch als Person)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모든 인간 사이와 인간과 사물 사이의 인격적 관계가 모든 법발현 그 자체와 동일시되는 “법의 문제”(Sache Recht)이다(“Sache”는 그러나 실제적인 것
을 뜻하지 않음). 법이 그 정당성을 부여받을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법이 인격을 가진 인간에게 속해 있는 것을 인간에게 허용하는 경우이다. “인간에게 그의 것”을 주지 않거나, 인간에게 “그의 것이 아닌” 것을 준다면(유대인의 납치, 가혹, 살해), 그 때는 법이 실현된 것이 아니다.
“법의 이념”은 그러므로 결국 “인간의 이념”이다.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관계없이 이러한 결론에는 많은 상이한 방법에 의해서 도달했고, 끝으로 또한 최근의 정의론(Rawls, Tammelo, Perelmann)도 정의의 이념으로부터 이끌어 내는 것이, 소위 인간의 기본적 장식(Grund- ausstattung)에 속하는 권리와 의무라고 할 때, 그것들도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단지 문제되는 것은 어떻게 “인간의 이념”을 우리들이 해명할까 하는 것뿐이다. 그 점에 관해서는 단지 많은 논쟁당사자들의 토론 속에서만, 납득할 수 있고, 동의가능하고, 그 때문에 당사자 상호간에 효력있는 답변이 존재할 수 있다. 물론 그건 언제나 단지 잠정적이고, 끊임없이 열려진 대답일 뿐이다. 정의가 “무엇”이고 “어떻게” 할 것인가는 따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그것들은 서로 간에 구속되어 있다. 이러한 순환은 해체해 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인간 자신 안에 내재해 있다. 왜냐하면 인간은 하나의 자신 안에 “무엇”이고 “어떤 것”이기 때문이다.
인격이 근본적으로 관계이지, 물체가 아닐 때, 관계적 존재론(Relationenontologie)이어야만 하지, 실체적 존재론(Substanzontologie)이 될 수 없는 해석학적 존재론의 발전은, 그 결과 인격(Peronalen)의 철학과 인류학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그것은 더 이상 문제사가 아니고, 그것은 현재의 문제이다.
3. 법실현의 해석학적 절차
결론적으로 다음의 도표에 있는 법실현의 해석학적 절차를 개략적으로 기술하고자 한다.

當爲

存在

一般化 : 合致
“演繹”     “歸納”

立法 (내지는 慣習法 또는 判例法의 形成)

關聯性(類推)
意味關係의 同一性
“事物의 本性”
法理念
(法一般原則, 法原理) 判決을 내릴 수 없는 抽象的, 一般的(“超實定的”) 비교적 오랜 시간에걸쳐 타당(“超歷史的”)

槪念構成   理念型的 構成

可能的 生活事態

一般化 : 合致
“演繹”     “歸納”

現實的 生活事態

解釋
類型의 領域內에서의 論議(“包攝”)

具體化-一般的 形式的-實定的一定한 時間에 妥當

關聯性(類推)
意味關係의 同一性
“事物의 本性”

法  發見
法規範(法律, 慣習法, 判例法)

法決定(實質的 意味의 法 : 存在와 當爲의 一致) 具體的 實質的-實證的 하나의 狀況에 妥當(“歷史的”)

이 도표는 당위와 존재의 접근과정, 즉 법이념과 아직은 순전히 사념적으로 상상하고 있는 생활사태로부터 형식적·실증적 법규범과 실제적인 생활사태를 거쳐 구체적 실질적·실증법에 이르기까지의 접근과정을 보여준다. 중요한 것은 법실현의 단계, 즉 법의 구체화, 법의 실정화, 법의 역사적 생성의 단계이다(전통적인 방법론이 지나치게 태만히 한 법률의 제정문제도 이러한 방법론적 연관을 맺고 있다). 도표에서 각 “화살표”는, 법실현의 과정이 여러 상이한 차원에서 일어나는 것을 보여준다. 그것은 법이념으로부터 규범을 거쳐 법에 이르는 “직선적” 길로 진행되지도 않고, 또한 사념세계의 생활사태로부터, 사건을 거쳐 법에 이르는 “직선적” 길도 아니고, 오히려 단지 “나선형”의 길로 진행된다. 법은 단지 규범으로부터도, 특정한 사건만으로도 얻어질 수 없다. 규범과 사건이 서로가 “일치”되어질 수 있다는 것은, 그것들이 “의미”로 볼 때 동일하다는 것, 즉 열심히 찾고 있던 “의미”가 양자 속에 깃들어 있다는 것을 전제한다. 그러므로 “사물의 본성”이 무엇을 의미하는가가 이해된다. 그
것은 法源도, 단순한 思考形式도 아니고, 오히려 “본성”(규범)과 “사물”(사건) 사이에 있는 하나의 “매개물”(Mittler)이고, 동시에 규범과 사건의 결합을 가능하게 하는 “촉매”(Katalysator)이다.
물론 그것이 이와 같은 개략적 도표만으로는 충분히 설명될 수 없다. 또한 법이해의 “先判斷의 구조”는 다만 이미 정통한 사람에게나 이해될 수 있다. 즉 법이념은 규율이 가능한 생활사태를 고려해서만 이해될 수 있고(“이념의 소재규정성”), 생활사태는 그러나 법적으로 중요한 생활사태로서 다시금 법이념, 즉 일반적 법의 근본원칙을 고려할 때만 알 수 있다(“소재의 이념규정성”). 또한 역시 법적으로 중요성을 갖고 있는 구체적 생활사태는 법규범을 고려해야만 이해될 수 있고(“사태의 규범관계성”), 법규범의 의미는 그러나 생활사태를 이해해야 설명된다(“법규범의 사건관계성”). 이러한 관찰방법은 당위와 존재의 변증법적 내지 발췌적(analektisch) 관계의 입장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은 이해가 간다. 그러므로 방법이원적 내지 방법일원적으로 지향한 자는(위의 제II장, 제4절, II 참조) 지금껏 말한 것을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위 도표로부터 법은 단지 법이념이나 법규범(당위)으로부터 순전히 연역적으로 도출되는 것이 아니며, 또한 상상된 또는 현실적 생활사태(존재)에서 순전히 귀납적으로 구성될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것은 명백하게 될 것이다. 법은 -반복해서 말하지만- 규범과 사태, 즉 당위와 존재로부터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것은 특히, 법은 그 구체화되는 경우에도 결코 단일한 상황에 의해서 결정될 수 없고, 오히려 그와 동시에 끊임없이 규범적 성질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법의 일반적 특성). 그러므로 법률(법규범)도 항상 필연적으로 일반적 법기본원칙(평등원리, 황금률, 정언명령, 사회국가원리, 신의와 성실 등등)에 의해서 결정되지, 결코 단지 사실적인 것에 의해서(예를 들면 이해관계, 사회적 역할, 필요, 갈등에 의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이와 같은 일반법 기본원칙이 이미 주어져 있는가? (있다면 누구에 의해서) 아니면 이런 법원칙이 요청이나 가설로서 설정되어 있는가의 문제는 오래된 쟁점이다. 확실한 것은 이것들이 모든 입법 및 법발견과정에 전제되어 있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그리고 끝으로 법은 이해의 해석학적 행위 속에서 구성된다. 이해는 이것이 타인에게 전달되고자 할 때에는 언어 속에서 명료화되어야 한다. 언어의 이론(Die Theorie der Sprache)이 오늘날 법이론적 연구의 중심이 되었다. 그것들의 가장 중요한 분야로는 언어학(Linguistik), 의미론(Semantik), 기호학(Semiotik), 구조주의(Strukturalismus), 일상적 언어철학(Ordinary Language Philosophy), 구성주의(Konstruktivismus)이다. 법이 장래에도 인간의 사무에 속하게 될지 아니면, 기계가 법문제를 처리하게 될지는 언어의 이용(Verwendung)에 달려 있다. 우리는 이러한 전환기의 시대에 살고 있다.

주요 참고 문헌
Emage, Carl August: Geschichte der Rechtsphilosophie,
1931 (Nachdruck 1967)
Engisch, Karl: Einfuhrung in das juristische Denken. 8.
Aufl. 1983.
Fikentscher, Wolfgang: Methoden des Rechts,  5 Bde.,
1975-1977.
Fluckiger, Felix: Geschichte des Naturrechts, 1. Bd.
Altertum und Fruhmittelalter. 1954
Friedrich, Carl J.: Die Philosophie des Rechts in
historischer Perspektive, 1955.
Larenz, Karl: Methodenlehre der Rechtswissenschaft, 5.
Aufl, 1983.
Marcic, Rene: Geschichte der Rechtsphilosophie;
Schwerpunkte-Kontrapunkte, 1971.
Verdross, Alfred: Abendlandische Rechtsphilosophie:
Ihre Grundlagen und Hauptprobleme in
geschichtlicher Schau, 2. Aufl. 1963.
Welzel, Hans: Naturrecht und materiale Gerechtigkeit,
4. Aufl, 1962 (Nachdruck 1980).
Wieacker, Franz: Privatrechtsgeschichte der Neuzeit –
unter besonderer Berucksichtigung der deut-
schen Entwicklung, 2. Aufl. 1967.
Wolf, Erik: das Problem der Naturrechtslehre; Versuch
einer Orientierung, 3. Aufl, 1964.
Wolf, Erik: Große Rechtsdenker der deutschen
Geistesgeschichte, 4. Aufl, 1963.

 

출처 :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mdpsjk&logNo=20023160798&beginTime=0&jumpingVid=&from=search&redirect=Log&widgetTypeCall=true

칼 엥기쉬(Karl Engisch) 법적 사고의 입문

(본 문헌은 오로지 학문적 연구를 위해서만 사용이 허락 됩니다.)

칼 엥기쉬(Karl Engisch)

법적 사고의 입문

(Einführung in das juristische Denken)

 

-9. Aufl. Kohlhammer 1997-

 

목 차

 

제1장 글머리 1

제2장 법규의 의미와 구조에 관하여 13

제3장 법규로부터 구체적 법률판단의 획득,

특히 포섭의 문제 79

제4장 법규로부터 추상적, 법률적 판단의 획득.

법규의 해석과 이해 127

제5장 법규의 해석과 이해, 입법자 또는 법률? 183

제6장 법관법. 불확정한 법개념, 규범적 개념,

자유재량, 일반조항 231

제7장 법관법, 계속 : 흠결보충과 법의 오류정정 299

제8장 법률에서 법으로, 법학에서 법철학으로 401

 

 

 

제7판 서 문

 

“법적 사고 입문”은 통상 독자에게 법적 사고의 방법론뿐만 아니라 법 자체와 그의 개별 법역을 소개하는 “법학 입문”과는 다른 목표를 가지고 있다. 이 책에서는 법학도와 법에 관심이 있는 일반인에게 다소 비밀스럽기도 하고 의심스럽기도 한 법적 사고의 논리와 방법을 설명하려는데 목적이 있다. 그것도 법적 구성이나 체계형성과 같은 “거창한” 이론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핵심적인 법발견의 문제에 국한하여 논리와 방법을 설명하려는데 목적이 있다. 단지 이와 같은 목적에서만 이 책에서 언급된 실제적 법문제가 다루어졌다. 법적 논리학과 방법론이 어떠한 과제를 다루는지에 관하여서는 1959년 “Studium generale”라는 잡지의 76쪽 이하에서 상세하게 설명한 바 있다. 그 중에서 나는 단지 다음과 같은 점만을 강조하고자 한다. 법적 논리학은 한편으로는 형식 논리학의 기초와 범위에 근거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특이한 법적 방법론과 결합하여, 법적 사안에서 인간이 어떻게 “진실하고” 또는 “정당하고” 또는 최소한 “대표될만한” 판단을 얻게 되는지를 제시하는 실천 논리학이다. 이와 같은 법적 논리학과 방법론은 법을 다루는 사람들에게 제기된 사고 과제를 가능한 한 쉽게 극복하도록 도움을 주는 그러한 기술을 가르치는 “공학”이 아니다. 또 이는 실제적 일상생활에서 법적 견해를 얻기 위하여 사실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를 연구하는 심리학이나 사회학도 아니다. 이는 오히려 그리 쉽게 파악되지 않는 사물의 본성에 부합하는 법적 인식과정에 대한 연구이다. 법적 논리학과 방법론은 (인간의 인식의 한계에서 바람직한) “진리”를 발견하고 충분히 근거가 있는 판단을 얻기 위한 것을 목표로 한다.

 

1977. 7. 칼 엥기쉬

 

제9판 서 문

 

칼 엥기쉬의 “법적 사고 입문”은 법률가의 여러 세대를 함께 해온 고전이다. 1956년 초판이 나온 이후 이 책은 줄곧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내용은 본질적인 부분에서 거의 변경이 없다. 이 책은 1977년 이후 개정판이 나오지 않았는데 1990년 칼 엥기쉬가 사망한 후 최근의 법률, 판례와 학설에 맞추어 이 책을 개정할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이 책의 중요 부분은 고전으로 분류되어 시대가 변하여도 크게 개정할 필요성은 없으므로, 제9판에서는 문제가 되고 있는 법률 사정을 감안하여 몇몇 부분에 대하여서만 신중하게 내용을 수정하였다. “자유재량”에 관한 부분에 대하여서는 논의의 특별한 필요성이 존재한다. 특히 7판 이후 방대해진 주석에 대하여서는 크게 손 볼 필요가 있다. 주석에서 상당 부분을 빼버리고 새로운 내용을 달다보니 양이 크게 줄었다. 엥기쉬가 달아 놓은 고전 문헌을 접하려고 하는 사람은 제8판을 참고하기 바란다. 번거로움을 회피하기 위하여 지금까지 본문 뒤에 주석을 달아놓았던 방식을 변경하여 각 쪽마다 주석을 달아놓았다. 나아가 인명 약어와 참고 문헌을 보충하였다. 그리고 엥기쉬의 생애와 저작을 후기로써 마무리하였다.

 

1996. 6. 프라이부르크, 토마스 뷔르텐버거, 딜크 오토

 

Scire leges non hoc est verba earum

tenere, sed vim ac postestatem.

(법률을 안다는 것은 그 문언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그 힘과 권위를 지키는 것이다.)

Celsus, Digesten 1, 3, 17

제1장 글머리

법학과 법적 사고를 초보자나 일반인에게 설명하려 할 때면 늘 다른 학문과 비교하여 여러 장해와 의혹이 그대로 방치되어있음을 본다.1) 법률가가 법학이 소속된 사회, 문화과학의 영역에서 자신을 돌아볼 때, 대부분의 사회, 문화과학이 별로 애쓰지 않고도 바로 자신의 학문인 법학보다도 더 많은 관심, 이해와 신망을 얻고 있다는 점을 선망과 중압감을 가지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언어, 문학, 미술, 음악 및 종교에 관한 학문은 대상과 방법론에 있어 법학과 유사함에도 불구하고 법학과는 전혀 다를 정도로, 교양에 전념하는 일반인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사람들은 고고학 또는 문학사에 관한 서적을 다른 사람에게 선물할 책으로서 주저 없이 고려하지만, 법률서적은 아무리 독자의 이해에 특별한 요구를 하지 않는 수준의 책일지라도 감히 그렇게 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통상적인 법학입문서는 거의 예외 없이 초학(初學)의 법률학도에게만 무엇인가를 제공할 뿐이고 일반인에게는 아무 것도 제공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도대체 얼마나 자주 법률가가 아닌 사람의 서가에서도 법전을 찾아볼 수 있는가?

일반인이 법과 법학에 대하여 갖는 무관심의 이유는 쉽게 찾아질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 문제는 매우 특이한 곳에 있다. 법보다 더욱 밀접하게 인간과 관련된 문화영역은 없다. 사람은 시나 미술, 음악과 활발한 교류 없이 살아갈 수 있고 실제로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법의 지배를 받지 않고 살아가거나 부단히 법에 관련되지 않고 법의 규제를 받지 않는 사람은 없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공동체에 속하여 그 안에서 성장하고 특별한 예외가 아닌 한 공동체로부터 추방되는 일이 없다. 그런데 법은 공동체의 기본적 요소이다. 그렇기 때문에 법은 우리와 밀접 불가분한 관련을 맺게 된다. 또 법이 지향해야 하는 근본가치, 즉 정의는 미(美)나 선(善), 성(聖)과 같은 가치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정당한 법은 “세계의 의미에 속한다.”2)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과 법학이 그토록 일반인들로부터 무관심을 산 이유는 무엇인가?

이제 법과 법학은 별개이고 일반인에게 무관심한 것은 단지 법학일 뿐이라고 반박할지 모른다. 그러나 일반인도 법이 실천적 명령일 때만 관심을 갖는다는 점을 제외하더라도, 법과 법학은 결코 다른 두개가 아니다. 여하튼 법과 법학은 예를 들어 미술과 미학이 그런 것보다 더 별개의 것이 아니다. 미학이 미술의 이해를 장려하면서 미술의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또 학문적 이론이 미술의 실무적 흐름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사정을 한번쯤 생각해도 좋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보면 미술의 실무적 흐름은 자기의 독자적인 길을 걷고 있고 미학은 미술의 실무적 흐름을 뒤쫓으며 이를 해석하고 반성하고 역사화 하면서 화가에 의해서는 철저히 거부되거나 조소받지 않으면 거의 불신되기 일쑤이다. 물론 나에게 학문적 미술관(美術觀)의 위대한 정신적 의미를 문제 삼을 의도는 추호도 없다. 빈켈만(Winckelmann)이 고전주의자에게는 얼마나 중요한 의미가 있는가? 야콥 부르크하르트(Jacob Burckhardt))나 하인리히 뵐프린(Heinrich Wölfflin)의 평석으로 인하여 우리가 얼마나 운 좋게 소중한 미술관을 얻게 되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남는 것은 미술과 미학은 별개라는 점이다. 이런 사정은 다른 문화과학과 그것의 현실적 대상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이에 비하면 법학은 법과 나란히 또는 법에 뒤져 가는 것이 아니라 법의 테두리 안에서 법 자체와 삶을 함께 형성할 수 있다는 점이 법학의 유일무이한 장점이다. 법학은 그것이 존재한 이래 실천학문이다. 법학을 기초하는데 불멸의 공헌(貢獻)을 한 로마인은 법학에서 그들이 얻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너무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그들은 법학을 신과 인간에 관한 학문(divinarum atque humanarum rerum notitia)3)으로 찬양하고 모든 학문 가운데 가장 살아있는 학문으로 평가하여 그들의 법 및 법학과 더불어 강성해졌다. 진실로 재능 있고 독창적인 법률가의 사상이나 법인식에 있어 발견은, 입법자에게 영감을 주었든 개별사례의 판결에 영향을 미쳤든, 모든 시대에 있어 법 자체를 위하여서는 하나의 은총(恩寵)이었다4). 고대 로마법학자 또는 (1250년 이후) 이탈리아 후기 주석학파(註釋學派)의 법적 지혜만으로 수세기를 살아왔다. 비아커(Wieacker)가 그의 저서 근대사법사(Privatrechtsgeschichte der Neuzeit)에서 “법률형상물 가운데 19세기 독일어권 법학이 낳은 가장 위대한 산물”이라고 지칭한5) 1907년 스위스 민법전의 입법과정에 오이겐 후버(Eugen Huber)가 참여한 것처럼 법사상가가 바로 입법에 관여한 경우를 전혀 언급하지 않더라도, 예링(Ihering), 빈트샤이드(Windscheid), 빈딩(Binding), 리쯔트(Liszt), 프랑크(Frank)와 같은 근대 법률가의 법이론이 사법제도와 입법에 많은 기여를 하였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렇다고 하여 아무리 사리분별력 있는 사람이라도 위대한 법학자를 위대한 역사가, 언어연구가, 미학자를 능가하여 천부적 철학자, 시인, 화가, 음악가와 견주어 생각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문화의 직접적인 영향력을 고려하면 중요한 법학적 업적이 의미 있는 철학, 미술작품, 문학작품과 충분히 비교될 수 있다. 이들은 동등한 가치를 지닌다. 이제 법학에서 특별한 책임을 찾아야 할 것임이 명백해졌다.

자연과학과 비교하여 일어나는 의혹에 대한 법학의 항상 되풀이하는 자기주장은, 다른 사회, 문화과학과의 경쟁 속에서 이해와 동정을 얻으려는 노력과는 성질이 다르다. 근본적으로 자연과학과 비교를 한다는 사정은 법의 법칙적 성격과 무관하지 않다. 법학은 자연과학과 마찬가지로 법칙학(法則學)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자연의 법칙을 일깨워 주는 사람은 우리에게 존재와 필연을 알게 해주는 것인데, 만약 법률가가 우리를 법의 존재의 세계로 이끌 때 그는 우리에게 법의 법칙에 관한 필연의 확신을 심어줄 수 있을까? 개성의 활동범위, 즉 예술의 영역에서 두말할 나위 없이 인간정신에 속하는 자유는, 규칙과 법칙이 군림해야 하는 법의 영역에서는 너무도 쉽게 우연, 자의, 월권으로 나타난다. 물론 예술인에게도 규칙과 법률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는 그들이 인격의 내용으로 채울 수 있고 채워야만 하는 “형식”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러한 “형식”은 다소 지속적인 것이 없지 않아 있지만 언제나 개인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따라서 문화에 따라 여러 가지일 수 있고, 역사의 흐름에 따라 가변적일 수 있다. 그것은 물론 보편타당하지도 않고 엄격한 구속력을 지닌 것도 아니다. “주인이 그 형식을 파괴할 수 있다.”6) 그러나 법으로서 보편적이고, 법이 재배수단으로 삼고 있는 법률에 대하여 사람들은 언제나 진리나 자연법칙에 대하여 그런 것처럼 항상 보편타당성을 기대한다. 그들이 이와 같은 보편타당성을 찾아내지 못했을 때 그들은 매우 실망한다. 파스칼(Pascal)은 고전적인 방식으로 이러한 실망감을 자주 인용되는 말로서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방위가 변해도 그 성질이 변하지 않는 법 또는 불법은 없다. 위도 3도만 변해도 모든 법학은 와해된다. 자오선이 진리를 결정한다. 효력이 생긴 지 얼마 안 되어 기본 법률이 바뀐다. 법은 자기시대를 갖는다. 우습게도 강을 경계로 정의가 존재한다. 피레네 산맥 이편에서의 진리가 저 편에서는 오류이다.”7) 법률가의 매우 뜨거운 열정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 진정한 법을 찾아내어 그것을 인간의 본성이든, 사물의 본성이든, 어떤 “본성”과 결합시키지 못했다는 사실이 그의 학문을 매우 불투명하게 만들고 있다. 율리우스 폰 키히르만(Julius v. Kirchmann)은 그 자신 법률가이면서도 학문으로서의 법학에 대해 행한 다음과 같은 유명한 비판도 바로 여기에 근거하고 있다. “태양, 달, 별은 수 천 년 전과 마찬가지로 오늘도 변함없이 빛나고, 장미는 낙원에서와 마찬가지로 변함없이 피지만, 법은 세월이 지나면 항상 변한다. 부부, 가족, 국가, 소유란 개념은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나 사라진다.”8)

법학의 “자의성” 및 법칙과의 괴리에 대해 일반인이 갖는 생소함은 몇 가지 간단한 실례로써 명백해질 수 있다. 첫 번째 실례는 확실히 진부하긴 하지만 그 단순성으로 인하여 앞으로의 논의에 있어 훌륭한 단서가 될 수 있다. 내가 학생이었을 때 한 의학도가 당시 효력 있던 (그러나 오늘날에는 더 이상 효력이 없는) 민법 제1589조 제2항 소정의 “혼인 외의 자와 부는 친족으로서 효력이 없다”라고 한 규정에 관하여 나의 면전에서 분개한 적이 있다. 그는 이 규정에서 법률적 자의, 생물학적 소여(所與)의 교만한 거부, 또는 아마도 거짓 부끄러움과 가식적 도덕 같은 것을 보았던 것이다. 그는 법이 이런 방식으로 자연적 사실을 무시해버릴 수는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였음이 분명하다. 두 번째 실례는 한 유명한 생물학자가 오늘날 자주 인용되는 사례, 즉 늑대는 투쟁에서 질 경우 상대방으로부터 더 많은 양보를 받아내기 위하여 이른바 배를 보이는 “굴종의 태도”를 취하는데, 이와 같이 늑대들 사이에서 지켜지고 있는 투쟁관행을 자연법에 관한 학문적 논의 속으로 가져온 것이다. 이 생물학자에게는 진정한 자연법이란 이와 같이 생물학적 소여에 터잡아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떠올랐던 것이다. 기본권이나 인권 따위와 같이 법률적 측면에서의 “자연법”은 그에게 진정한 자연법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마지막 실례는 의료업에 대하여 법률가의 올바른 이해가 부족하다는 의료계의 지적이다. 특히 의료계에서는 불가피하고 정당하게 수행된 의료행위를 “상해죄”에 해당하나 환자가 동의했기 때문에 처벌할 수 없다고9) 한 최고재판소의 판결을 매우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다. 이러한 견해는 의료업의 본질에 반하는 것이고 법률가의 월권으로 밖에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법률가는 이 모든 것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해야 하는가? 무관심, 거부, 불신에 대하여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까? 우선 이 낯설고 불가사의한 (법적) 사고방식을 일반인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법률가의 사고를 학문적으로 분석하고 그것의 오류와 실수를 주목하면서 이를 회피하려고 노력한다면 법적 사고도 신망을 얻을 수 있다. 인간의 모든 노력과 행동이 그렇듯이 법학에도 오류가 있고 위험에 직면할 때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까지 그토록 우수한 사람들에 의해 지탱되어 온 법학을 앞으로 훌륭한 인재들이 외면할 것이라고 추단할 수는 없다.

다음의 서술이 “입문서”의 특성에 맞게 전통적인 법발견의 방법론에서 출발하여 대부분 그곳에 기초할 것임을 숨기지 않는다. 1956년 이 책이 처음 출간되면서 여기 방법론이 간혹 논박을 받아왔다. 금세기 초 “자유법학(Freirechtsschule)”과 “이익법학(Interessenjurisprudenz)”이 법발견과 방법론에 새로운 이념을 제시하였듯이 오늘날에도 법획득을 위한 진보적 이론과 표어들이 그치지 않고 있다. 이들 이론은 끊임없이 재고(再考)되어져야 한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서는 사비그니(Savigny)에 의해 집대성된 전통적인 (법학) 방법론이 아직도 만족할 만한 확고한 기반을 제공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오늘날의 법률가가 사고 작업의 근거로서 이 방법론을 신뢰하여도 괜찮을 것이다.

 

제2장 법규의 의미와 구조에 관하여

민법(BGB) 제1589조에서부터 이야기를 풀어나가도록 하자. 이는 “친족”에 관한 규정 중 제일 처음에 나오는 조문이다. 개정 전에 그 전문은 다음과 같았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 의해 출생된 사람들을 직계친족이라 한다. 직계친족은 아니지만 같은 제3의 사람에 의해 출생된 사람들을 방계친족이라 한다. 친족의 촌수는 그들 사이에 놓여 있는 출생된 사람들의 수에 의해 결정된다. 혼인 외의 자와 그의 부는 친족으로서 효력이 없다.”(역자 주 : 우리나라 민법도 제768조에서 직계혈족과 방계혈족을 규정하고 있고, 제770조에서 혈족의 촌수의 계산을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제855조에서 혼인외의 출생자에 대하여는 부모가 인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위 마지막 조항은 혼인 외의 자의 법적 지위에 관한 개정규정에 따라 1969. 8. 18. 법률에 의해 삭제되었지만, 다음의 논의를 위하여 우선 한번은 포함시켜 두기로 한다. 우선 두드러진 것은 규정의 표현 상 변화이다. 처음에는 어떤 사람들을 직계 또는 방계친족이라 한다(sind)라고 하였다가 다음에는 결정된다(bestimmt sich)라고, 맨 마지막에는 효력이 없다(gelten nicht)라고 하고 있다. 마지막 조문에서 입법자의 생각은 혼인 외의 자와 그의 부가 자연적 측면에서 혈연관계에 있음을 부인한 것이 아니고, 혼인 외의 자는 혼인중의 자와 법적으로, 보다 엄밀하게는 민법적으로 동등하지 않음을 선언한 것임이 분명하다. 여기서 “민법적으로”란 제한이 갖는 의미는 중요하다. 예컨대 고래로부터 형법전의 의미에 있어서 혼인 외의 부와 혼인중의 자는 친족이었기 때문이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의) “직계존비속”간의 근친상간(近親相姦)을 처벌한 형법(StGB) 제173조는 혼인 외의 부모와 그의 자(오늘날에는 “사실상의 자”로 불린다) 사이에서도 언제나 마찬가지로 적용되어 왔다. 또 1841년 프로이센 형법(제228조)에서 “부의 자녀에 대한 절도”를 면책시키고 있는데 이는 혼인 외의 자에 대하여도 마찬가지였다(오늘날 “친족”간의 상도례(相盜例)는 고소가 있어야 논할 수 있고 이 점은 혼인 외의 친족간에도 마찬가지이다). 한편 민법시행법률(Einführungsgesetz zum BGB) 제51조는 “법원조직법, 민사소송법, 형사소송법, 파산법에 있어 친족이나 인척에 대하여 법적 효과가 부여될 경우, 민법의 친족 또는 인척에 관한 규정이 준용된다”라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러한 법률도, 지금은 1969. 8. 19. 법률에 의해 소용없게 되었지만, 개정 전에는 혼인 외의 부와 그의 자는 친족으로서 “효력”이 없다는 위 민법의 원칙에 따라 규제되었다. 따라서 형사소송법 제52조 제3항에 의해 피고인의 직계친족에게 주어진 증언거부권이 혼인 외의 자에 대한 형사소송에서 혼인 외의 부에게는 인정되지 않았던 것이다(그 역도 마찬가지).10) 물론 이것도 오늘날에는 더 이상 타당하지 않게 되었다. 위에서 인용한 파스칼의 말을 빌려 말하자면, 하나의 자오선이 정의에 있어 진리를 결정할 뿐만 아니라, 역사적 변화를 수용하고 해결하기 위하여 하나의 동일한 법질서에 있어서도 일정한 구분선을 그어 법체제를 달리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효력”이라는 표현에는 고유의 의미(eigene Bewandnis)가 내포되어 있다. 이에 관하여 철학적으로 고찰할 생각은 없고(그러나 이는 자주 충분히 고려될 것이다), 단지 여기서는 그 효력이라는 표현이 어떤 생활관계를 특별하게 법률적으로 파악하려는 것과 관련이 있다는 점만 지적해두기로 한다.

그러나 특별하게 (법률적으로) 파악하는 방식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묻기 전에, (현재도 효력이 있는) 민법 제1589조의 첫 조문, 즉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 의해 출생된 사람들을 직계친족이라 한다라고 한 규정에는 고유하고도 본질적으로 다른 무엇이 있는지를 물어야 할 것이다. 여기서는 최소한 법이 자연을 존중하여 단지 존재의 사실을 선언한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기에서도 하나의 놀라운 사실을 경험할 수 있다. 제1589조는 친족을 “출생”에 의존하는 것으로 선언하고 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는 세상 누구나 알고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곧 민법전이 제1591조 이하에서 “혼인중의 출생”에 관하여 규정한 것을 보면 아마 무척 놀라게 될 것이다. 여기서는 다음과 같이 규정되어 있다. 혼인 후에 출생한 자는, 부인이 혼인 전 또는 혼인기간 중에 임신하고 임신기간 동안 남편이 그 부인과 동거하였다면, 혼인중의 자로 본다. 남편이 임신기간 동안 부인과 동거하였다는 사실은 혼인기간 동안 추정된다. 임신기간으로는 일반적으로 자의 출생 전 181일에서 302일까지의 기간이 타당하다. 위와 같은 조건이 모두 충족되어 있을 때에는 “부인이 남편의 자를 임신하는 것이 명백히 불가능한 사정”이 있을 경우에만 혼인중의 자임이 부정된다(제1591조)(역자 주 : 우리나라 민법도 제844조 제1항에서 처가 혼인중에 포태한 자는 부의 자로 추정한다, 제2항에서 혼인성립의 날로부터 2백일후 또는 혼인관계 종료의 날로부터 3백일내에 출생한 자는 혼인중에 포태한 것으로 추정한다는 규정이 있다). 그러나 친생자 부인(否認)은 남편 또는 그 부모나 자식이 제기한 소송에서 확정되어야 한다. 자가 혼인기간 중 또는 혼인해소 후 302일 전에 출생하였다면 위와 같이 소송에 의하지 않고서는 친생자 부인을 주장하지 못한다(제1593조). 요약하면, 법은 혼인기간 중 또는 혼인해소 후 일정기간 안에 출생한 자를 위하여 (부를 정하는데 있어서는) 원칙적으로 로마인들이 표현한, “부는 혼인에서 말해주는 사람으로 한다”(Vater est quem nuptiae demonstrant : Digesten 2, 4, 5)라는 사고에 입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이 규정에서 새삼 법적 고찰은 자연적 고찰과 충돌할 수 있음이 분명해졌다. 민법에 의하면 – 원래의 법과는 모순되게 – 혼인 중에 태어나지도 않은, 혼인 전에 출생한 자를 혼인중의 자로 규정하고 있는데 이에 대하여 벌써 당혹감을 감출 수 없다. 더욱이 위의 규정에 따르면 행실이 바르지 못한 부인이 자연적인 관점에서는 전혀 상이한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는 경우에까지 그의 남편에게 혼인중의 자로 간주되는 아이를 낳아줄 수 있게 된다. “모는 언제나 확실하다(Mater semper certa est).” 이에 반하여 부에 대한 드물지 않은 불확실성은 “법적 안정성”이란 이익을 위해 남편이 부인과 동거하면 그 자의 부이다라는 “추정”으로 해결하고 있는 것이다. 혼인 외의 자도 혼인 외의 부가 모와 혼인하거나(민법 제1719조), 후견재판소의 판결에 의해 혼인중의 자임이 선고됨으로써(민법 제1723조 이하) 사후에 “혼인중의 자와 동일한 법적 지위”를 취득할 수 있는데, 이점을 보태 보면, 혼인중의 출생과 그로 인한 직계친족 따위의 개념은 결코 자연적 소여와 부합할 필요 없는 법적 소여임이 분명해진다. 오늘날 입법자가 예전보다도 더욱 법적 소여를 자연적 소여와 일치시키려고 노력한다고 하지만 이점에는 변함이 없다. 또 혼인중의 자라는 개념에 대하여도 보다 면밀하게는 혼인중의 자이다(sind)라고 말 할 것이 아니라 민법에 있어 혼인중의 자로서 효력(gelten)이 있다라고 말해두어야 할 것이다(일반적으로 효력이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민법 제1591조 이하의 규정이 예컨대 형법 제217조 소정의 영아살해죄에 있어 비혼인성의 판단기준이 될 수는 없다).

나아가, 예컨대 자연적으로 뿐만 아니라 법적으로도 혼인기간 중에 출생한 자를 혼인중의 자로 취급함으로써 법적 소여를 자연적 소여와 일치시킨다 해도, 친족의 법적 개념이 “자연적” 개념과 완전히 같은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사려 깊은 독자라면 “자연적”이라는 표현에 주목할 것이다. 생물학자에게 혼인중의 자와 혼인 외의 자 사이에 차이는 없다. 그에게는 오직 자연적 출생이라는 사실만이 있을 뿐이다. “혼인중의 출생”이란 개념과 그에 기초하고 있는 “친족”이라는 개념은 “혼인 중”이라는 표지(Merkmal)와 함께 불가분의 문화적 계기를 내포하게 되는데, 이는 종교의 세계나 도덕 또는 법의 세계로부터 연원(淵源)할 수도 있다. 심지어 혼인중의 출생과 친족에 대하여 법적인 개념과 자연적인 개념의 일치를 주장할 때도 이 친족의 자연적 개념이 반드시 생물학적인 개념으로 이해되어진 것이 아니라 문화, 사회적 의미로 이해되어진 것이다. 생물학적 의미에서가 아닌, 바로 위와 같은 의미에서 우리는 혼인중의 출생에 대한 “자연적인” 개념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조금 더 나아가 친족에 대한 법적 개념이 문화, 사회적 개념 및 그 의미에 있어 자연적 개념과도 구별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만 한다. 종교적 방식과는 다른 특별한 방식으로 법률상 혼인이 거행되고 있는 점을 특히 배제하여, 문화, 사회적 친족 개념과 법적 친족 개념의 적용 조건이 완전히 일치하고, 문화, 사회적 친족 개념이 존재해야만 법적 친족 개념이 인정되는 경우라 하더라도, 법적 친족 개념과 문화, 사회적 친족 개념은 동일한 것이 아니다. 친족의 법적 개념에는 다른 것과 비교되지 않는 의미가 부여되어, 말하자면 특별한 효과(Tragweite)가 주어져 있는 것이다. 그것은 법률가가 흔히 말하듯이 “법규(Rechtssatz)”(법규범)에 의해 “법률효과(Rechtsfolge)”가 주어지는 “구성요건(Tatbestand)”으로서 기능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비로소 우리는 논의의 핵심으로 들어왔다.

혼인 외의 부와 혼인 외의 자는 친족으로서 효력이 없다라고 할 때, 이는 혼인 외의 출생이라는 구성요건에 대하여는 혼인중의 출생이라는 구성요건에 부여하는 것과 같은 법률효과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이해될 수 있다. 그렇다면 법률효과란 도대체 무엇인가? 민법 제1589조 제2항이 효력 있을 당시 혼인중의 직계친족에게는 혼인 외의 출생자에게 인정되지 않는 증언거부권이 인정되었다는 점은 이미 언급하였다. 그러나 민법 제1589조 제2항이 삭제된 오늘날에도 혼인중의 출생자와 혼인 외의 출생자 사이에는 다같이 “친족”으로 취급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법적 차별이 존재하고 있는데, 이와 같이 아직도 “효력” 있는 법적 차별이 여기서는 중요한 의의가 있다. 즉, 혼인중의 자는 부(또는 모)의 성(姓)을 따르지만, 혼인 외의 자는 출생 시 모가 갖고 있는 성을 따른다(민법 제1616조 이하).11) 또 혼인중의 부는 모와 공동으로 자녀에 대한 친권, 다시 말해 교육, 감독, 건강의 보살핌, 직업훈련과 직업선택의 수행, 법률행위와 소송의 대리 등을 통해 자녀의 인격과 재산을 돌보아 줄 권리와 의무를 갖지만, 혼인 외의 미성년인 자는 (특정 제한은 따르지만) 일반적으로 모의 친권에 복종한다(민법 제1626조, 제1705조). 그밖에 부양청구권이나 상속권과 관련하여 혼인 외의 자의 법적 지위가 혼인중의 자의 법적 지위와 상당부분 동등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차별이 존재하고 있는데, 여기서는 하나하나 일일이 설명할 수 없고, 다만 현재 인정되고 있는 혼인 외의 자의 상속권은 혼인중의 자 또는 피상속인의 배우자와 공동상속을 하는 경우 (일반적으로 유류분청구권과 유사한) 상속대상청구권(Erbersatzanspruch)의 형태로서 인정되어, 혼인 외의 자는 다른 공동상속인과 함께 상속공동체에 들어갈 수 없도록 하고 있는 점만 지적해두기로 한다(민법 제1934조a).

법에 있어 “친족”과 (혼인 중 또는 혼인 외의) “출생”이란 개념은 오로지 다음을 의미한다. 법률에 의해 이러이러하게 규정해놓은 친족 또는 출생의 “구성요건”에 터잡아 이런 또는 저런 “법률효과”를 부여하거나 부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와 달리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친족”이란 개념과 더불어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귀속감, 운명공동체, 공통의 조상과 고향에 대한 추억, 공동의 명예에 동참하는 의식, 친족에 결부된 책임감, 곤궁 시 상부상조 등등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법에서는 간접적으로 고려될 뿐이고, 직접적으로는 “법률효과”로서 인정된 권리, 의무만이 의미가 있다. 같은 양친으로부터 출생한 자식들(형제자매와 사촌)은 곤궁할 때 서로 돕고 생계를 부양해야 한다는 것은 도덕적 의무일 수 있다. 현행 민법에서와 같이 법이 이러한 부양의무를 규정한 바 없다면 그 한도에서 친족의 구성요건은 법률적으로 고려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우리 소송법이 삼촌까지의 방계친족에 대하여서만 증언거부권을 인정함으로써 다시금 여기서 법적 규율의 상대성에 마주치게 된다.

법률의 구성요건 개념을 정하는데 있어 위와 같은 상대성은 동일한 사안에 대하여 법률효과를 달리 규정함으로써 나타나는 법적 규율의 상대성으로 인하여 더욱 분명해진다. 법규에 있어 구성요건이란 즉자(卽自)적으로 존재하는 대상을 개념적으로 확정하고, (일정한 자연적 현상을 동반하는, 생물학적 의미에 있어 즉자적인 “친족” 또는 “출생”에 관하여 하는 것처럼) 이를 학문적 언급의 객체로 삼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민법, 형법 또는 공법적 특성을 지닌) 특정한 법률효과를 부여하기 위한 전제로서 “법률적 구성요건”의 윤곽을 그리고 이를 어느 정도 확정(구성)하는 것으로서, 이 경우 입법자는 특정한 법적 관점 하에서 구성요건의 전제사실을 상이하게 규정하고, 또한 현실의 법률효과를 결부시키기 위하여 “출생”이란 단일의 자연적 기본사실을 언제든 다르게 평가하여 파악할 자유를 가진다. 혼인중의 출생이든 혼인 외의 출생이든 자연적 기본사실은 동일함에도 불구하고 서로 다른 법률효과를 부여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사실로부터 설명될 수 있다.

방금 우리는 어떤 “구성요건”에 결합된 “법률효과”에 대하여 되풀이해서 언급했다. 그럼 “법률효과”란 무엇인가? 우리는 특정한 성(姓)을 따를 권리, 친권을 행사할 권리와 의무, 양육비를 청구할 권리와 상속권 등등, 항상 “권리와 의무”로 지칭되는 몇몇 경우를 알았다. 그런데 그 의미는 매우 다양하다. 우선 법률효과는 권리(권한부여)와 의무로 이루어졌다는 점과, 그 다음으로는 이러한 권리와 의무가 법적으로 승인되어진 것이란 점을 지적할 수 있다. 그중 후자와 관련해서는, 법적인 수단을 통해 그 효력이 유지되고 실현될 수 있는 경우라야 권리와 의무가 법적으로 승인되어진 것이라고 생각하면 충분한데, 이는 오늘날 법과 국가의 긴밀한 관계에 비추어 볼 때 필요 시 사법과 행정당국에 소추를 제기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법적 의미에 있어 권리, 의무와 위와 같이 국가적 강제력을 결여한 도덕적 권리, 의무의 관계에 대하여 이는 여기서 더 이상 다루기 곤란한 법철학적 문제이다).12)

위에서 우리는 법률효과가 권리와 의무로 이루어졌다고 말했는데, 이는 우선 그렇다는 점을 덧붙여야 할 것이다. 이 경우 우리는 형벌제재와 같은 “법률효과”로 당황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나중에 (28쪽에서) 고찰하겠지만 형벌제재도 권리, 의무의 한 내용으로 파악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에는 “소극적인” 양(量)으로서 (권리, 의무로 구성된) 법률효과의 부(否)란 것이 있다는 점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예컨대, 금전교부의 대가로 소송에서 위증하기로 한 소송당사자와의 합의와 같이 어떤 “법률행위”가 법률 또는 공서양속(公序良俗)에 반하는 경우에는 “무효”이다(민법 제134조, 제138조). 다시 말해 이 경우에는 권리와 의무가 발생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와 구별해야 할 것이 구성요건에서 소극적 내용을 갖는 권리와 의무의 발생을 정한 경우이다. 예컨대, 시끄러운 행위의 중지를 요구할 권리 또는 그 의무와 같이 어떤 부작위를 요구할 권리 또는 그 의무를 말한다. 이러한 권리 또는 의무는, 마치 채무가 회계상으로는 부(負)로 다루어져 재산에서 공제되어도 법적으로는 적극적인 무엇, 전형적인 의무인 것처럼, 적극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법적 의미에 있어 진정한 소극적인 양(量)은 법률과 공서양속에 반하는 법률행위의 무효에서 보는 바와 같이 권리와 의무의 부(否)를 말한다. 이는 법률효과의 배제를 뜻하는 것인데, 종종 그 자체가 “법률효과”로 일컬어지기도 한다. 즉, 법률과 공서양속에 반하는 법률행위는 무효이고, 따라서 어떤 법률효과도 발생시키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법률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법률효과의) 이중의미가 숨어 있다.13) “법률효과”가 법규의 구성요소를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될 때도 있고(법규는 “구성요건과 법률효과로 구성되어 있다”), 법규의 지시, 다시 말해 권리와 의무의 성립 또는 권리, 의무의 목적인 급부(給付) 또는 형벌 따위를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될 때도 있는데, 이런 (법률효과의) 이중의미가 혼란을 일으킨다. 매매계약을 근거로 매도인과 매수인에게 특정의 권리와 의무가 발생한다고 하는 법규의 규정(이는 법규의 구성요소로서 법률효과를 말한다)과, 법규가 지시하고 있는 계약당사자의 권리와 의무, 즉 매매대금을 요구할 매도인의 권리와 대금을 지불하고 물건을 양수할 매수인의 의무는 구별되어야 한다. 만약 우리가 법률 및 공서양속에 반하는 법률행위는 어떤 법률효과도 발생시키지 않는 의미에서 법률효과를 지닌다고 할 때, 후자의 법률효과는 법규의 구성요소로서, 전자의 법률효과는 권리와 의무로서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이중의미는 일상의 법률용어에서 두 가지 의미가 모두 통용되고 있기 때문에 없애기 곤란하다. 혼란을 피하기 위해서는 법규의 구성요소로서 법률효과를 말할 때는 법률효과규정 또는 법률효과명령 등으로 표현하는 도리 밖에 없다.

다시 우리의 본론으로 돌아가자. 법률효과란 권리와 의무로 표현된다. 이는 경우에 따라서 소극적 무엇, 즉 부작위를 목적으로 하는 경우라도 항상 적극적 권리 의무로 생각할 수 있다. 이들이 권리의 본질적 실체이다. 이에 반하여 (법률효과의) 부(否)는 제한, 즉 부차적인 것이다.14) 법의 중점은 적극적 권리를 보장하고 의무를 부과하는데 있다.

이제 민법해설서 등에서 법적으로 의미 있는 “법률효과” 또는 “법적 효과”란 법률관계의 발생, 소멸, 변경을 내용으로 한다라는 표현에 부딪치게 되는데,15) 여기서 “법률관계”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다음과 같이 대답할 수 있다. 즉 법률관계란 “법에 의해 규율된 생활관계”, 예컨대 매도인과 매수인의 관계, 또는 혼인관계 등을 말한다. “내용적으로 법률관계는 우선 상대방의 의무에 대응하는 권능(권리)으로 나타나지만, 예컨대 친족이나 거주지 등에서와 같이, 장래 필요할 경우 다양한 형태의 권리의무가 발생되는 잠재적 연원으로서의 법률관계도 있다.”16) “법률효과”의 내용으로서 법률관계에 관하여 이러한 설명을 계속하다 보면, 궁극적으로 법률관계는 법률효과로서 기능하기보다는 법률효과를 위한 구성요건으로서 기능한다는 점, 이에 반하여 법률관계 및 그 발생, 소멸 또는 변경을 현실적으로 법률효과라 한다면 이러한 논리구성은 다시금 권리 의무 및 그 발생 등의 문제에 귀착한다는 점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법률효과”의 내용으로서 권리 의무에 또 다시 이르게 되었다.

법이란 강제규범이기 때문에 법률효과의 명령은 강제, 다시 말해 형벌 또는 강제집행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면, 이는 한눈에 보아 법률효과의 본질을 달리 파악하는 것으로 보인다. “법이 강제규범이라면 법규범은 강제를 규정한 규범이다. 특정한 조건에 그 결과로서의 강제행위를 관련시키는 데에 그 본질적 내용이 담겨있다.” 이는 “순수법학(reine Rechtslehre)”의 창시자인 한스 켈젠(Hans Kelsen)이 말한 그대로다.17) 그러나 강제의 규정이 다시금 강제를 위한 권리 의무를 만들뿐이고, 또는 한스 켈젠이 말한 것처럼 주어진 구성요건이 충족되어진 경우에는 강제가 따라야만 한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이 경우에도 법률효과는 권리 의무, 즉 특정한 성질의 권리 의무, 예컨대 특정행위의 실현을 위한 국가기관의 권리 의무에 귀착되고 만다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물론 이러한 유형의 권리 의무가 지닌 의미는, 법률적 권리 의무란 국가기관에 의한 강제력이 보장되었기 때문에 비로소 법률적이다라고 일컬어지는 사실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러나 이것도 여기에 대응하는 국가의 권리 의무가 존재해야만 성립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국가의) 권리 의무는 모든 권리 의무의 최후 근거로서 등장한다. (위와 같은 견해는) 단편적 견해로서 여기서는 자세히 논급할 겨를이 없다.

이제 여기서 일응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리고자 한다. 법규에 의해 구성요건과 결합되어 있는 법률효과는 권리 의무로 이루어져 있다. 법률효과규정은 권리의무의 성립 또는 불성립을 규정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즈음에서 의무를 권리에, 또는 권리를 의무에 귀착시킴으로써 위의 표현방식을 좀 더 단순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 예컨대 매도인의 대금지급청구의 권리에 매수인의 대금지급 의무와 국가의 매수인에 대한 지급판결 및 그 재산에 대한 강제집행의 의무가 대응하듯이, 일방의 권리에 타방의 의무가 항상 대응하기 때문에 권리 없는 의무와 의무 없는 권리가 없다고 한다면, 모든 법규는 구성요건에 대한 법률효과로서 권리를 결합시키고 있다고 하든가 또는 의무를 결합시키고 있다고 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실제로 이러한 방식으로 단순화를 시도하려고 한다면, 권리를 의무로 바꾸는 것이 보다 쉬울 것 같다. 왜냐하면 의무 없는 권리가 없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으나, 모든 의무에 그 실현을 구할 권리가 대응하는지는 의문의 여지가 있고, 특히 대응 권리로서 개인적인 권리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권리, 특히 국가의 권리를 생각한다면 더욱 그렇다. 따라서 법규에 규정된 법률효과는 의무로 구성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럼 의무란 무엇인가? 의무란 항상 행위의 당위(Sichverhaltenssollen)를 말한다. 작위 또는 부작위를 행하도록 의무가 있는 사람은 이러 이러한 행위를 하거나, 하지 말아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이와 함께 우리는 논의의 새 장(章)으로 접어들었다. 법규란 당위규범(Sollenssätze)18), 특히 통용되는 말로는 가정적 당위규범이다. 이는 제한적인, 말하자면 “구성요건”에 의해 제한된 당위를 말한다. 예를 들어, 어떤 물건에 대하여 유효한 매매계약이 체결되었다면, 매도인은 매수인에게 매매물건을 양도하고 그 소유권을 이전해야 하며, 매수인은 매도인으로부터 그 물건을 양수하고 합의된 매매대금을 지불해야 한다(민법 제433조 참조). 또는, 누구든지 고의, 과실로 타인의 생명, 신체, 건강, 자유, 재산 또는 그 밖의 권리를 위법하게 침해하면, 그는 피해자에게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민법 제823조 참조). 또는, 불법영득할 의사로 타인의 물건을 절취한 자는 절도죄로 징역형 또는 벌금형에 처한다(형법 제242조 참조). 법률이 법률효과를 “의무”로 표현하였든(민법 제433조, 제823조), 아니면 달리 표현하였든(그중 가장 주목할 곳은 형법전인데 그곳에서는 “처한다(wird bestraft)”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항상 공통적인 것은 무슨 행위를 하여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럼 도대체 “당위”란 무엇인가? 다시 말해, – 인간의 행위와 관련되지 않은 당위개념은 우리에게는 부차적인 것이므로 – 행위를 해야 한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우리는 또 다시 어려운 법철학적인 문제, 아니 일반철학적인 문제를 다루게 되었다. 많은 철학자들이 당위란 더 이상 정의될 수 없는 근본개념, 하나의 “범주” 또는 우리사고의 근본방식이라고 말할 수 있는 외에는, 그 이상의 것이 덧붙여질 수 없다고 하였다. 특히 섬세한 도덕, 문화철학자인 게오르그 찜멜(Georg Simmel)이 이러한 입장을 대변하였다. “당위란 관념의 실질적 의미에 이르러서는 그것에 실천을 위한 어떤 구체적 입장을 제시해주는 범주이다……당위에 대한 정의는 존재하지 않는다……당위는 미래 또는 과거 따위와 같이 일종의 사고방식이다…”19) 혹자는 당위란 욕망의 표현임을 강조한다. 따라서 아이슬러(Eisler)의 유명한 철학사전에는 “당위란 의지의 상관개념이고, 의지에 의한 (타인 또는 자기의) 욕망의 표현이다”라고 되어 있고,20) 그 철학 소사전에서는 “‘당위’는 의지명령이고, 상위의지에서 하위의지를 지향한다”고 되어 있다.21) 타인의 행위를 지향하는 의지의 표현을 “명령”이라 한다면, 아이슬러의 말은 다음과 같이 이어질 수 있다. “‘너는 해야 한다’라는 것은 명령적인 것이다.” 이제 우리는 다른 사람의 행위를 목적으로 한 당위규범으로서 법규는 명령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끝으로 당위개념을 가치개념으로 설명할 수도 있다. 즉, 어떤 행위의 행함이 긍정적으로 평가되고, 행하지 않음이 부정적으로 평가되어질 때 그 행위는 하여야 한다.22) 여기서 이 부분을 자세히 살필 수는 없다.

법규란 명령이다23)라는 점에 대하여 조금 더 설명하기로 한다. 이는 법규가 법공동체, 국가 또는 입법자의 의지를 대변한다는 의미로 이해된다. 이러한 의지는 수범자(受範者)의 특정 행위를 지향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하여 그 행동을 요구한다. 법적 명령은 효력이 있는 한 강제력을 지닌다. 의무가 명령의 대응개념인 것이다. 이로부터 법이란 그 실체에 따르면 오직 명령으로만 이루어진다는 소위 법규명령설(Imperationstheorie)이 성립해왔다. 만약 이 이론을 옳게 이해하고 극단으로 치우치지만 않는다면, 이는 정당한 이론이다. 우선 이 이론을 법전의 개별규정에 관련하여서만 이해해서는 안 된다. 법전의 개별규정은 “입법기술상” 그 자체만으로는 거의 대부분 의미가 없다. 이들은 상호의 관련성에 의하여 완전한 의미를 지닌다. 법률 기술의 상당부분이 바로 이러한 상호 관련성에 있다는 점은 나중에 좀 더 자세히 언급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단지 하나의 예를 들어보기로 한다. 민법 제227조와 형법 제32조는 한결같이 정당방위에 대한 “법률적 정의”를 다음과 같이 내리고 있다. 즉, “정당방위란 현재의 위법한 침해로부터 자기 또는 타인을 보호하기 위하여 필요한 방어행위”라는 것인데, 이 규정만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고, 법률의 다른 규정, 즉 정당방위로 인한 행위는 “위법”하지 않다라는 규정과 관련하여서만 비로소 의미가 있게 된다. 그러나 위법하지 않다라는 규정도 그 자체만으로는 사실 의미가 없고, 금지나 형벌규정과 결합하여 그것을 제한하는 것으로 이해될 때만 의미가 있다. 따라서 타인에 대한 살인, 신체상해, 강요 등 침해행위는 일반적으로 금지되고 형벌로 처벌되지만, 정당방위의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허용된다는 하나의 완전한 의미가 성립되는 것이다. “금지되지 않은 것은 허용된 것이다”라는 법격언을 거꾸로 하여 “허용된 것은 금지되지 않은 것이다”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24) 법률적 개념규정 뿐만 아니라 법률적 허용규정 역시 그 자체만으로는 완전한 규정이 아니다. 이들 규정은 이를 정하고 제한하는 명령과 함께, 또 이들 명령은 법적 정의와 제한, 허용 및 예외 등에 의해 보충됨으로써만 완전한 의미를 가진다. 법질서에서 본질적 의미가 있는 부분은 법전의 문리적 규정들에서 가져와 구성된, 국가를 포함한 수범자에 대한 금지 및 명령인 것이다.25)

위에서 언급한 내용은, 법률과 공서양속에 반하는 법률행위의 경우에서 보는 바와 같이 법률효과의 부(否)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민법전이 그러한 법률행위를 무효로 하고 아무런 의무도 성립되지 않음을 규정하였다고 할 때, 이는 매매계약이나 고용계약과 같은 법률행위에 의하여 성립하는 급부의 명령이 예외적으로 발생하지 않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급부의 명령은 법률행위의 무효에 관한 위의 규정으로 다시금 제한을 받는 것이다

법적 명령을 명시 또는 묵시적으로 제거하는 뜻에서 법적 명령의 사후 폐지는 그 의미가 다르다.26) 예컨대, 늘 주장되어 온 낙태금지가 완전히 폐지된다면 이는 명령의 취소를 의미한다. 이로써 명령도 명령의 구성요소도 되지 못한다. 수범자의 의지는 명령에 구속되고 명령이 폐지되면 자유로워진다. 그러나 임산부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산부인과 의사의 임신중절을 허용하는 것처럼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만 낙태금지의 적용이 부정되는 것이라면, 이는 일반적인 낙태금지의 예외로서 다시금 상호의존적이고 제한적인 허용법규의 문제인 것이다.

그러나 법규의 폐지가 나머지 폐지되지 않은 법규를 다른 새로운 법규로 교체하지 않고 유효한 법적 명령의 전체 내용을 다소 축소하는 기능을 갖는 것인 한, 비명령적인 폐지법규로 말미암아 법규명령설이 그 근본이론에서 흔들릴 필요는 없다. 법규의 폐지로 인하여 특정의 행동양식이 법의 지배로부터 벗어나 “법으로부터 자유로운 영역”으로 편입되는 것뿐이다. 그 뒤에 남는 것은 다시금 명령일 뿐이다.

그러나 아직 우리는 본래의 주관적 권리를 “보장하는” 법규에 대해 특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27) 우리는 이와 관련하여 권리와 의무의 관계에 대하여 위에서 언급한 내용을 새로운 관점에서 다시 설명하기로 한다. 법이 보장하는 권리의 가장 대표적인 실례는 기본법(GG)의 첫 장에서 발견할 수 있는 기본권 보장일 것이다. 그러나 소유권, 그 내용과 보장에 관한 민법규정도 역시 대표적인 권리보장이다(민법 제903조 이하, 제985조 이하). 법적 용어에서는 객관적 법(objektives Recht)과 주관적 권리(sujektives Recht)를 구별한다. 객관적 법이란 법질서, 다시 말해 위에서 우리가 그 실체를 명령이라고 파악한 법규범 또는 법규의 총체를 말한다. 주관적 권리는 권한이다. 그러나 주관적 권리가 그것을 보장해주는 법규에 의해 성립하는 것이라 한다면, 위와 같이 보장해주는 것이 법규이기 때문에 보장 자체는 객관적 법에 속한다. 그렇다면 주관적인 권리와 명령의 실체인 법규는 어떤 관계에 있는 것일까? 이 문제에 답하기 위해서는 주관적 권리의 본질을 보다 철저히 분석해보아야 한다. 주관적 권리는 우선 단순한 허용 이상의 것을 말한다. 정당방위에서 공격자에 대한 침해가 허용되는 경우와 같이 법에 있어 허용이란 여러 금지된 침해를 예외적으로 허용한다는 것으로 소극적 의미를 갖는데 불과하다. 그러나 소유권과 같이 주관적 권리를 보장한다는 것은 적극적인 무엇이다. 이 경우에는 권리자에게 그의 개인적인 이익을 향유할 수 있도록 일정한 테두리 안에서 권한이 주어진다. 에네케루스(Enneccerus)의 자주 인용되는 교과서에 보면 “주관적 권리는 개념적으로는 법질서에 의해 개인에게 부여된 법적인 힘을 말하고, 이는 그가 목표한 대로 개인적 이익의 만족을 실현할 수 있는 수단을 말한다”라고 되어 있다. 에네케루스는 이와 같은 주관적 권리의 “보장”을 법의 명령, 금지와 함께 나란히 두고 있다. “모든 법규는 명령뿐만 아니라 보장도 함께 포함하고 있다.” “법이 명령으로만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면, 이러한 명령이 어느 누구에게 이익을 가져다 줄 수는 있어도(예컨대, 겨울에 빙판을 쓸어야 한다는 명령은 보행인에게 이익을 주고, 특정한 복지제도를 시행해야 한다는 명령은 국민에게 이익을 준다. 이른바 ‘반사적 이익’), 그 명령의 달성을 요구할 권리가 명령 자체만으로는 생기지 않는다. 따라서 법에 의한 위 권리의 보장이 필요하다….나에게 소유권을 부여한 법규는 타인에게 나의 물건에 대한 지배를 방해하는 행위를 금지시킬 뿐만 아니라, 스스로 그러한 지배가 방해받지 않을 것을 요구할 수 있는 의미에서 그 물건에 대한 지배력을 나에게 인정한다.”28) 법규명령설은 이러한 법의 적극적 측면을 가리는 것처럼 보인다. 빈딩(Binding)은 법규명령설을 비판하면서 주관적 권리는 법규명령설에 의하면 “규범영역에 있어 하나의 구멍”에 불과하다고 하였다.29) 법규명령설은 일종의 법철학적 회의주의로 묘사되기도 한다. 대표적 회의주의 철학자인 쇼펜하우어(Schopenhauer)에 따르면, 지상의 모든 쾌락이 불쾌감의 피안(彼岸)에 있는 것처럼, 법규명령설에 따르면 법이 보장하는 적극적인 무엇은 명령에 의해 속박 받지 않은 상태, “부담의 강요나 엄격한 당위”로부터 자유스러운 상태를 의미할 뿐이다. 따라서 불쾌감의 순수 소극적인 자유를 잃게 될 때 비로소 그 자유의 존재를 깨닫게 되고, 젊음의 생동감, 건강, 노동력을 점차 상실하게 될 때 비로소 그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 것처럼, 명령에 의해 점차 자유의 침해가 증대할 때 비로소 법적 보장의 은혜를 깨닫게 된다. 전체국가의 질곡(桎梏) 아래서만, 상실한 기본권과 자유의 소중함을 다시 배우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당하게 이해된 법규명령설이 위와 같은 비판으로 말미암아 포기될 수는 없다. 법규명령설은 법이 무엇을 보장하고, 적극적인 이행을 가져오며, 인식될 수 있는 은혜를 부여한다는 점을 결코 부인하지 않는다. 주관적인 권리란 것이 존재하고, 그것은 적극적인 무엇이다. 그러나 법규명령설은, 명령을 의미 있게 장치하여 법이 이러한 적극적인 효과를 이루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예컨대, 주관적 권리의 가장 전형이라 할 수 있는 소유권의 경우에는 모든 사람에 대하여 소유자가 자신의 물건을 향유하는 것을 침해하거나 그 물건을 절취 또는 강취하거나 점유를 부당하게 침탈하거나 사용을 방해하는 등의 행위를 금지하고, 그 외에도 정당한 권원 없이 타인의 물건을 점유하고 있는 사람에 대하여는 소유자에게 그 물건을 반환하도록 명령하고, 특히 사법당국에 대하여는 필요한 경우 소유자를 도와 이와 같은 1차적인 명령 또는 금지의 실현이 달성되도록 명령함으로써 보장하고 있다는 것이다.30)

위와 같은 명령이 없이는 아무리 소유권의 명백하고도 의례적인 보장이 있다 하더라도 아무런 의미가 없고 공허할 뿐이다. 이점은 모든 다른 주관적 권리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주관적 권리의 보장이란 근본적으로는 명령을 특정하게 분류하여 집대성한 것을 표현한 방식(façon de parler)이기도 하다. 주관적 권리란 법이 무엇인가를 명령한다고 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법적 명령들에서 의미합치적으로 우리가 주관적 권리라고 부르는 권능이 도출되도록 이들 명령들을 분류하고 종합함으로써 생기는 것이란 점을 주의해야 한다. 켈젠(Kelsen)은 이점을 “권리란 불법적 결과를 전제로 권리를 지향하여, 불법구성요건에 의해 이익이 침해된 자가 소송 및 소청의 형식으로 이의를 제기하는 경우에만 존재한다”라고 표현하였다. 따라서 “주관적 권리는 객관적 법과 독자적인 것으로서 대립되는 의미가 아니다.” “주관적 권리와 객관적 법의 이원주의(Dualismus)는 지양된다.”31) 주관적 권리가 존재하고 그것이 “보장”되는 것이라면 이는 명령의 공포에 의해 보장되는 것이다. 법은 승인된 명령권에 의해 주어진 권한 이외의 다른 권한은 본래 이를 행사하지 못하기 때문에 다를 수가 없다. 법이 항상 달성하려 하는 것은 모두 이러한 명령권의 의미 있는 활용으로 달성되는 것이다. 법은 주관적 권리로 가득 찬 부대자루로서 그로부터 주관적 권리를 꺼내 개개 국민에게 나누어 줄 수 있는 것이 못된다. 법의 어려움은 기본적으로 법의 상대적 빈곤에서 근거한다. 권리란 다른 사람에게 부담과 의무를 – 물론 조심과 절제 수준의 의무일 뿐이다 – 부과함으로써만 보장되기 때문에 이미 존재하는 재화를 분배할 때보다 정의를 행사한다는 것이 더욱 어렵다. 어머니가 그의 자녀에게 빵을 똑같이 나누어주려고 할 때가 한 아이의 이익을 위해 다른 아이에게 부담을 부과하도록 강요받을 때 보다 훨씬 수월하다. 여기서 단순한 허용과 소위 주관적 권리의 보장 사이에 구분이 다시 한 번 주목받게 된다. 허용(Erlaubnis)의 경우 금지(Verbote)는 제한되고, 명령은 그 지반을 상실한다. 이에 반하여 주관적 권리를 보장하는 경우에는 최근 지적재산권을 보호함으로써 일어나고 있는 사정에서처럼 명령은 필연적으로 증대하기 마련이다. 허용의 영역이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명령(die Impertive)은 점점 녹아 없어지지만, 주관적 권리는 금지(Verbote), 명령(Gebote)과 더불어 나란히 증가할 수 있다.32)

우리가 주저 없이 완결된 법규의 본질을 우선 명령이라고 정의한다 해서, 입법자의 명령의 의지가 무제한의 의지, 다시 말해 자의가 아니란 점을 잊고자 할 의도는 없다. 법의 명령(Gebote)과 금지(Verbote)는 소위 “평가규범”(Bewertungsnormen)에 터잡고 있다.33) 이는 간단히 말해 평가, 즉 긍정(Billigungen)과 부정(Mißbilligungen)에 기초하고 있다. 도덕이론가인 요들(Jodl)은 아주 정당하게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모든 명령(Imperativ)은 “명령의 상대방에게 특별하고 중요한 가치가 있기 때문에 요구되는 것이란 판단을 반드시 전제한다.”34) 범죄학자 메쯔거(Mezger) 또한 아주 정확하게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결정규범’(Bestimmungsnorm)으로서의 법(=명령 Imperativ)은 ‘평가규범’으로서의 법 없이는 생각할 수 없다. 평가규범으로서의 법은 결정규범으로서의 법의 논리적 전제이다. 왜냐하면 타인에게 무엇을 하도록 ‘결정’하려는 사람은 우선 무엇을 하도록 결정할 것인지를 알아야 한다. 즉 그는 어떤 긍정적 의미에서 그 무엇을 ‘평가’해야만 한다. 평가규범으로서의 법, 다시 말해 ‘객관적 생활질서’로서의 법은 항상 결정규범으로서의 법에 논리적으로 선행한다.”35) 만약 법이 자의적인 의지의 형상을 표현한 것이 아니라 이성적인 사고의 산물이라고 한다면, 최소한 위와 같은 설명은 올바른 것으로 인정되어야 한다. 따라서 낙태는 주먹구구식으로 금지된 것이 아니라, 생성되어 가는 생명을 성스럽고 불가침적인 것으로 평가하고, (법익) 충돌의 상황에서 임산부나 제3자에 의해 닥칠지도 모를 위험으로부터 법적인 보호를 부여할 필요성을 인정하였기 때문에 금지된 것이다. 태아에 앞서 마땅히 다른 이익이 우선되어야 할 (충돌) 상황이라면 다른 평가가 내려지고 낙태금지의 예외를 인정할 수 있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예를 들어 임산부의 생명과 건강의 진정한 위험을 회피하기 위한 목적으로 그 동의하에 오늘날 “임신중절”의 근거로서 의학적 처방이 인정되는 것이다(형법 제218조a 제2항)36). 낙태금지와 임신중절은 모두 사전(事前)의 평가에 기초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말해 법규의 기초가 되고 있는 평가의 내용을 되돌아보는 것은 법규의 올바른 이해와 의미의 확정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37) 이점은 나중에 다시 살피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상의 고찰로써 법규의 본질이 명령에 있다는 이론이 방해를 받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평가는 명령에 의해 무장될 때만 비로소 진정한 법규가 되기 때문이다. 법은 단순한 평가규범만 가지고는 공동체에 있어 인간 생활에 대한 주어진 지배력을 행사할 수 없다. 법에 강제력이 없다면 순수 이상론에 그칠 뿐이다. 평가규범이 의지로써 표현되고 명령으로 고양될 때만 진정한 법규범이 된다.

이제 우리가 법규의 본질적 내용이 명령(Imperative)이라는 이론에 주저 없이 안주하는 경우 칸트의 개념세계를 알고 있는 사람에게는 다음과 같은 의문이 제기된다. 즉 이 명령은 정언적(kategorisch)인 것인지 아니면 가정적(hypothetisch)인 것인지? 법규가 가정적 당위규범(Sollenssätze)이라는 사실은 이미 (31쪽에서) 언급하였다. 우리는 다시 한 번 이점을 되돌아보기로 한다. 우선 칸트의 개념론에 비추어 볼 때 법적 명령은 어떤 성질을 갖는지 문제된다. “모든 명령은 가정적 아니면 정언적이다. 전자는 의욕된 어떤 다른 무엇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가능한 행위의 실천적 조건을 표현한 것이고, 후자는 어떤 행위가 다른 목적과는 관계없이 그 자체 객관적이고 필연적인 것을 표현한 것이다.”38) 다시 말해 가정적 명령은 만약 당신이 이런 또는 저런 목적을 달성하려 한다면 이런 또는 저런 수단을 취해야만 한다는 형식의 합리적인 제안에 불과하다. 이는 어떤 목적이 ”가정적“으로 전제된 상황에서의 기술적인 지시인 것이다. 칸트는 이런 가정적 명령을 ”숙련성의 명령“(Imperative der Geschicklichkeit)이라 부르고, 예리하게 다음과 같은 점을 강조했다. “가정적 명령의 경우에 있어서는 목적이 이성적이고 선한 것인지 따위는 하등 문제될 것이 없고, 오로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만 하는지가 문제될 뿐이다. 기본적으로 환자의 건강을 회복시켜야 할 의사에 대한 지시나 사람을 반드시 죽여야 할 독살자에 대한 지시 모두 각각 그 목적에 기여하는 한은 똑같은 가치를 지닌다.”39) N. 마키아벨리(Machiavelli)의 저 유명한 군주론에 관한 저서는 이런 의미에서 (정치적 목적의 달성을 위한) 가정적 명령을 집대성한 두드러진 실례의 하나이다.40) 이에 더 나아가 가정적 명령을 열거하고, 어떤 목적의 달성을 위한 수단이 도덕적으로 타당한지 전혀 논의할 필요조차 없이 이 수단만을 가르치는 것이 오늘날 기술공학의 특성인 것이다. 이에 반하여 정언적 명령의 과제는 “어떤 다른 목적과는 무관하게” 무조건적이고 절대적으로 내가 무슨 목적을 달성해야 하는지를 명하는 것이다. 나는 의사로서 환자를 치료해야만 하는가, 아니면 독살자로서 그를 죽여야만 하는가? 정언적 명령은 이 경우 “너는 살인하지 말아야 한다!”고 명한다. 따라서 “형법은 하나의 정언적 명령이다.” 다시 말해 범죄자가 응분의 형벌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은 정언적 명령인 것이다. 이는 도덕적 형이상학(Metaphisik det Sitten)이란 저서 속에서 최소한 칸트의 견해이다.41) “도덕”과 “기술공학” 사이에는 분명하게 정연한 역할분담이 존재한다. 기술공학은 목적을 위한 수단을 가르치고, 목적 자체의 결정은 도덕에 미룬다. 기술공학은 도덕적으로 무관심하고, 더 정확하게 표현한다면 봉사하는 목적이 도덕적이다, 비도덕적이다라는 도덕적인 평가를 그대로 수용할 뿐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법규는 어느 쪽에 속하는가? 법학은 기술공학쪽인가, 아니면 윤리 쪽인가? 법규는 어떤 관점에서 보면 확실히 특정한 목적을 위하여 특정한 수단을 요구하는 것으로 파악될 수도 있다. 예컨대, 우리는 명령의 상당 부분이 주관적 권리라고 불리는 권능을 형성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특정한 행위를 금하거나 명하고 있다는 점을 보았다. 이점을 제외하더라도 법은 합목적적인 규정으로 되어 있다. 법은 공동체 삶을 합목적적으로 형성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규를 칸트의 개념론에서 가정적 명령으로 파악한다면 이는 잘못이다. 우선 법은 법규가 지향하는 목적을 스스로 검증한다. 법은 어떤 목적을 선한 것으로 평가하고, “정당성(Richtigen)”을 추구하는 것으로 완성되기 때문에 도덕적 원칙에 속한다. “법이란 국민에게 유익한 것을 말한다”라는 국민사회주의(Nationalsozialismus)의 그 유명한 조항은 실제에 있어 법을 가정적인 명령으로 비하시키는 것으로, 이는 국민에게 유용하고 유익한 것이 무엇인지 전혀 해답을 제시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국민에게 유익한 것”이라는 개념 아래 어떤 목적, 예를 들어 내부의 질서 아니면 외부로의 권력, 평화 아니면 전쟁을 통한 팽창, 문화적 진보 아니면 물질적 부의 증대, 개개인의 행복 아니면 공동체의 번영 중 어느 것을 추구해야 할지 법으로부터 아무런 해답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도덕적으로 조잡하고 이론적으로도 무용한 원칙이다. 법은 스스로 목적을 정하고 그 목적의 실현을 무조건적으로, 보다 정확하게는 도덕에서와 같이 “정언적으로” 요구한다.42) 우리가 법적 명령을 해석하고 취급함에 있어 이를 법에 의해 선한 것으로 평가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해”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견해의 결론인 것이다. 이러한 (선한 것으로 평가된) 목적 자체가 법적 규준으로 작용해야만 한다. 이에 반해 가정적 명령의 경우에는 목적을 지지하느냐 아니면 반대하느냐의 결정이 자유에 맡겨져 있다. 우리가 목적을 원하고 확실하게 그것을 달성하려고 하는 경우라면, 우리는 유용한 수단을 권고하는 가정적 명령을 따를 필요가 있다.

(위의 여러 논의에도 불구하고) 법은 개개인에게 자유스럽게 목적을 설정하게 하고 다만 수단을 제공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여전히 남는다. 이는 법규가 특정한 행위에 긍정적인 법률효과 또는 부정적인 법률효과를 결합시키고 있고, 만약 내가 이들 효과를 지향하거나 계산에 넣는다면 그에 상응한 행동을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문이다. 나는 한편으로 의사표시, 매매계약, 관청에의 신청 또는 유사한 다른 행위에 의해 나에게 우호적인 법률효과를 도모할 수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손해배상의 급부나 형벌의 부담을 인수할 각오만 있다면 “불법행위”나 “범죄행위”를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견해에 입각해서 뢰쉬(Ruesch)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형벌의 위협을 잘 인식하면서도 범죄행위를 결의하는 사람은, 범죄가 가져다주는 만족의 대가로서는 균형 있고 심지어는 유리하기까지 하다고 생각하면서 형벌의 부담을 작정한 것이다.”43) 더욱이 우리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한 법이론가로부터 다음과 같은 주장을 읽을 수 있다. 법규범은 “어떤 행위를 단지 제한적으로만 정당하다고 한다. 요컨대 타인의 의지와 충돌하지 않고 이러한 의지에 봉사하는 권력으로부터 해를 입지도 않기 위하여 우리가 추구하든, 추구하지 않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정당하다고 정한다.”44) 또는 이탈리아의 위대한 법철학자인 델 베키오(Del Vecchio)45)가 – 물론 불만족스럽지만 –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을 듣게 된다. “강제집행에 따르기로 작정하였다면 채무를 변제하지 않는 것은 채무자의 자유이고, 더 나아가 형벌을 감수할 준비가 되어있다면 범죄행위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델 베키오에 의하더라도 “법은 가정적인 성격과 정언적인 성격을 모두 가지고 있다”고 하여야 할 것이다. 더욱이 사실은 다음과 같다. 법규는 그 실체에 따르면 정언적 명령이다. 법규는 무조건적으로 요구한다. 사람이 살인과 살인하지 않는 행위, 자유와 자유를 박탈하는 행위의 선택권을 가지고 있고, 따라서 교도소에서 복역할 준비만 되어있다면 누구든 자신 있게 살인을 해도 무방하다는 것이 형법조문의 의미일 수도 있다고 한다면 이는 확실히 경솔한 생각이다.46) 모세의 십계명과 같이 현대의 법은 살인을 엄정하게 금하고 있다. 금지를 위반한 사람에게 형벌이 부과된다는 사실도 마찬가지로 정언적 명령이다. 이점을 칸트는 옳게 보았다. 그 결과 현대 법에 있어서는 기소법정주의(Legalitätsprinzip)가 성립한다. 즉 기소권을 행사하는 검찰은 형사소송법의 규정(제152조)에 따라 사실관계에 관하여 충분한 근거가 있고 예외사유가 존재하지 않는 한 소추가능한 모든 범죄행위에 대하여 공소를 제기할 의무가 있다. 법문상으로 “범죄행위”를 회피해야 한다는 엄격한 명령도 마찬가지이다. 더욱이 법공동체에 대하여 특정한 적극적 급부를 이행하는 것, 예컨대 세금을 납부하고 토지수용을 부담하는 것도 정언적 명령이다. 또한 의사표시, 특히 계약체결에 의하여 인수하게 된 민사상 채무를 이행하여야 한다는 것도 정언적 명령이다. 물론 우리가 의사표시나 계약체결에 의하여 구속을 선택할지 안 할지는 자유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생활관계를 합목적적으로 형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법적 규율과 규정을 활용하는 것은 우리 손에 달려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일단 구속을 선택하면, 우리에게 부과된 의무의 이행이 정언적으로 요구된다. “계약은 지켜야 한다(pacta sunt servanda)”라는 유명한 문장은 정언적 명령인 것이다. 이는 “자연법”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칸트의 개념론과는 아주 다른 의미에서 법적 명령은 “가정적”이다. 이는 우리가 어떤 특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그 목적 자체에 관하여는 아무런 제약을 받음이 없이 특정 규정을 쫓아야 하는 그런 의미가 아니라, 어떤 특정 조건, 때로는 명시적으로, 때로는 묵시적으로 규정된 조건에 법적 명령이 기속(覊束)된다는 의미이다. 법규는 다른 말로 표현하면 우리가 이미 (31쪽에서) 가정적 당위규범이라 부른 그런 의미에서 가정적 명령인 것이다. “모든 법규는 규정 자체에서 언급된 특정 행위상황이 있을 때만 적용될 수 있기 때문에 하나의 가정(Hypothese)을 의미한다.”47) 예컨대, 살인의 금지는 그 정언적 성격에도 불구하고 규정대로의 상황이 존재할 것과 정당방위, 법적 효력 있는 사형판결, 전쟁 등과 같은 예외사정이 존재하지 않을 것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살인의 금지는 본질적으로 다음을 의미한다. 즉 정당방위, 사형판결의 집행, 전쟁의 수행 등이 문제되지 않는다면 살인하는 것은 금지된다. 이는 가정적으로 파악된 명령이다. 이를 칸트가 의미하는 “가정적 명령”과 혼동을 피하기 위해 “조건적(konditional)” 명령이라 표현할 수 있다.48) 이런 의미에서 조건적이지 않은 법적 명령을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 논리학의 가정적 판단(만약 a이면, b이다)에서 조건문(Vordersatz)과 결과문(Nachsatz)을 구분하듯이, 조건적 법적 명령에서도 조건문과 결과문을 구별하여야 한다. 조건문은 법적 명령이 적용되는 조건을 내용으로 하고, 결과문은 명령 그 자체를 내용으로 한다.49) 법률가는 조건문을 “구성요건(Tatbestand)”, 결과문을 “법률효과(Rechtsfolge)”라 부른다. 이 경우 후자와 관련하여서는 급부, 인용, 부작위의 당위와 같은 법률효과규정(Rechtsfolgeanordnung)을 생각할 수 있다(25쪽 참조).

개별적인 경우에 있어 무엇이 “구성요건”이고, 무엇이 “법률효과”인지는 여전히 의문일 수 있다. 민법 제823조에서 “고의 또는 과실로 타인의 생명, 신체…… 등을 위법하게 침해한 사람은 그로 인하여 발생한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는데, “그로 인하여 발생한 손해”라고 표현된 부분이 도대체 구성요건과 법률효과 중 어디에 해당하는지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이에 대한 올바른 해답은 다음과 같다. 어떤 손해가 발생하였다는 사실은 구성요건에 해당하고, 이 손해가 배상되어야 한다는 사실은 법률효과에 해당한다. 당위가 결합되는 상황에 관련된 모든 것은 구성요건에 해당하고, 당위의 내용을 정한 모든 것은 법률효과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구성요건”에 관하여는 여러 종류를 언급할 수 있다. 우선 구성요건은 적극적 요소뿐만 아니라 이미 명령의 예외에서 본 바와 같이 소극적 요소로 이루어질 수 있고, 외적으로 감지될 수 있는 요소뿐만 아니라 내적인 심리적, “주관적” 요소(예컨대 민법 제823조에서의 “고의”)도 이에 속할 수 있다. 또 사실적, “기술적” 요소(예컨대 “생명의 침해”)와 함께 가치관련적, “규범적” 요소(예컨대 민법 제826조에서의 “공서양속에 반하는 행위”)도 있을 수 있다. 여기서 이들의 차이점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 몇몇은 나중에 다시 살펴보게 될 것이다. 구성요건론의 정교한 이론은 형법학에서 이루어졌는데, 이는 법률 없이는 형벌 없다는 기본법 제103조 제2항에 명문화된 유명한 (죄형법정주의) 원칙과 관련이 있다. 이는 형벌이라는 법률효과의 명령이 따르는 구성요건은 형법전에 엄밀하게 규정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50) 한편, 계약체결을 대상으로 한 모든 구성요건(예컨대, 민법 제652조 ; “계약체결의 기회를 알선하거나 계약을 중개할 목적으로 중개료를 약정한 사람은……” ; 중개계약)이 그렇듯이, 의사표시를 내용으로 한 민법의 구성요건은 그 가운데서도 매우 특별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우리는 이들 구성요건을 통해 우리가 원하는 바대로 우리의 생활관계를 형성할 수 있게 된다. 이를 통하여 우리는 “사적자치(私的自治)”를 실현하게 되고 법적 명령을 마음대로 우리 뜻에 따라 이용할 수 있게 되는데, 그 결과 법적 명령의 정언적 성격이 다소 의심을 받을 수 있다. 여기서 법적 명령은, 우리가 어떤 특정의 목적(예컨대 계약체결의 기회를 알선할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는 때에는 “의사표시”를 통해 반대급부의 의무를 부담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의사표시에 의해 결과적으로 성립된 의무 자체는 언제나 명령적이란 점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의욕된 것의 사후에는 필연이 생긴다(quod initio est voluntatis, posterea fit necessitatis).”51)

논의를 앞으로 더 진행하기 전에 한 가지 더 지적해두어야 할 것이 있다. 구성요건이나 법률효과규정은 법규의 구성요소로서 추상적, 개념적 형상물이란 점이다. 논리학의 가정적 판단이 개념으로 구성되어 있듯이, 조건적(konditional)인 법적 명령의 조건문(Vordersatz)과 결과문(Nachsatz)도 개념으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법규의 구성요소로서 “구성요건”과 “법률효과”는 법규의 구체적 적용으로 나타나는 구체적 구성요건 및 구체적 법률효과와 교체되어서는 안 된다. 구체적 구성요건을 보다 더 명확하게 하기 위해 “생활사태(Lebenssachverhalt)”라고 부르고 있다. 그러나 구체적 법률효과를 위해서는 따로 적당하게 부르는 말이 없다. 형법전은 추상적 법률효과와 구체적 법률효과를 구별하여, 법률에서 추상적으로 규정된 형벌을 “법정형(angedrohte Strafe)”, 이에 반하여 구체적 개별사례에 있어 “처단된(zugemessene)” 형벌을 “선고형(verwirkte Strafe)”으로 각 표시하고 있다(예컨대 형법 제52조, 제53조 각 참조). 법정형은 대부분 특정되어 있지 않다. 단순히 “벌금형”이라고 규정되어 있을 뿐이고, 일반적 조문(형법 제40조 이하 참조)에서 최저한과 최대한을 정하고 있는 외에는 최고액에 관하여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지는 않다. 이에 반하여 “선고형”은 원칙상 상당히 특정된다(예컨대 법원이 그 한도를 “특정한” 20일분의 벌금형). 소년법에서는 제한적이긴 하나 부정기형의 가능성을 인정함으로써 예외를 두고 있다.

위와 같은 추상성과 구체성의 구별을 주목하다 보면, 매우 논의가 활발한 하나의 문제에 이르게 되는데, 이는 법적 사고의 특성에 대하여 시사하는 바가 많기 때문에 여기서 간과하고 싶지 않다. 이는 구성요건과 법률효과는 상호 어떤 관계에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이들 관계가 조건적이라고만 설명하였다. 구성요건은 법규의 추상적 구성요소로서 법률효과규정이 적용될 조건을 개념적으로 규정한다. 입법자 스스로가 자주 행하는 것처럼 이들 관계를 서술적인 것(Prädikation)으로 파악해도 상관은 없다. 왜냐하면 “누구든지 고의 또는 과실로… 생명, 신체, 건강…을 침해한다면, 그는 타인에게 그로 인하여 발생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라고 하는 대신, “고의 또는 과실로… 침해한 사람은 타인에게 그로 인하여 발생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라고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떤 구성요건에서 규정된 조건이 성취된 경우에 어떤 법률효과가 있다라고 말하는 것이나, 어떤 구성요건에 대하여 어떤 법률효과가 있다라고 말하는 것이나 논리적으로는 모두 동일한 의미이다. 물론 전자의 형식이 우리가 어떤 특정한 가치를 부여하는 법적 명령의 조건성을 보다 분명하게 표현해주고는 있다. 이제 법적 사고의 특성을 보다 명확하게 드러내기 위하여 위와 같은 조건성을 사람들은 특별한 형식의 법률적 인과성(juristische Kausalität)이라 표현하여왔다. 찌텔만(Zitelmann)은 전세기 이미 이점을 언급하고 있다. 구성요건과 법률효과 사이에는 “독특하면서도 아마도 입법자에 의하여 만들어진 필연의 관계가 존재하는데, 우리는 이를 자연의 인과성에 유추하여 파악할 수밖에 없다.” 이 경우 문제는 “자연의 인과성을 유추하여 인간에 의하여 만들어진 독특한 법률적 인과성”이다.52) 입법자는 구성요건과 법률효과, 다시 말해 개개인의 당위적 존재 사이에 인과적 결합을 만들어 이를 현존하는 것으로 선언한다. 최근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법률가 가운데서는 폰 투어(v. Tuhr)가 찌텔만의 뒤를 따르고 있다. “법의 세계는 외부의 사건경과와 마찬가지로 인과법칙에 따른다. 구성요건과 법률효과 사이에는 자연질서가 아닌 법률의지에 근거한 인과성이 존재하는데, 이는 자연적 사건의 인과성과 마찬가지로 궁극적으로 인간사고의 속성에 근거한다. 권리의 변경은 그것을 필요로 하는 구성요건이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경우에만 발생한다. 이는 법률의 명령에 부합된 구성요건이 존재하면 필연적이고도 거의 자동적으로, 특히 구성요건이 충족된 바로 같은 시점에 발생한다. 법률적 원인과 효과 사이에는 물리적 자연에서와 마찬가지로 시간적 양으로 측정될 수 있는 간격은 없다.” “(어떤 사실에 법적 효과가 뒤따르는) 법률적 인과성은 법률의 규정에 근거하고, 따라서 법률에 의하여 자의적으로 형성된다. 법은 임의적 사실에 임의적 법률효과를 결합시킬 수 있다.”53)

이러한 법률적 인과성의 이념으로부터는 몇 가지 실천적 결론을 끌어낼 수도 있다. 예를 들면, 법률효과는 두 번 성립하거나 두 번 무효로 될 수 없다는 것이 그것이다. 법에 있어 “이중의 효과(Doppelwirkungen)”란 존재하지 않는다. 예컨대, 법률행위를 근거로 하여 소유자가 된 사람은 다시 시효취득과 같은 또 다른 구성요건에 의하여 소유자가 될 수는 없다. 또는 법률행위가 어떤 구성요건을 근거로 하여 무효라면, 기망행위에 의한 취소 등 다른 구성요건을 근거로 하여 무효로 될 수는 없다. 이러한 의미에서 폰 투어는 “한번 발생한 권리는 다시 발생할 수 없고, 발생하지 않은 권리나 소멸한 권리는 다시 취소될 수 없다”라고 말한다.54) 하나의 예를 들어, 소송에서 매매계약의 효력에 관하여 계약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어느 당사자가 위 계약은 공서양속에 반하여 무효라는 주장을 제기하였다고 하자. 이제 위 당사자가 입증의 어려움에 직면하였을 경우 위 계약은 기망행위에 의하여 성립된 것이므로 이를 취소하고 무효라는 주장을 제기할 수 있을까? 폰 투어에 의하면 이는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이는 “법률적 인과성”에 반하기 때문이다. 발생하지 않은 권리는 취소에 의해 제거될 수 없다.

구성요건과 법률효과 사이에 법률에 의한 인과관계의 결합이 존재한다는 이론에 대하여는, 논리적 관계가 인과관계와 혼동되고 있다는 반론이 자주 제기되었다. 예를 들어, 빈더(Binder)는 “법률가가 ‘법적효과’에 대하여 이야기한다는 것은 순전히 무의미하다”고 매우 신랄하게 비판한 바 있다. 이는 단순한 비유 표현에 불과할 뿐이다. 왜냐하면 법적 효과는 “상태의 변화”를 나타내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효과와는 사뭇 다른 것으로서 “자연현상이나 심리현상에서 아무런 대상”도 가지지 못한다. 법률효과는 “구성요건의 법규에 대한 규범적응성(Normbetroffenheit)을 의미하는 논리적 관련” 이외의 아무 것도 아니다.55) 그러나 이렇게 쉽게 인과관계론을 포기할 것은 아니다. 빈더의 방식으로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법관이 구체적 구성요건, 다시 말해 생활사태(Lebenssachverhalt)를 “법규에 관련시킨다”고 해서, 즉 법규의 추상적 구성요건에 “포섭시킨다”고 해서, 이러한 포섭만으로 구체적 법률효과를 얻을 수는 없다. 구체적 법률효과는 한편으로는 법률 내에서, 다른 한편으로는 구체적 사례 내에서, 구성요건의 결과로써 발생하는 것이라고 논리적으로 전제할 때만 비로소 얻을 수 있다. 인과관계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와 같이 법률효과가 구성요건의 결과로써 발생하는 점을 법률적 인과성이라고 부르는 것이다.56) 따라서 문제의 본질은 추상적(즉, 법규 안에서)이든, 구체적(즉, 법규에 포섭될 생활사태와의 관계에서)이든 구성요건과 법률효과의 이러한 관계를 인과성이라 표현할 수 있느냐의 점이다. 만약 빈더가 법률효과는 구체적 대상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를 부정하는 것이라면, 이는 자연현상이나 심리현상에서의 변화에 대해서만 이를 적용하려는 것으로서 인과개념의 부당한 제한이라고 반박할 수 있다. 인과관계의 범주에 포함될 수 있는 것으로는 정신적 형상물(geistige Gebilde)도 있다.57) 타격(打擊)이 신체상해나 정신적 충격의 원인일 수 있는 것처럼, 약속이 청구권 또는 의무의 “원인”일 수 있다고 왜 말하지 못한다는 것인가? 흄(Hume)과 칸트(Kant) 이후로 인과성 자체가 대상에 관한 것이라는 사고에서는 벗어났다고들 한다. 물론 자연적 인과성은 자연법칙에, 법률적 인과성은 인간법칙에 근거하고, 후자는 어느 정도 자의적으로 만들어진다. 그러나 이에 대하여도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즉, “법적 사실이 스스로 법형성력을 갖지 못하고 법률이나 관습에 의해 갖게 된다는 점은 분명하다. 다시 말해 법률적 인과성은 국가에 의해 만들어진다. 그러나 자연적 사실도 스스로 자연현상을 가져오지는 못한다. 세상은 저편에서 만들어지고 규율된다.”58) 점점 말의 논쟁 속에 빠져들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자연적 관계와 법률적 관계 사이의 위와 같은 유추적 논의와 관련, 법률가가 구성요건과 법률효과의 관계를 이미 관용어가 된 “법적효과”로 나타내어 인과적으로 표현한다 할 때, 이 경우 단순히 “비유표현”의 문제인지, 아니면 지배력을 상실한 영역까지 “범주”를 뜻 깊게 확장하는 것인지는 더욱 논의할 필요가 있다.

아무튼, 자연적 인과성이 어떻게 주어지든 구성요건과 법률효과의 관계와는 다른 구조를 갖는다는 이론적 근거에서뿐만 아니라, 실천적 근거에서도 커다란 주의가 요망된다. 단순한 “비유표현”에서 더 나아가 인과범주를 법규의 구성요소와 법규에 포섭될 생활소여(Lebensgegebenheiten)에 그대로 적용함으로써 자칫 오늘날 법학의 정신에 반하여 원죄로서 표현되는 “개념법학적” 결과에 이를 수 있다. 이점은 이중효과의 문제를 다루는데 바로 나타난다. 여기서 물론 이점을 간략하게 살펴볼 수 있다. 우리는, 예컨대 폰 투어가 법률적 인과성의 개념에서 한번 성립한 권리는 다시 성립할 수 없고, 아직 성립하지 않았거나 소멸된 권리는 무효로 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음을 보았다. 구성요건과 법률효과의 관계를 단순히 조건적 또는 서술적 관계로 파악하는 한(즉, 구성요건이 존재하면 법률효과가 발생한다, 또는 구성요건에 대하여 법률효과가 적용된다라는 따위), 이중효과를 가능한 것으로 간주하는 기본적 사고는 생기지 않는다. 그러나 법률행위에 의한 합의와 시효취득, 또는 공서양속에 반하는 행위와 기망에 의한 취소행위와 같이 여러 구성요건이 법률효과, 즉 권리 또는 의무를 발생시키거나 소멸시키는데 동일한 “근거”로서 순차 또는 동시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따라서 유효한 계약에 의해서 뿐만 아니라 시효취득의 요건이 존재함으로써도 소유권을 취득할 수 있고, 매매계약이 공서양속에 반하기 때문에서뿐만 아니라 악의적 기망으로 인한 취소행위에 의해서도 무효로 될 수 있다. 여러 근거에 의해 권리 또는 불법(상태)이 생길 수 있다는 사정은 일반인이면 누구나 잘 알고 있다. 따라서 추상적으로 똑 같은 법률효과를 목표로 하는 여러 구성요건이 구체적으로도 동일한 결과에 이른 경우라면, 이들 모두가 동일한 법률효과를 위한 법적 근거로서 작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여 특별히 이상할 것은 없다. 이는 “법에 있어 이중효과”의 문제를 다룬 킾(Kipp)의 유명한 논문59)에서 킾이 대변한 관점이기도 하다. 법률적 구성요건을 “(정언적) 명령 또는 이를 벗어나기 위한 조건”이라 한다면, “똑 같은 법률효과가 이중으로 성립할 수 있다고 하여 이를 반박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똑 같은 법적 명령을 위한 이중의 근거가 경합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은 의문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220쪽) “두 개의 근거에 의해 소유권을 취득”할 수 있는 것처럼 “동일한 급부를 위해 여러 의무가 성립”될 수 있는 것이다.(221쪽) 이 경우 근거가 순차적으로 충족되었는지, 아니면 동시적으로 충족되었는지는 아무 상관이 없다. 마찬가지로 “동일한 법률관계가 두 개의 근거에 의해 부정”될 수 있다.(223쪽) 따라서 “임대차관계가 양 당사자로부터 유효하게 해지되었다고 하는데 있어서 특별히 장해가 되는 것은 없다. 특히 이 해지가 동시적으로 이루어지든 순차적으로 이루어지든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급부가 변제되고 시효로 소멸할 수도 있다.”(223쪽) 또, “동일한 법률행위가, 예컨대 형식상 흠결과 당사자의 심신장애와 같이 두 개의 근거에 의해 무효”로 될 수도 있고(224쪽), 무효인 법률행위가 추가로 취소됨으로써 이를 근거로 무효로 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이 경우에는 구속력의 부존재에 필요한 다수의 근거가 중요할 뿐이기 때문이다.”(225쪽) 모든 반론은 “법적효과를 외부세계의 의미에서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을 가지고 사물의 진정한 본성과 혼동”한데서 비롯한다.(220쪽) 무효인 법률행위의 취소가능성을 인정하지 않는 사고방식은 “외부적으로 현존하는 작용의 소멸이나 육체적으로 존재하는 적을 추방하는 따위와 같은 개념에서 벗어날 때” 비로소 사라지게 된다.(225쪽) 또, 법률적 인과성의 이론을 지나치게 자연적 인과성의 이론에 유추 적용하다 보면 실천 법학적으로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이 문제는 지금까지도 청산되지 못하고 있다. 킾의 견해에 대하여는 지지자들도 많지만, 예컨대 폰 투어, 부분적으로는 제포스(Zepos), G. 훗설(Husserl) 등 반대론자들도 적지 않다. 여기서 이점을 더 이상 논의할 수는 없다. 법에 있어 비유적 표현들이 갖는 의미에 대하여는 아직도 논의가 남아 있다.60) 비유법학(Bilderjurisprudenz)은 자주 “개념법학(Begriffsjurisprudenz)”이 되고 만다. 사람들이 여러 사례군을 정교하게 구별하지 않음으로써 이중효과의 문제를 더욱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페터(Peter)는 “이중근거(Doppelgründe)”와 “이중결과(Doppelfolgen)”를 구별하고 있다.61) 전자는 여러 근거에 의해 발생한 하나의 법률효과의 문제이고, 후자는 내용적으로 여러 개인 법률효과의 문제라는 것이다. 또, 실정법에 의해 해결될 소위 청구권경합의 문제까지 가세하여 문제가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킾이 생각한 바와 같이 어떤 구성요건이 존재하는 경우 다른 구성요건은 더 이상 문제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실정법에서 추론할 수도 있다. 예컨대, 어떤 사람이 단체에서 탈퇴하였다면 그는 더 이상 단체로부터 제명당할 수 없는데, 이는 논리적 근거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구성원이 탈퇴함으로써 단체는 그를 제명할 수 있는 법적 권한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민사소송법(ZPO) 제619조로부터 (당사자의) 사망에 의해 혼인관계가 해소된 미망인은 더 이상 이혼할 수 없다는 점을 추론할 수 있는데, 이 또한 논리필연적인 것은 아니고 단지 실무적으로 파악될 수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도 있다. 순수논리적 – 또는 자연사실적 – 측면에서 어떤 다른 구성요건과 함께 병존적 권리근거가 될 수 있는 구성요건이라도 이 다른 구성요건과 함께 구성요건으로 성립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 이는 바로 특별한 법적 원칙 내지 규칙의 결과인 것이다. 그러나 이는 구성요건과 법률효과의 관련성이란 우리 문제에서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이제 (구성요건과 법률효과의) 관계에 관하여 나름대로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리고자 한다. 법규의 추상적 구성요건은 일반적으로 법률효과, 다시 말해 당위가 부여되는 조건과 상황을 우선 규정한다. 이들 관계는 조건적 관계이지만 서술적 관계로 파악해도 무방하다. 이제 구체적으로 뒤에서 상세히 다룰 “포섭(Subsumtion)”의 과정을 통해 어떤 법률효과(당위)를 위해 필요한 조건이 유효하게 존재한다는 사실이 확정되면, 이와 더불어 법률효과의 실현 또한 확정된다. 그러면 우리는 법규의 추상적 구성요건을 충족하는 구체적 사실의 존재가 법률효과의 실현을 판단하는데 충분한 조건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예컨대, 법률의 일반적인 규정에 의해 모살(Mord)을 무기징역형에 처한다고 할 때 만약 구체적으로 모살(행위)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확정되면, 이와 같은 사실의 확정은 위의 법률 규정과 관련하여 무기징역형으로 처벌받아야 한다는 법률효과를 위한 충분한 근거가 된다.62) 그러나 흔히 구체적 법률효과는 법률에 완전하게 정해져 있지 않고, 따라서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보다 더 확정적인 판단을 필요로 한다는 점이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63) 예컨대, 구체적 살인(Totschlage)이 존재한다는 사실확정을 근거로 살인자를 징역 5년 이상 15년 이하의 징역형으로 처벌해야 한다는 판단에 이르렀다고 하더라도 과연 징역 몇 년에 처할 것인지의 문제는 특별히 법관의 판단에 의해 확정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제 입법자에 의한 구성요건과 법률효과의 추상적 관계를 법률적 인과성으로 표현하려는 태도의 의미가 분명해졌다. 나아가 법률의 추상적 구성요건을 “충족하는” 구체적인 일련의 사실을, 법률에 의해 부여된 구체적 법률효과를 위한 법적 원인으로 파악하려는 의미도 분명해졌다. 인과성이란 자연과학에서도 추상적 자연법칙에 따른 현상의 연쇄작용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체적 법률효과가 흔히 엄밀하게 특정되어 있지 않고 어떤 특정한 범위 안에서는 재량적 판단을 하도록 하는 권한과 명령으로 존재한다는 지적조차 따지고 보면 법률적 인과성을 비난하기에 충분하다.64) 이점을 제외하더라도, “법적 효과”와 “법률적 인과성”이라는 표현방식은 우선 우회적이고 상징적인 표현양식으로서 타당할 뿐이고, 이미 발생한 법률효과는 다시 발생하지 않고 폐지된 법적 효과는 다시 무효로 될 수 없다는 식의 법률적 결론을 정당화시킬 수 없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런 결론은 실제 개념법학이 이끌어낸 것으로 개념법학은 오늘날 더 이상 옹호될 수 없다. 여러 일련의 사실로부터 어느 정도까지 동일한 법률효과를 끌어낼 수 있는지는 사례별로 방법론상 정당한 법률적 관점에 의하여만 결정될 수 있다. “이중근거”의 문제이든 “이중결과”의 문제이든 근본적으로 이중효과를 인정하는데 장해는 없다.

이제 다음 장으로 넘어가기에 앞서, 흔히 의미하고 명명하는 것처럼 구성요건과 법률효과의 관계는 추상적인 경우에나 구체적인 경우에나 실정법, 다시 말해 법률에 의하여 우선적으로 만들어 진 것이라는 점을 특히 강조해둔다. 지금 우리가 확정적으로 말할 수 있는 바와 같이 추상적으로 “구성요건”과 “법률효과”의 조건적 관계를 설정하는 “법규(Rechtssatz)”는 오늘날에는 대부분 법률화된 법규이다. 찌텔만과 폰 투어와 같이 구성요건과 법률효과 사이에 “법률적 인과성”을 신봉하는 사람들도 위 인과성은 법률, 즉 “입법자의 의지”에 기초한다는 점을 명백히 강조하고 있다. 구성요건과 법률효과의 관계가 법률이나 입법자의 의지에 근거하지 않고 “사물의 본성” 등에 기초한다는 생각은 아직 분명하지 않은 신종 사고인 것이다. 이러한 사고는 우리에게 있어서는 아직은 멀다. 우리는 이 책의 뒷부분에서 이를 간략하게 다룰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우선 법률에 국한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독자에게 실정법에 기초하여 당위를 파악하는 것에 관하여 더욱 자세히 설명할 책임이 있다. 특히 여러 차례 언급된 생활사실의 법률에의 “포섭”이란 무엇을 의미하고 어떤 과정을 거치는 것인지 상세히 설명할 필요가 있다.

 

– 여백 –

 

제3장 법규로부터 구체적 법률판단의 획득,

특히 포섭의 문제

 

우리는 앞장의 끝 부분에서 언급한 문제를 다른 측면에서 다시 한 번 설명해보고자 한다. 앞장에서는 법규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이 경우 우선 떠오르는 것은 성문법전에서 파악될 수 있는 법규이다. 일반인이 법률가와 그의 “직업활동”에 대해 알게 되어 갖는 생각은 그가 법률을 다루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법률가의 한 측면만을 보는 것이다. 일반인은 법률가의 전형이라 할 법률실무가가 “생활”과 관련을 맺고 있다는 점도 이미 알고 있다. 일반인은 또 모든 사람에게 있어 법은 그의 생활에 개입하는 힘이란 사실도 알고 있다. 이점에 대하여는 이 책의 처음에서 언급하였다. 그렇다면 이제, 법률실무가와 법이 도대체 생활과 관련을 맺고 있다는 점은 무얼 의미하는가? 우리가 법의 본질을 행위에 의하여 그 삶을 형성하는 그러한 실체로 이해한다면, 법과 실무법학은 매일 매일, 매 시간마다, 아니 매 순간마다 우리의 삶을 형성하는데 수단이 되는 우리의 행위와 우리가 받는 행위를 규정하면서 우리의 생활과 관련을 맺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가 물론 단순하게 법의 지배에 놓여있는 것이 아니라, 법이 우리의 삶을 형성하기 위한 행위의 범위를 단지 일상적으로 규정하고 있을 뿐이라도, 우리는 우리의 행위와 더불어 부단히 법의 지배를 받는다고 스스럼없이 말하여도 좋다.65) 법이 우리 일상생활에서 특정한 의미를 갖게 되는 형식은 이제 구체적인 상황에서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여야 하는지를 법이 우리에게 지시하고 있다는 점에 존재한다. 그러므로 법은 우리생활에서 의미를 지니기 위하여 구체적 당위규범으로 세분화된다. 우리는 자기 자신이나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우리나 다른 사람이 지금 여기에서 어떻게 행동하여야 하는지, 또는 어떻게 행동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법으로 규정한다. 우리가 어떻게 행동해야 좋은가 하는 막연한 물음은 쉽게 그에 관련된 당위의 물음으로 전환될 수 있다(“내가 해도 좋은가?”는 “내가 반대를 하지 말아야 하는가?”를 의미한다).66)

이제 우리는 구체적 법적 당위의 물음은 관습에 의하여 대답된다고 간단히 생각할 수 있다. 사실 생활을 규율하는 법의 원시적 모습은 이른바 관습법67), 즉 동일한 상황에서 지켜지는 법적 확신을 겸비한 관행이다. 그러나 오늘날 관습법은 상대적으로 미미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관습법은 무엇보다도 국제법 분야에서 커다란 의미가 있다. 따라서 여기서는 관습법을 제쳐두기로 한다. 또 다른 가능성, 다시 말해 구체적 법적 당위의 물음은 개별적 사안마다 법감정이나 이와 유사한, 구체적 합법 또는 비합법에 대한 직접적 통찰에 의하여 해결될 수 있다는 가능성도 제쳐둔다.68) 오히려 우리는 여기서, 구체적 법적 당위의 물음에 대하여 규범적인 대답을 우선 제공하는 것은 오늘날 우리의 생활에 있어서는 법률이란 사실을 – 그럼으로써 우리는 다시 앞장과 관계를 가지게 된다 – 기본전제로 삼고자 한다. 이로써 생활을 법률과 관계시키는 것이 우리에게는 불가피하게 되었다. 생활이 법률과 관계한다니, 어떻게 관계한다는 것인가? 이 물음은 우리로 하여금 바로 “법적 사고”의 문제에 이르게 한다.

이 문제는, 우리가 구체적 법적으로 명령되어진 것 또는 허용되어진 것에 대한 확정은 독자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는 법 적용기관, 다시 말해 법원과 국가의 행정기관에 의하여 이루어지고, 그것도 재판이나 행정행위의 형식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분명해질 수 있다. 재판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법원의 판결로서, 이를 통하여, 예컨대 누구에게 급부를 명하고, 범죄자를 유죄로 인정하여 형을 부과하기도 하고, 또는 청구를 기각하거나 피고인을 무죄로 선고하기도 한다. 행정행위의 예로는 경찰하명, 영업허가, 조세처분 등이 있다. 법률적으로 하여야 할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이러한 구체적 권위적 확정69)을 위하여서는 오늘날 우리에게 “합법률성의 원칙”이 적용된다. 우리 연방공화국의 기본법 제20조 제3항은 명시적으로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행정권력(또는 행정)과 사법(또는 법원)은 법률과 법에 구속된다.” 이는 우리 공동체의 “법치국가성”을 위한 하나의 중요한 측면이다. 마운쯔(Maunz)는 합법률성의 원칙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모든 국가행위는, 그것이 사법적 행위이든 국가의 행정적 행위이든, 형식적 법률에 근거가 있어야 하고, 형식적 법률을 ‘근거로’ 하여 이루어져야 한다. 기본법은 행정권력작용이 단순히 불문법이나 정의, 도덕성, 공공복리 등과 같은 일반적, 사회 윤리적 원칙에 의하여 지지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70) 그렇다고 하여, 법률이 오로지 전적으로 사법과 행정의 구체적 재판과 작용을 정하고 있다고 주장하여서는 안 된다. 위와 같은 법률실증주의적 관념을 처음부터 배격하기 위하여, 행정의 임무와 부분적으로는 사법의 임무도 국가적 공동체에 있어 삶을 합목적성과 형평의 관점, 경우에 따라서는 재량에 의하여 형성하는 것임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사법과 행정의 판단에는 항상 법률이 근거로서 관여한다. 법률은 그들에게 자주 엄밀한 방향을 제시하기도 한다.

우리가 이제 법률을 구체적 생활사실에 적용하는데 있어 법적 사고를 배우고 싶다면, 법률적용의 과정이 순수하게(in Reinkultur) 이루어지는 부분에서 이를 살펴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는 법률이 절대적이고 배타적으로 구체적 당위를 법으로 정하여 요구하고 있는 경우라 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법률에서 재량행위를 규정하였거나 이와 비슷한 행위를 결부하고 있는 경우를 뒤로 미루기로 한다. 요컨대, 우리는 법률이 절대 배타적으로 구체적 당위를 확정하여 둔 경우를 우선적으로 다루어보기로 한다. 여기서 보여주는 논리적 작업은 필요한 약간의 수정(mutatis muntandis)에 의하여 법률이 갖고 있는 여러 기능 중 한 가지로서 구체적 당위에 내용을 부여하는 사고과정으로 편입된다.

순수한 법률적용의 전형적인 예는, 범죄행위로 인한 판단이 대상인 한, 형법에서 제공된다. 이는 형벌권의 주체로서 국가의 관여는 궁극적으로 존재하는 것 가운데서 가장 엄격해야 한다는 사실과 관련이 있다. 법치국가의 원리와 이와 관계된 합법률성의 원칙은 오늘날 현대 문명국가에서는 특히 자세히 구현되어 있다. 우리 기본법도 이러한 원칙을 특히 형법에 타당한 것으로 보장하고 있다. 기본법 제103조 제2항은 “범죄행위는 행위가 이루어지기 이전에 법률로써 형벌이 규정된 경우에만 처벌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이 조항을 모든 측면에서 조명해볼 수는 없다. 우리의 논의와 관련하여, 이 조항의 의미는 어느 누구도 우리의 도덕 감정 또는 “건전한 국민감정”에 의하면 형벌을 받아야 한다거나, “비열한 짓” 또는 “질서위반의 행위”를 하였다거나, “건달” 또는 “악한”이라는 이유만으로 처벌받을 수는 없고, 형법전의 “구성요건 요소”에 의하여 정해진 형벌의 전제사실이 충족되었을 경우에만, 예컨대 “불법영득할 목적으로 타인의 재물을 절취”한다던가(형법 제242조), “살의, 성적충동의 만족, 탐욕 또는 기타 비열한 동기로 사람을 (고의로) 살해”한 경우(형법 제211조)에만 처벌된다는 점에 있다. 법률 없이는 형벌 없다(Nullum crime sine lege)! 바로 이러한 원칙 때문에, 예컨대 라이히 재판소(RGSt 32, 165와 이미 그에 앞서 RGSt 29, 111)는 전선에서 전류를 몰래 끌어다가 전기를 부당 취득한 행위에 대하여 절도죄로 처벌하는데 곤란을 느꼈던 것이다. 여기서는 “파렴치”와 “부정직”의 문제만 있을 뿐이고, 라이히 재판소가 판시한 바처럼, 형벌을 위하여서는 “도덕적 법감정이나 거래생활상 요구되어지는 법익침해로부터의 보호”(RGSt 32, 186) 등에 부합한다는 사정만으로는 부족한 것이다. 절도죄로 처벌되기 위하여서는 “타인의 물건을 절취”하여야 한다. 그러나 라이히 재판소는 전기가 “물건”의 개념에 포섭될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이 때문에 입법자는 전력을 훔치는 행위를 처벌할 목적으로 1900년에 특별법을 제정하였다(오늘날 형법 제248조c). 또 이러한 전기(처벌)법만으로는 예컨대, 두드려서 넓게 편 2페니 짜리 동전을 집어넣어 전기로 작동하는 시외전화를 부당하게 사용한 행위를, 법이 “전선을 이용한” 전기의 취득을 요건으로 정하였으므로, 전기절도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점에서는 충분하지 못하였다. 라이히 재판소는 “2페니 짜리 동전을 투여한 것만으로는 전기를 전선으로 가져온 것이 아니라, 전화 다이얼의 회전을 방해하도록 설치된 차단막을 그 무게로 단지 제거하였을 뿐”이라고 판시한 바 있다(RGSt 68, 67 f.). 이 경우 사기죄를 생각해볼 수도 있는데, 시외전화가 자체연결로 작동한 것이고, 사기죄의 법률적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사람을 기망한 행위가 없었으므로 죄가 성립하지 않는다(제263조: “위법하게 재산상 이익을 취득할 목적으로 타인으로 하여금 허위사실로 기망하여 착오를 일으키게 하거나 착오상태가 지속되게 함으로써 그에게 재산상 손해를 가한 사람은”…; 기계가 착오를 일으킬 수 없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부당한 무전(無錢)통화를 방지하기 위하여서는 입법자는 새로운 법률을 제정하여야 했다. 1935년 자동기계의 기능을 부당하게 이용하는 행위를 처벌하기 위하여 제정된 형법 제265조a가 그것이다.

이제 우리는 엄격한 법률적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벌써 한 가지 생각을 갖게 되었지만, 좀 더 자세한 분석이 필요하다. 문제는 우리가 구체적 당위판단으로서 처벌되어져야 한다는 판단을 법률에서 획득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판단은 궁극적으로 처벌을 담당하는 법관이 하지만, 우선은 기소에 의하여 처벌되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검사나, – 부정적 방식으로 – 소극적 당위판결을 얻기 위하여 이러한 처벌되어져야 한다는 점을 다투는 변호인,71) 그리고 아마도 가벌성의 법률적 문제에 관하여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 제3자 등도 하게 된다. 그러나 단순성을 위하여 우리는 가벌성에 관하여 그 판단이 갖는 의미가 특히 중요한 법관의 경우를 생각해보기로 한다.

특별한 논리적 어려움에 직면하지 않기 위하여, 우리는 형법적 판단, 특히 형사판결(예컨대, “A는 살인에 대하여 책임이 있으므로 무기징역에 처하고 소송비용의 부담을 명한다”)에 있어서 우리의 관심사는 거기서 밝혀지게 될 사고의 당위요소이지, 형벌을 집행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이중적 법적 명령은 아니라는 점을 다시 강조하여 둔다. 형벌과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일반적 명령이 추상적 형법전에 포함되어져 있는 것처럼, 선고된 “판결”에도 마찬가지로 그러한 내용의 구체적 명령이 존재함은 명백하다. 아무튼 추상적 명령으로부터 구체적 명령의 “논리적 도출”은 이론상 매우 미묘한 문제이다. 모리쯔(Mritz)는 이러한 “실무상의 삼단논법(praktisches Sylogismus)”에 관하여 탁월한 논문을 하나 집필하였는데,72) 거기서는 “명령의 대전제”로부터 구체적 명령을 이끌어 낸다는 것, 다시 말해 살인한 사람은 무기징역에 처한다라는 일반적 명령으로부터 살인자 M은 무기징역에 처한다라는 구체적 명령을 이끌어 낸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것임을 보여주려고 하였다. 이러한 실무상의 삼단논법 또는 “의지적 추론(volitive Schlüsse)”73)의 문제는 여기서 다루지 않기로 한다. 다만, H. 마이어(Maier)와 관련하여, “조건문에 어떤 결과문을 포섭시키고, 그렇게 함으로써 다시 조건문을 얻게 되는 것이므로, 추론이 그저 결과문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란” 점이 보다 일반적이란 사실만 지적하여 둔다.74) 예컨대, 살인한 사람은 무기징역형으로 처벌된다; M은 살인자이다; M은 무기징역형으로 처벌되어야 한다.75) (“전체에 대하여 타당한 것은 무엇이든 개체에 대하여도 타당하다”는) 전체에 대한 저 유명한 논리(dictum de omni)는 결과문에서만 타당한 것이 아니라 대전제인 명령에 있어서도 타당하고, 따라서 의지적 추론의 근간을 이룬다고 할 수 있는데, 여기서 “전체”란 “모든 개개인”이라고 해석되어야지, “모든 사람을 지칭하는 전체”라고만 해석되어서는 안 됨은 물론이다. (물론 다음과 같은 반박이 있을 수 있다: 모든 사람에 대하여 요구되어졌다 하여 항상 모든 개개인에 대하여도 요구되어진 것은 아니다. 모든 다른 사람도 자기와 똑같이 요구되어진 것을 하여야 한다는 전제 아래에서만 모든 개개인은 수명자(受命者)로서 자신도 명령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곧 개개인은 어느 일반적 명령이 누구나 빠짐없이 하여야 하는 것으로 이해될 때만 자신도 받아들일 수 있는 입장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일반적 명령은 모든 개개인이 다른 사람의 행동, 다시 말해 다른 사람이 규범을 존중하는지 아니면 무시하는지 관계없이 명령되어진 것을 하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의미 아래에서 위 전체에 대한 논리는 타당한 것이다.) 수학적 논리학도 또한 법적 사고를 논리적으로 파악하려는 작업을 크게 비판하여왔다.76) 하지만, 법률에 의한 법적 판단을 발견하고 근거 지우는데 있어 순수 “인식론적” 추론, 다시 말해 앞서 말한 결과문에 의한 추론이 단계적으로 진행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거기에 논리적 특별함과 세밀함이 나름대로 있다는 점도 아울러 알게 될 것이다.77) 말하자면 법관은 우선 형법전에서 “살인한 사람은 형법 제211조에 의하여 무기징역형으로 처벌된다”라는 하나의 판단(결과문)을 정립한다. 논리적 의미로는 (진리를 주장하는) 순수 당위판단인 이러한 “대전제”에 법관은 “M은 살인자”라는 “소전제”를 결합시키고, 그로부터 “M은 형법 제211조에 의하여 무기징역형으로 처벌되어야 한다”라는 추론을 하게 되는데, 그 결과는 다시금 또 하나의 판단(결과문)인 것이다. 이러한 삼단논법은 이론적으로 엄밀하게는 간접추론이라 할 것이고, 방법론적으로 보면 (결과문으로 구성되어 있는) 대전제를 조건적 내용, 즉 “누구든 살인하면, 무기징역형으로 처벌된다”라는 내용으로 손쉽게 바꿀 수 있는 것이다. 오늘날 논리학자들은 “모든 A는 B이다”라는 형식의 일반적 명제뿐만 아니라, “어떤 특정한 A이면, B이다”라는 형식의 조건적 명제 또한 이를 “일반적 명제(allgemeine Implikation)”라고 부른다.78) 당위의 내용을 이루는 이러한 일반적 명제로부터 법발견에서 문제가 되는 구체적 당위명제가 추론에 의하여 얻어지는 것이다.79)

우리는 “얻어진다”라는 표현을 썼다. 이렇게 표현해도 괜찮은가? 예컨대, H. 이사이(Isay)가 그런 것처럼(“Rechtsform und Entscheidung”, 1929), 법률가, 특히 법관은 외부적으로는 법률로부터 구체적 당위판단을 근거 지우고, 따라서 외견상 사법의 합법률성의 원칙에 충실한 것으로 보이나, 자주, 아니 대부분 그 판단을 다른 방식으로, 예컨대 법감정이나 실천이성 또는 건전한 인간오성으로부터 직관적이고 본능적으로 발견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을 버릴 수 없다. 추상적 규범으로부터 판단을 근거 지우는 것은 부차적 의미를 지니고, 이는 자체적으로 비합리적인 판단을 사후에 합리화하는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 어느 정도는 통제기능을 수행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관점이 타당하다고 할 수는 없다. 비합리적 법원(法源)이 법관의 판결 발견에 어떤 역할을 담당하든, 법관은 그의 권한과 양심에 따라 법률로부터 근거 지우고 도출할 수 있는 그런 판단만을 할 책임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법을 발견하는 것이나 법을 근거 지우는 것이나 대립된 뜻은 아니다. 법관에게 부과된 과제는 법률에 의하여 근거 지울 수 있는 판결의 발견이라 할 수 있다. 이사이의 이론은 순수 심리주의다. 이 이론은 규범논리학의 특정한 문제를 간과하고 있다.80)

이제 우리는 법발견에 있어 추론의 근거지움을 알아보기 위하여, 이러한 근거지움의 중심을 이른바 소전제, 우리의 실례에서는 “A는 살인자다”라는 명제에 두기로 한다. (대전제와 그것의 엄밀한 분석은 다음 장에서 다루기로 한다. 다만 여기서는 대전제가 정언적이든 가정적이든 소전제의 본질에 있어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점만 강조해둔다.) 소전제에는 무엇보다도 앞에서 여러 번 언급한 포섭이 존재한다.81) 그러나 결코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일반적으로 소전제에는 사실확정, 다시 말해 포섭되어질 사실의 확정 문제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A는 살인자다”라는 명제는 A가 법률적 관점에서 살인이라는 행위를 하였다는 사실확정뿐만 아니라, 이렇게 확정된 사실이 살인의 법률적 개념에 해당한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형사판결에서 소전제를 획득함에 있어 논리적 작업을 예시하면 다음으로 설명될 수 있다. 검사나 특별검사(Privatkläger)의 공소장에 의하여 법원에 어떤 사람이 구체적인 범죄행위를 저질렀다는 내용의 공소가 제기된다. 공소사실이 맞는지 틀리는지가 우선 문제된다. 법원이 공소사실을 인정하고 피고인을 유죄로 처벌할 생각이라면, 한편으로는 범죄행위가 존재한다는 일련의 사실, 예컨대 A가 상속을 받기 위하여 부인을 인식, 인용 하에 독살하였다는 사실이 확정되어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형벌이라는 법률효과가 추상적으로 결합되어 있는 특정한 법률적 범죄 구성요건에 이와 같은 구체적 사실이 포섭되어야 한다. 우리의 실례에서는, 상속받을 목적으로 인식, 인용 하에 부인을 독살하는 행위는 형법 제211조에서 말하는 살인의 구성요건요소를 충족하는 것이고, 말하자면 저급한 동기에 의한 고의의 살인으로 인정되어야 한다.

우리는 사실의 확정(“거증”) 문제를 짚고 넘어가야 하는데, 이를 위하여 우리는 대표적으로 형사소송을 생각하여 보기로 한다. 이 경우 목표는 법원에 특정한 사실이 존재한다는 내용의 확신을 심어주는 것이다. 순수 논리적으로 본다면, 법적 절차에 있어 사실확정은 역사적 사실확정과 아주 비슷하다. 역사학자가 그에게 제공된 자료를 가지고 사실을 조사하는 것처럼, 법적 절차에 있어서도 자백을 포함한 피고인의 변소와 소위 증거방법, 다시 말해 증거물, 증거서류, 증언 및 감정결과의 보조를 받아 법적으로 의미 있는 사실을 추론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사실로 보고자 하는 것은 과거에 발생한 시, 공간 또는 단지 시간적으로만 제약된 사건, 상황, 관계, 물건 및 특성으로서 우리의 외적, 내적 인식의 세계에 속하고, 자연법칙에 따라 규율되는 것을 말한다.82) 대부분의 범죄행위는 법원에 대하여는 단지 개별적인 사후작용의 결과로서 현실적으로 인식될 수 있으므로, 사실확정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바로 경험적 추론, 특히 논리적으로 참된 복합 추론인 것이다.

대부분의 법적 증명은 소위 “간접사실에 의한 증명”, 다시 말해 “간접증명”으로부터 우리가 확정하고자 하는 의미 있는 직접사실을 추론하는 식의 증명이 된다. “간접증명”은 우리가 현실적으로 인식하고 이해하는데 용이하다는 장점은 있으나, 법률적 구성요건에의 포섭이 문제가 되고 있는, 우리가 “의미 있는 직접사실”이라고 부른 그러한 사실에 대한 결과추론이 허용되지 않는다면, 그 자체로는 법적으로 무의미하다. 우리 독살의 예에서는 독약투여라는 사실 자체가 살인죄의 구성요건에 포섭될 “의미 있는 직접사실”인바, 예컨대 행위가 있기 이전에 남편이 독약을 구입하였다고 한 약사의 증언은 남편이 죽은 부인에게 독약을 먹였다는 사실에 대한 간접증명이 될 수 있다. 무엇이 의미 있는 직접사실인가는 물론 그때그때의 해당 법규와 구성요건에 따라 달라진다. 약사가 남편에 대하여 약값을 청구하는 민사소송이라면, 약사와 남편 사이에 독약의 매매가 있었다는 사실은 바로 의미 있는 직접사실이 된다. 바꾸어 말하면 의미 있는 직접사실이란 상대적인 개념인 것이다. 간접증명 가운데 형사소송에서는 피고인의 자백이 특별한 주목을 받아왔다(민사소송에서의 자백의 기능에 관하여는 여기서 설명하지 않는다). 근대 법률가들은 형사소송에서 피고인의 자백은 그의 유책에 대한 논리 필연적인 증명은 되지 못하고, 범죄행위를 결과 추론적으로 현실로 인식할 수 있는 간접증거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였는바, 이는 아주 정당하다. 이러한 추론은 드물지 않게 궤변으로 흐를 수 있다. 왜냐하면, 피고인이 실제 자기가 하지 않은 행위를 자백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그는 진범을 숨기려고 할 수도 있다. 이와 더불어, 사형문제에 대하여 흔히 거론되고 있는 해결방안, 다시 말해 자백의 경우에만 사형을 집행하자는 의견은 무죄인을 돌이킬 수 없는 집행으로부터 배제할 확실한 방도가 없는 한, 근거가 박약하다. 더욱이 소위 목격자의 증언이란 것도 “간접증거” 외의 아무 것도 아니다. 법정에서 증인의 증언은 증언의 내용이 되는 과거에 있었던 행위를 기초로 하여 단지 제한된 범위에서 믿을 만한 추론을 허용하는 “의미 있는 간접사실”에 불과하다. 여기서 자주 되풀이되는 “추론”이란, 말하자면 법원의 입증절차에 있어 커다란 의의가 있고, 중요한 사안에서는 필수 불가결한 감정을 통하여 법원에 제시된 경험칙에 근거한, 여러 개연성의 정도에 합치한 추론을 일컫는다.83) 우리가 경험적 추론에 직면하게 되는 무수한 형상이 모두 우리 관찰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 특히 중요한 것은 원인으로부터 결과의 추론, 또는 결과로부터 원인의 추론을 뜻하는 이른바 인과추론이다. 모든 간접적 증명에 있어 지도원리는 소송 본래의 목표인, 의미 있는 직접사실을 입증된 간접사실로부터 실무상 유일하게 설명이 가능한 것으로 본다는 점에 있다. 우리의 실례에서는 독약구매가 살인의 수단이었고, 따라서 독살의 원인이 된 것이라고 설명될 수만 있다면, 독살은 증명된 것이다. 입증된 간접사실에서 절대 합리적인 추론을 하여 범죄행위가 증명되는 것이다. 이제 소전제에 대하여 연구하기에 적당하게 되었다.

우리는 앞에서 법원의 사실확정과 역사적 사실확정의 유사성을 지적하였는데, 물론 방법론상으로 분명한 것은 아니지만, 양자의 중요한 차이점이 무엇인지 살펴보는 것을 게을리 하여서는 안 된다. 역사학자는 그에게 제공된 자료의 이용과 그 자료에 기초한 사실조사에 있어서 자유롭다. 그는 단지 학문적 방법론에 구속될 뿐이다. 이에 반하여 소송에 있어 진실발견은 법적으로 광범위한 규제를 받는다. 오늘날 우리는 소송에서 특정한 증거가 있는 경우(예컨대, 자백, “전형적인” 증인 두 사람의 일치된 증언84), 특별한 요건을 갖춘 문서의 존재85)), 입증하고자 하는 요증사실(要證事實)이 간단히 입증된 것으로 간주하는, 법률적으로 정해진 이른바 증명법칙을 갖고 있지 않음은 분명하다. 오히려 형사소송법 제261조는 “법원은 자유롭고, 변론의 전취지에 의하여 갖는 확신에 따라 입증의 결과에 관하여 판단한다”라고 규정하여 원칙상 “자유심증주의의 원칙”을 채택하고 있다. 그러나 증거방법의 제출과 이용에 관하여는 여러 법적 규정이 마련되어 있는데, 이는 부분적으로는 증거의 효용성에 관한 경험적 근거, 부분적으로는 증명과는 무관한 이익에 대한 고려의 요청으로 정해진 것이다. 형사소송법 제250조가 구술증언 대신에 서면증언을 이용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면, 이는 법정에서 구두로 하는 증언이 시시콜콜한 서면에 의한 증언보다 훨씬 가져다주는 영향력이 크다는 입증이익에 기여하고자 함에 그 뜻이 있는 것이다. 이에 반하여, 형사소송법 제252조는 예컨대, 가까운 친족과 같이 증언거부권을 가지고 있는 증인이 변론절차에서 증언거부권을 행사하는 경우에는 그가 과거에 한 진술을 이용한다거나, 특히 과거에 한 진술조서를 낭독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는바, 이러한 “입증행위의 금지”는 진실발견이라는 이익을 넘어 증언거부권자가 가지고 있는 합리적 이익에 대하여 인도적 고려를 하였다는데 근거가 있는 것이다. 예컨대, 나는 부인으로부터 어린아이에 대한 간음으로 경찰에 고발당한 남편이 나중에 법정에서 부인이 과거의 불리한 진술을 반복하지 아니하여 무죄로 석방되었던 사례를 감명 깊은 경험으로 간직하고 있다. 과거의 실체적 진실발견은 “처분권주의원칙”이 타당한 민사소송에서 다시 한 번 한계에 직면하게 되는데, 여기서는 당사자가 다투는지 또는 다투지 않는지, 입증이 있는지 또는 없는지에 따라 법적으로 평가될 사실에 관한 자료를 결정하는 것이 – 물론 일정한 한계는 있지만 – 당사자의 처분에 맡겨져 있다. 예컨대, 계약이 술 취한 상태에서 체결되었느냐 하는 사실은 당사자가 이러한 상태를 인정하는데 구애받지 않는다면, 고려될 여지가 없다.86) 증명에 관한 보다 구체적인 법적 규정을 우리는 여기서 다룰 수 없다. 이는 소송법의 이론에 속하는 것이다. 우리는 단지 구체적 사안을 두고 소송절차에 있어 진실발견의 법적 한계를 거론하고자 하였을 뿐이다.

이제 소전제 속에 포함된 사실확정의 문제가 제반정황을 인식하여 결과를 추론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포섭의 문제 또한 이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는데, 우리는 지금부터 이점을 생각해보기로 한다. 외견상 간단한 듯한 “A가 살인했다”라는 명제조차도 해당 사실이 밝혀졌다고 하여 분명해지는 것은 아니다. 포섭을 위하여서는 어려움이 예정되어 있을 수도 있다. 형법 제211조는 살인에 대하여 자세히 규정함으로써 포섭을 용이하게 하고 있다. 다시 말해, 형법 제211조 제2항은 “살의, 성적 충동의 만족, 탐욕 또는 기타 저급한 동기에 의하여, 교활하게 또는 잔혹하게 또는 통상의 위험한 수단을 동원하여, 또는 다른 범죄행위를 실현하거나 은닉하기 위하여 사람을 살해한 자”를 살인자로 정하고 있다. 그러나 확정된 사실관계가 과연 이러한 구성요건에 해당하는지, 예컨대, 경쟁자를 살해하거나 질투와 증오의 대상인 이웃 정부를 살해하는 행위가 “저급한 동기”에 의한 살인행위인지, 또는 수면 중인 사람을 살해하는 행위가 “교활하게”에 해당하는 것인지 여부에 관하여 법관은 자주 의문에 빠진다. 이 경우 법률에서 사용된 “저급한”이라거나 “교활하게”라는 개념이 가치와 결부되어 있다는 점에서 포섭의 어려움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다. 이를 위하여, 우리는 법률이 그 직접적인 의미에서 가치를 요구하지 않는, 말하자면 “규범적”이 아니고 “기술적”인 개념을 사용하고 있는 예를 하나 들어보기로 한다. 형법 제243조 제1항 제1호는 중(重)절도죄에 해당하는 경우로서 “행위자가 절취할 목적으로 건물, 주거 또는 밀폐된 공간을 부수고 들어가거나 침입한 때…”를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승용차의 지붕을 뜯어내고 그 안에 있는 물건을 절취하는 사례가 드물지 않게 발생한다. 이러한 절취행위도 형법 제243조 제1항 제1호의 구성요건에 포섭될 수 있는가? 여기서 말하는 “포섭”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라이히 재판소는 과거 이와 같은 사례에서 포섭을 부정하였다. 라이히 재판소는, 건물이나 밀폐된 공간이라 함은 지면이나 수면의 한정된 부분을 말하는 것으로 여기서는 행위자가 건물이나 밀폐된 공간에서 물건을 절취하지 않았으므로, 위의 사례에서는 제243조 제1항 제1호(당시는 제2호)에 “해당하지 않는다”라는 견해를 지지하였다(RGSt 71, 198). 이와 달리, 연방대법원은 “새로운” 포섭을 위하여 폐쇄된 승용차도 형법 제243조 제1항 제1호 소정의 “밀폐된 공간”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았다(BGHSt 2, 214 등). 이 보다 앞서 연방대법원의 형사대심원은 1951. 5. 11. 주거용 자동차는 밀폐된 공간이라고 판시하였는데(BGHSt 1, 158), 여기서는 “건물(= 사람의 출입이 가능하고 권한 없는 자를 차단하기 위하여 담과 지붕으로 제한된, 지면에 고착된 구조물) 또는 창고(= 사람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물건을 저장하기 위하여 포위된 공간구축물)와 같은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사람이 들어가도록 되어 있고, (최소한의 부분에 있어 인공적인) 시설물로 둘러싸여, 권한 없는 자의 침입을 막고 있는 그러한 공간구축물”(BGHSt 1, 163 이하)도 밀폐된 공간이라는 일반적 정의에 근거하고 있다. 위와 같은 대심원의 판결에서 밀폐된 공간이 항상 지면 또는 수면의 제한된 부분이라는 라이히 재판소의 견해가 폐기되었다. 연방대법원의 나중 판결(BGHSt 2, 214)에서, “주거용 자동차”가 “사람의 주거목적에 이용되었다”는 이유에서 형법 제243조 제1항 제1호 소정의 밀폐된 공간이었던 것이 아니라, 사람이 출입할 수 있게 되어 있고, 권한이 없는 자를 차단하기 위하여 시설물로 둘러싸여있었기 때문에 밀폐된 공간이라고 하였던 것이라면, 이전에 대심원에서 한 판결에 의하여 뒷받침될 수 있다고도 생각된다. 바로 이러한 점이 주거용 자동차뿐만 아니라, 승용차의 경우에도 타당한 것이다. 연방대법원의 위 판결은 대부분의 지지를 받았다.87) 그러나 복켈만(Bockelmann)과 같이 밀폐된 공간의 “표준이 되는 기준”을 “사람의 집과 같은 장소”에서 찾은 사람도 있었다. 이에 따르면, 주거용 자동차는 밀폐된 공간이지만, 통상의 승용차는 물론이고, 철도차량과 같은 것은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하여야 한다.88)

위에서 언급한 구체적 사례에서 포섭이란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가? 우리는 두 가지 점에 주목하고자 한다. 우선은 우리가 이제 막 살펴본 바와 같이 포섭에 있어서는 구체적 사례를 법률적 구성요건에 귀속시키는 것이 문제이고, 어떤 사례군(群) 또는 사례유형을 귀속시키는 것이 문제인 것은 아니란 점이다.89) 나아가 이미 강조한 바와 같이 포섭이란 새롭고 일회적인 것이고, 동일한 사례에서 이미 이루어졌던 포섭을 단순히 반복 수행하는 것은 아니란 점이다.

사람들은 개별 구체적 사례를 개념에 귀속시킨다는 것이 논리적으로는 무의미하다고 지적하였다. “단지 같은 것만이 같은 것에 포섭될 수 있다.” 개념에는 개념만이 포섭될 수 있다.90) 법적용의 논리적 구조에 관한 어느 연구가 다음과 같은 점을 강조하고 있다면, 이에 따른 것이다. 즉 사례를 법개념에 포섭시킨다는 것은 “개념의 관계를 나타내는 것이다. 어떠한 사실은 개념으로 관념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사실은 – 사실로서 – 인식되지 않는데 반하여, 법개념은 그 표현에서 보는 바와 같이 개념적인 형상으로 관념되어져 있기 때문이다.”91) 말하자면 사실개념을 법개념에 포섭시키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형식논리적, 인식론적 연구를 더 이상 다룰 수는 없다. 다만 법률로 정해진 개별 구체적 사례를 개념에 포섭시킨다는 것은 어떤 사안, 즉 “사례”를 법률개념 또는 법규의 추상적 구성요건에 의하여 정해진 일정한 사례 유형에 포함시키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는 점만을 강조해둔다. 지금 판단의 대상인, 지붕을 뜯어내고 승용차로부터 한 절도를 “밀폐된 공간”에 침입하여 한, 일반 추상적인 절도란 구성요건 개념에 포섭한다는 것은 다음을 의미한다. 즉, 승용차로부터의 절도라는 구체적 사례는 “밀폐된 공간”에 침입하여 한 절도라는 개념에 포괄되는 일련의 사례군 중 하나라는 점이다.92) 이제 다음과 같은 중요한 법논리적 문제가 제기된다. 도대체 무엇을 근거로 구체적인 사례를 법개념에 의해 관념된 일반 사례군에 해당시키는가? 이에 대한 나의 개인적인 생각은 다음과 같다. 그 근거는 새로운 사례를 이미 일련의 사례군에 해당하는 것으로 밝혀진 그러한 사례들과 똑같이 보는데 있다.93) 우리가 든 예를 통하여 본다면, 승용차로부터의 절도는 이미 의심할 여지없이 형법 제243조 제1항 제1호에 해당하는 것으로 판단된 광산갱도로부터의 절도(RGSt 3, 411 참조), 주거목적의 승용차로부터의 절도(BGHSt 1, 158) 등의 사례들과 똑같이 본다는 것이다. 일련의 사례군이라 할 유형 그 자체를 확정하고, 비교의 소재로서 이용되는 그러한 사례들이 의심할 여지없이 이러한 유형에 해당한다는 점은 어디에 근거를 두고있는가 하는 문제는 일단 뒤로 미루어두기로 한다. 이는 해석의 문제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법개념의 해석은 포섭을 위한 전제가 되고, 해석이 끝나면 그 나름으로는 하나의 새로운 해석의 결과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나아가 우리가 연방대법원의 판결이 BGHSt 1, 158에서 BGHSt 2, 214로 발전되어간 과정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비교자료로 활용될 수도 있는 것이다.94) 그러나 우리가 (광의의 의미에서) 원칙적으로 서로 동일한 대상을 의미하는 유형에 대하여 만족할 만큼 정통하다는 점을 전제한다고 하여도, 지금까지는 그러한 유형에 속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되던 새로운 대상을 바로 그 유형에 편입시키는 것이 정당한지 아닌지, 다시 말해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동일시하는 것이 적법한지 아닌지 하는 문제는 여전히 어려운 문제이다. 새롭게 포섭되는 모든 경우에 있어 포섭될 사례가 이미 유형에 포함되어 있는 다른 사례들과 어떻게 구별되는지, 따라서 평등의 원칙을 지켜야 하는 법관에게 그와 같은 구별이 “본질적”인지 아닌지 하는 고통스러운 문제가 제기된다는 점에 문제의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새로운 사례와 기존의 개념 유형에 속한 사례들 사이에 본질적 동일성 또는 본질적 차이점이 있는가 하는 문제는, 나아가 과연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에 도달한다. 우리의 실례에서 밀폐된 공간이란 법개념의 경우에 있어 중요한 것은 “지표면의 일부”인지(라이히 재판소), 아니면 사방이 – 경우에 따라서는 일부가 인공적 시설물에 의하여 – 둘러싸여진 공간인지(연방대법원)? 또는 “사람의 집과 같은 장소”(복켈만)로 이용되는 것이 중요한지, 아니면 사람이 드나들 수 있도록 되어 있는 것이 중요한지(연방대법원)? 사방이 폐쇄되어 있고 사람이 드나들 수 있도록 되어 있는 공간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이런 관점에서는” 승용차는 주거용 자동차나 광산의 갱도와 동일하게 볼 수 있다. 여기서의 “관점”이 바로 “중요한 관점”인 것이다. 밀폐된 공간과 같은 개념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 또 사례를 동일하게 보는 어떤 관점이 중요한 것인지 아닌지 하는 문제는 다시금 해석의 문제이다. 해석은 비교의 사례를 제시할 뿐만 아니라, 비교의 관점을 제공한다. 해석은 비교사례와 비교될 포섭대상인 사례에 있어 동일한 요소가 무엇인지를 결정한다. 그 다음으로 어떤 정신적 수단을 가지고 비교를 할 것인지, 즉 감각적 수단인지, 아니면 사유적 수단인지, 사유적 수단의 경우라도 “직관적” 수단인지, 아니면 “감성적” 수단인지 하는 문제를 결정한다.95)

이러한 해석이 “통상의 언어사용례” 또는 “입법자의 의지”나 “법률의 합리적 목적”에서 그쳐야 하는지, 아니면 다른 무엇에서 그쳐야 하는지 하는 문제는 우리가 다른 장에서 음미해야 할 문제이다.

이 장에서 우리는 소전제를 확정하지 못할 경우 결부시킬 추론에 대하여 아직 설명하여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소전제가 현실적으로 명백하다는 점, 다시 말해 법개념에 포섭될 수 있는 사실확정에 성공한 경우,96) 그것도 대전제와 합치한 소전제로부터 판단을 이끌어낼 수 있을 정도로 성공한 경우를 전제로 하였다. 특히 우리에게 예시되었던 형법의 경우, 우리는 법률적 범죄유형의 개별적 개념과 요소에 전체적으로97) 포섭되어질 수 있도록 사실을 확정하고, 그로부터 범죄유형의 대전제에 정해진 형벌이 구체적 사례의 경우에도 당위적이라고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렇다면 이제, 주요사실을 확정할 수 없다거나, 확정된 사실이 대전제에 쓰인 구성요건 개념에 포섭될 수 없는 따위와 같이 소전제를 이루는 판단이 불가능한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우리 절도의 예에서 피고인이 승용차의 지붕을 뜯어내고 안에서 물건을 훔친 바로 그 사람인지가 불분명할 때가 있다. 또한 승용차는 제243조 제1항 제1호 소정의 밀폐된 공간이라 할 수 없으므로 거기서 물건을 절취하더라도 동 조항의 구성요건요소에는 포섭되어질 수 없다는 견해를 지지할 수도 있다.

순수논리적으로는 소전제가 명백하지 않을 경우 아무런 결론도 끌어낼 수 없다. 논리학은 우리에게 원인과 함께 결과가 생기고(modus ponens), 결과와 함께 원인도 제거된다(modus tollens)고 가르치고 있다. 반면 논리학은 원인과 함께 결과도 제거된다고는 가르치지 않는다. 법관이 대전제에 해당한다고 원고에 의하여 주장된 특정한 소전제가 명백하지 않는 경우에도 나름대로는 다시 대전제에 근거하는 판결을 할 수 있다고 한다면, 이는 부가적인 대전제를 필요로 한다. 구체적으로 말해, 검사가 형사소송에서 A가 K의 승용차에서 지붕을 뜯어내고 물건을 훔침으로써 제242조, 제243조 제1항 제1호에 의하여 중절도죄의 죄책을 져야하므로 징역형으로 처벌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나, 법원이 A의 행위가 입증되지 않았다거나 승용차가 제243조 제1항 제1호 소정의 밀폐된 공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아 검사의 주장에 동조하지 않는다면, 법원은 우선 제243조 제1항 제1호에 해당하는 대전제로부터는 결론을 끌어낼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데 그친다.

이제, 법원은 “판결의 거부(absolutio ab instantia)”의 형식으로(아래 참조) 모든 판결을 포기한다거나, 검사가 기소한 것과는 다른 판결, 예컨대 – 과거에 통상적으로 행하여지던 – “혐의형”이나 “법률 외의 형벌(poena extraordinaria)”을 선고한다거나, 아니면 – 오늘날과 같이 형사소송법 제265조의 요건이 충족된 경우에는 – 다른 범죄, 예컨대 그 입증을 전제로 하여 흉기소지 중절도죄(제244조 제1항 제1호) 또는 단순절도죄로 처벌한다거나, 마지막으로는 A에게 완전 무죄를 선고하는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러나 사법의 합법률성의 원칙에 따라 이 모든 판결을 하기 위하여서는 법률로 미리 정해진 다른 새로운 대전제를 필요로 하는데, 결론적 판단으로서 판결을 근거지우기 위하여서는 이러한 새로운 대전제에 당해 소전제가 귀속되어야 한다.

이러한 대전제들 가운데에서도 특정한 법률효과를 목적으로 한 포섭가능성이 존재하지 않을 경우 무죄선고나 소 또는 신청을 기각하도록 의무 지우는 그러한 대전제와 소위 “입증책임”에 관한 대전제 등이 흥미를 끈다. 우리가 첫 번째 유형의 대전제로서 형사소송에서의 무죄선고를 위한 예를 든다면, 피고인에 대하여 판결을 할 수 없는 상황인 경우에는 – 절차상 장애사유가 없는 한 – 실체판단으로서 명백히 무죄를 선고해야 한다는 내용의 법률적 조항이나 그에 상응한 법적 대전제가 존재한다. 피고인이 기소되어진 범죄행위를 하였다는 점이 입증되지 않았다거나, 입증된 행위가 법률상 처벌할 수 있는 행위에 해당하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무죄를 선고하여야 한다(보안처분의 가능성에 대하여는 논외로 한다). “무죄선고”는 추상적 형벌법규 또는 그에 상응한 대전제의 구성요건이 구체적 사안에서 없으므로 그 법률효과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사실에서 추론된 결론은 아니다. 오히려 이는 그것을 규정한 특정한 대전제가 존재하므로 얻어진 논리적 귀결일 뿐이다(형사소송법 제267조 참조). 이러한 대전제가 없었다면, 내용적으로는 아주 다른 판결을 생각해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앞에서 말한 판결의 거부로서, 과거 이는 후일 절차의 속개나 판단의 유보 아래 판결을 뒤로 미루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또 같은 곳에서 언급하였던 혐의형으로서 법률 외의 형벌을 선고하는 따위가 그것이다. 이러한 가능성은 오늘날 합리적, 인도적 이유에서 배제되었을 뿐이지,98) 논리적 이유에서 배제된 것은 아니다.

한편, “입증책임”에 있어 대전제에 관하여는, 법률적 사고가 만들어 낸 가장 의미 있는 사상적 형상물 가운데 하나의 문제이다. 입증책임은 모든 입증행위에도 불구하고 사실문제에 의문점이 남는 경우에 발생한다. (법률문제 quaestio iuris, 예컨대 “밀폐된 공간”이라는 법적 개념에 의문점이 있는 경우에는 법관은 판결로서 그 의문점을 해소해야 한다. 법관은 내적으로는 여러 가능한 이론들 사이에서 심리적 동요가 있었다 할지라도, 그 중 하나의 특정한 이론을 지지하는 것으로 고백하여야 한다. 이것이 최소한 우리 현행법에서 채택하고 있는 관점이다. 이는 논리나 “자연”법칙의 문제가 아니다.) 예컨대, 법원이 피고인이 범인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이 범인인지, 혹은 민사적 사례를 들어본다면, 소비대차의 피고가 변제를 주장하고, 원고가 이를 다투는 경우 과연 변제가 있었는지에 관하여 의문점이 생긴다면, 다툼이 있는 양자 가운데 어느 하나를 일방적으로 옳다고 선언하는 것, 간단히 말해 피고인이 무죄라거나 유죄라고 판결한다거나, 대여금을 변제된 것으로 인정한다거나 변제되지 않은 것으로 인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실에 관한 의문은 법률에 관한 의문과 같이 법원이 판결로써 어느 한 견해를 지지하는 것으로 해결될 수는 없다. 한편, 법원이 사실문제에 관한 의문을 제기하면서 판결을 거부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법원은 의문을 없앨 수는 없어도, 분쟁을 없애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관련당사자의 구체적 만족이라는 법원의 임무는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런 경우에 법원이 어떤 판결을 해야 하는지 하는 문제를 바로 입증책임, 좀 더 정확하게는 입증책임에 관한 규정이 정하고 있는 것이다. 형사소송법에서 입증책임에 관한 규정은 상대적으로 간단하다. 여기서는 거의 예외 없이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In dubio pro reo)란 원칙이 타당하다. 이는 피고인의 유, 무죄를 위하여 중요한 사실관계에 의문이 있는 경우, 법원은 이러한 사실관계의 상태를 “받아들이고”,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판결을 해야 한다는 점을 의미한다. 피고인의 행위가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이 행위자가 아니라고 인정해야 한다. 피고인이 침해에 대한 방어를 위해 행위를 하였는지가 의심스러울 때는 모순되지 않는 범위에서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해석되어야 한다. 피고인이 행위 시 심신장애가 있었는지가 의심스러울 때는 반증이 없는 한 책임무능력의 상태에 있었다고 인정해야 한다. 민사소송에서는 입증책임의 분배가 이루어지므로 훨씬 더 복잡하다. 모든 사실은 원고가 입증할 사실과 피고가 입증할 사실로 구분된다. 예컨대, 원고가 대여금의 반환을 구하는 경우에는 돈을 빌려주었다는 소비대차의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 그런데 이것이 다투어지고 원고의 입증행위에도 불구하고 의심이 제거되지 않을 때는 원고에게 불이익하게 판결을 해야 한다. 의심스러울 때는 원고에게 불이익하게(In dubio contra actorem)란 원칙이 타당한 것이다. 반면, 피고가 돈을 빌린 사실은 인정하고, 다만 차용금을 변제하였다고 항변하였으나, 원고가 이를 다투고 의심이 있는 때에는 피고가 이를 입증해야 한다. 피고가 변제사실을 입증하지 못하면, 원고에게 차용금을 반환하도록 판결을 받고, 소송에서 지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민사소송에서는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에게 불이익하게(In dubio contra reum)란 원칙이 타당하기도 하다. 로마인들은 항변에 있어서는 “피고가 원고이다(reus in exceptione actor est)”라고 말한 바 있다(D 44, 1, 1). 이는 피고가 입증책임을 부담하는 항변에 있어서는, 청구원인사실을 입증하지 못하면 소송에서 승소하지 못하는 원고와 마찬가지로, 피고도 소송에서 똑같은 위험을 부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여기서 소송의 유형별로 입증책임에 관한 규정을 자세히 고찰할 수는 없다. 다만, 입증책임이 법이론상 의미하는 것, 다시 말해 주요사실이 확신을 가지고 인정도 부정도 되지 못하는 경우 법관이 어떻게 재판하여야 하는지에 대한 지시, “그리고 그러한 재판내용이 객관적인 사실에 부합하든 부합하지 않든, 그 자체로는 재판의 합법성이 보장된다는 법원칙”이란 점을 지적해두는데 그치기로 한다.99)

그러나 다음과 같은 점은 어렵고도 흥미 있는 사항이므로 여기서 최소한 언급하고 넘어가기로 한다. 법관은 포섭이 정당하게 이루어지도록 항상 노력하고 있는바, 간혹 “택일적(擇一的) 확정”의 문제에 이르는 경우도 있다. 예컨대, 법관은 형사소송에서 피고인으로부터 발견된 타인의 물건이 절취에 의한 것인지, 장물취득에 의한 것인지 만을 심리해야 할 경우가 있다. 피고인이 가벌적 행위를 한 것은 명백한데, 이들 두 가지 중 어느 행위를 한 것인지를 분명하게 알 수 없는 경우를 말한다. 법관은 이런 경우에 어떤 판결을 해야 하는가?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란 원칙에 따라 무죄를 선고해야 하는지, 아니면 피고인이 어떻게 보더라도 유책하므로 형을 선고해야 하는지? 이론과 실무에서는 오늘날 일정한 한도에서는 보다 경한 범죄로 피고인을 처벌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통설이다. 그러나 실무의 이러한 결론은 독자들에게 법원칙상 의문을 불러일으킬 뿐만 아니라, 논리상으로 그리 아주 간단하게 성립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될 수 있다.100)

 

-여백-

 

제4장 법규로부터 추상적, 법률적 판단의 획득. 법규의 해석과 이해

 

앞장에서는 주로 법적 판단인 삼단논법에서 소전제를 다루었다. 소전제는 법률과 법적 대전제에 들어 있는 일반적인 법사상을 구체적 법률사례에 적용하여 법률에 합치하는 판단이 가능하도록 하게 하는 신경과 같은 것이다. 우리가 이러한 소전제와 그 구성내용에 모든 주의력을 집중하였기 때문에, 법률에서 얻어지는 일반적 법사상이란 것은 분명하고 확실한 것이며, 거의 고착된 형상물과 같은 것이고, 따라서 법적 사고의 활동은 대부분 소전제에서만 있게 되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101) 소전제에 결합하는 법적 대전제란 그 자체가 다시금 법적 사고활동의 필연적 산물인 것이다 – 이점은 우리가 최소한 법으로부터의 연역과 추론에 의한 법발견의 문제를 다루어보면 분명해진다. 심지어 “법적 방법론”이라고 불러지는 것은 법적 대전제의 획득을 우선적 과제로 삼는다고 말할 수도 있다. 우리는 소전제의 내용인 포섭이란 것이 법률의 “해석”과 대전제의 사고작업을 기초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을 이미 앞장에서 살펴보기도 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살펴보고자 한다.

우리는 소전제에 결합하는 대전제가 법률에서 얻어진다고 말하였다.102) 여기서 우리는 법률이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조건적 명령이라고 생각하고, 법률에 부합하는 대전제란 이에 비하여 논리적 의미에서 가정적 판단이라고 생각해보기로 한다. 그렇다고 하여 대전제를 확정하는 것이 법률의 조건적 명령을 논리적 의미에서 가정적 판단으로 바꾸어 생각하는 것으로만 본다면, 이는 실로 아주 기본적인 사고작업에 속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예컨대, 살인한 사람은 무기징역형에 처한다라고 규정한 형법 제211조의 명령은, “누구나 살인을 하면, 그는 형법 제211조에 의하여 무기징역형으로 처벌된다”라는 추상적 법적 당위판단으로 손쉽게 그 형식을 바꿀 수 있다.

법률가가 법률에서 법적 대전제를 얻기 위하여 가장 먼저 완수해야 할 다소 복잡한 과제는 “기술적” 이유에서 법률의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하나의 완전한 법적 당위사상의 여러 구성요소들을 하나의 전체로 완성하는데, 보다 엄밀하게는 구체적 법률사례를 판단하기 위하여 필요한 이러한 법적 당위사상의 구성요소들을 끌어 모아 한데 완성하는데 있다.103) 우리가 앞의 살인의 예를 들어 말한다면, 형법 제211조는 아무리 같은 조문 제2항에 규정되어 있는 개념요소들을 끌어 모은다 하여도, 완전한 법률적 대전제를 위하여서는 필요한 본질적 구성의 한 요소를 내보이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안에는 또한 살인자로서 처벌되기 위하여서는 살인자가 책임능력이 있어야 하고(이에 관하여는 형법 제19조 이하와 소년법에 규정되어 있다), 위법성조각사유(예컨대, 형법 제32조의 정당방위)나 책임면제사유(예컨대 형법 제35조 소정의 긴급피난)와 같은 사유가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는 사상이 포함되어져 있다. 따라서 완전한 대전제는 다음과 같이 표현될 수 있다. 독일 형법에 의하면, 누구나 책임능력자로서 위법성조각사유나 책임면제사유와 같은 사유가 없이 고의로 살의, 성적충동의 만족, 탐욕 또는 저급한 동기…..를 위하여 타인을 살해하면 살인자로서 무기징역형에 처해진다. 이 경우 대전제의 완전한 완성은 사안에 따라 판결을 위하여 필요한 한도 안에서만 이루어진다. 예컨대, 위법성조각사유나 책임면제사유가 구체적으로 문제될 소지만 없다면, 이들의 부존재에 관한 언급은 대전제에서 빠뜨릴 수 있다.104) 여기서 법률가에게 부과되는 문제의 어려움에 관하여 한 좋은 실례를 제공하는 것이 검사의 공소장이다. 요컨대, 형사소송법은 공소장에는 피고인과 피고인의 범죄행위 외에 범죄행위에 해당하는 “법률적 구성요건”을 명시하도록 정하고 있다. 형사소송법은 이로써 어느 정도는 피고인의 가벌성의 근거가 되는 법적 대전제의 확실한 적시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바로 이점이 상당한 어려움을 만드는 것이다. 다른 법역(法域)에서도 이러한 어려움은 덜하지 않다. 입법이 포괄적이고 미묘하면 할수록, 법규범의 구성요소를 법률의 지배적 정신 안에서 종합하고 유기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더욱 필요하다. 법철학자인 슈탐러(Stammler)는 다음과 같은 구절로 이를 표현하고 있다. “법전에서 어느 한 조항을 적용한다는 것은 곧 법전 전체를 적용하는 것이다.”105) 사람들은 이 말이 다소 과장된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법질서의 단일성 원칙을 표현한 것으로 우리의 논의와 관련하여서는 법적 대전제란 전체 법전, 나아가서는 다른 법전의 보조를 받아 설정되어야 한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이 경우 법규는 법질서 안에서 동질적이고 서로 조화를 이루는 법사상의 복합물이란 사고가 전제된다. 이러한 법적 기술의 중요한 측면을 민사사례 하나를 통하여 다시 한번 논증하는 것이 여기서 허용되었으면 하는데, 이 사례는 수많은 사례들 가운데 하나에 지나지 않지만, 내가 시보생활을 하는 동안 우연히 다루게 되었던 사례로서 나에게는 이미 젊은 시절 법률규정의 법적인 상호 유기적 특성을 가장 잘 일깨워준 유용한 사례라 생각한다. 아마 다른 사람에게도 이를 소개하는 것이 적합할 것이다.106)

라이히 재판소 민사판결집 104권 44(RGZ 104, 44)에는 많은 비슷한 사례들 가운데 하나로서 라이히 재판소에까지 이른 바로 그 사례가 나와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 군대가 철수를 하면서 군대는 낙오하는 말을 더 이상 끌고 갈 수가 없게 되었다. 그러자 한 말 취급 장교가 낙오된 말 한 필을 165마르크에 한 농부에게 팔았는데, 이 농부는 그 말에 사료를 먹여 키운 다음 1년 뒤 6,000마르크를 받고 다시 팔았다. 라이히(“라이히 국고”)는 이 농부에 대하여 총 4,100마르크를 “부당이득”이라 하여 청구를 하였는데, 이는 농부가 벌어들인 매각대금에서 살 때 지급한 165마르크와 사료 값에 상당한 금액을 공제한 금액이었다. 하급심에서는 청구가 기각되었다. 내가 분명히 기억하는 바로는, 당시의 사안들에 있어서는 농부를 보호해야 한다는 법감정에 근거를 둔 목적론이 우세하였다. 앞서 언급한 이사이의 이론과 관련시킨다면, 법적인 근거를 끌어다 맞춘 것이다. 이에 반하여 법률에 엄격한 라이히 재판소는 청구를 인용하여 농부에게 지급을 명하였다. 청구권이 “이유 있다”는 것이었다. 라이히 재판소가 직접 적용한 조문은 민법 제816조였다. 그에 의하면, 무권리자(우리 사안에서는 농부)가 어느 물건(말에 대한 소유권)에 대하여 권리자(라이히 국고)에게 유효한 처분행위(여기서는 6,000마르크에 재매각하는 행위)를 한 경우 그는 권리자에게 처분행위로 얻은 이익(6,000마르크)을 반환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일반인이라도 이 조문 자체만으로는 완전한 의미 있는 대전제를 얻지 못한다는 점을 금방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우선 어떻게 농부가 무권리자이고 국고가 권리자인지 결정해줄 법적 규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국고가 권리자였으나 농부가 말을 취득함으로써 소유자가 되고 따라서 권리자인 것은 아닌지? 그러나 실제로는 농부는 소유자가 되지 못하고, 오히려 무권리자였는데, 왜냐하면 그에게 말을 판 장교는 말의 소유자가 아니고 말을 처분할 권한도 갖고 있지 않았으며, 따라서 소유권 취득에 관한 규정(민법 제929조 이하)에 의하여 농부에게 소유권을 이전해줄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말 취급 장교에게 처분권한이 있다고 농부가 선의로 믿었다 하여도 이는 아무런 도움이 될 수 없다. 농부는 예나 지금이나 민법 제816조의 의미에서 항상 무권리자이다. 민법 제816조를 보충하고 분명하게 해주는 동산에 대한 소유권취득의 규정에 의하면, 농부는 말에 대하여 소유권을 취득하지 못한다.107) 제3자에 대한 매각행위에 의하여 그는 이른바 무권리자로서 말에 대한 소유권을 처분한 것이다. 그러나 제816조가 덧붙여 전제하는 바와 같이 이러한 처분행위가 어떤 근거로 “권리자에 대하여 유효”한 것인가? 말 취급 장교가 농부에게 소유권을 이전할 수 없었다면, 그와 마찬가지로 농부 또한 제3의 매수인에게 소유권을 양도할 수 없을 것이다. 농부도 말 취급 장교와 마찬가지로 말에 대하여 처분권한을 갖고 있지 않다. 물론 이 경우 제3자는 처분권한 있는 사람으로부터 말을 취득하였다고 믿지 않고 소유자로부터 말을 취득한 것으로 믿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농부를 말 소유자로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소유권에 관한 선의의 믿음은 – 처분권한에 관한 선의의 믿음과는 달리 – 민법 제932조에 의하여 보호된다. 그러나 이에 대하여는 2가지 예외가 있다. 요컨대 민법 제935조는 “점유이탈물”에 대하여는 선의취득을 배제한다. 말 취급 장교가 단순한 “점유보조자”(민법 제855조)로서 농부에게 말을 양도하는 순간 국고의 입장에서 말은 점유를 이탈한 물건이다. 그 외에도 1919. 5. 23. 무권리자로부터 군용물을 취득하는 경우 선의취득을 배제한 특별규정이 적용된다. 그렇다면 농부의 제3자에 대한 매각행위가 어떻게 권리자인 국고에 대하여 유효한 처분행위로 되는지 우리는 다시금 물어야 한다. 이에 대하여 라이히 재판소는 독창적인 법률가만이 생각해낼 수 있는 그런 사상에 입각하여 판단을 하였다. 라이히 재판소는 민법총칙으로부터 제185조를 끌어냈는데, 거기에는 “무권리자(농부)가 물건(말)에 대하여 한 처분행위(제3자에 대한 매각행위)라도 권리자(국고)가 이를 추인하면 유효하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국고는 농부에 대하여 그가 처분행위로 얻은 이익의 반환을 구하는 소송을 제기함으로써 농부의 처분행위를 추인하였다 할 것이다. “국고는 소송으로 매각대금의 반환을 구함으로써 처분행위를 추인하였다”(RGZ 106, 45). 이로써 민법 제816조의 모든 요건이 충족되었다. 다시 말해 무권리자(농부)는 물건에 대하여, 권리자에 대하여 유효한, 좀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매각대금의 반환을 구하는 소송과 그 속에 포함된 추인을 통하여 소급적으로(민법 제184조 참조) 유효하게 된 처분행위를 한 것이다.

법률가에게는 주목할 가치가 있는 이러한 사고의 전개를 일반인이 완전히 이해하였는지는 지금 당장 중요하지 않다. 또한 절대 그럴 필요도 없고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니다.108) 다만 우리는 법률가가 어떻게 법전에 흩어져 있는 조문들(제816조, 929조, 932조, 935조, 855조, 185조 등등)을 의미 있는 전체로 총괄하고, 구체적 사례에서 필요한 “대전제”를 작업하는지를 분명히 하였을 뿐이다. 이러한 대전제에 마음에 꼭 드는 그런 언어형식을 부여할 수 있는지는 부차적인 문제이다. 오히려 대전제는 결과문에 의하여서만 언어상으로 적당하게 표현될 수 있는 그런 사고구조로 이해된다. 항상 중요한 것은 소전제와 결과문으로 연결되는 모든 대전제는 논리적 이해 안에서 법사상의 내적 관련성에 의하여 만들어진다는 점이다. 대전제 상호간에 이러한 “내적 관련성”이 어떻게 보다 엄밀하게 구성되는가 하는 점을 여기서 명백하게 밝힐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이러한 내적 관련성을 이루는, 너무도 다양한 실질적 관계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어떤 때는 한 조문이 다른 조문을 설명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다른 방식으로 보충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예외로서 배척하기도 하다. 현안이 되는 대전제를 그리기 위하여 여기 저기 흩어져 있는 법사상의 편린을 “법질서의 단일성” 원칙에 기초하여 총괄하도록 규정하는 것이 바로 이에 관련된 실질적 관계들인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부터는 벌써 아주 구체적으로 법적 작업이 이루어지는데, 우리는 이 문제를 더 이상 다룰 수 없다.

이미 앞에서 본 바와 같이, 민법 제816조를 다른 조문을 가지고 보충하면서 위 조문의 “해석”이 이루어진다. 우리는 제816조의 개개 요건들(무권리자 등등)을, 해석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다른 조문들을 끌어들여 해석하였다. 그러나 법률의 다른 조문을 끌어들여 어느 한 조문을 해석하는 것이 법률가에게 부과된 해석작업의 전부는 아니다. 이제 우리는 별 무리 없이 해석의 일반 문제로 들어서도 괜찮다 할 수 있다. 우리는 법학방법론의 중심적 문제라 할 이 문제를 이제부터 다루기로 한다. 이를 위하여 우리는 말하자면 외연적인 것에서 내재적인 것, 다시 말해 “전체적 포섭”에서 “개별적 포섭”으로 문제를 훑어보기로 한다.109)

Ⅰ.

이 목적을 위하여 우리는 다시 한번 앞장에서 다루었던 사례를 생각해보기로 한다. 승용차는 형법 제243조 제1항 제1호 소정의 “밀폐된 공간”인가? 포섭 그 자체는 지금 여기서 재판될 사례와 이미 의심할 여지없이 법률에 해당되는 것으로 인정된 사례들을 동일시함으로써 이루어진다는 점과 그러나 이때 어떠한 사례들이 법률에 해당하는 것이고, 어떠한 관점과 어떠한 관계 하에서 새로운 사례를 이와 같이 법률에 해당하는 사례들과 동일하게 보는 것인가 하는 문제는 당해 조문(형법 제243조 제1항 제1호)의 해석을 통하여 결정된다는 점을 우리는 당시 언급하였다. 이제 이러한 해석에 의하여 법률에서 직접 얻어지는, 추상적 개념요소로 구성된 대전제가 구체적으로 재판될 사례와 “비슷하게” 된다고 이야기하기로 한다. 그러나 이 말이 올바르다 하여도 하나의 비유일 뿐이다! 이러한 비유를 논리적으로 엄밀하게 표현하고자 한다면, 법률에서 직접적으로 얻어지는 법적 대전제와 구체적 사례에 대한 판단 사이에는 단지 하나의 소전제만이 관여하는 것이 아니라 포섭을 수월하게 하기 위한 여러 개의 소전제가 관여한다고 말해야 한다.110) 따라서 결과추론의 전체적인 모습을 다음과 같이 표현할 수 있다.

1. 만약 절도범이 밀폐된 공간을 침입하였다면, 그는 3월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형으로 처벌된다.

2. 만약 절도범이 사람이 출입하도록 되어 있고, 무권한자의 침입을 방지하기 위하여 최소한의 인위적 시설물에 의하여 둘러싸인 공간을 침입하였다면, 그는 밀폐된 공간을 침입한 것이다.

3. 만약 절도범이 사람이 출입하도록 되어 있고, …. 방지하기 위하여 … 시설물에 의하여 둘러싸인 공간을 침입하였다면, 그는 … 이상 … 이하의 징역형으로 처벌된다.

4. 만약 절도범이 승용차에 침입하였다면, 그는 사람이 출입하도록 되어 있고, … 방지하기 위하여 … 시설물에 의하여 둘러싸인 공간을 침입한 것이다.

5. 만약 절도범이 승용차에 침입하였다면, 그는 … 이상 … 이하의 징역형으로 처벌된다.

6. A는 절도범으로 승용차에 침입하였다.

7. A는 … 이상 … 이하의 징역형으로 처벌되어야 한다.

위의 추론과정에 있어 전제 2.와 4.는 법률에서 직접 얻어지는 일반적 대전제 1.을 재판할 구체적 사례(승용차 안에서의 절도)와 “비슷하게” 하기 위하여 특별히 세분화한 명제를 뜻한다. 2.와 4.는 논리적으로 보면 소전제이고 3.과 5.는 특별히 세분화된 대전제이다. 5.의 경우에서 우리는 아주 세분화된 대전제에 도달하게 됨으로써 6.으로의 궁극적인 포섭을 별 어려움 없이 달성할 수 있게 된다. 이 경우에는 단지 “특정 주어(A)를 서술문의 주어(절도범)로 대입”하는 것만이 필요하다.111) “해석”은 주로 특별히 세분화된 소전제인 2.와 4.에서 있게 된다. 우리는 일반적인 대전제에 다음과 같은 물음, 다시 말해 “밀폐된 공간”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물음을 제기함으로써 이를 분명하게 할 수도 있다. 이 물음에 대하여는 우선 소전제 2.가 그 해답을 제공하고 있는데, 이는 전형적 해석이라 할 수 있는 것으로, 여기서는 결과추론의 목적 안에서 이루어지는 언어의 변환만으로 우리가 오류를 범하지 않을 수 있다. 이와 같이 해석된 소전제의 의미는 다음과 같이, 밀폐된 공간이란 사람이 출입하도록 되어 있는 등등의 공간이라 할 것이다. 그런 다음 소전제 4.에서 승용차가 이러한 요건에 해당하는가 하는 문제로 해석이 이어진다.

법적 연역을 위한 해석의 논리적 의미를 이야기한다면, 우리는 법개념의 내용과 범위를 법률가에게 분명하게 해주는 것이 바로 해석의 임무라는 점을 말할 수 있다. 내용에 관한 언급은 정의(定義), 다시 말해 개념요소의 설명(밀폐된 공간은 ….. 공간이다)에 의하여 이루어진다. 또 범위에 관한 언급은 법개념에 해당하거나 포섭되는 사례군 또는 개별 사례들의 예시에 의하여 이루어진다.112) 법률주석서를 보면 우리는 이점을 알 수 있다. 형법상 문서위조죄(형법 제267조)의 구성요건에서 중요한, “문서”라는 개념을 가지고 다시 설명해보기로 한다. 우리의 대표적 형법주석서에서는 “실질적 의미에 있어 문서란 유체물과 결합되어 일반인이나 당사자가 인식할 수 있는 생각의 표현물로서, 법적 거래에서 문서 자체에 외적으로 존재하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하여 작성되고 작성자가 서명하였거나 작성자를 알 수 있는 모든 것을 말한다”고 되어 있다(문서개념의 정의). 그리고 뒷부분에서는 “판례가 소위 증명표찰…. 등을 문서로 본다”는 점을 언급하고 있다(범위를 특정하기 위한 사례군의 예시, 그러나 이어 증명표찰이란 개념을 위하여 특별한 정의를 추가하고 있다). 나아가 증명표찰의 사례군으로서 개별적 사례들을 예시하고 있는바, “예컨대, 자동차에 있어 차대번호, 엔진번호 및 형식표시, … 포도주병의 코르크 마개에 있는 표시…. 그림에 있는 작가의 서명 등이 증명표찰에 해당하는 것들로서 문서”라는 것이다.113)

Ⅱ.

이상으로써 해석의 궁극적 결과, 보다 정확하게는 외적 측면만을 언급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이는 어느 정도 정당하다. 이제 더 나아가 해석은 보다 깊이 있게 추구되어야 하고, 법조문의 의미를 파악하여야 하며, “이해”에 이르러야 하는 것은 아닌지? 이해로서의 해석에 의하여 비로소 법규의 내적인 실질적 내용이 명백해지고 파악되는 것은 아닌지? 오늘날 이론에 의하면 정신과학의 기본적 특징은 명백히 의미와 이해에 있다고 할 것이므로, 법규의 진정한 의미와 진정한 이해를 추구하여야만 법학을 정신과학이라고 믿게 만든다.114) 그렇다면 이제 의미파악과 이해는 법학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

여기서 “의미”란 개념을 철학에서와 같이 설명하고자 한다면 불가능하다. 이는 가장 어려운 문제 중의 하나에 속한다. 몇 년 전에 출간된 “존재의 의미”에 관하여서란 연구논문은 처음부터 “의미”에 관하여 16개의 뜻을 구분하고 있다.115) 또 이해라는 일반적 철학적 개념도 다종다양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반면 우리가 고전문헌에서 법률“해석학”이라고 쓰여진 것들은 상당히 이론적이고 형식적인 것들이다.116) 따라서 우리는 추상적인 논의에서 시작하기보다는 구체적인 사례를 통하여 법규의 의미와 이해에 대한 법률가의 연구를 알아보고 그로부터 해석학의 문제영역으로 들어가 보도록 한다.

우리는 우선 법전이 확실한 것이라고 전제한다. 법전비판의 문제는 기본적으로 법적, 논리적 성격을 띤 것이 아니므로 여기서 우리는 이에 관하여 언급하지 않기로 한다. 법률이 정형화된 관보를 통하여 공포되고 있는 오늘날 형식과 방식을 감안하면, 법전을 확정하는 문제에 있어서 어려움은 거의 생기지 않는다.

이제 우리는 법적 해석, 의미파악과 이해의 방법론을 우선 새로운 사례 하나를 들어 예시해보기로 하는데, 이 사례는 장물죄에 관한 것으로 우리가 잡고 있는 특정 목표를 위하여서는 아주 유용한 사례라고 생각한다. 해석이 문제가 되는 조문은 형법 제259조인바, 그 중에서도 우리의 관심이 되는 부분은 몇몇 단어에 불과하다. 제259조는 “타인이 절취하였거나… 위법한 행위에 의하여 취득한 물건을… 영득할 목적으로 매수하거나 기타… 알선한 사람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벌금형에 처한다”라고 되어 있다. 이 조문 가운데에서 우선 “… 위법한 행위에 의하여 취득한”이란 개념이 우리의 관심 대상이 된다. 이를 해석함에는 기본적으로 어려움이 있다. 우리가 이 조문의 실용적 측면, 다시 말해 “위법한 행위에 의하여 취득한”이란 개념의 내용과 범위에서부터 시작한다면, 무엇보다도 이러한 취득이 위법한 “본범(本犯)의 행위”에 의하여 “직접적”으로 이루어진 것인지, 아니면 간접적인 취득만으로도 충분한 것인지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문제제기에 관하여는 앞의 111쪽 이하, 142쪽 이하 참조). 특히 범위(적용범위)와 관련하여서는, 절취하였거나 또는 기타 범죄행위로 얻은 물건뿐만 아니라 그 물건을 가지고 취득하였거나 교환한 물건도 “… 위법한 행위에 의하여 취득한” 물건이 되는지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이에 대하여 하나의 예를 든다면, 보석절도범으로부터 훔친 보석들 중 하나를 선물 받은 사람이 장물범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훔친 돈이나 훔친 물건을 팔아 만든 돈으로 보석을 사서 선물하였다면 – 그 정을 알고 – 선물을 받은 사람도 장물범인가? 사람들은 이를 “대상(代償)장물죄”로 논하고 있는데, 여기서는 장물죄가 훔친 물건 그 자체(돈 등)에 관계된 것이 아니라 그것을 대신하는 물건(훔친 돈으로 산 보석)에 관계되어 있다. 이러한 대상장물죄도 259조의 의미에서 가벌적인 장물죄인가? 이것이 문제로다! 이에 대한 긍정 또는 부정은 “위법한 행위에 의하여 취득한”이란 개념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달려있다. 라이히 재판소는 아주 오래된 판결(RGSt 2, 444)에서 “제259조의 명백한 문언에 의하면… (당시 규정되어 있던)117) ‘형사상 처벌할 수 있는 행위를 수단으로 취득한 물건’에는 형사상 처벌할 수 있는 행위에 의하여 직접 취득한 개개의 구체적 물건만이 해당하고, 이러한 결함과 직접 관련이 없고 그에 대신하는 물건 등은 결코 그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판시하였다. 이러한 제한적 해석에 대하여는 많은 학자들이 비판을 제기하였고, 그 가운데에는 금세기 가장 중요한 형법학자 중 한 사람인 에른스트 베링(Ernst Beling)도 포함되어 있다. 베링은 “훔친 물건의 대가, 훔친 돈으로 구입한 물건, 훔친 돈으로 교환한 물건 등도 절도행위에 의하여 취득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 이유는 본범의 행위와 물건의 취득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면, 그 물건은 본범의 행위를 ‘수단으로’ 본범으로부터 취득한 것이기 때문이다.” 훔친 물건을 사용하는 행위는 선행 행위, 즉 “형사상으로 처벌할 수 있는 행위”와 거의 같다고 할 것이다.118) 주의할 점은 베링은 형법 제259조의 “어의(Wortsinn)”를 라이히 재판소와 다르게 파악하려고 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그가 문제로 삼은 것은 “문리적”해석이라 불리는 부분이다.119) 그러나 우리 사례에서는 – 다른 부분에서도 항상 그러한 것처럼 – 이러한 문리적 해석으로는 명확한 결론을 이끌어내지 못한다. “의하여”(구법에서는 “수단으로”)란 개념은 모호하고, “문언”만으로 보면 베링의 견해나 라이히 재판소의 견해나 모두 다 성립이 가능하다. 통설에 의하면 “어의”에 관하여는 처벌이 문제로 되는 한 결코 그 한계를 벗어나지 않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법률 없으면 형법 없다(위 84쪽 이하 참조). 그러나 법률가는 이것만으로 충분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법률가는 – 어의의 다양성이란 한계 안에서 – 다른 방법으로 해석을 전개한다. 여기서 장물죄의 체계적 지위가 언급된다. 이에 관하여서는 처음부터 두 가지 가능성이 존재한다. 장물죄를 “사후공범(auxilium post delitum)”의 한 유형으로 보아 공동정범, 교사범, 방조범과 같은 공범의 규정에 나란히 배열할 수도 있다. 또한 장물죄를 절도죄, 강도죄, 공갈죄 및 사기죄와 같이 본질상 독립된 범죄의 한 유형으로 볼 수도 있다. 우리 형법전은 그중 후자를 선택하였다. 형법은 장물죄를 범인은닉죄와 함께 형법전의 각칙(各則) 부분에서 앞서 언급한 범죄유형의 한 가운데에 편재하고 있다. 이것으로부터 무언가 제259조의 의미를 이해하는데 결론이 도출될 수 있는가? 실제로 마우라하(Maurach)는 그의 형법각론에서 “공범에서 떨어져 나와 독자적 범죄로 편재된 과정”을 들어 장물죄의 범죄행위는 “본범이 그의 행위로 취득한 물건 그 자체”에 한정할 필요가 있다는 결론을 이끌어내려고 하였다.120) 이에 반하여 예컨대, 메쯔거(Mezger)는 법전에서의 체제는 우리 문제를 위하여서는 아무런 해답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반대의 결론, 다시 말해 “대상장물죄”의 가벌성이란 결론을 끌어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121) 이러한 모호성에 직면하여 우리는 다른 해석의 수단을 찾아 방향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되는데, 이점은 벌써 마우라하에게서도 발견되는 것으로 장물죄의 역사적 연혁과 제259조의 “입법사”를 말한다. 여기서 이점을 상론(詳論)한다는 것은 물론 불필요하다. 메쯔거는 앞에서 인용한 논문에서 이점을 다루었다. 우리는 1870/71년 제259조가 성립하게 된 역사적 과정에 대하여 단지 프로이센 형법전에서 장물죄 조항이 수정되어 받아들여졌다는 점만을 지적하기로 한다. 우리 형법 제259조의 모태가 된 프로이센 형법전의 조문(제237조)은 “절도한 것이거나, 횡령한 것이거나 기타 범죄행위를 수단으로 취득한 것임을 알고 그 물건을 매수하거나… 은닉한 사람”이라고 되어 있었다. 당시 조문은 라이히 재판소의 견해가 제시하는 방향,
다시 말해 대상장물죄의 가벌성을 반대하는 관점에서 보다 분명하게 표현되었다. 왜냐하면 구체적 사례군(절도한 것이거나, 횡령한 것이거나)을 앞에 예시함으로써 “기타 범죄행위를 수단으로 취득한”이란 일반적 구성요건의 의미를 명확하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범죄행위로 직접 취득한 것을 상정하였음이 분명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1870년 형법전이 장물죄의 규정을 보다 추상적으로 제정함으로써 대상장물죄도 처벌이 가능한 것으로 확장해석을 할 여지를 제공하였다고 할 수도 있다. 이러한 해석은 프로이센 형법전에는 없었으나 1870년 라이히 형법전에는 명시적으로 규정된, 장물범도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행동하여야만 한다는 요건을 놓고 보면 근거가 있기도 하다.122) 따라서 제259조의 입법사와 관련하여서도 해석은 모호하게 이루어질 뿐이다. “어의”와 “체계적 지위”는 물론이고 “입법사” 또한 명백한 결론을 유도하지는 못한다. 문리적 해석도 체계적 해석도 역사적 해석도 모두 성공하지 못하였다. 그렇다면 또 다른 방법으로는 실질적인 결론에 도달할 수 있는가? 사실 오늘날 법률가들은 지금까지 열거한 해석방법론보다는 소위 “목적론적” 해석방법론에 어느 정도의 우위를 부여하려고 하는데, 이는 법률 규정의 목적, “이성”, “기본사상”을 탐구하여 그로부터 “의미”를 조사하려고 하는 방법론을 말한다. 이 경우 “의미”는 목적이 된다. 우리 장물죄의 예와 관련하여서는, 장물죄란 도대체 무슨 목적을 위하여, 그리고 무슨 이유에서 처벌되는가 하는 점이 분명하게 밝혀져야 한다. 흔히들 형벌 규정은 공공에 손해를 가하는 행위를 방지하려는데 목적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장물죄는 어느 한도에서 공공에 손해를 가한 것이고, 어떤 점에서 가증스러운 면이 있으며, 무슨 이유로 처벌되어야 하는가? 유감스럽게도 이런 물음에 대하여는 절대적으로 명확한 해답이 없다. 오히려 최근 어느 정도는 중요한 “이론”으로까지 발전한 두 개의 문제해결 가능성이 제시될 뿐으로, 이는 장물죄의 개념에 관한 연혁에서도 이미 다소나마 그 대립을 볼 수 있었다. 요컨대, 장물범은 본범, 예컨대 절도범이 행한 침해상태를 계속 유지시키므로(“영구화시킨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처벌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장물범이 절취된 물건을 취득하게 되면, 소유자가 그 물건을 되찾는 것이 어렵게 된다는 것이다. 법률적으로 정확하게 표현한다면, 장물죄의 본질은 “본범에 의하여 만들어진 위법한 재산상태의 지속”에 있다는 것이다.123) 이러한 이론을 바탕으로 하여 라이히 재판소는 대상장물죄의 처벌성을 부인하였는데, 많은 학자들도 이를 지지하였다. 그 이유는 대상장물범은 외견상 장물범일 뿐 사실은 장물범이 아니고, 그가 취득한 물건도 본범이 형사상 유책하게 취득한 물건이 아니라 본범에 의하여 침해된 물건과는 전혀 무관한 물건이기 때문이다. “장물죄의 본질이 본범에 의하여 만들어진 상태의 지속에 있다고 한다면, 장물죄는 본범이 직접 ‘취득한’ 물건과 같은 유체물에 대하여서만 성립할 수 있다”(객체동일성의 요건).124) 그러나 장물죄의 본질에 관하여는 또 다른 이론이 제기될 수 있는데, 이는 앞서의 유지설 또는 영속설에 대립하여 “이익설” 또는 “이욕설”이라 하는 것이다. 장물죄의 유책성은 다른 사람이 저지른 형사상 유책한 행위를, 의식적으로 이익을 얻기 위하여 이용하는 것, 간단히 말해 흙탕물 속에서 물고기를 낚는 것과 같은데 있다고 한다. 장물범은 본범에 기생하는 범인, “절도범의 뚜쟁이”이다. 그런 이유에서 처벌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예컨대, 1794년 프로이센 일반 란트법 2권 20장 제83조에 분명하게 나와있는데, 장물범은 “범죄가 완료한 뒤 인식하고 인용하면서 범죄의 이익에 참여하는” 사람이라고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형법 제259조의 문언에서도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는데, 그에 의하면 장물범은 영득할 의사로 행동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다. 갈라스(Gallas) 또한 이익설을 지지하고 있는데, 장물죄의 본질은 “재산상 이익을 지키기 위하여 처벌하고 있는 바로 그 본범이 만들어 놓은 과실(果實)에 자기의 독자적 이익을 가지고 참여하는 것”이라고 한다. 메쯔거도 최소한에 있어서는 이 이론의 정당성을 인정한다.125) 이익설의 관점에서 보면, 장물죄의 경우 본범에 의하여 직접 위법한 방법으로 얻어진 물건을 취득하였는가 하는 점은 중요하지 않다. 장물죄는 본범이 본죄와 밀접한 관련 하에서 얻은 물건을 취득함으로써 “형사상 유책한 취득이란 잘못”을 내포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따라서 어느 일정한 한도까지는 대상장물죄도 처벌되어야 한다. 훔친 돈으로 구입한 물건이나, 그 역인 훔친 물건을 팔아 번 돈, 나아가 그 돈으로 구입한 물건, 끝으로 훔친 돈과 바꾼 돈 등도 장물죄의 객체가 될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 예컨대 본범이 20마르크 짜리 지폐 5장을 훔쳐 그 중 1장을 준 것이나, 100마르크 짜리 지폐를 훔쳐 은행에서 20마르크 짜리 지폐 5장으로 교환한 뒤 그 중 1장을 준 것이나 현실적으로 차이가 있는지? 후자의 경우에도 전자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수령인은 형사상 처벌받아야 하지 않는지? 물론 사람들은 이익설을 도덕적인 것으로, 그리하여 보다 법률적이지 못한 것으로 의심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장물죄의 처벌성을 도덕적 관점에 근거시킬 수는 없는지 하는 해석의 새로운 문제가 제기된다. 제259조를 해석하는데 도덕적 형법론과 엄격한 법적 형법론 사이의 논쟁이 끼여든 셈이다.

여기서는 장물죄의 본질과 대상장물죄의 처벌성에 관한 여러 이론적 논쟁을 종식시키고,126) 이익설의 관점에서 대상장물죄의 처벌이 무한히 확대되는 것과 관련하여 그 한계를 설정하자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관심사는 오로지 해석과 이해의 방법론 및 본질에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시야를 좁혀 지금까지 예시된 사례에서 해석과 이해에 관하여 무엇을 얻을 수 있고, 무슨 문제가 남아 있는지 묻기로 한다.

우리는 우선 여러 해석의 방법론과 근거를 대략 기능적인 측면에서 살펴보았는바, 그것은 언어의 의미에 의한 해석(“문리적” 해석), 사상적 관련에 의한 해석(법률에서의 어느 한 조문과 그에 관련된 조문들이 다른 조문들과 갖는 “논리적”, “체계적” 해석), 역사적 관련, 특히 “입법사”에 의한 해석, 끝으로 조문의 이성, 목적, “근거”에 의한 해석(“목적론적” 해석) 등이다. 사비그니 이후 이 4가지 해석방법론은 다소의 변형이 있기는 하나 법률해석학에서 거의 불변의 진리에 속하였다.127) 에네케루스의 중요 저서인 “민법교과서”에는,128) 해석이란 “문법과 언어관용례를 고려하고” 또한 “법률기술적 표현방식”을 특별히 고려하여 밝혀지는 법률의 문언에서 출발하여, 그 문언과 함께 조문의 내적 관련성, 그것이 존재하는 위치, 다른 조문과의 관련성(이는 논리적, 체계적 해석을 칭한다), 나아가 그것이 법률 이전에 있었던 상태, 역사적 연혁 및 특히 법률 소재에서 결과하는 입법사, 끝으로 특별한 법률 목적 또는 개별조항의 목적(이는 목적론적 해석을 칭한다) 등을 존중해야 한다고 하고 있다. 그러면서 결론에 있어서는 작품의 가치 또한 중요하고, 법은 전체문화의 한 부분일 뿐이고, 따라서 법률조항이 의심스러울 때는 우리의 사회생활이 요구하는 바와 우리의 전체문화가 발전되어 가는 방향에 가장 부합되게 해석하여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그러나 내 개인 생각으로는 이점은 목적론적 해석에 편입될 수도 있다). 비슷한 설명은 다른 유사한 교과서들에서도 볼 수 있다. 물론 개념론과 목적론에 있어 많은 논의가 있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법원이 대체적으로 이와 비슷한 관점에 입각하여 실무를 수행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129)

논리적 해석이론으로 발전된 법률해석학에 관하여 우리는 아주 간략하게만 고찰할 수 있다. 소위 문리적 해석에 대하여는 우선 그것이 마치 의미해석과 구별하여 순수한 문자해석인 양 오해가 되풀이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예컨대, 쯔바이게르트(Zweigert)는 “해석의 첫째 단계라 불리는, 의심나는 규범의 문자해석은 대개 성과가 없다… …오히려 의혹은 규범의 의미를 탐구함으로써만 – 이점에 관하여는 견해가 일치한다 – 해소될 수 있다”라고 말한다.130) 그러나, 문언의 의미에 의한 해석과 그 외 다른 의미에 의한 해석의 대립만이 있을 뿐이다.131) 문리적 해석의 중심과제인 문언의 의미132)에 관하여는 항상 일상생활에서 언어의 의미를 찾으려는 견해와 법률기술적인 언어의 의미를 찾으려는 견해 사이에 갈등이 존재한다. 여기서 해석의 방법론은 입법의 방법론에 따라 달라진다. 헤겔은 말하길, 법이란 불법도 마찬가지이지만 본질상 독재자 디오니시우스가 그런 것처럼 너무도 어렵게 제정되기 때문에 일반 시민이 알아볼 수는 없고 그것에 전문적으로 교육을 받은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다고 하였다.133) 그러나, 빈딩은 “법률적 표현이 분명하지 않을 때 일상언어의 의미를 결합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만큼 어리석음은 없다… …법개념은 내용이 명확해야 하고 한계가 분명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법은 “자기의 고유언어”로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일상언어보다 더 분명한 한계를 지닌 “법률기술적 의미”가 항상 문제되는 것이다.134) 그러나, 우리는 법률에서 쓰고 있는 법률기술적 표현이 빈딩이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분명하지는 않다는 점을 익히 알고 있다. 입법자는 자주 동일한 단어를 같은 법률 또는 다른 법률 속에서 다른 의미로 사용하기도 한다. 예컨대 “공무원”, “점유”, “소유권”, “공공성”, “과실” 등의 경우가 그렇다. 여기서 사람들은 “법개념의 상대성”을 이야기한다(뮐러-에르쯔바흐).135) 이는 그때그때마다 서로 다른 체계와 목적론적인 관련 속에서 개념을 고찰하기 때문에 생기는 결과이다. 이 경우 순수한 “문언해석”은 체계적, 목적론적 해석에 의하여 뒤로 밀리게 된다.

이제 체계적, 목적론적 해석과 관련하여서는 다음과 같은 점을 지적할 수 있다. 두 방법론은 외견상 그런 것보다 더욱 다양하다고 생각해야 한다. 논리체계적 관련성136)이라 함은 그때그때마다의 구체적 사상과의 관련하에서 법개념이 지닌 의미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고(예컨대, 횡령조항의 범위 안에서 점유개념이 지닌 의미), 더욱이 해석의 기반이 되기에는 충분하나 법률에서 법규가 갖는 외형적 지위만을 뜻하는 것도 아니다(예컨대, 우리 형법전에서 위증죄 다음에 무고죄를 규정한 체제로부터 무고죄도 위증죄와 마찬가지로 사법제도에 대한 범죄행위를 주된 목적으로 한 것이지, 개인의 명예에 대한 범죄행위를 목적으로 한 것은 아니다라는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다). 오히려, 그것은 전체 법체제의 다른 요소들과 다양하게 관련되어 개별 법규에 숨어있는 전체적 법사상에 관련된 것이라 할 것인바, 예컨대, 장물죄는 총칙의 공범에 관한 규정(형법 제25조 이하), 범인은닉죄(형법 제257조), 재산범죄(사기, 공갈 등), 취소불가능한 소유권취득에 관한 사법규정 등등과의 관련하에서만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133쪽 이하에서 예시한 사안에서도 민법 제816조는 무권리자의 처분행위에 관한 규정과 관련하에서 이해될 수 있었다.) 법규는 대부분 다른 규범과의 관계 하에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고 다른 규범을 궁극적으로 보완하는 임무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모든 법규가 전체법질서와 의미관련성을 갖는다는 의미는 곧 목적과 수단의 관계에 있다는 뜻이므로, 체계적 해석은 목적론적 해석과 구별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모든 법규의 의미관련성이란 체계적 해석임과 동시에 목적론적 해석에 속한다. 그러나 항상 그런 것만도 아니다. 예컨대, 인과응보적 정의의 관점에 서있는 형벌의 체계 안에서 형벌이 갖는 의미는 체계적 의미규정으로 이해해야지 목적론적 의미규정으로 이해하여서는 안 된다. 반대로 법규가 추구하는 목적이 법질서 밖에 존재한다면(예컨대, 교양 있는 사람의 배양), 우리는 이를 목적론적으로 해석해야지 체계론적으로 해석하여서는 안 된다.

그 외에도 목적론적 해석137) 그 자체는 다차원적 방법론이라 할 수 있다. 법규가 추구하는 목적이 법규 자체 내에 존재할 수도 있고, 법규 외부에 존재할 수도 있다. 전자의 경우에는 법질서의 한 부분에서 제기된 문제를 다른 부분에 의하여 해결하는 것이 중심이 된다. 따라서 절도, 강도, 재물손괴죄에 관한 형법규정이 민법의 소유권규정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면, 형법은 궁극적으로 민법에 종속된 법률로 볼 수 있다. 절차법은 궁극적으로 실체법에 종속된 법률이다. 후자의 경우에는 생활 그 자체를 법에 의하여 형성하는 것이 주된 문제이다. 형벌과 행정처분은 인간을 규제하고 교육하기 위한 수단이다. 모든 법규범이 특정한 하나의 목적에 봉사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소박한 사고일 것이다. 목적도 급박한 것과 급박하지 않은 것, 저급한 것과 고급의 것 등이 존재한다. 목적이라는 개념은 가변적이고 다의적이다. 그것은 내용에 따라 유책한 행위에 대한 반대동기의 형성과 같은 구체적 실제적 효과에서부터 법적 안정성의 보장, 평화의 건설, 공공질서의 유지, 사회공공복리, “생존권 보장”, 인간성, 법적 거래에 있어 신뢰의 보호, 형평감각의 만족, 사법의 신속 등등과 같은 추상적, 이념적 목표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예컨대, 판결의 효력, 경찰의 존재, 사형의 폐지, 법률행위에 있어 착오에 관한 규정, 무권리자로부터 선의취득의 인정, 기결수에 대한 사면 등과 같은 제도는 이러한 이념적 관점에서 보장되고 이해되어져야 한다. 특히 개별적인 독립된 이익뿐만 아니라 복합적인 상호 충돌되는 이익도 해석의 목적론적 관점에서는 고려될 수 있는바, 이러한 복합적인 이익충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서는 “반대의 이익”도 고려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나중에 한 번 더 살펴보겠지만 이익법학에서는 – 적어도 필립 헥이 부여한 의미에 의하면 – 목적론적 해석이란 이익충돌을 법률의 기준, 가치, 우월성에 근거하여 방법론적으로 해소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아무리 확장하여 보아도 목적론적 해석의 이념은 보충이 필요한 것으로 남는다. “목적”이 언제나 해석의 궁극적 원리를 제공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마지못해 이념과 권력을 목적이라 생각하고 공식화한다면, 이들 또한 법규범을 해석하고 이해하는데 있어서는 결정적 근거가 될 수 있다. 이 경우 우리는 윤리적 원칙(책임에 대하여는 보상(報償)을!), 정의와 평등의 요청, 정치적 세계관의 주장,138) 폭력과 증오 같은 비이성적 권력 등을 고려한다. 바로 대상장물죄의 처벌과 관련하여서도 우리는 도덕적 관점이 드러난다는 사실을 보았다. 아무튼 목적론적 해석의 개념만으로는 너무 좁다는 생각이다. 이 때문에 목적론적 해석에 갈음하여 “인과적” 법사상이 주장되기도 하였다.139) “원인을 찾아 해석하는 것”이 아마도 “목적을 찾아 해석”하는 것보다 더 포괄적이므로 더 적합할 수도 있을 것이다.

끝으로, 입법사를 통한 해석에 관하여서도 몇 마디 언급할 수 있다. 이 경우에도 현재에서 역사적 원인을 찾아 나서는 것이므로 관점의 폭은 넓을 수밖에 없다.140) 이는 다른 법률과 관습법에서 초안(草案)이나 원형을 찾아 규정을 해석하려는 시도만은 아니고, 법률 조항의 정치적, 경제적, 세계사적 원인을 밝히려는 것만도 아니며,141) 다분히 우연한 “법률 원인(occasio legis)”을 찾아내는 것만도 더욱 아니다. 빈트샤이트(아래 191쪽 참조)와 같은 “주관주의자”도 “얻을 수 있는 모든 요소를 고려하여 가능한 한 완전히 입법자의 정신 속으로 들어가도록” 요구한다. 말하자면 “입법자에게 현존하였던 것으로 인정될 만한, 법률의 제정 당시 존재하였던 법적 상태”를 고려해야만 한다는 것이다.142) 특별히 입법자에게 존재하였던 목적을 발견하기 위한 것이라면 목적론적 해석과 역사적 해석은 한 가지가 된다. 이외에도 법률조항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하여서는 그 정신사적 배경과 전통적 의미를 찾으려고 노력하여야 한다. 예컨대, 기본법 제103조에 규정되어 있는, 앞서 여러 번 언급하였던 죄형법정주의란 기본원칙도 계몽주의 시대에 있어 그 역사적 연원을 되돌아 볼 때에만 올바르게 이해되고 해석될 수 있는 것이다. 나아가, 민법의 채권법은 로마법의 역사적 전통과 관련하여서만 이해되고 해석될 수 있고, 물권법은 상당 부분 게르만법의 역사적 전통과 관련하여서만 이해되고 해석될 수 있다. 또한, 간통죄와 같이 개개의 개념들 역시 거기에 맞추어 해석되어야 할 나름대로의 전통적 모양을 갖추고 있다. 물론, 빈트샤이트가 주장한 바와 같이 입법자의 역사적 동기가 중요한 의미를 갖는지는 의회입법에 있어서는 매우 의심스럽다(이에 관하여는 뒷부분 참조!).

처음 장물죄의 예를 들어 설명한 다음 그 일반적 의미로 전개된 해석방법론에 관하여 우리는 이 자리에서 더 많은 것을 언급할 수는 없고 그 의사도 없다. 쯔바이게르트는 우리 법학의 해석방법론에 있어 흠은 여러 해석방법론 가운데 “확실한 우열”이 분명하지 않다는 점에 있다고 주장하였는데 이는 정당하다.143) 사비그니는, 문리적, 논리적, 역사적, 체계적 요소는 “사람이 자기 기호에 따라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는 네 가지 해석방법론이 아니라, 해석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서로 공통의 효과를 지향하는 여러 방법론들에 불과하다”고 말하였는바,144) 이는 교묘한 방법으로 문제를 덮은 것이다. 우리는 여러 방법론의 결과들이 서로 모순되는 경우, 예컨대 어의와 체계적 관련성이나 입법의 연혁이 서로 다른 결과로 해석되는 경우를 예상해야만 한다. 개개의 사안에서 어떤 해석방법론을 끌어들인다거나 우선시킴에 있어 자의가 지배하는 것은 아닌지? 쇼이얼레(Scheuerle)는 “실제 사안에서 법을 적용함에 있어 해석론이 제공하는 모든 방법론을 마음껏 이용하는 것이 바로 해석의 중추적 기능이다”라고 하였는바, 이는 법원의 실무에서 충분히 고려될 수 있을 만한 절차, 말하자면 구체적 사안마다 만족할 만한 결과에 이르게 되는 해석방법론을 선택하는 그러한 절차를 정당한 것으로 보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145) 우리는 여기서 판결을 법감정에 충실한 결과에 도달할 때까지 임의로 생각하여 근거시켜야 한다는 자유법론자(물론 최근의 이사이)의 주장을 새삼 검토해보아야 한다.

사실 문제는 훨씬 복잡하다. 여러 해석방법론들 가운데 우열을 확정하기 위한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주로 – 예컨대, 판덱텐 학자인 빈트샤이트와 레겔스버거(Regelsberger) – 어의(語義)에 우선을 두어왔다. “분명하고 명백한” 어의에 반한 시도로서의 해석은 더 이상 “해석”이라 할 수 없다는 관점에서 바로 어의를 우선적으로 구속력이 있는 것으로 보았다. 단지 “다의적인” 어의의 경우에만 그것도 부수적으로만 다른 해석방법론이 성립될 수 있을 뿐이다.146) 소위 “해석론(Andeutungsthorie)”은 어의의 의미를 약화시킬 수는 있어도 해석의 한계로서 어의의 의미를 존중할 것을 요구한다. 해석에 의하여 탐구된 의미는 여전히 법률의 “문언”과 일치되어야 하고, 어느 정도는 법률에 “표현되어 있어야” 한다.147) 이는 죄형법정주의의 기본원칙과 관련하여 특히 형법에서 통설적으로 주장되는 입장이기도 하다. 따라서, 심야에 악의적으로 전화를 거는 행위는 어의에 의하면 “주거에의 침입”이 아니기 때문에 형법 제123조 소정의 주거침입죄에 해당하는 것으로 볼 수 없다. 대부분의 민법학자들은 어의를 벗어나는 것은 더 이상 해석이 아니라 유추라고 생각한다.148) 물론, 목적법학과 이익법학이 득세하면서 목적론적 방법론이 “자구해석”에 우선하여 보다 전면에 부상할 수 있었다. 고래로부터 알려져 있는 “법이 의미를 상실하면 법 자체가 효력을 상실한다”라는 원칙에 따라 법률의 목적과 동기가 어의보다 더 중요하게 되었다. 매우 다양한 문언의 한계 안에서뿐만 아니라 이러한 문언의 엄격한 틀을 벗어나거나 또는 상당히 포괄적인 법률이해의 한계 안에서 “이성”이 관철되었다.149) 후자의 경우 사람들은 이를 확장(확대) 또는 축소(제한) 해석이라 하였다. 이에 반하여 사람들 중에는 매우 다양하게 주장된 소위 “헌법에 합치하는 해석”이란 테두리 안에서 보다 조심스럽게 이론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이는 “문언”이 다의적인 경우에만, 그리고 또 처음부터 협의의 또는 광의의 해석이 허용되는 경우에만, 해석의 대상이 된 조항이 헌법과 그 원리에 합치하는 결론에 이르도록 어의에 맞는 판단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이 경우 다의적 어의가 기본전제이긴 하여도, “문리적” 해석에 의하여 법률에서 직접 얻어지는 어의에 반하여 해석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헌법에 합치하는 해석”이 이루어지게 되면, 이는 결과적으로 앞서 164쪽에서 언급하였던 “법규의 전체 법질서와의 의미관련성”이 체계적 해석으로 고려되어 순수 “문리적 해석”에 도움을 주고 궁극적으로 해결점을 제공하는 것으로, 이 경우 위 의미관련성은 헌법의 우월적 지위와 독점 배타적 효력에서 그 무기를 가져온다는 점에 그 특징이 있다.150)

아무튼, 우리는 여기서 해석방법론의 우열관계에 관하여 철두철미하게 다룰 필요는 없으나(이에 관하여는 171쪽 주 43 참조), 그중 하나인 역사적 해석에 관하여는 다시 한 번 되돌아보아야 할 점이 있다. 한쪽에서는 해석방법론 사이에 확실한 관계를 정하기 위한 노력이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이를 위한 모든 것이 해석론의 입장에서는 아무런 확실한 이론적 근거도 제시하지 못하므로 무의미하다고 집어치우는 부분도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모든 해석방법론에 대하여 그에 알맞은 권한과 특정한 논리적 지위를 부여하기 위하여서는 보다 심오한 이론이 필요하다.151) 이러한 이론을 우리는 다음에서 살펴보기로 한다. 전통적 해석방법론으로는 – 대상장물죄의 예에서 보여준 바와 같이 – 결론에 있어 다소간 모호한 부분이 남기 때문에 이러한 이론만이 우리에게 한층 더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

또, 다른 방식의 논의라야 기본을 심도 있게 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구체적 사례를 통하여 해석의 유형과 방법을 음미해보았다. 우리는 의심스러운 법적 문제(대상장물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문리적, 체계적, 목적론적, 역사적 해석을 우선 알아보았다. 그러나 범위를 국한할 필요는 없다. 엄격한 이론을 위하여서 뿐만이 아니라 법에 대한 우리의 전반적 입장에서 법조항을 이해하는데 유익한 점을 일깨우기 위하여서도 법률가는 해석을 함에 있어 단순히 실무가의 관심을 벗어나 순수한 정신과학에서 이해란 무엇인지를 연구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또한 법률적 일상생활에서 “해석”이라 불리는 것뿐만 아니라 고차원적 의미에서 진정하고 절대적인 의미가 무엇인지 다루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할 수도 있는바, 이 경우 우리는 철학적 또는 문화역사적 또는 정치적 입지에까지 이를 필요가 있다.152)

이제 우리는 다음 장에서 중점적으로 다루어야 할 논의의 핵심으로 들어왔다.

 

제5장 법규의 해석과 이해, 입법자 또는 법률?

근대 철학에서는 “이해(Verstehen)”의 개념을 다양하게 구별한다. 표현된 내용의 의미를 파악하는 진정한 “의미이해”와 표현자의 동기를 이해하려는 “동기이해”를 구별한다(찜멜, 막스 베버153) 등등). 비슷한 방식으로 야스퍼스는 관념된 내용의 “정신적 이해”와 동기에 의한 “심리적 이해”를 구별한다.154) 표현된 개성과의 정신적 만남을 이해의 궁극적 목표로 간주하기도 한다(로타커, 볼노프155)). 물론, 야스퍼스는 정신적, 심리적 이해를 넘어 실존적, 형이상학적 이해의 개념을 인정하고,156) 볼노프 또한 “실존과 실존과의” 교감에 관하여 언급하기도 한다.157) 여기서는 이해를 수단으로 하여 물적인 것에서 인적인 것에로, 외적인 것에서 내적인 것에로 도달하려는 욕망을 읽을 수 있다고 한다면, 반대로 딜타이는 “영구히 고착된 삶의 표현” 그 자체, 특히 문자로 표현된 유물을 그대로 이해하는 것을 상위의 개념으로 보았다. 그에게 있어서는 “문자로 남겨진 인간 실존의 해석과 설명이 이해의 기법에서 가장 중심”으로 부각한다. 여기서는 문헌학이 기초이자 이해의 가장 중요한 기법이다.158) 그러나 뵈크흐는 그의 “엔찌클로패디아(Enziklopädia)”에서 문헌적 이해를 흔히 인용되는 표현으로 “인식된 것의 인식”(보다 정확히 말해 “인간 정신에 의한 산물, 즉 인식된 것의 인식”)으로 묘사하고 있다.159) 딜타이가 “정신이 만들어낸 것만 이해한다”고 말한 그대로이다.160) 이를 근거로 문헌적 해석이 경험적 방법론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라드부르흐는 그의 법철학에서 “문헌적 해석이란 주관적으로 관념된 의미, 현실의 인간이 현실적으로 관념한 사상 등 구체적 사실의 확인을 목표로 한다”고 말하고 있다.161) 그러나 나아가 그는, 근대문학에서는 위와 같은 문헌적 해석에서 점점 벗어나서 “문학작품의 객관적으로 타당한 의미탐구”에 주력하여, 칸트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 다소 훈육적인 – 학풍에서 표현되는 바와 같이 “작가 스스로가 이해하는 것보다 더 잘 작가를 이해하게 되었다”는 점을 덧붙이고 있다.162) 이러한 보다 나은 이해에 관하여 위대한 시인들 역시 때론 회화적으로, 때론 진지하게 언급하고 있다. 세익스피어의 “폭풍(Sturm)”에서 곤잘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대들은 그대들이 의도한 것보다 더 진실 되게 말하였다.” 이에 대하여 세바스챤은 다음과 같이 답하고 있다. “그대들은 내가 그대들에게서 기대하는 것보다 더 현명하게 나의 말을 이해하였다.”163) 괴테의 “짜멘 크세니언(Zahmen Xenien)”에서는 다음과 같은 이행시(二行時)가 알려져 있다. “해석은 언제나 신선하고 활기 넘쳐! 그대들이 해석하지 않아도 다른 뜻으로 해석된다.”164) 앙드레 지드는 늪지(Paludes)란 작품에서 아주 훌륭하게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나의 책을 설명하기보다는 다른 사람이 나에게 그것을 설명해주길 기대한다. 나의 책을 설명하려 한다는 것은 바로 그 책의 의미를 제한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말하고 싶은 것을 알고 있다 하더라도 바로 그것을 우리가 말했는지는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항상 이것(DAS)이란 것 이상을 말한다. 내가 이것에 대하여 관심이 있는 것은 내가 깨닫지 못하고 부여하였던 것이고, 내가 신의 부분이라고 표현하고 싶은 무의식의 부분인 것이다. 책은 작가의 부분이 작으면 작을수록, 신을 맞이하는 부분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욱 값어치가 크다. 우리는 모든 면에서 사물의 본질이 드러나고, 대중으로부터 우리 작품이 낱낱이 전달되길 기대한다.”165) 마찬가지로 우리는 T. S. 엘리엇에게서 다음과 같은 표현을 읽을 수 있다. “‘영감(Inspiration)’이란 단어가 어떤 의미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말하는 사람이나 쓰는 사람이 완전히 이해하지도 못한 무엇인가를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다.”166)

이제 우리는 법률적 해석과 법률적 이해를 이러한 정신적 영역에서 어디에 위치시켜야 하는가? 우선 법사학자와 법이론가의 목적을 구별해야 한다. 법사학자에게는 연구를 통해 법원(法源)의 의미내용을 뛰어넘어 법률과 법관습의 동기에 도달하고(동기이해), 경우에 따라서는 법형성 작업에 관여한 인격체와 정신력의 실체를 설명하고(“인성이해” 등), 궁극적으로는 법이 생성된 모든 역사적 상황을 밝혀내야 할 의무가 있다. 이러한 모든 것이 법사적(法史的) 이해의 본질적 모습에 해당하고, 반면 라드부르흐가 “객관적 의미의 동기연구”, “작품을 통한 집단적 정신사”로서 파악하고, 처음 헤겔에 의해 – 사상체계를 그 “사물적 관련구조” 하에서 발전시키고, 그 역사적 산물을 하나의 논리적 과정으로 이해하며, 하나의 정신적 소산인 것처럼 객관적 정신의 과정을 명백히 파악하려고 함으로써167) – 선재(先在)한다고 관념된 것은 진정한 역사적 이해라기보다는 역사철학적 “의미이해(Deutung)”라고 해야 할 것이다. 법사학자가 법원(法源), 특히 법률을 대하는 것은 정치사가(政治史家)가 정치문서를 대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엠스(Ems)의 우편속달물(역자 주: 1870년 프로이센왕 빌헬름 1세가 비스마르크에게 보낸 전보, 보불전쟁의 발단이 됨)이란 역사적 문서를 하나의 사례로 든다면,168) 역사가는 이 문서에서 “국왕 폐하께서는 더 이상 프랑스 사신의 접견을 거절하고, 당직 부관을 통하여 그에게 더 이상 전할 게 없음을 말씀하셨다”라는 문장으로부터 비스마르크가 생각하고 의도한 의미를 우선 새기려고 한다. 이 경우 역사가는 아베켄(Abeken)이 엠스에서 베를린으로 우편속달물을 어떻게 보냈는지를 조사하여 위 문서의 의미와 원래 문서의 의미를 비교하고, 그렇게 하여 어떤 부분이 빠지고 어떤 부분이 변경되어 “제안 수용의 신호(Chamade)”가 “전쟁의 신호(Fanfare)”로 바뀌었는지를 인식하려고 한다(“위조”라고 말한다면 이는 잘못이고 부당하다). 이제 중요한 것은 알려진 대로의 우편속달물을 그 역사적 관계에서 분석하고, 그것을 유럽문제에서 프랑스 정부를 외교적으로 굴복시킬 목적으로 계산된 (프랑스 정부의) 어떤 요구에 대한 회신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역사적 이해는 또한 표현된 것으로부터 분명히 어떤 반응의 기대를 포함한다. 나아가 비스마르크 행위의 동기, 그의 인격에 대한 심리적 이해, 비스마르크 자신이 생각한 것과 또 오늘날 우리가 생각한 역사적 상황, 당시의 지배적 사상이란 단순한 의미로 이해된 “시대정신”의 연구에로 이른다.

법률의 역사적 이해도 사실상 관념 되고 의도된 의미에서 시작하여, 그 다음 최근의 역사적 관계를 해명하고, “동기”를 규명하고, 입법자의 목적을 문제시하고, 마지막으로 법률적 발전의 전 역사적 기반과 정신적 상황을 탐구하는 등으로 이와 동일 또는 비슷하게 이루어진다. 이런 의미에서 실제 빈트샤이드는 “달성할 수 있는 모든 요소를 참작하여 가능한 한 완전한 입법자의 정신 속에서 이해하라”고 해석자에게 지시할 수 있었다(Pandekten § 21).

그러나 동일한 처방을 법이론가에게도 내릴 수 있는 것인가?169) 법이론가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법률 그 자체의 실질적 내용이고, 이 경우 우선은 법률의 실천적 효력, 법개념과 법규의 내용과 범위, 그 다음으로는 법률의 정치, 윤리, 문화적 의미 등이 문제된다. 모든 역사적 요인은 이러한 실질적 내용의 하위에 종속되고 이용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법률의 역사적, 문헌학(文獻學)적 해석은 잘못된 것이고, 법률적 해석의 목적은 오로지 “법규의 객관적으로 타당한 의미”를 명확히 하는 것이라고 결론을 내리는 것은 너무 성급하다. 오히려, 법률 해석론의 중심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이다. 법률의 실질적 내용, 그와 함께 “해석의 궁극적 목표”가 일회적(一回的)인 과거의 역사적 입법자의 “의사”를 통해 법이론가가 – 역사를 위해서가 아니라 사실 그 자체를 위해서 – 법사학자의 업적을 쫓아 나가는 방식으로 결정되고 확정되는 것인지, 아니면 법률의 실질적 내용은 그 자체와 그 “문자” 속에서 “법률의 의사”로서, 객관적 의미로서, 역사적 입법자의 “주관적” 관념 및 의사와는 무관하게, “객관적” 정신에 속하는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필요한 경우에는 독자적으로 활동하고 전개될 능력을 갖춘 그런 것인지? 이러한 문제를 중심으로 법률적 해석론은 오늘날까지도 – 간략하게 불러 주관주의 이론과 객관주의 이론으로 – 논쟁을 벌이고 있다.

논쟁의 상황을 자세히 설명하는 것은 불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견해의 대립에 관하여 과거에는 주관주의 이론이 통설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주관주의자로는, 사비그니(해석이란 “입법자의 관점에 입각한 사상 속에 이입되어 그의 활동을 기술적으로 반복하는 것이다”; 213쪽), 빈트샤이드(해석이란 “입법자가 그가 사용한 언어를 가지고 결합시킨 의미를 확인하는 것이다.” 해석은 “가능한 한 완전한 입법자의 정신 속에 이입되어 생각하기 위하여 모든 것을 해야 한다.”; § 21),170) 레겔스버거(“법률은 입법자의 의사를 표현한 것이고, 법률의 내용은 입법자를 통해 인식할 수 있는 의사, 즉 입법자의 의사인 것이다”; 143쪽), 에네케루스(“법률로 표현된 입법자의 의사가 법규이다”; Enneccerus/Nipperdey, I 1, § 54 II), 비어링(VI, 230쪽 이하),171) 헥(“법률해석의 정당한 방법은 역사적 명령과 이익의 탐구이다”; Gesetzesauslegung, 59쪽), 베링(법률가는 “법률을 제정한, 경험상 구체적 인간이 가졌던 가치관념, 즉 고전적 해석론의 의미에서 ‘입법자의 의사’를 추구하는 것이다”),172) 슈탐러,173) 페트라쉐크(§ 30), 그리고 나비아스키 174)등이 있다. 그러나 수 십 년 전부터는 이른바 객관주의 이론이 완전히 전면에 등장하였고, 그것도 특히 입헌주의 및 민주주의와 눈에 띌 정도로 나란히 등장하였다. 민족사회주의 하에서는 “지도자 원리”가 주관주의 해석론을 정당화한 것으로 보는 한 약간의 후퇴도 있었다.175) 이미 전세기 말 빈딩, 바흐, 콜러와 같은 위대한 법률가들이 벌써 객관주의 입장을 옹호하였다. 오늘날 객관주의 이론은 – 비록 다양하게 전개되고는 있지만 – 완전히 통설이 되었다.176) 고작해야 바톨로메직, 담과 라렌쯔 같은 학자에게서 중도적 입장이 발견된다.177) 우리는 이제 객관주의 이론의 대표자 한, 두 명을 특별히 부각시킬 의도는 없고, 이 이론의 기본적 사상을 독자에게 설명하고자 한다.178)

입법행위와 함께 법률은 그 제정자로부터 독립하여 객관적 존재로 고양된다는 것이 객관주의자들의 설명이다. 제정자는 자기 역할을 다하고 자기가 만든 작품의 뒤로 퇴장한다. 작품은 다름 아닌 법전이고, 이는 법률의 “언어로 표현된 의사”, “법률언어의 잠재적이고도 실재적인 사상내용”인 것이다. 이 법률에 내재한 사상과 의사의 내용만이 장래 준거가 될 뿐이다. 왜냐하면 이것만이 합헌적으로 현실화되었고 법규화된 것이며, 반면 법률제정자의 그 주변 관념이나 기대는 어떠한 구속력도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입법행위에 참여한 사람 또한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이제부터는 법률에 복종하게 된다. 입법자는 자기의 의사를 법률언어로 표현하고, 이렇게 법률로 표현된 의사를 자기 의사와는 상관없이 타당하고 효력을 갖도록 내버려두어야 한다. 법률에 합체된 의미는 – 법률에 대하여 의결권을 갖는 의회 의원들의 입장을 결코 지지할 수 없는 그런 무엇을 일반인이 생각하였다면, – 입법자가 법률을 제정할 때 생각하였던 것 이상의 의미일 수도 있다. 법률 자체와 법률의 내용은 역사상의 모든 과거처럼 정지된 것이 아니라(“과거는 항상 정지되어 있다”), 활동적이고 가변적이며, 따라서 현실에 대하여 적응력을 지니고 있다. 법률의 의미는 법률이 전체 법질서의 구성요소이고 법질서의 통일성을 근거로 끊임없는 변화에 직면하므로 가변적일 수밖에 없다. 새로 개정되는 조항의 의미가 낡은 조항에 효력을 미쳐 낡은 조항의 의미를 변화시킨다. 전체 법질서의 변화가 기존의 법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생활의 조류가 법을 변화시키기도 한다. 새로운 기술, 경제, 사회, 정치, 문화, 도덕적 현상이 기존의 법규에 근거하여 법적인 평가를 요구한다. 법은 역사적 입법자가 전혀 알 수도 생각할 수도 없었던 현상과 상황에 대처하도록 강요받으면서 이러한 현상과 상황을 극복해간다. “법은 제정되자마자 사회의 흐름 속에 편입되어 그때부터 내용적으로 변화되어 간다.”179) 바로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법률에 대하여 역사적 입법자가 이해하였던 것보다 “더 나은 이해”를 할 수 있는 상황이 된다. 현재 부닥친 문제를 위해 수십, 수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이제는 더 이상 우리와는 무관한 입법자의 정신 속에서 그 입장을 새겨 보는 것이 우리의 과제일 수는 없다. 해석은 미래에 대한 것이지(interpretatio ex nunc) 과거에 소급하는 것은 아니다(nicht interpretatio ex tunc). 법률이 제정되고 우리가 법률에 의하여 규제되어야 할 여기, 지금 이 순간부터 우리는 법률로부터 이성적이고, 합목적적이고 타당한 것을 끌어내야 한다.180) 현실에 가깝고 시대에 부합하는 해석이야말로 법학의 과제인 것이다. 시야를 과거로 돌릴 것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지향해야 한다. 법적용자를 입법자에 복종하는 봉사자 정도로 치부한다면, 이는 법적용자를 비하(卑下)시키는 것이다(소위 주관주의자인 헥은 “생각이 있는 복종(das denkende Gehorsam)”이란 개념을 사용하였다). 우선 법관은 국가에 있어 “제3 권력”의 담당주체로서 입법자와 동등한 권한이 있다. 법관은 객관주의적 해석을 통해 법률을 그 자체로서 타당하게 함으로써 자신의 독립성을 지켜나간다. 결론적으로, 입법자의 “개인적” 의사가 “역사적” 해석의 이념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고 할 때, 오늘날 입법자가 갖는 의미는 궁극적으로 무엇인가? “현대국가에 있어 입법자는 다수의 인격과 다수의 의사합치로 구성된 무형의 존재이다.”181) 그러나 법률의 의미는 독자적이고, 자기모순이 없는 의미일 수밖에 없다.

객관주의자들의 주장은 대충 위와 같이 비슷하다. 라드부르흐(Radbruch)가 가장 주목할 정도로 그 주장을 요약한 바 있다. 우화, 마술, 수사학, 스콜라 철학, 종교 수식어, “성서주의”, 현대문학 등에서 객관적 해석의 유사성을 지적한 사람도 라드부르흐였다.

그렇다고 하여, 해석론의 문제가 궁극적으로 해결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객관주의에 대하여는 이미 헥에 의해 거론된 무시 못 할 반론이 존재한다. 헥은 무엇보다도 객관론의 핵심이자 항상 되풀이 되어온 4가지 주장, 다시 말해 “의사론”(의사능력이 있는 입법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형식론”(오로지 법률의 형태를 구비한 의사표현만이 법적 효력을 갖는다), “신뢰론”(수범자, 법복종자는 표현 그 자체를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 “보충론”(오로지 객관적 해석만이 법의 보충과 형성의 실익에 적합하다)을 공격의 도마 위에 올렸다. 여기서 그 논쟁을 상세히 다룰 수는 없으므로, 우리는 객관론의 주장에 대한 주관론의 반박으로 헥과 몇몇 다른 학자를 지적해두기로만 한다.182) 내 개인적으로 보아 문제해결에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관점들을 언급하는 것으로 우리는 그치기로 한다.

우선 비유와 비교법을 다루는데 있어서는 주의해야 할 부분이 있다. 라드부르흐는 문헌적 해석에서 법률적 해석에 이르는 과정을 선박에 비유하여, “출발직후에는 도선사(導船士)의 안내에 의해 예정된 항로를 진행하지만 망망대해(茫茫大海)에 이르러서는 선장의 지시에 따라 독자적 항로를 개척하는 것”으로 설명하였다.183) 사람들은 또한 입법자와 법률의 관계를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 비유하여, 처음에는 가정에서 부모의 정신 속에 안주하였다가 점점 독립하여 자기의 생각과 결심으로 부모와 대립하는 것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이러한 비유는 비록 설득력은 있을 수 있으나 확신을 가져오지는 못한다. 다른 학문과의 비교법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문학이 근자에 문헌적 해석을 뛰어넘어 “작품의 객관적 타당한 의미의 탐구”를 지향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이 비록 정신과학에 있어 흥미로운 부분이긴 하나, 이러한 사실은 사람이 인간 정신세계에 있어 보편타당한 법칙을 믿는 경우에만 다른 학문에서도 확신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논리적으로 신중한 사람은 개별 정신과학의 해석방법론을 검토한 뒤 보편적 법칙성이 분명한 것인지를 음미할 것이다. 신을 상실한 우리시대에 있어 아직 영적인 징표를 보여주는 문학이나 예술작품과 감정이 없고 현실지향적 작업의 산물인 법규와 사이에는 아마도 커다란 차이가 있을 것이다.184) 따라서 문학이나 예술작품을 해석함에 있어서는 – 아주 문제가 없거나 위험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 법률의 영역에서보다 “더 나은 이해”를 추구하는 해석이 허용될 여지가 있다. 정신세계의 다른 영역을 둘러봄으로써 “해석”이란 개념이 본래 주관적, 역사적 해석에 고착된 것이 아님을 가르치고 싶을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해석”이란 언어나 다른 상징에 의해 표현된 개인적 사상을 이를테면 “본질부합적으로” 밝혀내는 것이고, 사상의 원소유자로부터 독립된 의미파악은 본래의 뜻과는 다른 것으로, 말하자면 언제나 다른 사람의 언어에 편승하여 자기 유리한 대로 재인식하게 되는 “자기 고유한 정신”의 의미관여 내지 의미형성을 의미한다고 생각하고 말 것이다. 다른 학문을 둘러봄으로써 알게 되는 바와 같이, “해석”이란 단어나 개념은 주관적, 역사적 해석과 함께 객관적 해석을 포함할 만큼 관대하다. 따라서 해석이란 단어와 개념 및 본질이 우리의 문제에 궁극적 해답을 주지 못한다고 한다면, 해석론의 논쟁에 있어서도 무엇을 선험적으로 분명한 것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정당한 해석방법론, 다시 말해 해석의 궁극적 목표에 대한 물음이 전적으로 주관주의론 또는 객관주의론의 관점에서 해결될 수는 없고, 오히려 해석방법론은 부과된 그 구체적 과제에 의존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옳다고 할 수 있다. 법에 관련하여 말한다면, 이는 정당한 방법론이란 해석의 법률적 기능, 해석자의 법률과의 구체적 관계, 경우에 따라서는 법질서의 구조 및 실정법의 조문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소믈러(Somló)는 “법해석의 기본이론”과 “법해석에 관한 법규정의 내용”을 구분하고 있다.185) “어떤 특정한 법적 내용도 해석의 필요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는 원칙(해석금지 불능의 원칙)은 전자에 속하는 것으로 선험적으로 타당하고, 이에 반하여 후자는 그렇지 않다. 그러나 소믈러는 바로 주관주의론과 객관주의론의 대립의 문제를 후자에 속하는 것으로 열거하여 이를 실정법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보았다. 물론 사람들은 이러한 보편적인 법률적 해석규정에 큰 비중을 두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법사상사를 통해 입법에 대해 너무 순진한 사고의 유물 정도로 알게 된 무의미한 “해석금지”(정확하게는 주석금지)의 형식에서는 그 효과도 미미하다.186) 해석자는 입법자의 의사에 엄격히 구속되어야 한다고 어떤 법률적 해석규정이 정하고 있다면, 이는 타당하고 의미 있는 규정이긴 하나, 입법자의 진정한 의도를 이유로 또는 그 명백한 의도를 알 수 없다는 이유로 객관주의 해석론이 파고드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반대로, 해석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객관적 의미를 조사해야 한다고 어떤 해석규정이 정하고 있다 하여도, 사람들은 역사적 입법자의 의도를 조사해보아야 객관적 의미를 가장 잘 알 수 있다는 이유에서 역사적 입법자의 의도가 조사의 대상이 되는 것을 종종 경험할 수 있다. 그 외에도 법률적 해석규정 자체가 해석을 필요로 하기도 한다. 이 경우 사람들은 그 해석규정을 해석하는데 스스로의 해석규정을 다시 적용해야 하는지? 여기서 자기모순187)을 두려워해야 하지 않을까? 입법자가 스스로 객관적 해석원칙을 지지하여 자신의 의사가 구속력을 갖지 않기를 원한다고 정한다면 어떤가? 주관주의와 객관주의론 사이의 논쟁은 법률적 해석규정 자체를 해석하는 데서부터 생긴다. 예컨대 1934. 10. 16. 조세조정법(Steueranpassungsgesetz) 제1조와 관련하여 이런 문제가 발생하였다. 이 조항은 “조세법은 민족 사회주의적 세계관에 따라 해석되어야 한다”고 규정하였다. 이는 객관주의를 선언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지도자원리도 민족 사회주의적 세계관에 속하는 것이고, 이 지도자원리란 것이 주관주의적 해석방법론을 지향하였으므로(법률이란 “지도자의 의사”이다), 주관주의적 해석론이 조세조정법 제1조의 법률적 해석규정에 근거가 될 수도 있다. 이와 함께 위 규정의 일반화가 가능한지 하는 문제도 제기된다. 위 규정이 오로지 조세법에만 적용되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법에도 적용되는 것인지? – 추상적인 법률의 해석규정 못지않게, 사람들이 법률해석이라 하는 “유권 해석(authentische Interpretationen)”이란 것도 해석문제의 해결에 보탬이 되지 않는다. 이는 해석으로 밝혀야 하는 구체적 규정을 위하여서만 의미가 있다; “사람들이 법률해석이라고 부르는 것은 또 하나의 새로운 법원칙을 세우는 것이다…. 그 자체가 다시금 학문적 해석의
상이 될 뿐이다.”188)

법률적 해석규정이 우리에게 있어 별 의미가 없고, 한편으로 선험적 원칙들이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하여도, 이미 언급한 해석의 법률적 기능은 정당한 해석방법론의 규준으로서 여전히 타당하다. 순수 학문적으로 지향된 해석은 모든 방법론을 이용할 수 있고 또 마땅히 그래야 한다. 법이론가는 원한다면 순수 역사가의 입장을 받아들일 수 있고, 여러 객관적 관점에서 법전의 가능한 내용을 묻고 “이성적”, “합목적적”, “현실부합적” 의미내용에서 그것이 무엇을 담고 있고 무엇을 가르치는지 제시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역사적인 것이든 객관적인 것이든 이러한 의미내용이 실무상 법적용에서 얼마나 구속력을 갖느냐 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189) 실무가와 실무에 봉사하는 이론가에게 중요한 이러한 문제는 국가권력의 관계, 한편에서는 입법, 다른 한편에서는 사법의 기능을 고려하고, 특히 사법이 법률에 대하여 가지거나 가져야 할 지위를 고려함으로써만 대답되어질 수 있다. 우리가 여기서 법관에 대하여서만 생각한다면, 무엇보다도 법관이 한 국가에서 어떠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고 법률과의 관계가 어떻게 규율되고 있는가 하는 점이 중요하다.190) 절대군주에 봉사하는 자로서 법률을 다루는 법관이라면, 군주의 의사가 곧 법이므로, 법관은 “주권자인 군주의 개인적 의사를 추구해야” 하고, 따라서 주관주의 방법론에 따라 해석해야 한다는 점은 이미 여러 번 고찰한 바 있다.191) 민족 사회주의적 나치 국가에서도 비슷한 사고가 대변되었다. 삼권분립(三權分立)과 복수정당제 하의 합헌주의적 또는 민주주의적 국가에서는 사정이 다를 수 있다.192) “일반적 헌법상황이 해석학적 법률이해에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은 분명히 옳다.193) 심지어 혁명 이후에 해석방법론이 신법에 대한 것과 구법에 대한 것으로 이분화(二分化)되는 현실도 상상할 수 있다. 구법은 상황에 따라 객관적 방법론에 의해 혁명으로 만들어진 새로운 환경에 적합하도록 적용되고, 반면 신법은 권력을 장악한 혁명주의적 입법자의 의사에 완전히 일치되게 해석된다.194) 그러나 사안을 너무 그리 간단하게 두어서도 안 되고, 의회민주주의 헌법제도 하에서는 객관적 해석방법론이 유일한 방법론이라고 단순하게 주장해서도 안 된다.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민주주의에 있어서 조차도 의사결정적이고 정치결단적인 입법의 의미를 과소평가하는 것이고, 어떤 의미로는 입법자의 의사를 따라야 하고, 입법자가 국가 전체를 통합하여 세운 지시를 따라야 하는 국가의 다른 권력에게, 남용과 “분열”의 위험성이 내포된 너무 많은 독자적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195) 객관주의적 해석론은 국민대표의 의사만이 정당한 법률적 형식으로 표현될 뿐이라고 주장하는데, 이러한 구속력이 있는 의사란 파악할 수 있는 실체가 못된다고 하는 소위 의사론과 형식론적 결합에 의한 비판을 무엇보다도 과소평가 한다.196) 나도 객관주의 해석론의 이러한 입장을 지지하긴 하나, 국민대표란 법률을 심의하고 표결하면서 어떤 특별하고 독자적인 의미를 법규로서 제정하는 것이 아니라, 본래의 법률제정자가 애초 그들이 작업한 법전에 대하여 부여하고, (법률제정의) “위임과정”에서 공표된 의미를 받아들이는 것뿐이라는(소위 “계약설”),197) 비난이 분분한 견해와 더불어 이를 지지한다. 나는 여기서 “텍스트의 문제(Materialienproblem)”를 깊게 다루지는 않겠다.198) 그러나 텍스트는 법률이 아니라는 흔히 듣게 되는 반론은 나의 주목을 끌지 못하는데 그 이유는, 텍스트는 법률을 제정하는 경우 생각되었던 것들을 인식하는데 확실한 참고 자료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순수 주관론을 관철한다고 하여도 이것은 텍스트와 그 성립과정의 확실한 이해 없이는 생각될 수 없다. 오히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다음과 같은 것이다: 역사적 입법자는 확고부동하고 다만 법률에서의 표현내용이 분명하지 않은 경우 우리는 역사적 입법자의 의사를 무시하여도 괜찮은 것인지? 역사적 입법자의 의사가 파악될 수 없는 경우에는 벌써 “합리적” 의미가 등장하게 되고, 이에 대하여 사람들은 의심스러울 때는 그러한 합리적 의미가 역사적 입법자에 의해 의욕된 것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금방 주관론이 참된 이론이 아니라고 배척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나는 모든 문제는 궁극적으로 해결되지 않고, 모든 진정한 다른 근본적 문제와 마찬가지로 결코 해결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우리는 시대에 부합하는 판단을 위하여 언제나 새로운 요구에 직면한다. 역사적 입법자의 의사로부터 독립하여, 법전을 현실에 가깝고, 합리적이며, 목적에 적합한 의미가 되도록 법관이 보충하는 것을 정당하게 하는 관습법이 형성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검토될 수도 있다. 우리 “입문서”는 어떤 확정적 이론을 제시하는 것을 과제로 하지 않는다. 문제를 제기하고 그 해답이 있는 방향을 그저 제시할 뿐이다.199)

우리는 이제 주관주의와 객관주의 해석론 사이의 논쟁에 관한 논의를 그만하고, 몇 가지 결론을 내리기로 한다:

1.) 우리는 우선 앞장 끝 부분에서 분명해진 바 있고, 이 장의 논의의 시발이 되었던 논점에 관하여 다시 한 번 생각하여보자. 우리는 이론적이며 실천적인 이해, 본질적으로 관념되고 의욕된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역사적 해석, 그리고 현실에 가까운 의미전개 등을 어떻게 올바른 관계 속에 가져올 수 있는가를 간략하게 제시하였다고 믿는다. 또한, 본래의 해석목적에 관한 이론적 논쟁 속에서 분명한 근거가 있는 입장만이 전통적 해석방법론(문법적 해석, 체계적 해석, 목적론적 해석)과 함께 성과 있는 작업을 가능하게 한다는 사실도 분명해졌을 것이다.200) 우리가 다시 한 번 장물의 대상취득죄에 관한 좋은 예로 돌아간다면, 아마도 앞에서 기술한 방법론에 해석목표의 역사적 규정이나 객관적 규정 중 하나를 선택하여 합성함으로써 확실한 판단을 쉽게 얻을 수 있다고 하는 사실이 보다 분명하게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해석의 모든 단계, 다시 말해 문법적, 논리체계적, 목적론적 해석의 단계에서 형법 제259조가 장물의 대상취득죄에 적용될 수 있는가를 판단하기 위하여서는, 기본적으로 제259조를 입법한 “입법자의 의사”가 중요한 것인지, 아니면 “법률 자체의 의사”가 중요한 것인지를 우리가 알고 있지 않는 한, 문제는 모호하고 미해결로 남는다. 이 모든 단계에서 우리는 양자택일, 즉 입법자 또는 법률의 선택에 직면한다. 입법자가 그의 표현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였는지, 아니면 법률의 문언은 그 자체 어떤 의미를 갖는지? 또 논리체계적 관계란 입법자의 목적에 의하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아니면 법률 자체 안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또 역사적 법률가는 어떤 목적을 추구하였는지, 아니면 법률에는 어떤 목적이 내재하는지? 자가당착으로 들리지 모르지만, “연혁”이란 것조차도 사람들은 이를 역사적으로 엄밀하게 조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법률자료를 입법자의 현실적 사상과 목적을 입증하는 방법으로서만 평가하지 않고, 오히려 객관적으로 의미 있는 역사적 구성의 근거로 이용하면서, 객관적인 “이해”를 추구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한 가지 특정한 해석론을 결정하는 순간 어의(語義), 체계적 관계 및 목적에 관한 문제 또한 보다 확실한 형상을 갖는다.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그들 문제가 그 자체만으로는 항상 다의적이라 한다면, 어의나 관계 또는 목적의 배후에 역사적인 개인의사를 조사해야 하는지, 아니면 현실에 가까운 합리적 판단을 추구해야 하는지를 우리가 안다 할 경우 모양은 달라진다. 그 해답을 위하여서는 항상 어려움이 따르고 의혹이 남는다 하여도, 문제는 분명하게 제기되었고, 해답의 방법론도 분명해졌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해석목표와 해석과정을 하나로 통합하여, 주관적 문법적, 또는 주관적 목적론적, 또는 객관적 목적론적 해석방법에 관하여 말하는 것이다.201)

2.) 돌이켜, 주관주의와 객관주의는 혼자만으로는 완전하게 해석과 이해의 방법론을 설명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유념해야 한다. 예컨대, 내가 주관주의적 관점에 선다고 하여도, 어디에 중점을 두어야 하는지, 다시 말해 역사적 입법자의 주관적인 “명령내용”(입법자는 어떤 구성요건과 법률효과를 고려하고 있는지?), 그의 “목적”(입법자는 그가 정한 규정에 의해 적게는 어떤 효과를, 많게는 어떤 효과를 목표로 하는지?)202) 및 그의 전체적 관념(입법자는 어떤 이념과 원칙에 의하여 지배를 받는지?) 중에서 어디에 중점을 두어야 하는지 하는 문제는 항상 남는다. 객관주의적 관점을 취하여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특히 객관론에서는 법률에 객관적으로 내재하는 의미를 구체화시킨 기준으로서 목표와 관점에 관하여 진지한 고려가 필요하다. 객관적으로 합리적이고, 정당하고, 합목적적이고, 시대에 부합하고, 현실에 가까운 것으로 법전에서 얻어질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원하는 목표를 아는 경우에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또한 다음과 같이 말할 수도 있다: 법률의 올바른 이해는 우리가 우리 자신을 올바로 이해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우리가 판단과 그를 뒷받침하는 실질적 근거에 관하여 먼저 개념을 잡고, 준비한 경우에만, 우리는 이러한 판단이 어느 정도 잠재적 의미로서 법률문언에 “내재”하는지의 문제를 법률과 함께 다룰 수 있는 것이다. 법규정의 실체에 관한 견해가 근대에 들어와서는 다양하고 심도 있게 변하고 있기 때문에 여기서 유용하고 치밀한 연구의 장이 펼쳐지고 있다. 이점을 분명히 하기 위하여, 우리가 객관주의 입장을 취한다고 가정할 경우, 장물의 대상취득죄의 예에서 과거에는 “가벌적 행위에 의해 취득한”이란 문언이 언어의 관용례에 따르면 무엇을 관념한 것인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장물취득죄에서 어떤 법익과 이익이 보호받을 가치가 있는지 하는 문제를 제기하는 것만으로도 아마 충분하였을 것이다. 오늘날에도 이러한 것이 문제가 되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우리는 그 동안 문헌적 법학뿐만 아니라 좁은 의미에 있어 목적론적 법학, 다시 말해 이익보호를 중심으로 한 법학마저 극복해왔다. 법 일반, 특히 형법은 우리에게 단순히 이익을 보장하고, 이익갈등을 해결하는 것으로서 뿐만 아니라 도덕적 사상을 지닌 것으로 존재한다. 위증, 음행매개와 장물의 죄 등에서 법적으로 비난하는 내용은 명확하게 규정된 “보호가치 있는 이익”이 침해되었다는 점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들 범죄에 의해 법이 보장하도록 부과된 도덕질서가 훼손되었다는 점이 함께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H. 마이어는 다음과 같이 적절하게 말하고 있다: “범죄는 법익침해이나, 이점을 넘어 도덕질서의 참을 수 없는 침해이기도 하다.”203) 한동안 사람들은 형법에서 단순한 이익침해를 넘어 가벌적 행위의 실질적 불법의 내용을 표현하기 위하여 “규범적 행위전형(normativer Tätertyp)”이라는 개념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우리는 물론이고, 형법의 입법자에게도 가장 중요한 범죄의 구성요건에 있어서는 범죄행위와 그 배후에 있는 행위자의 유형 및 의도 등에 관하여 많든 적든 통속적 관념이 분명하게 지배하는데, “법률적 구성요건”을 해석함에 있어서는 이러한 관념을 고수하여도 무방하다. 예를 들어 전형적인 “살인자”, 전형적인 “사기꾼”, 전형적인 “음행매개자” 등이 존재한다. 규범적 행위전형의 대표적 지지자인 담(Dahm)은 장물의 대상취득죄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형법 제259조를 장물의 대상취득의 경우에도 적용할 수 있다는 점은 국민적 관점에서 보아 절취된 100 마르크짜리 지폐를 교부 받은 사람뿐만 아니라, 50 마르크짜리 지폐 두 장을 교부 받은 사람도 장물아비라는 데에 근거가 있다.”204)

비록 1945년 이후로는 이러한 “규범적 행위전형”론이 쇠퇴하긴 하였으나, 그 가운데에는 하나의 올바른 핵심, 다시 말해 범죄의 경우에 있어서는 외부적 결과뿐만 아니라, 기본적으로 행위자의 의도 또는 아버지, 공무원 등등과 같이 특별한 신분적 의무 등의 다른 요인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포함되어 있다. 또한, 오늘날 자주 요구되는 예외적 상황과 반대이익에 대한 고려도, 예컨대 의학적으로 처방된 임신중절의 경우에 그러한 것처럼, 우리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이익형량”의 단순한 행위로서가 아니라, 모든 요소를 고려하여 사회윤리적으로 필요한 범위에서 사안을 평가하는 행위로서 이해되는 것이다. 그러나 범죄의 본질에 관하여 새로운 이론이 등장할 때마다 그것은 객관론의 관점에서 보아 해석이 취할 방향에 영향을 끼친다는 점은 분명하다. 장물의 대상취득은 – 이익보호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사회윤리적 평가의 관점에서 보아 – 오늘날의 관념에 따르면 장물죄에 해당할 수 있으므로, 형법 제259조의 “잠재적 어의”가 그를 포함한다는 근거에서 형사상 처벌받아야 하지 않을까? 단지 주관적, 역사적 해석의 경우에만 위와 같은 도덕적 관념이 형법 제259조를 제정하는데 있어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는지를 묻게 될 것이다. “객관적 해석”이 사법의 법률적 구속과 법적 안정성에 대하여 어떤 위험을 불러일으키는지는 사람들이 그 형식을 현실적으로 진지하게 생각한다면 분명해진다. 이는 객관적 해석의 장점과 함께 끊임없이 따라 다니는 위험이기도 하다.205)

3.) 우리는 좀 더 포괄적 관련하에서 주관주의적 해석론과 객관주의적 해석론의 대립으로 드러나는 문제들을 정리해보아야 한다. 위에서 “확장적”(확대적) 해석과 “제한적”(축소적) 해석의 개념에 대하여 간단하게 언급하였던 바 있다. 이와 같이 자주 다루어지는 개념들조차도 뜻이 분명하지 않다. 이와 관련하여 최소한 서, 너 개의, 물론 부분적으로는 서로 관련된 사고방식을 구분해볼 수 있다.206)

a) 먼저 언어적 의미영역의 테두리 안에서, 사람들은 “가장 가까운”, “좁은”, “엄격한”, “제한된” 의미란 말과 “먼”, “넓은”, “확대된” 의미란 말을 대립시키고 있다.207) 장물죄를 예로 들어, “위법행위로 취득한”이란 개념은 “엄격한” 의미로 본범의 위법한 행위에 의하여 직접 취득된 물건만을 뜻하고, 이에 반하여 어의를 “확대”하여 말한다면, 위와 같은 물건의 대가 또한 “위법행위로 취득한” 것으로 보게 된다. 다른 예를 들어, “‘전과자’를 공직에서 배제하도록 한 규정을 회수나 종류를 불문하고 일단 형벌을 받은 사람은 모두 여기에 해당한다고 해석한다면, ‘좁은’ 해석이 될 것이고, 이에 반하여 아주 과거의 일도 아니고, 단순한 질서위반으로 처벌된 것도 아닌 그러한 형벌로 이해한다면, ‘넓은’ 해석이 될 것이다. 전자의 해석은 문언의 언어적 의미를 보다 좁게 유지하는 것이고, 후자의 해석은 덜 좁게 유지하는 것이다.”208) 사람들은 자주 확장해석이다 축소해석이다 하는 개념을 보다 자유롭게 가지고 다루면서, 입법자 또는 법률의 진정한 의사를 위하여 어의를 배제하는데 활용하고 있다.209) 물론 이와 함께 뒤에서 다루게 될 흠결보충, 법률정정과 해석 사이의 한계 또한 흔들리게 된다(227쪽 이하 참조).

b) 다음으로, 사람들은 위와 같은 개념의 짝에서 개별 조문이 갖는 어의와 그것이 적용되는 범위의 관계를 생각하기도 한다. 좁은(축소적) 해석은 조문을 넓은(확장적) 해석보다는 작은 사례의 범위에 관련시킨다. 우리의 법률은 자주 “원인(Verursachung)”이란 말을 사용하고 있다. 이 말은 “조건관계”란 의미로도, “전형적 관계”란 의미로도 해석된다. 전자의 의미에 따르면, 어떤 사람에게 아주 경미한 상처를 입혔으나 다른 복합적 요인으로 사망에 이른 경우에도 사망과의 인과관계가 인정되는 반면, 후자의 의미에 따르면, 전형적으로 보아 치명적이라 할 상처만이 사망과의 사이에 인과관계가 인정된다. 후자의 해석은 전자의 해석과 관련하여 본다면, 원인이란 개념을 제한하고, 그로 인하여 전체 법조문의 적용범위를 제한하는 결과, “축소적”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부르크하르트의 설명에 따라 앞에서 든 전과자의 예를 가지고 생각한다면, 이제는 a)에서 본 것과는 달리, 공직에서 배제되는 사람을 최근에 중하게 처벌된 전과자만으로 국한시켜 해석하면 이는 축소적 해석이라 해야 하고, 반대로 모든 전과자를 공직에서 배제한다고 해석하면 이는 확장적 해석이라고 해야 한다. 다른 예를 들어, 가벌적 행위에 착수한 사람이 “행위가 아직 발각되지 않은 시점에서 그 완성으로 인하여 생길 결과 발생을 스스로 방지한 경우”에는 형을 면제한다고 구 형법 제46조 제2항에서 규정하고 있었는데, 여기에 덧붙여 결과 방지가 절대적으로 자의에 의할 것을 요한다고 해석한다면, 이는 적용범위를 축소하는 해석일 것이고, 반면 법률에서는 “자의성”에 관하여 특별히 언급된 바가 없으므로 문언에 비추어 보면, 위와 같은 부가적 해석은 하나의 “확장”을 뜻할 것이다.210) 라이히 재판소는, 방화범이 책상서랍 속에 있는 종이에 심호흡을 하고 불을 놓았으나, 곧 누군가 다가오는 소리를 듣고 발각될 것이 두려워 서둘러 불을 끈 사안에서, 비록 행위가 문언에 따라 “아직 발각되지 않은” 경우라 하나, 제46조 제2호를 적용하지 않았다. 라이히 재판소는 이렇게 함으로써 법률에는 표현되지 않았으나 진정한 자의성을 요건으로 보아 제46조 제2항의 적용범위를 “축소” 해석한 것이다(RGSt 38, 402).

c) 위의 b)에서 전개된 개념 대립의 설명이 순수한 언어상의 설명이 아니라 내용상의 설명이라 하여도, 만약 법률조문과 그것의 적용범위의 외형적 관계만 중시한 것이라면 이는 아직도 형식주의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사람들이 해석을 시민적 자유나 주관적 권리의 향유 또는 일반원리의 현존과 법규범과의 관계에 결부시킨다면, 축소적이다 확장적이다 하는 해석의 구별은 실질적 의미를 얻게 된다. 때때로 사람들은 요컨대 “의심스러울 때는 자유에 유리하게”211) 또는 “예외는 확대되지 않는다”라는 원리가 타당하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형벌권, 소유권침해, 의무부과 또는 원칙에 대하여 예외를 인정하는 것 등은 가능한 한 제한되어야 한다는 식으로 형법, 소유권의 제한(저작권의 제한과 조세부과를 포함), 의무부과행위, 원칙에 예외를 인정하는 것 등의 규정이 해석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만이 좁은, 엄격한(축소적) 해석을 의미한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전과자의 개념에 대하여 a)에서 확장적이라고 한 해석은 “축소적”인 것이 된다. “음행매개자” 또는 “국민위해자(Volksschädling)”로서 너무 처벌이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하여 제창된 “규범적 행위전형”론을 지지하는 것이야말로 이런 관점에서 보면 전형적으로 “축소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규범적 행위전형론에서 문언의 의미는 완화되고, a)에서 설명한 의미로 보면 확장적 해석이 있는 것이다). 반면 현재의 구분에 비추어 보면, 자유를 희생하여 국가권력을 확대하거나, 주관적 권리를 침해하거나, 예외의 확대를 통해 법원칙을 과도하게 허물어뜨리는 해석은 “확장적”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장물의 대상취득죄를 처벌하는 것은 의심할 여지없이 형법 제259조의 “확장해석”이고, 반대로 가공(加工)물건의 취득을 장물죄의 구성요건에서 제외하는 것은 현재의 의미에서는 (위 b)의 의미에서도 마찬가지이나, a)의 의미에서는 그렇지 않다) “축소적” 해석이다. 구 형법 제46조 제2호에 대한 라이히 재판소의 해석은 자유라는 관점에서 보면, 그로써 가벌성이 확대되었으므로 “확장적” 해석이라 할 수 있고, 반면 위 b)의 구분에서 보면 축소적 해석이라 할 수 있다(이에 반하여 a)의 의미에서는 다시 확장적 해석이 된다). 또한, 생명 또는 신체에 대한 현재의 위난을 제거하기 위하여 행해진 가벌적 행위는 벌하지 못한다는 원칙이 타당하다고 할 경우(긴급피난: 형법 제35조 참조), 이러한 원칙의 확장은, 비록 긴급피난 원칙의 적용범위를 확대시키기는 하나 그것이 가벌성을 제한하는 한, 축소적 해석을 의미한다. 한편, 선원으로서 누구나 어떠한 상황에서도 생명의 위험을 감당할 의무가 있다고 한다면, 이는 이러한 (긴급피난의) 원칙의 예외를 뜻한다(선원법 제106조, 제109조 참조). 그러나 선원법(Seemannsgesetz) 제106조, 제109조와 같은 조항을 그 조항에서 직접 언급되지도 않은 사람들에게까지 확대하여 적용한다면, 비록 위 b)의 의미에서 형식논리적으로 보아 긴급상황을 받아들일 의무를 확대하여 형법 제35조의 긴급피난 규정의 적용범위를 제한하였다 하여 제한적 해석으로 인정될 수 있는 측면은 있으나, 이는 “예외는 확대되지 않는다”라는 원리에 반하는 것으로 확장해석을 의미한다.212) 마지막 예를 통하여 우리는 이미 강조한 바와 같이 “적용범위”란 개념의 형식적 특성뿐만 아니라 “원칙”과 “예외”의 상대성에 관해 깨우치게 된다. 선원법의 예외규정은 어떤 의미에서는, 예외의 예외, 다시 말해 긴급피난 행위의 예외적인 불가벌성의 예외라 할 수 있으므로, 가벌성의 원칙으로 되돌아 간 것이다.

이로써 우리는 이미 확장적 해석과 제한적 해석에 관하여 기존의 구분을 비판하는 한 가운데에 서게 되었다. 기존의 구분은 지금까지의 논의만으로도 그 자체 의문이 있다. 법률은 언어상으로 흔히 독자의 길을 걷고 법적으로 기술적인 개념들을 사용하므로, a)에서와 같은 구분법은 어떤 어의가 본질적으로 “가장 가까운” 의미인가가 불확실하여 자주 실패한다. b)에서와 같은 구분법은 너무 한 조문의 범위에 매달리므로 외형적이고 형식적이다. 여러 규정이 상호 보완관계에 있기에, 어느 한 조문을 제한하거나 확장한다는 것은 반대로 다른 조문을 확장하거나 제한하는 것이다. c)의 의미에 있어 원칙과 예외의 관계도 이미 고찰한 바와 같이 상대적이고, 심지어 자유의 개념조차도 경찰공무원과 “이에 대항하는” 시민 사이에 이익충돌이 있는 경우 시민의 자유뿐만 아니라 공무원의 행동의 자유 또한 함께 고려되어야 하므로, 상대적이다. “의심스러울 때는 자유에 유리하게”, “의심스러울 때는 국고에 불리하게”, 또는 “예외는 확대되지 않는다”라는 원칙 등은 확실한 것이 아니다. 자유주의적 법이론가인 부르크하르트와 나비아스키도 이점을 강조하였다.213)

d) 이러한 개념의 대립에 관하여, 지금까지는 뒷전에 밀려나 있었으나 이제부터 “입법자의 의사”와 “법률의 의사”란 개념과 함께 다루고, 또한 가장 정확하다고 할 수 있는 그러한 해석을 받아들이는 편이 아마도 올바를 것이다. 이때 법률의 문언은 입법자의 의사 또는 법률의 의사를 표현한 방법으로 이해되어 그에 따라 확대 또는 제한된다. 이야기를 단순화하여 주관주의론의 관점에서 내용을 설명해보기로 한다. 이미 사비그니(231쪽)는 확대해석과 제한해석의 구분을 오로지 “표현과 사상의 논리적 관계에만 결부시켜, 표현은 사상보다 더 적거나 더 많게 이루어질 수 있다”고 분명하고도 간결하게 지적한 바 있다. “표현이 사상보다 적게 이루어진 경우에는 확장해석을 통하여 표현을 정정할 것이고, 표현이 사상보다 많게 이루어진 경우에는 제한해석을 통하여 표현을 정정할 것이다. 다만 양자 모두 표현을 현실적인 (즉, 입법자의) 사상에 합치시키는 것일 뿐이다.” 비슷한 표현을 또 다른 주관주의자, 예컨대 빈트샤이트(§ 21), 레겔스버거(152쪽 이하), 에네케루스(Enneccerus/Nipperdey, I 1, § 57) 등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물론 에네케루스는 “법률문언이 비록 불완전하기는 하나, 드러난 모든 사정을 고려하여 아직도 법률의 의사라고 해석될 수 있는 설명에 해당하는 경우”에만, 위와 같은 “정정해석”이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하기는 한다. 이는 해석이란 언제나 “어의”의 한계에 머물러야 하고, 또 이러한 한계에 “다다를” 수는 있어도 뛰어 넘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다. 이러한 한계를 벗어나서는 어떠한 확장 해석도 없는 것이며 “유추”만이 존재할 뿐이다. 제한 해석에 관하여서도 똑같이 말할 수 있다(위 219쪽 이하 참조). 예컨대, 입법자의 의사와는 다르게 “남자”에만 관련된 것으로 규정된 조문이라 하여도, 확장해석을 통하여 “여자”에게까지 관련시키고, 궁극적으로 “사람 일반”에게까지 이를 확대 적용시킬 수는 없는 것이다.214)

이제 객관주의론의 입장에서 확장해석과 제한해석의 개념은 어떤가? 객관주의론은 법전을 역사적 입법자의 의사와는 독립된, 내재적 의미를 지닌 실체로 파악하고 있으므로, 일견 확장해석 또는 제한해석이 역할을 발휘할 여지가 없는 듯이 보인다. 어의가 분명하다면 객관적 정신은 결국 그것으로 명백하고, 어의가 다의적이라면 “합리적” 의미에 유리하게 판단을 내리면 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객관주의자들에게서도 “확장적” 해석이다, “제한적” 해석이다 하는 개념에 마주친다. 예컨대, 바흐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잘못된 문언에 반하여 합리적 의미를 적용하기 위하여서는 법률이 잘못 제정되었다는 점을 항상 확인해야만 한다(확장, 제한해석).”215) 객관주의적 관점에서조차도 법률이 입법자보다 더 현명하다고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해석이 법률 자체보다 더 현명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으로써 해석론을 일시적으로나마 마치기로 한다. 우리는 다소 복잡하기도 한 마지막 부분의 고찰을 통하여 이미 본래의 해석방법론의 한계라 할 수 있는 영역에까지 도달하였다. 어떤 의미에 있어서는 확장해석 또는 축소해석이란 것이 벌써 일종의 법률의 확대 형성과 같은 것으로 파악될 수도 있다. 여기서 한 발짝만 더 가면, 우리는 유추가 그 두드러진 보기라 할 수 있는 이른바 “법률에 대신하는(plaeter legem)” 법발견과 좁은 의미에 있어 법률의 “정정”을 의미하는 이른바 “법률에 반하는(contra legem)” 법발견의 영역에 들어서게 된다. 이와 달리 진정한 해석이란 법률신뢰의 원칙에 충실하여 “법률에 복종하는(secundum legem)” 법발견을 위한 좌표로서 기능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법률을 대신하고, 법률에 반하는 법발견으로 넘어가기에 앞서, 법률에 복종하는 법발견에 관한 지금까지의 고찰을 중요한 부분에서 보완해야만 한다(제6장).

 

제6장 법관법.216) 불확정한 법개념, 규범적 개념, 자유재량, 일반조항

지금까지 우리는 법을 적용하고 그를 위한 해석에 있어서는 본래 인식행위, 그것도 정신과학적 구조를 지닌 인식행위가 문제인 점을 암암리에 전제하였다. 우리는 여러 사안에서 당황하고 심지어 불안감을 가지기도 하였다. 예컨대 “포섭”의 수행과정에 있어서의 불확실성, 매번 해석하느라 애를 먹은 의미의 이중성, 해석방법론의 다양함과 해석의 기초와 관련한 논쟁, 마지막으로 “확장”해석과 “제한”해석의 다의성 등에서 그랬다. 그러나 모든 학문은 어려움의 난관을 극복하여야 한다. 중요한 것은 원칙상 “진리”를 찾으려는 노력이 의미 있고 성공을 보장하는 일인가 하는 점이다. 아무튼 법과 법을 인식하는 분야에 있어서는 처음부터 진리탐구의 원칙 자체를 문제로 남겨두고, “그림자의 윤곽(Schattenlinien)”과도 같이 순수과학적 법인식의 한계만을 찾아 나서려는 일련의 현상들도 있다.217)

한때 엄정한 규범에 의하여 절대적 법명료성과 법확실성을 가져올 수 있고, 특히 모든 법관과 행정당국의 판단 및 행동에 절대적 명확성을 보장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이러한 믿음은 계몽주의 시대에 있었다. 복켈만(Bockelmann)은 1952년에 그의 이러한 생각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법관의 법적용은 자동기계와 같이 수행되어야 한다. 그 특성상 일을 수행하는 장치는 기계적인 것이 아니라 논리적인 자동장치인 것이다.”218) 과거 자의와 관방(官房)법학의 시대(즉, 영주의 지시에 따르던 시대) 법관이 받았던 불신과 한편으로 법률에 대한 합리주의적 숭배의 정신이 법관의 법률에의 엄격한 구속을 핵심적으로 요구하게 만들었다. 그 결과 지지할 수 없는 해석금지 또는 주석금지의 주장까지 나오고, 법관이 재량에 의하여 형을 정하는 행위를 박탈하자는 주장(예컨대 프랑스 1791년 단죄법(Code pénal)에서 “확정형벌(peines fixes)”의 제도) 등등이 제기되었다. 법관은 “법률의 노예”라고 일컬어졌다.219) 법관과 법률의 관계에 관한 이러한 사고는 19세기가 지나면서 동요하기 시작하였다. 법률을 정확하게 제정하고 공식적 주석서에서 그 해석을 엄밀하게 하여 모든 적용상의 의문을 제거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므로 사람들은 법관의 법률에의 엄격한 구속의 요구가 실현 불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하였을 뿐만 아니라, 법률의 구속력이 영원하다는 주장은 하나의 이상론에 불과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법원이 영주의 권력으로부터 점차 자유스러워지고 “독립된” 재판기관으로서 전문성과 정의감을 가지고 자기직분을 수행하게 됨에 따라, 사람들은 법원이 변화무쌍하고 다양한 생활을 규율하는데 필요한 판결을 보다 자유스럽게 구가할 수 있도록 법률의 속박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믿었다. 그 변화의 세세한 점을 여기서 논의할 것은 못 된다.220) 아무튼 법원과 행정관청의 법률에의 구속은 금세기 초 소위 “자유법학”이 필연적이며 정당하다고 주장하였던 만큼 완화되지는 않았어도 우리의 방법론적 고찰을 새로운 지평으로 인도할 만큼 완화되어진 것은 분명하다.

사법과 행정의 합법률성의 원칙 자체는 지금도 불변의 진리이다. 우리는 행정과 사법의 법과 법률에의 기속을 규정한 기본법 제20조 제3항을 이미 알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법률 자체는 그 내용을 해석을 통하여 명확히 하고 법관과 행정공무원은 단순히 명확한 법률개념 속에 포섭의 행위에 의하여 법을 발견하는 그 정도로 제정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독자적으로 평가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입법자적으로 판단하고 시행할 것을 요구받는다. 이점은 장래에도 변화가 없을 것이다. 언제나 법률에의 기속이 많고 적음의 문제일 뿐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보통법(ius strictum)”에 대립하는 “형평법(ius aequum)”을 다루는 것이 되는데, 이와 같이 구속이 완화된 경우에 법적 사고는 어떠한 조작 과정을 거치게 되는지 보다 정확하게 설명하기로 한다.

법원과 행정관청의 법률에의 기속을 완화함에 있어 입법적 방법론이 우리가 새로이 시작할 논의의 출발점이다. 오늘날 우리는 법률의 적용자에게 독자적 권한을 부여하는 법률적 표현방식에 자주 부딪친다. 우리는 이 방식으로 불확정 법개념, 규범적 개념, 재량조항과 일반조항 등을 구분한다.221) 유감스럽게도 개념이 통일되어 있지 않다. 여기에는 예를 들어 법원의 판결과 행정행위의 법적 구제에 의한 취소가능성의 문제 등 현재 우리가 관심밖에 두어야 할 문제들과도 관련되어 있다. 우리는 단지 여기서 완화된 법률의 여러 방식이 우리의 방법론 문제와 관련하여서는 어떤 의미를 갖는지만 설명할 수 있고 할 것이다.

1.) “불확정 개념”222)이란 그 내용과 범위가 포괄적으로 불확실한 개념을 말한다. 절대적으로 확실한 개념은 법에 있어서는 드물다. 법에서 사용된 수의 개념(특히 양, 시간, 금전개념과 관련하여)을 생각해볼 수 있을 정도이다(50Km, 24시간의 기간, 100DM). 대부분의 법개념은 최소한 부분적으로나마 불확실하다.223) 이점은 예컨대 “어둠”, “밤의 정적”, “소음”, “위험”, “물건” 등과 같은 자연적 개념을 법에 받아들인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살인”, “위법성”, “범죄행위”, “행정행위”, “법률행위” 등과 같이 고유한 법개념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불확정 개념에 있어서는 필립 헥224)과 같이 개념의 핵과 주변을 구분할 수도 있다. 개념의 내용과 범위가 명료하다면 이는 개념의 핵에 관한 것이다. 의문이 생긴다면 이는 개념의 주변에 관한 것이다. 달빛도 불빛도 없는 밤, 자정 우리가 처한 위도 상 옥외에 어둠이 재배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동이 트는 시간에는 의문을 일으킨다. 토지, 가구, 생필품이 “물건”인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전력 또는 공중의 연기(광고도안용)는 다르다. 태아의 출산이 다행히 성공하여 완료하였다면 법적으로 “사람”이 존재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분만의 고통을 시작하여) 출산 중에 있을 경우는 (단순한 “태아”로서가 아닌) “사람”이 존재하는지, 언제부터 사람이 존재한다고 보아야 하는지 문제가 그리 명백하지 않다. 이 문제는 법이 다를 때마다 대답도 다르게 나올 수 있다. 민법에서는 “출산이 완료”된 후에 “권리능력 있는” 사람이 존재한다고 보는데 반하여 형법에서는 출산 중에 있는 경우에도(그러나 정확히 언제부터인지는 역시 의견이 분분하다) 한 “사람”이 존재한다고 보아 살인 또는 과실치사의 객체로 인정된다. 그리고 불확정 개념은 법규에 있어서 소위 “구성요건”에서 뿐만 아니라 “법률효과”에서도 있을 수 있다. 형사소송법 제231조 제1항이 그 한 예인데, 여기서는 공판기일에 출석한 피고인에 대하여 재판장은 퇴정하지 못하도록 “적정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2.) 대부분의 불확정 개념은 “규범적” 개념225)과 거의 동일한 의미로 설명되고 있다. 사람들은 이를 기술적 개념과 대비시키고 있는데, 기술적 개념은 “사람”, “죽음”, “동침”, “어둠”, “빨간”, “속도”, “목적” 등의 개념과 같이 현실적이거나 그와 유사한,226) 본질적으로 인식할 수 있거나 경험할 수 있는 그런 대상을 “묘사적으로” 관념한 것을 말한다. 위의 예가 제시하는 바와 같이 기술적 개념에서도 많은 불확정 개념이 존재한다. 따라서 불확정 개념이 곧 “규범적”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규범적 개념은 대부분이 불확정적이고 불확정성과 불안정성의 진수를 보여주며 나아가 법률의 상대적 불구속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규범적” 개념이란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가?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규범적” 개념 자체의 의미는 분명하지 않다. 모든 법개념이 법규범의 구성요소이고 이를 통하여서만 의미와 내용을 얻는다는 점을 감안하여 모든 법개념이 (구성요건요소를 법률적으로 정한 한도에서) “규범적”이라고 한다면,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질까?227) 그렇게 된다면 위에서 말한 모든 기술적 개념 또한 규범적 개념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 “죽음”, “어둠”이라고 하는 개념도 생물학적, 신학적 또는 물리학적 개념과는 다르게 법개념으로서 고유한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이 기술적 개념에 대비하여 규범적 개념을 이야기하기 위하여서는 법규범에 속한다는 사실, 즉 구성요건요소에 해당한다는 사실 말고 다른 특별한 점을 생각하여야 한다. (이러한 속성은 모든 법개념에 공통된 것이다. 그 결과 모든 법개념의 내용과 범위가 특정한 법적 사상과 관계를 맺고 있다는, “가치관련성”이라 불리는 그 무엇이 생긴다.) 좁은 의미에 있어 “규범적” 법개념의 특수성을 (기술적 법개념과 구분하여)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하는 문제에 있어 의견이 분분한데, 이는 어느 정도는 개념목적론적 관심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좁은 의미의 “규범적”이란 의미에 있어 어느 한쪽을 지지하기 위하여 우리는 두 개의 서로 다른 개념을 살펴보고자 한다. 우선 규범적 개념을 기술적 개념과 대립시켜 사람이 인식하거나 경험할 수는 없어도 규범의 세계와 관련하여 관념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는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228) “사람”, “죽음”, “어둠”과 같은 기술적 개념은 비록 가치관련이 있고 그 내용이나 범위가 법규범에 의하여 정해진 것이라 하여도 내가 볼 때는 경험적 개념에 지나지 않는다. 반면 어느 물건이 “타인”의 소유이고 절도나 횡령 또는 재물손괴의 객체가 될 수 있다는 점은 그것이 행위자와는 다른 사람에 “속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이로써 규범체계로서 민법의 소유권에 관한 규정이 전제된다. 나는 소유권에 관련한 규범을 생각하지 않고서는 어느 물건이 “타인”의 것이라고 결코 생각할 수 없다. “혼인”, “임신”, “공무원”, “미성년의”, “음란한”, “전과 없는”, “몰염치한”, “저급한” 등과 같은 법개념도 그것이 법규범에 그 의미내용이 있는 것이라면 그것이 법이든 도덕이든 아니면 다른 문화영역이든 어디서 유래하였는지 상관없이 동일한 규범관련적(단순히 가치관련적인 것과는 다르다) 의미를 지닌다. 이와 함께 위와 같은 규범적 법개념이 불확정적인 것이라고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 “혼인”이나 “미성년의”라 개념은 그 적용요건이 상당히 엄밀하게 정해져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보아 확정적인 개념이다. 더욱이 이러한 개념들은 기술적 요소에 의하여 정의되어질 가능성도 있다. 예컨대, 18세 미만된 자를 “미성년”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 것이다. 바로 이와 같이 기술적 요소에 의하여 정의되어질 수 있기 때문에 이들 개념들에 있어 “규범적” 의미는 그리 특별하지는 않다. 두 번째로 규범적 개념의 진정한 의미는 개개의 사안에서 이를 적용하는데 일정한 평가가 필요한 경우에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이런 의미에서 바로 좁은 의미의 규범적 개념으로서 주목할 가치가 있다. 어떤 사람이 기혼자인지, 미성년자인지는 기술적 요소에 의하여 확정할 수 있다. 그러나 성향이 “몰염치”한지, 동기가 “저급”한지, 작품이 “음란”한지, 표현이 “신성을 조롱”하는 것인지 – 마지막과 관련하여서는 얼굴에 마스크를 쓰고 군화를 신은 채로 묘사된 게오르그 그로스의 십자가 예수의 그림을 생각해보라(RGSt 64, 121) – 하는 문제는 하나의 평가를 전제로 하여서만 판단될 수 있다. 사람들은 이러한 유형의 규범적 개념을 “가치충족을 필요로 하는” 개념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이런 엄청난 표현과 더불어 규범적 개념을 구체적 사안마다 평가에 의하여 규범의 양을 달리 채울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이와 함께 평가가 법적용자 개인의 주관적 평가인지 아니면 “일반성”이나 “평균적 관점”에서의 평가인지 하는 문제는 접어둔다. 우리는 잠정적으로 “평가”란 다른 사람의 평가를 추고(追考)하는 것과 같은 개개인의 독자적 평가를 일컫는 것으로 해두기로 한다. 그래서 평가란 대부분 불확정성을 지니게 되는데, 이것이 규범적 개념을 불확정 개념의 특별유형으로 나타나게 한다.229)

3.) 우리가 법률 구속의 완화를 위하여 사용하는 “재량조항”230)과 같이 특정한 개념유형에 있어서는 위에서 말한 개인의 주관적 평가에 있어 “독자성”이 그 특징을 이룬다. “법관의 재량”과 행정공무원의 “행정재량”231)은 법이론에서도 가장 다양하고 어려운 개념에 속한다.232) 재량이론이 절차법에 있어서도 요점 중에 하나이기에 특히 시급하고 중요하다는 점이 어려움을 가중시킨다.233) 여기서 중요한 것은 행정관청이 한 재량판단을 법원이 사후 심사하여 수정한다거나 법원이 한 재량판단을 상급법원이 역시 사후 심사하여 수정하는 것이 가능한가 하는 문제이다. 때때로 사람들은 사법적으로 사후 심사를 받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재량판단”이란 개념을 사용하려고도 한다.234) 그러나, 우선은 재량행위의 사후심사성이란 의미를 고려함이 없이 논리적 관점에서 그 관점이 우리에게 타당한바 의미대로 재량의 개념이 설명되어야 한다. 그 다음에야 비로소 소위 “통제의 층(層)”의 문제, 다시 말해 재량행위도 사법적 통제의 대상이 되는지, 된다면 어느 정도까지 되는지 하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이때 재량의 “본질”은 중요할 뿐만 아니라 예컨대, 취소판단과 그 시행기관의 구조 또는 상소심의 과제 등에서 발생할 수 있는 특별한 절차적 논의235) 등도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을 수 있다. 행정관청이나 법원의 재량판단은 그것이 법률의 한계를 일탈하지 않은 한 결과를 가지고 취소될 수는 없다는 의미에서 자유재량의 특징이 있다고 흔히 강조된다. 물론 그 한계를 일탈하면 법원이 취소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재량권의 남용”이 재량행위의 흠인 것이다.236)

아무튼 우리는 재량행위와 사후심사성의 관계에 관한 문제에 대하여는 – 그 의미를 축소하려는 것은 아니다 – 그 세세한 것을 제쳐두기로 하고, “법관법”이라는 관점에서 재량행위의 논리적 구조를 설명하는데 보다 많은 노력을 기울이기로 한다. 그렇더라도 행정공무원과 법관의 특별한 입장과 지위를 조건으로 하고 필요로 하는 앞서 1), 2)에서 다룬 불확정개념과 규범적 개념 이외에 별도로 재량개념이라는 범주를 인정할 여지가 있는지 하는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이에 필요한 재량행위의 특성에 관하여는 다음에서 살펴보기로 한다.

고전주의적 재량이론에 있어서는 본래의 (“자유”)재량이 주어진 경우에는 그 재량의 권한이 있는 사람이 갖는 개인적 견해가 규범으로서 효력이 있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라운(Laun)은 “행정기관에게 자유재량이 주어져있는 경우에는 그 의무에 합당한 독자적인 견해와 의사에 따라 자기 행위의 가장 가깝고도 직접적인 목적이 무엇인지를 결정할 권한이 행정기관에게 있다”고 주장한다.237) 옐리네크(Jellinek)도 마찬가지로 “자유재량”의 본질을 “행정공무원이 개인적 의견에 따라 결정”하는데 있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동일한 사안을 서로 다른 공무원이 서로 다르게 판단하고 결정하여도 권리침해가 되지는 않는다. “법률에 의욕되어 있는 다의성”이 “자유재량”의 본질이다.238) 그러나 이러한 형식론의 구체적 설명에 들어서면 재량의 판단요소로는 “개인적 견해” 외에도 다른 요소가 주장되기도 한다. 폴스토프(Forsthoff)는 재량이란 “행동하고 결정하는데 있어 판단여지, 다시 말해 서로 동등한 여러 가능성 중 하나를 선택할 여지가 있는 것을 의미하고, 이 경우 실정법은 어느 하나에도 우선권을 주고 있지 않은 경우”를 말한다고 한다.239) 여기서 개인적 견해, 선택가능성, 판단여지 등 위와 같은 재량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상호 어떠한 관계를 가지는지 문제가 된다. 이들은 모두 동일한 결과를 목표로 하는지? 쉽게 그렇다고 말하기는 곤란하다. 예컨대 브룬스(Bruns)는 그의 “양형법”에서 선택자의 주관적 견해가 드러나지 않도록 선택가능성(“선택권한”)을 해석하고 있다. 그의 견해에 의하면, “일정한 형벌의 테두리 안에서 형사법관에게 주어져있는 선택의 권한이란 올바른 두 개의 해답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는 실질적 선택의 자유가 아니라, 하나의 올바른 해답을 찾기 위한 표면상의 선택권에 불과함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러한 표면상의 선택권을 인정하면서 판단의 실질적 정당성에 관하여는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는다.”240) 여기서는 불필요하게도 정당성(Richtigkeit)이란 개념이 등장하고 브룬스 자신은 이것이 무엇인지를 확정하지 않았다. “정당성”이란 무엇인가? 하나의 문제에 대하여 여러 해답(이와 같은 의미로서 “다양성”)을 배제하는 그런 분명한 “정당성”을 말하는지? 아니면 일응의 “대표성(Vertretbarkeit)”241), 다시 말해 실질상 동등한 가치를 지닌 여러 다양한 해답의 하나로서 판단의 “여지(Spielraum)”가 있는 그런 정당성을 말하는지? 그리고 도대체 판단의 “여지”란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러한 개념을 전제로 한다면, 재량은 서로 대립하는 판단들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든(예컨대 허가․승인․인가의 교부 또는 거부, 귀화의 인가 또는 불인가, 시험의 합격 또는 불합격), 아니면 여러 판단들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든(예컨대 지원한 3명의 교사 중 1명을 교원으로 임용하는 행위, 여러 부관 가운데 하나를 조건으로 급부행정을 결정하는 행위), 여러 다양한 판단들 가운데 어느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권한 외의 다른 것을 뜻하지 않는다. 그리고 곧이어 자세하게 다루게 될 “판단여지(Beurteilungsspielraum)”에 있어서도 여러 다양한 대안들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문제임이 분명하다 할 수 있다.

재량의 특성은 우선 우리가 판단의 내부적 실체인 “선택가능성”에 주목해보면 명백해진다고 생각한다. 관점이 다양한 가능성의 개념에 대하여 논리적이고 철학적으로 상세함을 추구하지 않고서도 우리는 현재 언급하고 있는 가능성이란 개념이 사실적일 뿐만 아니라 법적인 가능성을 말한다고 강조할 수 있다. 규범의 어떤 요소에서 여러 사실적인 가능한 대안들 가운데 어느 하나를 선택할 가능성을 부여하고 있는 것은 바로 법, 그 중에서도 대부분은 법률인 것이다. 또한 이러한 법적 가능성의 개념은 법 – 개개 법률 – 이 정한 목적에 의하여 그 구체적 내용을 갖는다. 사실은 법에 의하여 “권한이 부여된” 행정공무원 또는 법관이 어떤 구체적 사안에서 여러 사정을 고려하여 독자적이고 가장 적합한 판단을 이끌어 내도록 하기 위하여서만 법적인 선택가능성이 존재한다고 말할 수도 있다. 어떤 사안에서는 구체적 사정을 고려하여야만 판단이 가능할 수 있기 때문에 입법자는 스스로 판단을 하지 않고 행정공무원이나 법관으로 하여금 판단을 할 권한을 위임하고 있는데 이와 같이 입법자가 부여한 권한이 바로 판단의 권한위임인 것이다.

행정의 법률과 헌법에의 기속을 너무 중시하다보면, “자유재량”이란 전통적 개념을 포기하고 “법에 기속된 재량”이라 할 수도 있다. 재량은 모든 법적 기준242)에 엄밀히 부합하고, “구체적 사안에서의 여러 사정”을 주의 깊게 확인하고 고려하면서 “가장 적합한” 판단목표와 결과를 지향하도록 선택권한이 행사되어져야 한다는 의미에서 기속적이라 하는 것이다. 물론 “정당한” 판단이란 개념은 항상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 늘 고려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법적 규정과 구체적 사정을 고려하고서도 남게 되는, 아주 완전히 제거되지 않는 “주관적 정당화(subjektives Fürrichtighalten)”의 “여백(Restraum)”이(또한 다시금 – 협의의 –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누구보다도 조엘(Soell)이 “침해행정에 있어 재량”이란 개념으로 다루었던 그와 같은 기속적 재량의 개념을 말한다.243) 바호프(Bachof)가 “객관적” 정당성을 목표로 개인의 가치평가를 필요로 하되, 사법적 심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한 “판단여지”의 개념과 유사한 것으로 이를 이해할 수도 있다. 판단여지는 판단의 재량에 더 많은 주관적 자유를 부여하는 재량위임과는 구별된다.244) 사실 이와 같은 요인이 바로 우리에게 방법론적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불확정 개념, 규범적 개념과는 달리 재량에만 있는 본질적 특징인 것이다.

아무리 완벽한 규정이라도 그 자체 불확정성의 “일부”까지 완전히 제거될 수는 없기 때문만이 아니라, 어떤 한계 안에서 책임 있는 담당자로 하여금 그의 개인적 “견해”를 반영하게 하는 것이 최상이라는 생각 때문에, 어떤 구체적 사안에서 정당하다(합법이다, 합목적적이다, 타당하다)는 궁극적 판단을 (규정상으로는 최소한도만을 “정하여두고”) 권한담당자의 개성(특히 가치평가)에 맡기고 이를 신뢰하는 것이 바로 법과 법률이 부여한 재량인 것이다. 따라서 권한담당자가 “의무에 적합한” 권한행사245)를 통하여 도달하고 “실현”시키고자 한 바로 그 견해가 재량을 한계 지우는 일반 원칙들과 함께 법적인 정당성의 기준이 되는 것이다. 개개의 구체적 사안에서 개성은 객관적 측면(특별한 사정)에서 뿐만 아니라 주관적 측면(판단을 한 관서)에서도 중요하다. 객관적 사정의 특성과 주관적 판단자의 개성이 서로 어우러진다. 철학자 테오도르 리트(Theodor Litt)가 말한 것처럼 “개개인의 ‘형성물’이란 개인적 방법으로 체험된 것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고, 또한 “개인적인 것만이 이해될 뿐만 아니라 오직 개인적 방법으로서만 이해될 뿐”이라 한다면,246) “이해(Verstehen)”가 하나의 주목할 만한 요소이기도 한 재량판단이 여기에 꼭 들어맞는다 할 것이다. 재량판단은 개인적인 것247)에 관계된 것일 뿐만 아니라 개성의 표현 그 자체인 것이다.

물론 우리 법치국가적 법질서에서 그러한 재량판단이 들어설 자리가 있는지, 또 있다면 이를 어떻게 정당화할 수 있는지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전자의 문제에 있어서는, 앞서의 의미에서 재량이 있다거나 있을 수 있다거나 심지어 있어야 한다는 점은 그 나름으로는 입법자의 재량에 속한다거나 관습법 또는 “사물의 본성”(“행정의 본질” 등등)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예컨대 지금까지는, (전문그룹에서 추천한 명단에 의거) 대학교수를 임명함에 있어 소관 장관이 위대한 석학을 선발하느냐, 아니면 우수한 교사를 선발하느냐, 아니면 연구소나 병원에서 특히 재능 있는 조직원 또는 임상의사를 선발하느냐의 관점에 따라 선택권을 갖는다고 보는 것이 정설이다. 라운248)의 이야기를 빌려 말 하면, 이 경우에는 문화부 장관이 의무에 부합하는 자신의 견해에 따라 자기 행동의 “가장 최적절한 목표”가 무엇인지 결정할 권한이 있다(이에 반하여, 그는 “중요하지 않은 관점” – 위의 사례에서는 추천된 한, 두 사람의 종교 따위 – 으로부터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된다. 많은 행정행위나 통치행위에 있어서 정치적 동기나 정당선호도는 중요하나 다른 관계에서 보면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법률과 행정 또는 사법의 관계에 있어 재량의 여지를 어디서 인정할 지, 예컨대 법관에게 양형의 재량을 인정할 것인지 또는 위자료의 수액을 정함에 있어 재량을 인정할 것인지는 협의의 의미에서 법발견, 특히 법률과 제도의 해석에 있어 본질이라 할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법규에 재량권한이 부여된 것인지 아닌지가 의심스러울 때 그것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는지를 판단할 필요도 있다. 예컨대, 법규가 어떤 확실한 규준에 의하여 절대적으로 정당한 판단을 찾아내는 것이 가능하다고 보고 이를 명령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의무에 부합하고 사안에 적절하면서도 구체적 사안에서 “정당성”, “합목적성”, “타당성”에 관하여 개인적 견해를 드러내는 것이 허용되고 또 그래야만 할 것으로 해석되어야 하는지 하는 판단의 필요성 말이다.249)

궁극적으로 재량이란 개념이 존재하고, 또 이와 함께 법관이나 행정공무원의 완전한, 독자적인 법 구체화의 영역이 존재한다는 점을 입증하는 것보다 이것이 불가피하고, 뿐만 아니라 바람직하다는 점을 입증하는 것이 더 어렵다. 이점에 대하여서는 여기서 지금 언급하지 않겠다. 아마도 이 장의 끝 부분에서 재량의 행사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살펴보면 분명해질 것이다. 그보다는 재량의 순수 개념에 관하여 조금 더 논의해보기로 한다. 우선 재량을 불확정 개념 및 규범적 개념과 비교하여본다면, 이 장의 1)과 2)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재량이란 이들 개념과 더불어 특별한 범주에 속한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250) 불확정 개념(물론 불확정한 기술적 개념을 말한다)과 규범적 개념(형법 제253조 제1항 소정의 “감정상의 해악”과 같이 형법의 규범적 구성요건요소)은 그 해석이나 개별 사안에서의 적용에 있어 애매모호(曖昧模糊)한 점이 있어 “주관적 정당성”이 개입할 여지가 있다 하여도 개인적 가치관에 좌우되지는 않는다.251)

행정만이 재량에 의하여 판단되어져야 한다고 주장할 선험적 근거는 없다. “입법에 있어 재량”을 말하지 않더라도 사법적 재량이 존재한다는 점은 이미 분명하다. 예컨대, 소년형법이나 어떤 절차적 처분에 있어 단순히 합목적성의 이유(관련사건 등의 이유)만으로 이점이 고려된다. 형사소송법 제4조 제1항 소정의 “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재량을 가능하게 한다. “할 수 있다”는 뜻은 단순한 사실적 가능성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의 권한을 의미하는 것이다.252)

행정이나 사법에 있어 재량의 한도 안에서 여러 가능한 대안들 가운데 어느 것이 가장 적합하고 정당한지를 확정함에 있어 담당 권한자의 주관적 판단이 그 근거가 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우리 법치국가적 법질서 내의 법적으로 기속된 재량에 있어서도 어느 정도의 “판단여지”를 인정하는 것이 최소한 가능한 일이고, 내 개인적으로는 효과적이기도 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재량이 어떤 경우에 얼마만큼 허용될지 심사하는 것이 법발견의 본질에 속한다. 그리고 이와 같이 파악된 재량조항에 “불확정한 개념”이나 “규범적 개념”과 대비하여 방법론적으로 다른 하나의 특별한 지위를 인정하는 것이 개념논리적으로 합목적적이라 할 것이다.

4.) 불확정한 개념은 확정적 개념과, 규범적 개념은 기술적 개념과, 재량의 여지는 정당성의 객관적 규준에 대한 배타적 기속의 개념과 (최소한 부분적으로는) 대립된 개념이다. 이러한 여러 개념들 중 하나와 자주 바꾸어 사용되고 있는 “일반조항”이란 다양한 의미의 개념에 어떤 독자적인 의미를 부여하려 한다면, “결의론적(kasuistisch)”인 구성요건조항과 대립하여 이를 파악하여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결의론적”이란 (법률상 법적효과명령을 조건지우는 요건의 총체로서) 특정한 관점에서 특정한 사례만을 포섭하는 방식으로 법률적 구성요건을 형성하는 것을 말한다.253) 결의론적 구성요건의 일반적 예가 형법 제224조인데, 여기서는 “고의에 의한 신체상해로 인하여 피해자가 신체의 중요부분, 한쪽 눈 또는 양쪽 눈의 시력, 청력, 언어 또는 생식능력을 상실하거나 상당한 정도로 이를 사용하지 못하는 상태가 지속되거나 폐질, 불구 또는 정신이상의 상태로 빠지게 된 경우에는……”이라 규정하고 있다.

이에 반하여 1930년도 법안에서 위 조항과 관련된 제260조 전단254)은 “피해자가 그의 신체 또는 건강에 중대한 훼손을 입었을 때는……”이라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러한 규정을 “일반조항”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우리는 일반조항을 고도의 일반성과 함께 어떤 특정한 사례군을 포섭하여 법적 취급을 하는 입법기술의 하나로 이해할 수 있다. 니퍼다이(Nipperdey)는 어느 한 논문에서 다음과 같은 표현으로 시작하고 있다. “자기 귀책사유로 인한 책임만이 문제가 된다면, 불법행위법에 있어서는 두 개의 법적 규율체계가 가능하다. 손해배상의 결과를 묻는 불법행위의 개개 구성요건을 하나하나 나열하는 방법이 그 하나이고(민법 제823조 내지 제825조에서 취한 방식), 불법행위의 통일적 구성요건을 제정하는 것이 다른 하나이다. 말하자면 타인의 법익을 침해하는 위법하고 유책한 행위를 대상으로 한 일반조항이 결의론적인 입법기술에 대신하는 것이다.”255) 우리는 부정경쟁방지법(UWG)에서도 비슷한 차이를 본다. 부정경쟁방지법 제3조는 “거래행위에 있어 경쟁의 목적으로 거래관계, 특히 개별적 상품, 영업행위 또는 서비스의 특성, 원산지, 제조기법, 가격결정과 가격목록에 관하여 혼동을 야기할 표현을 사용한 자”에 대하여 그 중지의무를 부과하고 있는데 이는 결의론적 구성요건에 해당한다. 이에 반하여 이 법의 제1조는 “거래행위에 있어 경쟁의 목적으로 공서양속에 반하여 행동을 한 자”라고 규정하여 일반조항을 설정하고 있다. 또 행정법에서 행정소송을 허용하는 문제와 관련하여 결의론적인 “열거주의”를 채택하는 것과 일반조항을 채택하는 것 사이에 구별은 널리 알려져 있다. 전자에 있어서는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개별 구체적 사례군이 열거되어지는데 반하여, 후자에 있어서는 행정소송의 제기가 일반조항으로 허용되어 진다. 행정소송법은 “헌법해석에 관한 문제가 아니고, 또 다른 법원에 명시적으로 권한이 귀속된 것으로 정해져 있지 않는 한, 모든 공법상의 쟁송에 대하여는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고 정하여 후자의 방식을 취하고 있다(행정소송법 제40조 제1항 제1문).

결의론적 방식과 일반조항 방식의 구별이 상대적인 것은 물론이다. 앞서 인용한 형법 제224조가 1930년도 법안의 제260조와 비교하여볼 때 결의론적이라 하더라도, 그 전반의 구성요건(“신체의 중요부분”)은 그 뒤에 계속되는 구성요건과 관련하여서는 일반조항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반면, 1930년도 법안의 제260조도 “모든 혁명원칙에 반하는 행위는 처벌된다. 형벌의 종류는 법관의 자유재량에 속한다”라고 규정하였던, 1919년 초 뮌헨 협의제 정부(Münchner Räteregierung im Frühjahr 1919)에 의하여 제정되었던 조항과 비교하여보면 결의론적이라 할 수 있다.256) 가벌성에 관한 이런 유형의 일반조항은 법치국가에서는 금지되어 있다. 이는 확실한 결의성을 요구하는 “죄형법정주의” 원칙에 반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개별적 일반조항에 따라 우리의 법질서를 면밀히 검토하고 이들이 우리가 언급한 의미에서 일반조항에 해당하는지 아닌지를 개별 구체적으로 심사할 필요까지는 없다. 이미 언급한 부정경쟁방지법 제1조, 민법 제826조(“공서양속에 반하는 방식으로 타인에게 고의로 손해를 일으킨 자는 손해배상의 의무가 있다”), 또는 형법 제226조a(“피해자의 승낙 아래 신체를 침해한 자는 그 행위가 승낙에도 불구하고 공서양속에 반하는 한도 안에서만 위법하게 행동한 것이다”)에서와 같이 “공서양속”에 반하는 것을 대상으로 한 일반조항이 특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257)

이외에도 일반조항이나 결의론적 방법론이 법소재를 다룸에 있어 항상 상호배타적인 것은 아니며, 서로 보완적일 수 있다는 사실은 앞서의 선례가 이미 보여주고 있다. 부정경쟁방지법 제1조의 일반조항은 이 법의 결의론적 조항인 제3조와 병존하고, 결의론적 조항인 민법 제823조 내지 제825조는 일반조항인 민법 제826조에 의하여 보충되어진다. 결의론적 방법론과 일반조항이 결합된 가장 두드러진 경우는 소위 유형화하는 방법론(exemplifizierende Methode)이다.258) 이 방법론은 우리가 여려 차례 인용한 1930년도 형법안의 제260조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우리는 지금까지 이 조문을 일부만 인용하였다. “피해자가 그 신체 또는 건강에 중대한 훼손을 입었을 때”라는 일반조항에 뒤이어 몇 가지 결의론적인 사례들이 열거되어지고 있는바, 예컨대 “특히 심각하게 말할 능력을 상실한다거나 영구적이고도 현저하게 형태를 잃어버린다거나 또는 신체, 감각, 정신능력, 노동능력의 구사에 있어 영구적으로 또는 오랜 동안 심각한 훼손을 입었다거나” 등이 그렇다.259)

이제 우리는 “일반조항”이 불확정한 개념, 규범적 개념, 재량조항 등과 어떠한 관계에 있는지 물어야 한다. 일반조항에 무슨 특별한 의미가 있는지? 우리는 제한된 범위 안에서만 그렇다는 입장을 취해야 한다. 불확정한 개념, 규범적 개념, 재량위임의 모든 개념을 일반조항이라 하지 못하는 점은 분명하다. 왜냐하면 일반조항에는 우리가 본 바와 같이 불확정한 개념이나 규범적 개념 또는 재량조항에는 없는 일반성이란 특징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물론 아주 결의론적 조항인 형법 제224조에 불확정한 개념이나 규범적 개념이 포함될 수는 있다). 그러나 일반조항이 일반성이란 특징만으로 불확정한 개념이나 규범적 개념 또는 재량조항의 주변에서 따로 분리된 개념이라 단언하기도 어려운 것은 아닐까? 물론 우리는 일반조항이 논리필연적으로 불확정한 개념이라거나 규범적 개념이라거나 또는 재량을 염두에 둔 조항이라거나 또는 이 모든 것을 포괄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어느 정도 확정적이고 기술적 개념을 사용하면서 법적용자의 주관적 판단에 좌우되지 않는 그러한 일반조항을 상정해볼 수도 있다. 예컨대, 협박의 일반조항으로서 “고의로 사람의 생명에 위험을 가한 자”.260) 그러나, 실제적으로는 일반조항이 대부분 재량조항이라 하지는 못하여도(오히려, 일반조항은 객관적인 타당한 가치평가를 목표로 추구하는 한 재량위임의 여지가 없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예컨대, 부정경쟁방지법 제1조, 민법 제826조, 형법 제226조a가 그렇다), 최소한 불확정하고 규범적인 그러한 조항만을 염두에 두게 된다. 우리는 이제 일반조항이 최소한 불확정하고 규범적인 개념과 같이 등장한다고만 할 것이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재량조항과도 함께 등장한다고 해야 할 것인지? 일반조항은 사실 방법론적 측면에서는 독자적인 특성을 갖고 있지 않다. 일반조항은 불확정한 개념이나 규범적 개념, 재량조항 등에서 요구되는 사고과정 이외에 다른 독특한 사고과정을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 고작해야 일반조항에서는 예컨대, 불확정한 개념이 확정 개념에 대하여 갖는 차이를 더 크게 할뿐이다. 그러나 이는 정도의 차이일 뿐이지 질의 차이는 아니다. 일반조항의 진정한 의미는 입법기술의 영역에서 존재한다. 일반조항의 추상성으로 말미암아 광범위한 사실관계를 어느 일정한 법률효과에 포섭시킬 수 있게 된다. 결의론적 방법론은 법소재를 문제중심적이고 “일시적”으로만 다룰 위험이 있다. 이러한 위험성은 일반조항을 사용함으로써 제거된다. 물론 그로 인한 또 다른 위험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일반조항의 장, 단점을 여기서 상세히 다룰 수는 없다. 일반조항의 장, 단점이 자주 언급되기는 하지만,261) 그 경우에도 우리는 일반조항 자체에 내재하는 장, 단점과 일반조항이 통상 불확정하고, 규범적이고, 재량조항적이어서 갖게 되는 장, 단점을 서로 혼동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이제 “형평법”의 개념이나 형평조항 등과 같이 여러 유형의 “자유스런 개념(Lockerungsbegriffen)”에서 법적 사고가 취할 수 있는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이러한 유형의 개념이나 조항이 법률적 한계를 준수하여야 하는 한, 그 한계를 밝히는 것은 법률해석과 다르지 않다. 말하자면 양형의 범위를 확정하는 것과 같이 단순한 법률해석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법률에 근거하여 양형이 이루어지도록 원리원칙을 찾아내는 것도 일종의 법률해석이다. 형법 제46조는 “(범죄)행위자의 책임은 형벌을 정하는데 기초이다. 행위자가 장래 사회생활을 함에 있어서 형벌로부터 기대할 수 있는 효과가 고려되어야 한다. 양형을 정함에 있어서 법원은 행위자에게 유리한 사정과 불리한 사정을 모두 비교형량하여야 한다. 이 경우 행위동기, 행위자의 목적 등등이 참작되어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는바, 여기서 양형의 모든 요소(말하자면 행위자의 “책임”)를 보다 상세히 밝혀내는 것도 법률해석의 과제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미 본 바와 같이, 법률에서 나오는 규범적 개념이나 조항에 대하여 그것이 객관적 가치규준 자체인지 아니면 독자적 평가를 위한 수권조항인지를 밝히는 것도 법률해석의 일종이다. 이 경우에도 앞장에서 설명한 해석의 원칙이 그대로 적용된다.

따라서 해석의 대상이 되고 있는 조문의 한도 안에서 보완적 판단, 특히 법적용자의 독자적 평가를 필요로 하는 그러한 사고과정에 대하여서만 특별한 분석이 필요하다. 불확정한 기술적 개념에 있어서도 우리는 해석과 그에 밀접한 관련성이 있는 포섭의 기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순수한 경험적 개념을 해석하는 것이 해석이다”라고 폴스토프는 이야기하였는데262) 이는 정당하다. 예컨대, “야간”이나, “어둠” 등과 같이 경험적 개념조차도 자주 불명확하기 때문에 해석과 그에 기초하는 포섭을 어렵게 하고, 법적용자로 하여금 특별한 사고를 요구하며, 그 결과 “단지 법률문언을 말하는 입으로서” 법관을 이해하는 이론이나(몽테스큐),263) 법률적용을 기계적으로 작동하는 “자판기”에 비교하는 이론(위 233쪽 참조)이 거짓임을 비난할 수 있는 것이다. 해석과 포섭은 일종의 정신적 활동이라 볼 수 있다.

이제 우리가 협의의 의미에 있어 규범적 개념을 다룬다면, 법적 사고는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물론 이 규범적 개념에도 어느 정도의 모호함이 내재하는데 바로 이점이 현재 우리에게는 중요하다. “규범성”이란 단지 문제된 개념이 그 의미내용에 있어 규범을 전제로 함을 말하는 것인지(미성년자, 혼인, 공무원 등등), 아니면 “가치충족을 필요로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인지에 따라 차이가 난다. 전자의 경우라면 개념의 의미를 파악하는 것은 다시금 해석의 일환일 뿐이고, 그것을 적용하는 것도 포섭의 일환일 뿐이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라면 전혀 새로운 이야기가 된다. 다시 말해 이는 법적용자의 가치평가를 의미한다. 지금부터 우리는 바로 이러한 가치충족을 필요로 하는 의미에서 규범성을 다루고자 한다.

우리는 물론 가치평가란, 재량이 주어지지 아니한 경우에는 법적용자의 주관적 평가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보았다. 오히려 “규범적” 개념에 있어서 법적용자는 “좌표적이고(führend)”, “표준적인(maßgeblich)” 계층이 가지고 있는 가치평가를 찾아내 확인할 의무가 있다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객관적” 가치평가라 하겠다.264) 집게손가락이 “신체의 중요한 부분”인지, 복싱경기와 그때 예상한 피해가 “공서양속”과 양립하는 것인지, 보호의무 있는 자가 “자신의 보호의무를 중대하게 위반”하였는지, 어떤 그림(예컨대 게오르그 그로스의 방독면을 쓴 예수)이 “신성을 모독한 것”인지(구형법 제166조) 또는 최소한 교회를 “비방한 것”인지(신형법 제166조), 혼인이 “파탄”되었는지, 이 모든 문제를 법률은 법관의 주관적 가치평가에 의하여 해결되길 바라지 않는다. 오히려, 법률은 법관도 따라야 할 표준적인 도덕관념이 존재한다는 점을 지지한다. “해당 주민들의 생각을 참작한, 구체적 사례에 있어 개별적 사정들이 표준이 된다.”265) “해당 주민들”이란 당시 국가와 법질서가 그 평가를 반영하고 있는 그런 주민들을 말한다. 법관 자신이 이들에 속해 있다면 물론 자신의 도덕적 생각을 물어도 상관이 없다. 그러나 자신의 견해가 자기만의 독자적 생각은 아닌지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만약 법관 스스로가 이러한 주민 계층에 속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예컨대 종교가 다르다거나, 스포츠에 열광하는 사람들의 환호를 평민들이나 갖는 천한 것쯤으로 생각하는 따위), 자신의 고결한 관점에서 평가할 것이 아니라 해당 주민들에 속해 있는 “사람”이 생각하고 느끼는 것에 따라 평가할 것이다. 그래서 라이히 재판소의 저 유명한 판결(RGSt 64, 121(126))에서는 게오르그 그로스의 방독면을 쓴 예수의 그림에 대하여 “지나친 쾌락이나 자유분방함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는 교회구성원의 종교적 감정”에 어떤 반향을 불러일으키기에 적합하였는지를 문제삼았다.266) 도덕적 근본이 문제되는 경우라면 법관은 입법자가 타당하다고 인정하여 정한 “객관적 도덕법칙”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연방대법원은 약혼자 사이의 성교 문제를 판결하면서 다음과 같이 판시하고 있다(BGHSt 6, 46).267) “음란”과 같이 가치평가를 필요로 하는 개념이나, 이와 관련하여 “형법 이외의 규범영역”(48쪽)에서 정해진 규정을 해석함에 있어서는 “유동적인 국민 계층이 갖고 있는 변화하는 생각이나 행동양식”(50쪽)에 의존하여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성에 있어 정숙함을 명하는 것은 “단순한 관습이나 규약의 명령”이 아니라 “도덕, 다시 말해 도덕법칙의 명령”이기 때문이다(52쪽). “도덕법칙의 규범은 본래부터 타당한 것이다. 그것의 (엄격한) 구속력은 선재하고 항상 따라 다니는 가치질서, 인간의 공동생활을 지배하는 당위법칙에 근거한다. 그것은 복종하도록 요구되어진 사람들이 이를 현실적으로 따라 지키고 승인하는지, 하지 않는지에 관계없이 타당한 것이다. 그것의 내용은 관념이 바뀌었다고 하여 변경되지는 않는다”(52쪽). 연방대법원이 위와 같이 판시한 사항을 철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지, “아무런 내용이 없는 상대주의는 옮고 그름에 대한 판단을 하지 않고 사회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유해하기조차 한데” 이러한 상대주의를 연방대법원이 거부함에 있어 무슨 확실한 근거가 있는지는 그냥 두기로 한다. 객관적으로 타당한 도덕법칙의 문제는 매우 분분한 도덕철학적 문제이므로 여기서는 그냥 내버려두어도 괜찮다. 어떤 문제에 있어서는 확실하고 분명한 도덕적 관습이 있다는 점, 법이 이러한 도덕적 관습을 “객관적 도덕법칙”이란 의미로서 근거로 삼을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해두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위에서 다룬 바와 같이 “가치충족을 필요로 하는” 객관적, 규범적 개념을 해석함에 있어 고정된 도덕적 관습에 의존하든, “유동적인 국민계층”의 변화하는 가치평가에 의존하든 – 가치평가의 변화에 적응할 수 있다는 점이 오히려 규범적 개념이 갖는 장점 중 하나의 기능이다 -, 규범적 개념이 필요로 하고 있는 “가치평가”는 언제나 인식의 대상이다. 법적용자는 무엇이 사실상 효력 있는 도덕적 관념인지 확정해야 한다. 그의 독자적 평가는 평등한 다른 사람들의 평가 중 하나일 뿐이고, 그는 이들 평가를 자신의 평가와 비교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이들 평가에 따라 자신의 평가를 수정할 필요도 있다. 자신의 평가는 인식 소재의 하나일 뿐이지 궁극적인 인식기준은 되지 못한다. 개별 사안에서의 판단과 이러한 판단들이 모여 가치충족을 필요로 하는 객관적, 규범적 개념이 “구체화”하는데 이러한 판단들 역시 객관적, 규범적 개념에 대한 일종의 해석이고, 개별 사안에서 적용할 가치평가를 확정하는 것 또한 “포섭”과 비슷한 것이다. “복싱과 같은 정해진 결투는 공서양속에 반하지 않는다”라든가(BGHSt 4, 24), “약혼자 사이의 성교는 음란하다”(구형법 제180조 이하 소정의 음란성 의미에서, BGHSt 6, 46)268)라든가 하는 가치판단은 기술적 개념에 있어 개념정의, 개념분류, 포섭 등과 마찬가지로 주석으로서 기능을 한다. 이들은 또한 기술적 개념에서 행하여지고 있는 정의, 범위설정, 유형화 등과 같이 해설서나 주석서에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객관적, 규범적 개념은 기술적 개념이 가지고 있지 못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가치평가란 특징으로 인하여 개별 사안의 구체적 특성이나 가치관의 변화에 탄력적으로 적응할 수 있다.269) 바로 이점 때문에 그것은 “형평법”의 총아(寵兒)가 되었고, 근대에 이르러 유행이 되었다. “동침한다”라는 기술적 개념은 “혼인을 침해한다”라든가, “음란하다”라는 개념과 달리 구체적 사정이나 가치변화에 적응하지 못한다. 어떤 구체적 사례를 객관적, 규범적 개념에 포섭시키기 위하여서는 법관이나 행정공무원은 자기의 독자적인 구체화를 실현시켜야 한다. 이러한 구체화는 라렌쯔(Larenz)270)의 말을 빌리자면, “종합적” 특성을 지니고 있고, 이는 당대에 어울리는 가치평가를 찾아 가치충족을 필요로 하는 기본사상에 구체성을 부여하는 것이며, 개념 그 자체에서 구체적인 것을 가져올 수는 없는 것이다. 이는 다시 말해 그것이 허용된 범위의 한계 안에서271) 판단할 구체적 사안의 특별한 사정을 고려하는 것이다.

객관적, 규범적 개념이 법적용을 하는데 있어 새로운 사고방식을 요구하는 측면이 있다고 한다면, 재량조항은 법관이나 행정공무원으로 하여금 어느 정도 주관적, 개인적 판단을 허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전혀 색다르다 할 수 있다. 객관적, 규범적 개념을 적용함에 있어서는 그 “종합적”이고 “구체화적”인 특성에도 불구하고 이미 본 바와 같이 어떤 “인식”, 다시 말해 현재 타당한 규범의 “확정”, 또는 목적과 이념에 따라 분명히 올바른 것을 발견하는 것이 문제이다. 이와 달리 재량조항에 있어서는 그 재량의 범위에서 주관적, 개인적 판단이 성립할 여지가 있다. 재량조항은 법규의 한계 안에서 법적용자가 개인적으로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가치평가를 구속력이 있다고 보는 것을 허용한다. 그것은 의도적으로 선택권한을 부여한 것이다. 재량조항은 고착되어 있고 불확실한 “객관적” 규범을 찾는 것보다는 개인적 선택을 따라가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라는 믿음에서 개인적 결정을 기대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법적용자를 법창조자, 다시 말해 구체적 사안에서의 입법자로 만드는 가치평가의 행위에 관하여서는 다시 한 번 이야기해보아야 한다.

여기서 다시 한 번 강조해두어야 할 것은, 개인적 판단의 범위는 명시적인 법률 규정뿐만 아니라, 법이념이나 국가이념 등에 의하여서도 한계 지워진다는 점이다.272) 궁극적으로는 “자의”나 “부당함”의 금지에 항상 주목을 요한다. 이하에서 우리는 재량행위를 함에 있어 재량권의 유월(踰越)이나 남용 같은 것은 없다고 전제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제 “개인적” 판단은 사안에 부합하는 것이고, 내적으로도 진정한 확신에 의하여 지지되어 행하여지는 것이란 점을 인정한다.

그러나, “주관적”으로 정당하다는 판단이 아무런 제약 없이 법적인 관점에서뿐만 아니라 초법적인 관점에 의하여서도 성립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잘못이다. 오히려 이러한 “의지적(volitiv)인 사고행위”273)의 논리적 구조를 증명하는 것이 가능할 뿐이다. 우선 자유로운 목적선택이 이에 해당하는데 이는 소위 행위재량의 특성이기도 하다.274) 자유로운 목적선택의 실례로서 우리는 다시 한 번 대학교수를 임명함에 있어 학문적 능력과 교사적 자질 사이에서 선택을 할 수 있는 것처럼 여기서는 목적론적 법칙에 따라 선택이 이루어진다. 이 경우 “보다 현실적인” 목적은 보다 이상적이고 보다 일반적인 목적의 하위에 속한다. 이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결과와 그 부수적 효과가 고려된다. 다른 정형화된 목적과도 진정한 조화가 추구된다. 획일적 판단을 결코 강요하지 않는다. 다른 기회에 대학교수를 임명할 때는 학문적 능력이 중요하기 때문에 현재는 교사적 자질이 중시될 수도 있다. 목적론적 법률에서는 특히 목적 자체만으로는 명확하게 규정되지 않기 때문에 수단의 선택이 보편적이다. 말하자면 재량행위에는 목적의 선택뿐만 아니라 수단의 선택이 포함되어져 있다고 학자들은 강조하는데, 물론 양자의 구분이 어느 정도 상대적이란 점을 부인하지는 않지만, 이는 정당한 주장이다. 공중의 위험을 회피하기 위하여 똑 같이 선택될 수 있는 여러 경찰 행정행위가 규정되기도 하고, 또는 청소년의 범죄를 예방하기 위하여 법률은 여러 처분을 정할 수 있는데 이들 처분에는 우열이 없고 경우에 따라서는 적당히 조합하여 발령될 수도 있다. 이때 실효성, 지속성, 단순성, 경제성, “비례성”275) 등에 관한 논의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데, 이는 목적론적인 색채를 갖고 주장되지만 개인적 주관이 개입하여 판단하는 것을 배제하지 않는다.

그러나 목적과 수단을 선택함에 있어 참고가 되는 여러 관점들은 자주 정의나 형평의 법윤리적 이념을 희생시키기도 한다.276) 이점은 대부분의 행정행위에 있어 특히 그렇다. 공무원들의 자리이동이 때로는 합목적적이어도 “불공평”하거나 “부당”할 수 있다. 반면 공무원을 어떤 직위에 임명하거나 승진시키는 것이 정당하여도 합목적적이지 아니할 때가 있다. 방금 이야기한 행정공무원의 합목적성은 정의나 형평의 문제와 충돌을 일으키지 말아야 할 것인지?

여기서 이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룰 지면이 많지 않다. 이 장에서 단편적으로 살펴본 결론은 다음과 같다. 불확정한 개념, 규범적 개념과 재량조항, 일반조항에서는 형평법에 따라 법을 적용하는 사람이 종류와 정도에 있어 다양한 법을 해석과 포섭에 의하여서뿐만 아니라, 개별 구체적 사안에서의 가치평가와 의사결정에 의하여서 발견하도록 요구되어진다는 것이다.277) 이 경우 법을 적용하는 사람이 객관적 규준(관습법, 지도층의 가치평가)에 입각하기도 하고, 자기의 개인적인 의견에 더 많이 좌우되기도 한다는 점을 보았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에도 무절제한 자유와 자의가 지배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개인적 판단에 있어 법률적, 초법률적 한계를 언급하지 않는다 하여도, 목적론적, 공리론적 규칙이 존재하는바, 이는 판단의 내용을 엄밀히 정하지는 않아도 판단의 논리적 한계를 제공한다. 그러면서도 가치평가와 의사결정을 함에 있어 그 내용을 개인적 색깔로 채색하는 것은 영원히 남는다.

재량권한을 행사하는데 있어 한계, 기준, 특성을 언급하면서 보았던 점을 상기한다면, 위와 같이 개인적으로 채색된 판단이 어떤 의미에서, 그리고 어떤 근거로 “정당하다”고 간주되어지고. 법치국가원리 하에서도 정당화될 수 있는가 하는, 앞(262쪽 이하)에서 간략하게 제기하였던 의문이 조금 풀릴 것이다. 이 경우 문제는 재량행위를 한계 지우는 모든 구속(법적, 공리적 규칙 외에도 불편부당, 자의, 권한남용, 과잉의 금지 등이 여기에 속한다)으로부터 보아 “정당함”뿐만 아니라, 서로 대립하기조차 한 여러 판단들의 등가성이 인정됨으로써 제기되는 조금 특별한 “정당함”인 것이다. 서로 상이한 판단들(판단 1, 2, 3, 또는 긍정적 판단과 부정적 판단)이 똑같이 법 앞에서 정당하게 주장될 수 있다는 점, 예컨대 다소 평화스럽지 못한 시위에 대하여 경찰권을 행사할 것인지 아니할 것인지(처분선택의 재량), 경찰권을 발동하기로 한 경우에는 가장 유효적절한 여러 등가적 수단들 가운데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내용선택의 재량),278) 또는 영업허가를 할 것인지 아니할 것인지, 귀화를 허용할 것인지 아니할 것인지 등이 모두 똑같다는 점이 특이하면서도 조금 어색하기도 한 부분이다. 여기서의 “정당함”이란 모순법칙에 빠지지 않는다는 그런 정도의 의미일 뿐이고, 이는 가치평가가 작용하는 곳에서는 기본적으로 결코 도달하지 못하는 진리나 명백성과는 다른 것임이 분명하다. 우선 여기서는 여러 관점에서 사용되어온 “대표성(Vertretbarkeit)”이란 개념이 적합하다. 재량행위에 있어 여러 대안들을 선택할 수 있다면, 이들 대안들은 모두 재량의 여지가 있다는 관점에서 보아 대표될 수 있는 것이다. 다소 평화스럽지 못한 시위에서 경찰권을 발동하지 않고 기다릴 수도 있고 경찰권을 발동할 수도 있고, 또 귀화를 허가하는 처분을 할 수도 있고 거부하는 처분을 할 수도 있는데, 이들 모든 처분이 똑같이 대표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재량의 여지 안에서 여러 대안들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게 되는 모든 사람은 누구나 법안에 있는 것이며, 어느 누구도 자신만이 정당하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물론 대표성이란 것이 이들 대안들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좋고 더 “본질적으로” 정당한 지를 서로 비판적으로 토론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배척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의 판단이 “현실적으로” 정당하다고 할 수 있는지 의심스럽더라도 그 판단이 정당한 것으로 평가되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이 경우 종종 양형을 함에 있어 타당한 원칙, 다시 말해 의심스러울 때는 최소한으로(in dubio mitius)란 원칙이 유용하다. 아직 한 가지 더 문제가 남아있는데, 이는 재량권을 행사함에 있어 “대표적이다”라고 한다면 그냥 “정당하다”라는 것이 되는지, 또는 정당한 것은 언제나 대표될 수 있지만, 대표적이라고 하여 모두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여지지는 아니하므로(이점에 대하여는 의논이 분분하다),279) 대표적이란 개념보다는 정당하다는 개념이 더 좁은 개념은 아닌지 – 사실 나는 이편이다 – 하는 합목적적인 언어규정의 문제이다. 중요한 것은 재량이 주어졌다는 전제에서 대표적이라고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재량의 여지에 적합하고”, “정당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의 전체적 법생활은 매우 다양한 정신세계의 하나로서 개인의 관심과 충동에 의하여 형성된다고 한 사상을 정확하게만 이해한다면, 개인적으로 올바르다고 지지하는 것을 정당하다고 보는데 있어 보다 깊은 근거에 도달할 수 있다.280) 입법의 영역에 있어서뿐만 아니라 행정과 사법의 영역에 있어서도 “개인”으로서의 인간은 법을 형성하고 준비하도록 소명되고 있는 것이다. 주관적인 선호도는 지상에 남은 고통스러운 질곡, 다시 말해 (가치를 평가하는 곳에서는 언제나) 깨끗이 제거할 수 없는 그런 질곡이 아니라, 법률문화에 있어 긍정적 평가를 얻은 한 부분인 것이다. 우리는 입법을 추상적 원리에 따라 “유일무이하게 정당한” 법률을 제정하는, 그러한 합리적 도구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세계관과 정치성에 따라 대립하는 여러 다양한 개인적 관심들을 통합하고 조직화하는 절차로서 이해한다. 그 안에서 우리는 정당함의 대강만을 얻게 된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광의의) 사법에 있어 공무원이나 행정관청, 법관이나 법원이 어느 체계 안에서만 법률을 집행하도록 권한이 주어졌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한 사람으로서 자기 책임 하에 “최선의 지식과 양심에 따라” 때로는 창조적으로 때로는 풍부한 이념을 가지고 개별 구체적 사례에 있어 정당한 것, 합목적인 것, 적합한 것을 찾아 나서도록 선발된 것이다. 이 경우 개별 사례의 구체적 사정뿐만 아니라, 그 사안에 당사자로서 참여한 사람들의 개인적인 이해, 희망, 신청, 주장 및 심도 있는 논의 등이 종합적으로 고려되기도 하고, 또한 이들을 대표하는 서로 상반된 주장과 동일 집단에서의 서로 다른 구성원들의 견해가 대립적으로 고찰되기도 한다. 공무원이나 법관이 판단을 함에 있어 이러한 내부적 소용돌이와 외부적 논쟁 속에 자신은 완전히 사라지고(역사학자인 랑케의 말을 따르면, 불가능한 모험일 수밖에 없는 역사연구가 그렇다), 오로지 원리와 원칙에만 매달려 해결해야 하는지? 아니면 그들도 여러 사람들 중 한 사람으로서 여러 요청, 여러 이익의 평가, 여러 논의의 확신(사실확정에 있어 자유심증과 같은 뜻은 물론 아니다) 등에 대하여 나름의 개인적 입장을 가져야 하는 것 아닌지? 권한담당자가 단순히 전문가, 법기술자 또는 “전문관료”로서뿐 아니라 자발적인 인격체로서 관여하여 한 판단에 대하여 우리는 추상적 법원리와 원칙에만 매달려 얻은 판단보다 더 많은 믿음으로 마주해서는 안 되는지? 어떤 신청을 받아들이고 받아들이지 않고 하는 것이 판단자의 개성에 좌우된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권한담당자의 개성에 따라 그때그때 형성되어지는 것은 그 결과뿐 아니라 모든 과정에 좌우되는 것이고, 나아가 보다 엄격한 것은 보다 기본적인 것이고 보다 정당한 것이며, 보다 느슨한 것은 보다 편한 것이고 책임회피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행정관청이나 법원을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가 자기 견해와 관심을 얻기 위하여 단순히 “법을 적용하는 사람”과 마주하기보다는 개성을 지난 한 사람과 마주한다는 점을 인정할 것이다. 이러한 “개인적 정당성”의 이념이 변절하지 않도록 법치국가에서는 고도의 학문인 법학과 불편부당성, 전문성 및 청렴성으로 교육받은 공무원과 법관이란 직업이 갖추어져 있는 것이다. 물론 객관적 근거에 기한 판단의 의무, 동료간의 토론, 상급기관에 의한 판단의 사후심사 가능성 등에 존재하는, 자의에 대한 모든 보장책 또한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유형의 사고는 수십 년 전 “자유법학 운동”이라고 명명된 법학의 움직임 속에서 구체화된 것이다. 물론 이 운동에는 매우 다양한 주장들이 존재한다. 이 운동은 법률의 불완전성과 오류성에 근거하여 법관으로 하여금 입법자와 같이 “창조적”으로 흠결을 보충하고 부당한 법률을 정정하도록 요구하기도 한다(이에 관하여는 다음 장 참조).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운동의 정점은 반대 의견이 비등하긴 해도, 법관을 왕처럼 통치자로 만들고, 법률의 구속을 타파하고, “자유재량”을 전체법형성의 포괄적 원리로 고양시키는데 있다.281) 이러한 자유법학파의 노력은 그들이 해안가에 이르자마자 난파되기 시작하였다. 그런 의미에서 이들은 역사적 뒤 안으로 사라질 것이다.282) 그러나 개별 사례에서 법을 적용하는 실무가가 법률에 너무 엄격히 구속되지 않고, 법적 분쟁이든 행정적 문제이든 사안의 특성과 실무가의 개인적 확신에 근거하여 의미 있고 합당하며 합목적적인 구체적 판단을 하도록 할 권한과 책무가 있다는 점만은 되풀이 살아날 것이다. 이러한 사고는, 법관은 “법률과 법”에 노예처럼 구속되어 입법자에 복종하고, 입법자 뒤에서 의문을 품는 그런 권한자가 아니며, 스스로 정치가, 사회활동가, 사회전문가 또는 최소한 특별한 사회조력가로서 시대의 흐름에 부응하며 이를 공유하여야 한다는 생각으로 나타나기도 하였다(뷔텔터, 라제혼, 바서만, 오스터마이어 등). 이러한 경향에서 어떠한 입장을 취하든(나 자신은 염려스럽다는 입장), 그것은 “법률적” 사고의 특성에서 벗어나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이 책에서는 다룰 수 없다. 이 책에서처럼 법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하는 논의 속에서는 – 조급한 오해를 없애기 위하여 – 위와 같은 생각은 주역이 될 수가 없다.283)

 

제7장 법관법, 계속 : 흠결보충과 법의 오류정정

앞장에서는 법률이 법률가에게 일정한 한계에서 입법자를 대리하고 그에 대신하여 “가치판단 및 의사결정”의 권한을 부여한 경우에 있어 그 작업과정을 살펴보았다. 이제 법적용자가 “흠결”을 보충하고 법질서에서의 “오류”를 정정하는 경우에는 새로운 사상적 기반에 근거한다는 점을 살피기로 한다. “흠결(Lücken)”과 “오류(Fehler)”는 “하자(Mangel)”라는 개념으로 통합될 수 있다.284) 이는 두 개의 서로 다른, 법의 하자를 의미한다. “흠결”이란 하자는 “법의 보충”에 의해 해소된다. 법관은 이 경우 “법률과 더불어”, “이유를 보충하여” 작업한다(“법률이 흠결된 곳에서는 법관이 보충한다(supplet praetor in eo, quod legi deest)”). 이에 반해 “오류”란 하자는 “법률의 정정”에 의해 해소되는데, 법관은 이 경우 “법률에 반하여”, “이유를 수정하여” 작업한다. 흠결보충과 법의 정정 사이의 한계는 항상 분명하고 확실하지만은 않다. 그러나 한계는 원칙상 존재하고, 각각의 경우 법적용자의 지위가 다르기 때문에 중요하다. 한계가 대략 어떻다는 것은 개개 개념을 고찰함으로써만 분명해질 수 있다.

Ⅰ.

“법의 흠결”285)이란 개념에서부터 시작하자. 흠결은 법의 전 분야에서 나타날 수 있다.286) 법관뿐만 아니라 행정공무원도 흠결로 곤란을 겪을 수 있다.287) 그러나 여기서는 간명하게 하기 위해 법관에 관해서만 문제를 다루기로 한다. 행정법률가에 대하여는 동일하게 말할 수 있다. 처음부터 결코 쉽게 대답되어질 수 없는 문제는 “흠결”이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이를 위해 공간적 형상물 – 예컨대 치열(齒列) 또는 울타리에 있어 흠결 등으 -로부터 법에 적용될 수 있는 개념을 추론한다면, 흠결이란 전체 중에서 만족스럽지 못한 불완전성을 의미한다고 말할 수 있다. 법에 있어 흠결이란 개념은 결국 법의 전체 중에서 만족스럽지 못한 불완전성을 의미한다. 1958. 7. 1. 개정되기 전의 가족법이 평등대우의 원칙으로부터 발생된 총체적 흠결의 전형적 예를 보여주었다. 우리 기본법은 이미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제3조 제2항에서 남녀의 평등원칙을 선언하고288) 제117조에서 이러한 평등원칙에 반하는 모든 법률은 효력이 없다고 규정한다. 그러나 오랫동안 이에 관한 새로운 규정을 제정하는 것이 지연되었다.289) 이에 따라 우리 혼인법과 가족법은 광범위하게 “흠결을 가지게” 되었다. 이쯤하고 다른 새로운 문제를 제기해보자.290)

1.) 흠결이 벌어지는 법의 전체란 무엇을 말하는가? 말하자면 법의 흠결개념이 법 자체의 개념까지 연결된다. 법을 단지 실정법률로만 생각하면 “법의 흠결”은 “법률의 흠결”과 같은 의미가 된다. “법률의 흠결”이란 개념을 우리는 반드시 제기해야 할 법적 문제에 관하여 (지금까지 서술된 의미에서) 해석을 통해서도 법률이 아무런 해답을 주지 못하는 경우로 보다 엄격히 제한하여 사용하고자 한다. 이에 반해 “법”을 실정법률과 함께 관습법을 포함하는 전체의 “실정법”으로 생각한다면, 법의 흠결은 법률이나 관습법에서 법적 문제에 관하여 법적 해답을 구하지 못하는 경우에만 존재하게 된다. 법률이 규정하지 않는 내용을 관습법이 규정하고 있다면, 법률의 흠결이라고 할 수는 있어도 실정법의 흠결이라고 할 수는 없다. 실정법이 궁극적으로 흠결된 경우라면 이러한 흠결은 초실정법적 사고에 의해서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흠결이란 존재하는 것인가? 더욱이 경우에 따라서는 법률의 단순한 “해석”으로 외관상 발생한 “법률흠결”을 “유추추론”과 기타 법률에 기초한 사고작업을 통해 해결할 기회도 없지 않다. 이렇게 해결될 수만 있다면, 과연 흠결이 있다고 해야 하는지 다시금 문제가 된다. 왜냐하면 이 경우에는 비록 간접적이긴 하나 바로 법률이 법적 문제에 관하여 해답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만약 입법자가 일반조항이나 묵시적 위임을 통해 법관에게 입법하는 것처럼 법을 발견할 권한을 부여하였다면 어떤가? 이러한 권한부여는 흠결이 발생될 여지가 없음을 의미하지 않는가? 법은 법관에 의해 항상 해답이 제시되고, 특히 법관은 “재판거부금지”의 원칙에 의해 모든 법적 분쟁을 어떻게든 판단해야 할 입장이고, 나아가 이러한 법관의 판단에는 항상 어느 법사상이든 근거가 있으므로, 전체로서의 법은 결코 무능하지 않고,291) 법질서는 “완결적”이며 흠결을 모른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법전체에 있어 불완전성의 의미로서 “법 흠결”의 개념은 치워버려야 하지 않을까? 실제로 “법질서의 완결성(Geschlossenheit der Rechtsordnung)”을 원리로 발전시켜 진정한 의미에서의 법흠결의 존재성을 부정하는 이론들이 있어왔다.292) 이러한 이론들은 법철학적으로 흥미 있는 하나의 개념, 즉 법으로부터 자유로운 영역이란 개념에 의해 여전히 지지될 수 있다. 위 – 물론 그 자체가 매우 다양한 의미지만 – 개념293)은 다음과 같은 논의를 가능하게 한다. 법전체는 특정한 영역에만 관계하고 그런 한에 있어서는 완결적이다. 물론 법이 지배하는 영역과 더불어 법에서 다루지 않는, 예컨대 순수사고나 신앙 또는 결사관계의 영역과 같은 영역도 있다. 이러한 영역은 “법으로부터 자유로운 영역”에 속한다. 여기서는 흠결이란 존재하지 않고 법의 영역 바깥에 있는 무엇만이 존재한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중 하나의 경우만이 성립한다. 어떤 문제를 실정법 안에서 판단하면서 법의 흠결을 인정하지 않는 경우와 실정법 안에서 판단하지 않으면서 “법이 없는 영역”에 속한 것으로 보는 경우이다. 후자의 경우에도 법이 없는 영역은 법의 외연(外延)에만 미치기 때문에 법전체 안에서는 법의 흠결이 없으므로 법의 흠결이란 존재하지 않는다.294)

이러한 개념의 덤불에서 하나의 길을 내기 위하여서는 특정한 이론적 목표를 파악하여 그 목표의 관점에서 어떤 무엇을 확정할 경우에만 가능하다. 다시 말해 일종의 “유명론적 정의(Nominaldefinition)”에서 피난처를 찾아야 한다. 우리의 목표는 잠정적으로는 특수한 성격인 법관의 작업과 법적 사고의 특정한 방법론을 배우는데 있다. 그리고 여기서 우리는 “법의 보충”에 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이 법의 보충이란 개념은 다음과 같이 정의될 수 있는 흠결의 개념을 전제로 한다. 즉, 흠결이란 특정사안에서 기대되는 법적 규정 내용이 없다고 인정할 수 있고, 법관의 법보충적인 판단에 의해 그 해결이 요구되고 허용되는 실정법(법률 또는 관습법)의 하자를 말한다.295) 요컨대, 법률이나 관습법이 법적 문제에 관하여 직접적인 해답을 제공하지 않는 경우에 흠결이 존재한다.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해석, 또는 확장해석이라도 무방한데, 이를 통해 법률로부터 해답을 구한다면 법률이 해답을 제공한 것이다. 해석을 통해 법적 문제의 해답에 이르는 한 흠결은 법과 무관하다. 이에 반해 “유추”는 이미 법보충적 기능을 지닌다. 유추는 흠결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흠결을 인정하는 것이다.296) “일반적 법원칙”에 닻을 내리고 있는 그런 법적 논의의 경우도 이점은 마찬가지다. 또한 입법자가 법적 문제를 “학계와 실무의 재량에 맡기고” 의식적이고 의도적으로 판단을 포기한 경우(예컨대 1871년 형법제정의견서에 의하면 불능미수범의 경우가 그렇다)는 흠결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의도하지 않은 흠결뿐만 아니라 의도적인 흠결이 존재한다. 이에 반해 입법자가 불확정한 규범적 개념이나 일반조항과 재량조항을 이용하여 판단의 여지를 보장한 경우 나는 이를 흠결이라 부르고 싶지 않다(물론 필립 헥은 반대).297) 왜냐하면 이 경우에는 법률적 구속의 계획적인 완화, 다시 말해 개별 사례에 있어 특별한 사정과 법공동체의 변화하는 관념에 맞추어 판결을 적응시키기 위한 법률적 구속의 완화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여기서는 법률에 의해 특정한 원칙과 한계가 재판권에 부과된다.298)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장을 앞장에 이어 서술하지 않고 별도의 장을 만들어 다루고 있는 것이다. 법률을 보충하는 의미에서 법의 적용과 법률을 대신하는 의미에서 흠결의 보충 사이에 한계가 분명하지 않다는 점은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아래 344쪽과 위 211쪽 주 47의 5번 참조). 결론적으로 흠결의 개념을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가는 개념론적인 문제임이 분명하다.

2.) 위 1.)에서 법 전체와의 내적인 관련하에서 “흠결”을 논의했다면, 앞으로는 “불만족스러운”, “계획에 반하는” 불완전성이란 요인에 사고의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299)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규정이 법 전체 안에서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여 벌써 (실정)법의 흠결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규정의 부존재를 “흠결”이라고 하기 위하여서는 어느 규정을 단순히 추정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그 규정이 존재하지 않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해야 한다. 관계 규정의 부존재는 입법자 및 법률의 종합적 계획과 일치할 수 있고, 그런 한은 우리가 마땅히 대처해야 하는 “하자”의 의미로서 “흠결”을 의미하지 않는다. 우리가 형벌을 기대한 어떤 행위가 실정법에 의해 “의식적이고 의도적으로” 불가벌적인 것으로 취급되었을 경우 이러한 계획적인 규정의 부존재가(본질적으로는 소극적 규정이) 존재한다.300) 이러한 불가벌성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법정책적 흠결”, “비판적 흠결”, “부진정한 흠결” 등, 다시 말해 향후 더 나은 법을 위한 관점에서 보아 흠결이 있다고 말할 수는 있어도(“법정책적 측면(de lege ferenda)”), 현행법의 흠결이란 의미로서 진정한, 본래의 흠결이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법해석적 측면(de lege lata)”). 법정책적 측면에서의 흠결은 입법권에 대하여 법 개정의 원인이 될 수 있을 뿐이고, 법관에 대하여 흠결보충의 원인이 될 수는 없다. 법관의 흠결보충은 법해석적 측면에서의 흠결을 전제로 한다. 우리는 법관의 흠결보충이란 과제에 기초하여 흠결의 개념을 정의하고자 하므로 흠결의 개념을 법해석적 흠결에 국한한다.301) 따라서, 위에서 언급된 “법으로부터의 자유로운 영역”이란 개념도, 어떤 구성요건에 법률효과를 “의식적이고 의도적으로” 관련시키지 않는 행위가 이런 구성요건을 법 바깥에 위치시킴으로써 진정한 의미의 흠결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 분명 정당성이 인정된다. 개별적 사례에 있어 특정한 구성요건이 법으로부터 자유로운 영역에 속하는 것으로 법에 의해 해석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다시금 해석의 문제로서, 이 경우 “의식적이고 의도적인” 법으로부터의 해방행위가 입법자의 관점에서 해석될 수 있는지, 아니면 법률의 관점에서 객관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지 하는 해석론의 논쟁도 새로운 현안으로 대두한다(아래 314쪽 참조). 실정법에 법률효과의 규정이 없는 경우에는 항상 그 법률효과 자체의 선고를 허용하지 않고, 따라서 예컨대 특정 유형의 손해에 관하여 손해배상의무의 조항이 명시적으로 없는 경우 피해자의 손해배상청구를 기각하는 판결을 선고해야 하는 것으로 위 “일반적인 소극적 규정의 원칙”을 체계화하여 설명한다면,302) 이는 확실히 지나친 일이다. (손해배상의무로서의) 해당되는 법률효과가 법률에 없다는 사실이 무조건 법으로부터의 자유로운 영역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위의 부존재의 사실은 그 해당되는 법률효과의 배제가 입법자 또는 법률의 “의사”는 아니므로 법관에 의해 보충될 진정한 의미로서의 흠결이라 할 수도 있다.

흠결의 개념에서 “반계획성”이란 요인은 예외조항의 부존재 문제를 다룰 때 특히 의미 있다.303) 단지 형식적으로만 고찰하면, 규제조항에 해당하는 경우는 “흠결”이 있다고 해서는 안 된다. 예컨대, “의학적 처방”에 의한 임신중절(형법 제218조a 제2항)이 오늘날 법에 의해 명백히 인정되지 않는다고 가정하면, 이는 임신중절을 형법 제218조 소정의 “낙태죄”로 처벌할 수 있는 규제조항에 해당함이 분명하다. 그러나 입법자 또는 법률에 의해 규제조항에 해당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계획되고 오히려 예외조항은 계획에 없다는 식으로 문제가 다시 제기될 수 있다. 예시된 사안에서는 규제조항에 해당하는 것을 과거 오랫동안 계획에 반하는 것으로 보지 않았다. 그러나 흠결보충의 필요성과 정당성을 심사하는 것은 여기서 법관이 언제나 생각해야 할 첫걸음이다.304)

방법론상 중요한 위와 같은 관점을 하나의 판결을 들어 명백히 하고자 하는데, 이 판결은 두 가지 측면에서 “역사적” 의미를 갖고 있다. 하나는 오늘날 법발견을 위하여서는 더 이상 의미가 없다는 측면이고, 다른 하나는 “초법률적 긴급피난”의 이론을 위하여 매우 유용한 것으로 형사법원에서 고려되었다는 측면인바, 그중 위 긴급피난의 이론에 관하여는 예나 지금이나 법의 보충문제와 관련하여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고, 그러한 한 여전히 “현안(懸案)”이라고 말할 수 있다.305) 1927. 3. 11. 라이히 재판소의 판결(RGSt 61, 242)은 의학적 처방에 의한 임신중절의 문제를 다루었다. 한 여의사가 자살경향을 보이는 임산부에 대해 심리학적 감정서에 근거하여 자살행동을 방지할 목적으로 임신중절을 시행했다. 임산부의 생명 또는 건강을 구할 목적으로 하는 임신중절에 관하여 당시에는 법적으로 특별한 규정이 없었다(오늘날에는 형법 제218조a 제2항이 적용된다; 위 48쪽 주 27 참조). 라이히 재판소는 위의 사안을 형식적으로만 고찰하여 다음과 같이 쉽게 판결을 선고할 수도 있었다. 즉 “이 경우 법적 규율은 존재한다. 하나는 임산부로부터 태아를 적출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형벌규정(형법 제218조)과 다른 하나는 예외적으로 범죄행위를 처벌하지 않는 긴급피난에 관한 규정이다. 그러나 이 사안에서는 긴급피난의 규정은 적용되지 않는다. 특히 ‘행위자 또는 그의 친족의 신체와 생명의 급박한 위험을 제거할 목적으로 귀책사유 없고 달리 회피될 수 없는 긴급상황하에서… 행위가 행해진 경우’만 형사상 처벌을 면하는 것으로 규정된 당시 효력 있던 (구)형법 제54조는 적용되지 않는다. 낙태를 시술한 여의사 자신이 위험에 처한 것도 아니고 임산부가 위험에 처한 친족도 아니었으므로 위 조항은 적용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여의사는 현행법의 규정에 따라 낙태죄로 처벌받아야 한다.” 위와 같이 논리적으로 외견상 불가피한 사고결과는 라이히 재판소가 낙태죄의 규정과 긴급피난에 관한 규정이 법해석적으로 “흠결이 있다”고 인정할 경우만 회피될 수 있었다. 이는 낙태죄의 조항에서 임산부에게 급박한 생명의 위험이 있는 경우, 말하자면 예외를 “갈망하고”, 당시의 구형법 제54조 소정의 긴급피난에 관한 규정에서 행위자 자신과 친족의 위험이 있는 경우에만 면책을 허용한 것이 실정법상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점을 인식하였을 것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위 라이히 재판소의 판결은, 구형법의 긴급피난에 관한 조항으로 말미암아 “똑같이 효력 있는 성문법규 또는 불문법규에 근거하여 특정한 긴급피난행위의 경우… 위법성이 조각된다”는 점을 인정하는데 방해가 되지는 않는다는 요지로 구성되었다(RGSt 61, 252). 우리가 위에서 설명한 것과 관련해서 이를 표현한다면, 구형법 제54조 소정의 긴급피난에 관한 법률의 규정은 법해석적으로 낙태죄의 처벌에서 예외로 해야하는 모든 사례를 처벌하지 않기 위하여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 된다. 바로 이점이 전체 법규정에서 흠결이 존재한다는 근거가 된다. “의학적 처방”에 의한 임신중절의 사안에서 형법 제218조에 의한 처벌에 관하여 아무런 비난이 없었고, 구형법 제54의 긴급피난에 관한 조항을 아주 만족스러운 것으로 생각하고 그 법률적 취급에 있어 하자가 있다는 점을 평가상 인정하지 않았다면, 흠결을 이야기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흠결이 존재하였고, 라이히 재판소는 이를 “법익과 의무의 형량”이라는 “초법률적” 원칙을 동원하여 보충하였다. 즉 “의사의 처방에 의한 임신중절은… 임산부의 명시적 또는 묵시적 동의가 있는 경우, 사태를 파악할 능력이 있는 제3자에 의해 행해진 경우에 한하여 그것이 생명과 중대한 신체상 훼손의 위험으로부터 임산부를 구제하기 위한 유일한 수단이라면 위법하지 않다”(RGSt 61, 252). 후에 1933. 7. 14.과 1935. 6. 26. “유전병자의 후손보호를 위한 법률”에 의해 비로소 당시까지 흠결되었던 규정이 보완되었다. 현재는 형법 제218조a의 “처방조항(Indikationenregelung)”이 효력 있다(1976년 이후, 12주 임신기간 이후에 관한 개정조항은 1995년 신설).

1927년의 라이히 재판소의 판결은 새삼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해석론의 논쟁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운다. 의학적 처방에 의한 임신중절에 해당하는 예외조항의 부존재가 법해석적으로 하자이고 따라서 “흠결”을 의미하느냐 하는 문제는 역사적 입법자의 관점에서 심사되어야 하는지, 아니면 현재의 관점에서 심사되어야 하는지 하는 논쟁이다. 법률적 규정에 흠결이 있는가 하는 문제는 단지 과거 역사적인 입법자의 관점(우리의 사안에서는 1871년 형법제정자의 관점)에서만 해결되어야 한다고 대부분 생각한다.306) 이에 반해 오늘날 지배적인 객관적 해석론에 의하면, 이 문제는 “현재”의 관점에서 해결되어야 한다. 나의 개인 생각으로는 실제 “흠결”을 확정함에 있어서는 역사적인 입법자의 관점에만 얽매일 수 없다고 본다. 세계관의 변화로 인해 과거에는 예견하지 못한 흠결이 발생할 수 있고, 이를 “법정책적인 흠결”이 아닌 현행법의 흠결로 간주해야 할 상황이 생길 수 있다. 흔히들 이야기하는 것처럼, “1차적 흠결”, 다시 말해 법률의 제정당시 이미 존재한 흠결 이외에 “2차적 흠결”, 다시 말해 사정의 변화로 말미암아 그후 발생한 흠결이 있다. 이는 가치의 변화뿐만 아니라 규제대상과 관련한 사실적 상황의 변화에서도 발생한다. 즉, 법적 규정은 드물지 않게 전혀 새로운 경제현상(1923년 세계공황) 또는 기술적 진보(비행기, 영화, 음반, 라디오, 텔레비젼, 뇌과의술, 인공수정)로 말미암아 기존의 규정으로는 만족스럽게 대처하지 못하는 법적 문제가 발생함으로써 흠결을 가지게 된다.307) 그 외 흠결 개념을 더 구분하는 행위는 여기서 그만두기로 한다.308) 이제 흠결 개념이 충분히 명확해졌으므로 어떤 법적 사고방법을 수단으로 흠결을 보충해야 하는지 하는 주된 문제로 방향을 전환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방법론 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이 유추추론(Analogieschluß)이다. 우선 – 간략하나마 – 이를 다루어야 한다.309) 간단한 예를 하나 들어보자. 이미 알려진 형법 제226조a는 피해자의 동의가 있고 공서양속에 반하지 않는 신체상해, 예컨대 문신 또는 신체상의 의학적 수술은 위법하지 않다고 규정한다. 그러나 감금의 경우, 예컨대 학생이 아무 방해 없이 자신의 학위논문을 작업할 목적으로 스스로 밤새워가며 연구소에 갇혀 있는 경우 등에는 피해자의 동의의 의미에 관하여 아무 것도 규정되어 있지 않다. 즉 226조a에 상응하는 조문이 없는 것이다. 그러한 한 “흠결”이라 말해도 좋다. 그러나 이러한 흠결은 제226조a를 유추추론하여 다음과 같이 보충될 수 있다. 즉, 신체상해에서 피해자의 동의가 있는 경우와 마찬가지로 감금의 경우에도 피해자의 동의가 있는 경우는 행위가 공서양속에 반하지 않는 한 적법하다.

사람들은 이러한 추론의 형식논리적 구조에 관하여 매우 골머리를 썩혀왔다.310) 여기서는 법적 유추추론의 특수한 문제가 제기되는 점만을 지적해두기로 한다. 일반적으로 연역적 추론이 일반적인 것에서 특별한 것으로, 귀납적 추론이 특별한 것에서 일반적인 것으로의 추론을 의미하는데 반해, 유추추론은 “특별한 것에서 특별한 것으로”의 추론으로 일컬어진다. 일반적인 것에서 특별한 것으로의 추론을 의미하는 연역적 추론의 정당성에 관하여는 아무런 의심이 없고 근대논리학을 매개로 문제없이 입증할 수 있다.

특별한 것에서 일반적인 것을 추론하는 귀납적 추론은 고래로부터 연역적 추론에 비하여 보다 문제가 되었다. 더욱이 특별한 것에서 특별한 것을 추론하는 유추추론은 논리적으로 가장 문제가 많았다. 모든 특수한 것은 다른 모든 특수한 것과 구별된다. 어떤 특수한 것에 귀속된 것이 무슨 근거로 다른 특수한 것에도 귀속된다고 인정하고, 심지어 “추론하는” 것이 허용되는가? 우리의 선례에서는 신체상해의 경우 동의의 정당성에 관한 효력에서 신체상해와 감금의 불법유형이 상이함에도 불구하고 감금에 있어 동의의 정당성에 관한 효력을 추론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대답은 한가지다. 신체상해에 정당한 것은 감금에서도 허용된다고 인정하는 것이 당연할 만큼 신체상해와 감금이 서로 유사하다는 점이다. 이로써 유사성이라는 다의적 개념이 추론의 핵심으로 들어왔다. 이와 함께 추론을 정당화하기 위한 일반성, 공통성의 의미가 주목된다. 신체상해와 감금의 경우에는 동일한 취급이 가능하기 위해 공통적인 무엇(말하자면 개인적 법익의 침해)을 가져야 한다. 이런 이유로 유추추론은 귀납과 연역을 종합한 것이라고 고래로부터 주장되었다. 추론의 대상인 특수한 현상(설례에서는 신체상해에 있어 동의에 관한 법적 규정)에서 일반적 사상의 추론이 이루어지면(설례에서는 동의가 있는 경우 개인적 법익침해의 합법성), 특수한 것으로의 추론(설례에서는 감금에 있어 동의가 있는 경우의 합법성)이 가능해진다(연역).311)

유추추론의 논리성에 관한 위의 설명에 따라 법적 사고의 분야에서 위 추론의 특수한 “공리적” 문제점에 좀더 접근한다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법적으로 지지될 수 있는 유추추론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법적 규정의 흠결된 특별한 것(설례에서는 감금의 경우 동의)이 법적 규정의 존재하는 특별한 것(설례에서는 신체상해의 경우 동의)과 법적 규정(형법 제226조a)의 근거가 된 요소를 공유한다는 점이 증명되어야 한다. 형법 제226조a는 “동의는 위법성을 조각한다(volenti non fit iniuria)”는 전통적 “법사상”에 근거하고 있는데, 이는 동의자의 개인적 인격이 관계된 침해가 문제되고, 동의자가 그 개인적 법익을 처분할 능력이 있는 경우에만 타당하다.312) 거기다가 제226조a는 “공서양속”을 고려하도록 하여 처분의 자유성에 관해 특정한 한계를 설정하고 있다. “동의는 위법성을 조각한다”는 원칙과 그 조건이 신체상해와 마찬가지로 감금의 경우에도 동일하게 타당하기 때문에 신체상해에 관한 제226조a의 법적 규정을 유추에 의해 감금의 경우에도 적용할 수 있는 것이다. 신체상해와 감금의 경우 “유사성”은 감금의 경우에도 신체상해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일정한 한도에서는 피해자에게 처분이 일임된 개인적 법익이 침해된다는 점이다. 이러한 유사성이 충분하다면 유추추론은 정당하다. 유사성이 사라지고 본질적 차이가 드러나는 곳에서 유추는 한계에 부닥치고, 경우에 따라서는313) 소위 반대추론(argumentum e contrario), 다시 말해 조건의 상이함으로부터 상이한 법적 결과의 추론이 전면에 나선다. 예컨대, 제218조a(1976년, 1995년 개정)가 신설되기 전의 구형법에 의하면, 임산부의 동의로 낙태를 한 경우는, 낙태가 단순히 임산부의 신체만을 훼손하는 것이 아니고, 태아는 자궁의 일부(어머니 신체의 일부)가 아니며, 따라서 임산부가 처분할 수 없는 개인적 법익의 특성을 지니므로, 형법 제226조a의 반대추론에 따라 동의 그 자체가 위법성을 조각하지는 못한다.

법률가가 자주 유추추론 또는 반대추론이란 양자택일의 입장에 서고 그중 어느 것에 우위를 인정할지 의문에 사로잡히게 된다는 사실에서 이런 유형의 법률적 논의에 의혹을 제기한 사람이 있다는 점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314) 이 경우는 특히 자유법학파가 열심였다. 에네케루스와 바르톨로메직이 사용한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315) 로마의 12표법(D, Buch IX, Titel 1)에 의하면 “네발 달린 짐승”의 소유자는 그 짐승의 야생성으로 인해 야기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오늘날에는 민법 제833조 “동물소유자”의 책임 참조). 이제 두발 달린 짐승, 예컨대 아프리카산 타조가 그 야생성으로 인해 입힌 손해에 대하여 소유자의 책임을 인정할 것인지 하는 문제를 제기하자. “간단한 해석”으로 두발 달린 짐승을 “네발 달린 짐승”으로 볼 수 없다고 한다면, 유추추론 또는 반대추론의 양자택일에 이른다. 순수 형식논리적으로는 결론이 전혀 달라지는 이들 두 추론이 모두 정당하다. 네발 달린 짐승을 위해 규정된 것을 다른 짐승에게 적용할 수 없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네발 달린 짐승을 위해 적용되는 것이 유사성을 이유로 위험성이 똑같은 두발 달린 짐승에게도 적용되어야 한다고 결론을 내릴 수도 있다. 로마인 스스로가 다음과 같이 유추추론을 하고 있다. 즉, “네발 달린 짐승뿐만 아니라 다른 짐승이 손해를 입힌 경우에도 본소를 제기할 수 있다”(Paulus, D 9 1 4). “임의로 행동할 수 있으면서도 인간과 같은 이성을 가지고 있지 않아 그 동물적 본성으로 인해 특히 중대한 손해를 쉽게 야기할 수 있는 생물의 경우 특별책임을 인정하려는 것이 본 책임조항의 법정책적 목적이므로” 이러한 추론은 아주 정당하다.316) 유추추론과 반대추론 사이의 선택을 실제로 순수논리만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논리학이 목적론과 결합되어야 한다.317) 이는 다음을 의미한다. 즉, 추론과정은 논리적으로 명백히 정연해야 하지만 특정한 법률적 방법론에 의해 얻게 되는 특정의 사실적 이해와 결합되어야만 실무상으로 기능을 발휘한다. 더욱이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해도 무방하다. 법적 유추추론은 “법의 유사성”이란 근거 하에 그의 논리적 신뢰성과 법적 실무에 있어 유용성만으로 지탱되는 것이 아니라, 사법을 위하여 법률적 규정과 관습법적 규정이 직접적뿐만 아니라 간접적으로도 효과가 있을 수 있고, 있어야 한다는 점을 철두철미 전제하면서 법의 지면에 더욱 더 그 뿌리를 두려고 한다는 것이다. 법률과 관습법의 일반적 가치판단에 따라 직접적 관련사안뿐만 아니라 유사한 상황에 처한 사안도 함께 규율되고 지배되어야 한다.318)

흠결보충의 수단으로서 유추추론에 대해 언급될 수 있는 원칙이란 것이 너무도 많다. 법에 있어 “유추”란 개념과 결부되어 있는 개별적 문제들을 여기서는 간략하게만 살펴볼 수 있고 상세하게는 다룰 수 없다.

1.) 유추는 모든 법규, 다시 말해 좁은 의미의 법률뿐만 아니라 모든 종류의 규정과 관습법적 규범에서도 적용될 수 있다. 이외에도 유추추론은 개별 법역의 테두리 안은 물론이고 개별 법전의 테두리 안, 그리고 한 법전에서 다른 법전, 한 법역에서 다른 법역에 까지 이루어진다.319)

2.) 우리는 유추가 해석과 반대추론의 중간에 위치한다고 생각한다. 유추추론과 반대추론 사이의 올바른 관계를 설정한다는 것이 그리 쉽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해석과 유추의 올바른 한계를 발견한다는 것도 언제나 그렇게 단순한 일만은 아니다. 일반적으로는 유추는 해석 뒤에, 그것도 확장해석 뒤에 개시하는 것으로 말할 수 있다.320) 어의로도 법적 판단을 하지 못할 때 해석의 한계가 있다고 예를 들어 원칙을 정한다면(헥: “해석명제의 한계는 가능한 ‘어의’에 있다”321)), 이러한 한계선상에서 유추추론의 탐구가 시작된다. 다시 한번 타조의 예를 상기해보면, 어의로는 한계가 있으므로 아무리 최대한으로 노력한다 해도 타조를 “네발 달린 짐승”이란 개념에 종속시킬 수는 없다. 그러나, “확장해석”을 수단으로 구체적 사실관계에 관련될 수 있는 경우 이를 소위 어의로 파악할 수 있는지 하는 점이 드물지 않게 문제된다. 예컨대, 구형법 제46조는 중지미수의 경우 “행위자”의 면책을 보장하고 있는데, “어의로 볼 때” “행위자”에는 교사범이나 종범과 같은 공범도 포함될 수 있는지 문제가 된다. 확실히 해석(특히 확장해석)과 유추 사이에 한계가 유동적인 면이 있다. 실무상으로 이는 모든 해석이 법적으로 허용되지만 법적 조항을 유추하여 적용하는 것은 금지된 경우 실익이 있다(아래 5.) 참조).

3.) 해석의 방법론에 관한 문제, 특히 규준이 되는 “법사상”을 역사적 입법자 또는 “객관적” 법률 자체의 의사에 따라 어느 정도까지 탐구할 수 있는지 하는 문제, 법률조항의 관련목적이 법률의 의미파악에 있어 어떤 의미를 갖는지 하는 문제 등은 별 내용의 수정 없이도(mutatis mutandis) 유추에서도 되풀이된다(사람들은 목적론적 해석뿐만 아니라, 우리의 예시된 사안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목적록적 유추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

4.) 법률의 유추와 법의 유추에 관하여는 전통적으로 다음과 같은 구별이 존재한다. 법률의 유추는 하나의 구체적 법규(예컨대 형법 제226조a)에서 출발하여 그로부터 유사한 사례에 적용할 수 있는 기본사상을 도출하고, 이에 반해 법의 유추는 “구체적인 법조항의 다수”로부터 출발하여 그로부터 (귀납적 추론에 의해) 일반적 원칙을 발전시키고 이를 법률조항에 해당되지 않는 사례에 적용한다(에네케루스의 입장).322) 법의 유추에 관하여 한가지 예를 더 든다면, 계약협상의 단계에서 계약상대방에 대한 유책의 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을 규정한 민법의 일단의 구체적 조항(민법 제122조, 제179조, 제307조, 제309조, 제463조 제2문, 제523조 제1항, 제600조, 제663조)으로부터 계약협상을 시작할 때 이미 당사자에게 배려의무가 성립하고 이를 위반하면 손해배상의무를 진다는 원칙(소위 계약체결전의 과실책임)을 도출하는 것이다.323) 법률의 유추와 법의 유추 사이의 이러한 구별에서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것은 기본사상을 도출함에 있어 귀납적 근거가 기본적으로 한번은 보다 좁고, 한번은 보다 넓다는 차이에 불과하다. 따라서 단지 정도 차이의 문제라고 정당하게 말할 수 있다.324) 법률의 유추와 법의 유추 사이의 구별을 다르게 정의하려는 시도에 관하여는 여기서 다루지 않는다.325)

5.) 유추에도 한계가 있다. 예외는 확장되어서는 안 된다라는 유명한 원칙, 다시 말해 예외조항은 유추에 의하여서도 확장되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 물론 문제로 될 수 있다.326) 예외적인 특정한 사례 또는 일단의 사례를 위해 어느 조항이 제정되었다면, 이 조항을 예외적 사정이 존재하지 않는 사안에 유추하여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점은 사실 타당하다. 예컨대, 유책한 행위로 가장(家長)인 부(父)가 사망함으로 인하여 피해를 입은 부양권리자인 유가족에게 부양연금청구권을 인정한 것과 같이 민법 제844조 이하에서 예외적으로 불법행위에 의해 간접적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도 손해배상청구권을 인정하였다고 하여, 간접적으로 피해를 입은 다른 사람들, 예컨대 사망자의 임의적인 자선행위로 인해 보조를 받아온 다른 사람들을 위해 이 조항을 유추적용해서는 안 된다.327) 이 경우는 반대추론이 적용된다. 즉, 특별한 요건이 갖추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특별한 법률효과를 부정해야 한다. 그러나 다른 측면에서 보면, 예외조항에 내재된 기본사상의 한도 안에서라면 유추는 적법하다. 예컨대 (구)형사소송법 제247조에서는 공범 또는 증인이 피고인의 면전에서 신문을 받을 경우 “사실을 진술하지 못한다”고 우려될 수 있는 상황이라면 원칙상 공판기일에 출석할 권리가 있는 피고인이지만 예외적으로 그를 퇴정시키는 것이 허용되고 있는데, 증인이 피고인의 면전에서는 정신적으로 도대체 진술을 할 수 없는 경우에도 위의 “개별” 조항을 유추적용할 수 있다. 라이히 재판소는 피고인이 강간하려다가 미수에 그친 증인이 공판기일에서 피고인의 면전에서는 발작을 일으켜 진술을 할 수 없었던 사안을 판단해야 할 경우가 있었다(RGSt 73, 355 참조). 라이히 재판소는 “형사소송법 제247조 제1항에서 규정하는 기본사상은 증인신문의 경우 피고인의 출석이 불명확한 사실을 조사하는데 있어 장해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에 있다”고 판시하였다. 증인이 피고인의 행위에 의해 유발된 신경질환으로 인해 그의 면전에서는 진술을 할 수 없다는 사정을 배려하여야 한다는 점은 “형사소송법 제247조에서 피고인의 퇴정을 정당화하는 요인으로 유일하게 명백히(!) 규정된, 증인이 사실을 진술하지 못한다는 사정을 배려하여야 한다는 점과 동일하게 취급… 되어야 한다”(RGSt 73, 356 이하).328)

“예외조항은 확대되어서는 안 된다”라는 원칙은 매우 주의 깊게 다루어져야 한다는 것이고, 유추와 반대추론 사이의 한계에 관하여 이미 설명한 것에 본질적으로 새로운 내용을 덧붙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입법자에 의해 종종 제시되는 유추금지는 유추허용의 한계로서 인정되어야 한다. 그 가장 유명한 적용례가 “형법 없이는 범죄 없고, 형법 없이는 형벌 없다”는 형법상 원칙인데, 이는 통설에 의하면 위법한 행위를 이유로 한 판결과 형벌의 부과는 직접적인 적용법률에 근거하여야 한다는 명령을 내용으로 한다(기본법 제103조 제2항, 형법 제1조 참조). 예컨대, 형법 제123조의 규정에 의하면 주거침입죄는 주거에 “침입”할 것을 전제로 하므로 밤에 악의적으로 전화하는 행위를 주거침입죄로 처벌하지는 못한다. 액화염소가 형법 제223조a 소정의 “흉기”에 해당한다는 연방대법원의 판결은 최소한 의문이다(BGHSt 1, 1).329) 허용되는 확장해석과 허용되지 않는 유추 사이에 사안별로 필요한, 그러나 자주 불확실한 한계를 설정함에 있어서는 다시금 어의가 기준이 된다.330)

유추추론 및 반대추론과 같이 비슷한 방법으로 흠결을 보충하기 위해 기존 규범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는데 제공된 다른 논의에 관하여는 여기서 다룰 수 없다. 따라서 “큰 것에서 작은 것의 추론(argumentum a maiore ad minus)”, 그 역인 “작은 것에서 큰 것의 추론(argumentum a minore ad maius)”과 유사한 논의 등은 생략한다.331) 이제 법률 또는 관습법적 규범의 논리적, 목적론적 “확장효력”으로는 추구하는 판결을 발견하고 이를 근거 지우는 것이 충분하지 못한 경우 어떤 방식으로 흠결보충을 해야하는지 하는 문제를 살펴보기로 한다.

우선 여기서 아주 간략하게 다루어져야 할 중요한 예가 형법상의 금지착오에 관한 문제인데, 이는 1975. 1. 1. 제2차 형법개정법률(형법 제17조)에 의해 더 이상 “흠결”에 해당한다고 할 수는 없으나, 당시까지는 직접적인 관련조문의 부재로 인하여 형법이론 중 가장 유쾌하지 못한 논쟁거리의 하나였다. 왜냐하면, 1871년 형법은 가벌적 행위의 행위자가 자신의 행위로 가벌적 불법인 “법률적 구성요건”을 충족한다는 사정 또는 결과를 알지 못한 경우(예컨대, 위증한다는 사실을 몰랐다거나 화재의 원인이 된다는 사실을 예견하지 못한 경우)는 고의로 범죄를 저질렀다는 비난으로부터 면제된다고 규정하였으나, 작위 또는 부작위의 모든 사정과 결과를 인식하고도 금지를 위반하지는 않는다고 믿은 경우(예컨대, 동성연애가 일반적으로 허용된다고 생각한 경우)는 행위자의 고의가 어떻게 되는지 하는 문제에 관하여는 아무런 규정을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곤혹스런 “흠결”을 보충하기 위하여 제시된 다양한 이론을 설명하고, 판례가 이 문제를 어떻게 다루었느냐는 점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여기서 적절치 않다. 다만, 연방대법원이 업무를 개시하자마자 그 전년도까지 미해결이었던 위 논쟁을 매우 급진적인 “법의 보충”에 의해 어떻게 해결하였는지 하는 점은 예나 지금이나 흥미롭다(BGHSt 2, 194). 연방대법원은, 요컨대 형벌은 책임을 전제로 한다는 형벌의 불가침적 원칙에 입각했다. 연방대법원은 책임의 “본질”(“책임은 비난가능성이다”, 200쪽)을 분석함으로써 이 원칙을 보다 상세히 다루면서 범죄행위자가 불법을 행한다고 인식하거나 최소한 “양심이 응분의 긴장을 했더라면”(194쪽) 그 인식이 가능한 경우에만 책임을 진다는 결론을 이끌어냈다 – 이는 형법학에서는 몇몇 학자에 의해 이미 제기된 단순하면서도 만족스런 해결책이었는데, 그후 형법의 입법자에 의해 보다 더 단순하지만, “행위시 행위자에게 불법을 행한다는 인식이 없었던 경우 이러한 착오를 회피할 수 없었던 때는 그는 책임이 없다. 행위자가 그 착오를 회피할 수 있었던 경우는 형벌을… 감경할 수 있다”(형법 제17조)라는 형식으로 채택되었다. 연방대법원은 “책임원칙의 관철을 보장하고 책임의 본질에 부합하는… 그런 법원칙을 법발견의 방식으로 탐구하고 적용하는 것이 그의 업무에 해당한다”(204쪽)는 점을 분명히 하였다. 어느 부분에 가서는 심지어 “흠결된” 법률규정을 법관이 보충하는데 있어서는 “책임의 본질에서 필연적으로 – 모든 법률적 규정에 앞서 – 제기되는 법원칙”(209쪽)이 문제될 뿐이라고 판시하였다. 이는 거의 일종의 “자연법”을 선언한 것이다.

이제 앞서 기술한 이중의미에서 “역사적”이라 할 위의 예에 지금 논의되고 있는, 아직 궁극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흠결의 문제를 대립시켜 본다면, 오늘날 논쟁이 분분한 안락사의 부분에서 제기된 사례 하나가 유용할 것이다. 고도의 의학적 처방에도 불구하고 환자의 사망이 촉진될 정도로 위험성이 매우 크다면, 죽음에 괴로워하는 환자에게 참기 어려운 고통을 줄이기 위하여 의학적으로 몰핀 처방을 하는 행위를 법률적으로 어떻게 평가해야 할 것인지? 우리가 형법과 전통적인 그의 “해석”에 입각하여 본다면, 의식적으로 고려되었다 할 생명단축의 행위는 (상당히 고도의 개연성을 예상하였으므로) 모살의 일종이고, 다만 죽어 가는 환자의 “명시적이고도 진지한 요구”, 그것도 “의사선생님 도와주세요”와 같이 일상적 외침 속에서 전달되어서는 곤란한 그러한 요구에 근거하였을 때만 처벌이 경감되어질 수 있을 뿐이다(형법 제216조). 안락사에서 의사에게 금지에 대한 불가피한 착오가 있다고 볼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오히려 형법상 일견 보아 판단할 때, 불필요하고 비인간적이라 할 사례들이 너무 자주 발생한다. 그리하여 법률적 규정이 흠결되어 있고, 보충을 필요로 한다고 보면서, 만족할만한 방식으로 근거가 될 수 있는 그러한 논점들을 찾게 되었다. 이러한 논점들로서 (간단하게 표어화 하자면) 죽어 가는 환자의 자기결정권, 비록 위험이 따른다 해도 의학적 처방을 통하여 환자를 도와주어야 한다는 의사의 직업의무, “합리적” 이익형량(말하자면 “초법률적 긴급피난” 따위), 너무 가혹한 요구에 대한 (동정과 자비로서의) 도덕의 승리, 세계관과 종교관의 변화, “확신범”에 대한 특별 평가의 필요성, 인간으로 하여금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도록 그냥 두지 말아야 한다는 기본법에 보장된 “인간존엄”의 존중 등등이 언급된다.

방향을 돌려, 우리가 법적으로 승인된, 아니면 최소한 법적으로 논의될 수 있는(“대표될 수 있는”) 여러 원칙이나 “토포이(Topoi)”로부터 어느 정도로 유추, 반대추론 및 이와 유사한 논의를 뛰어넘어, 법의 보충에 유용한 실질적 관점을 가져올 수 있는가를 묻는다면, 우리는 (일반적 규정으로서의) 입법, 사법과 이론에 있어 위에서 언급한 법의 형식이나 사고형식(책임의 본질, 초법률적 긴급피난, 제도) 외에 다음과 같은 점들이 타당하다고 할 수 있다. 법의 일반원칙,332) 법질서의 정신,333) 지배층의 가치평가,334) “정당한 법”,335) 자연법 및 “사물의 본성”,336) “정당한 목적을 위한 정당한 수단”(아래 345쪽 주 61 참조), 그리고 (물론 자유법론에 한하기는 하지만) 자주 되풀이되는 주장인 “법관의 창조적인 고유한 가치평가”337) 등. 흠결이 관련된 사안에서 입법은 이 원칙 또는 저 원칙을 제시하는 등 일정하지가 않다. 프로이센 일반 란트법 총칙 제49조에서는 “일반원칙”에 근거하도록 하였고, 민법안 제1조에서는 “법질서의 정신”에 근거하도록 하였다. 1917년 교회법 제20장에서는 명시적으로 규범의 흠결이 있는 경우이거나 또는 유추에 의하여 적용될 수 있는 규범의 흠결이 있는 경우에는 “모든 교회인이 따르는 한 일반적 법원칙에 의하여”(generalibus iuris principijs cum aequitate canonica servatis) 판단하여야 한다고 정하였다. 헤이그의 국제재판소 조약 제38조는 “문화민족이 승인한 일반 법원칙”의 준수를 선언하고 있다.338) 무엇보다도 저명하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리스토텔레스339)에게까지 소급되는 스위스 민법 제1조의 원칙이다. “법률에 정함이 없는 때는 법관은 관습법에 따르고, 관습법에도 정함이 없는 때는 그가 입법자라면 정하였을 내용에 따라 재판할 수 있다. 이 경우 확인된 이론이나 주장은 이를 지킨다.”340)

이러한 흠결보충의 원리들이 어디에 근거하고 그들 사이에 우열관계는 어떤지(관습법과 유추의 적용이 불가능할 때 지배층의 가치평가가 우선하고 그 다음에 일반적 법원칙이 탐구되어야 하는지, 아니면 그 반대인지, 또는 나아가 법관의 자기 나름의 가치평가가 우선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것은 최후의 피난처에 불과한 것인지) 하는 문제들을 여기서 논의할 수는 없다. 이는 능력의 한계를 벗어나는 법철학적 문제인 것이다. 흔히 흠결보충에 대한 법관의 의무, 이런 또는 저런 흠결보충의 방법론을 법률에 의한 특별수권 또는 관습법, 특히 – 의심할 여지없이 한 문제의 실증적 해결이란 – 법관이 갖는 전통적 지위 등에서 근거를 구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책의 주제로는 앞서 언급한 유형의 법적 사고가 어떠한 과제를 갖는가 하는 문제에 국한한다. 이 문제는 매우 다양한 논의를 포함하기 때문에 간단한 지적만으로 만족을 해야한다. 논의의 다양함은 예컨대, “법질서의 원칙” 등에서 보는 바와 같이 개념 자체가 지닌 고도의 추상성에서 비롯한다. 이 경우 일반적으로 타당한 법원칙의 문제인지, 아니면 “개개의” 법질서에 속하는 구체적이고 역사적인 원칙을 염두에 둔 것인지?341) 우선 일반적 법원칙이나 더 나아가 “자연법”에 의한 흠결보충의 경우라면 절대적이고 일반적으로 타당한 법원리를 고려한 것이나, 최소한 이익과 의무의 형량 또는 “정당한 목적을 위한 정당한 수단”의 원칙과 같은 경우에는 이를 충족하는데 있어서 특정한 역사적 사정을 고려하여야 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반면에 “법질서의 정신”,342) 보다 분명하게는 “지배층의 가치평가”와 관계된 주장이라면, 이는 단지 역사적으로 타당한 원칙만을 직접 지칭한다고 할 것이다. 우리가 앞에서 예로 든 경우를 생각한다면, 금지착오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 비록 논란은 많지만 – 일반적으로 타당한 판단으로 생각될 수 있고, 반면에 고도의 위험을 수반하면서 고통감경의 조치를 취할 것인지 하는 문제의 해결은 역사적으로 가변하는 가치평가에 제한된 판단으로 생각될 수 있다. 흠결보충이 자연법사상의 주위를 맴도는 것이라 한다면, 법적 사고는 분명 법철학적 길로 접어들게 된다. 여기서는 자연법의 논리성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므로 이를 논할 수는 없다. 이와 달리 흠결보충이 역사적으로 주어진 가치평가에 근거하는 것이라 한다면, 우리가 앞장에서 고찰하였던 법관의 (선재하는 가치평가에 근거한) “객관적” 가치평가에 관하여 설명하였던 바가 여기에 타당하다. 물론, (“공서양속에 반하여”와 같이) 구체적 가치평가를 필요로 하는 규범적 개념이나 그와 관련한 조항과 흠결보충의 원칙들 사이에 한계가 모호하고, 이와 함께 법을 보충하는 법발견과 법을 대신하는 법발견 사이에 한계가 불명확하여진다는 점이 새롭게 지적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방법론적으로 특별히 중요한 의의가 있는 것은 정당한 목적을 위한 정당한 수단, 또는 이익과 의무의 형량과 같은 흠결보충의 원칙, 또는 자우어(Sauer)가 제기한 “법적인 기본법률”, 다시 말해 “국가공동체를 위한 최대한의 이익, 또는 불이익보다 이익이 더 많은 것이 법적 원리가 되는” 그러한 원칙이다.343) E. 슈미트344)가 슈탐러와 그라프 쭈 도나(Graf zu Dohna)의 사상에 근거하여 흠결보충의 수단으로 제시하였던 정당한 목적을 위한 정당한 수단의 원칙에 있어서는, (특수한 의학 목적에 기한 임신중절의 문제에 있어서와 같이)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어떤 법적 규율을 적용할 것인가에 관한 단순한 목적론적인 논의뿐만 아니라, 목적 자체와 이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의 법적, 도덕적 또는 문화적 가치평가를 필요로 한다. 이미 지난 세기 법학 서적에서 등장한 이익과 의무형량의 원칙345)은 의학적 목적에 기한 임신중절에 관한 판결에서 라이히 재판소(RGSt 61, 242)에 의하여 채택된 바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범죄유형으로서 외형상 구성요건을 충족시키는 어떤 행위가 법익을 보호하거나 법에 의하여 부과되고 승인된 의무를 이행하기 위한 유일한 수단이 되는 그러한 생활사정 하에서는, 그 행위가 합법적인지 또는 허용되는지 또는 위법한지 하는 문제는 현행법에서 끌어낼 수 있는 서로 충돌하는 법익 또는 법적 의무 사이의 가치관계에 의존하여 판단되어야 한다”(254쪽).346) 이러한 주장은 실용적인 기술적 차원의 논의(급박한 법익의 침해가 어느 정도인지, 다른 법익 또는 의무의 희생은 얼마나 필요한지) 외에도 다시금 진정한 의미의 가치평가(어느 이익, 어느 의무가 보다 고차적이고 보다 중요한지)를 요구한다. 이러한 가치평가는 궁극적으로는 또 다시 어느 정도 “객관적” 가치기준에 의존하여야 한다. 라이히 재판소는 개별 법익에 대한 가치평가는 형법이 정한 형벌의 크기로부터 끌어내야 한다고 지적함으로써 “현행법”과의 관련성을 언급하였다. 예컨대, 모살과 고살은 낙태보다 더 중하게 처벌됨으로써 사람의 생명이 태아의 생명보다 더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보여준다. 자우어에 의하여 제기된 “법적 기본법률”도 이와 마찬가지라 할 수 있다.

스위스 민법전의 규정은 매우 복잡한 문제를 불러일으킨다. 예컨대 법관이 입법자와 같이 행동하여야 한다고 할 때, 무엇이 정당하였을 입법인가에 관하여는 어느 정도로 자신의 고도의 개인적 의견에 근거할 것이며, 어느 정도로 역사적 입법자에의 구속을 준수하여야 할 것인지? 입법자 자신은 법을 제정함에 있어 도대체 어떤 원칙에 따라 행동하는지? 스위스의 법학자인 마이어-헤이오쯔(Meier-Hayoz)는 엄청난 분량의 저서(“입법자로서의 법관”)에서 스위스 민법 제1조 제1항을 다루고 있는데, 우리는 이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입법자에 의한 법발견의 문제, 즉 “입법방법론”의 문제는 그 자체가 하나의 커다란 문제영역에 속하는 것으로 우리는 이를 지적만 할뿐이고 자세히 논할 수는 없다.347)

끝으로, 자유법학파를 지지하든 지지하지 않든 많은 법이론가들에 의하여 흠결보충의 수단으로서 자주 언급되온 “법관의 자기 고유한 평가”에 관하여는, 제6장에서 법관의 가치평가에 대하여 설명한 이상을 덧붙일 것이 없다. 중요한 것은 언제나, “자기 고유의 평가”란 것이 어느 정도로 자기 현실의 개인적인, 다시 말해 주관적인 평가를 의미하고, 어느 정도로 객관적 가치기준에 종속하는 평가를 의미하는지 하는 문제이다.348) 흠결보충의 경우에 의심스러울 때는 바로 객관적 판단을 얻으려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이제, 위에서 언급한 흠결보충으로서 모든 법발견의 방법론에도 불구하고 흠결보충이 불가능한 그와 같은 사례는 없는지, 다시 말해 실정법의 흠결 외에 전체 법질서에서의 흠결은 없는지 하는 문제가 여전히 남는다. 이러한 문제는 법학방법론적 문제라기보다는 법철학적 문제라 할 것이다. 이점에 대하여 간단히 말하자면, 사실상 보충이 불가능한 그러한 흠결이 존재할 수 있고, 슈탐러가 “모든 법적 문제에 대하여는 모든 법적 해답이 가능”하여야 한다고 요약해서 말한 법질서의 완결성이란 이론349)은 절대적으로 타당하지 않다는 점이다.350) 프랑스 민법 제4조(“Le juge qui refusera de juger, sous prétexte du silence, de l’obscurité ou de l’insuffisance de la loi, pourra être poursuivi comme coupable de déni de justice”: 법이 침묵하고 있다거나 모호하다거나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재판을 거부하는 법관은 재판거부의 책임으로 소추될 수 있다)에 그 고전적 형식으로 반영되어 있는 저 유명한 재판거부금지의 원칙이 타당하긴 하다. 또한 이러한 금지의 원칙이 법관으로 하여금 모든 법적 문제에 대하여 해답을 제시하도록 의무 지우긴 한다(위 303쪽 이하 참조). 그러나 이러한 금지 원칙이 선험적으로 타당한 것은 아니다.351) 흠결의 상황에서 법관이 판단을 거부할 수 있는 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다. 모든 법적 문제에 있어 법원이 꼭 분쟁을 해결하여야 할 임무가 있는 것도 아니다. 국가적 분쟁이나 국제법적 분쟁의 경우를 생각하여 보라! 우리 헌법재판소가 갖는 광범위한 권한행사는 자명한 것이 아니다. 법원이 판결을 할 임무가 있고 또 그 필요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 판결이 법원칙에 의하여 충분히 근거 지울 수 있고, 자의적 판단이 아닌 진정한 법 판단이라 이야기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법원이 자의에 따라 판단을 하거나 오로지 기회의 관점에서만 판단할 권한은 없으며 그렇게 하도록 되어있지도 않다는 것은 일반적이다. 연방대법원은 성의 평등취급에 관한 문제의 연구에서 법관이 “법률을 뛰어넘어 법을 발견하여야 할 경우 (법원칙의) 단순한 전개에 의하여 법을 발견하는 대신에 합목적성의 관점에서 자의적으로 법을 제정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임무를 수행한다”면, 이는 권력분립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판시하였다.352)

아무튼 논리적이고 법이론적으로 필연적인 법질서의 완결성이란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법질서의 완결성은 하나의 “규율적(regulativ)” 이념이라 할 수 있고, “우리에게 무엇이 존재하여야 할 것인지를 규율(Regel)로서 요구하면서도 객관적으로 존재할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는 그러한 이성의 한 원리”353)와 같다 할 것이다. 우리가 주장하는 것은, 법적 문제는 최대한 법적으로 해결하여야 하고, 실정법의 흠결도 가능하다면 법사상에 의하여 해결하여야 한다는 점이다.

Ⅱ.

사람들은 법질서의 완결성이란 원칙과 함께 법질서의 단일성(Einheit der Rechtsordnung)이란 원칙을 자주 거론한다. 법질서의 단일성이란 원칙은 본 장에서 다루고자 한 두 번째 문제, 즉 법의 오류정정이란 문제로 우리를 이끈다. 법질서의 단일성이란 의미가 바로 위와 같은 문제의 영역을 넘어서는 것이긴 해도,354) 그 문제와 깊은 관련이 있다. 단일성 원칙의 한 측면이 바로 법질서 내에서 모순금지의 원칙이기 때문이다. 모든 하자가 오류는 아닐지라도 오류는 “하자”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우선 오류에 해당하는 하자를 다루기로 한다(그 외 다른 하자에 관하여는 III.에서 언급한다).

법질서 – 논의의 단순화를 위하여 다시금 실정법을 전제로 한다 – 에 있어 오류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우선 흠결의 구분과 마찬가지로 오류가 처음부터 법규 체제 안에 존재하였는가 아니면 나중에 발생하였는가에 따라 1차적 오류와 2차적 오류로 구분된다. 후자가 전자보다 더 잘 눈에 띈다. 일시에 효력을 가지게 되는 법 체제는 신중에 신중을 거듭하므로 좀처럼 오류를 발견하기가 어렵다. 이에 반하여, 새로 규범을 제정함에 있어 전체 법질서의 기존 조항들과의 관계에서 오류가 있는지 여부를 입법자가 생각하지 않는 경우는 쉽게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변혁과 붕괴의 경우에 일반적으로 기존 법상황과 새로운 법상황 사이에 완전한 불일치가 발생한다. 독일의 경우 1918년, 1933년, 1945년과 1989년 이러한 경험을 하였다. 법원과 다른 국가기관은 기존의 법조항 중 어느 것이 새로운 법 상황과 일치하고, 어느 것이 일치하지 않는지를 가려내기 위하여 보다 많은 노력을 경주하여야 했다. 1945년 이후 “합헌주의 이전의” 입법자가 제정하였던 법규가 1949년 기본법과 새로운 법치국가질서에 부합하는지가 언제나 심사되어야 했다.355) 이 경우 신, 구법 사이의 불일치가 기술된 법규만으로는 파악되지 않고 신, 구법의 “정신”에서 비롯한다는 사실이 특히 어려운 문제를 낳는다.

이로써 법질서 내에서의 오류란 어떤 특성을 갖는지 하는 중심 문제에 이르게 되었다. 내 개인적 생각으로는 다음과 같이 오류의 종류를 구분할 수 있다고 보는데, 이들은 나름대로의 독특한 특성과 – 여기서 그때그때 함께 다루게 될 – 방법론적 의의를 갖는다.356)

1.) “법률기술상의 오류”. 이는 개념이 통일되지 않은데서 존재한다. 예컨대 공법상 공무원 개념과 형법상 공무원 개념은 전혀 같지 않다. 공법상 공무원은 아니더라도 형법상 공무원에 해당할 수는 있다. 마찬가지로 여러 다른 법규 안에서 “물건”, “점유”, “착오”, “공공성”, “과실”, “항변” 등의 개념은 서로 다른 의미를 지닌다. 이를 “법개념의 상대성”(참고문헌은 위 163쪽 주 35 참조)이라 한다. 법질서는 “구체적 법규정의 특정한 의미에 따라 개념의 개별화된 변형을 요구한다”.357) 예컨대, 형법상 과실의 개념은 민법상 과실의 개념과 다르며, 보다 구체적인 뜻을 갖는다. 왜냐하면 책임을 확정함에 있어서는 손해배상의 경우보다 형벌을 부과하는 경우에 더 고도의 구체적 사정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형사소송에서는 의사가 사정에 따라 다행히 책임능력의 결여에 근거하여 과실치상의 죄책으로부터 무죄가 될 수 있는 경우에도, 민사소송에서는 “일반인”이 그에게 거는 기대를 지키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다시 말해 – 민법 제276조가 규정하고 있는 바와 같이 – “거래상 요구되는 주의의무”를 위반하였기 때문에 과실치상으로 인하여 손해배상의 판결을 받을 수 있다. 우리가 “해석과 이해”의 장에서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개념들은 그때그때의 관계, 특히 규범적이고 목적론적인 관계에 의하여 의미와 내용을 갖게 된다. 따라서 법적 용어의 단일성은 사물의 상대성과 비교하면 그다지 중요하지는 않다. 그러나 “법질서의 단일성과 무오류성을 이와 같이 상대화시킨다 하여”358) 법의 실체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다. 이에 반하여 다음의 고찰은 매우 중요하다.

2.) “규범의 충돌”. 이는 추상적으로 어떤 행위 또는 구체적인 어떤 행위가 동시에 명령되어져 있기도 하고 명령되어져 있지 아니하기도 한 경우, 또는 금지되어져 있기도 하고 금지되어져 있지 아니하기도 한 경우, 또는 심지어 명령되어져 있기도 하고 금지되어져 있기도 한 경우에 존재한다. 법질서가 상관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할 것을 명하면서 동시에 특정한 범죄행위(살인, 협박 등)를 금지하고 있는 경우를 그 한 예로 들어보기로 한다. 상관이 전쟁포로의 사살을 명하였다고 할 경우, 부하는 무조건 그 명령에 따를 것인지 아니면 고의적인 살인행위를 중지할 것인지 하는 규범의 충돌상황에 처하게 된다. 이와 같은 규범의 충돌을 그대로 놓아둘 수 없음은 명백하다.359)

우리가 이제 위와 같은 규범충돌의 문제를 해소하려고 살펴보면, 대다수의 규범충돌이 단지 외형상으로만 그렇다는 점이 우선 두드러진다. 일응 모순인 것처럼 보이는 규범들을 종합적으로 해석하여보면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에 우선한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는데, 위와 같은 경우가 그렇다 할 수 있다. 법학은 규범의 조화와 그를 통하여 모순을 회피하기 위하여 수 백년 동안 일련의 원칙을 정립해왔다. 그 배경으로 법질서의 단일성과 무오류성의 원칙이 “요청”되었다. 이들 원칙들로는, 특별법이 일반법에 우선한다(“lex specialis derogat legi generali”), 상위법이 하위법에 우선한다(“lex superior derogat legi inferiori”), 신법이 구법에 우선한다(“lex posterior derogat legi priori”)는 것 등이다. 물론 이들 원칙들은 논리적으로 자명하지는 않다. 그 근거를 지우는데 있어 때로는 어려움에 직면하기도 한다.360) 구법이 좋은 법이어서 신법보다 우선하였던 시기도 있었으므로 이점은 쉽게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361)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원칙의 이론적 정당성이 자명하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이들 원칙 사이의 내부적 관계는 어떤지 하는 문제가 생긴다. 예컨대 하위의 신법은 상위의 구법에 우선하는지? 이 경우 상위법 우선의 원칙이 적용되는지 아니면 신법 우선의 원칙이 적용되는지? 우리는 여기서 단지 이러한 문제를 제기할 뿐이고 이를 다룰 수는 없다.362) 규범의 외형상 모순을 전체 법질서 안에서 해소한다는 입장에서 규범충돌에 관한 논의는 법적 사고의 핵심적 한 부분을 구성한다. 바호프가 제기하였던 “헌법에 반하는 헌법규범”의 문제도, 헌법의 전체적 체계 안에서 각각의 규범이 지닌 효력의 우열을 인정할 수 있다고 믿고 상위규범과 특별규범에 우위를 인정할 수 있다고 한다면 부분적으로 이에 속하는 문제라 할 것이다.363) 일반적으로 우리는 해소불가능한 규범충돌의 사례는 거의 드물지만 그래도 전혀 없다고 하지는 못한다는 점을 분명히 단언할 수 있다. 서로 모순된 여러 규범 가운데 어느 하나가 “우선하는” 효력,364) 다시 말해 유일하게 타당하고 규준이 되는 효력이 있음을 발견하지 못하였을 경우에는, 일반적으로 올바르다고 할 수 있는 통설의 견해에 따르면 이들 모순된 규범을 적용하지는 못하고, 따라서 흠결보충의 일반적 원칙에 따라서 해결하여야 할 이른바 “충돌로 인한 흠결(Kollisionslücke)”이 생긴다.365) 여기서 법질서의 무오류성과 완결성의 이론이 어떻게 대응하는지 이제 살펴보기로 한다.

3.) “평가의 모순”. 이는 바로 규범충돌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입법자가 행한 가치평가에 모순이 있는 경우를 일컫는 말이다. 다시 하나의 예를 들어본다. 우리 형법은 사람을 고의로 살해한 경우를 유기죄보다 더 중하게 처벌한다. 그런데 어머니와 그의 사생아 사이의 관계에서 이와는 모순되게, “출생 중에 또는 출생의 바로 직후에” 영아를 고의로 살해하는 “영아살해죄”는 출생직후에 살해의 고의 없이 아이를 유기하여 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보다 더 가볍게 처벌될 수 있다. 물론 양자의 경우에 법정형은 3년 이하의 징역형으로서 똑같다(형법 제217조 제1항, 제221조 제3항). 그러나, 영아살해의 경우에는 결과에 따라서는 6월의 징역형으로 형이 감경될 수도 있어(형법 제217조 제2항) 유기치사의 경우와 비교하여 “보다 덜 중한 사안”이 인정될 여지도 있다. 이점에서 “모순”이 있다는 점을 라이히 재판소(RGSt 68, 410)도 인정하였다.366) 또한 보다 더 중한 범죄인 상해죄나 협박죄에 있어서는 미수범이 처벌되지 않는데 반하여(형법 제223조, 제239조), 보다 덜 중한 범죄인 재물손괴죄에 있어서는 미수범이 처벌되고 있으므로(형법 제303조), 이를 평가모순이라 할 수도 있다.

이러한 사례들367)에서 우리는 입법자가 자신의 가치평가와 충돌에 이르고, 평가의 모순이 내재한다고 이야기 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가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입법자의 가치평가가 우리의 독자적인, 말하자면 외부에서 법률에 가해진 가치평가와 일치하지 않는 경우, 예컨대 명예훼손에 대한 형량이 소유권과 재산침해에 대한 형량과 비교하여 불만족스럽게 낮다고 생각하는 경우와 이를 구별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 자리에서 이미 처음에 밝힌 바와 같이 내재적인 평가의 모순에 관하여서만 다루기로 한다.

법적용의 기술에서 이는(=평가의 모순) 무엇을 요구하는지? 진정한 규범충돌이 거의 존재할 수 없는 것과는 달리 평가의 모순은 일반적으로 인정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라이히 재판소는 앞서 인용한 판결(RGSt 68, 410)에서 “법률에 근거하는 이러한 모순은 판결로써 제거될 수 없다”고 판시하였다.368) 상해죄와 재물손괴죄의 미수범을 다루는데 있어 평가의 모순을 법관이 제거할 수는 없는 것이다.369) 내재적 평가의 모순은 해석에 의하지 않고서도 모순이 제거될 수 있는지를 주의 깊게 시험하는 가시와 같은 존재인 것이다.370)

4.) “목적론적 모순”. 이는 매우 드물다. 규범 사이에 수단과 목적의 관계가 드러나야 할 곳에서 그렇지 않는 경우에 목적론적 모순이 존재한다. 입법자는 특정한 규범을 통하여 어떤 목적을 달성하려 하지만,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고려된 다른 규범을 통하여 이것이 거부되는 경우이다. 또한 입법자가 어떤 규범을 제정하였지만 이를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하여 필요한 규범의 제정을 게을리 하는 경우도 생각해볼 수 있다. 후자의 경우로는 구형법 제28조b의 예가 있는데, 이는 피고인으로 하여금 노역을 제공함으로써 벌금형의 납부를 대신할 수 있도록 형 집행기관에게 권한을 부여하였지만, 정작 이를 실행하기 위하여 제2항에서 위임하고 있는 “상세한 규정”이 제정되지 않은 경우이다. 이 경우 물론 모순을 말하는 대신에 보충불가능한 법의 흠결을 이야기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입법자의 전체 행위에서 보면 하나의 목적론적 모순이 존재하는 것이다. 목적론적 모순은 경우에 따라 규범충돌로 이어질 수 있고, 따라서 규범충돌과 같이 다루어질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에는 평가의 모순과 같은 것으로 인정되어야 한다. 구형법 제28조b의 예에서는 “상세한 규정”이 제정되지 않은 한 효력이 없다는데 이론이 없다.

5.) “원칙의 충돌”.371) 이는 자주 되풀이되고, 어느 정도는 피할 수 없다. 나는 이 원칙의 충돌을 법질서의 형성과정에 여러 모순되는 기본사상이 관여함으로써 법질서에 나타나게 된 부조화로 이해하고자 한다.

형법에서 다시 한 번 간단한 예를 취해보기로 한다. 근자에 책임원칙을 가능한 한 순수하게 관철하려는 움직임, 즉 범죄의 의사와 비난받을 부주의에 따라 형벌의 유무 및 양을 결정하여야 한다는 움직임이 한쪽에서 일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우리 형법에서 범죄행위의 외부에 나타난 결과가 처벌을 위하여서는 중요하다는 전통적인 형벌사상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다. 그래서 책임원칙에 반하여 동일한 책임에 대하여 다른 결과가 발생하였다 하여 형법상 서로 다른 취급을 하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미수범은 기수범보다 가볍게 처벌된다(형법 제23조 제2항). 또 신을 벌하는 경거망동은 “아직 다행스럽게도” 아무에게 피해를 가져다주지 않았으므로 처벌되지 않는다.

이 경우 어느 정도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이는 그러한 모순, 어떤 의미에서는 여러 기본사상들 사이의 이해할 수 있는 타협의 문제가 있다 한다면,372) 법의 역사적 발전과정에서 차곡차곡 쌓여온, 그때마다의 다른 원칙들의 근거가 된 여러 관점으로부터 전체 법질서가 구성된다는 사실에서 초래되는 원칙의 충돌은 보다 곤란한 문제를 일으킨다. 입법정신은 때로는 점진적인, 때로는 혁명적이고 파괴적인 변화에 직면한다. 그러나 과거 정신에 의하여 지지된 법률이 새로운 법률과 함께 계속 효력을 유지하는 경우는 자주 있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1930년과 1940년 독일법에 있어서는 자유법치국가의 원리와 전체주의적 지도자국가의 원리가 서로 상쇄되지 않고 충돌을 일으키기까지 하였다. 경제법에 있어서는 자유시장질서의 법이 점진적으로 국가적, 법적 계획경제와 충돌해왔다. 지금도 우리는 기본법의 지배하에서 원칙에 위배하고, “다른 신체”인 것처럼 보이는 과거 규정들을 발견하곤 한다. 말하자면 위(353쪽 이하)에서 “2차적 오류”라 한 그러한 유형의 모순이 발생하는 것이다.

우리가 조금 더 고차원적으로 이야기한다면, 모든 법에 있어 최고의 원칙이라 할 정의, 합목적성, 법적 안정성의 원칙 사이에 충돌을 법질서에서는 항상 생각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373) 이들 원칙 가운데 어느 것도 순수하게 그대로 관철될 수는 없고, 경우에 따라서는 다른 원칙에 전부 또는 부분적으로 양보될 수도 있다. 예컨대 정의는 철저한 “구체화”, 다시 말해 사람과 상황의 개별적 관계에 대한 고려를 요구한다. 반면 법적 안정성은 이러한 관계로부터의 철저한 추상화, 이를테면 명확한 연령한계, 확정된 기간, 정확한 봉급표 등을 요구한다. 조숙한 13살 짜리 소녀와 성행위를 한 사람은 무겁게 처벌되고, 반면 아직 성숙하지 않은 14살 짜리 소녀와 성행위를 한 사람은 처벌되지 않는다(형법 제176조) 한다면, 이는 “부당하다”고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법적 안정성은 이 경우 입법자에게 명확한 연령한계의 설정을 요구한다. “규범을 뿌리는 자는 정의를 수확할 수 없다.”374)

정의와 법명확성 사이의 대립에 있어서뿐만 아니라 정의와 실정법의 효력 사이의 대립에 있어서도 정의와 법적 안정성 사이의 “궁극적 대립”(라드부르흐)은 존재한다. “법적 안정성은 실정법이 부당하더라도 그 적용을 요구한다.” 그러나 정의는 경우에 따라 실정법의 거부를 요구한다. “실정법에 의하여 보장되는 법적 안정성이 실정법의 부당함과 비교하여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을 정도에 이른 경우에는 부당한 실정법은 정의에 양보하여야 한다.”375) 그러나 이러한 주장 속에는 잠재적 모순의 문제까지를 포괄하는 하나의 총체적 문제가 내재한다. 이는 실정법과 초실정법 사이의 관계, 후자에 의한 전자의 수정가능성에 관한 문제이다. 정의는 – 합목적성의 경우도 마찬가지라 할 것이다 – 법의 내재적 원칙이자 초월적 원칙이기도 하다. 이것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우리는 단지 법을 정의에 관한 입법자의 현실로 존재하는 노력의 산물로만 이해하여, 그 결과 입법자 자신이 다른 원칙을 위하여 이 (정의의) 원칙을 거부한 것인지를 묻고자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정의는 실정법이 타당한지를 항상 판단하는 “법적 이념”이기도 한 것이다.

우리가 초실정법에 의하여 실정법을 수정하는 문제영역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우리는 내재적인 원칙의 충돌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우선 살펴야 할 것이다. 법규범이나 법제도 안에서 서로 다른 법원칙들이 충돌하여 법규범이나 법제도가 내적으로 모순한다고 할 때 우리는 어떻게 하여야 할 것인지? 이 문제에 대한 명확한 대답은 불가능하다. 부분적으로 원칙의 충돌은 보다 고차원적인 가치평가의 충돌로서 이해될 수 있는데 이러한 충돌은 다른 가치평가의 충돌과 마찬가지로 그냥 감수하여야 한다.376) 예컨대, 책임형법과 결과형법 사이의 충돌이 그렇다. 그러나 다른 충돌의 경우는 인간이 그것을 배제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할 그런 유형의 것이다.377) 혁명이 있은 후 구법과 신법 사이의 충돌이 그렇다. 국민사회주의가 정권을 장악한 뒤 첫해 동안 새로운 원칙과 기본적으로 모순하는 바이말 공화국의 법이 어느 정도 효력을 갖는지 하는 문제가 활발하게 논의되었다. 이 경우 기존의 법을 폐지하기 위하여 독특하면서도 방법론적인 주장이 제기되었다.378) 1945년 몰락한 후에는 – 물론 거꾸로 된 주장이긴 하지만 – 새로운 법치국가적, 인간주의적 법사상에 충돌하는 “제3 제국”의 다수 법률이 별도의 폐지 없이도 효력을 상실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유사한 문제상황을 피할 수 없었다. 이 문제에 대하여는 예컨대, 벵글러(Wengler)가 비교법적 방법론으로 근본적 연구을 하였다.379) 벵글러는 법질서에서 얼마나 보편적으로 이질적인 또는 이질화된 법소재가 다루어지고, 변경되고, 부분적으로는 특별한 수권이 없이도 배제될 필요가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는 구법과 신법 사이의 관계에서뿐만 아니라, “우선은 특정한 지역에서 속지법으로 효력이 있던 법질서가 일괄적으로 다른 지역에서도 효력이 있는 것으로 되는 경우”(68쪽) “상호 지역간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예를 들면, 유럽국가와 그 식민지 사이, 또는 영국과 미합중국 사이, 또는 독일과 국민사회주의시대 독일에 편입된 지역 사이의 관계에서 그렇다. 여기서는 우리의 “원칙의 충돌”이란 관점을 구법과 신법 사이의 관계에 국한하여 보기로 한다면, 사실관계의 변화, 정치적, 문화적, 도덕적 관념의 변화, 그리고 무엇보다도 “논쟁의 대상이 된 법규를 둘러쌓고 있는”(70쪽) 나머지 다른 법률에 대한 입법적 태도의 변화 등으로 인하여 특별히 신법을 제정하지 않더라도 새로운 원칙에 위반하는 법의 효력이 소멸하는 결과가 생긴다는 원칙이 우리 역사에서 얼마나 자주 타당한지를 벵글러는 보여주고 있다. “새로운 입법의 정신”(70쪽)은 형식상으로만 효력이 있는 구법의 효력을 부정한다. 그래서 1945년 이후로는 “시간과 공간의 구체적 사정에 맞추어 법을 적용하도록 권한이 주어지는, 대부분 민사법 질서에서나 그 특징이라 할 일반조항의 효력에 따라 국민사회주의적 법률의 적용을 제한하도록”(71쪽) 법관에게 명령되어지기도 한다. 더 이상 구체적 설명은 하지 않기로 한다. 벵글러는 1949년 “당시의 입법자가 현안이 된 문제를 규율하기 위하여서라면 무조건 따랐을 것으로 추정되는 특정한 법철학적 기본사상이 국민사회주의적 입법에 대한 평가기준이 된다”(73쪽)는 사고방식을 유용한 것으로 보았다. “이와 같은 기본사상에 저촉하는 법률은 효력을 상실한다.”(74쪽)380) 이미 위(173쪽 이하)에서 언급한 “헌법합치적 해석”이 “헌법 이전의 법”에 관계하고, 협의의 의미에서 헌법 이전의 법을 “해석하고”, 현행 헌법과 그 현행 헌법에 합치한다고 해석되는 법률의 원칙과 내용적으로 충돌하지 않게 할 목적으로 헌법 이전의 법을 “형성하는” 것인 한, 이러한 헌법합치적 해석은 구법을 새로운 전체적 법상황에 적응시키려는 작은 한 부분이라 할 수 있다.381)

원칙의 충돌에서 비롯한 한 가지 결과를 이제 보기로 한다. 우리는 “헌법에 위반하는 헌법규범”의 문제를 간략하게 언급한 바 있다. 이는 다양한 논점을 지닌 문제이다(참고문헌으로는 359쪽 주 80 참조). 이미 문제의 형식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헌법의 내적 모순성은 언제나 원칙의 모순일 수 있다. 기본사상이 표출되어 있는 헌법의 규정들이 바로 그 헌법에서 실정화된 원칙들과 모순될 수도 있을 뿐만 아니라(이 경우에는 신법 우선의 원칙이나 특별법 우선의 원칙이 문제해결에 도움이 될 것이다), 헌법에서 실정화되지 않는 일반적 원칙들과도 모순될 수 있다. 연방헌법재판소는 1953. 12. 18. 판결382)에서 기본법 제117조 제1항이 법적 안정성과 삼권분립의 원칙에 합치하는지를 심사한 적이 있다. 기본법 제117조 제1항에서는 남녀 평등의 원칙에 반하는 법은 1953. 3. 31.이 지나면 효력을 상실한다고 규정하고 있었다. 입법자가 평등권의 원칙과 관련 있는 법소재(물론 가족법)에 대하여 법률을 제정하지 않을 경우(이는 1957년 남녀평등법이 제정될 때까지는 사실이었다), 기본법 제117조는 법관으로 하여금 발생된 “흠결”을 보충하도록 강제하는 것이었다. 바로 이러한 문제가 법적 안정성과 권력분립의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하여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 고등법원은 연방헌법재판소에 위헌제청을 하였다. 사실 위와 같은 원칙은 연방헌법재판소도 인정한 바와 같이 “기본법에서 마주하게 되는 근본결단”에 속하는 원칙이고, 특히 권력분립의 원칙은 기본법의 “효력 있는 조직원리”인 것이다.383) 법관이 발생된 흠결을 기본법 제117조에 의하여 보충함으로써 단순하게 보아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법적 안정성과 권력분립의 원칙에 모순하게 되는 경우라면, 위 조항은 헌법에 위반한다고 하여야 할 것이다. 이로써 평등권의 원칙 자체는 아니더라도 이를 다른 헌법원칙과의 모순된 상황에서 관철하여 형식상 효력 있는 헌법(기본법 제117조 제1항)을 무효로 돌릴 수 있는 그러한 가능성이 열린 셈이다. 그리하여 동일한 법질서 안에서 법이 최상위 원칙에 위반되어 무효로 될 가능성이 있다는 문제가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여기서는 많은 부분에 관심을 할애할 수 없다. 연방헌법재판소가 기본법 제117조를 무효로 보아야 할만큼 법적 안정성과 권력분립의 원칙이 침해되지 않았다는 방식으로 기본법 제117조의 무효 문제를 판단하였다는 점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헌법에 위반하는 헌법규범의 무효 가능성을 두고 연방헌법재판소에 가해진 기본적인 비판을 우리는 다루지 않겠다.384) 원칙의 충돌로 인하여 생각해볼 수 있는 결과를 보았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Ⅲ.

헌법에 반하는 헌법규범의 개별적 사례군을 논의하면서 바호프 등 몇몇 사람은 순수한 실증적 성격을 지닌 그런 헌법원칙(권력분립의 원칙, 기본법 제19조 제4항에 표현된 “재판받을 권리의 보장” 등)에 위반하는 경우와 “초법률적” 법, 일종의 “자연법”에 속하는 헌법원칙(법 앞의 평등원칙 등)에 위반하는 경우를 구별하였다. “초법률적 법”에 관하여도 그것이 헌법전에 “실정화” 되었는지(기본법 제3조 소정의 바로 위에서 언급된 평등원칙 등) 아니면 그렇지 않은지(최근의 자연법적 원칙으로는 “책임 없이는 형벌 없다”는 원칙을 들 수 있다)를 다시 구별할 수 있다.385) “실정화되지” 않은 초법률적 법이 “불문(不文)헌법”으로 고려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그 뒤 다시 제2차적 의미를 갖는다.386) 왜냐하면, 법적용자, 특히 법관에게 어떤 규정이 초법률적 법에 위반한다고 하여 이를 무효로 선언하고 이와 다르게 수정하는 권한이 주어진다고 한다면, 우리는 언제나 “헌법에 위반하는 헌법규범”의 문제를 넘어 새로운 문제에 직면하게 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실정법 상호간의 모순을 다루었다. 우리가 위 II.에서 고찰한 모순은 법질서의 내재적 모순이었다. 다만 이와 다른 모순에도 우리는 벌써 여러 번 마주쳤는데 이제 총괄적으로 이러한 모순을 우리는 초법률적 모순이라고 표현해야 한다. 이는 실정법의 형성과 판단을 위해 기준과 원칙을 제시하지만 그 자체로는 실정법을 초월한 그런 원칙, 다시 말해 정의, 공공복리, 국가이성, 법적 안정성, “자연법”, “정당한 법”, “도덕”, “양심” 등 무어라 불러도 좋은 그런 최상위 원칙에 실정법이 모순인 경우를 말한다. 만약 우리가 실정법과 정의, 법과 국가이성, 법과 도덕 또는 법과 양심의 관계에 관한 문제를 우리의 논의에 끌어들인다면, 이는 이 책에서 설정한 목표를 벗어나는 것이 분명하다.387) 우리의 논의와 관련해서는 법적용론의 관점에서 생기는 측면만을 서술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는 다시금 법적용자의 법률에 대한 구속의 원칙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우리는 해석 또는 기타 방법론적으로 정당한 법률의 취급을 통해 “현행법률(lex lata)”에서 통용될 수 있는 유일한 판단으로 어떤 법적 판단이 제공된다는 점을 전제로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적용의 소명을 받은 사람(간략하게 법관)이 이와 같이 유일하게 통용될 수 있는 판단이 자기에게는 어떤 보다 높은 관점에서 보아 부당하다고 여겨지는 경우 이를 배제할 수 있거나 또는 배제해야 하는지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특정한 사안에서 법관은 “법률에 반하여” 판단할 수 있거나 또는 판단해야 하는지?388)

다시 한번 개인적 경험을 예로 드는 것이 허용되었으면 한다. 법관보 시절 어느 날 나는 일요일의 근로금지에 위반하여 명망 높은 한 제과점 주인이 형사재판을 받는 것을 경험했다. 그는 일요일 자기 가게의 수요는 완전히 날씨에 의존하기 때문에 이렇게 해야만 심각한 경제적 손해를 회피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자신의 위반행위를 정당화하려고 하였다. 만약 일요일에 날씨가 나쁘면 많은 손님을 기다려야 하고, 반대로 날씨가 좋으면 많은 사람이 외출하고 물건은 상하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주로 마지막 순간에, 심지어 일요일에조차 어느 정도의 증가된 수요에 맞추어 빵을 구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피고인의 이러한 변소는 통하지 않았다. 그는 당시의 법률조문에 따라 형벌을 선고받아야 했다. 개별적 사안에서 합목적성이 없다고 해도 “법은 법이어야 한다.” 법관은 입법자를 정정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그는 법률에 구속된다. “초법률적 긴급피난”과 같은 개념(위 311쪽 이하 참조) 역시 흠결의 보충을 위해 사용되어야지 법률의 정정을 위해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 이점은 위의 단순한 제과점 사안에서도 명백하다. 그러나 “정의는 그로 인해 세상이 망하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관철되어야 한다”라는 도도한 원칙은 법률이 단지 어떤 마음에 들지 않고 합목적성을 결여한 결과를 초래한 것에 그치지 않고 바로 공공복리를 위협하거나 정의의 최고원리를 침해하거나 또는 “자연법” 및 “도덕규범”에 위반하는 경우에도 타당한가? 법률실증주의에 보편적으로 사로잡혀 있었고 전체주의국가를 아직 경험하지 않았던 시대에 있어서조차 법관의 법률에 의한 구속은 법률이 “부당”한 경우(통틀어 이렇게 일반화하고자 한다)에는 한계가 인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법관의 법률에 의한 노예와 같은 구속을 배격한 자유법론자들의 개개 주장을 제외하더라도,389) 매우 온건한 학자들도 예외적 사안에서는 법률에 반하는 판단이 통용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였다(이에 관하여는 아래 382쪽).

이 경우 물론 부분적으로 해석과 흠결보충의 이론적 기반에서 강제될 수 있는 그런 “정정”이 문제될 수 있다. 이와 같이 실무상으로는 비록 중요하나 위험성이 없는 법률의 정정에 관하여는 여기서 더 이상 자세히 언급할 생각이 없다.390) 또한 실수로 법률적 표현이 잘못된 경우 진정한 법률의 의사를 “해석”이라는 명목으로 관철하는 문제인 소위 편집에 있어 오류의 정정에 관한 문제도 여기서는 제외한다.391) 우리는 방법론상으로 정당하게 탐구된 법률 자체의 의미가 도덕감정에 어긋나는 경우, 그리고 모든 의미탐구의 과정을 – 제한적 또는 확장적 해석,392) 흠결의 가치평가적 확정 및 유추에 의한 보충 또는 구체적 법질서의 정신에 근거한 보충을 – 거쳤으나 결과가 불만족스런 경우를 전제로 한다. 연방대법원은 한 중요한 판결(BGHZ 4, 153)393)에서 “민법 제400조가 추구하는 목적이… 반대로 나타나는 특별한 경우에는 그 법률의 명백한 문언에 반하여 거기서 금지된 규범을 약간 완화하고(!) 목적에 부합되게(!) 제한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가능성(일반적으로 양도가 금지된 손해배상청구권의 특정인에 대한 양도가능성)도 신중하게 인정되어야 한다”(157쪽)고 판시하면서 유감스럽게도 어느 정도까지가 의미탐구의 문제이고 어느 정도까지가 법률정정의 문제인지를 분명히 하지 않고 있다. 이 경우 신중하게 인정되는 것은 무엇인가? 법률의 현실적 정정인가, 아니면 단지 목적론적인 제한해석인가? 위 판결은 나아가 양도가능성의 부정을 “제400조의 의미와 목적에 반하는 문구해석”(158쪽)으로 거부해야 한다고 판시하였는데 이는 후자의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일종의 법형성”(158쪽)이란 표현을 판결에서 명시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전자의 의미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아무튼 전자의 의미로 이해할 때만 위 판결은 우리의 논의와 관련된다. 따라서 명백한 자구의미가 침해되었고 편집상의 오류가 있을 경우에만 명시적인 자구에 반하더라도 “해석”이라고 말할 수 있으므로, 우리는 위 판결이 최소한 결론에 있어서는 법률의 의미를 정정한 것으로 파악될 수 있다는 주장을 받아들이기로 한다.394) 법률적용과 법률정정의 한계는 방법론적 측면에서 해결해야 하는 많은 다른 한계들과 마찬가지로 개별적인 사안에서는 항상 분명하지만은 않다. 이점에 대해 바꿀 것은 거의 없다.

이제 해석 등에 의해 행해진 의미탐구로써 우리가 받아들일 수 없을 정도로 비합목적적이라거나 부정당하다거나 반자연법적이라거나 반도덕적이라고 여겨지는, “초월적” 근거에 의해 인정하기 어려운 결론에 도달했다고 가정해보자. 우리는 온건한 학자들조차도 법치국가적으로 확고한 사정 하에서도 법관의 법률에 의한 구속에 한계를 두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고 이미 언급하였다. 이러한 “온건한 학자들”로는 예컨대 한스 라이헬, 에른스트 베링 등을 들 수 있다. 한스 라이헬(Hans Reichel)은 1915년 그의 저서 “법률과 법관의 판결”에서 이미 다음과 같은 원칙을 제기하고 있다. “법관은 법률의 규정이 보편적인 도덕감정에 위반되어 이를 무시하는 쪽보다 준수하는 쪽이 법과 법률의 권위를 현저히 위태롭게 할 경우는 의식적으로 법률의 규정을 회피할 직무상 의무가 있다.”395) 베링(Beling)은 1931년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입법자의 편에 속하는 법제정의 권한은 절대적으로 무제한인 것은 아니다. 국민은 어떤 가치에 관하여는 이를 기본적인 것으로 전제함으로써 입법자도 이에 반하는 규범을 제정할 권한이 없는 경우가 있다.”396) 여기서는 말하자면 기본적인, 국민 사이에 보편적인 가치평가란 이름으로 법률에 복종하는 사람들로부터 어떤 한계를 끌어내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법관이 법을 적용하는데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작용하여야 한다는 점은 자명하다. 법관의 지위가 기본적으로 이런 의미에서 행동하기에 충분하다는 점은 1924. 1. 5. 당시의 인플레이션 직후 저당권의 재평가 문제에 관하여 라이히 재판소 소속의 법관회의(Vorstand des Richtervereins der Reichsgerichtsräte)에서 행한 놀란 만한 결의에 의해 증명된다. 이는 신의와 성실에 반하는, 경우에 따라서는 법원에 의해 무효로 선언될 법률을 제정하는 것을 입법자에 대해 경고하는 것이다.397)

법, 정의와 도덕에 관한 기존관념에 저촉된 전체주의 국가의 입법행위는 모든 법률가를 매우 흥분시키는 가운데 법관의 부정당한 법률에 의한 구속의 문제를 특히 절실한 것으로 제기했다. 물론 법률을 부정당하고 부도덕적이라 비난하면서 법관이 국민사회주의 입법자를 헐뜯을 수는 없다. 당시 입법자가 제정하지는 않았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입법자에게 장해가 되는 그런 법률과 마주하여서만 그 당시 입법자는 이러한 비난을 감수하고 받게 된다. 당시 입법자가 제정한 법률에 있어서는 법원과 행정관청이 사소한 일에 흔들리지 않고 시대 조류에 별 다른 생각 없이 따를 것으로 기대하는 한에 있어서만 법률에 대한 구속이 완화되었을 뿐이다.398) 그러나 1945년 국민사회주의가 맞이한 것처럼 전체주의적 체제가 붕괴하면, 그 당시 제정되었던 법률이 법의 이념 또는 도덕법칙에의 위반을 이유로 전체적으로 무효였다는 점이 문제되지 않을 수 없다. 입법자가 냉소적으로 최상위 법이념을 무시하였다면, 법관이 형식상 유효한 법률에 구속되지 않음을 선언함으로써 “자유법”과의 논쟁에서 금세기 초 불러일으켜진 상황, 다시 말해 자유법론의 지지자 스스로가 결연하게 “법에 반하는 주장”에 대항하여 싸워야 한다고 믿게 된 그런 상황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399) 그러나 사라진 전체주의의 법률화된 부당한 법에 대한 비판이 새로운 국가의 등장에 의해 이들 법률이 사라졌다는 이유로 일시적인 의미를 갖는데 불과하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마술빗자루로서 “법이념”의 마법적 힘을 모르는 소리다. 1945년 이후 그렇게 격렬하게 제기되었던 부당한 법률의 무효성에 관한 문제는 오늘날까지 해결되지 않고 있다 – 기본법 제20조 제3항에서 행정과 사법의 “법률과 법”에 의한 구속을 명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기본법의 위 규정은 “…과 법”이란 말을 추가함으로써 법률을 뛰어넘어 초법률적인 법을 지시하고 있다.400) 초법률적인 법에 위반됨을 이유로 헌법규범조차 무효가 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논의되었고, 연방대법원뿐만 아니라 연방헌법재판소도 이를 긍정하였음은 이미 본 바와 같다.401) 연방헌법재판소는 여기서 “제정권력에 의해 확정된 실정화된 법은 내용적으로 부당하고 비합목적이더라도 그것의 정의에 위반하는 정도가 참을 수 없는 단계에 이르러 법률이 ‘부당한 법’으로서 정의에 양보해야 할 경우가 아니면 여전히 우위를 갖는다”라는 라드부르흐의 “신중한 공론”402)을 어느 정도까지는 자기 이론으로 합리화하였다. 법률이 정의와 도덕법칙의 하위에 존재한다는 생각을 이와 같이 쉬우면서도 간단하게 정리한 것이 오늘날에는 물론 논란의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상당히 보편적으로 승인된 명제로서 통하고 있다.403) 이를 옹호한다거나 상당한 근거를 가지고 반박하는 것은 이 책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 된다. 따라서 여기서는 이러한 명제 또는 유사한 명제에 대한 의문은 일부는 헌법에 근거하고(법관과 행정공무원이 입법자에 대해 불복종을 선언하고 비판적으로 대항한다면 권력분립의 원칙에 반한다),404) 일부는 사법의 순수성과 독립을 위한 위험(사법이 정치화할 위험), 일부는 초법률적 원리의 형성에 있어 불명확성(“정의”, “자연법”, “도덕법칙”과 기타 유사한 이념적 개념은 항상 불확실하므로 이를 다루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만을 지적해둔다. 한편, 입법자의 자의는 법이념의 주춧돌에서 타파되어야 한다는 기본생각을 완전히 포기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는 본질적으로 방법론적 성격을 갖지 못한다. 우리가 법적 사고 자체에 다시 눈을 돌린다면 다음과 같은 문제가 성립한다.

우선 법률정정이 문제되는 여러 사례군을 엄밀하게 분류하는데 신경을 써야만 한다. 법률에 충실한 의미탐구(해석, 유추와 법질서 안에서의 흠결보충)와 법률에 불복종하는 법이념의 중간에는 여러 단계가 개재하는데 지금까지 우리는 이를 충분히 유의하지 않았다. 우리는 위에서 이미 “편집상의 오류”에 관하여 언급하였다(380쪽). 위 편집상의 오류를 정정하는 것이 법률에 합당한 의미탐구로서 타당할 수 있느냐는 논란이 있다. 위 오류정정은 항상 법률에 합당한 의미탐구에 가깝고 따라서 어느 정도는 문제가 없다. 그러나 입법자가 명백히 실수로 표현상의 오류를 저지른 것이 아니라 “동기의 착오”에 빠진 경우, 다시 말해 그가 의식적이고도 의도적으로 규율하려고 한 특정의 소여를 전제로 하였으나 현재 규율된 상황은 예견하지 못했고 입법자 자신이 보아도 달리 규정하는 것이 필요한 경우는 명백한 문언의 의미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무슨 의미를 갖는가?405)

연방대법원이 판단한 이미 언급된 손해배상청구권의 양도에 관한 사안(BGHZ 4, 153)이 이 경우 좋은 예를 제공한다(위 380쪽 이하 주 110과 함께 참조). 가능한 한 구체적이고도 간략하게 언급한다면, 문제는 다음과 같다. 교통사고로 사망한 사람의 미망인에게 손해배상으로 정기금이 판결에 의해 인정되었다. 제3자가 판결과 그 집행을 기대하고 “호의적으로”(155쪽) 미망인에게 생계비를 우선 가불해주고 미망인의 배상의무자에 대한 정기금채권을 양도받았다. 이러한 양도가 허용되는지가 문제되었다. 민법 제400조는 채권에 질권설정이 불가능할 때는 양도가 허용될 수 없다고 규정하였는데 위의 양도는 그 자체만으로 보면 이러한 “문언”(157쪽)(보다 정확히는 어의)에 명백히 반한다. 그러나 이 경우는 미망인의 정기금채권이 양도대상이었고 더욱이 정기금채권자로서의 미망인에게 “필요한 생계를 보장해주어야 한다”(154쪽)는데 이유가 있었다. 위와 같은 사정으로 인해 만약 양도행위가 미망인의 생계보장을 위해 제3자가 가불한 행위의 대가로 이루어진 경우라면 정기금채권의 양도는 유효하다고 보는데 장해가 있어서는 안 된다. 연방대법원은 민법 제400조의 “의미와 목적”(158쪽)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결론을 추론하였다. 즉 “질권설정이 불가능한 손해배상의 정기금채권은 배상권리자에 대해 아무런 법적 부담 없이 매기간마다 만기가 도래한 금액을 한도로 이를 보장한 제3자에게 배상권리자가 현재의 생계를 유지한다거나 양도행위가 매기간 도래하여 이행할 수 있는 금액을 한도로 이루어진 경우는 그 양도가 허용될 수 있다”(153쪽). 여기서 연방대법원이 행한 것은 무엇인가? 명백한 “문언”을 해석의 절대적 한계로 간주한다면, 위와 같은 추론은 해석의 문제가 아니고, 또한 여러 다양한 의미의 문언을 전제로 그중 가장 가까운 것에서부터 가장 먼 것까지를 점차 취사선택하는 의미에서 조금 느슨한 해석의 문제도 아니다.406) 그러나 “제한적” 및 “확장적” 해석의 개념을 명백한 문언에 반하여 입법자의 고유한 의사 또는 진정한 이익형량을 실현하는 것으로 이해한다면 사정은 다르다. 위의 사안에서는 법률조항(민법 제400조)의 의미와 목적에 맞추어 해석의 적용범위를 제한한 것인 한 이는 제한적, 목적론적 해석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407) 그러나 이 경우는 아예 흠결보충의 문제라고 말할 수도 있다. 즉 가불의 대가로 제3자에게 양도행위가 이루어진 경우는 민법 제400조에서 아무런 예외조항을 두지 않았으므로 이는 흠결을 의미하는 것으로 평가하여 확정 지우는 것이다.408) 그리고 위 흠결은 연방대법원이 판시한 위의 인용문구에 의해, 그것도 특히 입법자 자신의 정신에 의해 보충되었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또한 법질서 내에서의 모순이 제거된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 이유는 공법상의 보험인에 대하여는 질권설정이 불가능한 정기금채권의 경우에 있어서조차 채권양도가 허용되고 있는 점을 연방대법원이 원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의하면 위의 사안에서 채권양도를 허용하지 않는 것은 일종의 평가모순이라 할 수 있다(“민법 제400조의 양도금지를 수정하여 그 적용을 제한하는 것은 공법상 보험인에 대하여… 법률적으로 이를 제한 경우처럼 법현실에 대한 법의 적응을 의미할 뿐이다”, BGHZ 4, 160). 그러나 연방대법원이 스스로 “법형성”(158쪽)에 관해 언급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법률의 정정이라고 명백하게 주장할 수는 없다(또한, 위 212쪽 참조). 입법자 자신의 의사와 이익형량을 다같이 출발의 기초로 삼는다 할지라도 여러 방법론 사이의 한계가 매우 불확실하다는 점은 다시금 분명하다.409) 바로 그 한계의 불확실성이 위의 사안에서 발견된다. 연방대법원은 입법자의 의사에 반하지 않고, “생각하면서 복종하는”(헥)410) 자세로 규범의 의미와 목적을 충분히 고려하면서 입법자의 정신 안에서 그의 진정한 의사를 실현한다는 점을 신중하게 보여주었다.

입법자, 그의 의사 및 목표지향점을 충실한 기초로 삼고 다만 문언의 한계만을 벗어나는 위와 같은 “법률의 정정”은 초월적 법이념을 위해 입법자에 반대하는 행위와는 엄격히 구분된다. 찜머만(Zimmermann) 또한 연방대법원의 판결에 기초하여 “관점의 오류”에 근거하는, 다시 말해 입법자가 “생활관계를 간과하였거나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였거나 또는 잘못 파악한” 경우(그 자주 인용되는 예가 법적으로 처방된 종두를 유해한 것으로 다루는 경우이다)의 법률의 정정과 정의, 도덕법칙, 자연법에 위반한 경우의 법률의 정정을 명확하게 구별하고 있다.411) 물론 그는 두 가지 경우 모두 법률정정의 가능성 문제를 인정한다. 그는 또한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변화한 현실과 가치에 법률을 적응시키는 행위를 특수한 경우로 거론하면서도412) 원시적 불일치와 후발적 불일치 사이의 구분은 무의미하다고 하였다. 중요한 것은 – 최소한 우리의 사고전개에 있어서는 – 입법자 정신 안에서의 정정과 법이념의 정신 안에서 입법자 의사에 반하여 행하는 정정 사이의 구분이다. 이는 특히 방법론적 관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법률의 정정이 입법자 자체의 궤도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법적 사고는 우리가 해석, 이해, 의미탐구, 이익탐구, 유추, 반대추론 등 여러 각도에서 배운 그런 지반을 이탈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바로 직전에서 다룬 정기금채권에 관한 양도의 사례를 보자. 여기서 본질은 무엇인가? 이에 대해 우리는 입법자의 진정한 의사를 위해 어의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해두었다. 결론적으로는 입법자의 목적과 이익형량의 강조를 통해 소위 문법적 의미탐구를 후퇴시킨 것에 그 본질이 있다. “법이 이성을 태만히 하면 효력을 상실한다(cessante ratione legis cessat lex ipsa)”라는 옛 원칙을 적용한 것이다.413) 아울러 “주관적, 목적론적” 의미와 목적탐구, 다시 말해 – 최소한 앞서의 판결에서는 – 역사적 입법자의 진정한 의사와 목적을 탐구함으로써 이를 “문언”에서 벗어나는 계기로 삼은 것이다. 법률 자체의 내재된 의미를 목표로 하는 객관적 해석론의 관점에서 이런 유형의 법률정정이 정당화 될 수 있는지는 여기서 자세히 다루지 않겠다. 일반적으로 주관주의론자보다는 객관주의론자들이 법률의 문자에 더 많은 비중을 두고 있기는 하나, 객관주의론자들도 법률에 명시적으로 또는 체계적으로 내재된 이성의 작용으로서 문언에 반하여 생각할 수 있다. 아무튼 우리는 전혀 새로운 법적 사고의 문제에 직면한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개별적으로 배운 사고방식을 그 특성에 따라 총괄하고 배합하는 문제에 서있던 것이다.

그러나 법률정정의 기준을 역사적 입법자 또는 역사적 법률 자체에 두지 않고 법이념에 둔다면 사정은 달라진다. 불명확한 어의에 대해 역사적 입법자가 본래 의욕한 의미에 앞서 현재에 입각한 “이성적”(즉 법이념에 가장 잘 부합되는) 의미를 강조하는 그런 객관적 해석론이 이미 이런 결론에 도달하고 있다. 여기서는 “해석”이란 것이 입법자 자신에 의해 추구되는 바를 은연중에 수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지엽적인 문제에는 더 이상 매달릴 수가 없다. 법이념이 법률정정의 명백한 기준으로 취급되는 경우 법이념에 대한 요청은 다시 한번 보다 폭넓게 요구되어진다.

물론 우리 최고법원의 판결에서는 “법률에 반한” 이러한 명백한 판단은 이를 피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미 언급한 정기금손해배상판결 또는 거기서 주로 인용된 “녹음테이프판결”(BGHZ 17, 266: 개인적 사용을 위해서는 문학과 음악작품의 복제를 인정한 당시 문학저작권법의 특례조항(제15조 제2항)이 녹음테이프에의 복제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하여 연방대법원은 이를 제한하였다; 현재는 1965. 9. 9. 저작권법 제53조 이하 참조) 또는 저 유명한 “남자승마인판결”(BGHZ 26, 349: 강장제 오카자를 선전하기 위해 남자승마인의 사진을 과실로 사용한 경우는 비록 민법 제847조가 신체, 건강과 자유 또는 여성의 정조를 침해한 경우에만 정신적 손해에 대한 금전배상을 명하고 있다 할지라도 금전으로 정신적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 등과 같은 혁신적 판결에서조차 최고법원의 주류적 판결은 해석 또는 유추를 수단으로 일견 보아 입법자와는 아주 먼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생각된다.414) 법의 법률에의 구속을 고수하는 보수적 관점에서도 이러한 노력은 바른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 우리가 은연중에 법률을 초월하고,415) 법감정에 비추어 명백한 또는 “법이념”에 상당하다고 여겨지는 판결목표를 달성하고자 한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고 보면, 우리는 “진보적 법발견”의 발전단계로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특별한 법적 정당성을 요구하면서 법률 자체를 벗어날 뿐만 아니라 법이념이 법률에 반하여 영향을 미칠 때는 유용한 경험의 지반을 버리고 칸트에 의해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것”으로 표현된416) (법)형이상학의 “드높은 탑”에 다가선다는 의미에서 특히 그렇다. 우리가 과연 이점을 감행해도 좋은가? 다음 마지막 장에서 우리가 이 문제를 다루고자 한다면 우리는 더 많은 것을 설명해야 한다.

 

제8장 법률에서 법으로, 법학에서 법철학으로

 

이 책 제3장 처음에서 근대 법률가의 사고는 우선 법률을 중심으로 한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따라서 구체적 사안에서의 법발견이 목표였으나 그 다음 장부터는 법률과 법률의 효력, 그 한계, 흠결 및 오류를 중심으로 고찰하였던 것이다. 이제 이 장에서는 이러한 법률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날 생각은 전혀 없고 다만 그의 상대성과 한계에 관해 언급하고자 한다면, 지금까지는 유럽 대륙법계에 속한 서구 중심의 법적 사고를 우리 연구의 과제로 삼았다는 점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제한은 불가피했다. 보편타당한 법적 사고의 방법론이란 이 책에서는 불가능했다. 그러나 공간적, 시간적 한계를 벗어나 보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법론도 그것이 삶을 지배하는 수단으로서 타당한 것이라면 법학으로 인정되어야 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 경우 법 역사상 여기저기서 마주칠 수 있거나 조금은 세련되고 “법적 사실”의 정확한 이해를 근거로 많은 자유법론자에 의해 이상으로 간주된 직관적 또는 임기응변식의 개별사례에서의 법발견론은 배제된다. 소위 자유법에 관해 “자유재량”의 장에서 이미 설명한 것 이상으로 특별한 법적 방법론을 다룬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이미 설명한 부분을 가르키는 것으로 만족할 수 있다. 이제부터는 법률에 구속받지 않는 법발견의 방법론에 관해 생각해보기로 한다. 이는 새로운 유형의 법적사고를 요구한다.

그중 우선 언급되어야 할 것이 선례에 근거한 법발견론이다. 이는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영미법계에서 “사례법(case law)”으로 발전해온 것이다. 라드부르흐는 위 방법론을 간략하면서도 아주 정확하게 묘사한 바 있다. 우선 그의 설명에 의존하더라도 양해하길 바란다.417) 사례법의 특징은 대륙법계에서는 법관이 법률에서 구하는 판단근거를 여기서는 동일 법원 또는 상급법원(대법원, 항소법원)의 선례에서 구하고, 특히 법률의 규정이 흠결된 경우뿐만 아니라 해석이 모호한 경우에도 그렇다는 점이다. 만약 재판의 전제가 된 사실이 이미 법원에서 판단된 사실과 동일한 경우라면 이는 동일하게 판단되어야 한다. 물론 아무리 동일한 사안이라도 이것이 과연 선례와 “본질적으로” 동일한가 하는 의문은 항상 제기된다. 이외에도 선례에서 구체화된 법원칙은 “당시 재판에 필수불가결 하였던 한도 안에서만 구속력이 있다.” “당시 필요한 한도를 넘어 선언된 법원칙은 장래에도 구속력을 갖는 법관의 ‘판결이유(ratio decidendi)’가 아니라 ‘방론(obiter dictum)’에 불과하다.” 영미의 법관이 “‘명백히 비이성적(plainly unreasonable)’이라는 이유로 가끔 선례를 뛰어넘어(overrule) 재판한다”고 할 때 여기에는 “불합리한 선례의 구속력을 배제하기 위한” 여러 근거가 있다고 생각된다.418) 위의 간략한 설명만으로도 방법론상 가치 있는 몇 가지 점을 이해하는 데는 충분하다. 먼저 최고법원(과거 제국법원, 오늘날에는 연방과 주의 최고법원) 사이에 선례와 다른 판단이 금지된 것은 아니지만 매우 어려운 일인 만큼(법원조직법 제121조 제2항, 기본법 제95조 제3항 및 1968. 6. 19. 연방최고법원간 판결통일을 위한 법률 참조) 위 한정된 의미에서는(오로지 위와 같이 한정된 의미에서)419) 유사한 방법론이 우리에게도 성립한다. 따라서 재판의 전제가 된 사실이 최고법원에 의해 판단된 사실과 본질적인 면에서 동일한가 하는 점, 선례에서 표현된 법적 견해가 재판의 기초였는지, 아니면 단지 “방론”에 불과한 것인지 하는 점 등 비슷한 문제가 제기된다. “소위 방론으로 판결의 효력을 부정하고 이와 다른 법적 견해를 지지하려 할 경우”는 법원조직법에 의한 절차는 중단된다.420) 그러나 영미법의 방법론에 있어 선례를 현재의 사안에 적용한다고 할 때 이는 특히 선례의 기본사상을 기초로 특정 사안에서 특정 결론을 추론하는 일이기 때문에 우리의 유추해석과 유사한 구조를 지닌다. 마지막으로 생각해야 할 점은 선례의 구속에 있어서도 법률의 구속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부당한 결론에 도달하게 될 때는 구속력을 제한해야 하는가 하는 어려운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이외에도 여러 법률의 규정에서와 같이 여러 선례에서도 모순이 내포되어 법관이 그중 어느 선례를 우위로 평가할 것인지, 또는 모순된 모든 선례의 구속에서 자유롭게 판단할 수 있는지 하는 문제가 언급될 수 있다. 아무튼 영미법계의 법이론에 관하여는 관련되는 문헌, 특히 르웰린(Llewellyn)과 피켄셔(Fikentscher)의 저서를 지적해둘 필요가 있다.421)

이미 언급한 대로 오늘날 대부분 법률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우리 대륙법계의 법적 사고로 다시 돌아와서 보건대, 법률을 다루는데 있어서는 항상 법률 배후에 있는 무엇인가를 함께 조망한다는 점을 이 책의 여러 군데에서 생각할 수 있었다. 이를 우리는 통상 “법”으로 부르고자 한다. 법률이란 신의 명령처럼 절대 복종해야 하는 자기완결적(自己完結的)인 독립된 위대한 무엇이 아니라 법사상을 함축하여 표현한 것으로, 우리가 법률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이를 제한, 보충 및 수정적으로 취급하고자 한다면 이러한 법사상에 항상 맞닥뜨리게 된다. 그렇다면 이와 같이 배후에 놓인 법이란 무엇인지 이제 살펴보기로 한다.

지금까지 우리가 설명하는 동안 여러 차례 마주친 소위 이익법학이 이에 관하여 비교적 이해하기 쉬운 설명을 하고 있는데, 법률과 그 배후에 놓여진 것과의 관계를 명확하게 해석하고 방법론적인 관점에서도 해석과 흠결보충 및 오류정정에 있어 커다란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므로422)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되어 여기서 다시 한번 이익법학을 심도 있게 다루고자 한다. 이익법학의 기본사상은 이를 방법론으로 집대성한 필립 헥423)을 통해 이해할 수 있다. 특히 처음 이해를 위해서는 1933년의 이익법학에 관한 강의안(Vortrag)이 적당한데 여기에는 “대학강의 수준의 개요”(3쪽)가 내용으로 담겨 있다. 따라서 이를 기초로 설명하기로 한다. 헥은 강의안의 초반에서 이익법학은 “실무법학을 위한 방법론”(7쪽)를 다루는 학문이고 법철학을 다루는 학문은 아니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부분적으로만 타당하다. 특히 헥이 특정 관점까지만 법철학적 문제에 접근하여 가장 최상의 물음, 예컨대 정당한 법의 “일반규준”(7쪽)에 관한 물음에 도달하기 앞서 멈추었다 한다면 이는 타당하다. 그런데 헥의 방법론은 법의 본질과 과제에 관한 “기본인식”(8쪽)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므로, 이를 법철학적인 방법론으로 표현한다 해도 무방하다.424) 그럼 이러한 기본인식이란 무엇인가? 이에 대해 헥은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법질서는 명령(정언명령)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명령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움직이고 욕구적 삶”(10쪽)을 창출한다. 삶의 욕구를 “이익”이라 표현한다. 여기서 “이익”이란 물질적, 경제적 및 사회적 이익뿐만 아니라 관념적 이익, 다시 말해 문화적, 도덕적, 종교적 “이익”도 포함된다(10쪽). 법은 물질적, 관념적 이익을 파악하고 이것이 보호받을만한 가치가 있을 때는 이를 보호할 의무가 있다. 법은 예를 들어 소득과 소유에 관한 이익, 생명, 건강, 자유와 명예, 정신적 작품의 평가와 보급, 도덕적, 종교적 감정의 소중함에 관한 이익을 보호한다. 그러나 인간의 이익이란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마주치고 같은 방향을 지향할 수도 있으며 충돌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이익충돌”(13쪽)의 경우 법이 관여한다. 법에 의한 이익의 보호란 두말할 나위 없이 다른 이익을 소홀히 다루는 것을 의미한다. 예컨대, 법이 소유자의 권한을 보호해준다는 뜻은 결과적으로 다른 사람의 욕망과 그 이익관철을 제한한다는 의미이다. 임료(賃料) 분쟁에서 법이 임차인의 권리를 인정한다면, 이는 임대인의 이익이 감소함을 의미하고, 그 역도 마찬가지다. 만약 타인의 명예와 종교적 감정을 존중하도록 법에 규정되었다면, 이는 비판과 조소를 일삼는 사람에게는 신랄한 말솜씨를 억제해야 함을 의미한다. 언제나 법은 다른 이익을 희생하고 특정 이익에 우위를 인정하는 것이다. 법은 이익형량을 통해 현실적 또는 잠재적 이익충돌을 해소한다(“충돌론”; 13쪽). “모든 법적 명령이 이익충돌을 해소하고 서로 다른 이익의 대립에 기초하고 있다…는 인식은 매우 중요하다… 이익보호는…모든 재화가 욕망의 대상인 이익사회에서 그것도 다른 이익의 희생하에 항상(!)…이루어진다(13쪽).” 우위의 또는 최소한 참작될 이익은 법에서 중요한 것으로, 또는 표준적인 것으로 간주되고 법적 정언명령을 형성하는 동기가 된다. 이는 무엇보다도 다음을 의미한다. 즉, 우위의 이익은 현대국가에서는 특히 법적 요구를 강화하기 위해 법률화된 명령 안에서 효과적으로 보장되고 그 결과 “변화하고 움직이고 욕구적 삶”(10쪽)을 실현하고 창출하게 된다. 바로 이와 같이 법률화된 법을 삶에 적용하고, 법률을 해석하고 흠결을 보충하고 오류를 정정하는데 있어 배후의 이익을 탐구하고 참작하고 입법자의 의사에 따라 이를 구현해야 한다. “모든 법규범에 있어서는 중심인 이익충돌이 분명하게 드러나야 한다.” “논의가 심오해지기 위해서는 이익의 분석이 필요하다”(13쪽 이하). 특히 법률국가에서는 법관은 이익형량을 자유재량에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입법자의 결단에 기속되어 하는 것이므로 법률의 정신에 입각하여! 즉, 법률존중의 원칙이 적용된다. 법관은 구체적 이익의 충돌이 규범을 제정할 때 입법자가 상정한 이익충돌과 동일하다는 점을 비교론적으로 확정함으로써 일반적으로 법률화된 이익충돌의 해결방안을 개별사례에서 구체화한다. 법률흠결의 보충에 있어서도 입법자의 의사는 최대한 존중되어야 한다. 단지 예외적으로 재량위임의 경우처럼 법관에게 자기 고유의 이익형량을 판결의 기초로 삼을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진 때만 법관은 입법자를 대신할 수 있다. 또한 입법자의 이익형량의 진정한 의사를 관철하기 위해 필요한 한도에서만 법관의 법률수정이 허용된다. 위와 같은 법률구속의 원칙을 주장함으로써 이익법학은 자유법학과는 상당히 거리를 유지한다.425) 그러나 여전히 이익법학은 자유법학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개념법학(Begriffsjurisprudenz)”(11쪽) 및 구조주의(Konstruktionalismus)에 대항한다. 이익법학은 자기완결적인 법률의 개념과 구조에서 벗어나 법률을 초월한다. 이익법학은 자유법학과 마찬가지로 법률을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영향력 하에 놓아두고 이들을 존중함으로써 법률의 규범적인 질서유지 기능을 이해하고자 한다. “이익의 만족을 위해 노력하고, 개념규정의 정당성 또는 완결된 개념의 종국적 관철을 위해 노력하지는 않는다… 법은 역사적으로 이익의 산물이다”(12쪽). 이와 같이 부정되고 오늘날 완전히 극복된 “개념법학”이 어떤 식으로 잘못 전개되었는지는 자세한 언급을 피한다. “법률적 인과성”의 문제를 논의하면서(위 62쪽 이하 참조) 개념법학의 방법론에 관하여 약간의 맛은 보았다. 다만 오해를 없애기 위해 개념법학과 구조주의적 방법론을 멀리한다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다른 어떤 학문보다 법학에서 중요할 수밖에 없는 “개념”을 무시하는 쪽으로 이해되어서는 곤란하다는 점만 강조해두기로 한다.426)

이익법학과 개념법학의 대립을 하나의 예시를 통해 설명하기로 한다. 이를 위해 매우 유익한 예는 무권리자의 소유권취득에 관한 법제도이다. A가 B에게 책 한 권을 빌려주었는데, B가 일시적인 금전궁핍을 면하기 위해 이를 고서상인 C에게 소유권을 양도했다고 하자. 고서상인 C는 B를 소유자로 알았고 알 수도 있었으므로 B로부터 책을 “선의로” 취득하였다. 일찍이 로마의 법언에 의하면 “사람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권리 이상을 양도할 수 없고, 무권리자는 소유권을 양도할 수 없다”고 하였다(Ulpian, D 41,1,20). 이는 개념법학적인 사고방식으로, 소유권이전이라는 개념으로부터 양도인이 소유자일 경우에만 양수인이 소유권을 취득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보통 소유권양도라고 하면 순전히 자구적(字句的)으로 이해하여 물건의 양도, 양수만을 생각하고 물건에 대한 권리이전의 의미로 이해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우리 독일민법은 고대 독일법의 관념에 입각하여 이점에 관하여는 완전히 다른 개념을 상정하고 있다. 즉 이익법학적으로 생각한다. 종전소유자(A)와 취득자(고서상 C)의 이익을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비교형량하는 것이다. 우선 A와 C의 이익을 비교형량하기 위해 확정한다. 소유자 A는 B에 의해 횡령당한 자기 물건을 되찾는데 대해 정당한 이익이 있고, 취득자 C는 양도인인 B로부터 선의로 소유권을 취득하고 대금을 지불하였으므로 그 물건을 소유하는데 대해 이익이 있다. 위와 같은 이익충돌의 상황에서 특별히 추가하여 고려되어야 할 사정은 A가 B에게 책을 빌려줌으로써 임의적으로 점유를 이전하였다는 점이다(특히 일반인이 주의해야 할 점은 “점유”와 “소유”의 개념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소유는 물건에 대한 권리를 의미하고 점유는 그의 사실적 지배를 의미한다). A는 B에게 책을 제공함으로써 일종의 신뢰를 창출했다. 동시에 B로 하여금 소유관계에 관해 C를 기망할 수 있는 사정을 만들었다. 일반적으로 물건을 사실상 점유하는 사람(B)은 그 물건의 소유자로 인정받는다. 따라서 C는 B가 물건을 점유하고 있다는 사실로부터 그를 소유자로 인정하는데 충분한 이유가 있다. 점유와 소유의 개념이 구별됨에도 불구하고 점유자를 소유자로 인정할 수도 있다는 점유에 근거한 “권리외관”이 A와 C 사이의 이익충돌이 문제된 예시의 사안에서는 종전소유자의 이익에 앞서 선의취득자인 C의 이익을 우선시키는 근거가 된다. A는 자신이 신뢰를 제공하였고 결과적으로 횡령으로 그 신뢰를 남용한 B에게 문의해야 한다. “너 자신이 신뢰를 둔 곳에서 다시 그 신뢰를 찾아라”하고 이미 고대 독일법은 말하고 있다.427) 헥은 오늘날의 법에 맞추어 동일한 사상을 다음과 같이 구성하고 있다. “외관에 의해 지탱될 수 있는 경우에만 선의취득자의 이익이 종전권리자의 이익에 앞서 우선된다.” 동산에 있어 이러한 외관은 “점유상태”에 의해 성립한다.428) 만약 소유자 A가 물건에 대한 점유를 임의로 이전하지 않고 도난 또는 유사한 방법으로 “박탈되어” 그 의사에 반하여 상실한 경우라면 결론은 달라진다. 이때는 취득자가 아무리 선의취득을 하였고 그가 도난의 사정을 전혀 몰랐거나 알 수 없었던 경우라도 그에 앞서 종전소유자인 A가 우선한다.

동산에 대한 소유권의 선의취득에 관한 조항을 “이익구조적”으로 해석하면, 위와 같다(민법 제932조 이하 참조).429) 법률의 의문을 해소하고 흠결을 보충하는데 있어서도 이러한 이익구조적 사고는 유지되어야 한다. 무권리자의 선의취득과 관련하여 말한다면, 다음과 같은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취득자 C가 무권리자 B로부터 자동차 또는 라디오를 할부금이 완불될 때까지는 B에게 (사실은 소유권이 없으나) 소유권이 명시적으로 “유보”되는 조건하에서 할부로 구입하여 선의취득 하였다고 하자. 여기서 C가 할부금을 완불하기에 앞서 A가 진정한 소유자이고 B는 A로부터 수리를 위임받았다는 사실관계를 알게 되었다고 가정할 때, C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잔여 할부금을 완납하면 소유권을 취득할 수 있는가? 다시 말해, C가 계약에 따라 소유권을 취득하기 위해서는 그의 선의 여부를 계약체결 당시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하는지, 아니면 최종할부금을 납입할 당시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하는지? 계약체결 당시에는 B를 소유자로 생각하였으므로 C는 선의였다. 그러나 최종할부금을 지급할 당시에는 B가 아닌 A가 진정한 소유자임을 알았으므로 더 이상 선의가 아니었다. 헥은 이에 관해 “기대이익도 절대적 권리와 마찬가지로 보호받을 가치가 있다. 소유권 유보(留保)부로 자동차를 취득한 사람은 할부금을 완납하기 전이라도 보호를 요구할 권리가 있다”고 설명한다.430) 다시 말해, C가 할부금을 완납할 때까지는 B의 소유권이 유보되어 “제한적으로” 소유권을 취득함으로써 소유권에 대한 일종의 “기대권”을 취득한데 불과하더라도, 그의 기대이익은 즉시 완전한 소유권을 취득한 사람의 이익과 마찬가지로 보호받을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민법 제932조의 기초가 된 이익형량은 이와 같이 법률에 의해 직접 규율되지 않는 사안에까지 확대적용된다(흠결보충).431)

이익구조적 법률적용의 사례에서 우리는 더 많은 것을 배우고 경우에 따라서는 이익법학 그 자체를 뛰어넘을 수도 있다. 무권리자로부터의 동산의 선의취득에 관한 규정에서 기초가 된 이익형량이 자의적인 것은 아니란 점은 보았다. 서로 충돌되는 이익 중 어느 하나를 단순히 우선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와 같이 우선시키는 법적 행위에는 어떤 “근거”가 존재하는 것이다. 위의 예시에서 위와 같은 근거는 종전소유자가 임의로 점유를 이전함으로써 신의를 배반한 양도인에게 권리외관을 형성하였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이러한 근거는 다시금 이익으로 표방되는 것은 아니고 이익을 형량함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뿐이고, 그러한 의미에서 이익 그 자체와 마찬가지로 “원인적(kausal)”이라 할 것이다. 이익법학을 기본으로 삼으면서 추상적 및 구체적 법적 판단, 다시 말해 입법자의 판단뿐만 아니라 법적용자의 판단에 있어 이익 말고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다른 요소가 있다는 점을 올바르게 이해한 사람은 특히 뮐러-에르쯔바흐였다. 법을 연구함에 있어서는 관련 이익뿐만 아니라 법의 형성에 관여한 모든 다른 요인, 예를 들어 역학관계, 위험의 지배력, 신뢰 등등을 발견해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위의 예시된 사안에 있어 이익형량을 위해 중요한 요인은 소유자가 점유를 이전하여 자신의 소유권에 관하여 위험을 형성하였다는 점, 점유를 이전 받은 사람의 성실성을 신뢰함으로 인한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점 및 “제3” 취득자의 선의에 대해 기초를 제공했다는 점 등이다.432) 바로 이러한 요인이 이익충돌을 위와 같이 해결함에 있어 입법자가 정당한 것으로 평가하는 근거이자 원인인 것이다. “인과적” 법사상은 이익을 탐구하긴 해도 그것에만 머물지 않고, 법을 형성하는데 이익 말고도 다른 원인적 요인이 있음을 안다. 이러한 인과적 법사상론의 자세한 내용을 여기서 다룰 수는 없다. 다만 이에 관하여는 여러 번 언급된 뮐러-에르쯔바흐의 “보수기의 법학(Rechtswissenschaft im Umbau)”을 지적해두기로 한다.433)

다만, 인과적 법사상의 개념에 내재된 의미 중 극복되어야 할 점 한가지는 반드시 언급되어야 한다. 법을 해석, 이해, 보충 및 형성하는데 고려하게 되는 규준적인 원인적 법요소로서 이익만을 파악하든, 또는 거기에 덧붙여 다른 “삶의 요소”를 추가하여 파악하든, 입법자 또는 법적용자의 판단은 결국 이익 또는 다른 요소의 평가434)로 귀착된다. 이러한 평가와 이익 또는 법형성의 다른 요소 사이의 관계는 어떤가? 보다 상위의 이익이란 힘있는 이익 외의 아무 것도 아니고, 권력사정만이 이익의 우위를 정한다는 식으로, 평가란 이익 또는 다른 요소와 함께 직접 제공되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뮐러-에르쯔바흐의 특정 견해는 위와 같이 해석될 수도 있다. 실제로 그는 법의 평가란 “주어진 권력상황에 의해 규준적으로 정해진다”고 말하고 있다.435) 그러나 그의 사상을 조금 자세히 들여다보면 권력상황이 평가 시 고려되긴 해도 전부는 아니고, 오히려 자유의 요소가 평가에 반영된다는 주장을 발견할 수 있다. 이익 그 자체의 경우도 마찬가지라 할 수 있는데, 이익은 그 자체로서 특정 평가를 강요하고 심지어 평가 안에서 표현되고 대부분 이념으로 분장하여 다가오지만,436) 항상 어느 정도의 자유와 함께 권한과 서열을 판단하게 되는 법적 선택의 과정에 따르게 된다.437) 따라서, 이익과 법형성의 다른 요소를 평가함에 있어서는 반드시 보다 상위의 다른 영역에 도달하게 되고, 여기서는 정의, 공평, 도덕적 책임, 인간의 존엄, 인격의 존중 등등 새로운 개념과 이념에 마주치게 된다. 이러한 주장은 일단으로 이익법학에 대항하여 이미 제기된 바 있는데, 권력 및 신뢰의 요소를 참작하는 인과적 법사상에 대하여도 마찬가지를 주장할 수 있다.438) 훗날 코잉(Coing)은 다시금 이를 강조하여, “평등, 신뢰, 인격존중 등의 도덕적 가치는 다른 것과 나란히 설 수 있는 어떤 이익은 아니고, 오히려 이는 사법(형법이나 공법의 다른 한 분야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에 있어 본질적으로 판단기능을 담당하는 질서요소이다. 이는 판단대상인 구성요건과 동일지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는 상위에 위치한다”라고 주장한 바 있다. 따라서 모든 법적용의 최종적 근거는 “법질서가 기초하고 있는 가치평가에 대한 숙고(Besinnung)에서 발견된다.”439)

이러한 가치에 대한 숙고가 역사적으로 법률의 기초가 된 그런 가치를 탐구하는 선에 머문다면, 이는 실증주의의 굴레를 벗어나는 것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입법자의 직접적 의사를 넘어 법률의 배후에 존재하는 법사상에 도달하려는 움직임이 있다는 사실을 이익법학에서 보았다(예컨대 409쪽). 이익 또는 다른 원인적 법요소를 해명한 뒤에도 입법자가 어느 이익을 보호하고 다른 이익에 앞서 그것을 우선시키려고 하였다는 점과 그 경우 어느 특정 관점이 규준적 관점으로 자리잡았다는 점에 관하여 아무런 설명이 없다면, 이는 일을 중도에서 그만둔 것이 된다. 입법자의 평가는 저절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이는 법률의 배후에서 “법”을 형성하는 다른 가치와 관련되어 있다. 물론 입법자의 직접적인 판단도 가볍게 취급되어서는 안 된다.440) 행정과 사법에 있어서의 일상적인 것들이 수많은 사례를 명확히 다루는 법률이 없었더라면 이루어질 수 없었을 것이다. 보수와 급료를 지급하고, 세금을 공제하고, 토지를 매매, 공증하고, 형벌을 부과하는 일 등등이 대부분 아무런 법적 의심 없이 이루어지고 있다. 평등권에 관한 판결에서 평등대우에 관한 법률이 발전하였다는 사실이 법률의 명확한 의미를 말해주지 않는가?441) 그러나 법률에서 더 이상 명확하게 판단할 수 없는 한계와 의혹에 놓인 사례 역시 많다는 점도 절실히 인식된다. 뷜로우와 자유법론의 지지자인 이사이까지도 열심히 이점을 강조했으니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한층 더 법관법의 독자적 의미가 인정되었고, 경우에 따라서는 정치적인 이유에서 환영되기조차 하였다.442) 이익법학의 철저한 법률신봉자들조차 이러한 이론에 관심을 보이지 않은 예는 없었다. 이 책 서술의 여러 군데에서도 법률은 그것이 편입된 법이란 커다란 우주(宇宙)에 속한 가치에 근거하여서만 적용되고 해석되고, 필요할 때는 보충되고 형성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였다. 포섭(“밀폐된 공간”이라는 개념에 승용차를 포섭하는 따위)이 의심의 여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법률과 그 법률의 이성으로부터 판단대상인 사례와 적용이 명백한 사례를 비교, 평가하여 동일하게 보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점, 특히 “의미가 사라진 법률은 법률이 아니다”라는 법격언(175, 395쪽)을 적용할 때 이는 법률을 초월한 평가를 필요로 하는데, 이에 의하면 법률의 자구를 그대로 적용하는 경우 본래 그 법률의 이성적 목적은 달성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점, 더욱이 “형평법”을 적용할 경우는 입법자 스스로에 의해 초법률적인 평가에 의존하게 되는 점, 그리고 보충을 요하는 법률 흠결의 인식과 (유추 등에 의한) 그의 보충을 위해서는 초법률적 평가가 없을 수 없다는 점 및 끝으로 초법률적 평가를 법률적 평가에 대립시킬 필요성을 보게 될 수도 있다는 점 등을 다시 한번 상기해주길 바란다. 결론적으로, – 초법적인 논의는 아니더라도 – 초법률적인 논의조차 해석 자체의 방법론, 특히 해석방법의 우열관계(171쪽 이하 참조) 및 해석에 있어서 주관주의와 객관주의의 정당성(201쪽 이하) 등에 관하여 아무런 결정도 하지 못한다는 것인가?

이제 “법률과 법”의 문제가 점점 더 법적 방법론의 핵심으로 부각되었다. 그러나 그러한 문제가 어디까지 법적 방법론으로 다루어질 수 있고, 어디까지 법철학적 문제에 속하는지 하는 문제를 먼저 제기해야 한다. 나는 법률 저편에 놓인 법, 또는 “정당한”, “자연의”, “정의로운” 및 “공평한” 법, 한 마디로 표현해서 “법이념”에의 호소나 “도덕법칙”, “인간의 존엄”, “공공복리” 등에 의존하는 초법률적인, 심지어는 초법적인 평가의 도입이 법률가의 권한밖에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오해받고 싶지는 않다. 만약 내가 그렇게 주장하였다고 한다면 272쪽 이하의 설명에서 나는 이미 법적 방법론의 한계를 일탈하였을 것이다. 지금 이 장의 제목으로부터 법률은 법률가에게, 법은 법철학자에게(!)443)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단지 어떤 특정한 관점에서는 법률과 법의 관계가 명백히 법철학적 문제이자 주제가 된다는 점만을 의미할 뿐이다.

이점을 보다 분명히 하기 위하여 1953년 마인쯔 태생의 법철학자인 테오돌 비벡(Theodor Viehweg)에 의해 심사숙고되었고 그후 활기찬 논의의 주제가 되었던 개념 하나를 이 자리에서 다루어보기로 한다. 그 개념은 “토픽(Topik)”이라는 개념으로서 법적 방법론과 법철학적 사고의 중간에 위치한다고 말할 수 있다.444) 이 개념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저 유명한 논리학인 “오르가논(Organon)”에 등장하여, 근거가 분명한 “참” 전제가 아니고 단순히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일반적으로 분명하다거나 최소한 ‘현자(賢者)’에게 진실로 간주되는) 전제에 기초하여 결과를 추론하는 의미로 사용되었는데,445) 역사적 발전 과정을 겪으면서 많이 변화되어, 때로는 수사학과 결합되고 때로는 수사학적인 변증법에 단서를 제공하였다가 비코(Vico)(1708년 저서에서)에 의해 다시금 환기되었고,446) 근대에 와서는 수리적 자연과학이 전형적인 엄격한 학문적 방법론의 영향을 받아 칸트와 같은 사상가에 의해 “궤변”과 수다의 집합소로 간주되었다.447) 비벡은 이러한 토픽의 개념을 법학에 있어 적합한 “문제사고의 기법”448)으로 일깨우면서, 학문적 명제의 근거지움을 위한 아주 엄격한 방법론, 다시 말해 종(縱)적으로는 관련이 있으나 횡(橫)적으로는 독립된 제한적인 여러 적합한 (궁극적으로는 가정적으로만 근거가 세워진) 가설로부터 형식논리학의 규칙에 따라 지도원칙의 총괄적 체계를 이끌어 내는 공리주의적, 연역적 방법론은 법이론과 법실무를 위하여서는 중요하지 않다고 보았다.449)

“토픽”의 이러한 중립적 측면과 관련해서는 물론 다음의 두 가지 점이 생각되어야 한다. 첫째는 법학에서 공리주의적 방법론의 적용을 아마도 상당한 이유로 거부한다고 하여 그 보다 더 단순한 다른 연역적 방법론, 예컨대 자주 비판되고 그 기능적 측면에서는 오해를 받는 “법률적 삼단논법”,450) 다시 말해 일반적 (특히 법률로부터 도출된) 당위명제로부터 간단한 방법론에 의해 구체적 판단을 이끌어 내는 그런 방법론을 거부하는 것과 관련 지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이를 위해서는 클룩(Klug)이 법인식에 있어 형식논리학의 임무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한 말, 즉 “형식논리학은 필요하고 불가결한 것이나 충분한 의미를 지닐 필요는 없다”는 말451)이 매우 정당하다. 특히 대전제와 소전제로부터의 “일상적인” 연역이 그들 전제를 획득함에 있어 어려움이나 복잡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토픽적 방법론도 이러한 연역법과 결합될 수 있다.452) 둘째는 토픽적 방법론과 특히 공리주의적 방법론 사이의 대립이 법학을 토픽적 근거지움과는 관계없이 하나의 “체계학”(다만 공리주의적 의미는 배제하고)으로 발전시키는 것을 배척하는 것은 아니다. 이점에 관하여는 여기서 상론(詳論)할 수 없다.453)

이제 토픽론의 긍정적 측면에 접하려고 함에 있어 어려운 점은 “이익법학”을 구체적 사례에서 논구(論究)했던 헥(요건대 채권법과 물권법 개요 참조)과는 달리 비벡은 토픽적 방법론의 실용성을 매우 일반적인 방식으로만 예시하였다는 점이다. 그에 뒤이어 나온 문헌에서는 몇 가지 점만이 보충되었을 뿐이다.454) 비벡과 그 추종자들이 제시한 토포이는 매우 다의적이다. 이는 구체적으로 “논의”될 문제를 위해 특히 적합한 “관점(Gesichtspunkten)”(이말은 우연이 아니고 “토포이(Topoi)”에 대하여 항상 반복되어 온 독일어 표현이다)에서부터 “이익”, “비례성”, “기대가능성”, “부당성”, “정의”, “불공평”, “사물의 본성”, 심지어는 “경합원칙”(규범충돌의 경우) 및 해석원칙 등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다. 이와 같이 넓게 개념을 파악하면, “토픽”과 기존의 법적 방법론의 (이 “입문서”에서 다루어지는 바와 같이) 광범위한 결합이 이루어지게 된다. 이에 반해, 무권리자의 선의취득의 예에서 마주친 바와 같이 특정 관점이나 논의(아무도 그가 갖고 있는 권리 이상을 양도하지 못한다, 점유자의 권리외관, 취득자의 신뢰보호 등등), 또는 낙태 혹은 안락사의 형사상 처벌에 관한 논의에서 대립되는 관점이나 논의(형법은 “도덕의 기본”이어야 한다, 또는 이에 맞서 형법은 침해와 위험으로부터 타인의 “법익”을 보호해야 한다, 자기의 생명에 관하여는 인격의 자유로운 발전을 위해 임의로 처분할 수 있어야 한다 등등)에 머문다면, 토픽적 절차가 여러 규준적인 관점이나 논의를 집대성하는데는 유용할 지 몰라도, 그들 관점이나 논의의 우열을 판단하고 비교형량 시 우선의 원칙을 정하는데 있어서는 – 이러한 우선의 원칙을 다시 “토포이”라는 관점에서 제시하지 않는 한 – 아무 쓸모가 없다는 생각이다(나에게 있어서만 그런 것이 아니다). 여기서 토픽론은 가치론, 예컨대 (다시금 기본인 “토포이”가 되지 않는) 우리의 기본권 목록에서 취할 수 있는 “가치체계”에 의한 보충을 필요로 하는 것처럼 보인다.455) 보다 일반적으로는 사법과 행정의 합법률성의 원칙이 지배하는 법치국가에서는 “토포이”의 해석과 평가 및 비교를 위해 여전히 법률해석의 방법론 등에 의존하게 되는데, 그로써 토픽론과 전통적 해석학의 만남이 다시금 이루어진다. 물론 개념적용과 흠결 보충 및 법의 형성을 위해 법관과 행정공무원에게 “재량”이 주어진 경우는 궁국적으로 법률을 초월한 어떤 “관점”이 문제되는데, 이를 들추어내는 것이 토픽론의 소관사항이다.

그러나, 규준적 토포이가 그 법적 준거를 어디서 발견하고, 어디에 그 구속의 근거가 있는가 하는 의문이 제기된다. 이와 함께 “법률적” 사고가 법철학과의 관계를 추구하지 않을 수 없는 단계에 이르게 된다. 토픽론을 신봉하는 저자들은 – 해석, 유추, 반대유추 등과 같이 순수 해석학적 작업을 “토포이”로 다루지는 않으면서(나는 이를 부당한 것으로 생각한다) – 토픽적 논의의 병기고(兵器庫)를 채우는 것으로 정의, 공평성, 합목적성, 합리성, “상식(common sense)”, 도덕법규, “사물의 본성” 그리고 가능하다면 정치적 이념 등의 관점이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한 마디로 말해서 “법이념(Rechtsidee)”의 영역이 존재한다는 것인데, 이제 그 안에 발을 들여놓은 셈이다. 예컨대, 법이 도덕(무엇이든?)을 따라야 하는지, 아니면 독자적 지반을 가져야 하는지, “상식”은 그 추종을 요구할 수 있는지, 오늘날 “다원적 사회”에서 그러한 상식이 있을 수 있는지, 정의와 합목적성은 어떤 관계에 있는지, 가능한 한 일반화하여 평등취급에 관해 심사숙고하는 것이 정의의 본질에 맞는 것인지 아니면 개별화하여 사안의 특성과 관련당사자의 속성에 관해 심사숙고하는 것이 더 정의의 본질에 맞는 것인지, “사물의 본성”이란 무엇인지(여기서 “본성”이란 무엇을 의미하고. “사물”과 관련해서는 무엇을 의미하는지),456) 일반적으로 “법이념”이란 무엇인지, 법이념 사이에는 어떤 긴장관계가 숨어있는지, 그들은 “절대적”으로 타당한 것인지, 아니면 “상대적”으로만 타당한 것인지, 그들의 고도의 일반성(“공공복리”, 공공선(公共善)의 이념을 생각해 보라)과 특정 또는 개별적인 법문제 사이의 가교(架橋)를 어떻게 이룰 것인지 하는 문제들은 말 그대로 법률가가 제기하는 문제 그 자체이고, 이러한 문제에서 법률가는 피할 수 없고, 다만 방법론적으로 올바르다면 법철학적으로만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인 것이다.

에서가 “법 이전의 윤리적, 사회정책적 규범”을 “법적 진리”로 “전환”시키는 것이 법률가에게 부과된 과제라고 언급하고,457) 또는 호른(Horn)이 “인간은 사회질서 안에서 – 지식과 경험, 전통 및 확신에 따라 – 일반적으로 확실한 그런 원칙을 규범으로 선택한다”라고 설명하고,458) 또는 최고법원의 판결이 여러 가지로 “자연법” 또는 “도덕규범” 또는 “허무적인 상대주의”를 넘어 “선재(先在)하는 가치질서”에 근거하고,459) 또는 몇몇 사람이 이러한 가치의 목록을 “일반적 법원칙”460) 또는 보다 조심스럽게는 우리 기본법의 최상위 원칙461)에 명시적으로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다시 몇몇 사람이 여러 번 언급된 “사물의 본성”을 현재 논의되는 생활관계(혼인, 친족, 공무, 근로관계, 병역 등등)에 “내재된” 구조 안에서 감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462) 이는 순수 “법률실증주의”를 극복하고 법안의 “객관적 정신”이 내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려는 법률가의 당면하고도 당연한 노력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을 이론적으로 관철하고 정당화하려는 것은 필연적으로 법률해석학과 방법론 자체를 넘어 철학적 사고와 그의 특별한 인식론의 영역으로 접어드는 것이다. 이러한 영역도 법률가는 조망해야 하고 자기 생각의 기본으로 유지해야 한다. 그러나 자신의 사고수단을 가지고 이를 규명하고 확정 지우려는 시도는 무모한 것이다. 법철학이 법률가와는 무관하다는 생각은 버리고, 다만 법적 방법론과 철학적 방법론 사이에는 법이론에 충실한 사람이라면 반드시 존중해야 할 권한분배의 한계가 있다는 점만을 주장하면서, 이러한 영역의 한계에서 법적 사고의 입문서를 끝내고자 한다.463)

 

후 기(後記)

 

칼 엥기쉬의 생애와 저서

1899년 5월 15일 기센에서 태어나 1990년 9월 11일 알짜이 근처의 니더비젠에서 사망할 때까지 칼 엥기쉬는 거의 20세기 법학에 있어 지도자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17년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전쟁에 자원 참가하였다. 1918년부터 1921년까지 엥기쉬는 기센과 뮌헨에서 법학과 철학을 공부하였다. 헤선 주의 사법수습생으로서 그는 몇 년 동안 자신의 아버지의 법률사무소에서 일하였고, 1929년 기센에서 볼프강 미터마이어 교수의 지도 아래 “형법에 있어 고의와 과실에 관한 연구”란 제목의 논문으로 교수자격을 받았다. 형법과 법철학적 저서에서뿐만 아니라 방법론적, 학문적 사상 안에서도 그는 에른스트 베링과 철학자 에른스트 폰 아스터의 강력한 영향을 받았다.

기센, 프라이부르크와 뮌헨의 대학에서 강의를 마친 다음 엥기쉬는 1934년 여름 구스타프 라드부르흐를 대신하여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형법, 형사소송법과 법철학의 교수로 임명되었다. 당시 라드부르흐는 1933년 4월 7일자 “직업공무원제의 재건을 위한 법률”로 인하여 해임되었었다. 이일로 인하여 라드부르흐와 엥기쉬의 좋았던 인간관계가 나빠지지는 않았다. 라드부르흐는 1938년 엥기쉬에게 다음과 같이 편지를 썼다. “당신은 내가 대학 강단에서 자리를 잃어 상당히 고통스러울 것으로 생각할 것이오. 그러나 나는 당신만큼 마음에 드는 후임자를 생각해본 적이 없소. 옛날처럼 우리의 좋은 관계가 지속되길 바라오.”464) 민족사회주의 당시 엥기쉬는 새로운 법질서와 정치체계로부터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였다. 다른 동료들과는 달리 그는 그의 저서에서 유대인 저자를 인용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라이프찌히, 비인 및 함부르크로부터 요구를 뿌리친 다음 그는 1953년 뮌헨대학으로 자리를 옮겼다. 1967년 정년을 마친 다음 엥기쉬는 1971년 하이델베르크로 돌아와 1972년부터 명예교수로서 하이델베르크 법과대학과 관계를 맺었다.

엥기쉬의 학문적 업적은 형법이론, 의료법 및 법적 방법론, 법철학에 관련된 것이다. 엥기쉬의 주요저서로는,

– 형법에 있어 고의와 과실에 관한 연구, 1930년, 추가인쇄 1964년

Untersuchungen über Vorsatz und Fährlässigkeit im Strafrecht, 1930, Nachdruck 1964

– 형법상 구성요건요소로서 인과성, 1931년

Die Kausalität als Merkmal der strafrechtlichen Tatbestände, 1931

– 법질서의 단일성, 1935년, 신판인쇄 1987년

Die Einheit der Rechtsordnung, 1935, Neudruck 1987

– 법률적용에 관한 논리적 연구, 1948년, 3판 1963년

Logische Studien zur Gesetzesanwendung, 1943, 3. Aufl. 1963

– 법률가의 세계관에 관하여, 1950년, 2판 1965년

Vom Weltbild des Juristen, 1950, 2. Aufl. 1965

– 우리시대 법과 법학에 있어 구체화의 이념, 1953년, 2판 1968년

Die Idee der Konkretisierung in Recht und Rechtswissenschaft unserer Zeit, 1953, 2. Aufl. 1968

– 법적 사고 입문, 1956년, 8판 1983년

Einführung in das juristischen Denken, 1956, 8. Aufl. 1983

– 정의를 찾아서, 1971년

Auf der Suche nach der Gerechtigkeit, 1971

 

형법학자로서 칼 엥기쉬의 지위, 그의 형법과 관련된 저서의 영향력 및 형법방법론의 논쟁에 있어 그의 관여 등에 관하여서는 누구보다도 한스 하인리히 예쉑465)과 요하힘 힐쉬466) 등이 상세하게 봉헌한 바 있다. 고의와 과실 또는 인과성에 관한 획기적 연구 및 의료법에 대한 그의 기여 등은 아직도 형법이론에 있어 기본이 되고있다. 법철학과 법이론의 저서에서 그는 전통적 법이론을 타파하지도 않았고 완전히 법인식의 신사상을 추구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기본적으로 그는 금세기 대표적인 법철학과 법이론의 주장을 비판하고 있고, 이점은 특히 그의 “법적 사고 입문”에서 두드러졌다. 이런 점에서 그의 “법적 사고 입문”은 동시에 세기를 통한 법적 방법론의 역사에 관한 입문서이기도 한 것이다.

신실증주의적 경향, 그러면서도 다른 한쪽에서는 심지어 법률가에게서조차 법질서의 무시로 나타나는 그런 시대에 있어 엥기쉬가 그의 “법적 사고 입문”과 다른 방법론적 저술을 통하여 추구한 관심사는, 한편으로 법률가는 민주적 절차에 따라 정당하게 만들어진 법률을 복종하여야 할 의무가 있고,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그는 어떻게 법을 “정당하게” 적용하고 책임에 맞추어 형성시킬 것인가 하는 어려운 문제에 늘 부닥쳐왔으므로, 점점 더 뜨거운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한마디로 “법적 사고 입문”에서는 법률적 규범의 내용을 확정하는 문제와 포섭의 절차에 우선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해석방법론의 문제에 있어서 엥기쉬는 사비그니의 전통적 방법론에 의존하면서도 새로운 해석학적 주장에도 관심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그는 전통적인 해석론이나 (규범논리학은 물론) 새로운 해석방법론적 주장 및 (유추추론 등과 같은) 특정한 추론절차와 같은 논의는 모두 유일무이하게 타당한 결론에 이를 수 없고, 오직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많고 적음으로 대표될 수 있는 법적 해결책에 이르게 된다는 점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와 동시에 엥기쉬는 법규범을 해석하는데 어떤 요소와 이념을 – 엥기쉬의 저서에서는 “법질서의 단일성”이 주요 이념으로 밀접하게 등장하곤 한다 – 고려하여야만 하는지 하나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법규범을 해석하는데 법철학적 관심을 가지고 기본적 문제들을 다룬다는 것은 법의 근본과 한계를 벗어나지만 않는다면 의미 있는 것이다.

엥기쉬는 “정의를 찾아서- 법철학의 기본주제(1971)”란 저서에서 법의 근본과 한계에 관한 그의 법철학적 사고를 정리하고 있다. 법과 도덕의 관계, 법과 권력의 상호작용 또는 실정법의 정의 이념의 지향 등과 같은 법철학적 근본문제에 관한 논의 등을 통하여 엥기쉬는 – 물론 궁극적으로는 회의적으로 평가한 – 가치상대주의로 나가고 있다. 그가 20대부터 경험해온 가치와 정의관념의 변화, 당시 유행이던 회의주의적 윤리학의 영향을 받아 엥기쉬는 그가 진정으로 지지할 수 있는 인식은 얻을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가치상대주의는 학문적으로, 특히 법철학적으로 보아 ‘진리’, 그것도 아주 소름끼치는 진리이다. 우리는 그리이스 신화에 나오는 여신 고르고(Gorgo)가 지녔던 시야밖에 가질 수 없다!”(286쪽).

이러한 가치상대주의에도 불구하고 “인간존중의 평화질서”(283쪽)로서 법의 기능이 상실되고 그 결과 법의 도덕적, 규범적 효력이 사라지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으므로, 엥기쉬는 – 역사적 경험으로부터 – 모든 극단적인 상대주의적 입장과 한계를 두려한다. 여기서 도덕의 최소한을 실현시키고자 하는 법의 효력에 관한 현대적 논의에 엥기쉬가 근접하고 있음이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 상대주의나 회의주의에도 불구하고 엥기쉬는 법과 그 제도의 역사, 방법론의 역사 및 도덕 윤리적 전통 안에서 다시금 확실함을 추구한다. 엥기쉬와 같이 정치체제의 급격한 변화와 그때마다의 현실에 적응된 법질서를 경험한 사람들에게 급격하고도 근본적인 법적 “변화”는 깊은 회의로 다가오고, 하나하나 비판적 논의에도 불구하고 법과 그 제도의 긍정적 전통을 방법론적으로 다루어보고자 하는 시도가 있을 수 있다.

 

문헌목록

 

 

 

 

 

 

 

 

 

 

 

 

 

 

 

약어표

 

인명색인

 

사항색인


1) 이하의 서술과 관련하여, J. Binder, Philosophie des Rechts, 1925, S. 836 ff., 886 ff., 920 f.; C. A. Emge, Einführung in die Rechtsphilosophie, 1955, S. 380 ff.; K. Engisch, Wahrheit und Richtigkeit im juristischen Deken, 1963; A. André, Was heißt rechtswissenschaftliche Forschung?, JZ 1970, 396; O. Ballweg, Rechtwissenschaft und Jurisprudenz, 1970; R. Dreier, Zum Selbstverständnis der Jurisprudenz als Wissenschaft, Rechtstheorie 2(1971), 37; W. Naucke, Rechtsphilosophische Grundbegriffe, 2. Aufl. 1986, S. 148 ff.; F. Bydlinski, Juristische Methodenlehre und Rechtsbegriff, 2. Aufl. 1991, S. 57 ff. 76 ff.; Th. Mayer-Maly, Rechtswissenschaft, 6. Aufl. 1991, S. 1 ff.; K. Larenz, Methodenlehre der Rechtswissenschaft, 6. Aufl. 1991, S. 189 ff., 239 ff.; H.-M. Pawlowski, Methodenlehre für Juristen, 2. Aufl. 1991, Rn. 3 ff.; H. Coimg, Grundzüge der Rechtsphilosophie, 5. Aufl. 1993, S. 290 ff.; F, Müller, Strukturierende Rechtslehre, 2. Aufl. 1994, S. 13 ff.; K. F. Röhl, Allgemeine Rechtslehre, 1995, S. 69 ff.; R. Zippelius, Recht und Gerechtigkeit in der offenen Gesellschaft, 2. Aufl. 1996, S. 21 ff.

2) G. Küchenhoff, Naturrecht und Christentum, 1948, S. 6.

3) D 1,1,10. 이러한 구절이 뜻하는 바는 Corpus juris civilis Digesta(533년 12월 16일 발간), Buch 1, Titel 1, Lex 10. 또한 Vgl. D. Liebs, Römisches Recht, 4. Aufl. 1993, S. 61 f.

4) Vgl. J. Esser, Grundsatz und Norm in der richterlichen Fortbildung des Privatrechts, 2. Aufl. 1964, S. 306 ff.; L. Raiser, Rechtswissenschaft und Rechtspraxis, NJW 1964, 1201(1204 f.); L. Legaz y Lacambra, Rechtphilosophie, 1965, S. 558 ff.; Larenz, Methodenlehre, S. 234 ff., 242 f.; Pawlowski, Rn. 5.
K. Krawietz(Welche Methode lehrt die juristische Methodenlehre?, JuS 1970, 425)가 “현대의, 무엇보다도 언어분석철학의 영향을 받은 학문이론의 관점에서 로마법학을 학문이 아니라고” 하였다면, 이는 너무 좁은 관점에서 판단한 것이다. 로마“법학”의 성격에 관하여는 아마도 vgl. W. Kunkel, Römische Rechtsgeschichte, 8. Aufl., 1978, S. 90 ff.; Liebs, Römiches Recht, S. 16. M. Kaser(Das Römische Privatrecht I, 2. Aufl. 1971, S. 3)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후기 공화정 시대의 로마법은 “모든 서양법학의 근원이다”. 당시 로마법이 “법발견의 실무적 과제”를 중심으로 하였음은 물론이다.
모든 시대에 있어 법학은 (광의의) 법을 함께 형성하여왔고, 그것은 “실천 법학”이었다(물론 H. Kelsen, Reine Rechtslehre, 2. Aufl. 1960, S. 75 Anm. 2는 반대). 반면, “법학은 진정으로 실천적이기 위하여서는 실무적 문제에만 국한되어서는 안 된다”라고 한 R. v. Ihering(Geist des römischen Rechts II 2, 2. Aufl. 1869, S. 369)의 말은 의문이다.

5) F. Wieacker, Privatrechtsgeschichte der Neuzeit, 2. Aufl. 1967, S. 491.

6) F. Schiller, Das Lied von der Glocke, in: ders., Sämtliche Werke, Bd. 1, hg. v. G. Fricke/H. G. Göpfert, 4. Aufl. 1965, S. 439, Vers 343.

7) B. Pascal, Gedanken, übers. u. hg. v. E. Wasmuth, 8. Aufl. 1978, S. 148(Pensées V, 294).

8) J. v. Kirchmann, Die Wertlosigkeit der Jurisprudenz als Wissenschaft, 3. Aufl. 1848, S. 10. 그 외 Binder, S. 847 f.; C. Schmitt, Die Lage der europäischen Rechtswissenschaft, 1949, S. 15; E. Wolf, Fragwürdigkeit und Notwendigkeit der Rechtswissenschaft, 1953, S. 13. 반면, 법학은 자연과학과는 달리 시간이 흘러도 거의 변화되지 않는다고 강조되기도 한다(예컨대 G. Cohn, Existentialismus und Rechtswissenschaft, 1955, S. 88). 최근에는 법학과 자연과학의 관계 못지않게 법학과 사회과학의 관계에 대하여서도 논란이 있다(사회과학은 “존재학문” 및 “현실학문”이란 의미에서 자연과학과 유사하다; 이에 관하여는 예컨대, Larenz, Methodenlehre, S. 195 ff., 239 ff.; 또한 vgl. Naucke, Grundbegriffe, S. 153 ff.; Müller, Rechtslehre, S. 308 ff.). 그 외에도 법학의 학문적 성격은 궁극적으로 “학문”의 특성을 어떻게 보느냐, 예컨대 (논리적, 수학적, 경험적) “진리인식”을 지향하는 노력만을 “학문적”이라 볼 것인지, 아니면 방법론적으로 획득하고, 충분히 근거가 있는 (궁극적으로 “정당한”) 규범적 명제의 체계를 목적으로 하는 노력도 역시 학문적이라 볼 것인지에 따라 달라진다. 결론적으로 “정신과학(globus intellectualis)”에서의 전반적 분류의 문제가 제기된다. “정신과학”으로서의 법학의 특성에 관하여는 145쪽 주 14 참조.

9) 이에 관하여는 K. Engisch, Die rechtliche Bedeutung der ärztlichen Operation, 1958, S. 19 f. 또한 Vgl. Eser, in: A. Schönke/H. Schröder, Kommetar zum Strafgesetzbuch, 24. Aufl. 1991, § 223 Rn. 27 ff. m. w. N.

10) 구법 시대의 상황에 대한 비판은, W. Dallinger, Aus der Rechtsprechung des BGH in Strafsachen, MDR 1956, 394(397). 또한 Vgl. E. Kern/C. Roxin, Strafverfahrensrecht, 13. Aufl. 1975, S. 124.

11) 1993년 혼인에 있어 성씨 창설에 관한 신 규정(민법 제1355조)에 따르면, 혼인 중의 자는 양친의 성을 모두 따를 수 있거나 – 이것이 불가능할 때에는 – 부 또는 모의 성을 따를 수 있다(민법 제1616조). 혼인 외의 자는 모의 성을 따라야 한다(민법 제1617조).

12) 이에 관하여는 K. Engisch, Recht und Sittlichkeit, Schopenhauer Jahrbuch 51(1970), 107; R. Zippelius, Rechtsphilosophie, 3. Aufl. 1994, §§ 5 f.

13) 이에 관하여는 K. Engisch, Der rechtsfreie Raum, ZgS 108(1952), 385(415ff.).

14) Vgl. K. Engisch, Über Negationen in Recht und Rechtswissenschaft, FS f. H. Henkel (1974), S. 47.

15) 예컨대, L. Enneccerus/H. C. Nipperdey, Lehrbuch des Bürgerlichen Rechts, Bd. I 2, 15. Aufl. 1960, § 136 I.

16) 이에 관하여는 Enneccerus/Nipperdey, Bd. I 1, 15. Aufl. 1959, § 71; 비판적으로는 F. W. Jerusalem, Die Zersetzung des Rechtdenkens, 1968, S. 89 f.

17) H. Kelsen, Allgemeine Staatslehre, 1925, § 10 A. 특히 그의 저서인 “Reine Rechtslehre”에 있는 켈젠 이론을 집대성한 부분 참조(zum Text v. a. S. 114 ff.). 켈젠에 대한 비판은 Latenz, Methodenlehre, S. 69 ff.(특히 명제로서의 “법규”와 명령으로서의 “법규범” 사이의 켈젠의 구분에 관하여 S. 75 f.); 또한 vgl. K. Engisch, Literaturbericht Rechtsphilosophie, ZStW 75(1963), 591(605 f.).

18) 예컨대 H. Henkel, Einführung in die Rechtsphilosophie, 2. Aufl. 1977, S. 42(S. 24 ff.도 함께); R. Zippelius, Einführung in die juristische Methodenlehre, 6. Aufl. 1994, S. 2 ff.

19) G. Simmel, Einleitung in die Moralwissenschaft I, 1892, S. 8 f. H. Kelsen, Hauptprobleme der Staatsrechtslehre, 2. Aufl. 1923, S. 7 ff.는 찜멜에 의거하고 있다. 이에 관하여는 R. Schreiber, Die Geltung von Rechtsnormen, 1966, S. 51 ff.

20) R. Eisler, Wörterbuch der philosophischen Begriffe, Bd. 3, 3. Aufl. 1910, S. 1362.

21) R. Eisler, Handwörterbuch der Philosophie, 2. Aufl. 1922, S. 610.

22) 이와 같은 의미로는 E. Husserl, Logische Untersuchungen I, 4. Aufl. 1928, S. 40 ff.

23) 이하의 서술과 관련하여, Binder, S. 173 ff.; Kelsen, Rechtslehre, S. 73 ff.; U. Klug, Bemerkungen zur logischen Analyse einiger rechtstheoretischer Begriffe und Behauptungen, in: FS f. W. Britzelmayr(1962), S. 115; I. Tammelo, Contemporary developments of the imperative theory of law: a survey and appraisal, ARSP 49(1963), 255; Th. Geiger, Vorstudien zu einer Soziologie des Rechts, 1964, S. 61 ff.; die Beiträge zur Engisch-Festschrift(1969) von W. G. Becker, K. Larenz, P. Noll und I. Tammelo; E.-J. Lampe, Juristische Semantik, 1970, S. 51 ff., 63 ff.; K. Engisch, Auf der Suche nach der Gerechtigkeit, 1971, S. 26 ff.; R. N. Hare, Die Sprache der Moral, 1972, S. 19 ff.; H. H. Keuth, Zur Logik der Normen, 1972; H. L. A. Hart, Der Begriff des Rechts, 1973, S. 34 ff.(37); Henkel, Rechtsphilosophie, S. 43 ff.; J. L. Austin, Zur Theorie der Sprachakte, dt. bearb. v. E. v. Savigny, 2. Aufl. 1981; H.-J. Koch/H. Rüßmann, Juristische Begründungslehre, 1982, S. 45 f.; Bydlinski, S. 197 ff.; Larenz, Methodenlehre, S. 253 ff. m. w. N.; Coing, S. 235 ff.; D. v. d. Pfordten, Deskription, Eval!uation, Präskription, 1993, S. 336 ff.; Röhl, S. 226 ff.

24) 이와 같이 나는 “허용된”이란 의미를 “금지되지 않은”이란 의미와 같은 것으로 보고 “금지된”이란 의미와는 반대(금지를 부정하는)의 의미로 본다. “허용”이 명시적일 필요는 없고 또 적극적 용인일 필요도 없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자들은 적극적으로 “용인된”이란 의미로서 “허용된” 의미와 단순한 “금지되지 않은”(무관심한) 의미를 구별한다; 예컨대, W. Sax, Die rechtliche Dogmatik der Sterbehilfe durch vorzeitigen Abbruch einer Intensivbehandlung, JZ 1975, 137(145 f. mit Anm. 74). I. Tammelo, Outlines of modern legal logic, 1969, S. 90 ff.에서는 심지어 “permissory(적극적으로 허용된)”이란 의미와 “licensory(방임된)”이란 의미와 “neutral(관여하지 않는)”이란 의미를 구별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수학적이고, 비존재론적인 논리적 사고를 위와 같은 구분에 연관시킨 것이다. 이에 관하여는 Tammelo 외에도, L. Philipps, Sinn und Struktur der Normlogik, ARSP 50(1964), 317; W. Kamlah/P. Lorenzen, Logische Propädeutik, 2. Aufl. 1973, S. 202 ff.; O. Weinberger, Der Erlaubnisbegriff und der Aufbau der Normenlogik, Études de logique juridique 5(1973), 113; ders., Rechtslogik, 2. Aufl. 1989, S. 231; G. H. v. Wright, Normenlogik, in: K. Lenk(Hg.), Normenlogik, 1974, S. 25; Koch/Rüßmann, S. 43 ff. 일상 언어에서 표현되고 있는 바에 따르면 여기서 언급된 개념은 다음을 의미한다. 금지되지 않은 것은 허용된 것이고, 허용된 것은 금지되지 않은 것이다. 명령된 것은 허용된 것이지만, 허용되었다 하여 명령된 것은 아니다.

25) 법질서의 비독립적 구성에 관하여는 또한 Larenz, Methodenlehre, S. 257 ff.; 특히 Keuth, S. 72 ff.; E. Schneider, Logik für Juristen, 4. Aufl. 1995, S. 62 ff.

26) 다시 말해 (개별적인 허용에 의한 것이 아니라) 완전히 폐지하는 경우. 이러한 법규의 폐지에 관하여는 예컨대, E. R. Bierling, Juristische Prinzipienlehre, Bd. I, 1894, S. 97 ff.

27) 우리는 이와 같은 주관적 권리의 보장을 단순한 허용(“해도 좋다”는 의미에서)과 구별할 뿐만 아니라, 법률“효과”의 발생을 목적으로 한 특정 행위를 할 “권한”을 인정하는, 특히 민사법에서 “사적 자치”를 이루도록 “법률행위”(계약, 처분행위, 유언)에 의하여 권리와 의무를 발생시키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그런 의미에서 법적인 “가능”을 의미하는 법규와도 구별한다. 이러한 법규도 역시 권리와 의무를 발생시키는 요건만을 규정하고 있는 한 다시금 “비독립적”이라 할 수 있고, 법규명령설의 관점에서 이를 해석함에 있어서는 예나 지금이나 논란이 있다. 중요한 핵심은 (주관적) 권리의 보장이 명령(Imperativ), 다시 말해 금지와 명령(Gebot)에 의하여 설명되어질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45쪽 주 23 후반부 참조.

28) Enneccerus/Nipperdey I 1, §§ 30, 72. 본문의 설명을 위하여서는 이와 같은 개념정의가 예나 지금이나 충분한 근거가 될 수 있다(이른바 소유권과 관련하여). 이에 대하여 비판적으로는 K. Larenz, Allgemeiner Teil des deutschen Bürgerlichen Rechts, 7. Aufl. 1989, S. 210 ff. 여기서는 인격권의 경우에는 “힘”이 아니라 “인격 자체”가 중요한 문제라고 지적되어 있다. 이점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보장과 명령에 관한 기본사상에는 아무 영향이 없다.

29) K. Binding, Strafrechtliche und strafprozessuale Abhandlungen I, 1915, S. 539.

30) 여기서 우리는 1차적 행위규범과 2차적 제재규정이라는 일반적으로 승인된 구분법에 마주하게 된다. 이에 관하여는 예컨대, Zippelius, Methodenlehre, S. 3, 6 f.

31) H. Kelsen, Reine Rechtslehre, 1. Aufl. 1934, S. 48 f.(또한 2. Aufl., S. 130 ff. 참조).

32) 이와 같은 방식으로 해서, 나는 Klug, Henkel, Larenz(21쪽 주 14 참조; vgl. auch Schreiber, Geltung, S. 38 ff.; Bydlinski, S. 197 ff.; v. d. Pfordten, S. 336 ff.)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법규명령설을 유지할 수 있다고 본다. 순수 논리적으로 본다면 법규명령설의 구성은 여러 가능한 이론 가운데 하나라는 점, Klug(in: FS Britzelmayr(1962), S. 117)의 말을 빌려 말한다면 “법규범을 당위규범으로 해석할 필연은 없다”는 점, 인간이 “규범의 기본방식을 선택함에 있어서는 자유스럽다”는 점, 또한 “당위적 표현” 대신에 “허용규범적 표현”(이에 의하면 해서는 안 된다라고 하여 당위를 규정한다) 또는 주관적 권리와 관련하여 “권한”이란 표현 방식을 채택하는 것도 특히 논리적으로는 가능하다는 점 등을 비판할 생각은 없다. 나는 그저 법질서가 명령을 의미있게 장치하여 주관적 권리를 “보장하고”, 그런 의미에서 “보장”은 명령의 특별한 종합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여, 주관적 권리가 명령의 실체인 객관적 법에 현실적으로 의존한다는 점을 강조하였을 뿐이다. Lampe(S. 65)에 의하여 제기된 법제정 권한(38쪽 주 18에서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사적 자치”를 가능하게 하는 채권법적, 물권법적, 가족법적 및 상속법적 계약이나 처분행위를 할 수 있는 권한을 포함, 이점에 대하여는 특히 Hart, S. 45 ff.에 법규명령설을 감동 깊게 비판하면서 언급되어 있다)도, Hart가 생각한 바와 같이, 권리와 의무, 말하자면 명령의 발생을 위한 요건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에 관하여는 Engisch, Suche, S. 47, 50 참조.

33) 우리는 지금까지 “규범”이란 말을 피해왔다. 일상적으로 “법규범”이란 일반적으로 제정된 법규를 말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간혹 개별사례에 적용되는 개별규범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규범”으로서 우리가 관심 있는 것은 우선 일반 법규이다. 켈젠에게 있어 “법규”의 특이한 사용례에 관하여는 28쪽 주 8 참조. 다른 방식으로 “법규범”과 “법규”를 구분하는 경우에 관하여는 H. J. Wolff/O. Bachof/R. Stober, Verwaltungstecht, Bd. 1, 10. Aufl. 1994, § 24 Rn. 10: 여기서는 규범이란 법규에 “표현되어” 있는 “명령적” 내용을 말한다고 한다.

34) F. Jodl, Allgemeine Ethik, 1918, S. 26; vgl. auch G. E. Moore, Principia Ethica(dt.), 1970, S. 186 f.

35) E. Mezger, Die subjektiven Unrechtelemente, Gerichtssaal 89(1924), 207(240 f.); vgl. auch Arthur Kaufmann, Tatbestand, Rechtfertigungsgründe und Irrtum, JZ 1956, 353(355 f.); Henkel, Rechtsphilosophie, 1. Aufl. 1964, S. 61 f.(anders 2. Aufl.).

36) 제218조a의 개정내용, 특히 제1항의 기간규정에 관한 논쟁에 대하여는 BVerfGE 88, 203 안에서 논의된 논쟁과 K. Lackner, Kommentar zum Strafgesetzbuch, 21. Aufl. 1995, vor § 218 Rn. 1 ff. m. w. N., § 218a Rn. 1 ff. 참조. 제2항의 의학적 처방에 관하여서는 물론 위 논쟁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37) 임신중절의 문제에 있어 기본법의 가치질서와 사회적 현실 사이의 큰 모순에 대하여는 vgl. Th. Würtenberger, Zeitgeist und Recht, 2. Aufl. 1991, S. 225 ff.

38) I. Kant, Grundlegung zur Metaphysik der Sitten, Werkausgabe, Bd. VII, hg. v. W. Weischedel, 10. Aufl. 1989, S. 43(BA 39). Vgl. 최근의 문헌들 중에서는 아마도 Hare, S. 54 ff.

39) Kant, Grundlegung, S. 44(BA 41).

40) F. Blaschke(Einl. zu N. Machiavelli, Der Fürst, 3. Aufl. 1924, S. XXVI)은 다음과 같이 올바르게 지적하고 있다. 마키아벨리의 경우에는 “지도자가 질서국가를 형성하려면 무엇을 해야할 지에 필요한 정치적 규정을 획득하는 것”이 보다 중요한 문제이다.

41) I. Kant, Metaphysik der Sitten, Werkausgabe, Bd. VIII, hg. v. W. Weischedel, 8. Aufl. 1989, S. 453(A 197).

42) Vgl. L. Nelson, Rechtswissenschaft ohne Recht, 2. Aufl. 1949, S. 13.

43) A. Ruesch, Todesstrafe und Unfreiheit des Willens, 1927, S. 31.

44) P. Eltzbacher, Über Rechtsbegriffe, 1900, S. 28.

45) G. Del Vecchio, Der homo juridicus, Philosophia 2(1937), 55(61).

46) Th. Geiger에 이어, Schreiber, Geltung, v. a. S. 18 f. 참조; dazu Lampe, S. 51 ff.

47) Del Vecchio, Philosophia 2(1937), 59; vgl. auch H. Rottleuthner, Richterliches Handeln, 1973, S. 13; Zippelius, Methodenlehre, S. 25.

48) 예컨대, M. Moritz, Der praktische Syllogismus und das juridische Denken, Theoria 20(1954), 78(90 f.); vgl. auch N. Luhmann, Rechtssoziologie II, 3. Aufl. 1987, S. 227 ff.(“konditionale Programmierung” in Rechtsnormen).

49) 여기서 다시금 문장의 형식이 중요한 문제일 수 없음이 분명해졌다. 예컨대, 형법 제211조가 “살인자는 무기징역으로 처벌된다”라고 규정하였다면, 이는 어떤 사람이 살인을 하였다면 그는 무기징역으로 처벌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50) 이에 관하여는 K. Engisch, Methoden der Strafrechtswissenschaft, in: J. Esser u. a.(Hg.), Methoden der Rechtswissenschaft I, 1972, S. 42 ff.; H.-H. Jescheck/Th. Weigend, Lehrbuch des Strafrechts (AT), 5. Aufl. 1996, S. 136 f., 244 ff.

51) D. Liebs, Lateinische Rechtsregeln und Rechtssprichwörter, 5. Aufl. 1991, S. 48(C 78), mit Verweis auf Codex Justinianus 4, 10, 5에서 인용.

52) E. Zitelmann, Irrtum und Rechtsgeschäft, 1879, S. 214 ff.(216, 221).

53) A. v. Tuhr, Der Allgemeine Teil des Deutschen Bürgerlichen Rechts II 1, 1914, S. 5 f. mit Anm. 10. 구성요건과 법률효과의 인과성의 문제와 나중에 언급하게 될 “이중효과”의 문제에 대하여는 따로 조그만 문헌이 발간되어 있다. 구성요건과 법률효과의 관계 일반에 관하여서는 폰 투어 외에도 W. Schulze, Tatbestand und Rechtsfolge, 1909; Binder, S. 902 ff.; R. Henle, Lehrbuch des Bürgerlichen Rechts I, 1926, S. 29 ff.; K. O. Petraschek, System der Rechtsphilosophie, 1932, S. 270 ff.; W. Sax, Das strafrechtliche “Analogieverbot”, 1953, S. 145; Schreiber, Geltung, S. 14 ff.; Koch/Rüßmann, S. 15, 18 f., 47; Zippelius, Methodenlehre, S. 25 f. 특히 이중효과의 문제에 관하여는 Th. Kipp, Über Doppelwirkungen im Recht, FS f. F. v. Martitz(1911), S. 211; m. w. N: Enneccerus/Nypperdey I 2, §§ 136 I, 203 III 7; Larenz, BGB AT, S. 406; W. Flume, Allgemeiner Teil des Bürgerlichen Rechts II, 4. Aufl. 1992, S. 566 ff.

54) v. Thur, S. 5 Anm. 7.

55) Binder, S. 904 f.

56) 예컨대, F. Sommer, Das Reale und der Gegenstand der Rechtswissenschaft, 1929, S. 111 ff.(123); Petraschek, S. 271.

57) Vgl. Petrasch다, S. 271.

58) Henle, S. 30.

59) Kipp, FS Martitz (1911), S. 211.

60) 이에 관하여는 M. Bangemann, Bilder und Fiktionen in Recht und Rechtswissenschaft, 1963(m. w. N).

61) K. Peter, Die Möglichkeit mehrerer Gründe derselben Rechtsfolge und mehrerer gleicher Rechtsfolgen, AcP 132(1930), 1(4).

62) 이와 같은 방식으로 법규와 법적용자의 구체적 판단 사이에 물리적 인과관계가 형성되어진다는 점을 아울러 지적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본문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법률적 인과성”과는 다른 의미이다. 이점에 관하여는 예컨대, H. Maier, Psychologie des emotionalen Denkens, 1908, S. 681 ff. 참조.

63) 이에 관하여는 또한 Larenz, Methodenlehre, S. 276 f.

64) 물론 위와 같은 권한과 명령 자체를 “법적 효과”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법적 효과”를 의미하는 법률효과란 권한을 행사하여 실현된 내용 그 자체를 일반적으로 생각한다. “법률효과”의 이중의미(25쪽 참조)에 대하여 여기서 다시 한 번 주의를 요한다.

65) 이에 관하여 자세한 것은, Engisch, ZgS 108(1952), 385.

66) 이에 관하여는, K. Engisch, Logische Studien zur Gesetzanwendung, 3. Aufl. 1963, S. 3 f.

67) 이에 관하여는, M. Rebinder, Einführung in die Rechtswissenschaft, 8. Aufl. 1995, S. 11 ff., 194 ff., 227 f.; 덧붙여 Bydlinski, S. 214 ff. m. w. N.; Larenz, Methodenlehre, S. 356 ff.; F. Müller, Juristische Methodik, 6. Aufl. 1995, S. 125, 200 f.

68) 법관법이 법률과 관습법 이외에 부수적 “법원(法源)”으로서 인정될 수 있는지 하는 문제는 이와 관련이 있다. 이 문제는 점점 더 뜨거운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점은 제6장 참조(요컨대 231쪽 주 1 참조). 이하 본문에서는 법관을 독립적으로 판결하는 사람이 아니라 법률에 따라 판결하는 사람으로 우선 이해하고자 한다. 법관법의 “근거”로서 “법감정”에 관하여는, 고전적 문헌으로 M. Rümelin, Rechtgefühl und Rechtsbewußtsein, 1925; H. Isay, Rechtsnormen und Entscheidung, 1929, S. 85 ff.; E. Riezler, Das Rechtsgefühl, 3. Aufl. 1969, S. 137 ff.; 덧붙여 Würtenberger, S. 167 ff. 182 ff.; M. Rebinder, Rechtssoziologie, 3. Aufl. 1993, S. 176 ff. m. w. N.; ders., Rechtswissenschaft, S. 153, 167; Zippelius, Rechtsphilosophie, §§ 18 ff.

69) 우리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판결 속에 포함되어 있는 “순수 사고의 산물로서 당위의 확정”이고, 그에 덧붙여진 궁극적 명령의 내용은 아니다(본문 88쪽 참조); 이에 관하여는, vgl. Engisch, Studien, S. 4; J. Rödig, Die Theorie des gerichtlichen Erkenntnisverfahtens, 1973, S. 10, 63 f., 82 ff.

70) Th. Maunz, Deutsches Staatsrecht, 23. Aufl. 1980, § 10 I d; 법률의 유보와 법률의 우위에 관하여는, Th. Maunz/R. Zippelius, Deutsches Staatsrecht, 29. Aufl. 1994, § 13 III 4 m. w. N.

71) 이에 관하여는, Engisch, Studien, S. 3 f.

72) Moritz, Theoria 20(1954), 78.

73) Maier, S. 615.

74) 예컨대, F. Somló, Juristische Grundlehre, 2. Aufl. 1927, S. 218 Anm. 4; 또한 Peter, AcP 132(1930), 41 f.; Weinberger, S. 250 f.(“Abtrennungsregel”).

75) 좀더 엄밀히 이야기하면, 일반에서 개체로의 이중 추론을 하게 된다. 즉 살인자를 처벌하여야 한다는 당위에 관한 추론과 함께, 살인자에게 형을 선고하여야 한다는 모든 법관에 대한 명령으로부터 여기서 지금 형을 선고하여야 한다는 현재 재판을 담당하고 있는 법관에 대한 명령의 추론을 나란히 하게 된다.

76) 처음에는 “응용 미적분학”(vgl. O. Becker, Untersuchungen über den Modalkalkül, 1952, S. 40 ff.)에 의한, 그 뒤에는 “비존재론적” 논리학의 영역 안에서의 비판. 후자에 관하여서는 독자적 문헌도 간행되었다. 이에 관하여는, 92쪽 주 15에서 열거하고 있는 논리학 문헌 참조.

77) 여기와 이하에 관계된 부분에 관하여는, Lampe, S. 40 ff., 특히 S. 48: “모든 법규명령은 명령되어진 것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확정하는 법규의 지시를 포함한다.” M. Mortz, Kann das (richterliche) Urteil deduziert werden?, in: FS f. P. O. Ekelöf(1972), S. 502에서는 법적 명령을 위한 “병렬 판단”에 관하여 언급하고, 이를 수행하면서 삼단논법에 이르게 되는데 이러한 절차를 통하여 “구체적 법적 판단이 법률과 일치하는지 않는지를 판단할 수 있다”고 하고(502쪽), “법규가 명령으로서 파악되어지는 경우”에 특히 바로 그렇다고 한다(518쪽). 이와 반대는, K. Haag, Kritische Bemerkungen zur Normlogik, in: Arthur Kaufmann (Hg.), Rechtstheorie, 1971, S. 135(139). 그러나 모리쯔와 나에게 있어 명령이 판단으로 전환되는 것이 아니라, 판단 속에서 명령을 언급하는 것이란 점을 주의하기 바란다.

78) 예컨대, R. Carnap, Einführung in die Symbolische Logik, 3. Aufl. 1968, S. 36.

79) 더 깊은 이해를 위하여서는, Engisch, Studien, S. 6 ff.; Larenz, Methodenlehre, S. 271 ff.; 덧붙여 Kelsen, Rechtslehre, S. 76 f. 논리적 서술로는, Th. Heller, Logik und Axiologie der analogen Rechtsanwendung, 1961, S. 68 ff.; R. Schreiber, Logik des Rechts, 1962, S. 38 ff.; H. Lenk(Hg.), Normenlogik, 1974; G. H. v. Wright, Handlung, Norm und Intention, hg. und eingel. v. H. Poser, 1977; U. Klug, Juristische Logik, 4. Aufl. 1982, S. 48 ff.; Koch/Rüßmann, S. 31 ff.; Weinberger, m. w. N. im Literaturverzeichnis; R. Alexy, Theorie der juristischen Argumentation, 2. Aufl. 1991, S. 273 ff.; Röhl, S. 113 ff.

80) 이에 관하여는, K. Engisch, Die Idee der Konkretisierung in Recht und Rechtswissenschaft unserer Zeit, 2. Aufl. 1968, S. 188 ff. m. w. N.; 이외 비판적인 견해로는 예컨대, Coing, S. 276 ff.; 이와 달리 (이사이를 찬성하는) Esser, Grundsatz, S. 19 ff., 256 m. w. N. 이사이에 대한 나의 비판은 상당한 반론에 부딪쳤다. 예컨대, P. Schwerdtner, Rechtswissenschaft und kritischer Rationalismus, Rechtstheorie 2(1971), 67(70)와 Keuth, S. 38 f.(“법관의 양심에 호소”함으로써 “사실상의 행위에 관한 판단을 반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사이가 그의 관점에 따라 전형적이고 선례적이라 할 법관의 판단을 심리상의 감정적 사실, 다시 말해 법감정에 근거 지우고, 다른 한편 법률적 규범에서 정당한 판단의 본래 인식근거로서의 기능을 박탈하고 오히려 부차적인 통제기능만을 부여하였다는 점은 이론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이점에서 나는 실제 법정에서 이루어질 수도 있는 사실(즉, 법관이 우선은 법감정에 기초하고, 그 다음 규범을 검토하고, 그리하여 이것이 법감정과 가능하면 조화를 이루도록 유지시키고 있는 사실)로부터 마땅히 “그래야 한다”는 사실을 잘못 추론하고 있다는 점과 더 나아가 주관주의의 위험성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법관의 법률구속성의 원칙(기본법 제20조 제3항; 또한 Jarass, in: Hans D. Jarass/Bodo Pieroth, Kommentar zum Grundgesetz für die Bundesrepublik Deutschland, 3. Aufl. 1995, Art. 20 Rn. 28. m. w. N.)에 위배한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만족스럽다고 생각되어지는 결과를 위하여 외견상 근거를 지우려는 경향이 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이에 관하여는, F. Brecher, Scheinbegündungen und Methodenehrlichkeit im Zivilrecht, in: FS f. A. Nikisch (1958), S. 227; W. A. Scheuerle, Finale Subsumtionen, AcP 167(1967), 305; M. Kriele, Theorie der Rechtsgewinnung, 2. Aufl. 1976, S. 118 ff.; Müller, Methodik, S. 245 ff. “목욕탕 욕조사건”(RGSt 74, 84)에서 배울 점이 많은데 이에 관하여는 F. Hartung, JZ 1954, 430이 시사하는 바 많다. 즉, 라이히 재판소는 사형판결과 그 집행을 회피하기 위하여 주관적 공범론을 “극단적”으로 제한하여 혼인 외에서 출생한 자녀를 생모의 자매가 익사시킨 행위를 종범으로 “구성하였다”. 근거가 진정한 것인지 외견상의 것인지 구별하는 기준은 내 개인적인 견해로는 주관적 진지성에 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진 외견상 근거”는 “외견상 근거”가 아니라고 본다. 주목할만한 것은 목욕탕 욕조사건에서 하르퉁은 자신이 제안한 판단을 “학문적으로” 옹호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법률과 대전제는 “합리적” 결과를 목표로 한다는 점을 우리가 기본적 진리로 가정한다면, 그렇게 하여 얻은 결과는 대부분 특별한 “위장”이나 “편법” 없이도 정당화될 수 있고, 법률로부터의 추론이나 대전제에 대한 관련만으로 근거가 있을 수 있다. 법관이 어떤 특정한 조건에서 “비합리적” 법률(또는 의심스러운 판결 등)의 적용을 의식적이고 명시적으로 배척할 수 있는가는 별개의 문제이다. 이에 관하여는 제7장 참조.
“이성적”, “정당한”, “만족스러운” 결과의 합리적 근거지움과 함께 이론과 실천의 관계, 판단 형성에 있어 심리학과 논리학의 관계를 중심으로 한 논의는 에써, 크릴레 및 뮐러에 의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에써(Vorverständnis und Methodenwahl in der Rechtsfindung, 1970, 특히 132쪽 이하 및 175쪽)는 이사이를 지지한다. 법관은 어떤 “선(先)이해”를 가지고 사안을 접하는데 그러한 선이해는 일종의 “선판단”에 의하여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또 당사자는 어떤 특정한 기대와 요청을 가지고 재판을 하고있다고 법관은 생각하고, 더욱이 “해석”이 법적으로 가능한 정당한 것에 대한 어떤 특정한 논의와 그런 의미에서 “선평가” 또는 “선판단”에 좌우되는 것을 방임한다고 한다. 적당한 규범을 찾아내거나 규범을 선택하는 문제, 규범을 적용한다거나 적용하지 않는 문제는 그 결과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의도된 것이라고 한다. 한편, “형식”논리학은 – 에써나 크릴레는 이를 크게 생각하지 않는다 – 충분하진 않지만 판단의 “정당성”에 관하여 나름의 필요한 근거는 이를 제공한다(Esser, Vorverständnis, S. 77; 또한 Koch/Rüßmann, S. 27 f.; C. W. Canaris, Systemdenken und Systembegriff in der Jurisprudenz, 2. Aufl. 1983, S. 22 f.; Alexy, Argumentation, S. 280 ff.; Müller, Methodik, S. 76 f. 참조). 그러나 우리 기본법(제20조 제3항) 구조하에서는 – 에써나 크릴레도 이점을 간과하지는 않는다 – 궁극의 문제는 획득되어진 “결과”가 논리적, 방법론적 및 법적으로 지지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이 경우 법관이 사실상 법발견을 어떻게 수행하는지 하는 심리적, 사회학적 문제와 같은 사실적 문제(quaestio facti)는 그때그때 취급된 대로(이사이, 에써, 크릴레 등; 에써에 대한 비판은 Larenz, Methodenlehre S. 210 f. 참조) 내버려두고, 어떤 형식적, 실질적 조건하에서 법발견의 결과가 정당화될 수 있는지 하는 논리적, 인식론적 문제와 같은 이성적 문제(quaestio iuris)를 이와는 엄격히 구별하여야 한다. 법원이 어떤 방법으로 어떤 한계 안에서 효과적으로 대전제의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가 하는 점만으로는 이러한 작업수행의 정당성에 관한 아무런 해답도 되지 못한다. 어떤 방법론적 규칙을 어떤 때는 지키고 어떤 때는 지키지 않았다고 하여 크릴레(S. 25)가 주장한 것처럼 “그 규칙의 효력이 없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또 여러 해석방법론 가운데 우열이 확실하지 않다고 하여(본문 171쪽 이하 참조) 정당한 판단을 목적으로 한 해석방법론의 논의에서 우리가 자유스럽게 되지는 못한다. 법발견에 있어 자명한 것으로 이해된 그런 “심리학”이나 “사회학”에서의 고유법을 물론 무시할 수는 없다; 이것과 그 한계에 관하여서는, Rehbinder, Rechtssoziologie, S. 10 ff.(특히 27), 194 ff. 참조. 심지어 사실적 문제와 이성적 문제 사이에는 일정한 관계가 존재하는데 이점에 관하여서는 논리학(광의의 의미로 “사실논리학”을 포함한다)만이 해답을 제시할 수 있다는 주장이 처음부터 가능한 것으로 분명하다. 이 책의 이하의 서술은 법적 사고의 논리성과 방법론에 입각하고 있다.

81) (이미 설명한 바와 같이) 여기서는 형식논리적 고찰이 관여한다. 크릴레(Kriele)(S. 51)는 “소위 정당한 포섭의 문제란 결코 문제가 아니다…아무리 그럴듯한 사안이라도 삼단논법에 의한 포섭이 이루어지지 않도록 구성될 수 있다…차라리 포섭에 의한 결과추론에 관하여 어떤 방법론이 자세한 설명을 하고있지 않다면 이는 태만이라고 주장해야 할 것이다”라고 하였는바, 이는 엄밀하게는 전체로서 포섭에 의한 결과추론을 언급한 것이지 우리가 여기서 다루는 소전제(즉 “A는 살인자다”)에서의 포섭을 말한 것은 아니다. 전체로서 포섭에 의한 결과추론은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아주 쉽게 구성될 수 있다(이에 관하여는, Engisch, Studien, S. 13). 그러나 판단작용을 수반하는 소전제에서의 포섭에 의한 결과추론은 그렇지 않다(이에 관하여는 Rödig, S. 151이 적절하게 지적하고 있다). 에써(Esser) (Vorverständnis S. 26, 60 f., 65 ff. 등에서) 역시 포섭에 의한 결과추론과 소전제에서의 포섭을 명확하게 구분하지 않는다. 그는 몽테스큐의 법관에 의한 법창조적 기능론(이에 관하여는 본문 232, 277쪽 주 48과 함께 참조)을 포섭“이론”의 문제로 다루었는바(S. 49), 이는 크릴레와 마찬가지로 포섭 그 자체의 문제점을 분명하게 이해한 것이다(S. 45 ff.). 그러나 이 경우 그는 포섭을 순수 논리적이고 쉽게 명백한 결론에 도달할 수 있는 사고과정으로 오해한 것이다. 가치작용을 수반하는 포섭에 있어 이러한 오해는 유감스럽게도 예컨대 뮐러(Müller), Methodik에서조차 “논리적 포섭”(S. 73), “형식논리성을 요구하는 소전제에서의 실증주의적 포섭”(S. 98)이란 용어가 사용됨으로써 다시 한 번 발견될 수 있다. 포섭에 관한 더욱 상세한 설명은 본문 106쪽 이하 참조.
법률적 삼단논법에 있어 소전제의 개념을 다루면서 단순히 사실확정의 문제와 증명의 문제에만 국한한다거나(Esser, Vorverständnis, S. 46; Kriele S. 48; Müller, Methodik, S. 35) 또는 “사실판단”의 문제(그 나름대로는 정말 타당하다. Esser, Vorverständnis, S. 50 참조)에만 한정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일반적으로 “포섭”의 개념을 다룰 때와 마찬가지로 주의를 요하는 부분이다. 이에 관하여 자세한 것은 W. A. Scheruerle, Rechtsanwendung, 1952, S. 38; Engisch, Studien, S. 18 ff.; Larenz, Methodenlehre, S. 278 ff. 참조.

82) 사실과 사실확정의 개념에 관하여 더욱 상세한 것은, Engisch, Studien, S. 37 ff.; Larenz, Methodenlehre, S. 304 ff.; Zippelius, Methodenlehre, S. 83 ff.(je m. w. N.). 덧붙여 E. Döhring, Die Erforschung des Sachverhalts im Prozeß, 1964; J. Hruschka, Die Konstitution des Rechtsfalles, 1965; Rödig, S. 3 ff., 239 ff.; Bydlinski, S. 417 ff.

83) 이에 관하여 대표적으로는, F. Stein, Das private Wissen des Richters, 1893. 또한 Döhring, 특히 S. 256 ff.; Rödig, S. 242 ff.

84) 예컨대, die Peinliche Gerichtsordnung v. 1532, Art. 67.

85) 예컨대, 오늘날에도 남아 있는 ZPO §§ 415 ff.

86) 이에 관하여는, Döhring, S. 9; Larenz, Methodenlehre, S. 306 f. 여기서 중요한 의미가 있는 “형식적 진실”에 관하여는 Rödig, S. 151 ff. 참조.

87) 이에 관하여는 누구보다도, E. Dreher/H. Tröndle, Kommentar zum Strafgesetzbuch, 47. Aufl. 1995, § 243 Rn. 6 m. w. N.

88) P. Bockelmann, Der Diebstahl aus Fahrzeugen, JZ 1951, 296(298).

89) 후자와 같은 포섭을 나는 E. Husserl과 관련하여 “Subordination”이라 부른다(Engisch, Studien, S. 23 f.). 이러한 포섭에서는 Larenz, Methodenlehre, S. 273이 설명한 바와 같이 좀더 좁은 범위의 개념을 (분류기준을 떼어내고) 좀더 넓은 범위의 개념에 포함시키는 것(Unterordnung)의 문제인 것이다. 이에 관하여는 또한, Zippelius, Methodenlehre, S. 90 f. 참조.

90) 예컨대, Sommer, S. 119 f. K. Michaelis, Über das Verhältnis von logischer und praktischer Richtigkeit bei der sogenannten Sunsumtion, FS f. das OLG Celle (1962), S. 117(13)에서 요컨대, “추상적 구성요건과 구체적 포섭판단은 – 하나는 추상적 구성요건이고 다른 하나는 구체적 사안이므로 – 논리적으로 같지가 않고, 구체적 사안이 구성요건의 추상적 규정과 일치하는지가 그 추상적 규정으로부터는 논리상 연역될 수가 없기 때문에” 논리적으로 모순 없이 일치시킬 수는 없다고 한다면, 이도 비슷한 이야기다. 나는 본문 110쪽 이하에서 설명한 내용을 고려한다면 어려움이 생기지 않는다고 믿는다. 그리고 미하엘리스가 생각한 것처럼 이는 구체적인 것을 추상적인 것과 일치시키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것을 구체적인 것과 일치시키는 것이다.

91) Scheuerle, S. 150. 또한 Sax, S. 101 f., 135 f.

92) 이에 관하여 더 자세한 것은, Carnap, Einführung, S. 40, 109 f.; 덧붙여 Heller, S. 69; Engisch, Studien, S. 22 f.

93) 비슷한 견해는 W. Hassemer, Tatbestand und Typus, 1968, S. 17 f.; Arthur Kaufmann, Analogie und “Natur der Sache”, 2. Aufl. 1982, S. 38 ff.에서도 발견될 수 있다. 또한 Esser, Vorverständnis, S. 30에서는, 법률적 규범으로부터 “지금 사안과 비교될 수 있는 일련의 비슷한 적용사례”가 만들어진다고 한다. 이에 반하여, Larenz, Methodenlehre, S. 274에서는 포섭에 관하여 다른 견해를 보이고 있다. 여기서는 포섭이란 “법규의 구성요건에서 거론된 요소가 적용하려는 생활사례에서 실현되었다고 선언하는 것”을 말한다고 한다. 라렌쯔와 마찬가지로 K.-H. Strache(Das Denken in Standards, 1968)과 Zippelius는 본문에서 주어진 포섭의 범위와 관련된(“외연적”) 해석으로부터 내용과 관련된(“내재적”) 해석을 끌어내고 있다. 즉, 포섭이란 “구체적 요소들을 종합한 것”이 “추상적 개념을 정의한 것”과 일치한다는 점을 확정하는 것(Strache, S. 52 Anm. 132), 또는 “법문에 의하여 보편적으로 이해된 경험적 내용(자동차의 경적)과 직접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구체적 사례에서의 경험적 사실(이 자동차의 경적)”이 동일하다는 점을 확정하는 것(Zippelius, Methodenlehre, S. 91)을 말한다고 한다. 내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두 개의 외연적, 내재적 해석이 서로 병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94) 포섭과 해석의 관계에 관하여는, D. Jesch, Unbestimmter Rechtsbegriff und Ermessen in rechtstheoretischer und verfassungsrechtlicher Sicht, AöR 82(1957), 163(186); Engisch, Studien, S. 26 ff. 또한 Scheuerle, AcP 167(1967)에서 다루고 있는 “최종적 포섭”이란 것도 해석의 문제를 포괄하고 있다(“최종적 해석”은 “최종적 포섭”에 유용하다, S. 329 ff.). 여기에 덧붙일 것은 포섭의 부정(예컨대, “밀폐된 자동차는 형법 제243조 제1항 제1호 소정의 ‘밀폐된 공간’이 아니다”)도 해석의 결과를 포함하고 있다는 점이다. Engisch, Studien, S. 28 참조. 해석과 (법)적용의 관계에 관하여 철학적으로 주목할 가치가 있는 것은, H.-G. Gadamer, Wahrheit und Methode, 6. Aufl. 1990, S. 312 ff.

95) 소전제의 요소로서 포섭과 삼단논법으로서 포섭에 의한 결과추론의 구별에 관하여는, 97쪽 주 17 참조. 여기서 여전히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포섭 그 자체의 의의에 관하여서는 다음의 문헌을 비교해볼 수 있다. Scheuerle, S. 148 ff.; Jesch, AöR 82(1957), 178 ff., 188 ff.; H.-E. Henke, Die Tatfrage, 1966, S. 106 ff., 177 ff.; Bydlinski, S. 395 ff.; Larenz, Methodenlehre, S. 273 ff.; Pawlowski, Rn. 124 ff., 379 ff.; Coing, S. 274 ff.; Müller, Methodik, S. 79 ff. 내가 사용하고 있는 포섭의 개념에는 “비합리적 가치평가”에 근거하여 동일시하는 것도 포함되는데, 이와 비교하여 앞에서 거론한 많은 학자들의 경우에는 이보다는 좁은, 합리적 과정에 국한된 포섭개념을 사용하고 있다. 여기서는 물론 소전제 안에서 “법적 판단”이란 또 다른 개념을 통한 보충이 필요하게 된다. 만약 모든 포섭이 가치평가에 의존한다고 본다면, 이와는 정반대의 오류에 빠지게 될 수도 있다. 대부분의 (“기술적”) 개념에 있어서는 포섭을 위하여 가치평가가 필요하지 않고, 단지 경험적 인식만이 필요할 뿐이다(예컨대, “A는 제한시속 50km를 초과하였다).

96) 사실확정과 포섭의 구조상 관련성에 관하여는, Engisch, Studien, S. 82 ff.와 Jesch, Döhring(S. 12 ff.), Henke의 저서들 외에, W. A. Scheuerle, Beiträge zum Problem der Trennung von Tat- und Rechtsfrage, AcP 157(1957), 1 참조. 또한 Larenz, Methodenlehre, S. 307 ff. m. w. N.에서는 “‘행위’의 문제와 ‘법의 문제’의 구별”과 관련하여 문제점을 자세히 살펴보고 있다.

97) “전체적 포섭”에 관하여서는 Scheuerle, S. 152 ff.가 주목할 만 하다. 전체적 포섭은 개별적 포섭에 기초하여 성립한다.

98) 이들에 관하여는, E. Beling, Deutsches Reichsstrafprozeßrecht, 1928, S. 239.

99) Beling, Reichsstrafprozeßrecht, S. 238 f. 민사소송법에서의 입증책임에 관하여는, L. Rosenberg, Die Beweislast, 5. Aufl. 1965, 및 ders./K. H. Schwab/P. Gorrwald, Zivilprozeßrecht, 15. Aufl. 1993, § 117 참조.

100) 형사소송에서 “택일적 확정”의 문제에 관하여는, R. Maurach/H. Zipf, Strafrecht, Allgemeiner Teil, Bd. 1, 8. Aufl. 1992, § 10 Rn. 24 ff. m. w. N.

101) 이에 관하여는, Esser, Vorverständnis, 예컨대 S. 71 ff. 참조. 내가 대전제에서의 작업을 작게 평가하고 있다고 에써(75 ff.)는 생각하고 있는 듯한데, 이는 에써가 지적한 “Logischen Studien zur Gesetzesanwendung”에서 나는 제목이 말하여주는 것처럼 제한된 과제를 설정하였던 것임을 모르는 이야기이다(Engisch. Studien, S. 6 참조: 법적 당위판단을 근거 지우는 문제를 완벽하게 다룰 수는 없다). 이에 반하여 이 책인 법적 사고 입문에서는 내가 “해석”과 “흠결보충”을 수단으로 대전제를 준비하는 것에 대하여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는 지를 보여주고 있다. 물론, 에써가 “분리할 수 없다”고 한 규범적용과 규범해석의 “일체”를 내가 그 요소별로 나누고 있음은 부인하지 않는다.

102) 법률 자체에서뿐만 아니라 그로부터 얻어진 대전제에서조차도 문자로 표현된 것(“문언”, “어의”)과 그 속에 담겨진 “의미”(“사고내용”)를 구분하여야 한다는 점은 – 이에 관하여는 대수롭지 않게 지적되었으므로(예컨대, I, Ebsen, Gesetzesbindung und “Richtigkeit” der Entscheidung, 1974, S. 31 ff.) – 분명하게 기억되어야 할 것이다. 전자는 해석의 대상이고 후자는 해석의 목표이다.

103) 이에 관하여 자세한 것은, K. Engisch, Die Einheit der Rechtsordnung, 1935, S. 26 ff.; ders., Studien, S. 14 f.; Zippelius, Methodenlehre, S. 27 ff. 우리가 얻고자 하는 법규를 선택함에 있어 특히 체계가 중요한 의미를 갖는 문제가 생길 수 있는데 그때에는 문언에 표현되어 있는 것은 (Larenz, Methodenlehre, S. 281 ff.에 의하면) 보충되어져야 한다(또한 Canaris, Systemdenken, S. 86 ff. 참조). 에써(Vorverständnis, u. a. S. 28 f.)는 “적용할 규범(maßgebende Normen)”을 선택하기 위하여 “전체적 사고(Vorüberlegungen)”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를 위하여 에써(S. 68)가 언급하였던 “도로교통에서의 자기부담”이 하나의 좋은 실례를 제공한다고 본다. 여기서 법원은 위 자기부담을 손해배상청구권에 따라 판단해야 할 것인지, 아니면 사무관리의 규정에 따라 판단해야 할 것인지 결정해야한다.

104) 여기서 등장하는 논리적인 범위의 문제에 관하여는, Engisch, Studien, S. 14 f. 참조. 내가 위 책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소개한, 그러나 그렇게 고심하지도 않았고 자세히 분석하지도 않았던, “대전제와 생활사태 사이를 오고 가며 조망”하여야 한다는 주장은 Hruschka, Konstitution, S. 55; Henke, S. 139; Kriele, S. 161; Jescheck/Weigend, S. 153; Alexy, Argumentation, S. 281 f.; Bydlinski, S. 421 ff.; Larenz, Methodenlehre, S. 281 및 기타(찬성을 위하여 보다 정확하게는, A. Maschke, Gerechtigkeit und Methode: Zu Karl Engischs Theorie des juristischen Denkens, 1993, S. 255 ff.) 등으로부터는 우호적 동의를 받았으나, 애써(Vorverständnis, S. 76)는 이를 약간 빈정대고 있다.

105) R. Stammler, Theorie der Rechtwissenschaft, 1911, S. 24 f.

106) 다른 실례로는, Zippelius, Methodenlehre, S. 27 ff., 84 f.

107) 1990. 8. 20. 추가된 민법 제90조a는 동물이 물건이 아니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물건에 대한 조항이 그것에 준용된다. 이러한 준용으로 인하여 실무상 취급에서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다시 말해 민법 제90조a가 신설되었음에도 동물은 예나 지금이나 중요 부분에서 물건처럼 취급된다. 이에 관하여는, Heinrichs, in: Palandt, Kommentar zum Bürgerlichen Gesetzbuch, bearb. P. Bassenge u. a., 55. Aufl. 1996, § 90a m. w. N.

108) 이와 관련된 논쟁에 관하여서는, L. Enneccerus/H. Lehmann, Lehrbuch des Bürgerlichen Rechts, Bd. II, 15. Aufl. 1958, § 225 I 3 참조; 그러나 이제는 K. Larenz/C.-W. Canaris, Lehrebuch des Schuldrechts, Bd. II 2, 13. Aufl. 1994, S. 182.

109) 법에 있어 해석과 이해에 관련된 문헌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지만, 그 중에서도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다루길 바라는 법학자라면 철학적 문헌도 아울러 고려하여야 한다. 상세한 참고문헌은 K. Engisch, Einführung in das juristischen Denken, 8. Aufl. 1983, Anm. 57 (S. 218 ff.) 참조. 또한 Alexy, Argumentation, S. 219 ff., 288 ff.; Bydlinski, S. 428 ff.; Larenz, Methodenlehre, S. 204 ff., 312 ff.; Pawlowski, Rn. 453 ff.; D. Schmalz, Methodenlehre für das juristische Studium, 3. Aufl. 1992, S. 225 ff.; Zippelius, Gerechtigkeit, S. 379 ff., 393 ff.; ders., Methodenlehre, S. 16 ff.; ders., Rechtsphilosophie, §§ 39 f. 등 참조. 최고법원 판결에 있어 해석원칙에 관하여는 159쪽 주 29 참조. “헌법합치적 해석”에 관하여는 176쪽 이하 주 50의 문헌 참조.

110) 이에 관하여는, Heller, S. 67 ff.; E.-W. Hanack, Der Ausgleich divergierender Entscheidungen, 1962, S. 114 ff., 184 ff. 또한 vgl. Hassemer, S. 18 f.; Rödig, S. 180 ff.; Zippelius, Methodenlehre, S. 92 f.

111) 이에 관하여는, Ch. Sigwart, Logik I, 4. Aufl. 1911, S. 50 Ziff. 4.

112) 포섭의 유형포섭(Subordination)과의 관계와 포섭의 해석과의 관계에 관하여는, Engisch, Studien, S. 13 ff., 23 ff.; Jesch, AöR 82(1957), 186 ff.; Hassemer, S. 98 ff.; Rödig, S. 165 ff., 181; Jescheck/Wiegend, S. 152 f.; Pawlowski, Rn. 126 f. 참조. 본문에서 나온, 해석의 내용정의와 범위정의의 구별에 관하여는, Scheuerle(S. 170 ff.)의 analoge Unterscheidung zwischen definitorischer und exemplifikativer Interpretation 참조; 덧붙여 Jesch, AöR 82(1957), 192 Anm. 109; A. Wolffers, Logische Grundformen der juristischen Interpretation, 1971, S. 11 ff.(여기서는 “definierenden” 해석과 ”exemplifizierenden” 해석 외에도 “klassifizierende” 해석이 등장하고 있는데, 내 개인적으로 이는 전자에 속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예컨대 거기에 바로 나와 있는 바대로, ”스위스 인은 단지 남자들 만이다““라고 함은 ”스위스 인은 단지 남자들인 스위스 인들 만이다“와 같은 뜻이다) 참조.

113) 예컨대, Schönke/Schröder, 10. Aufl. 1961, III zu § 267. 최근 문헌으로는 또한 Schönke/Schröder-Cramer(24. Aufl. 1991), II und III zu § 267(ohne methodische Änderungen) 참조.

114) 정신과학의 개념역사와 본질에 관하여는, W. Dilthey, Gesammelte Schriften, Bd. I, 4. Aufl. 1959, Bd. VII, 2. Aufl. 1958; 더 나아가 예컨대, E. Rothacker, Logik und Systematik der Geisteswissenschaften, 1927, S. 6 ff.; H. Freyer, Theorie des objektiven Geistes, 3. Aufl. 1934; Gadamer, u. a. S. 9 ff., 222 ff., 287 ff.; ders., Geisteswissenschaften, in: Die Religion in Geschichte und Gegenwart, Bd. 2, hg. v. K. Galling, 3. Aufl. 1958, S. 1304; U. Diederichsen, Einführung in das wissenschaftliche Denken, 2. Aufl. 1972, S. 17 ff.; A. Diemer, Geisteswissenschaften, in: Historisches Wörterbuch der Philosophie, hg. v. J. Ritter u. a., Bd. 3, 1974, S. 211; J. Ritter, Die Aufgabe der Geisteswissenschaften in der modernen Welt, in: ders., Subjektivität, 1974, S. 105(120 ff.); O. Marquard, Über die Unvermeidlichkeit der Geisteswissenschaften, in: ders., Apologie des Zufälligen, 1987, S. 98. 참조. J. G. Droysen(Grundriß der Historik, 3. Aufl. 1882, §§ 8 ff.)이 특별한 역사적 방법론으로 삼은 이해를 딜타이는 정신과학의 특징으로까지 고양시켰다: 예컨대, Bd. VII, S. 131 참조: “정신과학은 경험, 표현과 이해의 관계에 근거한다”(이와 비슷하게 S. 86 f.); 정신과학의 범위는 이해가 미치는 곳까지이다(vgl. S. 141).
정신과학으로서의 법학에 관하여는, 예컨대 Binder, S. 886 ff.; Th. Viehweg, Zur Geisteswissenschaftlichkeit der Rechtsdisziplin, Studium generale 11(1958), 334; Dreier, Rechtstheorie 2(1971), 37; H. Rottleuthner, Rechtswissenschaft als Sozialwissenschaft, 1973, S. 205 ff., 245 ff.; G. Winkler, Theorie und Methode in der Rechtswissenschaft, 1989, S. 219 ff., 233 ff.; Bydlinski, S. 65 ff., 76 ff.; Coing, u. a. S. 95 ff., 297 f. 참조.

115) R. Lauth, Die Frage nach dem Sinn des Daseins, 1953, S. 32 f. “의미”의 개념에 관하여는 덧붙여 J. E. Heyde, Vom Sinn des Wortes Sinn, in: ders., Wege zur Klarheit, 1960, S. 101; Lampe, S. 42 ff.; Hruschka, Verstehen, S. 27 ff., 42 ff.

116) 이점은 이미 F. Regesberger, Pandekten I, 1893, § 35*에서 주장되었다. 법률적 “해석학”을 고차원으로 승화시키기 위하여 현재 많은 사람이 노력 중에 있다.

117) 1974년 EGStGB에 의하여 개정된 제259조는 다른 관점에서 보면 매우 의미가 있으나 내가 본문에서 다루고 있는 대상장물죄와 관련하여서는 아무 것도 변함이 없다. 특히 “수단으로(durch)”라는 단어는 이전의 “통하여(mittels)”란 단어와 다르지 않다.

118) E. Beling, Begünstigung und Hehlerei, in: K. v. Birkmeyer u. a. (Hg.), Vergleichende Darstellung des deutschen und ausländischen Strafrechts, BT VII, 1907, S. 1(69). 연방대법원도 라이히 재판소를 따르고 있다. 예컨대, BGHSt 9, 137(139) 참조. 또한 W. Stree, Die Ersatzheherei als Auslegungsproblem, JuS 1961, 50; 덧붙여 Lackner, § 259 Rn. 8 m. w. N.

119) 예컨대, F. C. v. Savigny, System des heutigen römischen Rechts I, 1840, S. 213 f.; E. Bierling, Juristische Prinzipienlehre, Bd. IV, 1911, S. 211 f.

120) R. Maurach/F.-Ch. Schröder, Strafrecht, Besonderer Teil, Bd. 1, 6. Aufl. 1977, § 50 I C 3.

121) 예컨대, E. Mezger, Zur Entwicklung der sogenannten Ersatzhehlerei, ZStW 59(1940), 549(570 ff.).

122) 메쯔거는 이점을 특히 중요시한다. 나중에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란 구성요건에 대신하여 “영득할 목적으로”란 구성요건으로 개정되었으나 제259조의 대상장물죄에 관련된 의미에는 변화가 없다.

123) 예컨대, Dreher/Tröndle, § 259 Rn. 1.

124) R. Maurach/F.-Ch. Schröder/M. Maiwald, Strafrecht, Besonderer Teil, Bd. 1, 8. Aufl. 1995, § 39 Rn. 9.

125) W. Gallas, Zur Kritik der Lehre vom Verbrechen als Rechtsgutsverletzung, in: FS f. W. Gleispach(1936), S. 50(59); E. Mezger, Strafrecht, Besonderer Teil, 7. Aufl. 1960, § 51 IV. 이와 달리 오늘날 통설로는, Schönke/Schröder-Stree, § 259 Rn. 1 f. m. w. N.

126) 이에 관하여 개괄적으로는 새로 나온 형법(각칙) 교과서와 주석서 참조, 예컨대 H. Blei, Strafrecht, Besonderer Teil, 12. Aufl. 1983, § 72; Schönke/Schröder-Stree, § 259 Rn. 13 f. 그 외 제259조의 개정이유는 “유지설”을 지지하고 있다는 점이 지적되어야 할 것인데(Blei, § 72 II), 이는 “주관주의적, 목적론적 방법론”을 기초로 하면서 대상장물죄를 취급함에 있어 커다란 의의가 있다(본문 209-215쪽 참조).

127) Savigny, S. 213 f.에서는 해석의 4요소로 문법적, 논리적, 역사적 및 체계적 해석이 언급되어 있다. 비법률적인 고전 문헌 가운데 해석의 여러 종류를 구별한 것에 관하여는, J. Wach, Das Verstehen, 예컨대 Bd. 1, 1926, S. 46(Ast), 74 f.(F. A. Wolf), 109, 119 ff.(Schleiermachers Kritik), 195 ff.(Boeckh), Bd. 3, 1933, S. 172 ff.(Droysen). 법적 해석의 전통적 이론에 관하여 대표적으로는, Enneccerus/Nipperdey I 1, § 56. 보통법 시대에 있어 이미 이와 비슷한, B. Windscheid, Lehrbuch des Pandektenrechts I, 9. Aufl. 1906, § 21. 해석의 여러 종류를 구별하는 것과 관련하여 비판적으로는, A. Keller, Die Kritik, Korektur und Interpretation des Gesetzeswortlautes, 1960, S. 48 f.; Rödig, S. 282 ff.; Kriele, S. 81 ff., 85 ff.; Müller, Methodik, S. 81 ff.

128) 이하 Enneccerus/Nipperdey I 1, § 56에서 인용.

129) 최고법원의 해석원칙에 관하여는 예컨대, Jescheck/Weigend, S. 154 ff.; A. Gern, Die Rangfolge der Auslegungsmethoden von Rechtsnormen, VerwArch 1989, 415(426 ff.); Larenz, Methodenlehre, S. 312 ff., 320 ff.; Schönke/Schröder-Eser, § 1 Rn. 36 ff.; K. Hesse, Grundzüge des Verfassungsrechts, 20. Aufl. 1995, Rn. 53 ff.; Jarass/Pieroth, Einl. Rn. 3 ff.; Müller, Methodik, S. 34 ff.; J. Wessels, Strafrecht, Allgemeiner Teil, 26. Aufl. 1996, Rn. 57; Palandt-Heinrichs, Einl. vor § 1 Rn. 248 ff.; Th. Oppermannm, Europarecht, 1991, § 7 V(m.w.N). 헌법과 유럽공동체법에 부합하는 해석에 관하여는, 아래 176쪽 이하 주 50 참조.

130) K. Zweigert, Juristische Interpretation, Studium generale 7(1954), 380(381).

131) 좀더 심하게 표현하자면, 문언에 의해 명백한 규정은 해석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예컨대 BGH NJW 1951, 922 Nr. 9, NJW 1956, 1553 r.o.; BVerfGE 4, 331(351); Kaufmann, Analogie, S. 5(“해석은 더 이상 명백하지 않은데서 시작된다”); Kriele, S. 91(“의문과 견해의 대립이 있는 데서부터 해석은 시작된다”); Hesse, Rn. 49 등 참조. 라렌쯔(Methodenlehre, S. 204)는 “이해”와 “해석”을 구분하여 후자를 “생각하는” 이해라 하였는바, 이를 반대하는 사람은 없다. “문언이 명백한 때”는 해석의 여지가 없다는 위와 같은 이론에 대하여 비판적으로는, 예컨대 Esser, Grundsatz, S. 179, 253 f.; Enneccerus/Nipperdey I 1, § 5514; H. u. K. Clauss, Zum Begriff “eindeutig”, JZ 1961, 660; Fikentscher III, S. 658 f.; Larenz, Methodenlehre, S. 343 참조.
그러나 위와 같이 문언이 명백한 때는 전혀 해석의 여지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과 명백한 어의에 반하여서는 어떠한 해석론도 용납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예켠대, B. Heusinger, Rechtsfindung und Rechtsfortbildung im Spiegel richterlicher Erfahrung, 1975, S. 94 f.)은 차이가 있다. 후자는 명백한 어의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고 하더라도 논란의 여지가 많다. 이는 법률의 개념이 다양하므로 의문이다. 예컨대 Sax, S. 52 f.; Esser, Vorverständnis, S. 134 f.; Larenz, Methodenlehre, S. 312 f., 343; Zippelius, Methodenlehre, S. 18, 43 f. 등 참조. 숫자나 길이, 무게 등의 표현에서는 그 뜻이 항상 분명하지만 이 경우에도 “이해”되어져야 하고 “해석”되어져야 한다. 본문 174쪽 이하(주 포함) 참조. 우리가 (“어의”란 말 대신) “문언”이란 말을 자주 사용할 때도 이는 표현된 말과 뜻이 다르지 않음을 전제로 한다. 엄밀히 말하자면 문언은 “해석의 대상”이고(Rödig, S. 282), 그것이 전달하고자 하는 “어의”가 해석의 목표이며, “문법”과 “구문”은 해석의 수단인 것이다. “문언”을 말할 때는 항상 “어의”를 생각하는 것이다.

132) 크릴레(S. 83)가 “어의”를 탐구하는데 소위 “문법적 해석”(그는 “입법자가 사용한 법률의 개념을 해석”하는 뜻으로 이를 사용한다) 뿐만 아니라, 체계적 해석과 같은 다른 해석방법이 쓰여진다고 생각한 것처럼, 법률의 개념을 명확히 하기 위하여서는 모든 해석론이 나름대로 유용하고 종합적으로 작용한다고 주장하더라도 이는 지극히 정당하다. 그러나 문법적 해석이란 표현이 정확한 표현은 아닐지라도 이미 관용화되어 있는 마당에서는 이는 (해석을 처음 시작하는 단계에서) 언어로 표현된 (일반적으로 사전적 의미에서) 단어의 뜻과 그 문장의 구조와 관련하여 의미를 탐구하는 그런 유형의 방법론으로 이해된다. “어의”란 대부분 명확하지 않은 것으로 이해된다는 점은 이미 언급하였다. 문법적 해석에 관하여서는 이외에도 Bydlinsky, S. 437 ff.; Larenz, Methodenlehre, S. 320 ff. m. w. N.; Röhl, S. 628 ff.; Zippelius, Methdenlehre, S. 43 ff. 참조.

133) G, W, F. Hegel, Grundlinien der Philosophie des Rechts, Werkausgabe, Bd. VII, hg. v. E. Moldenhauer u. a., 2. Aufl. 1989, § 215.

134) K. Binding, Handbuch des Strafrechts, 1885, S. 463 f. 법적 언어와 일상언어의 차이점에 관하여는, Esser, Vorverständnis, S. 103, 116 f., 135; U. Ladnar/C. v. Plottnitz(Hg.), Fachsprache der Justiz, 1976; R. Wassermann/J. Peterson(Hg.), Recht und Sprache, 1983; J. Eckert/H. Hattenhauer(Hg.), Sprache – Recht – Geschichte, 1991; Larenz, Methodenlehre, S. 320 ff.; U. Neumann, Fachsprache und Umgangssprache, in: G. Grewendorf(Hg.), Rechtskultur als Sprachkultur, 1992, S. 110.

135) R. Müller-Erzbach, Die Relativität der Begriffe und ihre Begrenzung durch den Zweck des Gesetzes, JhJ 61(1913), 343; K. Engisch, Die Relativität der Rechtsbegriffe, in: Dt. Landesrefarate zum 5. Int. Kongreß f. Rechtsvergleichung(1958), S. 59; Esser, Vorverständnis, S. 99 f.; P. K. Ryu/H. Silving, Was bedeutet die sogenannte “Relativität der Rechtsbegriffe”?, ARSP 59(1973), 57 ff., 76 ff.(비판적). 덧붙여 판례와 관련하여서는, BVerfGE 6, 32(37, “합헌적 질서”의 개념에 관하여; 이는 전체적인 합헌적 법질서로서 기본법 제2조 제1항에서 해석되나, 기본법 제9조 제2항에서 헌법의 기본원칙만을 포괄하고 있다; 이에 관하여 B. Pieroth/E. Schlink, Grundrechte, 12. Aufl. 1996, Rn. 420, 815).

136) 체계적 해석에 관하여는, Engisch, Einheit, S. 70 f.(보다 고전 문헌과 함께); Fikentscher III, S. 672 ff.; Canaris, Systemdenken, S. 90 ff.; Bydlinski, S. 442 ff.; Larenz, Methodenlehre, S. 324 ff.; Röhl, S. 642 ff.; Zippelius, Methodenlehre, S. 48 ff. m. w. N.; Müller, Methodik, S. 208 ff. 세분화된 여러 문헌을 보게되면, “체계적” 방법론의 두드러진 다양성(법전의 중요성, 법규의 외형적 지위, 법질서의 구성요소의 내적 관계, 규제대상인 사물과 생활관계의 의미, 일반 법원칙의 관철)이 분명해진다.

137) 이에 관하여, Keller, S. 117 ff.; O. A. Germann, Probleme und Methode der Rechtfindung, 2. Aufl. 1967, S. 80 ff.; Fikentscher III, S. 279 f., 676 ff.; Bydlinski, S. 453 ff.; Larenz, Methodenlehre, S. 328 ff., 333 ff. m. w. N.; Röhl, S. 633 ff.; Zippelius, Methodenlehre, S. 19 ff., 46 ff. 연혁적으로 흥미를 끄는 것으로는, J. Edelmann, Die Entwichklung der Interessenjurisprudenz, 1967, S. 15 ff. 이하의 서술과 관련하여서는, G. Warda, Dogmatische Grundlagen des richterlichen Ermessens im Strafrecht, 1962, S. 111 ff.

138) 이와 관련하여 우리 헌법의 기본권이 기초하고 있는 이념을 지적할 수도 있다. 당대의 기본권론(기본권은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것인가, 아니면 국가가 가지고 있는 객관적 가치인가?)과 헌법해석의 상관성에 관하여는, E.-W. Böckenförde, Grundrechtstheorie und Grundrechtsinterpretation, NJW 1974, 1529.

139) R. Müller-Erzbach, Die Rechtswissenschaft im Umbau, 1950. 비판적으로는, Keller, S. 128; 그보다는 입법의 정치적, 원리적 사고를 언급하는 것이 우선이다.

140) 예컨대 Müller, Methodik, 특히 S. 204 ff.에서 제안하고 있는, “발생학적” 해석과 본래의 “역사적” 해석과의 구별이 주목할 만하다: 법률규범의 “성립사”와 “자료”에 근거하여 하는 해석이 “발생학적”인 것이고, “당해 조문이 과거에는 어떻게 규율되었는가?”의 해답을 찾기 위한 것으로서 “규범의 변천사”에 근거한 해석이 본래 의미에서 “역사적”인 것이다. 그 외 역사적 해석에 관하여는 예컨대, Bydlinski, S. 449 ff.; Larenz, Methodenlehre, S. 328 ff.; Röhl, S. 632 f.; Zippelius, Methodenlehre, S. 18 ff., 46 f.

141) 이에 관하여는, 대상장물죄의 예와 Keller, S. 136 ff. 참조.

142) Windscheid, § 21.

143) Zweigert, Studium generale 7(1954), S. 385. 나아가 “우열관계” 및 (해석요소를 차이가 없는 전체로 융합시키자는) “방법론의 통합주의” 또는 (그때그때의 필요에 따라 이 방법 또는 저 방법을 사용하자는) “방법론의 다원주의”에 대한 비판에 관하여는, Sax, S. 69 ff.; W. Siebert, Die Methode der Gesetzesauslegung, 1958, S. 10 ff. 37 ff.; Esser, Vorverständnis, S. 121 ff.; Kriele, S. 85 ff.; J. Rahlf, Die Rangfolge der klassischen juristischen Interpretationsmittel in der strafrechtswissenschaftlichen Auslegungslehre, in: U. Neumann u. a. (Hg.), Juristische Dogmatik und Wissenschaftstheorie, 1976, S. 14; Gern, VerwArch 1989, 415 m. w. N.; Alexy, Argumentation, S. 303 ff.; Bydlinski, S. 553 ff.; Larenz, Methodenlehre, S. 343 ff. m. w. N.; Schönke/Schröder-Eser, § 1 Rn. 54; Coing, S. 247 ff.; Müller, Rechtslehre, S. 44 ff.; ders., Methodik, S. 38 ff., 247 ff.; Zippelius, Methodenlehre, S. 55 ff. 또한 아래 210쪽 이하 주 47 참조.

144) Savigny, S. 215.

145) Scheuerle, S. 167; 마찬가지로 Sax, S. 56; W. Ecker, Gesetzesauslegung vom Ergebnis herm JZ 1967, 265(271: “가능한 결과와 부차적, 부수적 현상에 대하여 생각한다는 것은 배운 대로 법률을 해석함에 있어 매우 불가피한 요소이다”); Esser, Vorverständnis, S. 122 f.

146) 이점은 연방헌법재판소가 “헌법에 합치하는 해석”과 관련하여 아주 정밀하게 강조하고 있는 부분이다(이에 관하여는 176쪽 이하 주 50 참조). 대표적으로 BVerfGE 8, 28 참조; 여기서는 “법관은 어의와 의미 상 분명한 법률에 대하여는 ‘헌법에 합치하는’ 해석에 의하지 아니하고 반대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허용된다”는 사상이 선언되어져 있다. 덧붙여 BVerfGE 38, 41(49) 참조: 헌법에 합치하는 해석은 “법률의 문언이 명백한 때에는 금지된다.” 헌법재판소와 “헌법에 합치하는 해석”에 근거하는 다른 법원이 이러한 또는 다른 기준이 되는 한계를 항상 존중하였는지는 의문이다. R. Zippelius, Verfassungskonforme Auslegung von Gesetzen, in: FS f. das BVerfG, Bd. II (1976), S. 108(116)은, BVerfGE 35, 263(278 f.)에서는 “법관이 규범의 문언을 꼭 지켜야 할 필요는 없다”는 점이 “아무 주저 없이” 선언되어져 있다고 지적한다.

147) 이에 관하여 제시된 크릴레(S. 223)의 명제: “‘가능한 어의’의 한계기준은… 너무 애매하고.. 너무 조작이 수월하여 실무상으로는 아무런 의의가 없다”라는 주장은 지나친 것이다. 예컨대, “부인”이 남자이고(형법 제218조), “남자”가 부인이란(구 형법 제175조) 것인가?

148) (“해석론”과 해석의 한계로서 “가능한 어의”) 이해를 위하여, Mennicken, S. 14 f.; Ebsen, S. 44 ff.; U. Neumann, Der “möglicher Wortsinn” als Auslegungsgrenze in der Rechtsprechung der Strafsenate des BGH, in; ders. u. a. (Hg.), Juristische Dogmatik und Wissenschaftstheorie, 1976, S. 42(m.w.N.); Larenz, Methodenlehre, S. 322 f., 343 ff.; Zippelius, Methodenlehre, S. 43 f.; Müller, Methodik, S. 183 ff., 257 f. 필립 헥(Gesetzesauslegung und Interessenjurisprudenz, 1914, S. 33)의 “해석명제의 한계는 ‘가능한 문언’이다”라는 유명한 공식은 위에서 언급된 견해를 올바르게 표현할 뿐이고 헥의 본래의 이론과는 모순한다(이에 관하여 209쪽 이하, 239쪽 이하 참조). 또한, 아래 210쪽 이하 주 47, 333쪽 이하 주 47 참조.

149) 이에 관하여는, Keller, S. 134 f., 143 ff.; Germann, S. 104 ff.; Heusinger, S. 94 ff.(판례에 관한 광범위한 주석과 함께); C.-W. Canaris, Die Feststellung von Lücken im Gesetz, 2. Aufl. 1983, S. 189 ff.(주의를 환기하면서); W. Löwer, Cessante ratione legis cessat ipsa lex, 1989. 그 외 아래 395쪽 주 130 참조. 실무에 있어서는 당시 법적 상황을 설명하는 새로운 입법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방법론상으로 중요한 의의가 있는 “Tonbandurteil”(BGHZ 17, 266(275 f.) 참조. 이 판결은 “법이 의미를 상실하면…”의 원칙에 입각하여 “법률의 의미와 목적에 따라” “자구상으로 명백한 문언”에 반하여 해석에 우위를 인정하고 있다. “Fotokopieurteil”(BGHZ 18, 44(49))도 마찬가지. 위 판결에 찬성하는 견해로는, Canaris, Lücken, S. 190 ff. 문언에 반하는 해석에 관하여 비판적으로 대표적인 것은, Larenz, Methodenlehre, S. 322 f., 343 ff.(다른 한편 S. 366 f., 397 ff.).

150) 이미 본문 173쪽 이하(주 46 포함)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연방헌법재판소는 매번 –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 헌법에 합치하는 해석이란 다의적인 뜻을 가진 문언을 해석함에 있어서는 헌법과 헌법원리에 가장 부합하는 의미로 해석되어야 한다는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Larenz, Methodenlehre, S. 339 f. 참조). 이러한 성격의 해석방법은 아마도 법질서 단일성의 원칙이나 이와 관련 있는 “체계적 해석”의 적용사례로서 가장 잘 이해될 수 있고 또 정당화될 수 있다. 이는 실정법률이 헌법과 합치하는지 심사하는 문제에 부닥쳐서는 절대적이진 않지만 실무상 자못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 우리의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은 어느 특정한 문제와 관련하여 구체적 과정을 전개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방법론상의 관점일 뿐이다. 이런 의미에서 헌법 합치적해석이 어느 법규범(법률, 법규명령, 조약, 개정불가능한 헌법규범과 충돌하는 새로운 헌법규범)에 관한 것이든 헌법에 의하여 “정당한” 해석의 기준이 제시되는 한 이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이 경우 헌법 그 자체도 일정한 해석이 필요함은 물론이다. Zippelius, in: FS BVerfg(1976), S. 112 참조.
방법론적으로는, 연방헌법재판소가 그 판결에서 보여온 바와 같이 위헌의 소지가 있는 법률을 무효로 선언하지 않거나 이를 제한하기 위하여 헌법합치적 해석을 도입해온 경향으로 인하여 위헌적 법률의 제한 또는 확장해석이나 심지어 흠결보충의 결과에 이르게 되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경우에 따라서는 여러 가능한 범위에서 어느 하나를 선택하는 것을 넘어서기도 한다). 찌펠리우스(Zippelius, in: FS BVerfG(1976), S. 122)는 빈민구호법을 민사소송법를 넘어서 형사소송의 소송강제절차로까지 확장하는 것을 흠결보충(더 이상 헌법합치적 해석이 아니다)으로 보았다. BVerfGE 2, 336(340 f.) 참조. 내 생각으로는 소위 논란이 많은 “Abhörurteil”(BVerfGE 30, 1)은 제한적 해석의 범주에 속한다고 본다. (사생활의 영역과 관련하여) 기본법 제10조 제2항을 사후에 보충하는 것은 그러한 보충이 “의미구조”, 다시 말해 체계적 해석의 관점에서 보아 기본법의 여러 기본원칙들과 상충하지만 않는다면, 기본법 제79조 제3항(기본법 개정의 불허용성)에 위배되지 않는다 할 것이다(비판적으로는 그 판결의 소수의견 및 P. Häberle, JZ 1971, 145). 이에 반하여 연방헌법재판소 판결(BVerfGE 33, 23)에서는 기본법 제4조로부터 종교상의 이유를 근거로 한 선서거부권을 이끌어내고 있는데, 이는 형사소송법 제70조(실정법적 근거조문)를 “헌법합치적”으로 해석한 결과이다. 그러나 위 법률조항이 “다의적 문언”을 내포하고 있는지 논의해보지도 않고 헌법합치적으로 위와 같은 확장해석이 가능한지는 의문이다. 또한 BGHSt 19, 325(330) 참조.
헌법합치적 해석에 관한 논저로는, H. Bogs, Die verfassungskonforme Auslegung von Gesetzen, 1966; H. Spanner, Die verfassungskonforme Auslegung in der Rechtsprechung des Bundesverfassungsgerichts, AöR 91(1966), 503; K. A. Bettermann, Die verfassungskonforme Auslegung, 1986; O. Depenheuer, Der Wortlaut 민 Grenze, 1988; Larenz, Methodenlehre, S. 339 ff.; Ch. Starck, Die Verfassungsauslegung, in: Handbuch des Staatsrechts der Bundesrepublik Deutschland, Bd. VII, hg. v. J. Isensee/P. Kirchhof, 1992, § 164(Rn. 31 f.); Maunz/Zippelius, § 7 I; Zippelius, Gerechtigkeit, S. 425 ff. m. w. N.; Hesse, Rn. 79 ff.; H. Maurer, Allgemeines Verwaltungsrecht, 10. Aufl. 1995, § 8 Rn. 11 f.; Pieroth/Schlink, Rn. 87 ff., 656 f.
헌법합치적 해석의 원리는 또한 두 가지 측면에서 EU법에 적용될 수 있다. 하나는, EU법 안에서 우선법률(예컨대 EU헌법과 같은 법률; 이에 관하여는 Bleckmann, Rn. 243 ff. 참조)과 2차법률(예컨대 규정, 기준, 판결 등) 사이의 관계에서 위 “헌법합치적 해석”의 의미가 적용될 수 있다(Bleckmann, Rn. 265, Oppermann, Rn. 585 참조). 다른 하나는, EU조약 제5조에 있는 바와 같이 EU법 우선의 관점에서 자국법을 “EU법에 부합되게” 해석하는 문제이다(Bleckmann, Rn. 381 ff.(390); Zuleg, in: H. v.d. Groeben/J. Thiesing/C.-D. Ehlermann, Kommentar zum EWG-Vertrag, 2. Aufl. 1991, Art. 5 Rn. 7; R. Geiger, Grundgesetz und Völkerrecht, 2. Aufl. 1994, S. 239; H.-G. Suelmann, Die Horizontalwirkung des Art. 3 II GG, 1994, S. 122 ff. m. w. N. 참조).
더욱이 독일법은 “가능한 한” 독일의 국제법적 의무가 침해되지 않도록 해석되어져야 한다는 의미에서 “국제법에 합치하는 해석”에 관하여서는, R. Geiger, S. 190 f.; P. Mankowsky, Preisangaben in ausändischer Währung und deutscher Werbenmarkt, GRUR 1995, 539(548 m. w. N. 참조).

151) 간략하게 이를 설명한다면(상세는 아래 210쪽 이하 참조, 특히 주 47), (과거 통설이있던) 다음 장에서 다루게 될 주관주의 해석론(입법자의 의사가 법률로 표현된 한에 있어서는 그 입법자의 진정한 의사를 해석해야 한다는 입장)의 관점에서 본다면, 문법적 해석은 해석의 가능한 범위를 제시할 뿐이고, 기타 다른 해석을 동원하여 입법자의 현실적 의사가 탐구되도록 관련된 해석방법을 활용하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필립 헥이 제시한 방법론(오늘날 더 이상은 타당하지 않다; Esser, Vorverständnis, S. 129 f. 참조)은 하나의 분명한 개념을 보여준다. 그 영향을 받아 연방대법원(BGHZ 49, 221(223))은 “입법자의 객관적 의사를 파악하기 위하여서는 법규의 문언과 그 체계 및 법률 자료와 연역사 등 여러 방법론을 종합, 보충하여 그 해석을 하여야 한다”고 판시하였다. 어느 정도는 – 법적 인식능력이 허용될 수만 있다면 가능한 한 최대한으로 – 해석방법론의 우열에 관하여 유용하고 신뢰할 만한 이론을 찾아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러나 일반보편적으로 타당한 해답을 찾을 수는 없고 찾았더라도 일시적인 해결책에 불과할 것이다(Sax, S. 75 f. 및 다음 장 참조). 그렇다고 하여 이를 해결할 수 없는 것으로 포기한다면 법률문제에 대하여 신뢰할 만한 해답은 없게 된다. 이렇다 할 해결책이 제시되지 않은 법적 문제에 있어 자연법이나 정의, 이성법에 바로 직접 의존하는 것은 지나치게 가치(정당관, 세계관)상대주의에 노출되어 궁극적으로는 자신이 지지하는 입장만을 찾아내어 이를 고수함으로써 판결의 결단주의(Dezisionismus)에 흐를 위험이 있다. 법률이 법원과 행정당국을 기속하는 것임을 인정한다면, 우리는 가능한 한 마지막까지 법을 창조하는 행위와 같은 그런 방법론은 지양하여야 한다. 물론, 법창조적 방법론에 있어 정의, 합목적성, 법적안정성 등과 같은 관점이 고려될 수 있다는 점은 이미 여러 곳에서 소개된 문헌 속에 언급되어 있다. 나름대로 강조하는 바는 다르지만, 내 생각으로는 전통적 방법론의 가치평가와 관련하여 지지하긴 하지만 그다지 옹호하지는 않는 에써나 크릴레의 입장도 나와는 그렇게 대립되어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이들은 사법의 법률에의 기속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전문가를 위하여서는 또한 Larenz, Methodenlehre, S. 138 ff., 147 ff.; Zippelius, Methodenlehre, S. 76 f. 참조.

152) 이에 관하여는, Th. Mayer-Maly, Auslegen und Verstehen, (österr.) Juristische Blätter 1969, 413.

153) G. Simmel, Probleme der Geschichtsphilosophie, 5. Aufl. 1923, S. 37 f,; M. Weber, Wirtschaft und Gesellschaft, 5. Aufl. 1976, S. 3 f.

154) K. Jaspers, Allgemeine Psychopathologie, 5. Aufl. 1948, S. 253, 256.

155) Rothacker, S. 121 ff., 128; O. F. Bollnow, Die Methode der Geisteswissenschaften, 1950, S. 37 ff.

156) Jaspers, S. 256 f.

157) Bollnow, Methode, S. 37.

158) W. Dilthey, Gesammelte Schriften, Bd. V, 2. Aufl. 1957, S. 319 f.

159) A. Boeckh, Enzyklopädie und Methodologie der philologischen Wissenschaften, 1877, S. 10.

160) Dilthey, Bd. VII, S. 148.

161) G. Radbruch, Rechtsphilosophie, 8. Aufl. 1973, S. 206, 211.

162) I. Kant, Kritik der reinen Vernuft, Werkausgabe, Bd. III-IV, hg. v. W. Weischedel, 10. Aufl. 1988, S. 322(A 314). 또한 O. F. Bollnow, Das Verstehen, 1949, S. 7 ff.

163) W. Shakespeare, Der Sturm, übers. u. hg. v. G. Stratmann, 1982, Akt 2, Szene 1, Vers 19 ff.

164) J. W. v. Goethe, Zahme Xenien II, in: ders., Werke, Festausgabe, Bd. 2, hg. v. R. Petsch, 1926, S. 204(Vers 428 f.).

165) A. Gide, Paludes, übers. v. M. Schäfer-Rümelin, 1946, S. 7.

166) T. S. Eliot, Vergil und die christliche Welt, Merkur 8(1945), 617(619). 덧붙여 H. Wagner, Interpretation in Literatur- und Rechtswissenschaft, AcP 165(1965), 520(544 Anm. 75); Radbruch, Rechtsphilosophie, S. 210 Anm. 1. 이런 유형의 다른 표현으로, F. v. Schlegel은 “모든 훌륭한 작품은 …그것이 담고 있는 것 이상을 알고 있고, 그것이 알고 있는 것 이상을 원하고 있다”(Über Goethes Meister, in: ders., Kritische Schriften, hg. v. W. Rasch, 2. Aufl. 1964, S. 452(466)); 노발리스(Novalis)는 “진정한 독자는 넓은 의미의 작가이다”라고 말했다(Fragmente, hg. v. E. Kamnitzer, 1929, Fragment “Der wahre Leser”, S. 645).

167) Radbruch, Rechtsphilosophie, S. 212.

168) Wortlaut in: Quellen zur neueren Geschichte 27-29, hg. v. Historischen Seminar der Universität Bern, Bern 1959, S. 16. 이에 관하여는 J. Dittrich, Bismarck, Frankreich und die spanische Thronkandidatur der Hohenzollern, 1962, S. 278 ff. 또 다른 역사적 실례로는 루터(Luther)의 종교교리에 관한 의견서(Thesenanschlag)가 이를 제공한다; 위 문서의 “이해”에 관하여는 K.-G. Faber, Theorie der Geschichtswissenschaft, 5. Aufl. 1982, S. 128 ff.

169) “자료”에 대한 법이론가와 법사학자의 입장의 차이에 관하여는, F. Wieacker, Notizen zur rechtshistorischen Hermeneutik, 1963; E. Betti, Die Problematik der Auslegung in der Rechtswissenschaft, in: FS f. K. Engisch(1969), S. 205(207 f., 214 ff.).

170) 이것과 법철학적 근거 및 약간의 제한에 관하여는, Larenz, Methodenlehre, S. 28 ff. 한편, 라렌쯔(S. 16)는 사비그니를 주관주의자에 속하지 않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본문에 인용한 구절은 주관주의적 해석에 가깝다. 이러한 견해의 차이는 아마도 Kriele(S. 68 ff.)가 사비그니를 다루면서 개별법규를 해석하는 것과 전체로서 법원을 해석하는 것을 만족스럽지 못하게 구분하고 있는데 그 원인이 있다고 생각한다(전자는 주관주의적인 것이다).

171) 비어링의 주관주의의 심리학적 근거에 관하여는, Larenz, Methodenlehre, S. 39 ff.

172) E. Beling, Vom Positivismus zum Naturrecht und züruck, in: FS f. Ph. Heck u. a. (1931), S. 1(12).

173) R. Stammler, Lehrbuch der Rechtsphilosophie, 3. Aulf. 1928, § 129.

174) H. Naviasky, Allgemeine Rechtslehre, 2. Aufl. 1948, S. 126 ff. “주관적” 방법론에 관하여는, Keller, 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