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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장집칼럼]민주주의의 제도적 실천과 토크빌

[최장집칼럼]민주주의의 제도적 실천과 토크빌
최장집 | 고려대 명예교수·경향시민대학장

지난달 도쿄대 한국연구센터와 언론학부가 공동 주최한 국제학술대회에서 필자는, 독일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대표적인 2세대 학자인 크라우스 오페 교수와 더불어 기조 발표를 했다. 그는 세계적인 정치사회학자이자 민주주의 이론가이다. 덕분에 우리는 현대 민주주의가 직면하고 있는 상황과 문제들에 대해 토론할 수 있었다. 오페가 독일을 포함하는 선진민주주의 국가들의 경험을 토대로 말했던 것에 비해, 필자는 신생민주주의 국가로서 한국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말했다. 핵심은 필자가 ‘시민운동적 민주주의관’이라고 불렀던, 뉴미디어의 효능을 앞세운 운동 중심의 민주주의관과 그것이 가져온 정치적 결과에 대해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것이었다. 서로 다른 시각에도 불구하고 흥미로웠던 것은, 우리 모두 ‘19세기의 가장 위대한 정치이론가’로 평가되는 알렉스 드 토크빌을 이론적 배경으로 삼았다는 사실이다.

오페의 주제는 현대의 민주주의가 기능하는 방식을 비판적으로 진단하면서 그에 대한 제도적 대안을 모색하는 것이었다. 민주주의가 만들어내는 결과물에 대한 실망 내지는 불만이 정치 불신과 냉소, 무관심 같은 반정치주의적 태도를 광범하게 불러오는 원천이 된다 할 때, 우리가 해야 할 과업은 ‘불만스러운 민주주의’와 그에 따른 탈정치화에 대한 민주적 투쟁일 것이다. 

그렇다면 정치에서 이탈한 시민들을 어떻게 다시 정치영역으로 불러들여 적극적 참여자가 되게 할 수 있을까. 오페가 토크빌의 이론을 끌어들였던 것은 이 대목에서였다. 즉 어떤 조건이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하는 계몽적인 시민, 즉 ‘이념형적 민주시민’의 형성을 가능케 하는가의 문제 때문이었다. 그가 사용한 토크빌의 텍스트는 <미국에서의 민주주의>였다. 토크빌의 요점은 이런 것이다. 미국사회가 민주주의의 원리인 평등의 조건을 실현했을 때 시민들은 평등이 가져온 평범함을 공유하고 다수의 지배를 원리로 하는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게 되었지만, 동시에 그것은 ‘다수의 전제정’으로 퇴행할 수 있고, 시민들의 자유가 상실될 위험에 처하도록 했다. 그러나 자유를 실현코자 하는 시민들은 ‘자율적 결사체의 예술’을 통해 중앙집중화된 국가권력에 의존하지 않는 자치 정부를 형성하고 민주주의를 실현했다. 토크빌이 볼 때 그 핵심은, 민주주의에 대한 깨우침 내지는 풍습을 가능하게 하는 시민의 덕(德)에 있었다. 여기에서 오페는 토크빌의 아이디어를 빌려 민주적 참여의 습관을 만들어낼 수 있는 제도적 메커니즘을 발견하려 했다. 이 경우 공화주의적 전통에 따른 시민적 덕에 의존한다면, 시민에게 지나치게 도덕적 부담을 요구한다는 문제가 있기 때문에, 시민의 참여의식을 불러일으키고 시민을 계몽적이게 할 수 있는 제도들을 그 자리에 대체한다는 발상이다. 오페는, 선거를 중심으로 한 정치참여만을 통해서는 시민들이 스스로 의제를 설정하고 참여의 효능감을 가질 수도 없을 뿐 아니라 정책결정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도 없는 기존의 제도적 문제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불만이 비롯되었다고 보았다. 그렇기에 그에 대응하여 시민성을 확대하고, 정치적 행위의 ‘가능의 공간’을 여는 여러 형태의 제도개혁이 필요했다. 통치엘리트에 대한 책임(성)의 강화와 시민의 의사와 선호 표출이 가능한 다양한 형태의 정치참여 내지 정치과정에서의 시민참여가 확대·개방되어야 하는데, 그 가운데서도 ‘심의민주주의’(deliberative democracy)를 위한 제도의 도입을 강조했다. 왜냐하면 시민들이 정당이나 정치인들에 의해 던져진 이슈들을 놓고 선거에서 찬반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신념과 선호를 형성하는 최초 단계에서부터 이니셔티브를 시민들이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시민들이 선호를 형성하는 과정에 참여하고 그것을 통해 스스로 계몽된 시민이 되는 것을 가능케 하는 제도를 말하는 것이다.

반면 한국을 사례로 말하는 필자로서는, 민주주의 발전을 저해 또는 위험에 빠트리는 상황을 진단하는 것 자체부터 오페와 달랐다. 우리의 경우는 민주주의에 대한 실망과 그로 인한 정치적 무관심 내지 정치참여로부터의 철회가 중심 문제가 아니다. 토크빌이 나쁜 사례로 삼았던 당시의 프랑스와 마찬가지로, 중앙집중화된 국가권력과 허약한 자율적 결사체가 만들어낸 원자화된 개인이 마주 대하고 있는 상황, 즉 이 양자 간의 힘의 극심한 불균형 상태와 그것이 빚어내는 문제들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즉, 강한 국가-허약한 시민사회 관계가 민주주의 발전에 미치는 부정적 효과를 말한다. 따라서 처방도 다를 수밖에 없다. 우리에게 긴요한 것은, 국가-시민사회 간의 비대칭적 힘의 관계를 더 균형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어떻게 시민사회를 강화하느냐, 어떻게 자율적 결사체를 강화하느냐 하는 문제이다. 그렇기에 시민의 힘과 선호를 최대한 축약, 단순화해서 힘을 결집하고 조직할 수 있는 메커니즘이자 변화의 주체로서 좋은 정당을 만들고 강화하는 일이 중요하다. 오페의 문제의식이 시민참여의 확대와 그 효능에 두어진 사회학적 접근에 가까운 것이라고 할 때, 필자의 경우는 시민의 신념과 의사를 효과적으로 조직해서 정치적 동력을 창출하고 의미있는 결과를 만드는 것을 중시하는 정치적 접근에 가까웠다. 그러므로 토크빌의 텍스트 가운데 <미국에서의 민주주의> 못지않게 <구체제와 프랑스 혁명>을 강조했다. 여기에서 핵심 아이디어는, 민주화의 효과를 두 수준으로 나누어보는 것이다. 하나는 국가권력의 구조변화를 중심으로 한 통치체제의 변화이고, 다른 하나는 관습과 태도, 가치, 권위의 위계구조와 같은 사회의 변화이다. 이를 통해 토크빌은 혁명이 가져온 격변적 정치변화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과도한 성장과 짝을 이루는 권력의 중앙집중화가 변화되지 않았음에 주목했다. 혁명 이후 권력구조는 구체제와 높은 연속성을 유지할 뿐 아니라, 대중 참여를 통해 정책과 법이 결정되는 민주적 성격 자체가 권력의 중앙집중화와 국가관료체제를 더 비대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필자는 프랑스혁명을 전후로 한 시기 프랑스국가에 대한 토크빌의 분석과 한국의 민주화를 전후로 한 시기 국가권력의 구조변화에서 높은 유사성을 발견하게 된다. 민주화 이후 한국의 국가와 경제영역에서 재벌의 독점적 지위는, 각각 더 강력해졌다. 시민사회는 운동의 정치화에도 불구하고 또는 그 결과로 더 허약해졌다. 이 과정에서 결사체로서의 노동의 시민권이 배제되었다는 것은 특기할 만하다. 그것은 시민사회의 중추적 조직 기반이라 할 자율적 결사체의 허약함을 표징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국가의 권력구조를 그대로 둔 채 국가 밖에서 시민운동과 뉴미디어를 앞세우는 것만으로는 사회양극화와 노동소외를 개선하는 데 있어 이렇다 할 긍정적 결과를 가져오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민주주의가 부여하는 모든 제도적 가능성을 소진시키면서 사민주의적 복지국가 체제를 완성시킨 유럽에서는, 기존 민주주의의 제도적 경계를 확대하지 않고서는 시민적 참여의 동인을 끌어낼 수 없다. 그와는 달리 신생민주주의 국가인 한국적 조건에서는, 민주주의가 부여하는 제도적 자원들이 ‘제대로 활용되지 못한 문제’(underutilization)가 정치발전을 저해하는 더 핵심적인 요인이다. 시민참여의 열정과 에너지는 운동 형태로 또는 포퓰리즘 형태로 나타나고 있지만, 시민의 의사와 신념, 열정, 에너지들은 분산되고, 간헐적으로 표출될 수 있을 뿐이다. 이렇게 분산된 힘들은 압도적인 정치적 자원과 권력을 갖는 국가의 통제력 안으로, 또는 대기업의 경제적 자원의 수혜 범위 안으로 분자적으로 흡수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환경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뭇 전통적인 민주주의 제도로서 정당을 발전시키고, 국가-시민사회 사이의 관계를 좀 더 대칭적이 되도록 하는 조건을 형성하는 데 있다. 결국 우리는 이중의 과제를 안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한편으로는 민주주의의 전통적인 제도로서 정당의 역할을 강화시켜야 하고, 동시에 현재 서구민주주의 국가에서 탐색되고 있는 시민참여의 새로운 제도 확대를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오페와 필자 사이에 문제를 보는 관점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도달한 결론은 이 지점이었다.

동네미디어 vs 개인민주주의

동네미디어 vs 개인민주주의
http://m.hani.co.kr/arti/opinion/column/573569.html

http://m.hani.co.kr/arti/culture/book/573621.html

시민사회를 재건할수있을까?

개별적 인간행위의 중요성 – 환경 시스템 방관태도.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 심리학 거장 짐바도 폐막강연http://m.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73573.html

결국 시민이 근대적 영토의 개념이라면 현대는 개인의 이기심에 기반하는 선을 모색해야하지 않을까
투표법률화 95% 호주 등
인센티브제 규제와 촉진 환경의 조성 스스템 문화향상

다운사이징 데모크라시, 매튜 A 크렌슨, 벤저민 긴스버그

다운사이징 데모크라시…

매튜 A 크렌슨, 벤저민 긴스버그 지음·서복경 옮김 |후마니타스 | 524쪽 | 2만3000원

“일상적인 생활을 유지하고, 무엇보다 쇼핑을 하십시오.” 9·11 테러 직후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이렇게 호소했다. 정부가 시민들에게 “필요없으니 경제나 부양하면서 방해하지 않고 얌전히 있으라”고 말한 셈이다.

아마 100년 전이었다면 사뭇 다른 풍경이 펼쳐졌을 테다. 대통령이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할 정도로 급박했다면 “젊은이들은 모병소로, 여성들은 군수공장으로 와 달라”고 호소했을지 모른다. 정당과 정치엘리트들은 권력을 잡기 위해 평범한 시민들에게 입법과 정책과 예산의 보상을 약속하며 지지를 호소하고 다양한 정치활동에 참여를 이끌어내는 ‘정치동원’을 중요시했다. 이른바 ‘대중민주주의’다.

우리 시대의 정부는 더 이상 시민들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오늘날 서구 국가들은 “평범한 시민들의 참여 없이도 군대를 모으고 세금을 걷고 정책을 집행하는 방법”을 발견했다. 정치엘리트들은 유권자 대중을 주변화했고, 점차 법원과 관료들에 의존해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고 있다. 저자들은 이런 경향을 대중민주주의와 구분해 ‘개인민주주의’라고 부른다. ‘개인’이란 말이 암시하듯 대중은 ‘사적 시민들의 집합’으로 해체됐다. 민주주의에 대한 경험은 ‘집단적인 것’이라기보다 ‘개인적인 것’이 돼 가고 있다. 워싱턴 정가에서 미국인들은 이제 ‘시민’이라기보다 ‘고객’이라고 불린다. 과거 시민들은 정부를 ‘소유’했으나 이제 정부로부터 ‘서비스’를 받는 존재일 뿐이다.

19세기 미국은 백인 남성 보통선거권을 최초로 도입했으며 대통령 선거 캠페인에서 유권자의 70~80%를 동원해내는 역동적인 곳이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2000년 대통령 선거는 “고작 유권자의 절반 정도만 투표하고, 득표 집계는 무엇 하나 분명하지 않은 채 승패가 사법부의 판결로 가름되는 선거”가 됐다. 당시 박빙의 선거는 사실상 플로리다주의 선거결과에 의해 결정될 운명이었는데, 주법원의 재검표 결정을 연방대법원이 파기함으로써 법원이 사실상 부시의 당선을 도운 꼴이 됐다. 그럼에도 패배한 앨 고어는 “이 문제에서 여론은 중요하지 않다. 법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정치학자들은 정치엘리트 간 경쟁과 갈등의 수준이 높아질수록 대중의 정치참여도 증가할 것이라고 봤다. 그런 이론이 무색하게도 현대 정치에서는 대중은 사라졌는데 엘리트 간의 갈등은 격화되고 있다. 유권자들 또한 정치참여보다는 개인 수준의 봉사활동 같은 실천에서 만족감을 찾는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라는 페미니즘의 금언은 ‘정치적인 것은 개인적인 것’이라는 말로 변형되고 있다.

지난해 11월 미국 플로리다 주 마이애미의 시민들이 대통령 선거 투표를 위해 길게 줄을 늘어서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이런 현상은 “가족이 붕괴됐거나, 텔레비전으로 인해 시민사회가 쇠퇴됐기 때문”은 아니다. 저자들은 “상당 부분 국가 구조의 변화가 만들어낸 산물”이라고 말한다. “정치 공동체가 좋은 시민을 고무할 수 있는 유인”을 제공해야 함에도 오히려 그 반대방향으로 나아간 것이다. 과거 정부가 시민들의 동원에 큰 힘을 기울였던 것은 정부재정과 국토방위가 시민들의 참여에 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대표 없이 납세 없다’는 슬로건이 호응을 얻었고, 보편적 군역은 보통 선거권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요즘 세금은 임금에서 원천징수되거나금융거래 정보 검사를 통해 이뤄진다. 수백만 시민들로부터 납세 의지와 무관하게 세금을 거둬들이고 있는 것이다. 군대도 단기 징집병보다는 고도로 훈련된 직업군인이 선호된다.

이제 국회 주변에는 소위 전문가들과 각종 단체 대표들만 붐빈다. 정당과 정치 엘리트들은 평범한 시민들이 뭘 원하는지를 직접 묻기보다 전문가와 대표자들에게 묻는다. 정당도 동원을 포기했고 혼자서는 ‘자발적 참여’가 불가능한 시민들은 점점 변방으로 밀려나고 있다. 시민단체들은 환경, 소비자 보호, 인권 등의 수호자를 자처하지만 굳이 대중을 동원하는 번거로움을 감수하기보다 전문가를 통한 공익소송과 광고, 캠페인에 주력한다. 이런 공익소송의 남발은 역설적으로 민주주의가 사법의 영역에서 결정되는 모순을 낳는다.

이제 민주주의의 과정은 고도로 ‘다운사이징’됐다. 시민들은 여론조사 과정을 통해 대표되는 ‘가상적 존재’로만 남았다. 한국도 다르지 않다. ‘행동하는 양심’ ‘깨어있는 시민’들이 강조되지만, 그 이면에 동원되지 않으면 참여조차 불가능한 사람들의 모습은 점점 보이지 않게 됐다. ‘촛불집회’처럼 폭발적인 대중행동의 가능성은 여전히 있지만, 그 유효기간은 대개 짧다. 저자는 “머지않아 미국 정치에서 가장 절박하고도 우려스러운 문제는 ‘알게 뭐야?’가 될 수도 있다”고 책을 끝맺는다.

‘헌정적 자유주의(constitutional liberalism)’와 ‘최소민주주의’

최소민주주의로부터 헌정적 자유로: 러시아 민주화의 장기적 경로? , 강봉구

민주화에 대한 최근의 경험적 연구들에서 민주주의의 개념은 경제적 평등과
사회적 정의까지 포괄하는 ‘실질적 혹은 최대 민주주의 개념(substantive or maximalist conception)’보다 ‘절차적 혹은 최소 민주주의 개념(procedural or minimalist conception)’으로 더 많이 사용되고 있다.4) 일례로 헌팅턴(Samuel Huntington)은 슘페터(Joseph Schumpeter)와 달(Robert Dahl)의 전통을 따라 민주주의를 자유로운 경쟁을 보장하는 정례적 선거, 보통선거권5) 및 시민적ㆍ정치적 자유라는 세 가지 필요조건을 충족시키는 정치체제로 정의하고 이것을 ‘민주주의의 절차적 정의(procedural definition of democracy)’라고 지칭하였다.6) 헌팅턴의 민주화론에서 민주주의 개념은 일관되게 ‘절차적 민주주의’이며, 이글에서 사용된 ‘최소민주주의(minimal democracy)’ 혹은 수식 없는 ‘민주주의’와 동일한 의미이다.

첫째, 탈소비에트 민주화 과정 연구에서 자유민주주의가 형성ㆍ발전되어 온 서구의
역사적 경로를 고려하여, 자유민주주의의 개념을 ‘헌정적 자유주의(constitutional
liberalism)’와 ‘최소민주주의’로 분리하여 사고하는 것이 더 유용하다고 본다. 즉, 자유민주주의는 자유로운 정치적 경쟁과 보통선거권을 보장하는 ‘최소민주주의’와7) 재산권, 법치, 권력분립 등의 보장을 의미하는 ‘헌정적 자유주의’의 두 부분으로 구성된다는 시각이다.
이 방법은 자유민주주의 프로젝트를 최근 수십 년 간의 주된 정치적 기획이라기보다
는 전체적으로 근대성의 정치적 기획으로 보고, 탈소비에트 민주화 과정 역시 서구 자유민주주의 형성 동학의 장기적 관점에서 평가해 보아야 한다는8) 문제의식을 반영한 것이다.
탈소비에트 국가들의 민주화는 서구의 민주적 발전이나 제3파도의 이행사례들과는 달리 3중 이행과정(국가건설, 시장경제 도입, 민주화)의 한 부분이기에, 두 개념의 분리를 통해 이 과제들을 복합적ㆍ전체적으로 파악하는 데 조작적 편리함을 도모할 수 있고, 3중 이행에서 다른 두 핵심 과제인 국가성 강화 과제와 사유화의 과제가 민주화의 경로에 미치는 영향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민주주의는 사회적 체현(social embodiment)

미국의 철학자 존 듀이는 ‘민주주의는 사회 구성원들이 서로에 대해 가지는 공감과 존중에 의해 완성되는 실험적 지성의 사회적 체현(social embodiment)’라고 정의하였다 (민주주의와 교육, 1916). 이러한 민주주의는 불안과 공포에 휩싸인 마음들 사이에서는 자랄 수 없다.

흔히들 민주주의를 제도와 절차로만 이해하지만, 제도와 절차로서의 민주주의는 형식일 뿐이다. 그 형식을 주조하고, 그 형식 속에 담겨지는 것은 민주주의의 마음이다. 성찰과 합리적 이성과 공감적 포용, 그것이 바로 민주주의를 가능하게 하는 힘이고 민주주의적 삶의 양식을 채우는 내용이다. 신자유주의적 시장의 질서가 만든 불평등의 폭력과 개인에 대한 위협, 파시즘의 권위적 질서가 가져올 자유의 억압, 이 모든 폭력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줄 대안은 바로 일상의 자리에 굳건히 뿌리박은 연대의 실천과 협조적 지성이다.

‘암울한 시대’를 살았던 유태인 사상가 아렌트와 프롬이 후세에 남긴 교훈도 바로 그것이었다. 성찰하는 지성과 사랑의 기술, 그것은 성숙과 지혜의 마음이다. 이 마음은 지식과 명령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자리에서 뿌리 내리고 자라는 몸을 가진 마음(embodied mind)이다. 삶과 앎과 놀이가 유기적인 하나가 되고, 노동과 배움과 나눔이 서로 속에 얽히고 착근되는(embedded) 세상, 삶의 현장에서 협조적 지성을 키우고 함께 즐겁게 살아가는 세상, 그것이 바로 서로에 대해 열려 있고, 서로를 최고의 가치로 존중하는 민주주의의 마음이 만들어 내는 세상이다.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20130131093418&section=01

민주주의론 강의 1, 2

민주주의론 강의 1, 2

안승국 외역 지음 | 인간사랑 | 1995년 08월 01일 출간

민주주의론 강의 1

001. [민주주의의 원리와 이념의 변화]
002. 탈형이상학과 민주주의/프레드 달마이어
003. 자유민주주의 이념의 포스트모던적 재정립/샹탈 무페
004. 자유와 평등에 대한 개념적 재성찰/스티븐 루크스
005. 민주주의의 경제적 모순/사무엘 브리탄
006. [민주주의론의 새로운 방향]
007. 아렌트의 평의회민주주의에 관한 비판적 논의/존 시턴
008. 참여민주주의의 비교론적 고찰/조엘 웰프
009. 자유주의적 민주주의론과 마르크스주의적 민주주의론/데이비드
010. 신공화주의적 민주주의론의 전망/배리 힌데스
011. [세계화와 민주주의]
012. 범세계정치와 민주주의/앨런 길버트
013. 현실주의, 제국주의 그리고 민주주의/스티븐 크라스너

민주주의론 강의 2

001. 유럽민주주의의 위기에 관한 재성찰/프랭크 윌슨
002. 국가역할의 재조명/볼프강 뮐러, 빈센트 라이트
003. 신사회운동의 제3국면/칼 베르너 브란트
004. 초국가민주주의와 시민참여/로버트 A. 다알
005. 선거형태의 변화와 정당정치/고든 스미스
006. 신정치운동과 정치 지형의 재구성/페르디난드 뮐러 롬멜
007. 정책결정과 압력단체의 역할/마틴 스미스
008. 유럽통합의 정치적 한계/헬렌 왈라스
009. 규제완화의 정치경제:범국가적 확산과 정책변화/필립써니
010. 유럽공동체의 초국가적 환경정책/안젤라 리베라토데
011. 유럽 노동정치의 새로운 분석틀/캐틀린 텔덴
012. 복지국가의 위기와 전망/리차드 패리

구좌파적 정치행태

구좌파의 경우  운동과 민중에 대한 현신을 내세우며 상대방 개인의 권리와 인격을 간과하면서 역사와 이념을 강조하여 이상화하는 경향을 띠게 된다.

인간의 현실을 간과하여 역사의식을 앞세우고 자신의 의식을 내세우게 되는 그런 경향은 상대적으로는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와 오욕과 단절을 남겨 놓게 된다.  자신의 주장에 대해 확신이 과도하여 타자를 욕보이고 멸시하려는 열정을 억제하지 못할 때가 많다.  설득하기 위한 실증적 자료와 근거는 박약하니 목소리가 커지게 된다,  술과 감정적 과잉을 통해 행동하는 습관이 반복되고,  약한 근거를 채우질 못하니 말과 행동이 과격해지고 때로는 순교자적 의지로 자신을 포장하여 과장하게 된다.

이런 행태가 만연하게 되면서 어떤 조직도 협력과 단결을 유지하기 어렵고, 서로는 서로에게 상처와 분열로만 남게 된다.   누구도 모두를 알 수는 없다는 진리에의 개방성과 불가지론,  어느 하나의 이념이 진리를 독점할 수 없다는 다원주의에 기초하여 자신의 주장이 하나의 의견에 지나지 않음을 인정하는 절제의 미덕이 이 상황에서는 더욱 요청된다 하겠다.   정치적 통합은 이와 반대되는 공감과 설득에 기초하는 인간적 풍성함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