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DC과 뉴욕 월스트리트

워싱턴DC과 뉴욕 월스트리트

기사입력 2013.07.03 11:52:25
다 아는 상식적인 얘기다. 미국의 수도는 워싱턴DC이 분명하지만 경제와 문화분야에서는 뉴욕이 사실상의 수도 역할을 한다. 그래서 워싱턴DC를 소개하는 글에는 `미국의 수도`라는 말 외에 `정치와 외교, 행정의 중심지`라는 말이 자주 따라붙는다.

특파원으로서 워싱턴DC에서 취재를 하다보면 매일 실감하는 현실이기도 하다. 워싱턴DC에서는 경제를 이야기하는 사람을 만나기 어렵다. 이곳의 최우선 관심사는 언제나 정치와 외교다.

싱크탱크와 로비스트들의 주무대인 `K 스트리트`의 분위기가 딱 그렇다. 어쩌다 세미나 등에서 경제문제가 화제에 오르더라도 세금과 예산, 통상문제에 국한되기 일쑤다.

대학 교수들도 마찬가지다. 미국 동부의 유명한 경제학 교수들은 출신학교를 불문하고 뉴욕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정치학과 외교학을 전공한 교수들은 워싱턴DC에서 목소리가 높인다.

물론 상하원 의원들은 자기 지역구의 경제문제에 관심을 둘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공장을 유치하거나 연방예산을 한 푼이라도 더 배분받는 것에 관심이 있을 뿐이다. 국제경제는 말할 것도 없고, 거시경제 문제는 좀처럼 입에 올리지 않는다. 외국인의 시각에서는 `정치는 워싱턴DC, 경제는 뉴욕`이 이토록 철저하게 구분될 수 있는지가 신기해보일 정도다.

그러나 워싱턴 생활이 길어지면 자연스럽게 또다른 깨달음을 얻게 된다. 워싱턴DC와 뉴욕이 절묘한 균형을 이루며 미국 경제를 이끌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역시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닌 것이다.

미국을 비롯해 전세계 금융을 좌지우지하는 곳은 뉴욕의 월스트리트다. 2㎞ 남짓한 이 거리에 세계 유수의 은행, 증권사가 밀집해 있다. 이곳에서 치열한 시장평가와 정보교환이 이뤄지게 된다. 글로벌 자본의 흐름이 결판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경제가 글로벌 금융위기의 나락에서 허우적 거렸던 2008년 10월 월스트리트를 방문한 적이 있다. 금융사마다 무더기 해고 발표가 연일 이어지던 때인 만큼 분위기는 황량함 그 자체였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장면은 그 와중에도 행인 열명 가운데 아홉이 허리에 찬 블랙베리로 끊임없이 이메일을 체크하는 모습이다. 금융시장이 활황일 때나, 불황일 때나 월스트리트는 광속(光速)으로 정보를 유통시키며 늘 깨어 었었다.

이처럼 바지런한 월스트리트도`천적(天敵)`이 있다. 바로 `정치의 도시` 워싱턴DC다. 워싱턴DC에는 월스트리트를 견제할 수 있는 힘 쎈 기관들이 포진해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와 미국 재무부, 미국 연방예금보험공사(FDIC) 등이 그런 곳들이다. 이들이 맘 먹고 나서면 막강한 월 스트리트도 어쩔 수 없이 꼬리를 내려야 한다. 굳이 파워의 우월을 따진다면 금융정책 수립권한과 감독권한을 워싱턴DC가 월 스트리트보다 한 수 위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게다가 이런 현상은 2008년 리만 브라더스 사태 이후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심지어 얼마전 인터뷰를 위해 만난 미국인 교수는 “리만 브라더스 사태이후 미국의 금융권력은 뉴욕에서 워싱턴DC로 완전히 넘어왔다”고 단언하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에선 인사와 자금운용에 간여하는 한국식 `관치(官治)`금융은 없다. 따라서 `워싱턴DC은 갑(甲), 뉴욕 월스트리트는 을(乙)`이라는 등식은 통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월스트리트의 폭주나 호들갑을 적절한 선에서 관리하는 역할을 워싱턴DC가 맡고 있다고 보면 된다.

얼마전 벤 버냉키 미국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 의장이 양적완화 축소 발언을 했을 때도 뉴욕 월스트리트와 워싱턴DC의 반응은 극명했다. 주가,금리가 출렁이며 월스트리트가 요동을 쳤지만 워싱턴DC에 자리잡은 연준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월스트리트의 비명 소리쯤은 간단히 무시해버린 것이다.

연준 뿐만이 아니다. 작년 말에서 올해초까지 이어진 `재정절벽(세금감면과 정부지출이 급속히 줄어들면서 경기를 급속히 위축시키는 현상)` 파동 때에도 워싱턴DC에선 `월스트리트의 호들갑에 휘둘릴 필요 없다`는 분위기가 만만치 않았다. 미국 공화당이 배짱을 튕기며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공화당으로부터 상당한 정치적 양보를 얻어낸데는 이런 정서가 상당한 역할을 했다.

지난 3월 1일 시퀘스터(sequester. 미국 연방정부의 자동 예산 삭감)가 발동될 때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월스트리트는 시퀘스터로 미국 경기가 급냉할 것을 걱정했지만 워싱턴DC에선 `큰 일이야 벌어지겠느냐`는 기류가 강했다. 실제로 시퀘스터가 미국 경제에 끼친 악영향은 미미한 수준에 그치고 있다.

사실 워싱턴DC라는 도시는 그 태생부터가 뉴욕을 견제하기 위한 `정치적 타협`의 산물이었다. 원래 미국 최초의 수도는 뉴욕이었다. 그러나 미국이 연방정부의 기틀을 잡아가는 과정에서 미합중국의 수도가 워싱턴DC로 바뀌게 된다.

1789년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조지 워싱턴은 워싱턴DC를 새 도읍지로 정함으로써 당시 사이가 나빴던 북부와 남부를 자연스럽게 아우를 수 있었다. 북쪽의 메린랜드주와 남쪽의 버지지아가 만나는 지역을 새로운 수도로 정함으로써 뉴욕을 끼고 있는 북부에 힘이 쏠릴 것이라는 남부의 우려를 잠재운 것이다.

워싱턴DC와 뉴욕. 보면 볼수록 절묘한 궁합이다.

[이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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