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정치철학의 이해, 윌 킴리카‎ (Will Kymlicka)

현대 정치철학의 이해 2  

 

Will Kymlicka(장동진, 장휘, 우정열, 백성욱 역), 현대 정치철학의 이해, 동명사, 2002

공동체주의의 자유주의 비판은 현대 영미 정치철학에 극적인 충격을 주었다. 1970년대에는 자유주의자들이 공리주의에 대응해서 일관성있는 대안을 규정하려는 시도의 일환으로 정의(justice)와 권리(rights)가 중심 개념이 되었다. 1980년대에는 공동체(community)와 맴버십(membership)이 핵심단어가 되었는데, 공동체주의자들은 자유주의적 개인주의가 실현 가능한 어떠한 정치 공동체를 위해 필요한 공동체적 정서, 정체성, 경계선을 설명해 주거나 유지시키는 데 얼마나 부적절한지를 보여주려 했다. (397면)

아마도 논쟁의 그 다음 단계는, 자유주의적 개인주의와 공동체주의 사이에 이러한 대립을 초월해서 자유주의적 정의와 공동체적 맴버십의 요구들을 통합시키는 시도로 나아가는 것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작업을 수행할 하나의 확실한 후보가 바로 시민권(citzenship) 개념이다. 시민권은 한편으로는 개인주의적 권리와 자격(entitlements)이라는 자유주의적 개념과 친밀하게 연결되어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특정한 공동체의 맴버십과 복속이라는 공동체주의적 개념들과도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그것은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 사이의 논쟁을 중재할 수 있는 개념을 제공한다. (397면)

많은 고전적 자유주의자들은 견제와 균형을 고안해 냄으로써, 특별한 덕성을 갖춘 시민성이 부재하는 상황에서도 자유민주주의가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고 믿었다. … 예를 들어, 칸트는 좋은 정부의 문제는 ‘악마들의 경영으로도 해결될 수 있을 것'(Galston 1991: 215에서 재인용)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각자의 이익들의 균형을 부여할 절차적, 제도적 기제로는 충분하지 않고, 어느 정도 수준의 시민적 덕성과 공적 정신이 필요하다는 것이 점점 확실해지고 있다. (398면)

사실 내가 제2장에서 지적했듯이, 롤즈는 이러한 ‘기본 구조’가 정의론에 있어서 우선적인 주제라고 말했다. 그러나 오늘날의 정치이론가들은 이러한 제도와 절차들을 운영해 나아가는 시민들의 수준과 성격에 대해서도 그만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따라서 1990년대의 정치 이론가들은 개별 시민들의 책임감, 충성, 역할을 포함한 그들의 정체성과 행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399면)

시민권에 대한 이와 같은 이론의 필요성은 로버트 퍼트남(Robert Putnam)이 이탈리아 지방 정부를 다루었던 영향력 있는 연구에 의해 극적인 지지를 받게 되었다. … 오히려 푸트남은 그들의 ‘사회 자본'(social capital)이라고 명명하는 그들 시민들의 덕성에서 비롯된다고 설명해야 한다. 사회 자본이란 그들의 신뢰의 능력, 참여 의지, 정의감 등이다. (399면)

그리고 그것은 동시에 샌들이 ‘형성적 기획'(formative project) 혹은 ‘형성적 정치'(formative politics)라고 명명했던 것을 고려할 필요가 있음을 정치 이론가들에게 인식하게 해 주었다. 즉 적절한 종류의 특성의 수준과 시민적 덕성을 지속적으로 가르치는 정부 정책이다. (400면)

따라서 이제 시민권 이론은 광범위하게도 이전의 제도적 정의 이론에 대한 필연적인 보완물로 간주되고 있다. … 나는 민주주의 시민권 이론이 정의론을 대체할 수 있다는데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 어떤 경우에도, 나는 시민권 이론을 정의론에 대한 대체물로서가 아니라 주요한 보완물로서 논의할 것이다. (400면)

전후 시기의 권리로서의 시민권(citizenship-as-rights)의 가장 영향력 있는 표현은 1949년에 출간된 마샬(T. H. Marshall)의 ‘시민권과 시민계급'(Citizenship and Social Class)이다. (401면)

시민적 권리는 18세기 발생했다. 정치적 권리는 19세기 발생했다. 그리고 사회적 권리는 – 예를 들면, 공적 교육, 보건의료, 고용보험, 노인연금 등 – 20세기에 들어서 확립되었다. 그리고 시민권에서의 권리가 확장되면서, 시민이라는 계급의 확장 또한 발생했다고 그는 지적한다. (401면)

많은 이론가들은 우리가 경제적인 자기 절제, 정치적 참여, 그리고 심지어는 공손함까지를 포함하는 겸손함과 덕성들의 시민권을 능동적으로 행사하여 시민권에서의 권리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보완할(혹은 대체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마셜의 관점 역시 현대 사회의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다원주의를 적절하게 인식하고 수용하는데 실패한다고 비판받아 왔다. …) (402면)

민주주의 이론에서의 ‘심의로의 전환'(deliberative turn) (406면)

만일 민주주의가 이러한 집단들을 ‘다수의 전제'(tyranny of the majority, 혹은 다수의 무관심과 나태함)에 종속되도록 남겨두지 않고 그들의 정의를 증진시키는데 도움을 주려고 한다면, 민주주의는 보다 심의적이 되어야 할 것이다. (407면)

고대인들이 정치적 삶을 증진시키기 위해서 사적 자유를 희생하는 반면, 현대인들은 정치를 자신들의 사적인 삶을 보호하는데 필요한 수단(어느 정도는 희생인)으로 바라본다. 사실상 아리스토텔레스적 공화주의자들은 이러한 역사적 변화를 역전시키고, 우리의 선관에 ‘고대인의 자유’의 우선성을 회복하려고 노력한다. 이것은 두가지 방법으로 할 수 있다. 정치 참여의 본질적인 가치를 찬양하거나, 사적 삶의 가치를 저하시킴으로 가능하다. 대부분의 아리스토텔레스적 공화주의자들은 두 가지 전략을 혼합하여 사용한다. (411면)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적 공화주의를 변호하기 위해 개인들이 진정한 사회적 삶을 이끌기 위해서는 사회가 필요하다는 것만 보여주어서는 불충분하다 – 자유주의자들도 그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아리스토텔레스적 공화주의자들은 이것을 넘어서서 개인들이 정치적으로 능동적이어야 할 필요를 보여주어야 한다. (412면)

우리는 더 이상 정치를 찬미하지 않는데, 그것은 우리의 사적이고 사회적인 삶이 고대 그리스인들의 그것보다 훨씬 더 풍요롭기 때문이다. (414면)

그리스인들은 사적 영역을 ‘결여'(privation, 이것이 사실 ‘사'(private)라는 단어의 어원이다)의 영역으로 간주했고, 그 안에서 가치를 거의 발견하지 못했다(사실 그들은 ‘사’라는 개념에 필적하는 어떤 것도 갖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 ‘현대인’들은 친밀성, 사랑, 여가, 소비와 노동에서 헤아릴 수 없는 즐거움을 발견한다. (414면)

이러한 사적 삶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적 공화주의자들의 경멸은 여성에 대한 경멸과도 역사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415면)

그러나 좋은 삶에 대한 단일한 가치관에 특권을 주려는 그와 같은 시도는 현대 사회에서는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 ‘다원주의의 사실'(fact of pluralism)은 단지 전통적 공동체주의만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적 공화주의의 부활 역시 무너뜨린다. (415면)

‘권리로서의 시민권'(citizenship-as-rights)의 전통적 모델은 두 가지 방향으로부터 도전을 받아왔다. 첫번째는, 앞장에서 검토되었듯이, 시민적 덕성과 적극적 정치참여에 보다 많은 관심을 가짐으로써 권리에만 향해진 집중을 보충할 필요성을 강조하는 방향읻. 두 번째 도전은, 이번 장에서 다루어질 것인데, 문화적 다원주의(cultural pluralism)와 집단 차별적 권리(group-differentiated rights)에 보다 큰 관심을 기울임으로써 공통의 권리에만 맞추어졌던 초점을 보강할 필요성을 강조하는 방향이다. 두 번째 도전은 정치철학뿐만 아니라 현실정치세계에서 일어나는 광범위한 운동 역시 반영한다. 이러한 운동은 ‘차이의 정치'(politics of difference), ‘정체성 정치'(identity politics), ‘인정의 정치'(politics of recognition)와 같은 다양한 형태의 제목으로 논의되어 왔다. (455면)

과거에는 이 다양성이 ‘정상적 시민'(‘normal’ citizen)의 모델에 의해 무시되었거나 억제되었다. 전형적인 정상적 시민모델의 개념은 장애가 없고 이성애자인 백인 남성의 특성에 기초하고 있었다. 이러한 정상성 모델에서 이탈하는 사람은 누구라도 배제, 주변화, 침묵화 또는 동화의 대상이 되었다. 그래서 유색인 집단은 종종 서구민주주의로의 진입이 거부되었고, 설사 허용되었다 하더라도, 시민이 되기 위해서는 그들에게로의 동화가 기대되었다. 따라서 토착민(indigenous people)들은 자신의 고립된 보호구역으로 단절해 숨어 버리거나, 아니면 자신들의 전통적 삶의 양식을 포기해야만 했다. (455면)

이들은 좀 더 포용적인 시민의 개념을 요구하고 나선다. 이 포용적 시민 개념은 이들의 정체성을 (비난하기보다는) 인정하고, 이들의 차이를 (배제하기보다는) 수용한다. 이러한 운동의 특징은 이들 운동이 ‘정체성’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정체성 정치'(identity politics)의 형태라고 종종 말해진다. 이러한 규정은 그 이전에 계급에 기초한 노동자나 농민의 정치운동과는 다른 것이다. 계급에 근거한 운동은 경제적 이익이 문제가 되었다.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볼 때, 정치란 언제나 정체성과 이익 양자 모두가 문제가 된다. 문제는 항상 어떤 정체성과 이익이 증진되어야 하는가에 있다. (456면)

전통적인 ‘권리로서의 시민권’ 모델의 목표는 시민들 사이의 일종의 공통적인 국민 정체성을 증진시키는 것이었다. 마샬(T. H. Marshall)이 직접 강조했듯이, 시민권은 일련의 권리와 의무로 규정된 단순한 법적 지위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또한 정치공동체에서 한 사람의 멤버십을 표현하는 정체성을 의미한다. 그리고 시민권 권리(citizenship rights)의 개념을 확장하여 보건의료와 교육 같은 사회적 권리를 포함할 것을 요구하는 마샬의 주장은, 그렇게 하는 것이 바로 국민의식과 국민적 정체성의 공통감(common sense)을 증진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데 기초한다. 보건의료 및 교육을 사람들에게 보장해 주는 것이 마샬에게는 단순한 인도적 이유, 즉 기본적 필요를 충족시켜 주는 것만은 아니었다. 사회적 권리는 또한 이전에 소외되었던 집단들을 공통의 민족문화로 통합하고, 또 그렇게 함으로써 민족적 통일성과 충성의 원천을 제공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되었다. … 그는 특히 영국의 노동계급의 통합에 관심이 있었다. (456면)

그리고 사실상 복지국가의 발전은 서구민주주의의 전체를 통해서 볼 때 노동계급을 민족문화로 통합하는 데 아주 성공적이었다. (457면)

이와 유사한 맥락에서, 서구국가들은 의료혜택을 각각의 인종집단에 따라 분리된 병원에서 제공하지 않았다. 심지어 분리된 병원에서 제공하는 것이 의료혜택을 효율적으로 제공해 실시하는 방법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그것의 목표가 단순히 추상적 의미에서의 기본적 필요의 충족에 있지 않고, 공동의 시민의식을 창출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458면)

그래서 ‘공동의 권리로서의 시민권'(citizenship-as-common-rights)의 전통적 모델은 국민통합의 개념과 깊이 결부되었다. 공동의 시민권리와 국민통합의 이러한 연결은 지금에 와서는 비판을 받고 있다. 많은 집단들 – 흑인, 여성, 토착민, 인종 및 종교적 소수자, 남성 및 여성 동성연애자 -은 이러한 공동의 시민권리를 소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소외와 사회적 냉대를 느낀다. 이러한 집단의 많은 구성원들은 이들의 사회 경제적 신분 때문이 아니라(또는 신분만이 아니라), 이들의 사회문화적 정체성 – 즉, 이들의 ‘차이'(difference)에 의해서도 사회적 소외감을 느낀다. (458면)

이들은 영(Iris Marion Young)이 명명한 ‘차등적 시민권'(differentiated citizenship)과 같은 어떤 형식을 (Young 1989) 요구한다. 이 입장에 따르면, 단순히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집단을 통해서 특정 집단의 구성원들이 정치공동체에 병합하는데, 부분적으로 이들의 권리는 이들의 집단구성원들의 자격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이러한 집단적으로 특수화된 형태의 시민권을 주장한다. 이렇게 주장하는 이유는 이들이 단일한 공통의 국민문화가 존재한다는 발상을 거부하기 때문에, 혹은 차등적 시민권을 통해서 이러한 집단의 사람들을 공통의 국민문화로 수용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458면)

왜 이러한 집단의 사람들이 노동자 계급에 의해 요구되었던 공동의 시민권리 대신에 (또는 이러한 권리에 추가적으로), 일종의 차별적 시민권을 요구하게 되었는가? 이러한 경우들에서, 왜 공동의 사회적 권리를 통해 모든 시민을 통합하려던 마샬의 전략은 실패하게 되었는가? (460면)

과도하게 단순화시켜 말하자면, 모든 서구민주주의에는 두 가지 강력한 위계가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다. 첫째, 경제적 위계(economic hierarchy)가 있다. … 이러한 경제적 위계구조에 내재하는 불평등에 대한 투쟁은 재분배의 정치(politics of redistribution)를 배태시키게 된다. 이것은 전통적 형태의 노동계급 동원을 반영한다. … 집단차이를 축소하는 것이 목표이다(즉, 기회와 문화에 있어 계급적 차이를 축소시키기). (461, 462면)

그러나 영국사회에는 마샬이 많은 주의를 기울이지 못했던 또 다른 위계구조가 있었다. 이것은 신분 위계구조(status hierarchy)이다. … 이러한 신분 위계구조에 대한 투쟁은 ‘인정의 정치’를 낳게 한다. 인정의 정치는 최근 동성애자, 종교적 소수자, 이민자, 소수 민족들이 동원되는 저변에 깔려 있는 정치 형태를 의미한다. … 목표는 집단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다. (462, 463면)

우리는 비록 분석적 목적으로 재분배의 정치와 인정의 정치 간의 차이를 구별할 수 있긴 하지만, 현실세계에서 이 양자는 연결되어 있다. 어떤 집단들은 이 양자의 위계구조 모두에서 최하층 또는 거의 최하층에 근접해 있어서, 재분배와 인정을 위해 운동을 결집해야 할 필요성을 느낄 수 있다. 사실상 많은 사람들 – 특히 마르크스주의자들 -은 두 번째 위계구조는 순수하게 이차적이고 부수적이라고 생각해 왔다. … 이 견해에 따르면, 경제적 불평등이 제거된다면 문화적 불평등도 자동적으로 사라져야 한다. 그래서 전통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우리의 모든 노력이 재분배의 정치에 투여되어야 한다고 본다. … 놀라울 정도의 숫자의 자유주의자들 역시 문화적 불평등이 이차적이고 파생적인 성격에 관한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이러한 견해를 인정해 왔다. (463면)

그렇지만 경험적 증거는 신분위계구조가 경제적 위계구조로 환원될 수 없음을 시사해 준다. 확실히, 여성, 흑인, 원주민과 같은 일부 집단들은 취약한 경제적 위치에 있어서도 불균형적으로 집중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문화적 표현에 있어서도 비천하거나 침묵적 입장에 처해 있다. 그러나 경제적으로는 부유하지만 문화적으로 낙인찍힌 다른 집단들도 존재한다. 예를 들면, 대부분의 서구 민주주의 국가에서 동성애자들에게 이것은 사실이다. 이들은 이성애자들과 마찬가지 수준의 수입과 교육의 수준을 누리고 있지만, 극단적인 동성혐오로 인해 고초를 겪고 있다. 또한 아랍계 또는 일본계 미국인처럼 일부 부유한 이민자들 혹은 종교집단을 예로 들 수 있는데, 이들은 평균수준 이상의 교육과 수입을 누리고 있지만, 문화적으로는 소외되고 있다. 마찬가지로, 카탈로니아인, 퀘벡인과 같은 소수 민족 역시 다수 민족과 같은 수준의 생활을 향유하고, 어떤 경우에는 사실상 보다 높은 수입의 생활을 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들의 언어와 문화는 주류의 언어와 문화보다 열등하다고 간주된다. 이러한 모든 집단들은 경제적 평등을 달성한다고 신분불평등이 해소되지 않는다(비록 경제적 평등의 성취가 의심할 바 없이 신분불평등을 완화한 것은 사실이지만). 따라서 경제적 평등의 성취가 인정의 정치를 동원할 필요성을 제거하지는 못했다. (463면)

이와는 대조적으로, 신분 위계에서는 특권적 지위를 향유하고 있지만, 경제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처한 집단들도 있다. 이것은 대부분의 서방국가들에 있어서 전통적인 남성노동자 계급의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노동계급은 부정의한 경제적 위계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있긴 하지만, 신분 위계에서는 종종 혜택을 누린다. 대부분의 남성 노동계급은 자신들의 남성성별(male gender), 백색 피부, 기독교라는 종교, 이성애적 성향이 그들에게 여성, 흑인, 유태인 또는 동성애자들보다 우월한 지위를 부여하는 규범이라고 규정함으로써 만족을 누릴 수 있게 된다. (464면)

복지국가가 도입되기 이전에는 분명히, 남성 노동자 계급은 교육에 대한 접근성, 경제적 기회 및 수입의 결여로 인해 이러한 신분위계구조의 혜택을 누릴 수 없는 경우가 흔했다. 따라서 전통적인 노동 계급의 배제를 치유하기 위한 해결은 우선적으로 사회적 권리를 통한 공동의 시민권을 강화하는 것이었다. 신분 위계구조에 도전할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사실상 많은(백인, 남성, 기독교, 이성애자인) 노동계급의 구성원은 여성, 동성애자, 종교적 소수자, 또는 이민자들이 신분위계질서에 도전하려는 시도에 저항해 왔다. 상층 신분집단에서 경제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는 구성원들인 전통적 노동계층은 경제적 위계구조에 대한 도전에는 관심이 있었으나, 신분위계질서를 보존하려는 점에서는 이기적인 입장을 취했다. (464면)

따라서 경제적 위계와 신분적 위계 간에는 단순한 상관관계가 없다. 그리고 이것은 공동의 사회적 권리를 통한 마샬의 통합전략이 노동계급에게는 일리가 있었지만 다른 집단들은 왜 만족시키지 못했는가를 설명해 준다. … 여성 또는 흑인 같은 다른 집단들에게 있어서, 평등은 재분배의 정치와 인정의 정치 양자 모두를 요구한다. (464면)

신분 불평등이 경제적 불평등으로 완전히 환원이 될 수 없거나, 또는 경제적 불평등으로 인해서만 파생되지 않는다는 인식의 증대는 인정의 정치에 대한 관심의 증대를 가져왔다. (464면)

사실상, 수많은 사람들이 집단차별적 시민권(group-differentiated citizenship)의 발상이 모순적인 용법이라고 간주한다. 전통적 견해에 의하면, 시민권이란, 정의상 모든 사람들을 법 앞에서 동등한 권리를 가진 개인들로 간주하는 문제이다. 이것이 바로 시민들의 정치적 신분을 그들의 종교, 인종 혹은 계급적 멤버십에 의해 결정해 버리는 봉건적 그리고 여타의 전근대적 견해들로부터 민주적 시민권을 구별해 주는 점이다. 따라서 ‘집단구성원에서부터 파생되는 권리 또는 요구에 기초한 사회 구성은 시민권에 입각한 사회의 개념과는 첨예하게 상치된다'(Porter 1987; 128). 따라서 차별적 시민권 개념은 시민권 이론에서 아주 급진적 발전이라 할 수 있다. (465면)

다문화주의와 소수자권리에 관한 철학적 논쟁은 최근 들어 그 범위나 기본 용어에 있어 모두 급진적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1980년대 중반까지 이 분야를 연구하는 정치철학자나 이론가는 매우 드물었다. 사실상 금세기의 대부분에 걸쳐서, 인종 문제는 정치철학자들에게 주변적인 문제로 간주되었다. … 그렇지만 수십 년간의 상대적인 무관심의 기간을 거친 오늘날에 이르러, 다문화주의 문제는 정치이론의 전면으로 부상했다. 이러한 변화의 이유를 몇 가지로 추적해 볼 수 있다. 가장 명백하게는, 공산주의의 붕괴가 동유럽에서 인종민족주의(ethnic nationalism)의 파도를 불러 일으켰다. 이러한 양상은 민주화 과정에 극적인 영향을 미쳤다. 공산주의의 잿더미로부터 자유민주주의로 수월하게 진정할 것이라고 여겼던 낙관적인 가정은 인종문제와 민족주의 문제로 인해 크게 빗나가게 되었다. 그러나 민주주의가 오랫동안 확립된 국가에서도 인종문제를 돌출시켰던 많은 요소들이 있었다. (46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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