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압의 다섯가지 측면 – Iris M. Young

오랜만에 올리는 여성학 관련 자료. 여성주의 세미나에서 다뤘던 아티클이고 저자또한 철학 페미니즘에서 유명한 사람이지만, 이 글 자체는 페미니즘을 넘어 전반적인 억압에 대해 다루고 있다. 아이리스 영(Iris M. Young, 1949-2006)의 Justice and the Politics of Difference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90)의 2번째 장인 “Five Faces of Oppression”. 1_18_young.pdf억압(oppression)의 다양한 측면을 설명해서, 더 넓은 의미에서 억압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아이리스 M. 영에 대한 간략한 소개글은 여기에서. 사실 나도 잘 모르는 사람이에요. http://www.solidarity-us.org/node/540 사진도 올려보련다. 사진의 출처는 http://www.google.com/search?q=Iris+M.+Young&hl=ko&prmd=imvnso&source=lnms&tbm=isch&ei=-s0YT6OAMsWS2QXAtuH6Cw&sa=X&oi=mode_link&ct=mode&cd=2&ved=0CA0Q_AUoAQ&biw=1280&bih=602

여성학 쪽에서 글을 쓰는 것은 아무래도 부담스러운 일이다. 일단 내가 이 글을 읽으면서 느꼈던 것은, 내가 평소에 억압이란 단어를 신체적인 억압과 관련해서만 사용해왔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럴 경우, 억압은 매우 한정된 용례로만 사용될 뿐 사람들이 심리적으로 겪는 어려움이나 박탈감 등은 설명하기 어렵다. 영이 주장하는 게 바로, 억압은 여러 측면을 가지며 이에 관심을 기울일 때만이 억압의 담론을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다. 영이 말하는 억압은 다섯가지 측면으로 설명할 수 있는데 서로 겹치기도 하고 각 요소를 배타적으로 이해할 필요는 없을 듯. 다섯가지 측면은 착취(exploitation), 주변화(marginalization), 무력(powerlessness), 문화적 제국주의(cultural imperialism), 그리고 폭력(violence)이다. 아 그리고 중요한 점은 영은 사회구조적인 측면에서 억압을 분석하고 있다는 점이다. 억압을 개인적인 수준에서 볼 때의 문제점은, 억압자 한 명만 없앤다고 해서 그 억압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구조적 문제는 똑같이 페미니즘에도 적용이 될 수 있다. 요컨대, 남성 한 명 한 명이 다 여성을 존중하고 성차별을 행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사회적인 차원에서 차별받고 있는 여성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개개의 남성들을 비난하기 보다는 사회구조를 바꾸려는 노력이 더 효과적일 것으로 보인다. 또한 억압은. 타자를 구분하면서 집단의 문제가 된다. 즉, A가 B를 억압할 때 그들은 개개인으로 만나는 것보다는 A가 속한 그룹이 B가 속한 그룹을 억압한다고 보아야한다는 점이다. 집단의 문제로 볼 때 차별이 발생하는 방식과 타자를 구분해내는 과정을 볼 수 있기 때문에.

1) 착취 exploitation

착취는 주로 억압의 경제적인 측면을 말한다. 이에 대해서는 칼 맑스가 밝힌 바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착취가 일어나는데 다만 사람들은 경제적인 선택을 할 수 있는 합법적인 자유가 자신에게 있다고 착각할 뿐. 영은 착취의 문제도 집단으로 이해한다. 

The central insight expressed in the concept of exploitation, then, is that this oppression occurs through a steady process of the transfer of the results of the labor of one social group to benefit another (49).
착취의 개념에서 우리가 중요하게 볼 수 있는 것은 한 사회집단의 노동 댓가가 다른 집단에게 꾸준하게 넘어갈 때 일어난다.

예를 들어, 남성들이 가지고 있는 지위나 권력, 부는 여성이 노동력을 제공하기 때문에 일어난다. 여성은 그 노동의 댓가를 받지 않기 때문에 착취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가 여성에게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고 계급이나 인종의 문제에도 해당된다.

2) 주변화(maginalization)

영은 주변화가 억압의 가장 위험한 형태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특정 집단의 사람들이 사회적인 삶에 참여할 수 없고 빈곤의 문제에 노출되기 때문이다. 영이 특히 강조하는 것은 복지이다. 영은 주변화의 두 가지 피해를 지적한다. 복지를 제공한다는 것은 또다른 그룹의 권리와 자유를 빼앗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물질적인 빈곤이 복지로 인해 좀 완화된다고 하더라도 사회적으로 합의된 의미 안에서 개인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한다. 게다가 주변화의 문제는 감정적인 피해도 발생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노인이 생계유지를 위해 정부에서 돈을 받는다면 물질적인 도움을 받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그 돈을 받을 때의 굴욕감이나 무력감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

3) 무력(powerlessness)

Professional labor either involves exploitative transfers to capitalists or supplies important conditions for such transfers.
전문자 노동자들은 자본주의자들에게 자원을 착취의 차원에서 양도하거나 이러한 양도가 성립되게 하는 데에 중요한 환경을 제공한다 (56).

영은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계급과의 문제에서 미묘하게 비껴있다고 본다. 즉, 자본가와 비전문직 사람 사이에서 착취당하고, 또 착취한다는 점이다. 일단 전문직이 되는 과정부터가 억압을 포함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일단 전문직이 되고 전문직을 수행하는 데에는 돈이 많이 든다. 전문직은 상사가 있어서 변화를 이루기 어려운 한편, 다른 집단을 착취한다. 그리고 전문직은 직업의 영역 외에도 일종의 특권을 가진다. 전문직이 가지고 있는 이러한 특권 만큼, 전문직이 다른 집단에게는 억압을 수행하게 된다는 점이다. 뭐 이건 페미니즘의 주장에 대입시킨다면, 여성이 남성에 비해 전문직이 되기가 어렵다는 점을 예로 들 수 있지 않을까. 인종적인 측면도 다룰 수 있는게, 미국에서 여전히 특정 인종은 특정 전문직이 되기가 어렵다.  

4) 문화적 제국주의(Cultural Imperialism)

앞에서 언급한 억압의 다섯가지 특면이 물질적인 측면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면, 지배집단의 경험과 문화를 보편화하면서 나타나는 문화적 제국주의는 좀 더 정신적인 측면을 다루고 있다. 지배집단의 문화는 보편화의 과정을 거쳐 일종의 규범으로까지 발전하여 다른 문화를 억압할 수 있다.

The culturally dominated undergo a paradoxical oppression, in that they are both marked out
by stereotypes and at the same time redered invisible (59).
문화적으로 지배당하는 집단은 역설적인 억압을 겪게 된다. 즉, 그들은 편견에 의해 묶여버리는 동시에 안보이는 집단으로 취급받는다.

흥미로운 점은 지배적인 집단의 구성원들은 이 집단이 나타내는 특징을 내면화한다는 것. 문제는 피지배집단의 경험과 이해가 억압받는다는 것. 이의 대표적인 예는 아무래도 서구 중산계층의 문화가 보편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이겠지. 개인적으로 예를 들고 싶은건, 한국 아파트 선전에 왜 파티 드레스 입은 백인 가족이 나와서 와인을 마시는 것이냐!

5) 폭력 (Violence)
 
여기서의 폭력은 일단 우리가 아는 그 물리적인 폭력이겠지만, 영은 이 역시 샇ㅚ적 정의 문제로 해석한다. 단순히 개인의 차원에서만 이해할 수 없는 문제라는 점이다. 영은 폭력이 사회적인 행위라고 진단한다 (Violence is a social practice, 62). 한편, 영은 심리적인 폭력도 살짝 다루는 데, 예를 들어 정체성의 상실은 폭력의 문제로 설명할 수 있다.

이런 억압의 다섯가지 측면을 사용한다면, 굳이 물리적인 폭력 사건이 아닌 일들도 억압의 문제로 바꾸어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최근에 북한트윗을 리트윗했다고 국가보안법에 걸려 구속수사된 박정근씨의 사건도 이러한 억압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의 편지에 따르면 그가 보안법에 걸려서 수사를 받고난 이후에 사진관 일을 잘 하지 못해서 물질적인 피해도 얻었지만, 심리적인 피해도 어마어마하게 받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사진을 찍는 그가 수사 이후에 사진 찍는 일을 잘 하지 못하게 되고 심리적인 압박을 받음으로써 그는 주변화되어버렸다. 그리고 보안을 중요시하는 주류(!) 집단에 의해 박정근씨는 “비정상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으로 간주되었다. 그의 케이스는 개인적인 일로만 간주할 수 없는게, 그의 구속이 사회당 당원들은 물론, 그와 정치적인 견해를 함께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일종의 집단 의식을 느끼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일이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은, 국가보안법을 단순히 개인의 피해로 볼 수만은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가 수사를 받고 난 이후 박정근씨가 대통령에게 보낸 공개서한은 여기에서 볼 수 있다. http://m.cafe.daum.net/freePark/17wt/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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