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보다 법률적 개선을, 남재희

[특별기고] 개헌보다 법률적 개선을 / 남재희

등록 : 2013.06.13 19:02수정 : 2013.06.13 22:19

나는 헌법을 개정하는 제도 개선 논
의에 앞서 아주 용이한 법률 개정에
의한 제도 개선을 생각하는 것이다.
하나는 대통령선거에서 결선투표제
의 도입이고, 둘은 국회의원 정수의
점차적 증원과 비례대표의 확대이다.

다시 개헌 논의가 철을 맞은 듯 고개를 들고 있다. 국회에 연구위를 두는 일을 놓고서 방향은 정해졌으나 방법을 놓고 얼마간의 시비가 있다는 보도였다. 18대 국회 때도 의장이 국회 안에 연구위를 거창하게 설치하여 외국도 다니고 법석이었는데, 그러그러한 복수 안을 내는 데 그쳤다. 태산명동까지는 안 갔으나 서일필도 못 되었다. 19대에서도 외유나 즐기는 그러한 낭비를 되풀이하려는가.

개헌 논의는 항상 있어 왔다. 어느 쪽에서는 정국을 흔드는 정치공세로 불을 지르기도 하고, 다른 쪽에서는 별로 달리 할 말이 없으니 그것도 정치 의제라고 심심파적으로 제기하기도 한다. 곧 정치적 상상력이 부족할 때 편리하게 들고나오는 이슈이기도 하다.

개헌 문제는 언제 제기해도 있을 수 있는 일이고, 또한 그럴듯한 수준의 명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개헌의 둑이 일단 무너지면 심한 격류가 분출할 것은 틀림없고, 온갖 주장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정국이 소용돌이에 말려들 것이 예상된다. 그래서 개헌을 우리 정치의 블랙홀이라고 표현하는 사람도 있다.

개헌 논의를 지켜보면서 우선 떠오르는 생각은 “재주 없는 사람, 연장 탓한다”는 예로부터의 우리나라 속담이다. 그런 사람들은 대개 헌법에 문제가 있어 우리 정치가 잘못되고 있는 양 이야기한다. 글쎄, 그럴까. 혹시 헌법에 문제가 있다면 정치인들이 그들의 정치력으로 극복할 수 있는 영역이 있다고 본다. 우선 정치관행의 현명한 축적으로 해결할 수 있고, 법률의 개정 차원에서 길을 틀 수 있으며, 개헌은 마지막 수단으로 남는다.

내각책임제 개헌에 열을 올리던 사람들은 “미국의 대통령제는 미국을 벗어나면 ‘죽음의 키스’를 맞는다”는 구절을 내걸었다. 대개가 독재화 경향을 갖는다는 이야기다. 나도 솔깃했다. 그러나 해방 후 우리 정치는 장면 내각 1년 미만 말고는 대통령제를 해온 전통이 있고, 그 경험의 축적이 있다. 먼 장래에는 내각제로 전환한다 하더라도(긴 설명이 필요하겠지만 선진국들의 대세인 듯하다), 가까운 장래에는 대통령 중심제를 계속하는 게 현명할 것이라는 경험론의 입장을 따르게 되었다. 지금 내각제로 바꾸어 정치 연습을 하기에는 당면한 과제가 너무나 많다.

현실적으로 제시되고 있는 개헌의 방향은 대통령을 4년 중임으로 하고, 대통령의 권한을 일부 줄여 국회의 권한을 강화한다는(예를 들어 감사원의 국회 이관) 방향인 것 같다. 박근혜 대통령도 4년 중임제 찬성을 밝힌 바 있다.

대충 납득할 수 있을 듯도 하다. 그러나 일부 국민들 사이에서는 그동안 중임했으면 싶었던 대통령이 별로 없었던 상황에서 이제 새삼 중임을 시켜, 아픈 지난날의 헌정사를 다시금 상기시킬 필요가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생각을 할 것이다. 노태우씨부터 이명박씨까지를 돌이켜 보라. 별로다.

그리고 개헌의 봇물이 한번 터지면 별의별 주장들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18대 국회 시절에는 경제민주화 조항인 제119조 2항의 삭제를 벼르고 벼른 쪽이 있었다. 필사적으로 그런 논리를 편 경제학자들을 생생히 기억한다. 여러 학설들이 동원되었다. 문제는 한국 사회의 현실과 요청에 맞느냐 하는 것이었다. 만약에 그때 개헌이 되었다면 마지막 단계에서 어물쩍 그 조항이 삭제되었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그만큼 그 공작은 집요했다. 그 후 시대 상황의 압력으로 경제민주화는 여야를 막론하고 당대의 트렌드로 자리잡았지만. 그러한 시대적 트렌드 변화를 나는 ‘북진통일’에서 ‘평화통일’로의 전환에 버금가는, 대단한 물줄기의 변화라고 생각한다.

나는 헌법을 개정하는 제도 개선 논의에 앞서 아주 용이한 법률의 개정에 의한 제도 개선을 생각하는 것이다. 하나는 대통령선거에서 결선투표제의 도입이고, 둘은 국회의원 정수의 점차적 증원과 비례대표의 확대이다. 모두 이제까지 제기되어 온 정치의제이다.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결선투표제는 프랑스의 경우다. 그밖에 얼마간의 나라에도 있다. 1차 투표에서 과반을 획득하는 후보가 있으면(혹은 40% 이상으로 할 수도 있다), 그것으로 끝이 나고, 없으면 2차 투표를 하는 것이다. 그 경우 2차 투표에 앞서 여러 정당들 간에 연합정치가 작동하여 2차 투표에서는 과반의 후보가 탄생하게 된다. 결선투표는 국민 과반수라는 다수를 대표하는 대통령을 갖기 위한 노력이다. 이제까지 가끔 보아온 3분의 1 남짓을 대표하는 대통령은 곤란하지 않은가. 2차 투표를 하는 과정에서 각 당의 후보들이 정책 협상과 내각 구성 등 타협을 하여 국민의 다수의견을 가능한 한 집약하는 과정을 밟게 된다.

그 연합정치 협상은 내각책임제에서는 거의 필수적인 절차다. 그리고 우리 정치인들은 그러한 협상에 경험이 태부족이고 그러한 기술을 발전시키지 못하였다. 따라서 2차 투표에 앞선 연합정치의 협상 등은 장래에 실시할 내각책임제를 위해서도 아주 유익한 정치훈련이 될 줄 안다. 복지국가의 설계에 있어서 유럽모델을 말하는데, 이 연합정치가 정치에 있어서의 유럽모델이기도 하다.

결선투표제는 다당제를 가져온다고 반대한 쪽이 있다. 그러나 우리 국민은 야당만으로 대표되기엔 이미 훨씬 더 분화되고 있는데 그것을 굳이 양당만으로 가두려는 것은 억지이다. 다수파의 소수파에 대한 횡포라 할 수도 있다.

국회의원 정수의 점진적 증원과 비례대표제의 확대엔 얼마간 긴 설명이 필요하다. 지난번 대선에서 안철수 교수가 국회의원 정수의 대폭적인 축소를 들고나오고 그것이 정치 혐오증을 느끼는 많은 국민들의 암묵의 지지를 받은 것도 사실이어서 더욱 그렇다. (이번에 국회의원 정수 증원과 비례대표 확대, 결선투표제 등을 주장하는 최장집 교수의 영입으로 상황은 달라진 것 같다. 혹시 박근혜-김종인씨 부조화 비슷한 안철수-최장집씨 불일치가 되풀이될지도 모를 일이지만….)

결론을 먼저 말하면 전세계의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가 500명쯤(상하원의 경우라면 합쳐서)까지 갈 수 있다는 이야기다. 국민들은 제헌국회 이래 오랫동안 국회의원을 ‘10만 선량’이라고 말해오지 않았던가. 일거에 그렇게 늘려서는 거부반응이 심할 것이므로, 가령 50명쯤 우선 늘릴 수 있다. 그리고 늘린 몫은 모두 비례대표로 돌려 소수자들의 의회 진출을 돕는 것이다. 여성, 노동자, 농민, 중소상공인들이 있다. 그리고 국회의원의 특권을 대폭 줄이는 것이다. 국회의원 정수 문제와 특권 문제는 다른 차원이다. 우리 국회의원들이 누리는 금전적 수혜와 다른 특권이 너무 지나친 것 같다. 어느 외국에서는 의원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도 한다는 보도를 본 적이 있는데 상징적 이야기다. 국회의원의 수를 줄이면 국회의원이 오히려 더욱 특권화된다는 역설도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양적 민주화와 질적 민주화를 생각할 수 있다. 미국에서는 흑인 등 소수파에게 투표권을 철저히 보장하는 방향을 양적 혁명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비례대표의 확대를 통해 여성, 노동자, 농민, 중소상공업자 등의 국회 진출을 도와 다양한 정치의견들이 꽃피게 하는 것은 질적 혁명이라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곧, 질적 민주화의 방향이다.

거창하게 헌법의 개정 절차를 밟을 생각을 하기 전에 간단하게 법률의 개정을 통해 우리의 정치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하였으면 싶은 것이다.

극히 상식적인 이야기이다. 상식적이어야 현실정치적으로 될 수 있다. 대기업을 대변하는 대정당은 있는데 국민의 압도적 다수인 노동자를 대표하는 정당이 원내교섭단체도 구성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그들의 얼마간 비현실적인 정치노선에도 문제가 있겠지만, 그보다는 대표의 원리에 맞지 않는 제도에도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겠는가. 비례는 대표의 원리요(proportional representation), 다수는 결정의 원리다(majority rule).

남재희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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