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가 녹아내린다! – ‘투게더’ 함께 읽기

세계가 녹아내린다! 대안은 ‘어게인 박정희’?

[협동조합, 장인에게 배우자] <투게더> 함께 읽기

기사입력 2013-06-07 오후 6:52:59

 

지난 1일 사상 최초로 주식회사에서 협동조합으로 전환한 <프레시안>은, 5월 사전 조합원 신청을 받으면서 “새로운 언론을 꿈꾸는 독자, 필자, 노동자가 협동조합 프레시안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함께 만드는” 새로운 미래를 제시했다. 대안을 찾기 어려운 한국 언론 생태계에서 의미 있는 시도라는 응원의 목소리도 있었으나 우려의 목소리도 뒤따랐다. 성역 없는 비판을 위해 언론사는 기업이나 권력은 물론이고 독자로부터도 ‘독립적’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었다.

언론사라는 독특한 형태의 조직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 전반으로 이 이야기를 확장시켜 보자. ‘함께 한다’는 것이 반드시 좋은 과정을 보장하고 좋은 결과를 낳지만은 않는다는 사실을 많은 이들이 경험으로 알고 있다. 신자유주의가 가속시켜 온 개인의 고립과 단련은 어떤 의미에서는 편의와 자유를 보장했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 ‘함께하기’의 ‘기반’은 물론이고 ‘기술’까지 퇴화하고 있다면? 오랜 역사로 쌓아 올려진 ‘사회적인 것(the social)’이 개인주의와 경쟁의 영향으로 서서히 녹아내리고 있다면?


현대사회의 개인 속에 ‘함께하기’의 인자가 사라지고 있음을 우려한 미국 사회학계의 거장 리처드 세넷(뉴욕대·런던 정경대 사회학과 교수)은 위와 같은 질문을 바탕으로 <투게더>(김병화 옮김, 현암사 펴냄)를 써냈다. 세넷은 수년 전부터 ‘호모 파베르 프로젝트(homo faber project)’라는 이름으로 “구체적인 실천을 통해 스스로 삶을 만드는 존재인 인간이 개인적인 노력, 사회적 관계, 물리적 환경을 어떻게 형성하는지”를 탐구해 왔는데 이 가운데 ‘사회적 관계’에 해당하는 두 번째 책이 <투게더>다. 이 책에서 그는 ‘협력’을 일을 하는 데 필요한 특별한 ‘기술’로 파악하고 중세의 길드에서 근대의 작업장, 현대의 구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례를 파고들었다.

<투게더>를 관통하는 고민은, 이미 ‘사회적인 것’을 쌓아올렸다가 무너지게 만든 역사 위에서 어떻게 다시 그것을 ‘재구성’ 하느냐다. 한때 저자를 사로잡았던 68혁명의 반문화 전통과 그 세대가 일구어낸 관료제의 해체가 “신자유주의적 가치가 실현된 세계 속에서 악몽처럼 뒤틀린 채 재현되고 있는”(김홍중, <투게더> 11쪽, ‘함께 읽기’) 상황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면서, 그렇다면 21세기 우리가 교훈을 가지고 돌아갈 곳은 어디인지를 묻는다.

세넷이 탐구하고 있는 사례는 기본적으로 미국과 유럽의 작업장이다. 한국에서 ‘사회적인 것’이 존재했다면 그 역사와 결이 다르기에, 그가 찾는 결론 역시 다르게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프레시안 books’는 정혜윤(CBS 라디오 PD·<삶을 바꾸는 책읽기>, <사생활의 천재들> 등의 저자)과 함께 진행하는 월례 북 토크쇼인 ‘우리 더 잘 살아요'(☞최근 행사 안내 바로 가기) 4월 행사에서 <투게더>를 함께 읽는 시간을 가졌다. <투게더> 한국어판의 해설을 쓴 김홍중(서울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마음의 사회학> 저자), 진보정당과 노동조합 등에서 교육 활동을 해 온 장석준(현 진보신당 부대표)이 ‘함께 읽기’ 가이드에 나섰다.

다음은 지난 4월 29일 서울시 마포구 서교동에 위치한 <프레시안> 강의실에서 진행된 행사 내용을 정리한 기사이다. 이 기사에서 협동조합이라는 형태에 대한 직접적인 논의는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협동조합이 원형으로 지향하는 바이자 그 세계의 일부가 될, ‘사회적인 것’의 발명과 몰락, 재구성에 이르기까지 검토해 볼 수 있다. 거기엔 시시각각으로 발전해 가는 과학 기술과 협력의 본질이라는 의미에서의 기술, 두 가지 면에서의 ‘기술’에 대한 고찰도 포함된다. <편집자>

더 이상 모여 놀지 않는 사회


정혜윤 :
 지난해 여름부터 ‘우리 더 잘 살아요’ 행사를 해 왔는데, 외국 책을 가지고 행사를 하게 된 것은 처음입니다. 저자를 이 자리에 모실 수 없음에도 이 책을 꼭 하고 싶었던 이유가 있어요. 일단 직장 생활을 하면서 늘 마음 맞는 사람하고만 일할 수 없다는 점, 좋아할 수 없는 사람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에 관심이 있었어요. 그리고 제가 최근 쓴 <사생활의 천재들>(봄아필 펴냄)이란 책이 있는데요. 그걸 쓰면서 가진 문제의식도 비슷해요. ‘어떻게 하면 너랑 더 잘 지낼 수 있을까’를 이야기하는 책인데, 들어야 할 말도 많고 해야 할 말도 많고 할 것이 참 많더라고요.

그 무렵에 이 책을 봤어요. 맨 앞장에 “우리는 적어도 자신이 살아가는 방식을 만들어보려는 시도는 해야 한다”라는 말이 쓰여 있더라고요. 몽테뉴도 비슷한 말을 했어요. “나의 일과 기술, 그것은 살아가는 일이다”라고요. 어떤 점에서 궤를 같이 하는 것 같아요. <투게더>의 마지막 장(코다)의 제목도 마침 ‘몽테뉴의 고양이‘예요.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며 마음에 남은 두 가지 열쇳말이 있어요. 하나는 협력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잘 듣는 능력’이라는 대목이에요. 저 같은 라디오 PD에게는 잘 듣는 것이야말로 그 날 방송의 주제이자 전부이고 사활이 걸린 문제니까요. 또 하나는 ‘움츠러들기’예요. 지난해 ‘불안‘을 주제로 라디오 특집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는데, 불안하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이 없었어요. 불안하니까 타인에게 무관심해지고, 안전한 길로만 가려고 해요. 그런 식으로 다들 움츠러들고 있어요. 계속 그렇게 하다 보면 우리에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해도 과언이 아닐 거예요.

세넷은 ‘협력’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그걸 라디오 용어로 고치면 공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이 울리면 나도 울리는 상황이죠. 그건 말로 이뤄지기도 하지만 눈빛만으로 이뤄지기도 해요. 저는 방송할 때 입으로 ‘큐’를 주지 않고 항상 사람의 눈을 보면서 말을 하거든요. 얼마 전에 퓨전 국악 팀의 공연을 봤는데, 무대 위에서 팀원들이 계속 눈빛을 교환하더라고요. 실제로 그 팀 이름이 ‘공명’이었어요. 이런 장면만큼 절 설레게 하는 게 없어요.

이런 공명과 협력이 현재 학교나 작업장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 혹은 나타나지 않는지 궁금합니다. 먼저 <투게더>의 한국어판 서문 격인 ‘함께 읽기(연대를 넘어 협력으로 : ‘사회적인 것’의 재구성)’를 쓰신 김홍중 선생님이 학교에서 느끼신 것을 얘기해 주시면 어떨까요.

김홍중 : 사적인 이야기부터 시작하자면, 전 원래 누구랑 함께 있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나이 들면서 더욱 혼자 있는 게 편해지는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로는 한 순간이라도 친구가 없는 삶, 쓸모없는 일로 시시덕거리며 시간을 낭비하는 기회가 없었던 삶을 살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가 대학에서 목격하는 요즘 학생들의 경우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서로 무언가를 같이 하는 기술에 있어서 악화가 발생한 건 사실입니다. 2000년대 이후 한국 사람들은 ‘무한도전’처럼 누군가 모여 노는 모습을 즐겨 보고는 있지만 실제로 같이 놀지는 않아요. 너무 지쳐있고 불안하다는 뜻이겠지요. 일인 것과 일이 아닌 것의 경계가 흐릿해져 가고, 자기 일에서의 능력을 극대화시키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불안이 사람들을 잠식하고 있어요. 이를테면 요즘 학생들에게서 대여섯 명이 무작정 춘천에 놀러가서 퍼져 있는 모습을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하고 싶지만 할 수 없는 거겠지요.

또 즐거워 보이는 학생을 찾기 어렵습니다. 다른 과 학생들하고도 상담을 하는 편인데, 많은 경우 자신의 삶에서 의미를 찾기 힘들어 해요. 그걸 찾도록 도와줄 사회적 맥락들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느낌도 들고요. 서클이나 과 활동도, 학교 바깥의 사회 활동도 자기 정체성이 되어주지 못해요. 어떤 경우엔 병리적인 현상까지 나타납니다. 이건 교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속한 학과에 130여 명 정도의 교수가 있는데, 모여서 술을 먹지를 않아요. 제게 술 먹자는 전화를 해 오는 분들도 없고요. (웃음) 그렇게 할 수 없는 분위기 때문입니다. 너무 바쁘거든요. 그날 안으로, 그 주 안으로 해결해야 하는 일이 쌓여 있습니다.

우리는 체제의 변동과 무관하게 100여 명 정도의 주변 사람이라든가 24시간 중 대부분의 시간이라는 각각의 ‘생활 세계’를 구성하고 살잖아요. 체제가 흔들려도 그 여파가 생활 세계로 오기까지는 시간이 걸려요. 그런데 어떤 시점 체제 수준에서 일어난 변동은, 우리 모두가 다른 형식으로밖에 살 수 없도록 하는 변동이었어요. 그 변동은 궁극적으로 대처가 말한 ‘사회(Society)라는 것은 없다’였습니다.

그게 우리나라의 경우 1997년부터였던 것 같아요. 물론 1970년대 후반 서구에서부터 마가릿 대처가 상징하는 거대한 풍파가 불어왔고 국내에서도 김영삼 정부 때부터 불거져 온 현상이지만,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제도나 사회 곳곳에 영향을 미치는 큰 자기장의 변동이 일어난 것이지요.

‘소사이어티’는 사회이기도 하지만 사교이기도 합니다. 지금 이런 모임도 소사이어티라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이제는 더 이상 이런 모임을 필요로 하지 않는 세계로 접어들었고, 통치라는 것의 성격도 바뀌어 가고 있어요. 국가가 복지를 포함해 사람들의 문제를집합적으로 신경 써주면서 보완하고 책임져 주는 게 아니라, 개인이 스스로를 통치하는 방향으로 통치성이 구현되어 갑니다. 파편화된 개인들은 굳이 모여 놀거나 논쟁하지 않아도 돼요. 삶의 다양한 만남들이 경제적 활동과 사회적 재생산에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15년 전부터 지금까지 일어난 일들은 거창한 의미의 사회가 아니더라도 술 먹는 방식, 낯선 사람을 대하는 방식, 가족관계, 친구와 노는 방식 등 사생활의 많은 영역에서의 구체적인 ‘스킬’들을 파괴해 놓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강력한 연줄 문화가 있는 한국 사회임에도 불구하고요. 이런 스킬을 이미 익힌 사람이라면 몰라도, 아주 어린 시절부터 이런 시대 속에서 살아간 사람들은 나중에 어떻게 될까요? 같이 모여서 노는 게 뭔지도 모르는 상태로, 경쟁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고 배워 온 상태로 자라고 그 공백이 인생 대부분의 시기를 규정한다고 하면요.

혹자는 ‘투게더’를 인간의 원초적인 능력이라 믿고 싶어 할지 모르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아주 작은 단초들마저 지난 15년간 제도적 변화 속에서 훼손되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만일 세넷이 한국에서 두 달 정도 산다면 어떤 이야기를 할까요?

자본가와 군대 문화의 대립

정혜윤 : 이번엔 작업장에서의 협력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 싶어요. 취재를 하다 보면 어떤 사람들에게는 ‘투게더’가 굉장히 사치스러운 얘기에요. 예를 들어 현대자동차에 취재를 갔는데, 신차가 나오면 조립 라인이 바뀌면서 잠시 공장을 쉬더라고요. 그런데 어떤 라인이 신차 생산에 필요 없어지게 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럼 거기에서 일하던 노동자들 역시 필요 없어진다며 덜어내 버리는 거죠. 그 노동자가 작업장에서 인품이 어땠는지, 다른 사람과 사이가 좋았는지는 전혀 변수가 되지 못해요. 말하자면 현재의 많은 노동 환경은 ‘내가 어떤 사람이 되느냐’, ‘어떻게 관계 맺느냐’의 문제가 무의미해지는 환경이에요.


장석준 : 
이 책에서 세넷이 젊은 시절(1970년대)에 작업장에서 현장 연구를 진행하면서 확인한 것들을 썼는데, 거기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미국의 작업장 내에서 협력의 분위기가 가장 왕성했을 때는 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세대가 일했을 때라고 해요. 이걸 거시적으로 보면 복지 국가가 2차 대전의 경험 속에서 탄생했다는 사실과 일맥상통합니다. 특히 영국의 경우 그렇지요. 이런 사실이 어떤 시사점을 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의 노동 운동 문화를 보면 상당히 군사적입니다. 운동권 가요나 문구가 적힌 조끼, 운동가들끼리의 내부 문화도 그렇고요. 그런데 세넷의 시각을 적용해 보면 한국에서 그럴 수밖에 없는 지점이 있어요. 한국의 노동 현장의 남성들이 세넷이 말하는 ‘협력’을 기술이나 지식이 아니라 ‘몸’으로 습득하는 통로는 군대거든요. 군대에서 습득한 것이 작업장에서 나타납니다.

세넷 스스로도 지적하지만 작업장이 굉장히 권위적이기도 합니다. 나이가 많은 작업반장이 욕설을 써가며 일을 시키는데, 노동자들이 거기에서 인간미를 느끼고 따른다는 거예요. 권위적이기는 하지만 그 사람이 책임감을 가지고 자신들을 이끈다고 느끼고, 그 속에서 협력의 분위기를 느끼는 겁니다. 이는 자본가가 건드릴 수 없는 영역이라 여겨졌습니다.

방금 말씀하신 정규직과 비정규직 문제가 이것과 연관이 있습니다. 한국의 작업장에서 남성 노동자들은, 비록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이지만 비공식적인 협력의 문화가 존재하는 가운데 그것을 의식적으로 활용하면서 자본가에게 반대되는, 그들이 짓밟을 수 없는 힘으로 존재할 수 있었습니다. 자본가들은 이를 계속 놔두었다가는 그들의 통제를 벗어날 수 있음을 느꼈고, 그 가운데 ‘노동 유연화’라는 구호가 유효하게 등장한 것이죠. 그것은 물론 전 세계적인 맥락도 있지만, 특히 한국에서는 1987년 이후 등장한 전투적인 노동조합 운동을 와해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 되었습니다.

말씀하신 현대자동차에는 대체로 다음과 같은 연령차가 있습니다. 정규직은 보통 1987년을 경험한 40대 후반이나 50대이고, 비정규직은 보통 30대나 그 아래의 젊은 사람들이지요. 만약에 정규직/비정규직 분화가 없었더라면 세넷이 말하는 카리스마적인 지도자가 청년 노동자들에 도덕적인 권위를 행사하면서 비공식적 협력이 이뤄지고, 그것이 자본가와 대립할 때 좋은 무기가 될 수 있었을 텐데 그런 가능성이 다 사라져가는 겁니다. 한쪽은 정규직이기에 질시의 대상이 되고, 한쪽은 비정규직이라서 그들만으로는 자본가들에 대항해 교섭력이나 협상력을 가질 수 없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자본가에겐 모순적인 부분이죠. 비공식 협력이 작동해야 자본가들이 설계할 수 없는 어떤 부분에서 노동 생산성이 잘 돌아갈 수 있는데, 그걸 스스로 포기하면서 와해시키는 것이니까요. 결국 종국에는 그걸 주도한 자본가 입장에서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정혜윤 : 저도 제가 일하는 현장에서 점점 더 비공식적 협력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느껴요. 예전에는 같은 현장에서 같은 것을 보고 듣는 것만으로도 하나로 엮이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았는데 말이죠.

사실 저와 동료들은 ‘일을 하기 위해’ 만난 사이에요. 옛날엔 방송을 잘 못하면 욕을 하고 싸웠어요. 일에 대한 자부심이 굉장했고, 방송을 하기 위해 이 조직에 모였다는 자의식이 강했지요. 내가 여기 있는 이유는 좋은 사람으로 평가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기를 끌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보다 훨씬 더 중요한 뭔가가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고 그걸 위해서 기꺼이 싸울 마음도 있었던 겁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서로 싸우지 않게 됐어요. 행여 상대의 마음을 상하게 해서 불편한 관계를 만들거나 나중에 자신의 인사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주게 될까봐 적당히 예의범절을 갖추는 사이가 된 거지요. 그렇다보니 회사에 있는 시간이 치열하게 자아를 실현시키는 시간이 아니라 무의미하지만 견뎌야 할 시간으로 변하는 거예요. 누굴 존경하는 마음도 없고, 그 사람을 위해 싸울 마음도 없고 그냥 ‘웬만큼 좋은 사람’이 되어가더라고요.

이제는 술자리가 있어도 안 가게 돼요. 어떤 사람이 술에 취해 무릎을 꿇고 “부장님, 사랑합니다!”라고 고백하는 장면을 본 이후로요. 전 ‘정말 사랑하니?’라고 묻고 싶어졌어요. (웃음) 술자리마저도 다음 날 좀 더 편안하게 일하기 위한, 불편한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한 편리한 화해의 장이 되어버렸다고 할까요.

우리가 너무 움츠러들었다는 제 느낌이 바로 이런 거예요. 방금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분화에 대해 이야기해주셨는데, 이것이 비공식적 협력과 그들의 일상생활을 파괴하는 한편, 그 각각의 내면 역시도 크게 움츠러들게 만드는 것 같아요.

‘사회적인 것’에 대한 향수, 그런데 우리는?


김홍중 : 
저는 회사 생활을 안 해봐서 잘 모르겠지만 듣기에는 끔찍하게 느껴지네요. 어쨌든 방금 말씀하신 내용은 세넷이 전형적으로 문제 삼고 있는 부분인 것 같아요. 세넷을 비롯한 많은 사회과학자들이 강조하는 ‘사회적인 것(the social)’이 대체 무엇인지, 자세히 이야기해 봅시다.

유럽 전통에서 ‘더 소셜’이라는 말은 원래 모여서 논다는 의미의 ‘사교’에서 시작되었다가 점차 국민국가(nation-state) 혹은 주민(population)을 지칭하는 것으로 바뀌어 갔습니다. 현재 한국에서는 사회라고 하면, ‘한국 사회’, ‘미국 사회’처럼 국가 외의 무엇을 잘 떠올리지 못하지요. 그런데 이런 의미와는 다른, ‘차원(Dimension)’으로서의 ‘더 소셜’이 존재합니다.

이것을 이해하려면 정신분석학을 거꾸로 생각하면 쉬울 것 같습니다. 정신분석가들은 어떤 사람의 행동이나 꿈을 ‘당신 무의식 속에 존재하는 어떤 욕망’으로 설명하려 합니다. 이에 비해 사회학자의 설명은 이렇습니다. A가 자살을 했는데 거기엔 실연이라든가 가난이라든가 하는 개인적 차원의 이유가 있었지만, 통계적으로 보니 사회라는 차원이 개입해 있는 겁니다. 에밀 뒤르켐은 개인의 자살에 대해, 그 사람이 살고 있는 사회의 결합력이 낮아서라는 이유를 제시했습니다. 다시 말해 사회가 그를 자살하게 만드는 원인이 됐다는 것이죠. 한편 부르디외는 어떤 사람이 가지고 있는 취향, 즉 트로트를 좋아하는가 클래식을 좋아하는가 같은 문제를 계급으로 설명했고요.

우리가 그 인과관계를 인지하지 못하고 살지만, 우리의 행위나 심성이나 삶의 형식이나 미학적 취향 등을 결정하는 객관적인 차원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등장한 것이 바로 이런 종류의 사고방식이고 사회학이라는 학문입니다. 재미있는 건 당시에 함께 등장한 것이파스퇴르의 미생물학이었다는 거예요. 보이지 않는 박테리아가 우리를 공동 운명체로 만들어 주는 메커니즘이 발견된 동시에, 사회라는 것이 우리를 공통의 운명으로 엮어주고 있다는 시각이 19세기 말 등장하게 된 겁니다.

사회 보험 제도도 이때 나왔습니다. 보험이 있기 전에는 작업장에서 일을 하다 누군가 다치면 그 사람 책임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때 노동자들에게 강요된 원칙이 ‘비 프루던트(be prudent)’, 즉 ‘조심하라’였어요. 다치면 당신의 책임이니 그만큼 신중을 가하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작업장에서의 사고는 우연히 오는 경우가 많으니까 이건 정의롭지 않지요. 그래서 19세기 후반 프랑스에서는 노동자들끼리 일정한 돈을 내서 문제가 생긴 사람들을 돕는 커다란 제도를 창출합니다. 그러니까 당시 유럽인들에게 사회는 인간의 모든 행위를 결정하는 하나의 ‘차원’이자, 박테리아처럼 보이지 않는 공통 운명이자, 문제가 생겼을 때 개인을 도울 수 있는 ‘실체’였습니다.

다시 말해 이때 사회란 “한국 사회는 ~~하다”라는 문장에 등장하는 수준이 아니라, 여기 있는 이 컵처럼 확실한 거였어요. 가령 제가 실업에 빠져 있다면 사회는 바로 느껴져요. 또 직업을 갖고 있는 중에 아이를 낳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쩔쩔맬 때도 사회가 눈앞에 나타나는 거죠. 왜냐하면 바로 돈, 지식, 기술 등 도움의 손길이 다가오니까요. 이것이 절정에 올랐던 시기가 앞서 말했던 2차 대전 끝나고부터 1970년대까지입니다. 그 전통 속에서는 어려움에 빠졌을 때 오는 도움 외에도, 정혜윤 피디가 언급했던 직업적 소명의식, 즉 직장이 개인의 삶의 근원이라는 의식 역시 강하게 존재했었어요. 이러한 유기적인 큰 그림이 유럽과 미국, 일본에서 창출되었던 거지요.

그러니까 이들 사회학자들이 말하는 ‘사회적인 것’은 없으면 바로 지장이 생기는 겁니다. 또한 세넷이 강조한 바와 같이, 없으면 자기 삶을 서사화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기도 하고요. ‘내가 스무 살에 어떠한 직업을 가졌고 시간이 지나니 기계가 바뀌었고, 몇 년 후 아이가 생겼고 퇴직 이후에는 어떻게 되었고…’, 이러한 삶의 서사가 사회적인 것과 맞물려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지금 우리가 또 세넷이 문제 삼고 있는 게 바로 이러한 것들의 용해입니다. 신자유주의, 금융 자본주의, 혹은 위험 사회 등으로 표상되는 일련의 변화가 ‘사회적인 것’이란 말에 담긴 100여년 투쟁의 결과로 만들어진 제도, 가치, 감수성 같은 것들을 녹아내리게 만들었다는 거죠.

그래서 세넷이 68세대라는 점이 더욱 인상 깊게 다가왔어요. 68혁명 세력은 기본적으로 가면을 쓰고 살아야 하는 사회라는 게 싫고 피곤했던 겁니다. 그런 문제의식에서 모든 사회 제도를 비판적으로 봤어요. 그들 중 급진적인 비전을 꿈꿨던 사람들은 복지 국가도 인간을 억압하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모든 인간을 사슬에서 풀고 원초적인 자유를 누릴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외치는 사람들에게 복지 국가는 ‘개량주의’의 산물이고 자신들을 사육시키는 또 다른 기제였지요.

그런데 <투게더>에서 세넷은 그에 대한 반성을 하고 있어요. 지금 와서 보니까 그게 아니더라는 것이죠. 68혁명 때 외쳤고 꿈꿨던 것들이 신자유주의 속에서 악몽처럼 현실화되어 있었습니다. 소중히 만들어 낸 제도가 무너지고 가족, 직장, 소명의식, 복지가 녹아내리고 남아 있는 건 홀로 살아남아야 하는 개인들이었던 거죠. 그 개인들은 안으로는 불안에 떨고 밖으로는 경쟁 논리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또한 노동 형태가 비물질 노동으로 바뀌면서 협력할 공간(작업장)은 사라져 가는데 작업 시간만 무한히 늘어나고 있고요. 노동이라는 것이 몸을 쓴 결과가 아닌 시간의 일부들이 조합되어 자본을 창출하는 방식으로 전환된 거죠. 즉 ‘투게더’를 하기 위한 물적 조건이 거의 사라진 상태입니다.

이러한 현상이 전 세계에서 보편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더 소셜’의 용해 현상입니다. 그리고 세넷은 책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용해 현상이 일어나기 전인 30년 동안(2차 대전 이후~70년대)을 그리워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인터뷰를 해보니 장인정신, 직업정신, 소명의식이 살아 있던 그 시절을 그리워하더라는 것이죠. 소박한 삶이 무너져 있는 현재, 과거의 도드라진 어떤 시점이 세넷에게는 일종의 노스탤지어적 대안으로 여겨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이런 논의를 한국으로 가져와 보면, 우리에겐 세넷과 같은 의미에서의 돌아갈 때가 없잖아요. 그 대신 지난 선거에서 다른 의미의 노스탤지어가 작동을 했던 거라고 생각해요. 우리 역시 사회적인 것이 녹아 사라진 15년을 겪으니, 강력하고 ‘솔리드’한 무언가가 필요해진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에게 있는 ‘솔리드’한 체험이 무엇일까요. 역설적으로 앞서 말했던 산업화 시기의 위계적이고 군사적인 문화, 답답하지만 안정적으로 여겨졌던 질서 같은 게 아니었을까요. 그래서 그런 것들을 대변하고 있는 사람을 (대선에서) 뽑지 않았겠나 싶어요.

정리하자면 세넷의 문제 진단은 정확했다고 봅니다. 사람은 녹아내리고 흩어져버린 사회 속에서 혼자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다시 ‘솔리드’한 무엇인가를 창출해야 한다는 문제 앞에 봉착했다는 문제의식이요. 하지만 우리에게는 ‘과연 세넷처럼 돌아갈 과거가 있는가’라는 질문이 남는 거지요.

‘걸음마부터 다시!’ 거장의 낙관?

장석준 : 역사적으로 사회에 대해 물고 늘어졌던 주요한 물음의 형태는 두 가지죠. 소시올로지(Sociology, 사회학)와 소셜리즘(Socialism), 즉 사회주의입니다. 에밀 뒤르켐이나 마르셀 모스 같은 19세기 사회학의 주요한 창시자들은 사회주의자이기도 했습니다.

사회주의와 관련해 우리가 중요하게 가져야 할 물음 중 하나가 자본주의의 대안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보통 자본주의의 대안 하면 ‘국가 사회주의’를 떠올립니다. 그게 가장 확실한 실체이기 때문이지요. 근대에 들어와 사람들은 사회라는 것을 발견하고 인식했지만 실체는 여전히 모호합니다. 김홍중 선생 같은 사회학자들이 앞서처럼 설명해 줘야 고개를 끄덕거리게 되죠. 실체라는 건 세넷의 말처럼 몸으로 느껴지는 뭔가가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사회의 실체가 모호한 데 비해 자본의 실체는 기업, 은행처럼 잘 드러나 보입니다. 국가 역시 인간이 조직적인 폭력을 사용할 때부터 계속 있어왔던 것이기 때문에 실체가 분명해요.

사회주의자들은 자본도 국가도 아닌 사회를 주도하는 실체를 만들어 내려고 했는데, 그게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실제로는 많은 경우 그 역할을 국가가 대행했어요. 그것이 우리가 역사에서 겪은 사회민주주의 복지 국가나 소련 같은 일당 독재 국가인 셈이지요. 그런데 거기서 커다란 실패가 있었고, 사회주의 국가가 자본주의 국가보다 전체주의적이었다는 사실을 인류가 확인하게 됩니다.

사회민주주의 복지 국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가령 1970~80년대 영국의 신자유주의는 단순히 대처 정부의 폭력적인 추진으로 이뤄진 게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동의했어요. 그동안 유럽의 사회민주주의 복지 국가를 지겨워했던 것이지요. 국가로부터 벗어나고 싶다는 열망을 신자유주의가 최대한으로 활용하게 됩니다. 이에 대항하여 국유화, 즉 국가가 다시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면 과연 매력이 있을까요? 스튜어트 홀은 “국가라는 늙은 수위와 결별해야 한다”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사회주의는 다시 사회로 돌아가야 한다는 뜻이지요. 게다가 이 이야기가 나올 때쯤엔 이미 신자유주의의 거센 파도가 일기 시작하며 모호하게나마 남아 있던 사회조차도 해체되어 갔습니다.

저는 세넷의 독특한 점이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적 진단은 대부분 한 가지 결론으로 나아갑니다. 복지 국가로 돌아가자는 것이지요. 그런데 세넷은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동의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다는 겁니다. 사람들이 복지 국가를 거부했던 그 문제를 풀지 않으면 복지 국가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거죠.

어쨌든 자본에 대항하여 사회가 주도하는 체제를 만들기 위해서는 사회의 모태 혹은 세포가 있어야 하는데요. 이 지점에서 세넷은 연대와 협력을 구분하고 정치적 좌파와 사회적 좌파를 구분하고 있습니다. 연대와 정치적 좌파가 뜻하는 것이 과거에 시도됐던 (국가) 사회주의와 관련된 거라면 앞으로 해나가야 할 것은 이와 다르다는 것이죠.

예를 들어 세넷은 결론에서 노먼 토머스(1884~1968)라는 사람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미국 사회당에 들어가 1928~1948년까지 여섯 번이나 대선 후보로 나섰던 인물이지요. 약간 백기완 선생 같은 사람이라고 느꼈습니다. 표를 얼마 못 받을 걸 알면서도 대통령 선거에 나가잖아요. 그런데 세넷은 노먼 토머스를 훌륭한 사람이라고 보는 것 같습니다. 자신의 정치적 권력 쟁취를 중심에 놓고 생각한 게 아니라 사회를 어떻게 재구성할 수 있는가를 고민했다고요.

최근 세넷과도 가까운 지그문트 바우만의 <리퀴드 러브>(권태우·조형준 옮김, 새물결 펴냄)를 봤더니 비슷한 의미에서 바우만은 ‘소시에타스’와 ‘코뮤니타스’를 구분하고 있더라고요. 소시에타스가 말하자면 국민국가 단위의 커다란 사회인 것 같고, 코뮤니타스는 가족 비슷한 역할을 해 줄 수 있는 조금 다른 사회를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 모태 혹은 세포가 될 수 있을까요? 힌트를 드리자면 사실 서양 역사에서 있었던 것 중 하나가 한국에도 하나 있습니다. 바로 교회입니다. (웃음) 제가 몸담고 있는 진보신당에서 진보정치 운동, 노동조합 운동의 난관 끝에 최근 중요하게 진행하고 있는 것이 ‘민중의 집’ 운동인데요. 이 운동은 스웨덴과 이탈리아에서 각각 종교적인 맥락으로 탄생했습니다.

재미있는 건 각각이 완전히 반대의 입장에서 시작했다는 사실이에요. 스웨덴의 국교는 개신교 중에서도 루터 파인데, 노동자들이 루터 파 교구 모델을 하나의 세속적인 공동체를 통해서 구현하려 한 게 스웨덴 민중의 집입니다. 이 경우 노동조합과 협동조합, 사회민주당, 진보적인 교회가 결합해 있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어요. 즉 기독교도들이 주일에만 느꼈던 공동체적 삶을 기독교도가 아니더라도, 또 주일이 아니더라도 느낄 수 있도록 만든 것이지요. 이탈리아는 정 반대였어요. 이탈리아의 국교는 가톨릭인데 굉장히 보수적이기 때문에 (노동자 민중이) 교회와 싸워야 했어요. 그래서 만든 게 민중의 집입니다. 교회와 싸우기 위해 교회를 대체할 만한 것으로 만들었다고 할까요.

그런데 이 역사가 그대로 이어진 것이 아니라, 단계를 거치며 파괴된 부분들이 있습니다. 유럽에서 신자유주의는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게 아니라 그 전 단계에 케인스주의를 따랐던 역사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거든요. 만일 앞서 말씀드린 19세기 말의 움직임(‘사회적인 것’의 발견과 실행)이 그대로 이어졌다면 누가 제아무리 신자유주의를 원해도 이뤄낼 수 없는 측면이 있어요. 그런데 그 사이에 케인스주의 체제가 실행되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신자유주의로 이행할 수 있었던 겁니다.

물론 성취가 분명 있었지요. 사회라는 것의 세포가 복지 국가 단위에서 정책적으로 관철되었으니까요. 소득을 집단적으로 결정하는 메커니즘은 분명 케인스주의 체제의 성취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얻어진 집단적 소득이 가구 단위로 나뉘면서, 2차 대전 이후 각 가정의 ‘소비 생활’은 철저하게 미국화되기 시작합니다. 저는 이렇게 미국식으로 소비가 개별화되고 난 다음 단계에서 신자유주의가 자연스럽게 ‘안착’할 수 있었다고 판단합니다.

그렇기에 세넷의 문제제기는 역사를 뒤집으려는 시도처럼 느껴지는 부분이 있습니다. 방금까지 약 200여 년간 진행되어 온 과정을 말씀드렸는데, 세넷은 그것이 시작된 19세기의 첫 번째 문제 제기로 돌아가자는 것이거든요. 원래의 모태·세포들을 복원해야 신자유주의를 복지 국가적 질서로 되돌리는 것도 가능하다고, 한 명 한 명의 사회성을 재건해야 사회주의 국가도 가능하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이것은 주류 좌파의 정책가들이 이야기하지 못했던 부분입니다. 세넷은 ‘정치적 좌파들이 2~30년간 열심히 노력해 왔으나 그들의 이상이 실현되지 않고 있다면 뭔가 커다란 부분이 비어있는 것 아닐까?’라고 생각되는 지점을 짚어내고자 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에 맞는 대안을 제출하려면 지금까지 소외됐던 ‘손과 발’에서부터 어떻게 협력할지를 다시 배워야 한다고 말이지요.

그렇기에 세넷은 대단히 비관적입니다. 걸음마부터 다시 배워야 한다는 얘기니까요. 그러나 반대로 대단히 낙관적이기도 합니다. 협력을 철저히 기술이라고 보고 있기 때문이지요. 기술은 천성이 아니라 배워야 하는 거니까, 우리에게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얘깁니다. 따라서 <투게더>는 매우 파우스트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희망적인, 상반된 느낌을 갖게 하는 책입니다.

‘스마트폰으로 살아가는’ 시대, 협력은 가능한가?

김홍중 : 말씀하신 맥락에 한 가지를 덧붙이고 싶습니다. 프랑스 혁명 당시 구 제도를 무너뜨리려 하면서 기존에 있던 길드를 포함한 모든 종류의 조합들, 지방의 교회 공동체들도 함께 일소시킨 경험이 있어요. 그런데 말씀하신 대로 ‘사회성’이라는 게 뿌리내리는 토대는 바로 그런 것들입니다. 우리 역사에서 보면 친족 모임이나 마을의 두레, 품앗이, 계모임 등도 있었죠.

그런데 현 시점에는 또 다른 것들이 나타나는 듯합니다. 예를 들어 예전에는 사회가 한국, 일본, 대만이라는 국민국가 ‘내부’에 있었다면 지금은 서울과 타이베이, 도쿄를 가로지르는 삼각형도 존재합니다. 자본과 노동의 교류도 있고, 인터넷을 통한 커뮤니케이션 공간도 실재하고요. 소위 말하는 글로벌한 사회라는 겁니다. 그래서 고민해야 할 것이 늘어났습니다. 계모임 같은 것을 활성화시키는 과제와 동시에 국제적인 영역에서 새로 생겨난 ‘사회적인 것’을 어떻게 다루고 살아낼 것인가의 문제가 동시에 제기되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세넷은 후자에 대해서 별 언급을 안 하고 있어요.

그리고 또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세넷의 휴머니즘입니다. 협력을 사람끼리의 협력에만 국한시켜서 얘기한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그런데 그가 중요한 예로 들고 있는 음악 연주 역시 지휘자나 다른 연주자들하고의 교통이기 이전에 악기를 다루는 손과 악기와의 교통이잖아요. 이를테면 저는 지금 마이크를 들고 얘기하고 있으며, 말씀드리는 생각에 크나큰 도움을 준 건 컴퓨터였습니다. 적어도 20세기 후반 이래 인간의 몸은 ‘몸’으로 따로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사물들과 복잡하게 얽혀 있어요. 이 장소에는 30여 명의 인격과 생각을 가진 신체만 있는 것 같지만, 각각의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물질적으로 추적해 보면 여기에 담을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사물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게 아닐까요?

저는 이 부분을 세넷이 다소 낭만적으로 다루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을 갖고 있습니다. 손의 소외와 사물들과의 연대-연대란 말이 다소 거창하지만-를 어떻게 이뤄나갈 것인가 역시 현 시점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이니까요. 사람들이 사물 속에서/사물과 어떻게 관계 맺고 있으며 사람이 테크놀로지를/테크놀로지가 사람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가의 문제를 더 깊이 생각해 줬다면 하는 아쉬움이지요.

청중 질문 : 제게 조카 두 명이 있습니다. 한 명은 중학교에, 다른 한 명은 고등학교에 다닙니다. 평범한 10대인 이들은 스트레스를 푼다는 명분으로 컴퓨터나 스마트폰 게임을 즐깁니다. 너무 깊게 빠지는 것 같아 걱정스러워 했더니, 게임 속에서 무작위로 사람을 만나는 게 재미있더라고 하더라고요. 인터넷 전략 게임을 하려면 방을 만들어 사람을 끌어 모아야 한다고 해요. 일단 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서 신선했어요.

그래서 긍정적으로 보면 게임이나 인터넷 속 네트워크도 기술을 기반으로 만들어지는 또 다른 사회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직접적인 건 아니잖아요? 이른바 가상공간에 쌓아 올리는 사회입니다. 그래서 한편으로 좀 걱정됩니다. 이런 것을 내재화한 아이들이 나중에 실제적 관계를 만드는 데 어려움을 겪을 것 같거든요. 게임 속 인간관계는 자기의 즐거움을 위한 것이지 더 넓은 차원의 인간애를 보장해 줄 수는 없겠지요. 두 분은 지금 어린 친구들이 기술과 맺는 관계에 대해, 그 만남으로 발생하는 또 다른 사회의 형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김홍중 : 저는 갈림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속한 분야의 용어로 말하자면 아도르노냐 벤야민이냐를 선택해야 할 순간이 왔다고 할까요. 뛰어난 인문주의자였던 아도르노는 죽을 때까지 대중문화를 인정하지 않았어요. 벤야민은 아시다시피 ‘아우라’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건 아까 정혜윤 피디가 말했던 ‘눈빛 교환’이 적절한 예가 될 것 같은데, 가장 근본적인 차원의 소통의 전율이라 할 수 있어요. 그런데 1930년대 중반, 벤야민은 이 아우라를 포기합니다. 그런 소통은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끼리만 가능하기 때문에 매우 귀족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평등을 추구하는) 현대 정치 체제에서는 구현해낼 수가 없다고요.

솔직히 털어놓으면 제 마음 속에는 “도스토예프스키도 안 읽는 사람이 무슨 생각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라는 건방진 생각과 이와 전혀 반대되는 생각이 상존합니다. 특히 요즘 후자 쪽으로 생각이 바뀌고 있어요. 전자처럼 생각하고 살면 저 혼자만 괴로워요.(웃음) 그래서 마음으로는 100퍼센트 동의하지 못하지만 머릿속으로는 80퍼센트 이상, 제 생각을 현실에 맞추어 벼려나가야 한다고 결론 내리게 됐어요. 벤야민의 길로 들어섰다고 할까요.

인간이 인간 스스로의 존엄성이나 주체성을 신뢰하기 시작한 역사는 서구의 경우에도 400년 정도밖에 안 됐어요. 물론 그리스 휴머니즘의 역사도 있지만 그 이전에 인간은 언제나 신 밑에 있었고, 더 이전에는 거대한 자연 앞에 눌려 있었지요. 그리고 현 시점 역시 인간이 세상의 중심이고 동물보다 나은 대단한 존재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면 이해하지 못할 무수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 중 하나가 방금도 말씀드린 사물과 인간의 관계입니다. 우리가 인정을 못할 뿐이지 저와 여기 와 있는 여러분은 커다란 시스템이 사용하는 하나의 단말기에 불과할 지도 몰라요.

태어나자마자 미디어를 접하고 가상공간의 현실과 그 바깥을 오갈 수밖에 없는 요즘 아이들에게서, 또 다른 소통의 가능성을 빼앗아 버린다면 과연 상상할 수 있는 미래라는 게 있을까요? 그래서 저는 벤야민의 길을 긍정하기로 했어요. ‘눈빛의 교환’이나 아우라 같은 원형만을 찾는다면 앞으로 사회성이라는 것은 기대할 수 없을 겁니다.

그렇다면 방법은, 인간의 완전한 기계화라는 상황으로 치닫기 이전에 지속되는 지금의 경향 속에서, 사회성의 실마리를 어떻게 찾아내는가라는 질문을 물어가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그건 그 아이들의 몫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그렇게 태어나고 살아오지 않았으니까요. 본인들이 어떤 세계에 몸담고 있다면 가능성 역시 스스로 구현해야 할 것 아니겠습니까. 저는 일단은 거대한 흐름이기 때문에 80퍼센트 까지는 긍정하고, 나머지 부분은 비판적 의식을 갖고 맹렬하게 노려보고 싶어요. 하지만 가능성은 믿습니다. 아직 이렇게 된 지 얼마 안 됐기 때문에 부정적으로 보이는 것이지 사회성의 실마리는 언젠가 분명히 나타날 거라고 봅니다.

덧붙여 함께 물어야 할 또 다른 중요한 질문은 생명의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도쿄 앞바다에 떠오른 거대한 가자미 떼, 길에서 살아가는 개미들의 숫자 따위가 자연스러운 조건이 아니라 ‘사회적인 것’이란 의식을 가져야 해요. 매미도 일종의 시민이라고 생각해 보세요. 여름에 매미가 울지 않으면 우리에게 문제가 생긴 거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이제 민주주의가 아니라 ‘생주주의’라는 말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사물뿐 아니라 이러한 미물들 역시 우리 삶에 굉장히 깊숙하게 얽혀 들어와 있다는 인식 속에서 사회가 발생하는 거거든요. 이미 인간들끼리만 모여서 산다는 인식으로는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 됐습니다.

장석준 : 저 역시 확정적인 결론이 있는 건 아니지만 거장의 권위에 짓눌릴 필요는 없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세넷은 SNS에 부정적입니다. 지그문트 바우만도 마찬가지에요. 그는 부정적이다 못해 ‘대안을 찾는 데 방해된다’는 이유로 강하게 비판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경고는 귀담아 들을 여지가 있지만 모두 다 받아들일 필요는 없죠. 거장이고 위대한 사상가들이지만 한편으로는 할아버지들이고, ‘꼰대’일 수도 있어요. (웃음)

현실의 예를 들면, 요 몇 년간 스페인 등지에서 일어난 양상은 SNS가 예측하지 못했던 지평을 열어준 측면이 있습니다. SNS를 통해 젊은이들이 자발적으로 마드리드 광장에 모여 1~2년간 천막 농성을 펼쳤고, 경제 위기라는 상황과 맞물려 대안적 운동으로 발전했지요. 많은 분들이 ‘오큐파이 운동’하면 월스트리트를 떠올리는데, 오히려 중심은 미국이 아니라 스페인이었습니다. 이 운동에서 잘 살펴봐야 할 것은 불씨는 SNS 속에서 당겨졌는데 운동은 바깥에서 이뤄졌다는 점입니다. SNS ‘내’의 사회성뿐만이 아니라 그것을 기반으로 하여 바깥으로 펼쳐져 나가는 새로운 사회성 역시 존재하는 것이지요. 거장들의 시선이 놓친 지점이라고 봅니다. <투게더>가 <장인>(김홍석 옮김, 21세기북스 펴냄)에 이어 ‘호모 파베르 프로젝트’ 3부작의 두 번째 작품인데, 세 번째 책에서 도시 이야기를 하겠다고 했어요. 그때 이 부분에 대한 좀 더 깊은 사색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가면을 써라, 사회를 이분(二分) 하라!

장석준 : 마지막으로 우리가 세넷의 이야기를 받아들임에 있어 실수하기 쉬운 부분에 대해 말하고 싶습니다. 세넷은 우리에게 옆에 있는 타인과 속을 터놓고, 솔직하고 끈끈한 관계를 맺으라고 조언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 정반대입니다. 협력을 재건하기 위해 오히려 가면을 쓰고 기술을 습득하라고 이야기합니다.

이 대목에서 <브이 포 벤데타>라는 영화가 생각났습니다. 세계 3차 대전 이후 반대자를 다 잡아 가두는 파시즘적인,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평온한 일상을 살아가는 사회를 그리고 있지요. 주인공 브이(V)는 체제의 전복을 시도하는 테러리스트인데 가이 포크스의 가면을 쓰고 다녀요. 온 몸이 불에 타 흉측한 모습이기 때문에 가면을 통해 신체를 가리는 건데, 끝까지 자기 얼굴을 보여주지 않지요. 그는 가면을 통해 소통하고 가면을 통해 혁명을 도모합니다. 브이가 죽은 뒤 혁명은 성공하게 되는데, 마지막 장면에서 수많은 군중들이 똑같이 가이 포크스의 가면을 쓰고 등장해요.

이 은유가 세넷의 메시지와 비슷하지 않나 싶습니다. 우리가 스스로에게 솔직해지는 노력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100퍼센트의 투명한 자신을 보이려는 노력을 게을리 해서 협력이 안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에 대한 강박을 가질 때 협력에 실패한다고요. 인간은 그런 식으로 관계 맺을 수 없다고 말하는 게 아닐까요? 오히려 내가 선택한 가면으로 일종의 ‘놀이’에 임해야지만 사회의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보는 것 같아요. 이처럼 세넷의 이야기는 역설을 머금고 있고, 그 역설을 잘 파고들어야만 반대 방향의 함정에 걸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

세넷이 <장인>에서 자신의 정신적 뿌리라고 직접적으로 언급하기도 한 19세기의 존 러스킨이나 윌리엄 모리스 같은 사회주의자들은 중세 시대 수공업적 전통의 복권을 이상으로 삼았습니다. 그런 생각이 나중에 길드 사회주의로 발전했고요. <투게더>와 <장인>에서의 세넷은 그런 생각을 21세기적 맥락에서 되살리려는 노력을 보여줍니다.

그러한 세넷의 결론에 공감하느냐 아니냐의 질문을 우회하여, 제가 잠정적으로 동의하는 결론에 대해 말씀드릴게요. 저는 20세기 후반의 노동 이론가이자 생태주의자인 앙드레 고르가 도달한 결론에 동의합니다. 고르는 사회를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현대 사회에서 도저히 되돌릴 수 없는, 계속해서 전문화되는 부분은 남겨 두고 나머지 부분을 20세기 이전의 삶의 자율성을 복원시키는 공간으로 되돌려 나가야 한다고 했어요.

쉽게 말해 그는 노동 시간 단축을 중요시했습니다. 인간성과는 동떨어져 존재하는 공간에서 쓰는 시간을 최소화하고, 나머지 시간에 다른 공간에서 전혀 다른 사회를 만들어 나가자고요. 자본주의가 파괴했던 것을 되살리는 사회, 공동체도 만들고 협동조합도 만드는 사회 말입니다. 두 영역을 가르는 벽을 설치하자는 이런 주장을, 그는 ‘이중 사회론’이란 말로 표현했습니다.

여기에도 여러 반론이 있을 수 있겠습니다만, 제가 보기에는 근대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바람직한 결론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지금 발을 딛고 있는 현실 속에서 끝없이 고민해 나가야겠지요.

정혜윤 : 제가 싫어하는 말 중 하나가 “나 원래 그래”라는 말이에요. 거짓말 같아요. 아무리 어려워도 좀 더 나은 사람이고 싶은 욕망이 없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과연 ‘네가 보는 그대로가 바로 나야’라는 게 진정성일까요? 저는 진정성이란 게 있다면 오히려 ‘너를 통해 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를 묻는 관계들의 탄생과 창조에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우리가 오늘 이야기한 ‘소셜’이 가능하다면, 바로 이런 것들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세넷 역시 ‘너와의 협력을 통해 내가 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를 묻고 있다고 느꼈어요. 두 분 모두 긴 시간 말씀 감사합니다.

/안은별 기자(=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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