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정치이론의 역사적 이해

국제정치이론의 역사적 이해

 

 

 

I. 국제정치학의 기원

 

오늘날 국제정치는 서구, 특히 미국중심의 규범과 제도에 의해 운영되고 있으며, 국제정치의 이론 역시 이러한 역사를 반영하고 있다. 종교적 권위와 세속적 권력이 미분화된 서구의 중세적 질서는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을 거치면서 무너지고, 30년 종교전쟁(1618-1648)의 강화조약인 베스트팔렌조약은 대내적으로 영토 내에서 최고의 권위를 주장하고 대외적으로는 주권의 평등을 전제하는 주권국가들을 국제정치의 주체로 확립하였다.

 

이와 같은 서구의 근대국제체제는 영토를 단위로 하는 정치단위를 근간으로 하였으며, 문명내의 정치단위들간의 평등을 인정하지 않는 이슬람이나 중국적 국제질서와는 상이한 것이었다. 지속적인 전쟁과 합종연횡을 거듭하는 세력균형의 기제로 인해 16세기 초 약 500개에 달하던 서구의 영토국가는 일차대전 이후에는 30여개 이하만이 존재하게 된다. 국가가 전쟁을 수행하고 전쟁이 국가를 형성한다는 틸리의 명제는 서구의 근대국제체제의 역사를 단적으로 포착한 것이다.

 

내부적으로 치열한 경쟁을 통해 효과적인 정치, 경제체제, 특히 영토 내에서 합법적 폭력의 정당한 독점을 확립하고, 그에 기초한 군사적 능력을 가진 단위만이 생존하게 되는 한편, 서구의 개별 국가들은 16세기 이후 지속적으로 비서구지역으로 팽창하여 19세기 후반의 심화된 제국주의적 경쟁을 통해서는 전세계적인 차원에서 비서구적인 국제질서를 붕괴시킨다. 아편전쟁에 의해 “개방”되는 중국적 국제질서가 서구의 팽창의 마지막 제물이었고, 이에 따라 중국적 천하질서에 편입되어 있던 조선에게도 근대적 국제질서의 명분이 서구제국과 서구를 모델로 근대화를 추구하던 일본에 의해 강요되었다.

 

주권국가간의 평등이란 서구의 근대국제체제의 특징은 서구 국가들에게만 적용된 것으로 서구의 식민지, 반식민지에게는 적용되지 않았던 원칙이었다. 서구 국가들간의 전통적인 세력균형이 비서구지역에서의 제국주의적 경쟁과 맞물려, 각각 독일과 영국을 중심으로 하는 두 개의 적대적 동맹으로 경직화되었고, 결국에는 일차세계대전으로 귀결되었다. 일차대전으로 인해 오스트리아-헝가리, 러시아, 터키와 같은 제국들이 해체되고, 독일제국은 해군과 식민지를 잃었다. 주권국가간의 평등이란 서구 국제법의 원칙은 전쟁과 비밀동맹을 통한 서구 국제정치의 권력정치적 관행을 집단안보와 민족자결주의를 중심으로 개혁하고자 했던 윌슨주의에 의해 고양된다. 그러나, 중국에서 5.4운동의 실패, 한국에서 3.1운동의 실패에서 드러나듯이, 민족자결주의는 일차대전의 패전국들이 지배하던 지역의 민족들에게만 제한적으로 적용되었다. 주권국가체제가 전세계적으로 확산된 결정적 계기는 이차대전에 의한 서구의 식민체제의 약화와 국제연합에 의해서였고, 이 과정은 후일 제3세계라 지칭되는 지역의 탈식민화와, 적어도 명목상으로, 독립적인 주권국가의 탄생에 의한 것이었다.

 

단일한 분과학문으로서 국제정치학의 발전은 서구국제체제의 세계적 확산과 궤를 같이 하였고, 이 과정을 주도한 미국에서 주로 이루어졌다. 일차대전의 참화는 전쟁을 주기제로 하였던 기존의 서구지역에서의 세력균형의 부정과 평화에의 염원을 불러 일으켜, 국제법과 기구, 세계여론 및 경제적 상호의존에 기반한 이상주의 국제정치이론을 탄생시켰다. 국제연맹의 실패와 대공황으로 인한 국제무역, 금융질서의 붕괴, 그리고 경제적 민족주의의 부상과 이러한 혼란을 뒤이은 이차대전의 발발로 전간기(戰間期)의 이상주의를 비판하는 현실주의 국제정치이론이 국제정치학의 발전을 주도하게 된다. 세계 최초의 국제정치학 석좌교수인 카(E. H. Carr)가 1939년 저술한 『20년의 위기(The Twenty Years’ Crisis)』는 전간기의 이상주의에 대한 신랄한 비판으로, 냉전의 권력정치적 현실을 배경으로 발전되는 미국의 현실주의 국제정치이론의 성립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I.1. 서구 주권국가체제의 역사적 변화

 

영토 내에서 폭력의 정당한 독점과 최고의 독자적인 정치적 권위를 주장하는 주권국가의 등장은 중세의 보편적 정치질서와 봉건제의 지역적 경제질서에 맞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웨스트팔리아조약은 왕정, 공화정, 자유시 등 당시의 다양한 정치단위의 성격에 상관없이 영토의 실제적 지배주체에게 종교를 선택할 권한을 부여하고, 그들간의 국제법적 평등을 규정하였다. 웨스트팔리아조약에서 명문화되는 주권국간의 평등이란 큰 틀은 현재의 국제관계의 기본적 규범체계로 작동하는 것이나, 그 실제에 있어서는 서구와 비서구지역간의 관계에서는 물론 서구지역에서도 상당한 변화를 겪어왔다.

 

『민족주의와 그 이후(Nationalism and After)』에서 카는 이차대전에 이르기까지 서구지역에서의 주권국가체제의 역사적 변화를 국가의 정당성의 근원, 정치와 경제의 상관관계를 중심으로 부분적으로 중첩되는 세 단계로 고찰하였다. 1단계는 중세의 기독교질서의 붕괴에서부터 프랑스혁명과 나폴레옹전쟁에 이르는 시기, 2단계는 프랑스대혁명에서 일차대전, 그리고 3단계는 1870년대부터 이차대전에 이르는 시기이다.

 

민족주의의 1단계는 “영토에 따라 종교가 있다”는 원칙에 의거한 민족국가와 민족교회의 수립을 기원으로 하며, 자신을 국가와 동일시한 루이14세의 경우에서 알 수 있듯이, 민족의 실체는 군주였다. 이 시기의 외교는 궁정외교였으며, 전쟁은 용병을 동원하여 이루어졌다. 실체적인 민족이자 주권체인 군주의 절대적인 권위는 왕권신수설에 의해 정당화되었고, 이 시기 조약의 체결과 이해는 군주의 양심과 명예에 달린 것이었다. 이 시기의 국가경제정책은 국내외적으로 군주의 부를 증진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중상주의였다. 무역은 국가 자체인 군주의 부를 증진시키는 것으로 장려되었으며, 부는 다시, 용병을 동원하는 전쟁수행능력의 기반이었다. 대내적으로 중상주의는 봉건제의 지역적 유제를 타파하고 영토전역에서 단일하고 통합적인 국가경제를 형성하고자 했으며, 무역과 제조업에 대한 국가의 규제를 목적으로 했다. 절대주의 시대의 중상주의는 부의 총량을 정태적으로 제한적으로 파악했기 때문에, 일국의 부의 증가는 곧 타국의 부의 감소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자국의 시장과 부를 확대하기 위한 전쟁은 중상주의정책의 목적이며 동시에 수단이었다.

 

나폴레옹전쟁에서 일차대전에 이르는 민족주의의 2기는 유럽대륙에서 유럽국가들 간의 전면전이 부재했던 긴 평화의 시기였다. 군주와 동일시되었던 민족은 프랑스대혁명과 근대적 민족주의의 등장으로 인민 혹은 국민전체로 확대되었다. 왕권신수설은 주권재민설 혹은 인민주권설로 대체되었고, 군주개인의 이해와 명예에 의한 종래의 국제관계도 인민이나 국민전체의 이해에 기반한 민족주의에 따라 이루어지게 되었다. 민족국가들간의 첨예하고 무제한적인 전쟁을 특징으로 하는 20세기 전반과는 달리 19세기의 민족주의는 과거 절대주의시대보다 평화적인 국제관계를 창출하였는데, 이는 민족주의의 “민주적” 성격과 산업혁명의 확산에 의한 새로운 국제경제질서의 부상에 의한 것이었다.

 

인민주권설의 혁명적 이념은 그 실제에 있어 자산가계층의 정치참여만을 허용하였으며, 마르크스가 공산당선언에서 천명하듯, 참정권이 거부된 노동자에게는 조국이 없는 상황이었다. 자유민주주의의 이념이 민족주의를 제한하였고, 자유민주주의의 주체인 각국의 자산가계급은 자유방임론과 재산권의 보호란 공동의 이념과 이해로 결합되어 있었다. 즉, “민주적 민족”의 실체적 주체인 각국의 자산가계급은 당시의 시장경제발전의 주역이었으며, 이들간에는 경제적 국제주의에 대한 합의가 존재했던 것이다. 카에 의하면, 이러한 합의 혹은 정치적 민족주의와 경제적 국제주의의 조화는 두 가지 착각에 의해 가능했다. 하나는 당시의 경제질서가, 실제로는 영국시장의 개방에 근거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진정으로 국제적이라는 믿음이었다. 다른 하나의 착각은 정치와 경제의 분리에 대한 믿음이었다. 당시의 국제경제질서는 영국의 시장 뿐 아니라 영국을 중심으로 하는 국제금융질서에 의해 운영되었고, 국제경제질서에서 영국의 구조적 힘은 해군력의 압도적 우위란 영국의 군사력에 근거한 것이었다. 즉, 영국패권이 19세기 국제질서의 근간이었으나, 이는 자유민주주의의 이념과 제한적 정치참여, 그리고 자유방임주의에 의해 인식되지 못했다.

 

1870년대 독일의 사회복지정책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는 민족주의의 3기는 국제주의의 파산과 민족주의의 파국적 성장으로 양차 세계대전을 초래했다. 이 시기의 민족은 기존의 자산가계급 뿐 아니라, 산업화와 도시화, 노동계급의 정치적 조직화, 보통의무교육의 확산 등으로 새로이 등장한 대중을 포함하였다. 민족의 “사회화”로 종래의 자유민주주의는 대중민주주의로 대체되었고, 자유방임주의는 경제적 민족주의로 전환되어 정치와 경제의 결합이 이루어졌다. 사회화된 민족의 이익에 복무하는 복지국가의 등장으로 다수의 국민경제들의 관계가 이전의 단일한 국제경제질서 대신하게 되었다. 사회화된 민족과 경제적 민족주의의 결합은 외부 노동자의 유입을 막는 폐쇄적 이민정책과 징고이즘과 같은 배타적 민족주의를 배태하였다. 다른 한편, 민족자결주의에 힘입은 민족국가의 지리적 확장은, 서구 자유민주주의의 이념적 전통이 아니라, 인종과 언어에 기반한 약소국들을 양산하였고, 이러한 약소국들의 대내외적 취약성은 국제관계의 불안정성을 높이고 국제경제질서의 해체를 촉진하였다.

 

 

2. 카의 국제정치이론: 20년의 위기

 

현대국제정치학의 선구적 연구인 카의 『20년의 위기』는 지식 사회학적 시각과 19세기 국제질서에 대한 정치경제학적 시각에 기초하여, 전간기의 이상주의(utopianism)를 비판하고 이의 극복을 제안하였다. 카에 의하면, 국제정치학의 발생은 국제정치의 대중화에 기인한 것이다. 일차대전 이전 국제관계는 외교관과 군인의 고유한 업무였다. 일차대전은 일반대중을 국민군으로 동원하고 대중의 정치세력화를 촉진시켰으며, 전후처리에서 비밀조약의 반대와 민주주의의 확산을 원칙으로 삼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역사상 유례없는 총력전의 참화는 평화에 대한 대중의 열망을 불러 일으켰다. 카의 민족주의 단계론의 시각에서 보자면, 민족의 사회화로 인해 국제관계가 사회화되고 이에 따라 국제관계의 병폐를 치유하는 국제정치학에 대한 대중적 요구가 생겨난 것이다.

 

이와 같은 태생적 환경은 국제정치학을 이상주의로 경도시켰다. 이상주의는 자유주의에 대한 신념에 근거하여 정치적 당위나 목적을, 현실주의는 인과관계의 결정론에 근거하여 현실의 분석을 추구한다. 양자의 차이는 이론을 추구하는 지식인과 실제를 중시하는 관료, 이념적 전망에 복무하는 좌익과 현실에 안주하는 우익, 절대적인 도덕율에 대한 윤리적 강조와 정치적 현실의 상대주의의 대조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카에 의하면, 정치는 현실과 당위의 숙명적 이중성(fatal dualism)을 지니고 있으며, 따라서 온전한 정치학 역시 권력정치적 현실과 당위적 전망의 이상을 동시에 지녀야 한다. 현실보다 목적을 앞세우는 이상주의나 전망 없이 권력정치의 결정론과 냉소주의에 함몰된 현실주의 모두 불완전한 정치학이었다.

 

이상주의와 현실주의의 결함을 모두 보여준 것이 1919에서 1939년에 이르는 20년 위기의 본질이었다. 1929년 대공황의 발생을 계기로 하여 20년 위기의 전반 10년은 현실과 유리된 이상주의의 시기였고, 후반 10년은 현실을 극복할 그 어떤 전망도 획득하지 못한 현실주의의 시기였다. 전자에서 후자로의 추락으로 이 시기는 더욱 더 비극적이었다. 카에 의하면, 일차대전의 전후처리를 주도한 윌슨주의는 19세기 영국의 패권논리였던 “이익조화의 원칙”의 시대착오적 적용이었다. 이익조화의 원칙은 산업혁명으로 인한 정치경제적 변화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조화란 자유방임주의의 정치적 적용은 최대다수의 행복추구란 공리주의이고, 개인적 수준에서의 공리주의가 국가간 관계에 적용되어, 각국의 이익추구는 자연적으로 공동의 이익실현에 이른다는 “이익조화의 원칙”이 탄생하였다.

 

카의 민족주의 단계론에서 보자면, “이익조화의 원칙”은 민주적 민족의 시기를 이끈 영국패권의 정당화논리였고, 그 경제적 기반은 19세기 자본주의의 지속적 성장이었다. 19세기 후반의 제국주의적 경쟁으로, 이익조화의 원칙은 자본주의적 발전의 적자들에게만 적용된다는 사회적 진화론으로 보완되지 않으면 안되었다. 19세기말에 이르면, 국제경제의 지속적 성장에 의한 이익조화의 원칙은 국제경제의 성장의 한계와 경제적 민족주의의 대두로 경제적 이익의 상충이란 현실에 의해 부정된다. 이익의 현저한 상충과 민족의 사회화란 현실을 무시하고, 국제법과 기구, 여론에 의해 평화를 추구한 일차대전의 전후처리는 필연적으로 붕괴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카의 핵심적 주장이다.

 

국제관계에서 권력은 경제력, 군사력, 여론 혹은 도덕적 권위의 세 가지 요소로 나누어 분석할 수 있으나, 본질적으로는 분리될 수 없는 전체라고 카는 주장한다. 이러한 명제에 근거하여 그는 1920년대의 국제관계에서 경제력, 군사력, 여론의 힘이 밀접히 연관되어 작동하였음을 보여주고, 이러한 권력정치적 현실을 간과한 이상주의를 통렬히 비판한다. 『20년의 위기』는 카가 이후에 자인하듯, 이상주의의 비판에 지나치게 편중되어, 자신이 주장한 이상주의와 현실주의의 종합과 극복이란 정치학의 본연적 과제를 제대로 다루지 못했다. 이 점이 이후 카가 현실주의의 대표적 이론가로 각인되는 원인이다. 하지만 카가 현실주의의 극복이란 과제를 완전히 도외시 한 것은 아니다.

 

『20년의 위기』의 결론에서 카는 현실적인 힘의 단위가 새로운 국제질서를 수립할 것이라 주장하며, 이차대전을 통한 서구의 분열과 약화, 그리고 이러한 서구에 강제될 미국패권의 부상을 예견한다. 한편, 국제질서는 힘과 함께 도덕성 혹은 권력에 대한 합의를 필요로 하는 것이라 강조하며, 그는 경제적 민족주의 때문에 상충되는 각국의 이익을 화해(reconciliation)시킬 대안으로 복지국가간의 국제적 유대에 기초한 경제의 재건을 들고 있다.

 

대공황으로 인해, 종래 자유방임주의의 본영이었던 영국은 물론 새로운 경제적 대국 미국에서조차 뉴딜을 통해 진행되고 있는 복지국가의 혁명–경제적 이익을 실업의 해소란 사회적 목적에 종속시키는–을 국제적 차원에서 지속하고 제도화할 것을 주창한 것이다.

 

 

 

II. 국제정치학의 학제화와 주요 패러다임

 

1939년 카가 예견한 데로, 이차대전은 분열되고 약화된 유럽에 강제되는 미국패권의 부상으로 이어졌다. 비록 고전적 자유방임주의의 복구를 목적으로 하지는 않았으나, 브레튼우드체제는 무차별원칙에 근거한 자유무역과 안정적 국제통화체제의 건설을 목표로 하였고, 이는 대공황과 양차 세계대전으로 피폐한 유럽이 추구하고 있었던 경제적 민족주의의 폐기를 요구하는 것이었다. 이차대전으로 시장경제의 활력과 성장에 대한 믿음을 회복하고, 증대된 생산력의 시장을 필요로 하였던 미국은 복지국가의 국제화란 카의 기대를 추구할 의도가 없었다.

 

전세계적 차원에서 다자주의적 국제경제질서의 건설과 국제연합에 의한 이차대전 후의 새로운 국제질서의 수립이란 미국의 패권구상은 소련의 거부로 인해 “자유세계”에서의 미국의 패권수립으로 이어지고, 소련진영과의 냉전이 전후세계를 규정하게 된다. 전세계에 군사기지를 건설하고, 핵무기를 독점하며, 군사동맹을 건설하는 냉전의 초기에, 윌슨주의는 물론 소련과의 협력을 기대했던 루즈벨트의 전시외교도 역시 이상주의의 이름으로 부정되기에 이른다. 미국이 행하고 있었던 권력정치의 현실을 분석하고, 그 처방을 제시하는 것이 패권국가 미국의 국제정치학이 담당하는 본연적 임무로 등장했다. 이에 따라, 국가간의 본연적 갈등과 권력투쟁을 강조하는 현실주의가 미국에서 국제정치학의 학제화를 주도하게 된다.

 

미국 국제정치학의 변천은 흔히 세 단계의 대논쟁(the great debate)을 통해 파악되는데, 이상주의에 대한 현실주의의 승리가 제1의 대논쟁이다. 제2의 대논쟁은 1950년대 이후의 행태주의를 중심으로 한 국제정치의 과학적 방법론의 추구로 빚어지는 전통주의 대 과학주의의 논쟁이다. 1970년대 이후 이상주의의 전후 계승자라 할 자유주의 혹은 다원주의와 현실주의가 모두 실증주의적 방법론을 채택하여 신현실주의와 신자유주의 제도론으로 발전하게 된다. 이와 같은 실증주의적 주류이론에 대한 도전이 1980년대 이후 제3의 대논쟁이다. 대논쟁은 기본적으로 현실주의 패러다임에 대한 자유주의와 글로벌리즘의 도전이라 볼 수 있다. 국제관계의 주요 행위주체에 대한 인식의 측면에서 보면, 현실주의가 국익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단일하고 합리적인 국가를 중심으로 한 분석을 하는 반면, 자유주의는 국가가 단일한 행위주체가 아니라 정부와 비정부, 사회적 집단 등 국가의 구성요소가 독자적인 행위주체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이에 따라, 자유주의는 외교정책과 초국가관계에서 국가내부의 , 그리고 국가간, 비국가 행위주체간의 갈등, 협상, 연합과 타협을 중요시한다. 한편, 마르크시즘, 종속이론, 세계체제론 등을 포함하는 글로벌리즘은 전지구적 규모에서 작동하는 자본주의체제 자체를 분석의 대상으로 한다. 글로벌리즘의 시각에서 보면, 국가는 기본적으로 계급이익을 대변하는 조직이고, 국제관계는 지구적 규모에서의 계급적 지배가 문어발처럼 다양한 양식으로 전개되는 것이다. 글로벌리즘의 문어이미지에 비해, 현실주의는 당구공처럼 단일한 행위주체인 국가의 서로 경쟁하며 국익을 추구하는 이미지로 표현될 수 있으며, 자유주의의 국제관계는 다원적 행위주체의 협상과 타협이 거미줄처럼 얽힌 것으로 볼 수 있다.

 

현실주의의 국제관계를 국가안보를 중심으로 한 국가간의 갈등과 경쟁이 반복되는 장으로 본다. 이런 입장은 국익이 객관적으로 존재하며, 이를 정확히 파악하고 실현하는 것을 정책가의 과제로 보는 인식을 전제하는 것이다. 자유주의의 경우 다원적 이슈와 행위주체를 설정하고, 이들의 인식틀이나 역할에 의해 파악되는 이익이 국가단위의 총체적, 일반적 이익과 상이하다고 본다. 자유주의에서 보는 국제관계는 이들간의 관계에 의해 협력에 의해 갈등이 완화되는 변화, 더 나아가서는 진보가 가능한 장이다. 이에 반해, 경제적 이슈에 초점을 두는 글로벌리즘은 국제관계를 혁명적 단절 이전까지는 매우 안정적이고 일관된 계급적 지배양식이 지속되는 장으로 본다.

 

표 1. 국제정치의 주요 패러다임 비교

 

현실주의 자유주의 글로벌리즘

 

 

 

III. 국제관계이론의 전개 I: 전통적 현실주의와 그 비판

 

III.1. 모겐소의 정치적 현실주의

 

학제화가 사회과학의 다른 분과 학문에 비해 늦은 국제정치학은 이론적 선구자들은 창조하여야만 하였다. 현실주의의 이론적 선구자로는 흔히 투키디데스, 마키아벨리, 홉스가 꼽힌다. 펠레폰네소스 전쟁의 근본적 원인을 아테네와 스파르타진영의 세력균형의 변화에서 찾을 수 있다는 투키디데스의 지적은 역사를 관통하는 국제관계의 법칙으로서 세력균형에 대한 고전적 논거로 해석되었다. 정치세계의 독자성과 권력정치의 모습은 르네쌍스시대 이태리 도시국가를 배경으로 정치적 생존을 위한 군주의 독자적인 도덕율(amoral)을 강조한 마키아벨리에서 찾아졌다. 홉스의 사상에서는, 리바이어던의 창조를 정당화하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의 자연상태가 국제관계의 본질적 특징으로 주목되었다.

 

국가이성론과 관방학을 통해, 영국과 프랑스에 비해 늦은 산업화와 통합된 민족국가의 형성을 추구했던 독일의 국가주의적 전통 역시, 전후 미국의 현실주의의 지적 배경이 되었다. 이는 주로 나치의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이주한 유태계 학자들에 의해 도입되었는데, 한스 모겐소가 이런 유태계 학자들 중 대표적인 현실주의 이론가이다. 1948년에 처음 출간된 모겐소의 『국제정치학 (Politics Among Nations)』는 1970년대에 이르기까지 미국 국제정치학의 대표적 교과서였다. 신현실주의와의 대조를 위해 고전적 혹은 전통적 현실주의로 불리는 모겐소의 정치적 현실주의는 정치는 동기가 아니라 정치적 실천의 결과에 의해 평가되어야 한다는 베버의 사상을 계승하고 있으며, 냉전의 현실과 부합하지 않는 미국의 합리주의적 지적 전통과 국제질서에 대한 낙관주의의 부정을 특징으로 한다.

 

모겐소가 제시하는 정치적 현실주의의 여섯 가지 원칙은 다음과 같다. 첫째, 정치적 현실주의는 일반적으로 정치도 사회와 마찬가지로 인간 본성에 근거하는 객관적 법칙의 지배를 받는다고 본다. 둘째, 정치적 현실주의가 국제정치를 이해하는 길을 찾는 데 도움을 주는 핵심지표는 권력에 의해 정의되는 이익의 개념이다. 셋째, 정치적 현실주의는 권력에 의해 정의되는 이익이라는 주요 개념이 보편적으로 타당한 객관적인 범주라고 가정하지만 그 개념의 의미를 고정불변의 것으로 간주하지는 않는다. 넷째, 정치적 현실주의는 정치적 행위의 도덕성이 중요함을 인식하지만, 도덕적 명령과 성공적인 정치적 행위간의 불가피한 긴장 또한 인식하여, 정치적 윤리는 정치적 결과로서 판단된다고 본다. 다섯째, 정치적 현실주의는 특정한 국가의 도덕적 열망과 보편적인 도덕적 법칙을 동일시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여섯째, 정치적 현실주의는 정치적 영역의 독자성에 따라 정치적 기준에 여타의 기준을 종속시키는 독특한 지적, 도덕적인 태도를 견지한다.

 

모겐소가 상정하는 인간본성은 이기적이고 권력을 추구하는 욕구(lust for power)를 특징으로 한다. 이에 따라 국제정치는 각국이 권력으로 정의되는 국익을 추구하는 권력투쟁의 장이고, 국제정치의 이러한 권력투쟁은 보편적 도덕률 또는 여타의 비정치적 기준에 의해 규율되지 않는 독자성을 갖는다. 국제정치의 객관적 법칙의 존재를 주장하면서도, 모겐소는 그의 정치적 현실주의의 핵심개념인 국익이 선험적으로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역사적 맥락에서 찾아 지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와 같은 입장은 진정한 국익을 발견하고, 결과에 대한 정치적 윤리를 추구하는 정책가(statesmen)의 실천적 덕성에 대한 강조로 이어지는 것이다.

 

미국에서 국제정치학의 발전이 미국이 처한 국제관계의 현실에 대한 진단과 처방이란 실천적 요구와 함께 사회과학의 지위확보란 두 가지 요구에 의해 견인되었다고 볼 수 있고, 모겐소의 정치적 현실주의는 특히 후자의 요구에 미흡한 것이었다. 인간본성이나 실천적 덕성이란 여전히 모호한 개념이고, 선험적인 규정을 필요로 하는 계량적 방법론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모겐소의 전통적 현실주의는 이후 수학적 모델을 도입한 핵억지이론, 실증적 자료의 계량화를 통한 외교정책의 분석 등을 통해 추구된 과학주의에 의해 도전받게 된다. 그러나, 1970년대 후반 월츠의 신현실주의가 국제체제의 구조적 특징을 현실주의의 근거로 제시하지 이전에는 모겐소의 정치적 현실주의에 대한 전면적인 도전이나 수정은 없었다고 볼 수 있다.

 

III.2. 통합이론과 복합적 상호의존론

 

이상주의는 현실주의의 이론적 패권에 의해 철저히 부정되었지만, 이상주의의 이념적, 이론적 정향은 자유주의 혹은 다원주의란 이름을 통해 현실주의의 주요한 대안적 패러다임으로 발전하였다. 현실주의가 국제관계에서의 국가를 주요 행위자로 보고 이들간의 본연적인 권력투쟁과, 특히 군사안보의 영역에서의 갈등을 강조하는데 반해, 자유주의는 개인이나, 다국적 기업, 국제기구와 같은 비국가 행위주체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경제나 문화와 같은 영역에서 이들간의 협력을 통한 국제질서의 수립가능성에 초점을 맞춘다. 현실주의가 권력정치의 현실에 대한 비관적 세계관을 특징으로 하는데 반해, 자유주의는 국제관계를 권력투쟁의 반복이 아니라, 적어도 점진적 변화가 가능한 장으로 본다.

 

국제관계에서 협력과 변화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자유주의 이론가들은 유럽의 지역적 통합에 주목하였다. 초기의 기능주의 통합이론은 비정치적이고 기술적인 분야에서 전문가에 의한 국가간 협력이 궁극적으로는 정치적 통합으로 이전(spill over)되어 초국가적 구조를 창출할 것이라 보았다. 그러나 1950년대 중반 이후 지체된 서구의 경제적 통합은, 정치와 기술적 영역, 권력과 복지를 상호 독자적으로 볼 수 없고, 기술적 분야의 협력이 자동적으로 정치적 분야로 이전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의지를 필요로 한다는 신기능주의 통합이론의 등장으로 이어진다. 신기능주의는 상호 거래와 협력을 국익으로 인식하는 정치적 세력의 존재를 통합의 핵심적 기제로 본 것이다. 유럽이란 적용 범위의 지역적 제한성 때문에 통합이론은 현실주의의 대안적인 일반 국제정치이론으로 발전되지 못하였다.

 

현실주의의 비판과 수정을 모색하던 자유주의자들이 주목한 것은 1960년대 말부터 본격적으로 이슈화된 전세계적 차원에서의 다국적 기업을 중심으로 한 비국가행위주체의 중요성 증가와 이차대전 후 미국의 압도적 힘의 상대적 감소였다. 일본과 서구경제의 발전, 그리고 베트남전쟁으로 가속화된 미국의 경제적 약화로 닉슨행정부는 브레튼우즈체제의 한 근간인 달러의 금태환을 중지하기에 이른다. 한편, 다국적 기업을 중심으로 한 경제적 상호의존의 증가는,『상호의존의 경제학(The Economics of Interdependence)』이나 『국가주권의 위기(Sovereignty at Bay)』 같은 경제학자들의 저서제목에서 드러나듯이, 국가중심의 국제관계에 중대한 변화가 도래한 것이 아니냐는 문제제기로 이어졌다.

 

이와 같은 배경에서 국제정치학계에서는 초국가적 관계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이슈의 측면에서도 비군사적 이슈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고조되었다. 이러한 인식을 더욱 강화시킨 계기는 1970년대의 석유위기와 국제연합의 기구들을 통한 제3세계국가들의 신국제경제질서에 대한 요구였다. 국제기구가 제3세계국가들의 문제를 국제관계의 의제로 설정하고 강대국에게 압력을 행사하는 통로로 사용되었으며, 자원을 무기로 한 중동국가들의 연합은 미국을 위시한 선진산업국가들 전체의 경제적 위기를 초래하며, 군사력의 중심으로 한 현실주의의 전통적인 국력개념의 적실성에 대한 의문을 불러 일으켰다.

 

1977년에 발표되는 커헤인과 나이의 복합적 상호의존론은 이와 같은 국제관계의 변화를 배경으로 현실주의 패러다임의 비판과 수정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들은 우선 현실주의의 기본 가정을 첫째, 국제관계의 주요한 행위자가 응집된 단위체인 국가이다, 둘째, 물리적 힘(force)이 가장 효과적인 정책수단이다, 셋째, 군사안보의 상위정치(high politics)가 경제 및 사회문제의 하위정치(low politics)에 우선하는 이슈의 서열을 상정한다는 것으로 규정하고, 여기서 도출되는 현실주의의 이념형적인 국제관계를 복합적 상호의존이란 개념을 통해 수정하고자 한다. 복합적 상호의존의 세계는 1)국가내부의, 초국가간, 비국가 행위주체간의 다중채널, 2)이슈간의 서열의 부재, 그리고 3)정책수단으로서 군사력의 부차적 역할을 그 특징으로 한다. 즉, 군사력을 중심으로 한 한 국가의 물리적 자원의 정책수단으로서의 효과가 이슈영역의 분화와 서열의 부재, 그리고 다양한 행위주체간의 다중채널의 존재로 인해 제한적이 되었다는 것이다. 복합적 상호의존론은 국제관계는 단순히 군사력의 우위에 의해 규정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초국가 및 초정부적 관계와 국제기구를 활용하여 문제영역 별로 의제를 설정하는 능력, 혹은 문제영역간의 연계전략을 추진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한 국제관계의 과정에 주목한다.

 

III.3. 세계체제론

 

이차대전 이후의 국제관계를 분석함에 있어, 현실주의와 자유주의 사이의 일종의 노동분업이 존재했다고 볼 수 있다. 현실주의가 군사력을 중심으로 미국과 소련진영의 세력균형을 분석했다면, 자유주의는 미국진영 내부의 경제적 통합과 상호의존에 초점을 맞추었던 것이다. 이에 따라 주류 국제정치학의 이론적 지평에서 간과된 것이 미국정치학의 비교정치나 지역연구분과에서 주로 다루어 진 제3세계의 문제이다. 근대화론에 대한 비판으로 등장한 종속이론은 제3세계의 문제를 선진자본주의국가와의 관계에서 총체적으로 고찰하였고, 이러한 이론적 정향을 국제관계의 전반에 대한 분석으로 발전시킨 대표적인 이론이 1974년에 등장하는 월러스타인의 세계체제론이다.

 

왈러스타인의 세계체제론은 국가를 기본적 분석단위로 하는 근대사회과학의 토대를 전면적으로 부정한다. 그에 의하면, 서구 국가의 역사적 경험을 잣대로 하여 제3세계국가들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발전단계를 설정하는 근대화이론은 비교할 수 없는 부분들을 독자적인 사회체계로 설정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왜냐하면, 국가가 아니라, 중심과 반주변, 주변이란 경제적, 지리적 부분으로 구성되는 자본주의 세계경제가 19세기 이후의 유일한 사회체계이기 때문이다.

 

월러스타인은 사회체제를 자립적인 노동분업(교환관계)이란 기준에서 정의하는데, 이에 따르면 역사적으로 사회체제의 유형은 단일한 문화적 틀을 갖는 원시적인 자립사회의 소체제와 복수의 문화를 갖는 세계체제뿐이다. 단일한 노동분업 구조와 복수의 문화체계를 포함하는 세계체제는 다시 단일한 정치적 구조의 세계제국과 복수의 정치적 단위로 구성되는 세계경제로 나뉜다. 16세기부터 서유럽을 중심으로, 지중해를 반주변으로 동유럽과 중남미를 주변부로 하여 성장한 자본주의 세계경제체제는 지리적 확장을 거듭하여 19세기 이후 전세계를 하나의 단일한 사회체계로 변화시켰다고 월러스타인은 주장한다.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중심부는 자본축적과 기술발전의 중추이고, 주변부는 자원과 값싼 노동력의 제공을 주 기능으로 한다. 반주변부는 중심과 주변의 중간적 성격을 띠며, 중심과 주변과의 부등가 교환에 의한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양극화를 방지하고 유동성을 확보하는 기능을 한다. 국가간의 관계는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한 부분일 뿐이며, 현실주의에서 분석의 주 대상으로 하는 강대국들은 중심부국가들로서 이들의 군사력 독점이 반주변부의 존재와 함께 자본주의 세계경제체제의 16세기부터의 장기 지속을 가능하게 하는 요인이다.

 

장기지속을 강조하기는 하지만, 월러스타인의 세계체제론은 자본주의 세계경제가 역사적 체제로 생성과 종말이라는 시간적 경계를 지님을 또한 지적한다. 중심부의 패권국가의 변화와는 구별되는, 자본주의 세계경제 자체의 붕괴를 가져 올 수 있는 요인으로는, 단기적인 이윤의 확보와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장기적인 존속을 위한 수용의 창출에 필요한 부의 분배와의 상충, 그리고 자본주의의 이념과 문화를 지구적으로 확산, 유지시키는 전위(cadres)의 포섭(cooptation)에 필요한 비용의 증가를 들 수 있다.

 

 

 

IV. 국제관계이론의 전개 II: 신현실주의와 그 비판

 

IV. 1. 신현실주의

 

1979년에 발표되는 월츠의 『국제정치이론(Theory of International Politics)』은 국제관계의 무정부상태란 구조에 근거한 국제정치의 일반이론을 정립하여, 인간본성에 근거한 모겐소의 전통적 현실주의의 과학화를 추구하고, 이를 통해 경제에 대한 정치의 우위, 비국가행위주체에 대한 국가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자유주의의 복합적 상호의존론이나 글로벌리즘의 세계체제론을 반박한다.

 

구조적 현실주의 또는 신현실주의로 불리는 월츠의 국제정치이론은 국제관계의 정치적 구조를 경제나, 국제체체의 하부 분석 단위들 –국가나 개인, 사회집단 등–의 특성을 통해 파악하는 환원론을 배격하고, 국제정치의 일반이론을 정립하고자 시도한다. 일반이론의 수립이 국제관계의 실체를 구성하는 외교정책연구와 구분됨을 강조하는 월츠의 이론적 출발점은 체계는 구조와 상호작용하는 단위들로 구성되어 있고, 구조는 단위들의 특성과 구분된다는 것이다.

 

일반이론의 정립을 위해 구조를 보아야 하는 이유는 첫째, 단위는 가변적인 반면 구조는 영속적이고, 둘째, 구조의 정의는 다양한 영역에 적용되기 때문이며, 셋째, 특정 영역에 관한 이론은 다소의 수정을 통해 다른 영역에도 적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제관계의 가장 핵심적인 정치적 구조는 하위정치의 문제영역도 규정한다는 명제가 도출되는 월츠의 이러한 전제들은 개별 문제영역의 독자성과 이들간의 서열의 부재를 주장하는 복합적 상호의존론의 반박을 위한 장치라 볼 수 있다.

 

월츠는 구조를 세 가지 측면에서 파악한다. 첫째는 부분들의 배열 원리, 둘째는 단위들의 기능적 분화여부, 셋째는 단위들간 능력의 분포이다. 국내정치가 집중적이고 위계적인 질서를 갖는 반면, 국제정치는 탈집중적이고, 국가들의 행위를 규율하는 세계정부가 부재한 무정부적 질서가 그 특징이다. 인간의 다양한 욕구를 무시했다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이윤의 추구란 미시경제학의 전제가 경제학의 일반이론을 구축하는 데 유용함을 강조하며, 월츠는 무정부상태에서 국가의 가장 주요한 행동지침은 생존이라 주장한다. 또한 시장이 개별 경제주체의 행위를 통제하듯, 무정부상태란 국제정치의 구조가 개별 국가들의 행위를 통제한다고 주장한다.

 

무정부상태의 국제관계가 개별국가들에게 생존이란 공통의 목표를 강제한다는 월츠의 주장은, 국내정치의 기능적으로 분화된 단위들과는 달리 국제정치의 단위인 국가들은 기능적으로 분명히 분화되어 있지 않다는 전제로 더욱 강화된다. 국내정치에서의 행정, 사법, 입법과 같은 정부기능의 분화나, 혹은 정치적 권력, 경제적 이익, 문화적, 지적 명성의 추구와 같은 분화를, 국제정치에서는 찾아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더 직접적인 비유로 설명하면, 무역만 하는 국가, 문화적 활동만 하는 국가는 없다는 것이다. 자율적인 정치단위인 주권국가들의 기능은 미분화되어 있으며, 비기업 행위주체들이 결국 기업들에 의해 정의되는 시장구조의 영향을 받듯이, 국제관계도 가장 중요한 국가들에 의해 정의되는 구조에 의해 통제된다고 주장한다. 비국가적 행위자들의 영향력이 강대국에 비견할 수준이 되지 못하고, 초국가적 현상은 생존이란 동일한 과제를 추구하는 기능적으로 유사한 국가들에 의해 정의되는 국제정치의 부차적 현상일 뿐이라는 것이다.

 

결국, 월츠의 구조적 현실주의는 무정부상태에서 생존을 추구하는 국가들의 능력의 분포를 분석의 실질적 대상으로 설정한다. 단위간 능력의 분포는 단위의 특성과 구분된다고 주장하며, 그는 국제정치에서 구조의 다양성은 단위의 기능상의 차이가 아니라 능력의 분포의 차이에서 결정된다고 본다. 시장구조가 자유경쟁, 독점, 과점 등 단위간 능력분포의 특징으로 정의되듯이, 국제정치의 구조도 결국 양극체제나 다극체제냐 혹은 단극체제냐 하는 능력분포의 다양성에 의해 파악된다는 것이다. 월츠의 신현실주의는 모겐소의 전통적 현실주의의 근간인 인간본성을 비과학적인 환원론으로 부정한다. 하지만, 전통적 현실주의의 실천적 덕목이라 할 세력균형은 능력의 분포에 의한 구조적 다양성이란 개념을 통해 신현실주의 역시 강조하고 있다. 즉, 분석수준을 개인이나 집단에서 국제정치의 구조로 이동시킨 이론적 도식의 변화는 현실주의 패러다임의 권력정치에 대한 강조 자체를 새롭게 조명한 것이지, 이를 폐기한 것은 절대 아닌 것이다.

 

IV.2. 신자유주의 제도론

 

월츠의 신현실주의가 발표되는 1979년은 1970년대 미소간의 데당뜨를 결정적으로 붕괴시키는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이 일어나는 해이다. 이후 레이건의 등장과 스타워즈의 추진으로 미소간의 관계는 신냉전으로 격화되고, 1970년대 신국제경제질서를 요구했던 제3세계국가들은 외채위기를 겪으며 상당수가 국제경제의 바닥으로 추락한다. 이와 같은 국제관계의 변화는 월츠의 신현실주의가 미국 국제정치학계에서 이론적 패권의 지위를 획득하는 하나의 주요한 배경으로 작용한다. 물론 월츠의 신현실주의에 대한 도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월츠의 이론이 이론적 논쟁의 기본 구도를 제공하였다.

 

월츠의 이론적 구도를 수용하며 그 내용을 비판하는 대표적인 예가 이전의 복합적 상호의존론을 대폭 수정하여 신자유주의 제도론을 들고 나오는 케헤인이다. 복합적 상호의존론이 행위주체의 측면에서 국가의 중요성에 문제를 제기하고, 문제영역의 위계적 서열을 부정하고, 권력자원과 효과의 측면에서 군사력의 부차적 중요성을 강조한데 반해, 신자유주의 제도론은 단일하고 합리적인 국가가 국제관계의 가장 주요한 행위자이고 무정부상태가 국제정치의 기본 구조라는 신현실주의의 이론적 전제를 받아들인다. 그러나 커헤인의 신자유주의 제도론은 국제제도에 영향에 의해 무정부상태에서도 국가간의 협력이 가능하다는, 월츠의 신현실주의와는 상반된 결론을 도출한다.

 

이전의 복합적 상호의존론과 마찬가지로, 신자유주의 제도론도 현실주의 패러다임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주의가 전제하는 이념형적인 국제관계의 한계를 비판하고 수정, 포섭하는 더욱 더 적실성이 큰 이념형을 정립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월츠의 신현실주의의 이론적 전제와 함께, 신자유주의 제도론의 이론적 배경이 되는 것은 패권안정론이다. 미국의 베트남에서의 패전, 석유위기, 달러의 금태환 정지 등이 분명히 보여주는, 미국패권의 상대적 약화는 압도적인 물리력에 기반한 미국패권의 존재가 국제체제의 안정에 필수적이라는 패권안정론, 더 넓게 보자면, 국제정치경제란 국제정치학의 하부분과를 탄생시켰다. 패권안정론의 시각에서 보면, 미국패권의 쇠퇴는 국제체제의 불안정으로 연결된다.

 

커헤인은 무정부상태에서도, 더 구체적으로는 미국패권의 쇠퇴에도 불구하고, 국제관계에서 협력이 국제제도에 의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신자유주의 제도론에서의 제도는 공식적인 국제기구를 넘어서는 포괄적인 개념으로, 특정 문제에 대한 명시적인 규칙인 국제레짐, 국제관계에서 행위자들의 기대를 형성하는 묵시적인 규칙과 이해의 비공식적인 제도로 규정되는 관례를 포함한다. 이러한 국제제도의 기능은 단순히 국제관계의 행태적 역할을 규정하고 행동을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기대 자체를 형성하는 것이다. 즉, 국제제도는 통제적인 기능과 함께 제정적인 (행동에 대한 기대와 규범을 설정하는) 기능을 갖는 것이다.

 

국제제도가 국제관계에서 협력을 가능하게 하는 방식은 세 가지이다. 첫째, 정보와 협상의 기회를 제공한다. 둘째, 타국의 순응도와 자신의 공약을 수행하는 과정을 감시하는 능력을 증진시킨다. 셋째, 국제협약의 공고성에 대한 기대를 제고한다. 이와 같이 국제적 협력에 대한 국제제도의 기능이 가능한 전제조건은 두 가지이다. 첫째, 행위자들이 교류협력할 상호이익이 존재해야만 한다. 둘째, 제도화의 정도의 변화가 국가들의 행위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쳐야 한다.

 

커헤인의 기본 주장은 상호의존의 증가에 따라 국가간 상호이익의 범주가 증가하였고, 미국패권에 의해 국제정치가 상당한 정도로 제도화되었으며 미국패권의 쇠퇴에도 불구하고 국제제도는 그대로 유지되고 제도화의 정도가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현실주의 패러다임–전통적, 구조적 현실주의를 모두 포함하여–이나 패권안정론이 주장하는 바와는 달리, 미국패권의 쇠퇴 이후에도 국제제도에 의한 협력은 여전히 가능하다는 결론을 도출하는 것이다.

 

월츠와 마찬가지로 커헤인 역시 미시경제학에 기반한 게임모델을 적극적으로 수용한다. 물론 그 결론은 월츠와는 상반된다. 예를 들어, 죄수의 딜레마는 정보의 부족과 이기적인 이익의 추구로 인해 오히려 최악의 결과를 가져오는 것을 게임모델로 만든 것이다. 이를 통해, 현실주의자들은 각국의 안보증진 노력이 결과적으로 안보의 감소를 가져오는 안보딜레마를 설명하고, 더 넓게는 국제관계의 갈등과 경쟁이란 권력정치적 현실을 강조해왔다. 신자유주의 제도론은 죄수의 딜레마를 오히려 국제제도에 의한 협력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으로 사용한다. 일회적 게임이 아니라 죄수의 딜레마를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게임으로 바꾸면, 제도에 의한 정보의 제공, 공약의 준수여부에 대한 감시기능의 강화, 그리고 미래의 협력에 대한 기대가 높아져 협력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근거에서 케헤인은 자신의 신자유주의 제도론이 신현실주의가 적실성을 보존하면서–상호이익과 제도화의 부재시– 신현실주의가 설명하지 못하는 국제관계의 협력적 양상과 제도화를 동시에 포섭한다고 주장한다.

 

IV.3. 콕스의 비판이론

 

월츠의 신현실주의와 커헤인의 신자유주의 제도론 모두 미시경제학적 모델을 수용하여 국제정치학의 과학화로 모색하였다. 이러한 이론적 정향은 국가간의 상호이익이 과연 존재하는가, 존재한다면 그 영향은 과연 긍정적인가 등의 문제를 둘러싼 양진영의 치열한 이론적 공방을 불러 일으켰다. 구체적으로 신현실주의와 신자유주의 제도론의 주된 대립점은 국가가 절대적인 상호이익을 추구하여 협력하는가 아니면 상호이익이 존재하더라도 상대적으로 더 큰 이익을 추구하여 국제관계는 여전히 갈등과 경쟁의 장인가 하는 것이었다.

 

한편, 신현실주의와 신자유주의 제도론이 공유하는 실증주의적 과학관에 대한 비판도 다양하게 제기되었다. 근대의 주권논의와 근대과학의 실증주의적 전제들에 대한 탈근대론자들의 전면적인 비판이 대표적인 예이다. 현실주의의 비판과 제도의 중요성을 공유하면서도, 신자유주의 제도론이 제도의 제정적 측면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했다는 구성주의자들의 비판이 또 다른 예이다. 케헤인은 국가이익을 선험적으로 전제하여, 관습과 제도에 의해 국가이익 자체가 새로이 정의될 가능성을 충분히 이론화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신현실주의와 신자유주의의 국가중심적인 이론틀과 이념적 정향을 비판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그람시의 헤게모니개념을 국제정치학에 도입하는 콕스의 비판이론이다. 콕스는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이론의 가능성을, 모든 이론은 특정한 사회적, 역사적 맥락에 의해 규정된다고 주장하며 부정한다. 그에 따르면, 이론의 유형은 지배적인 사회권력 관계와 그 관계의 조직화인 제도들을 전제하며, 이의 유지를 위해 부분적인 문제들을 다루는 문제해결이론과 그러한 역사적 구조의 틀 자체를 분석의 대상으로 삼고 가능한 사회체제의 대안을 모색하는 비판이론이 있다.

 

콕스의 비판이론은 신현실주의가 카나 모겐소의 역사주의적 입장을 사상했다고 비판한다. 이러한 비판은 신자유주의 제도론은 물론 미국 국제정치학계의 주류에도 전반적으로 적용된다고 할 수 있다. 콕스의 가장 주요한 이론적 원천은 국가와 사회의 융합, 경제적 토대와 정치적 제도 및 이념의 총체적 분석을 시도한 그람시이다. 그람시의 패권개념은 경제적 지배계급의 이익을 일반이익으로 전환시키는 제도적, 이념적 장치에 주목한다. 이를 국제관계에 확대적용하여, 콕스는 물리적 힘, 이념, 제도로 구성되는 역사적 구조를 사회세력, 국가, 그리고 세계질서의 세 가지 분석수준에서 동시에 총체적으로 파악할 것을 주장한다.

 

사회세력의 측면에서 콕스는 생산의 세계화와 이에 따른 국제적 계급이익의 성립을 지적하고, 그 여파로 국가는 세계경제에 순응하는 동시에 세계경제의 편입으로 피해를 입는 국내세력을 보호해야 하는 기능을 맡게 되었으며, 생산의 국제화와 국가기능의 확장 또는 국제화를 전반적으로 조율하고 관리하는 국제제도와 이념을 패권국가의 세계질서 유지란 측면에서 분석한다. 콕스의 비판이론에서 국가간의 갈등이나 협력은 역사적, 총체적 구조의 한 부분일 뿐이다. 제도 또한 국가간의 협력이나 동의의 차원에서 설명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세력과 세계질서란 분석수준과의 연계를 중심으로 설명되어진다.

 

 

출처 : http://cafe.daum.net/eea

Advertisements

Leave a Reply

Fill in your details below or click an icon to log in:

WordPress.com Log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WordPress.com account. Log Out / Change )

Twitter picture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Twitter account. Log Out / Change )

Facebook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Facebook account. Log Out / Change )

Google+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Google+ account. Log Out / Change )

Connecting to %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