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정치는 어떻게 살아남았나? – 영국 보수당의 역사

보수정치는 어떻게 살아남았나?

영국 보수당의 역사

 

 

 

보수주의는 이전의 것을 무조건 지키는 것이 아니다

‘보수정치는 영국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는 영국 보수당의 역사다. 보수주의는 재미없고 지루하다. 그런데 영국에서는 어떻게 그런 ‘보수정당이 오랫동안 살아남았고 집권했는가’의 원인을 영국 보수당의 역사를 통해 드러낸 책이다. 보수주의를 이전의 것을 지켜야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우리나라의 보수주의자들에게 새로운 인식을 가르쳐 준다.

 

19세기 영국 보수주의 전통을 확립한 로버트 필, 벤자민 디즈레일리를 통해 영국 보수주의의 전통, 즉 끊임없이 사회변화를 수용하고 옛 것을 무조건 지키는 것이 아니라 사회개혁을 앞장 서서 실천하는 모습을 살펴보고자 한다. 또한 토니 블레어의 노동당의 장기집권을 끝내고 보수당의 집권을 가능하게 한 캐머런 총리를 통해 보수당이 어떻게 살아남고 강한 생명력으로 집권하였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보수주의의 아버지 로버트 필

19세기 영국은 산업화에 따른 사회변화에 정치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가 중요한 과제였다. 중산층으로 선거인수 확대하고 선거구를 조정하는 개혁법과 외국에서 들여오는 곡물에 관세를 부과하는 곡물법의 폐지 여부가 중요한 현안이었다. 로버트 필은 보수당의 지도자로서 개혁법을 받아들이고 곡물법을 폐지하였다. 1832년의 개혁법이 정치적 승리였다면, 1864년의 곡물법 폐지는 그들을 위한 경제적 승리였다. 이러한 조치는 향후 보수당의 지지기반을 확대하게 하는 매우 중요한 계기를 마련하였다. 필의 곡물법 폐지는 보수당이 언제나 기득권을 지키려고만 하는 반동적인 집단이 아니라 내부적인 반발에도 불구하고 시대적 요구와 변화에 대응할 역량을 갖는 정치조직이라는 점을 보여주었다.보수당은 1846년 분열 이후 집권하지 못했고 1874년이 되어서야 가능하게 되었다.

 

 

보수당의 아버지 디즈데일리(Benjamin Disraeli)

 

 

시련에 빠진 보수당의 운명을 회복시킨 것은 전적으로 디즈데일리라는 지도자의 공이었다. 디즈데일이는 보수당이 1846년 곡물법 파동 이후 1874년까지 자유당의 장기집권으로 어려움을 겪던 보수당을 구하고 이후 1906년까지 약 30년간 보수당의 장기집권을 가능하게 만든 인물이었다. 디즈데일리는 이런 정치적 성공 뿐만 아니라 당의 사회적 지지 기반을 넓혔고 당이 대표하는 이념적 지평도 확대시켜 오늘날의 보수당으로 성장할 수 있게 만든 초석을 닦았다. 디즈데일 리가 보수당의 아버지(founder of the Party)라는 평가를 듣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디즈레일리가 보수당 재건에 큰 기여를 했지만 처음에 보수당은 그를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의 출신 성분은 보수당 주류와는 너무 달랐다. 디즈fp일리는 농촌에 넓은 토지를 소유한 귀족이 아니었다. 그는 소설을 쓰는 작가였고 도시의 상인출신이었다. 어린 시절에 국교도로 개종했지만 영국으로 이민 온 유태인의 아들이었다.

 

디즈데일리는 보수당이 더 이상 사회개혁 법안에 대해 책임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고 주요 이슈에 대해 적극적인 입장으로 전환하면서 수권정당으로의 신뢰감을 높였다. 공장과 공공위생 관련 법안, 노조의 권리에 대한 제한적인 인정, 주택과 지방정부 개편 등 사회개혁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디즈레일리의 이러한 사회개혁에 대한 주장은 보수당이 더 이상 변화와 개혁에 저항하는 세력이 아니며 개혁법 도입으로 변화된 유권자 층에 대해 적극적으로 다가서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그는 오늘날까지 인용되는 명연설을 통해 보수당이 추구하는 가치를 제시했다. 그는 보수당만이 현재 영국의 제도를 보존할 할 수 있고, 대영제국을 수호할 수 있으며, 일반 국민의 생활을 증진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연설은 당시 언론의 커다란 주목을 받았고, 디즈레일리가 제시한 보수당이 자임한 세 가지 역할은 이후에도 보수당의 중요한 정치적 사상으로 남게 되었다. 디즈레일리는 보수당을 사회개혁의 주창자일 뿐만 아니라 국가통합과 대영 제국의 수호자로 자리매김했다. 디즈레일리의 뛰어난 점은 자신이 처해 있는 시대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고 시대가 요구하는 사항을 찾아내고 그 이슈를 선점하는 안목과 능력에 있었다. 1874년 총선(보수당 350석, 자유당 242석)을 통해 보수당은 이제 잉글랜드 지역과 소수의 특권계급에 의존하는 정당이 아니라, 모든 지역과 모든 계층에게 호소력을 갖는 실질적인 ‘전국정당’이 될 수 있었다. 디즈레일 리가 보수당에 남긴 가장 큰 족적 가운데 하나가 바로 당 조직의 측면에서나, 그리고 선거 지지라는 측면에서 보수당이 전국적인 정당이 될 수 있게 한 것이다.

 

 

 

데이비드 카메론(David Cameron) 영국수상

현재 현국수상은 데이비드 캐머런이다. 1966년생으로 2010년 43세의 나이로 보수당을 총선승리로 이끌면서 수상에 올랐다. 1997년 존 메이저가 총선 패배에 책임을 지고 물러난 이후 8년동안 세 명의 당수가 기대감을 갖고 등장했지만 무기력하게 물러났고 2005년 당시 39세의 캐머런이 보수당의 당수직에 올랐다.

 

캐머런은 이튼과 옥스퍼드 대학 출신으로 1997년 총선에 출마했으나 낙선했고, 2001년 총선에서 처음으로 당선된 신참 정치인이었다. 그러나 보수당 내에서 그의 정치적 경력이 그리 짧은 것은 아니다. 대학 졸업 후 보수당 조사국에 들어갔으며 메이저 정부에서 재무장관이었던 마이클 하워드의 특별보좌역을 각각 거쳤다. 그리고 민간 방송회사의 부서 책임자로 7년을 보낸 후 정치에 입문했다. 의원이 된 이후에 당내에서 정치적 으로 빠르게 성장했고 2004년 마이크 하워드 당수 하에서 예비내각의 주요 당직을 맡았다. 하지만 토니 블레어가 노동당 당수가 되기 이전 11년간 의정활동을 하면서 노동당 예비내각에서 내무장관 등 보직을 다양하게 경험한 것에 비해서 캐머런은 겨우 4년의 의회 경험만을 갖고 있었고 중요 보직을 맡을 기회도 적었다. 보수당으로서는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젊은 정치인을 선출하는 모험을 선택했는데 세 차례의 총선 참패가 이러한 모험을 감행하게 했다.

 

 

캐머론의 온정적 보수주의 compassionate conservatism

데이비드 캐머론은 사회적 이슈에 대해 자유주의적 색채를 가지면서 당의 개혁과 근대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대표하고 있다. 카메론은 시장을 중시하는 전통적인 정책기조를 유지하면서도 약자를 배려하고 분배를 중시하는 진보적 색채도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이러한 기조는 ‘온정적 보수주의 compassionate conservatism’로 요약할 수 있다. 카메론은 사회적 이슈에 보수당이 적극적으로 대응해야한다고 주장했다. 보수당이 상대적으로 취약했던 환경보호에 대한 적극적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해 나무와 연두색을 넣은 새로운 당로고를 제정하기도 했고 또, 의사당까지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기도 했다. 환경 뿐만 아니라 젊은 유권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블레어의 노동당이 보수당의 무기를 빼앗아 갔다면 카메론은 역으로 전통적인 노동당의 정책에 대해 공세를 편 것이다. 그 결과 결국 보수당은 노동당의 오랜 집권을 물리치고 정권을 차지했고 캐머론은 영국수상이 되어 영국을 이끌고 있다.

 

 

지지의 지평을 넓히는 것이 집권하는 길

어느 길이 옳은지는 영국 정당들의 집권과정을 보면 알 수 있다. 전통적 지지자들의 유혹에 넘어가서는 안된다. 블레어는 제3의 길을 통해 노동당의 집권을 가능하게 했다. 캐머론도 대처의 유산을 당내에서 제거하려 한다는 대처주의자들의 비판을 받으면서도 당의 지지를 넓혀 집권했다. 결국 보수당이든 노동당이든 과감한 개혁을 통해 지지의 지평을 넓힌 정당이 승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지의 지평을 넓히고, 그리고 국민들을 통합하여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는 정당이 될 때 국민들은 지지를 보낸다. 그래야 젊은 세대들의 지지도 얻을 수 있다.

 

 

보수당이 살아남은 원인

첫째는, 보수당은 대단히 권력을 열망하는 정당이기 때문이다. 집권하기 위해서 최대한 현실과 타협했다. 디즈fp일리 수상은 “빌어먹을 너의 원칙을 버려라. 그저 당에 충실해라”라고 말한 적이 있다.

둘째는, 유연한 때문이다. 변화를 고집스럽게 거부하지 않았다. 자유당이나 노동당이 추진한 정책도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수용하고 모방했으며, 이전 정부가 커다란 정치적 논란 뒤에 실행한 정책을 그 뒤에 보수당이 집권하더라도 되돌리려고 하지 않았다.

셋째는, 보수당은 당의 외연을 넓혀왔다. 기득권층을 대변하는 보수당이 노동계급의 이익을 수호한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보수당은 디즈레일리나 볼드윈처럼 필요하다면 사회개혁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뿐만 아니라 애국주의 정당, 제국의 정당과 같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공동체적인 요소를 보수당의 전통에 포함시켰다.

 

디즈레일리가 보수당의 기반을 닦은 지도자로 평가받는 것은 기존질서와 헌정체제의 수호라는 보수당의 전통적 가치에 사회개혁과 애국주의 정당이라는 중요한 두 가지 요소를 추가했기 때문이다. 사회개혁을 통해 보수당을 어는 한 계급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정당이 아니라 모두의 정당임을 보여주고자 했다. 이러한 보수주의의 전통은 보수당의 명분과 기반을 크게 확대시켰으며, 이것이 보수당이 이긴 원인이다.

 

보수정치는 어떻게 살아남았나?, 강원택,EAI,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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