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신당, ‘옛’ 정치의 ‘새’ 정렬 ?

안철수 신당, ‘옛’ 정치의 ‘새’ 정렬에 그칠까?

[장석준 칼럼] 금배지 획득한 안철수와 ‘새 정치’

장석준 진보신당 부대표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04-25 오전 7:07:30

나는 이 글을 재보선 결과가 나오기 전에 쓰고 있다. 그간의 여론 조사를 보면, 노원(병)에서는 무소속 안철수 후보의 당선이 유력하다. 그럼에도 선거 결과가 나오기 전에 그것과 연관된 주제의 글을 쓴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안철수 후보의 국회 입성 여부가 ‘안철수 현상‘의 앞날을 좌우하며 그가 주장하는 ‘새 정치’의 실현을 판가름하리라는 시각에서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나의 시각은 다르다. ‘안철수 현상’은 국회의원 안철수 없이도, 아니 자연인 안철수 없이도 계속 반복될 운명이다. 그것을 낳은 구조가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또한 ‘안철수 현상’이 이 낡은 구조의 산물인 한 그것의 타파를 내용으로 하지 않는 ‘새 정치’는 이미 ‘새’ 정치가 아니다. 즉, 안철수 후보가 주장하는 ‘새 정치’는, 적어도 그 현재 버전은 진정한 ‘새 정치’와 거리가 멀다. 이런 것들이 이미 분명하기에 선거 결과와 상관없이 이야기를 꺼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다.

안철수 현상의 이면에 자리한 것은 현재 대한민국 정치를 지배하는 두 가지 사실이다. 하나는 양당제화의 강한 힘이 작동한다는 것이다. 이 힘은 1987년 민주화 이후 자리 잡은 대의 제도들에서 비롯된다. 결선 투표제조차 없는 대통령 중심제 그리고 소선거구 중심의 국회의원 선출 방식이 그것이다. 이 모든 제도가 다 숨 막히는 승자 독식 게임룰로 수렴한다. 이에 따라 정당 구도는 주요 선거를 전후해 항상 한 개의 거대 여당과 한 개의 거대 야당으로 정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 강력한 힘에도 한계는 있다. 한국의 양당제는 아직 불안정하다. 제도 요인들에 의해 ‘강요된’ 양당제화다. 시민 사회에 깊이 안정적으로 뿌리내린 양당 구도는 아닌 것이다. 그러려면 양대 정당이 시민 사회의 여러 구성 요소들(그 중 대표적인 것이 계급, 계층이다)을 반분하며 각 요소들과 유기적 연계를 맺고 있어야 한다. 두 정당 중 한 쪽은 그런 것 같다. 새누리당 말이다. 하지만 다른 한 쪽은 그렇지도 않다. 그래서 불안정하다는 것이며, 양당제가 아니라 양당제’화’라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양당제화 압박에 더해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이 있다. 그것은 이 ‘강요된’ 양당 구도가 대통령제의 요구 조건을 충족하기에 버거워한다는 점이다. 그 요구 조건이란 결선 투표제 없는 대통령 중심제가 요구하는 당선 가능성 그리고 대통령제 특유의 행정부-입법부 분립을 돌파할 통치 가능성이다. 이 가능성들이 대통령 혹은 그 후보라는 개인들을 통해 구현되어야 한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상당 기간 양 김의 영향력이 살아 있을 때는 이게 충족하기 쉽지 않은 난제라는 게 실감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제도와 현실이 서로 어긋나 삐걱거리는 소리가 요란하다.

ⓒ프레시안(최형락)

이 경우에도 비대칭성은 존재한다. 새누리당 쪽은 2000년대에 이명박, 박근혜라는 두 인물을 배출하는 데 성공했다. 앞으로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지금까지는 그랬다. 반면 그 반대쪽은 그렇지 못하다. 민주통합당을 이루는 여러 정파들은 양당제화 압박 속에 살아남는 데는 유능하지만 대통령제가 요구하는 인물 군을 형성하는 데는 무능함을 입증했다. 시민 사회와의 조직적 연계가 약하기에 당 안에서 새 인물이 성장할 경로도 부족하다. 이것이 바로, 새누리당 반대쪽의 정치 통로를 독점하고 있으면서도 집권 가능 세력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민주통합당의 현재 모습이다.

다름 아닌 이 두 사실의 교차점 위에 ‘안철수 현상’이 자리한다. 양당제화 압박 때문에 새누리당 반대편에 거대 정당이 버티고 있기는 하지만 이 당이 대통령제의 요구 조건에 부응하기 힘든 한계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안철수’의무대 진입을 요구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안철수’는 자연인 안철수가 아니어도 좋다. 만에 하나 안철수 후보가 이번 재보선에서 낙선하더라도 한국 정치는 반드시 제2, 제3의 ‘안철수’를 불러들이게 되어 있다. ‘안철수 없이도’ 안철수 현상은 지속될 운명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의 역설과 마주한다. 안철수 후보의 핵심 비전은 ‘새 정치’인데, 안철수 현상을 지속시키는 토대는 이 나라의 ‘낡은 정치 구조’라는 것이다. 이 구조 덕분에 안철수 현상이 있다. 그럼 안철수 후보의 ‘새 정치’ 비전에는 그 구조를 타파할 내용이 담겨 있는가?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렇지 않다. 국회의원 정족수 축소 따위는 그런 구조의 타파와는 아무 관계도 없다.

오히려 안철수 후보가 당선될 경우 ‘새 정치’의 모호했던 ‘새로움’마저 빛을 잃어갈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그가 착수해야 할 것은 자신의 존재와 양당제화 압박 사이의 수렴점을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새 정치’는 이제 새누리당 반대편을 ‘새롭게’ 통합 정렬하는 것으로 그 내용이 조정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안철수 신당’은 결코 ‘신당’일 수 없다. 그것은 자유주의 정치 세력 ‘헤쳐 모여’의 2010년대 중반 버전, ‘옛’ 정치의 ‘새’ 정렬이 될 수 있을 뿐이다.

‘새 정치’는 결코 이런 내용으로 한정될 수 없다. 안철수 바람이 분 작년 한국 대선 몇 달 전 프랑스에서도 대선이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서는 멜랑숑 바람이 있었다. 사회당 왼쪽의 좌파들을 대표해 출마한 장뤼크 멜랑숑 후보가 15퍼센트 안팎의 지지율을 보이며 기염을 토했다. 그도 ‘새 정치’를 말했다. 하지만 그의 ‘새 정치’는 많이 달랐다.

그는 ‘시민 혁명’을 이야기했다. 그는 ‘제헌의회’를 말하고, ‘제6공화국’ 수립을 부르짖었다. 새 공화국의 최대 과제는 민주주의를 경제와 사회 모든 영역으로 확대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도 새 공화국은 정치 제도 일체를 바꿔야 한다. 흔히 이원 집정제라 불리는 프랑스식 대통령제는 완전한 내각 책임제로 바뀌어야 한다. 전면적 비례 대표제와 남녀 동수제를 실시해야 한다. 대중의 직접 참여 통로를 확대해야 한다. (멜랑숑의 대선 공약집인 <인간이 먼저다>(강주헌 옮김, 위즈덤하우스 펴냄)을 참고하라.)

‘새 정치’란 이런 것이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기존의 정치 ‘구조’를 타파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지금 프랑스에서도 그렇지만 우리의 경우 더더욱 그 ‘구조’는 소선거구제이며 대통령제이고 그것들이 서로 부조응해 일으키는 시끄러운 소음이다.

달리 말하면, 이제는 무엇보다 전면적 비례 대표제(독일식이든 스웨덴식이든)로의 전환을 외칠 때이고 내각 책임제(정당 내각제) 개헌을 요구할 때이다. 그래서 부자 정당과 서민 정당이 확연히 갈리고 필요하면 정규직 정당과 비정규직 정당이라도 생겨 그들 사이에 대립하고 합작하며 충돌하고 타협하는 일이 우리들 자신의 장기판 놀음이 되게 만들어야 한다. 재보선 결과와 상관없이, 지금 이 ‘새 정치’를 요구하는 운동이 시작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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