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공통된 것을 발명하기」로부터

 

다중지성 연구정원(waam.net) 불어세미나에서 함께 읽은 네그리의 최근글 「인간의 공통된 것을 발명하기」(Inventer le commun des hommes, pp.294-5) 핵심 부분의 초역이다.-아멜라노

 

 

우리는 거의 3세기 동안 민주주의를 공적인 것의 관리로, 다시 말해 공통적인 것의 국가적 전유의 제도화로 생각해왔다. 오늘날 민주주의는 이제 급진적인 그리고 근본적으로 새로운 술어 속에서만 사유될 수 있다. 공통적인 것의 공통적 관리로서 말이다. 공통적인 것의 공통적 관리는 이제 공간을 코스모폴리티크하게 재정의하는 것을 함축하며, 시간을 구성적인(제헌적인) 것으로 재정의하는 것을 함축한다. 모두에게 (속해) 있으면서, 모든 것이 개인에게는 속하지 않는 것을 포착하는 계약의 형태를 정의하는 것이 더이상 문제가 아니다. 아니, 모두에 의해 생산되어지면서, 그 모든 것이 모두에게 속하는 것이 문제이다.
우리들 중 몇 사람이 <대주제>에서 (그들이 몇년 전부터 선도했던 경험에 의해서, 또, 예전에는 “틈새적”이었던 이 경험이 일반화되는 것에 대한 기록을 가지고) 제기했던 자료들 속에서 우리는 이 공통적인 것을 가시화시키려고, 공통적인 것의 재전유 전략에 대해 말하려고 노력한다. 오늘날 메트로폴리스는, 일반화된 생산조직이 되었다. 공통적 생산이 주어지고 조직되는 곳이 이곳이며, 공통적인 것의 축적이 실현되는 곳도 이곳이다. 이 축적의 폭력적인 전유는 사적인 것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거나, 혹은 공적인 것의 이름으로 이루어진다. 우리가 메트로 폴리스 공간의 “지대(la rente)” 라고 부르는 것이 이제는 주요한 경제적 내기로 걸려있다. 그리고 통제의 전략들이 구체화되는 것은 이 지점에서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서, “지대”의 이윤에 대한 관계에 대한 분석으로, 혹은 “생산적 외부성” 에 대한 분석으로 들어가고 싶지는 않다. 당장은 사적 전유가 아주 종종 공적 전유에 의해 보장되고 합법화된다는 것을, 그리고 그 역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지적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공통적인 것을 되찾기, 사물이 아니라 제헌적 과정을 재정복하기. 다시 말해 제헌적 과정이 펼쳐지는 공간을 재정복하기 – 요컨대 메트로폴리스의 공간을 재정복하기. 통제의 직선적 공간 속에 사선을 긋기. 디아그램diagramme에 사선diagonales을 대립시키기, 바둑판형에 간극을 대립시키기, 위치에 운동을 대립시키기, 정체성에 생성을 대립시키기, 단순한 자연에 무한한 문화적 다양성을 대립시키기, 기원의 참칭에 인공물을 대립시키기. 몇 년 전, 아주 멋진 책에서 장 스타로빈스키는 계몽의 세기는 자유의 발명을 목격하였던 시대라고 말했다. 근대 민주주의가 자유의 발명이었다면, 오늘날 급진 민주주의는 공통적인 것의 발명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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