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대 대선과 진보개혁진영의 혁신, 안병진

“운동권적 사고방식의 486 정치엘리트의 시대는 끝났다”

[연속인터뷰-18대 대선과 진보개혁진영의 혁신⑮(마지막)] 안병진 경희사이버대 교수

정웅재 기자 jmy94@vop.co.kr

입력 2013-02-04 05:39:20 l 수정 2013-02-04 12:36:34

18대 대선은 야권 지지자들이 이른바 ‘멘붕’이 될 만큼 야권에게 큰 충격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에 걸맞는 평가와 성찰, 이에 기반한 혁신 논의는 그다지 활발하지 않습니다. 치열한 논쟁과 깊은 성찰이 없다면 다음 대선은 또다시 야권의 패배로 돌아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더 큰 문제는 그렇게 된다면 가장 고통받을 이들은 이 땅의 민중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이에 <민중의소리>는 ‘진보개혁진영의 혁신’이라는 주제 아래 학자, 전문가, 정치인 등 각계의 평가와 성찰을 연속인터뷰 형식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문재인 후보의 대선 패인에 대해서는 선거전략, 메시지, 조직, 선거운동의 문제 등 다양한 요인이 거론됐다. 그렇다면 이런 것들을 제대로 했다면 선거에서 이겼을까?

이 물음에 대해 안병진 경희 사이버대 교수는 ‘민중의소리’와 인터뷰에서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라며 “하나의 정치 질서가 막을 다했다는 게 드러났다고 봐야 문제에 대해 더 근원적이고 대담한 반성과 계획이 나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안 교수는 “데이터에 기반한 실사구시적 사고를 하지 않고 운동권적 사고방식에서 살아온 486 정치엘리트, 민주당 원로그룹의 시대는 끝났다”고도 말했다.

안 교수는 또 “이번 선거는 과거 대 미래의 대결이 됐어야 했는데, 문재인 후보는 노무현 2.0이 아닌 그냥 노무현이었다”라고 비판했다.

안 교수는 민주당의 혁신 과제에 대해서는 “계파담합 구조가 아니라 일상적으로 시민들한테 반응할 수 있는 내부 시스템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가 핵심인데 민주당이 그것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라고 말했다.

안 교수는 “민주당은 자체적으로 혁신을 못할 것”이라며 “그렇다면 밖에서 붕괴를 시켜야 하는데 안철수 그룹도 그걸 할만한 리더십은 없다”라고 지적했다.

안 교수를 지난 31일 경희사이버대 부총장실에서 만났다. 아래는 인터뷰 내용이다.

-이번 대선에서 패배한 민주통합당에 대해 ‘유권자 분석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유권자에 대한 반응성이 약하다’고 지적했다. 무슨 의미인가?

“민주화 운동의 한 시대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했던 정치세력들 즉, 486 정치엘리트, 민주당 원로그룹들의 시대가 끝났다. 왜 그렇게 보냐면, 이 분들은 오랫동안 데이터에 기반하지 않고 실사구시적 사고와는 거리가 먼 운동권적 사고방식속에서 살아왔다. 막스레닌주의는 버렸지만 여전히 본인들의 이념 위주로 먼저 생각하고 인맥과 네트워크에 따라서 생각해왔다. 지금까지는 그 부작용이 심각하게 나타나지 않았다. 김대중과 노무현이라는 걸출했던 두 거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두 거장은 유권자들에 대한 이해도가 누구보다 높았다. 비교적 시대의 결에 대한 균형감각도 있었다. 그만큼 실사구시적이고 성찰적이었다. 물론 국정운영 과정에서는 많은 문제점이 있었지만, 어쨌든 이 두 지도자가 사라짐으로 인해서 이 세대, 그룹이 갖고 있는 문제가 극명하게 드러났다.”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가 드러났다고 보는가?

“한 시대의 사이클이 있다. 초창기에는 건강한 에너지가 있다. 그러나 부패하기 시작하면 매너리즘에 빠지고 계파에 휘둘린다. 이번에 전략도 문제였고 풀뿌리도 안 움직였는데, 그럼 그런 부분들이 수정됐으면 이길 수 있었던 걸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한 정치질서가 막을 다했다는 게 드러난 것이다. 그렇게 봐야 문제에 대해 더 근원적이고 대담한 반성과 10년, 20년 계획이 나오는 것이다.

저는 10년째 민주당 사람들과 조금 더 레프트적인 사람들한테서 오해도 받고 비판도 받아온 사람이다. 레프트쪽에서는 안 교수가 리버럴이 되더니 좌파적 이념은 버렸다고 비판한다. 물론 저는 과거의 막스레닌주의는 버렸다. 근데 이 분들이 이해를 못하는 게 뭐냐면, 객관적 추세라는 것은 자기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건 실사구시적으로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레프트쪽에서는 자유주의적 질서가 온다는 제 말에 거부감을 가지는데, 그런 추세가 오는 걸 어떡하나? 그걸 부정하면 옛날 혁신당 복덕방 할아버지 신세가 될 것이다. 자기들끼리 모여서 무용담 늘어놓고, 현실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좀 더 리버럴한 민주당 경향의 사람들은 제가 성격이 냉소적이어서 냉소적으로 얘기하는 걸로 오해한다. 저는 굉장히 낙관적인 사람이다. 인간에 대해 냉소적이면 왜 운동을 하고 감옥까지 갔다왔겠냐. 제가 민주당이 위기라는 말을 수차례 했다. 작년에는 민주당에서 ‘안 교수님 이제 민주당 위기라는 말을 정말 하지 마십쇼. 이제는 우리도 압니다’라고 했다. 그 결과 어떻게 됐냐?”

-박근혜 당선인과 새누리당은 어려운 조건에서 지난해 총선과 대선을 이겼는데, 그렇다면 이들은 유권자 반응성이 높은 것인가.

“한 사회의 지배블록을 과소평가하면 안 된다. 지배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우리나라 지배블록들은 민심에 반응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진리를 뼈속 깊이 아는 사람들이다. 진심으로 민심에 반응한다기 보다는 스테이트 크래프트(국정운영기술)라고 해야 하나? 통치전략에 있어서 굉장한 기예들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박근혜 당선인은 소녀시절부터 그걸 보고 자란 사람이다. 민심을 이해하는데서 무서움이 있다. 그런 반응성이 김종인, 이준석 같은 인물을 발탁하게 한 것 아니냐. 민주당은 못하지 않냐.”

-미래를 얘기하는 야권이 과거 박정희 시대와 맥이 맞닿아있는 박 당선인 보다 유권자 반응성이 떨어진다는 것은 이율배반적이다.

“원래는 이번 선거가 미래 대 과거의 대결이 됐어야 한다. 박근혜 당선인이 아무리 민심에 대한 반응성이 좋아도 박정희 패러다임을 갖고 있는 사람의 반응성이 탁월한 반응성은 아니지 않겠나. 21세기적인 공감과 소통의 가치와 그것을 구현하는 캠페인 플랫폼을 갖고 대결했어야 한다. 그러면 박근혜의 반응성이라는 게 빛을 바랬어야 하는 것 아니냐.

예를 들어, 문재인 후보가 나왔던 모 예능 방송에 문 후보가 나오기 전 회에 박근혜 당선인이 나왔는데 탁월하게 했다. 소녀시대를 비롯해 어린애들이 좋아하는 그룹에 대해 술술 얘기했다. 기가 막히게 잘했다. 역시 박근혜는 거물이다. 그 다음에 문재인 후보가 나왔는데 문 후보는 그만큼 프로페셔널하게 준비하지 않았다. 제가 준비과정을 잘 안다. 그런데 훨씬 더 잘했다. 박근혜 당선인이 아무리 눈물과 민생을 얘기하고 싶어도 구중궁궐에 갇혀 살아온 분이지 않냐. 하지만 문 후보는 그냥 서민이다. 그래서 그런 것이다. 마찬가지로 김종인을 영입해 생쑈를 해도 이쪽에서 21세기적 가치와 캠페인을 구현했으면 그건 흉내를 낼 수가 없다.”

-캠페인적인 측면에서 21세기적인 가치의 표출여부를 평가해본다면. 

“문재인과 안철수 후보를 봐라. 21세기적 성찰과 혁신이 캠페인으로 나타난 게 뭐가 있었나. 별로 떠오르는 게 없다. 안철수 후보는 트위터도 겨우 하자고 해서 한 거다. 물론 트위터를 한다고 해서 21세기적인 것은 아니지만, 캠페인에서 트위터 하는 걸 꺼려한다면 이건 좀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 문재인 후보는 테드(TED) 방식으로 캠페인을 하자고 겨우 꼬셔서 마지못해 했는데 영상을 보면 엄청 어색할 것이다. 테드적 방식이 뭔지 몸에 체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결코 미래 대 과거의 대결이 될 수 없었던 것이다.”

-21세기적 가치를 강조하고 계시는데 그 가치를 구현하는 플랫폼은 SNS 등 다양한 기술적 형식이 있을 것 같다. 플랫폼을 채우는 내용은 무엇인가.

“예를 들어, 오바마가 지난 미국 대선에서 21세기적 캠페인을 탁월하게 했는데, 그건 오바마가 참여와 공유의 가치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마실캠페인이라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융합된 시민의견을 수렴하는 유세를 했다. 새로운 시대의 참여와 공유, 개방의 가치를 이해한 것이다.

돌이켜보자, 문재인과 안철수 후보쪽에서 21세기 캠페인을 상징하는 예가 있었는지. 안 교수 입장에서는 ‘아, 우리는 수평적 정책포럼을 했다’고 얘기하고 싶을 것이다. 참여했던 교수들 인터뷰를 해봐라. 그게 어떤 코미디였는지. 그리고 지금은 정보를 집적해야 하는 시대, 빅데이터의 시대다. 수평이라고 하는 건 정치의 본질도 모르는 순진한 얘기다. 그건 정치를 모르는 사람이나 하는 얘기다. 안 후보쪽에는 빅데이터에 기반한 분석 솔루션 플랫폼이 없었다.

물론 새로운 시대의 가치는 두 분 다 이해했다. 중소기업 중심, 복지 이런 얘기는 했지만 국민들한테 설득력있게 다가온 건 아니었다. 준비가 어설펐다. 문재인 후보는 노무현 시대와는 뭐가 다른 건지에 대해 답을 하지 못했다. 안철수 후보도 자신이 하는 건 뭐가 다른지 보여주기 보다는 말도 안 되는 국회의원 정수 축소, 청와대 이전을 얘기했다. 그건 전혀 새로운 정치의 핵심이 아니었다.”

-국민들의 새정치에 대한 열망을 너무 협소하게 바라본건가.

“그런 측면도 있고 새로운 정치의 본질에 대해서 깊은 고민을 하고 나온 분들이 아니다. 새로운 정치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고 나왔다면, 선거 이후에 어떻게 하겠다는 게 아니라 선거 기간에 새로운 정치의 상징적 모습을 보여주는 형태가 나왔어야 한다. 예를 들어 노무현 후보가 노사모 중심의 캠페인을 했는데 그 당시 시점에서 보면 정치혁신의 상징적 모습을 보여준거다. ‘아 저 사람이 당선되면 정치가 참여형으로 바뀌겠구나’라는 감을 잡았던 것이고, 정치 캠페인의 교과서에 오를만한 일이었다. 실제로 노무현 대통령은 당선 후 참여수석도 만들고 캠페인에서 보여준 새로운 정치의 문제의식이 국정운영에 구현되도록 노력했다.

안철수 문재인 후보는 선거캠페인 과정에서 그런 것을 보여주지 못했다. 노무현 2.0이 아니었다. 그냥 노무현이었다. 노 대통령이 살아오셨다면 다른 방식으로 했을 것이다. 퇴임 이후에도 민주주의 2.0을 선구적으로 고민했던 분 아니냐. 이번 선거에서 문재인, 안철수 후보가 민주주의2.0을 실험했나? 노무현 시절을 반복하려고 했던 것이다.”

-민주통합당은 무엇을 혁신해야 하나.

“계파담합 구조가 아니라 일상적으로 시민들한테 반응할 수 있는 내부 시스템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가 핵심이고, 집단지도체제가 아닌 단일지도체제로 선거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책임을 묻고, 대신 선거 전까지는 자기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시민 주도의 정치 시스템을 만드는 문제는 회의적이다. 박원순 시장 정도면 할 수 있다. 박원순 시장은 오세훈 전 시장이 했던 것보다 한 차원 높은 시민 주도의 시정에 대해 다양한 고민들을 하고 있다. 민주당에 그걸 설명해준다고 해서 되지가 않는다. 할아버지한테 아이패드 주고 설명해줘 봐야 과거적 방식으로 사용할 것 아니냐. 민주당에 대해서는 대단히 회의적이다. 선거에서 참혹한 패배를 한 후 계파 싸움하는 사람들 아니냐.”

안병진 경희사이버대학교 교수가 31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회기동 자신의 집무실에서 민중의소리와의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민주당이 전략, 조직 등 전반적으로 뒤졌는데 표 차이가 얼마 안 났다는 것은 변화를 바라는 민심이 폭발하지는 않았지만 바닥에서는 끓고 있었다는 것 아닌가.

“그렇다. 제가 박근혜 시대가 온다고 했지만 안철수 드래프트가 벌어지면 이길 수 있다고 했었다. 이길 수 있었던 선거였다. 알다시피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 운영은 극악했다. 지기 어려운 선거였다. 그래서 참 아쉽다. 또 거인은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사실도 느꼈다. 제가 문재인 후보를 참 존경한다. 참 좋으신 분이다. 그 세대에 초당적이기 쉽지 않은데 초당적인 분이다. 저도 감옥에서 고생했지만 어떻게 그 인간들과 화해를 하냐. 그런데 문 이사장은 화해를 하는 분이다. 정말 그릇이 큰 분이다. 그러나 대통령 후보를 할 인물은 아니다. 그런 인생을 추구하신 분이 아니지 않냐. 본인이 망가질 걸 알면서 전선이 불러서 나오신 분이다. 본인이 망가질 걸 몰랐겠나? 다 알고 굉장히 고민했다. 나는 능력이 안 되는데 역사의 책임은 다 해야겠고. 그래서 문재인 이사장을 존경한다. 나 같으면 해외로 도망가 버렸을 것이다.”

-야권의 향후 전망은 어떻게 보나.

“DJ가 있었다면 3분의 1을 물갈이를 했을 것이다. 지금은 그렇게 할 사람이 없고 민주당은 자체적으로 혁신을 못한다. 그렇다면 밖에서 붕괴를 시켜야 하는데 안철수 그룹도 그걸 할만한 리더십은 없다. 그 속에서 다음 선거까지 시간은 남아 있고, 어정쩡한 교착 상태가 지속될 것이다. 어정쩡하게 혁신하는 척하고, 그 상태로 가다가 야권에서 설령 좋은 사람이 대선 후보로 나와도 현재로서는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 참 안타깝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저 스스로에 대한 결심이기도 한데, 우리들 세대는 우리가 운동을 왜 했는지 초심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다들 먹고 살만 하지 않냐. 그럼 후속 세대를 키워주고 양보하고, 처절하게 사는 사람들을 위해서 자기가 가진 것을 좀 내놓고 그렇게 살면 안 되나. 최소한 진보운동을 했으면 더 좋은 대학의 교수가 되려고 프로모션하고 그렇게 살면 안 되는 거 아니냐. 대학이든 연구소든 국회의원이든 초심을 잃어버린 시대에 뼈를 깎는 성찰이 필요하다. 후속세대에게 길을 열어주기 위한 처절한 노력을 했으면 한다.

그런 차원에서 저는 청년비례를 주장했던 건데, 민주당이 화장술 정도로만 받아들였다. 그분들 입장에서는 ‘너야 대학에 있지만 우리는 밥그릇이 없어지는데’라면 할 말이 없지만, 저는 굉장히 중요한 원칙이 위배되면 대학을 떠날 자신이 있다. 여전히 밥그릇주의가 있는 거고, 그러니까 저렇게 노쇠화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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