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평가와 진보정치의 과제

“대선 패배, 진보정당의 ‘자멸 쇼’에서부터 시작됐다”

[기고] 대선평가와 진보정치의 과제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

기사입력 2013-01-17 오전 9:34:53

*이 원고는 지난 15일 진보정치연구소에서 주최한 토론회에서 발표한 발제문입니다. 필자의 요청으로 전문을 게재합니다. 편집자

1. 대선평가 – 진보적 정권교체의 실패 원인

1-1. 실패한 노무현정권의 비서실장

언론 등에서는 “절대 질 수 없는 선거를 패배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인물, 구도, 바람’이라는 선거공학적 측면에서 보더라도 야권이 승리하기 쉽지 않은 선거였다. 절대 질 수 없는 선거가 아니라 “결코 져서는 안 되는 선거였다”고 보는 것이 맞다. 그런데도 후보단일화만 하면 야권이 승리할 것이라는 주관적 희망에 연동된 낙관론과 이에 따른 착시현상이 야권의 대선판을 주도했다.

문재인 후보는 인품이나 진정성으로 보나 또 정책의 진보성으로 보나 민주당 후보로는 최상의 경쟁력을 지닌 훌륭한 대선후보임이 틀림없었다. 그러나 동시에 ‘실패한 노무현 정권의 비서실장’이라는 프레임을 벗어나기 어려운 구조적인 한계를 지닌 후보였다. 그렇다면 대선 전략상 프레임 전환을 위한 각별한 시도가 당연히 필요했지만, 그런 시도는 가시화되지 않았다. 아마도 이 포인트를 간과했거나 또는 인간적 정서에 매여서 머뭇거렸던 것으로 보이는데, 본선 선거전에서 큰 낭패를 당하고 말았다.

실제 대선 TV 토론에서 대학등록금 문제나 부동산 문제 등에 대해 박근혜 후보가 참여정부 실정 탓이라면서 역공한 것은 상당 부분 먹혔고, 또 제주해군기지 문제나 한미 FTA 등에 있어서도 박근혜 후보 측은 이런 일들이 노무현 정권에서 추진된 일이라고 되받아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렇게 선거전에서 참여정부 실정과 관련하여 박근혜 후보 측으로부터 효과적으로 공략당하는 와중에, 이명박 정부의 민주주의 파괴나 민생파탄에 대한 심판은 희석되어 버린 것이다. 결국 이 프레임을 전환시키지 못한 탓에 안철수 후보의 굉장한 부조와 문재인 후보의 놀라운 선전에도 정권교체에 실패한 것이다.

1-2. 민생파탄에 대한 집중공략 실패

문 후보는 유권자들, 특히 서민들의 절실한 요구, 즉 먹고 살기 힘들다는 민생파탄 상황에 대한 집중공략에 실패했다.

선거운동이 시작되고 거리에 나붙은 현수막을 보니 ‘준비된 여성대통령 vs 정권교체냐 정권연장이냐’의 구도였다. 그러다가 선거 중반에 이르러 박 후보 쪽에서 ‘민생대통령’을 들고 나왔다. 문 후보 쪽에서 뒤늦게 민생대통령을 표방했지만, 이미 선점당한 민생대통령 구호를 되찾기는 난망한 상황이 되었다. 아예 처음부터 “못살겠다 갈아보자! 민생대통령!” 등의 구호로 민생파탄 상황을 집중 공략했어야 승리의 길이 열릴 수 있었는데, 이를 놓치고 말았던 것이다.

사실 문재인 후보의 민생 관련 정책공약은 나름 훌륭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권이 되면 서민(나)의 삶이 어떻게 달라지는지’에 대해 실감 나게 제시하지 못했던 것이 또 다른 패인이라고 본다.

선거 구도상 박근혜 후보 측이 이명박 정권과 효과적으로 차별화하는 상황에서 ‘이명박근혜’ 프레임을 걸어보려면, 당연히 정기국회 등에서 민생 관련 정책 등을 구체화시켜 요구하고, 만일 여당 측에서 이를 묵살하려 하면 원내농성이나 원외투쟁 등의 방법까지 동원하는 한이 있더라도 쟁점화시키면서 전투력을 발휘했어야 마땅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정기국회를 허송세월해 버린 것이다. 이 또한 지난 대선에서 ‘민생파탄에 대한 심판’ 프레임을 걸지 못하게 된 원인이다.

한편으로는 사회복지에 대한 박근혜 후보 측의 달라진 접근법에 대해 관성적 대응을 하다가 차별성이 희석된 점도 짚을 필요가 있다. 2010 지방선거나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만 해도 여당 측은 보편적 사회복지에 반대하고 선별적 사회복지를 고수해 선거 과정에서 ‘복지 vs 반복지’ 구도가 선명하게 형성됐고, 당연히 복지 진영이 승리했다. 그런데 이번 대선에서는 박근혜 후보가 초기부터 사회복지를 들고 나오면서 ‘복지 vs 반복지’ 구도가 깨어져 버렸고, ‘보편적 복지 vs 짝퉁 복지(선별적 보편복지)’ 라는 구도가 형성됐다. 결국 여야 간에 차별성이 대폭 희석되면서 사회복지의 내용을 놓고 대치전선이 형성되는 모양이 됐다. 내용에 있어서도 야권이 여권을 압도하지 못한 반면 실현가능성 등에 있어서도 오히려 여권의 방안이 나름의 설득력이 있어 보이는 것 같은 착시현상이 생기기도 했다.

특히 지난 대선에서 89.9%에 달하는 50대의 놀라운 투표율과 높은 박근혜 후보 지지율이 승부를 가르는 요소라는 분석이 나오면서 현상의 원인을 50대의 보수화로 해석하기도 하지만, 이는 문제의 핵심을 놓치는 해석이라고 본다. 그 대신 ‘임금피크제와 연계해 정년 60세로 연장’, ‘보유주택 지분매각제도, 주택연금 사전가입제도 도입’, ’18조 원 국민행복기금 설립해 320만 채무불이행자의 신용회복 지원‘과 같은 박근혜 후보의 50대 맞춤형 복지공약이 그 위력을 발휘한 것으로 분석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에 비해 문재인 후보는 50대 이상에 대한 맞춤형 민생공약이 없거나 뚜렷하지 않았다는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

결국 민주당이 사회복지 경쟁에서 달라진 구도에 조응하지 못하면서 민생파탄에 대한 유효타격의 쟁점을 놓쳐버리게 된 것이 대선 패배의 중요한 원인이 되었다.

1-3. 잘못 짜인 선거연합 구도 

이번 대선에서 민주진보 선거연합 구도가 그 전해의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와 같이 ‘안철수 vs 문재인 vs 진보후보’의 구도로 짜이지 않고, 모두 자유주의 개혁세력인 ‘안철수 vs 문재인’으로 단순화됐다. 이는 상당 부분 진보정당의 ‘자멸 쇼’ 상황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한데, 그 결과 선거연합 논의 과정에서 이른바 ‘정치쇄신방안’ 즉 정치 분야의 자유주의 개혁방안을 중심으로 쟁점이 형성되었고, 그 과정에서 민생파탄 문제를 핵심 선거 쟁점으로 만드는 전략이 실종됐다. 그나마도 두 선거 캠프 간에 한동안 실랑이하다가 선거연합이 파탄 나게 되면서 유권자들의 피로도가 짜증 수준으로 증가했다. 이런 와중에 ‘승리하는 선거연합’이나 ‘감동적 단일화’를 통해 시너지효과를 내는 방안이 실종됐다.

문재인 후보는 선거운동기간 초중반까지 안철수 후보의 지원을 끌어내는데 신경쓰느라, 정작 본선 상대방인 박근혜 후보를 효과적으로 공략하기 위한 전략전술 마련에 집중하지 못했고, 이는 선거 패배의 또 다른 원인이 되었다.

만일 안철수 후보로 단일화됐더라면 정권교체가 됐을 것 아니냐는 논의도 있다. 역사에 있어 “만일”을 얘기하기란 부질없기에 십상이다. 그러나 그 위험을 무릅쓰고 향후 논점을 분명히 하기 위해 얘기해 본다면, 선거구도의 측면에서는 일리 있는 주장이라고 본다. 이른바 ‘안철수 현상’은 새누리당이나 민주당, 그리고 진보정당 등 기성 정치권에 대한 대중적 불신에서 태동했다. 그가 야권 단일후보가 되었다면 당연히 박근혜 후보까지 포함한 새누리당 심판 담론 구성에 훨씬 효과적이었을 것이고 바로 이 흐름이 정권교체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컸다고 본다.

안철수가 단일후보가 되고 민주당의 조직과 진보정치의 민생담론이 가세됐더라면 대선에서 위력적인 바람몰이가 가능했을 것이다. 아마 새누리당이나 보수진영이 효과적인 대응방안을 찾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밀리면서 대선판이 정치쇄신과 민생파탄에 대한 심판이라는 프레임으로 굴러갔을 거라고 본다. 그리고 그런 대선판은 야권의 승리와 정권교체로 귀결되었을 것이다.

안철수 후보 대선 캠프가 경제적으로는 중도보수 성향이고, 정치적으로는 급진 자유주의 개혁 성향을 보이는 수준임이 분명하다. 또 ‘준비부족’이고 ‘형성과정중’인 안철수 팀의 특성상 필연적으로 아마추어리즘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비록 아마추어리즘 수준이지만 바로 그런 점이 도리어 기성정치권에 질려 있고 변화와 혁신을 절실하게 바라는 유권자들에게 신선한 희망으로 다가갔을 가능성이 컸다.

한편, 만약 안철수 후보가 당선되고 집권한다 할지라도 제2의 노무현 현상과 유사한 상황이 벌어져 민중·진보 진영이 또 다른 양상으로 투쟁하게 되는 상황이 올 수도 있겠지만, 지금 닥쳐오고 있는 박근혜와 새누리당의 집권연장과는 질적 차이가 있을 것임이 분명하다고 본다. 적어도 절박하게 진행되고 있는 당면 현안에 대한 투쟁의 경우 해결의 실마리가 풀릴 가능성이 생기고 또한 기층대중운동에는 ‘숨 쉴 공간’이 생기게 되는 등 정권교체의 일정한 효과가 비록 단기간이나마 발생하게 될 터였다.

그러나 민주당은 오로지 예선 1등만 하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삼아 능력도 안되면서 욕심만 부리는 양상을 보였다. 필연적으로 이 과정에서 본선 승리와 정권교체의 필요충분조건을 충족시키는 데 실패하게 된 것이다.

1-4. 선거연합의 과정관리 실패 

지난 대선 과정을 살펴보면, 야권은 후보 단일화만 하면 본선에서 승리하고 집권하게 될 것이라고 착각해 단일화에만 매몰됐다. 이 과정에서 선거공학, 특히 단일후보 관련 여론조사공학에 매몰되면서 감동 있는 선거연합이 되기 위한 과정관리에도 실패했다.

승리하는 선거연합이 되기 위해서는, 첫째로 가치연합과 정책연합을 위한 기반형성이 우선 추진돼야 한다. 둘째로 과정관리에 있어 당사자 외에 중재 또는 심판 역할을 할 중립지대(예를 들면 희망2013 승리2012 원탁회의 등 시민사회)의 협상참여가 필수적이다. 셋째로 후보단일화 과정에 국민(유권자) 참여를 활성화시켜 감동적인 단일화 과정을 창출해야 한다. 이 대표적 사례가 서울시장 보궐선거였다.

그런데 지난 대선 단일화 협상에서는 가치연합과 정책연합을 위한 기반 형성은 부차적으로 밀려난 결과 민생파탄과 관련한 민생의제가 핵심 쟁점으로 부각되지 못했다. 또한 당사자 간의 선거연합 협상이 치킨게임 양상으로 가다가 결국 안철수 후보의 중도포기로 감동은커녕 유권자의 짜증만 유발했다. 그에 따라 유권자(국민) 참여와 감동적 단일화 과정이 아예 실종됐다.

당사자 간의 후보단일화 협상은 당연히 정글의 법칙이 관통되게 마련이다. 그런데 지난 대선에서의 후보단일화는 제로섬 방식의 무한경쟁 방식이 아니라 본선 승리를 위한 ‘협동적 경선’, ‘감동적 경선’ 과정이어야 한다는 당위에 비추어 볼 때, 당사자 간의 후보단일화 협상은 잘못된 접근법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조직력이 열세인 안철수 캠프의 경우, 정글의 법칙이 관통되는 당사자 간의 후보단일화 방식으로 추진한 게 결국 중도포기하는 상황으로 몰리는 배경이 되었다는 점에서, 명백한 전략적 실패였다고 본다.

안철수 캠프나 민주당 캠프는 바로 1년 전 성과를 거둔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의 선거연합 방식을 근거 없이 내팽개치고, 상대방의 양보만을 압박하는 기조로 치킨게임 양상으로 단일화 협상을 진행했다. 이런 선거연합 협상방식은 특별한 가수가 없는 한 아름다운 경선의 좌초로 귀결되기 마련인 것이다. 비록 선거운동 중반 이후 안철수 후보가 뒤늦게 지지활동에 나섰고 또 그로 인한 문 후보의 지지율 상승이 괄목할 만한 수준의 위력을 보였지만, 이미 어그러진 모양을 펴기에는 시간상 역부족이었다.

한편 선거연합 일정의 지연이 상당한 문제였음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막강하고 유력한 여당 대선후보가 이미 여름부터 신발끈을 묶고 본격적인 본선 선거운동에 돌입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민주당 측은 9월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후보를 선정했고, 안철수와 문재인의 후보단일화 일정도 후보등록 직전까지 진행되는 등 후보단일화 경선일정이 지나치게 지연됐다. 가뜩이나 지지율에서 여당후보에게 밀리는 구도에서 일정까지 지연됐고, 필연적으로 본격적인 선거준비에는 소홀해진 것이다.

1-5. 언론의 극심한 편파보도

조중동 등 찌라시 수준의 보수신문들의 발호는 이미 우리 정치 지형에서 거의 상수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는 여기에 더해 MBC, KBS, YTN, SBS 등 방송의 후안무치한 수준의 노골적인 편파보도가 가세했고, 이는 대선 당락에 거의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본다. 설상가상으로 조중동 종편방송이 거의 온종일 불법 선거운동 수준의 노골적인 편파방송을 강행했다. 부정선거 사례가 잇달아 밝혀질 때도 이 언론들은 박근혜 후보 측에 아무 문제없다고 강변하면서 도리어 야당을 되치기로 공격하는 적반하장 상황을 만들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언론환경은, 지난해 봄과 여름 170여 일에 걸친 방송파업 과정에서 민주당과 시민사회가 이 투쟁을 범국민적 투쟁으로 확장시키지 못하고 방송노조만의 투쟁으로 사실상 방치한 데 따른 필연적 업보라는 생각이 든다. 민주당은 개원협상 당시 방송파업이 진행되고 있는데도 제대로 된 성과를 내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의미 있는 발버둥조차 못하면서, 결국 대선 향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방송환경이 망가진 채로 유지·온존되는 상황을 방조하였던 것이다.

이런 상황은 끝난 것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인데, 어떤 방법으로든지 힘을 집중해 공정방송을 위한 환경변화를 이끌어 내야 할 것이다.

1-6. 진보정치의 지리멸렬

진보정당의 ‘자멸 쇼’에 뒤이은 진보후보 1,2,3,4의 난립은 진보정치의 실종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한 사람은 후보등록 직전에 사퇴하고 또 한 사람은 두 번의 TV 토론 후 사퇴해 결국 두 사람이 완주한 결과 각각 4.5만 표와 1.5만 표를 득표하는 결과가 나왔다.

진보정치가 조소의 대상으로 전락해 버리면서 3각 선거연합 구도가 무너졌고, 민생파탄 담론이 선거 쟁점에서 실종된 것은 뼈아픈 성찰이 필요한 대목이다.

1차 TV 토론에서 이정희 후보의 토론 내용은 통쾌했고 또 세간의 화제를 불러일으켰지만, 정작 정권교체라는 목표달성에는 도움이 되지 못했다. 일각에서 이정희 후보의 공격적 토론태도가 보수결집뿐 아니라 도리어 중노년층의 박근혜에 대한 동정심을 불러일으켰고, 이것이 대선 패배의 원인 중의 하나로 지목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과도한 비판일 수 있고, 한편으로는 부차적인 분석이다. 실제로는 두 사람 간의 공방 과정에서 정권교체의 대표선수격인 문재인 후보가 실종돼 버렸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였다. 상당 부분 문 후보의 책임이기도 하지만. 이정희 후보의 통쾌한 토론이 도리어 문재인 후보에게 악재가 되면서 결과적으로 정권교체에 부담이 되었던 것은 이른바 ‘이정희 후보 토론의 역설’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비슷한 상황이 향후로도 재연될 수 있다는 점에서 민주진보진영 간의 선거연합과 관련한 숙제가 생긴 셈이다.

한편 대선 시기 민중진보진영이나 시민사회진영에서의 대중투쟁이나 대중참여운동이 폭발적으로 진행되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의미 있게 진행되지도 못하였다. 의미 있는 대중투쟁이나 대중참여운동이 미진하다 보니, 진보진영의 정세개입력에 명백한 한계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쌍용차 투쟁이 계속 진행됐고, SKY공동행동과 ‘함께 살자 농성촌’ 활동 등이 끈질기게 진행되면서 일정 정도 성과를 거두기도 했지만, 대선판을 관통하는 수준으로 고양되지는 못했다. 또한 투표시간 연장 등의 투표권 보장운동이 집중적으로 추진됐고 중소상인 생존권 보장운동, 반값등록금 투쟁 등이 계속되었지만 일정 수준 이상으로 발전시키지는 못하였다.

결국 지난 대선 시기 민중진보 진영은 대중투쟁 차원의 정세 개입력도 매우 취약한 수준을 넘지 못했고, 제도정치권 내에서 진보정당을 통한 대선 개입력도 최저 수준에 머물렀던 대선판이었다.

1-7. 과감하게 질러댄 박근혜의 ‘짝퉁 경제민주화’

박근혜 후보는 짝퉁 경제민주화, 짝퉁 사회복지, 짝퉁 비정규직 대책 등 민생 관련 공약을 마구 쏟아냈었다.

필자는 대선기간 후반 무렵 박근혜 후보의 TV 연설이나 공약발표 내용을 보고 “어!” 하면서 깜짝 놀랐다. ‘어지간히 급하긴 급했나 보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고, 그때서야 박 후보의 공약을 부랴부랴 챙겨봤는데, 사실 가벼운 충격을 받기도 했다.

박근혜 후보가 대선공약으로 내건 내용을 보면, 5년 전 이명박 후보가 내건 공약과 질적으로 확연한 차이가 난다. 이명박 대통령은 747 공약에, 4대강 공약에, 뉴타운 공약에, 그리고 ‘Business Friendly’ 등 막나가 는 수준의 확실한 보수노선이었다. 그에 반해 박근혜 후보는 비록 짝퉁이지만 경제민주화, 짝퉁 사회복지, 짝퉁 비정규직 대책 등을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된 것이 이명박 정부와 확연히 다른 양상이다. 이렇게 된 것은 지난 5년간 우리 국민들이 겪었던 각종 고통의 역설적 반영이자 한편으로는 지난 5년간의 우리 투쟁의 결과가 역설적으로 반영된 것이리라. 당시 위기감을 느낀 박근혜 후보, 진짜 과감하게 질러댔다.

우선 고용·일자리와 노동, 사회복지, 경제민주화 등과 관련된 몇 가지만 나열하면, ‘임금피크제와 연계하여 정년 60세로 연장’, ‘정리해고전 업무재조정, 무급휴직, 근로시간단축 의무화 등 정리해고 요건강화‘, ‘공공부문부터 상시적·지속적 업무 담당 비정규직 2015년까지 정규직전환, 대기업의 정규직전환 유도’, ‘사내하도급근로자보호법 제정하여 원청업체 정규직과 동종·유사 업무시 차별처우 금지, 법원 불법파견 판결시 동일한 불법파견에 대해 원청 직고용 행정명령’, ‘최저임금 경제성장률과 물가인상률 기본 반영, 최저임금 위반시 징벌적 배상제도 도입’, ‘초등학교를 온종일 돌봄학교로 운영, 고교 무상교육 실시’, ‘반값등록금-소득하위 80%까지 ‘소득연계 맞춤형 국가장학금‘ 지원’, ‘행복주택 프로젝트(5년간 20만호), 보유주택지분매각제도, 주택연금사전가입제도’, ‘기초노령연금 2배인상’, ‘중위소득 50% 수준으로 차상위계층 확대’, ‘임신12주 이내와 36주 이후 1일6시간근로 의무화와 임금삭감금지(공공부문 및 대기업 우선시행, 여타 단계적 시행)’, ‘암, 심장, 뇌혈관, 희귀난치성질환의 4대 중증질환 총진료비(비급여 포함, 간병비 제외)를 건강보험화’, ’18조원 국민행복기금 설립하여 320만 채무불이행자의 신용회복 지원’, ‘지역협의체에서 합의된 경우에 한해 중소도시 대형마트 신규입점 허용’ 등이어서, 이 공약들이 진짜 박근혜 후보의 공약이 맞는지 도저히 실감이 나지 않을 정도였다.

2. 진보정치의 과제

2-1. 당면 과제

이제 박근혜 후보가 당선된 이상, 또 그 스스로 ‘약속과 신뢰의 대통령’을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처럼 내세운 이상, ‘공약 수납운동’ 즉 공약 이행투쟁을 착실하게 추진할 필요가 있다. 만약 박근혜 대통령이 자신의 공약을 이행하지 않고 공약을 번복하는 상황이 대중적으로 확인되면, 약속과 신뢰의 대통령 이미지가 와르르 무너지면서 바로 ‘식물대통령’으로 직행할 가능성이 농후할 것이다. 반면에 그가 비슷하게라도 공약을 지키는 양상이 되면, 서민들에게 숨 쉴 공간이 생기게 되고 그 공간을 딛고 새로운 운동이 추진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관련해 당장은 박근혜 후보의 공약에 대해 각 분야별로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이 있는지 점검하고 그와 관련해 향후 진행될 상황을 예측하며 그 길목을 챙겨 보면서 대응방안을 모색해 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박근혜 본인은 아마도 공약을 지키고 싶겠지만, 한국사회의 현실적 모순 상황이 그리 호락호락하게 엄청나게 질러놓은 공약을 이행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지 않을 것이다. 남는 장면은 그가 언제, 어떤 양상으로 공약을 번복하게 될 것인지 궁금한 양상이 될 것이다.

그러나 박근혜 정권의 공약불이행에 대해 선험적으로 미리 단정하거나 규탄하는 방식은 적절하지 않고, 공약이행을 촉구하다가 구체적 공약불이행 사례가 가시화되는 상황에서 실사구시의 방식으로 추진될 필요가 있고 이 경우에도 받아치기 투쟁방식이 효과적일 것으로 본다.

한편, 대선 이후 잇단 사회적 죽음이나 철탑투쟁과 같은 절박한 투쟁현안에 대한 긴급대응, 즉 ‘더이상 죽이지 마라, 정리해고 비정규직 노조파괴 긴급대응 비상시국회의’에서 제안하고 있는 ‘다시 희망만들기’ 버스 시동, 추모 촛불, 비상시국대회 등을 위력적으로 펼쳐나가는 과제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2-2. 진보정당 운동의 성찰과 진보정당의 재편, 통합

우선 지난 10여 년 간 진행된 진보정당운동의 전략적 오류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그에 기반한 명실상부한 진보정당 혁신운동이 필요하다.

민주노동당 창당 이후 본격적으로 진행된 진보정당 운동이 한 단계가 지나면서 일정한 성과도 있었지만, 현재의 상황은 대략 진보정당 운동의 분열과 실패다. 이대로는 더 발전의 길로 나아가기 어려운 막다른 골목에 서 있다고 본다. 진보정당 운동에 있어 분열의 핵심은 ‘정파 패권주의’에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진보정당이 발전해 원내에 진출하고 또 서푼 어치라도 먹을 게 생기고 이른바 기득권이라고 불릴만한 건더기가 생기자, 그것을 놓고 정파 간에 이전투구를 벌이게 되는 와중에 생긴 불신이 증폭돼, 지난 몇 년간 우리가 직접 목격한 바와 같은 분열이 나타났다고 본다. 이런 정파 패권주의에 대한 혁파가 없이는 진보정당에 아무런 희망이 없다.

또한 그 분열의 과정에서 나타난 전략적 오류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첫 번째 전략적 오류는 2008년 민주노동당 분당 당시 이른바 ‘일심회’ 멤버의 자진탈당을 거부해 결국 분당을 촉진시킨 것이다. 두 번째 전략적 오류는 2011년 진보정당 통합 과정에서 공식적으로는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그리고 민중·진보단체들 간의 논의테이블을 열어서 진보정당 통합운동을 펼치면서도 비공식적으로는 국민참여당과의 통합을 추진하는 사실상의 2중 플레이를 벌인 끝에 결국 민주노동당이 국민참여당 및 진보신당 탈당파와 통합해 통합진보당을 만든 것이다. 세 번째 전략적 오류는 2012년 총선 이후 비례대표후보 경선과 관련되어 불거진 ‘부실·부정 경선’ 논란과 그 대응방안을 놓고 정당의 이해보다 정파의 이해관계를 우선시한 결과 중앙위 폭력사태까지 일으키고 결국 제2차 진보정당 분열의 길로 나아간 것이다.

진보정당 ‘자멸 쇼’라고 불려도 할 말이 없을 정도로 대중과 국민 앞에 ‘개망신’당하는 상황에서, ‘진보정당의 필요성’이나 ‘진보정당의 역할’ 또는 ‘진보적 정권교체, ‘진보정당의 집권’ 등의 단어를 입에 올리는 것조차 낯 뜨거운 상황이 돼버렸다. 이런 상황을 그냥 미봉한 채, 내년 지방선거와 2016년 총선 그리고 2017년 대선을 향하여 “돌격 앞으로!”하고 외친들, 그 어떤 긍정적 전망이나 당원들과 진보대중들의 신명이 가능할 수 있단 말인가.

제반 전략적 오류들에 대한 심도 있는 성찰과 그에 따른 응당한 혁신조치는 늦지 않게 취해져야 마땅하다.

이런 성찰과 명실상부한 혁신조치에 바탕해 진보정당의 재편과 통합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그 방향은 대략 ‘노동 중심의 대중적 진보정당’ 건설을 위한 진지한 모색이 추진돼야 한다는 것이다. 시간도 별로 없다. 내년 지방선거에 의미 있게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또 도탄에 빠진 기층대중들의 절규에 대답하기 위해서라도, 늦어도 금년 가을까지는 그 성과가 나와야 마땅하다. 시기를 놓치고 나서 뒤늦게 땅을 치며 통탄해 봤자, 이미 그때는 진보정당들이 우리 사회의 확실한 변방에 내동덩이쳐지는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2-3. 전선재편과 대중투쟁의 활성화

현재 민중진보진영의 연대연합운동 단체 또는 초기 전선조직으로 존재하고 있는 ‘한국진보연대’나 ‘세상을 바꾸는 민중의 힘’을 재편하는 논의를 진지하게 시작해야 한다. 아무리 봐도 현 상태 그대로 가서는 힘 있는 대중투쟁을 수행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음을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재편방향은 민주노총을 비롯한 기층대중조직을 중심에 다시 세우고 거기에 제 정치사회단체들이 함께 힘을 모으는 방향으로 모색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이미 바닥에까지 떨어져 있는 민주노총을 비롯한 기층 대중조직의 활성화와 그에 기반한 대중투쟁의 다각적 시도는 필수 과제라고 하겠다.

현재 우리는 바닥에 와 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을 직시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 기본부터 다시 다지는 순간, 우리는 새로운 상승의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10130117013731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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