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행동의 논리(무임승차의 원인은 무엇인가?)

올슨은 집단행동의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해 체계적, 논리적으로 정리하였다. 기존의 대중행동이 집단심리, 대중심리 등 주로 심리적인 원인을 중심으로 특정한 시기 대중들의 열광적인 집단행동의 원인이 무엇인가를 설명하고, 그 비이성적, 무정형성, 일시성, 폭발성 등을 중심으로 다루어왔다.

그러나 이와 같은 분석방법은 87년 6월 항쟁이나 올초의 촛불시위처럼 일시적으로 대중들이 폭발적으로 가두시위에 참여하는 것은 서술할 수 있을지언정 일상적인 조직활동이나 다양한 집단행동의 원인, 조직을 유지하고 끊임없이 이를 독려하는 등 소수 열성적인 사람들을 설명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 또한, 대중심리를 바탕으로 한 설명방식은 대중들의 비이성적이고 몰합리적인 면만 강조할 뿐 그 대중운동을 일으킨 요인을 간과할 수밖에 없는 문제가 있다.

이에 비해 마르크스 주의자들을 중심으로 한 좌파는 대중들의 집단행동에 대해 계급의식을 강조하였다. 노동자 계급에 속한 사람에게 가장 최고의 지상 가치는 자본으로부터 노동의 해방이고 이 때문에 노동자들이 계급 운동에 참여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논리이다.

그러나 이 또한 모든 노동자들이 노동운동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며, 반대로 지식인을 포함한 쁘띠 부르조아들이 오히려 더 노동운동에 참여하는 반면, 노동자들이 반혁명진영에 가입하는 등 계급모순적인 행동에 대해서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물론, 이런 부분에 대해 그람시를 필두로 한 마르크스주의 학자들은 자본주의 국가의 교육과 허위이데올로기에 취해 있기 때문이라는 등 다양한 설명을 하고 있지만, 사회 어떤 부분을 통찰해 보아도 명확하게 집단행동에 참여하는 사람은 그 계급의 주 구성원이 아닌 경우가 허다하다).

이에 반해 올슨은 집단행동의 논리를 수학적 모델을 통해 명확하게 분석하고 있다.

합리적인 개인(이기적인 개인)이 집단행동에 참여하는 이유는 자기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반드시 경제학에서 가정하는 식으로 개인이 엄격하게 자신의 이익과 비용을 계산해서 이익이 되는 행동만 하지는 않더라도 일반적으로 개인은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행동을 한다. 단, 올슨의 집단행동의 논리에서는 정량적 분석을 위해 자원봉사 활동이나 종교 활동처럼 심리적인 부분이 절대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에 대해서는 분석을 제외했다. 물론, 논리가 명확해지면 그런 심리적인 부분까지 분석이 가능하지만 말이다.

특정 기업의 노조원이 노조 활동, 특히 파업에 참여하는 이유는 임금을 인상시키거나 일자리를 유지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노조 활동은 비용을 수반한다. 개인적으로 노조 주최의 강의나 집회에 참여하는 등 시간을 할여해야 하며, 그 과정에서 비용도 부담해야 한다. 또한, 경영진에게 찍혀 직장을 잃거나 극단적으로는 불법파업에 대한 혐의로 감방에 갈수도 있다.

일견 노조활동은 노동자들에게 이익이 되는 합리적인 행동인 것 같지만, 이와 같이 비용을 수반한다. 그리고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 클수록 활동 가능성은 점차 작아지는게 논리적 귀결이 될 것이다. 만약 노조에서 얻는 이익이 노조활동, 혹은 파업 등에 참여하지 않은 모든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돌아간다면 합리적인 개인은 더더욱 비용은 줄이고 수혜는 누르려는 유혹을 받게 된다.

여기에서 바로 비용은 부담하지 않으면서 수혜만 누리려는 “무임승차”가 발생하게 된다.

치안이나 국방, 고속도로 등 누리는 혜택을 배제할 수 없지만(비배제성), 특정인의 재화 사용으로 전체 재화의 양이 줄어들지 않는(비경쟁성) 재화를 공공재라고 한다.

치안의 안정으로 안전한 생활은 모든 국민에게 돌아가지만, 합리적인 개인이라면 그에 필요한 비용은 부담하려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개인에게는 비용 부담은 않으면서 그 혜택을 누리는 것이 최대의 이익을 얻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공재는 항상 무임승차의 문제가 발생하고, 그 때문에 집단 전체에게 최대의 이익이 되는 양 만큼의 공공재가 생산되지 않는다. 바로 ‘과소생산의 문제’가 발생한다.

따라서 공공재 생산을 위해서는 모든 참여 주체의 균등한(최소한 도덕적으로 정당한) 분담이 원칙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개인은 대부분 무임승차의 유혹에 빠지기 때문에 무임승차를 막기 위해 감시와 처벌이라는 또 다른 비용의 문제가 발생한다. 그리고 누가 감시와 처벌을 할 것이냐는 문제도 발생한다. 일반적으로 국방이나 치안, 도로 등 SOC를 건설하는 주체가 국가인 이유도 바로 이때문이다. 민간 자율에 맡기면 거의 항상 공공재는 과소 생산되고, 때에 따라서는 무임승차를 막기 위한 감시와 처벌 비용이 더 많이 발생한다.

노조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이미 노조 활동이 10여년이 넘은 대기업 노조의 경우 파업 등 노조의 집단활동에 참여하지 않는 노조원들에 대해 처벌을 가하는 다양한 수단을 가지고 있다. 합리적인 노조원이라면 노조의 파업시기 대체 근로 등을 통해 기업에 협조함으로써 가외 소득을 벌 수 있고, 기업과의 우호적인 관계도 유지할 수 있으며 파업의 성과물인 임금인상을 함께 누리는 것이 가장 이득이 된다. 그래서 노조는 파업에 참가하지 않는 노조원에 대해 집단 왕따, 괴롭힘, 벌금 등 다양한 방법으로 압박을 가하며 극단적으로는 일자리 보호 등 노조의 보호막을 제거하기도 한다.

그럼 국가가 아닌 대부분의 집단활동은 어떻게 가능한가?

집단활동은 이익(정신적인 안정을 포함해서) 때문에 결성된다고 하지만, 집단활동은 많은 노력과 금전적 비용을 수반한다. 따라서 대부분의 집단 구성원도 역시 마찬가지로 비용은 부담하지 않으려 하면서 수익은 누리려고 하는 무임승차의 유혹에 빠지게 되고, 그로서 아무도 집단활동에 참여하지 않는 사태까지 발전할 수 있다.

특히 최초의 집단활동은 기존의 조직보다도 훨씬 더 많은 노력과 비용을 수반하기 때문에 더욱 힘듬에도 불구하고 많은 집단이 생성되고 융성한다.

여기에서 올슨은 경제적인 인간이 집단활동에 참여하는 이유를 경제학적으로 설명한다.

즉, 어떤 개인이 집단활동을 통해서 얻어지는 공공재의 수익이 자신이 부담해야 하는 비용보다 많을 때 그는 다른 사람의 참여 여부와는 상관없이 공공재 생산을 위한 비용을 기꺼히 부담한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공공재의 수익을 동등하게 나누어 갖는 것이 아니라,

재산이 불공평하게 나누어지듯 공공재로부터 얻는 수익도 불공평하게 분배된다. 그리고 그 불공평성이 커지면 커질수록 그 집단의 성공 가능성은 더 많아진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10명으로 구성된 A라는 집단이 필요한 공공재(집단재)를 생산하는데 드는 비용이 100이고,

그 재화를 통해 누리는 수익이 집단 전체에게는 300이라는 가치를 갖었다고 하자.

일견 그 집단은 수익이 더 크기 때문에 비용을 기꺼히 부담해야 하겠지만,

만약 모든 집단이 1/10만큼 비용을 부담하고, 그 수혜도 1/10만큼 나누어 가진다면

그리고 비용이 적어질수록 수익도 같은 비율로 작아진다면

합리적인 개인은 10의 비용을 부담안하고,

생산되는 집단재 가치 270의 1/10인 27을 누리는 것이 10을 부담하고, 30의 수익을 얻는 것보다 7이 더 이익이기 때문에 무임승차하려 한다는 것이다. 이는 다른 이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이런 집단의 경우 특정한 다른 기재(감시와 처벌, 협약 등)가 없으면 집단 전체의 이익을 증진시키는 공공재 산출에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똑같이 10명으로 구성된 B라는 집단이

100이라는 비용으로 300의 수익을 얻는다고 가정하자.

그 집단원 중 a라는 사람은 150의 수익을, b라는 사람은 100, 나머지 사람은 1/8만큼의 수익을 얻는다고 하면, a라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참가하는 것과는 별개로 공공재(집합재) 생산을 위해 기꺼히 비용을 부담하려 한다.

왜냐하면 아무도 비용부담을 하지 않더라도 a라는 사람은 공공재 생산을 위한 100보다 그 수익인 150이 더 크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b라는 사람도 자신이 부담해야 하는 비용과 수익이 같기 때문에 다른 이가 그 비용의 일부만 감당하면 무조건 수익이 더 많아지기 때문에 a와 함께 공공재 생산을 위한 비용을 기꺼히 부담할 것이라 추론할 수 있다.

이때문에 특정집단의 성공은 나누는 수익이 불균등할수록,

참여하는 구성원의 수가 적을수록, 수익이 더 클수록 성공의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것이 바로 일반 대중 운동이나 노조 결성보다 소수기업의 독과점 결성이 더 쉬운 이유이기도 한다

구성원이 많아질수록 부담해야 하는 비용은 커지는 반면 수익의 비율은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감시와 처벌이라는 기재를 사용한다 하더라도 집단의 크기가 커질수록 감시와 처벌 비용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논리를 확대하면 최초의 집단활동의 막대한 비용은 그 집단재로 인해 수익이 가장 큰, 혹은 크다고 생각되는 개인이 담당하기 마련이다. 이것은 종교나 봉사단체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봉사활동을 통해 얻는 심리적 위안이나 안정, 동료들의 인정 등과 같은 부분에 대해 가장 크게 느끼는 사람이 결국 봉사활동을 할 집단을 조직하고 유지하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이와 같은 일들을 수없이 많이 볼 수 있다.

통치자를 포함한 정치인의 경우, 그 국민 성원 전체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법은 공정한 인사정책과 합리적인 제도 마련, 법과 제도에 의한 통치 등이 될 것이다.

그러나 특정 집단에게는 전체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보다는 특정 집단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래서 권력의 독점이나 측근채우기, 특정 집단의 경제적 이익 보장 등으로 얼룩지고, 국가 전체의 공공재는 줄어들지언정 자신들의 집합재는 늘어나게 된다.

국가 전체를 위해서는 투기를 억제하는 것은 집값 안정으로 그 혜택이 전체에게 돌아가지만,

특정인에게는 투기가 전체의 이익을 줄이지만 자신의 이익은 극대화하기 때문에 중지되지 않는 것이다.

무임승차하려는 사람을 어떻게 최소화 할 것인가

어떻게 특정 집단의 이익만을 극대화하는 것을 넘어 전체의 이익을 최대화 할 것인가,

최적의 공공재 생산을 위해 어떻게 최소의 감시와 처벌만으로, 어떻게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할 것인가

이것이 바로 정치의 시작과 끝이 아닌가 싶다.

http://blog.naver.com/its_reform/56805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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