퀜틴 스키너의 자유주의 이전의 자유

퀜틴 스키너의 자유주의 이전의 자유
한겨레  한승동 기자
» <퀜틴 스키너의 자유주의 이전의 자유>

<퀜틴 스키너의 자유주의 이전의 자유>
퀜틴 스키너 지음·조승래 옮김/푸른역사·1만3000원

1987년 민주화 이전에도 사람들은 잘 살았다. 밥 먹고 돈 벌고 놀고 여행하는 데 큰 불편 없었다. 민주화 이후의 시대 이른바 ‘친북 좌파’가 나라를 망쳐놨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3공, 5공 시대를 그렇게 기억한다. 그게 ‘자유’였을까? 그 시절 경찰서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고 더욱이 감방 같은 곳은 선량한 사람들과는 무관한 범죄자의 세계로만 여긴 사람들, 나라에서 시키는 대로 한눈팔지 않고 산 사람들은 그때 자유로웠을까?

‘자본주의적 자유주의 가치의 선전원’이었던 아이제이아 벌린(1909~1997)의 관점에 서면 그들은 자유인이었다. 벌린은 타인 또는 외부의 간섭, 강제, 방해를 받지 않는 것을 자유라 규정했다. ‘소극적 자유’다. 그것은 권리청원, 찰스1세의 처형, 공화정 수립으로 이어진 17세기 영국혁명을 거부했던 토머스 홉스와 18세기 미국혁명을 부정했던 제러미 벤담이 일찍이 역설했던 자유론과 일치한다. 왕당파와 절대주의 지지자들의 자유론이다. 이들에 따르면 선한 왕이 지배했던 고대왕국의 신민이 21세기 민주국가 시민보다 훨씬 더 자유로웠을 수 있다.

벌린이 1958년 옥스퍼드대 사회정치이론 강좌교수 취임강연에서 그런 자유론을 설파한 지 40년이 지난 1998년 케임브리지대학 근대사 왕립석좌교수가 된 ??틴 스키너는 취임강연에서 벌린의 자유론에 도전했다. 그가 지지하는 17세기 영국혁명 때의 공화정 의회파 저술가들은 자유인이 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을 만족시켜야 한다고 했다. 우선 “부당한 간섭 없이 권리와 자유를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것은 자유에 대한 필요조건이긴 하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자유인이 아니어도 특정한 권리와 자유를 마음껏 누릴 수 있다. 예컨대 옛 로마나 미국 노예들도 드물지만 좋은 주인 만나면 즐거운 놀이와 휴식, 맛난 음식을 만끽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언제 주인의 기분이나 생각이 바뀌어 천국에서 지옥으로 떨어질지 몰랐다. 그들이 누린 자유가 이처럼 전적으로 타인의 자의적 의지, 선의에 달려 있는 것이라면 아무리 자유를 누리고 있다 한들 그들은 자유인이 아니라 노예다. 따라서 자유인이 되기 위해서는 “권리와 자유를 행사할 수 있는 역량이 타인의 의지에 종속되지 않아야 한다.” ‘적극적 자유’다.

대통령을 직접 뽑을 권리도, 복수의 사람들을 한꺼번에 마음대로 만날 수도, 책을 마음대로 읽을 수도 없었으며, 머리카락과 치마 길이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었고, 정부를 비판하는 말을 뱉는 순간 감옥에 갈 각오를 해야 했던 빅 브러더의 세계, ‘유신’ 독재 이후 군사정권에 고개 쳐들지 않은 대가로 얻은 자유가 진짜 자유였을까. 스키너에 따르면 왕이나 빅 브러더는 그들이 신민을 구속하든 말든 그 존재 자체가 자유를 자유일 수 없게 만든다.

» 찰스 1세(1600~1649)의 처형. 악정을 베풀던 그는 1628년 권리청원이 제출되자 의회를 해산해버리고 11년 동안 소집하지 않았다. 1640년 스코틀랜드 반란으로 촉발된 ‘영국혁명’에서 청교도들이 주도한 의회쪽과 대립하다 1649년 처형당했으며, 크롬웰은 공화국을 선포했다. 이 시기는 18세기 이후 홉스와 벤담의 소극적 자유론이 대세를 이루기 전 자유에 관한 풍부하고 깊이있는 논전이 전개됐다. 푸른역사 제공

그러면 정치적, 절차적 민주화가 크게 진전됐다는 지금 사람들은 자유로울까?

벌린이나 홉스의 자유론에 따르면 거동이 불편한 환자가 병실을 나올 수 없는 것은 자유를 누릴 힘이 없어서지 자유가 없어서가 아니다. 그런 논리라면 지금의 신자유주의시대에 극빈자나 사회적 낙오자, 소수자에게도 얼마든지 자유는 있다. 다만 그걸 누릴 힘이 없을 뿐이다. 정말 그들에게 자유가 있을까? 무한경쟁의 우승열패식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강자는 권력을 독점하고 약자는 가속적으로 더 약해질 수밖에 없으며 그런 처지에서 평등한 기회는 보장되지 않는다. 신자유주의 체제에선 소수 강자, 상위 20%만이 자유롭다.

18세기 공리주의 등장 이후 ‘적극적 자유’론은 쇠퇴했고 자유가 아니라 국가보호 아래 안전과 행복 추구가 최선이라던 왕당파 홉스와 벤담의 소극적 자유론이 세상을 지배했다. 이 때문에 “자유에 대한 좀더 넓고 좀더 깊이 있고 무엇보다도 좀더 민주주의적인 생각이 대부분 시야에서 사라졌다”는 게 스키너의 생각이다. 〈퀜틴 스키너의 자유주의 이전의 자유〉(푸른역사 펴냄)는 바로 이 ‘시야에서 사라진’ 적극적 자유론, 공화주의적 또는 신로마적, 민주주의적 자유론을 되살리자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좌파이념의 확산을 막기 위해 간섭의 부재라는 의미의 개인의 사적 자유를 옹호”한 벌린의 자유론, 냉전시대 서방진영의 ‘정전’이자 ‘무기’가 됐던 그 자유론을 넘어서서, 공화주의와 시민적 자유론마저 불온시했던 이 땅에선 친숙하지 않은 스피노자, 루소, 헤겔, 마르크스, 자코뱅, 좌파들의 자유론을 다시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그 출발점이 영국 역사상 자유론을 둘러싸고 가장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던 17세기 영국혁명 당시, 홉스와 벤담의 자유주의가 판치기 ‘이전의 자유’다.

 

  • 자유는 공동체 안에서 보장된다
  • 퀀틴 스키너의 자유주의 이전의 자유
    퀀틴 스키너 지음|조승래 옮김|푸른역사|224쪽|1만3000원
  • 이한수 기자 hslee@chosun.com
    입력 : 2007.06.22 23:06
    • 번역서 제목에 저자 이름을 앞세운 것은 그만큼 저자의 명성이 높다는 반증이다. 이 책(Liberty before Liberalism)을 쓴 퀀틴 스키너(1940~)는 영국 캠브리지대 교수이자 영국 학술원 회원으로 정치사상사 방법론을 이야기할 때 반드시 언급되는 학자다. 그가 38세 때 쓴 ‘근대정치사상의 토대’는 정치사상사 연구자들이 필수적으로 읽어야 할 저작 목록에 올라있다.

      자유의 문제를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학자는 이사야 벌린(1909~1997)이다. 벌린은 1958년 ‘자유의 두 개념’에서 자유를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로 구분했다. 소극적 자유는 간섭과 방해가 없는 상태이며, 적극적 자유는 공동체에 참여하여 자아실현을 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벌린은 이 두 가지 자유 중에서 소극적 자유만이 진정한 자유라고 주장한다. 벌린이 이렇게 말한 까닭은 시대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당시 사회주의·공산주의 좌파 이념이 득세하던 상황에서 공동체 참여를 강조하는 적극적 자유는 결국 개인의 자유를 통제하는 전제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퀀틴 스키너는 40년 후인 1998년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 취임 강연에서 벌린의 자유 개념을 반박한다. 이 책은 그 강연을 발전시킨 것이다. 스키너에 따르면 자유는 벌린이 말하듯 두 가지 개념으로 구분할 수 없다. 자유는 간섭에서 벗어날 뿐 아니라 무엇을 할 수 있는 것을 말하기 때문에 소극적 개념과 적극적 개념은 겹쳐져 있다. 더구나 간섭이 없는 상태를 진정한 자유라고 말할 수 없다. 자비로운 주인 덕분에 아무런 간섭 없이 사는 노예가 있다 하더라도 그를 자유롭다고 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스키너는 간섭의 부재(不在)가 아니라 지배의 부재로 자유를 규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스키너의 주장 역시 시대상황과 깊은 관련이 있다. 신자유주의 질서가 강화되고 양극화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강자의 시혜를 바탕으로 약자가 소극적 자유를 누리는 것을 진정한 자유로 말하는 것은 강자의 논리를 그대로 따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스키너는 진정한 자유란 동등한 시민으로서 입법과 정책결정 과정에 평등하게 참여할 수 있을 때 가능하다고 본다. 그는 공동선을 추구하는 것이 개인의 자유를 방해하는 것은 아니며, 공동체에 책임을 지면서 개인의 자유를 최대화하는 것이 진정한 자유라고 말한다.(공화주의 자유론)

      이 같은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스키너가 택한 방법은 ‘고고학적 발굴 행위’(역사적 문헌검토)다. 그는 주장하기에 앞서 17세기 중반 영국혁명 과정에서 자유의 개념이 어떻게 등장하고 변천하는지 서술하고, 주요 사상가들의 자유개념을 검토한다. 홉스의 ‘리바이어던’은 소극적 자유를 옹호하는 뿌리였던 반면, 마키아벨리는 ‘리비우스의 로마사 논고’에서 개인의 자유는 자유로운 공화정 아래의 자치공동체에서만 보장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유럽 사상사를 간략히 서술한 소품이지만 서구 정치사상에 대한 기본지식이 없다면 읽기 쉬운 책은 아니다. 근대정치사상사 연구자인 옮긴이가 책머리에 덧붙인 글은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책]진정 자유롭다는건…
[세계일보] 2007년 06월 22일(금) 오후 07:30
자유주의 이전의 자유/퀜틴 스키너 지음/조승래 옮김푸른역사/1만3000원지식인은 왜 자유주의를 싫어하는가/레이몽 부동 지음/임왕준 옮김기파랑/9000원
한때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외치던 시절이 있었다. 그 매력적인 단어 ‘자유’ ‘자유주의’를 제목으로 뽑은 두 권의 책이 눈길을 끈다.

자유를 제대로 누리는 사람들은 공기의 절실함을 모르듯 ‘자유’에 무감각하기 쉽다. 늘 쓰는 말이지만 쉽게 정의할 수 없고 모호하기도 하다. ‘자유민주주의’도 그렇다. 우리 헌법에서 국가의 이념으로 명시하고 있지만 그 개념을 정확히 이해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자유, 자유주의는 과연 어떤 역사적 배경에서 형성되었고, 어떤 가치를 지향할까.

퀜틴 스키너 지음/조승래 옮김푸른역사/1만3000원(왼쪽)
레이몽 부동 지음/임왕준 옮김기파랑/9000원
학문적으로 자유의 개념에 뚜렷한 답을 제시한 인물 중에는 영국의 정치사상가 이사야 벌린(1909∼1997)이 손꼽힌다. 그는 자유를 적극적 자유와 소극적 자유로 구분했다. 능동적 참여를 강조하는 적극적 자유의 개념은 프랑스 대혁명이나 러시아 혁명 같은 역사에서 비인간적이고 폭압적인 권위의 정당화를 초래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비판한다. 반면에 개인의 사생활 중심주의를 표방하는 소극적 자유의 개념이야말로 인간의 내면적 발전을 자극하고 더 진실하고 인간적인 이상이자 이 시대의 중요한 가치라고 주장했다.

소극적 자유는 “내가 행하고자 하는 것을 다른 사람에 의해 방해받지 않는 한도 내에서 누리는 것”, ‘간섭의 부재’가 필요하다. 이는 정치적으로 강제적 폭력이나 지배의 부재를 의미한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이자 학술원 회원인 퀜틴 스키너의 ‘자유주의 이전의 자유’는 소극적 자유 개념에 대한 벌린의 정의에 반기를 든다. 스키너는 우선 ‘간섭의 부재만을 강조한 소극적 자유는 독단에 불과하다’고 단정한다. 그는 벌린의 전제가 공동체를 위해 봉사하는 덕성을 지닌 시민의 공공 정신과 자유의 연관성을 폐기시키는 오류를 범했다고 비판한다. 이를 위해 스키너는 근대 사상가에서 마키아벨리와 홉스 등의 자유 개념을 축으로 공화주의 이념의 성쇠와 자유주의 이념을 신로마적 시각으로 추적한다. 특히 국가가 자유의 상태를 유지하지 않으면 개인적 자유도 박탈당한다는 자유국가 이념을 가진 공화주의의 본질에 주목한다.

이때의 개인적 자유는 이익과 권리에 바탕을 둔 소극적 자유와 의미가 다르다. 오히려 모든 시민이 한마음으로 공동체에 봉사하고, 정치적 공동체의 의결에 동등하게 참여하는 것을 통해 특정 집단이 민중을 강제하는 것을 막는 데 역점을 둔다.

스키너의 자유에 대한 관점은 ‘어떤 권위를 행사하는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의 권위가 누구의 수중에 있는가’이다. 따라서 그의 대안은 벌린류의 이분법적인 적극적 자유보다는 ‘우리 자신의 공적 영역에 책임을 지면서 개인적 자유를 최대화하는 것’이다. 자유가 남용되고 개인의 자유를 전제로 오히려 통제와 감시를 부추기는 현실을 감안하면 그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이에 비해 프랑스의 저명 사회학자 레이몽 부동 파리4대학 철학과 명예교수의 ‘지식인은 왜 자유주의를 싫어하는가’는 마르크스주의자나 마오주의자, 그리고 프로이트·니체·레비스트로스 같은 좌파 지식인들로부터 숱하게 오해 혹은 매도돼 온 자유주의를 변호한다.

이 책은 특히 최근 들어 한국 사회에서 자유주의 국가의 상징인 미국에 대한 반대감정이 유별나고, 지극히 자본화된 사회에 살면서도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이 남다르며, 빈부차에 대한 반감이 신경증적으로 표출되는 이유를 설명하는 데 매우 유용하다. 부동은 우선 그 기능과 역할 면에서 거의 멸종 위기에 놓인 지식인 집단을 세 부류로 분석한다. 첫째는 ‘지적 본능’에 따라 지식을 생산하는 부류이고, 둘째는 ‘윤리적 신념’에 의해 동기화된 활동적 지식인이며, 셋째는 ‘TV에 자주 나오기 위해’ 중개자들을 가동하고 인기몰이에 열중하는 ‘노출 본능’이 강력한 지식인 집단이다. 부동은 특히 연구나 강의보다는 토론회나 강연회를 쫓아다니는 정치 교수에 대해 ‘진실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지식인은 거의 없다’는 짐멜의 말까지 인용하며 신랄히 비판한다.

부동의 지적은 명쾌하다. 모든 것을 일반화하는 위험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 소위 지식인 부류가 한목소리로 지적하는 자유주의 사회의 병폐는 자유주의 원칙을 적용했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자유주의 원칙에서 멀어졌을 때 발생한다는 점을 잊지 말라는 경고다.

조정진 기자 jjj@segye.com

<평등할 때만 자유로울 수 있다>

‘자유주의 이전의 자유’ 출간

(서울=연합뉴스) 김승욱 기자 = 자유에 대한 정의 가운데 가장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것이 영국의 정치사상가 이사야 벌린(Isaiah Berlin 1909-1997)의 ‘2가지 자유론’이다.

벌린은 자유를 적극적 자유와 소극적 자유로 구분한다. 적극적 자유가 민주적 참여와 권력의 원천을 지향한다면, 소극적 자유는 간섭받지 않는 영역의 확보와 권력의 제한에 관심을 쏟는다.

벌린이후 자유를 구분해 개념짓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 소극적 자유의 개념은 정당한가 등을 둘러싸고 많은 반론이 제기됐다.

케임브리지대 근대사 교수로 재직 중인 퀜틴 스키너가 펴낸 ‘자유주의 이전의 자유’ 역시 자유의 개념을 새롭게 해석하고자 하는 시도 가운데 하나다.

이 책에서 스키너 교수는 우선 홉스와 마키아벨리 등 근대 사상가들이 적극적 자유와 소극적 자유를 표현한 방식을 살폈다.

마키아벨리는 개인 자유의 보장은 자발적인 공적 봉사에 있다고 보고, 개인의 자유는 자유로운 공화정 자치 공동체에서만 보장된다고 강조했다.

홉스이후 소극적 자유 옹호자들은 개인의 자유는 군주정이나 공화정 같은 국가체제와 상관없이 독립된 문제라고 주장했다.

스키너 교수는 “간섭의 부재를 강조한 소극적 자유는 독단에 불과하다”며 소극적 자유 옹호론을 비판한다.

자유가 정치제도와 상관없이 타인 혹은 외부의 간섭이 없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면 노예도 주인이 간섭하지 않는 한 자유로울 수 있고 운 좋게 인자한 주인을 만난 노예는 자유인보다 더 자유로울 수 있다는 비판이다.

스키너는 한 개인의 자유가 타인의 선의와 재량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은 자유가 아니라고 단언한다. 자유는 오로지 평등한 자유인들만이 누릴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자유 공동체 안에서 평등한 구성원으로서의 지위를 누릴 때만 인간은 자유로울 수 있으며 늘 깨어 있고 시민적 덕을 실천하는 것이 자유를 누리기 위한 자격이라고 강조한다.

푸른역사. 조승래 옮김. 224쪽. 1만3천원.

신자유주의 시대, ‘진정한 자유’란 무엇인가
[서평] <퀜틴 스키너의 자유주의 이전의 자유>
<a “viehref=”javascript:void(0);”><a “viehref=”javascript:void(0);”><a “viehref=”javascript:void(0);”>텍스트만보기   이선미(sozu20) 기자   
ⓒ 푸른 역사

‘자유’란 말은 참 낯설지 않다. 우리는 충분히 자유롭게 산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자유라 느끼는 자유는 진정한 자유인가? 자유주의 시대에 자유를 충분히 누리고 있다면 인간은 왜 날로 불평등해지는가? 무엇을 위한 자유인가?

우리가 너무 친근하게 느끼지만 쉽게 규정 내려지지 않는 자유에 대해 시대의 변화에 따라 반론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책이 있다. 바로 퀜틴 스키너의 <자유주의 이전의 자유>이다.

퀜틴 스키너는 케임브리지 대학교 근대사 교수로 정치사상사를 다루고 있는 역사가이다. 그는 1978년 그의 이름으로 정치사상사 서술의 필수 인용 목록에 <근대 정치사상의 기초>, <마키아벨리>, <홉스 철학에서의 이성과 수사> 등의 저서 등을 발표한 바 있다.

퀜틴 스키너가 주목받는 이유는 우리가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로 알고 있는 아이제이야 벌린의 <자유의 두개념>에 대해 도전장을 냈기 때문이다. 벌린이 우파적 전통의 자유론을 고수한 것이었다면, 스키너는 자유주의 혹은 신자유주의가 세계화의 보편원리로 작동하는 현 상황에 반론을 제기한 것이었다.

이 책을 번역한 조승래 교수는 87년 유월 항쟁 20주년을 맞아 우리가 그토록 갈구했던 자유, 자유의 대의를 위해 싸운 사람들과 그것을 소중하게 지키려고 한 사람들의 이상 추구를 염두하며 근본적 ‘자유’에 대한 본 스키너의 책을 소개했다.

신자유주의의 무한 경쟁 논리 속에 기회균등을 내세운 자유는 과연 자유인가? 조 교수는 국가의 간섭이 부재한 상황만이 자유인가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며 벌린이 말하는 자유주의 자유론, 스키너가 말하는 공화주의 자유론의 차이에 대해 책의 서두에 비교적 자세히 다루어 주었다. 독자는 스키너를 만나기 전에 조승래 교수의 특별 강의를 듣고 공화주의 자유론에 입문하는 셈이다.

벌린의 자유주의 자유론에 의하면, 자유는 사적이고 개인적인 영역에 속한다. 자유란 타인의 혹은 외부의 간섭이 없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이다. 그것은 정치 제도와도 상관없이 어떤 체제하에서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그는 적극적 자유론은 자유를 평등, 형제애, 인민 주권과 같은 다른 개념과 구별하지 않으며 개인에 대한 통제와 억압을 정당화하는 것이라 말하며, 소극적 자유만이 완전한 자유라 말한다.

퀜틴 스키너의 공화주의 자유론은 벌린이 주장한 이러한 소극적 자유가 과연 진정한 자유인지 반문한다. 스키너는 벌린이 말하는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가 아닌 제3의 자유가 있다며, 스키너의 공화주의 자유론이 벌린이 말하는 적극적 자유론과도 차별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스키너의 ‘진정한 자유’는 과연 무엇일까?

스키너는 제3의 자유로서 공화주의적, 신로마적 자유를 말하는데, 이는 벌린의 소극적 자유에서 말한 간섭의 부재를 넘어서 본질적으로 종속 혹은 지배의 부재로 규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17세기 영국의 혁명기간에 의회파가 왕권에 대항해 싸우면서 왕정 대신 공화국을 수립하면서 옹호했던 자유론이 자유에 대해 민주적인 생각이었다고 말한다.

로마법 <학설집>, <카탈리나 전투>, <로마사> 등을 통해 스키너는 자신의 공화주의 자유론의 근거를 제시하는데, 결국 그의 논지는 공동체의 자유를 침해하는, 즉 평등한 구성원들을 예종의 사슬로 묶으려는 세력을 막아내어 개인들이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이다. 이때 공동선은 개인의 자유를 누리기 위한 수단이다.

이 책은 스키너가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97년부터 강연한 내용을 확대 발전 시킨 내용으로 <자유국가의 신로마적 이론>, <자유국가와 개인적 자유>, <자유와 역사가>라는 제목으로 꼭지가 나뉘어져 있다.

다양한 지성사가들의 자유에 대한 입장과 이에 대한 스키너의 의견이 곁들어져 내용은 이어지는데, 중간중간 인물 삽화가 추가되어 흥미를 더해준다.

저자는 책의 말미에 자유국가에 대해 우리가 물려받은 사고의 전통과 그 모순점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그리고 이에 대해 반추해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이 선택의 문제이지, 반드시 필연적인 것은 아니라고 말하며 조용스레 독자의 과제로 남겨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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