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키아벨리 관련 자료

=============================================================

이 번역본은 (당장) 출판을 염두에 둔 게 아니며, 아직 충분한 교열을 거친 것도 아닙니다. 따라서 이 번역본을 출력하고 옮기고 하는 것은 허락하지만, 공적인 매체에서 인용하는 것은 불허합니다. 인용을 원하는 분은 사전에 이메일로 역자에게 허락을 얻기 바랍니다.

* 이 글은 후기 알튀세르의 마키아벨리에 대한 독해와 마주침의 유물론이, 프롤레타리아 독재론 및 이데올로기 국가 장치론의 난점들을 넘어서려는 그의 시도와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지 해명하려는 한 가지 시도이다. 이런저런 점에서는 논의의 여지가 있을 수 있지만, 매우 집약적이고 풍부한 논점을 담고 있어서, 포스트-마르크스주의의 이론적 정세에서 정치의 문제를 사고하는 데 여러 가지 시사점을 제공해 준다. 특히 이런저런 명목으로 정치 이론 및 정치적 실천에서 주체 개념을 무비판적으로 복권시키려는 시도들에 대한 강력한 비판을 담고 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번역과 관련하여 한 가지 지적해 둘 점은, 이 글은 영어로 된 원고를 불어로 옮긴 글인데, 번역이 그다지 좋지 않아서 불어 어법에 맞지 않는 문장이나 표현들이 여럿 눈에 띄고, 불어 문장을 그대로 따를 경우 의미가 전달되지 않는 경우들이 있었다. 따라서 불가피하게 역자가 임의로 약간의 첨삭과 교정을 한 곳이 두어 군데 있다. 나중에 영어 원고가 발표되면, 대조를 거쳐 교정할 생각이다. 꺾쇠들 중 하나는 원주이고, 다른 하나는 역자가 내용 이해를 돕기 위해 삽입한 것이다(역자).

Miguel Vatter, “Althusser et Machiavel: La politique apres la critique de Marx”, Multudes 13, 2003.

알튀세르와 마키아벨리: 마르크스 비판 이후의 정치

1977년 이후 알튀세르의 사상은 마르크스-레닌주의와 거리를 두면서 하나의 “전회”를 실행한다. 이 시기의 유고들은 포스트마르크스주의 사상을 위한 극히 풍부한 영감의 원천을 이루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마르크스-레닌주의의 두 가지 오류에 대한 논박을 보게 되는데, 이는 알튀세르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뿌리에 근거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정치적인 것의 자율성에 대한 폄훼와 몰이해, 다른 한편으로는 역사적 생성에 관한 형이상학적 구성물에 대한 종속. 정치의 자율적이고 구성적인 차원을 이해하는 데 적합한 지평을 정의하기 위해 알튀세르는 마키아벨리로 복귀해야 할 필연성을 느끼고 있다. 역사에 대한 근대 철학의 압류(emprise) 및 역사적 주체에 대한 근대 철학의 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알튀세르는 사건의 차원에 우선권을 주는 역사이론 및 역사적 생성의 모든 실체 및 주체를 비워내는 우연적 마주침의 이론을 소묘해볼 것을 제안한다. 정치의 필연성과 역사의 우연성은 “마르크스주의 이후” 마르크스를 재발견하기 위한 두 가지 선행조건이다.

지난 세기 동안 마르크스주의 이론에 대해 두 가지 근본적인 비판이 제기되었다. 마르크스주의 이론은 국가와 정치를 적합하게 고려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비난을 받아왔는데, 이는 그것이 정치적 “상부구조”와 관련하여 규정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경제적 “토대”로 이루어진 건축물로 사회를 표상하는 결함이 있는 은유에 집착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 이론은 역사적 생성을 적합하게 고려하지도 못했는데, 이는 결정론적 법칙들과 과정들에 따라 전개되는 것으로 역사를 간주하는 결함이 있는 전제에 집착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비판들에 대해 스스로 마르크스주의 이론을 대표한다고 자부했던 사람들 쪽에서 실질적인 답변이 제시되지 못했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알튀세르는 매우 드문 사람들 중 한 사람이었다. 1977년 경 알튀세르의 사상은 예기지 못한 전회를 보여주는데, 이는 최근 그의 후기 저술들의 유고집 출간으로 해명되고 있다. 이 텍스트들에서 그는 이러한 비판들이 적절했음을 받아들이고, 이것들이 마르크스-레닌주의에 대해 파멸적인 결과들을 가져왔다는 점을 수용하지만, 동시에 그는 이러한 [마르크스-레닌주의의] 몰락 속에서도, 내가 보기에는 오늘날 좌파에 무엇이 남아있는지 염려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든 고려할 만한 가치가 있는 혁신적인 답변들을 소묘해보려고 시도한다

마르크스주의 이론 비판: 사회적 적대와 정치의 자율성

1977-1978년 동안 알튀세르는 <자신의 한계들 안의 마르크스>[Ecrits philosophiques et politiques I, pp.359-524]라는 텍스트를 쓰는데, 이 텍스트는 그가 여기서 앞서 말한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약점들을 이론의 “절대적 한계들”로, 스탈린주의의 공포와 유로코뮤니즘의 정치적 실패를 불러온 한계들로 인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두 가지 중심적인 해석적 테제는 알튀세르의 입장을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 국가 장치”의 관점을 넘어 전위시킨다. 알튀세르는 “마르크스에게 비판은 자기 자신을 비판하는 현실적인 것[실재, le reel]이다”라고 쓰면서, 공산주의가 “사물들의 실존상태를 폐지하는 현실 운동”과 동일시되고 있는『독일 이데올로기』의 유명한 구절을 인용하고 있다. 알튀세르는 “현실적인 것”을 “계급들에 대한 계급투쟁의 우위”에 준거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계급들”과 “계급투쟁”의 구분은 절대적으로 결정적이다. 계급 개념이 생산의 사회경제적 문법(마르크스주의 용어법으로 하면, 생산력, 생산수단, 노동분할[분업])에 의존하는 반면, 계급들 사이에서 생산되는 투쟁 개념은, 계급들에 선행하기 때문에 더 이상 이러한 문법에 의존하지 않는다. 그 대신 알튀세르는 투쟁이라는 개념을 생산관계의 문법과 연합시킨다. 항상 이미 정치적이고 착취의 사실에서 생겨나는 이러한 관계들은 본질적으로 적대적이며, 지배와 저항으로 이루어진다. 이러한 관계들이 없이는 계급형성체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마르크스주의 이론을 그것 자체에 거슬러 받아들이면서 알튀세르는 필연적으로 적대를 어떤 종합 속에서 극복해야 한다는 일체의 주장과 독립해서 “계급투쟁의 우위”를 이해하고 있다. 특히 사회적 적대는 계급투쟁으로부터 프롤레타리아 독재로, 그 다음에는 계급없는 사회로 나아가는 목적론적 “이행”의 관념(마르크스는 요제프 바이데마이어에게 보내는 1852년 3월 5일자 편지에서 이를 옹호하고 있다)과 완전히 독립해 있다. 정확히 말하면 알튀세르가 보기에 마르크스주의 전통은 그 모든 변종들 속에서도 사회적 적대, 곧 어떠한 보충적이고 해결적인 종합 없이 사회적 관계들 전체를 관통하는 “현실 운동”으로서의 투쟁을 사고하지 못했다. 사회적 적대를 총체화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이에 따라 이를 하나의 종합 안으로 해소하는 것 역시 불가능하다고 본다는 점에서, 알튀세르는 이러한 전통과 단절한다. 사회적 적대는 영속적이며, “역사의 종말”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두 번째 해석적 테제는 사회적 적대의 영속성에서 따라나온다. 정치, 국가 및 이데올로기(…)는 더 이상 단지 생산의 사회적 조건들의 반영 내지는 표현으로서, 이러한 조건들이 변혁되자마자 제거되는 것으로서 인식될 수 없다. 정치적인 것은 고유한 별도의 지위를 가져야 한다. 사회적 적대의 영속성은 정치적인 것의 영속성을 요구한다. “국가는 물론 낡지만 영속적이다 […] 국가는 계급투쟁, 곧 착취가 폐지되는 게 아니라 보존되고 유지되고 강화됨에 따라 […] 낡게 된다.” 알튀세르의 판단에 따르면 마르크스주의 이론은, 법적-정치적 장치와, 소위 그것의 “토대”(“생산관계들”)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를 몰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결코 “상부구조”를 그 자체로 파악하지 못하며, 이는 그 이론의 “절대적 한계”를 나타낸다. 전통적인 마르크스주의 이론은 마르크스가 1859년 <정치경제학 비판 서문>에서 소묘한 이 관계에 대한 표상을 따르고 있는데, 이에 따르면 “법적-정치적” 상부구조는 “사회의 경제적 구조, 현실적 토대”로부터 “성립된다.”(erhebt) 알튀세르는 마르크스가 이러한 성립의 순간, 이러한 관계를 결코 문제삼지 않았음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상부구조의 “제도[화]” 및 “구성”은 결코 문제화되지 않는다.

<자신의 한계들 안의 마르크스>의 중요성은, 정치적인 것은 토대의 실존조건이어서 “계급투쟁”과 근원적으로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정치적인 것은 생산의 토대로부터 “성립”하거나 이 토대의 “반영물”일 수 없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는 데 있다. 정치적인 것의 이러한 분리된 실존은 사회적 적대의 보존, 곧 착취가 그 내부에서 생산되는 생산관계들의 재생산을 자신의 대상으로 지니고 있다. 정치적인 것을 특징짓는 것이 적대와의 분리이기 때문에, 그리고 정치적인 것은 적대가 자신을 재생산하도록 허락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적대는 정치적인 것의 제도[화]의 원인일 수 없다는 점이 따라나온다. 국가가 지배계급의 “도구”로 쓰이기 위해서는 계급들 사이의 투쟁에서 분리되어야 한다는 마르크스주의 테제를 사고함으로써 알튀세르는 아마도 더 이상 마르크스주의적이지 않을 결론, 곧 정치적인 것은 자기-제도화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정치적인 것은 투쟁의 효과이기는커녕 사실은 “계급투쟁에 영향받지 않고, 심지어 이 투쟁에 의해 “관철될”” 수도 없다.[앞의 책, p. 437]

1977년의 텍스트에서 알튀세르는 이데올로기 국가장치에 관한 1970년 논문에서 제시된 정식과 관련하여 자신의 재생산 이론을 심화한다. 정치적인 것의 분리 없이는 “계급투쟁”도 존재하지 않는데, 왜냐하면 바로 이러한 “분리되어-있음”이라는 점 때문에 정치적인 것은 생산관계들을 재생산하는 과제를 지니게 된다는 것이 이제는 알튀세르의 테제가 된다. 마르크스주의 이론이 비판받는 것은 이 이론이 어떤 의미에서 국가가 분리된 도구인지 또는 “기계”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알튀세르에게 국가는 생산관계를 재생산하는 기계인 반면, 마르크스는 “생산의 사회적(이고 심지어 물질적인) 조건들의 재생산관계 하에서 국가를 파악하지 못한다.”[같은 책, p. 457] 알튀세르의 테제는 정치적인 것이 생산의 적대적 관계들(여기서 노동자들은 생산수단의 소유자들에 의해 착취당한다)을 재생산하며, 역으로 이 적대적 관계들은 경제적 생산(곧 생산력과 생산수단의 결합)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계급들 사이의 투쟁은 생산과 관련하여(사회적 노동분할, 계급들과 관련하여) 우위를 지니며, 역으로 정치적인 것은 재생산과 관련하여, 그리고 따라서 계급투쟁의 실존 그 자체와 관련하여 우위를 지닌다. 이 때문에 생산(관계들)의 조건들은 정치적 가능성의 조건, 이 관계들의 재생산의 정치적 원인을 갖는다. 알튀세르는 토대와 상부구조라는 마르크스주의 도식을 완전히 전복시키며, 이렇게 되면 폐허만이 남는다. 계급투쟁은 경제적이거나 사회적인 소여이기 이전에 정치의 사실이다.

마르크스 이후의 마키아벨리: 공화주의적 자유의 회복

유고로 출간된 {마키아벨리와 우리}(1972-1986)에서 알튀세르는 소위 경제적 “토대”와 관련하여 국가의 정치의 우선성을 인정하는, 국가와 정치에 관한 이론을 제공하려고 시도한다. 알튀세르의 마르크스주의 이론 비판에 대해 마키아벨리로의 회귀는 무엇을 보태주는가? 우선 이는 화해 불가능한 사회적 적대의 심연적인 “토대”로부터 출발하는, 무로부터의 정치적인 것의 자기-구성이라는 이론을 보태준다. 피렌체 서기장의 중심적인 질문이 정확히 말하면 지속 가능한 정치적 국가가 무로부터 어떻게 생성될 수 있는가 하는 것 마르크스는 결코 이 문제를 검토하지 않는다 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구성적 권력으로서의 새로운 군주라는 오래된 그람시의 문제다. 하지만 알튀세르의 독해에서 혁신적인 점은 그가 이 문제를『로마사론』에 대한 한 가지 해석을 통해 해소한다는 점에 있다. 그는 마키아벨리의 공화주의로 돌아간다. 알튀세르에게 공화국은 국가의 지속의 계기를 포함하며 구성적 권력의 재생산에 따라 질서지어져 있다. 반면 새로운 군주는 단지 국가의 시작의 계기만을 포함할 뿐이다. 마키아벨리를 통해 알튀세르는 정치적인 것과 관련된 본질적인 문제가 정치적인 것의 공화적 형태 속에, 곧 군주적 형태가 아니라 법의 통치로서의 공화국 속에 담겨 있음을 의식하게 된다. 이에 따라 알튀세르는 암묵적으로, 1971년의 이데올로기 국가 장치에 관한 텍스트 속에도 여전히 현존하고 있는 계급의 “독재” 형태로서의 국가라는 마르크스주의적 관념을 거부하게 된다.

마키아벨리에 관한 독해를 통해 알튀세르는 재생산 문제에 대해 한 가지 보족적인 재귀성(반성성, reflexivite)의 차원을 추가한다. 곧 1971년에 일차적인 질문은 단지 생산의 재생산과 관련되어 있었던 것에 비해, 마키아벨리에 관한 텍스트에서 일차적인 질문은 재생산 자체의 재생산이 된다. 새로운 군주와 공화국, 구성적 권력과 구성된 권력 사이의 관계에 대한 분석은 자기 자신에 의한 국가(재생산 권력으로서)의 재생산이라는 문제 및 따라서 그 지속이라는 문제를 해소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알튀세르는 자신의 독해가 르포르의 혁신적인 마키아벨리 독해에 많은 것을 빚지고 있음을 공개적으로 시인한다. 르포르와 관련하여 그가 혁신적인 점은 “지속하는 국가”의 구성을 “무로부터의” 성립(emergence)으로 이해한다는 점이다. 알튀세르는 이러한 “무”를, 정치적인 것(비르투)과 사회적인 것(포르투나)의 사건적이고 우발적인 마주침으로 분절(표현, articule)하는데, 이는 가능한 일체의 역사철학 및 “역사의 법칙들”과 “역사적 필연성”에 관한 일체의 담론 바깥에 놓여 있다. 정치적인 것의 자기-구성을 사건과 우발성의 지평(그가 “정세적 결합”(conjonction)이라 부르는 것)으로부터 출발하여 사고하면서, 알튀세르는 마키아벨리에서 마르크스주의 이론의 두 가지 근본적인 이론적 한계, 곧 정치이론의 결여 및 역사의 형이상학에 대한 의존을 극복할 수 있는 수단을 찾으려고 한다. 알튀세르는 역사를 유물론적 사건이론의 관점에서 인식할 수 있는 수단을 발견할 목적으로 마키아벨리로 되돌아가는데, 이 이론에서 사건들은 정치적인 것과 사회적 적대의 “현실 운동”의 “마주침” 내지는 “정세적 결합”으로 인식된다. 다만 이 적대는 더 이상, “최종 심급에서” 정치적 마주침의 방도(issue)를 규정하는, 구조적이거나 실체적인 과정(곧 생산의 존재론)으로 이루어진 “토대”로 인식되지 않는다는 점을 제외한다면 그렇다. 반대로 사회적 적대는 “공백”으로, 정치적 마주침을 규정 불가능한 것으로, 따라서 자유로운 것으로 남겨두는 유일한 조건으로 이해된다.

주요 논점은 이로부터 성립하는 정치적 형태들을 계급투쟁이 규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곧 계급투쟁의 적대는 단지, 그 결과 여부가 완전히 열려 있는 어떤 마주침의 “불충분근거”[충분근거율 내지는 충족이유율에 대한 비판이라는 의미 역자]일 뿐이다. 알튀세르에게 사회적 적대가 “규정적” 이것의 인과적 의미가 어떤 것이든 간에 이지 않은 이유는 더 이상 적대 자체의 자기 동일성도, 존재론적 실재성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알튀세르는 자신의 마키아벨리 독해에서 적대 자체가 소송의 대상, 갈등하는 관점들(perspectives)의 대상임을 의식하게 된다. “정치적 시점(point de vue)의 장소와 정치적 세력 및 실천의 장소 사이에는, 정치적 시점의 “주체”, 곧 인민과 정치적 실천의 “주체”, 곧 군주 사이에는 환원 불가능한 이원성이 존재한다. 이러한 이원성, 이러한 환원 불가능성은 군주 및 인민 모두를 변용시킨다(affecte).” 그리고 “마키아벨리가 그로부터 군주의 정치 전체를 정의하게 될 이 인민, 이 인민에 대해 어떤 것도 스스로를 인민으로 구성하도록, 또는 정치적 세력으로 생성되도록 강제하거나 심지어 제안하지도 않는다. … 그리고 어떤 것도 마키아벨리가 어떻게든 이러한 분할을 극복하려고 시도했다고 지시해 주지도 않는다. 역사는 인민의 관점에서 군주에 의해 이루어져야 하지만, 인민은 아직 역사의 “주체”가 아니다.” 새로운 군주의 구성적 기획은 이러한 기획 바깥에 놓여 있고, 그 기획보다 훨씬 원초적인 어떤 관점에 따라 분석되고 평가된다. 곧 또다른 정치적 주체의 관점이 아니라, 오히려 인민의 합성과 순치(pacification) 이것이 어떤 정치적 형태를 띠든 간에 를 금지하는 사회적 적대에 대한 관점으로서 인민의 관점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의 관점에 따르면 알튀세르는 여기서 장래의 마키아벨리 해석을 위한 새로운 지평을 열어놓고 있다. 그가 이룩한 중요한 진전은 “정치적 시점”과 “정치적 세력 및 실천의 시점” 사이의 차이를 명료화했다는 데 있다. “정치적 시점”이 정치적 통치 형태들의 구성의 시점으로 환원될 수 없기 때문에, 인민의 관점은 정치 형태의 제도화를 목적으로 삼지 않는 어떤 정치의 원천이 된다. 이는 근원적으로 민주주의적인 정치가 해야 할 게 무엇이고 하지 말아야 할 게 무엇인지에 관한 쇄신된 이해를 위해 지극히 의미심장한 직관적 통찰이다[Le pouvoir constituant, PUF, 1997에서 Negri의 마키아벨리 독해와 비교해보라. 네그리는 인민의 “정치적 시점”과 새로운 군주의 “정치적 세력 및 실천의 시점” 사이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네그리는 인민을 새로운 군주로 이론화할 수 있는데, 이는 인민이 “민주주의”라 불리는 통치의 “절대적” 형태를 구성하도록 요구받는다는 의미에서 그렇다.].

비르투(virt , 역량)가 사회적 적대의 “현실 운동”과 조우하게 되는, 사건의 근원적으로 우연적인 성격 때문에 정치적인 것은 구성적으로 관점주의적이다. “현실 운동”이 주어진 어떤 정치 형태 속에서 완전히 합성될 수 없기 때문에, 정치적 사건 안에는 정치 형태의 구성보다 더 많은 것이 존재해야 한다. 정치적인 것을 통해 문제가 되는 것은, [정치] 형태의 “해체”이며, 또한 모든 정치 형태의 성립에 내재적이면서 동시에 임박한 방식으로 따라다니는(귀신들려 있는, hante) 갈등적 사건 속으로 [정치] 형태의 복귀이다[해체와 마르크스주의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는, Derrida, Spectres de Marx, Galilee, 1993; Marx & sons, PUF/Galilee, 2002 참조]. 정확히 말하자면 “정치적 세력 및 실천의 시점”과 대립하는 “정치적 시점”을 표현하는 것은 바로 사건 속으로 이러한 형태의 복귀이다. 인민에게 형태를 부여하는 “힘”[세력]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 인민이 정치적 기동력(ressort)을 결여하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믿는 것은 오류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믿음은 정치적인 것이 형태를 구성하는 실천으로 환원되거나 이러한 실천으로 소진된다는 생각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관점의 차이는 이러한 전제를 반박한다. 마키아벨리가 끊임없이 지적하듯이 인민은 “지배당하지 않으려는 욕망”에 따라 특징지어지기 때문에, 인민의 정치적 행위는 항상, 어떤 정치적인 또는 적법한 지배형태 안에서 인민의 [구체적인] 표현 가능성(figurabilite)을 초과하며, 일차적으로는 통치형태들을 구성하는 것으로서보다는 해체하는 것으로서 이해된다.

하지만 국가의 해체에 관해 다루기 전에, 국가의 구성의 비밀은 무엇인가? 한 국가가 지속하기 위해서는 구성된 재생산의 권력은, 말하자면 구성적 권력으로서의 인민을 복속시켜야 하며, 인민이 자신의 “주체”로서, 자신의 “기원”으로서 기능하게 만들어야 한다. 알튀세르에 따르면 마키아벨리가 로마 공화국에 대한 분석에서 발견한 것이 바로 이 점이다. “마키아벨리가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 지속 가능한 국가의 정초, 시작인데, 이 국가는 일단 군주에 의해 정초되면 “혼합” 통치의 효과에 의해 지속될 수 있을 것이다. […] 이 중심은 로마, [오랜 시간 동안] 지속했던 국가이다. 로마의 중심은 그 시작이다. 이 공화국의 시작은 군주정이었다는 데 있으며, 이 군주정은 이 국가를 지속할 수 있게 만드는 데 적절한 어떤 통치[정부], 곧 혼합 통치를 로마에 덧붙였고, [이를 통해] 이러한 통치는 공화국의 관점에서 추구되었다.”[Ecrits philosophiques et politiques II, p, p. 96] 국가의 지속은 군주정과 공화정 사이에 연속성이 존재할 것을 요구한다. “한 국가의 구성에서 두 가지 계기. 1) 절대적 시작의 계기가 존재하는데, 이는 단 하나, “단 하나의 개인”에 의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계기는 그 자체로는 불안정하다 […] 2) 두 번째 계기는 지속의 계기인데, 이는 법률의 부여(donation, 제정) 및 고독으로부터의 탈출이라는 이중적 작용에 의해서만 보증될 수 있다.”[같은 책, p. 115] 이 두 번째 계기에서 국가는 군대, 동의(곧 종교) 그리고 무엇보다도 법에 의한 통치 같은 자신의 이데올로기적 장치들을 통해 인민 속에 “뿌리내린다.” 로마사에서 공화국의 계기는, 단지 자기 자신을 국가를 “보존하는” 권력으로 이해시키려는 목적으로 “절대적인” 구성적 시작으로 주어지는(se donne, 스스로를 제시하는) 재생산의 계기에 상응한다.

알튀세르는 국가 이것 자체가 생산관계들의 재생산 형태이다 가 자기 자신을 재생산하는 방식을 해명할 수 있게 해주는 하나의 모델로서 로마 공화국 헌정[구성]의 발전에 대한 이러한 독해에 의지하고 있다. 로마 헌정의 발전은 말하자면 이데올로기(재생산 형태로서의 국가)의 이데올로기(재생산)를 포함하고 있다. 그렇다면 국가의 고유한 이데올로기는 무엇인가? 이는 로마인들이 군주정에서 공화정으로 헌정을 발전시키면서 제도화했던 정치적 권위를 산출하는 체계와 다르지 않다. 국가의 권위(auctoritas)는, 정초자가 형태를 부여하고(agere) 다수의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유지하는(gerere) 관계에 의존한다. 왜냐하면 마키아벨리가 설명하듯이, “국가의 건국에는 단지 한 인물이 적합하다 해도, 일단 조직된 정부는 그것을 유지하는 부담이 단지 한 사람의 어깨에만 걸려 있다면 오래 지속될 수 없다. 그러나 정부를 많은 사람들이 보살피게 될 때, 즉 그 유지가 많은 사람들의 책임에 내맡겨지게 될 때, 그것은 실로 오래 지속되”기 때문이다[『로마사론』1권 9장; 강정인·안선재 옮김,『로마사론』한길사, 2003, 109쪽]. 정치 형태는 “매우 많은 수의” 사람들이 이를 뒷받침하려는 태세가 되어 있는 한에서만 지속할 수 있다. 이러한 뒷받침은 “매우 많은 수의” 사람들이 근원적으로 새로운 어떤 것을 시작할 수 있는 가능성, 최초의 시작, 정초와 단절할 수 있는 가능성을 선험적으로 결여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오히려 “매우 많은 수의” 사람들은 이러한 정초를 완수하도록 요청받고 있다. 통치자에서 시민들로 전달되고 대의 정치 기구(본질적으로는 입법 의회) 안에 제도화되는 이러한 요청은 알튀세르가 (이데올로기 국가 장치에 의해 이루어지는) 호명이라고 부른 것에 밀접하게 상응한다. 호명의 기능은 인민을 정치적 기체(基體, subjectum), 국가를 구성하는 토대로 만드는 데 있으며, 역으로 이러한 토대는 국가가 실행하는 예속과 지배에 대해 지속과 적법성을 부여함으로써 국가를 정초한다.

로마 공화국에 대한 마키아벨리의 독해에서 알튀세르는 이미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 국가 장치> 행간에서 읽을 수 있는 한 가지 결정적인 직관에 대한 확증을 발견한다. 이 직관은 이데올로기 장치로서의 국가가 자기 자신의 정초, 지속 내지는 재생산을 위해 인민이 탁월한 정치적 주체가 될 것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곧 인민이 구성 권력이 되고 이를 통해 통치의 토대로 제공되기를 요구하는 것이다. 마키아벨리에 관한 이 텍스트에서 알튀세르는 마르크스의 “절대적 한계들” 너머로 나아가는데, 왜냐하면 그는 지속 가능한 국가의 토대는 전적으로 이데올로기적이라는 것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데올로기 장치로서의 국가는 자신의 토양 내지는 자신의 토대를 자기 바깥에서, 예컨대 특수한 경제적 이해관계들에서 발견하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의 이데올로기 안에서, 좀더 정확히 말하면, 로마 공화국의 사례가 보여주듯이 대의적이고 입헌적인 민주주의 형태 안에서 발견한다. 대의·입헌 민주주의는 국가가 자신의 이데올로기 장치로서의 소명을 가장 잘 성취할 수 있게 해주는 통치 형태이다. 이는 구성된 권력이 자기 자신을 구성 권력으로, 곧 국가의 주체로서의 인민으로 제시할 수 있게 해주는 형태이며, 역으로 이 후자는 국가 자신이 가장 오래 지속되도록, 가장 효과적으로 재생산되도록 보증해준다.

하지만 알튀세르의 재생산 이론이 마키아벨리의 공화주의 담론에서 자신의 확증을 발견한다고 해도, 그의 마키아벨리 독해는 환원적이어서, 정치적 지배의 비밀들에 대한 이해가 아닌 정치적 자유의 가능성들에 대한 이해를 위한 담론적 함의들을 발전시킬 수 있는 여지를 결여하고 있다. “마키아벨리는 유일한 통치 형태, 곧 국가가 지속할 수 있게 해주는 통치 형태에 관심을 두고 있을 뿐이다”라고 주장함으로써 알튀세르는 인민의 시점을 군주의 시점에 종속시킨다. 잘 정초되고 지속할 수 있는 정치 형태를 지향하는 것은 오직 군주일 뿐, 인민도 그런 것은 아니다. 인민의 관점은 국가의 주체-기체(sujet-subjectum)의 관점으로 환원될 수 없다.

로마의 패러다임에 기초하고 있는 이전 및 이후의 모든 정치 사상과 관련하여『로마사론』의 진귀함은, 시민의 삶(vivere civile)은 정치가 잘 정초된 법의 통치라는 이상 이는 로마식의 권위 체계를 모델로 삼고 있다 을 초월하고 전복하는 한에서만 자유로운 삶(vivere libero)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는 점에 있다. 이러한 주장은『로마사론』3권에서 등장하고 줄곧 옹호되고 있는데, 여기서 마키아벨리는, 그 자신이 시초로의 회귀(riduzione verso il principio)라고 부르는 것을 경유함으로써만 정치체는 자유롭게 생존할 수 있다는 점을 옹호하고 있다. 내용 및 형태에서 “시초로의 회귀”는 혁명을 의미한다. 여기서 회귀하는 시초는 권위의 시초, 정초의 절대적 시작과 동일한 “시초”이며, 이러한 회귀는 권위로부터 역사적 생성에 어떤 정치적 형태를 각인할 수 있는 능력을 박탈하고, 역사적 생성의 근원적 우연성을 드러내기 위해서 이루어진다. 나는 이러한 근원적 우연성을 모든 정치 형태의 사건적 성격이라고 부른다.

마키아벨리는 공화국을, 모든 정치 형태가 그로부터 성립해야 하고, 또 어떤 주어진 정치 형태가 확립한 특권 내지는 불평등이 이 정치 형태 아래서 번영을 누리고 이 정치 형태의 특혜를 받는 사람들을 타락시킬 때마다 모든 정치 형태가 거기로 회귀할 수 있는, 권리평등(isonomy)의 시공간으로 재정의한다. 타락은 불평등의 소외인데, 이는 모든 주어진 지배의 정치 형태가 고착되고 존속됨에 따라 생산된다. 이 때문에 공적 공간의 평등 및 자유로의 회-귀(re-duction)는 “시초로 회귀하는”, 곧 정치 형태를 혁-명(re-volutionne)하고 정치체 내의 타락과정에 저항하는 사건 속에서만 생산될 수 있다.

사건들의 유물론을 향하여

자신의 마지막 혁신적인 철학 텍스트인 <마주침의 유물론의 은밀한 흐름>(1982)에서 알튀세르는, 하이데거, 푸코, 들뢰즈 및 데리다 같이 그보다 먼저 이 오솔길을 밟아간 일련의 철학자들에 강하게 준거하면서, 명시적으로 형태 및 사실에 대한 사건의 우선성을 주장하고 있다. 알튀세르의 “마주침의 유물론”(또한 “우발성의 유물론” 내지는 “사건들의 유물론”이라 불리기도 한다)은 사건들로부터 출발하여 형태들의 세계의 성립을 사고하려는 시도이다. 알튀세르가 {마키아벨리와 우리}에서 정세적 결합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제는, 사건적인 마주침들로부터 출발하여 형태들의 세계의 구성 및 원자들의 결집을 설명하는 원자들의 클리나멘(clinamen) 또는 편향(deviation)에 관한 에피쿠로스-루크레티우스의 학설에 준거함으로써, 좀더 적합하게 마주침이라고 지시된다. “세계는 완성된 사실(기성 사실, fait accompli), 일단 사실이 완성된 후에 그 속에서 근거[이성], 의미, 필연성 및 목적의 군림이 시작되는 완성된 사실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사실의 이 완성은 우연의 순수한 효과일 뿐인데, 왜냐하면 그것은 클리나멘의 편향에 기인하는 원자들의 우발적 마주침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사실의 완성 이전에는, 세계 이전에는 사실의 미완성만이, 원자들의 비현실적 실존에 불과한 비세계만이 존재할 뿐이다.”[알튀세르,『철학과 맑스주의』서관모·백승욱 옮김, 새길, 1996, 39-40쪽] 어떤 것도 원자들의 마주침에 선행하지 않으며, 어떤 것도 이러한 마주침을 필연적인 것으로 규정하지 못하기 때문에, “사실의 완성”의 “구성적” 차원 그 자체가 하나의 우연적 사건이며, 이러한 차원은 알튀세르가 “사실의 미완성”이라고 부르는 것에 의해 결코 규정될 수 없다. 정치적 관점에서 생각해 볼 때, 사실의 완성에서 완성된 사실로의 이행이 군주 또는 국가의 활동을 기술한다면, 이러한 이행의 우연적 성격, “완성” 자체가 지닌 사건적 성격 이는 완성이, 자신의 가능한 실현 여부에 대해 무-차별적으로(in-differente) 남아 있는 역량으로서의 “미완성”에 종속적이기 때문이다 은 인민의 해-체적(탈-구성적, de-constructive) 활동에 상응한다. 이러한 해-체적 활동에서 인민은 더 이상 국가의 정치적 주체로, 국가에 의해 정립된 구성적 주체로 간주되지 않으며, 오히려 통치되지 않으려고 하는 정치적 행위자로 간주된다.

{마키아벨리와 우리}에서처럼 이 텍스트에서도 군주의 비르투는 마주침을 “지속”시키는 권력으로 정의된다. 군주는 “마주침의 효과들에 형태를 부여하는 형태들”에 상응한다. 군주는 “우연적인 것들의 마주침의 필연-화(필연적-생성, devenir-necessaire)”를 자신의 과제로 삼고 있다. 하지만 알튀세르는 이전의 마키아벨리 독해와 달리 여기서는 “필연의 우연에 대한 종속”을 사고하고 있는데, 이는 다음과 같은 점을 함축하고 있다. 곧 “결코 어떤 것도 완성된 사실의 실재성이 그 영구성의 보증이 될 것이라고 보증하지 못한다. (…) 역사는 (…) 완성해야 할 또 다른 판독 불가능한 사실에 의한 완성된 사실의 영속적인 폐지이며, 우리는 어디서, 어떻게 이 폐지라는 사건이 일어나는지 결코 미리 알지 못한다. 다만, 패를 다시 분배하고 주사위를 빈 탁자 위에 다시 던져야 하는 날이 올 것이다.”[『철학과 맑스주의』, 46-47쪽] 지속하는 국가는 항상 이미 자신의 “폐지”의 내재적이고 임박한 가능성 내부에 기입되어 있다. “시초로의 복귀”가 단지 완성된 사실을 사실의 완성을 구성하는 권력으로 되돌려보낼 뿐만 아니라, 좀더 근원적으로는 완성 자체가 자신의 사건 및 자신의 비 사건에 대해 완전히 무차별적으로 남아 있게 만들 때, 그 때가 바로 “폐지”의 순간이다. 이러한 무차별성은 완성의 문법의 견지에서는 판독 불가능한 “또 다른 사실”에 상응할 것이다.

알튀세르는 결코, 완성된 사실을 폐지하는 역량으로 이해된 인민의 역량에 관한 이론을 제시하지 않는다. 이러한 역량은 새로운 구성적 활동의 전제일 뿐 아니라, 좀더 원초적으로는 인민 편에서 보여주는 주권적 무차별성[무관심]의 표현이며, 따라서 국가 및 정치 정당 체계가 부과하는 통치의 기획에 대한 정치적 시점의 표현이기도 하다. 인민의 역량이라는 관념과 관련하여 “통치에 대한 주권적 무-차별성”이라는 표현에 의지하여 나는, 소위 구성적이라고 하는 인민의 입장의 세 가지 특징을 부각시켜 보려고 한다. 첫째, 인민은 국가의 정초 기획에 대한 자신의 차이를 주장하는 한에서만 역량을 지닐 뿐이다. 그의 무-차별성은 이러한 차이 “내”에서 스스로를 유지하는 데 있다(이러한 유보는 인민을 국가의 정초와 동일시하는 모든 전통적인 “공화주의” 기획을 좌초하게 만든다). 그 다음으로 비통치의 행위자로서 인민은 국가 및 그것의 통치 기획에 의해 정식화될 수 있는 “공통의 이해관계”를 갖지 않으며, 그의 “무-차별성”은 통치 가능성의 결과들에 대한 근원적 비-이해관계[무-관심]에 준거하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문제가 되는 결과들에 대한 진정한 판단을 내리는 것을 가능하게 해준다. 국가를 판정할 수 있으려면 인민은 국가 및 정치 체계가 적법성을 획득하기 위해 재합성해야 하는, 특수한 이해관계의 저장소로 기능해서는 안된다(이러한 유보는 인민을 시민사회와 동일시하는 모든 “다원주의적” 시도를 좌초하게 만든다). 마지막으로 인민의 주권적 무차별성은 의회의 호명에 대한 그들의 무반응(impassibilite)에 준거한다. 인민은 역량을 지니고 있을 때 정치적으로 대표되려고 하지 않는데, 이는 정확히 말하면 국가에서 유래하는 이러한 정치적 인정의 형태는 인민들의 예속적 주체화(sujetion)를 획득하는 주요 방식이기 때문이다(이러한 유보는 인민을 선거 민주주의에 의해 구성된 공적 공간[공론장]과 동일시하는 모든 “자유주의적”인 시도를 좌초하게 만든다).

혁명적 사건에서 인민은 더 이상 자신을 정치적 주체로 간주하지 않는다. 그가 욕망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국가에 의해 통치의 기획 안에서 실현될 수 없다. 통치되지 않으려는 욕망은 국가의 관점에서는 실현 불가능하며, 이러한 욕망이야말로 인민의 역량을 국가가 다루기 “불가능한”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인민이 통치되지 않으려는 자신의 욕망을 표현할 때마다 재생산 과정은 정지의 고통을 겪고 국가의 기계는 중단된다

이러한 호명에 대한 위반들(manquements), 국가-기계의 갑작스런 중단들을 해명할 수 있는 인민의 역량이라는 관념은 이제 겨우 몇몇 사람들에 의해 파악되고 있다[이런 맥락에서 볼 때 자크 데리다와 자크 랑시에르가 최근 개진했던 민주주의에 관한 논의들은 특히 풍부한 시사점을 지니고 있으며, 이들이 과거에 알튀세르와 긴밀한 관계에 있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더 그렇다]. 이러한 인민의 역량이 마르크스주의적인 “프롤레타리아 독재”(곧 국가의 궁극적인 파괴를 목표로 하는 국가 권력의 획득) 정식이나, “인민을 위한 인민의 통치”라는 참여 민주주의적 정식으로 파악될 수 없음이 이미 분명히 드러난다. 이 두 가지 정식은 헤게모니 투쟁의 형태, 곧 통치를 위한 투쟁의 형태를 표현하고 있는 반면, 우리가 방금 호소했던 것은 정확히 말하면 가능한 한 엄밀하게, 통치되지 않는 것을 목표로 하는 투쟁 이는 결코 명령하지 않는다 을 헤게모니의 세력과 정치적 실천들에 의한 이 투쟁의 “복속”으로부터 구분하려는 시도이다. 만약 인민이 역량을 지니고 있다면, 구성된 권력이 사회적 적대와 정치 형태의 분리를 제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국가는 이러한 분리를 항상 헤게모니를 위한 투쟁의 형태 아래 제어하며, 이를 명령의 대상이 되는 주체에 대한 투쟁이다. 하지만 “현실 운동”으로서 적대는 그 자체로는 헤게모니적이지 않으며, 헤게모니를 지향하지도 않는다. 구성된 모든 정치 형태와 관련하여 이러한 적대가 지니고 있는 무차별적이고 근원적으로 비정초적 성격은 재생산적이고 해체적이며 정초적이고 혁명적인, 정치적인 것의 두 가지 계기를 가능하게 해준다. 이 두 가지 계기의 상호 작용이 없다면 정치적 자유는 인식 불가능하게 될 것이다

==============================================================================

* 역시 Multudes에 실린 글인데, 마키아벨리와 스피노자에서 <다중>의 문제가 어떻게 제기되고 있는지 검토하고 있다. 여러 가지 생각거리를 제시해주는 좋은 글인데, 다만 다중을 <주체>라 부르는 것은 동의하기 어려운 발상이다. 이는 비주체적인 정치학을 사고하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것을 반증해주는 한 사례인 것 같다. <multitude>라는 용어는 <다중>으로 번역했고, 본문에서 한 번 등장하는 <masse>라는 용어는 <대중>으로 번역했다. 이 글 역시 출판을 염두에 둔 게 아니고 충분한 교열을 거치지도 않았기 때문에, 공적 매체에 무단으로 인용하는 것은 불허한다. 인용을 원하는 분들은 역자에게 미리 허락을 얻기 바란다.

Fillippo Del Lucchese, “S’accoutumer à la diversité: Figures de la multitude chez Machiavel et Spinoza”, Multudes 13, 2003.

상위성(相違性)에 익숙해지기: 마키아벨리와 스피노자에서 대중의 형상들

평민들(plèbs)에게 인간의 악덕을 한정시키는 자들의 견해에 대해 마키아벨리와 스피노자가 보여준 불신에서 출발하여 이 논문은 두 철학에게 정치의 토대를 이루는 다중의 이론적 지위를 검토한다. 한편으로는 마키아벨리와 스피노자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태도가 강조되는데, 두 사람 모두 다중을 그 자체로 찬양하지 않고 그 부정적 측면, 곧 마치 자신들의 구원이라도 되는 양 자신들의 예속을 위해 투쟁하려는 인간들의 성향을 포착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정치적 합리성의 가장 거대한 표현으로서 다수의 개인적 주체의 구성이 강조된다. 이 논문은 독특한 개인(le singulier)에 대한 다자(le multiple)의 우월성이라는 관념 및 갈등적인 질서와 협동에 관한 마키아벨리의 이론 사이의 연계를 보여주고, 이것들이 스피노자 사상에서 수행하는 역할을 보여줌으로써 끝을 맺는다.

***

마키아벨리에게 역사가들의 견해는 근본적인 중요성을 지니고 있지만, 그는 이들의 결론이 취약하거나 근거 없는 것처럼 보일 때에는 주저 없이 비판한다. 특히 의미심장한 비판은 “다중보다 더 변덕스럽고 지조 없는 자들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역사가들에 대한 비판이다. 이들의 주장과는 반대로 마키아벨리는 “문사(文士)들이 대중에 관해 비난하는 이러한 결함들은 모든 사람들, 특히 군주들에 관해서도 똑같이 비난할 수 있다.”

유비적인 방식으로 『정치론』에서 스피노자는 사람들이 다중에 관해 품고 있는 부정적 선입견을 벗겨내기가 어려움을 시인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우리가 서술한 내용은, 모든 유한자에게 고유한 악덕들을 평민들에게만 한정시키는 사람들에게는 조롱을 받게 될지도 모르겠다. […] 하지만 모든 사람은 똑같은 하나의 본성(자연, nature)을 갖고 있다. 권력과 교육이 우리에게 환상을 만들어내는 것뿐이다.”[『정치론』 7장 27절]

다중을 지조 없고 신뢰할 수 없으며 악덕에 잘 끌려다니고 본성적으로 반항적인 존재로 지각하는 전통에 맞서 스피노자는 새로운 관점을 구성하는데, 여기에는 다자(le multiple)와 독특한 개인(le singulier) 사이의 관계가 포함되어 있다. 다중은 독특한 개인들의 권리-역량[역량으로서의 권리]이 자기 조직화되는 내재적 과정을 통하여 국가의 역량과 덕목을 표현한다. 계약론자들이 말하는 일자로의 환원(reductio ad unum), 다자로서의 다자의 통일적인 종합에 맞서, 스피노자는 동일성의 관개체적(貫個體的, transindividuelle) 구성과정을 통해 독특한 개체들로 구성되는 복합적 개체의 합성을 기술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스피노자는 1) 자연법과 다른 법들에 호소하지 않고서도, 곧 국가를 자연과 관련하여 국가 속의 국가인 것으로(tamquam imperium in imperio) 간주하지 않고서도, 국가의 형성과 삶, 해체를 설명할 수 있다. 2) 마키아벨리가 제기했던 정치적, 사회적 갈등의 문제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이 갈등을 먼 과거의 자연상태로 몰아내거나 가둬두지 않고 계속해서 [국가를] 위협하는 것으로 고려할 수 있다. 3)독특한 권리-역량들이 합성되는 내재적 과정이라는 관념 및, 다중을 합성하는 다양한 독특성들, 상위성들, 갈등들을 유덕하게 관리한다는 관념, 한 마디로 말하면 독특한 개체에 대한 다자의 우월성이라는 관념을 가공할 수 있다.

스피노자가 이 주제들에 관해 성찰할 때, 그에게 마키아벨리가 제시한 논거들은 말 그대로 진정한 개념적 ‘도구상자’로 제시된다. 그는 단지 홉스를 반대해서만이 아니라 특히 마키아벨리의 가장 독창적인 입장들 중 몇 가지를 재-가공함으로써, 다양성의 윤리를 구성한다. 마키아벨리와 스피노자가 일치하는 첫 번째 요소는 정치적 주체로서 다중을 구성하는 데서 모든 단순화를 거부한다는 점이다.

마키아벨리만이 아니라 스피노자 역시 여기서 구성적인 양가성을 부각시키려고 노력한다. 마키아벨리는 특히 행위 및 예견의 불확실성과 관련하여, 정치 행위에서 일체의 궁극적 보증의 부재와 관련하여 그렇게 한다. 다중은 참주들과 지배자들이 설파하는 환상들에 사로잡혀 있다. 다중은 역설적이게도 또는 기회주의적이게도, 예속들 중에서도 가장 가혹하고 가장 비극적인 예속 안에서 자신의 생존의 이유들을 발견한다. 그리고 예속의 관념이 지니고 있는 적극적인 요소 중 어떤 것도 자유의 현존만으로는 그 자체로 제거되지 않는다. 스피노자는 다중이 겪는, 하지만 또한 때로는 다중이 불러일으키는 공포를 통해 이와 유비적인 주제들을 깊이 탐구한다. 예컨대 대중은 미신과 무지, 거짓 종교(vana religio)의 가공할 만한 도가니이다.

다중의 ‘부정적 측면’에 대한 탐구는 심화되고 명시화된다. 두 저자 각각이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지배적인 정치 이데올로기(적자들, 소수의 엘리트들(petit en tant que petit)의 유덕함 내지는 자유주의적인 사법적 기획이 추구하는 백인 성인 남성 소유자 개인의 유덕함)를 뒤집거나 부정하는 것만이 아니다. 반대로 이는 정치적 현실의 새로운 원리의 구성을 긍정하기 위해, 특히 유토피아적인 정치적 주체성의 목적론적 구성이라는 환상적 기획이 대표하는 함정을 피하기 위해 양가성들을 심층적으로 탐구하고 약점들을 파악하려는 시도이다. 따라서 다중의 부정적 면모에 대한 서술은, 그로부터 출발하여 특히 정치의 차원에서 다자의 덕목을 드러낼 수 있는 첫 번째 요소로서 필수적이다. 예컨대 스피노자에 따를 경우 민주주의적으로 정돈된 상태에서 부조리한 행태를 두려워할 소지는 줄어드는데, 왜냐하면 “큰 회의체에서 다수가 동일한 한 가지 부조리한 짓을 범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는 민주주의에서는 부조리가 완전히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이는 허황된 생각이다). 하지만 이는 덜 해롭게 될 텐데, 왜냐하면 이성은 다수의 판단들 및 이 판단들 사이의 대결로부터 생겨나기 때문이다. 합리성은 다중의 몸체 자체 내에서 작용하는 다수 개인들의 자기 구성의 동역학 내에서, 그리고 이 동역학에 의해 탄생한다. 양(量)의 윤리와 정치는 숫자로부터 생겨나는 이성과 역량을 표현한다. 하지만 다자로부터 생겨나는 합리성은 단순히 독특한 개인이 표현하는 합리성보다 더 큰 것에 불과한 것은 아니다. 반대로 관계의 관념이 일차적인 것으로 부각되고 다중 개념에 대한 정의 자체를 위해 결정적이게 된다. 다중 내부에서, 다중을 통해 현실화되는 합리성은 정확히 말하면 다양성의 표현인 한에서 우월한 역량을 구성하는 것이지, 그 집합적이고 복수적인 차원에도 ‘불구하고’ 그런 것이 아니다. 독특한 개인의 경우 합리성이 정서들의 다수성을 희생한 댓가로 긍정되지 않고 오히려 정서들의 동역학과 갈등들 및 차이들을 조직하는 데 기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다자 안에서 규정되는 갈등들 및 차이들은 다중의 복합적 몸체의 역량―매우 많은 방식으로 변용하고 변용되는 방식―을 배가시킨다.

여기서 마키아벨리 사상과의 ‘마주침’은 가장 주목할 만한 결과들을 낳는다. 다중의 범주는, 이 범주를 스피노자 정치 사상의 중심축들 중 하나이자 근본적인 혁신점들 중 하나로 만드는 실정적, 정초적, 구성적인 내용들로 가득차 있다. 마키아벨리는 대의(代議) 및 다자의 규율화, 그리고 다자의 단일화라는 이데올로기, 다시 말해 홉스가 원했듯이 다중의 인민으로의 전환이라는 이데올로기에 맞선 도구로 활용된다. 모든 목적론은 포기된다. 이는 상이한 통치[정부]형태 사이의 형식적 선택에 따른 포기가 아니라, 인간들로부터 확정적으로 그들의 역량 및 자연권을 박탈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따라나오는 포기이다. 스피노자의 존재론적 지평에서, 상위성들의 종합과정으로, 갈등들의 정상화로, 차이들의 승화로 이해된 대의/대표(tamquam imperium in imperio)는 불가능해진다. 『정치론』에서 계약론이 포기되는 것과 평행적으로 우리는 다수적 개체로 존재하는 것으로서의 다중에 대한 가치부여를 발견하게 된다. 하지만 이제 스피노자가 마키아벨리에 대한 이러한 독해를 가공할 수 있게 해준 논거들을 명료하게 살펴볼 시간이 되었다.

복수화(plusieurs)하기: 다자의 표현으로서 정치적 합리성

『군주론』을 시작하면서 마키아벨리는 자신이 인민, 곧 “신분이 낮고 비천한”(『군주론』 강정인 옮김, 까치, 2003(제 2판), 10쪽) 사람들에 속함을 선언함으로써 자신의 철학적-정치적 전장(戰場, Kampfplatz)을 공개적으로 선택한다. 그는 인민에서 발견되는 오류들 및 결함들을 잘 의식하고 있다. 자주 눈앞의 이득의 신기루에 눈이 먼 이들은 희망과 공포, 오만과 회한의 포로이다. 하지만 이러한 오류들의 책임은 일방적으로 인민에게만 전가되어서는 안된다.

정확히 말하면 이러한 토대 위에서 그는 소수의 지혜에 맞서, 다자들에게 전가된 전통적인 무능력을 거부할 수 있게 된다. 전통적인 정치사상가들이 인민과 평민에 대해 표명하는 불신에 반대하고, ‘군주의 이성’ 및 귀족들의 지혜에 대한 평행적인 변호론에도 반대하여 마키아벨리는 두 가지 원칙을 강력하게 긍정하고 있다. 첫번째 원칙은, 귀족이든 평민이든 간에 인간들 사이에는 아무런 본성적 차이도, 후자보다 전자가 우월한 존재들로 고려될 수 있게 해주는 아무런 본성적 차이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두번째 원칙은 인간들의 행동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들은 단지 교육에만 의존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적합한 일련의 제도들로 인민들 및 군주들에서 나타나는 결함들을 완화할 수 있을 것이다. 군주들은 법에 의해 ‘규제’된다면, 유덕하게 통치한다. 하지만 다중 역시 일단 법에 의해 ‘규제’되면, 동일한 유덕함을 보여줄 것이다. 따라서 오래된 편견은 뒤집어지고, 우호적인 조건들―곧 다중이 좋은 법률로 규제되는 경우―에서는 정확히 로마 인민이 그랬듯이 다중이 “비굴하게 예속되지도, 무례하게 지배하지도 않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런데 마키아벨리에게 좋은 법률이란 갈등에서, 곧 귀족들 및 군주들의 야심과 억압에 대한 다중의 저항 운동에서 생겨나게 된다는 점은 굳이 환기시킬 필요가 없다. 이는 스피노자가 자신의 민주주의 이념을 구성하기 위해 다시 취하고 있는 다중의 역량/유덕함의 자기 조직화와 긍정의 내재적 원리이다.

따라서 만약 자연이 모든 인간에게 똑같다면, 만약 군주가 우월한 합리성을 소유하고 있다고 주장할 수 없다면, 이는 다중이 다른 행위자들(배우들, acteurs)과 동등하게 정치의 무대에 등장할 권리를 옹호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바로 여기에, 곧 다중에게 존엄성과 정치적 합리성을 부여했다는 점에 “불경한” 마키아벨리의 경악할 만한 가르침들 중 하나가 있다.

『피렌체의 역사』에서 분석은 좀더 심화된다. 마키아벨리가 3권에서 치옴피의 소요[1378년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일어난 하층노동자의 반란을 가리킨다. 치옴피(Chiompi)는 세모(洗毛), 소모(梳毛) 등 모직물 공업의 준비 공정 작업을 하는 종속 노동자를 의미한다―역자] 당시 익명의 연사의 입을 빌려 말하고 있는 유명한 연설을 예로 들어보자. 이는 귀족들 및 군주들이 참칭하고 있는 지혜의 우월성에 기초하고 있는 질서를 전복하는 데 적합한 편파적(partial)이고 혁명적인 연설이며, 유일한 인간 본성에 대한 근원적이고 무조건적인 긍정이다. 이 무명의 평민이 마키아벨리의 언어로 발언하고 있다는 사실은, 마키아벨리 자신이 인민과 평민을 새로운 정치의 주체들로서, 더 이상 사려깊거나 유덕한 군주의 인정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 자율적이고 열렬하게 정치의 무대로 진입하는 정치적, 사회적 형태들을 표현하는 심급들로서 인정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 자신의 말을 인용해보자.

그들의 기원이 오래되었음을, 그들이 우리와 대립함을 두려워하지 마시오. 왜냐하면 모든 인간은 하나의 동일한 기원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들과 똑같이 오래 되었고, 본성상 동일하게 형성되었기 때문이오. 우리 자신을 벌거벗겨 본다면, 우리 모두가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될 거요. 우리가 그들의 옷을 입고 그들이 우리의 옷을 입는다면, 우리는 분명 귀족들처럼 보일 것이고, 그들은 귀족들처럼 보이지 않을 것이오. 왜냐하면 오직 가난과 부만이 우리를 불평등하게 만들기 때문이오.

익명의 연사의 문채(文彩, figure)는 추상성의 위험을 피하면서 인민 주체의 정치적 중심성의 획득과 군주 내지는 귀족에 대한 인민의 우월성을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이는 모든 정치 질서의 필연적 우연성의 원리를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자연적 질서의 이름 아래 존경과 복종을 요구하는 귀족정의 로고스는 인간들의 공통의 본성에 대한 인정에 의해 실격되고 있다. 랑시에르가 정당하게 쓰고 있듯이 “이 최초의 로고스는 최초의 모순에 의해 물어뜯기고 있다. 사회에는 질서가 존재하는데, 왜냐하면 한 부류는 명령하고 다른 부류는 복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질서에 복종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두 가지 점이 요구된다. 곧 질서를 이해해야 하고, 복종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당신들은 당신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자와 이미 동등해야 한다. 이러한 동등성이야말로 모든 자연적 질서를 갉아먹는다. 분명 거의 모든 경우에 열등한 자들은 복종한다. 그렇다 해도 이 사실에 의해 사회 질서는 자신의 궁극적인 우연성으로 반송된다.”[Rancière, La Mésentente, p. 39.]

이렇게 해서 정치적 합리성[이라는 단수 표현]은 복수로 어미변화된다. 이는 다자의 표현인 반면, 정확히 말하면 군주의 모습을 띤 그 개인적 형태는 추상에 불과하며, 그것이 주장하는 우월성의 허상은 힘에 의해 벗겨진다.

게다가 마키아벨리는 모든 사람에게 공통적인 하나의 본성이라는 관념 및 개인에 대한 다자의 우위라는 관념을, 시간들의 변화 및 지배력(empire)이라는 질문과 연결시킨다. 이 질문은 인간 본성 및 그것이 자연과 맺고 있는 관계에 대한 모든 관점에 대해 중심적인 문제이다. 시간들이 극도로 가변적이듯이 인간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들의 견해를 바꾼다고 마키아벨리는 쓰고 있다. 하지만 인간들은 단지 가변성을 수동적으로 겪을 뿐만 아니라, 이러한 가변성을 하나의 덕목으로, 시간의 변화 가능성에 맞서 ‘작용’(유희, jouer)하기 위한 전략적 원천으로 활용한다. 곧 이는 세계 및 자연의 가변성에 맞선 정념들 및 행동방식의 가변성이다. 이것들을 모방함으로써 사람들은 이것들의 덕목 및 역량을 모방한다. 우리는 바로 정치적 차원에서 이러한 주제들에 대한 가장 강력하고 가장 심오한 표현을 발견하게 되는데, 개별 신체에 대한 다수의 신체의, 다중의 우월성을 긍정하는 원리가 그러하다.

개별 신체[물체]들 및 혼합 신체[물체]들은 사실 모두 자신들의 퇴락을 막아주고 계속해서 새로운 힘들을 주입해줄 수 있는 작용을 요구한다. 하지만 이는 두 경우에서 상이한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혼합 신체[물체]가 개별 신체[물체]보다 더 강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왜냐하면 전자는 후자와 달리 자신들의 시초로 되돌아가서 쇄신될 수 있기 때문이다. 『로마사론』에서 이러한 관념은 갈등 이론 및 귀족들과 심지어 군주들에 대한 인민의 우월성의 긍정을 통해 설명되고 있다. 반대로 『군주론』에서는 이 증명이 군주라는 개별 형상의 다양성 및 가변성을 미덕으로 제시하는 이론의 측면에서 제시되고 있다. 다중이 자신의 다수적 구성에 의해 획득하는 결과들을 군주는 끊임없이 변이에 적응함으로써 얻게 된다. 군주에게 요구되는 자질들은 상이하고 심지어 서로 대립하기까지 하는데, 이는 군주의 덕목을, 모든 유형의 성질을 제시하고 다변화하는 자연의 모방에서 찾게 만든다. 하지만 이는 또한 그의 한계이기도 한데, 왜냐하면 정확히 바로 여기서 그의 개별적인 본성은 상이한 ‘자질들’의 현행화의 한계를 이루기 때문이다.

한계와 목표, 위기와 역량은 마키아벨리의 담론에서 서로 뒤섞인다. 바로 여기에 켄타우로스 은유의 의미가 존재한다. 인간에게 키론[Chiron; 켄타우로스 중 하나로, 다른 켄타우로스와 달리 선량하고 정의를 존중했음―역자]은 장애물들을 분쇄하고, 자연의 변화들 및 다변성에 적응할 수 있는 가능성을 한정하는 것에 굴하지 않으려는 시도를 표상한다. 곧 자연의 무한하고 다양한 가변성에 대립하는 개인적 다양성의 형상인 것이다. 이는 시점들(point de vue) 및 경험들을 다양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독특한 개인에게 이는 다자화함을 의미하며, 일자에게는 복수화함을 의미한다.

갈등적 협동에서 다중의 역량으로: 마키아벨리적인 도구상자

하지만 이 원칙은 바로 가장 강력하고 가장 다면적인 주체는 다중임을 확언한다. 다중은 가장 커다란 정치적 합리성을 표현할 수 있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동시에 시간의 변화에 저항할 수 있고, 상황들 및 형세들의 무한한 변이에 적응할 수 있다.

다자는 “시간의 변이들에 더 쉽게 적응”할 수 있다. 다자는 시간들의 변이 앞에서의 우월한 태도를 표현하는데, 왜냐하면 시민들, 체질들(humeurs) 및 정서들의 상이성은 자연의 상이성을 더 잘 반영하며, 이를 ‘모방하는’ 데서 훨씬 잘 성공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마키아벨리에서 다자의 형상의 구성 및 스피노자에서 이 형상의 활용에 관한 이 짧은 고찰을 마무리하는 의미에서, 이 두 저자를 서로 접근시키고, 정치적-철학적 근대성과 관련한 이들의 독창성 및 이들의 전복적인 이례성을 심층적으로 고찰하는 데 도움을 주는 다른 요소를 강조해 두기로 하자.

『로마사론』 1권 20장에서 마키아벨리는 한 국가가 다수의 유덕한 군주들의 계승을 통해 일정한 수준의 유덕함과 역량을 획득할 수 있는 가능성에 관해 언급하고 있다. 만약 유덕한 군주들의 계열이 중단되지 않는다면, 유덕함은 안정되고 사회의 정치적 삶도 안정시켜 줄 것이다. 공화국은 군주정에 비하면 이러한 안정화에 도달하는 데 훨씬 유리하다. 사실 공직자들의 다양한 가변성 덕분에 이 계열이 중단될 위험성은 최소로 줄어들고, 심지어 소멸된다.

더욱이 자신의 갈등 이론, 곧 정치적, 사회적 갈등의 긍정성에 대한 명시적 확언을 통해 마키아벨리는 또한 덕목에 대한 두번째 긍정 원칙을 설명하는 것으로 보인다. 마키아벨리의 책 중에서 가장 갈등론적 입장이 잘 드러나고 있는 구절들에서 이 두번째 원칙은 사회적 체질들 사이의, 귀족과 인민 사이의 대결로부터 직접 탄생한다. 덕목은 더 이상 유덕한 세대의 선형적 계열에 따라 긍정되지 않고, 정치적 갈등으로부터 직접 탄생한다. 만약 전자의 경우 덕목이 다자에게 동화되는 것으로 나타난다면―왜냐하면 세대의 계승을 통해 거대한 공직자들이 생겨나리라고 기대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후자의 경우에 덕목은 외부에 실존하는 게 아니라 이러한 다양성 내에서, 그리고 이러한 다양성에 의해 실존한다. 덕목은 다양성의 직접적 산물이며, 체질과 의견, 갈등의 상이성의 직접적 표현이다.

그런데 이러한 상이한 모델이 스피노자에서도 발견된다. 민주주의는 여러 통치 형태들 중 한 가지로 이해되는 게 아니라, 다중의 역량의 연속적인 자기-조직화와 절대적으로 절대적인 긍정의 과정으로 이해된다. 항상 열려 있는 이 과정―마키아벨리에서 권리와 갈등, 위기와 역량을 연결하는 회귀적인 동역학과 유비적인―은 필연적으로 갈등들을 포함한다. 다중의 다자적인 개별적 신체는 단지 정치적 갈등의 무대일 뿐 아니라, 또한 그것의 합리적 표현이기도 하다. 이는 이 신체가 자신을 합성하는 개체들 사이의 갈등적인 협동으로 살아감을 의미한다. 이는, 정치적 합리성이 복잡화하고 현행화되는 연속적 과정 중에 이 갈등들 안에서, 그리고 이 갈등들에 의해 살아간다.

독특한 개인에 대한 다자의 우월성, 시간의 변화에 대한 다자의 적응 능력의 탁월성이라는 마키아벨리의 관념은 자연의 복잡성 및 가변성을 이해하려는 기획 내부에 기입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특히 정치적 갈등에서 생겨나는 것으로서의 덕목이라는 관념―갈등적 질서에 관한 이론―은 이 동일한 방향으로 나아간다. 따라서 스피노자가 마키아벨리 사상의 지적 도구 상자 안에서 발견하는 것은 한편으로는 다중의 역량 위에 절대적으로 절대적인 통치[곧 민주주의―역자]를 정초하기 위한 개념적 도구들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적, 정치적 갈등을 결함이 아니라 정치의 속성으로서 간주하려는, 따라서 이를 제거하거나 몰아내는 게 아니라, 반대로 이를 고려하고, 이를 자신의 정치철학 전체의 기본 요소 중 하나로 만들기 위한 이론적 요소들이다.

==============================================================================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다시읽기: 알뛰세르의 독해를 중심으로

진보평론 제23호

김경희,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1. 마키아벨리 해석사(史) 속에서 알뛰세르의 위치

니꼴로 마키아벨리(Niccolò Machiavelli)의 󰡔군주론󰡕(Il Principe)만큼 서양 정치사상사에서 논쟁이 된 책도 없을 것이다. 마키아벨리에 대한 무수한 논의들 중에서도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것이 바로 마키아벨리의 사상체계 내에서 󰡔군주론󰡕의 위치이다. 이런 풀기 힘든 수수께끼를 낸 사람은 바로 마키아벨리 자신이다. 마키아벨리는 한편으로는 군주정을 옹호하는 󰡔군주론󰡕을,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공화정을 옹호하는 󰡔로마사 논고󰡕(Discorsi sopra la prima deca di Tito Livio, 이하 󰡔논고󰡕)를 저술하였다. 군주의 권력장악을 위해서는 권모술수도 불사해야 한다는 전자의 주장과 광범위한 시민층의 정치참여 속에서 자유정체와 국력의 배양을 설파하는 후자의 주장은 명백히 모순으로 보인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마키아벨리의 이해는 여러 갈래로 나뉘게 된다. 이 논문에서는 그중에서도 루이 알뛰세르(Louis Althusser)의 마키아벨리 독해를 논하려 한다. 우선, 그의 마키아벨리 이해를 기존의 다른 해석 경향과의 관계 속에서 살펴본 후, 알뛰세르의 마키아벨리 독해 내용을 좀 더 자세히 고찰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알뛰세르의 마키아벨리 독해에 내재하는 통찰력과 그럼에도 풀리지 않고 여전히 남는 문제 등을 지적할 것이다.

이 글에서 다룰 마키아벨리 해석 경향은 크게 나누어 세 가지이다. 마키아벨리의 해석사(史)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참고서적들이 있다. 그중에서도 마키아벨리 사후(死後) 1940년대까지의 논의에 대해 개괄적으로 설명한 것은 붘(Buck)의 책을 들 수 있으며,(Buck, August. 1985. Machiavelli. Darmstadt; Wissenschaftliche Buchgesellschaft) 그 이후의 논의들에 대해서는 코크래인(Cochrane)과 기어켄(Geerken)의 논문이 있다.(Cochrane, Eric W., 1961. Machiavelli: 1940-1960, in The Journal of Modern History, Vol. 33; Geerken, John H., 1976. Machiavelli Studies since 1969, in Journal of the history of ideas, Vol. 37) 이 글에서는 다양한 마키아벨리 해석들 중에서 󰡔군주론󰡕과 󰡔논고󰡕의 관계에 대한 것만을 다룰 것이다.

첫째 󰡔군주론󰡕위주의 해석, 둘째 󰡔논고󰡕중심의 해석, 셋째 양 저작을 아우르는 개념이나 관점을 통해 파악하는 종합적 해석이 있다. 알뛰세르의 마키아벨리 해석은 이 중 세 번째에 속한다.

우선 각각의 해석 경향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 해석은 헤겔(Hegel)이나 피히테(Fichte) 등이 대변하는 국민 국가적 해석이다. 마키아벨리가 가진 문제의식이 당시 중앙집권화의 경향이 빨랐던 프랑스나 스페인과 비교해 그 발전 속도가 늦었던 이탈리아의 병폐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있다고 이들은 보았다. 이것은 실제 자신들이 처했던 상황 즉 국민국가의 성립이 늦었던 19세기 초 독일의 처지에서 나왔던 것이다. 따라서 이들에게 󰡔군주론󰡕은 강한 통일 국가의 건설을 위해 뛰어난 역량을 지닌 신군주가 ‘위로부터’ 공동체를 혁신하고 재조직하는 것을 서술한 책인 것이다. 헤겔은 그의 청년기 저작 󰡔독일 정체󰡕(Die Verfassung Deutschlands)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마키아벨리가 선구적으로 보았던, 이탈리아를 하나의 국가로 고양시키려던 목적은 마키아벨리의 저서에서 폭군정의 옹호나 야욕에 찬 지배자를 위한 좋은 지침 외에는 다른 것을 보지 못한 무지로 인해 묻혀버렸다……다른 선택의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불에 탄 사지(四肢)를 라벤더 향수를 가지고 치료할 수는 없다; 독살과 암살이 일반화된 상태에서 약한 처방은 듣지를 않는다. 고사 직선의 생명은 오로지 강력하고 폭력적인 방법으로 재생될 수 있다.”(Hegel, G. W. F. 1986. “Die Verfassung Deutschlands” in Frühe Schriften. (Frankfurt am Main: Suhrkamp Verlag, 1986) p.555)

한편 두 번째 해석인 󰡔논고󰡕중심의 해석은 마키아벨리를 공화주의자로 파악하고 있다. 여기서 언급되는 공화주의가 마키아벨리의 진정한 모습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군주론󰡕은 군주 혹은 폭군의 참모습과 위험성을 인민들에게 알리고 계몽시키기 위해 쓰여 진 것이 된다. 스피노자(Spinoza)와 루소(Rousseau) 같은 이들이 여기에 속한다. 루소는 󰡔사회계약론󰡕3부 6장에서 “그는 국왕들을 가르치는 척 하면서 실은 국민들에게 커다란 교훈을 주었던 것이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공화주의자의 책이다”라고 쓰면서 1782년 판에 추가된 각주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마키아벨리는 정직한 사람이고 선량한 시민이었다. 그러나 메디치 가(家)에 봉사하였기 때문에 조국의 압제하에서 자유에 대한 그의 사랑을 숨겨야만 했다. 그가 증오하는 영웅을 선택해서 공격하는 것을 보면 그의 숨은 의도를 충분히 엿볼 수 있다. 그의 저서 󰡔군주론󰡕의 교훈이 󰡔논고󰡕와 󰡔피렌체사󰡕의 교훈들과 모순되는 것은 이 깊이 있는 정치 사상가가 이제까지 피상적이고 타락한 독자들에게만 읽혀졌다는 사실을 나타낸다.”(장 자크 루소 저. 이환 역. 󰡔사회계약론󰡕, 서울대 출판부,1999, 96쪽).

세 번째의 종합적 해석에 속하는 것이 국가이성론의 입장과 현대 영·미 공화주의론자들의 해석이다. 국가이성론의 입장을 대변하는 마이네케(Meinecke)는 “국가 행동의 기본원칙, 국가의 운동원리이자 건전하고 강력한 국가를 유지하는데 있어 정치가가 해야 할 일”로 국가이성(Staatsräson)을 파악했다. 프리드리히 마이네케 저, 이광주 역, 󰡔국가 권력의 이념사󰡕, 민음사, 1990, 31쪽.

국가 존립의 위기 속에서 국가의 생존을 최우선으로 사고했던 마키아벨리에게 정체는 상황의 필요에 따라 결정될 수 있는 것이라고 그들은 보았다. 한편, 현대 영·미 학계의 공화주의자들은 마키아벨리를 공화주의자로 규정하면서도 이전의 계몽주의 시기의 공화주의자들과는 달리 󰡔군주론󰡕에 고유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논고󰡕에서 설파하는 공화주의를 마키아벨리는 원했지만, 위기나 무질서가 도래한 경우 강력한 권력을 통해 그것을 해결해야만 하는 현실을 인정했다는 것이다. 예컨대 비롤리(Viroli)는 “법이 제대로 적용되지 않는 공화정의 형성기나 타락으로 인해 법이 지켜지지 않는 위기 시에” 위기 극복의 구원자(redeemer)로서 신군주를 파악한다.(Viroli,M, Machiavelli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1998) p. 147) 포콕(Pocock) 같은 경우는 󰡔군주론󰡕의 주인공으로서 신군주를 혁신자(innovator)로 파악한다.(Pocock, J.G.A, The Machiavellian Moment (Princeton; Princeton Press, 1975) p. 167).

알뛰세르의 마키아벨리 해석은 세 번째 입장에 속한다. 해석자들의 정치상황보다는 마키아벨리가 고민했던 당시의 역사적 맥락 속에서 그의 저서를 이해할 것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즉, 마키아벨리의 문제의식은 “통일되지 않은 나라 이탈리아에서 민족국가 건설의 전제조건”에 관한 것이며, 그가 원한 것은 군주정이나 공화정 자체가 아니며, 민족적 통일이고, 민족적 통일을 완수할 수 있는 국가의 형성이라는 것이다. 알뛰세르에게 마키아벨리는 항상 정치적 실천을 고려한 인물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알뛰세르는 마키아벨리를 근대 정치학의 시조로 보는 입장, 특히 그중에서도 마키아벨리가 근대적 실증성이나 과학성을 최초로 정치학에 도입했다는 입장을 비판한다. 루이 알뛰세르 저, 김석민 역, 󰡔마키아벨리의 고독󰡕, 새길, 1992, 238-240쪽 참조.

2. 알뛰세르의 󰡔군주론󰡕 독해

알뛰세르의 논의를 살펴보기 전에 그가 의지하고 있는 그람시(Gramsci)의 논의에 대해 우선 살펴보기로 하자.

그람시는 마키아벨리를 ‘시대의 표현’으로 파악한다. 그리고 마키아벨리가 살았던 시대와 그의 절박했던 상황은 국내외 정치상황 속에서 나타나는 봉건제적 질곡에 기인하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조국 피렌체에서 귀족들의 분파투쟁으로 나타나는 잦은 정변과 무질서, 이탈리아 내에서 각국들 사이의 세력균형을 위한 봉건제적인 자치도시국가들의 투쟁들 그리고 프랑스, 스페인 같은 통일된 강력한 힘을 가진 국가들의 주도권 다툼 속에서 서로의 이익을 위해 이전투구의 양상을 보이는 이탈리아 내의 국가들로 인한 것이었다. 이러한 혼란과 혼돈의 상황 속에서 마키아벨리는 “절대적 국민적 군주국의 조직을 지향하는 당대의 철학을 반영”하여 “봉건적 무정부 상태에 종지부”를 찍어야 하는 신군주를 염원했다는 것이다. 안토니오 그람시 저, 이상훈 역, 「현대의 군주」, 󰡔옥중수고1; 정치편󰡕, 거름, 1986, 136쪽.

이렇게 “새로운 국가 혹은 새로운 국민적, 사회적 구조의 건설” 같은 글, 121쪽.

을 󰡔군주론󰡕의 핵심문제로 파악한 그람시는 세력관계 속에서 민중과 국민군 조직을 강조한 마키아벨리에 주목하게 된다. 민중과 그들의 지지 그리고 그들로 구성된 국민군의 구성을 통하여―즉 국민적, 민중적 집단의지의 창출을 통하여 같은 글, 123쪽.

―절대 군주국의 성립을 마키아벨리가 기도했다는 것이다.

알뛰세르는 이러한 그람시의 논의를 이어받는다. 그러나 마키아벨리의 수수께끼 즉 󰡔군주론󰡕과 󰡔논고󰡕의 문제에 대해 직접 대면하면서 한 걸음 더 나아가게 된다.

“그것은 데 상티와, 그를 따라 그람시가 인지했던 것처럼 그 당시에 절대군주제의 형태로 프랑스와 스페인에 존재했던 민족국가를 이론화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내부적인 분열과 침략에 빠져있는, 통일되지 않은 나라 이탈리아에서 민족국가 건설의 전제조건이라는 정치적 문제를 질문하는 데 있었습니다.” 루이 알뛰세르 저, 김석민 역, 󰡔마키아벨리의 고독󰡕, 새길, 1992, 227쪽.

다시 말해 “모든 봉건적 질곡에서 자유로워야” 할 “새로운 국가, 지속할 수 있는 국가 그리고 성장할 수 있는 국가, 즉 이탈리아를 통일할 수 있는 국가를 건설한다”는 사고 속에서 같은 글, 228-229쪽.

마키아벨리의 말 많은 두 주요 저작 사이의 모순은 사라진다. 마키아벨리가 군주주의자냐 혹은 공화주의자냐는 문제는 국가건설의 두 계기라는 문제로 대체되면서 해소되는 것이다. 그 첫 번째 계기는 “군주주의적 혹은 독재적 계기”로서 국가건설의 기틀을 마련하기 위해 권력을 집중하고 그 물적 기반으로서 무장력을 갖추어야만 하는, 다시 말해 그 모든 책임과 권력을 혼자 떠맡아야만 하는 계기이다. 그런데 이러한 국가는 여러 가지 문제를 가진다. 군주가 폭군이 될 수 있는 가능성과 그 폭정으로 인한 내부 혼란이 외세의 침입을 불러올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들 때문에 국가는 스스로의 생존을 위해 “혼합정체” 같은 글, 230쪽. ‘복합정체’보다는 ‘혼합정체’가 더 일반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용어이기 때문에 고쳐서 옮겨놓았다.

를 세워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국가 건설의 두 번째 계기인 공화주의적 계기이다. 왕과 인민과 귀족들을 공히 대표하는 혼합정체의 의미는 군주 일인에 의해 세워진 국가를 이제 다수의 어깨 위에 맡긴다는 것이다. 그럴 때만이 강력하고 팽창 가능한 국가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때 이러한 공화정을 이끌고 가야하는 것은 인민으로서, 그들은 귀족들과의 계급투쟁 속에서 자신들의 권력을 뿌리내리게 된다는 것이다. 같은 글, 230쪽.

앞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이렇게 볼 때 마키아벨리는 군주주의자 혹은 공화주의자 어느 하나가 아니라 민족 통일과 국민국가 형성을 고민한 자이며, 이 속에서 군주정과 공화정은 그 단계로 포함되는 것이다.

자 이제 알뛰세르가 마키아벨리에게서 나타난다고 본 “국가구성에서의 두 계기” 루이 알뛰세르 저, 오덕근·김정한 역, 󰡔마키아벨리의 가면󰡕, 이후, 2001, 118쪽.

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알뛰세르는 󰡔군주론󰡕의 이해는 당시의 시대상황 속에서 이해 가능하다고 말한다. 알프스 이북의 강국들의 전쟁터가 된 암울한 이탈리아의 상황 속에서 민족국가 형성의 필요성을 절감했다는 것이다. 그 새로운 국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뛰어난 역량을 지닌 한 사람 즉 신군주에 의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때 기존의 혼란과 질곡을 만들어 낸 귀족 세력을 제어하기 위해 인민에 의지해야 했다. 즉 귀족과 인민의 계급 대립에 주목하여 후자가 주축이 되는 국민군의 창출 등을 통해 새로운 국가를 창건하고자 한 것이다. “……마키아벨리가 자신을 인민의 편에 위치지음으로써 군주에 대해 말한다는 것, 그가 전심전력을 다해서 “인민”의 관점에서 이탈리아의 통일을 실현할 군주의 실천을 요구하고 사유한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이러한 모든 분석으로부터, 우리는 인민에 호소하는 것은 투쟁에 호소하는 것임을, 그리고 이 투쟁이란 인민과 세도가들 사이의 계급투쟁임을, 따라서 그것은 군주가 인민과의 유대, 즉 솔직히 말해서 귀족들……에 대항한 인민과의 동맹을 확보함으로써 자신의 역사적 사명을 수행하도록 권고하는 것입니다.”(루이 알뛰세르(1992), 앞의 글, 241쪽).

그런데 󰡔군주론󰡕의 주인공인 이 신군주는 폭군이 아니다. “법에 따라 통치하는 왕” 루이 알뛰세르(2001), 앞의 글, 101쪽.

이다. 이 법은 계급투쟁의 관점에서 파악된 것으로 인민의 이익을 대변하여 귀족을 제어하는 것이다. “군주의 정부는 인민과 귀족의 투쟁에서 인민의 편을 택하는 군주의 정부인 것이다.” 같은 글, 111쪽.

이것이 새로운 국가 구성의 첫 번째 계기로 뛰어난 역량을 지닌 한 사람에 의해서만 이루어 질 수 있는 “절대적 시작의 계기” 같은 글, 118쪽.

이다. 그러나 시작을 위해 한 사람에 집중된 권력은 전제정과 폭정으로 인도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 위험과 불안정성의 극복을 위해 필요한 것이 “지속적 계기”로서 절대적 권력이 군주에게 귀속되는 것을 종결시키는 것이다. 이것은 이중적 과정, 즉 “법의 안정화와 고독으로부터의 탈출” 같은 글, 118쪽.

을 통해 가능하다고 말한다. 계급대립의 쌍방인 귀족과 인민 중 인민에 의존하면서 법을 통해 인민 속에 군주가 확고한 지지 기반을 가지는 것이다. 그리고 이럴 때만이 국가는 국내외적 정치 위기를 잘 극복해 내고 자신을 지속시킬 능력과 힘을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군주론󰡕에서는 첫 번째 계기를 그리고 󰡔논고󰡕에서는 두 번째 계기를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첫 번째 계기는 두 번째 계기와의 연관 속에서만 사고될 수 있는 것이다. 두 번째 계기의 핵심이 국가가 “자신의 정체를 권력의 민중적 뿌리로 제도화” 같은 글, 119쪽.

시키는 것에 있다면, 첫 번째 계기는 이것의 준비과정일 것이다. 다시 말해 군주의 정치적 실천을 결정하는 것은 국가의 민중적 성격이다. 이런 관점에서 알뛰세르는 󰡔군주론󰡕을 분석해 나간다. 그는 새 국가 창설의 물적 기반으로서 무장력(자국군), 법 그리고 인민의 지지에 주목한다. 신군주의 힘의 실재적 기반으로서 자국군은 바로 자신의 인민에 의해 무장되고, 구성되는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법은 귀족을 제어하고 인민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다. 인민의 지지는 인민에게 무기를 주거나, 그들을 보호하는 법을 제정함으로써 얻어지기도 하지만, 이런 객관적인 정책 행위뿐만 아니라 또한 군주의 역량, 풍모 그리고 보여짐에 의해 획득되기도 한다. ‘실재보다 외양을 더 신뢰하는 성향을 지닌 인민’을 이해하는 것과 더불어 그것에 맞게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 󰡔군주론󰡕16장에서 기술되듯이 관대함 같은 덕은 국가에 해가 될 수 있는 것을 파악하는, 군주의 중요한 능력 중 하나이다. 그러나 그 관대함이 없는 군주처럼 보이는 것 또한 명망을 얻을 수 없게 만든다. 덕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외양을 꾸미고 실재로는 국가에 이로운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 능력이 군주에게 요구되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요약하자면, 신군주는 자신의 뛰어난 역량을 통해 통일 민족국가의 건설을 위한 물적 기반으로서 법, 인민으로 구성된 군대 그리고 인민의 자발적 동의와 지지를 구성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낡은 봉건적 형태의 유지자로서 당시 이탈리아의 질곡으로 작용한 귀족을 제압하고 인민을 재구성하여 “이탈리아의 통일이라는 역사적 과업에 의연히 맞서야 하는 새로운 민중적인 국가” 같은 글, 176쪽.

를 건설해야 한다는 것이다.

3. 알뛰세르의 󰡔군주론󰡕 다시읽기

이하에서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통해 알뛰세르의 󰡔군주론󰡕을 다시 독해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알뛰세르의 논의를 보완하거나 혹은 그의 논의와는 다르게 말하는 마키아벨리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알뛰세르의 󰡔군주론󰡕 이해의 핵심은 당시 이탈리아의 질곡을 극복하기 위해 마키아벨리는 새로운 국가 건설을 의도했고, 계급투쟁에 착목하여 귀족과 인민의 대립구도 속에서 인민에 의지하여 그들의 지지와 그들로 구성되는 군대가 새로운 국가의 물적 기반이라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귀족을 제어하고 인민을 보호하는 법, 국민군 그리고 인민의 지지를 핵심 기반으로 꼽는다. 그런데, 기존의 혼란과 위기의 원인제공자로서 귀족에 대한 언급, 즉 그들을 제어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되지 않고 있다. 󰡔군주론󰡕의 핵심 주장이라고 할 수 있는 신군주의 역량/역능(virtù)을 통해 인민의 자발적 동의와 지지를 획득하는 것에만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모순과 질곡의 주원인 제공자로서 기득권 세력인 귀족의 제어와 관련해서는 별다른 언급을 하고 있지 않다. 마키아벨리에게 귀족(grandi)은 지배욕과 야망이 특징인 존재로서 억압받지 않고 자유롭게 살고자 하는 인민(popolo)과는 항상 대립적인 위치에 서 있다. “사실상 귀족(grandi)은 다른 사람들을 억압하려는 데 반해 민중(popolo)은 억압당하지 않는 것만을 원하기 때문에 보통 민중의 소원은 귀족의 그것보다 훨씬 정직하고 정당한 법이다.”(󰡔군주론󰡕9장; 니꼴로 마키아벨리 저, 김영국 역, 󰡔마키아벨리와 군주론󰡕, 서울대 출판부, 1995, 123쪽). 한편 인민에 대한 이러한 신뢰는 󰡔논고󰡕의 일관된 관점이기도 하다; “의심의 여지없이 귀족과 귀족이 아닌 자들의 목적을 검토해보면, 전자에게는 지배하려고 하는 강한 갈망이 있고, 후자에게는 단지 지배당하지 않으려는 갈망, 다시 말해 귀족들보다 지배권을 장악할 전망이 적기 때문에 자유 속에서 살고자 하는 강한 열망이 있다는 점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런즉 평민이 자유를 보호하는 직책을 담당하게 되면 그들은 스스로 그것을 독점할 수 없기 때문에, 타인들이 그것을 독점하지 않도록 훨씬 잘 지킬 것이다.”(󰡔논고󰡕1권, 5장; 니꼴로 마키아벨리, 강정인·안선재 역, 󰡔로마사 논고󰡕, 한길사, 2003, 89쪽: 이하에서 󰡔논고󰡕와 󰡔군주론󰡕을 인용할 때는 책 제목과 장 그리고 쪽수만을 밝히겠다).

그들은 대부분의 국가에서 소수이면서도 권력과 재화를 독점하고 있다. 물론 인민들과 비교해 그들의 뛰어난 능력을 인정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귀족들은 자신들의 독점적 물적 기반과 권력 기반으로 인해 정치적, 경제적 불평등 관계를 재생산할 수 있으며 그것으로 인해 공동체에 해를 끼치는 존재였다.

“귀족(gentiluomini)이라는 이 호칭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설명하기 위해 나는 토지소유에서 나오는 수입으로 인해 일하지 않고도 사치스럽게 사는 자를 귀족이라고 부르겠다. 그들은 농업이나 생계를 영위하는 데 필요한 다른 직업에 대해 아무런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이 같은 부류의 사람들은 모든 공화국은 물론 모든 나라에 위험한 인물들이다. 그러나 더더욱 위험한 인물들은 그러한 재산 이외에도 성곽을 가지고 있고 그들에게 복종하는 신민을 보유하고 있는 자들이다.

이들 두 부류의 인간들이 나폴리 왕국, 로마시, 로마냐 및 롬바르디아에 들끓고 있다. 이로 인해 이들 나라에 어떤 공화국이나 잘 정비된 정부가 들어서지 못하는 것도 당연하다. 왜냐하면 이런 유형의 사람들은 전적으로 모든 종류의 자유로운 정부에 적대적이기 때문이다.” 󰡔논고󰡕1권 55장, 241쪽.

이들 귀족세력들의 제어에 탁월한 능력을 보인 인물이 바로―알뛰세르도 마찬가지로 󰡔군주론󰡕의 주인공으로 파악한―체자레 보르지아(Cesare Borgia)이다. 체자레 보르지아를 언급하면서 그의 뛰어난 능력을 보여준 사례로 마키아벨리가 언급한 사건이 바로 시니갈리아(Sinigaglia) 사건과 레미로 데 오르코(Remirro de Orco)에 관한 일화이다. 시니갈리아 사건은 보르지아가 자신의 군대에서 주요 세력으로 복무했던 오르시니(Orsini) 가문을 제거한 사건이다. 오르시니 가문은 당시 로마 북부에 광대한 영토를 가지고 있으면서 많은 용병대장을 배출한 로마의 주요 귀족 세력이었다. The Thames and Hudson Encyclopaedia of the Italian Renaissance, ed. J. R. Hale, Thames and Hudson Ltd. London, 1981, p. 228.

용병으로서 그 충성심을 의심받기 시작한 오르시니 가문을 보르지아는 계교(計巧)를 써서 시니갈리아로 불러들인 다음 단숨에 처단하는데, 그것이 바로 시니갈리아 사건인 것이다. 이 사건을 통해 마키아벨리가 말하고자 한 것은 사자와 여우의 비유 󰡔군주론󰡕18장, 166쪽 참조.

에서 잘 나타나듯 정치력으로서 간지(奸智)와 계교의 필요성과 귀족과 용병세력의 제어를 통한 자국군 건설의 중요성이다. 강력한 귀족 세력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역관계를 고려해야만 한다. 순진한 전면전은 군주는 물론 국가의 몰락을 불러올 수도 있기에 간지와 계교를 통하여서라도 강한 귀족 세력을 제어해야 하며 그러한 능력이 신군주의 역량인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것은 신뢰할 수 없으며 소모적인 전쟁을 수행하는 용병 및 귀족세력을 대체하는 자국군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중심에 인민이 서 있는 것이다.

한편, 레미로 데 오르코에 대한 언급은 무질서의 제공자로서 발호하는 귀족 세력과 그들의 제어를 통한 인민의 지지 획득에 대한 마키아벨리의 관심을 잘 드러내고 있다. 로마냐 지역은 기존 귀족 세력들에 의해 불법이 난무하는 지역이었으며, 그 속에서 인민들이 고통을 받고 있는 지역이었다. “로마냐를 접수했을 때 공(公)은(체자레 보르지아, 필자) 그 지역이 그때까지 자기네 신민을 바르게 통치하기는커녕 약탈하였으며, 또한 단결보다는 분열의 원인을 조성함으로써 결국 로마냐 전역에서 강도와 폭력과 온갖 종류의 불법이 난무하도록 만든 무력한 지배자들에 의해 통치되어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군주론󰡕7장, 109쪽).

여기서 보르지아는 “비정하지만 적극적인” 레미로 데 오르코에 전권을 주어 로마냐로 파견한다. 그리고 그의 잔인하지만 유능한 방법이 성과를 거두어 로마냐가 안정을 되찾은 후 보르지아는 그의 잔인함 때문에 인민들의 반감을 산, 데 오르코를 참수하게 된다. 이것을 통해 보르지아는 인민들에게 만족과 공포감을 주었고 지지를 얻게 된다. 귀족의 제어와 인민의 지지를 함께 얻은 것이다. 신군주의 모범으로서 체자레 보르지아의 예를 서술하면서 마키아벨리가 말하고자 한 것은 귀족 세력의 발호로 적나라한 역관계의 상황에 놓이게 되었을 때 그것을 극복해 나가는 방법이었다. 그러한 상황에서는 인간의 방법인 솔직함과 법만으로는 문제를 풀어나갈 수 없다. 짐승의 방법, 힘의 방법, 여우의 계략과 사자의 힘 모두가 필요한 상황인 것이다. 이것이 혼란을 극복하기 위한 신군주의 개인적 역량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면, 그 개인적 역량을 뒷받침해줄 물적 기반이 필요한 것이다. 그것이 바로 자국군과 인민의 지지이다. 위의 역량과 물적 기반이 합쳐질 때만이 신군주의 기획은 가능한 것이다. 마키아벨리의 물적 기반, 무력 등에 대한 강조는 그의 사보나롤라 비판에 잘 드러난다. 1494년 메디치가의 몰락 이후 피렌체를 장악한 사보나롤라는 무력과 힘보다는 설교와 성서의 힘을 통해 개혁을 수행하려 하였고, 그것은 결국 실패하게 된다. 정치의 고유한 논리인 힘의 논리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사보나롤라를 마키아벨리는 ‘무장하지 않은 예언자’로 비판한다. 󰡔군주론󰡕6장 참조.

이러한 인민에의 의지와 그들로 구성된 자국군에 주목한 알뛰세르는 국가 건설의 두 번째 계기에 도달하게 된다. 이것을 그는 “군주가 전적으로 법에 따라 자신의 인민 속에 ‘뿌리를 내릴 수’ 있을 때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루이 알뛰세르 저, 오덕근·김정한 역, 󰡔마키아벨리의 가면󰡕, 이후, 2001, 118쪽.

그런데,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앞 인용문이 나온, 다음 페이지에서 알뛰세르는 그것을 혼합정부라고 말한다. 그것은 절대 군주제가 아닌 군주제적 요소를 지닌 공화국인 것이다.

“󰡔군주론󰡕에서 강조하는 바가 첫 번째 계기―절대 권력, 절대 군주―라면, 그런 점이 바로 국가의 시작의 절대적 형태이기 때문이다. 󰡔논고󰡕에서 강조하는 바가 공화국이라고 불려온 것―그러나 이것은(마키아벨리 자신이 끊임없이 반복하여 말하는 것처럼) 그와 마찬가지로 군주국이다―이라면, 그것은 바로 마키아벨리가 󰡔논고󰡕에서 우선적으로 두 번째 계기를 연구하고 있기 때문이다……창건하는 계기 이후에는 더 이상 절대 권력이 아니라, 혼합정부, 법, 그리고 인민에 강조점이 놓여진다. 아주 도식적으로, 다음과 같이 말해보자. 국가는 오직 한 개인, 이를테면 왕에 의해서만 창건될 수 있다.……그러나 이와 동일한 국가는, 자신의 정체를 권력의 민중적 뿌리로 제도화하도록 전화시킬 경우에만, 시간적으로 존속하고 공간적으로 확장할 수 있다.” 같은 책, 119-120쪽.

마키아벨리는 공화정을 옹호하는 󰡔논고󰡕1권 2장에서 분명히 혼합정이 최선의 정체임을 밝히고 있다. 다양한 정치세력, 특히 귀족과 인민간의 대립을 체제 내에 흡수하여 견제와 균형을 가능케 하는 정체를 수립함으로써 지속 가능한, 강한 국가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광범위한 시민층의 정치참여가 보장되는 (자유) 정체이다. 국가건설의 제 1계기로서 절대 군주가 자신의 어깨 위에 놓았던 정부를 다수의 어깨 위에 내어 주어야 제 2계기가 도래하는 것이다. 알뛰세르도 인용한 이 󰡔논고󰡕1권 9장의 언급은 명백히 권력 소유에 따른 정부형태를 의미하는 것이다. 즉 군주제 대(對) 공화제. 마키아벨리가 말하는 공화제는 혼합정체로서 군주제, 귀족제 그리고 민주제의 요소를 갖고 있기에 권력 독점으로 인한 부패 방지 등을 꾀하는 최선의 정체로 나타난다. “그런즉 법률을 제정함에 있어 신중한 자들은 이러한 결함을 인식하고 각각의 유형을 있는 그대로 취하는 것을 피하고, 처음의 세 가지 좋은 정체(군주정, 귀족정 그리고 민주정, 필자)가 갖는 성격을 모두 다 포함한 하나의 정체를 택하여, 그것을 가장 견실하고 안정된 것이라 판정하였다. 그 이유는 동일한 도시 안에 군주정, 귀족정, 민중정부의 여러 요소들이 함께 있게 된다면,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기 때문이다.”(󰡔논고󰡕1권 2장, 81쪽).

일인(一人) 지배체제의 군주제보다 귀족과 인민을 포함하는 다수 시민들이 참여하는 공화제가 우수함을 마키아벨리는 󰡔논고󰡕3권 9장에서 명확히 밝히고 있다.

“그러나 그가(파비우스, 필자) 태어난 공화국은 상이한 시민들과 상이한 의견들이 존재하는 곳이었다. 따라서 로마에는 지구전을 요하는 시대에 최선의 인물인 파비우스가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후일 전쟁을 승리로 마무리 지어야 할 시기에 적합한 스키피오가 있었다.

그러므로 군주국에 비교할 때, 공화국은 자국 내에 존재하는 시민들의 다양성을 활용하여 시대적 조건의 다양성에 스스로를 훨씬 잘 적응시킬 수 있다. 따라서 군주국보다 훨씬 더 오래 지속하며 행운을 더 오래 누릴 수 있다. 그러나 한 가지 방식으로 행동하는 데 익숙해진 사람은 내가 말한 대로 결코 변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시대가 변하여 그의 방식과 조화되지 않으면, 그는 필연적으로 몰락하게 마련이다.” 󰡔논고󰡕3권 9장, 464쪽.

일인 지배체제로서 군주제와 다양한 시민들이 권력을 분점하는 공화제는 명확히 다른 정체로서, 군주제에서 공화제로 이행하는 것은 군주의 자발적 권력이양이나 시민들의 정권획득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다. 마키아벨리도 분명히 이 문제를 고민했다. 그런데 무질서의 극복을 위해 인민에 의지하기는 하지만 귀족을 제어하기 위해 개인의 뛰어난 능력을 겸비한 신군주는 물적 기반과 권력을 독점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시민들도 군주에 지지를 보내고 있는 상황이고, 불균형에 있는 역관계로 인해 시민의 정권투쟁은 사고하기 힘든 상황이다.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신군주의 선의(善意)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선한 의지와 뛰어난 능력은 재생산이 보장되지 않는 무척 취약한 기반이다. “군주의 수명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군주의 능력이나 지혜가 쇠퇴하면 왕국 역시 즉각적으로 쇠퇴할 것이다. 그런즉 오직 한 인간의 활력에만 의존하는 왕국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 활력은 한 인간의 생명과 함께 사라지며, 세습의 과정에서 좀처럼 회복되지 않기 때문이다.”(󰡔논고󰡕1권 11장, 119쪽).

문제는 훌륭한 제도를 만들고 그것을 인민의 어깨 위에 놓는 것이다. 그러나 절대 권력의 획득과 그에 이은 권력 이양은 어려운 과정으로서 마키아벨리는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좋은 정부 하에서 살 수 있도록 도시를 재건하기 위해서는 고결한 인물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폭력에 의해 국가의 지배자가 되기 위해서는 사악한 인물일 필요가 있다. 하지만 고결한 인물은 비록 그의 목적이 좋다고 할지라도 좀처럼 사악한 방법을 통해 지배자가 되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른 한편 사악한 인간은 그가 마침내 지배자가 되었을 때, 올바른 일을 하고자 하지 않을 것이다. 그가 사악한 방법으로 획득한 권한을 올바르게 사용하려는 생각이 결코 그의 마음에 떠오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논고󰡕1권 18장, 145쪽.

그렇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역사적 실례가 있기 때문이다. 로물루스(Romulus)가 그 대표적인 인물로 그는 자신의 동생과 협력자를 죽이는 비도덕적인 행위를 저지르면서 권력을 독점했음에도 그 후에 한 일들은 그것이 자신만을 위한 행위가 아니라 “일반적인 선(bene comune)”과 “공동의 조국(comune patria)” 󰡔논고󰡕1권 9장, 108쪽.

을 염두에 둔 행위였다. 공공선의 추구와 조국애 같은 덕목을 신군주가 갖추지 않는다면 제 2의 계기로의 이행은 그렇게 순탄한 과정만은 아닌 것이다.

4. 나가며

지금까지 알뛰세르의 마키아벨리 이해를 살펴보았다. 알뛰세르는 마키아벨리를 당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민한 정치가 및 실천가로 바라보았다. 그 속에서 󰡔군주론󰡕의 신군주는 국민통일이라는 당시의 역사적 과제를 달성해야 하는 “절대 주권자”이다. 그런데 마키아벨리는 이 과제를 자신의 계급적 입장에서 바라보았다. 알튀세르, 앞의 책, 54쪽

즉 인민의 관점에서 바라본 것이다. 인민의 관점에서 당시 정세를 파악한다는 것은 곧 계급투쟁의 관점에서 본다는 것이다. 당시의 봉건적 질곡을 재생산 해내어 무질서와 혼란의 상태를 만들고, 이탈리아를 무력(無力)한 국가로 만든 귀족세력과 그에 대항하는 인민의 대결구도 하에서 보았던 것이다. 따라서 군주는 인민에 의지하여 군대를 새로 조직하고 그들의 지지에 힘입어 새로운 법과 제도를 만들어 국민 국가를 이루어 내야 한다. 그러나 이 새로운 국가의 첫 번째 계기로는 지속적인 강한 국가를 만들어 낼 수 없다. 그것을 위해서는 절대 권력을 인민들에게 짊어지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혼합정부, 법 그리고 인민에 의지하는 공화제이며, 새 국가건설의 두 번째 계기인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마키아벨리 사후 지금까지 수수께끼라 불리며,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는 󰡔군주론󰡕과 󰡔논고󰡕에 대한 의문은 풀리게 된다. 이 두 저서는 서로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 강력한 국민 국가 건설의 두 계기를 설명한 것이 된다.

그런데 앞에서 언급했듯이 당시의 무질서와 혼란 속에서 살았던 마키아벨리는 위기 해결자의 역할을 수행하는 신군주가 귀족세력을 제어해야함을 강조하며, 체자레 보르지아의 예를 통해 그 일을 어떻게 수행해야하는 지를 좀 더 자세히 보여 주고 있다. 그 역관계의 첨예함 속에서 사자와 여우같은 상황 돌파능력을 지니면서 동시에 그것을 뒷받침해주는 물적 기반이 필요한 것이다. 또한 절대 군주적 권력이 필요한 제 1의 계기와 그 권력을 분산시켜야 하는 제 2의 계기간의 연결이 쉬운 것이 아님을 간파하고 로물루스 예를 들어 공공선과 조국에 대한 헌신이라는 책임감을 강조하였다. 역사 속의 정치적 실천이라 할 수 있는 새로운 국가건설의 제 1 계기에서 제 2 계기로의 이동이 자동적일 수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귀족세력이 강대하여 주도권을 휘두르며 통일 국민국가의 질곡으로 작용할 때, 그들을 제어하고 그 상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인민의 힘을 모을 수 있는 뛰어난 역량을 지닌 인물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 힘이 자신의 임무를 완수하고 그 독점적 지위를 내놓을 것이라는 보장은 그 어디에도 없다. 오직 그 절대 군주의 선의에만 의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민의 투쟁가능성은 없는 것일까?

여기서 마키아벨리의 소위 “계급투쟁관”을 다시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마키아벨리의 문제의식은 당시 프랑스와 스페인 같은 유럽의 강대국에 의해 피폐해진 이탈리아의 부흥이었다. 이것이 마키아벨리로 하여금 권력에 관심을 가지게 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한 국가의 힘을 최대로 모아야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귀족이 문제였다. 그들은 자신들의 물적 기반을 근거로 그들만의 사적 이익, 분파 이익을 위해 야합과 분열을 반복해서 자행했고, 그 결과는 국가의 분열과 무력화(無力化)였다. 그 귀족을 제어하여 힘을 모아야 했다. 귀족에 대항하여 인민에 의지해야 했다. 그리고 믿지 못할 군대이자 귀족 세력이 주로 맡고 있는 용병을 대체할 수 있는 인민에 기반 한 자국군을 만들어야 했다. 그러나 이러한 인민에 기반 한 귀족의 제어가 귀족을 제외시키고 말살시키는 것은 아니었다. 귀족의 제거는 그들의 장점, 예컨대 군사기술 등의 상실을 의미함과 동시에 권력을 독점한 인민세력의 오만과 부패를 부를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 바로 견제와 균형이 핵심인 혼합정체의 기획이 있는 것이다. 그것은 국가 내 각 세력의 힘을 국가로 결집하는 것이다. 귀족과 인민들에게 그들의 공간을 제공함으로써 그들의 참여와 헌신을 유도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알뛰세르가 국가건설의 제 2계기에서 핵심으로 파악한 귀족과 인민간의 계급투쟁 그리고 그 속에서 힘의 균형을 표현하는 법을 장악해야 한다고 본 것은, 마키아벨리의 의도에서는 한 계급에 의한 다른 계급의 제거를 의미하는 계급투쟁보다는 서로 견제하고 그 속에서 균형을 찾는 계급타협에 더 가까울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서로의 긴장관계를 제거하는 것은 아니다. 인민이 승리한 후 귀족을 정치에서 제외시켰을 때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지를 마키아벨리는 피렌체사(史)의 경험을 통해 언급하고 있다:“로마에서는 인민들과 귀족사이의 대립이 말을 통해, 토론을 통해 다루어진 반면, 피렌체에서는 무기를 통해 다루어졌다. 로마에서의 반목은 법을 통해 종결되었고, 피렌체에서는 수많은 시민들의 추방과 죽음을 통해 종결되었다. 로마에서는 그것들이 군사적 역량(virtù militare)을 고양시켰고, 피렌체에서는 그것을 없애버렸다……로마 민중은 귀족들의 사회에서 가장 높은 명예에 동참하고자 하였다: 피렌체 민중은 귀족들을 배제한 채 혼자만의 지배권을 가지고자 하였다. 그리고 로마 인민들의 요구가 더 이성적이고 합리적이었던 것만큼 귀족에게 부여된 제한들도 수행하기 쉬운 것들이었다; 이들은 쉽게 그리고 무기를 들지 않고서 양보하였으며 몇몇 입장의 차이는 법을 통해 합의를 보았으며, 이렇게 하여 귀족들의 명예는 손상 받지 않았으며 민중은 만족할 수 있었다. 한편 피렌체 민중의 요구는 상처를 주는 것이었으며, 부적절한 것이었다: 따라서 귀족은 모든 힘을 다해 자신들을 보호할 것을 생각하게 되었고, 따라서 많은 시민들이 피를 보았어야 했으며, 많은 이들이 고향을 떠나야만 하였다. 그리고 여러 번 제정된 법들은 공공선(comune utilità)을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승자에게만 유리하였다. 로마는 민중이 승리함과 더불어 점점 용감해지게 되었다; 왜냐하면 민중에 속한 시민도 귀족과 함께 최고 관직에, 군대에서와 정복지의 명령권자에 오를 수 있었기에 그들은 귀족들에 충만했던 것 같은 역량(virtù)으로 충만 되었으며, 이러한 역량의 증가와 함께 권력의 증가가 함께 하였다. 그러나 피렌체에서는 민중이 승리하게 되자 귀족들은 관직으로부터 배제되었으며, 그들이 그것을 얻으려면 행동과 신념 그리고 삶의 양식을 민중의 것과 같게 해야했을 뿐만 아니라 또한 그렇게 보여야만 되었다. 여기서 귀족들이 민중이 되기 위해 수행한 가문의 문장의 변화와 가문 이름의 변화가 일어나고, 귀족에게서 있었던 군사적 역량과 정신의 고귀함이 그것이 없었던 민중 속에서 되살아나지 않고 사라지게 되었다. 그렇게 피렌체는 계속 낮은 상태로 떨어지게 되었다”(N. Machiavelli, Opere, a cura di Mario Bonfantini, Milano: Riccardo Ricciardi Editore,1965, pp. 680-681).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세력간의 대립과 경쟁은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한에서 계급투쟁인 것이다. 서로 다름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다. 그럴 때만이 한 세력의 전일적 지배에서 유래하는 정치 공동체의 부패를 막을 수 있으며, 국가의 힘을 모을 수 있다는 것이다. 마키아벨리에 있어 계급투쟁의 인정은 부패로 인한 무력화를 제어하고자 하는 정치적 기도였다. 그리고 부패는 한 세력 혹은 계급의 전일적 지배의 결과라고 보았다. 따라서 마키아벨리에게 계급투쟁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힘을 결집한다는 데 의의가 있는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분명히 계급투쟁을 역사의 원동력으로 파악하지 않았다. 알뛰세르, 앞의 책, 114쪽

그럼에도 당시의 문제를 귀족과 인민의 대립관계 속에서 파악하였고, 인민의 편에서 사고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인민을 보호하면서 귀족과의 긴장관계를 유지하는 것이었다. 그러한 정체를 수립함으로써 한 국가의 힘을 키울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무질서와 혼란 속에서 국가의 존속을 우선적으로 사고했고, 그런 의미에서 시대의 제약성을 담지한, 르네상스 말기의 인물이었던 것이다.

◈ 참고문헌 ◈

그람시 안토니오 저, 이상훈 역, “현대의 군주”, 󰡔옥중수고 1; 정치편󰡕, 기획출판 거름, 1986.

마이네케 프리드리히, 이광주 역, 󰡔국가 권력의 이념사󰡕, 민음사, 1990.

마키아벨리, 니꼴로, 김영국 역, 󰡔마키아벨리와 군주론󰡕, 서울대 출판부, 1995.

마키아벨리 니꼴로, 강정인·안선재 역, 󰡔로마사 논고󰡕, 한길사 2003.

알뛰세르 루이 저, 김석민 역, 「마키아벨리의 고독」, 󰡔마키아벨리의 고독󰡕, 새길, 1992.

알뛰세르 루이 저, 오덕근·김정한 역, 󰡔마키아벨리의 가면󰡕, 이후, 2001.

루소 장 자크 저, 이환 역, 󰡔사회계약론󰡕, 서울대 출판부, 1999.

Buck, August, Machiavelli. Darmstadt; Wissenschaftliche Buchgesellschaft, 1985.

Cochrane, Eric W., Machiavelli: 1940-1960, in The Journal of Modern History, Vol. 33. 1961.

Geerken, John H., Machiavelli Studies since 1969, in Journal of the history of ideas, Vol. 37. 1976.

Hegel, G. W. F. “Die Verfassung Deutschlands” in Frühe Schriften. Frankfurt am Main: Suhrkamp Verlag, 1986.

Machiavelli, Niccolò. Opere, a cura di Mario Bonfantini, Milano: Riccardo Ricciardi Editore, 1965.

Pocock, J.G.A. The Machiavellian Moment.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75.

The Thames and Hudson Encyclopaedia of the Italian Renaissance, ed. J. R. Hale, Thames and Hudson Ltd. London, 1981

Viroli, Maurizio. Machiavelli,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1998.

==========================================

[교수신문]알튀세르-라캉-들뢰즈 사이를 볼 수 있는 논쟁^^ [2]

선악 이분법으로 동료 학자들을 비난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진보평론> 2008년 가을호에 발표된 홍준기 서울시립대 교수(철학)의 「알튀세르 맑시즘에 관한 새로운 정치· 윤리적 독해의 시도:라깡/들뢰즈, 헤겔/스피노자 논쟁 구도의 맥락에서」는 국내의 알튀세르· 들뢰즈 수용에 이의를 제기한 논쟁적인 글이다. 홍 교수의 논문에 대해 진태원 고려대 교수(철학)가 반박문과 함께 홍 교수의 논문을 간략히 요약했다.

홍준기 교수가 이 글에서 보여주려는 바는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을 것 같다. 첫째는 『자기비판의 요소들』(1974) 이후에 알튀세르는 스피노자주의자라기보다는 오히려 헤겔주의자가 됐으며, 라캉의 정신분석학적 관점과 『일맥상통』(<진보평론> 37호, 288쪽―앞으로 이 글에서 인용할 경우 쪽수만 기입하겠다)하게 주체 개념을 재도입한다. 둘째는 알튀세르에 비해 들뢰즈는 “‘하나의 존재의 모습’, 즉 빈 공간 없는 ‘충만한’ 세계만을 허용하는 세계관을 기준으로 정치적 판단을 내리”고 있으며, 이 때문에 “정치적 오류는 물론 생산적인 학문적 토론을 방해하는 장애물로 기능할 수 있다”(291쪽)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홍 교수의 알튀세르 논의에 관해 몇 가지만 검토해보겠다.

우선 지적할 수 있는 점은 알튀세르가 “점차적으로 스피노자로부터 멀어지고 헤겔 철학에 다가서고 있다”(278쪽)는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홍 교수가 의거하는 텍스트 상의 논거는 두 가지뿐이며, 설득력도 부족하다는 점이다. 하나는 『자기비판의 요소들』에서 “스피노자에게는 헤겔이 마르크스에게 준 것, 곧 모순이 항상 결여돼 있다”(Solitude de Machiavel et autres textes, PUF, 1998, p. 188)고 말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다. “나는 『신학정치론』에서 ‘세 번째 유형의 인식’, 즉 개별적인 동시에 보편적인 대상을 파악하게 하는 가장 높은 형태의 인식에 대한 가장 명백한, 그러나 가장 잘 알려져 있지 않은 해석의 예를 발견했다(나도 인정해야 했듯이 그것은 스피노자에 대한 헤겔적인 해석이었다).”(홍 교수의 글 279쪽에서 재인용)

첫 번째 논거의 경우 홍 교수의 생각과 달리 알튀세르가 스피노자를 포기하고 헤겔의 입장을 대신 택했다는 뜻으로 이해하기는 어렵다.

(1) 알튀세르는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스피노자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 기원도 종말도 없는 이 사상보다 더 유물론적인 것은 없다. 나는 훗날 바로 이 사상에서, 역사와 진리를 목적도 없고 (……) 주체도 없는 (……) 과정이라고 한 나의 명제를 끌어내게 됐다. 왜냐하면 목적을 근원적 원인으로(근원과 목적이 거울에 의해 반사되는 것으로) 파악하기를 거부하는 것, 그것이 바로 유물론적으로 사고하는 것이기 때문이다.”(『미래는 오래 지속된다』, 247쪽) 알튀세르에게 스피노자가 중요하다면 그것은 그가 엄밀한 의미의 유물론적 사상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2) 어떤 유물론일까? 알튀세르는 홍 교수가 준거하는 『자기비판의 요소들』 다음 해에 발표된 「철학에서 유물론자가 된다는 것은 쉬운 일인가?」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나는 사실 맑스주의 변증법의 문제는 유물론의 우위에 대한 변증법의 종속이라는 조건 하에서만 (……) 제기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그[헤겔]는 (……) “변증법을 신비화했다.” 그런데 사실 헤겔의 신비화는 그 자체 에피쿠로스 이후 또는 아마도 그 이전부터 항상 나타났던 유물론(존재가 됐든 주체 또는 의미가 됐든 간에 일체의 기원의 철학과 거리를 둠으로써만 정립될 수 있는) 과 변증법 간의 항상적인 관계를 입증하고 있다.”(『아미엥에서의 주장』, 147쪽―번역은 수정) 알튀세르에게 유물론은 기원(과 목적)의 철학에 대한 거부를 통해서만 정립되며, 이것이 바로 그가 스피노자에게서 발견한 것이다.

알튀세르는 이른바 유고들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유고들의 핵심 주제 중 하나는 이른바 ‘우발적 유물론’ 또는 ‘마주침의 유물론’에 관한 사고다. 그리고 알튀세르에게 이러한 유물론은 “주체(……)의 유물론이 아니라, 지정할 수 없는 목적이 없이 자기 발전의 질서를 지배하는 (주체 없는) 과정의 유물론”(『철학에 대하여』 동문선, 1996, 40쪽)이다. 심지어 그는 한 대목에서는 마르크스의 최종 심급 개념을 재해석하면서 변증법과 우발성을 대립시키고 있다. “마르크스는 『정치경제학 비판 서설』에서, 논리적으로 선행하는 형태들이 역사적으로 선행하는가 여부를 검토하면서, “경우에 따라 다르다 a d e、-pend”고 썼어요. 경우에 따라 다르다, 이것은 우발적인 말이지 변증법적인 말이 아닙니다.”(같은 책, 45쪽―번역은 수정) 따라서 「유물론의 유일한 전통」(1993)이 스피노자와 마키아벨리 두 사람에게 절반씩 할애돼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런데 홍 교수는 어떤 근거로 알튀세르가 “점차적으로 스피노자로부터 멀어지고 헤겔 철학에 다가서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두 번째 논거의 경우에 대해서는 여유가 없으므로 한 마디만 지적해두자. 제 3종의 인식의 문제에서 알튀세르가 보편적 개별성이라는 범주를 가지고 사고하고 있으며, 이 점에서 그는 헤겔의 관점을 채택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것이 그가 스피노자로부터 멀어지고 있다고 단언할 수 있는 근거는 되지 못한다. 그것은 알튀세르가 줄곧 강조해왔던 것처럼 인식의 문제에서 스피노자와 헤겔은 데카르트와 칸트의 초월론적 문제설정에 맞서 공통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점을 다시 한 번 입증해주는 사례일 뿐이다.

논증의 빈곤함도 문제이긴 하지만 이 글의 더 큰 문제점은 단순한 이분법적 논리와 자의적인 재단이 다수 엿보인다는 점이다. 가령 홍 교수는 “교조적인 맑스주의자들이”(251쪽) 자신과 다른 입장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비판했던 오류를 범했던 것”을 준엄하게 꾸짖으면서 “생산적인 학문적 토론”(291쪽)을 위해서는 선/악이라는 이분법에서 벗어나 좀 더 공정하고 관대한 태도를 가질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 대목을 읽고 있노라면 홍 교수는 관대하고 공정한 학자가 아닐까 기대하게 된다.

하지만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바로 다음 대목에서 홍 교수는 “알튀세르와 정신분석을 무관한 것으로 간주하려는 이러한 입장은 알튀세르 이론을 ‘정치편의주의’로 축소시킬 뿐만 아니라, 알튀세르와 같은 기품 있는 철학자를 ‘정치꾼’으로 만드는 오류를 범하고 있”(253쪽)다고 신랄하게 비난하고 있다. 요컨대 “알튀세르와 정신분석을 무관한 것으로 간주하려는 이러한 입장”은 학문보다는 정치편의주의에 몰두하는 정치꾼과 다르지 않다는 것, 다시 말해 생산적인 학문적 토론의 적이라는 것이다. 참으로 관대한 태도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도대체 누가 “알튀세르와 정신분석을 무관한 것으로 간주”하려 했을까. 홍 교수는 그 당사자로 필자를 지목하면서 각주에서 필자의 논문 368쪽을 참조하라고 해놓았다. 문제의 페이지를 참조해보면 독자들은 이러한 전가가 얼마나 엉뚱한 것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홍 교수가 제시한 「라캉과 알튀세르」(김상환ㆍ홍준기 엮음, 『라깡의 재탄생』, 창작과비평, 2002)라는 글에서 필자의 논점 중 하나는 라캉과 알튀세르 사이의 관계를 일방적인 적용이나 차용의 문제로 보아서는 안되며 “알튀세르의 이니셔티브”를 존중해야 하고 “라캉과 알튀세르의 관계는 일차적으로 알튀세르의 이론작업의 맥락 내에서 평가돼야”(앞의 책, 358쪽) 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관점에서 필자는 알튀세르의 ‘과잉결정(surd’etermination)’ 개념은 프로이트의 ‘다중결정(Uberdeterminierung)’을 “직접 적용한 것이 아니라, 이 개념[다중결정]에 새로운 개념 규정들을 보태서 이 개념을 대체하는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같은 책, 370쪽)낸 것이라고 주장한 것이고, 또한 “알튀세르는 상상적 왜곡의 측면에서 라캉의 문제설정, 라캉의 개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지만 이러한 “활용을 지휘하고 있는 것은 역시 스피노자-마르크스적인 문제설정”(같은 책, 385쪽)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어떤 식으로 이해하든 이는 알튀세르가 라캉과 무관하다거나 정신분석과 무관하다는 뜻으로 읽을 수는 없을 것이다.

또한 그는 마슈레와 들뢰즈에 대해 “다만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은 헤겔 철학의 대안으로서 특히 초기에 스피노자 철학을 원용한 알튀세르에 의해 영향 받은 알튀세르의 제자들(특히 마슈레) 그리고 들뢰즈의 영향으로 ‘모순’이라는 범주를 불필요하거나 ‘부차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국내의 프랑스 철학 연구자들 사이에 생겨나는 경향이 있다”(257쪽)고 일갈하면서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과연 스피노자 철학은 ‘무조건 좋은’ 철학이고 헤겔 철학은 ‘무조건’ 나쁜 철학인가?”(같은 곳) 필자로서는 이런 식의 발상이 어떻게 가능한지 잘 알 수가 없다. 마슈레의 『헤겔 또는 스피노자』는 어떤 의미에서도 “무조건 좋은” 스피노자와 “무조건 나쁜” 헤겔을 구별하려는 책으로 읽을 수는 없다. 제목에서 쓰이는 “또는”이라는 단어(불어로는 ou 영어로 하면 or)는 마슈레 자신이 설명하듯이 일차적으로는 양자택일이 아니라 동일성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곧 스피노자와 헤겔은 특히 인식에 대한 법적ㆍ초월론적 문제설정을 비판하는 데서 공통적이며, 유한과 무한 사이의 단순한 대립을 넘어서려고 한다는 점에서도 공통적이다. 두 사람 사이의 차이 및 상이한 입장은 이러한 공통성 위에서 비로소 식별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단순한 양자택일을 좋아하는 홍 교수의 눈에는 이것이 “무조건 좋은” 스피노자와 “무조건 나쁜” 헤겔을 선택해야 하는 문제로 보이는 것 같다.

그러니 도대체 선/악 이분법에 사로잡혀 동료 학자들을 정치꾼과 다를 바 없는 사람으로 만드는 이는 누구인가.

http://moontak.cafe24.com/143314

Advertisements

Leave a Reply

Fill in your details below or click an icon to log in:

WordPress.com Log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WordPress.com account. Log Out / Change )

Twitter picture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Twitter account. Log Out / Change )

Facebook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Facebook account. Log Out / Change )

Google+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Google+ account. Log Out / Change )

Connecting to %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