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대표제 – 근대중국의 민주유산, 유용태

직업대표제 근대중국의 민주유산

유용태 지음 |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 2011년 08월 10일 출간

직업대표제 근대중국의 민주유산

책소개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역사교육과 교수 유용태의 『직업대표제, 근대중국의 민주유산』. 근대중국이 민의기관을 구성하는 방안인 ‘직업대표제’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정당 중심의 구역대표제를 당연하게 여기는 통념에 가려서 잊혀져온 직업대표제의 경험과 유산을 재현하면서 그를 통해 20세기 중국의 민주주의 모색의 특징을 살펴본다.

저자소개

저자 : 유용태

저자 유용태(柳鏞泰)는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역사교육과. 서울대학교 역사교육과와 대학원 동양사학과를 나와 연세대학교에서 중국현대사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중국 난징대학 박사후연구원과 미국 프린스턴대학 방문연구원을 지냈다. 현재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역사교육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지식청년과 농민사회의 혁명: 1920년대 중국 중남부 3성의 비교연구>, <환호 속의 경종: 동아시아 역사인식과 역사교육의 성찰>, <함께 읽는 동아시아 근현대사>1·2(공저), <중국의 동북공정과 중화주의>(공저), 역서로 <전원시와 광시곡> 등이 있다.

목차

머리말 /

서론: 근대 중국의 민의기관을 보는 시각과 방법
‘진정한 민의기관’의 꿈
연구의 시각과 방법
기존 연구의 비판적 검토

제1부 각계연합에서 직업대표제로

1| 직업의 인식과 직업주의의 대두
직업의 인식과 분류: 노동주의
직업주의의 형성요인과 논리
직업주의의 확립과 정치적 적용

2| 각계연합과 각계민의의 형성
결사구국의 사회심리: 직업단체를 향하여
직업단체의 조직계통과 광역연합
각계연합의 탄생과 발전
각계연합의 민의기관 모색

3| 국민회의 소집론의 형성
의회제혁신론과 직업대표제론의 여론화
직업대표제 국민회의 소집론의 형성
직업대표제의 법제화 시도
민의기관 구성주체의 범위와 비직업단체의 배제

4| 혁명정당과 국민회의운동
중국공산당의 국민회의 소집론
국민당 개조와 쑨원의 국민혁명론
북상선언과 쑨원의 국민회의 구상
국민회의촉성회 전국대표대회

5| 국민회의운동의 재기와 분기
530운동 중의 국민외교운동
관세자주운동과 국민회의운동의 재기
광둥통일 후 광둥의 국민회의운동
북벌 이후 후난의 성민회의운동

제2부 직업대표제의 지속과 변화

1| 직업단체와 국민당의 훈정정치
직업단체의 일반적 실태
직업단체에 대한 국민당의 정책
직업단체의 참정 유형
공산당의 대응과 경쟁

2| 전국적 직업선거와 난징국민회의
난징정부 초기 각계의 국민회의 소집 여론
국민회의 선거를 위한 직업단체의 정비
국민회의 선거: 최초의 전국적 직업선거
국민회의의 주요 결의안과 제안

3| 국민회의에서 국민참정회로
민간사회의 항일민의와 통일정부 수립 요구
민간단체의 국민구국회의 소집 요구
국민당의 국민참정회 구상
국민대회의 연기와 국민참정회의 소집

4| 국민참정회와 전시민주주의
참정회의 인적 구성
참정회의 회의운영
전시민주주의의 조건과 논리
전시민주주의 촉진활동

5| 정치협상회의와 건국민의
국민참정회에서 정치협상회의로
직업단체의 동향과 각계민의의 쟁탈
국민대회를 넘어 신정치협상회의로

6| 각계인민대표회의와 그 이후
각계인민대표회의의 소집
각계인민대표회의의 대표 구성
헌정 실시와 직업대표제의 포기
개혁ㆍ개방 이후 정치개혁과 직업대표제의 부활

결론: 직업단체, 정당 그리고 대의활동

참고문헌
찾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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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으로

직업대표제는 각종 직업의 분화가 진행되고 자율적 사회단체들이 발달한 산업사회 조건에서 추구되는 제도로 알려져 있고 실제로 1920~1930년대 유럽 일부 국가에서 제도화되었다. 그런 점에서 아직 그런 조건을 갖추지 못했던 20세기 전반의 반식민지 중국에서 직업대표제가 강렬하게 선호된 것은 특이한 현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그것은 동아시아에서도 중국만의 독특한 현상이다. (p.6)

1920년부터 수용된 길드사회주의의 직업관은 관료ㆍ군인ㆍ의원을 직업자 범주에서 제외한 점에서 무정부주의적 직업관과 일치한다. 가령 「동방잡지」의 양뚜안류(楊端六)와 「해방과 개조」의 장둥쑨(張東蓀)은 의원이 군벌ㆍ관료에게 쉽게 매수되거나 스스로 민의를 배반하는 까닭은 ‘무직업자(無職業者)’가 당선되었기 때문이라고 보았으며, 각급 의회 의원과 총통 등은 모두 ‘직(職)’이지 ‘업(業)’이 아니라는 인식에 근거하여 군인ㆍ관료ㆍ의원을 ‘직업자’의 범주에서 제외하였다.(p.30)

각계 사회단체들은 신해혁명 직전부터 각계연합을 결성하여 합군구국을 위한 민의기관건립운동을 전개하였다. 그것은 일시적 집회와 시위, 지속적 연합체, 사안별 대표회의의 세 가지 형태로 나타났다. 이것은 비록 지역적 범위의 현상이었지만 이윽고 5ㆍ4운동기에 전국적 범위로 확대ㆍ발전되고 그 후에도 사회관행으로 정착되어 지속되었다. 이에 대한 이해는 따라서 신해혁명과 5ㆍ4운동을 상호 연관된 하나의 과정으로 파악하는 데 필수적 의미를 갖는다. (p.89)

직업대표제 방식의 국민대회 소집론자들 사이에 현직관료와 경찰 및 군인, 그리고 정당을 배제하자는 것에는 대체로 이의가 없었으나 성의회와 학생회에 관해서는 이견이 있었다. 성의회는 국회처럼 제한선거에 의해 구성되었기 때문에 신사나 토호의 회의에 불과하다는 인식이 진보적 신청년 사이에 확산되어갔다. 학생회의 포함 여부에 대해서는 보수적 성향의 법단들이 반대한 반면 비교적 진보적인 논자들이나 법단과 경쟁하는 공단들은 5ㆍ4운동을 통해 드러난 학생층의 역할과 혁신적 경향을 인정하고 학생회를 참여시키고자 했다. (p.117)

사회단체의 입법참여와 거의 동시에 이루어진 홍콩 민주화 과정에서 직업대표제가 도입된 것은 특별한 관심을 끈다. 랴오가이룽의 전인대 개혁안은 1981년 3월 홍콩의 유력잡지 「칠십년대(七十年代)」에 전재되었는데, 공교롭게도 그 직후 홍콩의 민의기관 선거에 직업대표제가 도입되었다.(p.411)

출판사 서평

직업대표제를 통해 본 20세기 중국의 민주주의 모색
이 책은 민의기관을 구성하는 방안의 하나인 직업대표제에 관한 연구서이다. 직업대표제의 주체인 직업단체란 원래 같은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한 자율적 사회단체로서 정권장악을 목표로 하는 정당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그럼에도 20세기 중국의 직업단체는 직업상의 이해를 도모하는 한편 스스로 자신의 대표를 선출하여 민의기관을 구성해야 비로소 진정한 민의를 대변할 수 있다고 믿고 이를 실천하였다. 이 책에서는 정당 중심의 구역대표제를 당연시하는 통념에 가려진 그 경험과 유산을 재현하고 이를 통해 중국의 민주주의 모색의 특징과 이것이 개혁·개방 이후 정치개혁에 시사하는 바를 음미해본다.

신해혁명 100주년,
직업대표제를 통해 중국의 민주주의의 모색과
그 유산의 현대적 의미를 재해석한다

‘직업대표제’를 통해 관찰하는 근대 중국의 정치사 
유용태 교수는 근대 중국의 정치사를 다당경쟁의 의회정치를 추구하는 세력과 일당지배의 당치체제를 추구하는 세력의 대결 양상으로 파악한다. 농민협회와 각종 직업단체는 대표를 선출하여 향-현-성의 민의기관을 세우고 그 결정에 따라 각급 정부를 세워서 대안적 정치체제로 삼으려 했음에 주목하면서, 직업대표제에 의한 민의기관 설립 노력과 그 전개를 1부와 2부로 나누어 상세하게 다룬다. 그리고 이것이 개혁ㆍ개방시기 중국의 민주화와 탈냉전기 동아시아 민주주의의 진전에 시사하는 바를 살펴본다.

수많은 사료 발굴로 섬세하게 복원한 현대 중국 정치사의 일면들
청말 단체 결성이 시작되는 시기부터 국민정부 수립까지의 시기를 다루는 제1부 ‘각계연합에서 직업대표제로’에서는 ‘각계(各界)’가 형성되고 각계단체의 연합에 의해 각계민의(各界民意)가 형성되는 과정을 분석하여 정당이 부재한 조건에서 누가 어떻게 민의결집 역할을 수행하였는지를 밝힌다. 그리고 그 연장선에서 5ㆍ4운동기에 제기된 국민회의 소집론의 구조와 특징, 국민혁명시기 북벌과 결합된 국민회의운동의 전개와 지역 차원의 제도화 시도를 검토한다.

직업대표제의 민주적 경험은 어떻게 계승되고 이어지는가
이 책의 제2부 ‘직업대표제의 지속과 변화’에서는 난징국민정부 성립 이후 국민당 일당체제(훈정체제)가 성립, 변화, 붕괴하는 시기를 검토한다. 유용태 교수는 1931년 국민회의 소집의 의미와 역할, 그 경험이 국민참정회 소집으로 이어지는 맥락을 제시하면서 국민참정회를 바탕으로 한 전시민주주의와 그 속에서 훈정체제를 비판하는 광의의 민주파가 국민당 안팎으로 형성되어 여러 당파, 무당파, 각계단체와 연대하는 논리와 계기를 밝힌다. 그리고 그 연대의 경험이 정치협상회의와 연합정부 수립으로 이어지면서 국민당 훈정체제가 종식되는 과정을 분석한다. 나아가 그 후 공산당 중심의 연합정부가 성립되어 존속한 시기(1949~1954)와 공산당 일당체제를 개혁하기 위한 1980년대 이래의 시기까지 포함하여 검토함으로써 민국시기의 경험과 유산의 의미를 더욱 분명히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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