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키아벨리- 전쟁의 기술 “전술론”

[명저 새로 읽기] 마키아벨리 <전쟁의 기술>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시민, 곧 전사가 자유롭다

ㆍ마키아벨리 <전쟁의 기술>

니콜로 마키아벨리(1469~1527)의 주요 저서 중 하나인 <전쟁의 기술>(원제 Arte della Guerra)이 올해 5월 처음 우리말로 완역되었다. 이영남이 옮긴 <마키아벨리의 전술론>(스카이)이 그것이다(비전문적 번역의 문제점들이 여전하긴 하지만). 지금까지 이 저작의 번역이라면 1987년 범우사에서 <군주론>과 묶어 일부만을 간행한 것이 전부였다. 언론이든 독자든 이 책이 한국어 초역이라는 사실을 거의 몰랐던 것 같다. 마키아벨리라는 이름의 높은 지명도에도 불구하고, 어떤 매체도 이 역본의 간행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넘어가버렸기 때문이다. 추측하건대, 매년 하나씩은 새로 간행되고 있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 언론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유가 아니었나 싶다.

1521년 출간된 <전쟁의 기술>은 마키아벨리의 주요 저서 가운데 그의 생존 시 간행된 유일한 작품이다. 마키아벨리는 이미 <군주론>과 <리비우스의 로마사 첫 10권에 관한 논고> 등에서 무력 혹은 군대와 정치의 밀접한 관계에 대해 거듭해서 강조한 바 있는데, 그러한 관점은 이 <전쟁의 기술>에서 더욱 상세히 조명되고 있다.

현대 민주주의 체제하의 사람이라면 대개 군과 정치의 관련을 싫어할 것이다. 군대를 폭압적 정치의 상징쯤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독재자들은 예외없이 군대를 자신의 수단으로 삼게 마련이고, 우리에게도 그러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마키아벨리가 군대와 정치를 결합하려 한 이유는 이런 것과는 전혀 다르다. 고전고대의 복원이라는 르네상스의 문화적 조류 속에서, 마키아벨리는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연면히 전해져온 고전 공화주의자의 흐름을 이어받았다.

공화주의는 시민이 곧 전사(戰士)여야 한다는 것을 기본 강령으로 삼았다. 스스로가 무장하여 스스로를 지킬 수 있을 때, 비로소 자신이 주체가 되는 진정한 자유가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이 자유가 곧, 최근 다시 점화되고 있는 공화주의 대(對) 자유주의 논쟁 속에서 전자가 지향하는 “적극적 자유”이다.

신자유주의의 뿌리를 이루는 자유주의 정치철학이 간섭만 받지 않으면 자유롭다고 주장하는 데 반해, 공화주의자들은 노예가 주인의 간섭을 받지 않는 행운을 누린다고 해서 그것이 자유로운 삶인가를 되물으면서, 스스로가 경제적으로 독립하고 외적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진정한 주체로서의 자유를 누리는 것이라고 항변한다.

<전쟁의 기술>의 요점은 고대의 시민병 제도에 기초한 군사적 개념과 강령들을 현대의 군사조직 재편에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당시 이탈리아에서는 용병제도가 이미 확고한 위치를 점하고 있었다. 피렌체든 베네치아든 주요 도시국가들은 전투 시 전적으로 용병에 의존했다.

하지만 모든 용병대가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속성상 신속한 승리보다는 전투를 질질 끌며 돈만 받아 챙기려는 경우도 결코 드물지 않았다.

16세기 초, 두 차례에 걸친 피렌체의 피사 공략 실패도 다름 아닌 이런 유의 용병대 때문이었다는 것이 특히 마키아벨리의 생각이었다. 고전 공화주의자로서의 전사-시민 개념을 갖고 있던 그가 이러한 실패를 접했을 때 용병제에 대한 회의는 더 심해졌을 것이다.

마키아벨리가 공화정부를 설득하여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던 시민병 제도를 피렌체에 부활시킨 것도 바로 이러한 신념 때문이었다.

<전쟁의 기술> 초역이 아무런 관심도 받지 못하고 지나가버렸다는 사실은 독자들이 그것에 담겨 있는 공화주의적 자유의 고전적 의미를 다시 한번 음미할 기회를 놓쳐버렸다는 점에서 매우 유감스럽다.

작금의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안으로 운위되는 공화주의의 핵심적 강령이 피렌체의 신사 코지모 루첼라이와 용병대장 파브리치오 콜론나의 진지한 대화 속에서 어떤 식으로 펼쳐져 나가는가를 이 책에서 확인하는 것은 지적인 독자에게 분명히 흥미로운 일일 것이다.

“민주공화국”을 외치며 청와대 앞에서 벌였던 촛불시위가 어떤 의미에서는 곧 우리의 “마키아벨리언 모멘트” 중 하나였다는 것도, 우리의 “민주” 과잉을 “공화”로 균형 잡아야 한다는 한 우익인사의 발언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것인가도 이 책을 읽음으로써 재확인할 수 있다.

<곽차섭 | 부산대 교수·사학과>

경향신문 입력 : 2011-11-18 20:04:08ㅣ수정 : 2011-11-18 20: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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