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적 자유주의와 사민주의에 대한 비판, 남종석

사민주의, 정치계급으로 재탄생!
중도좌파 정책 비판 ①

By   /   2012년 9월 27일, 3:27 PM  2개의 댓글

* 남종석씨가 기든스의 [노동의 미래]를 지렛대로 하여 소위 진보적 자유주의와 사민주의에 대한 비판 글을 보내왔다. 상당히 긴 글이다. 그래서 3번에 나누어 게재한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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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진영을 삼켜버린 ‘권력에의 의지’

언젠가 나는 레디앙을 통해 진보적 자유주의를 비판한 바가 있다(자유주의자는 망각을 먹고 사는가). 오늘날 진보적 자유주의는 신자유주의의 새로운 얼굴이라는 것이 이 비판의 요지였다. 앞의 글에서 나는 진보적 자유주의자들은 사민주의를 적극적으로 수용함으로써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가 가능하다고 주장하지만 사실 그들이 받아들인 사민주의는 이미 ‘신자유주의로 전향한 사민주의’라는 것을 분명히 했다.

레디앙 독자들도 알겠지만 내가 굳이 최태욱 선생 등의 공저인 [자유주의는 진보적일 수 있는가]를 비판한 이유는 민주당을 지지하는 자유주의자들과의 구별정립만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소위 ‘진보적 자유주의’는 진보진영 내부에서 하나의 목소리로 성장해 있을 뿐만 아니라 이들이 근본적으로 의도하는 바는 ‘사회주의, 운동권’을 진보진영 내부에서 주변화 시키는 것이다. 진보적 자유주의는 민중운동을 자유주의에 종속시키려는 주요한 흐름이라 판단해서 비판한 것이다.

진보적 자유주의는 ‘책임정치’를 강조한다. 이들은 진보진영도 권력에 참여하여 자신들의 정책을 실현함으로써 국민에게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제대로 된 정치의 주체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민중운동이 제도권 밖에 남아 있거나 고작 몇 명의 의원으로 비판만 하는 것은 신념윤리에 얽매인 퇴행적 모습이라는 것이다. 진보적 자유주의자들에게는 ‘의회’ 만이 책임정치의 공간이며 그 외의 모든 장들은 의회 정치의 실현을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민중운동을 자유주의에 종속시키려는 일련의 시도는 비단 민주당으로 들어간 진보진영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통진당의 건설과정 또한 이 흐름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통진당 구당권파가 국참당과의 통합을 추진했던 배경에는 민주당과의 연정구성과 집권경험을 축적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었다. 그 과정에서 이들은 민주노동당의 강령을 후퇴시켰고, 자유주의자들의 의제를 기꺼이 수용했으며, 민주당의 어젠다에 대해 반대하지 않았다.

통합연대도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통합연대를 하나의 흐름으로 판단하는 것은 무리가 있지만 통합연대를 주도한 한 축은 분명 ‘책임정치’를 가장한 진보진영의 자유주의화를 주도한 세력이었다. 권력을 잡아야만 진보를 실현할 수 있다는 그 ‘과도한 책임의식’은 혁신이라는 명목으로 주류 문화의 가치를 수용하고, 자유주의자들과의 연대에 목을 매며 진보의 퇴행에 앞장섰다.

물론 통진당의 파국에서 보듯이 ‘진보진영의 주류화’는 꼴사나운 형상으로 끝을 맺고 있다. 권력에의 의지로 똘똘 뭉친 책임정치의 주체들은, 상호간의 이전투구 속에 스스로 몰락해 갔으며 시계 제로인 상태에서 새로운 출발을 모색해야 하는 처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물론 이는 진보진영 전체의 상황이기도 하다.

권력을 잡아야만 책임정치를 실현할 수 있다는 논리는 비단 한국의 진보주의자들에게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1980년대 좌파의 몰락 이후 새롭게 등장한 사민주의는 거의 모두 ‘권력장악과 책임정치’의 논리를 정당화 한다. 미국 좌파의 꿈을 단숨에 날려버린 클린턴의 배신과 오바마의 부시화, 영국 신노동당의 노선, 슈레더와 독일 녹색당의 전환은 모두 ‘책임윤리’ 속에 실현된 일련의 자유주의화였던 것이다.

영국의 저명한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는 [노동의 미래](을유문화사, 2009)에서 진보적 자유주의가 사민주의의 새로운 얼굴이라는 것을 공개적으로 선언한다.(67쪽) [제 3의 길]을 통해 블레어의 스승임을 확인시켜준 그는, [노동의 미래]에서 신노동당 집권 2기에 필요한 정책 방향을 제시한다. 여기서 그는 사민주의는 왜 미국 민주당식 진보적 자유주의를 수용할 수밖에 없는가를 솔직 담백하게 밝힌다.

물론 [노동의 미래]를 살펴보는 것은 사민주의의 현대적 변화만을 보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은 신노동당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가운데 ‘신자유주의의 새로운 통치성이란 무엇인가’를 요약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노동의 미래]는 정치, 경제, 행정, 복지 전 분야에 걸친 신노동당의 정책 방향을 제시함으로써 신자유주의적 통치성은 무엇을 지향하는가를 뚜렷이 보여주는 것이다. [노동의 미래]를 살펴보는 것은, ‘오늘날 중도좌파가 어디에 서 있는가’를 확인하는 작업이다.

이런 점에서 [노동의 미래]는 노동자들의 미래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 이 책의 원제목은 [신노동당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이다. 한글 제목은 번역자나 출판사에서 상업적 목적을 위해 변형해서 붙인 듯하다. [노동의 미래]에 나타난 중도좌파의 정책적 지향점은 한국의 진보적 자유주의자들이 추구하는 바가 무엇인가를 보다 분명히 알 수 있도록 한다. 나는 이 글에서 한국의 진보적 자유주의자들이 추구하는 것은 경제적으로 신자유주의, 정치적으로 ‘정치계급의 일자리 안정화’임을 보이고자 한다.

신노동당의 새로운 이데올로기 : ‘진보적 자유주의’

[노동의 미래]는 신노동당에 대한 비판을 재비판 하면서 시작한다. 기든스에 따르면 좌파들은 편협함으로 인해 신노동당의 성과를 제대로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기억상실증으로 인해 역사를 망각한다고 비판한다. 좌파들이 편협하다는 것은, 비단 영국 노동당만이 아니라 유럽 사민주의 정당 대부분이 근본적으로 신노동당과 다르지 않게 변하고 있는데 ‘왜 영국 노동당만 그렇다고 시비거냐’는 것이다.(23쪽)

맞는 말이다. 다들 변했다. 독일 사민당은 ‘기업의 자율적 결정’을 옹호한다고 선언했고, 네덜란드는 노동유연성을 통해 노동의 양보를 이끌어 냈다. 조스팽은 노동시간을 줄이는 데 성공했지만 이것은 노동일을 줄인 것이 아니라 노동년을 줄인 것이다. 노동의 신축성을 압도적으로 높이면서 실행된 노동시간 줄이기인 셈이다.(25쪽) 노동년과 노동일도 구분하지 못하고 노동시간 줄이는 게 진보라고 떠들고 있는 ‘진보신당의 논객들’이 새겨들을 이야기다.

기든스는 좌파의 지적 게으름도 지적한다. 노동비용을 줄여야만 실업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게 좌파의 ‘지적 게으름’이다. 1500만명에 달하는 EU의 실업자를 줄이기 위해서는 저임금화 말고 다른 대안이 없다.

저임금화를 통한 실업해소, 이것이야말로 클린턴식 신자유주의 정책의 핵심이다. 기든스는 클린턴식 경제 정책을 EU가 도입해야만 현재의 정체상태를 벗어난다고 주장한다.(30쪽) 미국 연준이 EU 중앙은행보다 진보적인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기든스의 메시지는 명확하다. 경제체제로서 사회주의는 실패했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불평만 하고 있지 ‘대안을 제시하지 않는다.’(33쪽) 대안을 제시하고 권력을 장악하는 것이 책임 있는 세력이다. 이 문제제기를 한국 정치 상황에 연결시켜 보자. 민주당과의 연정을 주장하는 한국의 진보적 자유주의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운동권들은 ‘신념윤리’만 내세우지 어떤 ‘책임정치’를 실현하는가?” 책임정치를 실현하려면 권력에 참여하고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다면 권력을 어떻게 잡을 것인가? 답도 간단하다. 중도파로의 전향이다. 그는 국민들의 의식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국이든 영국이든 대부분의 국민들은 자신들을 중도적이라고 본다. 미국은 42%가, 영국은 50%가 스스로를 중도라고 한다.(36쪽) 이들 표를 잡기 위해 중도로 전환하는 것 말고 무슨 대안이 있는가? 대중의 요구에 민감하게 반응하라! 대중은 중도다. 좌파도 중도로 구조조정 하지 않고 무슨 집권을 하겠다는 것인가?

중도를 장악하기 위해서는 미디어를 장악해야 한다. 대중의 선호를 만들 수 있는 수단은 이미지 정치 말고 없기 때문이다.

대중을 장악하기 위해서는 정파적 이해관계, 특정한 계급적 입장만이 아니라 중도 세력 전체를 아우르는 새로운 대안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신노동당은 ‘분파주의적 이해관계’를 벗어나 국민대중의 지지를 받아야 한다.(66족) 여기서 분파주의적 이해관계란 다름 아니라 노동자계급의 이해관계이다.

신노동당의 새로운 이데올로기는 미국의 신민주당 노선인 진보적 자유주의다. 루즈벨트 이후 미국 민주당의 노선은 케인즈주의적 관리국가 체제의 유지였다. 클린턴은 이를 효율적인 신자유주의 국가체제로 전환시킨 민주당 대통령이었다. 기든스는 신노동당은 미국 민주당의 새로운 분파인 ‘민주주의 리더십 위원회’(이 책에서는 ‘민주주의 리더십 회의’로 번역되어 있다.)의 이데올로기를 따라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부분은 그대로 인용하겠다.

“주류 정당이 되기로 결심한 것; 세금과 지출에서 후퇴하는 것; 기회, 책임과 커뮤니티를 강조하는 것; 내주기보다 끌어올리는 것, 즉 복지에서 개인 책임을 강조하는 것; 결과의 평등이 아니라 기회의 평등을 강조할 것;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세금 감면; 구체적인 대상을 갖는 반빈곤 정책; 범죄와 처벌에 대한 강력한 대처”(71쪽)

기든스는 신민주당의 이데올로기야말로 새로운 사민주의가 지향해야할 지표라고 주장한다. 집권을 위한 중도전략으로서 더할 나위 없이 필요한 과제라는 것이다. 여기서 핵심이 ‘주류정당이 되기 위한 자기선언’ 이라는 것을 확인하자. 이 관점에서는 권력을 잡지 못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 전제되어 있다. 1980년대 후반 영국 노동당에서 좌파를 척결시킨 논리가 바로 ‘권력 장악을 위한 것’이었음을 우리는 너무도 잘 안다.

신노동당의 정책방향이 ‘기회의 균등’이라는 것도 주목하자.(80쪽) 이는 독일 녹색당도 똑같이 강조하는 것이다. 기회의 균등은 재분배를 강조하는 결과의 평등에 대한 대안이다. 우리는 이것이 자유주의자들이 말하는 평등이라는 사실도 너무나 잘 안다. 누구에게나 동등한 기회를 주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개인이 지는 것이다.

기회의 균등에 대한 강조는 자연스럽게 ‘교육에 대한 강조’로 귀결된다.(83쪽) 오늘날 모든 사민주의자들은 교육의 역할을 강조한다. 지식-정보 사회에서 교육을 통한 스스로의 인적 자원을 길러야만 능력 있는 시민이 되는 것이다. 교육은 블레어가 나팔을 불었던 분야이다. 오바마가 한국 교육을 칭찬하며 떠들고 있는 것도 이 부분이다. 룰라가 빈민가족들에게 공적 부조를 제공하는 조건으로 내세운 ‘아이들 학교 출석’도 이런 논리의 연장이다.

기회균등과 교육의 강조는 국가는 개인들에게 기회균등만 제공하고 개인의 삶의 문제는 개인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자유주의적 가치를 재확인 하는 것이다.(79쪽) 신노동당이 내세우는 새로운 사민주의는 집권을 위해 자유주의를 수용한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한국의 진보적 자유주의자들이 서구 사민주의를 수용하고자 했을 때 그들의 표준적 준거가 된 것이 바로 자유주의로 전향한 서구 사민주의였던 것이다.

언젠가 미국의 생태 마르크스주의자이자 [신좌파 평론] 편집위원이기도 한 마이크 데이비스는 [제국에 반대하고 야만인을 옹호하다]에서, 기든스가 인용하고 있는 ‘민주주의 리더십 위원회’를 미국 민주당 내부에서 진보적인 것에 대해서는 무엇이든 반대할 준비가 되어 있는 공화당의 트로이목마라고 했다.

미국 민주당 내부의 가장 반동적인 분파들이 모여 있는 의원단 회의가 ‘민주주의 리더십 위원회’라는 것이다. 이쯤 되면 우리는 기든스가 옹호하는 신노동당의 지향점이 어디인지 잘 알 수 있다. 원래 미국 민주당이 중도좌파인데 민주주의 리더십 위원회는 더 우파 지향성을 갖는다는 점이다.

기든스의 주장에는 솔직함이 있다.

경제적 측면에서도 기든스의 주장은 간단하다. 신노동당 정권은 과세의 신화에 빠져서는 안 되며, 기업 활동을 더 촉진시키기 위해 세금 감면을 단행해야 한다.(82쪽) 재정정책은 근본적으로 균형재정을 유지해야 하며 이를 위해 지출의 구조를 개조해야 한다.(42쪽) 지출구조 변화의 핵심적인 요소는 복지의 개혁이다. 복지는 특정한 타켓과 지역을 대상으로 하여 구체적인 성과를 내야 한다.(44쪽) 노동시장은 유연해야 하며, 시장 상황에 신축적으로 대응할 수 있어야 일자리가 확대될 수 있다.(49쪽)

우리에게 익숙한 개념으로 다시 정리하면 이렇다. 기업 이윤을 보장하기 위해 세금을 감면해야 하고, 정부는 긴축재정을 단행해야 한다. 복지는 자조 능력이 부족한 잔여 집단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노동조합에 토대를 둔 경직된 노동시장은 경쟁력이 없으며 조직 노동의 이익만 대변할 뿐 신규 일자리를 만들 수 없다. 비정규직 저임금화가 현재의 실업률을 낮추는 효과적인 수단이다.

우리는 기든스의 주장을 간단히 기각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의 주장에는 솔직함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그는 신노동당이 중도파로 전향한 것은 권력을 잡기 위한 것임을 분명히 한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계급적 이해관계’가 아니라 ‘보편적 이해관계’를 표현한 것이다. 더불어 실업을 줄이기 위해서는 ‘저임금’이 필요하며, 개인 책임이 복지보다 더 중요하다고 여긴다. 이것이 그가 공개적으로 선언하는 ‘진보적 자유주의’이다.

한국의 진보적 자유주의자들은 노동의 신축성을 축복하고, 금융적 축적체제를 승인하며, 균형재정의 원칙에 충직하다. 한은 독립을 완강하게 주장하는 것은 인플레이션 관리를 최고의 경제정책으로 본다는 점을 시사한다. 국가 경영의 최고 목표를 행정효율성에 두겠다는 사고도 변함이 없다. 간단하게 말해 기든스가 신노동당의 미래로 선언한 내용 중 어떤 것에 대해서도 한국의 진보적 자유주의자들은 반대하지 않는다.

기든스는 자신의 지향점이 친시장 노선임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는 재정 긴축을 위해서는 세금이 감면되어야 하며 보편적 복지는 ‘당연히 포기되어야’ 한다고 선언한다. 일자리를 늘리려면 저임금 직종을 확대하는 수밖에 없다. 다만 최저임금을 높여 노동층이 극빈자로 전락하는 것을 막고자 하며 최저임금이 높아져야만 복지의존층을 노동시장으로 유인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한국의 진보주의자들은 신자유주의 질서를 유지하며 보편적 복지도 공급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영미식 경제체제(금융화와 노동신축성)와 스웨덴식 복지체제(보편적 복지)가 공존할 수 있다고 용감하게 주장한다. 그래서 재벌해체와 같은 경제민주화도 주장하고 무상복지도 할 수 있다고 한다. 노동의 실질임금도 상승시키고, 복지도 확대하며, 균형재정도 달성하고 주식시장도 안정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정도쯤 되면 한국 진보주의자들은, 그들의 말대로만 되면, 만능엔터테이너임을 부정할 수 없겠다. 우리는 한국의 진보적 자유주의자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은 잘 안다. 그들은 양극화로 인해 고통 받는 인민들을 동원하기 위해 보편적 복지를 말하며 실질적으로는 신자유주의 체제를 더 강화할 것이다. 만약 한국 진보주의자들이 진짜 자신들의 정책을 실현하고자 한다면 이는 한국 사회에 파국만을 낳을 것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 체제를 수용하면서 보편적 복지를 추진한다면 그것은 필연적으로 그리스와 같이 파산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스는 평가절하를 통해 시장 경쟁력을 상승시키지 못하는 상황에서 재정적자가 유지됨으로써 정부파산으로 나아간 대표적 사례다. 스페인도 마찬가지다. 경쟁력 개선 없이 지출만 늘인 결과이다. 한국 진보주의자들이 그들의 약속대로 한다면 정부가 더 빨리 파산할 것이다.

차라리 기든스처럼 솔직한 것이 미덕이다. 우리는 집권을 목표로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이념적으로 중도가 되어야 한다. 중도가 된다는 것은 자유주의화 된다는 것이다. 자유주의는 개인 책임을 강조한다.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서는 저임금화가 필요하다. 재정 적자를 줄이기 위해서는 복지의 축소도 필요하다. 복지는 최빈층을 대상으로 제공되어야 한다. 정말 깔끔하지 않은가?

나는 한국의 진보주의자들이 복지 포퓰리즘을 실행함으로써 국가 파산의 길로 나아가기보다 노무현식 인민주의로 퇴행할 것이라 확신한다. 왼쪽 깜박이 켜고 오른쪽으로 움직이는 마술을 다시 반복할 것이라는 점이다. 이들과 연정을 꿈꾸는 자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나는 그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계속>

http://www.redian.org/archive/42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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