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사상의 흐름-근대를 중심으로 정치사상의 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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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조를 중심으로 본 서양 사상

구조주의 – 어떤 사물의 의미는 개별로서가 아니라 전체 체계 안에서 다른 사물들과의 관계에 따라 규정된다는 인식을 전제로 하여, 개인의 행위나 인식 등을 궁극적으로 규정하는 총체적인 구조와 체계에 대한 탐구를 지향한 현대 철학 사상의 한 경향이다

모더니즘 –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사고는 흔히 현대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주관과 감정을 최대한 배제하고 냉철한 이성과 과학적인 관점을 취하는 것이 곧 현대성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상식과는 달리 현대성은 사실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다.

낡은 틀을 부수는 데 앞장서는 것은 대개 사회 이론이나 고학보다 문학이나 예술이다. 중세의 틀을 해체한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기폭제가 된 인물도 단테와 페트라르카 같은 문학기들 이었듯이 모더니즘돠 철학과 과학보다 예술에서 먼저 시작되었다.

사실주의를 반대하면서 탄생한 인상주의가 모더니즘의 선봉이었다. 우리로 치면 국전에 해당하는 19세기 말 프랑스의 보수적인 살롱전은 시대의 추세를 무시하고 여전히 사실주의 원칙을 고수 했다. 이를 어느 기자가 ‘인상주의자’라고 비아냥 거린 명칭이 바로 르네상스 이래 가장 큰 미술사상의 변혁을 초래했다.

1830년대 사진술의 발달로 사실을 그대로 묘사하는데 가치를 찾지 못하게되면서 인상주의 화가가 대두되기 시작했다. 이후 사진으로 포착할 수 없는 회화 미술의 독자적 영역을 구축하였던 것이다.

이후 인상주의처럼 전통의 권위에 도전하고 새로운 양식을 추구하는 흐름은 미술로 이어져 상징주의, 야수파, 입체파, 초현실주의를 낳았다. 문학에서도 기존의 문체나 플롯의 구성 방식을 풍자하고 현대 문명의 어두운 측면과 소외를 부각시키는 사조를 낳았다. 모더니즘은 합리적이고 과학적이기는커녕 오히려 비합리성과 반과학주의로 나아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예술과 문학상에 생겨난 새로운 풍조의 배후에는 근대 이성이 무너질 조짐을 보이는 철학상의 중대한 변화가 깔려있다. 데카르트로부터 시작된 근대 이성과 철학적 합리주의는 자본주의와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절정의 위세를 떨쳤고, 19세기 후반의 자연과학주의와 실증주의에서 최고조에 달했다. 그런 현실의 변화는 수십 년 전부터 사상의 변화를 통해 예고되고 있었다.

19세기초 헤겔의 사상에서 근대 이성은 종착역에 이르러 근본적인 한계를 드러냈으며, 이후의 철학자들은 색깔과 방향은 제각각이었어도 한 목소리로 헤겔 철학을 비판하면서 전통적 형이상학의 종말을 선언했다. 그런 점에서 모더니즘은 이미 철학적으로 준비되었고 그것이 표출된 분야가 곧 예술과 문학이었다. 이 새로운 추세는 20세기 중반을 넘어서면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또다시 중대한 형질 변화를 겪는다. 그 결과는 모더니즘 이후, 즉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불리지만 현재까지 구체적인 양태로 정형화되지는 않았다.

포스트모더니즘– 모더니즘은 이성과 합리주의에 반대하는 기치를 높이 치켜들었으나 전통과의 확고한 결별을 이루지는 못했다. 혁신적이면서도 보수성을 크게 탈피하지 못해 용두사미가 되고 말았다. 그 이유는 모더니즘이 주로 문학과 예술 분야에 국한된 탓이 크다. 수백 년에 걸쳐 이력이 쌓이면서 튼튼해진 합리주의의 벽을 뚫으려면 그에 못지않은 강력한 논리가 필요했고 이를 위해서는 역시 철학적 사유가 뒷받침되어야 했다. 그런 점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은 단지 말뜻처럼 ‘모더니즘 이후’에 그치지 않고 근대 이성에 대한 체계적인 공략을 의미한다.

이 개념을 처음 제기한 프랑스의 현대 철학자 리오타르는 원래 포스트모더니즘이 아니라 ‘포스트모던’이라는 형용사를 사용했다(모던은 현대를 뜻하므로 포스트모던은 보통 ‘탈현대’라고 번역된다). 그 용어가 현대의 새로운 사조를 대표하게 되면서 1960년대부터는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명사가 자연스럽게 사용되기 시작했다. 때마침 푸코, 데리다, 라캉, 들뢰즈 등 구조주의 계열의 현대 철학자들도 이 흐름에 동참했으므로 포스트모더니즘은 대체로 포스트구조주의와 상통하게 되었다.

이성을 거부하고 비합리주의를 앞세우는 조류는 모더니즘에서부터 나타났으며, 의식보다 무의식을 강조하고 주체 대신 구조를 중심으로 하는 사유 양식은 이미 구조주의에서 보여준 바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이런 흐름을 수용하면서 이성을 바탕으로 하는 계몽과 도덕을 거부하고 합리주의로 위장된 억압의 본질을 폭로하는 데 주력한다.

모더니즘과 구조주의에서 제시된 기본 관점은 포스트모더니즘에서 더욱 구체화되고 극단화되었다. 무의식의 활동은 합리적이 아니라 충동적이므로 무의식이 강조되면 이성보다 감정과 욕망이 중시된다. 이성은 예측 가능하고 확실하지만 감정과 욕망은 늘 예측 불허이고 불확실하다. 이성의 고나점에서 본다면 무의식을 기본으로 하는 사유는 일관성이 없고 모순에 가득 찬 사고방식이다. 따라서 불확실성과 모순을 설명할 수 있는 새로운 사유 체계가 필요하다. 필연성을 기준으로 삼는 전통적 사유는 이제 우연성을 포괄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

이런 문제의식은 무책임하게 설정된 것도 아니고 철학이나 양자역학을 정립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한 덴마크의 물리학자 닐스 보어는 우연을 단순한 우연으로 간주하지 말고 그 자체로 물리하 법칙의 일부로서 수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욕망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억제하거나 차단하면 안된다는 들뢰즈와 가타리의 입장, 기계적 인과성과 필연성을 포기하고 예측 불가능성과 우연성의 관념을 도입해야 한다는 푸코의 주장과 맥을 같이한다.

이데올로기가 힘을 잃는 시대에 걸맞게 포스트모더니즘은 1970년대까지 사회 체제의 통치 이데올로기나 반체제운동의 지배 이데올로기였던 거대 이념을 거부한다. 지배계급이 자신의 이해관계를 국가나 민족으로 포장하는 허구적 국가주의는 말할 것도 없지만, 그에 맞서 민족적,계급적 해방을 내거는 거창한 이념도 마찬가지로 배척의 대상이 된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선구자인 리오타르는 ‘전체’를 내세우는 일체의 이념을 믿지 않는다. 전체를 구호로 삼은 데서 빚어진 시행착오는 역사적으로 무수히 찾아볼 수 있다. 인류 역사에서 전체성과 보편성을 추구한 정치와 종교, 예술은 모두 실패했다. 리오타르는 그것이 모두 거대 담론이며, 그 점에서는 혁명, 평등, 착취의 근절을 부르짖는 마르크스주의도 예외가 아니다. 거대 담론은 항상 통합과 합의를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목적론의 덫을 피할 수 없고 기껏해야 유토피아에 그칠 따름이다. 중요한 것은 전체가 아니라 부분이며 동질성이 아니라 차이다.

이성, 의식, 확실성, 일관성, 연속성, 동질성 등 근대적 사유의 틀을 버리고 언어, 무의식, 불확실성, 모순, 단절, 차이에 초점을 맞추는 포스트모더니즘은 분명히 새로운 사조지만 아직 특정한 구체적 행태를 보이지는 않는다. 현재까지는 각각의 철학자, 예술가마다 ‘시안’을 개진하는 느낌을 주고 있는 정도다. 그러나 이런 흐름이 지속되면 어떤 식이든 모종의 형태를 취하고 체계성을 보이게 될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전통과의 확고한 분리를 선언한 포스트모더니즘이 오히려 모더니즘보다도 전통적 사유에 가까운 측면이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억압과 권력의 지배를 거부하고 자유와 해방 같은 전통적 이념을 계승하는 측면이다. 과거처럼 이데올로기나 거대 담론의 방향으로 나아가지는 않지만 그런 이념들을 여전히 존중한다는 것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에도 아직 보편적인 가치의 생명력은 끊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반증한다.

해체주의 – 종래의 로고스(logos) 중심주의적인 철학을 근원적으로 비판하는, 프랑스 철학자 J.데리다(1930∼ )의 독자적인 중심 사고방식이다. 프랑스의 현대 철학자인 자크 데리다는 그런 구분까지 무시한다. 책을 예로 들 때 저자와 독자는 해체된다.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지만 저자는 책을 쓸 당시에 특정한 독자를 미리 연상할 수 없으며, 독자는 저자의 의도가 어떻든 그 책을 자기 마음대로 읽을 구너리가 있다. 따라서 저자와 독자는 전통적인 독해에서 생각하는 것만큼 서로 투명하게 친한 사이가 아니며, 오히려 서로에 대해 전혀 모르는 낯선 관계다. 저자도 독자도 확정된 실체가 아닌데 어떻게 저자에게서 독자에게로 의미가 순조롭게 흐를 것을 기대하겠는가?

저자와 독자가 해체되면 책의 내용도 해체된다. 한 권의 책을 관통해 흐르는 일관된 내용, 진리, 전제 같은 것은 애초부터 없다. 책은 독자에게 모르는 것을 가르쳐주거나 특정한 감동을 주지 않는다. 독자는 단지 손에 들고 있는 책을 읽음으로써 직접 뭔가를 생산할 수 있을 뿐이다. 바둑 한 판을 두면서 대국자들은 수많은 판을 머릿속에서 두듯이, 어떻게 편집하느냐에 따라 같은 필름들을 가지고 수많은 영화를 만들어 낼 수 있듯이, 한권의 책은 독자의 머릿속에서 수많은 책들을 (재)생산한다.

독해의 해체를 통해 데리다는 지배적 독해가 행사하는 억압적 권력을 해체하고자 했다.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서양 사상사의 지배적 흐름은 문자를 음성보다, 글쓰기를 말하기보다 열등한 것으로 간주했다. 이성이 파악한 사물의 본질을 말로 표현하는 것이 일차적인 재현이었고, 글은 언제나 부차적인 재현에 머물렀다. 그러나 말이 글로 바뀌는 데서 해석은 억압된다. 성서의 원본보다 수많은 주석본이 더 큰 위력을 가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이렇게 억압되어온 해석을 복원해서 감춰진 목소리를 드러내는 게 데리다가 시도하는 원대한 해체 기획의 요체다.(푸코가 고고학적 방법으로 타자의 침묵을 드러내고자 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전통적인 독해관에는 억압적 권력을 바탕으로 합의를 강요하는 정치적 함의가 숨어 있다. 텍스트-데리다가 말하는 텍스트란 문헌만이 아니라 영화, 음악 등의 예술, 정책이나 법의 형태를 취하는 권력의 메시지, 나아가 일상적 대화까지도 아우르는 의미다-자체가 아니라 텍스트의 해석이 권위와 권력을 행사한다. 예를 들어 한국전쟁은 과거의 사건이지만, 이 전쟁에 대한 독해는 시대에 따라 달라졌고 특정한 방향의 독해는 냉전 시대에 억압적 반공 이데올로기를 생성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지배적 독해의 가장 해악적인 측면은 바로 다양한 관점을 용인하지 않는 데 있다. 억압적 권력은 단일한 독해만을 제시하면서 그것에 따르는 것이 사회적 합의와 단결을 이루는 길이라고 강변한다. 그러나 그것은 강요된 합의이고 파시즘적인 단결일 뿐이므로 해체의 타깃이 된다.

2. 서양 사조의 발달 – 철학에서 정치사상의 등장(1800년이전 시기)

“내용없는 사유는 공허하고 개념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 –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이는 서양의 두 조류였던 합리론과 경험론을 비판하기 위한 것이었다. 대륙을 중심으로 한 합리론은 인식 주체를 강조했고, 영국에서 발달한 경험론은 인식 대상에 더 큰 비중을 두었다. 따라서 합리론은 사물에서 전해진 감각자료에 대한 경험이 곧 인식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칸트는 합리론적 전통을 내용 없는 사유라고 일축하거, 경험론적 전통을 개념없는 직관이라고 비판했다. 철학에서 말하는 개념은 인식 과정에 개입하는 관념의 의미와 연관된다. 하지만 다른 학문들에서는 개념이 이론을 전개하는 주요한 도구로 사용된다. 이론은 개념들을 논리적으로 엮은 체계라고 볼 수 있다. 물리학은 힘, 운동, 미립자등의 개념을 사용하는 이론 체계이고, 경제학은 생산, 이윤, 금리 등의 개념들로 이루어진 이론 체계다.

일반적으로 말해 개념들을 올바로 구사하면 정확한 이론을 구성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자유주의 사회학에서는 중간계급이라는 개념을 사회안정에 필수적인 계급이라는 뜻으로 사용하며, 국가라는 개념도 사회가 발전하기 위한 필수적인 기구로 본다.

17세기에 들어와서 중세의 신(神)중심으로 사고되던 사회에 계몽주의가 그들을 밝히기 시작한다. 계몽주의(enlighten)라는 의미와 같이 근대 이성의 빛으로 중세의 어둠을 밝히는 지적 운동이 발생했다. 1517년 마르틴 루터가 비텐베르크 교회의 대문에 95개조 박박문을 붙이면서 시작된 종교개혁은 신을 중심으로 하는 모든 사고방식을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인간중심의 새 시대를 열었다.

프랑스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는 철학사상의 유명한 명제를 통해 생각하는 인간, 즉 이성을 가진 주체를 철학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이것을 계기로 근대 철학은 신을 논증하는 데 초점을 맞춘 중세의 철학-신학으로부터 완전히 결별하고, 이성의 힘으로써 세계와 인간 자신을 해명하는 것을 과제로 설정했다. 이후 이성 중심의 근대철학은 대륙의 합리론과 영국의 경험론으로 나뉘어 전개되다 칸트와 헤겔에게서 종합과 완성을 이루게 된다.

정치적으로 계몽주의는 인간 사회가 탄생하고 발전하는 메커니즘에서 신의 역할을 배제하고 인간 서로 간의 약속을 중시하는 사회계약의 이념을 낳았다. 사회가 형성되기 이전의 자연 상태에 관해 홉스와 로크의 견해는 정반대다. 홉스는 자연상태를 부정적으로 봤고, 로크는 완전한 자유를 누리는 것으로 최선으로 여겼다. 이렇듯 사회는 신의 명령이 아니라 인간의 이성에 의해 탄생했기 때문에 신이 지배자를 내려주었다는 왕권신수설 따위는 쉽게 부정된다. 1688년 명예혁명으로 영국에서 역사상 최초의 의회민주주의 체제가 성립된 것과 1789년 프랑스혁명으로 민주주의가 출현하게 된다.

3. 근대 정치 사상의 발달

데리다의 해체주의 – destruction 단순 파괴가 아닌 조립을 위한 해체(긍정적)를 말한다. 그것은 바로 신이나 이성에 의해 조립된 세계인 질서와 중심과 주변을 이원화 시킨 것을 해체하는것을 말한다. 데리다는 모든 중심 center, 현존 presence, 근원 origin, 이성중심주의 logocentrism을 해체하고자 했다.

푸코의 포스트구조주의 – 푸코가 의미하는 권력은 단순히 정치권력이 아니다. 오히려 푸코의 권력은 사회현상 속에서 편재하는 권력관계로 표현되어야 할 것이다. 푸코는 모든 관계는 필연적으로 권력관계이며, 인간의 제실천 역시 권력의 효과임을 역설하면서 이러한 권력에 대한 이해를 위해 권력을 ‘전략’으로 파악하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다. 이러한 여러 현상들 속에서 권력에 대한 분석이 가능한 것은 푸코가 계급의 점유 대상으로서의 권력개념을 부정하고 권력을 계급이 차지하는 전략적 입장의 총체적 효과로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푸코의 적 작업이 갖는 또 다른 의의는 질문의 심급을 ‘무엇을’이나 ‘왜’에서 ‘어떻게’로 변형시켰다는 점이다. 희랍철학 이래 이성은 무엇이며 인간의 존재방식은 왜 그러한가? 등의 질문에 대해 대답하려고 했던 노력들은 실질적인 생산성을 확보하지 못했었다.

따라서 오히려 이성은 어떻게 변형되어 왔고, 담론적 실천은 어떻게 이루어지며, 권력의 작용은 어떻게 효과를 낳는가를 천착하는 것이 현대문명과 그곳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실천을 이해함에 있어 보다 생산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 푸코의 견해이다. 생산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푸코의 의도는 특유의 실증주의(positivism)를 성립시킨다. 권력이 다양한 관계망 속에 분산되어 있다는 입장을 ‘경험에 대한 정치학’을 요구한다. 여기서 푸코의 경험은 개별자를 주체로서 성립시키는 객관화 작용을 의미한다.

객관화 작용이란 개념과 지식의 영역, 그 속에 내재된 실천과 규칙이 실천을 매개로 해서 성립되는 관계를 말한다. 결국 푸코의 작업영억은 담론구성체로 표현되는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일상적인 경험들속에 들어 있는 정치적 효과이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서 푸코는 현재의 역사를 기술하고자 한다. 따라서 푸코는 모든 작업은 지식의 생산에 대한 정치적 역사를 기술하는 작업이며, 지나간 시간의 실천에 대한 이해를 토대로 현재의 모습을 기술하려는 계보학적 또는 고고학적 분석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과도적 연구방법의 대두(1900-1925)하게 된다. 메리엠(Charles Merriam)을 중심으로 시카고(Chicago) 학파‘과학적 정치학’을 표방하며 심리학과 통계학의 중요성을 강조하게 되며 이는 행태주의가 등장하는 배경이된다.

정치학의 행태주의적 접근(1925년 이후) – 행태주의의 등장 배경을 살펴보면 과학적 연구방법 도입과 자연과학 영역의 연구방법(통계학-수학)에서 달성한 연구 성과를 응용하여 보려고 노력하면서 발생하게 된다. 행태주의 연구방법의 특징은 60년대를 최정점으로 하는데 첫째, 인간의 정치적 행동의 일반 법칙성 발견한다. 둘째, 현상의 분석을 위해 계량화(설문조사를 통해 수치화, 예:대선출구조사-정확성)한다. 셋째, 주관적인 가치판단을 배제(수치는 안바뀜, 가치중립성 강조)한다. 넷째, 사회과학의 서로 다른 학문분야와의 상호 협조 필요로 한다. 이를 통해 좀더 객관적으로 연구(Max Weber)하며 투표행태, 선거결과 예측 등을 포함하여 정치적 행동의 중범위 이론 개발에 상당한 기여하게 된다. 이를 토대로 거시적 정치이론들도 검증하고 확립(행태주의 기반) 할 수 있게된다.

행태주의 이론 – 국제정치와 국내정치로 나눌 수 있다. 국제정치는 국제체계이론, 외교정책결정이론(snyder) 통합이론, Game이론(제로섬/non-제로섬 게임)이고 국내정치는 Communication이론(칼 도이치), 정치과정론, 정책결정이론. 정치체계 분석이론로 나눌 수 있다. 그러나 행태주의는 지나친 과학성 강조로 오히려 학문적 보수주의라는 비판을 받고 정치현실의 본질보다는 분석의 기교에 치중함이 문제시되며 지나친 가치중립의 치중으로 정치적 목표나 이상을 경시하게 되어 후기 행태주의를 발생하게 된다.

4. 결론

해체로 상징되는 포스트모더니즘은 우리가 그동안 당연히 여겼던 사회와 모든 형태에 있어서 의문을 던지게 하였다. 그리고 그 문제점을 풀기 위해서 다양한 사상이 등장하게 되었으며 체계와 개념을 갖춰 하나의 이론으로 정립되었다. 이러한 결과로 서구의 합리주의와 이성주의에 대한 수정을 가져왔으며 더 나아가 기존의 사상과 체계를 부정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리고 이는 단순히 사조에 그치는 것이 아닌 사회 전반적으로 인문 사회의 사회학, 철학, 정치학으로 출발해서 예술과 건축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그러난 이는 결코 이전에 있었던 진리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며, 기존의 것에 대한 단순한 받아들임에서 벗어나 의문과 상호교환을 통한 새로운 결론을 낳았다는 점에서 의미를 가진다. 그리고 우리가 가진 구조에 대한 해체를 가져와 오히려 더 자연스러운 결과를 가져왔다는 점에 공감한다. 그러나 이는 위 사상 자체가 하나의 흐름으로 그칠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사회에 맞춰서 변화되어야 한다. 따라서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명확한 정의를 내리지 못한 점을 부각시켜 자칫하면 그 중심을 잃지 않을까 우려된다.

>>미흡한 점도 많고 많은 사상이 뒤엉켜서 결론을 제대로 못낸것 같아서 아쉽다. 아직 배워야할 점이 많고 명확한 전공을 세워 놓지 않은 상황이므로 여기서 끝맺음을 하고자 한다. 모든 내용을 뒤져가며 전부 타이핑하고 그중에서 편집해서 다시 재배열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는데 노력한만큼 결과물이 좋지않아 아쉬움을 남긴다. 2007. 11. 1

참고문헌

포스트모더니즘과 철학/김혜숙/이화여대출판부/1995

포스트모더니즘과 포스트구조주의/김욱동/현암사/1991

포스트모더니즘 후기 자본주의 문화 논리/정정호/터/1989

정치학의 이해/조용상/박문각/2006

정치학/이극찬/박문각/2004

그림으로 이해하는 정치사상/김만권/2005

개념어사전/남경태/들녘/2007

참고자료

네이버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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