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랍시대의 Arete의 개념에 관하여 -플라톤의 ‘국가’편을 중심으로, 이은진

희랍시대의 Arete의 개념에 관하여

– 플라톤의 󰡔국가󰡕편을 중심으로 –

이 은 진

Ⅰ. 머리말

‘arete’(탁월성)개념은 호메로스 이래로 희랍인들의 중심 개념이었다. 물론 arete는 희랍 문화의 시작과 더불어 쓰이기 시작된 말이지만, 학문적 관심의 대상으로서 새삼스레 문제삼아지는 것은 Sophistes에서 발단된 것으로, 희랍적인 사고를 가장 잘 특징지어 주는 말들 중의 하나다. 왜냐하면 arete는 그 시대마다의 희랍인들의 이상 내지 신앙을 가리키는 말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헬라스의 정신사는 이 arete를 찾아 그것을 자신들에게 구현하고자 하는 멀고도 험난한 길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 arete가 본격적으로 탐구되기 시작한 것은 소크라테스에 있어서다. 소크라테스 이전의 희랍의 정신사에는 두개의 큰 축이 있었는데, 그 하나는 자연 철학이며, 또 하나는 소피스테스들의 철학이었다. 자연 철학은 physis, 즉 실체(ousia)를 탐구하였다. 즉 탈레스가 ‘물이 만물의 arche’라고 언명한 것을 시작으로 인간 정신은 다양한 현상 세계를 넘어서서 그 배후에서 그 현상세계를 규정하는 근본적인 원리(arche)를 탐구하기 시작하였다. 그 원리는 때로는 물, 불, 흙, 공기 이기도 하고, 때로는 원자, 때로는 무한정자 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존재의 규정으로부터 인간에게로 눈을 돌린 소피스테스들은, 만인이 함께 가질 수 있는 보편적인 규범이란 존재하지 않고 그것은 다만 우리들이 제정한 것에 불과하며, 오래도록 시행해 오는 과정에서 굳어진 관습에 불과할 뿐이어서, 자연의 이치에 따르는 어떤 절대성을 갖는 법이나 행위의 원칙이 없다고 가르쳤다.

소크라테스는 소피스테스들의 이러한 윤리적 상대주의 및 회의주의를 극복하려고 시도한다. 그는 인간의 행위가 표준으로 삼아야 할 절대적이고 영원한 그 무엇이 있을 것이라고 믿었으며, 이러한 믿음은 그로 하여금 호메로스 시대 이후 희랍 사회에서의 일반적인 가치 개념인 arete의 탐구에로 나아가게 한다. 소크라테스는 전통적인 arete의 개념에 윤리적인 의미를 부여하였다. 즉 그에게 있어서의 arete는 ‘앎’(인식 epistetme)이었는데, 이 앎의 대상은 영혼(psyche)이었으며, 영혼에 대해 알게 됨으로써 인간은 영혼의 궁극적인 선을 돌보게 된다. 그리고 이 영혼의 선은 그에게 있어서 모든 인간 행위의 목적이 되었다. 이러한 소크라테스의 생각은 플라톤 및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계승 발전됨을 보게 된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arete의 개념, 즉 arete의 윤리적 의미를 계승한다. 그렇지만 윤리적인 의미만으로는 소피스테스들의 상대주의를 극복할 수 없음을 안 플라톤은 자연 철학자들이 탐구했던 실체의 개념을 arete개념에 끌어들임으로써 소크라테스의 arete 개념을 뛰어 넘어 arete에 형이상학적 의미를 부가한다.

이러한 것들을 바탕으로 하여 아리스토텔레스는 오늘날의 우리가 가치라고 일컫는 바의 덕론(德論)으로 나아가는데 유익하게 해 주었다. 특히 아리스토텔레스가 자기를 앞서간 사람들, 특히 소크라테스처럼 덕을 이해라고 하지 않고, 의지의 태도라고 한 그 순간에, 그는 도덕학을 크게 발전시키게 된다. 희랍철학에 있어서 주된 골격을 이루는 것이 플라톤의 철학이라면 그것에 어떤 세련됨을 보태어 주는 것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본 논문의 주요한 관점은 희랍의 전 정신사를 주도한 arete개념의 형성 과정을 추적하는 것이며, 항상 보편적인 관점에서 인간을 이해하고 그 결과를 실천적으로 이끌어 나가고자 했던 희랍인들의 대표자로서 플라톤을 중심으로 arete개념을 파악하는 것이다.

특히 그 저서 중 󰡔국가󰡕편에는 플라톤 당시의 대표적 소피스테스들의 arete관이 들어 있으며,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arete에 관한 형식적‧내용적 차이점이 드러난다. 물론 arete 문제에 있어 아리스토텔레스를 논하지 않는다는 것은 약간 의구심을 자아낼 수도 있겠지만,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많은 부분이 플라톤 철학의 영향 아래 있었으며, 아리스토텔레스가 󰡔니코마코스 윤리학󰡕 2권 1장에서 2종의 arete에 관한 구분과 그 기준에 관한 언급이 이미 플라톤의 대화편 󰡔파이돈󰡕에 이미 제시되어 있기에 본 논문은 플라톤을 중심으로 arete 개념을 탐구하고자 한다.

Ⅱ. arete 개념의 형성과 관점

1. arete의 개념

흔히 arete를 덕(德)이라는 말로 번역하곤 하지만, arete가 바로 덕이라고 말할 수 없음은 이후에 밣혀진 것이다. arete개념은 희랍사에 있어서 일관되게 꾸준한 역사를 자랑하지만, 그것이 철학적인 문제로 대두된 것은 소크라테스에 와서 이루어졌으며, 그 이전의 인간의 관심사는 physis에 관한 것이었다.

arete란 한마디로 사람이나 사물에 있어서의 그 특이성에 따른 최선의 상태를 일컫는다. 모든 사물은 각기 그들의 고유한 기능(ergon)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기능이란 어떤 것이 그것에 의해서만 할 수 있는, 또는 그것에 의해서라야 가장 잘 할 수 있는 그러한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단검이나 그 밖의 다른 여러 가지의 것들을 가지고서도 포도 나무의 작은 가지를 잘라 낼 수는 있지만, 그 어떤 것을 가지고서도 그 목적으로 만들어진 낫을 가지고 하는 것 만큼 훌륭하게 자르지는 못한다.”{󰡔국가󰡕352e}를 말한다.

이 때, 낫의 기능이 가지를 치는 일이며, 이렇게 각기 자기의 고유한 기능을 가장 잘 수행하는 상태를 그 사물의 arete라 한다.

그런데 철학의 주된 관심이 인간에게로 돌려진 이후, 이는 무엇보다도 인간의 arete를 의미했다. 인간에게는 영혼(psyche)이 있으며, 보살핀다든가, 다스린다든가, 숙고‧결정한다든가 하는 것이 영혼의 기능이다. 이러한 영혼의 기능은 인간의 삶과 관계하며, 따라서 영혼의 포괄적인 기능은 사는 것이다. 그리고 이 영혼의 기능이 잘 발휘된 상태, 즉 잘 사는 것이 혼의 arete이다.

arete는 인간에게 지성(nous)의 계기와 더불어서만 온다. 이 지성의 완전한 발현이 앎(episteme)이며, 모자르거나 초과하는 일체의 것은 오직 무지 떄문에 발생한다. 즉 앎이 있는 자는 지혜롭고, 지혜로운 자는 훌륭하다라는 말에서 엿볼 수 있듯이 소크라테스는 arete와 episteme를 동일시하기까지 한다. 즉 소크라테스는 episteme를 인간에 있어서의 모든 arete의 발현의 근본적이고 필요‧충분한 조건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플라톤은 이 episteme의 요소를 arete의 필요한 조건으로 생각한다는 점에서는 소크라테스와 일치하지만, 충분한 조건으로는 생각하지 않는데, 이러한 양자의 차이는 소크라테스가 막연히 혼을 보살필 것을 강조하는 데 비해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는 혼의 복잡성을 인정하는 데에 기인한다.

2. arete 개념의 형성 과정

arete 개념의 형성을 알아보기 전에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는 데, 그것은 바로 physis(자연)와 nomos(이법)의 대립이다. 이 physis 또는 nomos는 각각 각자의 소피스트들에게 있어서 바로 그들의 학설과 세계관의 기반이었기 때문에, 이 두 개념의 대결은 이론 투쟁의 한 형태를 보이면서 실로 치열하게 전개 되었다. 물론 도덕의 영역에서도 이와 같은 문제, 즉 arete의 근원이 physis인가 아니면 nomos인가 하는 문제가 발생하였으며, 이는 뒷날에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arete를 획득하기 위한 자질을 갖추고 있지만, 오직 습관에 의해서만 그것을 실현할 수 있다고 평함으로써, 인간의 arete 성취에 있어서 physis적 요소와 nomos적 요소를 모두 인정하고서야 이 오랜 대결은 끝을 보게 되었다. 그러므로 희랍 문화의 전반적 이해를 위해서 뿐만아니라 arete의 이해를 위해서도 physis와 nomos, 이 두 낱말은 열쇠어가 되는 것이다.

호메로스적인 가치에 있어서의 arete는 귀족이나 전사에게 적합한 뛰어남을 의미했는데, 이것이 우리가 용기라고 부르는 andreia이다. 즉 호메로스의 작품 속의 시대에 있어서 용기는 사람됨의 최대의 요건이었기 때문에, 그들에 있어서 용기는 곧 덕이었고 최선의 가치개념이었다. 그런데 호메로스는 인간의 arete가 그의 출생, 즉 출신 성분에 의해 결정된다고 보았다. 즉 오딧세우스 같은 이상적인 영웅도 만약에 그가 노예 출신이었다면, 그는 그의 arete를 절반쯤 잃었을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전통적 견해에 있어서 arete는 자연적인 것이다.

호메로스는 이후로 이 arete의 추구는 많은 철학자들을 거쳐 오다가 마침내 소피스테스에 와서 좋은 소일거리를 제공하게 된다. 플라톤의 󰡔국가󰡕나 그 외의 여러 작품 속에 나타나는 소피스테스들은 호메로스 등의 전통적 가치에 대한 회의주의자들이었다. 이들은 이때까지의 physis의 탐구를 아예 무위할 뿐인 헛수고로 보고, 그러한 탐구로부터의 결별을 강권했다. 즉 이들에게 있어서의 arete는 부자연스러운 것, 혹은 인위적인 것으로 역하는 nomos였다.

이러한 소피스테스에 대한 세찬 반동으로 나온것이 소크라테스의 arete 개념이다. 그에게 있어서의 arete는 잘 알려진 바와 같이 episteme(앎)이다. 소크라테스는 사람의 사람다움을 찾는 희랍의 긴 여정 끝에, 그것을 덕에서 찾고자 한 최초의 인물이었다.

이러한 소크라테스의 뒤를 이은 플라톤은 앞선 소크라테스의 주장, 즉 arete 는 nomos라는 것을 부정하여 전통적인 < arete = physis >에로 복귀하는 동시에 소크라테스적인 arete의 이해에 만족하지 않고, 자신만의 독특한 도덕적이고 형이상학적인 arete론을 제시한다. 우리는 이러한 플라톤의 arete론을 살피기에 앞서서 또 하나의 유용한 작업인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arete관의 차이를 알아보기로 하자.

3. 소크라테스의 관점

소크라테스는 arete의 탐구에 있어서 영혼을 단순한 것으로 파악한다. 즉 그는 영혼에 있어서의 무절제의 존재 가능성을 부정한다. 때문에 그는 영혼에 관한 앎은 곧바로 그 앎의 실현을 보증한다고 생각한다. 영혼에 관한 이와같은 파악은, 그가 영혼을 ‘技術(techne)’과 같은 구조를 지닌 것으로 파악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技術’이라는 것은 소크라테스에 의하면 그 자체로서 완결되어 있는 구조, 즉 자기 자신의 답을 자체 속에 가지고 있는 닫힌 체계라는 것을 의미한다. 닫힌 체계는 인식 가능하기 때문에, 우리는 기술의 과정을 인식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닫힌 체계인 기술에 관한 인식은 그 기술의 최선의 상태, 즉 기술의 arete를 포착함을 의미한다.

그런데 소크라테스의 ‘arete는 episteme이다.’라는 명제는 원래 기술에 관한 명제이며, 그 의미는 아는 것과 그것의 실현의 일치다.

기술에 있어서도 사태는 영혼에 있어서와 동일하다. 예를 들어, 구두를 만드는 사람의 arete가 실현되기 위해서 우선적으로 요구되는 것이 구두와 구두 만드는 사람의 기능(ergon)에 대한 정확한 앏(episteme)이다. 마찬가지로 정치가로서의 arete가 실현을 보려면 治者(archon)의 기능 내지 구실에 대한 앎이 선결적으로 요구된다. 그리고 이와 같은 영혼에 관한 앎은 바로 영혼의 arete의 실현을 위한 필요‧충분 조건이 된다.

소크라테스에 있어서의 arete는 이성적 인간의 합당한 이성적 규율이라고 한다. 즉 소크라테스는 이성(logos)의 표준적 모델을 생산적 기술에서 찾는데, 기술은 그 기술에 의해서 우리가 원할 수 있는 바의 생산물을 산출할 때, 정당화 되어진다. 즉 이성적이다. 그러므로 훌륭한 행위를 하게 된다면, 우리의 영혼이 이성적이라는 것이 증명된다. 왜냐하면 영혼의 arete, 즉 이성적 규율은 훌륭한 행위를 산출하겠기 때문이다. 이 경우, 영혼의 arete에 관한 인식이 전제됨으로, 소크라테스에게 있어서는 episteme가 영혼의 arete의 실현을 위한 직접적으로 필수적인 조건이다.

4. 플라톤의 관점

소크라테스의 경우에는 무절제의 존재 가능성을 부정했기 때문에 ‘인식(episteme)은 곧 arete’라는 주장이 가능했다. 그러나 플라톤은 무절제의 존재 가능성을 허용한다. 즉 혼은 비이성적이며 욕구적인 부분을 가진다. 이로서 플라톤은 ‘인식은 곧 arete’라는 주장을 거부할 수 있게 된다.

혼이 다양한 요소로 구성되어 있어서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이 직접적으로는 일치하지 않음을 플라톤은 국가-유기체의 분석을 통해 제시한다. 즉 국가는 “우리들 각자가 자족하지 못하고 여러가지 것들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36-9b} 성립되며, 스스로에게 결핍된 것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활동한다. 즉 국가는 자립적이지 못한 부분들로 구성된 하나의 유기체이다. 이 때, 결핍 내지 욕구에 대한 충족의 개념이 바로 arete이며, 이것은 부분들의 상호 작용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플라톤은 부분들이 욕구를 충족시키는 두가지 방법을 언급한다. 첫째 “남들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채로 오직 자기 자신만을 위해 스스로 자신 만의 힘으로 자신의 일들을 처리”{369e-370a}하는 방법과, 둘째 “각자 저마다의 생산물을 모두를 위한 공동의 것으로 제공하는”{369e} 방법이 있는 데, 플라톤은 이 둘 중에서 후자의 방법이 더 낫다고 한다. 왜냐하면 “우리들 각자는 태어날 때에 서로가 그다지 닮지 못하고 각기 성향이 달라서 사람마다 다른 일에 종사하게 되며, 어떤 이가 일을 다른 사람보다 훌륭히 해내는 것은 한 사람이 여러가지 기술들에 종사할 때가 아니라 한 사람이 한가지 기술에만 종사할 때이다. 이와 같이 각 부분들이 저마다의 기능을 잘 행하는 데에서 전체의 욕구는 충족되며, 따라서 전체의 arete는 완성되어진다.

소크라테스에 있어서의 영혼 전체는 단일한 것이었고, 더우기 그것은 기술과 같은 구조를 지녔기에 직접적으로 파악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영혼에 관한 앎은 곧바로 혼의 arete의 실현으로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플라톤에 있어서의, 영혼 전체는 각 부분들의 다양성을 내포하는 동시에 그 부분들의 상호 의존성이 이상적 형태로 조화되어 이루어진 것이다. 따라서 이 경우 각 부분들의 arete는 그 자체로서는 충분한 의미를 지니지 못한 것이며, 오로지 전체의 한 계기로서 전체에 참여할 때만이 그들 각자의 의미성이 드러나는 것이다.

다음으로 플라톤이 사용하는 국가와 영혼과의 비유의 방법론적 측면을 살펴보자. 이 비유는 플라톤의 arete론의 중요하고 또 필수적인 한 부분이므로 여기서 이것을 명확히 해 두는 것이 필요하다.

플라톤은 국가라는 유기체와 영혼이라는 유기체의 구조적 동일성을 주장한다. 즉 플라톤에 의하면 국가와 영혼의 관계는 보다 큰 것과 작은 것의 관계이며, 이 양자는 양적인 차이만 있을 뿐 질적인 차이는 없다. 국가는 통치자들, 수호자들과 장인들로 구성되며 그들의 각각이 이성과 기개와 욕망의 성질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이 국가의 구성 부분들이 저마다 자기의 일을 훌륭히 수행할 때, 각각의 부분들의 arete의 지혜, 용기, 절제가 성립한다. 또한 이들 부분들을 이와 같이 이끌어 전체적으로 조화시키는 것이 正義(dikaiosyne)이다. 플라톤은, 국가의 분석을 통하여 그 구성부분들로 드러난 것들과 똑같은 성질을 지닌 것을 “개인도 자신의 혼 속에 ‧‧‧‧ 지니고 있다.”{435c}라고 한다. 이와 같은 결론은 그가, 국가는 떡갈 나무나 바위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그 국가에 살고 있는 인간의 습성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함으로써 내려진다. 따라서 개인의 혼도 국가와 동일한 arete들을 가진다.

플라톤이 생각한 ‘국가와 영혼의 동일성’의 문제에 관해서는 여러 견해와 비판이 따르지만 플라톤 자신이 국가와 영혼과의 비유에 의한 arete의 탐구를 ‘불완전한 것’{504b}이라고 비판하고 이를 존재론적 논의에서 완성시킨다.

󰡔국가󰡕편을 통해서 플라톤은 소피스테스들과의 이론 투쟁의 성격을 띄었다고 할 수 있는 자신의 고유한 arete관을 제시한다. 이는 두가지 단계로 진행된다, 즉 첫째, 국가와 혼과의 비유를 통한 arete의 탐구이며, 둘째 이데아의 관점에서의 arete의 탐구가 그것이다. 이 두가지의 단계를 살펴봄으로서 사람의 삶에 임하는 바람직한 기본적인 자세와 관련지어 플라톤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살펴보기로 한다.

Ⅲ. 국가의 비유와 나타난 arete

1. 국가와 혼의 부분에 나타난 aretè들

(1) 지혜

국가의 지혜는 통치자 계급에 상응하는 arete이며, 한 국가에 지혜가 있음은 분별로 인해서인데, 분별은 인식의 일종이다. 그리고 다른 계급의 지식이 아닌 바로 통치자 계급의 지식으로 인하여, 비로소 그 나라는 나라 전체가 지혜있는 나라라고 불려 진다. 왜냐하면 통치자 계급의 지식은 “이 나라에 있어서의 부분적인 것들 중의 어떤 것이 관련해서가 아니라, 이 나라 전체와 관련한”{428c} 지식이기 때문이다.

이 지혜는 소크라테스의 episteme의 계승이다. 즉 플라톤은 지혜가 어떤 arete를 위해서도 필수적이라고 생각하는 점에서 소크라테스와 일치한다. 그러나 소크라테스에 있어서 episteme와 sophia가 동일한 의미인데 반해서 플라톤에게 있어서의 sophia는 ‘여러 episteme들 중의 하나’{429a}이다. 그리고 필드(Field)는 “통치는 공동체의 많은 기능 중의 하나로서 의심할 나위 없이 가장 중요하고 어려운 것이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서로 간의 필요의 충족을 위한 분업의 일반 원리 아래에 포섭된다.”고 한다.

국가와 마찬가지로 영혼에도 지혜가 있으며, 이는 이성적인 부분에 상응한다. 이 부분은 욕망과 기걔에 부분을 제시한다. 영혼의 이 부분은 “지혜로울 뿐더러 혼 전체를 위한 선견 지명을 지니고 있어서, 다른 부분을 지배하는 것이 어울린다.”{441e}

이 지혜의 arete를 지니는 부분은 국가나 영혼을 전체적 관점에서 조망하여 올바르게 이끌기 위해서 지적 영역의 본을 인식하는 임무를 띠고 있다.

(2) 용기

국가에 있어서의 용기는 수호자들에 의해서 구현된다. 이들은 자기 나라를 위해 전쟁을 하고 군인으로 봉사하는 자들인 데, 오직 이들의 특성으로 인하여 그 나라가 비겁한 나라로 되거나 용감한 나라로 된다. 용기는 이들이 법률에 의한 교육을 통해, 두려워할 것들이란 무엇 무엇들이며, 또 어떠한 것들인가와 관련해거 생기게 된 신념을 보전하는 것이며, 이와 같은 용기는 특히 시민적 용기이다. 왜냐하면 교육을 통하지 않고 지니게 된 신념, 이르테면 야수나 노예가 가짐직한 생각은 용기가 아닌 것으로 불려질 것이기 때문이다.

영혼에 있어서의 용기는 혼의 요소 중 기개의 부분에 상응한다. 혼 속에서 이 부분은 이성적인 부분이나 욕망의 부분과는 다른 제 3의 부분이다. 즉 기개는 “만약에 나쁜 양육으로 인해서 타락되는 일만 없다면, 본성적으로 이성적인 부분을 보조한다.”{441a} 즉 이성적인 부분의 지배에 복종하며 협력자로 된다. 영혼의 용기는 이 기개의 부분이 두려워 할 것과 두려워 하지 않을 것으로서 이성이 지시한 바를 고통스러울 때나 즐거울 때를 막론하고 끝끝내 보전하는 데에서 성립한다. 영혼에 있어서의 이성적 부분과 기개적 부분이 참으로 제 할 일을 배우고 교육받게 되었을 때 이들을 욕망의 부분을 조종하게 된다.

(3) 절제

절제는 욕망의 부분에 해당하는 arete이다. 플라톤은 욕망을 필요한 욕망과 불필요한 욕망으로 나누는 데, 필요한 욕망이란 없어서는 안 될 욕망이다. 반면에 불필요한 욕망이란 훈련 여하에 따라 제거할 수 있는 욕망이며, 무익할 뿐 아니라 해가 되는 욕망이다. 이 중 불필요한 욕망을 억제하고 필요한 욕망을 추구하는 것이 전체 善을 위하여 유익한 것이 되는 데, 이 필요한 욕망과 불필요한 욕망을 가려내는 일이 이성의 역할이다. 따라서 이성에 의해 욕망이 인도될 때, 더우기 국가나 개인에 있어서 성향 상 보다 나은 쪽과 보다 못한 쪽 중에서 어느 쪽이 지배를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합의할 때 절제가 성립한다.

그런데 이 절제의 arete는 지혜나 용기보다 더 ‘협화음’ 내지 ‘화성(和聲)’과 유사하다. 왜냐하면 국가에 있어서 용기나 지혜는 그 각각이 한 나라의 어느 한 부분에만 있어도 그 나라를 곧 지혜로운 나라로, 또는 용기 있는 나라로 되게 하지만, 절제는 나라 전역에 걸치는 것으로서, 협화음처럼 전 음역을 통하여 마련되기 때문이다.

(4) 부분의 arete들에 관한 종합

국가 및 영혼의 부분들은 이성적 요소, 기개적 요소, 욕망의 요소로 나뉘어지는데, 이러한 구분은 플라톤에 따르면 결코 인위적인 것이 아니라 본성에 따른 것이다. 그리고 이들 부분들에는 각각 지혜, 용기, 절제의 arete가 상응한다. 그런데 부분들에 상응하며 성립된 이들 arete들은 각각 고유한 결점들이 있다.

지혜의 arete는 전체의 목적을 인식하고 행동이 본을 인식함으로써 전체와 관계하기는 하지만, 이 arete는 한 부분에 편중되어 있으며, 또 지배하기만 할 뿐이므로 이성의 독주에 의한 전체 善의 훼손이 가능하다. 용기의 arete 또한 특정한 욕망을 억제함으로써 전체 선에 관계하기는 하지만 이 또한 지혜와 마찬가지로 한 부분에 편중된 것이며, 더우기 이것은 이성적 부분의 지도에 의존함으로서 성립되는 arete 이다. 절제의 arete는 지혜나 용기와 달리 국가 및 혼의 전 부분에 걸쳐서 성립한다. 그러나 이것은 이성적 부분과 기개적 부분의 지도에 복종함으로써 성립하는 arete이기 때문에 자립성이 없다.

이와 같은 부분적인 arete들의 각각의 결점들은 그것들이 부분적 내지 일면적 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며, 따라서 이들은 국가 내지 영혼의 전체 善, 즉 전체적인 행복을 보장할 수 없다. 그런데 플라톤에 있어서는, 있어야만 할 상태에 있는 혼만이 행복하다. 이때 혼이 있어야만 할 상태란 전체 善을 가리키며, 이는 혼의 부분들의 조화에 의해 이루어진다. 혼의 부분들을 조화시키는 것이 다음으로 살펴볼 정의이다.

(5) 정의

우리는 이제까지 국가와 혼의 부분들의 arete를 살펴봄으로써 플라톤이 국가와 영혼의 부분들과 그것들의 arete들을 동일하게 취급하였다는 것을 알았다. 이러한 사정은 정의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즉 플라톤에 따르면 국가에 있어서의 정의와 개인에 있어서의 정의는 서로 다른 것이 아니다. 즉 적어도 플라톤 자신에 있어서는 국가와 개인의 정의가 동일한 것이다.

플라톤에게 있어서 정의는 좋은 국가이기 위해서 갖추어야 할 네가지 조건 중의 한 가지이다. 즉 좋은 국가는 지혜와 용기, 절제, 그리고 정의를 갖추고 있다. 또한 국가의 arete를 위해 정의가 아바지하는 힘은 이 국가에 있어서의 지혜와 용기, 그리고 절제에 필적한다.

그러나 지혜와 용기, 절제와 국가(또는 영혼)의 각 부분들의 arete인데 반해, 정의는 어떤 부분에 상응하는 arete가 아니다. 정의는 오히려 국가 또는 영혼의 전체에 대응하는 전체의 arete이다. 왜냐하면 정의는 ‘한 부분의 두드러진 행복 속에서가 아니라, 전체의 행복 속에서 발견되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정의는 위의 세가지 부분의 arete들 이외에 다른 것을 특별히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즉 각각의 부분들이 자기의 일을 하는 것이 어떻게든 실현되면 그것이 곧 정의이다. 다시 말해서 플라톤의 정의는 “제 것의 소유와 제 할 일을 행함”{433e}이 실현된 상태(hexis)이다. 각 부분의 실현된 상태란 다름 아니라 부분의 arete들이 성립된 상태이므로, 이 세 부분의 arete들은 정의의 조건이 된다. 즉 정의는 이 부분의 arete들을 포괄하는 총체적 arete이다.

그렇지만 플라톤의 정의는 부분들의 arete들이 실현된 상태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플라톤의 정의에 또 하나의 의미를 덧붙인다. 그것은 힘(dynamics)의 개념이다. 플라톤이 이 힘으로써 의미하는 정의의 역할은 부분들을 조화시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역할에 대해 플라톤은 ‘정의는 부분의 행복 속에서가 아니라 전체의 행복 속에 있으며, 전체를 행복되게 하기 위하여 각각의 부분들로 하여금 제 할 일을 행하게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만약 부분들이 제 할 일을 하지 않고, 엉뚱한 일에 힘쓴다면 “농부는 이제 농부이지 않을 것이며, 도공 역시 도공이지 않을 것이고, 또 그 밖의 누구도 국가를 이루는 그러한 제 나름의 특성을 지니지 못한다.”{420e-421a} 이와 같이 부분들을 제한하여 저마다의 부분들로 하여금 자신의 할 일을 행하게 하고 상호간섭 내지 참견을 하지 않게 하는 정의는 부분들의 arete인 지혜, 용기, 절제 이 세가지 모두가 이 국가 안에 생기도록 하는 그런 힘을 주고, 일단 이것들이 이 국가 안에 생기도록 한 후에는 적어도 그것이 이 국가 안에 있는 한은 그것들이 보전되도록 해 주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플라톤의 정의에 관한 논의에서 매우 곤란한 한가지 문제가 있다. 그것은 플라톤이 부분들을 조화시키는 힘(dynamics)과 이 힘의 결과인 부분이 조화된 상태를 똑같이 정의라고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정의의 성격은 “국가와 영혼에 내재하는 것으로 파악되며 국가와 영혼에 내재하는 정의가 바로 국가와 영혼을 정의롭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진술은 정의가 내재하는 국가 또는 영혼과 정의롭게 되어야 할 국가 또는 혼의 구별을 전제한다. 이러한 구별은 플라톤에 있어서 ‘본(paradeigma)’과 ‘현실’로 나타난다. 즉 앞의 것은 본으로서의 국가 또는 혼이며, 뒤의 것은 실제의 국가 또는 혼이다. 그런데 플라톤으로서의 정의 그 자체가 어떤 것인가를 탐구하여 온 것은 ‘본’ 때문이었으며, 이 ‘본’은 현실의 것이 아니라 지적인 것에 속하기 때문에 지적 영역에 대한 고유한 사고가 필요하다. 여기서 국가의 부분들의 분석에 근거한 arete 탐구의 한계가 드러난다. 왜냐하면 국가의 부분들은 지적인 것이 아니며, 따라서 본에 대해서 완전한 고찰이 불가능하겠기 때문이다. 지적인 영역의 본은 오로지 형이상학적인 탐구를 통해서만 완전히 드러난다.

2. 실체(ousia)와의 관계에 있어서의 arete

이제까지의 논의에서, 희랍인들이 각 시대마다에서 열망하였던 arete의 개념과 플라톤이 생각한 그것의 개념과 동일성 및 차이성의 대강을 알 수 있었다. 플라톤은 한편으로는 전통적인 arete론을 계승하였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을 비판하며, 자기의 arete론을 제시한다. 그것이 국가와 영혼의 구조적 동일성의 관점에서 arete를 탐구하는 것이었고, 그때 국가와 영혼의 부분의 arete들 및 정의의 arete는 전체로서의 국가와 영혼의 善 내지 arete에 기여하는 것이었으며, 그런 한에서 부분의 arete들은 추구될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플라톤은 국가의 비유를 통해서 영혼의 arete를 탐구하는 것이 “정확성에 있어서 부족한 것”{504b}이라고 자기 비판하며, 이와 같이 “불완전한 것은 어떤 것이든 아무 것의 척도도 아니기 때문에”{504c} arete의 완벽한 탐구를 준비한다. 즉 플라톤은 국가에서의 arete를 윤곽 그림에 비유하여, 이제까지처럼, “arete들의 윤곽 그림을 바라보아서는 안되고 완벽하게 마무리 하여야 한다.”(504d)

플라톤에 따르면 arete를 완벽하게 조망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관심이 가시적 영역으로부터 지적 영역에로 전환되어야 한다. 즉 arete를 지적 대상인 idea 내지 eidos의 차원에서 이해해야 한다. 그런데 idea내지 eidos는 플라톤적인 존재이다. 즉 플라톤은 실체(ousia)를 idea 내지 eidos라고 표명하였다. 그러나 이 idea 내지 eidos라는 말은, 플라톤이 자기 식의 독특한 의미를 부여하기 이전부터 희랍사회에서 일상적 의미를 지니고 쓰이던 말이었다. 즉 그것은 형태, 모습, 모양, 외모 등을 의미하는 말이었다. 그 예로서 고르기아스는 eidos라는 말을 수사학에 적용했는데, 그때 그것은 단지 특정한 ‘유형의 말’의 나열을 의미할 뿐이었다. 또한 피타고라스 학파는 이 말로써 ‘가하학적 모형 혹은 형태를 지칭했다’ 플라톤은 “이와 같이 감각적 대상에 대해 쓰이던 말을 지적 대상에 전용하여 쓰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지적 대상, 즉 존재에로의 관심의 전환에서 플라톤적 arete론의 진면목이 드러난다. 즉 플라톤은 이제 소크라테스적인 arete의 윤리적 탐구의 단계를 넘어서서 존재론적 단계로 들어선다. 이를 플라톤은 “정의 그리고 이와 함께 우리들이 논의했던 것들(즉 지혜, 용기, 절제)이 최고의 것들이 아니고, 이것들보다 더 높은 단계의 것이 있다.”{504d}라고 하며, 그 바로 뒤에서 “선의 형상이야말로 가장 높은 단계에 있어서 배울 것이며, 바로 그것에 의해서 올하는 것들도 또한 그 밖에 이용되는 모든 것들도 유용하고 유익한 것들로 된다.”{505a}고 한다. 따라서 善의 형상과의 관계 속에서 그의 arete론은 완성된다. 그러나 선의 형상은 형상들 중의 한 특수한 경우이기 때문에, arete와 선의 형상과의 관계를 살피기 전에 arete와 형상 일반과의 관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arete와 형상은 모두 하나와 많음 중에서 하나와 관계한다. 즉 가시적 영역에는 아름다운 것들, 올바른 것들, 그밖의 다른 많은 것들이 있다. 그러나 지적 영역에는 아름다움 자체, 올바름(정의) 자체 등 “언제나 똑같은 방식으로 한결같은 상태로 있는 것”{484b}들이 각각 하나씩만 존재한다. 즉 플라톤은 arete의 종류는 한 가지이지만 나쁨(kakia)의 종류는 수없이 많다.“{445c}고 하며, 또 “아름다움은 하나가 있으며, 정의도 그리고 그 밖의 다른 것들도 역시 그러하다.”{479a}고 하며, arete가 하나와 관계함을 밝히고 있다. 이는 형상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즉 여러 arete들과 마찬가지로 “모든 형상들의 경우에도 그 각각은 그 자체로서는 하나이지만 행위들 및 물체들과의 결합에 의해, 그리고 상호간의 결합에 의해 어디에나 나타남으로써 그 각각이 많음으로 보인다.”{476a} 따라서 하나와 많음의 관계에서 각각의 arete들과 형상들이 동일하게 하나와 관계함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들 arete와 형상들은 그들의 종류들에 있어서, 각각 “하나인 것으로 취급됨으로써, 그 각각이 존재하는 것이라 칭하여 진다.”{507b} 따라서 플라톤에게 있어서 arete와 idea는 존재론적으로 동일한 것, 즉 지적 대상 내지 존재하는 것에 대한 표현이다. 이 지적 대상은 “완전히 존재하는 것이며, 따라서 완전히 인식된다.”{477a} 또한 이것은 “개별적인 감각적 대상의 관점에서 볼 때, 개별자들이 궁극적으로 성취하려고 노력하는 목표”, 즉 ‘본(paradeigma)’이 된다.

그런데 이러한 형상 이론의 의의는 인식이 arete를 위하여 필수적임을 설명하는 것이며, 형상들을 인식하는 목적은 훌륭한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플라톤은 이제 arete를 형상의 차원에서 이해하는 데, 이것은 선의 형상이라는 그의 독특한 개념에 의해서 제시된다.

플라톤에 있어서 선은 존재 중의 가장 밝은 부분으로서 모든 존재에 편재한 존재의 본질이다. 즉 모든 존재는 존재성과 더불어 도덕성을 지니며, 이 도덕성의 기원은 arete로부터이다. 즉 플라톤에 있어서의 선의 형상은 arete에 형이상학적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따라서 플라톤에 있어서 선의 형상이 갖는 의미는 이중적󰠏󰠏󰠏󰠏형이상학적인 동시에 도덕적󰠏󰠏󰠏󰠏이다. 이 선의 형상으로 말미암아 플라톤은 진실로 실재하는 하나, 즉 존재의 관점에서 도덕적 행위를 일관성 있게 고찰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희랍의 사상사에서 선이란 처음에는 어떠한 도덕적 특질도 포함하지 않았다. 희랍의 일반인들과 철학자들에게 선은 단지 욕구의 대상이라고 생각되었다. 그것은 가장 가질 만한 것이며, 따라서 이들이 가장 원한 것이었다. 이와 같은 선의 관념이 소크라테스에 이르러서는, 혼 속에 도덕적의 표준에 대한 앎(episteme)을 가리키는 것으로 되었으며, 플라톤의 선의 관념은 소크라테스의 도덕적 특질을 발전시킨 데에서 얻어진 것이다. 즉 소크라테스에 있어서 막연한 형태로 존재하는 도덕적 표준, 즉 어떤 것이 플라톤에 이르러서는 불변적이며 완전한 본으로서의 존재, 즉 형상으로 발전하였다.

그런데, 플라톤은 “선이 지적 영역에 있어서 지성(nous)과 사유되는 것들(ta noemata)에 대해서 갖는 바로 그런 관계를 해(ho hios)가 가시적 영역에 있어서 시각과 보이는 것들에 대해서 갖는다.”{508b-c}라고 하면서 선과 해를 비유한다. 여기서 비유되는 관계란 “해가 보이는 것들에 보이는 힘을 제공해 줄 뿐만 아니라, 그 스스로는 한갓 생성이 아니면서 또한 그것들에 생성과 성장, 그리고 영양을 제공해주듯, 인식되는 것들이 인식됨이 가능하게 되는 것은 선에 의해서일 뿐만 아니라, 그것들에 존재함(to einai)과 실재성이 부여됨도 그것에 의해서인”{509b} 그러한 관계이다. 즉 선은 “인식(episteme)과 진리(aletheia)의 원인(aitia)”{508b}이다. 그리고 이 선은 최고의 학문인 “변증술(dialektike)에 의해서 파악되는 것”{511b}으로서 “인식되는 영역에 있어서 최종적으로, 그리고 고심끝에 보게 되는 것이며, 이것은 일체의 것들에 있어서의 모든 옳고 아름다운 것들의 원인”{517b-c}이다.

이제 플라톤의 善의 지위에 대해 여러가지 해석이 주어지는데, 그 하나는 전체를 통합하는 무제약적 원리라는 것이며, ‘神性’이라는 해석도 있고, “영혼의 인식 및 갈망의 대상”이라 하는 등의 것이 그것이다. 이상의 여러 해석에서 최소한의 공통점은 선이 최고의 원리이며, 원인이라는 것이다. 선의 이같은 지위는 여타의 형상들에 대한 우월성으로 나타난다. 즉 이제 “선은 한갓 실체(ousia)가 아니라 지위와 힘에 있어서 실체를 또한 넘어서 있다.”{509b} 그러나 이러한 선의 형상의 실체에 대한 초월성 내지 우월성은 완전한 대상인 형상들 사이에서 또 다시 완전성의 정도의 차이를 설정해야 하는 어려움에 부닥친다. Field는 이 차이를 “실재하는 대상 자체 사이에 성립하는 상이한 차원이라기 보다는 그들에 대한 우리의 이해에 있어서의 상이한 차원일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이는 여타의 형상과 선의 형상 사이에 실제적으로는 완전성의 차이가 없으나, 플라톤 자신의 특정한 의욕이 그런 차이를 낳았음을 시사한다. 즉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윤리학의 과업을 이어받아 인간 행위에 대한 절대적인 기준을 마련하려 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선의 형상의 여타의 형상에 대한 우월성을 요청한 것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확립된 善은 플라톤에게 있어서도 “모든 영혼이 추구하고, 또 그 때문에 모든 것을 행하게 되는 것”{505d-e}이며, 이와 같은 것을 모른다면, 올바른 것들과 아름다운 것들이 도대체 어떤 점에서 가치있는 것들인지 알려지지 않은”{506a} 기준이며 본인 것이다. 즉 선의 형상의 우월성의 요청에 의하여, 인간 행위를 포함한 세계 일반에 관한 일원론적인 해석이 가능해진다.

Ⅳ. 맺음말

사람으로서의 훌륭함에 관한 고찰은 호메로스(homeros) 이래로 모든 시대마다 계속되어 온 것이었다. 그러기에 희랍인들의 역사는 적어도 그 정신사적 측면에서 볼진대 다름아닌 이 사람의 사람다움에 관한 추구 과정으로서의 역사라고 말할 수 있다.

사람의 사람됨을 그들은 언제나 사람다움의 관점에서 평가하려 했다. 참으로 사람의 사람다움이 어떤 것인가는 물론 그 시대에 따라 내용적으로는 달라지게 마련이다. 즉 그 시대가 용기를 필요로 하는 시대이면 그것은 용기이겠고, 정의를 필요로 하면 정의일 것이고, 기술을 필요로 하면 기술일 것이다.

이러한 arete개념에 소크라테스는 윤리적인 의미를 덧붙였으며, 플라톤은 이를 계승하는 한편, 형이상학적으로 정초함으로써 소크라테스가 열망했으나 이루지 못한 윤리학의 절대적 기준을 마련했다. 물론 이러한 작업은 소피스테스들의 윤리적 상대주의 내지 허무주의적 도전에 대한 응답이었다.

본 논문은 arete를 끊임없이 탐구해온 희랍의 정신사에서도 유독 빛나는, 즉 “훌륭히 사는 것, 인간의 진정한 행복내지 안녕 (eu prattein)의 의미에 대한 원천적 성찰의 계기를 마련해 주고자 한 플라톤 철학의 의도가 잘 나타난 그의 󰡔국가󰡕 편을 중심으로 arete개념을 고찰해 보았다.

󰡔국가󰡕편을 통해서 플라톤은 소피스테스들과도 다르고 소크라테스와도 다른 자신의 고유한 arete관을 제시한다. 이는 두 가지 단계로 진행된다. 즉 첫째, 국가와 혼과의 비유를 통한 arete의 탐구이며, 둘째, idea의 관점에서의 arete 탐구가 그것이다.

플라톤은 국가와 영혼의 구조는 똑같이 이성적 부분, 기개적 부분, 욕망의 부분의 세 부분으로 되어 있으며, 좋은 국가와 영혼에서 발견되어지는 arete는 이들 부분들의 arete는 이들 부분들의 arete들, 즉 지혜, 용기, 절제와 국가 또는 영혼의 부분들을 조화시키는 역할을 지닌 정의라는 arete, 이 네가지 arete로 구성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한편, 국가의 비유를 통한 arete 탐구는 불완전한 것이며, 따라서 플라톤의 arete론은 형이상학적 관점에 이르러서야 완성된다. 형이상학적인 arete의 표현은 ‘善의 형상’이며, 이를 통해서 플라톤은 세계와 인간 행위를 일관성 있게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즉 그는 세계와 인간(행위)을 선의 일관된 현현으로 본다. 이때 idea론은 그의 고유한 존재론으로서, arete의 개념과 선의 형상 개념의 매개자가 된다.

이상의 작업과정을 통하여 밝혀진 플라톤의 arete개념은 다음과 같다.

1. 󰡔국가󰡕편에서 밝힌 플라톤의 arete는 인간(내지 영혼)의 arete이다.

2. 플라톤 arete는 호메로스의 전통과 소크라테스의 arete의 일정 부분

을 계승하고 있으나, 그들과는 다른, 플라톤 자신의 고유한 관점에

입각하고 있다. 플라톤의 arete의 체계는 도덕과 형이상학이라는 이

중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3. 플라톤의 arete 개념은 그 자신의 고유한 존재론인 idea론과 결합함

으로써 선의 형상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낸다.

4. 선의 형상이라는 개념은 󰡔국가󰡕편에서 논리적으로 선재하는 본(para-

deigma)으로서, 이 대화편의 처음부터 끝까지에 걸쳐서 일관되게 선

에 관해서 주장하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5. 그렇지만 선의 형상 개념은 플라톤의 의욕이 지나친 감이 없지 않다.

즉 요청된 개념이다.

6. 플라톤의 arete개념은 전체의 입장을 한결같이 옹호하고 있다. 그것

은 선의 형상에서 완결되는데, 이 선의 형상이 전체를 총괄하는 기

능은 실체(ousia)를 초월하여 작용한다.

7. 플라톤이 arete 개념을 확정하는 과정에서 옹호한 전체론적 관점은

그 당시의 시대적 상황이 요청한 과제였다. 즉 플라톤의 작업은 소피

스테스들과의 이론 투쟁의 성격을 띈다.

※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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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박종현, 󰡔플라톤󰡕 대학고전총서 2, 서울대학교 출판부,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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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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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노양진, <플라톤에 있어서 이데아론의 기본구조>, 전남대학교 대학원 석사

학위 논문, 1983

10. 이정호, <플라톤의 대화편 폴리테이아 Ⅰ의 분석>, {철학논구} 12집, 서울대

학교 철학과, 1984

http://blog.naver.com/mdpsjk/20021559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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