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의 아렌트주의; 후기 근대민주주의의 유목적 방법 서설, 서유경

‘제3의 아렌트주의; 후기 근대민주주의의 유목적 방법 서설

  • 연구목표

한나 아렌트는 하나의 정교한 정치철학 이론체계를 제시한 것도 아니지만 20세기의 가장 탁월한 정치철학자 중 한 명으로 일컬어진다. 사실 그는 서구 철학계와 사회과학계를 당혹시키는 이설(異說)들을 설파하고 뜨거운 논쟁(論爭)의 중심에 있었던 사상가로서 더 유명하다. 그럼에도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그가 설파한 ‘이설’들이 세기가 바뀐 현재까지도 여전히 우리 곁에서 꾸준한 논쟁을 자극하는 저력을 과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후기 근대적(late modern) 삶의 조건 하에서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심미적인 것(the aesthetical)’에 대한 새로운 관심의 한 가운데서 우리는 다시금 아렌트의 정치미학적 패러다임이 담지한 이론적 잠재성을 재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사실 그의 저작들은 하나같이 기성 정치철학의 사유전통들에 뿌리을 두고 있는 보편적 해석을 거부하고 있다. 예컨대, 아렌트에 있어 정치의 존재 이유는 통상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국민의 안전과 복리를 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시민의 개별적인 자유의 실현으로 이해되고 있으며, 그런 까닭에 정치는 이러한 ‘시민적’ 자유의 행사를 보장하기 위한 법적, 제도적 장치와 동일한 것으로 그 의미가 바뀌게 된다. 아렌트에게 “정치의 존재 이유”는 바로 이러한  자유의 수호이며, 그는 이러한 자유가 “정치행위”의 수행을 통해서만 구현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자유의 완벽한 구현은 정치행위의 완벽한 수행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여기서 우리는 아렌트가 제시하는 정치행위의 ‘심미성’ 측면에 대한 이해를 얻게 되며, 동시에 아렌트 정치철학이 ‘정치미학’으로 독해되어야 하는 당위를 공감하게 된다. 연구자가 제시하는 차제의 저술작업은 바로 이러한 입장을 “제3의 아렌트주의”로 규정하고, 보다 체계적인 이론화 시도를 하고자 하는 것이다.
다른 한편, 아렌트가 1961년 이스라엘 법정에서 있었던 아이히만 (A. Eichmann) 재판을 참관한 이후 내놓은 “악의 평범성” 주장, 그리고 인간의 사유 능력을 정치적 능력과 동일시함으로써 정치행위와 사유행위, 즉 정치와 철학이 동일한 ‘정치적’ 기능을 담지한다고 설파한 점 등은 일반의 고정관념을 완전히 깨는 급진적인 사유로 여겨졌다. 아렌트 연구자들은 이러한 그의 사유의 특성과 관련하여 그를 “반정초주의(anti-foundationalism)” 철학자로 일컫는다. 연구자가 저술하려는 책의 제목 “제3의 아렌트주의: 후기 근대 민주주의의 유목적 윤리학 방법서설”은 바로 아렌트의 ‘반정초주의’에 대한 심층 연구서가 될 것이다. 주지하듯이 반정초주의의 근간은 기성의 법과 제도, 이념과 학파, 도덕과 관습 일체에 의문을 제기하는 태도이며, 늘 새로운 것을 정초하는 “초인(Ubermensche)”의 모험 정신이다. 이런 점에서 반정초주의의 근대적 시조는 다름 아닌 니체(Nietzsche)이며, 그 반대편에는 최근 사망한 프랑스의 해체주의자 데리다(Derrida)가 서 있다.
연구자가 보기에 정치철학자로서 아렌트 자신의 입장은 니체와 데리다의 중간 어디쯤에 놓일 수 있고, 근래 한창 유명세를 타고 있는 버틀러(Judith Butler) 같은 이론가가 주장하는 ‘입헌적 구성주의(constitutional constructivism)’의 성격을 견지하고 있다. 사실상, 생전 칸트와 니체에 매료되었던 아렌트의 ‘칸트주의’와 ‘니체주의’는 곧 그의 ‘심미주의’, 나아가 그가 선보이는 ‘정치미학(political aesthetics)’의 원천이 되고 있다. 이 점은 특히 근래 니체적 정향을 보이는 탈근대 정치이론가들이 아렌트의 논의와 접점을 갖게 되는 충분한 이유를 제공한다. 이른바 느슨한 범주로서 “아렌트주의자”로 일컬어지는 사람들이 요즘 학계에서 “심미적 전환(an aesthetic turn)”이라고 부르는 새로운 연구 기류를 추동하는 주축세력이라는 사실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아울러 연구자는 최근 학계의 또 하나의 분명한 상승기류인 “유목주의(nomadism)”에 주목하고 있는데, 이는 아렌트의 반정초주의적 접근법과 결코 떼어서 설명할 수 없다. 신, 전통, 역사와 같은 기성의 판단기준이 모두 사라졌을 때, 다시 말해 그러한 기준들의 정당성을 우리가 인정하지 않는 경우에 과연 우리는 무엇에 근거하여 판단할 수 있는가? 우리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발견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우선 아렌트의 의사소통 패러다임이 다름 아닌 ‘유목적’ 진리를 정초하는 수단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 이 점에서 연구자는 책의 III부에서 아렌트의 정치미학 패러다임에 관해 상세한 설명을 제공할 예정이며, 이것을 우리 시대 후기 근대적 민주주의의  ‘유목적 윤리학’의 방법서설로서 적극적으로 해석할 것이다

  • 기대효과

차제의〈제3의 아렌트주의: 후기 근대 민주주의의 유목적 윤리학 방법서설〉은 연구자가 그간 축적해온 개인적 연구성과와 그 과정에서 깨우치게 된 아렌트 정치철학의 다채로운 노선들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연구자의 오랜 화두인 아렌트 정치미학에 대한 보다 완성된 기술(記述)체계를 제시하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뿐만 아니라, 아렌트 전공 연구자로서 첫 번째 단독저서인 동시에 연구의 중간 결산이라는 묵직한 의미가 추가되는 중요한 작업이 될 것이다. 또한 이 작업은 국내외 아렌트 연구의 최근 성과들을 종합적으로 제시하여 추후 아렌트 정치철학 연구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러한 기대의 배경에는 몇 가지 분명한 이유가 있다.
첫째, 점점 층이 두터워지고 있는 국내 아렌트의 독자와 연구자들을 고려할 때 국내 학자가 모국어로 쓴 본격적인 아렌트 정치철학서의 잠재적 기여도와 영향력은 매우 클 것으로 생각된다.
둘째, 이 저술은 해외 아렌트 연구의 동향과 논점들을 면밀히 검토한 가운데 기획되었기 때문에 새로운 시각의 아렌트주의적 논의를 서구가 독점하고 있는 아렌트 정치철학의 논의 지평에 진입시키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추후 이 저술의 영역을 시도해볼 필요성이 있으며, 저술과정에서 적당한 시점을 택하여 그러한 기회를 타진해볼 필요도 있다. 그러한 목적을 위해서는 저술의 일부, 특히 IV부의 논의 부분 같은 것을 논문 형태로 발전시켜 해외 관련 영어 저널에 기고하는 길을 모색하여 국외 아렌트 연구자들과 의견교환을 시도하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셋째, 이 저서는 무엇보다도 정치철학에 있어 ‘아렌트주의’라는 것의 실체를 규명하는 본격적인 시도인 동시에 탈근대 정치철학 전반에 대한 이해를 반영하고 있으므로, 후기 근대 민주주의를 둘러싼 정치철학적 이해의 폭을 확장하는 데 결정적인 이론적 기여를 하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

  • 연구요약

연구자가 장차 기술하게 될 <제3의 아렌트주의: 후기 근대 민주주의의 유목적 윤리학 방법서설〉은 아렌트주의자로서 연구자가 지난 10여년간 집적시킨 파편화된 아렌트 연구성과들을 모종의 이론적 체계와 논리적 정합성을 갖춘 한 권의 책으로 묶어내려는 목적에서 기획되었다. 하지만 연구자는 기존의 연구물들을 편집하는 방식을 탈피하여 완전히 새로운 집필을 할 계획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두 가지 있다.
우선, 이 저술은 하나의 통시적 체계를 암묵적으로 상정하고 있기 때문인데, I부는 아렌트와 그리스 중심의 고대철학과의 관련성을 그의 참여민주주의 정치 패러다임으로, II부는 로마 중심의 중세철학과의 관련성을 그의 정치공동체 문화 패러다임으로 , III부는 독일 관념철학과의 관련성을 그의 정치미학 패러다임으로 응축해내고자 한다. 따라서 기존의 발표 논문들은 단지 ‘해부된’ 형태로만 이 저술에 편입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둘째, 이 저술은 I부, II부, III부에서 체계적으로 기술된 논의들을 IV부에서 종합하여 발전시키는 방식으로 “제3의 아렌트주의(Arendtianism),” 즉 아렌트를 독해하는 제3의 방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따라서 저술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주제와 논의의 존재가 절대적 중요성을 갖는다. 연구자가 부각시키고자 하는 ‘제3의 아렌트주의’ 주장의 세 가지 핵심주제 축은 첫째로 아렌트에 있어 정치적인 것(the political), 둘째로 문화적인 것(the cultural), 그리고 끝으로 심미적인 것(the aesthetical)이다.
바꿔 말해서, 연구자는 아렌트의 다양한 논의들 속에서 이 주제들이 각기 하나의 논의 축으로 작동하며, 후기로 갈수록 그의 논의 속에서 함께 작동하는 모습을 띤다고 암묵적으로 가정한다. 예컨대, 고대 희랍의 ‘활동적인 삶(vita activa)’ 즉 프락시스(praxis) 개념에 매료되었던 시점에는 정치적인 것의 축을 강조했다. 로마의 쿨트라 아니미(cultra animi)와 원로원의 권위(auctoritas)에 빠져 있던 시절에는 문화적인 것의 축을 상대적으로 강조했지만, 앞의 정치적인 것의 축이 작동한다는 전제 위에서 그러했다. 생애 말년 아렌트가 ‘철학적 회귀’를 하던 시점에는 직접적인 정치참여보다 관객으로서 판단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심미적인 것을 강조하였지만, 이는 정치적인 것과 문화적인 것을 전제로 한 주장이었다.
이러한 연구자의 관점은 IV부 제3의 아렌트주의에서 구체적으로 제시될 것이다. 연구자는 하버마스주의적 관점을 견지하는 벤하비브(S. Benhabib)의 아렌트주의를 제1 노선, 즉 의사소통적 행위 패러다임 노선과, 푸코주의적 시각에서 아렌트의 수행적 행위 패러다임 노선의 논의에 풍요로움을 배가하고 있는 버틀러(J. Butler)의 아렌트주의를 제2 노선으로 지칭할 것이다. 그러고 나서, 아렌트 정치철학을 윤리학적 시선으로 독해하는 연구자의 방식을 제3의 아렌트주의 노선으로 앞의 제1 노선과 제2 노선에 대비시키고자 한다.
연구자의 “제3의 아렌트주의” 독해는 후기 근대 민주주의의 유목적 윤리를 정초하는 이론적 시사를 제공한다는 데서 그것의 본질적인 정치철학적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제3의 아렌트주의’는 III부에서 이미 설명된 아렌트 정치미학 패러다임의 현실정치적 유효성에 관심을 집중하며, 근래 부상하고 있는 탈근대적 정치심리학, 즉 후기 근대 민주주의의 “심미적 전환(an aesthetic turn)”이라는 시대적 요구에 적극 편승한 논의 방식이다. 이러한 논의 방식은 하버마스의 의사소통 패러다임이 결핍하는 파토스(pathos) 차원을 강조하므로 단순한 의사소통 패러다임이 아닌 ‘심미적’ 의사소통 패러다임을 추천하며, ‘심미적’ 판단도 나름의 정당화 요인을 내재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다른 한편, 이것이 추천하거나 주장하는 것들 중에 다른 어떤 것보다 중요한 사항은 그것이 진리의 유목성을 수용한다는 점이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후기 근대 민주주의적 상황에서는 정치적 결정의 단위가 국가공동체로만 한정되지는 않는다. 국제사회에서 중요한 정치적 결정이 이루어지는 행태를 관찰해보면 이 점은 분명해진다. 한 국가의 법과 규범에 저촉되지 않는 초국가적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의사소통의 행위들은 어떻게 이해되고 판단되는가? 바로 이 대목에서 요구되는 것이 ‘유목적 윤리학’이며, ‘심미적 판단’이다. 결국 연구자가 밝히고자 하는 바는 ‘제3의 아렌트주의’가 이러한 유목적 윤리학과 심미적 판단에 이론적 정당성을 부여함으로써 후기 근대 민주주의 정치문화의 외연을 넓혀줄 뿐 아니라, 그것에 대한 우리의 심층적 이해에 크게 공헌한다는 점이다.

http://www.krf.or.kr/RAapp/ApplySubjectAdditonal_19_alone.jsi?projectCode=812&projectYear=2007&projectTime=1&subjectNo=A0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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