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 위대성 Arete 덕 Virtus

아레테(arete)와 테크네(techne)는 아리스토텔레스 이전부터 논의되어온 철학의 주요 관심사였다. 일반적으로 아레테(arete)는 덕, 탁월성으로 번역을 하고, 테크네(techne)는 기술로 번역되어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그리스어 아레테와 테크네는 일반적으로 번역되는 의미보다 더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 개념이다. 이 연구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아레테와 테크네 개념을 고찰하여 현대 스포츠에서의 신체의 아레테와 테크네의 의미를 해석하고자 하였다. 아레테와 테크네의 개념은 호메로스, 소피스트,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있어 조금씩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공통점은 탁월성, 덕, 기술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아레테와 테크네는 각각 떨어져 있는 개념이 아니라 서로 협력적인 관계에 있는 개념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구체적으로 신체의 아레테를 `건강`,`미`,`강함`,`크기`,`운동 경기에서의 능력`의 5가지로 명시하였다. 이 5가지의 신체의 아레테는 자연적인 신체의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아레테를 의미하며, 또한 이 신체의 아레테는 테크네의 도움 없이는 현실화되기 어렵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현대 스포츠에서 최첨단의 과학의 기술이 없이는 경기력 향상이나 기록단축을 가져오기 어려운 실정이다. 따라서 운동선수의 잠재적인 신체의 아레테에 최첨단 과학기술인 테크네의 접목은 현대 스포츠에서 제외될 수 없는 매우 중요한 요소로서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체육철학 : 신체의 아레테(arete)와 테크네(techne) -아리스토텔레스를 중심으로-

================================================================

전문성이란 자신의 몸(마음도 포함)의 기능이 완벽하게 발휘된 상태, 즉 기능의 발휘가 최고의 경지에 이르게 된 상태를 말하며 이러한 경지를 아레테(Arete)라고 부른다. 아레테 상태에 다다른 인간의 행위는 그 실천 행위를 한 걸음 물러서서 바라 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게 된다. 그 마음의 여유란 결국 실천 속에서 성찰(reflection in action)할 수 있는 힘이 극대화된 상태를 경험하게 된다. 아레테는 이상적 경지(being)를 말하는 용어 이면서 동시에 끊임없이 되어가는 과정(becoming)을 지칭하는 용어로 이해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완성된 전문성이라는 것은 이념형(ideal type)으로 존재하는 것이지 현실화될 수 있는 완벽성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http://monologue82.tistory.com/entry/%EC%95%84%EB%A0%88%ED%85%8CArete%EB%A5%BC-%EA%BF%88%EA%BE%B8%EB%A9%B0

====================================================

개념 ㅡ 뿌리를 찾아서! 소크라테스의 덕(德)

#그리스 철학에서 드러나는 덕

우리가 덕이라고 부르는 말은 원래 그리스어의 , 라틴어의 virtus였다. 그런데 이 말의 원래 뜻은 ‘힘’ 이었다. 힘이란

것은 뛰어남과 연관된다. 그래서 이 arete개념은 힘 개념과 더불어 뛰어남과 연관된다. 그런데 이 개념은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라 오랜 과정을 거쳐서 소크라테스에 이르러 가지고 마침내 성립된 개념이다.

#무엇이 덕인가? 최초의 덕, 용기(andreia)

그리스 시대 사람들에게는 덕이 있다고 하는 것은 용기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 시대 초기의 훌륭한 사람들이라 지칭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귀족-전사들이었다. 호메로스의 일리아드, 오디세이에 등장하는 아킬레우스, 아가멤논, 아가멤논의 동

생인 메넬라오스, 트로이의 헥토르, 아이아스, 디오메네스, 이런 사람들이 귀족-전사들이다. 근대의 귀족과 다르게 이 사람

들은 전사로서 남들보다 뛰어난 용기를 갖고 있었고, 그것이 바로 덕이라고 여겨졌다

“내게도 똑같은 운명이 마련되어 있다면 나도 또 그처럼 죽은 후 누워 있을 것입니다.

-시체가 되어서- 허나 지금은 훌륭한 명성을 얻고 싶습니다.”

– 아킬레우스 – 전쟁에 나가면 죽는다는 어머니의 말에 답하며…

“이제 운명이 나를 따라잡았구나.”
– 헥토르 – 부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트로이를 버릴 수 없어서 아킬레우스와 맞붙게 되었을 때

#덕(德) 개념의 다원화

그런데 고대 사회가 분화되고 복잡해지면서 기존의 귀족-전사와 평민이라고 하는 이분법적인 구도가 다양한 직업집단으로

변화하면서‘덕이 뭐냐?’라는 물음도 다원화 된다. 예전에는 ‘덕=용기’였지만, 이제는 덕들 가운데 하나가 용기가 되었다. 상

인들의 덕은 절제하는 것이고, 정치가의 덕은 지혜로운 것이고, 아버지의 덕은 인자한 것이고, 이런 식으로 덕이 다 달라지

게 된다.
그러면서 덕 개념이 상대화 된 것이다. 이후에 페르시아 전쟁을 겪으면서 그리스에서는 전통 가치를 부정하며 상대주의적

사고를 하는 소피스트들이 나타나면서 덕의 개념은 확장되고 다원화 되었다. 반면 소크라테스는 뭔가 절대적인 것, 객관적

인 것을 찾으려는 노력을 했다.
“몸과 내 건강과의 관계는 내 마음과 덕의 관계와 같다.” – 피타고라스

#소크라테스의 덕

소크라테스가 한 말 중에 ‘지행합일(知行合一)’이라는 말이 있다. 이 뜻은 ‘말과 행동을 일치시키라’는 당위적 이야기가 아니

다. 소크라테스가 지행합일이라 할 때는 ‘지식과 덕이 일치한다’는 것이다. 쉽게 얘기하면,‘당신이 진정 ~을 안다면 거기에

대해서 덕을 갖게 된다’는 뜻이다. 당신이 진정 용기가 뭔지 안다면 용기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물론 안다고 해서 아는 것을 누구나 실천하지 않는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자명한 사실이다. 그런데 왜 소크라테스는 그와 같

은 주장을 했을까? 여기에 포인트는 바로 ‘안다’라고 하는 개념에 있다.소크라테스의 ‘안다’라는 개념은 그것을 건성으로, 언

어로, 기호로 안다는 게 아니다. 또한 그의 ‘안다’라는 개념은 우리가 ‘자전거 타는 방법을 안다’거나 ‘모짜르트를 안다’라는 것

과도 구분이 된다.
진짜 앎은 몸으로, 체험으로 경험한 앎이라는 것이다.상투적으로 아는 앎을 몸 바쳐서, 체험을 했을 때 경험하는 ‘아~ 그렇구

나!’ 하는게 바로 소크라테스가 말하는 ‘안다’의 개념이다. 그런 의미에서 알았을 때 정말 그러한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너 자신을 알아라! 네가 위대한 존재라는 것을.

진실로 알면 그렇게 돼. 그것이 바로 영혼을 가진 존재의 덕이야.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고 했을 때는 ‘너 정신 차려라!’, ‘까불지 마!’ 이런 의미가 아니다. 그 반대다. ‘네가 얼마나 대단

한지를 알라’는 뜻이다. ‘너는 인간이다. 사랑하고, 생각할 줄 알고, 책 읽을 줄 알고, 토론할 줄 아는 위대한 존재인데 왜 그렇

게 살아?’라는 뜻이다.
그래서 이 말은 결국 ‘너는 영혼을 가진 존재다. 한낱 동물이 아니야. 네 영혼을 돌아봐’라는 뜻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이러한

영혼을 가진 존재로서 인간은 지덕합일을 이룰 때 훌륭한 존재, 뛰어난 존재, 즉 덕(arete)을 가진 존재가 된다.

***

이정우 교수<개념ㅡ뿌리들 1:덕, 선. 악, 국가, 정의 중 >에서

http://blog.naver.com/lavender002/70035277630

===========================================================

2.1. 비르투스(Virtus)의 기원

고대 로마에서 포르투나(Fortuna)는 행운의 여신이자 행운 그 자체를 의미했다. 그리고 본래 행운이란 계산과 통제가 불가능한 불확정적 성격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포르투나에는 또한 우연의 의미도 담겨 있었다. 포르투나의 복합적 의미는 그 어원을 살펴봤을 때 더 잘 드러난다. 어원적으로 봤을 때 라틴어 ‘fortuna’는 생겨나게 한다는 의미의 ‘ferre’를 어원으로 가진 명사 ‘fors’의 형용사형이다. 같은 행운의 여신인 그리스의 티케(Tyche)역시 ‘성공하다’, ‘성취하다’, 혹은 ‘잇따라 일어나다’(to succed), ‘달성하다’(to attain)는 의미에서 비롯됐다. 이러한 측면에서 봤을 때 로마시대의 포르투나는 행운이라는 뜻과 함께 우연적 요소라는 의미도 포함된, 인간의 의지와 관계없이 일어나는 어떤 성취나 결과를 의미했다고 볼 수 있다(박영철 1988, 102). 이러한 의미에 걸맞게, 여신 포르투나의 상징물들은 번영을 부르는 풍요의 뿔피리, 인간의 운명을 결정하는 방향타, 그리고 운명의 부침을 의미하는 수레바퀴였다.

로마인들은 이 우연적이고 불확정적인 행운인 포르투나를 효과적이고 당당하게 다뤄야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다고 믿었다. 또한 그들은 그러한 일을 할 수 있는 적절한 역량을 ‘비르투스’(virtus)라고 불렀다. 남성을 의미하는 비르(vir)에서 비롯된 이 단어에는, 어원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남자다움’의 함의가 내포되어 있었다. 기실 비르투스는 적과 불행에 맞서는 용맹성, 현실적 문제를 중시하는 실질성, 삶에 대한 적극성등의 의미가 포함된, 건국 초기 로마의 정치 군사적 지배계급의 에토스(ethos)였다(Pocock 2011, 97). 또한 이후에는 제국으로의 성장을 가능케 한 군사·정치적 역량의 총체(주1) 즉 로마의 힘과 역량을 의미하게 되었다(김경희 2004, 232). 따라서 로마인들에게 비르투스는 운명의 ‘여신’ 포르투나와 대비되어 예측 불가능한 삶에서의 성공을 담보하는 ‘남성적’ 자질로 여겨졌다. 행운의 여신은 때로는 영광을, 때로는 몰락을 가져오는 다소 변덕스러운 존재이지만, 인간은 비르투스를 갖춤으로써 그런 변덕에 일정 정도 대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비르투스는 그리스 문물의 본격적인 도입과 함께 유사한 그리스 단어였던 아레테(arete)와 의미상의 변화를 공유하게 됐다. 흔히 ‘덕’ 혹은 ‘사람됨’으로 번역되는 아레테는 본래 모든 사물이 특유의 기능과 구실을 충족하여 이를 수 있는 훌륭하고 좋은 상태를 의미했다. 그러나 도시국가의 시민이라는 정치적 맥락과 관련되어, 이 개념은 ‘시민적 탁월성’ 즉 다른 시민들에 의해 존경받고 그들에 대한 권위를 가지는 어떤 품성이란 의미를 갖고 있었으며, 또한 플라톤 철학의 영향에 따라 훌륭한 삶을 완성하는 윤리적 기초라는 의미도 갖고 있었다(주2). 의미와 쓰임새가 거의 흡사한 단어인 아레테는 비르투스에 복합적 의미를 더해주었다. 이제 비르투스는 아레테와 똑같이 정치적, 윤리적 의미를 가진 개념이 되었다. 그것은 어떤 요소가 가진 특유의 능력 혹은 기능, 정치적 맥락에서 효과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역량, 그리고 인간을 완성시키는 윤리적 선을 의미했다(Pocock 2011, 98).

이러한 지적 토대 위에서, 로마 사상가들은 저마다 포르투나의 변덕에 대비하기 위한 비르투스의 목록을 작성했다. 철학자이자 정치가였던 키케로의 저술들은 정치적이면서 또한 윤리적인 비르투스의 개념을 잘 드러낸다. <투스쿨룸의 대화>(Tusculanae Disputationes)에서 키케로는 비르투스는 남자다운 남자(vir virtutis)가 되기 위해 갖춰야할 필수적인 자질이며, 따라서 교육의 목적은 비르투스를 기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Skinner 1993, 53). 그가 말한 ‘남자다운 남자’는 어려움에 굴복하지 않는 용기와 자제력, 사물을 인식할 수 있는 철학적 지혜, 그리고 지혜를 활용할 줄 아는 재주를 갖춘 존재였다. 특히 마지막의 재주 때문에, 키케로는 수사학을 매우 중시했다. 키케로는 비르투스와 포르투나의 문제를 또 다른 저서인 <의무론>(De Officiis)에서 좀 더 자세히 다뤘다. 여기서 그는 진정한 남성이 갖춰야 할 것으로 절제, 용기, 지혜, 정의의 기본적인 네 가지 비르투스와 정직, 관대함, 관후함이라는 추가적인 비르투스를 제시한다. 그리고 이렇게 비르투스를 분류한 뒤 키케로는 운명의 여신의 변덕과 그 대응책의 문제를 논한다. 그는 행운의 여신이 우리에게 미소를 지을 때라도 결코 자만해선 안되며, 인간사의 허망함과 행운의 여신의 변덕을 잊어도 안된다고 충고한다(Cicero 2006, 72). 나아가 그는 잘못을 저지르는 것은 결코 유익하지 않으며, 선한 사람이 되는 것은 도덕적으로 선한 동시에 유익하기도 한 일이라고 설명한다(Cicero 2006, 214). 여신의 은총을 사기 위해서는, 즉 영광스럽고 성공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는 도덕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 <의무론>에서 키케로가 펼치는 핵심적 주장이다. 도덕적인 것만이 유익하고, 도덕적인 방법만이 목표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다시 말하자면, 포르투나로 대표되는 인간사의 불확정성은 정의, 정직, 관대함 등의 윤리적 행위를 통해서만 극복할 수 있다는 견해이기도 했다.

**

주1)

티투스 황제(39~81)의 개선을 축하하기 위해 건립된 ‘티투스 황제 개선문’(Arco di Tito)에 황제의 마차를 인도하는 ‘비르투스 여신’이 조각되어 있다는 사실에서 이 여신이 로마의 군사·정치적 역량 자체를 상징하기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주2)

아레테의 의미에 대해서는 김태경. “플라톤에서 사람됨과 훌륭한 삶”. 2001. 철학 Vol.68 참조
**

김경희. 2004. “‘로마의 위대한 힘(Virtus romana)’ 개념을 통해 본 이탈리아 르네상스 초기 인문주의자들의 정치사상: 페트라르카와 살루타티를 중심으로”. 한국정치연구, Vol.13

박영철. 1988. “마키아벨리 사상에 있어서의 ‘fortuna’ 개념”. 동국사학, Vol.22

Cicero, Marcus Tullius 저. 허승일 역. 2006. <의무론>. 파주: 서광사.

Pocock, J. G. A. 저. 곽차섭 역. 2011. <마키아벨리언 모먼트Ⅰ>. 파주: 나남.

Skinner, Quentin 외 저. 강정인 편역. 1993. <마키아벨리의 이해>. 서울: 문학과 지성사.

http://dalwoo.egloos.com/m/5508565

Advertisements

Leave a Reply

Fill in your details below or click an icon to log in:

WordPress.com Log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WordPress.com account. Log Out / Change )

Twitter picture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Twitter account. Log Out / Change )

Facebook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Facebook account. Log Out / Change )

Google+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Google+ account. Log Out / Change )

Connecting to %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