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 민주적 공공성 : 하버마스와 아렌트를 넘어서, 사이토 준이치

민주적 공공성,  사이토 준이치 지음 | 류수연|윤미란|윤대석 옮김,  이음 2009

– 센(Amartya Sen)의 말을 빌려 빈곤을 ‘박탈’로 정의한다면 그 ‘박탈’ 가운데 가장 중대한 것은 인간관계의 박탈. 사회 현상에 대한 풀 길 없는 불만과 울분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어떤 방향으로 사회를 바로 세워야 할 것인지에 대해 시간을 가지고 생각하고 논의하는 조건이 희박해짐. 이러한 상황은 공공의 논의에 기반한 민주적인 의사 형성이 아니라 포퓰리즘이나 내셔널리즘의 대두를 초래하기 쉽다.

– 공공성은 ‘민주적 정통성'(democratic legitimacy) 및 ‘민주적 통제'(democratic control)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민주주의와 관련.

– ‘민주적 정통성’에 대해서 말하면, 정치적인 의사결정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되는 모든 관계자(이미 그것은 국민만을 가리키지 않음)가 의사형성 과정에서 배제되지 않는(비배제성이라는 의미에서의 공개성이 확립) 것이 그 의사결정이 정통성을 얻기 위한 첫째 조건. 민주적 정통성의 둘째 조건은 공공적 이유(public reason)에 의한 정당화.

– ‘민주적 통제’는 국가의 활동(공권력의 행사)이 공공적인 의사형성─의사결정에 따르고 있는지를 시민이 감시하는 활동. 국가에 의한 권력 남용을 제어하는 공공성은 정보의 공개를 당연한 것으로 요구하고 그것에 기반하여 정부에 설명책임(accountability)을 요구.

– ‘능동적 시민성'(active citizenship)(시민사회에 활력을 불어넣어 그것을 이용하려는 정책)의 노선에 따라, 형무소의 운영 일부가 민간에 위탁되는 등 일본에서도 공무의 민영화가 진행되고 있고, 지역 커뮤니티에서 자치의 활성화가 좋든 나쁘든 중요시되고 있다.

– 자유가 출현했다는 것은 [……] 그들이 ‘도전자’가 되고 자기 삶의 이니셔티브(initiative)를 쥐게 된 결과, 부지불식간에 자신들 사이에 자유가 출현할 수 있는 공공적 공간(public space)을 창조하기 시작했기 때문.

– 공공적 공간은 시각으로서의 자유가 말이나 행위라는 모습을 띠고 우리 앞에 나타나는 공간.

– 공공적 공간은 모든 사람들의 ‘자리’=’장소’가 마련되어 있는 공간.

– 사적인 삶에서 박탈된 것은 타자의 존재이다.

– 버림받은 사람들의 문제는 그들이 자기 자신의 ‘존재의의’를 스스로 의심하는 데 있다. ‘사적’으로 사는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 자신의 ‘현실성’에 의심을 품게 한다. 그것은 자기가 잉여자라는 감각을 불러일으킬 것. 잉여자란 세상에 전혀 속하지 않음을 의미.

– 쓸모가 있는가 하는 ‘공리주의’적인 척도로 가늠하는 한, 이 세계는 ‘잉여자’로 넘쳐난다.

– 공공적 공간이란 자신의 ‘행위’와 ‘의견’에 대하여 응답을 받는 공간. 모든 ‘공리주의’적 사고는 이 공간 안에서는 효력을 잃는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은 다른 것으로 환원할 수 없는 ‘독특한'(unique) 것이기 때문.

– 국가에 관계된 공적인(official) 것.

– 특정한 누군가가 아니라 모든 사람들과 관계된 공통적인 것(common). 공통의 이익·재산, 공통적으로 타당한 규범, 공통의 관심사 같은 것. 공공의 복지, 공익, 공동의 질서, 공공심. 이 경우와 대비되는 것은 사권, 사리·사익, 사심 등.

–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open). 공공연함·정보공개·공원. 비밀, 프라이버시 같은 것과 대비.

– 세 가지 의미의 ‘공공성’이 서로 항쟁하는 관계. 예를 들면 국가의 행정 활동으로서의 ‘공공사업’은 실질적인 ‘공공성'(publicness, 공익성)이라는 측면에서 현재 비판당하고 있고, 국가 활동이 항상 ‘공개성'(openness)을 거부하려는 경향을 강하게 가진다.

– 복수형으로 다룰 수 있는 ‘공공’. 일정한 사람들 사이에 형성되는 논의의 공간. ‘공공권'(영어에서는 ‘publics’).

– ‘공공권’이 특정한 사람들 사이의 담론 공간이라면 ‘공공적 공간(영역)’은 불특정다수에 의해 짜여진 담론의 공간. 찰스 테일러(Charles Taylor)의 표현을 사용하자면, ‘공공권’은 ‘특정한 장소를 가진'(topical) 공간, ‘공공적 공간’은 ‘특정한 장소를 넘어선'(metatopical) 공간.

* ‘공공성’을 둘러싼 최근의 담론

– 국가 활동의 ‘공공성’에 대한 비판적인 문제의식은 버블 붕괴 후 국가의 재정 파탄이 공공연하게 드러나면서 일반적으로 널리 공유. 사람들 사이에 생태학적인 의식이 침투하기도 하여 공공사업의 공익성은 의문시.

– 1990년대 후반 각지의 주민투표에서 볼 수 있듯이, ‘시민적 공공성’은 ‘공공성'(공익성)을 정의할 권리를 국가의 독점으로부터 탈환하기 시작.

– ‘공공성’을 내셔널리즘을 통해 다시 정의하려는 경향.

– ‘공공성’을 공동체의 연장선상에서 오로지 ‘국민공동체’라고 이해하는 점.

– 1980년대 영미에서 등장한 공동체주의(communitarianism)의 용어를 원용. 공동체주의는 확실히 공동체의 성원이 공유해야 할 ‘공동선'(common good)을 적극적으로 정의하려고 하지만, 공동체주의에서 말하는 공동체는 어디까지나 비국가적인 공동체. 공동체주의는 여러 공동체를 단위로 하는 다문화주의를 적극적으로 옹호.

– ‘시민적 덕성’은 바로 ‘국민도덕’. 국민이 사익이나 사권의 주장을 넘어서 ‘공공'(res publica)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하지만, 그 ‘공공’의 내막은 오로지 국가의 안전보장이나 공공질서의 방위.

– ‘공화주의'(republicanism). 정확하게는 네오내셔널리즘(혹은 신보수주의).

– ‘공공성'(공익)을 국익과 동일시하고 글로벌리제이션(globalization)의 조건 하에서 일본이 국제 경쟁, 곧 ‘경제전쟁’에서 승리하기를 바라는 경제적인 내셔널리즘과도 친화적인 관계. 글로벌리즘에는 내셔널리즘의 부흥으로써 대항하라는 기본자세가 공유.

* 공공성과 공동체

– 공동체가 닫힌 영역을 형성하는 데 반해서, 공공성은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공간. ‘바깥’을 형상화함으로써 ‘안’을 형상화하는 공동체에는 이 조건이 결여.

– 공공성은 공동체처럼 균질한 가치로 채워진 공간이 아니다. 공공성은 복수의 가치·의견 ‘사이’에서 생성되는 공간.

– 정체성의 공간이 아닌 공공성은 공동체처럼 일원적·배타적인 귀속(belonging)을 요구하지 않는다. 공공적인 것에 대한 헌신, 혹은 충성이라는 말은 명백한 형용모순. 공공성의 공간에서는 사람들이 복수의 집단이나 조직에 다원적으로 관여하는 것(affiliations)이 가능. 가령 ‘정체성’이란 말을 사용한다면, 이 공간에서의 정체성은 다의적이지, 자기의 정체성이 오직 하나의 집합적 정체성에 의해 구성되고 정의되는 것은 아니다.

– 공공성은 동화/배제의 기제를 필수적으로 요구하는 공동체가 아니다. 가치의 복수성을 조건으로 하여 공통의 세계에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 사이에서 생성되는 담론의 공간.

– 시장은 어떤 사람들(현재의 노동시장에 적합한 능력을 가진 자)에게 공동체적 구속으로부터의 탈출을 가능하게 하는 자유의 공간.

– 민주적인 법치국가라는 것은 공공성에서 형성되는 사람들의 의사를 정통성의 유일한 원천으로 하는 국가. 국가가 강제력을 가지고 실현해야 할 가치를 해석하고 정의하는 것은, 국가가 아니라 공공성.

– 공공적 공간은 열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기에는 언제나 배제와 주변화의 힘도 작용.

– 정치적인 의사형성·의사결정 과정에서의 제도적 배제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 최후의 제약으로 남아 있는 것은 국적에 의한 배제.

– 정치적 권리(선거권·피선거권)는 확실히 열린 멤버십을 요구.

– 공공적 공간에의 접근을 크게 좌우하는 것으로 자유 시간이라는 자원이 있다. 예를 들면 일과 가사의 ‘이중 부담’은, 공공적 공간에 호소해야 할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들이 자유 시간이라는 자원의 결여 때문에 공공적 공간에 충분히 접근할 수 없다는 악순환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 ‘담론 자원’은 공공성에의 실질적인 접근을 근본적으로 좌우. 공공성에서 의사소통이 바로 언어라는 매체를 통하여 이루어지기 때문. 거기에서는 ‘담론 자원’을 가진 자들이 ‘헤게모니'(문화적·정치적으로 타자를 지도하는 힘)를 쥔다. 이 자원은 양적인 다과(多寡)가 아닌 질적인 우열로 가늠. 문화의 지배적인 코드를 습득하고 있는가가 ‘담론 자원’의 우열을 규정.

– 담론 자원은, 사람들이 어떤 어휘를 구사하는가와 관련. 만약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적절한 어휘가 모자라면, 이러한 담론은 주변으로 내몰리게 된다. 담론 자원의 격차는 일상적 지식 사이의 비대칭성뿐만 아니라, 전문적 지식과 일상적 지식의 비대칭성이라는 형태를 띠기도 한다.

– 말을 어떻게 하는가라는 담론의 톤(tone, 말하는 방식, 쓰는 방식)은 중요한 자원의 하나.

– 공사를 구별하고 공공의 장(場)에 어울리는 테마를 말해야 한다는 암묵적 규범. ‘개인적인 것’을 삼가지 못하는 담론은 배제의 대상.

– 공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경계는 고정된 것이 아니고, 무엇을 ‘사정’이라고 하는가 하는 담론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근대의 ‘공공성’은 많은 테마를 ‘사적인 것’으로 규정함으로써 스스로를 정의해온 것. 공사(公私)를 나누는 경계선은 담론에 의존하는 유동적인 것이지, 담론 이전의 것, 정치 이전의 것은 아니다.

– 공사 경계의 변화는 경계를 넘어 발언하는 담론의 실천이 누적된 효과.

– 한 때 위르겐 하버마스는 보편화 가능한 규범적 담론과 보편화의 가능성을 바랄 수 없는 가치 평가적 담론을 준별하고, 후자를 공공의 토의에서 배제하는 입장을 취해왔다. 그러나 최근의 저서 <사실성과 타당성>(박영도·한상진 옮김, 나남출판, 2007)에서는 공공의 토의가 모든 테마에 열려 있다고 말하고 있다.

– 공공적 공간은 공사의 경계를 둘러싼 담론의 정치가 행해지는 장소이지, 공공적인 테마에 관해서만 논의해야 하는 장소가 아니다.

– 현재는 공공성이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으나, 19세기 중반부터 대략 한 세기 동안은 부정적으로 파악. <존재와 시간>(1927년)에서 ‘공공성’을 ‘일반인'(das Mann)이 지배하는 영역으로 묘사한 하이데거. 하이데거에 의하면 ‘공공성’은 ‘서로의 차이나 특색’을 잃고 ‘섞이는’ 존재양식밖에 허용하지 않는 비본래성의 공간. ‘공공성’을 ‘평균성’이나 ‘영합’이라고 특징짓는 것은 그것을 ‘수평화의 주인’이라고 일컬었던 키에르케고르를 떠올리게 한다.

– 공공성은 탈(脫)─정치화와 과(過)─정치화라는 양극으로 왔다갔다 하는, 그 어느 쪽도 신뢰할 수 없는 위험한 공간으로 여겨진다.

* 계몽 = 공공성의 프로젝트

– 공공성을, 인간의 개체성·단독성을 위압하는 획일주의(conformism)의 힘, 혹은 공개성과 토의가 빈껍데기가 된 ‘환영'(幻影)으로 묘사하는 20세기 전반의 지배적인 문맥을 되돌아보면,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1958년)과 하버마스의 <공공성의 구조전환>(1962년)이 ‘공공성’을 논의하는 자장을 크게 변화시켰다고 보아야 할 것.

– 문화 영역에서 비평 공간이 사라져버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정치 영역에서도 의논과 비판은 공동화(空洞化). 정통성은 심의회·자문위원회 등의 의사(疑似) 공공적 공간으로부터 직접 조달되고, 정치적 의사결정은 논의의 공간으로부터 괴리. 공개성은 공권력의 활동을 감시하는 비판으로부터 ‘합의의 공학’에 의한 조작으로 그 방향을 바꾸고 있다.

– 공공성은 사람들 사이에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앞에서 펼쳐지는 것으로 변용. 공공성은 ‘논의의 공간’으로부터 ‘스펙터클한 공간’으로 변질되고, 가장 개인적인 것(예를 들면 정치가의 성적 스캔들)이 가장 공공적인 토픽이 된다는 역설이 생긴다.

– ‘사고하는 자유’에 있어 “사유를 공공적으로 전파하는 자유”는 필수적 조건. 아렌트(그녀는 <칸트 정치철학 강의>에서 이 말에 주목했다)처럼 사고를 ‘내적 대화’라고 파악한다면, 사고 자체가 일종의 공공적 공간. 그러한 ‘내적 대화’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현실의 타자와의 대화. 타자의 사고를 접하고 그것에 의해서 현재의 사고습관이 흔들릴 때, 우리의 사고는 시작.

– 칸트는 타자에게 생각을 전하는 자유를 “자신의 이성을 모든 면에서 공공적으로 이용하는 자유”라고 부른다. ‘이성의 사적인 사용’은 자신이 속한 집단을 위해서 이성을 사용하는 것. 계몽=공공성의 프로젝트는 자신의 공동체(국가 포함)의 이해에 반하는 의견을 표명할 자유를 옹호.

* 시민적 공공성

– 시민적 공공성은 기본적으로 ‘공권력에 대한 비판적 영역’으로 위치되어 있고, 하버마스 자신도 말하듯이 자유주의적 모델의 특징을 농후하게 띠고 있다. 시민적 공공성의 행위자(actor)는 시장의 재산가들이고, 그들의 목적은 국가의 활동에 한계선을 긋고 자의성을 제어하는 데 있다. ‘정치적 지배의 합리화’란 사회의 자율성을 확보하는 것.

– 1870년대 이후 시민적 공공성은 후기 자본주의가 진전됨에 따라 붕괴. 국가로부터 시민사회의 분리라는 전제가 국가의 개입에 의해서 사라졌기 때문. 화폐매체와 권력매체가 융합하고, 그것들이 공공성을 조작의 공간으로 바꾸어버리기에 이르렀다. 그러한 공공성의 왜곡에 대하여 <공공성의 구조전환>이 내놓은 처방전은 아직 완전히 고갈되지 않은 ‘비판적 공개성’의 잠재력을 발굴하여, 그것을 ‘조작적 공개성’이라는 현 추세에 대항시킨다는 것.

– <공공성의 구조전환>에서 묘사하는 시민사회=시장사회는 애덤 스미스가 말하는 ‘자연적 자유의 체계’에 매우 가깝다.

– 사람들 사이에 형성되는 공공성의 공간을 탈-정치화하는 경향은 하버마스 사상의 한 특징.

– ‘조직화된 집단의 구성원’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결사에 모인 모든 개인’.

– 공공성의 과제는 국가나 유력한 조직의 활동에 대한 비판적인 감사로부터 토의를 통한 적극적인 정치적 의사형성, 정치적 어젠다의 설정으로 이동.

– 하버마스가 우려하는 것은 직접민주주의가 포퓰리즘(Populism)(충분한 논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지배적인 상징이나 분위기에 순응해서 급속하게 의사가 형성되고 결정되는 정치)에 빠질 가능성. 직접민주주의가 오류에 빠질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간접민주주의도 오류에 빠질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어느 한쪽을 택하는 것이 아니라, 둘 다 빠질 수 있는 오류를 유효하게 견제하고 수정할 수 있는 제도를 고안해가는 것.

* 합의 형성의 공간

– 종종 지적되고 비판되듯이 하버마스는 공공권의 이상적인 모습을, 합의를 형성해가기 위한 토의의 공간으로 파악. 토의는 ‘보다 나은 논거'(이유 대기)가 가지는 힘 이외의 모든 권력의 작용이 무효가 되는, 의사 소통의 반성 형태.

– 토의는 기존의 권력관계를 반성하는 ‘공동의 학습과정’. 이 학습과정은 참가자의 시점에서 보면, 자신이 이제까지 품어온 도덕적 확신, 정치적 판단, 가치 기준이 타자의 비판에 노출되는 과정. 자기 자신에 대한 비판적 거리의 획득은 독백(monologue) 속에서 혼자 힘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타자와의 현실적 대화를 필요로 한다.

– 토의에서 합의를 산출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논의의 계속(재심 가능성)을 보증하는 절차를 유지하는 것.

* 현상의 공간

– 하버마스는 아렌트의 공공성을 공통의사의 형성 공간으로 환원.

– ‘현상의 공간'(the space of appearance)으로서 공공성은 사람들이 행위와 논의에 의해 서로 관계하는 지점에서 창출되는 공간, “내가 타자와 대면해서 나타나고 타자가 나와 대면해서 나타나는 공간”.

– ‘속성’ 혹은 ‘사회적 지위’ 등으로 묘사될 때, 그 사람은 타인과 공약 가능한 위상에 놓여 있다.

– 그러한 공간을 ‘현상의 공간’과 대비하여 ‘표상의 공간'(the space of representation). ‘표상’은 타자의 행위나 논의를 ‘무엇’이라는 위상, 즉 타인과 공약 가능한 위상, 교체 가능한 위상으로 환원하는 시선.

– 일본인이라는 표상, 아이누라는 표상, 여성이라는 표상, 장애인이라는 표상, 노인이라는 표상, 동성애자라는 표상, 노숙자라는 표상……. 표상을 가지고 타자를 바라보는 것, 혹은 표상을 통해 타자에게 보여지는 것은 우리에게도 지극히 일상적인 경험. 표상의 시선은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신체적으로 우위에 있는 사람들이 열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정체성을 부여하는 것과 밀접하게 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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