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미트와 아렌트 또는 ‘적대’와 ‘협의’

사상의 지세들이 뻗어나오는 물줄기들 … 슈미트와 아렌트 또는 ‘적대’와 ‘협의’
[이택광의 세계사상지도 읽기] <3> ‘정치적인 것’의 계보학
2010년 05월 10일 (월) 13:54:23 이택광 /경희대·영미문화이론  editor@kyosu.net

오늘날 인기어가 돼버린 ‘정치적인 것’이라는 개념은 칼 슈미트에 기원을 두고 있다. 독일어인 ‘das Politische’를 불어인 ‘le politique’로 옮기고, 이것을 다시 영어로 옮긴 것이 ‘the political’이다. 이 말을 그대로 한국어로 번역해서 ‘정치적인 것’이라는 개념을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셈인데, 글자만 놓고 본다면 도무지 그 뜻을 짐작하기 모호한 용어라고 할 수 있다.
정치적인 것이라는 말은 1932년에 발간된 『정치적인 것의 개념』이라는 슈미트의 책에서 처음으로 등장한다. 이 책에서 슈미트는 다른 사회적 영역과 구별할 수 있는 정치적인 것의 자율성을 주장한다. 여기에서 슈미트는 ‘적과 아’라는 구체적 분별에 정치적인 것의 특이성을 위치시킨다. 윤리적 영역에서 선과 악이 서로 대립하고, 미학적 영역에서 미와 추가 대립하고, 경제적 영역에서 이익과 불이익이 대립하듯이, 정치적인 것에서도 적과 아가 대립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치적인 것은 독자적인 영역이라고 말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정치적인 것은 고유한 객관적 본성이나 자율성으로 인해 다른 영역과 구분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분별화와 범주화가 가장 강력하게 부딪히는 그 긴장의 지점에서 정치적인 것은 출현한다. 이런 맥락에서 정치적인 것은 다른 영역에 비해 특권적인 것이다. 상대적으로 자율적이면서 동시에 우선성을 갖는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 슈미트는 이런 정치의 특권성을 설명하기 위해 전쟁을 예로 든다. 전쟁은 사회적 집단들 사이에 벌어지는 가장 극단적인 비상사태를 의미한다. 이 비상사태의 국면에서 모든 것은 ‘적과 아’라는 정치적인 것의 긴장관계로 복속된다. 기존의 공동체를 구성했던 원칙들은 돌연 ‘적대’라는 분열을 통해 해체된다.
슈미트는 정치적인 것을 협소하게 정치의 영역에 묶어 놓지 않았다는 측면에서 정치철학의 서막을 새롭게 열었다고 할 수 있다. 정치적인 것이라는 개념의 발명은 단순하게 ‘정치’라는 명사형을 ‘정치적인’이라는 형용사로 바꾼 것이 아니다. 이를 통해 슈미트는 특정한 제도적 장치에 정치적인 현상을 묶어놓지 않을 수 있는 방도를 제공했다. 정치적인 것을 고정적인 것이라기보다 유동적이고 편재하는 ‘장’으로 생각하도록 만든 것이 슈미트의 공인 것이다.
정치에 대한 슈미트의 재정식화는 리쾨르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리쾨르는 정치라는 것이 위대한 ‘위기’의 순간에 오직 존재한다는 말을 했는데, 여기에서 위기라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역사의 전환기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소련의 헝가리 침공이 서구 지식인 사회에 가져온 파장은 좌우파를 막론하고 중대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사건에 직면해서 리쾨르가 『정치적 역설』을 집필했을 때, 그의 목적은 명확했다. 현실사회주의라고 불리던 ‘국가 마르크스주의’ 또는 ‘공식 마르크스주의’에 대항하는 새로운 정치의 개념을 정립하는 것이었다. 이런 생각은 필연적으로 정치를 이중적인 것으로 파악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역사의 전환기와 새로운 정치의 개념
정치는 근본적으로 이중적인 기원을 가진 것이라는 전제가 필요했던 것이다. 리쾨르는 구체적인 정치적 합리성과 정치적 악마성을 구분함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마르크스주의에 내장한 문제점을 지적하기 위해 그는 경제로부터 정치의 영역을 분리해냈다. 경제나 정치 모두 합리성에 근거하고 있지만, 각각의 합리성은 동일하지 않다는 생각이었다. 말하자면 그의 기획은 경제결정론에 경도돼 있던 마르크스주의의 정치학을 부정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를 통해 리쾨르는 경제적 영역과 대립하는 정치적 영역의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흥미로운 점은 헝가리 사태가 정치에 대한 혐오를 불러일으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치의 지위를 복권할 기회로 비쳐졌다는 사실이다. 여기에서 리쾨르는 정치적인 것을 정치와 다른 것으로 개념화한다. 이런 점을 감안했을 때, 리쾨르가 말하는 ‘역설’이라는 것은 결국 정치와 정치적인 것의 차이, 더 나아가서 갈등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이 갈등의 원인을 리쾨르는 정치에 대한 정치적인 것의 자율성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리쾨르의 정의에 따르면 정치적인 것은 계급갈등으로 환원할 수 없는 인간관계를 지칭하고, 정치는 정치적 권력의 악마성을 가리킨다. 중요한 것은 이런 권력의 악마성은 ‘경제적 소외’로 환원해서 파악할 수 없다는 점이다. 현실사회주의의 실패는 이런 권력의 악마성을 적절하게 이해하지 못했고, 그래서 경제적 소외 문제만을 해결하는 것을 과업으로 삼았기 때문에 필연적이었다는 것이 리쾨르의 주장이었다.
리쾨르의 용어법에서 정치적인 것은 권력에 대립적인 ‘살아있는 관계’이자, 동시에 악마적인 권력의 속성이기도 하다. 어떻게 말하면 정치적인 것은 정치를 작동하게 만드는 엔진 같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이런 구분법에 따르자면, 정치적인 것은 ‘정체’(polity)를 뜻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고, 정치는 정책을 만들거나 결정하는 행위라고 볼 수 있다. 여기에서 정치적인 것은 합리적인 일치의 구현체이고, 정치는 권력의 국면이다. 물론 이 둘은 불가분의 관계로서 ‘정치적인 것의 자율성’을 빚어낸다.
이후에 리쾨르는 정치적인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합리성’을 입법의 문제로 좀 더 구체화하지만, 초기에 정립한 분법을 포기하지 않는다. 정치적인 것은 헌법에 의해 국가가 운영되는 한 합리적이라는 것이 리쾨르의 생각이었다. 이런 관점에 따르면 정치적인 것은 정치와 대립하지만, 결코 독자적으로 존재할 수가 없다. 정치적인 것의 자율성은 상대적인 수준에 그치는 것이다. 리쾨르가 정치와 정치적인 것의 차이를 ‘역설’이라고 부른 까닭이 여기에 있다. 역설은 서로 다른 믿음이 ‘나란히’ 있다는 말이지 않은가.

선구적이지만 단순한 리쾨르의 접근
이처럼 정치적인 것에 대한 리쾨르의 정의는 선구적이지만, 그만큼 단순하기도 하다. 그의 개념화에서 핵심적인 것은 경제적인 합리성에 대해 정치적인 합리성의 자율성을 주장하는 것이었고, 이런 방식은 초기 프랑스 이론에서 정치로부터 정치적인 것을 구분해내는 틀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확실히 리쾨르의 용어법은 한나 아렌트와 다른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정치적인 것이라는 용어의 계보학에서 아렌트는 프랑스적 맥락과 다른 위치에서 정치적인 것을 정의한 이론가이다. 정치적인 것의 정의에 있어서 아렌트는 슈미트와 다르다.

아렌트는 정치적인 것을 자유의 공간이라고 파악했는데, 이런 관점은 정치적인 것을 권력의 공간으로 파악했던 슈미트와 일정하게 다른 관점이다. 슈미트에게 정치적인 것은 적대와 갈등의 공간이라고 할 수 있지만, 아렌트에게 이 공간은 공적인 협의를 보장하는 곳이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정치적인 것에 대해 언급하는 이론들이 아렌트적인 관점과 슈미트적 관점으로 나뉜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가 있다. 아렌트와 슈미트라는 물줄기를 따라서 오늘날 우리가 목격하는 사상의 지세들이 뻗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택광 /경희대·영미문화이론

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20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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