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읽기] 코끼리에게 호소하라 / 전중환

“우리 당의 후보가 각종 이슈에 대한 이해력과 정책 깊이, 품격 등 모든 면에서 우위를 보였다.” 마지막 텔레비전 토론이 끝난 뒤 새누리당 대변인이 낸 논평이다. 박근혜 후보 지지자들은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반면 문재인 후보 지지자들은 대체 같은 토론을 본 게 맞는지 황당해할 것이다. 왜 대선 후보 토론을 함께 시청하고도 지지자들의 반응은 극과 극으로 갈리는 걸까? 두 진영 가운데 어느 한쪽은 자기 후보가 완패했음을 잘 알고 있지만, 그냥 허세를 부려보는 걸까?

그렇지 않다. 두 당의 대변인이 서로 승리를 주장할 때, 이들은 구구절절 진심이다. 각자 자신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같은 정보라도 아주 다르게 받아들이는 이러한 현상으로부터 우리의 마음이 어떻게 판단을 내리는지에 대한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 동성애를 허용할지, 무상보육에 동의할지, 정권교체에 동참할지 등등 마음은 끊임없이 판단을 내린다. 이때 뜨거운 감정보다 차가운 이성이 판단을 주도한다고 흔히들 믿어왔다. 이성에 따라 잘 추론하기만 하면 누구나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들은 추론이 우리를 진리로 이끄는 길잡이가 아님을 보여준다. 다음 경우를 상상해보자.

“민준이란 남자는 매주 슈퍼마켓에 들러서 냉동 통닭을 한 마리 산다. 민준은 통닭과 성관계를 한 다음에, 통닭을 구워 먹는다.”

민준의 행동은 도덕적으로 정당한가? 대다수 사람은 이 이야기를 듣자마자 얼굴을 찌푸리며 대뜸 잘못되었다고 말한다. 정작 왜 잘못되었는지는 쉽게 설명하지 못한다. 우리가 정말 합리적인 추론으로 도덕 판단을 내린다면, 민준의 행동은 도덕적으로 정당하다고 당당히 말해야 한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각자 자신이 원하는 바를 추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일반 원칙에 어긋나지 않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민준의 행동이 왜 잘못되었는지를 설명하지 못하면서도 어쨌든 잘못이라고 확신한다는 것은 그 행동을 접하자마자 다분히 정서적인 과정인 직관이 행동의 옳고 그름을 이미 판정했음을 의미한다. 이성에 의한 추론은 이렇게 정해진 내 견해를 논쟁이 생겼을 때 상대방에게 관철하는 부수적인 역할에 그친다.

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는 우리의 마음을 관광객을 태운 인도코끼리에 비유한다. 어디로 갈지는 코끼리(무의식적 직관)가 독자적으로 결정한다. 관광객(이성적 추론)은 언뜻 보면 코끼리 위에 높이 올라타서 그를 조종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코끼리의 처분만 얌전히 기다리는 신세다. 코끼리가 왼쪽으로 가고 싶어서 발걸음을 옮겼는데 관광객은 자기가 왼쪽으로 조종했다고 사람들에게 신이 나서 설명한다.

즉, 추론은 우리를 진리로 이끄는 길잡이가 아니다. 추론은 논쟁에서 타인을 논리적으로 제압하기 위한 용도로 진화하였다. 그래서 대선 후보 토론회를 시청하는 양당의 지지자들은 자신의 견해를 뒷받침하는 증거들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반대 증거들에는 눈을 감는다.

지인들의 마음을 움직여 자신이 지지하는 대선 후보에게 한 표라도 더 보태주려는 노력은 종종 무위로 끝난다. 코끼리의 행보와 무관한 관광객에게 호소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독재자의 딸이 집권하면 왜 역사가 후퇴하는지 역설하는 치밀한 논리로 상대를 무너뜨리려 한다면 대개 실패하기 마련이다. 마음을 움직이고 싶다면 코끼리에게 직접 호소해야 한다. 상대방의 처지에서 먼저 충분히 듣고 이해하길 바란다. 내가 지지하는 후보가 당선되어야 하는 논거를 나열하기보다는, 후보의 인간적인 매력을 엿볼 수 있는 한두 가지 결정적인 장면들을 알려주어 감성을 움직이길 바란다.

전중환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진화심리학

http://hani.co.kr/arti/opinion/column/56576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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