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klas Luhmann의 체계이론

Niklas Luhmann의 체계이론

N. Luhmann에 관한 개괄적 소개

1. Luhmann의 이력

Niklas Luhmann은 1927년 Luneburg에서 태어나서, 1937-44 고향의 인문계고등학교를 다녔으며, 그후 군복무를 마치고 1946-49 Freiburg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이어서 Niedersachsen의 행정기관에서 법률실무수습을 하고, Niedersachsen의 문화부에서 다년간 근무하였다. 1960-61 미국의 Harvard대학에서 행정학과 사회학을 연구하고, 1962-1965 Speyer의 행정대학의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1966-1968 Dortmund의 사회연구소의 분과위원장으로 근무하였다. 1968년 이래 Bielefeld의 사회학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현재 독일에서 Jurgen Habermas와 더불어 사회학 및 사회철학의 영역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지도적 사회학이론가이다. 그의 학문적 관심은 주로 체계이론으로 전개된 일반적인 사회학이론과, 이를 법사회학 행정학 정치사회학 등 사회학의 특수한 부문의 이론적 기초에 적용하는 데에 있다.


2. Luhmann의 체계이론의 개요


체계이론은 사회 및 사회의 편제를 체계라는 개념에 의하여 파악한다는 것이 특징이다. 체계라는 개념은 항상 사회를 이루는 구성체, 즉 단일적 규정을 내포한다. 체계는 구성체가 복잡성을 감축함으로써, 보다 정확히 말하면 그것은 그 자신의 환계에 있어서 복잡성을 줄임으로써 그 자신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이론적 틀은 체계내재적 구조, 특히 그때그때의 체계의 조합 또는 결합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에 더욱더 이론적으로 풍성하게 된다. Luhmann의 체계이론적 구상은 경험을 고도로 추상화한 것이며, 이러한 추상성은 반대로 구체적 경험의 추론을 위한 개방성을 제공한다. 그래서 체계이론적 기술(記述)은, 설사 체계의 전제조건의 결정에 있어서 규범적인 것이 영향을 미친다고 하더라도, 규범적 내용을 가지지 않게 된다.

 

I. 서 론

오늘날 우리는 유럽 뿐만 아니라 영미의 제국에서 현대사회를 이해하고 분석하는 이른바 “체계이론(體系理論: Systemtheorie)”이라는 새로운 이론적 시도가 그 기반을 굳쳐가고 있는 것을 감지할 수 있다. 사회학의 영역에서 체계이론은 처음에 미국에서 시작하여 유럽으로 역수입되어서 현재 독일의 니클라스 루만(Niklas Luhmann)에 이르러 극치에 달하고 있다.

미국의 체계이론, 특히 탈코트 파슨즈(Talcott Parsons)의 체계이론적 사회학은 사회철학에 대하여 별다른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그야말로 일부의 사회학자들만이 취급하던 사회학의 전유물에 불과하였으나 독일의 Luhmann의 체계이론은 곧바로 사회철학과 대접(對接)하게 되어서, 특히 Frankfurt의 비판이론의 진영과의 이론적 논쟁에서 커다란 반향을 불러 이르켰다.

여기서 필자가 다룰려는 것은 체계이론과 비판이론의 논쟁이 아니라, Luhmann의 체계이론의 기본적 시각을 소개하고, 이것이 법학에, 무엇보다 법을 보는 시각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오는가를 간단히 살펴보는 것이다. 고도로 분화되고 추상화된 Luhmann의 사고구조물을 여기서 완전히 재현한다는 것은 지면관계상 그렇게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아니 그것은 오히려 필자의 능력밖의 사항이라고 말하는 것이 옳을 것같다.

먼저 Luhmann의 체계이론의 발전과정과 이론적 기반과 기본개념을 살펴본 다음, 이러한 기본적 이해를 바탕으로 하여 체계이론적 법이해, 이를 테면 법철학적 의미를 음미해본다.


II. 체계이론의 발전

Luhmann의 체계이론은 사회의 일반이론(Allgemeine Theorie der Gesellscahft)이다. Luhmann의 체계이론은 현대사회를 전체적 차원에서 거시적으로 분석하는 틀로서 성립하였다. 그것은 전체로서 사회를 어떻게 적절하게 파악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에서 출발한다. 체계와 체계의 상호관계, 체계경계, 구조징표와 구조의 기능성 등에 관한 Luhmann의 체계이론적 접근방법은 사회의 미시적 영역에 국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전체 Ganzes”로서 사회를 전일적으로 파악하려는 시도이다.

Aristoteles를 원조로 하는 서양의 사회이론들은 (사)회적 체계(soziales System)의 이론으로서가 아니라 정치적 사회(politische Gesellscahft)의 이론으로서 발전하여 왔다. 근대 이전까지 사회는 이미 규정되어서 계층적으로 질서지워진 폐쇄적 실체로 이해되어 왔다. 사회에 관한 이러한 이해에 의하면, 사회의 최종목표는 신(神)의 이성에 의해서 이미 정해진 선재(先在)된 것이며, 이것이 인간의 지각을 통해서 다만 암시될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어떠한 사회구성원의 사유(思惟)나 행위도 이러한 종국적 목적에는 영향을 미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근본적으로 변경할 수도 없다. 그렇지만 이러한 생각은 근대에 들어와 어느 정도 변한다. 이러한 현상은 근대사회이론에 있어서 사회에 관한 이해의 변화로 나타난다. 즉 16-18 세기의 시민사회의 이론은 무엇보다 유물론적 자연과학적 사고방식의 영향을 받아서 사회를 개인의 총합으로 이해하였다. 그래서 그 이전의 이상주의적 사회개념은 기계적 개념으로 대치되고, 사회이론은 신의 계획 대신 욕구와 공포 충동 등의 본능을 가진 자연존재로서 인간을 전제로 구성되었다.

이렇듯 사회의 이론은 변하였다. 그렇지만 이들 사회이론에 있어서 사회분석은 모두 “선량한 생활”이라는 목적과 욕구충족의 정치적 목적에 항상 구속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다양한 사회이론들이 다른 사회개념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것같지만, 실은 이들 모두 사회를 무전제적 실체(無前提的 實體), 즉 소여의 체계(체계: gegebenes System)로서 파악하는 고대유럽적 사회철학의 사회관념을 그대로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이다. 이들 사회이론에 있어서 사회분석의 촛점은 무엇이 사회의 내부에 일어나고 있는지에만 조준되어 있을 뿐, 무엇이 사회와 사회의 외부와의 사이에 일어나는지에 대해서는 지향되어 있지 않다. 이들 이론의 연구대상은 선재된 체계(체계)로서 또는 개별적으로 파악될 수 있는 체계(체계)로서 사회이지, 체계의 외부의 것과의 관계에 의해서 끊임없이 다르게 규정되는 체계로서 사회는 아니다. 즉 이러한 사회이론에 있어서 체계이라는 개념은 환계에 대하여 폐쇄된 존재론적 체계(체계)개념(Ontologischer Systembegriff)으로서만 항상 논의되었다.

그러나 현대사회에 들어와 그 국면은 판이하게 변한다. 선험적 전체(a priori Ganzes)로서의 사회개념도, 의심할 바없는 소여(Zweifellose Gegebenheit)로서의 사회개념도, 개인의 총합(Summe der Individuen)으로서의 사회개념도 모두 현대사회를 분석하는 이론적 도구로서 좌초하고 만다. 즉 이러한 관념으로는 현대사회를 남김없이 분석하고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이론의 궁박상황에서 등장하는 것이 바로 Luhmann의 체계이론이다. Luhmann은 적극적 작용요소로서 사회적 행위 및 개체로서 의사교통하는 구성원의 상호관계를 맺는 전부를 보다 일반적인 관점에서 구조화할 수 있는 체계의 차원에서 파악하려고 시도한다. 그는 T. Parson에 의해서 시도된 사회에 관한 체계이론을 의미적 맥락(Sinnzusammenhang)에서 보다 더 추상적 일반적인 차원으로 고양시켜서, 환계에 열린, 소위 “체계-환계의 이론(System-Umwelt-Theorie)”으로 발전시킨다. 이것이 바로 Luhmann의 일반적 체계이론이다.


III. Luhmann의 체계이론의 기본적 시각

Luhmann에 의하면, 사회적 실체와 사회에 대한 이론은 적극적 함수관계에 있다. 즉 사회의 이론은 단지 사회적 실체를 반영한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사회와 이론 양자가 서로 상응하는 복잡성을 가진다는 의미에서 서로서로 상응관계에 있다. 간단히 말하면, 사회가 복잡해지면 사회의 이론도 복잡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어떠한 사회의 이론에 의하더라도 개별적 사회현상을 구체화하고 확정하며 기술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또 사회에 관한 이론이 사회적 실체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고 기록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고 하지만, 점점 세분화하는 모든 부문의 사회적 실체를 다 그려낼 수는 없다. 그래서 사회가 복잡해지면 질 수록 사회의 이론은 보다 추상적으로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Luhmann의 견해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사회의 이론에 대한 Luhmann의 견해에서 우리는 사회적 발전 및 발달에 관한 이론이 두가지 특성을 가지게 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첫째, 이론의 대상종속성(對象從屬性), 즉 사회이론은 사회를 대상으로 한다는 것, 다시 말하면, 사회이론은 그것에 주어져 있는 사회를 파악할 수 있다. 둘째, 사회 그 자체는 이론의 환계(Umwelt)가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이론이 그 나름의 자율성(Autonomie)을 가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이론의 자율성은 사회이론이 일정한 한도내에서 사회에서부터 독립하여 세분화되고, 사회이론의 역할은 그것의 대상인 사회 그 자체와 대상으로서 사회에 대한 고찰을 가능하게 하는 세분화의 정도에 좌우된다는 것을 말한다.

파편적으로(segmentar)만 분화된 원시공동생활의 형태에 터잡아 고등문화를 꽃피웠던 사회는 특별한 부분체계에 의해서 특징지워진다. 이를 보다 정확히 말하면, 고대사회는 그 자체의 고유한 복잡성에 의해서 진화되었던 부분체계들 가운데, 첫째로 정치체계의 우위에 의해서, 그 다음에는 경제체계의 우위에 의해서 규정되었다. 그러나 복잡한 현대사회는 정치 또는 경제 등과 같은 부분체계에 의해서는 더 이상 충분하게 파악되어질 수 없다. 사회의 구조와 질서의 성격은 끊임없이 변동하고, 전체사회의 조화, 안정성 등이 부분체계의 단위질서에 근거하여 당연히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또 그렇다고 전체사회가 그 자체에 의해서 해명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Luhmann은 복잡한 현대사회를 분석하기 위해서 현대사회와 그 (사)회적 편제를 동시에 파악할 수 있는 걸맞는 관념을 물색한다. 여기서 핵심적 개념으로 등장하는 것이 바로 “체계(System)”이다. Luhmann은 사회를 체계로 파악한다. Luhmann에 있어서 사회(Gesellschaft)는 최종적으로 근본적 감축을 제도하는 바로 그 (사)회적 체계(Sozialsystem)이다.

Luhmann의 이론에 의하면, 복잡한 사회에 있어서 전체사회도 하나의 체계이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존재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기능을 수행함으로써 다른 체계를 위한 기반을 형성한다. 그러므로 체계들의 체계로서 사회는 다른 (사)회적체계의 결합에 관계하는 이중적 성질을 가진다. 사회는 구조적 유사성에 의하여 방향설정으로서, 즉 비교가능성으로서 개별체계에 기여한다. 이것은 개별체계를 포함하는 것과 대별하는 것으로 나누어서, 조화, 즉 서로서로의 공존이 가능하도록 돕는다. 동시에 체계로서 사회는 개별체계가 설정되고 이를 위해서 기능하는 목적으로서 나타난다. 그러므로 체계인 사회는 목적이자 동시에 수단이다. 그러나 Luhmann에 있어서 (사)회적 체계는 더 이상 스스로 독립해서 정의되어 질 수 없고, 환계와의 관계에서 비로소 정의되어 질 수 있다. 이러한 환계연관성은 다시금 기능적 관계로 이해된다. 체계로서 사회는 그 자체로 구성되지 않는다. 그의 존속은 다른 체계를 향한 기능에 의해서 유지된다. Luhmann의 의미에서 복잡한 사회에 있어서 사회의 이론은 더 이상 자족적 체계로서가 아니라 체계-환계의 관계로서 파악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는 Luhmann의 체계이론을 기능-구조적 체계이론(funktional-strukturelle Systemtheorie) 또는 체계-환계-이론(System-Umwelt-Theorie)이라고 말한다.

Luhmann의 이러한 이론적 구상은 체계내재적 구조, 특히 그때그때의 체계의 결합을 이해하게 하는 추상적인 체계개념을 통해서 더욱더 풍부하게 된다. 체계이론은 경험에 관한 고도의 추상이며, 그래서 이것은 역으로 경험의 추론에 있어서 무한한 개방성을 제공한다. 그 결과 이러한 이론적 구성은, 카오스적인 것에 관한 묘사에 비하여, 체계전제조건의 결정에 규범적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규범적 내용으로 지향되지 않는다는 장점을 가지게 된다.


IV. Luhmann의 체계이론의 축약적 내용

1. 매개(Medium)로서 체계(System)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Luhmann의 체계이론에 등장하는 핵심적인 것이 “체계(System)”라는 개념이다. Luhmann은 체계를 “서로가 서로에 대하여 지정하고 환계로부터 그것에 귀속하지 않은 행위와의 한계를 지우는 사회적 행위의 의미연관관계”로 이해한다. 친구, 부부, 거래당사자와 같은 2인관계에 있어서, 단체, 학교, 기업, 대학과 같은 조직체에 있어서, 세분화된 기능부분과 의사교통부문에 있어서, 정치적 체계, 경제, 학문, 교육제도에 있어서, 정치적 선거, 입법, 소송과 같이 합리적으로 규율되는 절차에 있어서, 각 상호작용이 여기에 속한다. 개인이 기도(企圖)하는 수많은 행위들이 그 사람에 있어서 의미있는 일체로서 어떠한 통합된 체계를 이루고 있다고 볼 때, 그러한 통합된 일체로서 체계의 스펙스럼은 이쪽편에는 유기적, 물리적 및 사회적 체계로서 개체(개인)이 있고, 저쪽편에는 전체로서 사회, 국가, 국제공동체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어떠한 구성체에도 체계개념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 즉 체계개념의 일반적 적용가능성은 Luhmann의 체계이론이 구성체의 내부와 외부를 체계와 환계로 규정하고 있다는 것에서 비롯된다. 이렇듯 Luhmann에 있어서 체계개념은 개체로서 인간 뿐만 아니라 집단 및 집단의 총합, 사회 등 어떠한 복합적인 구성체에도 적용될 수 있도록 추상화되고 일반화된다. 여기서 체계개념의 일반성은 상정된 개별적 실체가 각 경우에 있어서 체계유의미성에 의하여 규정되어 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Luhmann에 의하면, 체계는 인간이 세계의 복잡성을 감축하여 자신을 어떻게 유지하는가를 결정한다고 한다. 모든 체계는 유사한 기능, 즉 복잡성을 감소시켜서 인간으로 하여금 체험과 태도의 보장을 가능하게 하는 기능을 한다. 다시 말하면 체계는 인간이 세계의 복잡성을 의미찬 체험과 행위로 이행시킬 수 있는 매개체(Medium)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볼 때 체계는 모든 구성체가 복잡성을 감축함으로써, 보다 정확히 말하면 모든 구성체가 그 자신의 환계에 대하여 복잡성을 줄임으로써 그 자신일 수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어떠한 차원에서 사용하든, Luhmann에 있어서 “체계”라는 말은 항상 “복잡성의 감축”이라는 의미와 연관되어 있다. 체계의 작용은 환계의 소여로부터의 선택으로 나타난다. 이때 환계의 일정한 정보자료는 체계의 결정에 따라 그대로 보유되기도 하고 거부되기도 하고 또 다시 소생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체계는 주체(Subjekt: 인간의 의식)와 유사하다. 환계에서 들어오는 정보, 즉 환계의 투입(Input)을 가능상태에서 보존한다는 것(das Im-Status-der-Moglichkeit-Halten)은 유기체에서는 있을 수 없다. 다시 말하면 환계요소의 가능적 보류는 유기체개념의 내포가 아니다. 이러한 점에서 체계는 유기체(생물)와는 상이하다. 의미(Sinn)에 의해서 환계의 우성적(偶成的) 사건들이 체계내에서 취사(取捨)되므로, 이러한 점에서 체계는 의미처리심급(意味處理審級: Sinninstanz)이다. 더 자세히 부언하면, 체계는 다른 선택가능성의 지평(Horizont)속에서 기능하는 의미처리심급이다.


2. 도입문제로서 세계(Welt)

그 다음 Luhmann의 체계이론에 “도입문제(導入問題: Bezugsproblem)”로 등장하는 것이 “세계(Welt)”의 개념이다. Luhmann에 있어서 세계는 존재(Sein)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그것의 복잡성(Komplexitat)의 관점에서 문제로 된다.

Luhmann에 있어서 세계는 행동상호관계(Aktkorrelat)가 아니라 상호작용의 상호관계(Interaktionskorrelat)로, 즉 체계의 상호관계(Systemkorrelat)로 파악된다. 그러므로 세계는 체계로 파악되어 질 수 없다. 왜냐하면 세계는 그것에 대해서 한계지워지는 외부(Außen)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세계는 상호작용에 있어서 경험의 객관화할 수 있는 지평(Horizont)으로서 성립되나, 이러한 지평에는 다른 가능성들이 포착되지지 않거나 또는 명시적으로 거부되더라도 그 다른 가능성이 그대로 현존하고 있다. 세계는 복잡하다. 즉 체험과 행위의 가능성은 현실화되는 것보다 훨씬 많다. 복잡성은 가능한 결과의 전체로만 이해할 수 있다. 즉 의식적인 체험(體驗)을 소화(消化)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은 작고 거의 변할 수 없다. 그래서 세계의 복잡성은 인간의 체험과 행위가 결정할 수 있을 정도로 감축되어야 한다. 즉 인간이 소진(消盡)하지 않고 올바르게 유지될 수 있도록 복잡한 것을 보다 복잡하지 아니한 대체적인 것으로 환원시키는 사회적 장치(Mechanismus)가 반드시 필요하다.


3. 취사규칙(取捨規則: Selektionsregel)으로서 의미(Sinn)

세계의 복잡성은 인간이 처리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정보들이 환계로부터 쇄도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세계의 복잡성은 감축하여 인간으로 하여금 체험과 행동을 정향할 수 있도록 해주는 장치(Mechanismus)가 바로 의미(Sinn)와 체계(System)라고 Luhmann은 생각한다. 복잡성의 감축은 원칙적으로 의미에 의한 체계형성으로 달성된다. 의미는 바로 복잡성의 감축에 의한 체계형성에 있어서 취사규칙(取捨規則: Selektionsregel) 또는 취사구주(取捨救主: Selektionshilfe)로서 작용한다. 이러한 뜻에서 Luhmann은 “의미는 다른 가능성들에서 선택과 이와 동시에 다른 가능성에 대한 지정(指定)이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러한 의미와 체계형성과정이 어떻게 진행되는가는 우연(kontingent)이다. 의미와 체계형성과정이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되는 것도 아니고 또한 저절로 예견되는 것도 아니다.

Luhmann에 의하면, 체계는 복잡성과 우연성이라는 이중의 문제를 관리하는 기능을 한다. 체계는 일정한 행동전형(行動典型)을 간주관적(intersubjektiv)으로 그래서 상대적으로 확실히 기대에 부응하도록 고정시키고 그리고 그것을 안정시킨다. 이렇게 하여 의미구속적인 구조가 탄생한다. 이것에 의하여 간주관적 기대가 장래의 행위와 전개과정과 연계하여 확정될 수 있고 또 이것은 다른 사람과의 공동생활에 있어서 방향을 지정하고 자신의 행동을 계획할 수 있도록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Luhmann은 “사회체계가 객관적으로 타당한 기대를 안정시키서 이에 따라 우리가 방향을 정할 수 있다”고 말한다. 사회체계는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또 이러한 사회체계는 가속적으로 증대하는 개인의 행위연관관계속에 용해되어서 일정한 의미표현 또는 규칙으로 종합되고 축약될 수 있는 익명의, 즉 추상적·객관적 형태를 획득한다. 체계와 환계에 관한 Luhmann이론의 장점은 체계가 의사소통과 행위의 다른 가능성을 제외하긴 하지만 이것을 종국적으로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는 데에 있다. 필요할 때에는 오히려 제한되지 아니한 복잡성으로 환원시킬 수 있고 체계는 이러한 의도로 수정되거나 포기되고 또 새로운 것으로 대체될 수도 있다.


4. 체계의 기능분석

Luhmann의 체계이론에 있어서 그 대상은 사회체계의 특성과 기능양식의 분석이다. 이것은 예컨대 복잡성을 감소시키기 위해서 사용되는 취사(取捨)의 장치(Mechanismus), 그것의 구조, 그 구조의 축조과 하부체계에 있어서 내부적 분화, 안과 밖사이의 경계를 어떻게 규정하는가의 양식, 삶과정의 일체성과 통합을 확정시키는 그것의 고유성과 구성요소, 사회에 있어서 체계의 기능과 다른 구성원과 다른 체계, 즉 환계를 위한 기여에 대해서 질문한다. 게다가 체계이론은 상황변화에 대한 체계이론 자체의 변동능력과 적응력을 연구한다. Luhmann의 체계이론에 있어서 기능(Funktion)은 작용의 결과로서가 아니라 “보상적 급부(報償的 給付)의 조화영역을 조직하는 규율적 의미도식(regulatives Sinnschema, das einen Vergleichsbereich aquivalenter Leistungen organisiert)”로 이해된다. 체계의 기능분석에 있어서 발문(發問: Fragestellung)은 존속 및 불변적 원인-결과관계에 관계되는 것이 아니라 보상량(報償量) 또는 등가물(等價物: Aquivalente)으로서 대체적인 문제해결이 나타나는 추상화된 문제설정(Problemstellung)에 관계한다. 이러한 배경 뒤에 인간행위의 합리성을 증대시키는 해명적 의도(解明的 意圖)가 있다. Luhmann에 의하면, 어떠한 문제에 있어서 사고(思考) 및 행위에 대한 대체방법이 가능하면 그 문제를 비로소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즉 다른 가능성과 비추어서 문제대상을 고려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은 그러한 대체적 견본(Alernativsample)을 산출해낼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구조-기능주의(Struktur-Funktionalismus)는 하나의 구조가 다수의 기능을 가질 수 있다(多機能性: Multifunktionaliat)는 사실 및 하나의 기능이 다수의 구조를 통해서 보상적으로 수행될 수 있다(報償目的性: Aquifinaitat)는 사실을 천착하였는데, 이것은 기능-구조주의(Funktional-Strukralismus)에 의해서 방법의 원리로 격상된다.

전체적으로 볼 때, 체계이론은 개별적인 구체적 체계를 적확(的確)하게 기술하고 상호비교할 뿐만 아니라 보편적 사회학이론을 내포하는 일반분석모델을 제공하려는 요청에 부응하려고 한다. 체계이론 그 자체는, 하나의 중심점에 의존되어 있지 아니하며 또 중심점에서부터 연계되지 아니하고 원칙적으로 끝없이 계속적으로 변화는 다수의 체계들에서 다핵적으로 결합시키는 환계와 사회의 개념을 반영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5. 체계의 자기재생산론(Autopoietik)

최근에 들어와 Luhmann은 체계개념을 더욱더 추상화하고 발전시켜서 새로운 차원으로까지 끌어 올린다. 환계에 대하여 열린 체계개념에서부터 자기준거적(自己準據的: selbstreferentiell), 자기재생산적(自己再生産的: autopoietisch) 체계의 개념으로 전환이 바로 그것이다. Luhmann은 이러한 개념전환을 학문적 骨格(Paradigma)의 교체라고 표현한다. [자기준거적] 이란 [스스로 관련된(selbst bezogen)]을 의미한다. “하나의 체계가 자기의 기본요소의 구성과 기본적 작용에서 자기 자신에 대하여 관계(그것이 동일한 체계의 요소에 대한 관계, 동일한 체계의 작용에 대한 관계, 동일한 체계의 일체에 대한 관계라 할지라도)하는 한에서” 그것은 자기준거적이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 체계는 자기 자신의 기술(記述)하고, 이를 이용해야 한다. [자기준거적]이란 어떠한 체계가 체계내에서 방향지정과 정보의 창출원리로서 체계와 환계의 분화를 이용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말한다.

그리이스어에서 파생된 Autopoise라는 개념은 Maturana, Valrela 및 Zeleny가 생물학이론에 끌어들인 개념인데, 이를 Luhmann은 체계이론에 받아들인다. 이것은 자기스스로 제조하는 것 또는 재생산하는 것을 말한다. 이 개념은 Luhmann에서는 [자동적]과 [조작적]으로 결정된 것이라는 의미로도 사용된다. 이러한 개념 뒤에는 살아 있는 유기체와 세포의 자기재생산적 구조에 대한 비유(比喩)가 숨어 있다. 이 용어는 우리에게 사회적 현상을 유기체와 비유해서 자연과학적으로 현시하도록 요구한다. 즉 이것은 사회적 현상이 자기 자신에서 비롯된, 자신의 내부과정에서 비롯된 독자적인 재생산적이고 연속생산적인 일체임을 암시하려고 한다.

“자기준거적” 및 “자기재생산적”이라는 두 가지의 개념은 체계와 환계의 관계를 생각하는 양식과 관련되어 있다. 이것은 어떠한 체계에 있어서 그 구조, 체계내에서 전개되는 과정, 그것의 통합과 내적 분화 및 시간에 따른 변화가 환계에서부터 규정되어진 영향의 직접적인 – 인과적으로 매개된 – 효과으로서 이해될 수 없다는 것을 나타낸다. 즉 체계 외부로부터의 직접적인 조종은 배제되어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군대는 항상 자신의 고유한 구조와 고유한 자기이해에 따라 군사적 명령을 발할 수 있다. 경제적 충동은 그것이 법에 독특하게 수용될 수 있는 한에서 법의 형태, 즉 법적 규율로 전환한다. 정치적 체계에 의한 사회의 조종과 사회적 형성은 항상 실행손실, 즉 기대하지 아니한 부수효과와 그외의 부정적 결과를 가져온다. 이것은 규범수령자의 자기법칙성과 구조에서 설명될 수 있다. 분화된 사회의 부분체계는 그 나름의 고유한 법칙과 구조, 이를테면 체계논리(Systemlogik)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정치적 체계에 의한 (사)회적 조종 보다는 분화된 하부체계의 내적 진화와 자기조종을 위하여 동기부여하는 것이 보다 정확하고 바람직하다.

다른 한편, (사)회적 체계는 그것이 환계에서부터 동인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는 의미에서 폐쇄되어 있지 않다. 오히려 체계는 환계에 의존하고 있다. 체계역동력은 환계의 영향 없이는 존속할 수 없다. 그렇지만 전통적인 체계이론의 의미에서 Input이 문제가 아니라 지속적인 오류와 고장, 즉 체계의 독특한 자신방식에 따라 체계가 스스로 호소하는 잡음이 문제이다. 뿐만 아니라 Autopoise의 개념을 사용함에 있어서 Luhmann은, 특히 자기연계성은 체계의 환계에 대한 모든 관계에 일관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체계내의 모든 자기요소에 있어서 서로의 서로에 대한 교호적 영향으로 되돌아 온다는 것을 나타내려고 한다. 체계요소와 체계진행과정은 체계속에서 전개되는 순환적 진행과정에 있어서 지속적으로 자기재생산적과 지속적인 발전(진화)을 진작한다.

http://cyber.chongju.ac.kr/~welfare/data/system/system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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