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의 국가

국가·정체(政體) – 개정 증보판
플라톤 지음, 박종현 옮김 / 서광사 / 2005년 4월

1. 제 1권

소크라테스가 폴레마르코스의 집으로 가서 케팔로스와 이야기한다. 소크라테스는 케팔로스에게 노년이 되니 어떻냐고 묻는다.

케팔로스) 노년이 되자 잃는 것보다 얻는 것이 더 많다. 욕망에서 벗어날 수 있다. 사람들이 흔히 노년기에 겪는 문제들은 노년이라는 게 원인이 아니라 그들의 생활방식이 원인이다.

소크라테스) 어르신이 노년을 수월하게 견디는 건 재산 때문이 아닌가?

케팔로스) 부유해도 수월하지 않을 수 있다.

이제 본격적인 “정의” 논쟁이 시작된다.

소크라테스) 어르신이 재산 덕분에 덕본 게 무엇입니까?

케팔로스) 올바름의 실천이다. 재산 덕분에 정직하게 살 수 있었고 남에게 갚을 것을 갚을 수 있었다.

소크라테스) 남에게 갚을 것을 갚는 게 옳지 못할 때도 있을 수 있습니다! 만일 제 정신일 때 맡긴 것을 제 정신이 아닐 때 찾는다면, 그것은 옳지 못한 일입니다.

이 때 폴레마르코스가 끼어들면서 케팔로스가 뒤로 물러난다.

폴레마르코스) (시인 시모니데스를 언급하면서) 올바름이란 각자에게 갚을 것을 갚는 것이다.

소크라테스) 적한테도 무엇이든 갚아야하는가?

폴레마르코스) 당연하다. 그러나 적한테 갚는 것은 나쁜 것이다.

즉, 폴레마르코스의 올바름이란 적에게 손해를 주고 친구에게 이득을 주는 것. 각자에게 합당한 것을 갚는 것이 올바름이다.

소크라테스) 병든 이들과 병든 적들에게 잘되고 잘못되게 하는 데 유능한 이는 의사다. 마찬가지로 바다에서 그런 일을 하는 게 조타수다. 그럼 올바른 이는 무엇에 유능한가?

폴레마르코스) 싸움에 있어서 유능하다.

소크라테스) 그럼 전쟁을 하고 있지 않은 사람에게는 올바른 이가 쓸모없는가?

폴레마르코스) 평화 시에는 ‘계약’에 쓸모가 있다. 또한 금전관계, 즉 금전을 안전하게 사용해야만 할 때 쓸모가 있다.

소크라테스) 돈이 소용없을 때는 올바름이 소용이 없는가? 당신의 말을 따른다면 각각의 것을 사용하지 않을 때 올바름은 쓸모가 있다. 그렇다면 올바름은 별로 요긴하지 않은 것이 아닌가? 또한 올바름이 돈을 간수하는 데 능하다면 훔치는 데도 능하다.

소크라테스) 이야기를 계속해보자. 친구와 적은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가?

폴레마르코스) 친구와 적이란 선량한 이, 못된 이로 판단된 사람 뿐 아니라 실제로 선량한 이가 친구이며 실제로 못된 이가 적이다.

소크라테스) 어떤 사람에게든 해롭게 하는 게 올바른 사람이 할 짓인가? 말에게 해를 가하면 말은 더 나빠진다. 인간이 해를 입으면 인간적 훌륭함(덕, arete)과 관련해 더 나빠지게 된다. 올바른 이의 올바른 행동이 올바르지 못한 사람을 만들어낸다.

즉, 결론적으로 누구에게든 해를 입히든 건 어떤 경우에도 올바르지 않다.

이 때 논쟁을 보고 있던 트라마시코스가 끼어든다.

트라마시코스( 그럼 당신이 생각하는 올바른 것은 무엇인가?

트라마시코스는 소크라테스적 아이러니에 대해 반발하면서 논쟁에 개입한다. 소크라테스는 무지에 대한 가르침을 주고자 계속 남의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보여주고자 했을 뿐 무엇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트라마시코스) 올바른 것은 더 강한 자의 편익이다! 민주정, 참주정, 귀족정 모두 강자가 법을 제정하고 이를 공통적으로 적용한다!

소크라테스) 통치자들에게 복종하는 것 역시 올바른가?

트라마시코스) 그렇다.

소크라테스) 그들도 실수할 수 있지 않은가? 편익이 못되는 것도 법으로 정할 수 있는데 그럼 편익이 못되는 것도 이행해야하는가?

트라마시코스) 실수하는 자는 강한 자가 아니다. 실수하는 의사가 의사인가?

소크라테스) 실수 안하는 의사는(뛰어난 의사) 돈을 버는 자가 아니라 환자를 돌보는 이다. 선장은 선원들의 통솔자이다. 즉 선장이 선장인건 그의 기술, 다스림 때문이다. 그리고 환자, 선원에게도 편익이 있다. 기술이란 편익을 제공하는 것이며 의술은 의술의 편익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몸의 편익을 생각한다. 기술은 그 자체의 편익이 아니라 관여하는 대상의 편익을 생각한다.

결론적으로, 어떤 전문적 지식도 더 강한 자의 편익이 아니라 더 약한 자, 제 관리를 받는 자의 편익을 생각하고 지시한다.

트라마시코스가 다시 반론을 펼친다.

트라마시코스) 순진한 생각이다. 약자에게도 이익이 될지 몰라도 강자가 더 많이 가진다. 계약을 할 때 올바른 이가 올바르지 못한 자보다 덜 차지한다. 올바르지 못함이 자신에게 더 이롭다. 이처럼 올바르지 못한 일이 대규모로 일어나며 그것은 올바름보다 더 강하고 자유롭고 전횡적이다. 올바른 것이란 더 강한 자의 편익이며 올바르지 못한 것은 자신을 위한 편익이다. 완벽하게 올바르지 못함이 완벽한 올바름보다 더 이익이 된다. 올바름이란 아주 고상한 순진성이며 올바르지 못함은 훌륭한 사람이고 나라, 부족을 자기 지배하에 둘 수 있는 사람이다.

소크라테스가 반박을 시작한다.

일단 그는 트라마시코스의 올바른 이와 올바르지 못한 이에 대한 정의를 가정한다.

소크라테스) 올바른 이는 올바른 이를 능가할 자격이 있다고 여겨지지 않고 그러고 싶어 하지 않으나 올바르지 못한 이에 대해서는 그러고 싶어 한다. 올바르지 못한 사람은 올바른 사람을 능가할 자격이 있다고 여겨진다. 결론적으로 올바른 이는 올바른 이를 능가하려 하지 않고 올바르지 못한 이를 능가하려 하며 올바르지 못한 이는 올바른 이, 올바르지 못한 이를 둘 다 능가하려 한다. 그리고 올바르지 못한 이는 분별 있고 훌륭한 이고 올바른 이는 분별도 없고 훌륭하지도 않다.

그런데, 우리는 시가에 능한 이를 분별력 있고 훌륭하다 하며 시가를 모르는 이를 분별력 없고 변변찮다고 말한다. 그럼 시가에 능한 이는 시가에 능한 이를 능가하고자 하며 능가할 자격이 있다고 여기지 않은가? 그렇지 않다. 그럼 시가에 능하지 못한 이에 대해서는 능가하고자 하며 능가할 자격이 있다고 여기는가? 그렇다. 전문적 지식이 있는자는 또 다른 전문가를 능가하는 선택을 하는가 아니면 동일한 일처리를 두고 같은 선택을 하는가?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전문 지식이 없는 자는 전문가와 비전문가 둘 다 능가하려 하지 않는가? 그렇다.

그럼 전문지식이 있는 자, 즉 지혜로운 자는 자기와 같은 이에 대해서는 능가하지 않고자 하나 다른 이에 대해서는 능가하고자 한다. 그리고 못되고 무지한 자는 자기와 같은 이, 반대되는 이를 둘 다 능가하고자 한다! 그럼 전문지식이 있는 자, 지혜로운 자가 올바른 자이며 못되고 무지한 자가 올바르지 못한 자가 아닌가!

소크라테스가 이어 다시 질문을 던진다.

소크라테스) 올바르지 못한 나라가 부당하게 다른 나라들을 예속화, 실제 속국화했는가?

트라마시코스) 그렇다. 최선의 나라가 가장 완벽하게 올바르지 못한 나라가 할 일이다.

소크라테스) 다른 나라보다 강하게 될 나라가 올바름 없이도 그러한 힘을 지닐 수 있게 되는가?

어떤 집단이 올바르지 못한 일을 공모할 때 서로에 대해 올바르지 못하다면 그 일을 수행할 수 있는가? 올바르지 못함은 서로 간의 대립, 증오를 낳으며 서로 일을 못하게 된다. 올바름은 합심, 우애를 낳는다

반론을 마친 소크라테스가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소크라테스) 신은 올바르다. 올바르지 못한 인간은 신의 적이 된다. 이제 올바른 이들이 올바르지 못한 이들보다 더 훌륭하게 살며 더 행복한지 검토해보자.

소크라테스) 기능ergon이란 그것이야만 할 수 있는,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이다. 어떤 기능이 부여되어 있는 각각의 것에는 훌륭한 상태가 있다. 눈의 기능이 있으면, 눈의 훌륭한 상태도 있다. 나쁜 상태(눈이 먼 상태)로 제 기능을 훌륭히 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혼의 기능은 무엇인가? 사는 것이다. 그리고 혼에도 훌륭한 상태가 있다.

올바른 혼은 훌륭하게 살 것이며 복을 받고 행복하지만 올바르지 못한 이는 잘 못 살게 되고 행복하지 못할 것이다.

2. 제2권

이 때 글라우콘이 끼어든다.

글라우콘) 좋은 것은 그 자체로 좋은 것, 결과 때문에 좋은 것, 그 자체도 좋고 그 결과도 좋은 것이 있다. 이 중 어느 게 진짜 올바른 것인가?

소크라테스) 그 자체 뿐 아니라 생기는 결과 때문에도 좋아하기 마련인 것이다.

글라우콘) 많은 이들은 올바름을 보수나 평판 때문에 실천한다. 그 자체만이라면 기피해야 될 것이다. 그것을 실천하는 것은 마지못해서이다. 올바르지 못한 짓이 좋지만 올바르지 못한 일을 당하는 것은 나쁘다. 그러나 올바르지 못한 일을 당하게 되는 두려움이 올바르지 못하는 일을 하는 좋음보다 월등히 커서, 즉 서로 올바르지 못한 짓을 하다가 법률, 계약을 만들고 이를 합법적이고 올바르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것이 올바름의 기원이며 본질이다. 올바름을 실천하는 건 올바르지 못한 것을 저지를 수 있는 무능 때문에 마지못해서 하는 것이다.

글라우콘은 기게스의 반지 이야기를 예로 든다. 모두가 자유롭다면 욕망은 똑같이 탐욕스러운 방향으로 갈 것인데 이를 법으로 강제해서 정의 쪽으로 가게 하는 것이다. 올바르지 못한 짓을 저지를 능력이 있다면 인간은 그것을 능히 한다. 그러나 올바르지 못한 짓을 당할 것 같은 두려움 때문에 안하는 것이다.

글라우콘) 올바른 이와 올바르지 못한 이를 비교해보자. 완벽하게 올바른 이와 완벽하게 올바르지 못한 이를 비교해보자. 이 때 최상의 올바르지 못함은 올바르게 보이는 척 하는 것이다. 그럼 이 두 사람에게 어떤 삶이 기다리고 있을까. 올바른 자는 탄압받고 중요한 건 올바르게 보이는 것이라는 점을 깨닫게 될 것이다. 올바른 자로 보임으로서 그 자는 통치를 할 수 있게 되고 사익을 취할 수 있게 된다.

이 때 아데이만토스가 끼어든다.

아데이만토스) 올바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충고는 올바름 그 자체를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 인해 생기는 명성을 찬양한다. 시인들은 절제, 올바름은 아름다운 것이지만 힘들고 수고스러우며, 무절제하고 올바르지 못한 것은 달콤하고 얻기 쉬운 것이라 말한다. 그리고 대개 올바르지 못한 것이 더 이득이 된다. 신들이 내리는 운명조차도! 올바르지 못한 짓을 해도 신들이 용서해준다! 그리고 또한 올바른 이는 올바르기 때문에 올바르지 못한 이를 탓하지 않는다.

올바름의 예찬자들은 올바르지 못함을 비난하거나, 올바름에 대한 찬양을 명예, 평판이 아닌 그 자체로만 한 적이 없다. 올바름을 옹호하려면 올바르지 못함보다 낫다는 주장만 하지 말고 각각이 그걸 지니고 있는 당사자에게 그 자체로 무슨 작용을 하기에 한 쪽은 나쁘고 한 쪽은 좋다고 하는지, 올바름 그 자체를 찬양해 달라!

소크라테스) 시력이 나쁜 사람에게 작은 글씨를 멀리서 읽으라 한다면 그들은 똑같이 더 크게 써 있는 글씨를 찾은 다음 작은 글씨를 보는 게 좋다. 올바름에는 개인적인 것도 있지만 나라 전체의 것도 있다. 크게 보자! 나라에 있어서 올바름을 먼저 살펴보자.

소크라테스는 본격적으로 ‘국가’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나라가 생기는 이유는 무엇인가? 나라가 생기는 이유는 각자가 자족하지 못하고 여러 가지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서로 주거나 나누는 것은 그게 자기를 위해 더 좋다고 생각해서, 필요해서이다. 생존을 위한 음식물과 주거, 의복 및 그와 같은 유의 것을 마련하기 위해서인데, 이걸 마련하기 위해서는 4~5인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이 때 개개인은 자신의 일을 모두를 위한 공동의 것을 제공해야하는가? 각자 다른 일을 하는 게 낫다! 한 사람이 한 가지 기술에 종사하는 게 맞다. 그런데 그러기 위해서는 네 명으로는 부족하다. 그래서 나라가 커지게 되고, 한 나라 내에서 부족한 것을 보충하기 위해 다른 나라로부터 수입이 필요하고 이에 따라 수출을 하려면 더 많은 사람. 무역상, 해상운용 전문가 등이 필요하다. 나라 자체에서 시장을 통해 교환하기 위해 화폐가 생겨난다. 농부가 직접 팔지 못하는 경우가 있기에 소매상이 생겨나고 부농이 생겨나면서 빈농이 임금노동자가 된다. 그럼 이 상황에서 이 나라 안에서 올바름과 올바르지 못함이 있는가? 그건 바로 상호간의 필요이다.

이처럼 서로가 협력해서 풍요로운 나라(참된 나라, 건강한 나라)가 되었다. 이에 반대되는 나라는 물질이 필요를 넘어선 염증 상태의 나라이다. 예술이 판치고 장신구가 지나치게 발달한 나라다. 이 나라는 물질을 위해서 규모가 더 커져야한다. 그를 위해 남의 땅에 손이 가게 되고 결국 전쟁이 발생한다. 우리는 이런 나라로부터의 침략을 막아내야 한다.

그런데 전쟁도 결국 기술적인 것이고 따라서 어떤 이들의 적성과 능력이 수호자들에게 적합한지 알아내야한다. 다양한 조건들이 필요한데, 그것은 바로 친근한 이에게는 온순하고 적에게는 거친 것이다. 즉 대립되는 이들 둘을 함께 갖추고 있는 성향이 있는 사람이다.

개의 경우 모르는 이에게는 해를 안 입어도 적대적이지만 아는 이에게는 좋은 것을 받지 않아도 온순하다. 즉 친한 것과 낯선 것을 구분하는 것은 아느냐 마느냐의 차이이고 아느냐 마느냐는 배움과 관계된다. 아는 사람에게 온순한 이는 지혜를 사랑하고 배움을 좋아하는 이이다. 그런데 이런 이들을 어떻게 교육해내는가?

소크라테스는 이제부터 교육의 올바른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이 지점에서 시가에 대한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시가란 이야기이며 이야기는 사실과 허구로 이루어져 있는데, 지금의 시가는 허구부터 가르치고 있다. 아무 시가나 읽게 할 순 없다. 고로 설화 작가들을 감독하고 그들이 찾는 것이 훌륭하면 받아들이고 아니면 거절해야한다. 그럼 안 좋은 설화란 무엇인가. 대부분의 큰 규모의 설화들이 안 좋은 것에 해당한다. 헤시오도스와 호메로스의 이야기가 그것들이다. 그들은 신, 영웅을 사실과 다르게 그리고 있다. 크로노스가 제우스에게 수난을 당하는 이야기는 어린 아이들에게 보여줄 것이 못된다. 극단적으로 올바르지 못한 것들이다. 그리고 또한 신들끼리 음모를 꾸미고 싸움질을 하는데, 시가가 훌륭함에 관해 가장 훌륭하게 지은 것들을 듣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이는 적절하지 못한 내용이다.

아데이만토스) 그럼 아이들이 신화에 대해 물어보면 어떻게 하나?

소크라테스) 우리는 시인이 아니라 국가의 수립자들이다. 그런 것을 허용하면 안 된다. 규범을 정해 놓아야한다. 신을 신으로만 언급해야한다. 신은 선하다! 선한 것은 해로운 것이 아니며 해치지 않고 나쁜 것도 아니며 나쁜 것의 원인도 될 수 없다. 신은 선하며 고로 좋은 것들의 원인이고 나쁜 것들의 원인은 신이 아닌 다른 것에서 찾아야한다.

소크라테스) 신이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고 우리를 속여서 그런 걸로 여기도록 하는가, 아니면 본모습에서 벗어나지 않는가? 어떤 것이 본 모습에서 벗어난다면 이는 자신에 의해서 거나 다른 것에 의해서이다. 근데 가장 좋은 것이 다른 것에 의해서 변화할 순 없다. 바뀐다면 스스로 바뀌어야하는데, 절대적인 신이 현재의 자기보다 못한 걸로 변화할 리는 없다. 근데 자발적으로 자신을 어떤 방식으로든 나쁘게 바꾸겠는가? 신은 그냥 자신의 모습대로 남을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신들이 온갖 모습을 하고 나타날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왜 ‘선한 신’이 환상을 보임으로서 인간들을 속이고자 하는가?

진짜 거짓은 모든 신과 사람들이 미워하는 것인데, 왜냐면 모든 이들이 자발적으로 속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속는 것을 속고도 모르는 것이다. 그래서 거짓을 가지고 다니게 되는 것을 싫어한다. 고로 속은 자의 혼에 있어서 무지한 상태가 진짜 거짓이다. 그럼 말을 통한 거짓은? 어떤 때에 어떤 인간에게 유익한 것이어서 미움을 사지 않을 만하겠는가? 예컨대 적에게나 친구의 나쁜 것을 막기 위해서라든가. 그러면 이들 중 어떤 점과 관련해서 거짓이 신에게 유익할 수 있는가? 신이 거짓말할 이유는 전혀 없다. 고로 신성과 거룩한 것은 모든 면에서 거짓됨이 없다.

3. 제3권

그렇기에 들어야할 시가와 듣지 말아야할 시가를 구분해야한다. 용감한 전사를 위해 저승에 대한 험한 이야기도 삼가야하고 독립적이며 자족적이며 고통도 이겨내는 강한 자는 통곡하지 않기에 통곡에 관한 내용도 없애야한다. 강한 변화를 일으키는 웃음을 좋아하는 것도 안 되고 이런 묘사도 금지해야한다. 정직을 귀히 여겨야하고 거짓을 허용해선 안 된다. 통치자들의 나라 이익을 위한 거짓은 허용하지만 사인이 통치자에게 거짓말해서는 안 된다. 통치자에게 순종하고 쾌락을 다스리는 절제가 필요한데 이와 반대되는 인간, 신에 관한 내용의 시는 금지해야한다. 신, 신의 아들이나 영웅이 한 나쁜 짓에 대해 노래해서는 안 된다. 올바르지 못한 자가 행복하고 올바른 자가 불행한 이야기도 해서는 안 된다. (이에 대한 합의는 올바름이 어떤 것인지, 그 본성상 어떻게 이득이 되는지 알아내게 되는 그 때야 이루어진다.)

여기까지가 소크라테스의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이며 이제 ‘이야기 투’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호메르스가 시를 노래할 때 누군가를 모방하면서 이야기를 진행한다. 희/비극은 전적으로 모방만 하며 티티람보스(디오니소스에게 바치는 헌창가) 같은 것은 시인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모방과 자기 자신의 이야기 둘 다를 하는 것이 서사시이다. 셋 중에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한 사람이 하나를 모방 하는 게 더 완벽할 수 있다. (기능주의적 관점). 희극, 비극은 같은 이가 음송인/배우가 된다! 수호자는 다른 이를 모방하면 안 되고 수호의 업무와 관련된 것만, 모방해도 그들에게 어울리는 것을(여성, 노래가 아님) 모방해야한다. 훌륭한 이들이라면 다른 것(훌륭하지 않은 것)을 모방하는 데 마음을 가져서도 안 되고 해서도 안 된다.

시, 노래에서 훌륭한 이는 훌륭한 배역만 모방하려 하고 나머지를 모방하는 데에는 소극적이다. 훌륭하지 않은 이는 온갖 것을 다 이야기하고 이야기보다 모방을 더 많이 한다. 고로 훌륭한 이의 이야기 투는 변화들이 작으며, 한 가지 선법만을 사용 하며, 비슷한 리듬이다. 즐거운 건 혼합형이지만 훌륭한 이의 이야기 투만이 우리 정체에 어울린다. 우리나라에선 각자가 각자의 할 일을 하기 때문이다.

이제 소크라테스는 선법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비탄조와 한탄조의 선법을 써선 안 된다. 또한 유약해 보이는 선법, 주연에 알맞은 선법도 안 된다. 용감한 어조의, 참을성 있는 어조의 억양을 모방하는 절제 있는 선법을 사용한다. 훌륭한 사람의 어조를 지닌 선법만 남겨 두어야 한다! 리듬도 마찬가지다.

시인 뿐 아니라 나쁜 것을 제작하지 못하도록 다른 장인들도 감시해야한다. 그리고 이렇게 교육해야한다. 시가 교육이 곧 시민교육이다.

이어서 체육 교육에 대해 이야기한다. 훌륭한 혼은 몸을 훌륭하게 한다. 수호자 영웅 전사는 술에 취하는 것을 삼가고 간단한 식사를 해야 한다. 시가의 단순성은 혼에 절제를 주고 단순한 체육은 몸에 건강을 준다. 지나친 보살핌은 필요 없다.

아데이만토스) 그럼 훌륭한 의사, 훌륭한 재판관은 필요 없는가? 많은 이들을 다양하게 돌보아 본 적이 있는 이가 훌륭한 의사가 되지 않는가?

소크라테스) 훌륭한 의사, 판관은 훌륭한 혼을 가진 이다. 그리고 이런 원칙을 입법화해야한다. 나쁜 놈들은 죽게 내버려 둬야 된다!

그리고 교육이란 체육과 시가 모두 이루어져야한다. 하나가 커지면 과잉이 된다.

나라에서 그 정체가 보존되려면 감독자가 필요하다.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는 지 감시해야 한다. 그렇기에 통치에 훌륭한 이들을 뽑아야한다. 훌륭한 이들이란 이 나라에 훌륭한 일이면 온 열의를 다하려 들되 아니면 절대 안하는 이들이다. 어릴 적부터 이런 싹을 가진 이들을 보고 시험을 해야 한다. 시련을 가하고 이들을 홀리는 시험을 가해 통과한 자를 수호자로!

그리고 나머지 시민들이 이를 납득하도록 거짓말을 해야 한다. 통치자에겐 황금이 섞여 있다! 또한 통치자가 그들 임무를 저버리지 않도록 감시하고 사후 조치가 필요한데, 사유자산을 허용하지 않고 군인들처럼 공동생활을 해야 하며 필요한 만큼만 돈을 가지고 금은 만지면 안 된다.

4. 제4권

아데이만토스) 그렇게 하면 수호자들은 전혀 행복하지 않다.

소크라테스) 어느 한 집단이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시민 전체가 최대한 행복해지는 방안이다.

이어서 소크라테스는 장인들을 타락시키는 부와 빈곤의 문제로 넘어간다. 부는 게을러짐을 유발하고 빈곤은 자기 기술과 관련된 도구 등을 마련하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고로 수호자들이 감시해야할 것들이 부와 빈곤이다.

아데이만토스) 부유하지 않으면 다른 나라와 어떻게 싸우는가?

소크라테스) 전사와 부자가 싸우면 누가 이기는가? 다른 나라가 부자와 동맹을 안 맺는다.

아데이만토스) 다른 나라들의 재화가 한 나라로 몰려들면 가난한 나라에 위험하다.

소크라테스) 나라 간의 관계는 복잡하기에 그렇게 몰려들 수 없다. 그리고 실제로 강한 나라에 동맹군이 더 많이 몰린다.

소크라테스) 통치자에게 가장 훌륭한 기준은 적당한 크기의 나라다. 이를 위해서 한 가지 기능에 한 명이 배치되어 한 나라를 구성하면 되고. 아까 말한 교육과 양육만 지키면 된다. 이는 입법화하지 않아도 올바른 교육을 하면 알아서 잘 이루어진다. 예컨대 시장과 관련되어 입법화를 할 필요가 없다. 훌륭한 사람들이 알아서 용이하게 할 것이다.

아데이만토스) 그럼 입법이 필요한 영역은 무엇인가?

소크라테스) 신전 건립과 제물. 신, 영웅들에 대한 섬김, 죽은 자에 대한 예우 등은 입법의 영역으로 남아있다.

이제 본격적으로 올바름을 찾아보자!

나라가 올바르게 수립되었다면 이것은 완벽하게 훌륭한 나라. 이 나라에는 지혜, 용기, 절제, 올바름이 있다. 이 4가지를 찾아보자.

1) 지혜: 분별 있음. 앎에 의해서 많은 앎, 지식이 존재. 이 나라가 지혜로운 나라로 불리는 이 지식은 통치자에게 있다. 이들은 최소집단으로 지혜라 불리는 지식에 어울리며 지혜가 어디에 자리 잡고 있는 지 알아낸다.

2) 용기: 용기란 소신의 보전이며 두려워할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소신의 보존이다. 이는 교육에 의해 생긴 판단이며 시민적 용기(수호자 계층)

3) 절제: 앞의 것보다 협화음, 화성과 유사. 질서이며 쾌락과 욕망의 억제다. “저 자신을 이긴다.”라는 표현이 대표적으로 내 안의 한결 나은 것이 못난 것을 이긴 경우다. 용기, 지혜는 한 부분에만 있어도 되지만 절제는 나라 전체에 있어야한다. 교육받자 지성, 바른 판단을 갖춘 헤아림에 의해 인도되어 이 나라에 있다!

4) 올바름: 이 나라를 수립하기 시작한 때부터 준수해야한다고 했던 것. 각자는 천성으로 가장 적합한 그런 한 가지에 종사해야한다. 모든 판결의 기준은 올바름이어야한다. 각자가 남의 것을 취하지도 제 것을 빼앗기지도 않아야한다.

이 3부류의 지위가 바뀌면 안 된다.

이제 국가가 아니라 개인에게로 돌아가 보자. 개인에게도 이 3가지 혼의 특성이 있다. 그럼 이 세 가지 행위를 혼의 동일한 부분으로 하는 건가? 아니면 세 가지 부분이 있어 다른 부분으로 다른 행위를 하는가? 그런데, 동일한 것이 동일한 부분이 있어 동일한 것에 대해서 상반된 것을 동시에 행하거나 겪는 일은 없을 것이다.

예를 들어 이 3가지가 어떻게 구분되는 지 알아보자. 모든 욕구에는 대상이 있으며 지식에도 대상이 있다. 예컨대 목마름(대상)에 대한 욕구가 있다고 하자. 그 욕구는 목마름만 추구한다.(욕구적 부분) 그런데 목말라하는데 안 마시는 사람은(반대로 끌어당기는 무언가)? 이성의 작동이다. 그런데 격정의 부분이 이성과 결합할 수도 욕구와 결합할 수도 있다. 격정적으로 욕구를 자제하는 경우, 격정에 못 이겨 욕구를 추구하는 경우가 있다. 이 3부류가 저마다 제 할 일을 하는 게 올바른 사람이다. 헤아리는 부분과 격정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이는 시가와 체육의 혼화로 가능하다.

즉, 이성(지혜), 욕구, 기개가 조화를 이뤄야하는데, 이성이 지배하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보고 이에 욕구, 기개가 반목하지 않는 것이 절제다. 이성, 욕구, 기개가 각자의 일을 하는 것이 올바름이고 이 반대가 올바르지 못함이다. 그리고 올바름의 상태가 혼의 훌륭함이며 올바르지 못함이 혼의 질병 상태다. 올바르게 사는 이들은 혼이 훌륭한 이들로, 혼이 타락한들 몸의 본바탕이 무너진들 다른 부나 권력이 무슨 소용인가?

이제 소크라테스는 잘못된 정체와 혼의 상태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한다.

5. 제5권

소크라테스가 나쁜 정체와 혼에 대해 말하려는 데 아데이만토스가 끼어들어, 처자 공유와 그것에 따른 혼인, 출산 문제에 대한 설명을 요구한다.

소크라테스) 같은 교육, 양육을 받으면 여자도 남자가 하는 일을 할 수 있고 똑같은(시가, 체육) 교육을 제공해야한다. 다른 성향은 다른 일을 종사해야한다면서 성향이 다른 남녀가 같은 일을 한다? 같은 성향, 다른 성향은 모든 면에서 고려한 게 아니라 일들 자체에 적용되는 것에만 국한된다. 여자 의사나 남자 의사나 같은 혼. 의사와 목사는 다른 혼. 그럼 나라의 조직과 관련되는 것 중에서 무슨 기술, 일과 관련해서 여자와 남자의 성향이 같지 않고 다른가? 나라 돌보는 일은 양성이 비슷하게. 여자도 성향에 따라 관여한다. 그런데 남자에겐 배정하면서 여자에게 안 할 수 있는가? 지혜, 용기, 수호자 능력을 갖춘 여자는 남자처럼 수호자가 되고 이 남자와 같이 살아야하며 이는 자연에 어긋나지 않고 이 자연에 따라 nomos를 구성해야한다. 똑같이 시가, 체육 교육을 해야 한다. 이에 뒤 따르는 노모스는 아내를 공유하고(어떤 부모 자식도 서로를 모름) 최선의 남자는 최선의 여자와 성관계를 가져 최선의 아이를 생산하는 것이다. 그러나 수호자 집단의 분쟁을 막기 위해 통치자 자신 밖에 이 사실을 몰라야한다. 모르게 성관계를 갖게 한 다음 아이들을 따로 양육하고 이를 통해 통치자들 간에는 서로 남이 아니며 모두 아버지, 어머니 자식들이다. 내 것이 되는 것이 중요. 서로 간의 명칭과 행동(아버지에 맞는 대우)도 노모스로 정한다. 그래서 어떤 한 사람이 잘하거나 잘못했을 때 내 것이 잘되고 있다, 내 것이 잘못되고 있다고 느끼게 한다. 즐거움, 고통도 공유되며 이것이 최대선. 나라의 분열을 막고 모두가 공감상태에 있다. 서로가 고소하지 않으며 재물, 친족 소유로 인한 분쟁과 폭력이 없다.

소크라테스는 여자와 남자가 동시에 한 일에 관여할 수 있다 했는데 통치 말고 다른 일에도 남녀가 공동 관여할 수 있는가? 가능하다면 어떤 방식으로 가능한가? 이에 대해 소크라테스는 전쟁에 함께 출진할 수 있다고 말한다. 아이도 데려 가야한다. 아이에게 교육이 되며 어른이 더 열심히 싸우고 조심하게 될 것이다. 그래도 아이가 위험에 처할 수 있으니 어려서부터 훈련을 받게 하고 비겁하게 도망치는 자는 장인, 농부로 강등시키고 용감한 자를 대접해야한다. 대접이란 예컨대 혼인의 기회를 더 주어 최선의 자식이 태어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럼 적들은 노예로 만들어야하는가? 관대하게, 관습으로! 시신을 건들지 마라. 헬라스 땅에서 방화나 유린은 허용되면 안 된다. 이것도 노모스이다. 헬라스 인끼리의 전쟁은 내분이고 병들어 친구와 싸우는 것이다. 이런 노모스를 통해 헬라스 인들이 헬라스를 자신의 나라로 생각하고 스스로 사랑하게 될 것이다.

이제 처자공유 등에 대한 유용성은 알았으니 그 가능성에 대해 말할 차례이다.

꼭 실현할 수 없어도 이를 증명하지 못해도 만족할 만하다. 최선의 것으로 올바른 정체로 가는 법은 정치권력과 철학이 한 데 합쳐지는 것이다. 일단 철학에 대한 정의부터 하자.

철학자는 학문적 가림 없이 모든 지혜를 욕구하는 자를 말한다. 모든 배움을 맛보려하고 늘 부족한 사람이다. 그런데 이렇게 정의할 경우 범위가 너무 넓다. 지식을 욕구하는 자는 너무나 많지 않은가? 그렇지 않다, 그 사람들은 닮은 자들로 진리를 구경하기 좋은 자들에 불과하다. 빛깔, 소리 등 닮은 것들에 관심을 갖는 이들은 듣기 좋아하고 구경하기 좋아하는 자들에 불과하며 이들은 아직 꿈꾸는 상태에 있다.(의견:doxa) 이와 반대로 아름다움 그 자체를 욕구하는 자들이 철학자들이고 이들은 깬 상태에 있다.

6. 제6권

따라서, 철학자들이 나라를 다스려야한다. 이들은 온 존재를 사랑하는 이들이며 이들의 자질은 온 존재를 드러내 보여주는 배움을 언제나 사랑하는 것이며 진실함, 진리를 좋아함, 절제 있음, 저속함이 없음 등이다. 이들은 또한 좋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기억력이 좋다. 고로 이들에게만 나라를 맡겨야한다.

아데이만토스) 철학을 젊었을 때 건드려보는 사람의 대다수가 아주 이상하게 되거나 나라에 쓸모없는 이들이 된다. 사람들이 이들을 싫어한다.

소크라테스) 조타수를 예로 들어보자. 어떤 사람이 조타수냐 아니냐는 그의 기술에 달려있지 남들이 그를 원하는지 아닌지 와는 상관이 없다. 그러면서 훌륭한 사람이 쓸모없는 이유를 언급한다. 많은 사람들이 타락하는 건 철학의 탓이 아니다. 배움을 좋아하는 이는 실재에 이르려하고 각각인 것 자체의 본성을 포착하기 전까지 사랑을 멈추지 않는다. 그들은 거짓이 없으며 절제가 있다. 이 성향은 소수만 타고 나는데, 이 성향이 전락할 수 있다. 이는 최선의 성향이 그것에 맞지 않는 양육 상태에 있을 경우이다. 이 때 평범한 성향보다 못할 수 있다! 소피스테스들에 의해 타락한 젊은이들. 말로써 설득 못할 경우 시민권 박탈하고 사형에 처하니 누구도 맞서려 하지 않는다. 소피스테스들은 다중의 신념들을 가르치며 이를 sophia라 한다. 다중의 기분을 잘 알아차리는 것을 지혜로 믿는다. 다중이 이데아를 믿고 따라 지혜를 사랑하게 되는 게 가능한가? 고로 철학을 하는 이가 이들에게 비난받는 건 당연하다. 소피스테스들은 재능 있는 자를 이용하고 이들에 아첨하고 따라서 재능 있는 자들은 자만해지고 충고를 듣지 못한다. 철학으로 끌릴까봐 음모와 송사를 일으킨다.

아데이만토스) 그럼 철학에 맞는 정체란 무엇인가?

소크라테스) 없다!

나라가 철학을 어떤 식으로 대하면 파멸하지 않을까?

유년기를 갓 벗어난 이들이(가장 힘든 시기에) 철학에 손대어 그만둔다. 고로 청년, 아이들일 때 청소년기 교육, 철학을 받아들이고 자라고 어른으로 성장해 가는 시기 육신을 잘 보살피고, 나이 들면 혼을 단련해야 한다. 그리고 은퇴하면 아무것도 하면 안 된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철학자가 권력을 잡아야한다. 그러나 다중은 다르게 생각할 것이다. 고로 다중을 잘 설득해야한다. 철학자가 권력을 잡으면 인간들의 성격을 깨끗하게 먼저하고(스스로) 정체의 형태를 윤곽으로 그린다. 그리고 신을 닮은 이를 인간들 속에 생기도록 한다. (법률 제정) 이러면 다중도 이해할 것이다.

다음주제로 넘어간다. 우리에게 이 정체(철인왕 정체)의 보존자들이 생기는 것은 어떤 방법으로, 그리고 무슨 교과들과 무슨 활동들, 어떤 연령에 따라 아는 자가 그 각각에 관여하는가?

무슨 교육이 필요한가? 가장 큰 배움은 좋음의 이데아다. 이것 덕분에 올바른 것, 모든 나머지 것들도 유용, 유익한 것. 그걸 알아야 이 정체는 완벽해진다. 이데아란 실재하는 것으로 지성에 의해 알려지나 눈에는 안 보이는 것이다. 보임의 시작은 빛에 의해. 이 때 태양이 보이는 것들에게 보이는 힘을 제공한다! 태양의 비유를 들어보자. 진리, 실재가 사물을 비추고 이를 고찰한다. 지성에 의해 인식한다. 어둠의 상태에 있는 것이 doxa. 인식되는 것에 진리를 제공하고 힘을 주는 것이 좋음의 이데아다. 인식되는 것들이 인식됨이 가능한 것도 좋음에 의해서이고 존재, 본질을 갖는 것도 그것에 의해서다. 좋음은 존재가 아니라 존재를 초월해 있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태양과의 유사성에 대한 보충 설명을 한다. 그것이 선분의 비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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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에 의해 파악(> 수리적 추론) 눈에 보이는 것

7. 제7권

교육 및 교육 부족에 관한 우리의 성향에 대해 알아보자. 소크라테스는 동굴의 비유로 이를 설명한다.

사지가 묶여있고 동굴 벽면에 투영되는 그림자들만 본다. 이들은 대화하면서 벽면에 보이는 걸 실재라고 지칭한다. 누군가가 풀려나 다른 걸 본다. 그러나 높이 있는 걸 보려면 익숙해짐이 필요하다. 햇빛이 괴롭다, 처음엔. 그리고 마침내 모든 것의 원인이 되는 것, 태양을 본다. 교육을 못 받은 자는 인생의 목표가 없으며 끝까지 교육받느라 소일하도록 허락받은 자는 이 세상에 살면서 축복받은 것으로 생각 된다.

훌륭한 성향을 지닌 자가 오르막을 올라 참된 것을 보게 되면 이들이 허용 받은 뒤 죄수들에게 가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나라 전체를 위해서이다. 그럼 이런 사람들이 이 나라에 어떤 방식으로 생기게 되며 어떻게 이들을 광명으로 인도할 것인가?

필요한 교과들은 다음과 같다. 모든 기술, 모든 사고와 지식이 이용하는 공통적인 것. 수와 계산! 크고 작음의 구분을 통해 존재를 포착할 수 있게 해준다. 기하학! 언제나 있는 것에 대한 앎이다. 천문학! 창조자에 의해 구성된 하늘. 입체기하학, 협화음(수 찾기). 또한 지식을 탐구하는 방법은 변증술. 인식(지식)과 추론적 사고는 지성에 의한 이해이며 믿음과 상상은 doxa.

이 교과들을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배정하는가? 훌륭한 성향(고귀, 강건, 기억력 등)을 가진 자에게. 늙으면 안 된다. 예비교육은 아이들일 때부터 시켜야 한다. 강제면 안 되고 놀이처럼 해야 한다. 필수적 체육에서 벗어날 때 아이들을 선발해서 실재의 본성에 대한 포괄적 봄을 갖는 교육을 시킨다. 그러나 논변을 맛보지 않도록 한다. 놀이처럼 남용할 수 있다. 남에게 논박당하는 경우 회의주의에 빠진다. 그리고 50세가 되었을 때 통치자로 등극한다.

8. 제8권

소크라테스는 국가 정체에 대해 이야기한다. 정체에는 4가지가 있다. 명예지배정체(라코니케), 과두정체, 민주정체, 참주정체가 그것이다. 이와 유사하게 인간들의 성격도 이 네 가지로 나뉜다.

1. 명예욕이 지배하는 정체. 선대에는 훌륭한 인간(최선자 정체)들이 통치했으나 아비들의 권력을 승계하면서 이상한 애들이 통치자가 된다. 무사, 시가에는 무관심하고 체육에만 관심이 있다. 경쟁과 적대심이 늘어나고 내분이 발생한다. 아레테와 물질 간의 대립에서 중간선에서 합의하게 된다. 최선자와 과두의 중간. 좋은 것과 나쁜 것이 혼합되었다. 이런 인간은 명예 지상적 청년. ‘훌륭한 아버지의 아들’의 통치 체제이다.

2. 과두정체: 부자들이 통치하는 나라이다. 명예정치가 과두정치로 변화한다. 한계점은 다음과 같다. 1) 돈 많은 것과 뛰어난 통치기술은 다르다. 2) 부자와 빈자가 서로 음모를 꾸민다. 3) 어떤 전쟁도 못한다. 4) 돈을 기부하지 않는다. 거지들이 살고 있는 나라가 되어. 못된 인간들이 많아진다. 명예 지상적 청년이 돈벌이에 미쳐 과두 정체적 인간으로 변한다. 이런 이들은 남들을 힘으로 제압한다.

3. 민주정체: 과두정체에서는 많은 이들이 만족할 수 없는 욕망을 가지게 된다. 무절제함이 생겨난다. 빈자들이 혁명을 열망하고 부자들을 죽이고 추방한다. 그들은 나머지 시민들에게 평등하게 시민권, 관직을 배정하고 추첨한다. 민주 정체적 인간들은 자유롭다. 그러나 멋대로 할 수 있는 자유이며 온갖 부류의 인간들이 무정부 상태의 다채로운 정체. 평등하다! 민주 정체적 사람이란 무엇인가? 교육도 못 받은 자가 온갖 종류의 쾌락의 제공을 맛보게 된다. 평등한 권리란 맘대로 행동하는 자이다.

4. 참주정체 : 민주정체가 참주정체가 되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부(과두) -> 욕망 -> 민주(자유) -> 참주. 만족할 줄 모르는 욕망과 그 밖의 다른 것들에 대한 무관심이 민주정체에서 생겨난다. 이는 아무 질서도 없는 자유이다. 이 정체 하에서 사람들은 어떤 형태의 굴종을 요구해도 참지 못한다. 지나친 자유는 예속으로 이어진다. 대중은 앞장서는 부류로 민주정을 조정하고, 알뜰한 이는 가장 부유한 자이며 민중은 정치에 관여안하고 재산도 없고 꿀이 없으면 집회에 오지 않는 대다수의 사람들이다. 대중이 알뜰한 이들 것을 빼앗아 민중에게 준다. 대부분은 자기네가 가지고. 알뜰한 이들이 음모를 꾸민다고 고발한다. 이 때 참주는 군중의 관심을 끄는 정책을 제시한다. 참주는 자산을 가진 자들에 대해 분쟁을 일으킨다. 이들은 전쟁을 유발하여 지도자가 필요한 상황을 만들고 세금으로 자기한테 신경을 못 쓰게 한다. 비판자들은 제거당하고 쓸모 있는 자들은 아무도 없게 되는 ‘훌륭한 숙청’이 진행된다. 이들은 아름답고 크며 설득력 있는 목소리를 지닌 이들을 고용해 참주정을 유지한다. 재원은 참주정을 낳은 민중에게서 온다.

9. 제9권

참주정체를 닮은 사람은 누구인가? 무법한 욕구를 지닌 자이며, 이 욕구는 누구에게나 있다. 꿈꾸는 동안 모두가 그렇지 않은가? 민주적 인간은 돈벌이 욕구만 있고 다른 욕구를 멸시하는 아버지 밑에서 다른 욕구를 배운다. 절제가 있다. 이 사람의 아들이 나이를 먹게 자라게 되면서 제약이 없는 유혹들에 부딪친다. 술꾼에 욕정적이고 충동적인 인간이 되어 쾌락이 넘쳐난다.(doxa가 지배하여 꿈에서 깨어나도 마찬가지 짓을 한다.) 그리하여 온갖 나쁜 짓을 일삼는다. 참주는 가장 극단적인 인간이며 최대로 올바르지 못한 사람인 동시에 가장 비참한 자(자유도 우정도 없고 주인 노릇을 못하고 노예 노릇만 한다.)이다. 이와 반대로 최선자의 정체는 가장 행복한 나라이다. 참주적 인간은 혼이 노예 상태에 있는데,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는가? 가난이 필연적이다. 두려움이 가득하다. 제일 비참한 자는 참주 정체적 인간이 실제 참주가 된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나라를 세 부류로 나누고 혼도 세 부분, 즐거움도 3부분으로 나눈다. 배우는 부분은 진리이며 지혜를 사랑하는 부분이다. 격하게 되는 부분은 지배, 승리, 명성을 지향하고 욕구적인 부분은 돈 같은 利를 추구한다. 배우는 이가 가장 훌륭한 판단을 한다. 이는 이들만이 남들이 해보지 못한 경험을 해보았기 때문이다. 이들의 수단 역시 logos를 이용하는 것으로 훌륭하다.

결국 올바름이 올바르지 못함보다 좋다. 분별 있는 자의 즐거움 말고는 온전한 것이 없고 나머지는 환영적인 것이다. 올바르지 못한 짓은 안 좋은 혼을 지니게 된다. 이득의 문제가 아니다.

10. 제10권

소크라테스는 다시 시가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그는 처음으로 데미우르고스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데미우르고스는 이데아를 보고 물질을 만들어냈다. 인간은 보이는 것을 만들 순 있으나 있는 것 자체를 만들 순 없다.

3가지의 침상이 있다. 1. 본질, 침상의 이데아(본질 창조자인 신에 의해 만들어진) 2. 목수가 만든 침상, 3. 침상을 그린 화가(모방자.) 비극 작가도 마찬가지는 모방자에 불과하다. 보이는 것을 모방한 자는 훌륭한 시인인가? 실재에서 3단계나 떨어져 있다. 실재로 이롭게 하지 못하는 자에 불과하다. 이들은 마력을 가지고 있다.(선법, 운율, 리듬 등)

사용자는 아는 자이며 사용자가 제작자가 함께 있으면 그것에 관한 지식을 얻게 되고 그것의 훌륭함을 알게 되나 모방자는 자기가 모방하는 것에 대한 아레테와 나쁨을 알지 못한다.

또한, 훌륭한 이들은 슬픔을 견디어 낸다. 그런데 전혀 괴로워하지 않는가 아니면 괴로움에 대해 절도를 지키는가? 괴로움에 저항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저항은 누군가 지켜볼 때 더 잘할 수 있다. 괴로움에 저항하도록 하는 것은 이성, 법이고 그 쪽으로 이끄는 건 감정. 이성, 법은 자기동일성의 유지이며 이게 더 어렵다. 반면에 화내기는 다채로운 성격을 띠며 모방이 쉽다. 고로 시 중에서 신들에 대한 찬가, 훌륭한 사람에 대한 찬양만이 받아 들여져야한다.

 

소크라테스는 마지막으로 철학과 시의 불화와 영혼 불멸설에 대해 말한다.

파멸하고 몰락하는 건 나쁜 것이며 보존하고 이롭게 해주는 것은 좋은 것이다. 혼의 나쁜 점이 혼 그 자체를 파멸시키는가? 그것은 육신의 탓이다. 고로 육체가 파멸된다고 혼이 파멸되진 않는다. 고로 혼은 언제나 있는 것이다. 올바름이란 혼의 문제이며 올바르게 사는 것이 좋다! 신들의 사랑을 얻는다.

http://blog.aladin.co.kr/jobonzwa/5294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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