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로크 : 정치공동체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 통치론 정리

통치론  까치글방 120
존 로크 지음, 강정인.문지영 옮김 / 까치글방 / 1996년 10월

같은 사회계약론자로 분류되지만, 홉스와 로크의 차이는 매우 명확하다. 여러 가지 차이가 있지만, 가장 큰 차이점은 “주권/최고권을 어떻게 상정하고 있는가”라고 할 수 있다. 홉스는 주권이 단일성/지속성을 가져야 한다는 장 보댕의 주장을 계승한다. 보댕은 정치공동체 내에서 발생하는 종교내란과 같은 형태의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분쟁의 원인이라 할 수 있는 여러 종류의 힘을 모두 제압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 주권을 상정했다. 그리고 이러한 주권이 단일성과 지속성을 가져야만 정치적 결정이 단일하게 그리고 권위를 가지고 작동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정치공동체가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아가 보댕은 군주 1인이 주권자가 되어야 주권의 단일성과 지속성이 유지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보댕의 생각은 당대의 절대군주정이 자신들의 정당성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이론적인 영향을 주었다.
홉스는 보댕처럼 절대군주정의 정당화에서 시작하지 않았다. 그는 혁명을 통해 새롭게 수립된 정치공동체, 크롬웰의 공화정에 “어떻게 정치적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을까”라는 문제에서 시작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홉스는 자연 상태의 만인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인위적 인격이자 주권자인 ‘코멘웰스’에게 양도함으로써 사회 상태에 들어선다는 사회계약론의 입장을 취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양도’된 주권이 단일하고, 지속성을 가져야한다는 생각은 보댕과 다르지 않았다.
로크는 이 지점에서 보댕과도. 그리고 홉스와도 단절한다. 로크와 홉스의 차이는 다음과 같은 질문에 대한 대답을 통해 정식화할 수 있을 것이다. “대체 로크가 상정한 정치사회에서 ‘주권’은 어디에 있는가?” 근대국가에서 주권 개념을 처음으로 정식화한 장 보댕은 주권이 절대왕정의 군주에게 있다고 말했다. 홉스는 자연 상태가 아닌 사회 상태에서 주권은 인위적 인격이자 주권자인 코멘웰스에게 있다고 말한다. 이렇게 보댕과 홉스가 주권이 어디에 있는지 명확하게 설명하는데 반해, 로크는 그렇지 않다. 그는 사실상 최고권력/주권을 다수로 상정한다. 그는 홉스는 결코 언급하지 않았던 ‘임기’나 ‘선출’과 같은 개념을 통해 주권의 지속성에 타격을 가하는데 이어, 다수의 최고권력/주권을 상정함으로써 주권의 단일성에도 (일정 부분) 타격을 가하는 셈이다.
로크는 제일 먼저, 정치사회의 최고 권력을 입법권에 부여한다. 몇 가지 제한이 있지만, “입법권은 모든 국가에서 최고의 권력이다.”(128) 로크가 국가 내에서 입법권이 최고 권력이라고 주장하는 근거는 정치사회의 수립에 관한 그의 논설에서 찾아볼 수 있다.
자연 상태에서도 인간을 자유로우며, 천부적인 권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자연 상태에서 그들이 가진 권리는 “그 향유가 매우 불확실하고, 끊임없이 다른 사람이 침해할 위험에 놓여”(119) 있다. 향유가 불확실한 권리의 대표적인 사례는 재산이다. 따라서 인간은 “비록 자유롭지만 두려움과 지속적인 위험으로 가득 찬 이 상황을 기꺼이 떠나고자”(119)하며, “생명, 자유, 자산의 상호보존을 위해서 사회를 결성할 것을 추구하거나 기꺼이 사회에 가입하려고”(119) 한다.
이처럼 사회 상태에서 인간이 자연 상태와 달리 재산을 보호받을 수 있는 이유는 자연 상태에서는 없는 것들이 사회 상태에는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법률이다. “자연 상태에서는 옳고 그름을 판별하는 기준이자 사람들 사이에서 모든 분쟁을 해결하는 공통된 척도로서 공통의 동의를 통해서 수용되고 인정된 법률 그리고 확립되고 안정된, 잘 알려진 법률이 없다.”(120) 즉 사람들이 사회에 들어가는 가장 커다란 목적 중 하나가 바로 사회에는 법률이 있기 때문이고, 이를 근거로 입법권은 한 정부의 최고 권력으로 기능한다.
로크는 입법권이 최고 권력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입법권이 행정권보다 우월하다고 말한다. 이는 이론적으로 주권의 단일성을 어떻게든 유지하려는 로크 나름의 노력일 것이다. 집행권을 지닌 집행부는 입법권을 지닌 입법부의 승인과 허가 하에서만 자신의 권력을 발휘할 수 있다. 입법부가 법률로 지정한 내용에 따라서만 집행부의 집행권을 발동한다. 이는 입법부가 법률과 규칙이 위반된 경우 “집행권을 부여하는 권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144) 따라서, “행정권(집행권)은 입법권에 분명히 종속되고 책임을 져야하며, 또한 입법부의 뜻에 따라 변경되고 해임된다.”(145)
그러나 로크는 혼란스럽게도, 집행부가 최고 권력을 행사할 여지를 남겨 놓았다. 이는 대권과 연합권의 존재 때문이다. 대권이란 법에 의해 사회의 모든 것이 규율되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생겨나는 행정권을 가진 자의 재량(의 권력)이다. 이 대권은 두 가지를 근거로 정당화되는데, 첫 째는 입법자의 한계이고, 두 번째는 법의 경직성이다. 먼저 입법자는 미래에 사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법을 ‘불충분’하게 만들 수밖에 없다. 법의 불충분성을 채우기 위해 집행부의 대권이 인정된다. 또한 법이 모든 것을 세세하게 규정할 수 없고, 제정 의도와 달라질 수 있다는 ‘법의 경직성’ 때문에, 집행부의 대권이 인정된다.
대외적으로 존재하는 집행부의 재량은 연합권이다. 이는 하나의 정치사회가 그 정치사회 밖의 모든 단체, 사람과 마주할 때 발생한다. 전쟁 같은 이러한 상황은 언제 터질지 모르고 사안이 매우 급박하다.(정치공동체의 존폐와 관계되므로) 따라서 이를 해결하는 권한은 ‘상시적’ 권력인 집행권에 부여되며, 이 권리를 ‘연합권’이라 한다. 그렇다면 이 연합권은 어떻게 집행부로 하여금 최고 권력을 행사하도록 하는가? “국가 내에서 구성원들은 사회의 법률에 의해서 지배된다. 그러나 여타 인류에 대해서 그들은 하나의 단체를 구성하며. 그 단체는 이전에 구성원들이 처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여타 인류에 대해서는 자연 상태에 놓여 있다.”(140) 즉 국가 밖의 모든 사람 및 공동체와 마주하는 순간, 전쟁과 강화, 연맹과 동맹, 교섭을 하는 순간 그 공동체의 법률은 더 이상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따라서 집행부는 입법부가 제정하는 법률에 일정 부분 자율성을 누리며 연합권을 발휘할 수 있다.
물론 로크는 입법부가 집행부보다 우월하다고 말했지만, 실제적인 힘(집행력)을 지닌 집행부가 입법부를 무시한다면, 실질적으로 입법부가 집행부를 제어할 방법은 없다. 이런 점에서 로크는 대놓고 집행부에게 최고 권력을 부여하지는 않았지만, ‘실질적으로’ 그렇게 만들어주었다는 혐의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하지만 동시에 로크는 역시 최고 권력을 ‘인민’에게 부여하기도 했다. 통치론 곳곳에서는 입법권과 집행권에 제약을 가하는 조건들이 등장한다. 공공선이라든가, 인민의 복지라는 표현이 그것이다. 입법부는 자의적으로 법률을 제정하고 공포해서 안 되며, 인민의 복지를 위해서만 법률을 제정하고 공포해야한다. 또한 인민의 동의 없이 그들의 재산에 세금을 부과해서는 안 되며, 법률을 제정할 권력을 그 밖의 다른 사람/기관에게 이전하거나 인민이 그 권력을 설정한 곳 이외의 다른 곳으로 설정해서도 안 된다. “입법부는 일정한 목적을 위해서만 활동할 수 있는 단지 신탁된 권력이므로 입법부가 그들에게 맡겨진 신탁에 반해서 행동하는 것이 발견될 때 입법부를 폐지하거나 변경할 수 있는 최고 권력은 여전히 인민에게 있다.”(155)
또한 로크는 인민에게 집행부가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할 경우 이들을 인민이 힘으로 제압할 권리가 있다고 말한다. 앞에서 언급한대로 실제적인 집행력을 지닌 집행부가 입법부를 무시한다면 어떻게 될까? 로크는 인민의 힘을 그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국가의 힘을 장악하고 있는 행정권이 입법부가 소집과 활동을 요구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방해하기 위해 무력을 사용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148) “인민은 그들의 권력을 행사하여 그들의 입법부를 본래대로 회복시킬 권리를 가지고 있다.”(148)
이렇게 최고 권력이 다수의 곳에 놓여 있다고 할 때, 다음과 같은 의문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렇게 다수의 최고 권력이 존재하면, 정치공동체가 과연 안전과 평화를 유지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해 대답하기 위헤, 우리는 로크에게 ‘안전’과 ‘평화’란 무엇인지 상기해야 한다. 홉스와 비교해보자. 홉스가 설명한 대로라면, 자연 상태에서 인간은 생명을 위협받고 늘 전쟁 상태에 시달린다. 자연 상태에서 인간은 안전과 평화를 보장받기 못하기 때문에, 주권자에게 권리를 양도하며 사회 상태로 들어선다. 반면에 로크에게 자연 상태란 불안정한 상태일 뿐이다. 자유와 권리가 있으나, 그것을 ‘확실히’ 보장받지 못하는 상태가 자연 상태이다. 이를 보장받기 위해 인간은 사회 상태에 들어선다. 즉 로크에게 ‘안전’이란 내 재산과 생명과 자유가 보장받는 상태이며, 평화 역시 그러한 상태이다. 정치공동체를 이를 위해 존재한다.
그런데 만일 사회 상태에서 그 ‘목적’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누군가 자의적으로 권력을 행사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들은 자연 상태보다 더 열악한 상태에 처하게”(132) 된다. 자연 상태에서 인민들에겐 자신의 권리를 방어할 자유와 힘이라도 있다. 그러나 사회 상태에서는 강한 권력을 지닌 권력자들이 탄생해버렸기 때문에, 이들로부터 인민 개개인은 자신을 방어하기 힘들어진다. 그래서 로크는 권력을 분립하여 권력의 자의적이고 법률에 근거하지 않는 행사를 방지하고, 또 제한하고자 했던 것이다. 행정권과 입법권의 분리는 이 때문이다. 또한 이를 어길 경우 인민이 기존의 정치사회를 뒤집어엎을 수 있는 것도 당연하다. 내 재산과 자유와 생명이, 즉 안전과 평화가 보장받지 못한다면 굳이 왜 이 정치사회에 남아 있어야 하는가?
따라서 다수의 최고 권력으로 인해 정치공동체가 안전과 평화를 유지하기 어렵지 않을까 라는 질문에 대해서 로크는 다음과 같이 대답할 것이다. 최고 권력을 한 곳에 두는(홉스 식처럼) 방식으로는 정치공동체가 안전과 평화를 유지하기 힘들 것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이처럼 안전과 평화를 유지하지 못하는 정치공동체는 인민의 손에 해체되어 마땅하다고 말이다.

http://blog.aladin.co.kr/jobonzwa/5108162

통치론  까치글방 120
존 로크 지음, 강정인.문지영 옮김 / 까치글방 / 1996년 10월

제1장 서론

아담에게는 자식과 세계에 대한 지배권이 없으며 아담에게 있다 해도 그의 상속자들에겐 전혀 없으며 상속자들에게 있다 해도 누가 정당한 상속자냐에 대한 문제 제기시 해결할 자연법(신법)이 없기에 통치의 권리는 결정될 수 없다. 그러한 것이 결정 되었다 해도 누가 아담의 직계인지 알 수 없으므로 그 누구도 상속권을 주장할 수 없다.

위에서 언급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에게 반박하고자 아담의 사적인 지배권과 아버지로서의 권한과는 다른 정치권력의 기원과 이를 소유할 기관, 그리고 그것들을 분별하는 방법을 밝히고자 한다. 이를 위해 다른 모든 권력과 다른 위정자의 권력에 대해 밝힐 것이다. 먼저 나는 정치권력을 ‘사형 및 그 이하 모든 처벌을 가할 수 있는 법률을 제정하는 권리이며 재산을 규제, 보전할 목적으로 그러한 법률을 집행하기 위해 국가를 방어하기 위해 무력을 사용하는 권리, 이 모든 것을 오직 공공선을 위해 행사할 권리라 정의한다.

제2장 자연 상태에 대하여

정치권력의 기원을 밝히기 위해 먼저 자연 상태에 대해 고찰한다. 자연 상태는 타인에 구애받지 않고 자연법의 테두리 안에서 자유롭게 행동하는 상태인 동시에 모든 이들의 권력, 권한이 평등한 상태이다. 그러나 이 자유가 방종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자연 상태의 자연법과 그 법인 이성을 인간을 구속하며 어느 누구도 타인의 생명, 건강, 자유, 소유물에 위해를 가해선 안된다고 가르친다. 그리고 이 자연법을 어기는 자에 대해 모든 이들은 이성에 명하는 바에 따라 범법자의 침해에 비례하는 처벌을 내릴 권력을 지닌다. 이 권력의 예로는 한 나라의 위정자가 외국인에 대해 처벌하는 권력이 있다. 처벌할 권리 말고도 범법자의 위반행위에 손해를 입은 자가 손해배상을 청구할 권리가 있는데 이 권리는 처벌할 권리와는 달리 위정자가 아닌 당사자만이 면제할 수 있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자신과 관련된 사건에 자신이 재판관이 될 수 있는가(편파적이 될 것) 타인을 과도하게 처벌하지 않을까 라는 반론이 있다. 하지만 절대군주 역시 일개 인간에 불과하다. 일개 개인이 맘대로 처벌권을 가진 국가가 자연 상태보다 나은 것이 무엇인가? 또한 인간이 실제 자연 상태에 처해 있는가라는 반론이 있다. 모든 정부와 군주들은 서로 자연 상태에 있기에 앞으로도 그들은 늘 자연 상태에 있을 것이다. 내가 말하는 자연 상태에서 벗어나는 협약이란 하나의 공동체에 함께 가입하여 하나의 정치체를 만들기로 서로 합의하는 종류의 협약만을 의미한다. 그리고 자연 상태에 있었던 적이 결코 없었다는 반론에 대해선 후커의 말을 빌린다. “인간은 자연법의 구속을 받지만 혼자 사는 데에 따른 결함과 불완전함을 메우기 위해 본성적으로 정치사회를 결성하려 한다.” 그리고 나는 더 나아가 모든 인간이 자연 상태에 있으며 정치사회의 구성원이 되기 전까지 그 상태는 지속된다고 주장한다.

제3장 전쟁상태에 관하여

전쟁상태는 적의와 파괴의 상태이다.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자신을 절대적 권력 하에 놓고 나를 맘대로 다루고 노예로 만들기 위해 위해를 선언한다면 그 자는 상대방과 전쟁상태에 들어가게 된다. 나는 자유를 박탈하고자 하는 자를 적으로 간주한다. 설사 누군가 죽이려 하지 않고 돈과 같이 원하는 것을 빼앗기 위해 힘을 사용하여 자신의 권력 하에 두고자 했다 할지라도 그 자를 살해할 수 있다. 동기가 무엇이든 나의 자유를 빼앗으려 하는 자가 나를 권력 하에 두었을 때 모든 것을 빼앗아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전쟁상태는 자연 상태와는 다르다. 권위를 지닌 공통 재판관의 부재는 인간을 자연 상태에 처하게 만드는 반면 재판관이 있건 없건 남을 해치기 위해 힘을 사용하는 것은 전쟁상태를 유발한다. 그러나 전쟁이 끝났을 때 재판관이 없기에 과거의 침해를 호소하고 미래의 해악을 방치할 치유책이 없다. 설사 법과 적절히 구성된 재판관이 있다 해도 왜곡과 곡해를 통해 폭력을 옹호하고 위법행위를 면책하는 또다른 폭력이 가해질 수 있다. 이를 피하기 위해 사회를 결성한다.

제4장 노예상태에 관하여

자연적 자유란 우월한 권력으로부터의 자유로 타인에 구속되지 않고 자연법만을 준칙으로 삼는 것인데 사회의 인간의 자유는 공동체의 동의에 의해 제정된 입법권과 그 입법부가 제정한 법외에는 어떠한 의지의 지배나 법의 제약도 받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절대적, 자의적 권력으로부터의 자유란 인간이 다른 사람의 노예가 될 수 없으며 자기 자신을 비롯한 타인 맘대로 그의 생명을 박탈할 수 없음을 말한다.(인간에겐 스스로 죽을 권리가 없다.) 자기 자신에게 그렇기에 남에게도 그 권력을 줄 수 없다. 어떤 죽어 마땅한 행위를 했을 경우 죽음을 취하지 않고 노예가 된다. 주인은 노예를 죽이거나 그를 기분 내키는 대로 해칠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다.

제5장 소유권에 대하여

성경에 의하면 하느님은 아담과 그의 후손들에게 이 세계를 공유물로 주셨다는데 나는 이 공유물로 주어진 대지에 대한 소유권을 사람들 각각이 지니게 되는지 밝히고자 한다. 세계를 이용할 수 있는 이성을 가진 인간은 대지와 대지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나는 모든 것들에 대한 공동의 권리를 지닌다. 이 상황에서는 배타적 사적소유권이 성립하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들이 이용하도록 주어진 이상 특정한 사람이 일정한 용도에 맞게 사용하거나 그것을 통해 이득을 취하려면 그것들을 수취할 수 있는 수단이 있어야하며 ‘그의 것’이 되어야한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인신에 대해 소유권을 가지고 있다. 자신의 신체는 절대적으로 자신의 것이므로 자연에 자신의 노동을 섞으면 그의 노동이 부가한 무언가를 가지게 되고 이것은 타인의 공통된 권리가 배제된 자신만의 권리이다. 땅에 떨어진 도토리를 “줍는” 노동을 하는 순간 도토리에 대한 사적소유권은 성립한다. 이에 대해 어떤 이가 원하는 만큼 많은 양을 독점할 것이라는 반론이 있다. 그러나 어떤 이가 노동에 의해 자신의 소유로 확장할 수 있는 데는 한계가 있으며 인간은 이성에 의해 삶의 이득이 될 정도의 범위만 소유한다. 토지의 수취물 말고 토지 자체에도 같은 원리로 사적 소유권이 인정되며 토지는 아직 많기 때문에 이런 행위가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 그리고 오히려 그 자체로는 쓸모없는 토지를 자신의 노동을 이용해(근면하게) 풍부한 수확을 이루었으니 이는 인류 공동자산을 증대시키는 행위이다. 그러나 그가 소유하게 된 것들이 썩거나 상하는 등 적절히 사용되지 않으면 이는 이웃의 몫을 침해한 것이므로 처벌을 받게 된다.

앞의 논의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소유권을 발생시키는 노동의 가치이다. 아메리카는 대지 자체는 풍부하지만 노동이 없어 빈곤하게 산다. 또한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물자들 역시 노동에 의해 가공된 자연물이다. 그러나 토지가 희소해지면서 그들 간에 상이한 영토의 경계를 확정하게 되었으며 그들 내부에서 법률로 그 사회의 사인들의 소유권을 협정과 합의로 매듭짓게 되었다.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소유하고 있는 것이 상할 것을 우려해 그가 다른 이들의 것과 교환한다면 이는 어느 것도 무용하게 상하게 하지 않았고 공동의 자산을 낭비하지도 않았으며 남에게 피해를 준 것도 아니다. 이런 식으로 화폐의 사용이 시작되었다. 이 화폐의 사용으로 재산의 지속적 확장이 가능해졌고 그는 여분이 생겨도 자신의 토지를 야생에 방치하지 않게 되었다. 이 금이나 은과 같은 화폐는 인간들의 동의에 의해서만 가치를 지니며 이로 인해 사용하는 것 이상의 생산물을 공정하게 가질 수 있었으며 그 결과 토지는 불균등하고 불평등하게 분배되었다. 이는 인간이 사회의 경계 밖에서 아무런 협정도 없이 단지 금과 은에 가치를 부여하고 화폐의 사용에 암묵적으로 동의했기 때문이다. 반면에 일정한 정부 하에서는 법률과 법규가 소유권과 토지의 소유권을 결정한다.

제6장 부권에 관하여

부권이라는 단어는 여태까지 자식에 대한 권력을 전적으로 아버지에게만 귀속시켜왔다. 그러나 성경에도 나와 있듯이 자식에 대한 권력은 아버지 어머니에게 모두 주어져야한다. 이는 한 사람에게 절대적 권력을 부여하려는 군주제 옹호자들의 주장과 일맥상통한다.

인간은 모두 평등하지만 연령, 덕성은 사람에게 우월성을 부여하기도 하는데 이는 재판권, 지배권에 있어서의 평등과 모순되지 않는다. 사람마다 타인의 의지, 권위에 복종함 없이 자연적 자유에 대해 평등한 권리를 가지기 때문이다. 마찬가지 원리로 지식, 이해력이 부족한 어린 아이들은 성인이 될 때까지 그 지배권과 재판권이 부모에게 맡겨진다. 어린 아이들은 이 이성의 법 아래서의 자유를 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재산을 스스로 처분하는 등의 자유를 갖는 것은 자신의 행동을 그 한도 내에서 규제할 수 있는(법을 알 수 있는 능력) 성인의 상태가 되어야 가능하다. 그렇기에 양친에 의해 지배당함으로서 생기는 복종과 자연적 자유는 양립할 수 있다. 마찬가지 원리로 충분한 이해력을 가지지 못하는 인간들(백치)은 자신의 의지대로 처신하도록 허용될 수 없다. 이 대신에 능력 없는 사람들을 맘대로 하도록 허용하는 것은 자유의 특권을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야수들 사이에 던져서 인간 이하의 상태로 살아가게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성인이 될 경우 그는 아버지의 제국에서 벗어난다. 그러나 신은 양친에게 아이들을 양육할 의무(특히 교육)를 부과하였고 아이들에겐 양친을 존경하고 존중할 의무를 부여하였기에 양친의 지배에서 벗어났어도 이 의무는 계속된다. 이 의무와 미성년 시절의 양친의 지배를 구분하지 못하여 아버지의 절대적인 지배를 지속적으로 주장하는 일이 벌어진다. 그리고 이러한 부권을 군주권과 구별해야한다. 부권에는 군주가 신민에게 가지는 지배권이 결코 포함될 수 없다.

또 하나 아버지가 자식에게 가지는 권력은 소유물의 상속권이다. 인간은 자유롭기에 자신이 시회에 가입하고 국가의 지배를 받을 것인지 선택할 수 있으나 그가 조상의 상속재산을 향유하고자 한다면 그는 그 소유물에 부수되는 모든 조건에 복종해야한다. 조상이 정부의 통치에 동의하였다면 조상의 재산에 대한 권리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정부의 통치 안에 들어 가야한다. 조상의 소유권은 그 정부의 법에 의해 보장받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인한 아버지에 대한 복종은 자발적이며 보상에 의한 권력이다. 이러한 권력을 통해 아버지의 지배는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제7장 정치사회 또는 시민사회의 기원에 관하여

신은 인간을 사회성을 지니게 만들었는데 이에 따라 사회들, 남편과 아내의 사회, 양친과 자식의 사회, 주인과 노예의 사회가 만들어지고 이것들이 합쳐져 가족이 되었다. 그러나 이는 정치사회에 비해 미흡하다. 부부사회는 생식에 필요한 상호간 육체적 교섭과 육체에 대한 권리로 구성되는 자발적 계약으로 형성되며, 생식 말고도 그들 간의 배려와 애정의 결합과 자식들을 위해서(종족의 지속) 상호부양과 협조 및 이해관계의 일치 역시 계약에 포함된다. 암수 공동의 자식 양육은 동물들에게서도 나타난다. 동물보다 인간이 부부간 결합이 지속되는 이유는 여성이 먼저 태어난 자식이 독립하기 전에 다시 새로운 아기를 출산해서 자식들을 돌보아야 하는 아버지가 더 오래 동일한 여자와 부부사회를 지속할 의무를 지기 때문이다. 다른 동물들은 번식기가 오기 전 새끼들이 스스로 살 수 있을 만큼 성장한다. 남편과 아내는 상이한 이해력 때문에 상이한 의지를 가지는데 그렇기에 최종적 결정권, 지배권이 누군가에게 주어져야하며 이는 더 유능하고 힘센 남자의 몫이다. 그러나 절대 군주와의 권력과는 달리 이러한 지배권은 공동의 이해관계, 재산에만 미치며 생명권, 헤어질 자유 등의 아내 특유의 권리는 유지된다. 위정자들은 부부에게 필요한 각자의 권리, 권력을 박탈치 않고 그것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분쟁을 심판할 뿐이다.

(주인과 하인과의 관계: 시민사회의 주된 목적은 재산의 보존이므로 재산을 소유할 수 없는 노예는 시민사회의 일원이 아니다)

(아내, 자식, 하인, 노예가 어우러진 한 가족의 가정적 지배를 구성하는 가족의 가장은 군주와는 전혀 다르다. 가장은 가족의 성원들에게 매우 독특하고 제한된 권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생사여탈에 관한 입법권은 전혀 가지고 있지 못하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자연 상태에서 인간은 자유를 누리며 권리 침해에 대한 처벌권을 가지는데, 이 자연적 권력을 포기하고 공동체가 제정한 법에 의해 모든 사건에 대한 판결, 처벌권을 지니는 공동체의 수중에 권력을 양도했을 때만 정치사회가 존재하게 된다. 공동체는 자신의 권위를 위임받은 자들로 하여금 모든 분쟁을 결정하고 모든 구성원이 사회에 저지른 범죄를 법률이 규정한 벌칙에 따라 처벌하게 한다. 고로 국가는 법을 제정하는 권력(어떤 범죄에 어떤 처벌을 가할 것인가)과 국가의 외부인이 구성원에 가한 침해를 처벌할 권력(전쟁, 평화에 관한 권력)을 지니고 이 모든 것은 가능한 사회 전 구성원의 재산 보존을 위해서다. 또한 재판권을 물론 그 재판을 집행할 때 사용되는 힘을 사용할 권리 역시 공동체에 내준 것이다.

그렇기에 절대군주제와 시민사회는 양립불가능하다. 자연 상태에서 모든 이들이 침해받은 일에 대해 호소할 수 있는 권위를 확립하고자 국가를 만든 것인데, 절대군주는 홀로 입법권과 집행권을 가지고 독단적으로 판결과 처벌을 내림으로써 그 자신은 자연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모두 각자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법을 지키려는 상황(절대군주도 본인의 이익을 추구)에서 절대군주제 하에서 법에 의한 공정한 재판이 가능한가? 또한 절대군주제를 옹호하는 이들은 그의 절대적 권력을 허용해야한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자연 상태를 떠나 사회를 만드는데 한 사람만은 여전히 자연 상태(의 권리를 그대로 가지고)에 있어야 된다는 말과 같다. 아첨꾼들이 아무리 이러한 헛소리를 해대도 인민들은 감정적으로 절대군주제가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처음에 인민들은 위대한 이의 선량함과 미덕에 존경을 바쳤으며 그의 올바름과 지혜를 확신하여 아무 방비책도 취하지 않은 채 그에게 절대 권력을 부여했다. 그러나 전혀 별개의 속성을 가진 후계자들이 나타나면서 그들의 재산이 그러한 정부 하에서 안전하지 않음을 발견한 인민은 입법부를 만들어 법의 지배에 복종하는 신민이 되었다. 이 법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

제8장 정치사회의 기원에 관하여

정치사회의 기원에 대해 다시 정리하자면, 자연 상태에서 독립되고 자유롭고 평등한 인간들은 자신이 동의하에 정치권력에 구속된다. 사람들의 수와는 상관없이 공동체나 정부 구성에 대한 동의로 하나의 단체로 결합하여 하나의 정치체를 결성하게 되며 거기서는 다수가 사람들을 움직이고 결정할 권리를 가진다. 한 단체는 한 방향으로 갈 수 밖에 없으므로 가장 커다란 힘인 다수의 결정에 의해 그 방향으로 움직이며 이러한 원칙에 구속되기로 각자는 동의했으며 권력을 양도한 것이다.( -> 통합의 정치학)

이런 주장에 대해 이 동의에 의한 정부의 창설이 실제로 발생한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는 반론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반론은 국가에 대한 역사적 기원을 잘 모르기 때문에 하는 말이며 자신이 모른다고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말하는 꼴이다. 로마와 베네치아, 팔란투스와 함께 스파르타를 떠난 사람들은 분명 내가 말하는 자연 상태에 있었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국가의 기원이 1인의 정부와 행정 하에 있던 국가들이었다는 점은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는 왜 사람들이 처음에 이런 형태, 군주제를 택했는지에 주목해야한다. 처음에는 아버지의 우월적 권리로 인해 한 사람에게 권력이 장악되었겠지만 이러한 정부형태가 계속된 이유는 아버지의 권위에 대한 존중이나 존경의 결과가 아니었다. 이스라엘과 아메리카 인디언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통치권이 한 사람에게 부여된 이유는 공공선과 안전 때문이었으며 만약 이런 작업이 없었다면 초창기의 유약한 사회는 생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공공선과 안전을 보장하는 군주들의 정직함과 신중함을 믿어 권력을 제약하거나 규제하는 명시적 조건을 부여하지 않았으나 그 권력이 계승될수록 군주들이 직무를 소홀히 하고 백성과 구분되는 이해관계를 추구하려하자 권력의 오. 남용을 방지하기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하게 되었다. 결국 군주의 권력은 신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인민의 동의에 기초를 두고 있었다.

그 다음으로 모든 사람은 이미 존재하는 정부 아래서 태어나기 때문에 어떤 이도 자유롭지 못하며 서로 결합하여 정부를 창설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반론이 있다. 그러나 국가 아래 지배받던 이들이 떨어져 나와 새로운 국가를 창설하는 실례는 매우 많다. 또한 앞에서 설명했듯이 새로 태어난 자식들이 아버지의 상속권을 이어받기 위해선 아버지의 재산권을 보장해주는 아버지가 속한 국가의 권력에 구속되어야하기에 자발적으로 동의한다. 실제로 수많은 이들이 성인이 되어서 자신의 정부를 선택하는데 원래 정부를 이에 제한을 가할 수 없다. (-> 아직 민족국가의 개념이 설립되기 이전이다. nation이 민족의 의미가 되기 이전) 또한 동의에는 명시적 동의 말고도 묵시적 동의가 있다. 여태까지 한 정부의 구속을 받으며 수많은 혜택을 누려왔다는 사실은 그 사람이 암묵적으로 동의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구체적으로 재산권에 대한 보장이 그 예이다. 고로 재산을 모두 양도하면 그는 국가를 바꿔 다른 사회에서 살 수 있다.

(마지막으로 어떤 정부의 구성원이 된다는 것은 단지 그 지역에 가서 그 법률이 제공하는 특권과 보호를 향수함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그냥 외국인) 적극적 협정이나 명시적 약속, 협약을 통해 실제로 어떤 나라에 가입하지 않는 한(실제 귀화 절차) 그 나라의 신민이나 구성원이 될 수 없다.

제9장 정치사회와 정부의 목적에 대하여

자연 상태에 있는 인간이 인신, 소유물에 대한 절대적 자유를 누리며 그는 누구와도 평등하며 누구에게도 종속되지 않는데 이를 포기하고 자신을 타인의 권력, 지배하에 복종시키려고 하는 이유는 권리의 소유와 별개로 그 향유가 불확실하고 타인에게 침해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이들이 그와 같이 왕이고 평등하며 형평과 정의의 엄격한 준수자들이 아니다. 고로 인간이 정부 지배하에 들어가는 주된 목적은 재산 보존이다. 자연 상태에는 분쟁을 해결하는 척도가 없어 침해자들이 인정하지 않으며 다툼을 해결할 공정한 재판관도 없다. 자신에게 편파적인 인간들은 자신과 상관이 있으면 격분하고 상관이 없으면 무관심할 것이다. (-> 재판을 국가에게 맡긴다 해도 편파적이지 않는가? 현대사회에선 이해관계가 더 복잡해지면서 오히려 더 예측할 수 없게 되었다!) 또한 판결이 내려져도 이를 집행할 권력이 없기에 저항을 자초한다. (-> cf) 반민특위) 이런 연유로 정부에 들어가는 이들은 그 자신과 타인들을 보존하는데 필요한 만큼 사회가 제정한 법에 의해서 그 권력이 행해지도록 자신과 인류룰 보존하는데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을 행하는 권력을 포기한다. 또한 처벌권을 포기하고 사회의 법이 요구하는 대로 사회의 집행권을 돕는 데 그의 자연적 힘을 사용한다.

제 10장 국가의 형태에 관하여

인간이 처음으로 결합하여 사회를 구성하자마자 공동체의 모든 권력을 장악한 다수는 스스로 법률 제정과 집행권의 원천(스스로 하거나 그들이 임명한 관리에 의해)이 되는데 이는 민주정이다. 그러나 입법권을 선택된 소수에게 위임한다면 과두정이고 한 사람에게 맡기면 군주정이다. 군주와 그의 상속인들에게 맡겨지면 세습군주정, 군주가 죽은 뒤 후계자를 지명하는 권리가 다수에게 있다면 선거 군주정이다. 공동체는 이런 것들 중에 복합적이고 혼합적으로 여러 가지를 섞어서 정부형태를 만들 수 있다. 그리고 입법권이 위임될 때 정해진 기간으로 한정된다면 다수에게 그 권력이 돌아올 때 다수는 그것을 원하는 사람에게 새롭게 맡길 수 있고 그리 하여 새로운 정부 형태를 구성한다. 정부형태는 최고의 권력인 입법권을 어떻게 배치하느냐에 따라 좌우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내가 사용하는 국가란 의미는 정부형태(민주정 등)가 아니며 독립적 공동체를 의미한다. 공동체나 도시는 하나의 정부 안에 여러 개 존재할 수 있기 때문에 나의 개념을 설명하는 적절한 단어가 아니다.

제 11장 입법권의 범위에 관하여

모든 국가의 기본이 되는 최초의 실정법은 입법권을 확립하는 것이다. 입법권은 그것이 누구에게 주어지건 모든 국가에서 최고 권력이며, 공공이 선출하고 임명한 입법부로부터 승인을 받지 못하면 그러한 법률은 효력과 의무를 가지지 못한다. 법률에 근거한, 즉 입법부가 승인한 규정에만 모든 인민은 복종할 의무를 가진다.

하지만 입법권에는 제한이 존재한다. 이는 신법과 자연법이 모든 국가의 입법권에 부여한 한계이다. 먼저 입법권은 인민의 생명과 재산을 절대적, 자의적으로 다룰 수 있는 권력이 아니다. 즉 자연 상태에서 인민이 가지고 있던 소유권과 생명권을 공동체에 양도한 것이기에 입법권은 자연 상태 이상의 권력으로 행사될 수 없다. 입법권의 가장 큰 목적은 사회 공동선의 실현이기에 최고 권력이더라도 공공선에 의해 제한되어 사회 보존 이외의 목적을 가지지 못한다. 이는 입법권이 결국 영구적-항구적 자연법, 곧 신의 의지를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입법권 또는 최고의 권위는 즉흥적이고 자의적인 명령을 통해서 통치권을 행사할 수 없다. 영속적인 권한을 위임받은 재판관이 입법권을 행사하도록 하여 일시적이고 가변적으로 변화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렇기에 국가가 어떤 형태를 취하든, 통치권은 즉흥적인 명령과 불확실한 결정이 아니라 선포되고 승인된 법률을 따라야 한다.

셋째 최고의 권력은 어떤 사람으로부터든 그의 재산의 일부를 그의 동의 없이 취할 수 없다. 재산의 보존이 정부의 목적이고 오직 그 목적을 위해서 인간이 사회에 들어간다는 사실은 모든 인민이 자신의 재산을 가지고 있음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절대군주제에서 군주는 공동체의 일반구성원과 구분되는 독자적인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그 자신의 부와 권력을 증대시킬 수 있는 위험이 있다. (귀족정에서도 마찬가지) 따라서 군주건 귀족이건, 그들이 신민들 사이에 재산을 규제하는 법을 제정할 권력을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신민들의 동의 없이 그들의 재산의 전부나 일부(ex. 세금 징수)를 취할 수 있는 권력은 결코 가질 수 없다.

마지막으로 입법부는 법률을 제정할 권력을 다른 사람들에게 이전할 수 없다. 입법권은 인민들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이기에, 인민들만이 국가의 형태를 지정할 수 있으며 그 지정행위를 통해 입법부를 구성함으로써 행사되는 것이다. 이로써 입법부는 법률을 제정할 수 있을 뿐이지 입법자를 만들 수는 없기 때문에, 그들이 법률을 제정할 권한을 이전해서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맡길 수는 없다.

제 12장 국가의 입법권, 집행권 및 연합권에 관하여

법률들은 즉각적으로 혹은 단기간에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에 입법부가 상시적으로 개회중일 필요는 없다. 또한 입법권을 부여받는 자도 결국에는 법률을 통해 권력을 확대하고 싶은 욕망을 가진 인간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입법권은 ‘적법하게 소집된’(선거를 말하는가?) 다양한 사람들의 수중에 맡겨지고, 그들이 그 일을 완수하면, 다시 흩어져서 그들 자신이 제정한 법률에 복종하는 신민으로 되돌아간다.

하지만 법률이 항구적이고 지속적인 효력을 가지려면, 제정된 법의 집행을 상시적으로 담당할 수 있는 권력이 필요하다. 즉 집행권은 사회 내에서 사회의 구성원 모두를 대상으로 하여 국내법의 집행을 담당하는 권력이다. 그리하여 입법권과 집행권은 분리되는 것이다. (오늘날의 삼권분립-입법/행정/사법- 개념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또 ‘연합적 권력’이라는 것도 있는데, 이는 전쟁 및 강화의 권력과 연맹 및 동맹의 권력 그리고 국가 밖에 있는 모든 사람 및 공동체와 모든 교섭을 할 수 있는 권력을 말한다. 집행권과 다르게 연합권은, 대외적으로 사회가 이득이나 손해를 받을 수 있는 모든 대상으로 하여 공공의 안전과 이익을 다루는 권력이다. 하지만 집행권과 연합권은 거의 항상 결합되어 있다. 왜냐하면 둘 다 그 행사를 위해서 사회의 힘을 요구하는데, 국가의 무력을 분리하여 별개의, 서로 독립된 기관에 맡기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로크의 권력분립을 2권분립으로 본다. 입법권 / 집행권-연합권)

제 13장 국가 권력의 종속에 대하여

입법권은 일정한 목적을 위해서만 활동할 수 있는 단지 신탁된 권력이므로 입법부가 그들에게 맡겨진 신탁에 반해서 행동할 때 입법부를 폐지하거나 변경할 수 있는 최고의 권력은 인민에게 있다. 공동체는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권리를 갖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정한 정부 형태가 존속하는 경우에는 공동체가 이러한 권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간주되지는 않는다. (인민의 이러한 권력은 정부가 해체될 때 발생하기 때문이다 /정부해체=통치계약 파기 가능)

정부가 존속하는 경우에는 언제나 입법부가 최고의 권력이다. 입법부가 상시적으로 개회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집행권을 가진 자에게 입법권이 위임되어 있다고 해도, 정당한 이유가 있을 때는 그(혹은 그들)로부터 회수할 수 있다. 특히 입법부를 소집(=선거)하는 권력은 보통 행정부에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행정부가 입법부에 대해 우위에 서는 것은 아니다. 행정권자의 취향에 따른 임의적 권력으로서가 아니라 오직 공동선을 위해 상황과 사태의 변화가 요구하는 바에 따라 그 권력을 행사해야 한다.

입법권이 행정권에 앞서는 그 이유는 무엇인가? 입법부가 상시적인 기관이 아닌 상황에서 행정부가 1인에게 맡겨져 있고 그 사람이 입법부에도 관여하는 경우에는 그가 법률의 최고 집행자가 된다. 그는 국가의 대표자로서 법률에서 선언된 사회의 의지에 의해 행동하는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가 사사로운 의지에 따라 활동하게 되는 위험성이 있다.(입법권과 행정권 모두를 장악하려는 인간의 권력욕에 대한 로크의 경계심) 그렇기에 행정권이 입법권에 종속되는 것이다. 이는 연합권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연합권과 행정권은 입법권에 대해서 보조적-종속적이다. 그 밖에 보조적이고 종속적인 권력 또한 마찬가지이다.

제 14장 대권에 관하여

입법권과 행정권이 상이한 사람들에게 분리되어 있는 경우, 사회의 복지를 위해서는 몇 가지 사항들이 행정권을 가진 자의 재량에 맡겨질 것이 요구된다. (법률이 침묵을 지키는 사항에 관한 경우, 법률의 직접적인 문구에 반하는 경우, 신속한 판단이 요구되는 경우 등) 여기서 대권은 예측하지 못한 그리고 불확실한 사태가 발생함에 따라, 확정된 변경할 수 없는 법률들이 인민의 복지를 위해서 명백히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안전하게 지시할 수 없는 경우에 군주가 공공선을 제공하고 정부를 그 진정한 토대 위에 정립하기 위해서 가지는 권력(p. 152)이다.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서 그리고 정부의 신탁과 목적에 적합하게 행사될 때에는 정당한 대권이다. 영국사를 보면 누구나 가장 현명하고 선량한 군주들에게는 항상 가장 많은 대권이 남아 있었다. (왕권신수설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우둔하고 사악한 군주는 공공이 이익과 구분되는 이익을 취하거나 추진하기 위해 대권을 마음대로 행사하곤 했다. 이로 인해 인민들은 묵시적으로 허용했던 대권을 제한하고자 하는 계기를 가지게 된다.

그렇다면 이 권력이 정당하게 사용되었는가를 누가 판단하는가? 인민이 판결을 내리는 재판관이 될 수 없지만, 모든 인류에게 속하는 궁극적인 결정권, 곧 그들(군주들)이 하늘에 호소할 수 있는 정당한 명분이 있는가를 판단하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인민은 이러한 판단권을 양도할 수 없다.

제 15장 부권, 정치적 권력 및 전제적 권력에 관한 총괄적 고찰 (지금까지의 논의를 정리)

1) 부권 또는 친권은 자식들의 복지를 목적으로 하는 권력으로서 양친이 자식들을 다스리기 위해서 그들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권력이다. 즉 미성년임으로 인해서 자식이 그의 재산을 관리할 수 없는 경우에 발생한다. 하지만 생사여탈권으로까지 확대될 수 없다. 또한 자식을 존중, 존경, 보은 등과 같은 의무 이상으로 양친의 의지에 종속시킬 수 없다. 이는 결국 자연스러운 통치임, 결코 그 자체가 정치적 목적과 지배로까지 확대되지 않는다. (로버트 필머의 논리를 반박)

2) 정치권력은 모든 사람이 자연 상태에서 가지고 있다가 사회에 양도한 것이며 인간이 스스로 처분할 수 있는 재산이 있는 경우에 발생한다. 즉 정치권력은 구성원들의 재산을 보존하기 위한 목적으로 성원들간의 자발적인 협정과 합의 및 동의에 기원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의 생명과 재산에 대한 절대적이고 자의적인 권력이 될 수 없다.

3)반면 전제적인 권력은 한 인간이 다른 사람에 대해서 가지는 절대적이고 자의적인 권력으로서 그가 원하면 언제나 다른 사람의 생명을 박탈할 수 있는 권력이다. 포로의 권리를 몰수함으로써 전제적 권력이 주인에게 부여되는 것과 같다. 이것은 자연이 인간에 부여한 권력이 아니다. 또한 이는 전쟁상태의 지속에 불과하다. 자신의 포로와 계약을 체결하여 그에게 권리를 부여하는 경우 자신의 절대적인 권력을 포기하고 전쟁상태, 노예상태를 종결짓게 된다.
제 16장 정복에 관하여

정치체는 인민의 동이 이외에 다른 어떠한 기초도 가질 수 없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무력을 인민의 동의로 잘못 생각하여, 정복을 정부의 기원 중의 하나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정복은 정부를 설립하는 것과는 전혀 별개의 것으로서, 정복을 통해 복종을 강요하는 자는 그의 힘에 의해서 그러한 자격을 가질 뿐이다.

하지만 합법적인 전쟁에서 정복자의 지위는 어떠한가? 그가 어떤 권력을 누구에 대해서 가질 수 있는가? 1) 먼저 정복에 참가한 자들을 살펴보자. 그들에 대해서는 정복자가 자신의 정복을 이유로 아무런 권력도 얻지 못한다. 그들은 자유인이며 전리품과 정복에 의한 이득의 일부를 정복자와 공유할 수 있다. 또한 그렇기에 ‘봉사’의 역할을 한다. 2) 전쟁에서 반대편을 지원하고, 협력하고, 그것에 동의한 자들에 대해서만 권력을 가질 뿐이다. 그 밖의 모든 사람들은 무고하다. 즉 그는 자신에게 아무런 손해를 끼친 바 없는, 그 나라(상대편 나라)의 인민에 대해서는 아무런 자격을 가지지 못하며, 그들의 생명을 몰수할 아무런 권리도 없다.

3) 또한 정복자가 정복을 통해 굴복시킨 자들에 가지는 권력은 완전히 전제적이다. 피정복자들이 생명에 대한 권리를 몰수당하더라도 그들의 소유물들, 재산에 대한 권리와 자격이 박탈될 수 없다. 힘에 의해서 강요된, 정당성이 없는 약속은 동의로 간주될 수 없으며 구속력을 전혀 가질 수 없다. 다만 정복자가 입게 된 손해와 지출한 전쟁 비용을 배상받기 위해서는 피정복자들의 자산에 까지 미치기도 한다. 4) 하지만, 그 경우에도 무고한 부인과 후손의 권리를 박탈할 수는 없다. 부인이나 후손들은 무력으로 그들에게 부과된 전제로부터 자신들을 해방시킬 권리를 항상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정복자가 그들의 재산을 침해한다면, 그는 침략자가 되어 그들과의 전쟁상태를 자초하게 된다.

제 17장 찬탈에 관하여

찬탈은 일종의 대내적 정복이다. 국가의 법이 지정한 이외의 방식으로 권력을 담당하게 된 자는 비록 국가의 형태가 그대로 남아 있더라도 복종을 요구할 권리가 없다. 왜냐하면 그는 법률이 지명한 인물, 결과적으로 인민이 동의한 인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한 찬탈자 또는 이후 계승자는 찬탈한 권력을 허용하고 인정하기로 동의하였을 때 비로소 자격을 가지게 된다.

제 18장 전제에 관하여

전제는 정당한 권리를 넘어선, 곧 어느 누구의 권리에도 속할 수 없는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이는 자산의 사적인 별도의 이득을 위해서 행사하는 것이며, 그러한 통치자는 법이 아니라 자산의 의지를 준칙으로 삼는다. 이는 오직 군주제에만 고유한 것이 아니다. 다른 형태의 정부도 (권력을 그렇게 사용하는 자가 1인이건 다수이건) 군주제와 마찬가지로 전제적 권력을 행하기 쉽다. 법률에 의거하여 그에게 부과한 권력을 초과하고 무력을 사용해 신민들에게 법이 허용하지 않는 것을 강요하는 자는 위정자로서의 자격을 상실하게 된다.

그렇다면 그러한 군주의 명령에 대항할 수 있는가? 그때마다 군주에게 저항해도 무방한가? 오직 부당한 불법적인 무력에 대해서만 무력으로 대항할 수 있다. 그 밖의 다른 경우에 대항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신과 인간으로부터 정당한 비난을 받게 된다. 그 이유는 군주의 인신이 법에 의해 신성불가침하며, 신성불가침 하지 않은 정부의 경우에라도 무력이란 한 개인이 법에 호소하는 수단이 막혔을 때만 사용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세상 사람 모두가 군주의 명분과 실제의 행동이 다르고, 신탁된 대권이 본래 주어진 목적과 반대로 사용된다는 점을 알아차리게 된다면 어떻게 되는가??

제 19장 정부의 해체에 관하여

인민의 저항권과 정부의 해체를 본격적으로 논의하기에 앞서 사회의 해체와 정부의 해체를 구분해야 한다. 사람들이 자연상태로 되돌아가게 되는 ‘사회의 해체’는 외국 군대의 침입에 의해 정복당하는 경우에 발생한다. 이처럼 사회가 해체되는 경우에는 그 정부 역시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에 사회의 해체는 자동적으로 정부의 해체를 수반한다. 하지만 인민의 저항에 따른 정부의 해체는 사회의 해체를 필연적으로 동반하지 않는다. 설사 정부가 해체된다 하더라도, 그것은 단지 입법권의 철회 혹은 최고권력자의 변경을 의미할 뿐 사회 계약의 무효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즉 개인들은 이전에 빠져나온 자연상태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공동체를 유지한 채로 있다.

그렇다면 정부가 내부로부터 해체되는 경우를 살펴보자. 먼저 국가에서 권력을 가진 자들이 권력을 남용하여 입법부를 변경할 때이다. ex. 법률을 자의적인 의지로 해체하거나 정해진 시기에 입법부가 집회를 갖는 것 혹은 그것이 설립된 목적에 의거하여 활동하는 것을 반대할 경우, 자의적인 권력에 의해서 인민의 동의 없이 또는 인민의 공통된 이익에 반하여 선거인단이나 선거 방법을 변경할 경우, 군주나 입법부가 인민을 외국 세력에 넘겨서 예속시킬 경우 등이 있다. 다음으로 최고의 집행권을 가진 자가 자신의 임무를 게을리하고 방기함으로써 이미 제정된 법률이 더 이상 집행될 수 없을 때이다. 사회의 유지와 보존을 위한 법이 집행될 수 없는 경우 그것은 법률이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마지막으로 입법부와 군주, 둘 중 어느 한편이 그들의 신탁에 반해서 행동하는 때이다. ex. (입법부와 군주 모두) 신민 혹은 공동체 구성원의 재산을 침해하고 자신들이나 공동체의 특정 부분을 인민의 생명, 자유, 재산의 주인 또는 자의적인 처분자로 만들고자 기도함으로써 그들에게 맡겨진 신탁에 반해 행동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경우에 정부가 해체되며 인민은 원래의 자유를 회복할 권리와 그들이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바에 따라 새로운 입법부를 설립함으로써 바로 그들이 사회에 가입한 목적에 다름 아닌 그들 자신의 안전과 안보를 강구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게 된다. 이러한 저항권에 대해 살펴보자면, (19장 220절) 우선 그것은 “폭정으로부터 벗어날 권리 뿐 아니라 그것을 예방할 권리”까지도 포함한다. 또한 권리로서 인민의 저항은 단순히 비폭력적인 시민 불복종 형태의 것에 한정되지 않고, 좀 더 근본적이며 과격한 방법, 곧 폭력적 저항까지도 포괄한다. (235절)

이에 대해 예상되는 반론과 반론에 대한 로크의 재반박은 다음과 같다. 먼저 인민은 무지하고 항상 불만에 차 있기 때문에 인민의 불안정한 의견과 불확실한 변덕 위에 정부의 토대를 쌓는 것은 정부를 확실히 파멸에 빠뜨리는 것이라는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게다가 인민이 기존의 입법부에 대해서 분노를 느낄 때마다 새로운 입법부를 세울 수 있다면 어떠한 정부도 오랫동안 지속될 수 없을 것이다. 이에 대해 로크는 인민은 생각만큼 그리 자주 정부의 해체를 요구하는 봉기를 일으키거나 체제를 변화시키려고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즉 그러한 혁명은 공공사를 처리함에 사소한 잘못이 있을 때마다 매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두 번째 제기될 수 있는 반론을 보자. 인민의 권리, 특히 저항권에 대한 가설은 빈번한 반란을 발효시키는 효소가 될 것이라는 반론. 즉 자신들의 자유와 재산에 불법적인 기도가 행해질 때 인민은 복종의 의무로부터 면제되고, 위정자들이 자신들에게 맡겨진 신탁에 반해 인민의 재산을 침해하는 경우에 위정자들의 불법적인 폭력에 대항해도 좋다고 인민들에게 말하는 것은 내전이나 내분을 조장한다. 이에 대해 로크는 인민의 저항권을 인정하는 것이 오히려 반란을 방지할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이라고 말한다. ‘반란자rebel’는 누구든 무력으로 그러한 제도와 법률을 망가뜨리고 무력으로 그 침해를 정당화하는 사람이다. 반란을 일으킨다의 ‘rebellare’에서 ‘re’는 ’다시‘를, ’bellare’는 전쟁을 의미하므로 ‘반란자’는 ‘전쟁을 재개하는 자’를 뜻하고, 이는 결국 무력을 사용하여 계약을 파기하고 나머지 공동체 구성원들과 전쟁상태에 돌입하려는 자를 지징하게 된다. 그렇다면, 권력을 지닌 자들이야말로 그들이 지닌 권위에 대한 명분과 그들 수중에 있는 무력의 유혹, 그리고 그들 주위에 있는 자들의 아첨에 의해서 반란 행위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로크는 인민의 저항권을 인정하는 것이 반란의 유혹을 가장 크게 느낄 법한 자들에게 반란 행위의 위험과 부적절함을 보여줌으로써 사회의 혼란과 무질서를 막는 방책이 된다고 주장한다.

마지막 반론은, 로크의 저항권에 대한 교의가 세계 평화를 파괴하기 때문에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로크는 ‘정부의 목적은 인류의 복지’라는 점을 들어 이에 반박한다. 그는 결백하고 정직한 사람이 평화를 위해서 그가 가진 모든 것을 뺏으려는 자에게 순순히 양보해야 한다면, 나는 오직 폭력과 약탈이 존재하는 그러한 세계에는 도대체 어떤 종류의 평화가 있을 것인가? 라고 묻는다. 아마 그러한 세계는 강도와 압제자들의 이익을 위해서 유지될 것이다.

국왕의 권력과 신성 불가침성을 열렬히 옹호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은 스스로 방어하고 침략자에게 저항할 권리를 가진다고 말했던 바클레이의 주장을 살펴보자. 그는 ‘정당 방위는 자연법의 일부이며, 그것이 왕 자신에게 대항하는 것이라고 해서 공동체에게 부정될 수 없다, 이것은 사적인 개인이 가지는 것이 아니라 인민 일반이 가지는 특권이다. 그러한 인민은 존경심을 품은 채 참을 수 없는 폭정에 대해 항거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단지 온건할 때, 그들은 참아야 한다’라고 말한다. 즉 바클레이는 저항은 존경심을 품은 채/복수나 처벌 없이 행해져야 한다는 조건을 부가하고 있다. 하지만 이에 로크는 공손한 자세로 대처하는 자는 악화된 사태만을 초래할 뿐이며, 열등한 자가 우월한 자를 처벌할 수 없는 경우는 우월한 사람인 하에서만 옳다고 말하며 반박한다. 중요한 점은, 절대군주를 옹호했던 바클레이조차도 왕에 대해서 저항할 수 있고 왕이 더 이상 왕으로서의 자격을 가지지 못한다는 것을 인정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누가 군주나 입법부가 그들의 신탁에 반해서 행동하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재판관이 될 것인가? 인민이 재판관이다. 인민이 정치사회를 구성하고 국가의 최고 권력을 창출한 존재라는 점에서 잠재적인 주권자이며 국가 권력의 신탁 위반 여부를 일상적으로 재판하는 존재이다. (다소 추상적/상징적이다) 즉 뛰어난 판단 능력을 갖춘 전문가 집단을 또 내세우지 않는다. 전체 인민이 신탁 위반 여부를 가리는 재판관 역할을 하기 위해 여러 가지 제도적인 장치가 필요하지만, 중요한 것은 ‘인민이 재판관’이라는 원칙이 부인될 수 없다는 점이다.

http://blog.aladin.co.kr/jobonzwa/3924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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