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발견』에 대한 짧은 생각 2

신희섭의 정치학-『정치의 발견』에 대한 짧은 생각 2

 

한국 정치에서 발견되는 문제 중의 하나는 정치에 대한 도덕적 이해가 강하다는 것이다. 정치를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자 존재방식으로 이해하기 보다는 당연히 해야 할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정치를 제도로 이해하고 그 제도가 얼마나 비인격적인 방식으로 작동되며 보완적인 차원에서 인격적인 리더십이 이 제도를 작동하게 하는 것으로 이해될 필요가 있다. 그런데 도덕적인 정치접근은 제도가 중심이 아니라 정치를 사람 중심으로 이해하고 그 사람의 됨됨이를 보는 것이다. 이것은 정치에 기대되는 실천적 도덕 그 이상을 요구하게 된다. 정치인이 도덕적인 인간으로 그가 도덕에 기반해서 정치를 운영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정치의 기준을 도덕에 두고 그 도덕성에 위반된 정치를 혐오하거나 부정하는 것은 정치에 대한 몰이해에 근거한 것이다.
미국 대통령 트루만이 1945년 8월 일본에 핵을 투하하는 시점에서 종교인으로서 느꼈을 참담함을 이해해야 한다. 하지만 자국민과 함께 일본인을 포함해서 더 많은 희생을 막기 위해  전쟁을 끝내야 하는 정치지도자로서 결단이 필요한 상황이고 미래를 위해 엄청난 폭력만이 전쟁을 끝낼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던 정치지도자로서 그의 입장도 이해해야 한다.
정치공동체에는 수많은 인간 군상이 있다. 심리적으로만이 아니라 사회경제적 배경이 다르며 자신들이 선호하는 가치가 다른 이들을 하나의 공동체로 끌고 가기 위해서는 사회적 합의와 합의를 실천하기 위해 원칙과 권력이 필요하다. 그것은 특정한 사람들의 도덕성을 뛰어 넘어야 하는 것이다. 도덕성을 넘어서는 ‘비인격적’ 지배구조가 현대 정치의 원리라면 최대한 비인격적인 지배구조가 작동하고 있고 그래서 공정하다는 공정성차원에서의 정의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민주주의와 민주주의에 기반한 정치를 도덕적인 인간들의 정치로 규정하면 정치는 비인격적인 제도가 아닌 인격을 갖춘 리더의 문제로 귀결된다. 이러한 정치에 대한 인적(人的)이해는 우리에게 정치를 친숙하게 해주며 내가 지지한 지도자와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정치를 동일시 할 수 있게 해주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인적인 이해는 제도적 뒷받침이 없을 때 쉽게 작동을 멈춘다. 새로운 정치에 대한 ‘열망’과 정치적 실패로 인한 ‘실망’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념적인 관점에서 민주주의를 접근하는 것은 정치를 도덕적으로 이해하게 할 뿐 아니라 인적인 관점에서 이해하게 한다. 제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인적인 정치는 도덕적 존재로서 지도자를 원하게 한다. 그러나 우리가 도덕이 중요하다고 해서 공동체 전 구성원을 아리스토텔리스로 만들 수도 없고 그들을 칸트로 만들 수도 없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라는 점에서 언제나 실수를 할 수 있다. 따라서 불완전한 도덕적인 존재인 인민이 완전한 도덕적 지도자를 만들거나 선택하는 것 역시 어렵다. 인간의 불완전성에 대한 믿음은 현실적인 인간에 대한 이해에 기반한 것이다. 이로 인해 인간에 대한 불신을 당연하게 여긴다. 인간에 대한 불신이 가져온 것이 비인격적인 지배구조인 제도이다. 제도는 인격이 가지고 있는 향기를 없앤다. 하지만 제도는 예측가능성을 높임으로서 작동가능성과 작동할 것이라는 기대를 높인다.
여기서 오해하면 안될 것은 제도의 정치를 강조하는 것이 리더십을 배제하자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제도가 작동하는 방식은 어떤 사람이 제도를 운영하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미국대통령제도의 긴 역사에서 어떤 리더인가에 따라 좋은 대통령과 나쁜 대통령이 나왔다는 것은 제도를 운영하는 리더십이 중요하다는 반증이다. 따라서 리더십은 중요하고 리더의 도덕적 자질은 중요하다. 하지만 정치전체를 이것으로 한정하고 이해하는 것은 위험한 것이다.
민주주의를 너무 넓혀서 이해할 경우 현 제도의 문제를 고치기 위한 리더십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사회적 가치를 구현하고 궁극적으로 이념을 체현할 지도자나 인텔리젠차가 필요하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정치에 대한 요구는 지도자 몇 몇 사람에 의한 정치가 제도의 도움없이 작동하기 어렵다는 현실에 부딪친다. 사람에 대한 기대가 클수록 실망이 커지기 때문에 강한 열망은 빠른 실망으로 변한다.
이렇게 민주주의와 정치에 대한 확장된 이해와 도덕적 이해가 가져오는 현실적인 문제는 정치 혹은 지도자가 구체적 정책 제시를 못할 수 있다는 점과 이로 인해 체념주의와 냉소주의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념과 가치는 ‘좋은’ 민주주의를 현실보다는 좀 더 먼 거리에 있는 것으로 만든다. 그것은 무엇이 되었으면 좋겠다와 무엇이 될 수 있는가 사이의 접점을 줄이지 못하게 할 수 있다. 결국 ‘가능성의 예술’로서 정치를 작동시키지 못한다면 이념적인 민주주의는 현실 정치에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지 못한다.
실현하고자 하는 가치와 이념이 실제 정치현상에서 나타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이상적인 정치에 대한 기대는 곧바로 체념으로 바뀐다. 그리고 이런 체념은 현실정치에 대한 냉소주의로 귀결된다. 냉소주의는 이상적이고 도적적인 입장의 자신들과 제도적이고 부패한 그들을 구분한다. 정치의 탈정치화가 일어나면서 현실정치는 이제 포기될 수 밖에 없는 것이 된다. 더 나쁜 것은 불가능한 이상적 기준을 제시하고 이것을 변명삼아 지도자자신의 정치적 무능을 변명으로 만드는 것이다. 인민의 지지 부족이나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 부족과 낮은 민주화 수준으로 정치적 실패원인을 이야기 하면서 자신의 책임을 인민과 지지자들에게 돌리는 것이다.
이렇게 도덕적인 정치로 무장한 이들은 민주주의의 기본적인 원칙인 평등을 무시하기도 한다. 사회구원에 나선 메시아로서 이들은 구원자인 자신과 구원의 대상인 인민을 구분한다. 도덕은 순간 위계를 구축하는 기준이 된다. 나는 월등한 도덕자이고 그들은 열악한 자들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계몽주의적 의무감에서 월등한 나는 열악한 이들을 계몽해야 한다. 이 지점에서 도덕적 권위가 부여된다. 나의 행동은 정당화되는 것이고 그 정당화된 행동은 권위를 넘어 권력을 필요로 한다. 왜? 계몽적인 나의 입장을 따르지 않는 이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해서는 권력이 필요하니까.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도덕은 권력화를 지향한다. 여기에 도덕적 정치의 아이러니가 숨어있다. 도덕적 관점에서 자신은 사회를 구원하러온 구원자이자 메시아가 되고 다른 이들은 자신의 구원을 받아들여야 하는 열등한 존재들이 된다. 그런데 만약 자신의 주장을 거부한다면 이들은 이교도가 되는 것이다. 이교도에 대한 끔찍한 형벌이 사회를 도덕적으로 완전하게 만들 수 있다. 철저한 권력적 응징이 필요한 것이다.
메시아식 정치의 핵심은 인민을 구원하는데 있다. 정치적으로 구원된다는 것은 인민에게 권력을 넘겨주고 이들이 민주주의의 핵심 주체가 되게 하는 것이다. 이 지점이 도덕적 이해의 마지막 폐해가 될 수 있다. 선의에서 시작된 민주주의를 이념적으로 이해하고 정치를 도덕적으로 보는 것이 잘못된 정치 운영에 의해 인민에 대한 책임전가로 이어질 수 있다. 또한 권력의 사인화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를 이상적으로 이해하면 생길 수 있는 문제는 ‘민주주의=인민주권’의 공식을 당연시하는 경우에 발생한다. 이 논리에 따르면 민주주의는 인민의 지배이기 때문에 인민이 민주주의의 중심에 서야한다. 따라서 권력의 중심 자리를 인민에게 넘겨주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정치를 운영할 때 인민전체를 통해서 의사결정을 할 수는 없다. 정치체제의 효율성을 위해서 현실정치는 인민의 의사를 가장 잘 아는 몇 몇 과두적인 인사들에 의해서 운영된다. 이런 경우 이들은 민주주의를 ‘인민에 의한 지배(by the people)’로 이해하지 않고 ‘인민을 위한 지배(for the people)’로 이해하게 된다. 인민을 위한 정치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자신들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민주주의가 인민을 위한 것일 경우 극단적으로는 인민을 위한 정치를 거부하는 이들을 배제한 독재도 가능해진다. 다른 한편으로 민주주의를 ‘인민에 의한 지배(by the people)’로 이해하면 정치적 실패는 인민의 책임으로 귀결된다. 예를 들자면 진보정치의 실패를 인민들의 지지 부족으로 하여 인민들에게 책임을 돌리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한편 민주주의를 너무 확대해서 인민의 지배나 인민을 위한 지배라고 하는 이상적인 형태로 이해할 경우 권력이 사인화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인민의 이름을 걸고 민주주의를 주장하면서 현실적으로는 인민을 위한 대표로서 자신이 마치 인민을 위한 구원자로서 인민의 의사관철을 돕는다는 입장에서 권력은 인민의 손에서 자신의 손으로 넘어오게 된다. 수많은 지도자들이 독재의 늪에 빠지게 된 것은 인민을 위한 정치를 오로지 자신만이 할 수 있다는 순진한 믿음과 이념적 독선에 근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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